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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김 삼 복
( 제 19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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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길은 웅장한 몸집을 기우뚱거리며 사업수첩을 번지면서 거기에 적어넣은것들중에서 남새와 관련한 내용들을 찾아 읽어보고있었다. 한것은 김만금이 성에 나와 수령님께서 하신 비판의 교시를 전달한 후 성당집행위원회에서 최영길을 취급하였는데 남새문제도 언급이 되였기때문이다. 농업성은 늘 말을 듣기마련이라고 생각하면서 웬만한 비판에는 끄떡하지 않던 최영길이도 이번에는 정신이 좀 들었다. 《풍년축구경기》가 큰 물의를 일으키였고 김매기에 력량을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남새문제가 겹쳐들었다. 수령님께서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실 때 로동자들에 대한 남새보장문제가 잘 되고있지 않는데 대해 심각한 비판이 있은 후 성에서는 봄과 여름철 남새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느라 했다. 그러나 가을철남새보장에 대해서는 그후 최영길이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 그래 지금 사업수첩을 뒤적이는데 그의 얼굴빛이 점점 심중해졌다. 성사업에서 큰 구멍이 뚫린것을 발견했던것이다. 이 남새때문에 함북도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강직되였다. 최영길은 바빠났다. 봄과 여름남새도 충분히 보장 못했다. 기본은 남새면적이 제한되여있는데 있었다. 그렇다면 가을남새를 위해 파종면적을 늘일 대책을 그때 벌써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못했다. 이제라도 가을남새파종면적을 늘일 시급한 대책을 취해야 한다. 만일 가을남새를 적게 심어 겨울김장을 담그는데 지장을 준다면 또 농업성이, 구체적으로는 최영길이 말을 듣게 될것이다. 상은 입원중이다. 늘 보아야 상은 관건적인 시기에 이래저래 빠지군 한다. 상은 없으니 1부상격인 최영길이 책임을 지게 되여있다. 그는 어쩔수없이 상에 대한 불만이 치밀어올랐다. 늙었고 힘이 진한 령감이 어떻게 되여 아직까지도 상자리에 그냥 앉아있는지 그는 리해할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입원한 상에 대한 불평이나 하고있어서 무엇하겠는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니지! 이 최영길이 남의 말밥에나 오르고 피동에 빠져 몰리울수 없다. 솜씨를 보여야 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을남새를 풀어야 해!) 이렇게 결심하고 어떻게 대책할것인가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윽하여 그는 농산국장과 계획국장을 불러 이 문제를 진지하게 협의하였다. 《전국의 시와 군의 형편을 놓고볼 때 다 사정이 다르오.》 하고 그는 말했다. 《평양시 같은 특별시는 더 말할것 없고 청진시나 김책시, 함흥시, 남포시 같은 큰 도시들에는 큰 공장, 기업소들이 집중되여있고 군들도 역시 공장, 기업소들을 가지고있소. 공장, 기업소가 별로 없는 군이라 해도 주민들이 살고있는것만큼 로동자, 사무원, 주민들에게 김장남새를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소홀히 할수 없소. 각 협동조합들에서 심었거나 심기로 한 가을남새파종면적이 얼마나 확보되였는지 그리고 올해에 공급해야 할 김장남새수요량이 얼마나 되겠는지 장악하여 대책을 세워야 하겠소. 한마디로 말하여 김장남새를 보장하기 위하여 얼마나 더 심어야 하는가를 장악하여 시, 군들에서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하겠소. 각 협동조합들에서 남새파종면적을 몇프로씩 늘이겠는지 시, 군마다 실정이 다르니까 실정에 맞게 하여 김장남새를 보장할데 대한 성령을 떨구어야 하겠소.》 이렇게 하여 작성된 성령이 모든 도, 시, 군들에 떨어졌고 군에서는 각 협동조합들에 지시를 떨구었다. 최영길은 문건상 지시를 떨구는데 머무르지 않고 전화로 직접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가을남새계획을 수요에 비해 적게 세운 군들을 몇군데 장악하였다. 그중에는 강서군도 있었다. 그는 전화로 강서군인민위원장을 찾았다. 그는 군위원장을 잘 모르고있었지만 그것이 사업하는데서는 장애로 되지 않았다. 모르고있는편이 엄하게 다루는데서는 더 나을수 있었다. 《군위원장동무요?》 최영길이 송수화기에 대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예, 군위원장입니다.》 《성령을 접수했소?》 《접수했습니다.》 《내가 왜 수백개의 군들중에서 강서군에 직접 전화를 하는지 알겠소?》 상대방은 어물어물하였다. 《강서군이 농촌건설을 비롯해서 일을 잘하는데 남새를 보장하는데서는 락제요!》 최영길은 우선 이렇게 상대방을 얼쿠어놓았다. 《동무네 군에 공장들도 많고 따라서 로동자, 사무원들이 많은데 가을남새를 매우 적게 계획했더구만.》 군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려 하였다. 《내 명백히 말해두는데 만약 동무네가 주민들에게 김장남새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면 정책을 집행못한 엄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거요.》 군위원장은 기가 질려 《예, 잘 알았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농업성 부상의 전화를 받은 군위원장은 우선 부상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부터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그 얼굴모양과 전화로 엄포를 놓은 위압적인 목소리가 일치되여 안겨오면서 그는 부쩍 긴장감을 느끼였다. 그는 한동안 앉아서 씩씩거리며 부상이 한 말들을 음미해보았다. 남새문제가 간단치 않게 제기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송수화기를 들어 농업부장을 찾았다. 농민처럼 푸수하게 생기였으나 눈치가 역바른 농업부장이 곧 나타났다. 《각 협동조합들의 가을철남새계획이 장악된것이 있소?》 《있습니다. 농업성에서 요구하여 우에 올린 통계수자입니다.》 《그런데 농업성에서는 불만이요. 부상이 나한테 직접 전화를 했소. 군내 로동자, 사무원, 주민들에게 남새를 제대로 공급하자면 얼마를 더 심어야 하겠는가를 장악해야 하겠소. 농업성에서는 가을남새계획이 매우 적다고 말하고있소. 어떻게 알고있는지…》 《아마 추산했을것입니다.》 《추산했든 짐작했든 실지 얼마 더 심어야 하겠는지 알아보고 각 협동조합들에 추가로 계획을 떨구어야 하겠소.》 《예.》 농업부는 며칠동안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 준비가 끝나자 군당위원장방에 군내 모든 협동조합관리위원장들을 불러올리였다. 먼저 군농업부장이 매 조합별로 남새파종면적을 얼마나 더 늘구어야 하는가 하는 수자를 통보해주었다. 《이것은 주민들의 가을남새를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조치라는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군인민위원장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관리위원장들을 돌아보며 굵은 목소리로 엄하게 말했다.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남새파종면적을 늘여야 하겠습니다. 군에서 부장과 지도원들이 협동조합들에 내려가서 국가의 지시를 정확히 집행하도록 검열통제해야 하겠소.》 지금 그에게는 김매기와 기타 당면하게 하고있는 일보다 남새문제가 제일 긴급해졌다. 회의가 끝나자 관리위원장들이 흩어졌다. 장영덕은 겨드랑이에 사업수첩이 든 가방을 끼고 조합으로 가며 어떻게 남새파종면적을 늘일가 하고 궁리하느라고 길을 헛갈리기까지 하였다. 땅이 더 없었다. 그런데 군에서는 왜 남새파종계획을 미리 떨구지 않고 이제 와서 볶아치는것인가? 년초부터 그런 계획이 있어야 할것이 아닌가. 농업성의 긴급지시라고 하는데 지시하는 사람은 쉬울것이나 집행해야 할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이런 생각을 하며 끙끙 갑자르던 장영덕은 나중에는 《나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나? 작업반에 지시를 떨구고 무조건 집행하라고 내리먹일수밖에! 그러면 작업반에서 하겠지.》하는데로 결심이 섰다. 그는 저녁에 관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작업반장들, 관리위원들, 관리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참가했고 유근재리당위원장도 참석했다. 군인민위원회에서 농업부 지도원이 내려왔다. 관리위원인 리종수로인도 물론 참석했다. 문영숙반장과 같이 들어와 뒤쪽에 앉아서 대통을 입에 물고 말이 없었다. 먼저 장영덕이 추가로 심어야 할 가을남새량을 말했다. 이만한 량을 더 생산하자면 현재 일부 농산반에 조직되여있는 남새분조들의 생산량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므로 모든 농산반들에서 남새를 심어야 하겠다. 적어도 다섯반보씩은 심어야 한다. 《어떻게 해결하겠는지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 침묵이 뒤따랐다. 《왜들 입을 봉하고있소? 이건 무조건 생산해야 하는 과제요.》 《내가 좀 말합시다.》 키가 작달막하나 눈빛이 만만치 않은 제대군인출신의 취득마을 작업반장이 일어섰다. 그는 여간 배짱이 센 사람이 아니였다. 기양농기계임경소에서 뜨락또르를 몰고나온 한 운전사가 닭을 잡아 대접 안한다고 투정질하자 그를 쫓아버린 사람이였다. 그가 말했다. 《이제 와서 갑자기 남새를 심으라는데 땅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동무는 우리 조합에서 생산보장해야 할 가을남새를 다 못해도 된다는거요?》 장영덕이 침울한 얼굴로 짜증부터 냈다. 《그건 아닙니다. 심을 땅이 없다는것입니다.》 《같구같은 소리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보 반장동무, 그걸 나한테 묻소? 동무들이 작업반장들인데 좋은 의견을 내놓아야지. 관리위원장의 머리에서 무슨 해결책이 척척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마오. 사실 동무들은 남새를 심어야 할 의무를 지니고있소. 이건 어길수 없소.》 관리위원장방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웅성했다. 대체로 억지다짐으로 내리먹인다는 불만이였다. 리종수로인은 불 꺼진 대통을 쥔채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문영숙반장이 옆사람에게 말했다. 《땅을 얼마큼은 얻을수 있겠지요 뭐. 그렇지만 남새를 심을 적지로는 안됩니다.》 이 말이 장영덕의 귀에 쑥 들어왔다. 《1작업반장동무, 땅을 어떻게 얻어낼수 있소?》 문영숙이 일어섰다. 《산비탈의 풀밭을 개간할수도 있고 밭최뚝을 리용할수도 있습니다. 놀고있는 땅도 찾아보면 있습니다.》 《아, 그렇지.》 《그렇지만 그런 땅은 냄새를 심을 적지가 못됩니다.》 장영덕은 미간에 내천자를 짓고 앉아서 이마를 손으로 고이였다. 《거기다가 사료를 심으면 되겠지?》 이윽하여 이마에서 손을 떼고 물었다. 《사료전으로야 쓸수 있지요.》 문영숙의 예쁘장한 얼굴은 심중히 타산하는 빛으로 발그레하게 물들어있었다. 《그러면 그렇게 개간하거나 얻어낸 땅들에 사료용강냉이를 심고 지금 밀, 보리후작으로 심은 사료전을 일부 갈아엎어 남새밭으로 하면 어떻겠소?》 이렇게 관리위원장이 안을 내놓자 12작업반장 박진섭이 장영덕을 놀랍게 쳐다보았다. 박진섭이네가 다섯반보의 밭에 팥을 심었다고 다시 사료용강냉이를 심으라고 지시한 관리위원장이다. 그런데 사료를 심은 밭에 다시 남새를 심는다? 리종수로인은 관리위원장의 제의가 얼핏 보면 그럴듯 하지만 실천에 들어가서는 김매기가 바쁜 이때에 가뜩이나 로력이 긴장한데 반장들이 새땅을 일구어 거기에 강냉이를 심고 어쩌고 하는 시끄러운 일을 하지 않을것이며 손쉽게 사료전을 갈아엎고 남새를 심는것으로 끝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사료로 심은 강냉이가 그만큼 줄어들것이다. 웃돌을 뽑아서 밑돌을 하는 식이다.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되지.) 로인은 서둘러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소?》하는 관리위원장의 물음에 침묵을 지키는데 그것은 《아니요.》했댔자 관리위원장이 기어이 고집을 쓰리라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그렇게 되면 관리위원장의 제안이 통과될수 있다. 로인은 김명배를 보았다. 김명배는 불만에 찬 눈으로 좌중을 휙 돌아보았다. 로인은 그와 순간적으로 눈길이 부딪쳤다. 《아부님, 왜 가만있습니까?》초봄의 어느날처럼 그가 안타깝게 호소하는듯싶었다. 드디여 리종수가 일어섰다. 그러자 장영덕이 얼굴을 찡그리였다. 《내 좀 얘기합세다.》 로인이 무게있게 입을 열었다. 《애초에 군에서 가을냄새면적을 타산해서 계획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거웨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가을남새를 심으라면서 사료를 심은걸 갈아엎으면 이게 무슨 놀음이 되갔소?》 대통을 든 손이 후들후들 떨었다. 장영덕은 (이 령감이 또 참견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저 조합에 대고만 의견을 내는게 아니라 군에 대고도 삿대질을 하지 않는가. 그는 군지도원을 힐끗 쳐다보았다. 지도원은 잠자코 있었다. 《령감님, 가을남새를 제대로 심어서 로동자, 사무원, 주민들에게 보장할데 대한 농업성의 지시는 정책입니다. 집짐승사료도 사료지만 우선 남새를 생산해서 사람들이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리종수의 눈찌가 심상치 않았다. 《사료를 심으란건 정책이 아닙니까? 새 정책이 나오면 지나간건 줴버려도 됩니까?》 장영덕은 더 참을수가 없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령감, 앉으시오.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요. 예?》 리종수로인은 앉았다. 그러자 관리위원회 부위원장 김명배가 낯이 불그레해져가지고 장영덕이에게 말했다. 《관리위원장동무, 리종수령감을 억지로 앉으라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령감님의 의견이 옳은데?》 장영덕이 불시에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뭐가 옳소? 가을남새를 보장할데 대한 토의를 하는데 방해를 놀고있지 않소.》 어찌나 소리가 요란했던지 녀인들뿐아니라 남자들도 가슴이 떨리였다. 문영숙은 와뜰 놀라 가슴을 움켜쥐기까지 했다. 《위원장동무, 리종수로인이 어떻게 가을남새를 보장할데 대한 토의를 방해하고있습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린 부위원장이 입술을 떨며 반문했다. 대중앞이지만 오늘은 참지 못했다. 《그러니 동무도 같구만, 같애!》 《사료전을 갈아엎는걸 반대했을뿐입니다.》 《내가 사료전을 없애라 했는가? 동무들이 땅이 없다 하길래 다른 땅에다 사료를 심고 적지에 남새를 심을수 있지 않겠는가고 대책을 물은거지. 그 길밖에 없지 않는가. 그걸 싫다면 그게 방해하는게 아니요?》 유근재가 듣다 못해 끼여들었다. 《아, 위원장동무, 너무 흥분하지 맙시다.》 《거 흥분하지 않게 됐소?》 《좋은 의견들이 나올것 같은데 오손도손 더 의논해봅시다.》 유근재는 리종수로인을 눈으로 찾았다. 《리종수령감님, 그러면 다른 좋은 대책이 없겠습니까?》 《지금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강냉이를 심은 사료전을 갈아엎고 남새를 심는건 안될 일이웨다. 로력랑비, 종자랑비는 더 말할것 없고 사료로 심은 강냉이도 벌써 싹이 나왔는데…》 리종수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장영덕은 눈에서 불이 이는듯 했다. 《그러면 어쩐다는거요? 대책은 못내놔 관리위원장이 내놓는건 반대해. 이러면 안되지요. 예, 령감님?… 이렇게 합시다!》 장영덕이 드디여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계속 론의해야 시간만 랑비할뿐이니 돌아들 가서 작업반들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새밭을 확보해야 하겠습니다. 남새분조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의는 끝났다. 박진섭은 동산마을로 돌아가며 리종수로인을 머저리라고 비웃었다. 일전에 강냉이밭귀때기가 떨어진것을 가지고 시비질한 일이 아직도 맺혀 내려가지 않고있는데다가 오늘 그가 취한 행동이 웃음을 자아냈던것이다. 얼마나 고지식한가. 사료전을 갈아엎고 남새를 심으라면 심는게 아닌가. 더구나 다른 땅을 일구고 그만한 사료를 심으라고 한것인데! 그러나 박진섭은 물론 새땅을 찾아낼 생각이 없었다. 관리위원장이 말했으니 거기다 언터구를 걸고 사료전을 갈아엎고 남새를 심으면 될것이다. 무엇때문에 고생스럽게 새땅을 찾아내겠는가. 로력도 없다. 또 다른 작업반장들도 자기처럼 손쉽게 하려 할것이다. 새땅을 찾아내고 거기다 사료전을 만들고 사료전을 남새전으로 하는 이 복잡한 공정을 거치느라면 여름이 다 갈것이기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이튿날 아침 팥을 심었다가 갈아엎고 사료용강냉이를 심은 말썽많은 밭을 가지고있는 분조로 나갔다. 아직 작업을 시작하기 전인데 진섭의 6촌동생인 이야기군의 이야기에 모두 정신이 팔려 듣고있었다. 《옛날 어느 나라에 한 늙은이가 살고있었네.》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그 늙은이는 암말 한필을 가지고있었는데 이 암말이 밭도 갈고 짐도 운반하는 집의 제일가는 재산이였지. 그런데 어느날 이 암말이 도망갔네. 아마 암내가 나서 수말을 찾아갔겠지. 그러자 동네사람들이 로인에게 거 참 안됐다느니 하며 동정을 표시했네. 로인은 별로 락심하는 기색이 아니였네. 〈혹 알겠소, 화가 복이 될는지.〉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로인의 대답이야. 과연 얼마 안있어 암말이 숱한 수말을 끌고 나타났네. 동네사람들은 제일처럼 기뻐하며 로인에게 복이 차례졌다는 인사를 했네. 한데 로인당자는 별로 반가와하는 기색이 없이 이렇게 대답했네. 〈혹 알겠소. 그 복이 화가 될는지.〉 과연 로인이 걱정하던대로 됐네. 말이 여러필 생기자 외아들이 그중 한마리를 전용으로 타고다니며 돌아치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네. 동네사람들이 과연 복이 화가 되였다고 하자 로인은 〈글쎄 두고봐야지요.〉하면서 별로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네. 그런데 이때 전쟁이 일어나서 젊은이들은 모두 싸움터에 나가게 되였는데 로인의 외아들은 다리병신이라 제명이 되였네. 다들 죽음이 기다리는 싸움터에 나가 더러는 팔이나 다리가 잘린 병신이 되든가, 죽어서 이름 모를 들판에 딩굴며 까마귀밥이 되였는데 로인의 외아들은 살아서 손자까지 보게 해주었다네.》 《하, 그것 참! 신통한 얘기군. 그러니까 화가 올 때 복이 싹트고 복이 올 때 화가 싹튼다는 소리야.》 《그렇지두 않지.》 다른 조합원이 반대했다. 《결국 로인은 말 한필을 잃은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복을 얻었네.》 《아직 내 얘기는 끝나지 않았소.》 이야기군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그의 넙적한 입을 쳐다보았다. 《그 외아들녀석이 장가를 가더니 색시한테 빠져 아버지를 돌보지 않는데다가 술과 도박에 미쳐 로인이 평생 번 재산을 다 부려먹었다네. 그때에야 로인이 탄식하기를 〈저게 전장에 나가서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했다네.》 《하ㅡ하ㅡ하ㅡ》 《일은 안하고 무슨 객담들이야.》 반장의 꽥소리에 모두 놀라서 머리를 돌리였다. 얼굴이 시퍼렇게 된 박진섭이 서서 큰 눈을 부릅뜨고있었다. 분조원들은 진섭의 입에서 더 사나운 욕이 터지기 전에 서두르느라고 엉치를 털며 일어나 흩어졌다. 《분조장, 나 좀 보기요.》 진섭은 다행히도 더 욕설을 퍼붓지 않고 분조장을 찾았다. 진섭은 분조장을 불러놓고 성냥을 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달았다. 어제 밤에 마신 술때문에 눈의 흰자위가 뻘겋다. 《어제 저녁 관리위원회에서 가을남새를 심을데 대한 문제가 토의됐소.》 그는 담배연기를 활 내뿜고나서 말했다. 《동무네 분조가 남새 다섯반보 심어야 하겠소.》 흩어져가며 분조원들이 6촌동생에게 《그래, 그 얘기는 끝이요?》하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군은 계속된다고 대답하는것 같았다. 《어디다 그걸 심습니까?》 분조장은 의아해하였다. 《어디다 심는가구? 일전에 팥을 심었던 밭이 있지. 그걸 다시 갈아엎고 배추를 심으라구.》 《아니 사료를 심어야 한다구 해서 아까운 팥밭을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었는데 그걸 또 갈아엎구 배추를 심어요?》 분조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냉이가 싹터나올 때가 됐는데요.》 《그런데 다른 분조의 사료전에서는 벌써 강냉이싹이 돋아나왔소. 그래서 이왕 죽을 쑨 동무네 그 밭을 다시 갈아엎고 남새를 심자는 타산이요. 내 말뜻을 알겠소? 요전에는 사료였지만 이번에는 남새야.》 분조장은 땅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왜 그러오? 가을남새를 심지 못해 로동자, 사무원들, 군내 주민들의 겨울김장을 보장 못하면 분조장이 책임지겠소?》 《아니 내가 왜 책임져요?》 《그러면 남새를 심으라는데 왜 대답이 없소?》 분조장은 무엇인가 입에서 내뱉았다. 《좋수다. 강냉이를 갈아엎구 남새를 심지요. 반장의 지신데 해야지요.》 《반장은 관리위원장의 지시에 따른거요. 그러니 분조장은 집행하면 돼. 뭐 이러쿵저러쿵 할게 없어. 아무나 시켜서 사료전을 갈아엎으라구.》 《예.ㅡ 하지요.》 분조장은 불만스러운 억지대답을 하였다. 박진섭은 어떻게 해서든 남새를 제일 먼저 심어 관리위원장의 눈에 들려고했다. … 그 다섯반보(1,500평)의 밭이 또 말썽을 불러일으켰다. 작업반장의 지시를 받은 분조장이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자기가 직접 소에 연장을 메워가지고 사료전을 갈아엎는데 마침 지나가던 관리위원회 부위원장 김명배의 눈에 뜨이였다. 《분조장동무, 여기가 사료전이 아니요?》 그는 길가에 서서 큰소리를 쳐 물었다. 《예, 그렇쉐다.》 하며 분조장은 회초리로 소엉덩짝을 때렸다. 《이랴!》 격분한 김명배가 밭으로 들어와 소코뚜레를 붙잡아세웠다. 《아니, 왜 그럽니까?》 분조장이 놀랐다. 《왜 그러는가구? 이 뒤집어엎은데를 보지 못하오? 강냉이들이 싹터나는걸?》 가슴을 헐떡이며 김명배가 손으로 갈아엎은 땅을 가리켰다. 《여기다 남새를 심으라고 하던데요, 반장이.》 《그래 사료전으로 대신할 땅을 찾아냈는가?》 《그거야 모르지요. 내야 반장이 시키니 하는거지요. 나도 뭐 좋아서 이노릇하는건 아니요.》 《당장 연장을 끌구 밭에서 나가오.》 김명배가 소리쳤다. 분조장도 밸이 났다. 《허, 내 참, 한데 나보구는 왜 큰소리를 치오?》 《이게 동무네 분조밭이 아니요? 그래 누구보구 큰소리를 쳐야 옳겠소?》 《반장보구 그래야지요. 내가 여기다 남새를 심지 않으면 이번엔 반장이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를 칠게 아니요? 주민들의 겨울김장을 보장 못하면 책임지겠는가, 이런단 말이요.》 김명배는 입술을 감빨며 잠시 생각하더니 《그럼 가서 반장을 데려오우.》하고 지시했다. 담배 한대를 피우는 사이에 분조장이 반장을 데리고왔다. 진섭은 얼굴이 댕댕했다. 《반장동무, 사료전 할 땅을 찾아냈소?》 이런 물음쯤에 당황해할 진섭이 아니다. 더구나 관리위원장을 등대고있는 진섭이로서는 부위원장이 눈아래로 보였다. 《이제 찾아냅니다.》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러면 거기다 강냉이를 심은 다음에 여길 갈아엎고 남새를 심소.》 《바루 먹으나 꺼꾸루 먹으나 같구같지 않소. 부위원장동무, 난 남새를 먼저 심겠소. 회의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론의가 됐소? 부위원장동무는 회의에서 반대하더니 여기 와서두 방해요?》 김명배는 숨이 막혀 얼굴이 질리기까지 했다. 《뭐요? 내가 반대를 했다? 그리구 방금 방해를 한다?》 《그렇지요. 남새를 심겠다는데 왜 못하게 하우?》 《누가 남새를 못 심게 하는가!》 《작업반장이 실정에 맞게 하는데 웬 참견이요? 부위원장이 그래 12반 농사를 책임지겠소?》 《나는… 나는… 우리 조합의 농사에 책임을 가지고있는 부위원장이요. 그러니까 12반의 농사에 대해서도 걱정하는거요.》 진섭이는 픽 웃었다. 《걱정해주어서 고맙소. 여 분조장, 어서 갈아엎으라구.》그는 분조장에게 지시했다. 분조장은 두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좋소.》 김명배가 목소리를 낮추고 위협조로 말했다. 《마음대로 하오. 그러나 사료전은 확보해야 하오. 두고보겠소.》하고 그는 돌아섰다. 진섭이는 그가 얼마쯤 간 뒤 땅에 대고 침을 퉤! 하고 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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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박진섭이가 춘권이에게 기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관리위원회에 회의 왔다 가던 그가 길에서 춘권이를 우연히 만났다. 《춘권동무, 참 오래간만이요. 조합이 크긴 크오. 한조합에서 같이 일하면서도 만나기 힘드니 말이요.》큰 눈을 드부럭거리며 하는 소리다. 《하긴 그렇소.》 아버지처럼 진섭이를 싫어하는 춘권이는 뚝한 얼굴로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그러나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다고 반갑게 인사하는 진섭에게 지내 성의없이 대꾸하는것 같아 인사로 이렇게 물었다. 《재미 어떻소?》 《그저 그렇지요. 늘 일에 쫓기며 살지요. 그런데 1반에 간 기호는 어떻소? 일을 잘하오?》하고 박진섭이 슬쩍 물었다. 문영숙의 말에 의하면 기호는 입을 꾹 다물고 일을 잘한다고 한다. 작업반원들도 기호를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다. 아버지 리종수는 어느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거 기호가 참 용터구나. 공쇄후치를 만들어서 밭김매기에서 사람의 손이 가지 않게 했다. 아마 능률을 두배는 올렸을게다.》하고 칭찬을 했었다. 리춘권이도 알고있는 소리였다. 문영숙이가 리춘권이에게 기호를 한 사나흘 기계화반에 출근시키려 한다면서 그가 공쇄후치를 창안했는데 제작하게 하려 한다는 말을 했었다. 문영숙의 설명에 의하면 보통후치에 날개를 달아 강냉이뿌리에 북을 돋구어주게 되므로 사람이 다시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것이다. (모를 소리다. 그게 그렇게 될가?) 춘권이는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기호를 좋게 보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기호가 1반에 와서 입을 다물고 일을 잘하는것은 12반에서 반장의 뒤소리를 한것으로 반장과 틀려가지고 쫓겨오다싶이했기때문에 다시는 그런 나쁜짓을 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1반사람들의 신망을 얻어보려는데서 출발한것이라고 춘권이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일을 잘 할수 있다. 형이 만행을 하고 도주했고 그자신이 《치안대》에 든 수치스러운 행적도 있으니 12반에서의 사건을 교훈삼아 극력 자제하는것이리라.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본성이 나타날것이다. 기호가 결코 진심으로 조합일에 열성을 부릴 사람이 아니다. 죄가 있으니 머리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 다니며 수걱수걱 일을 하는것이지 그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춘권이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기호를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한 강습을 받았고 초급당단체위원장이니 그런 속마음을 내색할수 없었다. 《기계화반에 보내서 공쇄후치란걸 만들게 하지요.》 그는 문영숙이에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되긴 될거요?》 문영숙은 웃으며 하여튼 본인이 자신있다니까 믿어보자고 하였다. 기호는 믿음에 보답했다. 그가 만든 공쇄후치가 은을 냈다. 그래 아버지 리종수도 저녁식사시간에 그를 칭찬하였던것이다. 기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는 없으나 어쨌든 그는 공쇄후치를 창안하여 기계화에 이바지했고 작업능률을 올렸으며 군중의 신망을 얻었다.… 리춘권은 《기호가 어떻소, 일을 잘하오?》하는 박진섭의 물음에 대답했다. 《12반장은 보배같은 사람을 우리한테 보냈더군. 문영숙반장이 고맙게 여기더군.》 그러자 박진섭의 눈빛이 차거워졌다. 그는 자기가 쫓아보내다싶이한 기호가 다른데 가서 일을 잘한다니 심술이 났던것이다. 그는 입을 삐죽거리였다. 《거 무슨 공쇄후친지 공치후친지 하는걸 만든것을 가지고 그러오?》 《말썽두 없소.》 박진섭이 비죽이 웃었다. 《기호는 나하구 한마을에 사니 내가 더 잘 아오.》 진섭이가 하는 소리다. 《그 사람이 턱이 뾰족하고 눈이 가는데 여간 령리하지 않소. 지내 령리하지요. 일하는걸 보면 알게요. 타산이 밝소. 로력점수에 신경을 쓰구 자기가 일을 잘한다는걸 간부들이 알았으면 하고 마음쓴단 말이요. 그래 내가 로력공수를 좀 적게 주었더니 뒤소리를 한게요. 나는 그 사람이 꾀를 쓰며 뼈를 놀리기 싫어하기때문에 알맞춤한 로력공수를 주었지 뭐 미워서 우정 그런건 아니요. 그런데 뒤에서 반장을 무섭게 헐뜯었소. 그랬다가 혼이 났지. 내가 좀 과격하게 한것은 있지만 그자의 버릇을 가르쳐주었소. 그래 지금 1반에 가서 조용한거요. 뭐 공쇄후치? 속지 마오. 그건 방패막이요.》 《방패막이란건 또 뭐요?》 진섭의 장광설을 들으며 기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긴 했지만 어쩐지 진섭이가 속에 칼을 품고있는것 같아서 그가 싫어져 빨리 그와 헤여졌으면 하던 춘권이는 흥미가 부쩍 동했다. 《그자가 집에 와서 뭘하는지 아오? 낮에는 사회주의를 하구 밤에는 자본주의를 하오. 그 사람이 손재간이 있소. 그래 밤마다 피곤을 무릅쓰구 소소한 상품들을 만드오. 아마 공쇄후치를 만듭네 하면서 자재를 많이 훔쳐서 집에 날라갔을거요. 그렇게 만든것들을 녀편네가 장마당에 내다 파오. 그건 그 녀편네가 팔골 뺑대거리 장마당에서 강옥숙이 참외장사를 하는걸 봤다고 뒤소리를 하는걸 보고 알수 있었지. 그게 제 입으루 제가 장마당에 다닌다는것을 말한게 아니요? 자기두 장사다닌다는 소리지. 이제는 그자가 어떤자인지 알았겠지? 사람의 본바탕은 변하지 않소. 계급적으로 보아도 그렇지. 적은 언제까지나 적으로 남아있소. 춘권동무, 할아버지, 할머니가 적에게 희생되였고 동생도 전사했는데 계급적각성이 무디여져서야 되겠소?》 춘권이는 진섭을 아니꼽게 쏘아보았다. 《기호는 적이 아니요. 동무네 초급당단체위원장이 강습받은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소?》 리춘권이가 이렇게 쏘아붙이자 진섭이는 큰 눈이 더욱 커져서 아무 대꾸도 못했다. 기호가 1반에 가서 일을 잘한다는 소리에 심사가 뒤틀리여 그를 헐뜯다보니 제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가는지 모르고 마구 지껄이다가 한방망이 맞았다. 춘권이는 뚝한 얼굴로 인사도 하지 않고 그와 갈라져 가던 걸음을 계속했다. 기호를 곱다고는 할수 없지만 원쑤 대하듯 하면 되겠는가. 지절대기는 똥본 오리라고 기호가 마치 원쑤인듯이 마구 지껄여대는 진섭이가 진저리나게 싫었다. 원체 진섭을 헐뜯은 기호가 잘못했지만 그것때문에 앙심을 품고 제 처지를 생각하라,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일이나 해라 하고 군중로선에 저촉되는 발언을 망탕한탓으로 비판을 심하게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 앙심을 아직 품고서 적이요, 계급적각성이요 한다. 누구든 계급적각성이 저보다 못하단 말인가. 그러나 진섭이가 지껄인 말에서 기호를 새롭게 알게 된 소득은 있었다. 기호가 손재간이 있으니 저녁에 퇴근해서 무얼 만드는 모양이다. 낮에는 사회주의를 하고 밤에는 자본주의를 한다? 기계화반에서 자재를 훔쳐갔다?… 어쨌든 기호를 믿는다고 하지만 내성으로는 믿게 되지 않고 어딘가 께름직하게 여기는 춘권이에게 진섭이는 그에 대한 흐린 인상을 더해주었다. 역시 본심은 나쁜 놈인가. 강옥숙의 비행도 진섭이의 입을 통해 알게 되였다. 물론 옥숙이가 장사를 다니군 한다는것을 모르고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 리종수가 땔나무까지 한달구지 해다주었으니 량심의 가책이라도 받을줄 알았는데 여전히 장사를 다니고있다니 격분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어둠에 잠기고있는 암화마을에 들어서자 2작업반장 최인서를 찾아갔다. 그가 집에 있었다. 그가 세면을 하는중이여서 토방에 앉아 한동안 기다렸다가 이렇게 물었다. 《강옥숙이 요새도 일을 나오지 않습니까?》 최인서는 수건으로 얼굴과 팔의 물기를 닦으며 침울하게 대답했다. 《오늘은 나왔더군.》 《며칠전에 뺑대거리장마당에 가서 참외장사를 했다는데 알고있어요?》 최인서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무슨 장사를 했는지를 모르겠는데 일을 뚜꺼먹은건 사실이요.》 《무슨 구실을 댑디까?》 《늘 하는 소리지. 아이병에 쓸 약구하러 간다구 하더구만. 그까짓거 난 이제는 그 아낙네를 작업반원으로 치지도 않소. 참외장사를 하든 낮잠을 자든 상관하지 않겠소.》 《그러면 됩니까? 교양을 주어야지요.》 《아, 글쎄 난 말하기도 싫다니까.》 리춘권이는 그와 더 이야기해야 소용없겠기에 일어섰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최인서가 붙잡는것을 사양하고 집으로 갔다. 춘권이는 저기압상태로 뚝해서 얼른 저녁밥상을 물리고 곧 강옥숙이를 찾아갔다. 개들이 컹컹 짖어대는 저녁의 마을 오솔길을 헐썩거리며 걸어가느라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초급당단체에 속한 당원들과의 사업만도 아름찬데 기호나 강옥숙이 같은 비당원들까지 관심을 돌려야 하며 락후분자들을 교양개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은 또 얼마나 심중하며 말그대로 《복잡》한가. 그런데 사람들을, 그것도 나이 든 사람들을 개조한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사업이 아니다. 공업부문에서는 강선제강소 진응원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칭호쟁취운동에 궐기하고 그 칭호를 받은것을 비롯하여 이기저기서 그 운동의 선풍이 불고있다. 그들은 생산에서 기적적인 혁신을 일으키고있을뿐아니라 뒤떨어진 사람들을 교양개조하여 선진분자의 대렬에 끌어들이며 집단의 단합을 이룩하고있다고 한다.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쟁취한 진응원작업반원들을 천리마기수라고 부른다. 그들은 어떻게 했을가? 가령 강옥숙이와 같은 녀자를 어떻게 교양개조했을가? 최인서는 그와 말하기도 싫다 한다. 그 녀자는 또 최인서를 당초에 대면하기조차 싫다고 한다.… 나 춘권이는 초급당단체위원장이니까 내놓고 싫다 하지 않겠지만 무뚝뚝한 나를 좋아할리 없을것이다.… 강옥숙이네 집에 다달았다. 저녁밥을 방금 먹고난 옥숙은 무슨 바느질을 하고있다가 앉은채로 《어서 들어와요.》하고 인사에 대답을 했다. 눈치를 보니 싫어하고 꺼리는 심사였다. 춘권이가 칭찬이나 하자고 온것이 아님을 짐작하고있는것이다. 그러거나말거나 들어가 앉아 담배부터 피워물었다. 머리를 맞대고 구들에 엎디여 공부하고있던 두 딸이 담배연기에 기침을 했다. 《아, 이거 실례했군.》 춘권이는 방문을 열고 담배불을 꺼서 밖에 내던졌다. 아래목에 병신아들이 누워있다. 아들도 딸들도 모두 옷을 허름하게 입었고 방안에서는 무슨 불쾌한 냄새가 났다. 천정에 파리똥이 다닥다닥하고 벽에 바른 벽지가 군데군데 찢어졌다. (남편없이 세 아이를 먹여살리자니 오죽하랴. 그럴수록 일을 잘해서 로력공수를 잘 벌어 분배를 많이 타야 하는데 조합일을 싫어하고 장사하던 버릇을 못 고치고있으니 허 참, 답답하군.) 사람들, 특히 녀자들과 말하는 예술이 없는 춘권이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아주머니, 며칠전에 결근하고 어디 갔댔소?》 옥숙이는 바느질손을 멈추었다. 《평양에 약사러 갔댔어요.》 《군병원에서는 대책이 없답디까?》 《군병원 말은 하지도 말아요.》 《약은 무슨 약을 사서 쓰오?》 《피를 통하게 하는 약이지요. 저 애 다리 하나가 피가 통하지 않아 장작개비처럼 말랐어요.》 철진이가 지팽이같은것을 짚고 절룩거리며 겨우 걷는 모양을 춘권이는 본적이 있었다. 《그럼 약이나 사올것이지 참외장사는 왜 하오?》 순간 옥숙이의 얼굴이 시퍼래지며 입이 이그러졌다. 《아니 누가 참외장사를 한대요?》 《본 사람이 있소.》 《누군데? 기호 녀편네가 그럽디까?》 도적이 발이 저린 법이다. 옥숙이는 저도 어쩔새없이 기호의 처한테 들킨것을 스스로 토설한셈이다. 춘권이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기호 처한테 들킨 모양이지요?》 옥숙이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검은 눈동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참외장사를 다녔어요. 기호 녀편네한테 들키기도 했소. 그래 어쨌단 말이요? 약을 사자면 돈이 있어야 할게 아니요? 누가 나한테 돈을 거저 준답디까? 예?》 이렇게 대들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춘권이는 눈에서 사나운 빛이 펑끗했다. 하지만 《엄마야》하며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자 가슴이 쓰려와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그는 농번기에 장사를 다닐게 아니라 로력공수를 벌어야 한다는것, 그래야 자기도 잘살고 조합에도 리익이 된다는것 등등 없는 말재간을 부려가며 따뜻하게 타일렀다. 머리를 수굿하고 듣고있던 옥숙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춘심이네 집은 고맙게 생각해요. 아부님이 땔나무를 해다주고 춘심이 오빠두 여러가지로 날 생각해준다는걸 알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틀려먹었어요. 남을 흠잡지 못해 안달이 났어요. 참외장사 좀 한걸 고해바치구… 그 쌍년, 얼마나 잘사나 내 보겠소.》 《아니, 아니, 근본잘못이야 본인한테 있지요. 왜 남을 욕하오?》 《춘심이 오빠, 내 말 좀 하라오? 예?》 옥숙이의 눈빛이 얼음같았다. 《얘기하시우.》 《내 이 말은 하지 않을가 했는데 모두 나만 교양하자구 달라붙으니 안할수 없소. 왜 나보구만 못살게 굴어요? 내가 남편이 없구 혼자 살구 힘이 없으니 나보구만 해보는데 일을 아예 나가지 않고 집에서 노는 아낙네들보구는 왜 말을 못하오? 그래도 나는 일을 다니지 않소?》 《그건 대체 무슨 소리요?》 《아니 춘심이 오빠는 소경이요? 아니면 모르는척 하우? 그래 조합관리위원장 하구 리당위원장 녀편네들은 집에서 고이 놀구있는데 그것들보구는 왜 해보지 못하오? 제 남편들이 간부면 놀아도 일없대요? 어디 좀 말해보자요.》 옥숙이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악을 썼다. 리춘권이는 불시에 당하는 기습에 당황해하며 간부들이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며 늘 바쁘니 집안일을 거둘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뒤를 거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어물어물 변명했다. 옥숙이가 더 요란스럽게 폭발했다. 《아니 나는 혼자 살며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고 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러면 나보다 더 바쁠가? 그렇지만 팔자가 사나와서 놀지를 못해요. 춘심이 오빠, 알겠소? 간부들 녀편네들부터 일 내보내고 나를 교양해요. 그게 옳지 않소? 간부들이니 말하기 힘들테지. 나같은건 누가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업신여기구 별소리를 다하지만.》 춘권이는 울적해졌다. 그는 쿨쩍거리는 옥숙을 남겨두고 그 집을 나왔다. 할 말이 없었던것이다. (내가 초급당단체위원장은 뭣하러 하면서 이 고생인가. 그저 논밭에 나가 일이나 꽝꽝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머리가 시원하구… 아니, 난 더 못하겠어.) 춘권이는 그길로 리당위원회를 찾아가 유근재를 만났다. 유근재는 제3초급당단체위원장과 담화하는중이였다.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는데 유근재가 불렀다. 《무슨 일이요?》 《예. 그저 좀… 후에 오지요.》 《앉아서 기다리오.》 유근재는 담화를 마저 끝내고 상대자를 내보낸 다음 춘권이를 돌아보았다. 《말하오.》 춘권이는 일어서면서 음울하게 말했다. 《난 초급당단체위원장을 못하겠소. 논에 나가 일하겠소. 내 할 말은 이게 다요.》 《허… 사람두, 무슨 일이 있었소?》 《난 사람을 교양하는걸 못하오. 내 성미에 맞지 않소.》 《이제 보니 동무자신부터 교양되여야 하겠구만?》 리춘권은 그의 눈길을 피하여 어딘가 방안구석쪽을 바라보고있는데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는것 같았다. (아니요, 리당위원장! 리당위원장과 관리위원장의 처부터 일내보내야 하오.) 그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종시 입밖에 내여 말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자신을 몹시 고통스럽게 하였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였다. 《아니 춘권이, 왜 그러오?》 유근재가 놀랍게 쳐다보았다. 리춘권이는 아무 대답 없이 곰처럼 어정어정 걸어가 문을 잡아채듯 열고 나와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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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춘권이 우울해져서 종일 논에 나가 김을 매고있는데 해가 기울무렵 문영숙반장이 찾아왔다. 춘권이와는 대조되게 밝고 생신한 얼굴이다. 그 녀자에게서는 마음속 고민같은것이 있는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남편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작업반장사업까지 하느라 그 녀자처럼 새벽에 일어나 늦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잠시도 앉아 쉴새없이 바쁜 사람은 없을것이다. 가냘픈 어깨에 집과 작업반의 중하를 다 걸머지고있는 녀인이 어찌 마음고생이 없으랴. 젊은 나이에 홀로된 몸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절로 남편생각이 솟구쳐올라 눈물로 베개를 적신 밤이 어찌 한두밤이랴.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하루종일 뺑뺑 돌아치며 잡념을 잊고있는것이다. 《춘심이 오빠, 나 좀 봐요.》 문영숙이 논머리까지 김을 매며 나온 춘권이를 불렀다. 춘권이는 논물에 손을 씻고 논두렁으로 나오면서 피뜩 영숙을 보았다. 흰 머리수건밑에서 예쁜 눈이 반짝이는데 눈가의 주름살과 갈라터진 입술이 춘권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가 뒤에서 잘 도와주지 못하고있어. 초급당단체위원장이라는것이…) 문영숙에 대한 애처로운 생각과 함께 이러한 가책이 들었다. 《저녁에 당원들의 회의를 간단히 하면 좋겠어요.》 문영숙이가 리춘권이와 논두렁에 가지런히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지금 김매기가 바쁘긴 하지만 풀이 한창 기름이 오르는 시기여서 매 집에서 새벽에 풀베기를 하자고 작업반에서 토론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잘 응하지 않는군요. 리종수아부님같은분들은 새벽풀베기를 착실하게 하는데 대개가 하루이틀 하구는 걷어치우든가 마지못해 한두지게정도 하고말아요. 김매기가 끝나면 풀베기를 본격적으로 하겠지만 지금부터 짬짬이 풀을 베여야 래년 봄에 논밭에 거름을 충분히 낼수 있다는걸 누구나 알고있겠는데 제집농사처럼 어디 팔 걷고 나섭니까?》 리춘권이는 두말이 없었다. 《회의를 합시다.》 《우리 관리위원장이 왜 회의를 자주 소집하는가 했더니, 호호…》 문영숙이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춘권이도 벙긋 웃었다. 이 녀자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명랑해지고 즐거워진다. 《그리구 말이예요. 기호동무가 동산에서 출퇴근하기 힘들어하는데. 글쎄 이게 기본은 아니예요. 기본은 손재간이 있구 연구심이 있다는거예요. 이런 동무를 기계화반에 넣어야 하지 않을가요? 기계화반이 동산에서 가까우니 출근하는데도 편리하지 않겠어요.》 기호 소리가 나오자 춘권이는 박진섭을 만나 그에 대해 들은 말들이 불쑥 생각났다. 그리고 춘권의 솔직한 심정은 연구심이 있고 손재간이 있다 해서 아무나 기계화반에 넣을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는 아직 기호를 깊이 모른다. 문영숙이가 기호를 받아들일 때도 싫어하였지만 지금도 기호가 공쇄후치를 창안했는데도 선뜻 칭찬하고 내세우고싶지 않다. 개인감정은 그렇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인 원쑤편에 섰던 기호가 아닌가. 그런데다가 기호가 《자본주의를 한다》고 박진섭이 말했다. 《반장동무, 기호를 받을 때는 남자로력자가 한명 늘기때문에 받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 로력자를 스스로 내놓는단 말이요? 스스로 생각한거요, 아니면 누가 그런 의견을 냅디까?》 《내 생각이예요. 작업반 욕심도 차려야 하지만 더 넓게 보아야 하지 않을가요? 기호의 재간이 아깝기두 해요. 그런 사람은 제자리에 가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문영숙은 이런 녀자였다. 사람을 귀하게 여겼고 생각을 넓게 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것이고 간부들도 그를 좋게 보는것이였다. 리춘권이는 이 아련해보이는 작은 녀자가 곰처럼 체통이 큰 자기보다 속이 더 넓은데 탄복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기호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기호가 밤마다 망치를 두드리고 줄칼로 쓸고 하며 상품을 만들어 처를 시켜 내다 팔고있다는것을 문영숙이 알고있는지? 《기계화반에 넣는건 고려해봐야 할것 같소.》 리춘권이 들바람에 흔들리는 벼포기들과 저녁노을이 곱게 물든 하늘이 어린 논물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거기에 인원이 차고넘치였소. 우리 아버지는 기계화반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쑤시고 들어가있다고 늘 불만이요.》 《제 생각에는 재간이 없고 공밥먹는 사람은 솎아내고라도 진짜 기술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넣어야 할것 같은데요.》 춘권이는 그 말 역시 옳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역시 기호인 경우는 고려해야 한다. 《기계화반에는 기술이 있다 해서 아무나 넣는게 아니라고 생각하오.》 춘권이가 여전히 뚝한 얼굴로 말했다. 《녜?!》 문영숙이 저으기 놀라며 춘권이를 쳐다보았다. 춘권이는 그 녀자의 의아해하는 눈빛에서 그러니 기호는 재간이 있어도 안되는가, 아직 믿을수 없다는것인가, 《치안대》에 가담한 죄때문에?… 하는 뜻을 읽을수 있었다. 마치도 자기 춘권의 속을 들여다보는것 같다. 춘권이는 자기자신에 대해 짜증이 났다. 그는 오만상을 찌프리고 이렇게 변명하듯 말했다. 《동산에서는 기호에 대해 나쁜 소문이 돌고있소. 공쇄후치를 만들며 기계화반에서 자재를 훔쳐냈다고도 하고 무얼 소소하게 만들어 돈벌이를 한다고도 하고…》 《그래요?》 문영숙이 더욱 놀란다. 그 녀자는 제 손가락들을 주무르며 생각에 잠기였다.… 이날 저녁 1초급당단체에 속한 당원들의 긴급회의가 있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리종수로인이 곤히 자는 아들과 며느리를 깨웠다. 로인은 낮에는 논김을 매고 밤에는 당사업을 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아들과 그리 건강치 못한 며느리를 아직 새벽풀베기에 인입시키지 않고 거의 혼자 나서군 했다. 그런데 어제밤 당회의에서 론의가 있었고 춘권이가 《아버지, 나도 새벽풀베기에 이제부터는 빠짐없이 참가하겠습니다. 초급당단체위원장이 당원들의 앞장에 서지 못했어요. 래일 새벽 내가 혹시 못 일어나거든 깨워주십시오. 인성이 엄마도 깨워주십시오. 그 사람도 해야 합니다.》하고 부탁하였었다. 《네 말이 옳다. 새벽풀베기에서 우리 집이 앞장서자.》로인이 이렇게 대답했었다. 춘권이와 그의 처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나왔다. 아직 날은 푸름푸름했다. 셋이서 지게, 낫, 바줄들을 준비하고 작업복을 입는 사이에 날이 환하게 밝았다. 세사람이 석두재기슭으로 향했다. 새벽이슬이 신과 바지가랭이, 치마자락을 적시기때문에 고무장화들을 신었다. 풀밭을 장화로 밟고 지나면 풀잎에 뽀얗게 서리였던 이슬이 풀잎과 함께 뭉개지며 장화자욱이 선명하게 찍히였고 장화는 물기에 번들거리였다. 뒤에서 아들과 함께 따라오는 며느리가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하품을 하였다. 종수로인이 돌아보며 《졸리느냐?》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아부님?》며느리가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풀밭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베자.》 리종수로인이 지게를 벗어 작대기를 뻗쳐 세워놓으며 낫을 벗겨들었다. 날이 선들선들하게 간 낫이였다. 며느리에게 좀 작은 낫을 주고 자기와 아들은 큰 낫을 들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자 낫날로 풀을 끌어당겨 왼손으로 모아쥐고 재차 날을 풀대밑에 대고 힘을 주어 당겼다. 썩ㅡ 하고 풀들이 잘리우며 왼팔에 와서 안긴다. 이렇게 몇번 하자 왼팔에 안긴 풀이 단을 이루었다. 그는 이 풀단을 번쩍 들어 그루터기들만 남은 번번해진 곳에 척 눕혔다. 이슬들이 모아져 물방울을 이루어 후두둑 떨어진다. 왼팔소매에 토시를 끼였건만 벌써 이슬에 푹 젖었다. 이렇게 이슬에 젖는것때문에 새벽풀베기를 싫어하였다. 하지만 풀베기철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베지 않으면 때를 놓쳐 풀들이 쇠기 시작한다. 쇠기 전에 기름이 번들번들할 때 시간을 아껴가며 한단이라도 더 베야 하는것이다. 지금은 나무들과 풀들과 곡식들이 무성할대로 무성하여 한껏 살이 찌고 기름이 올랐다. 썩ㅡ 썩ㅡ 리종수로인은 이슬에 젖어가지고 낫질을 계속했다. 그옆에서 끈으로 허리를 동여맨 며느리도 시아버지께 뒤질세라 부지런히 낫질을 하였다. 단이 차면 떨기나무줄기를 비틀어 맬끈을 만들어가지고 무릎으로 힘껏 눌러 조이며 단을 묶는다. 젊고 힘이 왕성한 리춘권이는 세차게 낫질을 했고 끙끙거리며 풀단을 큼직큼직하게 묶었다. 풀단들이 늘어나며 어느새 한지게씩 될상싶다. 풀단들을 지게마다 올려쌓고 바줄로 동여맨다. 어느새 그렇게 많이 베여 단을 묶어 쌓았는지 아득히 높아보였다. 춘권이의 풀단이 제일 높았다. 그는 먼저 자기 일을 끝내고 아버지와 처가 풀단을 지게에 쌓는것을 거들어주었다. 며느리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불그스레 물드는 동녘하늘을 쳐다본다. 꾀꼴새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잎담배를 다져놓은 대통에 성냥을 그어대여 불을 단 리종수로인이 지게를 지려 하는데 아들이 와서 힘을 써주었다. 춘권이는 안해에게도 다가가 거들어준 다음 자기의 산더미같은 지게 멜끈을 두어깨에 걸고 《끙ㅡ》하고 한번 힘을 쓰며 우쩍 일어섰다. 리종수로인은 입에 문 대통에서 담배연기를 풀썩 내보내며 이들과 며느리를 앞세우고 경사진 풀밭을 내려와 마을길에 들어섰다. 그 시각에야 뒤늦게 풀베기를 하려고 석두재로 가는 조합원들과 길을 어기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조합원들은 산이 움직이는것 같은 춘권이의 풀단을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리종수로인이 대통의 담배를 다 피우기 전에 집에 당도하여 지게를 내려놓고 바줄을 풀고 풀단들을 이미 웅뎅이에 높이 쌓인 풀더미우에 한단씩 던진다. 후두둑후두둑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다시 빈 지게를 지고 세사람이 함께 풀밭으로들 향했다. … 두번째 지게를 지고 올 때 동녘하늘에서 해가 솟았다. 처음에는 불그레하고 큰 불덩이같더니 차츰 작아지고 눈부시게 빛을 뿌렸다. 그러자 새들이 나무잎속에서, 지붕우에서 울어대기 시작했고 매미들의 《맴ㅡ 맴ㅡ》하는 합창이 더 맹렬해졌다. 지게를 내려놓았을 때 며느리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두지게를 했다는 로동의 희열로 고운 눈이 반짝이고 땀흐르는 얼굴에 붉게 홍조가 피였다. 《너는 이제는 그만두거라.》 리종수가 며느리를 쳐다보지도 않은채로 말했다. 《아부님은요?》 《난 아애비하고 한지게 더하겠다.》 《그럼 저도 같이 해야죠.》 《아서라.》 《그래두…》 《두말 없다.》 리종수로인은 이슬에 저고리며 치마가 흠뻑 젖고 숨이 차 할딱거리는 며느리를 떨구고 아들과 함께 다시 풀밭으로 향했다. 이날 아침 오씨가 차린 아침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리씨일가사람들은 다른 날보다 특별히 흥겨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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