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0 회)
제 6 장
꿈과 리상
4
사방에서 그를 찾고 불러대고있었다. 공장에 내려온 료해조성원들모두가 저저마끔 따지고 캐여묻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인제는 사고의 책임이 모두 기사장 림성하에게 있다는것을 누구도 의심치 않고있었다.
림성하는 거의 손더듬처럼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숨이 가빠났다. 앞섶을 헤쳐놓았지만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여 견디기 어려웠다. 갑자기 비칠거렸다. 발밑을 내려다보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눈먼 사람처럼 다시 무엇인가를 더듬으며 어둠속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얼마후에야 불이 환한 건물앞에 이르렀다. 방송소리, 공장기동예술선동대원들의 노래소리, 물동량을 들어올리는 활차의 삐걱소리… 여기서도 건물보수에 떨쳐나선 건설자들이 밤낮을 이어가며 아슬한 발판우에서 벽체를 까내고 미장을 하고 타일 붙이는 전투를 벌리고있다.
안에 들어선 그는 거의나 무의식적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눈감고도 오르내리던 넓은 계단, 꼭 52개다. 저도 모르게 무춤 멎어서며 눈길을 들었다.
초원심분리기를 해체해놓은 가공직장이였다. 마침 젊은 기사들과 함께 초원심분리기를 조립하던 송수만로인이 그가 나타나자 반갑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또 우리 일이 걱정돼서 나왔소, 기사장? 아니, 이런 일이야 우리끼리 해두 별일 없을텐데…》
강냉이가공에서는 그 누구도 그를 당해낼수 없다고 소문난 아바이, 림성하는 그에게 다가가 뜯어놓은 원심분리기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는 료해조를 책임지고 내려온 일군의 심중한 얼굴만 떠오를뿐…
《기사장동무, 우리가 료해한데 의하면 동무가 호환성이 맞지 않는 배출관들을 그대로 조립하라고 지시했다는데 그게 사실이요?》
《…》
《왜 말이 없소? 무슨 의견이 있소?》
《…》
여전히 침묵, 그에겐 할말이 없었다.
《기사장동무, 말을 해야 알게 아니요. 우리가 왜 한밤중에 내려왔겠소? 기사장동무, 원인을 찾고 빨리 고쳐야 할게 아닌가 말이요.》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수가 없었다. 이럴 때 당비서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지금 1급기업소 당일군들의 회의가 소집된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 가고 없었다. 속을 터놓고 투정질도 하고 필요한 조언도 받고싶건만…
《기사장동지.》 젊은 기사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편치 않습니까?》
그는 머리를 쳐들었다. 근심어린 젊은 기사의 얼굴을 마주보며 어줍게 웃어넘겼다.
《아니, 이 분리기때문에…》
《아, 이건 우리가 제꺽 해놓는다지 않습니까. 기사장동진 할일도 많겠는데…》
《아니, 오늘은 이게 제일 급한 일이요. 빨리 시운전에 들어가야 하니까.》
벽에 기대놓았던 나사틀개를 찾아쥔 송수만로인이 정기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말라구, 기사장. 이런 초원심분리기는 뭐 어려울것 없네. 여기 가공에서야 뽐프들이 기본이지.》
림성하는 재채기를 하며 수리공들에게 공구를 섬겨주었다. 아바이의 말처럼 가공공정은 가다리가 많아서 뽐프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1층부터 3층까지 크고작은 뽐프가 거의 수백여개나 된다. 그 뽐프들이 관을 통해 우리기탕크에서 불군 강냉이는 마쇄에, 분리된 껍질은 배합먹이장에, 단백은 침강조에, 강냉이눈은 착유반에, 농마는 물엿직장으로 보내는것이다.
하지만 림성하는 지금 그 뽐프들이 아니라 터져나간 그 배관을 생각하고있었다. 또다시 귀에 들려오는 료해조성원들의 날카로운 목소리… 그는 수리공이 자기가 내미는 공구를 밀어놓고 다른것을 집어드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여전히 그의 귀전에서는 공장에 내려온 료해조성원들이 하던 말이 쟁쟁하였다.
《그래 기사장동무가 그걸 모를수 있소?》
《왜 입을 봉하고있는거요?》
《다시 말하지만 우린 시간이 없소. 아까운 시간을 이렇게 다 흘려버리겠소?》
그때 림성하는 머리를 들고 버릇처럼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한순간 그 어떤 경멸의 빛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난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그러니 침묵을 지키겠다는거요?》
《그런다구 과오가 덜어지겠는가?》
《저 동무 책임지는게 몹시 무서운 모양이구만.》
림성하는 불시에 고개를 쳐들었다. 말없이 그들을 둘러보고나서 고집스럽게 반복했다.
《책임은 무섭지 않습니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전… 이 말밖엔 더 할말이 없습니다.》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료해조를 책임지고나온 일군이 말했다.
《기사장동무, 우린 먼저 사고의 원인을 알자는거요. 그래야 다시는 그런 사고가 나지 않게 막을게 아니요. 그래서 벌어진 일을 료해해보는건데… 동문 마치 우리가 동무에게 책벌이나 주자고 내려온것처럼 말하는구만. 물론 벌을 받을 땐 받아야 하지만 말이요.》
《어쨌든 책임은 전적으로 저한테 있습니다.》
림성하는 고집스럽게 반복했다. 일단 고집을 부리면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것으로도 유명한 그였다.
《사고가 난 전말에 대해선… 식료일용공업성의 처장동무가 더 잘 설명할것입니다.》
《강수일동무 말이요?》
《예, 그렇습니다.》
《우린 그 동무한테서도 얘길 다 들었소.》
《그럼 한번 더 만나 얘길 들어보는게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와했다. 어쨌든 저 젊은 기사장은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듯 했다.
료해조책임일군이 또 물었다.
《그러니 기사장동문 그 강수일처장한테두 책임이 있다고 보는게 아니요?》
림성하는 다시금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몹시 까다로운 질문이였다. 이런 문제에선 당비서동지의 조언이 필요한데… 한순간 갑자르던 그는 저도 모르게 불쑥 이렇게 되물었다.
《그에 대해서 우리 처장동문… 뭐라고 합니까?》
돌연 료해조책임일군의 낯색이 변하였다. 눈초리도 보다 더 날카로와지는듯 했다.
《기사장동무, 우린 그걸 동무한테 묻고있소. 동무의 생각을 듣고싶단 말이요.》
《제 생각 말입니까?》
림성하는 갑자기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것을 느꼈다. 숨이 차올라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까지 대답을 회피할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그는 떠듬거렸다. 《저는… 그가 우릴 지도하기에 앞서 자기가 과학기술적으로 어느만큼 준비되여있는지 그것부터 알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성하의 그 말속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고 느낀듯 했다. 모두가 그를 향해 수군거렸다. 지금도 잊을수 없다. 그날 그의 온몸을 바늘처럼 찌르는듯 하던 언짢아하던 눈길들을!…
그때의 일을 상기하며 림성하는 기름걸레를 들고 거의나 무의식적으로 뜯어놓은 회전체를 닦고있었다. 그를 눈여겨보던 송수만아바이가 입을 열었다.
《기사장, 기술일군들의 마음고생은 자기보다 실력이 없는 사람의 지도를 받을 때이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일이란 알고보면 다 한가지 리치일세. 거 뭐랄가… 균형이 잘 맞는게 기본이라 할가?…》
림성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아바이도 지금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 알고있다는게 아닌가?…
로인은 두눈을 쪼프리며 말했다.
《이 가공직장만 해두 그렇지. 저기 우리기탕크만 봐두 온도와 농도를 잘 맞추지 못하면 뒤공정들이 다 머저리가 되지. 마쇄에서는 물균형을 맞추는것이 기본이구. 그게 잘못되면 관들이 모두 메고 터져나가지.》
그는 손에 쥔 나사틀개를 들어 머리우로 지나간 수많은 관들을 가리켰다. 웃층, 아래층만이 아니라 허공을 가로질러 맞은편까지 수십개씩 가로세로 뻗어간 굵고 얇은 불수강관들… 줄지어 늘어선 이 숱한 농마관들과 수관들을 통해 농마가 생산되고 그것이 다음공정으로 넘어가 물엿과 포도당으로 변하여 쏟아지는것이다. 이 곡산공장에서 가공직장은 하나의 대화학공장이나 같은것이다.
《보라구. 여기에 굵은 관이 있는가 하면 가는 관들도 있는데 어느게 더 중요한가를 말하긴 힘든 법이지. 굵은 관이라구 해서 더 중하구 가늘다구 해서 덜 중한건 아니니까.》
아바이는 가볍게 나사틀개를 놓으며 옆에 있는 긴 나무의자에 앉았다. 바닥에 놓인 부속품들을 눈여겨보며 천천히 하던 말을 계속했다.
《사람들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일세. 몸집이 실한 사람과 가는 사람, 목청이 굵은 사람과 가는 사람도 있지. 그렇다구 해서 몸이 실하구 목청이 굵은 사람이 더 중하구 몸도 소리도 가는 사람은 덜 중하다던가? 그래 회의때 주석단에 앉는 사람이나 목청이 굵은 사람의 말은 다 옳고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목소리도 가는 사람의 말은 하나도 들을게 없다구 봐야 하겠나? 아닐세. 언제든 어느것이 옳고 어느것이 그른가를 잘 가려볼줄 알아야 하네. 그리구 지금 우리가 맞추는 이 관들처럼 호환이 맞지 않는것들은 제때에 버릴줄도 알아야 하네.》
의미깊은 말이였다. 그러니 로인은 지금 공장에서 벌어지고있는 사건의 전말을 다 꿰들고있는것이다. 그리고 웃기관사람들이야 뭐라고 하든 자기 식으로 모든것을 가려보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있는것이다.
《아바이.》 림성하는 처음으로 조용히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젠 여기에 더 있을 필요가 없는것이다. 그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였다.
림성하는 다시 넓은 계단을 내렸다. 조립을 끝낸 새 설비들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한가운데 서있는 회리통들이며 전동기들, 층막을 뚫고 아래층까지 박혀있는 엄청난 탕크들…
방독면을 쓴 여러 사람이 그에게 눈인사를 했다. 새로 제작한 십여개의 우리기탕크에 대한 연마와 내부도폭작업을 하고있는 로동자들이였다.
림성하는 그들에게 뜨거운 눈길을 보냈다.
《고맙소! 동무들…》
기사장인 그가 고민하고있을 때 공장로동자들은 도폭제유해가스로 숨막히는 이 무더운 우리기탕크안에서 밤을 새워가며 전투를 벌리고있는것이다.
림성하는 그들모두의 말없는 고무의 눈빛을 느끼며 걸음을 빨리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