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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김 삼 복
( 제 27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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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춘권이는 1작업반사무실 앞마당을 정신없이 오락가락하고있었다. 가슴속에서 불이 타올라 금시 그의 온몸을 태워버릴것만 같았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의 최상의 소원은 어버이수령님을 한번만이라도 직접 만나뵙는것이였다. 하기는 누군들 그런 소망을 가슴에 품고있지 않겠는가. 다만 그러한 소원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여서 오로지 행운이 차례지기를 바랄뿐이였다. 그런데 춘권이는 어느때든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다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그날이 오기를 일일천추로 갈망하고있었다. 할아버지가 수령님을 만나뵈왔고 아버지는 여러차례 수령님을 만나뵙는 행운과 영광을 지니였다. 일가의 1대, 2대가 다 수령님과 깊은 인연을 맺고있었으며 수령님께서 잊지 못하시는 청산리의 모범농민들이다. 그런데 3대인 자기 춘권이가 수령님을 만나뵙지 못한다면… 아니다, 자기도 선친들처럼 훌륭한 농민이 되여 수령님을 만나뵈와야 하며 또 그 소원은 기필고 이루어질것이다. 수령님께서 선친들을 회고하실것이고 후손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실것이다. 어느때든지 수령님께서는 만나보시려고 부르실것이다.ㅡ 이러한 기대는 확고한것으로 그의 가슴속에 자리잡고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마음의 준비와 함께 실천적인 준비 즉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농사를 잘 짓는 농민이 되도록 준비를 해오고있었다. 아직 젊다. 그러므로 시일은 얼마든지 있으며 꾸준히 일을 잘해서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모범농민이 되여야 한다. 리춘권이는 이러한 희망과 각오를 품고 하루하루를 남모르는 열망속에서 보내고있었다. 사업정지책벌을 받고있는 상태도 물론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오래 갈것으로 보지 않았다. 또 초급당단체위원장을 하든 평조합원으로 일하든 그런것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든 성실히 하면 되는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로 그가 사업정지책벌을 받고있는 기간에 중앙당지도그루빠가 나왔으며 그는 여러차례 담화를 거치면서 자기의 잘못을 더 깊이 느끼게 되였다. 그는 확실히 자기의 당생활에서 오점을 남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별문제가 아니였다. 오늘 아침 일찌기 그처럼 뵙고싶던 수령님께서 청산리에 나오시였고 조합의 일군들과 핵심당원들과 담화를 하시는데 리춘권이가 빠졌다. 책벌받은 기간이고 초급당단체위원장사업을 하지 않고있으니 빼놓는것이 응당하다. 만일 그가 책벌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 영광의 자리에 참가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는 자기의 과오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전률속에서 똑똑히 보게 되였다. 민주선전실에서 수령님께서 핵심당원들과 담화를 하고계시는데 리춘권이는 참가할수 없었고 작업반사무실에 우두커니 남아있어야 했다! 일생에 다시 없을 기회가 지나가고있었다. (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가슴을 마구 두들기며 엉엉 울었다. 오만가지 생각, 가슴을 찢는듯 한 후회, 자신에 대한 저주!… 하지만 때는 늦었다. 그는 몸부림을 치다 못해 자신을 걷잡지 못하고 사무실 안마당을 오락가락하였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쩌면!…) 시간이 자꾸만 간다. 그런데 지도그루빠성원 한사람이 급히 그를 찾아왔다. 《아, 여기 있었구만! 뭘하오? 빨리 그 작업복을 갈아입고 오시오.》 춘권이는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머리속이 잉ㅡ 하고 울리였다. 짜릿한 기대… 《예?…》 기대가 어긋날가봐 겁이 났다. 《어서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구 오라질 않소?》 《알… 알았습니다.》 대체로 짐작이 갔다. 무슨 연고인지는 알수 없는데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협의회에 참가하게 된것이 틀림없었다. 춘권이는 작업반사무실에서 집으로 어떻게 달려갔고 어떻게 옷을 갈아입었으며 또 어떻게 지도그루빠성원이 기다리고있는 작업반사무실로 다시 달려왔는지 알수 없었다. 《갑시다. 수상님께서 동무를 부르시였소.》 《예?!》 그는 무릎이 떨리며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갑시다.》 《예…》 춘권이는 발이 떨어지지 않아 잠시 머밋거리다가 지도그루빠성원의 뒤를 따랐다. 좀 지나서는 큰 보폭을 성큼성큼 내디디며 그를 앞섰다. 수령님께서 앉아 이야기를 하시는 사무실은 환한 광채가 비낀듯 하였다. 춘권이는 수령님의 눈부신 안광을 뵙는 순간 정신없이 문턱을 넘어서며 인사를 드리였다. 《수상님, 안녕하십니까!》 그는 가슴이 뭉클해와서 뒤말을 흐리였다. 수령님께 유근재가 리춘권이라고 소개해드리였다. 《소개가 없이도 리씨집안사람이란게 알리오. 할아버지를 신통히도 닮았구만. 여기 와 앉소.》 춘권이는 유근재가 내주는 빈자리에 가앉았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동무가 책벌을 아직 벗지 못하고있는데 원인을 자기자신에게서 찾아야 하겠소.》 리춘권이 머리를 숙인채 일어서서 《예.》하고 대답하는데 온몸이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리였다. 《초급당단체위원장사업을 잘한것 같지 않아. 관리위원장의 사무실에 쳐들어가서 행패를 했다는데 사실 동무의 손에 걸려들면 뼈도 못추리겠소.》 수령님께서는 그의 장대한 체구를 보며 빙긋이 웃으시였다. 리춘권이 본인은 더 말할것 없고 장영덕이 몹시 부끄러워했다. 《장사체격인 할아버지를 그 외형뿐아니라 마음도 사상도 닮아야지. 동무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다 훌륭한 농민들이요. 그러니 동무가 선대의 대를 옳게 이어가야지. 동무네 가정사는 우리 농촌의 발전력사를 그대로 반영하고있소. 토지개혁법령에 의하여 토지를 분여받은 할아버지 리준형로인은 자기 집 농사를 잘 지어 나라를 부강발전시키는데 이바지했소. 아버지 리종수로인은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 품앗이반을 무어 전시알곡생산을 보장했고 전후에 협동조합을 선참으로 조직하여 농촌경리의 복구발전과 사회주의적개조에 적극 참가했소. 사회주의제도가 확립되고 농촌경리를 기계화하며 더욱 다각적으로 발전시켜 문명한 농촌을 건설하는 시기에 아들 리춘권이가 바통을 이어받았소. 이 기간 알곡생산이 끊임없이 장성했고 농민들도 개인농에서 협동조합원으로 그 책임이 더 무거워졌고 정신생활에서도 변화가 크게 일어났소. 어제날에는 자기 땅의 주인이였다면 오늘은 집단경리의 주인이 되였소. 춘권동무, 동무의 대에 와서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는것을 알아야 해. 선대의 대를 잇는다는것은 대를 이어 농사를 계속 짓는다는, 단순히 직업상의 의무에 충실한다는 뜻이 아니요. 사실 동무는 개인농이였던 할아버지나 협동조합을 무은 아버지보다 더 폭넓고 책임적인 사업을 하고있소. 초급당단체위원장이 아니요. 더 머리를 써야 하고 더 뛰여다녀야 해. 그런데 초급당단체위원장을 못하겠다구 했다지? 말썽많은 녀성조합원을 옳게 이끌어주고 도와주지 못했고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도 원만히 못했소! 물론 그런 책임적인 사업을 한다는게 헐치 않지. 그저 농사나 짓는 일에 대겠는가. 그러나 춘권이는 크고 책임적인 일을 맡아서 사회주의농촌건설에 앞장서야지. 시대가 그걸 요구하고 당이 그걸 요구한단 말이요.》 좌석은 기침소리 하나 나지 않았으며 물뿌린듯 조용하였다. 수령님의 말씀은 리춘권이만 아니라 담화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농촌의 발전력사와 함께 자기들이 차지하고있는 몫과 책임감을 뼈속깊이 느끼도록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초급당단체위원장사업이 어려운것 같지만 그렇게 어려운것은 아니라고 하시며 당원들과 대중들에게 진심을 터놓고 사업하며 그들을 위해 심장을 바쳐야 한다고, 그것은 농민이 땅에 진심을 바치는것과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땅은 농민이 진심과 공력을 들이는것만큼의 수확을 가져다준다. 《동무의 부친은 말썽은 많으나 혼자 사는 녀성의 집에 땔나무를 해다주었다고 하오. 그 녀자가 장사하던 버릇을 못 고치고 작업반일에 자주 빠지고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수 없는 사상적병집과 함께 생활적인 애로가 있을거란 말이요. 폭격에 남편이 죽었지, 외아들이 병신됐지, 그러니 설음이 오죽하겠소? 병신아들의 다리를 고치겠다고 약을 사러 다닌다는데 동무들이 비판만 하지 말고 도와도 주어야지, 리종수로인처럼 말이요. 춘권동무는 초급당단체위원장이지만 로당원인 아버지에게서 배워야 해. 그래 동무가 그 녀성의 아들의 다리가 어떤지 한번 바지를 걷어올리고 만져 봤소? 그 애의 아버지처럼 걱정을 하며 병원에 한번 업고 가보았소?》 모진 자책감으로 하여 춘권이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우리 일군들은 우선 인간애가 있어야 해.》 춘권이는 심장이 쿡쿡 쑤시였다. 이 자리에 모인 핵심당원들도 모두 눈굽이 뜨거워났다. 《비판도 물론 해야지. 그래서 아까 문영숙동무가 농사짓기보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 더 힘들다고 했을거요. 작업반농사를 짓자니 사람들을 다루지 않을수 없지. 유가족들과의 사업도 하고 뒤떨어진 사람들도 이끌어줘야 하고 복잡한 군중을 쟁취해야 하거던. 그런데 리춘권동무는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도 잘못했다고 하오. 자기스스로 지도그루빠앞에서 누구도 모르는 내심을 내놓고 비판한것은 잘한것이요. 사람을 믿으면 진짜로 믿어야 해. 사람을 대하는데서 위선적이여서는 당사업을 못해.》 부드럽고 간곡하게 타이르며 그이께서는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 했다고, 내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내가 평양시 중구역 어느 인민반에 나갔다가 들은 얘긴데 그 인민반에 성미가 고약하고 드센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하고 욕설을 퍼붓고 며느리를 마치 종처럼 일을 시켰습니다.》 수령님께서 구수하게 이야기를 하시자 모두 긴장을 풀고 재미나게 듣기 시작했다. 《며느리도 그리 만만한 녀자가 아니여서 때로 대들고 부엌일을 게을리하기도 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니 좀 힘들기도 하였던겁니다. 그런 날이면 시어머니의 욕소리가 밖에까지 들리고 안해편인 맏아들과 어머니편인 장가 안간 둘째아들이 싸우고 온통 란가가 되군 하였습니다. 인민반에서 아무리 교양하려고 해도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겨댔고 시어머니는 옷장, 쌀뒤주열쇠를 자기가 가지고 며느리를 더 구박할뿐이였습니다. 마침내 맏아들이 세간을 나가고 둘째아들이 장가들어 둘째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역시 시어머니는 열쇠들을 자기가 차고 집안일을 지휘하며 며느리를 박대했습니다. 그런데 둘째며느리는 맏며느리하고 달라서 일체 대답질을 하지 않고 잔소리에 대해 그저 〈네. 어머니, 알았어요. 어머니말씀이 옳아요. 명심하겠어요.〉 이렇게 순종할뿐이였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웃는 낯을 짓고 옷을 빨아도 시어머니옷을 먼저 빨고 반찬이 생기면 시어머니에게 먼저 대접하군 하였습니다. 그 집에서 시어머니의 노성이 차츰 없어져갔는데 어느날 둘째며느리는 시어머니더러 어디 잠간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싫다, 너희들이나 가렴.〉하면서 로친이 돌아앉는걸 며느리가 〈어머니, 저희들의 성의예요. 같이 가자요.〉하고 웃는 낯으로 졸랐습니다. 아들부부는 어머니를 데리고 국수집에 가서 국수를 사서 대접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래도 뿌루퉁해서 〈잘 먹었다.〉할뿐이였습니다.》 듣고있던 당원들이 하하 웃음을 터치였다. 시어머니의 흉내를 수령님께서 그럴듯하게 내시였던것이다. 《그래도 며느리는 락심하지 않고 이번에는 극장으로 모시고가서 셋이 같이 연극을 보았습니다. 무슨 연극인지는 모르겠는데 내용이 좋은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온 시어머니는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며느리보고 〈이자 본 연극에 나오는 색시가 꼭 너 같더라. 어쩌면!〉하더니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시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여 두 아들을 키웠는데 그렇게 키운 아들들을 남의 집 녀자가 빼앗아가니 시샘이 나서 성격이 이그러졌던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의 집 녀자가 〈어머니, 어머니.〉하고 따르니 〈너는 딸같구나.〉하며 등을 두드려주고 그이후로는 열쇠묶음도, 일체 집안살림도 며느리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집안이 화목해지고 또 인민반이 화목해진 얘기는 더 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야기가 어떻습니까?》 《재미납니다.》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당원들이 웃으며 떠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습니다. 사람을 밉게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인간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자 이야기한 둘째며느리처럼 진심이여야 하고 진정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리춘권이에게 군대에 나갔댔는가고 물으시였다. 《전쟁시기에 나가 싸웠습니다.》 《보병이였소?》 《예, 중기관총사수를 했습니다.》 《음, 힘이 항우같으니 중기를 맡긴 모양이구만. 지금두 그저 보병인게 아니라 중기관총사수야.》하며 환하게 웃으시였다. 《예.》춘권의 긴장되였던 마음이 저으기 풀리였다. 《과오를 빨리 씻고 책벌도 벗으시오. 그리고 아들도 선대와 같은 훌륭한 농민으로 키우시오.》 … 김일성동지께서는 담화를 계속하시였다. 《관리위원장동무, 작년에 김을 묵인 농토가 얼마나 됩니까?》 《20정보가량 됩니다.》 장영덕의 길쑴하고 거무스레한 얼굴에 땀이 흐르고있었다. 《동무는 분주히 뛰여다니기만 했고 12작업반장 같은 아첨분자는 내세워주고 리종수로인 같은 진정한 방조자에게는 압력을 가했고 로인이 앓아눕자 관리위원에서 서둘러 제명해버렸소. 이런것이 관료주의요. 그래서 로인의 아들에게서 매까지 맞을번 하지 않았소?》 장영덕은 얼굴이 화끈해져서 자기 잘못을 깊이 느끼고있다고 대답을 드리였다. 《기계화반에 40여명씩이나 젊은 사람들이 들어가 건들거리고있는데 대해서도 관리위원장동무나 군인민위원장, 도인민위원장, 농업성 일군들이 다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리종수로인이 몇번 안타깝게 의견을 제기했지만 관리위원장동무는 우에서 인원수가 찍어서 내려왔다, 기술혁명이 첫째다 하며 근본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계화반에 인원수를 늘쿠는것이 기계화를 하는 방도인가? 어쩌면 모두 머리가 그렇게 굳어져있고 창발적이고 책임적인 사고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자주 말하는데 일군들이 자기가 주인이라는 립장에 서서 무엇을 하나 해도 실리를 따져가며 깐지게 해야 하겠는데 국가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될대로 되라는 립장입니다. 제 리속을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작년 가을에 연안농기계임경소를 찾아가보았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연백벌에 있는 연안농기계임경소(현재는 작업소)의 실태가 어떠하였는가? 수령님께서 가보시였을 때 그곳에는 뜨락또르가 62대인데 작업반이 12개였다. 이 열두개 작업반의 반장들은 다 유능한 운전수들이였다. 그런데 그들은 반장입네 하고 분공조직을 하고 부속품들과 연유를 창고에서 타다 주고 차가 고장나면 고치는것을 도와주고 총화를 해주는것외에 하는 일이 없었다. 실지 뜨락또르를 타고 논밭을 가는것은 어린 운전수들이였다. 그러니 그들이 논밭갈이를 제대로 하겠는가? 《동무들이 경제관리에 대한 상식이 없거나 연구가 없다는것을 알수 있소.》 수령님께서는 연안군일군들에게 말씀하시였다. 《기술기능수준이 제일 높은 운전수들을 작업반장을 시켜 〈십장〉노릇을 하게 하고 운전기술이 낮은 사람들에게 뜨락또르를 맡겼으니 어떻게 리용률을 높일수 있겠소?》 수령님께서는 작업반수를 줄이고 분조를 많이 조직하여 기능이 높은 운전수들이 어린 운전수들을 데리고 직접 논밭갈이를 하면서 이런데서는 이렇게 운전하고 이런 밭은 이렇게 갈아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쳐주면 《십장》노릇을 하지 않게 될것이고 운전수들도 논귀잡이를 갈지 않아 농민들로부터 항의와 미움을 받지 않게 될것이라고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임경소관리일군들이 모두 19명이였다. 이것은 밥보다 고추장이 많은 격이였다. 19명이 다 뭘하는가? 계획부와 부기부에 5명, 업무부에 3명, 창고원, 지배인, 당위원장… 수령님께서는 계획부에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계획사업과 부기사업은 혼자서도 할수 있다, 업무일군이 3명인데 지배인이 겸해할수 있다, 지배인이 사실 무슨 크게 할 일이 있는가? 내 생각에는 지배인 1명, 기술지도원 1명, 부기일군 1명, 연유와 부속 같은것을 관리하고 내주는 창고장 1명, 당일군 1명, (그러되 당일군은 다른 일을 겸할수 있다.) 이렇게 다섯명이면 될것 같다, 그런데 관리일군이 19명이니 14명은 놀고먹는셈이다. 이렇게 기구인원을 정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여기까지 이야기하시고 계속하시였다. 《협동조합의 기계화반에도 실지 40명이 필요한가 따져보아야 합니다. 성에서 누가 머리속으로 생각해서 만든 기구와 인원수를 떨구면 밑의 실정에 맞건 맞지 않건 관계하지 않고 그대로 하며 불합리한가, 어쩐가 하는것을 따져보지도 않습니다. 리종수로인 같은분들이 로력이 부족한데 기계화반에 40명씩 청장년로력이 들어가 놀고있다고 제기했는데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가지고는 협동조합을 관리운영할수 없고 나라살림살이를 해나갈수 없습니다.》 심각한 지적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농업부문 지도일군들이 농기계작업소의 관리일군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고 협동조합 기계화반에 숱한 청년들이 들어가 놀고있는데도 누구 하나 따져보고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은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담화를 끝마치고 당중앙위원회 부부장과 리당위원장 유근재를 따로 만나 리당총회보고서를 어떻게 쓰려하는가 묻고 다음과 같은 방향을 주시였다. 《리당총회보고서를 잘 쓰도록 부부장동무가 방조를 주어야 하겠소. 보고서방향은 서론과 성과는 간단히 언급하고 첫째 체계로서 경제사업부문을 놓고 둘째 체계를 당사업부문, 크게 두부문으로 합시다. 여기서 토지랑비, 무수확을 낸것, 남새면적확장한다고 하면서 서너번씩 갈아엎어 결국 아무 수확도 못낸것, 다음은 로력관리사업인데 영농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계화반이요, 건설반이요, 양어반이요 또 예술소조, 체육, 강습 등으로 로력을 분산시켰거나 랑비한것, 다음 사회주의분배원칙에서는 힘든 일을 하는 농사군보다 기술이 있다고 하여 뻰찌나 차고다닌 사람에게 로력공수를 더 준것 그리고 관리위원회사업에서는 관료주의적사업작풍과 계획화사업이 부족한것 등에 힘을 주어 쓰도록 하시오. 둘째 체계 당사업부문에서는 사상교양사업을 언급합시다. 로동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잘 교양하지 못해서 로동에 자각적으로 참가하지 않고 건달부리는 현상, 공동재산관리에서 공구 하나 똑똑하게 건사하지 않아 딩굴어도 가슴아파하지 않는 현상, 조합재산을 주인답게 관리하지 않는 현상에 모를 박읍시다. 과업과 결정서는 우에서 이야기한 그런 체계의 방향으로 하되 조항별로 중심적으로 실천적인 대책을 세우면 됩니다.》 부부장도 유근재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신 수령님께서 한 자그마한 농촌리당총회의 보고서방향을 이토록 구체적으로 제시하실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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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청산리사람들은 들에서 일하며 수령님의 현지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봄추위도 잊고 얼굴들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협의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입을 가볍게 놀리지 말데 대한 사전 주의가 있었으나 어차피 한두마디씩 말을 꺼내지 않을수 없어 흘린 이야기들이 과장되고 살이 붙으며 온 청산벌에 퍼져나갔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낀것은 이번의 청산리지도가 간단치 않으며 뿌리가 빠질 때까지 파고들리라는 예감이였다. 그것은 조합원들이 통쾌한 심정에 잠기게 하였다. 수령님의 덕망에 대해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이른아침에 문영숙반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살림집을 찾아주신 이야기, 문영숙이 살아온 경력을 다 들어주신 이야기, 리종수로인의 건강을 걱정해주시고 아들 춘권을 협의회에 참석시켜주시였으며 그가 당사업을 잘해 과오를 씻도록 따뜻한 가르치심을 주신 이야기, 생활이 어려운 조합원들을 잘 돌봐주며 각계층 군중을 교양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세울데 대해 강조하신 이야기, 관리위원장이 비판받은 이야기 등등…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으나 륜곽적으로나마 이야기들을 듣고서도 흥분이 가는 이야기들이였다. 협의회에 직접 참가했던 당사자들의 격동된 심정은 더 말할것이 없었다. 하루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으나 청산리는 잠들지 못하고 집집마다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자기들의 운명과 조합살림살이에 대하여 오늘의 감격적인 사실과 관련시켜 이야기들을 펼치였다. 문영숙은 시어머니와 함께 슬픔과 괴로움, 시련을 헤쳐온 나날들을 추억하였다. 《수상님께서는 저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였어요. 어머니, 수상님은 꼭 친정아버지같으셔요.》 《수상님께서 엄하게 비판하시면서도 우리 리씨일가에 대해 뜻깊은 말씀을 주시고 제가 어떻게 일해야 한다는것을 차근차근 일깨워주시는데 저는 제가 비판받는다는것도 잊고 그저 수상님을 정신없이 우러러보기만 했어요. 사람의 속을 환하게 꿰뚫고 계십디다. 수상님앞에서는 사람이 순수해지더군요!》리춘권이는 밤늦도록 아버지와 어머니, 안해가 모여앉은 아래방에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관리위원장 장영덕은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채기였다. 그는 협의회내용에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안해가 자꾸 묻자 시끄러워하며 돌아누웠다. 그래 혼자 묵새기느라니 잠들수 없었던것이다.… 1년간 두주먹을 쥐고 뛰여다녔으나 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 그러니 무슨 변명할 말이 있겠는가. 그는 이번에 자기가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예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이처럼 청산리사람들이 각이한 심정을 안고 모대기며 밤잠을 못자고있는 시각에 김일성동지께서도 청산리의 어느 한 농가에서 이밤을 보내고계시였다. (이것은 수령님의 청산리현지지도력사에 아직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오후 늦도록 강서군당위원회 부부장이상 일군들의 협의회를 지도하시였다. 협의회에서 군당위원회사업에 대한 료해를 깊이 하시였다. 회의도중에 그이께서는 오솔오솔 추워나시였다. 감기약의 효력이 다 된 모양이다. 그이께서는 며칠째 감기를 앓고계시는데 아무리 약을 써도 쓸 때뿐이지 약효력이 지나면 다시 추워나군 하였다. 협의회 휴식시간에 책임부관이 알약을 물과 함께 드리며 회의를 미루고 저택으로 돌아가시자고 말씀드리였다. 《괜찮소. 협의회를 마저 하고 가는 길에 어느 농가에 들려 뜨뜻한 아래목에서 땀을 내면 나을게요.》 협의회가 끝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읍을 벗어나 들길을 달려 남포ㅡ평양간의 큰 길에 나섰다. 그러나 차는 평양으로 향하지 않고 그 큰 길을 건너 다박솔 우거진 야산아래의 동네로 조용히 들어갔다. 《수상님께서 땀을 내실 농가가 준비되였습니다.》 책임부관이 알려드리였다. 《음, 좋아. 감기는 뜨뜻한 온돌에 누워 땀을 흘려야 낫는단 말이요. 약이나 먹어가지고는 안돼.》 호위일군들의 전지불들이 켜졌다꺼졌다 하며 껌벅거리는 어느한 농가앞에서 승용차가 멈추어섰다. 승용차에서 내리신 수령님께서 농가의 마당에 들어서자 첫눈에 뜨인것은 활짝 열어놓은 부엌칸이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불로 하여 환하게 밝은데 거기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나오는 한 로인의 모습이였다. 솜옷을 두텁게 입었으나 머리는 맨머리바람인데 반백이였다. 수령님께서 먼저 인사를 하시였다. 《주인할아버지이십니까?》 로인이 허리를 쭉 펴며 황황히 다가왔다. 《예, 수상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구들을 뜨끈뜨끈하게 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로인이 낯익었다. 갱핏한 얼굴에 피줄이 불거지고 코밑수염이 까맣게 돋았다. 그렇다. 작년 초봄, 청산리앞도로에서 리종수로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부관이 말리는것도 듣지 않고 인사를 드리겠다며 뿌득뿌득 밀고들어오던 그 로인이였다. 《로인님, 낯이 익습니다. 작년 초봄에 여기 로상에서 만나지 않았던가요?》 로인은 다시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날 이 늙은것이 무엄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수상님께서 다 기억하고계시는군요.》 수령님께서 허허 웃으시였다. 《부관이 막아나섰지만 로인님은 물러서지 않았지요! 무엄하다니요. 오히려 로인님을 알게 되여 나는 기뻤습니다. 오늘은 로인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구들을 덥히셨군요! 고맙습니다. 성함을 어떻게 부르시던가요?》 《조춘보라고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북만원정의 길에서 돌아오시다가 촉한을 만났던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어느 한 깊은 수림속에서 있었던 일이 그 외딴곳에서 농가를 만났고 농가의 주인인 조택주로인과 며느리의 지성어린 간호를 받던 일이 문득 생각나시였다. 어려운 순간에는 언제나 인민들이 그이를 위해 나섰다. 수령님께서 책임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토방에 신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가시는데 로인이 밖에서 잔소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상님을 잘 모셔야지. 이 사람들아, 지금이 몇신가. 아침일찍 청산리에 오신 수상님께서 여적 일을 보셨으니 로독이 드신거네. 쯔쯔쯔…》 아래방에는 이미 두툼한 비단이불이 펴져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로인과 이야기를 해보시려고 그를 불러오라고 지시하시였다. 로인이 들어와 무릎을 꺾고앉았다. 《로인님, 편안히 앉으십시오.》 《예.》 로인이 편안하게 앉았다. 《깊은 밤에 미안합니다.》 《무슨 말씀을! 조선풍습에 지나가던 사람이 자고가자 해도 재워보내는데, 항차 수상님을 모셨으니 이는 경사중의 경사로소이다. 단지 수상님께서 빨리 옥체를 추세우셔야 하겠는데… 어서 이불속에 드십시오. 이 사람.》하고 그는 책임부관을 불렀다. 《저기 산꿀을 한병 가져다 놨으니 물에 타지 말고 그냥 잡숫도록 대접해드리게.》 그리고 다시 수령님을 향해 말씀드리였다. 《꿀을 드시고 땀을 흠뻑 내면 알도리가 있습니다.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로인이 일어섰다. 《할아버지!》 수령님께서 일어서며 로인의 갈퀴같은 손을 잡으시였다. 목이 콱 메이여 겨우 말씀하시였다. 《고맙습니다.》 로인은 허리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 밤이 얼마나 깊었을가? 한잠 푹 자고나신 수령님께서는 온몸이 거뿐해지는것을 느꼈다. 주인집로인이 가져온 꿀과 뜨끈한 구들이 효력을 낸것일가? 로인의 지성이 더없이 고마우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치도 만경대고향집아래목에 누운것만 같으시였다. 백두밀림의 눈보라속에서 우등불을 벗하여 풍찬로숙하시며 늘 그려보았던 고향집아래목이였다. 하기에 조국해방을 이룩하고 개선연설을 하신 후 고향집을 찾으시였을 때 방구들을 수리하느라고 뜯어놓았지만 멍석을 깔고 할머님, 할아버님과 함께 아래목에서 하루밤을 주무시였었다. 아, 그날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시고 뺨을 만져보며 잠 못드시던 할머님의 농사일과 무명낳이에 시달린 그 손, 터슬터슬하고 뼈마디졌어도 그 손이 얼마나 부드러웠던가. 방안이 후끈하도록 장작불을 때고 비단이불을 펴드리고 산꿀로 로독을 푸시라고 하는 이 집주인로인의 꺼칠하고 투박한 손길도 할머니의 손길과 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러한 인민의 아들된 자신의 행복을 느끼시였다. 인민! 우리 인민!… 인민에 대하여 생각하면 언제나 자신이 직접 만나보신 산인간들의 모습이 떠오르군 하시였다. 지난 한해만 해도 함경북도 서수라 한끝에서부터 황해남도 연안의 농촌마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해공, 탄부, 기계공, 어로공, 협동조합원, 학교교원, 기사, 과학자, 인민정권기관의 일군들을 만나보시였던가. 이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탄을 캐내고 쇠물을 녹여내며 기계를 만들고 천을 짜고 집을 지으며 땅을 걸구고 곡식을 가꾸어 낟알을 생산하여 인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사회주의를 전진시킨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력사를 창조해가는 하루하루이다. 로동당시대의 모든 재부, 모든 창조물은 인민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것이다. 사람은 먹고 입고 살아가자면 로동을 해야 한다. 로동을 떠난 인간생활이란 있을수 없다. 지난 시기 인민의 로동은 단순히 먹고 살아가기 위한 로동이였다. 이 로동에 의해 재부가 마련되고 인류력사가 흘렀다. 그러나 부를 창조하고 력사를 창조한 인민대중은 늘 굶주리였고 헐벗었으며 학대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정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이 아니였기때문이다. 수천년의 장구한 세월 우리 인민은 고통과 슬픔을 겪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들은 부의 창조자였으나 력사의 대상이였다. 그리하여 력사의 흐름은 진흙탕물처럼 흐리터분하고 완만하게 목적없이 진행되였다. 시대가 바뀌였다. 우리 인민이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 자기의 주권과 땅을 가지게 되고 생산수단의 주인이 됨으로써 진정한 력사의 담당자가 되였으며 당과 수령의 령도밑에 온갖 난관과 시련을 이겨냈으며 새 력사를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온 나라가 사회주의라고 하는 한가정이 되였다.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였다. 이 대가정은 대규모의 집단경리를 형성하고 강력한 공업국가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력사는 명백한 목표를 가지고 거세차게 흘러가고있다. 목적의식적인 투쟁과 로동을 통해서만 사회주의가 건설된다. 맹목적인 운동이란 사회주의하에서 있을수 없다. 그러므로 당과 수령의 령도는 필연적이며 인민대중을 사회주의건설에 어떻게 조직동원하는가 하는것이 운명적인 문제로 나선다. 한가정의 운명은 아버지에게 달려있고 사회주의국가의 운명은 수령에게 달려있다. 수령은 한순간도 사색과 탐구와 활동을 멈출 권리가 없다. 인민이 수령에게 자기의 운명을 맡겼기에!… 아직은 우리가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입지 못하며 잘살지 못한다. 물론 제1차 5개년계획기간에 의식주문제를 기본적으로 풀게 된다. 인민생활이 눈에 뜨이게 향상되고있다. 배곯는 사람은 없다. 화려하게 살지는 못해도 골고루 생활이 펴이고있다. 그러나 만족할수 없다. 아직 우리는 발전된 공업국가의 수준에 올라서지 못했으며 다른 형제국가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낮다. 하루빨리 사회주의공업국가를 건설하여 인민들이 부유한 생활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진흙을 바르고 도배를 한 농가의 담벽냄새, 집안에 배인 구수한 토장내, 부엌아궁이에서 장작이 탁탁 튀는 소리, 생나무의 옹이에서 송진이 끓는 소리…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농가의 독특한 향취였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끼여있어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으며 캄캄했다. 하지만 이제 구름이 걷히고 동이 트면 푸른 하늘이 펼쳐지리라. 주인집로인의 지성으로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지신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용기가 솟구치였다. 《꼬끼요》헛간에서 수닭이 홰를 쳤다. 주인집 수닭이였다. 이 농가 저 농가에서 화답하는 닭의 울음소리가 노래소리처럼 들려왔다. 이것 역시 오래간만에 느껴보시는 농촌의 새벽정서였다. 어제 만나보시였던 청산리농민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왔다. 문영숙반장의 이야기는 청산리농민들이 살아온 비참한 력사이기도 했고 또 태성할머니처럼 굴할줄 모르는 우리 인민의 자랑스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의 농민, 우리의 인민!… 모든 인민들이 잘먹고 잘살게 하자는것이 우리의 리상이며 목표이다. 이 목표를 향해 우리는 간고한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헐치 않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행복한 생활과 미래를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자신이 쟁취해야 한다. 《꼬끼요ㅡ》닭의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얼마후 려명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 수령님께서는 주인집로인과 작별하시고 승용차를 달려 평양으로 향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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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접어든다는것을 알리는 립춘이 지나서인지 날씨는 푸근하고 어디선가 훈풍이 불어오고있다. 하늘이 높은 구름으로 흐려 해가 일년감처럼 불기우리하게 보인다. 아직은 얼음과 눈무지들이 음달에 그대로 있고 이러다가 갑자기 추위가 닥쳐와 유리창문들이 하얗게 얼고 맵짠 바람에 얼굴이 시리군 하겠지만 봄은 어쩔수없이 다가오고있었다. 봄, 다시 찾아오는 봄, 농촌에서는 새 영농준비에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아침 7시반경,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개가 자욱하게 낀 큰길로 승용차를 달려 청산리로 가고계시였다. 얼마나 자주 다닌 길인가. 작년 초봄에도 이 길을 지나 강선제강소에 가시였고 돌아오는 길에 청산리 리종수로인을 길우에서 만나시였다. 리종수로인에게 손자가 생겼으니 이 청산리 리씨일가는 4대째 대를 이어오고있다. 로인은 앓아누웠으나 3대인 리춘권이 왕성한 기운으로 청산리의 주인노릇을 하고있다.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한 탓으로 사업처리가 원만하지는 못하지만 그도 점차 아버지 리종수처럼 믿음직한 농촌의 당원으로 성장하리라는것은 의심할바 없다. 근본바탕이 좋으니 달리는 될수 없을것이다. 대끝에서 대가 나고 싸리끝에서 싸리 난다고 하였다. 물론 종자가 좋다 해서 다 알찬 열매가 맺혀지는것은 아니다. 쭉정이도 생긴다. 그것은 잘 가꾸고 키우지 못한탓이다. 사람도 농사를 짓듯 품을 들여 키워야 한다. 종수로인의 자식으로 아들이 하나 더 있고 (셋째는 전쟁시기 싸움터에서 전사했고) 또 외동딸이 있다고 하였지. 그 딸과 사랑관계를 맺고있는 청년이 최영길의 처남인데 조합에서 건달을 부리다가 평양으로 빠져나갔다고 했지. 그랬다가 다시 돌아왔고… 탁고개를 넘고 사철푸른 바늘잎나무들이 많아 겨울에도 푸르게 보이는 청산을 지나자 곧 암화마을로 들어가는 짝지발 길이 나졌다. 리, 군, 도의 책임일군들이 대기하고있다가 그이를 맞이하였다. 《오늘은 3초급당단체 당원들과 만나기로 했지?》 그이께서 유근재에게 말씀하시였다. 《예, 대기하고있습니다.》 몇걸음 옮기던 그이께서 유근재에게 다시 물으시였다. 《리종수로인에게 딸이 하나 있지요? 그런데 그 딸과 인연을 맺고있는 청년이 농촌이 싫어서 평양으로 갔다가 되돌아왔다고 하던데?》 유근재는 수령님께서 모르시는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원래 그 청년이 기계화반에 들어가려는것을 리종수로인이 반대했었는데 기계화반에 들어갔을뿐아니라 평양으로 빠져나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랬다가 농촌진출이 제기되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 지금 어떻게 하고있소? 리종수로인은 뭐라고 하오?》 《지금 건설반에 들어가 일하는데 남들이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하고 다닙니다. 리종수로인은 아예 머리를 내젓습니다.》 《머리를 내저을거요. 그 집안이 보통집안이요? 그런 건달군을 사위로 받아들이자고 하겠는가. 종수로인이 그 청년을 어떻게든 착실한 농사군으로 키워보려 했는데 간부들이 방해했단 말이요. 인원이 남아돌아가는 기계화반에 넣는다, 평양시건설장에 끌어간다 하며 한 청년을 건달군으로 만들지 않았소.》 수령님께서는 잠시 마을을 바라보며 서계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전에 원화리 림로인이 나에게 조합을 무어 여럿이 모여서 일하면 건달군이 생겨서 놀고먹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걱정을 했댔소. 조합원들의 로력을 정확히 평가해주지 않고 일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다 평균적으로 분배하여 주면 놀고먹는 사람이 많이 나오게 되오. 이렇게 되면 일을 잘하던 사람들까지 일을 잘하지 않게 되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이 헐하고 로력점수나 많이 받는데로 가려 할것이요. 그 청년이 기계화반에 들어간것처럼 말이요. 그렇게 되면 일이 힘든 농산부문에는 로력이 적게 들어가게 됩니다. 동무들이 한 청년을 똑바로 이끌어주지 못했기때문에 처녀총각의 사랑도 깨지지 않았는가. 리종수로인의 딸은 청년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로인이 머리를 젓는다니 랑패 아니요? 처녀도 아마 청년을 용서하려 하지 않을거요. 동무들은 이렇게 한쌍의 청춘남녀의 사랑이 깨지는것이 가슴아프지 않소?》 유근재는 두철이를 사람 만들어 꼭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글쎄 모르겠소. 리종수로인의 마음이 돌아서겠는지… 또 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수령님께서는 걱정어린 어조로 말씀하시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제3초급당단체 당원들과 만나 담화할 장소가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리당에서는 지도그루빠와 토론하고 아담한 두칸짜리에 불이 잘 들어 따뜻한 축산초급당단체위원장의 집을 선정했었다. 《저집입니다.》 유근재가 손으로 가리켜드리였다. 《당원들이 다 모였습니다.》 《갑시다.》 수령님께서 도당위원장, 도인민위원장, 군당위원장, 군인민위원장들과 함께 그리로 향하시였다. 당원들이 그이를 집마당에서 맞이했다. 얼굴이 볕에 탔으나 옷차림, 머리단장을 깨끗이 한 당원들이였다. 그들에게서는 하나같이 땀내와 거름내가 풍기는것 같았다. 《추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수령님께서는 리당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토방우에 오르시여 구두를 벗고 아래방으로 들어가시였다. 방가운데 앉은뱅이책상이 놓여있고 거기에 재털이가 준비되여있었다. 3초급당단체 남녀당원들은 웃방으로들 들어갔다. 수령님께서 방가운데 선채 열려진 문으로 웃방에 대고 《다들 여기 따뜻한 아래방에 내려오시오.》하고 가까이 부르시였다. 그들이 내려오자 비로소 책상앞에 앉으시였다. 집주인이 방석을 드리였다. 《여기가 좋소.》 그이께서는 방구들우에 그냥 앉으며 책상을 끌어당겨 당원들이 앉을 자리를 넓혀주시였다. 《다 앞으로 나오시오.》 책상에서 될수록 멀어지려 하며 방구석에 앉는 당원들에게 말씀하시였다. 《나를 한집안식구처럼 생각하고 가까이 오시오. 내가 동무네 수상인데 어려워할건 없습니다.》 남녀당원들은 무릎걸음으로 책상가까이로 다가앉았다. 온화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집안에 떠돌았다. 수령님께서 먼저 당원들을 료해하시였다. 《동무가 작업반장입니까?》 젊고 원기왕성해보이는 남자에게 물으시였다. 《인민군대에 나갔댔습니까?》 작업반장은 1950년 여름 전쟁이 일어나자 군대에 나갔고 1956년 봄에 제대되였으며 전선에서 여러군데 부상을 입은 과묵하고 듬직한 사람이였다. 그는 전선에서 결사전을 각오하며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 맹세문을 올리는데 참가하여 자기의 이름 석자를 적어넣었으며 그 전투가 있은 후 화선입당을 하였다.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있으며 어린애는 아직 없고 처는 같은 조합원이였다. 《한 4년 농사지어봤으니 잘 알수 있겠지. 작년도 농산사업에서 무엇이 결함이라고 생각하오?》 수령님의 물음에 그는 농사짓는데 힘을 집중하지 못했고 예술소조활동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업을 벌려놓고 로력을 많이 분산시켰다고 대답을 드리였다. 그는 지도그루빠의 지도를 받는 과정에 그것을 깨달을수 있었다고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얼굴이 별로 수척해보이는 녀인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시였다. 녀인은 작업반에서 녀맹위원장과 분조장일을 책임지고있는데 남편은 후퇴시기에 놈들에게 피살되였으며 정전을 며칠 앞두고 로동당에 입당하였다. 당원증을 받는 날 남편의 뒤를 이어 당에 자기의 생명과 모든 힘을 다 바쳐 일할것을 맹세하였다. 《무슨 병이 있지 않소? 몸이 좀 약하구만.》 녀인은 입귀에 주름을 잡으며 소화불량증이 있다고 대답올렸다. 《분조장으로 일하며 녀맹사업도 할래 시간이 바쁘겠지만 병치료를 해야 하겠소. 몸이 건강해야 남편의 원쑤를 갚고 농사도 잘 지을수 있소. 리당에서 관심을 돌려주시오.》 《예.》 유근재가 유가족녀인에게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한 자기의 잘못을 말씀드리였다. 《내가 그저께 동무들과 담화하면서도 이야기했지. 인간애, 동지애가 있어야 한다고, 이 아주머니는 우리 당이 아끼고 돌보아주어야 할 핵심당원이요.》 녀인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당원들을 계속 료해하시였다. 이 청산리에서 리종수로인네 못지 않게 오랜 농민가문에 속하는 한정락할머니는 1946년도 당원이였으며 지금은 61살이였다. 림병련로인도 로당원인데 지금 나이가 63살이였다. 작업반 통계원도 1946년도 당원이였다. 그에게 당원의 의무를 말해보라고 하니 거침없이 외우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만족하여 웃으시였다. 《잘 압니다. 이 작업반 당원들의 구성이 좋소. 오랜 당원들이고 전선에서 싸운 당원들이며 어려운 시기에 당과 조국을 위해 쌀을 생산한 동무들입니다. 이런 당원들이 있는데 무슨 일인들 못해내겠습니까. 통계원동무, 하나 더 물읍시다. 동무한테만 자꾸 물어서 안되였는데…》 그러자 방안에 웃음이 물결쳤다. 《동무가 머리 좋은것 같고 공부도 좀 한것 같아 묻습니다. 사회주의분배원칙이 무엇입니까?》 이마가 도드라져 나오고 두눈에 영채가 도는 통계원은 긴장해있다가 즉시 얼굴이 밝아졌다. 자신이 있었던것이다. 그는 큰소리로 대답올렸다. 《일한것만큼 분배하는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정확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작업반에서 로력점수를 그 원칙에 맞게 줍니까?》 《…》 그는 대답을 못했다. 이미 지도그루빠가 료해를 하고 비판을 주었던것이다. 《사회주의분배원칙을 말로만 알아서는 뭣하겠습니까? 지도그루빠성원들이 료해한데 의하면 로력공수를 반장이 독단으로 준다고 합니다. 또 힘든 농산반일에 점수를 많이 주어야 하겠는데 나가 뽈이나 차고 또 뻰찌나 차고 다니는 기계화반 청년들에게 최고점수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누가 힘들게 논에 들어가 일하겠다고 하며 또 건달군이 생기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동무들은 다 좋은 동무들이고 핵심들인데 왜 그렇게 일합니까? 일하는것만큼 정확히 분배하여주는것이 생산의욕을 높이는데서 매우 중요하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소, 관리위원장동무?》 키가 큰 장영덕이 일어나서 《그렇습니다.》하고 대답 올리는데 머리가 천정에 닿을듯 했다. 《앉소.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수령님께서 그에게 관리위원회운영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있는가, 농업과학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하고있는가 등을 물어보시였다. 장영덕이 어물어물 대답하는걸 보니 그저 바삐 뛰여다니기만 하고 공부를 하는것 같지 않았다. 《지금 몇살입니까?》 《50살입니다.》 《지금은 살기 좋은 세월입니다. 60이 환갑이 아니라 90이 환갑입니다.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토지관리사업도 잘하자면 토양학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작업반장들을 지도할수 있습니다. 토양학에 대한 소책자를 보았습니까?》 《못…》 진땀을 빼며 그는 대답을 제대로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뒤쪽에 앉은 군당위원장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토양학에 대한 책자들을 내려보내지 않았소. 군당위원장동무?》 《내려보냈습니다.》 문성술이 일어나 대답올렸다. 《책을 찾아보지도 않아구만.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전문분야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조건이 좋습니다. 정전이 된 후에는 어려웠습니다. 전문분야의 기술자들도 적었고… 어느날 내각소회의실에서 우리가 기술인재육성문제를 토의했는데 문화선전상이였던 허정숙동무가 량강도에 내려가서 목격한 한가지 일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젊은 녀의사가 혜산병원에 배치되였는데 병원에서는 소아과를 내오고 그 처녀의사를 소아과의사로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내과학과 일반외과학을 공부했기때문에 소아병에는 조예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아과의사를 못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으며 근심에 잠겨 전전긍긍하면서 소아병에 대한 지식을 터득하려하는데 어디 책이 있습니까? 처녀의사가 너무 안타까와하고 또 열성이 높은데 감동된 병원의 한 직원이 무슨 일로 청진에 가게 되였습니다. 그는 혹시 소아병에 대한 책이 없을가 해서 서점에 들리였는데 마침 〈소아병〉책이 있었습니다. 처녀의사를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책을 펴보지도 않고 종이에 싸가지고 와서 그 의사에게 주었습니다. 처녀의사는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며 종이를 펴고 책을 손에 쥐였습니다. 그 순간 처녀의사는 아연해지고말았습니다. 그 책은 병에 대한 의학서적이 아니라 레닌이 쓴 사회정치도서인 〈좌익소아병〉이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 일화에서 처녀의사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 또 그것이 주위사람들을 얼마나 감동시켰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관리위원장동무, 공부를 하시오.》 장영덕이 시원하게 대답을 드리였다. 《예. 공부를 하겠습니다.》 《동무에게 하나 물읍시다. 올해생산계획을 어떻게 세웠습니까?》 장영덕은 바늘방석에 앉아있는것 같은 기분이였다. 오늘만 해도 두철이문제로 되게 말을 들었지, 공부를 하지 않은것이 드러났지, 게다가 올해생산계획도 주먹치기로 우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물었던것이다. 그는 땀을 빠질빠질 흘리며 정당평균 벼 6t을 생산하려 한다고 자신없이 대답을 드렸다. 《정당 6t?》 수령님께서는 아연해지시였다. 《동무네가 타산한거요, 군에서 떨군거요?》 《군에서 떨군겁니다.》 장영덕이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답을 드렸다. 《그래 동무네 6t을 할수 있소? 작년에 정당 3.8t을 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비약할수 있소?》 장영덕은 군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물었으니 대답을 못하고 쩔쩔 매는데 유근재가 대신 꺼져드는 목소리로 대답을 드리였다. 《사실 6t은 곤난합니다.》 《그런데 왜 받아물었소?》 누구도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수령님께서 군인민위원장을 찾으시였다. 조합원들의 뒤쪽에 군과 도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앉아있던 군위원장이 일어섰다. 《다른 협동조합들은 계획을 어떻게 주었소?》 군위원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 6t씩 주었습니다.》 《모든 협동조합들에 일률적으로 정당 6t씩 내라고 계획을 주었단 말이지. 그건 군에서 타산한거요?》 군위원장이 꺼져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에서부터 계획이 그렇게 떨어졌습니다.》 《도에서 6t씩 내라고 떨구었다 해도 군은 실정에 맞게 해야지 그걸 그대로 리에 되받아 넘긴단 말이요? 우리가 새 환경에 맞게 사업체계와 방법을 고칠데 대해 말하면서 군은 중간다리인것이 아니라 생산단위라고 깨우쳐주었는데 아직도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가? 아직도 잠에서 깨나지 못했는가!》 수령님께서 책상을 두드리시였다. 《동무들이 12월전원회의 문헌을 학습했소? 전원회의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내가 정초에 평안남도당위원회 전원회의를 지도하면서 역시 새 환경에 맞게 사업체계를 혁신하고 일군들의 사업방법과 작풍을 개선할데 대해서 강조했고 결정서에도 박았는데 동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있소?》 《…》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도인민위원장동무, 한번 말해보오.》 도인민위원장을 하던 장윤필은 알곡생산이 기본인 황해남도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파견되여가고 다른 사람이 위원장을 하고있었다. 그가 일어나 대답올렸다. 《그 계획은 12월전원회의 이전에 떨군것인데 잘못되였습니다. 도농산국에서 도내의 모든 논에서 정당 6t을 기준으로 하라고 일률적으로 떨구고 오늘까지도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도위원장동무가 수표를 했겠지?》 도위원장이 눈길을 떨구었다. 《수표를 했습니다.》 수령님께서 만년필을 세워 수첩을 두드리시였다. 《관료주의요! 수표를 하려면 아래에 내려가 군들의 실정을 알아보고 해야지. 그리고 도당전원회의를 했으면 잘못된것을 빨리 바로잡아야지 동무들이 성에서 찍어준 도의 알곡총생산계획을 손쉬운 방법으로 매 군에 풍기면서 정당 6t씩 하라고 하니까 군은 또 그 본을 따서 매 리에 6t씩 하라고 지시했단 말이요. 그런데 여기 강서군 서기리 같은데는 하늘만 바라보는 곳이요. 다른데서 정당 7~8t쯤 해야 서기리는 6t을 할수 있을거요. 나라의 수상인 나도 알고있는데 군인민위원장은 모르고있었는지 머리를 쓰기 싫어서인지 책상에 앉아서 모든 리에 꼭같이 풍기였소. 호마에 지우는 짐을 하늘소에 실으면 가지 못하고 주저앉는다는거야 상식이 아니요? 동무들, 내가 지금 여기 농촌에 왜 내려와있는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했지, 도당위원회 전원회의도 했지. 그러면 될게 아닌가? 현실은 회의나 해가지고는 안된다는것을 말해주고있소. 회의정신을 받들고 일군들이 발동되여야 하오. 아래에 내려가 군중을 발동하고 군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나가는것이 혁명적사업방법이요. 그런데 동무들은 도당전원회의를 한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알곡생산계획을 바로잡지 않았소. 밑에 내려와보지 않으니 잘되였는지 잘못되였는지 알수가 있는가. 동무들이 이렇듯 아직 동면에서 깨지 못했기때문에 내가 내려와 여기 앉아있는거요. 동무들도 이렇게 협동조합에, 작업반에 내려와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의논해보라는거요. 책상에 앉아서 수표를 척 해서 내려뜨리는것은 쉽단말이요. 내려와서 실정을 료해하고 거기에 알맞는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의논해주는것은 힘드오. 일군들이 힘들게 일해야 인민들이 잘사오. 그런데 동무들은 우에 앉아 호령이나 하고 차나 타고다니며 쉽게 일하니 배가 나오는데 인민들은 배를 곯는단 말이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인민들이 잘사는가 못사는가, 경제가 발전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일군들의 준비정보와 역할에 달려있다는것을 나는 다시 강조하오.》 수령님께서는 어조를 부드럽게 하여 《비판도 그만했으면 됐고 연설도 할만큼 했으니 그러면 이제부터 청산협동조합이 올해 벼를 정당 얼마씩 생산할수 있으며 또 생산해야 하는지 의논들을 해봅시다.》하고 말씀하시였다. 계획은 너무 높이 세워도 안되고 또 너무 낮게 세워도 안되며 력량관계를 타산하고 발전적인 원칙에서 정확히 세워야 하므로 갑론을박을 하며 한동안 진지한 의논들을 하였다. 4t 500kg그람으로 락착을 보았다. 《다음은 이 조합에 작업반이 25개나 되는데 작업반을 줄여 부락단위로 하는것이 어떻겠는가 의논해봅시다.》 다들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일치하게 말했다. 《왜 부락단위로 하는것이 좋겠소?》 수령님께서 작업반장에게 물으시였다. 《지금 한 부락안에 작업반이 여럿이니 농기구 하나 가지고도 서로 다투는데 부락별로 하면 모든 일을 통일적으로 하기때문에 좋습니다.》 《그리구 관리위원장의 수고도 덜어주게 될거요. 관리위원장이 25개 작업반을 돌아다니자니 숨이 차서 견디겠소?》 당원들이 웃음을 터뜨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작업반에서 계획을 초과하면 그에 대한 정치적평가와 함께 물질적평가도 잘할데 대한 문제에서도 그들과 락착을 보시였다. 부관이 들어왔다. 《예정된 회의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시계를 보시고 《아직 시간이 10분 있소.》하고는 부부장에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청산리당을 지도하고 마지막결론까지 나온 다음 그 경험을 신문에 발표해야 하겠소. 리당총회내용은 간단히 내고 지도경험내용은 그대로 〈로동신문〉에 크게 실어서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하시오.》 그이께서는 리당총회보고서방향을 다시 강조하시고 협의회를 끝마치시였다. 《수고들 하시오.》 마당으로 나오신 그이께서는 제3초급당단체 남녀당원들과 리당, 관리위원회 일군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군당으로 향하시였다. 군당위원장 문성술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군당위원회전원회의 보고서 방향을 제시해주시였다. 수령님께서 문성술이에게 자신의 심중을 터놓으시였다. 《내가 올해 각 도들을 돌아보고 또 여기 청산리와 강서군에 와서 제일 느낀것이 관료주의, 형식주의요. 우리 일군들의 관료주의, 형식주의적사업작풍이 어떻게 나타나고있는가를 강서군을 놓고 말해보기요. 동무들은 농민들이야 어떻게 되든 그저 주관적으로 생각한 계획을 내려먹이고있소. 청산리에서 팥을 심었다가 사료전으로 하라 하여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었는데 이번에는 남새를 심으라 해서 강냉이를 또 갈아엎었소. 이렇게 세번씩이나 갈아엎었으니 얼마나 많은 로력과 종자를 랑비했고 농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겠는가. 그런데도 군과 도의 일군들은 가슴아파하지 않고있소. 도대체 관료주의자들이 조합을 이렇게 되는대로 지도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인민의 리익을 희생시켜 농업상에게 남새면적을 확보했다는 보고를 할수 있게 되였다는것뿐이요. 즉 자기의 공명을 하나 얻었소. 여기 군인민위원장은 법을 모르는 왕노릇을 하고있소. 학교건설이요 길닦기요 뭐요 하면서 제멋대로 로력을 동원하고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사람을 함부로 해임시키고있소. 이것은 결국 군당위원회가 지도를 잘못한것이요. 이렇게 하니 농사가 잘될리 있겠소? 이전 농업상 함의선이는 뜨락또르가 많이 있어야 큰 집단경리가 운영될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작년 농사가 잘 되지 못한것이 아니요.》 문성술은 수령님의 말씀을 크나큰 충동속에서 받아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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