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5 장

더 높은 목표

 

5

 

해연은 정국이를 안고 정신없이 어둠속을 걷고있었다. 어느 건물모퉁이를 지나는데 대형화물차가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했다.

성이 난 운전사가 차창밖으로 머리를 쑥 내밀더니 꽥 소리쳤다.

《아니, 귀가 먹었소? 죽자구 그래?!…》

해연은 황급히 옆으로 물러났다. 자동차전조등의 불빛에 환히 드러나는 처녀의 모습을 보자 운전사가 무어라고 두덜거리며 차를 몰아갔다. 배기가스가 처녀의 얼굴에 확 들씌웠다.

그래도 해연은 가쁜숨만 몰아쉬고있었다. 그가 지금 얼나간 사람모양이 된것은 그럴만 한 리유가 있었다. 방금전 정주선당비서의 어머니, 90고령의 할머니를 만나 급한 부탁을 받았던것이다. 예견치 못한 일이였다. 어데론가 황황히 달려가던 할머니가 그를 보자 숨이 차서 말했었다.

《아이구, 해연아. 날 좀 도와다구.》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아, 글쎄 내가 잠간 자릴 비운새… 우리 정국이를 차에 실어간다누나.》

《차에 실어가다니요?》

《에미있는데루 데려간다누나.》

《아이 할머니, 엄마한테 가문 더 좋을텐데요?》

할머니는 황황히 두손을 내저었다.

《안돼, 그 앤 지금 애비한테 더 필요해. 그러니 네가 가서 빨리 그 앨 좀 데려오라구.》

할머니의 부탁이자 정주선당비서의 부탁이다. 어린 정국이를 고령의 어머니한테 떠맡긴것도 당비서라는것을 해연은 너무도 잘 알고있는것이다. 하여 그는 자강도로 떠날 차비를 하고있는 반짐차가 있는 공장후문쪽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반짐차곁에는 어느 기관에서 온것인지 알수 없는 기중기차도 서있었다. 기중기차운전사 최두만이 반짐차에 앉아있는 정국이를 들여다보며 무어라고 타이르고있었다.

《정국아!》

처녀가 소리쳐불렀다. 그러자 운전석에 머리를 디밀고있던 최두만이 머리를 돌렸다.

《왜 그러오?》

《못 가요! 이 애는…》

최두만이 두눈을 흡뜨며 물었다.

《동문 도대체 누구요?》

《공업시험소 시험기사예요.》

최두만이 머리를 뒤로 젖혔다. 반짐차의 실내등빛으로 처녀를 찬찬히 보기 위해서였다. 잠시후 최두만이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으-음, 알만해. 공업시험소의 송 뭐이라구 한다던 그 처녀시험기사!…》

해연이를 바라보는 그의 두눈이 가늘게 쪼프러졌다. 입가의 주름도 꿈틀거렸다. 어떤 비웃음이 스쳐갔다.

《헌데 동무한테 이 애가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어요. 정국이는 아버지한테 있어야 해요. 지금 기사장동지가 얼마나 괴로운 땐지 아세요?》

최두만의 두툼한 입술이 다시 꿈틀거렸다. 여전히 해연이를 찬찬히 훑어보며 그가 빈정거렸다.

《처녀는 왜 그 집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

《예? 그건 무슨 말인지?…》

갑자기 최두만의 눈빛이 사나와졌다.

《동무! 내 동무가 누구인줄 모르는줄 알아? 돼먹지 않게… 나이가 찼으면 빨리 시집이나 갈게지 남의 집 일에 참견하면서…》

《뭐, 뭐라구요?!》

해연은 피기까지 말짱 가셔진 창백한 얼굴로 그에게 바싹 다가섰다. 입안이 바싹 말라들었다. 거의 동시에 속이 메슥메슥해졌다. 그 어떤 역스러운것이 목구멍에 치밀어올라 금방 토할것만 같았다. 그는 면바로 최두만을 쏘아보며 따벌이 쏘듯 부르짖었다.

《아무 소리나 탕탕 하면 단줄 아세요?》

《아니, 이 체네가?》

《이제 두고보자요. 가만두지 않겠어요. 그리구 잘 알아두세요. 우리 정국이는 어데두 못 보내요!》

처녀는 정국이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정국아, 가자. 아버지가 널 기다려.》

《아지미!》

정국이도 해연이를 잘 안다. 어머니 못지 않게 그를 따른지 오래다.

해연은 입을 쩍 벌리고있는 최두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천천히 돌아섰다.

《여, 동무! 어쩌자는거야?》 당황한 최두만이 급히 따라오며 소리쳤다. 《거기 서라구, 서라는데!》

해연은 아무것도 못 들은듯 그냥 걷기만 했다. 품에 안은 정국이를 아프도록 껴안고 정신없이 걸었다. 어째서인지 막 울고싶었다. 그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고싶었다. 그 무엇인가를 말하고싶었다.…

송해연은 허덕이며 걸음을 다우쳤다. 가고오는 사람들이 림성하를 비웃는 소리가 귀전에까지 울려오는듯싶었다. 어제 들은 이야기, 오늘 들은 이야기들이 모두 합쳐져서 웅웅거리고있었다.

《뭐, 기사장이 어쨌다구?》

《기사장이 되면서 사람이 싹 달라졌대요. 아, 글쎄 안사람하구두 갈라졌다는데 그게 다 기사장의탓이래요.》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소문이 자자해요.》

송해연은 머리를 흔들었다. 림성하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도 잘 알고있는 해연이다. 누구보다 그의 착한 마음과 실력에 대하여 알고있었고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뛰여난 수재였다는것도 잘 알고있었다. 일찌기 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옛적의 화학교원이던 어머니도 늘 그렇게 말하군 했었다. 해연이자신도 그가 열세살때 벌써 제 손으로 무엇인가 창조하려는 탐구심을 직접 보아왔었다.

이런 생각과 안타까운 마음때문에 해연은 그만 대형화물자동차가 전조등빛을 휘두르며 자기의 등뒤에까지 달려드는것도 알지 못했었다. 그것때문에 운전사가 무섭게 성을 내며 욕설을 퍼부었고…

그는 할머니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아까 할머니와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할머닌 어데 있을가, 아깐 옥당직장앞쪽에서 만났더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하여 그는 전지불을 번쩍이며 자기를 마주오는 사람들도 잘 가려보지 못했다. 그 사람들이 저마끔 떠들고있었다.

《당비서동지한테두 알려야지요?》

《당비서동진 안계셔. 아까 열관리직장 로동자가 입원한것때문에 병원에 갔다고 하지 않았나.》

《아참, 그렇지.》

《그럼 기사장동지를 찾아보자구.》

《이 밤중에 어데 가서 기사장을 찾아?》

그러자 귀에 익은 석쉼한 목소리가 울렸다.

《손전화번호를 눌러보라구.》

《안돼요, 아까부터 계속 전활 받지 않아요.》

《거참, 이상한데?…》

해연은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그 사람들속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분간해들었던것이다. 웬일인지 흥분된 목소리였다. 해연은 급히 마주갔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오, 너 해연이구나! 애야, 너 기사장을 못 봤냐?…》

《기사장은 왜요?》

《여기에 들어있는걸 좀 봐라!… 참, 그렇지. 여보게 주광혁기사, 전지불을 좀…》

할아버지의 얼굴은 여느때없이 환했다. 젊은이들처럼 환희에 넘쳐 손녀에게 시험관을 내흔들었다.

《인젠 중간시험배양에 들어갈수 있게 됐어! 자, 보라는데!》

송해연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였다. 미처 그 의미를 다 알수 없어 눈만 크게 떴다.

《할아버지, 그건 무슨 말씀이예요?》

할아버지가 껄껄 웃어대였다.

《효소배양 말이다. 실험실적단계에서는 성공이라니까!… 인젠 됐어!》

할아버지는 옆에 서있는 주광혁을 가리켰다.

《너랑 이 사람이랑 밤을 패며 연구하더니…》

《그래서요?》

《끝내 성공했구나. 주광혁 이 사람이 오늘 큰일을 했어.》

주광혁이 게면쩍어했다.

《아, 무슨 그런 말씀을… 송박사할아버지가 제일 수고많으셨지요.》

할아버지가 머리를 저었다. 지나친 흥분때문에 눈시울까지 사뭇 꺼벅거렸다.

《중요한건 빨리 중간시험에 들어가는걸세. 기사장이 이 일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나.》

송해연은 자기에게 싱긋 웃어보이는 주광혁을 외면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또 기사장이다. 처녀는 품에 파고드는 정국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니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있다. 기사장이 얼마나 마음아파하는지 다 모르고있는것이다.

할아버지가 뜨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

《아니예요.》

《헌데 이 앤 누구냐?》

주광혁이 전지불을 비치자 어린 정국이는 두눈을 쪼프리며 싫다고 손을 내저었다.

《가만, 이 앤 기사장의 아들이 아니냐?…》

해연이 머리를 쳐들었다. 어느새 그의 눈언저리가 붉어지고있었다.

《그래요, 할아버지.》

어째서인지 목이 잠겼다. 저도 모르게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왔다. 어린 정국이의 두눈이 올롱해졌다. 겁을 집어먹은듯 그들을 살펴보며 금시 울음을 터칠것처럼 입을 삐쭉거렸다.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엉? 눈물은 왜 짜고있어?》

주광혁이 다가서며 나직이 물었다.

《해연동무, 도대체 무슨 일이요? 어떻게 된건지 차근차근 말을 해야 알게 아니요?》

송해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요!…》

정국이를 추켜안은 해연은 할머니를 만났던 회관쪽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지나가던 녀인들이 놀란듯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중에서 몸이 오동통하고 작달막한 녀인이 어지간히 놀란 소리로 수군거렸다.

《저것 보라요! 아니, 어쩌문…》

《뭘 그래?》

같이 가던 녀인들이 묻자 그는 어린애를 안고가는 송해연을 가리켰다.

《아니, 저걸 보지 못해요? 저 송해연시험기사가 인젠 기사장의 아들까지 맡아안고있지 않나요.》

소문이로 불리우는 오복금이 하는 말이였다. 소문이라는 별명그대로 소문을 낼만 한 일이 생기면 꼭 그가 나타나군 한다. 공장에서 그의 눈에 뜨이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란 하나도 없는것 같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소문이가 또 뭐라고 말하자 누군가 그 녀자를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문이, 또 허튼소릴 하겠어?》

《아니, 저걸 보면서도 그래요?》

《그게 뭐 어쨌다구.》

《아니, 반장은 정말 깜깜이구만요. 글쎄 해연기사가 내놓은 연구성과는 다 기사장동지거래요. 그래서…》

《그런 말 함부로 하는게 아냐.》

《좋아요, 그럼 전번에 뽐프전동기를 태워먹은것도 저 송해연시험기사때문이란거 알아요? 코대가 높아서 남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구 한심한 물엿을 주입시켰지요. 바로 기사장을 등대구 말예요.》

해연은 가까스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어째서인지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났다. 처녀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도 저쪽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주광혁의 눈길을 느끼고있었다. 주먹을 부르쥐고 달려가려고 하는 주광혁의 모습… 그러는 그를 할아버지가 꽉 붙잡는 모양까지 눈으로 보는듯 했다.

《임자, 그러지 말라구. 응?》 그것은 할아버지의 석쉼한 목소리였다. 《사내들은 그런데 간참하는게 아냐.》

할아버지가 먼저 걸음을 옮기는것이 알렸다.

《빨리 기사장이나 찾자구. 기사장을 찾아서 중간시험을 당장 시작할 방도를 찾아야 해. 그게 급선무야.》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귀를 강구며 해연은 숨이 찬것처럼 허덕이고있었다. 가슴은 마냥 찢어지는듯 했다. 이런 모양으로 수모를 받고있는 손녀를 바라보고있었을 할아버지의 마음 얼마나 괴로우시랴. 얼마나 아프고 쓰릴것인가?…

해연이가 중학교에 입학할무렵 그만 불치의 병에 걸려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지금껏 해연이를 애지중지 키워오신 할아버지였다. 해연이의 마음속에 효소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자존심도 키워주신 할아버지, 엄한 스승이시고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기도 했던 그런 할아버지를 오늘 욕되게 했으니… 아, 아! 할아버지, 나때문에, 이 못난 해연이때문에 그만 할아버지까지… 해연은 눈먼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그냥 어두운 구내길을 정처없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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