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3

곰산림시비밀근거지

1943년 7월

 

곰산의 여름숲은 싱싱한 송진냄새를 진하게 풍기고있었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깨끗이 정화시켜주는듯 한 바늘잎나무숲의 특유한 향기라 할수 있었다. 푸른 이파리들을 무수히 거느린 나무가지들사이로는 저녁해빛이 푸른 줄기처럼 엇비슷이 날아내렸다. 깊은 꿈에 잠겨버린것 같은 고요가 차분히 내려앉은 여기로는 7월의 무더위도 감히 발을 들이밀 엄두를 못내고있었다.

방금 소부대, 소조 및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끝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숲그늘의 널직한 너럭바위우에 앉아서 안길이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아무래도 안길동무와는 여기서 헤여져야 할것 같소.》

《무슨 급한 일거리가 생겼습니까?》

《그렇소.》

《전민항쟁준비가 결코 헐한 일이 아니라는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이번에 국내로 다시 나와보고나서 똑똑히 깨닫게 됩니다. 글쎄 전번에 신흥지구로 나갔을 땐 모든 일이 순풍에 돛단듯이 쭉쭉 펴일줄 알았는데…》

안길은 공연한 걱정을 하는것이 아니였다.

지난번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신흥지구와 백두산지구에서의 일을 끝낸 그는 봄에야 원동의 훈련기지로 돌아가게 되였다. 거기서 여름철 군정훈련을 진행하던 그는 다시금 김일성동지를 따라 두만강연안의 북부조선일대로 나왔었다. 그런데 나와보니 국내에서의 전민항쟁준비는 예상했던것처럼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 특히 인민무장대결성이 이런저런 리유로 지체되고있으며 혁명조직을 늘여나가는데서도 각계층 군중을 대담하게 망라시키지 못하고있었다.

대체로 통이 크게 판을 벌리지 못하고 제한된 몇몇 사람들로 전민항쟁을 준비하는 편향을 범하고있었다.

《있을수 있는 일이요.》

김일성동지께서 손에 꺾어든 고사리대를 만지작거리시였다. 실하고 키높이 자란 고사리가 이제는 발이 다 펴져서 부채잎모양을 하고있었다.

《전민항쟁준비를 한해농사에 비긴다면 전번에 우린 겨우 밭이나 갈고 씨앗을 묻어놓은데 지나지 않소. 이번에 다시 나와보니 그 씨앗들이 움트고 왕성하게 자라기 시작했소. 때문에 우린 부지런한 농사군처럼 잠시도 거기서 눈을 뗄수도 없고 또 일손을 놓아서도 안되오. 오늘 회의에서 무장대결성을 대대적으로 벌릴데 대한 문제를 토론하게 된것도 그렇구 조국에 다녀간지 석달만에 다시 지휘성원들을 여러 지역으로 떠나보낸것도 다 그때문이요.》

《최남진동무가 평양으로 가면서 이번엔 꼭 만경대조부모님들을 찾아뵙겠노라 하던데…》

《못갈거요. 허, 그 동무가 나한테 와서 조부모님께 보낼 편지나 한장 써달라구 떼를 쓰지 않겠소. 그래서 단단히 오금을 박았으니 딴 생각을 못할거요. 그건 그렇구…》

김일성동지께서는 화제를 바꾸시였다.

《난 룡계지구를 거쳐 곧장 훈련기지로 갈 작정이요. 할수만 있다면 조국땅에 그대로 눌러앉아 전민항쟁준비를 내미는 일에 몸을 잠그고싶은데 훈련기지에서의 군정훈련도 역시 소홀히 대할수 없소. 그래서 안길동무를 떨궈놓고 가자는거요.》

《임무를 주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답대신 전투가방에서 군용지도를 꺼내여 펼치더니 만주지역의 한점을 연필끝으로 짚으시였다.

《여기가 묘령이요. 왕청의 묘령이 아니라 훈춘의 묘령 말이요. 이곳에는 초모정자부대라고 하는 우리 혁명군의 한 부대가 있소.》

《초모정자부대라구요?》

안길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도 초모정자부대의 래력에 대해서는 얼마간 알고있었다.

초모정자부대는 1934년 봄 훈춘의 초모정자라는 곳에서 순수한 조선사람들로 조직되였다. 중대규모의 이 부대는 초모정자의 수림속에 밀영을 꾸려놓고 가족들까지 데리고 지냈다. 당시 그들은 훈춘일대의 유격구들과는 일체 련계를 차단하였다. 유격구안에서 벌어지는 반《민생단》투쟁이 그들의 마음을 몹시 불쾌하게 했기때문이였다.

초모정자부대는 싸움속에서 200여명의 대오로 장성했으며 큰 전과들도 많이 거두었다. 부대가 이렇게 자라난데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부대장 박인철의 공로와 떼여놓을수 없었다. 초모정자에서 서묘령으로 밀영을 옮긴 그들은 1937년 배신자의 밀고로 적의 기습을 받게 되였다. 부대장 박인철은 부대를 동묘령으로 빼돌리며 엄호하다가 중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그러나 그는 희생되는 순간까지 부대의 행처를 말하지 않았다. 그후 동묘령으로 자리를 옮긴 부대는 적극적인 유격활동으로 싸움마다 승리를 거듭하면서 30년대를 빛나게 장식했다. 그러나 4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노조에토벌사령부의 《토벌》공세로 밀영에 같힌채 생사존망의 위기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바로 그때 소부대를 데리고 훈춘쪽에 들렸던 내가 그들에게 소부대활동방략도 대주고 그들의 요구대로 우리 혁명군의 한 부대로 소속시켰던거요. 41년 가을에 말이요. 지금 초모정자부대는 묘령을 중심으로 하는 넓은 령역에 소부대밀영을 꾸려놓고 전민항쟁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있소.》

《그러니까 사령관동지의 예비주머니는 얼마나 되는지 알수 없군요. 백두산지구나 국내는 내놓고 동만 각 현의 소부대들도 그렇고 조선사람이 살고있는 만주의 어느 지역에나 다 그렇지요. 참, 이번에 최춘국동무가 찾아간다는 안도와 무송쪽의 로랑봉이나 삼도송강하부대도 간단치 않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그건 다 동무들이 크게 수고한 덕분에 가지게 된 우리 혁명의 큰 밑천이요.》

《그 밑천이야 사령관동지께서 마련하신거지요.》

안길은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 혁명의 큰 밑천이야말로 김일성동지께서 항일전의 피어린 수십만리길을 헤쳐오는 과정에 온갖 심혈을 바쳐가며 하나하나 마련하신것이 아닌가.

김일성동지가 아니시였다면 오늘의 그 밑천은 상상도 못했을것이다.

《제가 초모정자부대에 가서 뭘 해야 합니까?》

《초모정자부대는 장차 두만강연안 북부국경지대의 적 요새돌파를 맡게 될거요. 동무는 초모정자부대의 소부대활동정형과 군정훈련정형을 료해하고 필요한 대책도 세워줘야겠소. 특히 군정훈련에서는 영구화점파괴, 도하훈련, 야간전투훈련에 특별한 주의를 돌리도록 하시오. 갈 때 무전수도 한명 데려다주고… 그리구 여길 잘 봐두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도우의 몇개 지점을 연필끝으로 짚으시였다.

《여기가 무기를 파묻어놓은 장소들이요. 이 무기들을 전부 초모정자부대에 넘겨주오.》

《부대의 무장장비가 허약합니까?》

《아니, 그렇지 않소. 초모정자부대도 무장장비들은 일본군 련대보다 훨씬 월등하오. 이 부대는 공격개시와 함께 국내로 진출하는 과정에 급속히 사단규모로 커지게 되오. 그래서 미리 무기들을 충분히 보충해주자는거요.》

《예에- 알만 합니다.》

안길은 흥분으로 진정을 못했다.

《초모정자부대의 말만 들어도 기운이 부쩍 솟습니다.》

《각 지역에 투하되는 항공륙전대들도 며칠안으로 사단만큼 커질거요. 아무튼 그건 후에 토의하기로 하구 동무가 가야 할 다음목적지는 라진지구요. 총공격이 개시될 때 라진해방작전을 어떻게 진행하겠는가. 난 요즘 늘 이 문제를 생각하고있소.

동무도 아다싶이 라진요새는 우리 나라에 구축해놓은 놈들의 으뜸가는 방어지탱점이요. 그것을 빨리 점령하는가 못하는가에 많은 문제가 걸려있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라진지구에 파악이 깊은 동무를 다시 보내는거구.…

보고에 의하면 라진지구에서도 인민무장대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가 성숙되고있다고 하는데 그들을 도와줘야겠소. 무장대를 조직하면 라진지구의 실정에 맞게 훈련과 습격작전을 잘 배합하고 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대책도 세우고 라진일대에서 군사정찰활동방법도 잘 가르쳐줘야겠소.》

《알겠습니다.》

안길의 표정도 긴장해졌다. 이제야 그도 이번의 소부대공작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를 깨달은듯 하였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소부대성원들은 이미 선발해놨으니 곧 준비를 갖추고 떠나시오. 그런데 한가지 놓쳐서는 안될 일이 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무거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한때 훈춘일대에는 혁명조직의 탈을 쓴 유령단체가 있었소. 지하조직을 색출해내기 위해 꾸며낸 놈들의 모략단체요. 일부 조직들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놈들의 정체는 인차 들장나고 말았소. 그러자 그놈들은 라진쪽으로 사라져버렸다는거요. 동무는 라진조직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대책을 세워야겠소.

문제는 그 유령단체성원들속에 동무의 처남이란 사람도 끼워있다는 사실이요.》

《예에? 강만수 그놈이…》

안길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흠칫 고개를 쳐들며 굳어져버렸다.

어느새 원동의 추위에 검실검실 탄 그의 길쑴한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였다. 뜻하지 않은 불쾌한 소식이 단번에 이 억센 사나이의 의기를 꺾어놓은듯 하였다.

《개같은 놈! 그때 그놈을 아주 요정냈어야 하는건데…》

《무슨 소릴 하는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엄하게 질책하시였다.

《그 사람이 그 지경으로 된데는 동무의 책임도 없지 않소. 그때 동무가 내 권고대로 처남이라는 사람을 잘 깨우쳐주고 이끌어줬더라면 그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거요.》

《그놈은 원래부터 질이 나쁩니다.》

《안길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어성을 높이시였다.

《동문 안길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주요지휘성원이요.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눈이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지휘성원다와야 하는거요. 그래 아직도 내 말뜻을 모르겠소?》

안길은 쳐들었던 고개를 맥없이 떨구었다. 여전히 해쓱하게 질린 얼굴이였다. 언제나 웃음부터 앞세우는 쾌활하고 락천적이던 안길은 갑자기 딴사람으로 변한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기의 처남벌되는 사람을 그토록 질시하고 배척하는 안길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다.

이태전 마가을이였다.

그때 안길은 스무나문되는 소부대를 이끌고 북부조선과 훈춘, 왕청, 동녕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소부대를 두세명씩 소조로 나누어 사방에 내보냈다. 자신은 림시비밀근거지에서 그들의 활동을 지휘하였다. 식량이 떨어졌다. 곁에는 전령병 한사람밖에 없었다. 그래도 식량을 얻어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집에 가보기요.》

안길은 전령병에게 말했다.

《여기서 오륙십리쯤 가면 우리 가족이 사는 부락이 있소.》

《가족들이라구요?》

《그래, 안해와 두 아들애가 있고 그밑에 또 내 귀염둥이딸애도 있지. 내가 총을 잡은이래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찾아가보자는거요. 식량이야 좀 얻을수 있겠지.》

안길은 전령병을 데리고 떠났다.

그들은 마을근처의 산속에서 나무군 두사람과 맞다들었다. 뜻밖에도 두 나무군중의 한사람은 안길의 처남인 강만수였다.

《흠, 자네였구만.》

일본군 장교복장을 한 안길은 자기보다 나이가 두어살아래인 강만수의 주위를 빙빙 돌아가며 뼈가 있는 말로 시까슬렀다.

《죽지 않으면 만나게 된다더니. 그래 지금은 어떻게 지내나?》

《뭐, 그럭저럭…》

《한때는 혁명을 한답시구 다리에 쥐가 오르도록 뛰여다니던 자네가 이젠 다 집어치웠다던데 왜 그 값으로 떵떵거리며 살진 못하는게지? 나무짐까지 지고 다니는걸 보니…》

강만수는 감히 얼굴을 쳐들지 못했다. 그저 고양이를 본 쥐처럼 기가 죽어 쩔쩔매기만 했다.

안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일찍부터 이 강만수란 인간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지고있었다.

강만수는 경망하기 짝이 없고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면 사정없이 사람을 헐뜯는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있었다. 한때 안길이 예수쟁이요, 처자를 버리고 신식녀자나 차고다니는 바람쟁이요 하는 모자를 쓰고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게 된것도 알고보니 한발 앞서 혁명조직에 들어간 강만수의 작간질때문이였다. 색안경을 끼고 사람들을 배척하는데 이골난 조직책임자라는 사람의 장단에 강만수가 앞장서서 춤을 췄던것이다. 안길이 진짜로 자기의 누이와 조카들을 버렸다는 억측에서 그렇게 앙갚음을 했다고 할수 있었다.

그랬던 강만수를 이렇게 만났으니 반가울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옛 허물을 꺼들며 분풀이를 할수도 없었다.

《이보라구 만수, 자네도 내가 왜놈장교가 아니라는것쯤이야 모르지 않겠지?》

《예, 그거야 물론…》

《그럼 만났던김에 신세를 좀 져야겠네.》

안길은 사정을 말했다. 안해한테 가서 열명분의 줴기밥과 식량 그리고 된장 같은것을 장만해달라는 부탁이였다. 식량값으로 돈까지 얼마간 쥐여주었다.

강만수는 선뜻 응했다.

《누이하구 같이 오겠수다.》

《거기도 집단부락으로 됐겠지?》

《지금 한창 토성을 쌓고있는중이외다.》

강만수는 어둠을 타서 마을을 빠져나오는것은 걱정없노라 했다.

안길은 어슬녘 다리가 놓여있는 산기슭의 두그루 로송밑에서 강만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요?》

《우리 동네 사람인데 믿을만 한 친구이니 안심하시우.》

강만수는 성수나서 친구와 함께 산에서 내려갔다.

안길은 강만수를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아무리 좋지 않은 옛추억을 가지고있다고 해도 처남이 매부를 팔아먹을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경각성까지 아주 잠재운것은 아니였다. 두사람을 산에서 떠나보낸 다음 안길은 전령병과 함께 은밀히 뒤를 밟았다. 지난날 아무리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라도 이렇게 만나는 경우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의 움직임을 세세히 지켜봐야 하는것이다.

강만수와 그의 동료는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어떤 이상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사람은 근기있게 숲속에 숨어서 길목을 감시했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이어 짐을 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중에는 머리우에 함지같은것을 인 흰저고리의 녀인의 모습도 어슴푸레 보이였다.

옥선이 엄마로구나!

안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는 륙감적으로 녀인이 틀림없는 안해라는것을 확신했다. 두 아들과 어린 딸애를 데리고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안해가 어떻게 변했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무슨 사람들이 저렇게 많을가? 사람들은 여라문명 되는것 같았다.

전령병이 가만히 귀속말로 말했다.

《이 마을의 지하조직이 살아있는것 같습니다. 처남이라는 사람도 조직성원같구요.》

《그런것 같아.》

안길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은 어둠속에서 슬금슬금 일행의 뒤를 따랐다.

한참 가노라니 자그마한 나무다리가 나타났다. 짐군행렬은 곧장 다리를 건너 산기슭에 있는 두그루의 로송밑으로 움직여갔다. 약간 둔덕진 거기서부터 산이 시작되고있었다.

안길은 마을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무런 인적기도 없었다. 그러나 선뜻 다리에 들어서고싶지 않았다. 무언가 미타한것이 마음에 짚이였다. 안해와 처남이 끼여있는 짐군행렬인것만은 사실이였지만 석연치 않은데가 있었다. 지하조직이 아무리 든든하다 해도 저렇듯 초저녁부터 버젓이 떼지어 다닌다는것은 납득이 안가는 일이였다. 게다가 행렬은 앞뒤에 아무런 방비책도 세우지 않고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태평스레 움직일 때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서 가봅시다.》

《잠간,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요.》

안길이 전령병의 재촉을 눅잦히였다.

이때였다.

《옥선 아버지!》

별안간 거뭇한 로송어방에서 녀자의 새된 웨침소리가 어둠속의 정적을 깨뜨리였다.

《여긴 경찰이 있어요! 오지 마세요!》

《으음? …》

《옥선 아버지! 오지 마…》

안해의 웨침소리는 숨넘어가는듯 한 비명소리로 변하며 끊어져버렸다. 안길은 대뜸 로송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짐작할수 있었다.

마을쪽에서는 자동차들이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철수!》

안길은 전령병의 팔소매를 끄당기며 소리나지 않게 반대켠 산으로 올리붙었다. 처남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로송밑이 놈들의 함정이며 안해가 필사적인 웨침으로 위험을 알려준 이상 이 근처에서 더 어물거리고있을수는 없었던것이다.

어떻게 되여 이런 일이 생겼을가?

안길은 의혹을 풀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훈춘일대에 파다하게 퍼지는 소문에 그는 억이 콱 막혔다. 소문이란 훈춘일대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조선인민혁명군의 거물급지휘성원인 안길이 처남의 밀고로 경찰의 추격을 받다가 사살되였다는것이다.

《강만수, 네놈의 작간이였구나!》

안길의 눈에서는 불찌가 튀는듯 했다.

《내 손으로 그놈을 처단해버리겠소.》

마침 그때 소부대를 거느리고 국내에 다녀오신 김일성동지께서 안길이 있는 림시비밀근거지로 오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길의 보고와 그의 결심을 듣고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그러니 떠도는 소문을 듣고 처남을 처단하겠단 말이요?》

《사령관동지, 그자는 충분히 그런짓을 할수 있는 놈입니다. 그런 놈은 제때에 없애치워야…》

《그건 안되오.》

그이께서는 단마디로 거절하시였다.

《소문이 지내 요란스럽지 않소? 어쩐지 놈들은 동무가 자기 처남을 처단하기를 바라는것 같단 말이요. 잘 알아보고 될수만 있으면 그 사람을 옳게 깨우쳐주는게 안길동무가 할일이란걸 절대로 잊어선 안되겠소.》

김일성동지의 이런 당부로 하여 안길은 처남을 처단할 생각을 포기하고말았다. 하지만 처남을 찾아가 실상을 똑똑히 알아보고 잘 일깨워줄 용단까지는 못내였다. 혐오감만 앞서는 처남이란 존재를 마음속에서 아주 지워버리고말았다.

그때로부터 두해나 지난 오늘까지도 처남을 대하는 안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그 편협한 때를 다 씻어버리지 못하고있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길을 두고 생각이 많아지셨다.

해박한 지식과 함께 쾌활하고 락천적일뿐아니라 붙임성도 대단히 좋은 안길이였다. 게다가 노래와 춤의 명수이기도 했으며 악기도 잘 다루었다.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안길이 있는 곳에서는 늘 유쾌한 웃음이 넘쳐나군 했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정치일군의 자질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라는 평판까지 달고있었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보다도 안길이 지닌 참모일군의 자질을 제꺽 포착하시였으며 또 그것을 매우 중시하시였다. 남다른 군사적예지와 작전적두뇌, 빈틈없는 치밀성과 높은 책임감 그리고 능숙한 조직적수완은 안길의 훌륭한 장점이였다. 안길에게 조선인민혁명군의 참모장의 중임을 맡겨주신것도 바로 이때문이였다.

안길은 김일성동지를 몹시 존경하고 따랐으며 또 그이의 사상과 의도를 제일 정확히 파악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삭공부》라는 일화까지 생겨나게 되였다. 지난날 늘 주력부대와 떨어져 린접에서 싸워온 그는 장군님의 전법이나 령군술, 덕행은 말할것도 없고 어느 회의에서 어떤 전략적방침을 내놓으셨다는 소식을 듣기 바쁘게 자기 식의 이삭공부로 그것을 속속들이 터득하고야 마음을 놓군 하였다. 회의참가자들이나 주력부대의 지휘성원들을 만나기만 하면 진드기처럼 딱 달라붙어 상대가 진땀을 빼지 않으면 안될만큼 꼬치꼬치 따져묻고는 자자구구 수첩에 적어넣군 했다. 이런식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나면 마침내 알고싶은것을 완전히 통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안길의 이삭공부였다. 안길의 손에 붙잡혀 땀을 뺀 사람들중에는 최현이나 최춘국, 박덕산이와 같은 지휘성원들뿐아니라 용석이또래의 나어린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가끔씩 안길의 이삭공부에 말려들어 혼쭐이 나던 일들을 즐겁게 추억하군 했다. 이삭공부를 마친 다음 안길은 반드시 그것을 혁명실천에 그대로 구현하군 했는데 전투작전이나 군중공작에서 단 한번의 실패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씩 과격한 성격상약점을 드러낼 때도 있었다. 한때는 최석천이나 최현이처럼 중국부대의 주보중에 대하여 곡해를 가지고 자주 엇서군 하여 조중 두 나라 군대의 단합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도 했었다. 일단 흥분하면 리성을 망각하고 감성의 포로가 되는 까닭이였다. 처남문제를 대하는것도 그런 약점의 발로라고 할수 있었다. 안길이와 같이 혁명에서 책임적인 지위를 차지한 사람일수록 그릇이 커야 한다. 그래야 각이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각계층의 인민대중을 한덩어리로 묶어세워 조국해방의 위업을 이룩할수 있는것이다. 더구나 안길은 김책이나 최석천이와 더불어 우리 혁명에서 큰 기둥의 역할을 놀아야 할 사람이였다. 그런만큼 안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사소한 티라도 그냥 내쳐둘수 없으시였다. 이번에 그 티를 깨끗이 씻어버리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안길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신중한 어조로 타이르시였다.

《나도 동무의 처남이란 사람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오. 그 사람이 정말 용서받지 못할짓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거요. 그러나 건져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린 그를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하오. 처남뿐만아니라 지난날 죄를 지은 사람들까지 다 말이요.》

안길은 짓수굿이 머리만 숙이고있었다.

《더구나 처남이란 사람은 동무의 안해와 혈육간이 아니요. 조선사람은 예로부터 오누이사이의 정이 특별히 친밀하다고 했소. 그런데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남편을 밀고하여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뜬소문을 그대로 믿는 동무의 안해가 그 남동생과 결별하고 어데론가 떠나가버렸다는데… 어려운 때 서로 믿고 의지해 살아야 할 친혈육이 원쑤로 되여 갈라져 산다니 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요.

조국해방이란 사실상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이요. 이제 나라가 해방되면 동무의 처남과 같은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소? 나라와 민족앞에 지은 죄책감으로 기를 못펴고 살게 될거요. 마음은 언제나 캄캄한 어둠속을 헤매게 될거란 말이요. 처남뿐이겠소? 그의 안해나 자식들도 다 그렇게 될거구 또 동무의 안해 역시 늘 마음속에 그늘을 안고 살기마련이요.》

《사령관동지.》

안길이도 바위우에서 일어섰다.

《난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진 못했습니다. 그저 결김에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만…》

《동무의 처남문제는 결코 개인문제가 아니요. 우리의 해방위업과 직접 련결된 문제란 말이요. 우리가 늘 말로는 흠이 많든 적든 매국노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을 다 손잡아 전민항쟁대오에 내세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혈육을 갈라놓는짓까지 한다면 누가 우릴 따라나서겠소.

안길동무, 의심과 배척은 모든것을 잃고 믿음과 사랑은 모든걸 얻게 되는 법이요. 그래서 난 나라를 찾기 위한 우리 혁명은 총대만 가지고 하는게 아니라고 늘 말하는거요. 우리가 나라를 찾자면 총대의 무성한 숲을 가져야 할뿐아니라 뜨거운 인정의 바다, 사랑의 바다를 펼쳐놓아야 한단 말이요.》

《알겠습니다.》

안길은 목이 콱 잠기여 겨우 말을 했다.

《이제 라진에 가면 꼭 처남을 만나서…》

《그렇게 해주오. 사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요. 적후에서 활동하는 우리 동무들이 제일 애먹고 이러저러하게 편향을 발로시키는것도 바로 이 문제요. 그래서 난 이번에 룡계지구로 가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그곳 동무들과 회의도 열고 우리 혁명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다지기 위한 대책도 세우자고 하오. 그것이 조국해방3대로선관철에서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사활적인 문제이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멀찍이 따라걷고있던 전령병을 손짓해 부르시였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온 전령병한테서 자그마한 보꾸레미를 받아드시였다.

《이건 녀자의 옷감 한벌과 어혈을 푼다는 곰열이요. 가지고가서 동무의 안해한테 전해주오.》

《아니, 우리 집사람의 소식이야…》

《동무 안해의 행처는 처남이 알고있을거요. 아무리 인연을 끊은 상태라 해도 처남이 모를리는 없소. 동문 일도 바쁘고 또 여러가지 요인으로 안해를 직접 찾아가보긴 어렵겠지만 처남은 어디라도 찾아갈수 있을거요. 처남이 이걸 동무의 이름으로 안해한테 전해주면서 마음도 풀어주면 다시 혈육의 정을 나누는 오누이가 되리라 믿소.》

안길은 두손에 보꾸레미를 받아안은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혁명의 길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이 억센 사나이도 김일성동지께서 펼치시는 인정의 바다앞에서는 마냥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간신히 억제하고있었다.

그때 무전수가 달려와 전문과 함께 최남진소조가 무사히 평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다.

《빨리 가닿았구만. 됐소. 그럼 라진과 함께 평양의 일도 마음을 놓을수 있으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돌려 서남쪽하늘가를 바라보시였다. 그쪽으로 가면 평양이 있었던것이다.

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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