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4 회)
제 5 장
더 높은 목표
3
성이 독같이 난 림성하가 소리쳤다.
《어떻게 된거요? 그래 주광혁이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른단 말이요?》
시험공정을 다그쳐야 할 중요한 시기에 주광혁이 자리를 비우고 없는것이다.
공업시험소장인 김대원이 손바닥으로 위생복앞자락을 문지르며 우물거렸다. 기사장이 이렇듯 성을 내며 소리치는것을 처음 보는것이다.
《글쎄, 자기가 복무하던 부대에 급히 갔다올 일이 있다고 하면서…》
《뭐, 부대에?》
잠을 못 자 눈에 피발이 선 김대원은 여느때와 달리 《글쎄》를 련발하며 설명했다.
《글쎄, 어제 밤 그 사람이 나와 배양기감시를 교대한건 밤 11시였는데… 그가 몹시 부산을 피우지 않겠습니까. 기래서 저 사람이 또 아침식사준비를 하는가부다 생각했는데 글쎄, 가마에 쌀을 혼쌀내우지 않구 부대에 갔다오겠다질 않습니까 글쎄, 자기가 맡은 배양액을 처리하는 이 시간까진 꼭 돌아오겠다면서. 기래서…》
이상한 사람이다. 김대원은 가마에 쌀을 익힌다는 말도 혼내운다고 하며 《그래서》를 꼭 《기래서》라고 한다. 하여 림성하는 그의 말투를 본따며 증을 내였다.
《기래서 그가 정해진 시간까지 왔소?》
《…》
더운 증기가 후끈 몸을 달구었다. 끈끈한 습기와 시크무레한 냄새, 웅- 소리내며 돌아가는 배양기, 상태관찰을 하고있는 시험기사들…
림성하는 더 묻지 않았다. 주광혁이 무엇때문에 갔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실망과 그 어떤 배신감…
황금태로인이 조용히 다가왔다.
《이보게 기사장, 광혁이 그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네. 좀 더 기다려보자구. 배양액을 처리하자면 아직 시간이 더 있어야 하는데…》
림성하는 입을 꾹 다물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지금 몇시인가. 아직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송수만로인이 손녀를 찾았다.
《얘 해연아, 거 꾸레미를 내오거라. 얼른!…》
커다란 비닐주머니를 들고온 송해연이 앞에 놓인 긴의자에 그것을 펴놓았다.
《당비서동지가 보낸거예요. 자, 다들 오세요.》
눈치를 보던 지운섭이 누구보다 먼저 다가왔다.
《야, 이거 빵이구만! 김치, 사이다, 고기볶음두 있구…》
사람들이 모여왔다. 송수만로인이 림성하를 잡아끌었다.
《기사장, 어서 하나 들어보게. 자네야 빵을 제일 좋아하지 않나.》
림성하는 할수없이 그가 쥐여주는 빵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먹고싶지 않았다. 다만 정신없이 입에 쓸어넣는 지운섭을 놀랍게 바라볼뿐이였다.
송수만로인의 작은 눈이 웃었다. 이어 가볍게 몸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효소라는게 참 신기해. 슬기로운 우리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그 리치를 알고 보리길금으로 조청을 만들어먹었거던.》 로인은 실눈을 지으며 지운섭에게 물었다. 《조청이 뭔지야 알겠지?… 왜 대답을 못하나? 아는것 같지만 다 몰라.》
로인은 두눈을 쪼프리였다. 마치 자기가 말하는 조청의 특이한 맛을 음미하는듯 했다.
《조청이란 꿀처럼 만든 물엿이야. 그 시원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오랜 력사가…》
지운섭이 한가득 입에 쓸어넣은 빵을 꿀꺽 삼키고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아, 알만 합니다. 18세기 유명한 화가 김홍도의 그림 〈씨름〉에 나오는거 말이지요? 거기에 엿판대기를 멘 총각이 〈엿 사시오, 엿 사시오!〉하는것만 봐도 우리 나라에서 엿의 력사가 아주 오래다는…》
송해연이 그에게 맵짠 눈길을 던졌다.
《운섭동진 뭐예요? 할아버지를 놀리는거예요?》
《아, 아바일 놀리다니?… 난 전적으로 아바이 숭배자란 말이요.》
로인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내가 그만 잊었댔군. 전번에 한 녀석이 내 귀에 대구 〈할아버지, 인젠 제발 옛날소린 그만두시라요, 사람들이 웃어요.〉 하질 않겠나? 허, 그게 옳은것 같다하구 생각했는데 오늘 또 실수했나보군.》
《아, 아바이.》지운섭이 당황하여 웅얼거렸다.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난 그저 아바이의 말씀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로인이 또 웃었다.
《알아. 나두 다 알아.》
지운섭이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로인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였다.
《18세기가 아니라 아득한 태고적부터 우리 민족은 엿을 만들어 먹었지. 고주몽전설에 의하면 그가 나라를 세울 때 어머니가 오곡을 주었는데 거기엔 벼와 콩, 기장, 조, 보리도 있었다네. 그 보리에서 길금이 나오고 고유한 우리 민족당과인 엿이 나온것일세. 그에 대한 력사기록이 바로 〈고려사〉에 있는데 꿀과 조청으로 유밀과(기름꿀과자)와 다식(낟알가루를 꿀에 반죽한 과자)을 만들었다고 씌여있네. 여기서 말하는 조청은 바로 벌이 만든 산꿀에 비해 사람이 만든 꿀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일세. 그러니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현명했나. 남들은 사탕무우즙을 달여서 만든 사탕을 겨우 왕족들이나 먹어보고 병치료에나 쓰고있을 때 우리 민족은 길금으로 꿀과 다름없는 물엿을, 다시말해서 조청을 만들어먹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렇게 엿은 우리 민족과 깊고깊은 인연을 맺고있은것일세. 이걸 잊지 말아야 해.》
모두가 말없이 귀를 기울이며 로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아바이의 이야기… 림성하도 엿이야기만 나오면 늘 흥그러워하는 로인에게서 존경어린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들모두를 둘러보던 지운섭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대학교수처럼 손세를 써가며 설명했다.
《그뿐이 아닙니다. 효소는 사람의 생명활동에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물질입니다. 그것은 인체의 모든 화학반응은 반드시 이 효소에 의해서 완성되기때문입니다. 다시말하여 사람의 몸안에 있는 이 수많은 효소들은 자기의 효소계에 따라 인체에 영양물질을 공급해주고 생명활동에 필요한 새 조직을 합성해준다는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기사장동지.》
림성하는 소리없이 웃었다. 아무때나 슬슬 흘러나오는 그 말재주, 아마 지운섭은 상식이나 일화를 만들어내는 그 어떤 재간을 타고난것 같다.
《만약》 하고 지운섭이 계속했다. 《이 발효공학기사 지운섭의 인체에 효소가 없다면 저는 단 한끼의 식사를 50년이나 되는 긴 시간에 소화시켜야 할것입니다. 예,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인체는 이 효소균에 의해 소화되고 숨쉬기가 진행되며 피흐름이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효소의 균형이 파괴되면 병도 생기게 되는것입니다. 이런것으로 하여 과학자들은 〈효소가 없으면 생명도 없다.〉고 말하고있는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많은 효소들중에 농마를 당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효소가 바로 방금 우리의 존경하는 황금태아바이가 말씀하신,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써온 그 보리길금에 들어있다는 그것입니다. 예!》
사람들이 소리내여 웃었다. 모두가 그의 훌륭한 목소리를 칭찬하며 방금 이야기한 그 문제들을 다시금 따져봐야 한다고 떠들어대였다.
하지만 림성하는 어금이를 꾹 깨물고있었다. 효소!… 사람의 몸에는 물론 동물이나 식물에도 있는 이 효소를 공업적방법으로 대량생산하는것이 바로 효소공업이다. 그것은 최첨단기술로서 발전된 나라들에서도 그 기술을 엄격한 비밀에 붙이고있다.
하기에 우리는 어려운 그 효소배양의 첫 단계인 원균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리론적기초를 쌓았고 풍부한 경험을 축적해왔다. 허나 그 원균으로 효소를 배양하고 중간시험공정을 거쳐 공업화까지 나가려면 아직 많은 난관과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가야 한다. 우리모두의 꿈이고 리상인 효소물엿!… 우리는 반드시 인민들에게 친숙해진 엿, 인체에 가장 가까운 엿을 만들어내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시각에 공업시험소의 기사가 자리를 뜨다니?…
송수만로인이 또 뭐라고 말하려는 지운섭에게 손짓했다.
《됐어, 연설은 그만하고 앉으라구.》 로인은 주머니를 뒤져 작은 병을 꺼내여 림성하에게 펴보이였다. 《기사장, 이걸 좀 보라구. 좀전에 곡물연구소에서 사람이 왔다갔는데 활성이 높은 효소라고 하면서 이걸 가지고 왔더구만.》
《활성이 높은 효소라구요?》
《헌데 잘 믿어지지 않아. 외국의 어느 한 빵공장에 갔다가 그들이 주는것을 가져왔다는데…》
지운섭이 눈을 흡뜨며 그것을 넘겨다보았다.
《활성이 높다구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제품기술서도 따라오지 않았는데…》
림성하는 병을 들여다보았다. 강냉이가루같이 부드러운 알갱이들, 곰팽이 낀 콩깨묵에서 나는것 같은 냄새… 그는 부드러운 가루를 혀끝에 대보았다. 아무러한 맛도 없었다. 다시 한줌을 쥐여 입에 넣어보았다. 슴슴하고도 탁한 맛…
황금태로인이 펄쩍 놀라 소리쳤다.
《아니, 어쩔려구? 효소를 아무렇게나 쓰면 내장이 분해될수 있다는걸 모르나? 응?》
림성하는 밝게 웃었다.
《아바이, 이건 포도당생산에 쓰이는 곰팡이류의 아밀라제군요. 맛을 보니 알겠습니다.》
《그렇다구 함부로 입에 넣으면 어쩌나?》로인이 헤덤비며 소리쳤다. 《얘 해연아, 기사장을 병원에 데려가거라, 어서!》
송해연이 발을 동동 굴렀다.
《기사장동지, 병원에 갑시다! 어서요.》
지운섭이도 그를 잡아끌었다.
《아니, 방금 이 지운섭이 효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만큼 강의를 했는데…》
림성하는 머리를 흔들며 그들을 밀어놓았다.
《걱정마오! 일없다니까.》
감각으로 느끼는데 습관되여있고 자기의 감각을 전적으로 믿는 그였다.
그때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주광혁이 들어섰다. 별스레 절뚝거리는것이 알렸다. 엄격한 무균상태를 보장하기 위해 몸을 씻고 위생복까지 걸치고 들어왔지만 무엇때문인지 입술이 잔뜩 마르고 터져있었다.
림성하는 또다시 후끈 달아오르는 증기온도를 느끼며 그를 노려보았다.
《어디 갔댔소?》
대답이 없다. 고개를 떨구고 바닥에 눈길을 주고있을뿐…
삑!- 삑!- 조작반에서 노란 신호등이 깜박거렸다. 시료채취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하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누구도 그것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림성하를 주시하며 꼼짝 않고있었다.
여전히 껌벅거리는 신호등…
《그래 동문 이 시험에서 배양액처리가 중요하다는것을 모르오?》
주광혁이 고개를 들었다.
《저, 기사장동지…》
《그만하오! 어쩌면 이럴수 있는가?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있는 동무가 자리를 비우고 제 볼장을 보다니?…》
《…》
주광혁은 아무말없이 눈길을 떨구었다.
림성하는 괴로왔다. 주광혁이만은 가장 믿음직한 방조자로 되리라고 믿고있었는데… 그는 비칠거리며 눈앞을 가로지른 작은 배출관을 꽉 잡아쥐였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호흡이 딸리고 구토감이 치밀고…
무거운 침묵을 깨며 송수만 황금태로인이 말했다.
《기사장, 배양액을 넘길 시간이 됐네.》
그제서야 림성하는 본래의 자기로 돌아왔다.
《그럼 아바이, 시작합시다.》
그 한마디를 신호로 모두가 자기 위치로 흩어져갔다. 주광혁이만이 기사장의 눈치를 보며 우두커니 서있을뿐… 림성하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동문 왜 아직 그러구있소? 처벌은 후에 받기로 하구 빨리 자기맡은 일을 해야 할게 아닌가.》
순간 시꺼멓게 죽어있던 주광혁의 얼굴이 환히 빛났다. 어느새 한손을 귀밑머리에 가져다붙이며 그가 웨쳤다.
《알았습니다, 기사장동지!》
주광혁은 해연의 옆자리로 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그 걸음새가 부자연스러웠다. 한발을 질질 끄는것 같기도 하고 약간 저는것 같기도 했다. 그것을 띄여본 해연이 깔끄럽게 물었다. 《한가지 물어도 되겠어요?》
《묻소, 백가지라도.》
《그래 동문 밤낮 혁명적군인정신에 대해 말하면서 그게 뭐예요. 자기 초소를 비우고…》
《혁명적군인정신이 있었기에 천리길을 갔다가 왔소.》
《뭐 천리길을? 어마나, 그런 자유주의까지…》
주광혁이 낮게 주의를 주었다.
《해연동무, 온도계에서 눈을 떼지 마오!》
그때 림성하가 소리쳤다.
《배양중지! 순간살균!》
공업시험소 소장 김대원과 송해연, 지운섭을 비롯한 공업시험소 시험기사들이 분주하게 뛰여다니였다. 온도를 보장해주며 첨가제를 넣은 배양액이 관을 따라 본배양기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황금태로인이 지운섭에게 소리쳤다.
《무슨 기미가 알리지 않아? 모르겠다구? 공기가 새고있단 말이야! 공기가 부족해.》
림성하가 급히 압축기쪽으로 달려갔다.
《압축기 회전수 높이시오!》
림성하가 안타까와 돌아치는데 어느새 주광혁이 고무판대기로 압축관을 힘껏 비끄러매기 시작했다. 시험기사가 날랜 솜씨로 그를 도왔다. 드디여 공기가 새던것을 막았다.
림성하는 그만 맥을 놓고 주저앉고말았다. 과연 이런 낡은 시험설비로 효소생산을 최첨단수준에 끌어올릴수 있겠는가?… 한쪽에서는 당과류설비들을 현대화하고있는데 여기선 여전히 낡은 설비로 시험을 하고있으니… 문득 쑤치오가 효소생산에 필요한 중요시약과 일식으로 갖추어진 효소배양설비를 계약하자고 제기했다는 지배인의 말이 생각났다. 최첨단의 효소배양설비, 우리에게도 그런 효소배양설비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송수만로인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기사장, 맥을 놓지 말게. 남들이 보는데서 이러면 어떻게 되나, 응? 우린 다 효소배양에서 제일 실력이 높은 기사장을 믿고 전투를 벌리는데…》
림성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불이 꺼졌다. 해연이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정전이예요!》
림성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송수만로인이 불안해하며 중얼거렸다.
《이거 큰일이구만! 응?》
모두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로인이 또 말했다.
《기사장, 이거 어쩌면 좋은가? 한창 압력이 올라가고있는 때에 정전이 됐으니…》
화학실험을 비롯한 많은 실험들은 대개 련속공정들이다. 때문에 도중에 정전이 되면 며칠동안 진행해오던 실험을 처음부터 다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온도와 압력에 예민한 효소배양은 정전이 되면 배양기안의 압력이 낮아져 잡균들이 새여들어가 오염을 일으키게 된다. 효소배양에서 오염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밀봉된 배양기에 압축공기가 모자라 탕크안에서 자라던 효소생산용균들이 모두 질식되여 죽어버리고마는것이다.
림성하는 의자에 발을 걸채며 전화기로 달려갔다.
《동력과, 동력과!… 빨리 발동기를 돌리시오! 시급히 공업시험소에…》
대답이 없다. 다급히 송화기를 입으로 불며 찾아보았으나 이번에는 감도조차 없다.
주광혁이 손전지를 켜들고 나섰다.
《제가 갔다오겠습니다.》
그러나 몸을 홱 돌려 몇발자국 내짚던 그는 별안간 문앞에서 비틀거렸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릎을 꺾으며 가느다란 신음소리까지 내였다.
림성하가 제때에 달려가 그를 한옆으로 밀어내였다.
《동문 여기서 배양액이나 관찰하오. 발동기는 내가 알아보겠소.》
그러는 그를 해연이가 막아섰다.
《그만두세요, 기사장동지. 여기 숱한 사람들이 있는데 하필 자기가 나서면서…》
《이럴 땐 기사장이 가는게 더 낫소.》
해연은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아니, 시험소장을 할 때도 저 혼자 밤새껏 불을 때구 졸이구 하더니 참…》
그러나 어느새 기사장은 밖으로 나가고있었다.
다들 묵묵히 서있었다. 주광혁이 전지를 휘두르며 배양탕크쪽으로 갔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송해연이 그의 뒤에 대고 쌀쌀하게 말했다.
《기사장동지가 동무의 그 자유주의행동때문에 얼마나 속이 탔는지 알아요?》
《알고있소. 이제 그 리유를 말해주지. 물론 고집쟁이 해연동문 이 주광혁의 말을 믿진 않겠지만.》
《뭐예요, 또 트집이예요?》
《됐소, 따라오기나 하오.》
그는 배양탕크뒤쪽에서 작은 귀중품함같은것을 꺼내더니 그것을 전지불로 비쳐보였다.
《해연동무, 이걸 당비서동지한테 좀 가져다주오.》
《이건 뭔데요?》
《곰열이요.》
《예?!》
해연은 도무지 믿을수 없다는듯 손을 뒤로 감추고 한발 물러서기까지 했다.
《동문 또 나를 놀리자는거예요?》
주광혁이 작은 함통을 들고 바투 다가섰다. 무섭게 성이 난듯 한 거동이였다.
《난 때없이 롱질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요! 알겠소?》
《아니, 그럼?…》
《이 함속엔 당비서동지가 언제부터 안타까이 찾고있는 곰열이 들어있소. 기사장동지의 아주머니 병치료에 시급히 필요한것이라고 하오.》
《그러니 이것때문에 천리길을?…》
《어서 가져다주오. 비서동지가 지금 안타깝게 기다리고있을거요.》
그것은 거의나 명령에 가까운 어조였다. 해연은 얼결에 그 함을 받아들며 고통스럽게 씨근거리는 그를 두려워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
림성하는 동력과로 가고있었다. 공장구내는 온통 새까맸다. 조립전투를 벌리던 당과류직장도 어둠속에 잠겼고 꽝꽝 쇠판대기를 두드려대던 공무직장쪽도 조용했다. 온 공장이 정전이다. 나라의 모든 공장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가뜩이나 부족되던 전기사정은 더 어려워지고있다. 하지만 현대화된 새 설비들을 빨리 조립하고 시험공정을 거치자면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한 곡산공장이다.
갑자기 걸음이 비칠거렸다. 또다시 어지럽고 숨이 차고 메스꺼웠다. 아까 효소를 먹은것때문인듯… 시간이 지나면서 인체의 물질대사가 변하고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그건 분명 균이 아니라 식물성곰팡이류의 효소이다. 그것도 콩에서 추출한것이 틀림없는!…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걸음이 잘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속에서는 여전히 사색이 줄달음치고있다. 콩은 너무 원가가 높아. 우리 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자면 어떻게?… 먹이로 나가는 밀기울에서 뽑을수도 있다.… 그러면 아까운 콩도 쓰지 않고 균도 국산화할수 있으며 원가도 적게 들것이다.
별안간 앞에서 전지불이 휘딱거렸다. 두런두런하는 말소리도 들려왔다. 저쪽에서 먼저 물었다.
《게 누구요?》
림성하가 다가가며 마주 대답했다.
《기사장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강수일처장과 지배인 김윤걸이였다. 그들도 밤잠을 잊고 현장에서 살고있다. 아마 지금은 림성하 자기처럼 정전이 된것때문에 나왔을것이다. 특히 강수일처장은 공장에서 제기되는 모든 일에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성미이다.
아닐세라 강수일처장이 물었다.
《동력과에 가는 길이요?》
《예, 효소배양시험이 중지되여서 발동기를…》
강수일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중지시켰다.
《아, 그 발동긴 내가 공무직장에 돌리라고 했소. 설비조립에 필요한 산소용접때문에…》
《아니, 그럼 효소배양은?!》
《지금 당장 급한건 설비조립이요. 시간이 없단 말이요, 시간이!…》
한쪽입술을 깨무는 림성하를 지켜보던 지배인 김윤걸이 강수일에게 조용히 말했다.
《처장동무, 발동기를 공무에 돌리는건 우리 기사장동무와 토론해야 할걸 그랬소. 효소배양에서 정전은 치명적인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지배인동무. 하지만… 온 나라가 공장을 도와나서고있는데 우리가 발동기 하나 보장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효소배양이야 앞으로 설비조립이 끝난 다음 얼마든지 내밀수 있는게 아니요?》 그가 림성하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소, 기사장동무?…》
림성하는 말없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내리쓸었다. 웬일인지 눈귀가 떨리고 볼이 조여들었다.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몇달씩이나 애쓰던 효소배양시험이 전기를 보장하지 못해 그만 실패한것이다. 활성이 없어진 효소균들과 잃어버린 시간!… 이제 다시 순수한 효소균을 분리하고 배양시험까지 준비하자면 또 몇달이 걸려야 하는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강수일처장이 이상한 어조로 물었다.
《가만, 이게 무슨 냄새요? 동무 술마신게 아니요?》
그가 림성하에게 바투 다가서며 숨을 크게 들이쉬였다. 그리고는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옳구만! 기사장이라는 사람이 현장을 지휘하면서 술을 마시다니?!》
《예?!…》
유심히 쳐다보는 지배인의 눈길을 의식한 림성하는 그만 굳어지고말았다. 뭐라고 말하고싶은데 입이 얼어붙은듯 열려지지 않았다. 정말 지배인도 그렇게 보는가?… 주량이 대단한 지배인이지만 공작시간에 술을 마시는것을 질색한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다.
하지만 김윤걸은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것이 아니였다. 그가 한숨을 내그으며 강수일에게 말했다.
《우리 기사장은 술을 할줄 모릅니다.》
《아니, 그게 정말이요?》
《우리 기사장이야 내가 잘 알지요. 아마 시험생산을 하느라고 오감했을겁니다.》
《오감이라구요?》
오감이란 식료부문에서 특히 많이 쓰이는 말이다. 다시말하여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으로 생산된 제품을 판정한다는 뜻이다.
지배인은 손에 든 전지를 켰다껐다 하고있었다. 가까스로 화를 참고있는듯 했다.
그가 림성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기사장동무, 현장엔 시험기사나 조수들이 없소?》
《있습니다.》
지배인 김윤걸의 미간이 찌프러졌다.
《헌데 기사장동문 어째서 아래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오? 발동기때문에 제가 뛰여다니면서… 그래가지구야 공장현대화사업을 어떻게 내밀겠소?》
일군이라면 사업을 조직하고 지휘하는것이 기본이다. 헌데 이 사람에겐 기사장이라는 중임보다 공업시험소장의 일이 더 중한것 같다.…
김윤걸은 전지불을 딴데로 돌리며 다시금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그었다.
사실 몇년전까지만도 이 곡산공장에서 부기사장을 하던 김윤걸은 웃기관으로 조동되여갈 때 아무말없이 선뜻 응하였었다. 그런데 이 공장에 지배인으로 임명받고 또 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를 알고있던 사람들이 반가와했지만 그는 한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매일 매 순간 자기가 장군님의 크나큰 신임과 높으신 뜻을 받들수 있겠는지 자문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물론 그는 손탁이 센 일군으로 널리 알려져있고 또 일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일단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완강하게 내밀군 했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오늘의 현대화는 완력으로 내미는 일이 아니다. 모든것을 최첨단의 저울, 최첨단기술의 눈금으로 재여보고 정밀한 계산을 앞세우며 내밀어야 한다. 여기서 기사장의 몫은 대단히 크다.
그때 귀에 익은 손전화기의 호출음이 울렸다. 지배인 김윤걸과 강수일 두사람이 거의 동시에 습관적으로 자기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지배인의 손전화기에서 울린 소리였다.
《아, 나를 찾고있구만.》 김윤걸이 전화를 받았다. 《뭐, 누구라구?… 아, 자재공급소 허창길이!… 그래 무슨 일인데 그렇게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는거요. 뭐, 마라손경기라도 했소?… 가만, 가만… 뭐, 탄실은 기차방통이?…》
김윤걸이 손전화기를 오른손에 옮겨쥐였다. 어느새 목소리도 엄엄해졌다.
《그래 거기선 왜 떠나지 못한다는거요?… 알겠소. 내 당장 그리루 가겠소.》
그는 전화를 끊고 강수일에게 말했다.
《탄실은 기차방통들이 아직두 연봉역에 멎어있다누만. 빨리 가봐야겠소.》
《아니, 그럼 지배인동무가 직접 가겠다는거요?…》
《어쩌겠소. 그놈의 석탄때문에 정말 몸살이 날 지경이요. 보이라가 낡아빠진것이여서 석탄을 남보다 많이 먹어대니 별수가 있소?…》
그들은 벌써 기사장 림성하를 까맣게 잊고있는듯 했다. 전지불들이 휘딱거리며 저만치 앞으로 나아갔다. 주고받는 말소리도 멀어져갔다.
《그럼 난 설비조립전투장에 가있겠소.》
강수일처장의 목소리.
《인젠 좀 쉬여야 하지 않겠소?》지배인의 목소리. 《그러다 쓰러지겠소.》
그 다음말은 더 들리지 않았다. 림성하는 멀어져가는 전지불들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