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7 회)
제 6 장
꿈과 리상
1
보이라드람의 해체로부터 시작된 앞공정현대화는 마감단계에 이르렀다. 공장에서는 낡은설비들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설비제작과 조립전투를 벌리였는데 가공직장에서는 벌써 부분적인 시운전준비를 다그치고있었다.
림성하는 충혈진 눈을 비비며 가공직장쪽으로 향했다. 피곤했다. 공무직장에서 밤을 새운 그였다. 설비제작과 조립에서 제기되는 각종 규격의 후란지와 볼트,나트를 중단없이 생산보장해야 했던것이다.
하지만 밤낮없는 설비해체와 설비제작으로 하여 피곤한것은 아니였다. 그래서만 마음이 무거운것은 아니였다. 그의 귀에는 여전히 강수일처장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고있었다.
《기사장동무. 그 공업시험소의 처녀시험기사 말이요. 송 뭐라더라? 황금태로인의 손녀…》
《송해연기사 말입니까?》
《옳소. 송해연! 사람들이 뒤에서 말하더구만. 그 처녀가 기사장동무의 연구성과를 가로챘다고말이요.》
《그건 잘못된 말입니다. 우린 효소배양에서 공동연구를 했을뿐입니다.》
《아, 기사장동무야 그렇게 말할수 있지. 하지만… 동무넨 어릴때부터 가까운 사이였다지?》
림성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알수 없었다.
《그건 그렇구.》 강수일은 실무적으로 말했다. 《우에서 요구하는 문건들을 빨리 내야겠소.》
《아니, 그건 이미 올려보내지 않았습니까?》
강수일이 옆에 끼고있던 두툼한 문서철을 들고 뒤적이며 계속했다.
《그건 다른 부서에 올라간거요. 빨리 가져오오. 지금 석국장동지가 기다리고있소. 그리구 현재 효소설비조립실태두 문건으로 만들어 가져오오.》
화가 났다. 불필요한 문서놀음!… 하는수없이 다시금 사무실에 들어앉아 웃사람들을 위한 문건을 만들수밖엔 없다. 매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설치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자기에 대한 의견으로 보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현장실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로동자들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현장에 내려와 군중속에 들어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들으면 이런 문서놀음도 필요없을게 아닌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파철더미로 된 낡은 대형탕크들과 관류들을 싣고있는 대형화물자동차가 길을 막았던것이다. 거대한 파철무지로 된 그 낡은 설비들을 실어가느라고 구내기관차가 무시로 기적소리를 울리고 대형화물자동차들이 밤낮없이 부릉거렸지만 아직 공장의 넓은 운동장에는 원통으로 된것, 원추형으로 된것, 병처럼 생긴것 등 수십톤씩 나가는 갖가지 모양의 대형탕크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파철더미를 들어올리던 지게차운전수가 주의를 주었다.
《이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사장동지.》
《고맙소.》
사람들이 내여주는 길을 따라 여기저기 널려있는 철판과 철근들사이를 빠져나간 그는 걸음을 다그쳤다.
가공직장 앞마당은 방송차와 공장기동예술선동대원들로 떠들썩했다. 앞공정설비해체를 끝낸 사회주의경쟁총화였다.
림성하는 앞에 놓여있는 탁을 바라보았다. 1등한 단위에 시상할 콤퓨터들과 등수에 따르는 갖가지 상품들… 그중에는 네다리를 꽁꽁 묶어놓은 여러 마리의 돼지들도 있다.
정주선당비서가 마이크앞에 나서는것이 보인다. 그가 마치 보고서를 읽듯이 말하고있다.
《… 앞공정현대화공사는 그 규모에 있어서나 기술공학적측면에서 대규모식료공장을 새로 일떠세우는것보다 더 어렵고 방대한 공사였습니다. 더우기 오랜 세월 존재해오던 대형탕크들과 보이라를 비롯한 수천대에 달하는 설비들과 수만메터에 달하는 관류를 해체하는 일은 희생을 각오한 결사의 전투였습니다.》
모두가 감회깊이 돌이켜보는듯 말이 없다. 사진기를 들고다니며 이 모든것을 찍고있는 행정부지배인의 표정도 엄숙하였다. 말로써가 아니라 현대화의 산 화면으로 력사의 기록을 남기고있는것이다.
하지만 림성하는 아직도 마음속 아픔을 안고있다. 송해연을 두고 말하던 강수일처장…
《사람들이 뒤에서 말하더구만. …동무넨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이였다지?》
그것은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별나라꿈을 함께 꾸어온 송해연, 참대로케트를 시험하던 그날부터 이 림성하와 함께 꿈을 지니고 효소배양을 연구해온 처녀… 헌데 그가 요즘 이상해졌다. 따벌처럼 톡톡 내쏘군 하던 송해연이 갑자기 말이 없어진것이다. 공업시험소에서는 물론 현장에 나와서도 늘 혼자 있었고 무엇인가 물어도 말없이 눈을 내리깔기만 했다.
그래서 배양탕크를 관찰하던 주광혁이도 기웃거리며 물었던것이다.
《어떻게 된거요? 해연동무, 어디 아프오?》
송해연은 여느때와 달리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아니요.》
《헌데 이상하구만, 동무가 얌전해진게.…》
《얌전해지면 안되는가요? 저도 이제부터 얌전해지기로 결심했어요.》
주광혁이 아연해했다. 림성하도 어이가 없어 웃었다. 남달리 자존심이 강하고 자부심이 높은 송해연, 저 처녀가 얌전해진다는것은 지구와 달이 서로 바뀐다는것과 같은것이다.
접종관발브를 조절하던 주광혁이 새침해진 송해연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그러니 미분적분은 잘 풀지 못해도 떡이나 두부만 잘하는 녀자가 되겠다는건데?…》
송해연이 그를 치떠보았다.
《그래요! 하지만 동무가 무슨 상관이예요?》
《허, 억지로 얌전해지면 바보가 된다는걸 깨우쳐주고싶어 그러오. 지나친 순종은 인격을 허물어! 자기를 지킬줄 알고 자기를 주장할줄 알아야만 가장 매력있는 처녀가 아닐가?》
여느때같으면 따벌처럼 내쏘았을 해연이였지만 이번에는 말없이 고개를 돌릴뿐이였다.
와!- 환성이 터졌다. 상품시상식이 시작된것이였다. 림성하는 지배인이 련이어 부르는 경쟁등수에 귀를 기울이였다.
《1등 가공직장! 2등 소비품직장…》
패기있게 걸어나가는 젊은 가공직장장, 누구보다 집행력이 강한 사람으로 알려진 가공직장장 김석진은 한덕수경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 온지 얼마 안되나 무슨 일에서나 1등을 못하면 몸살을 앓는 사람이다. 이런 그여서 손탁이 센 지배인도 그를 자기와 배짱이 맞는 직장장들중의 한사람으로 여기고있는것이다.
김윤걸지배인이 등수에 따라 직장장들을 소리쳐불렀다.
《소비품직장, 왔소? 전기욱직장장 어데 갔소?》
《예, 여기 있습니다.》
《나오시오!》
그다음 머리정수리가 훌 벗겨진 공무직장장 채후남과 공장에서 유명한 살림군 오철만옥당직장장이 불리워나갔다.
직장장들이 저마끔 상품을 타는것을 지켜보던 물엿직장사람들이 림성하의 옆에서 수군거렸다.
《저 콤퓨터는 사실 우리 물엿직장건데… 헛참, 그만 저치들한테 떼웠거던.》
《걱정말라구! 4통련속증발기만 조립하면 다음번 1등은 문제없이 우리 물엿이야.》
《하긴 그래. 그런데… 거 효소배양탕크에 축심을 넣는건 외국사람들이 와서 조립해준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누가 그래? 힘들다던 저 단백분리회리통조립두 우리 4. 15기술혁신돌격대에서 다 했는데…》
림성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내리쓸었다. 사실 그런 론의가 있었었다. 처음 앞공정 대형설비들과 수입설비들이 공장에 도착했을 때 지배인 김윤걸과 정주선당비서 그리고 기사장인 림성하는 한자리에 모여앉았었다. 늘 제기된 문제들을 놓고 함께 모여앉아 토론하군 하는 그들이였다.
그러나 그날은 문제토의가 인차 끝나지 않았다. 현대적인 앞공정설비들을 잘 모르는 조건에서 외화를 주고서라도 외국기술봉사를 받자고 하는 강수일처장과 석우진의 의견을 놓고 거듭 론의가 벌어졌던것이다.
김윤걸지배인도 머리를 기웃거렸다.
《새로 들어온 강냉이가공공정은 모두 파악이 없는 새 설비들입니다. 외국의 기술봉사를 받는다고 해도 효소공정조립 같은건 석달이 걸립니다, 석달!…》
림성하도 같은 생각이였다.
《저도 역시 록화물이나 봤을뿐입니다. 한개 공정도 아니고 그 숱한 설비들을 제대로 돌리자면 조립에서 기술적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저, 혹시 설비조립련합기업소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지 않겠는지…》
정주선당비서가 머리를 저었다.
《설비조립련합기업소에도 사람이 없습니다. 온 나라가 주요건설대상들을 돕고있는데 거기라고 가만 앉아있겠소? 또 그들은 식료기계를 잘 모르고… 강냉이가공공정 새 설비에 대해서는 그들도 우리나 거의 같소.》
지배인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니 결국 외국기술봉사를 받을수밖에 없다는건데… 그러자면 막대한 외화를 주어야 하고 또 조립기일도 보장할수 없습니다.》
말없이 턱을 문대고있던 정주선당비서가 조용한 눈빛으로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지배인동무, 우리 자체로 해보지 않겠습니까? 우리 공장 자체의 기술력량으로 말입니다.》
김윤걸지배인이 놀란듯 그를 쳐다보았다.
《우리 공장 자체로 말입니까?》
《예.》
《그건… 너무 엄청난 과제가 아닐가요? 설비해체는 자체로 할수 있었지만… 앞공정설비들은 우리가 아직 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한것들입니다. 그런데…》
정주선당비서가 그를 마주보았다.
《할수 있다고 봅니다. 기사장동무의 생각은 어떤지?》
《글쎄…》
정주선당비서가 두손을 탁우에 포개여놓으며 말했다.
《나는 우리가 다 같은 생각을 하고있다고 봅니다. 한번 우리 공장 기술자들과 로동계급을 믿어봅시다! 대담하게 믿고 시작해봅시다.》
잠시 입술에 주먹을 꾹 눌러대고있던 김윤걸지배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정주선을 마주보며 단단한 주먹으로 앞탁을 꾹 눌렀다.
《좋습니다! 비서동무, 해봅시다! 기사장동문 어떻소?》
《저도 찬성입니다. 해봅시다!》
하여 외국의 기술봉사를 받아야 한다던 강냉이가공공정의 농마, 단백분리회리통조립과 농침지수 2통증발기조립, 물엿, 포도당생산공정의 련속액화공정조립은 4.15기술혁신돌격대를 비롯한 공장의 로동자,기술자들에 의해 거의 마감단계에 이르렀고 석달이 걸려야 한다던 효소공정은 단 25일만에 거의 끝내게 되였었다. 방금 사람들이 말하던 4통련속증발기만 조립하면 물엿공정도 설비조립을 끝내고 시운전을 하게 될것이다.
림성하는 얼결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정주선당비서가 그를 부르고있었다.
《기사장동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오?》
《예, 효소배양기에 축심을 맞추어넣는 문제 말입니다. 단 1미리의 편차도 없어야 하는데다가 철저한 밀페까지 보장해야 하는데… 어쩐지 떨립니다.》
《그래서 얼굴에 구름이 끼였소?》 정주선은 로동자들이 미장전투를 벌리고있는 마쇄건물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우리 동무들을 믿읍시다. 래일 4. 15기술혁신돌격대에 가보오. 그들이 기사장동물 기다릴거요.》
이쯤되면 당비서가 그들과 마주앉아 이미 제기된 기술적문제를 두고 론의했다는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림성하가 놀라서 물었다.
《아니, 왜 그럽니까? 비서동지.》
발을 옮겨디딜 때마다 정주선당비서가 약간씩 다리를 절었던것이다. 그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아래로 향했다. 남보다 류달리 큰 신발을 신는 당비서… 헌데 그가 신는 신발은 42문이나 되는 큰것인데 지금 신고있는건 아주 작아보이는 허줄한 작업신발이다. 틀림없이 신을 벗고 들어가는 작업반휴계실에서 어느 누군가 바꾸어신고 갔을것이다. 로동자들과 함께 밤을 새는 일이 많은 당비서에게는 이런 일이 드문했던것이다.
《이거 또 신발이 바뀌였구만요. 원, 사람들두…》
정주선당비서가 손을 홱 내저었다.
《됐소.》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지운섭이 이쪽으로 오면서 돼지를 끌고가는 소비품직장에 대고 소리쳤다.
《돼지발쪽을 잘 보고 잡수시오. 오른쪽발쪽은 녀성들에게, 왼쪽발쪽은 남자들에게… 알겠소? 언제나 녀성들은 오른쪽에 모시고 존중해주어야 한단 말입니다.》
사람들이 웃어대였다.
지운섭을 지켜보며 소리없이 웃고있던 정주선은 림성하를 잡아끌었다.
《자, 어서 가기요.》
《예? 어딜 말입니까?》
《초원심분리기가 잘 안되는 원인을 찾아야지. 지금 현장에 송수만아바이가 와있소.》
《아니, 아바이가요?》
그들이 가공건물로 향하는데 승용차가 그들에게 다가와 멎었다. 당비서의 차였다.
《당비서동지.》 운전사가 유리문을 내리우며 말했다. 《역에 나갈 시간입니다.》
정주선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기사장동무, 아무래도 며칠간 지배인동무와 함께 공장일을 봐야 할것 같구만.》
림성하가 그를 떠밀었다.
《비서동지, 걱정말고 어서 떠나십시오.》
그도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서 전국의 주요기업소당일군들의 회의가 있고 그 뒤끝에 참관사업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정주선이 차문을 열며 말했다.
《기사장동무, 지배인동무도 며칠후엔 세멘트공장에 나가고 없는데 그동안 수골 해주오.》
《알겠습니다.》
승용차가 정문쪽으로 사라지자 그는 곧 가공직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