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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3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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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만쪽으로는 숱한 피난민들이 밀려올라왔다. 도보로도 오고 기차로도 올라왔다. 그러나 이 길 역시 순탄한 길이 아니였다. 오는 도중 붙잡혀서 수색을 당하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였다. 벌써 동만의 란동분자들이라고 주목했다. 어느날 저녁엔 카륜정거장에도 피난민들이 내렸다. 캡을 눌러 쓴 차득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람들을 호위하며 빨리들 홈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초여름인데도 솜누데기를 걸친 사람이 있고 달룽하게 들린 짧은 잠뱅이로 겨우 아래도리를 가리운 사람도 있었다. 모두 쫓기며 피해다니다가 와서 험한 몰골을 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힘겨웁게들 이고 지고 왔다. 한아름씩 되는 보퉁이들, 신문지를 더덕더덕 바른 큰 상자들속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승강대를 내릴 때에는 부딪쳐 깨진다고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구들비, 또아리 같은것도 짐짝에 매달려 데룽데룽 춤을 췄다. 사람들은 낯선 땅을 디디며 어쩐지 가슴들이 후두두 떨렸다. 해지는 하늘을 우러러 통곡을 터뜨리고싶기도 했다. 차득보도 속으로 울었다. 이때까지 망국의 설음, 망국의 설음 하니 무슨 말인가 했는데 정말로 나라 잃은 설음이 이렇게도 가슴을 우빌줄은 몰랐다. 온 땅우에 민족의 비참한 눈물이 바다를 이룬것 같고 먼 지평선끝에 한가닥 띠를 그린 저녁노을은 민족의 마지막 피빛같아만 보였다. 카륜역에는 그 이튿날 저녁때에도 숱한 피난민들이 내렸다. 거기에 뜻밖에도 김성주동지께서 나타나시였다. 그이께서는 변장한 다부산자자락을 날리며 절뚝거리는 장윤삼을 부축하고 걸으시였다. 그뒤에 차광수, 최창걸, 상준이, 춘택이, 권태일, 경주, 오순희들이 따라섰다. 그런데 거기에 또 고유수에 가있던 수연이도 끼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회의를 준비하시면서 최봉을 잊을수가 없어 수연이를 회의에 참가하도록 통지를 내게 하시였다. 그래도 수연이는 고유수조직이 도와주어서 입고갔던 토목치마저고리를 입고 오지 않고 새하얀 연당목저고리에 목세루치마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었다. 무언가 조그만 책보따리 같은것을 은가락지 낀 손에 들고 온다. 청년들은 거의다 중국복으로 변장했다. 오늘저녁 피난민들은 더욱 불성모양이였다. 부상자들이 많았다. 아주 숨지지 않을 사람이면 다 데리고 온것 같았다. 모두 신음소리를 씹어삼키며 걸었다. 그이께서는 가슴허비는 대렬을 이끄시고 정거장밖으로 나서시였다. 오늘저녁에도 먼 지평선끝에 피빛노을이 한가닥 비껴갔다. 역시 그저 노을로만 보이지 않는 비참한 이 현실의 표상을 그리고있다. 장윤삼은 얼굴이 더욱 시꺼멓게 되여 절뚝거리며 걸었다. 관자노리가 칼등처럼 솟았다. 과거운동에서 받은 마지막진통, 거기에 어린것과의 리별이 신색을 아주 몰라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슬픔의 짐을 더 많이 받아진것은 장윤삼의 가슴이 아니라 그이의 가슴이였다. 아직도 그 째는듯한 《별선생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귀전으로 날아온다. 《선생님, 별선생님, 인젠 가지 마. 나 학교에 또 들여줘.…》 돈화의 차디찬 땅속에서 지금도 이 소리를 부르짖지 않을가? 사람의 죽음이란 이렇게도 허무할수 있을가? 그 째는듯한 목소리는 귀전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인순이는 연기로 되였는가 안개로 되였는가? 정거장 뜰을 지나 벌길로 들어서시는데 회의준비를 위해 먼저 와있던 신동호가 마중을 나왔다. 《그래 대표들이 다 도착했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다 도착했소. 국내대표도 왔소.》 《오학천동무가 왔단말이요?》 《오늘아침 도착했소.》 그이께서는 안색이 환해지시였다. 대표들이 다 모여왔겠는가 하는것이 못내 걱정되시였는데 국내공작원까지 왔다는바람에 마음이 놓이시였다. 조국땅을 밟고 돌아가던 그 조국의 향취가 풍기는 동무를 꽉 끌어안아보고싶은 충동도 일어나시였다. 지금 학교마을에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끓었다. 학교강당에선 어제 돈화에서 온 청년이 종파들의 죄행을 폭로하는 이야기판을 벌리였다. 넓은 강당에 사람들이 빼곡 찼다. 국내공작원 오학천, 할빈의 김혁이, 고유수의 조학래도 왔다. 국내대표 오학천은 본시 해맑은 얼굴인데 그동안 살빛이 컴컴해지고 길죽한 얼굴에 위장용 은테안경도 걸었다. 버릇이 된듯 그 안경속의 눈이 줄곧 긴장한 빛을 띠고 장내를 살펴본다. 안도에서도 김형권동지께서 보내신 대표가 오고 화전, 무송 등지에서도 대표들이 왔다. 종파들의 죄행을 폭로하는 청년은 분노에 차서 부르짖었다. 《글쎄 이 미친놈들 보시오. 리학이라는자는 동불사 가까운 어느 촌락에 숨어있으면서 기차를 전복시킬 궁리를 하던 끝에…》 궁리하던 끝에 어느 광산에 가서 화약과 깡을 얻어다가 폭발물을 제조하는 일에 달라붙었다는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만들기 시작한 그날밤에 꽝하는 요란한 폭발소리가 났는데 만들던 집 식구들이 둘이나 죽고 종파 하나는 팔이 떨어져나갔다는것이였다. 그리고 리학이 혼자 참사가 벌어진 집구석에 앉아 연구를 해낸것이 철길의 나사못만 몇개씩 뽑아던지면 철장대를 들어내고 기차를 전복시킬수 있다는 《대발명》이였다는것이다. 그래서 폭동성원들을 그렇게 하도록 내몰아 화차 열차량과 객차 한차량을 뒤집어엎었는데 리학이 그러고 와서 렬차의 전복, 이것은 아브로라의 포성과 같다고 대웅변을 했다는것이다. 야유와 해학이 심해서 듣는 사람들이 얼굴이 뜨근뜨근할 정도였다. 《여보, 인젠 얘길 그만하오.》 좌중에서 김혁이 엄하게 소리쳤다. 《하긴 나두 이게 민족의 수치이고 비극이란걸 알긴 하오.》 《알기에 그만 이야기하라는거요.》 이번엔 오학천이 소리쳤다. 좌석은 불시에 엄숙해지고 조용해졌다. 인제 조선혁명은 어데로 나가야 하는가 하는 절박한 생각이 누구의 가슴속에서나 다 아프게 흘렀다. 언제까지나 그따위 미치광이들이 혁명운동에 피해를 주고 민족이 고통받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단말인가! 그따위들을 쓸어버리자면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복잡다단한 시대의 참화를 벗어던지며 혁명이 자신있게 거보를 내디디게 할수 있을가! 모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우리 모두 가자 해방의 꽃동산에 손잡고 가자!
그래도 곁교실에선 해방의 꽃동산으로 가자는 애들의 글소리가 랑랑하게 들려온다. 키큰 교장선생이 교편을 들고 서서 열심히 글을 가르치고있다. 요새 학교에선 김성주동지께서 중요한 회의를 여신다는바람에 벌써부터 교실 하나를 대표들의 집합장소로 제공해놓고 애들을 2부제로 날이 저물도록 가르쳤다.
독립만세 우렁차게 부를 날 머지 않아 앞에 있다
이쪽 교실에 앉아 글소리를 듣는 청년들은 더욱더 가슴에 웅심깊은 생각들을 했다. 눈앞이 흐려있는 청년도 있었다. 바로 이러는데 학교 교실로는 한 청년이 허겁지겁 달려들어오며 김성주동지가 오신다고 소리질렀다. 모두 와르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이께서 오신다는 말은 그믐밤에 해뜬다는 말과 같이도 들리는것이였다. 모두 옷매무시를 고치며 문통이 메게 밀려나왔다. 벌써 학교앞 큰 뚝우엔 사람사태를 이루었다. 논벌의 농민들이 밀려들어오다가 먼저 그이를 맞았다. 사람들이 겹겹으로 둘러싸고 서서 무어라고 떠들어올린다. 저쪽방 교실에서 글배우던 아이들도 터져나왔다. 애들이 먼저 김성주선생님을 부르며 주먹을 쥐고 내뛰였다. 강당에서 빠져나온 사람들도 뛰였다. 어데 있다가 나왔는지 발목이 퉁퉁 붓고 한팔을 엇멘 한윤이도 절뚝거리며 뚝우로 나왔다. 먼저 나간 사람들은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 그이와 악수를 하느라고 법석을 이루었다. 애들도 달려들어가며 선생님을 불렀다. 어린것들은 서로 밀치며 닥치며 야단이였다. 《응, 우리 꼬마들 공부 잘했나. 허허허.》 김성주동지께선 제일 작은 꼬마를 닁큼 품에 안아 올리시였다. 그리고는 아이의 볼에 자신의 볼을 대시였다. 군중은 그이를 보고 모두들 눈물을 머금었다. 《오, 이건 또 누구였던가? 개구장 장난 잘하는 갑손이였지?》 그이께서는 꼬마를 또 하나 품에 안아 올리시였다. 흙이 묻은 꼬마의 볼에 또 자신의 볼을 대시며 웃으시였다. 역시 웃으시는 눈앞에는 이슬이 고였다. 《자, 이건 또 누구였지? 경식이…》 애들을 골고루 어루만져주신 뒤에야 악수를 하지 못한 청년들과 또 악수를 하셨다. 그이께선 팔을 엇멘 한윤을 꽉 끌어잡으며 이건 어째 이렇게 됐느냐고 물으시였다. 《그저 좀 부상을 입었습니다.》 《부상? 어쨌든 남만에 가서 본때있게 해낸다니 기쁘오. 새 출발이 하늘로 날아오를 기상같다는 말을 내 감옥에서 들었습니다.》 《무슨 그러겠습니까.》 한윤은 뒤통수를 긁었다.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김성주동무!》 《이건 누구요? 김혁동무! 할빈에 가서 발을 잘 붙였다구…》 김성주동지께서는 악수가 아니라 김혁을 꽉 부둥켜안으시였다. 김혁의 눈엔 눈물이 듬뿍 괴였다. 이번엔 오학천이 김성주동지를 부르며 나섰다. 《학천동무!》 김성주동지께서는 오학천를 붙안으시고 오학천은 김성주동지를 붙안았다. 이게 얼마만의 상봉인가. 그이께서는 오학천의 잔등을 어루만지기도 하시고 두드리기도 하시였다. 피멍이 든 조국땅, 몸부림치는 무대를 밟고 돌아가며 얼마나 정력을 바쳐서 싸우다가 돌아왔는가. 《동무들!》 그이께서는 손길을 쭉 펴서 들어올리며 우렁우렁하신 목소리로 웨치시였다. 시선이 그이께로 집중되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어머니조국땅에서 학천동무가 돌아왔소. 피멍이 든 조국의 숨결을 안고 오학천이 돌아왔단말이요. 뜨거운 눈물의 환호를 아끼지 맙시다.》 권태일이, 춘택이, 리병모들이 우우 달려들었다. 모두 맞들자 맞들자 하더니 오학천의 팔다리를 노나쥐고 온몸을 떠받들며 이영차 하고 들어올렸다. 《어머니 내 조국!》 《내 조국 어머니!》 《삼천리 금수강산!》 《금수강산 삼천리!》 오학천는 위장용 은테안경을 벗어쥐고 량팔을 춤추듯 휘저으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주위에서 더 버쩍 들어올리라고 소리쳤다. 《금수강산 내 조국!》 《금수강산 내 조국!》 웨치는 청년들은 그리운 내 조국을 둥둥 들어올리는 심정으로 오학천을 들어올린다. 그의 온몸에서 조국의 향기가 풍겨오는듯 해서 조국땅을 밟고 돌아가던 그의 발바닥에 입을 맞추고도싶었다. 아, 그리운 내 조국! 사랑하는 내 조국! 이 광경을 보는 오순희는 경주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감격의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얼마만에 보는 오빠인가! 력사적인 회의이니 국내대표로 올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렇게 나타날줄은 몰랐다. 《얘 경주야, 모두 우리 오빠의 몸에 조국이 곁묻어온것 같아 저러겠지?》 《그러찮구… 조국의 아픔, 조국의 피눈물이 곁묻어오지 않았을테냐?》 오순희는 경주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경주는 경주 제 생각으로 또 눈물이 글썽해졌다. 오순희의 오빠를 보니 저도 오빠생각이 뭉클해졌다. 우리 오빠는 왜 이렇게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때 돌아오지 못하는가? 서대문형무소로 이끌려간것 같다고 하는데 순희 오빠가 우리 오빠의 안부나 알고 왔을가? 부디 몸이나 건강해있다가 순희 오빠같이 이렇게 문뜩 돌아와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글쎄 그런 날이 있기야 있겠지. 경주는 가슴 밑바닥으로 구슬픈 생각이 쓰리게 흘렀다. 청년들은 김성주동지를 삥 둘러싸고 학교로 향했다. 인젠 자기들의 세계에 둥그런 핵이 생기고 그 구심점으로 하여 좌표도 똑똑해지고 그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고 앞으로 돌진할것 같은 새힘이 우쩍우쩍 솟았다. 아이들이 먼저 량팔을 벌리고 야아소리를 치며 뛰였다.
6
이런 때 학교마을앞 경비초소에는 적의 밀정이 두놈이나 걸려들었다. 어제도 버들개근방의 토지를 사기 위해 현지를 돌아보러 온다는 무슨 회사 사무원이란놈이 오다가 걸려들었다. 그래서 놈을 지난밤새 문초를 했는데 아닌게아니라 일본특무기관이 밀파한 밀정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또 동만 어느 농촌에서 피난해온다는 자가 들어오다가 걸려들었다. 아무래도 《뱀눈》같아서 청년들이 붙잡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래 가족은 없이 혼자 온단말이요?》 《가족은 다 죽었지요. 예편네하고 애 둘 있던걸 순경놈들이 다 쏘아죽이고…》 피난민은 눈물까지 두르르 굴린다. 키가 꺽실하게 크고 등이 구부정한 작자인데 청년들은 아무래도 농사군같지 않아서 손을 끌어다가 만져보았다. 손가락들이 길쭉길쭉한데 선비의 손같이 매끈하고 손바닥엔 썩살 하나 박이지 않았다. 《이놈, 거짓말 말고 앞서라! 가막소맛을 좀 보아야겠다.》 청년들은 아무래도 밀정같아 달려들어 그를 들어일궜다. 그는 할수없이 보따리를 지고 앞섰다. 다리를 다쳤는지 한쪽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었다. 이게 바로 차중에서 한윤을 체포하려고 달려들었던 고인호였다. 놈은 기차속에서 한윤을 해치고는 사복경찰들을 데리고 카륜으로 왔다. 그리고는 카륜역전 어느 주막집에 숨어앉아서 어제 김성주동지께서 여기 당도하시는것도 살펴보았다. 그이를 옹위하고 오는 청년대오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사복경찰들을 어떻게 꼬드기지도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사복경찰들에게 역전주막에서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라고 일러놓고는 여기로 기여들었다. 놈은 인제 김성주동지께서 어느 동네 누구네 집에서 숙식을 하며 무슨 일을 시작한다는것과 여기 길목이 어떻게 생겼다는것만 알아쥐면 카륜역전으로 내뛸판이였다. 《흥, 놀랍다. 가막소? 이따위것이나 만들어놓고 앉아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신칙하면 일본사람들의 진출을 막아내? 어림도 없는 소리…》 구류장에 갇힌 고인호는 방바닥에 누워 거미줄 드리운 천정을 쳐다보며 중얼댔다. 그는 봉천총령사가 일러주던 말을 생각했다. 《이봐, 김성주가 감옥에서 석방되였다는것은 우리들의 활무대우에 넘어섰다는것을 의미하는거야. 인제 이 만주란 우리의 장중에 든 활무대야. 샅샅이 뒤지며 종횡무진 수색전을 펼수 있는 우리의 안마당이란말이다. 흐흐흐 으흐흐.》 총령사는 말이발같은 긴 이발을 드러내보이며 신이 나서 웃기까지 했다. 형편이 이런데 인제 거처만 알아낸다면 체포를 못할건 없다. 어쨌든 그 말이발한테 충실해야 할 일이였다. 그래야 앞날에 부귀영화가 있을것 아닌가. 고인호는 느긋한 심정으로 가슴팍에 손가락장단을 쳤다. 그런데 이때 밖에 웬 경비원들이 나타나서 오늘부터 걸리는 《뱀눈》혐의자들은 전부 걸리는대로 넘기란다는 지시가 왔다고 했다. 《뭐 낮에 족치겠대?》 《낮부터 족치겠다우. 지금 갇힌놈도 빨리 묶어서 보내라우.》 구류장 경비원들이 달려들어와 고인호를 묶었다. 《아니 이건 무슨짓이요? 피난온 사람을 이렇게 하는 법이 어데 있소? 이건 동만 순경놈들보다 더하지 않소? 난 정말 피난민이요.》 《쓸데없는 소리 말어.…》 경비원 하나가 고인호의 따귀를 갈겼다. 그제야 고인호는 겁을 집어먹고 떨었다. 청년들이 우들우들 떠는놈을 앞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 오벽근이와 또 한 농민 최순근이는 학교마을 한쪽에 있는 《뱀눈》들을 문초하는 집 사랑방에서 장훈이야 멍훈이야 하면서 장기를 두고있었다. 오벽근이는 어느놈이 와서 보든 이 마을에서 회의가 있다는것을 느끼지 못하게, 농민들이 그저 태평세월로 사는곳으로 알라고 장기판도 여러군데 벌려놓고 로인들이 모여들어 장기를 두게 했다. 그리고 자기도 이 《뱀눈》문초하는 방에다 장기판을 갖다놓고 농민들과 장기를 두었다. 《뱀눈이 또 걸렸단말이지.…》 《자꾸 와서 걸려라, 걸리는 족족 덜미를 치게.…》 최순근의 말에 오벽근이 대꾸하며 상대방의 차를 땅 쳐서 손아귀에 거머쥐였다. 둘이 다 조국광복할 회의가 지금 마을에서 벌어지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흥청거려 《뱀눈》이라도 앞에 앉혀놓고 야 이놈 소리를 지르고싶었다. 한창 장기를 두는데 기다리는 《뱀눈》혐의자는 오지 않고 한윤이 막대기를 휘여잡고 절뚝절뚝 마당으로 들어섰다. 《한선상, 상처가 좀 어떻소?》 《빨리 약을 좀 발라주십시오. 그게 무슨 약인지 풍풍 쑤시던것이 좀 멎었습니다.》 《암, 멎다마다, 여부가 있는가요. 그까짓 신의가 주사침이나 찔러가지곤 안되는기라.…》 오벽근이는 장기판에서 물러나 부랴부랴 구석쪽에 있는 약단지를 들어 내놓았다. 논판으로 기여온 한윤을 부축해가지고 들어와 제 중의적삼을 바꾸어입히고 수갑을 끊어던진 오벽근은 지금 그를 제 집에 있게 하고 제 손으로 치료를 했다. 삔 발목과 부은 팔에 무슨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두드려 꿀에 반죽한것을 하루 세번씩 갈아붙이는데 내내 여기 와서 갈아붙였다. 오벽근이 밀정 잡아내는 도장수처럼 늘 여기 나와서 살기때문에 약단지도 아예 들고나와서 치료를 했다. 한창 삔 발목에 약을 갈아붙이는데 경비원들이 밀정혐의자를 데리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놈 포박을 풀어서 끓어엎디여라.》 상고머리를 한 최순근이 담배를 피우다가 엄한 눈으로 내다보며 소리쳤다. 《뭐요, <뱀눈>이 또 걸려들었소?》 《방금 또 한놈 걸려든기라.》 한윤의 묻는 소리에 발목을 싸매고있는 오벽근이 대꾸했다. 《아니…》 마당을 내다보던 한윤은 눈이 한뽐이나 커졌다. 밖에 서있는 고인호도 한윤의 눈 배나 되게 커졌다. 고인호는 눈만 커지지 않고 당장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했다. 그러더니 불에 덴놈처럼 화닥닥 바깥마당으로 내뛰였다. 경비원들이 따라나갔다. 《이놈 가길 어디 가? 피난민이라고 하는놈이 뛰긴 어디로 뛰여?》 경비원들은 고인호를 두드려팼다. 《그놈 단단히 붙잡아라. 보통 <뱀눈>이 아닌것 같다.》 방안에서도 아우성이 일어났다. 한윤은 발목을 다 싸매고 일어섰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기차에서 떨어진 날 밤에는 당장 고인호가 사복경찰들을 데리고 카륜으로 온것만 같아 죽을 힘을 다 내서 기였는데 그뒤 고인호가 나타나지 않기에 그저 차중에서 딴데로 가는놈들과 우연히 만난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잊고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놈이 여기로 기여들었단말인가. 한윤은 당장 머리칼이 곤두서고 사복경찰들 생각이 났다. 이놈이 사복경찰들은 어디 두고 왔는가. 그놈들을 여기 끌고 들어왔단말인가! 한윤은 얼른 막대기를 짚고 바깥마당으로 나갔다. 경비원들이 고인호를 꽉 붙들고 서있었다. 한윤은 기상이 어마어마해져서 놈을 노려보았다. 《아, 한윤이, 한윤이 이사람, 제발 제발…》 고인호는 한윤이앞에서 허리를 갑삭갑삭하며 부르짖었다. 죽어 없어진줄 알았던 한윤을 보고 놈도 얼굴빛이 새까맣게 죽었다. 《한선상, 이게 웬놈인기오?》 《이게 바로 왜놈경찰들을 데리고 차칸에서 나를 묶자고 했던 놈이요.》 《뭐 수갑 채우고 묶자고 했던놈이락고? 니 정말 잘 왔능기라.》 오벽근이 황소 울듯 고함을 질렀다. 그는 한윤이 수갑을 차고 논판으로 기여오던것을 보기도 했는지라 속에서 산같은 밸이 떠밀어올랐다. 《아, 이사람 한윤이, 자네 아버지 생각을 해주게.…》 고인호는 한윤의 바지가랭이를 걷잡아쥐며 숨을 헐떡거렸다. 어떻게 했는지 입술로 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너무도 절통스럽게 걸려들어 이발로 혀라도 깨물었는지 모른다. 세상일이란 이래서 모를 일이라고 하는가. 죽인 사람한테서 도로 죽게 되는 경우, 손발이 모지라지게 빌어서라도 살고싶은 경우, 발바닥이라도 핥아주고 살고싶은 경우, 이 인간으로부터 탈락한 개가 자기앞에 이런 경우가 부닥쳐들줄이야 꿈에나 알았을텐가? 《그래 사복경찰은 어데다 매복시켰는가?》 《대겠네. 이렇게 된바에 그까짓놈들을… 그놈들은 지금 카륜역전 주막집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있네.》 《그래 세놈이 다 왔는가?》 《다 왔네.》 《음, 잘 걸려들었군. 가만있자, 이놈과 계산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소. 경비원동무, 저 큰길너머 녀성동무들이 들어있는 집에 가서 수연이라는 동무를 좀 오라고 하오. 그 동무가 와서 왕청문의 원한을 풀어야겠소. 빨리 뛰오.》 한윤의 소리에 경비원 하나가 주먹을 쥐고 뛰였다. 한윤은 절뚝거리며 터밭머리로 걸어가 굵은 개바자말뚝을 하나 엇메지 않은 손으로 거머쥐고 우쩍우쩍 흔들었다. 와짝 힘을 쓰니 한자가량 들어가 박힌 굵은 말뚝이 뽑혀져나왔다. 돌같이 단단한 참나무말뚝이였다. 한윤은 그것을 들고 고인호앞으로 걸어왔다. 고인호는 그 광경을 보고 점점 더 입술이 새파랗게 얼어들었다. 왕청문의 원한을 풀게 한다니 그 멀리로 안개흔적같이 없어져버렸을줄 안 뒤손질의 흔적이 에돌고에돌아 여기 와서 시퍼렇게 마주서게 될줄은 몰랐다. 그는 두다리를 와들거리며 마당가운데 팔싹 주저앉았다. 경비원이 수연이를 데리고 왔다. 모두 흰 연당목저고리에 검은 목세루치마를 입고 들어서는 머리태 굵은 처녀를 눈을 흡뜨고 처다보았다. 《수연동무, 이놈이 바로 왕청문에서 최봉동무를 괴모산속에 끌어다가 살해한놈이요. 오늘에 와선 이놈이 일본놈의 개가 되여서 우리를 해치려고 여기 기여들었소. 동무가 왕청문의 원한을 풀어야겠소. 옜소, 이 자리에서 이 말뚝을 가지고 마음대로 치오.》 한윤은 수연이의 은가락지 낀 손에 말뚝을 쥐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수연이는 말뚝 쥘 생각을 않고 낯빛이 새파래지며 몸을 떨었다. 그는 그 순하던 눈에 화살같은 불빛이 쭉쭉 그어지며 온 눈이 불덩어리가 되여 고인호의 낯짝을 구멍이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이놈이 최봉을 괴모산속에 끌어다가 칼로 찔러서 죽였단말인가? 총으로 쏴서 죽였단말인가? 그 끌끌한 청년들을 여섯명씩이나… 수연이는 온몸을 떨며 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울먹울먹해지기도 했다. 고인호는 저고리 앞자락을 잡아제끼며 제 가슴을 쾅쾅 쳤다. 《죽여달라구, 어서 때려죽여달라구.… 내 가슴을 칼로 째고 내 오장륙부를 들어내보라구. 내가 테로를 하고싶어 했거나 일본놈의 개가 되고싶어 됐는가.… 나도 독립군을 하면서 숱한 왜놈을 쏴죽였소. 조국광복을 해보자구 독립군 우두머리들의 말을 듣고 동족의 피를 손에 묻히는 죄악도 저질렀소. 내가 이걸 오늘같이 죄로 알았으면야 그짓을 했겠소? 조국광복을 위한 싸움으로 알았지. 으어허허…》 고인호는 가슴팍을 박박 쥐여뜯으며 통곡했다. 《야 이 개같은놈아, 니 광복운동 핑게하며 제 살구멍 파는게 아닌기오?》 오벽근이 소리를 질렀다. 《인제 내 살구멍이 어데 있소? 내 죽으면서 마지막 말을 털어놓는거요. 난 왕청문에 와서도 무얼 해보자고 당을 만드는데도 한몫 끼우고 뒤손질도 해보았소. 그러나 당도 더럽게 파산되고 현가놈도 애첩을 끼고 천진으로 달아나고 결국은 앞길이 막막했소. 그래서 인젠 다 집어던지고 어데가 여생이나 편안히 보낼가 했는데 지은 죄가 막중한놈이라 어데서고 궁뎅이 붙일 자리를 주지 않았소. 그래서 돌며 헤매다가 결국은 왜놈의 손에 들고말았소. 나도 내 앞길이 이렇게 될줄은 몰랐소. 으허허허… 정말 분하구나. 내 한생을 개송장같이 만든 독립군운동에 침을 뱉고싶구나. 날 때려달라구. 그 말뚝으로 날 때려 죽여달라구.…》 고인호는 저고리를 아주 벗어던지고 털이 듬성듬성 난 가슴팍을 피가 터지게 손톱눈으로 빡빡 할퀴였다. 그러다간 쾅쾅 두드려팼다. 《이놈아, 네놈의 그런 거짓넉두리에 누가 속을줄 알아?》 경비원이 소리쳤다. 《더러운 넉두리 그만둬. 개같은놈!》 수연이가 부르짖었다. 중중첩첩 쌓였던 원한이 사람을 변모시키는것 같다. 촌처녀같은 모습은 다 없어지고 무섭게 칼날같아진 얼굴이다. 눈이 더 무섭다. 《이런놈은 몽둥이나 가지고 때려선 안돼요. 죽은 애국청년들의 원한을 풀어주자면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돼요.》 수연이는 원한의 눈물이 굴러떨어지는 얼굴을 돌리며 큰길쪽으로 걸어나갔다. 굵은 머리태 대신 낭자머리를 했으면 좋을듯싶은 강직하고 숙성한 모습이였다. 한윤이는 한윤이대로 달리 충격받는 일이 있어서 웨치고 달아나는 수연이를 더 붙들지 못했다. 한윤은 고인호의 입에서 피얼룩진 낡은 운동에 대한 저주가 터져나올줄을 몰랐다. 그 소리를 들으니 충격이 컸다. 결국 뿌리없는 운동은 인간을 이렇게 타락시킨다. 뿌리없는 나무가 제 가지에 달린 열매들을 시들시들 말리워 떨구고 꽃망울질 때 떨구고 익어갈 때 떨구고 마지막엔 서리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줄기가 부러지듯이… 그렇게 된 그 뿌리없는 운동, 뿌리없는 나무, 개로 변종된 이 인간도 바로 그런 운동, 그런 나무가 퇴화시켜 떨군 시들고 벌레먹은 열매가 아닌가? 한윤은 어째 자기 아버지도 그런 나무에서 떨어져 병들고 시들다가 지하로 들어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였다. 일찌기 위대한 김성주동무의 지도를 받들었더라면 우리의 운동이 뿌리깊은 운동으로 되고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후더운 사랑, 원칙과 도의속에서 시든 열매, 벌레먹은 열매가 되지 않고 사람본래의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가꾼 사람으로 승화되지 않았겠는가!
한윤은 땀을 씻으며 오벽근에게 왜놈의 개를 수연이와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소원대로 처형하라고 이르고는 성난 걸음으로 마당을 떠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