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0 회)
제 4 장
아침노을
9
날이 어둡고있었다. 정주선은 칼바람이 윙윙거리는 공장구내를 걷고있었다. 뒤에서 두사람이 따르고있는것도 알지 못했다. 좀전에 강수일처장이 기사장에 대하여 심한 불만을 터놓았던것이다. 한마디로 림성하가 공장기사장으로서 제구실을 잘못한다는 의견이였다.
《아직 젊은 사람이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하고 강수일은 말했었다. 《큰 공장의 기술업무를 맡았으면 심사숙고해야 하겠는데 그저 술덤벙물덤벙하면서…》
강수일은 그러한 실례를 몇가지 들었다. 남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지어 자기가 이미 결론준것도 제멋대로 뒤집어엎군 한다는것, 당앞에 결의다진 조립기일을 무조건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일한다는것 등…
그때 정주선은 신중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료해해보긴 하겠습니다만… 사실 우리 기사장동문 제멋대로 하는게 없습니다. 지배인동무랑 나랑 꼭 토론하구서야 사업을 조직하는데 습관되여있습니다. 우린 당의 뜻대로 지배인, 당비서, 기사장의 3위1체를 보장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고있거던요. 하지만… 일단 제기된 문제이니만큼 그에 대해선 꼭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그는 속이 좋지 않았다. 사실 강수일은 처음부터 림성하를 탐탁하게 보지 않았다. 큰 기업소의 기사장으로서는 너무 젊고 경험없다고 무시하는지도 모른다. 자기자신도 젊은 일군이라는것을 그는 잊고 있는듯 했다. 그래서인지 공장에서는 모든 일을 3위1체의 원칙에서 내밀고있는데 그는 기사장방에서 진행되는 기술협의회에 들어가서는 기사장을 대신했고 현장에 나가면 직장장을 대신하기가 일쑤라고 한다. 그가 3위1체도 모르고있단 말인가? 아니면 아래단위의 일이라고 해서 그것을 무시하고있는것인가?…
그는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머리를 짓숙인채 걷고있었다. 마음이 언짢아 지금 자기가 어데까지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또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부지중 어떤 이상한 느낌에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보니 아까부터 그냥 따라오고있는 두사람이 있었다. 기사장과 지운섭이였다.
《왜 따라오는거요?》
《…》
말을 못한다.
《무슨 할말이 있소?》
《예.》 림성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운섭동무가 비서동질 꼭 만나겠다구 해서…》
《그런데 기사장동문 왜 같이 따라다니오? 할말이 있으면 제가 할것이지…》
《저, 비서동지.》
지운섭이 갈린 소리를 짜냈다. 그러나 정주선은 손을 내젓고말았다.
《난 동무하군 할말이 없소.》
그는 돌따서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따라오는 발자국소리, 그가 서면 두사람도 멎어선다. 그러면서도 입은 열지 못한다.
기사장이 그를 가만히 불렀다.
《비서동지!》
정주선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바투 따라선 지운섭에게 몸을 돌리며 물었다.
《그래 할말이란게 뭐요?》
《저, 비서동지.》드디여 지운섭이 힘들게 혀아래소리로 말을 떼였다.《제가 잘못했습니다. 제일 어려운 때 공장을 외면했던 이 지운섭을… 욕해주십시오. 제 손으로 공장을 일떠세울 생각은 안하고 남들이 번듯하게 꾸려놓은 곳에 가서 둥지를 틀려고 했으니 전 정말… 몹쓸 놈이였습니다.》
《…》
정주선은 말없이 그를 치떠보기만 했다. 차디찬 바람이 윙윙거렸다. 속까지 떨려나는듯 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을 살피던 기사장 림성하가 다시 한마디 했다.
《비서동지, 어떡하겠습니까. 진심으로 뉘우치는데…》
정주선은 머리를 저었다.
《한번 배반한 사람은 두번, 세번 배반하는 법이요.》
《아닙니다, 비서동지!》지운섭이 그를 붙들며 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전 벌써… 맨 처음부터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게 공장소식을 알아보구… 정말입니다. 우리 소문이 오복금을 통해서 다 알아보구 기회만 있으면 공장에 찾아오군 했습니다.》
《공장에 등을 돌려댈 때는 언젠데 벌써 후회하게 됐다는거요?》
《전 사실… 공장이 싫어서 그랬던것은 아닙니다. 낡은 설비를 돌려가지고는 저의 재능이 다 발휘될것 같지 못해… 뜨려 했던겁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우리 곡산공장을 다시 살려주시였으니… 인젠 공장이 최첨단기술의 바다가 됐으니… 그래서 여기로 올 때마다 비서동지한테 제 잘못을 빌고싶었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못했소?》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웠다?…》
《예, 부끄러웠습니다. 비서동지, 정말입니다!》
그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쏟아져나오는것을 보면서 한순간 정주선은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있던 랭랭한 느낌이 가셔지는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최첨단의 바다를 찾아왔다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부끄러웠다는 말도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마음속 진정에서 우러나왔으리라는것을 그는 믿고싶었다.
마음속 진정이 제일 귀중하다. 그런데 그것은 과장된 눈물이나 목메인 하소연으로 나타나는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것도 아니다. 오직 심장의 감각으로만 보고 듣고 느껴지는것이다.
사실 그가 공장을 뜨려 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마음이 괴로왔던것은 당비서인 정주선 그였었다. 지금껏 누구보다 더 그를 사랑하고 자랑으로 여겼기때문이였다. 발효공학기사인 그의 명석한 두뇌를, 그의 남다른 예술적재능과 꺼질줄 모르는 락천성과 유모아를 사랑했었다. 때로는 그의 웃음과 노래가 눈물겹게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의료부문에서 약제사로 일하는 안해가 자주 약초캐기로 동원되므로 1년에도 몇달씩 제 손으로 아들을 힘들게 키우고있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한번은 그가 어떤 동무에게 전화를 거는것을 보고 정주선은 자기의 안해를 그 집에 보낸 일이 있었다. 어느 한 중앙기관에서 책임부원으로 일하는 정주선의 안해는 그날 지운섭의 집에 들려 밤이 깊도록 벌찬 아들의 교복도 빨아 다려주고 김밥이며 갖가지 맛좋은 반찬감들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 애의 명절놀이를 위한 준비였다.
그날 지운섭은 정주선의 안해앞에서 울며 말했다고 한다.
《아들 보기 부끄러웠는데… 저것 보시우. 우리 애가 이 못난 아버지를 고맙게 보고있구만요. 내가 해준건 하나두 없는데두 말이지요. 이런게 비서동지가 늘 말하는 마중물이겠지요? 고마운 마중물!…》
정을 바라고 정에 무르고 또 정에 감사를 드릴줄 아는 지운섭이다. 그러한 지운섭이였으므로 정주선은 그가 공장을 뜨겠다고 했을 때 너무도 노하여 다시는 공장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정 가겠으면 경공대졸업증도 내놓고 가라고 소리쳤던것이다.
끝내 그는 더 좋은데로 간다고 사방 소문만 내던 끝에 다시 공장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제발 자기를 다시 받아달라고 울면서 하소하고있다.
《비서동지!》 림성하가 다시 그를 조심히 불렀다. 《한번만 용서해줍시다.》
《기사장동문 왜 그의 편을 들지 못해 그러오?》
정주선의 물음에 림성하는 마치 때를 기다리고있은것처럼 손세까지 써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비서동지, 사실 난… 동기동창인 이 지운섭동물 잘못 보았댔습니다. 그가 물이 흐르는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머리통이 글러먹었다구 보았는데… 알고보니 그런게 아니였습니다. 이 동문 우리 공장이 지방특산물이나 만드는바에야 내가 여기에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고 하면서 발효공학기사로서 자기 기술을 발휘할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헤맸습니다. 말하자면 최첨단기술의 바다로 흘러가려고 했다고 할가요. 그 마음도 모르구 난…》
《그렇단 말이지.…》
정주선은 소리없이 미소를 그리였다. 기사장의 그 말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역시 기사장다운 말이다. 기사장이라면 응당 발효공학기사인 그를 이렇듯 귀하게 여기고 아껴주어야 하는것이다.
정주선이 다시 눈길을 돌리자 지운섭이 고개를 떨구었다.
《비서동지.》그가 울먹이며 속삭이는 말이였다. 《다시 받아주십시오. 그럼 무슨 일이든 다하겠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에 이 한몸 다 바치겠습니다.》
《다시 받아달라?…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동문 아직 공장을 뜨지 않았소. 지금도 과자직장의 부직장장이란 말이요.》
정주선의 그 말에 지운섭은 깜짝 놀란듯 했다.
《아니 비서동지, 그건 무슨?…》
《난 아직 동무의 사직신청서에 수표를 하지 않았소. 그런데 가긴 어데루 가?… 안될 소리, 위대한 장군님께 기어이 기쁨을 드리기 전엔 그 어데두 못 가!》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지운섭이 어푸러지듯 했다. 그를 붙들며 목메여 부르짖었다.
《고맙습니다 비서동지, 이 못난걸 믿어주어서… 사실 전 지금까지 비서동지의 그 마음을 알기까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정주선이 그를 잡아일으켰다.
《괴로웠단 말이지.…》
《예, 아프구 쓰리구…》
맵짠 칼바람이 공장구내에 얼어붙은 눈가루를 허공으로 휩쓸어갔다. 칼바람도 그 어떤 뜨거운 격정에 못이겨 무섭게 몸부림치는듯 했다.
그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사장이 그와 걸음을 맞추며 물었다.
《비서동진 어데로 가는 길이였습니까?》
《나 말이요?》 그는 다시금 강수일처장이 기사장에 대하여 불만을 토하던 일을 상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실은… 기사장동물 찾아가던 길이였소.》
《저를 말입니까?》
눈치빠른 지운섭이 제꺽 옆으로 비켜났다.
《비서동지, 제 그럼 공업시험소에…》
《음, 그렇게 하오.》
그는 지운섭이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림성하의 팔을 잡아끌며 은근히 물었다.
《기사장동무, 안해의 소식을 좀 알아봤소?》
《예?!》
림성하는 너무도 뜻밖이였던것 같다. 꿈쩍 놀란 기색으로 걸음을 멈추기까지 했다.
《우리 집사람 소식… 말입니까?》
《그래 친정집에 간지 벌써 한달이 넘었지?》
《아마 그런것… 같습니다.》
《그런것 같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한생 고락을 같이할 안해에 대해서…》
순간 림성하가 큰숨을 내불었다.
《어쨌든 비서동지, 그 사람 얘긴 더 이상… 꺼내지 말아주십시오.》
정주선은 입을 다물었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였다. 그런데 라이타를 몇번이나 켰는데도 불을 붙일수 없었다. 두손을 오그려붙였으나 손이 떨려서인지 찬바람이 새여들며 불을 꺼버리군 했다. 끝내 그는 화를 내며 담배대를 꺾어버리고말았다.
잠시 두사람은 아무말없이 어둠속에 마주서있었다. 립춘을 앞둔 날씨였건만 몹시 추웠다. 물러가는 겨울이 마지막발악을 하는것인지…
《기사장동무.》 마침내 정주선이 입을 열었다. 《내 꼭 동무한테 하고싶었던 말이 있는데… 동문 식료공학기사로서 그 어떤 배양액이나 효소균도 냄새나 색갈로 다 알아내고 갈라내는 사람이요. 그 어떤 화학방정식도 환히 꿰들고있고… 그런데 사람이 어째서 인간심리의 방정식엔 그리도 눈이 어둡소?》
《아니 비서동지, 그건 무슨…》
정주선이 목소리를 높였다.
《제일 가까운 안해의 마음속도 볼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공장사람들을 움직이겠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소. 그래서 내 하는 말인데… 이건 당비서로서만이 아니라 웃사람으로서 부탁한다구 할가. 무슨 일에서나 사람들의 마음을 볼줄 알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줄 아는 사람이 되기 바라오. 그래야 가정도 화목해지고 공장일도 더 잘되리라고 난 생각하오. 명심하시오.》
그는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려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뒤에서는 림성하가 얼어붙은듯 까딱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