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7 회)
제 6 장
꿈과 리상
11
비오는 밤에도 앞공정현대화전투는 계속되였다.
어느날 큰물피해가 예견된다는 기상수문국의 통보를 받은 석우진은 한밤중 급히 차를 타고 곡산공장으로 달려왔다. 벌써 대동강과 공장사이에 쌓아올린 제방뚝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진흙마대와 모래가마니를 메고 뛰여다니고있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줄기속에서 저마다 소리치고 떠들어대였다.
《모래가마니는 여기로 가져오시오!》
《진흙마대는 뚝밑에 쌓소!》
《동무들, 이쪽으로!》
석우진은 어둠속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정신없이 제방뚝에로 달려갔다. 젖은 풀에 발이 미끄러지고 진흙이 가득 달라붙은 신발이 철떡거렸다. 무작정 누군가를 붙잡고 다우쳐물었다.
《지배인동무 어디 있소?》
모래가마니를 진 사람이 거칠게 소리쳤다.
《난 모르오!》
그 사람은 석우진이 들고있는 우산을 밀쳐버리며 강뚝아래로 달려갔다. 비칠거리며 물러난 석우진은 허둥거리며 마주오는 사람을 또 붙들었다.
《당비서동문 어디 있는지 모르오?》
그 사람이 뭐라고 손짓하며 달려가는데 소란한 비소리에 아무것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그뒤로 흙마대를 진 사람들이 동뚝길을 메웠다. 석우진은 한옆으로 물러나고말았다. 이런 복새통에서 공장의 책임일군들을 찾는다는것은 불가능했다. 또 그들을 찾아서는 어쩐단 말인가?…
사람들의 웨침소리와 폭우속에서 가려들을수 있는것은 방송차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뿐이였다.
《평양곡산공장 종업원여러분! 지금 무진천의 물이 불어나 밀려오고있습니다. 수십년만에 처음보는 대홍수로 하여 공장을 막고있는 강뚝이 위험합니다. 종업원동지들! 공장을 구원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모두다 한사람같이 떨쳐나 큰물피해를 막읍시다. 공장을 구원합시다!…》
석우진은 수많은 전지불과 조명등이 비쳐지는 강뚝을 바라보았다. 원래 대동강과 코를 맞대고있는 평양곡산공장은 장마때마다 늘 홍수의 위협을 받아오군 했다. 대동강의 상류에서 큰물이 지면 강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보다 지대가 낮은 곡산공장은 영낙없이 물에 잠기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대동강과 공장사이에 제방뚝을 쌓고 정문앞에는 두께가 한메터나 실히 되는 든든한 수문을 설치하고있다. 하지만 서해갑문을 막은 다음부터는 그런 걱정도 없어지고말았다. 헌데 뜻밖에도 곡산공장을 감싸며 흐르고있는 대동강지류인 무진천이 불어나면서 공장을 위협하고있는것이다.
이때 누군가 다급히 웨쳤다.
《강물이 불어난다!》
석우진은 가슴이 섬찍했다.
《아니, 벌써?!…》
석우진은 정신없이 무진천쪽으로 달려갔다. 미끄러져넘어질번 하면서도 그냥 달렸다. 쓰고나왔던 우산을 어디에 팽가쳤는지도 알지 못했다.
동뚝우에서 내려비치는 전조등에 드러난 강물은 무시무시했다. 산악같은 탕수가 밀려오며 강뚝에 쌓은 모래가마니를 들이받았다. 거세게 울부짖는 물결… 모래가마니들이 세찬 물살에 못이겨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강뚝! 강뚝이 견디지 못하면 끝장이다!… 한순간 가슴이 얼어들었다.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강뚝이 견디지 못하면 순식간에 저 거센 물결이 공장건물들을 휩쓸것이다. 나라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마련해준 귀중한 현대화설비들이 물에 잠기게 될것이다. 그것을 위해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흘린 땀과 창조의 노력이 모두 허사로 될것이다. 최첨단을 향한 귀중한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것이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지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사장동무! 퇴수장은 어떻게 됐소?》
그에 대답하는 귀에 익은 림성하의 목소리.
《예, 보조양수기까지 다 돌리고있습니다.》
《그동안 정전이 되지 말아야겠는데…》
석쉼한 목소리, 그것은 정주선당비서의 목소리였다.
그제서야 석우진은 제방뚝우에서 사람들을 지휘하는 김윤걸지배인과 정주선당비서, 기사장 등을 알아보았다. 모두가 물참봉이였다.
석우진이 진탕을 저벅거리며 그들에게로 다가가는데 김윤걸지배인이 손전화기로 누군가를 소리쳐부르고있었다.
《동력과요? 정전이 되지 않도록… 준비하오. 발동기를 미리 준비하란 말이요.》
늘어진 동력과장의 목소리가 석우진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걱정마십시오, 지배인동지. 벌써 준비시켜놓았습니다. 이 동력과장의 신발뒤축이 그저 닳겠나요.》
석우진은 한순간 저도 모르게 피씩 웃었다. 늘 뒤축없는 신발을 신고다닌다고 소문난 동력과장, 밤낮없이 뛰여다녀야 하는 동력과장의 신발이 언제나 닳아빠져있다고 해서 《동력과장의 신발뒤축》이라는 낱말까지 생겨났다는것도 그는 잘 알고있는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뚝아래에서 달려올라오며 숨차게 부르짖었다.
《지배인동지, 큰일 났습니다. 폭탄이!…》
지배인이 맞받아 소리쳤다.
《폭탄이라니?…》
《아, 글쎄 폭탄이…》 그는 지운섭이였다. 비옷앞섶을 헤치며 숨이 턱에 닿아 말도 제대로 못했다. 《저기 배관밑에…》
정주선당비서가 그의 어깨를 와락 잡아돌렸다.
《그게 정말이요? 폭탄이 맞아?》
《정말입니다. 저기 물엿직장뒤… 낡은 배관밑에서…》
비수같은것이 머리속을 찌르는 무서운 예감, 석우진은 이전에도 터지지 않은 폭탄을 파낸적이 있다는것을 상기했다. 가슴이 흠칫했다. 석우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여 몸을 떨었다.
누가 먼저 소리쳤던지…
《가보기요!》
《갑시다!》
허나 다음순간 수문쪽에서 또 아우성소리가 터졌다.
《수문이 위험하다!》
《물이 차오른다!-》
쏟아지는 폭우! 넘실거리며 위협하는 강물… 우- 우 몰아치는 비바람속에 무수한 전지불들이 껌벅거리고 물에 씻긴듯 흐려지기도 했다.
《지배인동문 여기 남으시오. 저긴 내가 가보겠소.》
당비서의 목소리.
《나도 갑시다.》
석우진이 나섰다. 그를 따라 또 한사람, 기사장 림성하가 씨근거리며 지운섭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뒤에서는 김윤걸이 사람들에게 소리치고있었다. 그러자 허리에 바줄을 맨 날파람있는 청년들이 진흙마대를 메고 뚝아래로 내려가고있었다.
방송차에서도 격조높은 선동이 계속되고있었다. 그러다가 힘찬 음악이 터져나왔다.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쓰러진 전우의 원한씻으러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석우진은 뜨거운것이 목구멍을 지지는듯 했다. 마치 자기가 돌격선을 달리고있는듯 한 느낌이였다.
만세 만세 만세높이 부르며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가슴이 뜨끔거렸지만 쉬지 않고 달린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달린다.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나가자 동무여 결전의 길로
별안간 멈춰섰다. 가까이에서 전지불이 번뜩거린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저도 모르게 비칠거린다.
《국장동지!-》
전지불을 손에 들고있는 그는… 강수일이였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써늘해진다. 이 사람은 웬일로 여기에 또 나타났단 말인가. 한순간 석우진은 입에 쓸어드는 비물을 푸-푸 내뿜고나서 거칠게 물었다.
《동문 왜 또 나왔소?》
《저…》
《동무야 당장 우리 성아래 식료공장에 현실체험을 가게 되여있지 않소?》
강수일이 머리를 떨구었다. 들고있던 우산이 미끄러져내리며 진창에 구겨박혔다. 굵은 비방울이 후려치듯 태질하며 그의 온몸을 적시였다.
《국장동지… 어쩐지 떠나기 전에 한번 나와보고싶어서…》
그를 지나치려던 석우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회관쪽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이 그의 물에 젖어있는 얼굴을 비쳤다. 석우진은 그가 진심을 말하고있다는것을, 무엇인가 바치고싶어 나왔다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갑자기 어둠을 짓태우며 번개가 번쩍이였다. 이어 하늘을 뒤집는듯 한 요란한 천둥소리… 과연 이 강수일이라는 한사람에게만 잘못이 있었던가? 그럼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국장동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있습니까?…》
누가 그렇게 물었던가? 그게 누구의 목소리였던가?… 정주선당비서? 아니면 기사장 림성하의 목소리?… 아니다, 전혀 딴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지금 어떤 실력없는 일군들은 완력이 있고 일솜씨가 걸싸다는것을 자랑으로 여기고있습니다. 자주 평가도 받군 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하나를 제끼면 또 다른것을 맡아 악악 소리치며 해제낍니다. 또 평가받습니다, 자기가 맡아 해제낀 대상이 제대로 돌아가건말건… 그런 일군이 새 대상을 제끼면 제낄수록, 평가받으면 받을수록 나라는 손해만 보게 됩니다. 힘들게 해놓은것이 모두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맙니다. 실속있게 하지 않기때문에, 자기 하나만을 위한 자리지킴, 그 지독한 보신주의때문에!…》
이것은 석우진 자신이 성당위원회에서 자기 비판을 하면서 한 말이다. 그때를 회상하니 다시금 가슴이 뜨끔했다. 숨이 막히는것을 느낀다. 심장이 허덕이며 신음하기 시작했다. 비틀어짜는듯 한 극심한 아픔… 그는 저도 모르게 왼쪽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어둠속에서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강수일의 얼굴을 바라보며 힘들게 가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강수일동무, 가서 많이 배우고 돌아오오.》
그는 자기가 어떻게 물엿직장뒤에서 법석 떠들어대는 사람들한테 달려갔는지 알지 못했다. 온통 흙탕물로 범벅이 되고 뼈속까지 젖은 몸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비집고 웅뎅이에까지 나섰는지 알지 못했다.
온통 파헤쳐놓고 뒤번져놓은 그곳에는 자동차전조등빛을 켜놓아 환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물이 배관을 놓으려고 파놓은 웅뎅이에 흘러들며 사품치며 흐르고있었다. 웅뎅이속에서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흙탕물… 젖은 폭탄의 시꺼먼 형체가 자동차불빛에 확 드러났다. 그렇다. 폭탄이였다. 반톤짜리 폭탄일것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그러자 가슴을 찌르는 무서운 동통… 도대체 저 괴물이 어떻게 땅속에 뻗은 아름드리배관밑에 숨어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아우성치고있었다.
정주선당비서가 소리쳤다.
《보안원, 사람들을 접근시키지 마시오.》
보안원들이 달려오는 사람들을 막으며 소리쳤다.
《접근하지 마시오. 물러서시오!》
《여기는 차단입니다!》
보안원들과 경비원완장을 낀 사람들이 사방 뛰여다니며 몇십메터구간에 줄을 쳐놓고 통행을 금지시켰다. 이어 붉은 신호불을 번쩍이며 달려온 공장소방대차에서 전투원들이 뛰여내리고 로농적위대 대원들이 달려왔다.
석우진은 우산밑에서 도면을 펴놓고 들여다보는 림성하에게 다가갔다.
《기사장동무, 어느 배관이요?》
그가 머리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설계도면엔 없습니다. 어느때 설치한 배관인지도 알수 없군요.》
그를 둘러싸고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석우진도 위험구역으로 표시해놓은 폭탄구뎅이를 바라보았다. 온통 뚜져놓고 파헤쳐놓은 땅바닥, 그속에 얼기설기 뻗어있는 굵고 가는 관들… 곡산공장에는 이런 주소없는 관들이 많다. 력사가 오랜것만큼 언제, 무엇때문에 설치해놓은것인지도 알수 없는 수많은 관들이 구내의 땅속깊이 여기저기 묻혀있는것이다.
림성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물량이 여느때보다 많아졌습니다. 현재 30여개의 양수기를 만가동하면서 공장안에 차오르는 비물을 무진천으로 퍼넘기지만… 미처 빠지지 못한 비물이 지하에서 합쳐져서 저렇게 구뎅이를 따라 흐르는것 같습니다.》
석우진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옳소.》
석우진은 점차 희미해지는 자동차불빛에 비쳐진 현장을 둘러보았다. 큰물이 밀려들고 폭탄이 무섭게 웅크리고있지만 공장은 여전히 활력에 넘쳐있었다. 현대화가 실현된 당과류직장건물쪽은 멀리에서도 불빛이 환했고 설비조립이 벌어지는 건물에서는 물론 천막이나 비닐박막을 친 밖에서도 용접불꽃이 계속 흩날리고있었다.
눈시울이 사뭇 떨려났다. 어째서 이 모든것이 오늘따라 이렇듯 정답게, 사무치게 안겨오는것인지?… 너무도 뜨겁게 사랑한 공장이였다.
한순간 미분탄공이였던 아버지 석회령이며 눈처럼 하얀 의자 그리고 눈물방울이 떨어져내리는 술잔이 눈에 보듯 생생하였다.
사랑과 헌신으로 엮어져온 공장의 력사… 이 공장에 아로새겨진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념원이 오늘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으로 실현되고있는것이다. 석우진이 그토록 사랑해오고 가슴아파하던 이 낡고 뒤떨어진 곡산공장이 그 모든것을 털어버리고 최첨단을 갖춘 세계적인 식료공장으로 변모되고있는것이다. 헌데 누가 감히 이것을 막는단 말인가! 원쑤 미제의 폭탄이 오늘까지도 이 공장을 노리고있단 말인가?!…
그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비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위험표식을 노려보았다. 안된다, 절대 안돼!…
석우진은 저도 모르게 위험구역으로 향했다. 시꺼먼 괴물을 향해 육박해갔다.
림성하가 깜짝 놀라며 그를 붙들었다.
《국장동지, 안됩니다!》
석우진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막지 말라구, 기사장. 이 사람, 나두 이 공장사람이야. 한때 좀 낡고 뒤떨어져서 비뚜로 나간적이 있긴 했어두 진심으로 이 공장을 사랑해온 사람이야.
그러나 말은 다르게 나갔다.
《걱정말라구! 난 군대때 공병이였어. 저런건 이 석우진이 잘 알아.》
림성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안됩니다! 국장동진… 안됩니다.》
《이보라구. 저게 다행히두 폭파되진 않았지만 이제 물살에 밀려가다가 쇠붙이 같은데 걸려 신관을 다치게 되면… 그땐 새로 개건한 저 효소건물이 통채루 날아나게 되네. 그거야 기사장동무두 잘 알지 않나. 그런데두 그냥 지켜보구만 있겠나? 안되지. 그래선 안돼!…》
이때 키가 크고 비옷을 걸친 거무스레한 청년이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주광혁이였다.
《국장동지, 전 제대군관입니다. 폭탄을 해제하는건 제가 해보겠습니다.》
석우진은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뒤쪽에서 비물이 쓸어드는 입을 손으로 막고있는 처녀기사 송해연이도 한눈에 스쳐보았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소문이 짜한 두사람… 그는 소리없이 웃으며 그를 밀어놓았다.
《동문 포병이였다지?… 하지만 난 공병이였어. 이런걸 다루는건 내 전문이야.》
그러나 다음순간 그들모두를 막아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정주선당비서였다.
《안됩니다! 두사람 다 물러나시오, 기사장동무도. 대신…》 정주선이 그들 세사람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보안원동무, 어서 와서 보고하오!》
그러자 뒤쪽에서 키가 훤칠한 보안원이 정보행진을 하듯 힘있게 나섰다.
《비서동지, 방금 보안부에 정황을 보고하였습니다. 이제 곧 폭발물을 처리할 전문가들을 보내겠답니다.》
정주선당비서가 석우진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모두 우리 보안원동물 잘 알지요?》
그것은 보안원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가장 엄격하며 에누리를 모르는 실천가라는 의미였다.
《자, 그러니 다들 물러나시오.》 정주선이 손을 내저으며 계속했다.
《오래전에 포탄깍지나 수류탄을 다루어보았다 해서 불발된 폭탄까지 해제할수 있는건 아닙니다. 폭발물해제전문가들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모험하겠습니까. 절대 안됩니다.》
정주선은 석우진까지 사정없이 밀어냈다. 석우진은 뒤걸음치지 않을수 없었다. 어쩐지 맹랑하고 마음이 어수선해지는것을 느꼈다. 여기서는 그가 할일이 없는것이다, 멀찍이 서서 구경하는수밖엔…
한순간 대기를 진동하던 방송차소리가 멎었다. 급박한 위험때문에 누군가 방송을 끄라고 한것 같다. 이어 머리우에 쏟아지던 찬비마저 가뭇없이 사라지는것이 놀라왔다. 이게 웬일인가?… 누구인가 그의 머리우에 우산을 펼쳐주고있었다. 머리를 돌려보니 지운섭이다. 때늦은 봉사, 인제는 거의나 무의미한 관심… 아마 여기서는 웃음과 노래를 안고산다는 지운섭이도 그밖엔 더 할일이 없는듯 했다.
그때 어데선가 손전화기의 경쾌한 호출신호음이 울렸다. 정주선의 손전화기였다.
《뭐요?…》 그가 전화를 받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거기론 오지 못합니다. 예, 거긴 물에 잠겨서… 강옆으로 오십시오. 예. 뚝길!… 알겠습니다!》
폭발물해제전문가들과 나누는 대화같다. 석우진은 슬그머니 왼쪽 가슴팍에 또 손을 가져갔다. 물결치듯 거듭거듭 밀려오는 심장의 아픔, 그전과는 달리 날카롭고도 지속적인 아픔이 느껴지고있다. 참으로 깊은, 참고견디기 어려운 고통. 쓰러지면 안된다, 끝까지 견디여 내야 한다,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은 몹시도 더디게 흘러갔다. 수문쪽에서는 그새 위험을 막았다고 한다. 김윤걸지배인이 몇사람과 같이 달려왔다.
《폭탄이 어데 있다구?》 그가 숨찬 소리로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됐소?》
김윤걸은 자기를 막는 보안원을 밀어내며 웅뎅이에로 다가갔다. 정주선당비서가 그를 멈춰세우더니 뭐라고 조용히 설명해주었다. 그제서야 그는 더 소리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그도 여기서는 할일이 없는것이다.
다시 몇분이 흘러가자 강렬한 자동차의 전조등이 어둠속을 언듯언듯 휘저으며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폭탄해제전문가들이 도착한것이다.
맨먼저 차에서 뛰여내린 사람이 어깨성을 쌓고있는 사람들을 보자 팔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모두 여기서 물러나시오, 물러나시오!》
비옷을 쓴 전문가들은 보안원까지 물러나게 하고 건물우에 커다란 투광등을 걸어놓았다.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거듭 소리치면서 그들은 가지고온 기재로 주변을 더듬으며 폭탄이 있는 웅뎅이속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긴장한 눈길로 웅뎅이안에서 작업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비록 멀리에서일망정 웅뎅이에서 솟구치는 흙탕물과 투광등빛에 번들거리는 폭탄의 시꺼먼 형체가 언듯언듯 드러나보이군 했다.
석우진은 자꾸만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숱진 눈섭을 꿈틀거렸다. 오래전에 철천지원쑤 미제가 떨군 폭탄, 이렇듯 수십년동안이나 땅속에 숨어있던 폭탄, 저놈도 무슨 때를 기다리고있은것은 아닌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껏 아무 생각없이 그 무서운 위험을 밟고 지나다녔었다.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희망을 노리며 묻혀있는 저 폭탄을!…
드디여 전문가들이 신관을 해제한 폭탄을 끌어내왔다. 공장보안원들이 그들을 도와 폭탄을 차에 실었다.
《조심하시오, 충격을 받지 않게!》
발동을 건채로 서있던 차가 부릉거리며 움쭉했다.
《천천히, 더 천천히!…》
또다시 번개가 치고 하늘이 진동했다. 석우진은 폭탄을 싣고 멀어져가는 차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했다.
정체를 숨기고있는 위험이란 저렇게 무서운것이다. 보이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것일수록 더 무섭고 위험한 법이다. 하다면 우리 일군들의 드러난 결함과 남모르게 묻어두고있는 결함중 어느것이 더 위험하겠는가?!… 이 석우진에게도 한때 그런 위험한 관료주의폭발물이 숨어있지 않았던가?!…
갑자기 눈앞이 아찔했다. 헉!- 숨이 막혔다. 모든것이 정지되고있는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쓰러질듯 비청거리는 그에게 달려와 재빨리 부축했다.
《국장동지!-》
그런데도 석우진은 웬일인지 그냥 늘어지기만 할뿐 커다랗게 뜬 눈도 움직일수 없었다.
《국장동지, 왜 그럽니까? 예?…》
피타는 목소리!… 림성하의 목소리이다. 또 다른 목소리는 누굴가?… 알수 없다. 얼굴에 떨어지는 뜨거운 비물… 어째서 차디찬 비물이 이렇듯 뜨거워졌는지?…
그가 마지막으로 본것은 뜨거운 비물만이 아니였다. 줄기찬 폭우속에서도 여전히 꽃보라처럼 흩날리고있는 용접불꽃들과 하늘높이 들어올리고있는 현대적인 새 보이라드람이 그의 망막에 사진처럼 찍히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