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4 장

아침노을

 

8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온 림성하는 한동안 문턱에 걸터앉아있었다. 썰렁한 집안, 사방에 널려있는 아들애의 장난감들, 싸늘하게 식은 방바닥, 그대로 놓여있는 밥상…

녀자없는 집안은 물없는 방아간과 같다고 한다. 둥지는 새에 달려있고 살림집은 녀자에게 달려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홀아비가 돼봐야 안해 귀한줄 안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날이 어두웠다. 비로소 유치원에서 정국이를 데려와야 할 시간이 퍼그나 지났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급히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정국이를 찾아야 한다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던것이다. 그러나 유치원마당에 들어서려던 그는 흠칫 멎어섰다. 아들 정국이가 송해연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오는것을 보았던것이다. 순간 저도 모르게 뒤걸음치며 담장옆에 붙어섰다. 송해연이 여기에 왜 나타났는지 알수가 없다. 그리고 어린 아들 정국이가 어떻게 되여 송해연이와 그리도 가까와졌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크고작은 두사람이 담장곁에까지 다가왔다. 귀를 강구어 들어보니 정국이가 해연이에게 뭐라고 칭얼거리고있다.

《아지미, 나 배아파. 여기…》

송해연이 정국이의 배를 쓸어보더니 코등을 살짝 눌러주는것이 보였다.

《정국아, 너 지내 많이 먹었구나, 응? 이것 봐! 배를 만져보니 정국이가 무얼 먹었는지 다 알수 있어!》

금시 울상이던 어린것이 좋아라 캐득거렸다.

《해해… 정말? 그럼 아지미가 알아맞쳐봐!》

《자, 그럼 무얼 먹었는지 좀 볼가…》

해연이는 제법 눈까지 감고 어린것의 배를 어루쓸고있었다. 《이크, 큰 빵을 하나 다 먹었구나. 그렇지?》

《응.》

《그다음… 음, 과자를 먹었구… 또 그다음엔 삶은 닭알, 가만… 요건 뭘가? 오, 그렇지! 쬐꼬만 도마도가 한알 있구나. 원, 이런! 복숭아단물도 차있구? 그리구 이건 또 뭘가? 사탕 두알… 아니, 한알? 아이구, 세알이구나!…》

어린 정국이는 눈이 둥그래서 감탄하였다.

《야, 아지민 다 잘 안다야!…》

《알구말구. 자, 빨리 학문형님네 집에 가자. 정국이를 제일 고와하는 로할머니가 너를 빨리 데려오라구 했어.》

《응, 빨리 가자.》

그는 마음이 후더워지는것을 느꼈다.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해연이는 정주선당비서의 어머니인 로할머니의 부탁을 받았던것이다. 그리고 해연은 보나마나 정국이의 배를 만져보며 자기가 준 음식을 순서대로 말하며 어린 그 애를 깜짝 놀라게 했을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것은… 어린 정국이가 해연이를 제 엄마처럼 따르고있는것이다, 마치 제 엄마처럼!…

《아니, 기사장동지 아니예요?》

그를 알아본 송해연이 놀란듯 멎어섰다.

《아버지!》

정국이가 달려와안겼다. 그는 한동안 품에 안은 아들애의 두볼을 더듬었다.

《아버지, 나 아지미하구 왔다.》

《그래?》

림성하는 눈길을 들었다.

《해연동무, 고맙소.》

《뭘요.…》

이어 그는 정국이의 손을 나란히 잡고 걸으면서 해연이에게 물었다.

《해연인 언제 우리 정국이와 그렇게 친해졌소?》

처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집안일을 얼마나 돌보지 않으면 그런것두 모를가?…》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기사장동지가 처음 은경언니를 만났을 때 말이예요. 두사람의 결혼을 제일 지지한게 누군가요?》

《그거야 해연이였지. 내가 그 처녀를 외면하면 다시는 이 림성하와 상대하지 않겠다면서…》

송해연이 소리없이 웃었다.

《잊진 않았군요. 그때부터 은경언니와 난 서로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고있답니다. 그래서 정국이와도 친해졌구…》

《글쎄 동무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는건 알고있지만 이렇게 우리 정국이까지 해연동물 따를줄은 몰랐구만.》

《기사장동지가 모르는게 어디 한두가지예요? 참, 말이 난김에 한가지 묻자요. 기사장동진 가정의 기초와 부부간의 사랑과 의리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본적이 있어요?》

《가정의 기초? 부부간의 사랑과 의리?!… 헛 참, 난 그런데까지 머리를 쓸새가 없소. 알고싶지두 않구.》

《알아야 해요.》 해연이는 고집했다. 말투도 달라졌다. 《기사장동진 우선 그것부터 알아야 해요. 왜냐하면…》

그는 손을 내젓고말았다.

《됐소. 난 세균성알파나 글루코아밀라제균주만 생각하재두 머리가 터질 지경이요.》

《바로 그래서 문제란 말이예요.》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문제라니?》

《기사장동지.》 해연이 숨찬 소리로 계속했다. 《가정도 건설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한장한장의 벽돌을 쌓아올리면서 굳건히 세워야 하는 건설!… 그런데 기사장동진 그 모든걸 은경언니한테만 맡겼지요? 자기는 손 하나 까딱 안하구.》

《내가?》

그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림성하의 앞을 막아나섰던것이다. 뜻밖에도 그는 지운섭이였다. 이전보다 더 어깨가 처지고 후줄근해진것 같은 지운섭. 웬일인가? 그가 동기동창인 림성하앞에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늘도 무슨 연기를 하는것은 아닌지?… 모자를 벗어들고 심각하게 서있는것이 마치 상급앞에서 추궁을 기다리는 아래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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