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5 장

더 높은 목표

 

1

 

봄이 왔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하지만 눈에 띄우는 모든 곳에 봄기운이 서리고있다. 생기를 띠는 대동강제방뚝의 잔디풀이며 물기를 머금은 무진천의 버들개지들, 가로수들과 벽에 붙은 담쟁이덩굴에서도 새싹들이 움트고있다. 모든것이 움터나고 활기를 띠는 봄…

림성하는 여느때없이 옷차림을 깨끗이 하고 원료직장, 가공직장, 물엿직장, 열관리직장을 차례로 돌아본 다음 녀성혁신자들을 축하하는 공장회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3. 8국제부녀절, 녀성들의 명절이다. 더우기 위대한 장군님께서 3. 8절 녀성대표자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시고 공연도 보아주시며 《봄향기》화장품까지 안겨주신 때로부터 이날은 녀성들에게 더 의의있는 명절로 되였다. 모든 직장, 작업반, 가정들에서 녀성들에 대한 애틋한 정과 사랑을 품고 기쁨속에 맞이하는 날로 된것이다. 온 나라가 녀성들에게 지성들여 마련한 선물도 안겨주고 진정어린 축하의 말로 기쁨을 주는 녀성들의 따뜻한 봄명절…

벌써 공장회관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기대수리공 남자들과 또 어디선가 나타난 지운섭, 거기에 새로 부임되여온 김윤걸지배인까지 나서서 녀성들을 축하해주고있었다. 지운섭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녀자들이 좋아라 웃어대고있는데 한쪽에선 새로 온 지배인에게 떠들고있었다.

《지배인동지! 아주머니에게 기념품을 사주었습니까?》

《아침에 먼저 일어나 밥도 해주었나요?》

《꽃다발은요? 꽃다발은 얼마나 큰걸 줬나요?》

새 지배인 김윤걸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기념품만 아니라 밥도 해주고 꽃다발도 제일 큰것으로 안겨주었소.》

《아이, 정말?!…》

《정말 아니문!》

《야- 멋있다!》

《자, 인젠 다들 만족하오?》

림성하는 틀지고 위엄있는 새 지배인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언젠가 깊은 한밤중 아오먼기업가인 쑤치오의 일로 그를 도와주러 달려왔던 김윤걸, 바로 그가 곡산공장의 새 지배인으로 올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사람이 지배인으로 온것으로 하여 림성하는 한결 마음이 든든해졌다.

김윤걸지배인이 그를 알아보고 손짓했다.

《기사장동무, 동무도 어서 와서 축하해주오!》 그가 자리를 내주며 림성하에게 끔벅 눈짓을 했다. 《난 식료련합에 회의가 있어 가봐야겠소.》

그는 벌써 문쪽으로 향하고있었다. 녀자들에게 량해를 구하지도 않았고 림성하에게 무슨 회의라는것도 말하지 않았다. 군말이나 잡다한 인사치레 같은것은 하등의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한쪽에서는 와!-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지운섭이 훌륭한 목청으로 방송원의 흉내를 내고있었다.

《남성들은 한생 녀성들속에서 삽니다. 태여나 엄마! 하고 눈을 떠보니 어머니였습니다. 녀성이였습니다! 학교에 가서 살그머니 연필을 놓아준것도 벌찬 남자애가 아니라 목이 가느다란 처녀애였습니다. 장가를 드니 어머니 못지 않은 사랑을 주는 안해가 곁에 와있었습니다. 보니 그도 녀성이였습니다! 나이들어 늙어서는 이걸 더 드세요, 이 약을 잡수세요! 하는 사람이 바로 로친네인데 그도 녀성입니다! 그러고보면 남자들은 한생 녀성들의 보살핌속에 살고있습니다.》

그는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듯 멋있는 말들이 시내물처럼 흘러나오는지?… 그가 웃으며 계속했다.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남성들의 어머니이고 애인이며 안해들인 그대들에게, 인생을 가꾸어주고 꽃펴주는 이 땅의 모든 녀성들에게 이 땅의 모든 남성들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경례!》

녀자들이 좋아라 웃어댔다. 너무 재미나 배를 그러안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림성하도 웃지 않을수가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는 지운섭, 요진통마다에서 사람들을 휘동하여 웃고 떠드는것으로 유명한 지운섭이다.

지운섭을 보니 곡산공장 10대유모아에 오른 그의 일화가 떠올랐다. 고난의 행군시기 공장이 돌지 못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장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지운섭이 부직장장을 하는 과자직장에서도 여러명의 녀성로동자들이 공장에서 나갔다.

일군들의 추궁이 있었지만 녀인들이 가정을 빗대고 사정하는데는 그도 어쩔수 없다는것이였다. 점점 줄어드는 직장의 작업반성원들을 보니 지운섭이도 정신이 펄쩍 들었다. 안되겠구나, 이러다간 사람들을 다 놓치겠구나!…

마음을 도사려먹은 지운섭은 누구도 절대로 내보내지 않으리라 속다짐하며 사직서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쫓아버리군 했다. 헌데 어떻게 된 셈판인지 인원은 계속 줄어들었다. 워낙 인정에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 녀자들이 어려운 살림살이며 시어머니의 노염을 두고 눈물을 뿌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물에 적신 과자처럼 마음이 개개풀어져서 저도 함께 울며 동정하다가 끝내 제 손으로 떠밀어 보내군 했던것이다.

그리고는 또 후회를 했다. 도무지 이런 방법으로는 나가는 사람들을 막을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때문에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다가는 직장이 텅텅 비여버릴것 같았다. 회의때마다 얻어맞는것도 난사이고…

그러던 어느날 정주선당비서가 그에게 말했다.

《부직장장동무, 동무야 늘 웃음을 달구다니는 사람이 아니요. 그런데 그게 뭐요. 김치우거지처럼 풀이 죽어 축 늘어져가지구서… 지금 직장장동무두 없는 때 동무까지 이러면 직장꼴이 어떻게 되겠소.》

《뭐 별수가 있습니까. 녀자들은 다 나가겠다지…》

《한번 야유회를 조직해보오, 응? 녀자들에게 맘껏 놀아볼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란 말이요.》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바로 해수욕이였다. 어느날 그는 정주선당비서가 조직해준 뻐스에 직장녀인들을 싣고 새로 꾸린 해수욕장으로 갔다. 녀자들이 처음엔 생활이 어려운 이때 해수욕이라니?… 하고 놀라와했지만 누군가 멋진 수영복을 사들고 나타나자 마치 경쟁이나 하듯이 저저마끔 그 준비에 극성이였다.

그렇게 마련된 해수욕… 바로 그날 그 바다가에서는 곡산공장 10대유모아에서 제일 첫번째 순서를 차지한 그 유명한 일이 벌어졌었다.

흰 물갈기를 날리는 파도, 드넓은 바다를 나는 갈매기… 흥얼거리며 모래불에 불고기판들을 주런이 걸어놓은 지운섭은 부끄러움을 타며 뻐스에서 나오지 못하는 자기 직장의 소박한 녀자들에게 소리쳤었다.

《아, 뭘 꾸물거리구 있소? 빨리 해수욕을 하고 어죽도 쒀야 할게 아니요, 엉?!…》

수집게 뻐스차창을 내다보며 서로 밀치닥거리던 녀인들이 별안간 벅작 떠들어댔다.

《아니, 우리가 왜 의자밑에 숨는다는거요? 뭐가 못나서!…자, 우리 부직장장이 뒤로 휘뚝 넘어지게 가슴을 쭉 펴구 나가자구요. 용감하게!》

녀자들이 몸을 옹송그리며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당장 수영복이 터질듯 한 땅딸보 계산원이 제일먼저 나오고 그뒤로 껑충한 키에 후줄근해보이는 3반반장이 따랐다. 다들 용케도 알락달락한 수영복은 다 준비했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물함지같은 몸을 겨우 가린 녀자가 나오는데 그는 늘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하던 창고장이였다.

지운섭이 눈살을 찌프렸다.

《에이구, 쯧쯧… 꼭 만화영화에 나오는 배불뚝이 너구리 한가지로군!》

그는 녀자들이 귀를 기울이고있는것을 보자 우정 목소리를 높여 한마디 더했다.

《참, 그러구보니 만화영화의 그 령리한 너구리는 녀자였는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그도 자기가 한 말이 우스워 머리를 젖히고 허허… 웃어댔다. 다음순간 저도 모르게 머리를 돌려 외면하지 않을수 없었다. 녀자들모두가 하나같이 캐득거리며 수집게 몸을 꼬며 걸어가고있었던것이다. 할끔할끔 그를 곁눈질하며 마치 불판에라도 올라선듯 엉기엉기 모래불을 밟으며 바다물에 들어서는 크고작은 녀인들…

그런데 웬걸, 물속에 뛰여들어 파도를 맞던 녀자들이 거의 일시에 담이 커진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물결이 가슴노리를 적시고 온몸이 파도속에 잠겨드니 부끄러울 리유도 없어졌는지 모른다.

다들 물장구를 치며 정신나간것처럼 깔깔거리며 떠들어대고있었다. 서로 물을 끼얹으며 째지는 소리도 질렀다. 그러다가 제일 선참으로 물에 뛰여든 계산원이 모래불에서 불쏘시개를 줏고있는 지운섭을 향해 소리쳤다.

《부직장장동지요, 거기서 혼자 뭘하구있어요. 빨리 여기로 들어오세요.》

그것을 신호로 숱한 녀자들이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요. 우리랑 같이 수영을 하자요.》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요. 빨리요!》

《수영복이 없나요, 예?》

《없으문 뭐라나, 물속에 들어오면 안 보이는데.》

《그래, 그래! 부직장장동지, 어서 들어오라요. 우린 보지 않을게요.》

녀자들이 이쯤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 어떤 억대우도 견디여내지 못한다. 지운섭은 아예 못 들은척 하고 나무가지들을 모으고있었다. 그런다고 그를 그냥 놓아줄 녀자들이 아니였다. 한결 도담해진 녀자들이 물에서 쓸어나왔다.

《부직장장동지요! 어서 물에 들어가자요.》

《어서요. 우리만 수영할순 없잖아요.》

《그래요. 같이 하자요!》

《물에선 물고기처럼 쌩쌩 난다구 했어!》

지운섭이 질겁하여 두손을 내흔들었다.

《아, 아!… 제발 이러지들 말라구요. 난 물에 들어가면 돌멩이 한가지요!》

그가 사정하고 간청했지만 녀자들은 막무가내였다. 모두가 달려들어 버둥거리는 그의 허리와 팔다리를 높이 들어 바다물에 처넣었다. 새된 비명소리가 터졌다.

《아이구!… 사람살리오!-》

지운섭이 허우적거리며 소리질렀다. 짠 바다물이 연방 입에 쓸어들었다. 그것을 꼴깍꼴깍 넘길 때마다 눈앞이 어질어질해났다. 인젠 다로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발버둥치는 그의 머리칼을 움켜잡더니 우로 버쩍 들어올렸다. 간신히 숨을 내쉬며 눈을 떠보니 어린이과자반의 제과공처녀였다. 그 처녀는 해사하게 생긴데다가 수영도 잘했다. 지운섭은 처녀에게 구원된것이 너무 고마와 연신 입을 놀렸다.

《고맙구만, 고마워!… 겉보기가 속보기라더니 마음 또한 심청이로구만.…》

물에서 그를 꺼내준 녀자들이 또 벅적 떠들어댔다.

《얕은 물도 남자가 들어가면 깊어지는 모양이야!》

《아마 룡왕님이 부직장장동지를 녀자로 알았겠지 뭐.》

《하긴 우리 부직장장은 미남자니까!》

그제야 정신이 든 지운섭은 슬그머니 목을 빼들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구원된 그곳이 깊은 바다가 아니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물이 허리에도 차지 않는 곳이였다. 녀자들이 바다물에 처넣는대로 어푸러진채 일어날념도 못하고 그냥 죽는다고 아부재기만 쳤던것이다.

인상깊은 해수욕이였다. 그후 공장에서 나가겠다는 녀자들은 적어지고 여름철이 다가오기 바쁘게 해수욕을 가자는 성화에 직장장이나 부직장장인 지운섭이 진땀을 뺄 지경이였다.

언제나 기지있는 유모아로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해주는 지운섭, 많은 사람들이 그가 공장에 다시 돌아온것을 기쁘게 여기고있다. 한때 그가 공장을 뜨려 할 때에조차 림성하는 그가 결코 돈이나 바라고 먹을알이 있는 곳을 찾아간 사람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 지혜롭고 무엇인가 새것을 지향하는 열의도 높은 정열적인 사나이 지운섭. 결함이라면 흔히 가까운 사람들이 말하듯이 남보다 한박자 더 빨리 눈알을 굴리는것이라고 하겠는지?…

지운섭을 둘러싼 녀자들은 그냥 웃고 떠들었다. 얼마나 좋은가, 저들이 웃고있는 모습은!… 언제나 말없이 가정을 떠이고온 녀성들, 연약한 그 어깨에 한 가정만 아니라 이 큰 곡산공장까지 떠메고 살아온 녀인들, 남자들보다 더 많은 짐을 걸머진 그들이 오늘은 온갖 시름을 잊고 마음껏 웃고있는것이다. 마냥 즐겁게 웃고있는것이다. 그런데 안해는 지금 어디에 가서 뭘하고있는지?…

《아니, 기사장동지. 여기서 뭘해요? 외기러기처럼…》

녀자들이 자기들의 놀음에 그를 끌어들이였다. 지운섭이 눈짓한것 같았다. 또다시 방송원의 목소리를 내는 지운섭.

《자, 이제부터 곡산공장의 특기인 형상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일 처음순서는 춘향과 리도령이 광한루에서 만나는 장면!… 춘향역에는 송해연, 리도령역에는…》

뒤에서 녀자들이 소곤거리며 대주었다.

《기사장을 불러내세요!》

《그래요, 기사장동지여야 어울려요.》

림성하는 깜짝 놀라 뒤걸음쳤다. 급히 달아나려는데 녀자들이 그를 붙들어세웠다. 정색해진 지운섭이 엄숙하게 말했다.

《어쩌면 그럴수 있습니까! 기사장동지, 오늘은 녀성들을 위한 날이라는걸 모르십니까?》

딱해진 림성하가 떠듬거렸다.

《저, 난 말입니다. 방금… 아니, 저기서 회의가…》

녀자들이 벅적 떠들어댔다.

《지금은 안돼요!》

《아유, 저것 좀 봐요! 우리 기사장동지가 새색시처럼 얼굴이 빨개지는걸!…》

그때 허우대가 큰 한 청년이 그들앞에 불쑥 나섰다.

《리도령의 역은 내가 맡아하는게 어떻습니까?》

녀자들이 입술을 감빨며 그를 재빨리 살폈다. 물엿직장의 공정기사 주광혁이였는데 후리후리한 키에 얼굴이 거무스레한 남자였다. 굳세게 생긴 저 용모로 량반집 도령님역이라니?… 녀자들이 머리를 기웃거리는데 그가 또 웃으며 말했다.

《뭐 자세히 뜯어보지 않은들… 사실 나야 인물이 좀 못난 편이지요. 언젠가 내가 일을 끝내고 가는데 동네아주머니들이 이렇게 묻지 않겠소. 〈여보세요, 탄공급은 언제 해요?〉 얼굴이 시꺼머니 탄공장 사람인줄로 알았겠지요. 그래도 좋수다. 녀자로 태여났더라면 못생긴 녀자겠지만 남자루 났으니 단군의 용모지요.》

녀자들이 환성을 질렀다.

《야! 멋있다!》

《말도 청산류수구나야!》

《배우 찜쪄먹겠어!》

녀자들이 좋아하니 지운섭이 나서서 결론을 주었다.

《현대판리도령은 바로 이런 사람이여야 제격이란 말이요. 그렇지 않습니까, 녀성동지들?…》

《옳습니다!》

《합격입니다!》

녀자들이 그들 두사람을 둘러싸며 웃고 떠드는통에 가까스로 억지를 모면한 림성하는 그들을 뒤에 남기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였다.

춘향과 리도령… 자기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련인들이다. 가장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엮은 그들…

림성하는 머리를 흔들며 걸음을 빨리했다. 웃고떠드는 그들모두에게서 한시바삐 멀리 벗어나고싶었다. 그래, 난 저들과도 다르다. 집에서 그를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다. 래일의 다정한 약속도 없다. 그렇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너 림성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엇을 믿고 무엇에 끌려 가정을 이루었던가?…

그것은 언제인가 고속도로건설장에서 있은 그 일때문이였다. 그때 공업시험소 시험기사였던 림성하는 곡산공장청년들이 맡은 구간의 암반발파를 돕기 위해 도로건설장으로 나갔었다. 그날 림성하가 직접 발파심지에 불을 달았다.

지금도 그때의 일이 눈에 선하다. 눈앞에서 뿌직뿌직 타들어가던 도화선… 불을 달기 바쁘게 사람들이 급히 대피장소로 몸을 날렸다. 림성하도 서둘러 그들을 따라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속으로 《폭발가스가 내는 힘 F와 폭발가스의 압력 P, 폭발가스의 작용면적 S…》하고 열심히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만 돌부리에 발을 걸채여 쓰러졌다. 발파구멍이 빤히 보이는 돌밭의 구뎅이였다.

그를 지켜보고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거의 일시에 목청껏 소리쳤다.

《성하동무, 왜 그래? 일어나라!》

《뭘하구있어. 빨리 일어나지 못하구?…》

《성하!-》

그런데 웬일인가? 벌떡 몸을 일으켰으나 그만 그 자리에 다시 허리를 꺾으며 구겨박히고말았다. 발목이 부러진듯… 온몸을 찌르는 지독한 아픔을 이겨낼수 없었다.

바로 그때 그가 구겨박힌 곳으로 새처럼 나래를 펴고 날아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마치 솔개미가 병아리를 채가듯 성하의 뒤덜미를 움켜잡더니 구뎅이에서 끌어내고는 허리를 껴안은채 경사면으로 데굴데굴 굴러내렸다. 마침내 두사람이 한덩어리가 되여 개굴창에 구겨박혔을 때 요란한 폭음이 터졌다. 수많은 돌멩이들이 우박처럼 쏟아져내리고 바위돌들이 굴러내렸다. 커다란 바위돌 하나는 바로 그들이 쓰러진 개울의 작은 도랑창에까지 굴러와 코를 박고있었다.

그들은 죽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 어떤 따뜻하고 부드러운것이 림성하의 가슴을 짓누르고있었다. 그는 한순간 숨을 죽였다. 난생 처음으로 느끼는 뜨거운 감각… 아니, 그뿐만이 아니였다. 무엇인가 한없이 살틀한것이 또 림성하의 얼굴을 간지르고있었다. 그것은 자기를 짓누르고있는 처녀의 머리칼이였다. 이어 따뜻한 숨결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일없어요?》

그를 구원해준 사람이, 낯익은 처녀가 묻는 말이였다. 뜨겁고도 살틀한 입김… 다시금 숨이 막혔다. 가슴이 뻐근했다. 페부로 슴배여들어오는 처녀의 입김. 그는 그 어떤 강렬한 숨결에 호흡을 빨리 했다. 정신없이 들여마시고 정신없이 빨아들이였다.

《고맙소.》

《정말 다행이예요.》

바로 그때 돌격대처녀들이 종주먹을 부르쥐고 달려왔다. 정신없이 달려와서는 개굴창에 구겨박혀있는 그들 두사람을 끌어내며 울부짖었다.

《중대장동지!-》

《살았군요, 중대장동지!》

《정말 다행입니다. 우린 얼마나 혼났는지…》

《정말 죽는가 했습니다.》

처녀들이 자기네 중대장을 붙안고 울고 웃으며 부르짖고있었다. 그 순간 림성하는 자기를 구원해준 최은경이 얼마나 아름다운 처녀인가를 비로소 깨닫는듯 했다. 흔히 보름달같이 환한 녀자라고 말하는 처녀… 그렇다. 그 처녀가 자기를 구원하였다. 돌격대의 녀성중대장 최은경, 언제인가 맞선을 보고 외면했던 처녀…

최은경이 림성하를 구원했다는것을 알게 된 석우진이 그밤으로 달려왔었다. 그가 달려와 소리치던 일도 류달리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성미가 드센 석우진은 마치 못이라도 박듯 이렇게 오금을 박는것이였다.

《오늘 있은 일은 연분이야, 연분!… 그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야. 내 접때 님자가 선을 보던 때에두 말했지만 저런 처녀는 대낮에 초롱불을 들구 다녀두 찾지 못해!》

《예.》

《그러니 두말할게 있나. 당장 약혼식을 하자구. 더는 미룰수 없어. 알겠나? 약혼식준빈 걱정말라구. 우리 집사람이 벌써 다 해놨어!》

《고맙습니다.》

림성하는 더 할말이 없었다. 언젠가 대수롭지 않게 녀자가 안 보인다고 한 말이 진정 부끄럽게 여겨졌다. 자기를 부둥켜안고 개굴창으로 굴러들던 최은경, 그의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퍼붓던 최은경을 다시 상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처녀의 가슴속에 간직된 그 희생적인 헌신이 마치 펄펄 끓는 쇠물처럼 그의 마음을 녹이고있었다. 처녀의 그 뜨거운 정에 심장이 녹았다고 할가.… 그런데 그렇듯 헌신적이던 안해가 지금은 그를 두고 떠나가버렸다. 왜? 무엇때문에?…

그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무엇이 그토록 안해를 노엽혔는가?…

사랑이란 살틀한 애무만이 아니다. 부부간에 제일 중요한것은 믿음이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사사로운 일들에는 전혀 참견하지 않았을뿐인데?…

그는 괴로왔다. 웬일인지 집을 나간 안해가 아직도 그의 가까이에서 떠나지 않고있는듯 한 느낌이였다. 지금 이 시각에도 그와 함께 숨쉬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정 그의 마음을 아프게 허비고있는듯…

그때 손전화기에서 신호가 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시오.》

《아 기사장동지,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 한정민입니다.》

《아니, 동무가 어떻게?…》

언제인가 강수일처장에게 용해가마의 공학적원리를 열심히 설명하던 그 젊은 연구사였다.

한정민이 숨찬 소리로 말했다.

《아까부터 기사장동지를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나를? 왜?…》

한정민은 재빨리 속삭이듯 했다.

《빨리 오십시오. 현대화지휘부에서 과학부총장선생이 기사장동질 기다립니다.》

《과학부총장선생이?… 알겠소.》

그는 걸음을 빨리 했다. 또 기술협의회가 열린것이다. 설비조립과 프로그람개발이 동시에 벌어지고있으므로 이런 기술협의회가 임의의 순간에 자주 벌어지군 했다.

회관앞마당을 거의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그는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장대한 체구가 그를 막아섰던것이다. 통이 넓은 바지가랭이, 단단하게 틀어쥔 주먹, 쩍 벌어진 가슴통… 처남인 최두만이였다.

최두만이 불쑥 편지를 내밀었다.

《누이가 보낸거우다.》

림성하는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언젠가 보내온 그것과 꼭같은 편지…

이때 손전화기에서 또다시 신호음이 울렸다. 한정민연구사가 재촉하고있는것이였다.

안해의 편지를 받아든 림성하가 주머니속에 그것을 쓸어넣는데 최두만이 퉁을 놓았다.

《어서 편질 보시우. 누이가 꼭 대답을 받으라구 했수다.》

《난 지금 바쁘오.》

최두만이 고집했다.

《그래두 읽어보시우. 난 대답을 받지 않으면 안되우다.》

그도 제 누이처럼 무서운 고집불통이다. 한번 우기면 담벽도 문이라고 냅다 미는 성미이다.

림성하는 하는수없이 편지를 도로 꺼내들었다. 눈에 익은 안해의 글씨를 무심히 살펴보던 그는 한순간 입술을 꼭 깨물었다. 갑자기 숨이 가쁘고 피가 뛰는것을 느꼈다. 꼭꼭 박아쓴 글줄들에서 다만 정국이라는 글자만이 편지를 꽉 채우며 그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기사장사업을 하면서 애를 돌보느라 힘들거예요. 애를 저한테 보내주세요!… 그렇게 하는것이 당신에게도 그리고 어린애한테도 좋을거예요. 부탁해요. 꼭 보내주세요!…》

《안돼!》 하고 그는 마치 안해가 눈앞에 서있기라도 한듯 편지를 구겨쥐며 성급히 부르짖었었다. 《정국이만은… 절대 보낼수 없소. 안돼!》

《하지만 매부.》 최두만이 중얼거렸었다. 《사실 이건 누이나 나나 같은 생각인데… 너무 그러지 마시우. 다 매부를 위해 그러는건데…》

《뭐, 나를 위해 그런다구?》 림성하는 참을길 없는 분노에 못이겨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최두만이 뒤걸음치며 씩씩거렸다.

《아 아, 왜 이러시우? 난 뭐 누이와 매부사이에서 마음고생이 없는줄 아시우?… 잡아먹을 놈은 돼지라구 왜 다들 나하구만 해보는거요?》

림성하는 그를 붙잡고 끌어갔다.

《똑똑히 알아두라구. 정국이만은 절대 안돼! 알겠어?》

또다시 울리는 손전화기의 전자음향신호, 기술협의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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