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1 회)
제 6 장
꿈과 리상
5
탁우에 놓인 전화기가 또다시 따르릉거렸다. 종일 기사장을 찾고 부르는, 마치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듯 한 전화종소리… 마지못해 그는 송수화기를 들었다.
《예, 기사장입니다. 뭐, 물엿직장?… 4통련속증발기를 지붕으로 넣는다?… 알겠소, 내 곧 가겠소!》
송수화기를 던지다싶이 하고 그는 한달음으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누군가 그를 보고 인사를 했다. 또 누군가는 무슨 말인가 묻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물엿직장에서 그가 걱정하던 4통련속증발기조립을 시작했다고 알려온것이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불러세운것은 공장당위원회 부비서였다. 언제나 단정하고 침착하던 그의 얼굴은 여느때없이 심각했다.
《기사장동무! 시당에서 찾습니다. 빨리 올라가야겠습니다.》
《시당에서요?…》
《예.》 그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럴 때 비서동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참…》
정주선당비서는 지금 공장에 없다.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 간 그가 래일에야 돌아온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부비서동무.》
그는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부비서가 놀라며 물었다.
《아니, 어디로 갑니까?》
《현장에 잠간 들렸다 가겠습니다. 지금 4통련속증발기를 설치하고있습니다.》
부비서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럼 15분후엔 꼭 떠나도록 해주십시오. 차조직은 이미 해놓았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성하는 걸음을 다그쳤다. 멀리서부터 팔을 길게 뽑아든 대형기중기차가 보였다. 벌써 물엿직장앞에는 지붕우로 들어올려야 할 여러대의 증발기들이 은백색으로 번쩍이고있었다.
거기까지 가자면 열관리직장과 당과류직장을 지나 한참이나 가야 한다. 이 곡산공장에서는 보이라, 가공직장, 물엿직장, 이 세가지 앞공정이 기본이다. 그중에서도 거의 한세기동안이나 강냉이물엿인 황금태를 생산해오는 물엿직장은 곡산공장의 징표와도 같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할아버지세대가 피눈물을 뿌리며 황금태를 만들었고 아버지세대들이 창조의 땀을 바쳐왔었다.
산처럼 쌓여있는 모래무지며 블로크들, 길을 메우며 널려있는 배선퉁구리를 지나 강냉이사입장창고와 마주하고있는 물엿직장에 들어서니 건설부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물엿직장장 리안휘가 손세를 써가며 그에게 먼저 말했다.
《기사장동무, 우린 증발기를 이렇게 저 지붕꼭대기로 올리자는거우다. 통채로 집어넣자는거지요.》
림성하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기발한 착상이군요. 원래 있는 건물을 그대로 리용하는 조건에서 그건 가능한것입니다, 건설부원동무.》
그는 한쪽에서 도면을 들여다보며 무엇인가 골똘히 계산하고있는 건설부원을 찾았다.
《우선 구조변경설계를 가져오시오.》
《예, 알겠습니다.》
물엿직장장 리안휘가 번쩍거리는 증발기를 손으로 쓸어보며 눈을 슴벅이였다.
《정말 꿈만 같구만. 이 새 설비들을 보니 이전 낡은 설비들을 지키느라 고생하던 일이 생각나누만.…》
그의 말이 림성하의 가슴을 찔렀다. 물엿직장은 다른 직장보다 사적설비가 많은 곳이였다. 그래서 리안휘도 직장의 물엿설비에 누구보다 애착을 가지고 애지중지했었다. 그에게는 새 기술도입증과 창의고안증만 해도 9개나 된다고 한다. 하기에 림성하가 기사장으로 임명받자 자기네 물엿공정을 다 뒤엎을거라고 찌붓하게 보았던 사람이 바로 그였던것이다.
림성하는 곧 건설부원과 설계과장 그리고 물엿직장장과 이마를 맞대고 앉아 바닥에 금을 그어가며 증발기를 올리기 위한 대책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위험개소들은 다시 확인하시오.》
물엿직장장이 흔연하게 대답했다.
《해야지요, 그것도 소리 안나게.…》
모두가 웃었다. 북이 크면 소리도 크다지만 리안휘는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여 큰 물엿직장을 소리 안나는 직장으로 만든 직장장이였던것이다.
림성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장장동지, 모든걸 책임지고 잘해주십시오.》
《걱정마시우, 기사장. 내 무슨 뜻인지 알겠네.》
리안휘직장장의 눈시울이 불깃해졌다. 그도 무엇인가 알고있는듯 했다.
《기사장동무, 우릴 믿으시우. 이런 일때문에 기사장이 또 마음쓰게 하진 않을테니까.…》
그것은 큰 재산을 안고있는 직장장답게 일판을 크게 벌려 기사장을 돕겠다는 의미였다.
《고맙습니다, 직장장동지.…》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15분이 지났었다. 공장 부비서와 약속한 15분!…
사실 15분이란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 상상할수도 없던 일이, 때로는 기적이 일어날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이 귀중한 시간을 어긴다는것, 더구나 당의 지시, 당의 결정, 당의 요구앞에서 그 시간을 어긴다는것은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과오로도 될수 있는것이다.
그가 막상 떠나려는데 누군가 손을 내흔들며 뛰여왔다.
《기사장동지!》
송해연이였다. 처녀의 얼굴은 여느때없이 환한 미소로 하여 빛나고있었다.
《기사장동지, 성공이예요! 성공!…》
림성하는 급히 처녀에게로 마주갔다. 그것은 옥당직장에서 진행한 중간시험생산이 성공했다는것을 의미했다. 그는 송해연이 내미는 분석표를 받아보았다.
《수고했소.》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자네들이 밤낮 고생하더니 끝내 성공했구만.》
모두가 기쁨에 겨워 웃고 떠들었다. 환한 얼굴로 서로 롱지거리를 하며 어쩔줄 몰라했다.
이때 직장통계원이 림성하에게 다가왔다.
《기사장동지, 지령실에서 전화입니다.》
《됐소.》
그는 통계원에게 손을 홱 내저었다. 일이 있다면 효소가 나오는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통계원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부비서동지 전홥니다.》
림성하는 웃음을 거두었다. 버릇처럼 또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어느새 벌써 30분이?!…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물엿직장의 지령전화실로 향했다. 이제 곧 그는 시당에 가야 하는것이다.
그는 송수화기를 힘들게 들었다.
《기사장입니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에서 계속 독촉하고있는데?…》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송수화기를 꽉 틀어쥐고 한동안 책상 한끝에만 눈길을 주고있었다. 저쪽에서 또 뭐라고 했다. 독촉하는 소리같았다. 하지만 그는 복잡한 생각에 잠겨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후였다. 전화가 끊어진듯… 잠잠했다. 그는 다시 힘들게 입을 열었다.
《부비서동무, 이 일을 우리 비서동지도 알고있습니까?》
《아직은…》
《그럼 전 비서동지가 온 다음에 가겠습니다.》
부비서가 놀라는것 같았다.
《아니 기사장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덥고 습한 기운이 열어놓은 유리문으로 밀려들어왔다. 숨이 찼다. 왜서인지 작업장에 콩크리트를 치고 받쳐놓은 대형감압탕크가 바닥이 아니라 그의 어깨우에 놓여있는듯 했다. 말라드는 입술을 추기며 그가 다시 말했다.
《압니다. 우에 얘기해주십시오, 래일 당비서동지를 만나고 가겠다고.》
《아니, 그건?…》
부비서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붕- 전류흐르는 소리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림성하가 귀에 대고있는 송수화기에서 덜커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쪽에서 전화를 끊은듯…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은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