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1 회)
제 5 장
더 높은 목표
10
림성하는 그날도 현장에서 설비조립에 전념하고있었다. 먼저 나사틀개를 대고 조임나사를 비틀기 시작했다. 손등에 파란 피줄이 솟구쳤지만 그래도 힘주어 조이였다. 허겁스러운, 속대없는 자기자신을 죄이듯 힘껏 조여댔다. 그 어떤 압박감으로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강수일처장의 말처럼 큰 공장을 떠메고 가기에는 이 림성하의 어깨가 너무 약한건 아닌지?…
《기사장이 여기 있나?》
귀에 익은 목소리, 림성하는 고개를 돌렸다. 주름많은 인자한 할머니!… 당비서의 어머니였다.
《할머니가 어떻게?…》
《옳구만! 임잘 찾아 온델 다녔네.》
순간 아들애의 야무진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아버지!-》
정국이는 잡고있던 할머니의 손을 놓아버리고 림성하에게 달려와안겼다.
《아니, 네가 어떻게 왔니?》
정국이가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할머니하구 같이 왔어!》
할머니가 정국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이 정국이가 귀빠진 날이란걸 잊은게 아닌가? 저녁에 꼭 집에 들어오라구 알리러 왔네.》
《할머니두 참…》
아들애의 생일을 잊은건 아니였다. 엄마없이 맞는 생일이여서 고운 구두도 하나 사놓았었다. 아들애에게 한시도 그늘이 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였던것이다.
할머니가 그를 눈여겨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애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면서?… 임자 집사람두 정국이가 아버지한테 붙어있으면 자네 고생이 더 클가봐 애를 보내달라구 했던걸세.》
아들애를 꽉 그러안고있던 림성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예? 할머니가 어떻게 그 사람 일을?…》
《내 모르는게 있나?》 할머니가 말머리를 돌렸다. 《정국아, 아버지하구 있는게 좋지?》
어느새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진동장치에 올라가앉기도 하고 성형기의 틈새로 두발을 디밀어보기도 하던 정국이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응, 좋아! 아버지, 이거…》 그 애가 주머니에서 지시수첩을 꺼내들었다. 《유치원선생님이 아버지수표 받아오랬어.》
할머니가 기겁하여 소리쳤다.
《아서라, 글 쏟아진다!…》
정국이가 책을 펼친대로 마구 흔들었던것이다. 갈피에 끼운 선생님의 지시를 찾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의 놀란 소리에 머리를 기웃거리던 정국이가 눈이 동그래서 물었다.
《할머니, 종이에 써있는 글두 쏟아지나?》
《그럼, 글을 천대하면 귀하게 배운 글이 다 달아나버리고말지.》
림성하는 웃으며 할머니가 바로 쥐여준 수첩을 펼쳤다. 유치원지시수첩… 거기에는 그날 배운것과 유치원에서 있은 일들이 적혀있었는데 교양원들은 매 아이들에게 이런 수첩을 만들어놓고 부모들의 수표를 받아오도록 하군 했다. 부모들이 늘 자녀교양에 관심하도록 하자는것인데 그전에는 늘 안해가 수표를 해주군 했었다.
수첩을 들여다보던 림성하가 정국이에게 물었다.
《너 낮잠시간에 어디 갔댔니?》
어린것이 재잘거렸다.
《랭동기뒤에 숨었댔지 뭐. 유치원식당에 있는거… 선생님은 날 못 찾았어. 엄만 꼭꼭 찾군 했는데!》
《뭐, 랭동기뒤에?!》
할머니가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원, 애녀석두! 누굴 닮아 저리 세차누…》
정국이가 눈을 반짝이였다.
《나 엄마 닮았대요!》
순간 림성하는 얼어붙은듯 굳어졌다. 엄마를 닮았다고 자랑하는 아들애, 벌써 몇번째인지 모른다. 어린것이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으면…
가만히 아버지를 쳐다보고있던 정국이가 시무룩하여 할머니에게 매달렸다.
《할머니, 나 엄마 보구파!…》
정국이를 품에 안은 할머니가 눈을 슴벅거렸다.
《그래, 그래! 아이에겐 엄마가 제일이지. 정국아, 엄만 이제 곧 올게다. 꼭 온다!…》
《야, 좋아!》
좋아라 손벽을 치던 정국이가 작업장이 좁다하게 달려갔다.
림성하는 천천히 수첩을 덮었다. 그러니 할머니는 모든것을 다 알고있는것이다. 그의 가정과 고민에 대해서 그리고 어딘가에 가있는 안해에 대해서도 다 알고있는것이다.
그가 할머니에게 몸을 돌렸다.
《그러니 비서동지도 우리 집 일을 다 알고있겠지요?》
할머니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럼, 그 사람도 모르게 할수야 없지. 이건 다 그한테 물어보구 한 일일세.》
그는 자기도 모르게 수첩을 비틀며 부르짖었다.
《그런데 비서동진 왜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는겁니까. 예? 할머니, 제가 그렇게도 못난이입니까.》
《이 사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할머니는 그가 구겨놓은 수첩을 당겨 손바닥으로 다림질하듯 펴눌렀다.
《그럼 뭡니까? 우리 집사람이 떠나간것도, 아들애까지 데려가려는것도 다 알면서 왜 한마디 말도 해주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렇게… 절 괴롭히는겁니까?!》
할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 어루쓸어주었다.
《그건… 다 자넬 위해서야. 정국이 엄만 지금 료양소에 있네.》
《예? 료양소라니요?》
《임자, 애엄마가 어째서 집을 나갔는지 알기나 하나?… 저 애 엄만 불치의 병으로 사형진단을 받은 사람이야!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자네에게 짐이 될가봐… 그래서 정국이까지 두고 집을 나간거야.》
《?!》
림성하의 눈귀가 파르르 떨리였다. 할머니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알면 우리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기사장일을 제대로 못할가봐 그랬던거네. 자기가 옆에서 불치의 병을 앓고있으면 마음여린 자네가 견디지 못한다면서… 끝까지 숨겨달라구 했던거네. 알겠나? 우리 집에 와서 울면서 빌었어, 당비서한테 말일세. 제발 말하지 말아달라구.》
림성하는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속이 떨리다못해 손도 떨리고 입술도 떨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좋은 아낙인가, 응? 그땐 나두 그 사람을 붙들구 울었어. 둘이 붙잡구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런걸, 그런걸 왜 이제야 말해줍니까. 예?!》
《인젠 말할 때가 됐다구 해, 임자네 당비서가 말일세. 며칠전에 가보니 신심이 있다구 해.》
《예?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아니문!》
《그렇습니까!》
림성하는 별안간 목이 꽉 메여버린듯 했다. 눈굽이 쿡쿡 쑤시고 턱이 덜덜 떨렸다.
《그래서 알려주는걸세. 애에미두 인젠 알려주라구 했다네. 알겠나?》
할머니는 힘이 부친듯 옆에 쌓아놓은 지함무지에 편안히 걸터앉았다. 잠시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 무엇인가 더듬어보는듯 했다. 주름많은 입귀가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그 무엇을 상기하며 웃는것 같았다.
《임자, 놀랐지? 이제 꼭 좋은 소식이 올걸세.》
《고맙습니다, 할머니!》
《원, 무슨 소릴… 내게 아니라 임자 안사람에게 고맙다구 절을 하라구.》
할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임자, 잘 알아두라구. 응? 세상에 정이란게 많아두 부부간의 정보다 깊은건 없다네.》
《…》
할머니는 그를 자기옆에 앉히고 계속했다.
《오늘같은 날 나두 할 말이 있어. 임자 안사람얘길 하다보니 갑자기 내가 열두살때 시집가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게 아닌가…》
《아니, 열두살때 말입니까?》
《그렇네.》
다음 잠시 생각에 잠기던 할머니가 소리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짓했다.
《다들 여기 와서 좀 쉬라구.》
몇사람이 다가왔다. 허리를 굽석하며 인사하는 사람, 건강이 어떤가고 웃으며 묻는 사람… 할머니는 그들모두를 가까이에 앉도록 했다.
《내 오늘 기가 막힌 얘길 하나 해주지.》
할머니는 반쯤 눈을 감고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자강도의 깊은 산골이였어. 12살밖에 안된 나도 어른들과 함께 길쌈을 했지. 삼을 무릎에 비벼서 베를 짜는거 말일세. 헌데 어느날 우리 집에 웬 베잠뱅이젊은이가 들어서질 않겠나? 누굴가, 당대 이 집에 사람이 오는 법은 없었는데… 헌데 그 젊은이가 나를 보고 씩 웃지 않겠나? 가만 보니 지주집에 나무를 해주며 사는 총각이였어. 잘생긴 사람이였지. 정말이야. 어린 나이에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더라니… 헌데 방안에 있던 친척들이 나를 보며 소리를 죽여 웃지 않겠나. 그래서 물었지. 〈왜들 웃나요?〉하구… 그래두 그냥 웃기에 난 그만 화가 났네. 아무것두 모르고 뜰에 있는 닭장에 나가 닭들하고 놀았지.》
누군가 할머니에게 얼른 물었다.
《그 총각이 새신랑이였나요?》
할머니가 소리내여 웃었다.
《그래, 남편될 사람이였어. 31살난 총각이 12살난 이 루혜숙이에게 장가들려고 온게야.》
옆에 앉은 젊은이가 제꺽 할머니의 발음을 시정했다.
《〈루〉가 아니라 〈류〉가예요, 할머니.》
《아닐세, 〈류〉가 아니라 〈루〉 가네!》 할머니는 우정 발음을 똑바로 하며 말했다. 《우리 동사무장이 내 이름을 쓸 때마다 〈할머니, 루가 성은 없습니다.〉 하군 했지. 하지만 내 성은 〈루〉가야.》
사람들이 재미나하며 웃었다. 젊은이들을 웃기고싶어하는 할머니의 그 말에 림성하도 함께 따라웃었다.
할머니가 계속했다.
《다음날부터 우리 집에 낮에는 땔 나무를 하고 밤에는 새끼를 꼬는 사람이 와있게 됐어. 난 그저 사람 하나 더 늘었다고만 생각했더랬지. 나를 키워 17살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건 모르고… 남편은 지주의 땅을 부쳤어. 온통 돌각담만 무둑무둑 쌓여있는 땅이였지…》
맞은켠에 앉아있던 녀인이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그러니 남편과는 20년 차이구만요? 아유, 끔찍해라!…》
《우습나? 그땐 그랬어. 그 사람이 제 혼자 밭에 나가기 싫어서 어린 나를 데리고 나가군 했지, 그래두 색시라구… 그는 힘껏 돌을 져나르고 난 쪽바가지에 돌을 이고 다녔지. 겨울이 다가왔는데 얼마나 춥던지… 버선을 벗어 손에 끼였다가 또 신군 했지. 머리에 토목수건을 하나 졸라매고… 너무 추워서 울면서 들어가겠다구 투정했더니 그 사람이 〈얘 혜숙아, 내 엿 줄게!〉 하지 않겠나? 그래서 울음을 그치니 손가락마디만 한 엿 한개를 쥐여줘. 그때부터 엿가락을 토막토막 잘라 주머니에 넣었다가 울 때마다 하나씩 주군 했지.》
아까 류가라고 대주던 젊은이가 아는체 했다.
《할머니, 그 엿은 길금엿이지요. 예? 그렇지요?》
《그래, 길금으로 만든 엿이였어. 농촌집에서라면 어느 집이나 명절때면 다 만들어먹던 그런 엿이지. 헌데 어느날 그 사람이 지주집을 뛰쳐나오지 않았겠나. 흉년이 들어 모두 굶어죽게 됐는데 지주놈이 당장 빚을 물라는거야. 무서웠어!… 그러자 그가 무작정 나를 둘러업지 않겠나. 그리고 도회지로 가는 길로 걸어가는거야, 내 발에 신발대신 새끼오리를 칭칭 감아주면서. 난 막 울었지. 아직 정두 못 붙인 사람인데… 어디선가 보리밥과 절군 오이를 얻어다 먹이고는 우는 나를 업고 그냥 갔지. 종일 갔어. 큰 길로, 강이 있는 마을로… 어두운데 강바닥이 와그작와그작하지 않겠나? 온통 갈게들 천지였는데 가마니 한짝을 깔아주고 여기 있어라 하지 않겠나? 갈게들이 달려들어 밤새껏 우는데 새벽에야 오지 않겠나. 방아간주인이 그를 채용했다는거야, 원래 일군이였으니까! 또 머슴을 살았지. 남편은 들에 나가 벼를 키우고 나는 주인집 아이보개를 하고… 헌데 그해 가을 주인집 아들대신 남편이 보국대에 뽑히지 않았겠나? 3년 갔다오면 빚도 물어주고 집두 주겠다는거야. 난 업었던 주인집 아이를 내려놓고 달려갔네. 〈가지 말아요! 가면 죽는대요!〉 하고… 남편이 달려오지 않겠나? 고마워! 우리 함께 가자! 하면서… 남복을 하고 상투를 틀고 또 남편을 따라 건설장에 갔지. 일본감독놈이 막 야단해, 일도 못할게 따라왔다구. 남편이 말하더군, 자기 아들인데 벙어리라구… 남편하구 같이 일하면서 움막에서 깨진 독에 화로를 놓구 쭈그러진 남비에 보리밥을 끓여먹었지…》
어느덧 할머니의 주름진 눈귀에 물기가 어리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듣고있었다.
《그렇게 고생고생을 다 하는데 나라가 해방되였네. 얼마나 울었던지… 새 조선이 어데 갔다가 이제 왔느냐고 하면서 밤새껏 울구 또 울었어!…》
할머니는 주글주글한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생각깊은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볼뿐이였다.
《난 정이 뭔지도 모르고 남편의 사랑을 받았어. 철없는게 응당한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남편은 나에게 아버지였고 오빠였고 아저씨였어.… 헌데 그런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보니 이미 때가 늦지 않았겠나? 한생 후회가 되네. 그런 남편에게 진정으로 되는 정을 주지 못한것이…》
할머니가 림성하의 손을 끄당겨 잡았다.
《이제부턴… 정을 남기지 말게, 아끼지두 말구. 그 사람이 오면 맘껏 사랑해주라구, 응?!》
《예.》
뜨거운 속삭임.
어느새 할머니무릎에 올라앉은 정국이가 물었다.
《할머니 말한건 옛말이나?》
《그럼, 옛말이지.》
그 애가 또 물었다.
《큰아버지두 그때 있었나?》
정주선당비서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할머니는 웃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웬걸, 그 사람은 50동이야. 할아버지가 일흔고개를 넘기면서 보았거던. 정국이 너처럼 사랑스러웠어.》
《선생님말두 잘 들었나요?》
《그럼, 공부두 잘했구 악기두 잘 탔지! 거 뭐라드라, 피리처럼 옆으로 입술을 대고 부는거…》
누군가 재빨리 알려주었다.
《저대예요, 할머니.》
《옳아, 그렇게 부르는 악기였어. 헌데 공연하는걸 보자니까 내 아들만 고개를 삐뚤서하고 이렇게 불구있지 않겠나?》
정국이가 할머니의 무릎에 기여올랐다.
《그래서요, 할머니?》
《그게 얼마나 보기 싫던지. 그래서 당장 그만둬라, 그러다 목 삐뚤어질라! 하고 소리쳤지.…》
《그래서요, 할머니?》
《대신 롱구를 시켰지. 썩 잘해!》
《그래서요, 할머니.》
《그 사람이 공부를 직심스럽게 하더라. 그러더니 대학엘 갔지. 그다음엔 젊은 나이에 당중앙위원회에 들어가 거기서 오래동안 일했구…》
《응, 그랬댔구나. 할머니.》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국이를 안아일으켰다.
《자, 인젠 집에 가자. 응?》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정국이의 손목을 잡고 다시 림성하에게 부탁했다.
《이 사람, 저녁에 꼭 오라구. 우리 집으로…》
《예, 가겠습니다. 할머니.》
이윽고 할머니는 정국이와 같이 멀어져갔다. 아직도 허리가 곧고 마음도 곧은 할머니…
《고맙습니다, 할머니!》
그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고있었다. 할머니를 소리쳐부르며 따라가고싶었다. 할머니를 붙안고 막 울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한발자국도 움직일수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사람이란 맘껏 소리내여 울고싶은 때가 간혹 있는 법이다. 너무 기뻐서, 너무 슬퍼서, 너무 아파서, 너무 괴로와서 혹은 너무나 행복해서… 그러면 그 눈물은 마음을 씻어주고 정화시켜준다고 한다. 마음속 온갖 아픔과 슬픔도 다 씻어준다고 한다. 말끔히, 깨끗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