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키가 껑충하게 크고 코수염을 수북이 기른 안길이 사령부에 도착한것은 저녁무렵이였다. 야외훈련기지에 나가있다가 사령부로 돌아오라는 기별을 받고 급히 발걸음을 재촉해온 안길이였다.
《사령관동지, 회의준비때문에 수고 많으셨겠습니다.》
《수고야 야외훈련장에 나가있는 동무들이 더 크겠지. 어서 와 앉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가까이에 있는 걸상을 권하시였다.
책상우에는 글을 쓰시던 종이장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제 곧 진행하게 될 군정간부회의에 제출하실 보고서일것이다.
《날씨도 찬데 훈련들을 어떻게 하고있소?》
《기세들이 대단합니다. 스키를 타고 공중으로 뛰여오르며 사격을 하는데 이젠 목표들을 척척 맞힌단 말입니다. 그중에도 볼만한것은 최현동무와 최남진동무의 승벽내깁니다.》
성미가 활달하고 무슨 이야기든 구수하게 펼칠줄 아는 안길은 손세까지 써가며 최현이와 최남진중대의 승벽내기광경을 방불히 그려냈다. 원래 3방면군 참모장이였던 그는 원동훈련기지로 들어와서 조선인민혁명군 참모장으로 김일성동지를 보좌해왔는데 국제련합군이 조직된 다음부터 정치위원직분을 맡고있었다.
《어쨌든 그 승벽내기속에서 그 두사람은 다른 중대들을 까맣게 떨구어놓으며 앞서나가고있습니다.》
《그럴거요.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면 최현이나 최남진이 아니지.》
《참, 훈련장으로 루이진이 찾아와서 공동정찰에 내보낼 인원을 열명이나 달라질 않겠습니까. 지금껏 쥐 소금 녹이듯 솔금솔금 우리 대원들을 얼마나 많이 데려갔습니까. 그러고도 또 손을 내미는게 정말 어이가 없어서… 단마디로 싹 잘라버렸습니다.》
《그건 좀 너무한것 같구만.》
김일성동지께서 안길을 나무라시였다.
《루이진대좌가 그래서 안길동무를 만나봤느냐고 묻는 말에 우물우물 대답을 피했댔구만.》
《아니, 그 사람이 여기까지 찾아왔었습니까? 그만큼 말해줬는데도…》
안길의 신경이 곤두섰다.
《아, 하바롭스크회의때도 그렇구 국제련합군을 조직할 때 그 사람들이 우리와 어떤 약속을 했습니까. 우리 혁명의 독자성을 철저히 보장하겠노라 해놓구선 그 약속들을 다 줴버리고 제 욕심만 차리려드니 이거야 분통이 터져서…》
다혈질인 안길은 일단 흥분하면 자기를 통제할줄 몰랐다. 루이진을 포함한 원동전선군 지휘관들에 대한 그의 불만은 이만저만 아니였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1940년말 조선인민혁명군이 원동으로 들어온것은 국제당과 쏘련측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일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쏘련은 두개 전선에서의 전쟁을 피하느라 일본과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하고있었다. 일정한 기간 힘을 키울 여유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로부터 그들은 조선과 만주일대에서 활동하는 항일무장부대들이 대부대군사활동을 중지하고 쏘련경내로 들어와 현대적인 정규전을 치를수 있는 군정훈련을 할것을 요청해왔다. 훈련기지도 제공하고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다 보장해주겠노라 했다. 한마디로 일본측에 언질을 잡히지 않도록 하자는 의도였다.
국제당도 쏘련측과 같은 립장을 표명하면서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만주지역 빨찌산지휘성원들의 회의를 소집할것을 제의해왔다.
이리하여 1941년 정초 원동의 하바롭스크에서 조선과 만주지역 항일무장부대 지휘관들의 회의가 열리였다. 그때 안길은 서철과 함께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조선인민혁명군과 남만의 항일련군 1로군의 대표로 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다. 회의에는 또한 길동지역의 2로군과 북만의 3로군 대표들도 각각 세명씩 참가하였다. 국제당과 쏘련의 원동전선군대표들도 물론 회의에 참가하였다.
회의는 조선과 만주지역에서 앞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어떻게 벌리겠는가를 기본의제로 삼고 사흘동안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쏘련과 동북항일련군 량측대표들의 뜻하지 않은 론전으로 사흘동안 하자던 회의를 1월에 이어 2월까지도 끝낼수 없었다.
론쟁의 요점은 만주지역 항일무장부대들이 쏘련의 원동전선군에 편입되느냐 마느냐 하는것이였다. 쏘련측은 조선과 만주에서 대부대의 무장투쟁을 중단하고 모든 항일무장부대들을 원동전선군에 편입시키자는 주장을 내들었다. 그런가 하면 중국측은 만주지역에서 대부대군사작전도 중단할수 없고 원동전선군에 편입될수도 없다는 주장이였다. 지어 그들은 이번 회의의 명칭조차 《만주전체당대표회》로 하고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만주지역의 모든 항일무장부대들을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하나로 통합하고 통일적인 지휘를 받도록 하자는 주장까지 고집하였다. 쏘중량측의 양보없는 론전은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도록 그칠줄을 몰랐다. 회의의 근본목적은 아주 뒤전에 밀려나고말았다.
이게 국제당이 주관하는 회의란 말인가.
안길은 어이없고 기가 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회의의 근본목적과 엄청나게 탈선된 이 국제회의에는 조선인민혁명군대표들이 참가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되였다.
회의의 진행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시는 김일성동지의 안색도 자못 어두웠다.
안길은 끝내 자기의 내심을 내비치고말았다.
《사령관동지, 우린 퇴장해버립시다. 이런 회의인줄 알았더라면 애당초 오지도 않았을걸…》
《그래선 안되오.》
마침내 김일성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쏘중량측대표들이 내놓고있는 주장과 견해들이 부당하다는것을 사리정연하게 론박하시였다.
우선 쏘련측이 자기 나라의 리익만을 우선시하면서 조선과 만주지역의 항일무장투쟁을 중지하고 모든 부대들을 원동전선군에 편입시키자는것은 남의 나라 혁명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매우 그릇된 주장임을 신랄하게 비판하시였다.
한편 회의명칭을 《만주전체당대표회》로 하고 만주지역의 모든 무장부대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지휘체계안에 두자는 중국측의 주장 역시 도저히 실현불가능한 공담임을 까밝히시였다.
사실상 중일전쟁후 만주지역의 당조직들은 거의나 파괴되고 그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령도도 중단되고말았다. 그래서 만주지역에 대한 당적지도는 국제당 동양부가 직접 맡아하게 되였다. 그나마 동남만과 길동, 북만지역으로 나누어 각기 따로따로 지도를 하고있었는데 무수한 장애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였다. 그런데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만주지역의 항일무장부대들을 통합하여 중국공산당의 지휘체계안에 두자는 주장은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것이나 다름없는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의 리해관계만을 추구하는 부당한 고집이였던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회의가 명실공히 만주지역무장부대들의 회의로 되여야 하며 토의문제도 오직 조선과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어떻게 벌리겠는가 하는데다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회의의 성격을 뚜렷이 그어놓으시자 쏘중량측대표들은 비로소 자기들의 고집을 철회하고 김일성동지의 제의대로 기본문제토의에 들어가게 되였다.
기본문제토의때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시간적여유를 얻자는 쏘련측의 립장에도 부합되고 절대로 반일항전을 중단할수 없는 조중혁명가들의 립장에도 부합되게 조선과 만주지역에서 대부대작전대신 소부대활동을 맹렬히 벌릴데 대한 방안을 제시하시였다. 그리고는 지난해 소할바령회의에서 소부대활동방침을 내놓은 이래 조선인민혁명군이 이룩한 성과와 경험, 그 정당성을 생동한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하시였다. 이 설명은 쏘중대표들의 열렬한 지지와 찬동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조선과 만주지역에서 대부대활동을 중지하고 적극적인 소부대활동을 벌리자는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날 조선인민혁명군이 중국의 항일련군부대들과 공동행동을 벌린 경험을 소개하면서 매개 나라 군대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원칙에서 세 나라 군대의 련합방안도 내놓으시였다.
이 방안 역시 회의참가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것이 드디여 지난해 8월 국제련합군의 조직이라는 알찬 결실을 가져오게 되였다.
결국 당치도 않은 론쟁으로 두달씩이나 시간을 끌며 진맥을 빼던 하바롭스크회의는 김일성동지께서 명철한 방안들을 련속 내놓으심으로써 커다란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쏘중측대표들도 국제당대표도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과연 위인이시구나!
그때 안길의 격동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두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리였다. 여태껏 말로만 들어오던 김일성동지의 위인상을 직접 목격하노라니 무상의 행복감에 취해버린것이였다. 이제부터는 김일성동지를 린접이 아니라 직접 몸가까이 모시고 조국광복의 성전에 나서게 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이제 조선혁명은 김일성동지의 뜻대로 순풍에 돛단 배처럼 씽씽 앞으로 내달려나갈것이다.
안길은 그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허나 생활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흘러가고있었다. 원동의 훈련기지도 역시 내 조국의 땅이 아니고 남의 나라 땅이였다. 여기서도 곁방살이의 고달픔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안길을 제일 괴롭히는 일은 국제련합군이 조직된 다음에도 여러가지 피할수 없는 사정으로 매개 나라 군대의 독자성을 보장할데 대한 원칙이 차츰차츰 빛을 잃어가는 사실이였다.
우선 쏘련측이 조선과 만주지역에 있는 적의 군사요충지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찰활동에 조선대원들을 인입시키기 위해 무진애를 썼다. 사실 원동전선군의 정찰활동은 퍼그나 취약한 상태였다. 모든 힘을 쏘도전선에 집중하고있던 쏘련측으로서는 원동전선군의 정찰활동에 낯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사정때문이였다. 그런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조선과 만주지역의 실정을 환히 꿰뚫고있을뿐 아니라 다년간의 투쟁을 통하여 풍부한 전투경험과 능숙한 적후공작경험을 훌륭히 겸비하고있었다. 게다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전투임무수행에 대한 책임성과 완강성이 특별한 주목을 끌게 되였다. 아무리 어려운 정찰과제를 맡겨주어도 그들은 못해낸다는 법을 몰랐다. 처음에 몇몇 사람을 시험삼아 적후로 내보냈던 원동전선군의 정보일군들은 결과를 놓고 입을 딱 벌렸다. 그제야 그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금새를 알아본것이다. 그들은 우리 대원들을 더 많이 보내줄것을 김일성동지께 요청드렸다.
《보내줍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쾌히 승낙하시였다.
《정찰활동은 우리 소부대활동의 중요한 과업의 하나이고 쏘련동지들을 도와주는것도 우리의 최후결전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하여 오백룡소부대를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원동전선군과의 공동정찰을 위한 별동대로 파견되였다.
한편 중국부대들에서도 조선의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요구하였다. 그들한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열하원정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입은 중국부대들에는 오랜 혁명투쟁경험을 가진 지휘성원들도 얼마 안되고 구대원들도 매우 적었다. 더욱 가슴아픈것은 김일성동지께서 여러차례 보내주신 우리 지휘성원들과 대원들도 거의다 희생되고 남은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새로 꾸려진 부대란 대부분 반일부대가 아니면 위만군 반변자들로 되여있어서 그들의 전투력이 허약할수밖에 없었다. 주보중, 장수전을 비롯한 중국지휘성원들에게는 이것이 제일 풀기 어려운 고충이였다. 그래서 그들도 김일성동지께 방조를 요청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의 요청도 기꺼이 받아들이시였다. 중국부대를 강화하는것은 우리의 익측을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일이였기때문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부대로 파견되였다. 김일성동지의 곁에 꼭 있어야 할 사람들까지도 떠나갔다. 대신 조선부대의 빈 인원공백은 원동전선군과 중국부대의 신대원들로 메꾸어지게 되였다.
안길에게는 우리 대원들을 떼내여 다른 나라 부대로 보내는것이 살점을 저며내는 일만큼 아프고 괴로운 일이였다.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키우는데 기울이신 김일성동지의 로고와 심혈이 얼마나 컸는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안길이였다. 또 그들 매사람이 우리 혁명을 위하여 어깨에 떠메고나가야 할 일거리들도 굉장한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다른 나라 부대에 보내느라니 안길의 마음이 편할리 만무했다.
《사령관동지, 그 루이진이란 사람이 사령관동지의 아량을 악용하는것 같은데 이제는 차단봉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손을 내밀지 못하게…》
《그러지 마오. 그 사람의 사정도 듣고보면 몹시 딱하던데 안길동무가 한번 더 인심을 써줘야 할것 같소.》
《장군님, 저는 그 사람들이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먹을수록 냠냠한다구 그 사람의 욕심은 점점 끝없이 커진단 말입니다. 이번에도 제일 쫄쫄한 구대원들만 골라달라는데 이거야…》
경련하듯 두손을 안타까이 흔드는 안길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군정간부회의를 하고나면 모든 힘을 최후결전준비에 돌려야 하겠는데…》
《이거 안길동무가 흥분했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울분을 내뿜는듯 한 안길의 마음을 달래듯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시였다.
《사실은 군정간부회의와 관련한 문제때문에 불렀댔는데 안되겠소. 지금은 가서 좀 마음도 진정하고 밤에 다시 만나 이야길 나누기요.》
《알겠습니다.》
안길은 몸을 돌려 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자기가 아무리 떼를 써도 김일성동지의 여유있는 웃음을 대하고보니 여기서 시간을 끌수록 끝내는 설복당하고말것 같아 얼른 자리를 피하는셈이였다. 일단 말을 뗀이상 오늘 어떡하든 우리 대원들을 다른 나라 부대로 떼보내는 일만은 꼭 종지부를 찍게 하자는 결심이였다.
밖으로 나온 그는 흥분으로 불땐 난로처럼 온몸이 화끈 달아올라서 어슬녘의 쌀쌀한 추위도 느끼지 못하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씨엉씨엉 내걷던 그는 무춤 멈춰섰다.
앞에는 최현이 서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