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8

북만 소흥안령밀영

1943년 1월

 

김책은 다시금 사령부에서 온 전문을 꺼내여 읽기 시작하였다. 몇자밖에 안되는 전문의 매 글자가 무어라 말할수 없이 큰 의미와 무게를 담고있는듯 하였다.

《김책동무앞. 병치료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며 닷새에 한번씩 그 정형을 보고할것.》

처음에 이 전문을 받았을 때 김책은 너무나 놀라와 한동안 움직일수 없었다. 북만소부대들의 절박한 사정을 보고한 뒤 받은 전문이여서 더욱 그랬다. 다음순간 그는 매 글자속에서 용암처럼 끓고있는 김일성동지의 뜨거운 정을 감수할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가 아니면 이런 전문이란 있을수 없었다.

아, 김일성동지.

김책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슴뻑이였다. 그 전문으로 소부대의 운명에 대한 걱정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소부대들의 활동방략은 이제 곧 뒤따라 하달되기마련이다. 힘이 났다. 그래서 짬만 생기면 자꾸자꾸 전문을 꺼내여 읽는 김책이였다.

이때 문밖에서 이른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급한 눈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야간근무책임자가 김책의 방으로 들어왔다.

《정위동지, 대령가에서 어떤 사람이 급히 정위동지를 만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대령가에서?》

대령가라면 탕원현에 속해있는 이 소흥안령의 대목재생산지로서 김책이와 련계를 가지고있는 지하조직이 활동하는 곳이다.

이렇듯 이른새벽에 사람이 왔다면 거기서도 어떤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긴 모양이였다.

얼마후 김책의 앞에는 고급털외투에 털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났다. 털모자도 털외투도 온통 하얗게 성에가 불리여 눈사람같았다. 그는 털모자를 벗으며 김책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였다. 이십대 중반기를 금방 넘어선듯 한 젊은 사람이였다.

《김책동지, 전 대령가에서 온 김성태라고 합니다.》

《아, 성태동무!》

김책은 벌떡 일어나 반갑게 그의 손을 잡았다.

《동무였구만. 이렇게 만나니 정말 기쁘오. 자, 어서 올라오오.》

김책은 언제나 침착하고 과묵하던 그답지 않게 부산을 피우며 손님을 맞아들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김성태란 다름아닌 김일성동지께서 북만지역에 파견해주신 정치공작원이였던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김책은 련락원을 통해 김성태와 정상적인 련계를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추운 때 성태동무가 갑자기 여기에 나타났소?》

《급한 정황이 생겼기에 제가 직접 떠났습니다.》

김성태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김책동지, 이 밀영은 적들에게 로출됐습니다. 래일 아니, 이제는 오늘이지요. 오늘 아침 400명의 <토벌>대놈들이 이곳을 향해 출발하게 됩니다. 그중 200명은 일본수비대이고 200명은 산림경찰대입니다. 대령가의 병력이 총출동하는셈이지요.》

《확실한 정보요?》

《예, 정보는 믿을만 합니다.》

《오늘 아침이라…》

김책은 지그시 어금이를 깨물었다. 밀영이 로출되고 《토벌》대까지 온다니 설상가상이였다. 가장 어려운 고비에 이른 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다행히도 김성태가 미리 알려주었으니 망정이지 큰 봉변을 당할번 했다.

그는 속으로 타산해보았다. 적들이 대령가에서 여기까지 오자면 하루길이 걸린다. 그러니 극상해야 저녁무렵에 와닿을것이다. 하루종일 깊은 눈을 헤치며 행군해온 놈들이여서 밤중에는 싸움을 벌리지 못할것이다. 틀림없이 이 근방 어느 골짜기에서 숙영을 하고 래일 새벽쯤 달려들수 있다. 대응책을 세울 시간은 충분했다.

《성태동무, 고맙소. 동무가 아니였더라면 우린 큰 봉변을 당할번 했구만.》

《한번밖에 와본적이 없어 길을 헛들가봐 걱정했었는데 이젠 숨이 나갑니다.》

《동무가 여기에 와봤소?》

《예, 지난 12월초 원군물자운반대렬과 함께 왔댔습니다. 그때 박길송동지와 다시 만났습니다.》

《아, 그렇지!》

김책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내 다 들었소. 박길송동무와는 잘 아는 사이라지?》

《10년전에 왕청에서 처음 만나 사귀였습니다.》

김성태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런데 상봉한지 한달도 못되여 그런 불상사가 생길줄은… 전 신문을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렇게 됐소.》

김책이 침통하게 말했다.

《사령관동지께서 몹시 아끼시던 사람이였는데…》

밖에서는 또 한고패의 바람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제는 새벽이 다가왔는데도 장밤 기승을 부리던 바람이 조금도 수그러드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김책은 다시 말을 이었다.

《성태동무, 슬픔을 누르고 우리 그의 몫까지 합쳐 더 잘 싸우기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대령가의 일은 어떻게 돼가고있소?》

《이젠 기본적으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김성태도 침울한 낯빛을 풀며 대답했다.

《대령가에는 약 1 000호가량의 주민이 살고있는데 그중 700호가 조선사람들입니다. 또 대령가는 산림채벌의 중심지이고 큰 철도역까지 가지고있는 신흥산간도시로서 목재로동자들과 철도로동자들이 많습니다. 조선사람이 많아서 조직공작에 퍽 유리합니다. 물론 적들의 력량도 간단치는 않지요. 방금 말한것처럼 일본군수비대와 산림경찰대의 병력이 각각 200명씩이나 됩니다. 저는 위장을 위해 북일식당과 청수세탁소를 차려놓고 믿을만한 사람들을 물색하여 지난 11월초에 첫 반일회를 조직했습니다. 지금은 고산툰, 복흥툰, 랑향툰일대로 조직선을 늘여갈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역시 동문 솜씨있는 공작원이구만. 빠른 시일안에 큰일을 해놓았거던.》

《저, 그런데 김책동지!》

김성태는 저으기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김책동진 원동의 훈련기지에 다녀오셨다는데 장군님소식을 듣고싶습니다. 사실은 그때문에 오늘은 련락원을 제쳐놓고 제가 직접 여기로 달려온거랍니다.》

《동무의 심정을 알만하오.》

김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 일대의 소부대, 소조성원들한테서 늘 듣군 하던 청탁을 김성태에게서 다시 듣게 된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여전히 건강하게 지내시오. 전처럼 자주 소부대를 친솔하고 국내에도 나가시군 하오. 그래서 지금은 국내에 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해방을 이룩할 거대한 력량이 준비되고있소. 훈련기지의 부대들은 군정훈련을 맹렬히 벌리면서 국내와 만주전역으로 소부대활동을 나가구…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쁜 일은 국내나 동남만뿐아니라 길동, 북만의 모든 소부대, 소조들이 사령관동지의 유일적령도에 따라 움직이는 체계가 정연히 서게 된거요, 혁명조직들에 대한 지도도 마찬가지고…》

《그렇습니까?》

김성태의 얼굴에도 밝은 웃음이 피여올랐다.

《말씀을 듣고보니 장군님이 더 그리워집니다. 장군님을 만나뵈온지도 이젠 10년이나 되는데…》

《10년전에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왔단 말이요?》

김책은 저으기 놀라서 김성태를 바라보았다.

《지금 성태동무의 나이가 어떻게 됐소?》

《스물일곱입니다.》

《그러니 열일곱살에 벌써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왔구만.》

《예,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김성태는 방등불을 바라보며 먼 추억을 되살려냈다.

《33년 2월 어랑촌유격구 소선대에 있던 저는 화룡현당서기 김일환동지의 비밀편지를 가지고 소왕청 마촌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300리산길이였는데 길도 험하고 승냥이한테 여러번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줄도 무서운줄도 몰랐습니다.

사흘만에 첫 목적지인 왕청현 석현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오중화란 혁명가를 만나고 안내자인 박길송동무와도 만났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박길송동무와 함께 손쉽게 마촌으로 갔지요. 마촌에서 우린 처음으로 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었습니다. 우리 두사람은 그날 밤을 장군님곁에서 자게 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나이도 어린 우리 두사람에게 혁명의 전도와 조국에 대하여 아주 실감있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날 밤의 일을 저는 한시도 잊은적이 없습니다.》

《그러구보면 성태동문 참 행운아요. 난 사령관동지를 만나뵙자고 옹근 10년을 벼르어서야 겨우 소원을 성취할수 있었는데… 그러니 동문 그때 입대했겠소?》

《아닙니다. 전 아쉽게도 그처럼 바라던 입대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김성태는 시무룩이 웃었다.

《장군님을 만나뵈온지 석달이 지난 33년 5월에 전 현당서기 김일환동지의 지시를 받고 룡정으로 가 지하공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초겨울 김일환동지가 <민생단>으로 몰려 잘못됐다는 소식에 접했습니다. 제가 김일환동지의 지시를 받고 룡정에 파견된 사람이라는걸 어데 가서 말할수도 없고… 그런 말을 내비치면 저도 <민생단>에 몰려 죽을판이였습니다. 그때의 괴롭던 일이란 참… 그러다가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36년 3월에 리동걸이란 사람이 불쑥 저를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저와 김일환동지사이의 련계를 이어주던 련락원이였지요. 더욱 놀랍게는 그가 장군님의 친서를 가지고 왔더란 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제가 적구에 흘로 남아서 투쟁을 계속하고있는데 대하여 치하하시면서 룡정에서 지하공작을 계속할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그리고 련락원으로는 리동걸동지나 박덕산, 한익수동지들을 점찍어주셨습니다. 그들 세사람은 다 저와 같이 룡암촌에서 살던 사람들이였습니다.

그후부터는 내내 장군님의 지도를 받으며 룡정과 동만일대에서 조국광복회기층조직을 꾸리는 사업을 책임지고있었습니다. 저의 이름도 원래는 김광식이였는데 그때부터 김성태라 고쳤습니다.

작년에 제가 적들의 감시를 받고있다는것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박덕산동지를 통해 저를 이곳 북만으로 보내신것입니다.》

《나도 지난 여름 사령부로부터 그런 전문을 받았소. 그래서 할빈련락소에 와있는 동무를 대령가에 침투시켰던거요. 아무튼 동무가 왔으니 이 일대의 기층조직을 꾸리는 일은 마음놓게 됐소. 우리 같이 손잡고 온 북만땅을 조국광복회조직망으로 뒤덮어놓자구.》

《알았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바람도 잠잠해졌다.

《이거 이야기판을 벌려놓다나니 먼길을 걸어온 사람을 쉬게 할 생각도 못했구만.》

김책이 정신이 든듯 사죄했다.

《아니, 전 조금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왜 피곤하지 않겠소. 우리처럼 늘 산발을 타고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여기서 잠간 눈을 붙이라구.》

김책은 서둘러 김성태의 잠자리를 펴주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지휘성원들을 만나 조성된 정황에 대처할 준비를 갖춰야 했던것이다.

새벽에 소집된 소부대지휘성원들의 긴급회의에서 김책은 자기의 결심을 명백히 밝혔다.

《적들이 우리 지휘부의 위치를 알아내고 공격해오는것만큼 우린 곧 자리를 옮겨야겠소. 그러나 이 겨울동안 일시 소부대활동을 중단하자는 제의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봅시다.》

지휘관들은 의아해하였다. 지체하기에는 정황이 너무 긴박했던것이다.

김책은 그루를 박듯이 말했다.

《그건 소부대활동원칙과 어긋나기때문이요. 그리구 난 이곳 형편을 우리의 김일성동지께 사실그대로 보고드렸소. 반드시 출로를 열어주실거요. 그때까지 기다립시다.》

《예, 알겠습니다.》

수염이 더부룩한 무란지구 소부대책임자가 무엇인가 자각한듯 말했다. 적들이 밀영으로 쳐들어온다는 소리를 듣자 그는 더욱 강하게 소부대활동을 일시 중단하자는 주장을 내세웠었고 거기에 이제껏 말없던 경성과 철려지구 소부대책임자들도 덩달아 목소리를 합치였었다. 그러나 그들도 사령부의 지시를 기다리자는 김책의 마지막말에 다른 의견이 있을수 없었다.

그때 반토굴집의 문을 열고 무전수가 들어왔다.

《사령부에서 전문이 왔습니다.》

《드디여 왔구만.》

김책은 안도의 숨을 지으며 얼른 전문을 받아들었다.

전문의 내용은 상당히 길었다.

그것을 한자한자 새겨읽는 김책의 심장은 흥분으로 높뛰기 시작했다. 전문을 읽어갈수록 그는 깊은 골짜기를 끝없이 헤매다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보는것 같았다. 그는 다시금 전문을 곱씹어 읽어내려갔다. 한번, 두번, 세번… 전문의 의미는 한밤중의 홰불처럼 명확히 파악되였다.

《됐소! 바로 이거요!》

마침내 김책은 손바닥으로 구들장을 탕 내리쳤다.

《인젠 앞이 열렸소, 동무들!》

숨죽이고 지켜보는 지휘성원들앞에서 고개를 쳐든 김책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하여 떨리기까지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마전 조국해방3대로선을 내놓으시였소.》

《3대로선이라구요?》

《그렇소.》

김책은 소부대지휘성원들에게 조국해방3대로선의 내용을 설명해주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조선뿐아니라 여기 북만지역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신통한 방략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또한 우리가 수세에서 공세에로 넘어갈 묘술도 가르쳐주시였소.》

《그게 어떤 묘술입니까?》

《왕쑹동무가 제일 급해하는군.》

김책은 밝은 웃음을 앞세우며 대답을 주었다.

《몇개의 소부대가 사방 멀리로 나가 총소리를 크게 내는게 첫째요. 그러면 이 일대에 집중된 적의 력량을 모래알처럼 헤쳐버리게 될테니까. 그다음은 우리가 이 일대에 그냥 틀고앉아 혁명조직들을 꾸리는데 달라붙는거요. 지금까진 품이 많이 들고 정치공작경험들도 없어서 소홀히 여겼는데 그게 잘못이요.》

《그럼 소부대군사작전은 어떻게 합니까?》

《그건 대중정치공작에 필요할 때만 진행되여야 하오. 이제부터 우린 공세로 넘어가야겠소. 오늘도 적들을 피해 조용히 밀영을 떠날 생각만 하고있었는데 반대로 놈들을 족쳐버리고 떠나자는거요.》

《아니, 우리야 겨우 몇십명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그걸…》

《왕쑹동무, 인원도 적고 대부분 신대원들이긴 하지만 마음먹고 나서면 못할것도 없소.》

김책은 낡은 전투가방속에서 군용지도를 꺼냈다.

《다들 저 뙤창앞으로 가기요.》

뙤창앞에서 김책은 군용지도를 펼쳐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맞다들게 되는 적들은 대령가의 일본수비대와 산림경찰대요. 놈들은 우리 지휘부의 위치뿐아니라 인원수 지어는 대부분 신대원들이라는것까지 다 알고있소. 변절자가 생긴것 같소.

자, 보오. 놈들이 우리 밀영으로 들어오는 길은 두개요, 여기하구 여기…》

김책은 손가락으로 지도에서 두개의 통로를 짚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두개의 통로가운데서 하나는 멀리 에돌고 하나는 비교적 곧추 뻗어있다. 두개의 통로는 밀영에서 10리쯤 떨어진 골짜기에 이르러 합쳐지게 된다. 때문에 놈들은 빠른 통로를 선택하기마련일것이다.

놈들에게는 기병대가 없다. 기마순찰대가 있을뿐이다. 그러므로 놈들은 어슬녘에야 도착하게 된다. 눈이 깊어서 그보다는 빨리 오지 못한다. 온종일 행군에 지친 놈들은 하루밤을 숙영하고 래일 새벽에 밀영으로 달려들수 있다. 새벽기습은 놈들의 상투적수법이다. 놈들의 숙영장소는 어디겠는가.

《그건 바로 여기요.》

김책은 손가락으로 두개의 통로가 합쳐지는 산밑의 골짜기를 짚었다.

《여긴 골안이 비교적 넓고 밀영과는 10리밖에 안되는 곳이여서 <토벌>대숙영지로서는 제일 적합한 장소요. 일본군수비대와 산림경찰대는 각기 따로 떨어져 숙영할거요. 산림경찰대는 밀영쪽 골짜기입구를 차지하고 일본군은 멀찍이 사이를 둔 공지에 천막을 칠수 있소.

적의 약점은 우릴 잘 안다는데 있소.》

《그거야 놈들의 장점이 아닙니까?》

철려지구 소부대책임자의 말이였다.

《아니요. 놈들은 우리 밀영과 얼마 안되는 인원, 전투경험이 없는 신대원들이 대부분이라는것을 알고있는데로부터 방심하고있을거란 말이요. 이런 때 기관총을 휴대한 두개의 습격조가 산발을 타고 두 숙영지사이에 새여들어가 량쪽의 적들을 벼락같이 들이치고서 맞불질을 시켜놓은 다음 빠져나오자는거요. 어떻소?》

《그거 참 묘안입니다.》

왕쑹이 두눈을 번쩍이며 탄성을 질렀다.

《승산이 보입니다.》

《해볼만 한 일입니다.》

모두가 김책의 의도를 파악하고 찬성을 표시했다.

김책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사령관동지의 전법의 하나요. 어느해인가 설대목에 백두산지구의 어느 밀영으로 적들이 쳐들어왔다고 하오. 밀영에는 사령관동지를 호위하는 얼마 안되는 경위대원들만 있었는데 적은 수백명이나 되였다고 하오. 놈들이 밀영가까이에서 하루밤을 묵을 때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은 습격조가 숙영지복판으로 들어가 사방에 대고 불벼락을 안겼소. 숙영지가 발칵 뒤집히고 서로가 죽기내기로 싸우기 시작했소, 도망치는 놈들도 부지기수구. 그런데 놈들은 천막안에서 신발까지 벗고 자다가 벼락을 맞고는 맨발바람으로 허둥거리며 총탄에 맞아죽고 설대목의 강추위에 얼어죽고 하여 전멸당했다는거요.》

《지금 우리의 정황이 그때와 꼭 같습니다.》

《옳소. 바로 그거요.》

김책이 흥분하여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와 함께 습격조에 참가할 인원들을 선발하겠소.》

《정위동지, 그건 안됩니다. 습격조를 제가 맡겠습니다.》

왕쑹이 한발 앞에 나섰다.

《정위동지가 습격조를 지휘하겠다는건 격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일을 망칠가봐 그러시는게 아닙니까?》

다른 지휘관들도 모두 자기가 습격조를 책임지겠다고 떠들어댔다.

《동무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건 북만의 소부대활동이 공세로 이행하기 위한 첫 싸움이기때문이요. 그리구 왕쑹동무야…》

김책은 그를 면바로 쳐다보았다.

《신대원들만 가지고 어떻게 해낸다고 그러오?》

왕쑹의 목덜미가 벌개졌다.

《아, 이거… 정위동진 꽤나… 사실 말이지 지금처럼 승패가 뻔한 싸움이라면 신대원들도 얼마든지 구실을 하게 되는 법이지요, 물론 그건 지휘관에게 전적으로 달린 일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무란지구의 소부대활동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아도 될것 같구만. 좋소. 그런데 그전에 먼저 한가지 할일이 있소. 우선 불을 지르든 낫질을 하든 동무의 그 더부룩한 수염부터 깨끗이 제거해야 습격조를 하나 맡기겠소.》

《즉시 수염을 제거하겠습니다.》

요란한 웃음이 터졌다. 위구와 불안을 말짱 날려보낸 사나이들의 통쾌한 웃음이였다.

회의에서는 습격전투와 함께 로출된 밀영에서 철수하는 문제들도 구체적으로 토의되였다.

습격전투를 끝내면 여러 소부대책임자들은 소부대와 함께 새로운 활동지역으로 가게 되며 지휘부의 소부대는 예비밀영으로 행군하게 된다. 이제 곧 습격조도 조직하고 그 준비를 끝내야 했다.

회의가 끝나자 김책은 반토굴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성태에게도 새 소식을 알려주고 대책을 의논해야 했다.

《성태동무, 사령관동지의 전문이 왔소.》

《예에? 장군님께서…》

《음, 이젠 우리가 주도권을 틀어쥐게 됐단 말이요.》

김책은 김성태에게 조국해방3대로선과 함께 북만소부대활동에서 새로운 전환을 열어놓을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상세히 전달해주었다.

《이제부터 우리의 소부대활동은 동무와 손잡고 대중정치공작에 주되는 힘을 넣게 되오.》

《그렇습니까?》

《난 오늘에야 소부대활동은 각계층 사람들을 묶어세우는 대중정치공작을 위주로 해야 한다는 김일성동지의 말씀의 참뜻을 다시한번 깊이 새겨보게 되오. 이번에도 성태동무네 조직이 없었더라면 우린 적들의 기도를 감감 모르고있다가 큰 재난을 입을번 했소. 적정도 알고 앞길도 열렸으니 공세는 우리가 취하자는거요.》

그는 김성태와 함께 앞으로의 정치공작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였다.

그날 밤의 습격전투는 계획했던대로 멋들어지게 진행되였다. 그야말로 통쾌한 습격전이였다.

한밤중에 불의의 선불을 맞은 일본군수비대와 산림경찰대는 죽기내기로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두 습격조가 재빨리 빠져 안전한 집결장소에 이른 다음에도 총소리와 수류탄이 터지는 폭음은 여전히 격렬하게 들려왔다.

승리자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들자신도 습격전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정위동지, 통쾌합니다.》

왕쑹이 한켠에 덤덤히 서있는 김책에게 다가와 말했다.

《정말 꿈만 같은 일입니다.》

《아니요. 내가 큰 실책을 범할번 했소.》

《예에?-》

김책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웃고 떠들고있었으나 그만은 도리여 큰 자책속에 잠겨있었다. 김일성동지의 전문이 아니였더라면 어찌 이런 승리를 생각이나 할수 있었으랴. 실상 일부 지휘성원들이 일시 소부대활동을 중단하자고 제기해왔을 때 그도 은연중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던것이다. 하지만 김일성동지의 전문을 받은 다음의 결과는 얼마나 판이한것인가.

《자기 전구에 돌아가 잘 싸우시오, 우리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대로 언제나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알겠소?》

《걱정마십시오. 저도 오늘 큰 교훈을 찾았습니다.》

《내겐 동무의 그 말이 오늘 전투승리보다 더 기쁘오, 강동무.》

김책은 왕쑹을 격려해준 다음 지휘부직속 소부대책임자를 가까이 불렀다.

《우리의 계획을 좀 바꿔야겠소. 예비밀영에는 후방성원들만 보내고 소부대는 적극적인 대중정치공작으로 넘어가야겠소.》

《알았습니다.》

그는 신명이 나서 돌아섰다.

김책은 그제야 큰숨을 지었다. 어쩐지 그전날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선언문을 받아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의 감격이란 얼마나 컸던가. 그때까지만 해도 북만의 조선혁명가들은 조선혁명에 대하여 감히 말도 내비치지 못하며 지냈었다. 그래서 조국광복회 선언문과 10대강령이 준 충격은 몹시도 컸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김책이 자리에서 일어나 피나무판자를 놓고 10대강령을 한자한자 새겨놓은 다음 목판인쇄로 수백부나 찍어 배포한것도 그 충격때문이였다.

이번에 무전으로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보니 그때의 감격과 기쁨이 되살아난듯 하였다.

조국해방3대로선이 북만땅도 이렇게 뒤흔들어놓고있으니 조국땅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김책은 한시바삐 그이께서 계시는 사령부로 달려가 최후결전의 준비라는 그 거창한 일에 한몸을 푹 잠그고싶었다.

여기 일들을 빨리 바로잡아놓아야 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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