(제 12 회)

제 2 장

 

4

평양

1943년 여름

 

대동강을 끼고있는 평양부 계리의 번잡한 거리에 《평양금강화장품상점》이라는 간판을 내건 2층건물이 있었다.

물색이 바랜 국민복을 입은 젊은이가 큰길을 건너오더니 곧장 상점안으로 들어갔다. 땡볕에 탄 얼굴은 적동색이고 두눈이 번쩍번쩍 빛을 내는 스물대여섯나이의 젊은이였다. 그의 걸음걸이는 침착하면서도 자신심이 있었다.

진한 분향기냄새가 풍기는 상점안에는 금방 사춘기를 벗어난듯 한 단발머리들이 아니면 말쑥한 옷차림의 젊은 쪽머리녀인들 몇이 제마음에 드는 크림이며 분곽들을 고르고있을뿐 퍼그나 한적했다. 남자라고는 매대안에 서있는 30대의 점원뿐이였다.

젊은이는 녀인네들의 먼 뒤켠에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빈자리가 나자 거침없이 점원한테로 다가가 몇마디의 말을 주고받았다.

점원이 친절한 눈인사를 보내고나서 소리없이 매대옆의 뒤문을 열고 사라졌다가 얼마후 다시 나타났다.

《가십시다.》

젊은이는 점원의 안내를 받으며 좁다란 나무계단을 거쳐 2층으로 올라갔다. 점원이 어느 한 방의 출입문을 조심히 열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젊은이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재봉기와 옷감들이 있는 자그마한 방이였다. 거기에는 두 사나이가 걸상을 놓고 마주앉아있었다.

젊은이는 빙긋 웃음부터 앞세우며 말했다.

《아, 두분 다 계셨군요.》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방안의 두사람도 황황히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러나 아직 젊은이가 누군지를 알아보지는 못한것 같았다.

젊은이가 걸걸한 소리로 말했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작년 가을에 왔던 최남진입니다.》

《아, 특파원동지!》

그제야 두사람은 한꺼번에 최남진의 팔을 붙잡으며 환희에 찬 목소리들을 터치였다. 정치공작원 리주연이와 평남지구 당조직책임자 현준혁이였다. 그들은 뜻밖에 나타난 최남진을 두고 너무 반가와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거 특파원동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린 그저 룡악산소부대에서 련락원이 온줄만 알았습니다.》

최남진은 두사람을 안심시켰다.

《절 알아보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왜놈군복을 입고 왔댔으니까요.》

《자, 어서 앉으십시오.》

세사람은 방안에 마주앉았다.

서로의 인사말을 나누기도 전에 직통배기인 최남진이 기본화제를 꺼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평남지구 당위원회를 내오고 전민항쟁을 보다 힘있게 벌려나가고있는 동지들을 높이 축하해주셨습니다.》

《아니, 인사야 장군님께서 받으셔야지요.》

체소한 몸집에 비해 목소리가 우뢰처럼 굵직한 현준혁이 말했다.

《장군님께서 늘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고계시기에 우리 평남지구 당조직도 나오고 수많은 항쟁력량도 마련될수 있은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선 우리 평남도에 공작원도 보내주셨구 또 소부대를 통해 저희들의 일을 하나하나 보살펴주셨지요. 특히 작년에 특파원동지가 다녀가신 다음부터 저희들은 날개돋친 룡마가 된것처럼 기운이 나서 일을 내밀었답니다. 안 그렇소? 주연동무.》

《그럼요. 지난해 특파원동지를 통해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았기에 이 평남도의 전민항쟁준비에서는 실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날수 있었습니다.》

그들 두사람이 이렇게 말하는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현준혁이와 리주연은 지난해 소부대의 련락선을 타고 장군님께 편지를 올린적이 있었다. 평양을 비롯하여 평남도의 여러 지역들에 당소조와 조국광복회조직들이 꾸려진것만큼 이제는 김일성장군님을 최고수위에 모신 당중앙을 내오고 점차 아래당조직들을 내오는 방법으로 당을 건설하자는 의향을 담은 편지였다.

편지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지난해 가을 최남진을 특파원으로 파견해주시면서 그들에게 당창건방침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다시말하여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로동자, 농민, 지식인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속에 깊이 뿌리박은 당의 기층조직들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할데 대한 방침을 알려주신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 길만이 당의 사상의지적통일단결을 담보할수 있으며 조직적골간을 튼튼히 꾸릴수 있고 파벌싸움을 일삼는 종파사대주의자들을 제거한 참신한 새형의 당을 건설할수 있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평양과 여러 군들에 당소조들이 조직된 조건에서 그 소조들을 지도할수 있는 상급조직으로서 현준혁을 책임자로 하는 평남지구 당위원회를 조직할데 대한 당면과업도 밝혀주시였다.

결국 지난 3월에 결성된 평남지구 당위원회는 사실상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의 빛나는 결실이라고 할수 있었다.

현준혁이 다시 말을 꺼냈다.

《장군님께서는 건강하십니까?》

《예, 건강하십니다. 그런데 몹시 분망하십니다. 혁명군부대들을 훈련시키고 전국각지의 소부대, 소조들과 혁명조직들의 전민항쟁준비를 지도하느라 큰 로고를 바치다보니 정말 바삐 지내십니다.》

최남진은 지금쯤 장군님께서 몸소 두만강연안의 북부국경지대에 나와계시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일대는 적들의 요새구역들이 촘촘히 설치되여있는것만큼 국내의 어느 지역보다 위험했다. 그것을 생각하노라니 그는 자신의 책임감을 한층 새롭게 자각하게 되였다.

《여기 동지들도 물론 조국해방3대로선을 전달받으셨겠지요?》

《예, 평남지구당이 결성된 직후 양덕지구 소부대에서 오신 동지를 통하여 장군님의 3대로선을 전달받고 지금은 그것을 관철하는데 모든 힘을 넣고있습니다.》

현준혁이 조국해방3대로선관철을 위한 평남지구당의 활동정형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설명하였다.

설명을 다 듣고난 최남진은 거기에 공감을 표시하고나서 말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최근 평남지구 당조직앞에 새로운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저는 그 과업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다시 여기로 오게 되였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현준혁과 리주연은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들었다.

《어떤 과업입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첫째로 평남지구 당조직이 평양과 평안남도지역에서 전민항쟁준비를 최대한 빨리 그리고 실속있게 다그칠데 대하여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자면…》

최남진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김일성동지께서 밝혀주신 과업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도처에 무장항쟁대오를 대대적으로 꾸리고 소부대들의 도움속에 잘 훈련시키는것이며 다음은 안주의 마두산, 덕천의 장안산, 순천의 청룡산과 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대를 거점으로 타고앉아 요새화하며 때가 되면 우리 혁명군부대들이 거기에 의거하여 싸울수 있도록 식량과 피복, 의약품과 같은 물자들을 충분히 장만하는것이였다. 또한 이미 과업을 준대로 락하산투하지역들을 정확히 선정하며 성천일대에서 비밀리에 건설하고있는 비행기착륙장을 빨리 끝내는 일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둘째로 탄광과 광산, 제염소, 항만, 농어촌에서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과 기층당조직들을 계속 확대하면서 조국광복의 유리한 정세가 도래할 때 평안남도당위원회와 부 및 군당위원회들을 조직하여 우리의 전민항쟁에 조직된 력량으로 호응해나설데 대하여 가르치시였습니다. 이상입니다.》

《알겠습니다. 무장대오, 비밀거점, 도와 부 및 군당위원회…》

현준혁은 요점들을 하나하나 되뇌이였다.

《과업들을 꼭 어김없이 수행하겠습니다.》

《평안남도에는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의 생가가 있습니다.》

리주연이 현준혁의 말에 발을 달았다.

《그런만큼 전민항쟁준비를 완성하는데서 우리 평남도가 전국의 맨 앞장에 서겠다는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저도 방금 그걸 말하자고 했습니다. 나는 동지들의 그 결심을 사령관동지께 그대로 보고드리겠다는것을 약속합니다. 며칠후에 다시 들리겠는데 그동안의 활동정형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해주십시오. 사령부에 보낼 보고서 말입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특파원동지.》

최남진이 일어서는 바람에 현준혁과 리주연은 깜짝 놀라 팔을 붙잡았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작년에도 이렇게 헤여진게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엔 좀 쉬시면서 변변치 못한 대접이나마 우리의 성의를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성의를 받아들이긴 힘들것 같습니다. 아직 할일은 가득한데 시간이 모자랍니다. 참, 한가지 도움받을 일이 있는데…》

최남진은 평양부안의 실정을 잘 아는 안내자가 두사람 필요하다고 말했다.

《며칠동안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리주연이 말했다.

《믿음직한 동무들을 보내드리지요.》

《그럼 저녁 일곱시까지 모란봉에 보내주십시오.》

최남진은 안내자들을 만날 장소와 접선암호를 약속한 다음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리로 나온 그는 두 대원이 기다리는 모란봉쪽으로 걸어갔다.

풍치수려한 모란봉의 송림속은 삼복철의 찌물쿠는 무더위속에서도 끄떡않고 서늘한 그늘과 청신한 공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란봉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최남진은 으슥한 숲속에서 함께 온 두 대원을 만났다.

《우리의 첫번째 임무는 수행된셈이요.》

《예?》

《여기 조직에 사령부의 지시를 전달하는 일이요.》

최남진은 내막을 모르는 두 대원에게 더 설명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리였다.

《이제는 적들의 군사대상물들을 정찰하는 일만이 남았소. 새로 편성된 일본군 30사단을 비롯해서 정찰대상들이 적지 않소. 그런데 시간이 없소. 우린 홍수때문에 몇번이나 길이 막혀서 옹근 한주일이나 지체됐단 말이요. 우리가 정찰에 돌릴 날자는 닷새뿐이요. 그래서 나는 정찰을 두개조로 나누어 진행하자는 생각이요. 동무들 두명은 수비대와 헌병대, 포진지, 도경찰부 그리고 병기제작소를 맡아야겠소. 내가 30사단과 비행장을 맡겠소.》

《아니, 혼자서 어떻게 그걸…》

《두 정찰조에는 각각 안내자가 한사람씩 붙게 되오. 그들이 올때까지 충분히 쉬기요.》

최남진은 그런 말로 모임을 끝내버렸다.

안내자들은 정확히 약속된 시간에 나타났다.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날파람있어보이는 청년과 키가 크고 얼굴이 둥실한 청년이였다.

둘다 스무살도 안돼보이는 애숭이들이였다.

최남진은 반가움보다 이마살부터 찡그리였다.

이렇게 젖내도 가시지 못한 코흘리개들을 안내자로 보내다니… 평남지구당에 그렇게도 사람이 없는가.

별수 없었다. 시큼털털한 풋사과라도 어쨌든 사과인것이다.

그는 얼굴이 둥실한 청년을 향해 퉁명스럽다 할 정도로 무뚝뚝하게 물었다.

《이름이 뭐요?》

《우린 이름을 밝히지 않게 돼있습니다.》

최남진은 어이없어 그들을 훑어보고나서 말했다.

《좋소. 저 날쌔게 생긴 동문 이 사람들과 함께 가구 동문 나하구 같이 행동하기요.》

《저, 특파원동지.》

최남진이와 함께 가게 될 청년이 웅글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가지 소청이 있습니다.》

《소청?》

《우린 안내자의 임무를 책임적으로 해내겠습니다. 대신 혁명군동지들은 우리에게 유격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잘 배워주기를 바랍니다.》

《이도 안났는데 콩밥부터 먹겠다? 그건 배워서 뭘하자구?》

《우린 무장항쟁조직성원들입니다.》

《아하, 그랬군.》

이 순간 최남진은 믿음직한 사람들을 보내주겠다던 리주연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면 이 청년들을 결코 젖내를 풍기는 풋내기로 여겨서는 안될것이다.

《좋아, 동무의 제의를 접수하지. 그러나 안내자의 구실을 제대로 하는 조건에서만 우리의 지식과 전투경험을 다 넘겨주겠소. 유격전법뿐만아니라 정규전법까지, 어때?》

《약속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친구 제법인걸! 자, 출발!》

이리하여 최남진소조의 정찰활동이 맹렬하게 벌어지게 되였다.

최남진은 첫시작부터 그닥 미덥게 여기지 않았던 안내자의 신세를 톡톡히 지게 되였다. 알고보니 안내자는 이미 적의 군사요충지들에 대한 정찰을 여러번이나 해본적 있는 우수한 경험자였다. 그는 경계가 삼엄한 적군병영에 대한 접근로도 잘 알고있었으며 신통한 감시장소도 제꺽제꺽 찾아내군 했다. 그래서 최남진은 서기산아래의 련대나 사동련대를 비롯한 갓 신설된 일본군 30사단의 병영들이며 병력배치와 무장장비, 생활질서까지 죄다 손쉽게 알아내고 필요한것들을 사진기의 렌즈에 담을수 있었다. 안내자의 덕분에 별로 품을 들이지 않고도 소득이 컸다.

이제 남은것은 미림비행장정찰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큰 문제로 되지 않았다. 미림비행장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에 최남진이 직접 정찰을 해본 대상이였다.

《이보라구, 친구.》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싶으리만큼 기분이 뜬 최남진은 비행장으로 가던 길에 오성시장의 차떡이며 녹두지짐 같은 먹을것들을 한꾸레미 가득 사들고는 안내자청년에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한턱 쓰자는거야. 친구가 우릴 잘 도와준데 대한 인사루 말이야.》

《턱이야 이미 내잖았습니까?》

청년의 둥실한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찼다.

《특파원동지의 귀중한 전투경험과 교훈을 제가 모조리 넘겨받았는데…》

《하긴 그것도 큰 턱이라 할수 있지. 내가 십년나마 산에서 혁명의 도를 닦으면서 터득한 재주를 며칠사이에 다 넘겨주었으니 말이야.》

최남진의 말은 사실이였다. 며칠사이에 그는 이 안내자청년에게 갖가지 전투의 묘리와 경험을 아낌없이 다 퍼넘겨주었다. 청년이 어찌나 진지하게 파고드는지 저도 모르게 다 털어놓게 되였다. 그뿐이 아니다. 청년은 김일성장군님의 전설같은 이야기들도 끝없이 묻고 물었다. 최남진은 그 모든 물음에 만족한 대답을 주려고 애를 썼다.

그만큼 지낼수록 안내자청년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고 할수 있었다.

《자, 어서 저 대동강가의 버들숲속에 들어가 배를 두드리며 실컷 먹어보자구.》

《저도 출출한데… 반대없습니다.》

청년은 꾸레미를 받아들고 앞장서 걸어갔다.

점심을 나누면서 안내자청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특파원동지, 왜 이렇게 늘 한데서 지내십니까? 평양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답니다. 비록 잘살지는 못해도 다들 특파원동지를 성의껏 모실겁니다. 그런데 다 마다하시고 이렇게 끼니도 밤잠도 바깥에서만…》

《친군 한데잠이 몹시 힘들었던게지?》

《아니,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최남진은 이 며칠동안 내내 안내자청년과 함께 한데서 밤잠을 자군 했다. 숲속의 나무밑에서도 자고 나무나 바위에 의지하여 앉은잠을 자기도 했다. 비내리는 날에도 인가를 찾아간적은 없었다.

그는 안내자청년에게 리유를 설명했다.

《그건 우리의 군률이요. 적구에 나와서 조직성원들이나 인민들에게 부담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건 철칙이란 말이요. 그리구 지금은 여름철이여서 모기성화를 내놓고는 아무 불편도 없소. 하긴 작년 가을에 왔을 땐 처음이다보니 잠자리 얻기가 힘들었소. 그래서 부청앞의 망홀안에서도 자보고 청류벽밑의 웅뎅이속에 들어가 가랑잎을 덮고 자기도 했소. 한번은 적의 수색소동을 피해서 그 웅뎅이속에 가랑잎을 쓰고 온종일 은페해있다가 기생의 오줌벼락까지 맞을번한 일도 있소. 하지만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나면 그 모든 고생이 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되오.》

《전 요즘 처음으로 특파원동지와 함께 한데서 자구 먹구 하느라니 참 가책되는바가 큽니다. 혁명군동지들에 비하면 우리가 너무 호사스럽게 지내는것 같아서…》

《무슨 소릴 하오? 적구의 지하투쟁도 매 걸음걸음 위험을 동반하는 일인데 호사란 될 말이요? 아무튼 친구를 보니 이곳 무장항쟁대오의 전투력을 충분히 가늠할수 있소. 자, 어서 부지런히 들자구.》

그러나 얼마 안가서 청년이 또 새로운 물음을 내놓았다. 두사람의 이야기는 줄곧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지고있었다.

《저 특파원동지, 백두산녀장군님의 존함은 어떻게 쓰십니까?》

《뭐어?…》

어느때나 호걸남아다운 성미그대로 시원스러운 대답만 주던 최남진은 갑자기 의심쩍게 청년을 건너다보았다.

《그건 왜 알자구 해?》

《그저 좀…》

청년은 최남진이 두눈을 부릅뜨고 따져묻는 바람에 당황해진듯 하더니 인차 마음을 다잡고는 백두산녀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노라 하면서 존함도 알고싶어한다는것을 실토했다.

《제가 묻지 말아야 할 비밀이라면…》

《그런게 아니야. 난 백두산녀장군님에 대해서 묻는 사람은 많이 만나봤지만 존함을 묻는 사람은 처음이기때문에 이상하게 여겼댔지. 그분은 김정숙동지이시오. 김정숙동진 전설에 나오는 그대로의 백두산녀장군이시지. 얼마전에도 김정숙동진 우리와 같이 한 승조에서 락하산훈련을 하셨어.》

《아니, 녀장군님도 락하산훈련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최남진은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 청년에게 두눈을 부롭뜨며 말했다.

《락하산도 빈몸이 아니라 기관단총에 크다만 무전기배낭까지 휴대하구 강하를 하시는데 그 동작이 얼마나 정확한지 기딱막히오.》

《그렇군요.》

《김정숙동진 락하산훈련만이 아니라 모든 군정훈련에 다른 대원들과 꼭같이 참가하시군 하오. 행군, 사격, 전술훈련, 도하훈련… 또 겨울에는 스키훈련도 하는데 스키를 타고 높이 도약을 하면서 권총사격을 하실 땐 참 볼만 하오. 그때도 목표물을 어김없이 명중하신단 말이요.》

청년은 최남진의 말마디들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피와 살과 정신으로 재가공하는듯 했다.

《특파원동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새힘이 막 뻗쳐오르는것 같습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이야기를 한 보람도 있지. 그리구 나라가 해방되면 내 친구를 사령관동지와 김정숙동지께 데리고가 만나뵙게 해주지.》

떡 한짝을 집어들고 입가로 가져가던 청년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스치였다. 무언가 말 못할 의미를 담은 웃음같았다.

《고맙습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오래잖아 그날이 올테니 마음을 놓으라구. 자, 인젠 그만 쉬구 또 떠나볼가?》

《어서 갑시다.》

저녁무렵에 그들은 비행장근처의 야산에 이르렀다. 비행장은 가까왔으나 무성한 나무잎새들이 두사람을 훌륭히 감춰주었다.

비행장은 2중으로 된 철조망과 곳곳에 설치한 망루며 보초소들의 엄격한 감시하에 들어있었다.

최남진은 비행장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난해보다 비행기들이 상당히 늘어난것이 첫눈에 띄였다.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격납고도 아닌 로천상태에서 방수포를 쓰고있었다.

《허, 놀라운 일인걸…》

최남진은 허술한 배낭안에서 사진기를 꺼내여 비행장의 전경을 잘칵잘칵 찍고나서 말했다.

《놈들이 전쟁의 불을 지펴놓구 사방에서 얻어맞으면서도 조선에는 무력을 굉장히 증강해놓았구만.》

《그렇긴 한데…》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좀 이상합니다. 우리도 자주 여기에 정찰을 오군 하는데 비행장에서 실지로 뜨는 비행긴 몇대 안됩니다. 그리고 저 방수포안에 있는 비행기들은 몇달째 꼭같은 모양인데 거기로 드나드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구… 정말 비행기가 맞기나 한지…》

《뭐요?》

최남진은 정신이 번쩍 드는것 같았다.

《그럼 가짜비행기들이란거요?》

《아니, 아직은 확실치 않습니다. 그저 놈들이 포진지에다 가짜포들도 가득 설치해놓은걸 봐서는 비행기도 그럴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군 합니다.》

《이거 비행장정찰을 설칠번 했군.》

최남진은 즉각 행동계획을 결정했다.

《확인해봐야겠소. 비행장안에 들어가서 말이요.》

《정말 들어가실 작정입니까?》

《다른 방법이야 없잖소. 아, 걱정마오. 저까짓 2중철조망쯤은 눈을 감고도 극복할수 있으니까. 놈들의 국경요새구역은 철조망을 다섯겹 쳐놓구 지뢰까지 매설해놓았지만 우린 매번 그속으로 뚫고들어가 노끈으로 포신구경도 재구 영구화점의 콩크리트쪼박지도 따내군 했소. 밤이 되면 들어가보겠소.》

《밤엔 경비가 더 심합니다.》

청년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였다.

《잠복도 서구 이동순찰도 자주 하는데 그땐 말같은 군견들도 끌고나옵니다.》

《군견들이 말썽이긴 한데… 어데 가서 고기덩이들을 얻어온다 해두 령리한 놈들은 미끼를 물지 않더란 말이요.》

《꼭 들어가시겠다면 군견들은 걱정 안해도 됩니다.》

청년은 품속에서 조그마한 병과 봉지를 꺼냈다.

《오늘 낮에 시장에서 산 식초와 고추가루입니다. 고추가루를 식초에 버무려서 신바닥에 바르면 군견이 냄새를 못 맡습니다.》

《그렇소?! 이 친구가 정말 모르는 일이 없구만. 그런데 어떻게 내가 비행장에 들어갈것까지 다 예견하구있었소?》

《이번엔 꼭 들어가실것만 같아서…》

《됐소.》

최남진은 주먹으로 공기를 후려쳤다.

《군견만 막을수 있으면 정찰은 먹어둔거나 같소.》

《저도 적군의 대상물에 접근하는 방법을 익혀보겠습니다.》

《같이 비행장에 들어가겠다구? 안되오.》

최남진은 펄쩍 뛰며 반대했다.

《이보라구 친구, 실전이란 말을 듣는것과는 달라. 자칫 실수하면 모든게 물거품으로 되구말거던.》

《그래도 가야 합니다. 전 길안내뿐아니라 특파원동지의 신변을 보위할 임무까지 받았습니다. 이 권총을 보십시오.》

《안된다면 안되는거야.》

최남진의 립장은 단호했다. 전투경험도 없는 사람을 데리고 적의 비행장안으로 들어갈수 없다는것을 잘 아는 그로서는 다른 말을 할수 없었다. 하지만 청년의 고집도 이만저만 아니였다. 그래서 철조망앞까지 동행하는것으로 겨우 합의를 보았다. 청년은 철조망밖에서 망을 서다가 정황이 생기면 신호로 알려주기로 했다.

밤이 되자 그들은 곧 행동을 개시했다.

놈들의 이동순찰은 두시간에 한번씩 진행되고 밤에는 잠복초소들도 여러개 생겼다. 그래도 밤이 더 유리했다.

최남진은 익숙한 솜씨로 철조망을 쳐들며 밑으로 기여나갔다. 그것은 매우 조심스럽고도 인내력을 가져야 할수 있는 일이였다. 자칫하면 빈 깡통들이 소리를 내거나 지뢰같은것에 걸려들수 있었다. 최남진이같은 로장들만이 손더듬으로 지뢰도 포착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있었다.

갑자기 탐조등이 눈부신 섬광을 날리며 켜졌다. 그것은 뱀의 혀바닥처럼 어둠에 묻힌 비행장의 안팎을 이리저리 훑기 시작했다. 아마 망루나 잠복초의 보초들도 이때면 두눈에 쌍심지를 켜달고 탐조등의 불빛을 따라 살펴보고있을것이다.

까딱 않고있던 최남진은 탐조등이 꺼지자 다시 배밀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시생활에서는 덜퉁하고 무슨 일이든 잔재미라는것을 모르는 그였지만 이렇게 통로개척만은 담배씨로 뒤웅박을 파는 쪼물짝처럼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얼마후에야 두개의 철조망을 극복한 그는 소리없이 활주로를 가로질러 비행기들을 세워놓은 곳으로 달려갔다. 방수포로 가리워놓은 비행기들이 기본목표였다.

목표물에 가닿은 그는 서슴없이 방수포밑자락을 쳐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어둠속을 손더듬하여 비행기동체들을 만져보았다.

전부 나무로 만든 비행기였다. 다시 매만져보았으나 틀림없었다.

(흠, 이래서 방수포를 씌워놓았군.)

최남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던 곳으로 기여갔다. 가짜비행기가 몇대나 되는지를 똑똑히 확인해야 했다.

그가 방수포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어둠속에서 가만히 속살대는 소리가 났다.

《주위는 조용합니다.》

《아니, 이 친구가?!…》

최남진은 진짜 놀랐다. 청년의 담력도 이만저만 아니였지만 전문훈련도 받지 못했는데 자기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기민한 동작으로 따라왔다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는 소리를 죽여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왔어?》

《혼자서 언제 다 하겠습니까?》

《이건 가짜비행기야. 저리로 가자구.》

두사람은 다음비행기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나갔다. 방수포를 씌워놓은 비행기들이 전부 가짜라는것을 짐작했으나 그렇다고 그냥 되돌아갈수 없었다.

퍼그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순찰병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가까이에서 들려온 소리여서 그들은 머리만 내민채 그대로 굳어졌다. 전지불을 휘두르며 군견까지 달고나온 놈들이였다.

《여, 이건 왜 밑자락이 들쳐졌어?》

한놈이 왜말로 지껄였다. 놈들이 우르르 거기로 걸어갔다. 방금 그들이 기여나오면서 흔적을 남겼던 모양이다. 놈들은 방수포밑자락을 쳐들고 안으로 들어가는것 같았다.

(실수를 했군!)

최남진은 슬며시 방수포안으로 들어갔다. 권총을 꺼내여 격철을 올렸다.

《내가 쏘기 전엔 절대로 쏘지 말라구.》

그는 청년에게 말하고나서 방수포자락을 제대로 해놓고 옆에 붙었다.

놈들이 그들한테로 다가왔다. 주위를 전지로 비쳐보는것 같았다.

발자국소리들이 코앞에서 들려왔으나 자락을 들치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뭐가 들어왔다면 개가 가만 있을게 뭐야?》

《개도 이상해. 자꾸 귀를 강구잖아.》

《괜한 걱정을… 어서 가자구.》

놈들이 물러갔다. 군견도 무슨 낌새를 친것 같았으나 식초와 고추가루냄새에 자기 능력을 상실해버린게 틀림없었다.

최남진은 안도의 숨을 쉬였다. 이 청년의 기발한 착상으로 식초와 고추가루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이밤 피의 격전을 피할수 없었을것이다.

그는 청년의 손을 더듬어찾아 꽉 잡았다.

두사람이 마지막비행기까지 다 확인하고 철조망밖으로 나왔을 때는 동켠하늘이 희끄무레해지는 어뜩새벽이였다. 그들은 다시 야산에 붙어 잠간 눈을 붙인 다음 평양거리로 나왔다. 우선 시장에 들려 강낭지짐으로 아침삼아 점심삼아 끼니를 굼땠다.

최남진은 강낭지짐을 먹으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인젠 모든게 멋지게 끝났는데 한가지만은 딱 가슴에 걸리거던.》

《그게 뭡니까?》

《저쪽으로 가느라면 만경대라는 곳이 있소.》

최남진은 눈짓으로 서남켠을 가리켰다.

《알고있소?》

《만경대라구요?》

《거기엔 우리 사령관동지의 고향집이 있소. 할아버님과 할머님, 삼촌분 그리고 사촌동생분들도 계시구… 더구나 할머님은 왜놈들한테 두번씩이나 만주땅까지 끌려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소. 사령관동지께선 우리한테 늘 평양과 만경대이야길 들려주시군 하오. 그래서 만경대가 마치 내 고향처럼 생각되오. 한데 난 두번씩이나 평양에 왔다가 만경대일가분들한테 인사조차 못 올리구 돌아가자니 꼭 무슨 죄를 짓는것 같구만. 군률이 엄하니 할수 없지.》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됐어. 친군 몰라도 돼. 이젠 그만 헤여지자구.》

작별의 순간까지도 최남진은 불과 며칠사이에 정이 푹 든 이 젊은 친구가 바로 김일성동지의 사촌동생 김원주라는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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