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1
신흥지구비밀근거지
1943년 2월
신흥지구로 가는 사령부소부대의 행군은 부전령산줄기에 잡아들면서 한결 더디여졌다. 전에없이 눈이 많이 내린탓이였다. 허리를 치는 수림속의 생눈판을 헤치며 나간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였다. 눈이 너무 깊어서 한쪽발을 든든히 짚은 다음 다른 발을 콤파스 돌리듯 허리우로 높이 쳐들었다가 옮겨놓아야 했다. 앞에서 길을 내는 사람은 아무리 힘장사라 해도 불과 이삼십메터를 못 가서 땀을 쏟으며 헐떡거리군 했다.
이런 식으로는 하루종일 애를 써봐야 고작 삼십리정도나 겨우 축내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소부대는 힘든대로 줄곧 산릉선을 타고 나가군 했다.
《하, 이 부전령산줄기라는데가 참, 헐치 않습니다.》
척후와 함께 앞에서 길을 열다가 교대를 한 최현이 김일성동지의 곁으로 다가오며 털모자를 벗어들었다. 벌겋게 익은 얼굴로는 줄땀이 흘러내리였다. 그는 검푸른 전나무들이 꽉 들어차서 황혼무렵처럼 어둑컴컴해보이는 수림속의 허연 눈판을 놀랍게 바라보며 말했다.
《조국땅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일줄은…》
《이 부전령산줄기가 최현동무를 되게 시험하려드는것 같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음을 지으시였다.
《하긴 올해 이 고장에 특별히 눈이 많이 내린것 같소. 고난의 행군때나 무송원정때를 내놓군 이런 장설을 헤쳐보기가 처음이라 할수 있는데…》
《그때의 이야긴 나도 여러번 들었습니다만.》
최현은 손수건으로 연신 얼굴이며 목덜미의 땀을 훔치였다.
《지금이야 전투도 없고 식량도 푼푼해서 좀 힘들다군 하지만 다 신선놀음이지요.》
《말같지 않은 소릴!》
김일성동지의 앞에서 길을 넓혀나가던 안길이 숨찬 소리로 퉁을 주었다.
《척후대가 낸 길을 따라가는것도 이렇게 다리를 장대기 휘두르듯 옮겨놓아야 하는데도 신선놀음이요?》
《사령관동지.》
최현은 안길의 핀잔에 응대도 않고 제 말만 했다.
《이번 소부대편성이 좀 잘못된것 같습니다. 글쎄 이 행군의 진맛을 모르는 사람이 있질 않나 또 노루의 뒤발질에 동가슴을 얻어맞고 숨도 못 쉬는 팔삭둥이가 있질 않나, 나 참…》
《누가 노루의 발길에 채웠다는거요?》
《무전기배낭을 벗어놓구 자원해서 척후대로 간 용석이랍니다. 아무리 눈구뎅이에 빠진 노루라 해도 뒤로 덮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동가슴을 채운게 다행이지 면상이라도 맞아 짓이겨졌더라면 용석인 평생 장가도 못 가보게 됐을겁니다.》
《다친텐 없소?》
《눈판에 눕혀놓을 때 보니 두눈이 멀뚱멀뚱해서 앓음소리를 내던데 좀 부축해줘야 행군도 할것 같습니다.》
최현은 용석이때문에 복새를 놓다보니 그만 노루를 놓쳐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아쉬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조국땅의 노루여서 그대로 놓아준듯 했다. 사냥의 명수인 최현이 눈구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노루를 그냥 놓쳐버릴수는 없는것이다.
《이번 행군로정엔 참 희한한 일이 많구만.》
김일성동지께서 웃으시였다.
《호랑이한테 쫓기다가 얼음구멍에 주둥이를 박고 그대로 굳어져버린 메돼지가 있는가 하면 노루의 뒤발질에 봉변을 당한 사람도 있구…》
《그만큼 행군이 힘들기도 했지요.》
안길의 말이였다.
그랬다. 헐치 않은 행군이였다. 정초에 원동의 훈련기지를 떠난 김일성동지께서는 간도의 훈춘, 왕청, 연길, 화룡, 안도일대의 소부대들과 혁명조직들에 대한 지도를 정력적으로 진행하시였다. 이어 무산과 연사를 거쳐 국내종심에로의 천리행군을 이끄시였다. 무서운 폭설과 강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단행된 천리행군이였다. 허나 이제는 그 어려운 행군도 끝나게 된다.
얼마후 용석을 부축한 소부대는 어느 산언덕에 이르렀다. 저녁무렵이였다. 앞에는 길게 뻗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였다. 골짜기의 량쪽은 온통 험산들이고 끝쪽도 험산들이 겹겹이 서있었다.
《저기 저 물드무처럼 보이는게 두무봉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골짜기끝쪽에 우뚝 솟아있는 산을 손짓으로 가리키시였다.
《골짜기를 따라 십리남짓이 가느라면 두무봉에 가닿게 될거요.》
《그럼 다 온셈이 아닙니까?》
《그렇소. 우리의 행군도 일단 끝났다고 할수 있소.》
안길은 주변의 산발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여기도 산세들은 몹시 험하군요.》
《부전령산줄기의 산들이니까. 바로 그래서 신흥지구 비밀근거지도 꾸린거요.》
신흥지구 비밀근거지는 부전령산줄기를 타고앉은 천험의 요새라 할수 있었다. 그 령역은 무려 350리에 이른다. 이 지역은 련화산줄기와 북수백산줄기를 타고 조선혁명의 중심적령도거점인 백두산지구비밀근거지와 아주 밀접한 련계를 가질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부전령산줄기에서 뻗어내린 거두봉산줄기, 함관령산줄기, 천봉산줄기들을 통해 함흥, 흥남, 원산 그밖에 홍원일대로도 쉽사리 드나들수 있으며 장진고원을 통해 중부조선과 국내종심까지 진출할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흥지구 비밀근거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주시였다.
《신흥지구 비밀근거지는 1937년부터 꾸려지기 시작했는데 지역적령도거점으로서는 국내에서 제일 크고 완벽한 면모를 갖췄다고 할수 있소.》
《사령관동지께선 1937년에 신흥지구로 나오셨댔다지요?》
《37년 가을에 나왔댔소. 중일전쟁이 금방 터졌을 땐데 국내의 일부 사람들속에서 일제놈들의 <강대성>과 횡포앞에 기가 눌려있다길래 9월호소문을 내고 곧장 여기로 나왔댔소. 국내의 혁명운동에 활력을 부어주기 위해서였소. 이듬해 가을에는 혜산사건의 영향으로 의기소침해진 사람들한테 힘을 주자고 다시 나왔댔구. 그때부터 여기에 비밀근거지들도 꾸려지고 함흥과 흥남을 비롯한 중부동해안일대의 혁명조직들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소.》
그때 척후를 서고있던 대원이 바삐 달려왔다.
《사령관동지, 저기 웬 사람 둘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돌리시였다. 울창한 나무숲속으로 이쪽을 향해 바삐 걸어오는 두사람의 모습이 언뜻언뜻 시야속에 들어왔다가 사라지군 했다. 하나는 군복차림이였고 다른 하나는 검은 사복이였다. 두무봉밀영근처에서 류다른 사람들과 맞다든다는것은 례사로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저게 삼손이가 아니야?》
갑자기 최현이 소리를 질렀다.
《저 군복쟁이의 걸음걸이가 삼손이하구 신통히도 같거던.》
《최현동무가 정확히 봤소.》
김일성동지께서도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시였다.
《삼손동무가 틀림없소. 아마 우릴 마중나올거요.》
《예? 쟈가 어떻게 여기 와있습니까?》
최현은 얼떠름한 표정으로 김일성동지를 쳐다보았다.
《난 년말에 소부대공작을 끝내구 훈련기지로 가보니 삼손이가 보이질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만…》
《삼손동무가 여기로 먼저 와서 큰일을 해놓았소. 이번에 우리가 저 두무봉으로 가서 하게 될 중요한 회의준비도 저 삼손동무가 다 맡아했다고 할수 있소.》
《아니?…》
이번에는 최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사령관동지께선 작년에 벌써 3대로선을 구상하고 그 실현을 위한 준비를 갖춰오셨단 말씀입니까?》
《그렇다구 할수 있소. 전략상 중요한 로선인데 어찌 하루아침에 불쑥 내놓을수 있겠소. 어서 가서 삼손동무를 만나보기요.》
김일성동지께서 먼저 눈발을 헤치며 앞으로 걸어가시였다.
잠시후 눈덮인 수림속에서 류삼손이와의 감격적인 상봉이 이루어졌다.
《사령관동지, 제가 불개미재밀영까지 마중나간다는게 그만… 흥남쪽에 급히 다녀오느라 좀 지체하다나니…》
《그동안 수고많았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류삼손의 손을 뜨겁게 잡아쥔채 놓지 못하시였다.
《무전으로 동무가 모든 과업을 다 수행했다는 보고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그래 설을 쇠기 바쁘게 여기로 떠나온거요. 그런데 이 일대에 정황이 생겼다더니 어떻게 됐소?》
《그건 다 수습됐습니다. 거두봉산줄기와 원산쪽에서 소리를 크게 내면서 이 일대에 몰켜들던 놈들을 끌어냈습니다. 이젠 안심하셔도 됩니다.》
《불개미재령에서 그 소식은 대충 들었소. 아무렴 류삼손동무가 누구라고 그만한 정황을 처리하지 못할수야 없지. 최남진동무네 일행도 도착했다지?》
《예, 어제 새벽에 도착했습니다. 대개 조국땅을 처음 밟아보는 사람들이여서 기분이 붕 떠있습니다.》
《그럼 됐구만. 자, 다들 만나보라구.》
그이께서는 일행한테로 류삼손을 떠밀어주시였다.
누구나 뜻밖의 상봉에 기뻐하였다. 안길이나 용석이 등 여러 소부대성원들은 말할것도 없고 입이 철문같은 최춘국이와 박덕산이도 비죽한 웃음속에 뜨겁게 얼싸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최현이만이 한켠에 비켜서서 온곱지 않은 눈길로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자기앞으로 다가온 삼손에게 트집을 걸었다.
《야, 넌 제 직분도 다 집어던지구 여기 와서 무슨노릇을 하고있어?》
《예?》
《장군님의 신변을 지켜드리라구 널 떼보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최현은 진짜 노기등등해서 옛 부하를 꾸짖었다.
《여기서 하는 일이야 네가 아니라도 대신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
《아, 최현동무, 그렇지 않소.》
김일성동지께서 삼손을 편들어주시였다.
《이 신흥땅은 삼손동무의 고향이기도 하구 또 삼손동무가 아니면 해내기 힘든 일들이여서 먼저 내보냈던거요.》
《글쎄 사령관동지께서 하시는 일이니 어련하겠습니까만 이 삼손이를 사령관동지곁에 세워둔건 우리 나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서 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령관동진 우리의 그 진정을 몰라주시니 좀 섭섭합니다.》
《최현동무의 그 비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소. 앞으로 부득이한 경우를 내놓고는 삼손동무를 곁에서 떼놓지 않겠단 말이요.》
《그렇다면야 더 할말이 없습니다.》
그제야 최현은 흐뭇한 웃음을 짓더니 류삼손에게 한마디 오금을 박았다.
《들었지? 인젠 명심해야 돼.》
《명심하겠습니다. 련대장동지!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류삼손은 정중히 최현을 옛 직무대로 부르며 례의를 표시한 다음 다시 김일성동지께로 돌아섰다.
《사령관동지, 흥남지구정치공작원동무가 저기…》
《김석연동무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여라문발자국 떨어진 전나무밑에 서있는 사람을 바라보시였다. 검은 털외투를 입은 사람은 분명 김석연이였다.
그의 모색을 알아보는 순간 벌써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쪽으로 걸어가고계시였다.
《석연동무!》
《사령관동지!》
《이렇게 또 만났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뜨겁게 김석연의 어깨를 껴안아주시였다. 김석연은 그이께서 이미 오래전에 흥남지구로 파견하신 정치공작원이였다. 그는 서호의 어느 수산회사의 대리사장으로 위장하고 혜산사건의 여파로 파괴된 흥남지구의 조국광복회조직을 복구확대하고 일제의 대군수산업지대인 흥남지구를 우리 혁명의 강력한 지하보루로 만든 사람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1937년 여름과 1938년 가을 신흥지구로 나오실적마다 매번 그를 따로 만나주시였다.
《석연동무의 공작정형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을 때마다 늘 만족이였소. 동무네 흥남사람들이 참 대단하오. 아마 흥남만큼 파업투쟁을 잘하구 적의 대상물들에 대한 파괴공작을 잘하는 지역은 없을거요. 10만의 로동자대군을 가진 곳이니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그건 다 석연동무의 공로와 떼여놓을수 없지.》
《아닙니다. 사령관동지의 기대에 비하면 전 아직…》
《이야긴 두무봉으로 가면서 하기로 하구 지금은 우리 사령부지휘성원들과 인사부터 나누라구.》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석연을 지휘성원들에게 소개하시였다.
《흥남지구의 정치공작원동무요. 우리 혁명의 초창기에 벌써 총을 잡고 마촌작전에도 참가했던 동무인데 지금은 로숙한 공작원이 됐소. 국내공작원으로서는 내가 제일 자랑하고싶은 동무들중의 하나요.》
《아, 그러니 동무가 작년에 놈들의 비밀특수무기공장의 대폭파를 조직한 사람이겠구만.》
맨먼저 소개를 받은 안길이 환성을 지르다싶이 하며 마구 손을 잡아흔들었다.
《그 특수무기공장이 시운전을 하는 날로 불바다가 되였다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린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르오.》
석연이 고개를 숙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대폭파라고 하기엔 좀 과한 칭찬입니다. 그건 중간시험공장의 하나였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고지식하다구야. 어쨌든 놈들의 비밀특수무기개발과 생산을 파탄시키지 않았소. 어디 그뿐이요? 비료공장, 화약공장, 화학공장에서의 폭발, 군수품창고 방화… 하여튼 대단하오.》
여러 지휘성원들이 다 하나같이 그의 성과를 축하해주었다.
마감으로 최춘국의 앞에 이른 김석연은 흠칫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정치지도원동지가?》
《그렇소. 내 최춘국이요.》
최춘국이도 빙그레 웃었다. 그는 김석연이앞으로 손을 내밀며 곁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왕청2중대출신이요. 중대의 명사수로 소문났던 석연동무가 국내에 와서 큰일을 하고있었구만.》
《다 사령관동지께서 세세히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일행을 재촉하시였다.
《자 이러다간 저물겠소. 어서 출발하기요.》
다시 행군을 시작한 대오는 어슬녘에야 두무봉밀영에 이르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밀영어귀에서 한발 먼저 와있던 최남진일행과 밀영책임자를 만나보신 다음 류삼손이 안내하는 귀틀집으로 걸어가시였다. 소부대성원들도 모두 뒤를 따랐다.
귀틀집은 이깔과 분비, 종비나무들이 꽉 들어찬 수림속에 잘 은페되여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대낮에 코앞에 와서도 찾아낼수 없을만치 위장도 철저히 했다. 밀영에는 네채의 반토굴집이 띄염띄염 떨어져있었는데 귀틀집보다 위장이 훨씬 더 잘되여있다고 했다.
《이건 사령관동지께서 계실 귀틀집입니다.》
류삼손이 말하며 출입문을 열었다. 지어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 생나무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방안에 들어서던 일행은 깜짝 놀랐다.
카바이드불을 대낮처럼 밝혀놓은 온돌식 방안 한가운데 요란스런 식탁이 마련되여있었던것이다.
《이거 굉장하구만.》
김일성동지께서도 사뭇 놀라운 눈길로 식탁을 훑어보시였다. 길다란 식탁은 말그대로 잔치상을 방불케 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것은 왕새우와 털게, 전복, 문어회 등 동해의 희귀한 물고기료리들이였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는 사과와 감까지 무드기 담겨있었다.
《저건 북청사과와 안변감입니다.》
류삼손이 싱글벙글하며 말씀올렸다.
《사령관동지, 이거 동해의 산해진미가 다 올랐습니다.》
최현이 벌써부터 코를 벌름거리며 식탁을 여기저기 눈주어 바라보았다.
《동해가 여기 신흥에 와서 엎질러졌는가. 물은 다 빠지구 고기들만 댕그랗게 남은걸 보니… 도대체 삼손이가 무슨 요술을 부렸는가.…》
《이번 회의에 온 각지 혁명조직책임자들이 가져온 특산물들입니다. 특히 저 왕새우와 전복, 문어 같은것들은 다 김석연동무가 장만한거구요. 어떻게나 정성을 들였는지 문어같은 놈은 여기 도착했을 때까지 살아있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이렇게 친히 나오실줄은 몰랐습니다. 변변치 못한것들입니다.》
김석연이 어줍은 소리로 말했다.
《사령관동지께서 오신다고 이 삼손동지가 한마디만 귀띔했어두…》
《아니, 이건 대단한 성의요. 난 아직도 38년도 이 근방의 뒤덕봉밀영에서 이곳 동무들이 끓여준 추어탕생각을 잊지 못하고있소. 아마 이 식탁은 줄곧 이역의 산중에서 지내던 우리 동무들에게 조국의 체취를 더 잘 느끼게 하자고 마음먹고 준비한것일거요. 고맙소, 석연동무!》
김일성동지의 그 한마디 말씀에 김석연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부대지휘성원들도 숙연한 감정에 싸여 말없이 식탁을 굽어보았다.
《자 동무들, 기왕 준비한것이니 식기 전에 먼저 잔치상부터 받읍시다.》
《예, 알았습니다.》
모두들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웃으며 길다란 식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기 시작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몸가까이에 류삼손과 김석연, 밀영책임자들을 앉히시였다.
그러자 취사성원들이 밥그릇과 구수한 명태국그릇들을 날라오기 시작하였다. 소부대성원들에게는 명태국도 처음이였지만 밥도 처음보는것이였다. 흰쌀에 노르끼레한 기장쌀을 보기 좋게 섞은 팥밥이였다.
류삼손이 매 음식그릇들에 류달리 마음쓰는것으로 보아 오늘의 이 좌석을 마련하느라 무척 수고했을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신흥지구로 나오신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오직 그 혼자뿐이였던것이다.
식사준비가 다 되자 류삼손이 움쭉 일어나더니 방구석에서 고풍이 질은 오지단지를 들고왔다. 단지는 유지로 아구리를 깐깐히 밀봉해놓은 상태였다.
《사령관동지, 이건 북청조직성원들이 사령관동지께 올려달라고 보낸 백화술입니다.》
《백화술?》
《백가지 꽃으로 만든 술이라 합니다.》
《그렇소? 북청사람들의 성의로 빛은 술이로구만. 동무들, 우리 인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싸웁시다.》
방안은 명절날같이 흥성거렸다. 너나없이 동해의 진귀한 물산들올 놓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한켠에 최현과 마주앉은 최남진은 류달리 큰소리로 말했다.
《이게 도대체 뭐라는거요? 꼭 큰 거미같구만.》
최남진은 눈앞에 있는 커다란 털게를 가리키며 진저리를 쳤다.
《이런걸 먹는단 말이요? 어-》
《아, 이보게 남진이, 그게 아마 자리를 잘못 잡은것 같네.》
최현이 연신 진저리를 치는 최남진의 앞에 무드기 쌓여진 털게를 자기앞으로 옮겨놓았다. 그는 최남진과 꼭같이 한개 구분대를 맡고있지만 가끔 이렇게 나이가 십년이나 우라는 년장자의 재세를 하기도 했다.
《이건 임자의 체질에 맞질 않을테니까.》
《최현동지, 이것두 가져가십시오.》
최남진은 왕새우를 가리키며 또 진저리를 쳤다.
《저 수염을 보오. 어어-》
《임잔 신통히두 못 먹을것들만 골라내누만. 그것도 내가 처리하지.》
최현은 아닌보살하며 왕새우그릇도 끄당겼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최남진동문 최현동무의 유인전술에 걸려 알속들은 다 떼우는것같은데 그래 무얼 먹소?》
《이게 뭔지는 몰라도 그중 먹을만 합니다.》
《남진동무가 문어회에 맛을 들인것 같습니다.》
최현이 말했다.
《바다라는걸 구경도 못하는 북만에서 태여난 주제에 문어회맛은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어회라?-》
김일성동지께서도 최현의 롱담을 받아들이시였다.
《왕새우나 털게를 보고 벌벌 떠는 최남진동무가 진짜 문어를 보면 저렇게 저가락을 가져갈수 있을가? 하하하…》
모두가 따라웃는데 류삼손이 《우리한테 아직 산 문어가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우리 동무들이 배낭안에 꿍져넣고 왔는데 뜨뜻한 집안에 놓아두었더니 놀랍게도 다시 살아서 우무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살아있단 말이지?》
《예.》
류삼손은 얼른 일어나 부엌칸으로 나갔다가 소랭이를 들고 들어왔다.
소랭이안에서는 커다란 왕문어가 꾸무럭대고있었다. 모두들 식사를 하다말고 살아있는 왕문어를 구경하였다. 그들로서는 다 처음보는 희귀한 구경거리였다.
《이게 문어라는거요?》
최남진이 기겁을 해서 부르짖었다.
《어, 이것 흉측하게 생겼구만. 저 흐물떡거리는걸 보오. 내가 이런걸 먹었다니… 으- 으-》
그 소리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왕새우나 털게, 문어와 같이 희귀한 동해물산을 놓고 손대기 저어하는 사람들은 최남진이뿐이 아니였다. 북만출신들은 말할것도 없고 친솔부대출신들중에도 그런 사람이 몇이 있었다.
이 순간 김일성동지께서는 제 나라를 잃고 이역땅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조선사람들의 불쌍한 처지를 새삼스레 절감하시였다. 또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이나 대원들이 조선을 잘 모르고있다는 사실을 가슴아프게 생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다시 식탁에 마주앉은 사람들에게 왕새우나 털게, 문어, 전복과 같은 여러가지 어족들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주시였다.
그제야 모두들 이 식탁우의 모든것들이 얼마나 귀중한 어족들인가를 깨닫게 되였다.
최남진이도 어느새 태도를 바꾸어 최현의 앞에 무드기 쌓인 털게며 왕새우그릇들을 되찾아갔다.
《최현동지의 엉큼한 속내를 짐작 못한바는 아니였지만 정말 큰 손해를 볼번 했습니다. 내 한생에 언제 다시 조국의 바다물고기를 쌓아놓고 먹어보겠다구…》
그리고는 먹성이 좋은 그답게 왕성한 식욕으로 식탁우의것들을 조겨대기 시작했다.
최현이 게다리를 뜯으며 다시 시까슬렀다.
《이보라구 남진동무, 아무리 탐이 나두 바다물산이란 그렇게 욕심내서 먹는게 아니라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도를 넘게 먹었단 황소처럼 용을 쓸게구 그러면 동무의 김혜옥이란 녀자가 견디기 힘들지. 알맞춤하게 하라구.》
《내가 이걸 먹는것과 우리 집사람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최남진의 말에 좌중은 또다시 와- 웃어댔다.
혹한속에서 수천리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바로 이 두무봉밀영의 류다른 식탁에서 온갖 피로를 말끔히 털어버리는것 같았다.
풍성한 식탁에서는 마냥 유쾌한 웃음이 그칠줄을 몰랐다.
단지 김일성동지께서만은 겉으로 지으시는 웃음과는 달리 마음속으로는 내내 무겁게 실리는 짐의 무게를 의식하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래전부터 조국해방3대로선을 두고 구상을 무르익혀 오다가 드디여 정초에 정식화하시였으며 그 수행방도에 대한 방향을 그어주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로선을 내놓았다 해도 그것이 저절로 알찬 열매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훌륭한 열매를 따자면 그에 따르는 보다 깊은 사색과 고심과 수고를 바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그이께서 조국해방3대로선을 내놓으실 때 그 관철을 위한 구체적인 세부방략까지 다 세워놓으신것은 아니였다. 가령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작전을 준비하는 일만 해도 헤치고 넘어야 할 장애가 얼마나 되겠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을 전민항쟁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준비도 결코 례외로는 될수 없을것이다.
바로 그래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령부의 여러 지휘성원들을 사령부직속 소부대에 망라시켜 원동의 훈련기지를 떠나 국내종심에로의 수천리 설한풍을 헤치며 오셨던것이다. 조국이라는 현실에 몸을 푹 잠그고 3대로선을 성과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방략을 찾아내자는 목적에서였다. 물론 이를 위해 이미 류삼손에게 몇가지 과업을 주어 신흥지구 비밀근거지로 파견하기도 하시였다. 그리고 류삼손의 활동정형을 정상적으로 보고받기도 하시였다. 류삼손의 보고에 의하면 이제는 비교적 준비가 제대로 갖춰진것 같았다. 허나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도무지 마음을 놓을수 없으시였다.
수천리길을 헤쳐온 보람이 꼭 있어야 할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