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6 회)
제 6 장
꿈과 리상
10
갑자기 환한 불빛이 석우진을 반겨주었다. 효소직장앞에 이른것이다. 직장에서는 지금도 효소배양이 한창일것이다. 공장에서는 기술이 앞섰다는 다른 나라에서도 3달이 걸려야 할수 있다던 현대적인 효소생산공정을 자체의 기술력량으로 단 25일만에 조립하고 며칠전부터 시험생산에 들어갔던것이다.
그는 정문앞으로 걸어갔다. 열려진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배양탕크앞에서 림성하는 물론 공업시험소장과 황금태박사아바이, 주광혁 등이 긴장한 눈길로 송해연을 바라보고있었다.
림성하가 눈을 번쩍이며 묻고있었다.
《그래, 활성이 얼마라구?》
《3만이예요!》
모두가 송해연이 내미는 종이장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환희에 찬 속삭임이 파도쳐갔다.
《성공이다!》
《성공이요!》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토록 바라던 효소의 공업적생산,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 첫 효소공업의 탄생을 의미하는것이다. 이제부터 평양곡산공장에서도 이 효소에 의한 맑은 물엿이 쏟아져나오게 될것이다. 꿀과 거의 같은 성분이여서 인체에 그대로 흡수되는 황금태인 효소물엿!…
림성하가 송해연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수고했소, 해연동무. 정말 수고했소!…》
《어마? 저야 뭐… 할아버지와 김대원소장이랑 주광혁, 지운섭동지랑… 누구보다 기사장동지의 수고가 더 많았지요 뭐.》
석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성급히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무춤 멎어서고말았다. 잠시후엔 저도 모르게 뒤걸음치지 않을수 없었다. 열을 내여 떠들던 사람들속에서 기사장과 뭐라고 이야기하던 송해연이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오고 그뒤를 주광혁이 숨차게 따라나왔던것이다.
《해연동무!》
송해연이 몸을 홱 돌렸다.
《왜 따라오는거예요?》
《해연이, 동문 뭐요? 그래 그게 잘한 일 같소?》
송해연이 따벌처럼 쏘아붙였다.
《동문 상관마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홱 몸을 돌린 송해연은 문밖으로 향했다. 고개를 쳐들고 거침없이 철문을 나섰다.
그들을 지켜보고있던 석우진은 문뒤쪽으로 비켜섰다. 어쩐지 그들에게 방해가 될가봐 저어되였다. 무슨 일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첫눈에도 사랑싸움이라는것이 알렸던것이다.
《해연동무, 해연이!》 주광혁이 그를 쫓아나오며 소리쳤다. 당장 송해연을 따라잡은 그가 처녀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서지 못하겠소?》
《이걸 놓으세요!》
주광혁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는듯 했다.
《그래, 자기만이 다 옳다는거요?》
《무슨 상관이예요?》
《그래도 기사장동진 동물 생각해서 그랬는데… 너무하지 않소, 잘 아는 사이에!…》
그의 손을 뿌리친 송해연이 차겁게 눈을 치떴다.
《잘 아는 사이?… 알만 해요, 그 속대사가 뭔지!… 동무도 나를 모욕하자는거지요?》
《모욕?》
주광혁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넙죽한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넘기고 귀박죽을 문지르면서 숨이 막히도록 웃어대고있다. 송해연이 소리친다.
《웃지 마세요!》
웃음이 그쳤다. 이어 정색해진 주광혁이 처녀를 바라보며 정색하여 말한다.
《해연동무, 그럼 하나 좀 묻기요. 동문 자기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구, 혹시 이 세상 제일가는 미인이라구 생각하는건 아니요?》
《예?!》
너무도 뜻밖의 물음이여서 송해연은 그만에야 얼떠름해진듯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무슨 생뚱같은 말인가? 하고 쳐다보고있는듯… 그가 미처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주광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동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요.》
송해연은 또 한번 어리둥절해진듯 했다. 입술을 깨무는것이 보였다. 목에 경련이 이는것이 알린다.
석우진은 자기가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는것을 깨달았다. 피할래야 피할수도 없다. 그들이 자기가 지켜보고있다는것을 알면 얼마나 거북하겠는가?… 그는 숨도 쉬지 않는듯 꼼짝하지 않고있었다. 처녀가 어떻게 나올지 두려웠다. 모욕받은 처녀, 그야말로 모독이였다. 처녀의 자존심을 무시하고 욕되게 하는 란폭한 행위가 아닐수 없다.
처녀가 입술을 악물며 고개를 번쩍 쳐든다. 앞에 서있는 주광혁을 노려보며 한마디한마디 씹어뱉듯 말한다.
《그만큼 나를 모독하고도 아직 모자란다는거예요? 그래 더 바라는게 뭔가요?》
《내가 바라는건…》
《난 동무가 왜 그러는지 알고있어요. 내가 기사장동지의 덕을 본다는거지요? 그 말을 하고싶어 그러지요?》
《뭐라구?》
《그런줄 몰랐어요! 그따위 시시한 생각이나 하고다니는 사람인줄은… 그래두 뭐 제대군관이라구요? 비키세요. 보기 싫어요. 너절해요!》
순간 따벌처럼 내쏘던 송해연이 그만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아!…》
주광혁이 처녀의 귀쌈을 후려갈긴것이다. 마치 바위돌이라도 부실듯 꽉 틀어쥔 주먹, 험악해진 얼굴…
송해연이 신음소리처럼 부르짖고있다.
《동무가 나를?…》
《난 송해연이 아니라 엉치에 뿔난 염소같은 동무의 그 못된 성미를 때린거요.》
《동무에게… 무슨 권리가 있기에?…》
주광혁이도 씨근거리고있다.
《권리가 있소, 그럴 권리가!》
주광혁이 처녀의 팔을 거머쥐고 자기쪽으로 바로 세운다. 한동안 처녀를 노려보고나서 거칠게 속삭인다.
《무슨 권리인지 정말 모르겠소?》
《?…》
《동물 사랑하기때문이요, 사랑의 권리!》
《뭐라구요?》
처녀는 눈앞이 아찔해진듯 비칠거렸다. 금시 그 자리에 무너져내릴듯… 그러나 주광혁이 그를 힘껏 잡고있다.
주광혁이 힘주어 말했다.
《난 처음부터 동무를 지지했소. 기사장동지랑 같이 밤낮으로 효소배양연구를 하며 아글타글 애쓰는 그 마음이 장해서… 황금태할아버지처럼 기사장동지를 적극 지지하고 도와나서는것이 대견하고 기뻤던거요. 헌데 남들이 뭐라고 한다 해서 귀를 기울이고… 그게 뭐요? 내가 사랑한 녀자가 과연 그런 해연이였는가?》
《그러니 동문?…》
《내 이미 말하지 않았소. 동무를 사랑한다고, 동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이요.》
처녀가 부르짖었다.
《아니, 난 미운 녀자예요.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난… 믿고있었소. 끝까지!》
주광혁이 타는듯 한 눈길로 처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말해보라구. 동무도 나를, 이 주광혁일… 사랑했지? 그렇지?…》
《난…》 처녀의 목메는듯 한 흐느낌소리.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해연이!》
주광혁이 처녀를 자기앞으로 와락 끌어당긴다.
석우진은 그만 눈을 감고말았다. 무엇때문인지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느낀다. 얼마나 아름다운 청춘들인가, 얼마나 아름답고 깨끗하고 훌륭한 우리 시대의 청춘들인가!… 석우진은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이 고맙게 여겨졌다. 서로 돕고 이끌며 당의 뜻을 받들어가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그 순결한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좋은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생활엔 간혹 아픔과 오해도 있고 눈물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불행한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을 찾기마련이다. 제힘으로 행복을 마련한다. 바로 저 젊은이들처럼 사랑과 투쟁으로 행복을 꽃피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것인가!… 그는 눈을 감은채 미소를 짓고있었다.
달빛이 무르녹는 밤… 훌륭한 밤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