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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2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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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동지께서는 리갑무로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 새벽 회의준비를 위해 최창걸, 신동호, 리병모들을 카륜으로 보내시고는 차광수, 상준이, 차득보들을 데리고 돈화로 내려오셨다. 그이께서는 돈화와 동만사태가 걱정되여 줄곧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동만사태는 사태도 사태이지만 달리 가슴을 죄이시는 일도 있다. 어린 딸을 이끌고 동만쪽으로 갔다는 장윤삼의 행적이 어떻게 되였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 불안스럽기조차 하시였다. 장윤삼이 제가 둥 떠서 그런 행각을 했지만 그 먹골땅에서 불성모양으로 살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으시였다. 이랬거나저랬거나 미친바람속에서 발을 뽑고 자기를 수긍시켜주는 불꽃이 있는 운동선에 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있던 장윤삼이, 그것만이라도 그 인간에게 있어서야 눈을 뜬 행동이 아니였는가. 그런 인간이 그 란동이 일어난곳으로 달려갔는데 어떻게 되였는가. 더구나 어린 딸 인순이의 인상은 잊으실수가 없다. 그 어린것이 제아버지한테 이끌려가서 그 운명은 또 어떻게 되였는가, 어린것이 세간살이를 하느라고 부엌매질을 하며 뛰던 모습도 보이고 운동회날 발바리처럼 뛰여돌아가던 눈물겨운 모습도 보인다. 어쨌든 장윤삼이와 관련된 그 모든 회상은 그이의 체험세계에 던져진 패배한 요람기운동자들의 쓰라린 아픔이였다. 그이께서 돈화에 도착하시니 다행히 돈화에선 지시한대로 경주가 잘 수습해서 일이 터지지 않았다. 그런데 동만에선 이미 폭동이 터졌다. 예측하셨던대로 동만의 광활한 지역에 고함소리가 일어나고 정말 날창과 괭이, 쇠스랑을 둘러멘 군중이 밀려다니며 소동을 일구었다. 룡정, 남양평, 연길, 동불사 같은 조선사람들이 많이 살고있는 지역들에선 더욱 무서운 싸움이 벌어졌다. 도처에서 그곳 통치기관을 들이치고 산업, 교육 기관을 습격하고 지주네 곡식낟가리에 불을 질렀다. 룡정에서는 일본령사관과 《동척》금융부를 습격하고 철도, 학교, 발전소를 파괴하기도 했다. 그런데 폭동은 이어 반격을 받아안게 되였다. 반동군벌은 무력을 풀고 조선사람이면 죄다 쏴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일제의 령사관 경찰도 끼여들었다. 피바다, 울음바다가 펼쳐졌다. 그이께서는 돈화에 오시는길로 폭동에 휘말려들번한 지역들에 나가서 뛰여돌아다니다가 돌아온 경주를 만나시였다. 경주는 김성주동지를 보자 이게 웬일이냐고 눈이 둥그래서 당장 어쩔줄 몰라했다. 그는 여기저기 뛰여돌아다니느라고 아직 김성주동지께서 석방되여나오셨다는 소식도 못들었다. 그는 울음이 터져 제손을 내미는지 남의 손을 내미는지 경황이 없이 손을 내밀어 그이의 손을 잡았다. 《수고를 하오. 그래 몸은 어떻소?》 《저야 뭐… 김성주동지가…》 경주는 외면해 서서 얼굴을 싸며 울었다. 정말 얼마만에 뵈옵는가? 선창에서 그이를 잃어버리고 하늘에 해를 잃어버린듯 온 세상이 캄캄해서 몸부림치던 일, 가도가도 끝이 없는 설경으로 말파리를 몰아 무송으로 가던 일, 무송어머님과 만경대할머님의 품속에 안겨 뜨겁고 후더운 사랑을 받아안던 일, 그 사랑깊은 무송일가와 함께 눈보라속에 막대기를 휘여짚고 안도로 이사해가던 일, 온갖 가슴뜨거운 생각이 일시에 밀려들었다. 그는 두어깨의 물결이 점점 더 높아졌다. 《눈물을 거두오. 우리도 빨리 하평, 대북쪽에 내려가봅시다. 거기 피난민들이 모여들고있다니…》 《그러겠어요. 그러나 너무도 가슴이 터지는것 같아서…》 경주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며 그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축가셨을가. 감옥살이의 흔적이 너무도 아프게 온 얼굴에 드러나있다. 나는 무송어머님과 만경대할머님의 사랑속에서 보약까지 지어먹고 몸이 이렇게 든든해졌는데… 경주는 다시금 얼굴을 싸며 어린애같이 울었다. 함께 온 차광수와 차득보가 인젠 그만 그치라고 곁에서 타일렀다. 《경주동무, 어서 그치오. 동무가 건강해진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이오.》 그이께서도 타이르시였다. 《전 이렇게 튼튼해졌는데 김성주동지는 어째서 그렇게 상하셨어요?》 그이께서는 더 달래지 못하시였다. 그이의 가슴에서도 불시에 슬픔이 굽이쳤다.… 수난을 겪는 나라의 크나큰 슬픔이… 가는 허리에 토목 두필, 조선의 표상이라면 조선의 표상이랄수도 있는 그 할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경주의 몸에 비단필처럼 감겨져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시게 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그이께서는 얼른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였다. 《그래 오빠소식은 알고있소?》 《알고있어요.》 《우리는 다 놓여나왔는데 채경동무만은 놓여나오지 못했소. 오빠는 더 어려운 적의 요새로 끌려갔소. 오빠의 일때문에 너무 근심을 마오.》 《그러겠어요.》 그제야 경주는 입술을 감쳐물며 눈앞을 깨끗이 닦았다. 지금 하평, 대북쪽에서 십리가량 떨어진 넓은 수림지대엔 피난민들이 하얗게 덮였다. 그런데도 자꾸 모여들었다. 기차로도 오고 도보로도 왔다. 돈화쪽으로 가야 산다. 돈화쪽엔 길림운동선이 해빛처럼 비쳐있다. 거긴 미친바람이 없어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이렇게 소문이 퍼져 동만쪽의 숱한 사람이 밀려왔다. 이깔나무 들어선 등성이, 골짜기 할것없이 사람사태였다. 입을걸 못입고 남부녀대한 사람들이 무얼 한임씩 이고지고온다. 하평, 대북 조직원들과 돈화에서 내려간 조직원들이 피난민을 구제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마른 새를 깎아들여 몸을 붙일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무를 찍어 기둥을 박고 풀막을 지어주기도 했다. 박철민이는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아 배를 끌어안고 돌아가며 풀막짓는 일을 도왔다. 청년들의 눈에선 불이 일었다. 복수대를 무어가지고 장동 옹진리로 내달아가자고 하던 청년들이라 가슴속에서 격분이 치밀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그들은 피난민들속에 주의자머리만 얼씬거려도 저게 종파놈이 아닌가고 떠들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 경주, 리상준이, 차득보들과 함께 피난민들이 한창 밀려드는 때 밀림속에 도착하시였다. 널려서 풀막을 짓던 청년들이 와 달려와서 그이를 맞이했다. 모두 눈물을 금치 못해했다. 오래동안 감옥고생을 하시다가 나온 자기들의 지도자를 이런 부산스러운 환경속에서 맞이하게 될줄은 몰랐다. 박철민은 허리를 끌어안고서 눈을 슴벅거렸다. 그이께서는 그의 상처입은 배허벅을 만져주시며 지금 상처가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일없소. 나야 수족이 자유롭게 뛰여다니다가 부상을 좀 입었지만 김성주동무야 그 철창속에서 어떻게 견디여냈소?》 《나는 일없었소. 감옥을 혁명가의 학교라고 하지 않소.》 그이께서는 다감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며 박철민의 상처를 다시금 어루만져보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피난민들의 형편에 대하여 한참 물으시였다. 그리고는 널려있는 피난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살펴보시였다. 산비탈, 등성이, 골짜기 할것없이 죄다 돌아보시며 어떻게 해야 고생을 덜할수 있게 만들것인가 생각을 더듬고 더듬으시였다. 한 골짜기에 가시니 거기엔 기동을 못하는 부상자들이 가뜩 누워있었다. 녀동무들이 죽을 쒀가지고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의 새까맣게 탄 입술을 비집고 한숟가락씩 밀어넣어주었다. 그이께서도 죽그릇 하나를 달래서 받아들고 한 로인의 곁에 들어앉으시였다. 《어서 드십시오. 쌀물이 들어가야 삽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죽이 흘러나오는 로인의 입언저리를 씻어주시였다. 죽을 받아먹을 기맥은 없는것 같은데 눈은 이글거렸다. 로인의 눈같질 않았다. 《선상님, 인젠 조선독립이 됩네까?》 로인은 불쑥 터져나오는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였다. 《조선독립이 되고 땅을 맘대로 노나가진다문사 내사 죽어도 한이 없겠는데…》 《그래서 폭동에 가담했습니까?》 《그럼요, 키 작달만한 선상님이 나라 찾고싶고 땅 갖고싶으면 신풍장놈을, 그놈의 집 대문짝을… 아 아이구…》 로인은 상처가 아파 몸을 비틀었다. 그이께서는 로인의 몸을 붙잡아주시였다. 바로 장동 옹진리쪽에서 온 로인인데 키 작달막한 선생이라고 하는것은 월파 조청산을 말하는것 같았다. 《인젠 말씀을 그만 하십시오.》 《그 그런데 저 신풍장네 가병놈들이 나한테 총질을 했지요. 그래서 이 배꼽밑에 한방 맞구 어깨팍에도 한방 맞았지요. 오라질놈들…》 로인은 숨을 꿀꺽거리며 쉬였다. 김성주동지께서 로인에게 죽을 몇숟갈 대접하고 일어서시는데 피난민들이 또 한패 새초 우거진 비탈로 허겁지겁 올라오고있다. 청년들이 조그만 담가에 부상자 하나를 맞들고 올라오고 뒤엔 막대기를 휘여짚은 장정이 따라섰다. 장정도 다리를 절었다. 지팽이를 끙끙 소리를 내면서 옮겨짚는다. 《아니…》 김성주동지께서는 앞에 거의 온 장정을 보고 놀라시였다. 괴높은 중절모를 썼는데 틀림없는 장윤삼이다. 《이게 누굽니까, 장선생 아닙니까?》 《네? 아니 김성주동무가?…》 장윤삼이도 두눈가죽을 밀어올리며 마주 바라보았다. 고유수의 먹골에 있을 때 같이 구레나룻은 아닌데 낯빛은 아주 시꺼멓게 죽은 사람의 빛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장윤삼을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은 꿈에도 모르시였다. 동만쪽으로 가야 만날줄 알았던 장윤삼이다. 《장선생이 어떻게 돼서 여기로 왔습니까?》 그이께서는 장윤삼의 사시나무 떨듯하는 손을 잡으며 물으시였다. 《뭐 사람이 못올데가 있겠소?》 장윤삼은 볼편근육을 떨면서 대답을 피했다. 하기야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있으랴! 담가를 들고온 청년들이 새초를 휘여깔고 담가우에서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를 들어내려서 눕혔다. 그이께서는 또한번 놀라시였다. 부상자는 바로 장윤삼의 딸 인순이였다. 《아니 이게 인순이 아니요?》 누구도 대답을 못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아이의 곁에 앉으시며 손목을 쥐시였다. 아이는 피투성이 얼굴이 해파리같이 되여 눈도 뜨지 못했다. 새까만 입술을 그저 한번 옴지락거리다가 만다. 《얘, 인순아 네가 어째서 이렇게 됐느냐?》 《…》 《이 애도 폭동에 참가했댔소?》 《폭동에 참가한게 아니라 수색전에 걸려들어서 옆구리에 총알을 맞았지요.》 그이의 물음에 담가를 들고온 청년들이 대답했다. 정말 아이의 치마저고리도 다 피에 젖었다. 그래도 상처엔 붕대를 동여맸는지 손두께같은 천이 허리에 감겨있다. 그것도 질퍽이 피에 젖어있다. 《얘 인순아, 정신차려라!》 그이께서는 아이의 손목을 쥐고 부르시였다. 목메는 생각이 치밀어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이가 아주 숨이 떨어지는것 같아서 손목을 놓지 못하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얘 인순아!》 불시에 인순이는 두눈을 빠끔히 떴다. 《음 눈을 뜨는군, 얘 내가 누군질 알겠니?》 《…》 인순이는 백랍같은 얼굴에 눈이 점점 더 동그래졌다. 《인순아, 날 몰라?》 《…》 《너 고유수 학교에서 운동회날 뛰던 생각이 나니?》 《선생님! 부엌깨 매질해주던 별선생님!》 《그렇지. 내가 부엌매질을 해주었지.》 《어마나 정말 선생님! 별선생님!》 아이는 인제야 정신이 똑똑히 드는지 깡똥한 치마저고리 입은 몸을 들썩하기까지 했다. 그이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는 무얼 빡빡 쥐여뜯고라도싶듯이 헛손질을 하며 부르짖었다. 《선생님, 별선생님!》 《인순아, 움직이면 안돼.》 《내가 별선생님 보궆아 학교에서 어쨌는지 알아?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 보고 물으니까나 오래 있다 온다잖아. 선생님, 인젠 학교에 아주 왔어?》 《그럼…》 어린것은 지금 여기를 고유수로 착각하고있는것 같다. 그 머나먼 길을 헤매인 생각은 다 없어지고 길림에 와서 별선생님을 찾던 그 생각도 다 잊어버리고 그저 고유수땅에 둥그런 해뜨듯 별선생님의 얼굴이 나타난것만 같아 피투성이 손을 들어 김성주동지의 뺨을 자각자각 두드렸다. 《선생님, 별선생님 인젠 가지 마…》 《응, 안간다.》 《나 학교에 또 다니겠어.》 인순이는 너무 좋아서 인젠 그이의 두손목을 제 가슴팍우에 올려놓고 자끈자끈 두드렸다. 한쪽에선 장윤삼의 설분이 터졌다. 그는 주먹으로 제가슴을 쾅쾅 쳤다. 땅을 두드리며 풀뿌리를 잡아채기도 했다. 《회장동무, 이놈을 몽둥이로 짓모아 사등뼈라도 부러뜨려주오. 이놈이, 이놈이 죽은들 제 죄를 속죄할수 있겠소? 회장동무가 그 먹골 스산한곳에 찾아와서 새 운동선에 들어서달라고 그렇게도 곡진히 일러주던 부탁을 마다하고 그래도 운동은 큰선에 서야 한다는 주제넘은 생각으로 어린것의 손목을 이끌고 이 동만땅으로 굴러왔댔소. 이 무식한은 인제야 회장동무의 말을 생각하며 눈을 뜨오. 그때 한 회장동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오. 으허허허…》 장윤삼은 통곡을 터뜨렸다. 담가를 메고온 청년들이 그의 돌같은 주먹을 부둥켜잡으며 알가마가 깨지겠는데 큰 가마는 왜 이렇게 도끼질이냐고 지청구를 했다. 《나 나도 죽자고 그러오.》 《죽을바에야 순경놈들과 멱들이라도 하다가 죽어야지 피난처에 와서 죽자고 몸부림칠거야 있소?》 청년들도 담가를 메다주긴 했으나 장윤삼이 무모한 폭동의 앞장에 나서서 고함을 질렀다고 언짢게 보는것이였다. 사실 그는 처음엔 롱정에 왔다가 다시 연길로 와서야 석진이를 만났다. 장윤삼은 석진이의 유혹에 휩쓸려들어갔다. 정말 웅성거리며 끓는걸 보니 무슨 일이 될듯싶었다. 본시 이런 날을 꿈꾸었던 그라 점점 더 가슴이 뛰고 두눈에 달이 오르기 시작했다. 폭동전야엔 장윤삼이도 군중앞에 나서서 기염을 올렸다. 그래서 결국은 연길일대를 민중의 피로 매질하고 꼬리를 사리는 석진이를 따라서 동불사쪽으로 갔었다. 그는 거기서 어린 딸과 함께 수색전에 걸려들어서 저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였다. 그는 지금 적수공권인 농민들의 헛된 피로 물들인 《폭동》을 생각만 해도 악몽처럼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인순이가 좀 진정되는것 같아 김성주동지께서는 조직원들이 있는곳으로 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땀을 씻으시며 조직원들에게 마른 나무를 해다가 부상자들이 있는 곳곳에 우등불이라도 피우게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밤엔 랭기가 내려 불을 피우지 않고는 견딜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쌀이 얼마나 있는지 밥도 짓고 죽과 미음도 쒀야 하겠소. 우선 미음을 빨리 쑤도록 하시오. 저기 출혈이 심한 아이가 한명 담가에 맞들려왔는데 미음이라도 먹여야 하겠소. 급히 서두르오. 그리고 돈화조직에서 식량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겠소. 하루이틀 피난을 해서 무사해질 싸움이 아닌데 식량도 계속 구해들이고 한편으로는 중남만쪽으로 사람을 뽑는 일도 조직해야 하겠소. 갈만한 사람은 모두 뽑아보내야 하겠소. 이 수림속에서 다 붙안고 씨름할수야 없지 않소.》 그이께서는 동만접경인 이 지대에만 피난민을 집결시켰다간 또 무슨 피해를 당할것 같아 카륜쪽으로 사람을 뽑으시려는것이였다. 《김성주동지! 저 애가 위급합니다. 지금 두주먹을 쥐고 별선생님을 부릅니다.》 조직원들과 한창 이야기를 하시는데 인순이를 메고온 청년 한명이 달려와서 급한 소리를 했다. 그이께서는 급히 인순이 있는데로 오시였다. 너머골짜기에 있던 차광수가 와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며 울고있었다. 길림에서 별선생님을 찾아달라고 손목을 붙잡고 늘어지던 어린것 생각이 가슴에 쓸어쳐서 아이의 손을 꼭 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별선생님!》 아이는 자꾸 별선생님을 찾았다. 《오냐, 내가 왔다.》 그이께서 아이를 들여다보시였다. 그런데 벌써 아이는 눈자위가 달랐다. 검은 눈동자는 없고 온 눈에 거의 흰자위가 씌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인순아!》 그이께서는 아이를 품에 우쩍 안아올리시였다. 《인순아, 정신차려라.》 《선생님! 별선생님!》 눈자위는 달라졌어도 목소리는 째는듯 챙챙했다. 팔목을 부등켜잡은 손아귀에도 할퀴는것 같은 그악한 힘이 있었다. 《회장동무, 이미 다 된 그 숙명적인 숨덩어리가 살아나겠기에 그러오?》 《아니 숙명적인 숨덩어리라니요? 그래 이 어린것을 이렇게 만드느라고 학교에 다니는걸 이끌고 먹골에서 동만행각을 했소?》 그이께서는 장윤삼의 말에 부지중 언성을 높이시였다. 《으허허허…》 장윤삼은 또 통곡을 터뜨렸다. 돌같은 주먹으로 땅을 두드려팼다. 그는 이 절통한 순간에 세상 떠나간 안해생각도 했다. 그 안해도 역시 이런 미친바람속에서 희생되였다. 조선공산당을 창건하기전 화요파, 북풍파가 서울 《락양관》료리집에서 회합을 하였는데 서울파가 칼을 들고 습격해들어왔다. 술집방안에선 란투가 벌어졌다. 화요파, 북풍파 패거리들은 쫓겨달아나기 시작했다. 장윤삼은 거리로 내뺐다. 그러자 뒤에 따른 서울파 두놈은 공산당간부가 내뺀다고 소리를 질러서 경찰을 불러댔다. 장윤삼은 용케 경찰을 피해서 어느 점포의 창고속으로 기여들어갔다. 그래서 겨우 봉변을 면했는데 장윤삼이 당할 봉변을 안해가 당했다. 서울파놈들은 장윤삼을 잃어버리고 그의 집에 달려들어 주인 내놓으라고 행패를 했다. 그때 임신중에 있던 안해는 달려든놈들의 손에서 칼이 번쩍거리는것을 보고 뒤골을 메치며 기절해 넘어졌다. 안해는 그뒤 임신중의 아이를 락태시키고 두달동안이나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제 어미가 죽을 때 네살이던 저 어린것은 엄마의 목을 그러안고 죽지 말라고 몸부림쳤다. 《엄마 죽지 마. 엄마 죽지 마.》 그 가슴터지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히 남아있다. 그뒤에 저 어린것 하나를 이끌고 찬바람속을 헤쳐다니며 오금을 띄워놓았는데 인젠 그것의 목숨마저도 이 미친바람의 제단에 뿌려던지고있다. 《아, 인젠 이 몹쓸 텁석부리 하나가 남았구나.》 장윤삼은 주먹으로 자기 볼편을 쥐여박으며 소리를 지른다. 어떻게 했는지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아이는 종시 김성주동지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순아, 인순아!》 그이께서는 아이를 흔들며 목이 메여 부르시였다. 그러나 인젠 대답이 없다. 그이의 팔목을 거머쥐였던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며 두팔이 량옆으로 내려드리워 흔들흔들했다. 모든걸 다 내던지고마는것이였다. 짧디짧은 한생, 가고싶던 학교에서 단 한번 새옷을 입고 나비같이 날아돌아가 본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였던 그 안타까운 한생, 함박꽃처럼 피여나고싶었으나 그 소원을 성취 못하고 가버리는 한생, 그 짧디짧은 한생이 여기서 조용히 여운도 없이 끝을 맺었다. 《인순아!》 그이께서는 절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시고 아이의 채 감지 않은 속눈섭속의 흰자위를 들여다보시였다. 《인젠 그만 자리에 눕혀야겠습니다.》 청년 하나가 아이를 받아서 새초를 깐 자리에 눕혔다. 그는 깡똥한 치마폭을 끄당겨 내려놓아주기도 하고 어서 눈도 감으라고 얼굴을 내려쓸어주었다. 그이께서는 몸의 균형을 잃으신것 같은 걸음으로 발길가는대로 새초밭을 한참 걸어나가시였다. 아직도 되알진 목소리로 별선생님을 찾는 인순이가 품에 안겨있는것 같았다. 이 비극의 쓰라림이 한생의 못이 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믿으랴! 먹골의 샘웅뎅이에서 초대면을 한 머리태 달롱한 소녀가 우여곡절의 로정을 에돌고 에돌다가 여기 와서 이런 아픔을 남겨놓고 갈줄이야 뉘 알았을가! 그이께서는 자꾸 걸으시였다. 어데 조용한곳에 가앉아 피멍이 든 가슴을 달래고싶으시였으나 조용한곳이란 없다. 온 산, 온 버덩에 피난민들이 덮이고 너머골짜기에선 또 가족을 다 잃은 처녀가 목을 매는 소동을 일궈서 법석 끓는다. 요행 처녀는 구해내고 산등우 나무가지에선 빈 바줄만 흔들흔들 그네를 뛴다. 그이께서는 비탈에 우뚝 서계시였다. 가슴이 우르르 떨리시였다. 온 조국이 피바다에 들어 목을 놓아 우는것 같은 느낌도 받으시였다. 그이의 가슴속에서도 목이 메는 울음이 꾸역꾸역 머리를 들었다. 길림에서 리갑무로인이 눈감기 직전 두손목 붙들고 유한을 남길 때 가슴에 서리였던 모진 슬픔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것이였는데 여기서 장윤삼이 체험시켜주는건 너무도 모질게 피와 눈물을 가지고 심장을 빡빡 할퀸다. 두 체험의 봉우리가 숨이 가쁠 정도로 온몸을 짓누른다. 감옥에서 조선혁명의 확신성있는 진로를 파악해쥐고 나오시긴 했으나 나오듯마듯 이렇게도 절절한 체험을 통한 산봉우리같은 중하가 거듭거듭 타격을 가해올줄은 모르시였다. 민족주의와 요람기의 공산주의운동, 그 비치럭거리며 걷던 운동들이 인젠 아주 바닥이 났다. 손을 털며 저들이 갈구했던 그 모든것을 이렇게 넘겨주고있다. 비통한 생각에 잠겨 거니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묵묵히 그이를 뒤따르던 청년들도 멈춰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결연한 기색이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카륜으로 갑시다.》 청년들의 앞장에서 산비탈을 내려오시는 그이의 옷자락은 바람결에 세차게 펄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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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륜에로, 카륜에로! 카륜으로는 각 지방 대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회의에 참가할 대표들이다. 긴급통지가 하달되자 광대한 전선이 부글부글 끓으며 자기들의 대표를 파송했다. 대표들은 기차로도 오고 말파리로도 오고 도보로도 왔다. 재생의 기쁨을 안고 남만지역을 개척하고있던 한윤이도 통지문을 받고 이어 카륜을 향해 떠났다. 그는 남만에 내려가 길림에서 잃어버린 조동식을 찾다가 그가 장춘에 가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번길에 아예 데리고 오려는 계획으로 또 고유수를 거쳐 광야를 횡단해서 장춘에까지 갔었다. 그래서 어느 신문지국에 들어가 기자활동을 하고있는 조동식과 뜻깊은 상봉을 했다. 그리고는 빨리 보따리를 싸가지고 남만으로 내려가라고 일러놓고는 장춘역에서 카륜행 렬차에 올랐다. 그는 가슴이 울렁거리며 뛰였다. 김성주동무를 만나면 조동식의 이야기를 할 흥분도 있지만 하고싶은 사연이 많고도 많았다. 남만지역을 어떻게 개척하기 시작했다는걸 이야기할 생각을 하니 격정이 북받칠것 같았다. 벌써 자기가 내려가기전 반제청년동맹이 나온곳이 많기도 하지만 자기가 내려간 뒤엔 민족주의계렬 청년단체를 아예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고 곳곳에 독서조를 내오기도 했다. 독서열이 팽창해서 뻗닿게 릉가나 삼원포에 가서 출판물들을 져날라왔다. 왕청문시가에는 사방으로 줄이 뻗어들어가며 청년들 거의가 반제청년동맹산하에 집결되였다. 인젠 현묵관과 고인호들은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한윤이는 대낮에도 활개를 치며 왕청문거리를 휘돌아다녔다. 이 활기에 넘친 생활을 김성주동무한테 보고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였다. 한윤은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봄의 들판이 덩실거리며 춤추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에겐 지금 뜻하지 않은 불운의 검은 구름이 각일각 죄여들고있었다. 그는 지금 자기의 곁차칸에 일제의 개로 전락된 고인호가 앉아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독립군부대로부터 왕청문에 이르기까지 거친 바람속에서 몸부림치며 칼끝에 동족의 피를 묻히는것을 업으로 삼아오던놈이 인젠 갈길을 잃고 아주 제 본연의 모습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는 검은 색안경을 걸고 신사복에 나비넥타이까지 달았다. 고인호는 지금 봉천총령사관 사복경찰들과 쑥덕공론을 벌리고있었다. 놈들도 봉천총령사의 지령밑에 김성주동지를 체포하기 위해 카륜으로 가는 길이였다. 그런데 고인호가 우연히 장춘역에서 기차에 오르는 한윤을 띄여보았다. 독립군의 우두머리들속에 끼여있던 그의 아버지가 눈앞으로 훌 지나가긴 했으나 동족의 목을 베던지기도 한 잔인성이 죽은 사람의 그림자에 손을 떨리는 없었다. 《기운도 있지만 날파람있는놈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셋이 한꺼번에 손을 써야 합니다. 문제는 재빨리 수갑을 채우는 일입니다.》 고인호는 사복경찰 세놈을 앞에 앉혀놓고 코김이 달아서 수군거렸다. 길림에까지 뒤쫓아갔다가 찾지 못하고 그저 돌아선 앙심도 있는데 공산주의운동선으로 돌아선놈이 걸려들어도 기회맞게 걸려들었다. 호랑이같은 경찰 셋을 휘동해가지고 가는길인데 이 셋이 달려들면 제놈이 인제 어데로 빠질 구멍이 있겠는가. 《저자도 틀림없이 카륜으로 가는겁니다. 자기의 지도자가 감옥에서 나와 카륜으로 갔다니 안갈수가 없지요. 더구나 오른팔 역할을 하는놈인데 가만 앉아있을리가 있습니까?》 그는 놈들을 부추기느라 오른팔 역할을 한다고까지 과장했다. 《당신이나 정말 저 사람 똑똑히 아는가?》 구레나룻 턱수염을 민 자리가 푸름푸름한놈이 캡밑에서 눈동자를 음충스럽게 굴리며 한마디 했다. 깐깐해도 보통 깐깐한놈이 아닌것 같다. 이때까지 한윤이 어떤 인물이라는걸 죄다 이야기해주었는데도 정말 똑똑히 아는가고 고쳐묻는다. 하긴 고인호따위도 조선사람인 족보를 가졌다고 믿지 못해 그러는지도 모른다. 고인호는 또 한참 설명을 했다. 얼마후에야 경찰 세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놈은 고인호와 같이 신사복차림이고 다른 두놈은 무슨 노가다판 십장같이 차렸다. 밭은 정갱이에 승마바지들을 입고 캡을 썼다. 놈들도 한윤이 김성주동지의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하는 고인호의 부추김소리를 듣고 괜히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어 저윽 가슴들이 떨렸다. 고인호가 앞서서 세놈을 이끌고 차칸밖으로 나갔다. 찬물을 끼얹는것 같은 저녁바람이 훅 안겨들었다. 기차는 황혼이 내리는 들판을 달리고있었다. 온 광야가 우물우물 움직이는것 같은 회색빛속에 파묻혀가는 무렵이였다. 다음차칸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꽉 배겨앉았다. 한윤이 분명 이 차칸으로 올랐는데 어데 앉아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고인호는 뒤손질로 경찰들을 천천히 걸으라고 신호하며 한발한발 걸어나갔다. 그는 얼마후에야 한쪽 차창가에 요행 잔등을 이쪽으로 돌려대고 기대앉아있는 한윤을 발견했다. 한윤은 지금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녀인들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껄껄 웃어댔다. 그의 옆자리에도 아이를 업은 녀자가 한명 앉아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윤은 옛날에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팔아먹던 이야기를 하고있다. 《건달은 건달이지만 나긴 난놈입넨다. 보통사람으로서야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낼수 있나요?》 《어이구 세상에 거짓말두…》 《거짓말이라니요?》 한윤은 펄쩍 뛰였다. 그는 인젠 멀쑥한 얼굴이다. 볼에 살도 올랐다. 《그게 거짓말 아니면 아무리 얼음이 얼었다기로 강을 논으로 볼 시러베아들이 어데 있어요?》 《욕심많은 부자놈들중엔 그런 시러베아들이 득시글하답니다.》 웃음소리가 터졌다. 아낙네들도 웃고 한윤이도 웃었다. 이럴 때 고인호는 경찰들에게 한윤이 저놈이라고 슬쩍 눈짓을 하며 재빨리 아낙네들 옆을 지나쳐 먼저 저쪽으로 걸어나갔다. 사복경찰 세놈은 제잡담하고 한윤에게 달려들었다. 수갑과 포승을 꺼내들고 일어서라고 웨쳐댔다. 한놈은 어떻게 했는지 구두발로 아낙네들의 발등을 짓밟아서 아낙네 하나가 사람 죽는다고 째지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건 뭐요? 왜 이러는거요?》 한윤은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도 벌써 자신이 위험하게 됐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끼며 어마어마하게 커진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눈섭이 곤두일어서고 눈망울에선 불이 내쏘았다. 《너 공산당이지? 길림공산당이지? 순순히 두손목을 내들고 수갑을 받어!》 《무어 공산당? 가만있자, 아주머니 이리 좀 비켜앉소. 잘못하다간 나보다 아주머니가 벼락을 맞겠소.》 한윤은 곁에 앉아있는 녀인을 자기가 앉아있던 창가쪽으로 비켜앉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먼저 경찰들앞으로 한발 내짚었다. 아이를 업은 녀인이 자리를 바꾸느라고 등을 굽히며 일어섰다. 이러는 순간이였다. 수갑을 쥔놈이 어느새 한윤의 오른쪽팔목을 거머쥐며 나꾸챘다. 옆에 있는 다른 한놈은 딴 팔목 하나를 잽싸게 거머쥐였다. 《이 개새끼들이…》 한윤은 잡힌 팔목을 나꾸채며 한놈의 배허벅에 발길을 내질렀다. 정말 날파람이 있었다. 발길에 채운놈이 맞은편 자리의 녀인들을 깔고 주저앉으며 딩굴었다. 그바람에 녀인들은 아우성을 치며 일어났다. 좌석은 온통 수라장이 되였다. 어느새 한윤은 딴 팔목도 나꾸챘다. 그러나 팔목 하나엔 이미 번쩍거리는 수갑이 채워져있었다. 한윤은 뭉그러쥔 두주먹으로 이리 치고 저리 치고 하였다. 팔목에 감긴 수갑의 다른 한고리가 놈들의 얼굴에 날아가 안기며 절커닥절카닥 쇠소리를 내였다. 무서운 란투가 벌어졌다. 온 차칸이 발칵 뒤집혔다. 승객이 모두 일어서서 고함을 지르며 떨었다. 《저놈들 총 빼든다.》 《아니 어데서 총질을 하자고 저러는거야?》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정말 한놈이 권총을 빼들었다. 그러나 한윤은 그놈도 눈언저리를 지끈 받아서 가운데통로에 메때렸다. 그바람에 놈이 총을 발사했다. 어떻게 했는지 총알이 차창을 바스라뜨렸다. 깨진 창문으로 밤바람이 날아들어오며 온 차칸을 썰렁하게 휘저어놓았다. 승객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는통에 통로가 꽉 메였다. 모두 딴 차칸으로 내빼자고 야단법석이 일어났다. 한윤은 날파람있게 놈들을 갈겨눕히며 나오다가 사람들속에서 고인호를 발견했다. 그는 그제야 모든 전말이 번개불같이 뇌리속으로 스쳐지나갔다. 아버지의 넋이 곁에 같이 서있는것 같기도 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한윤이 이놈!》 《에끼 이 개같은놈, 끝내 이런 몰골로…》 고인호가 권총을 빼들었다. 총구멍이 한윤의 량미간을 겨누고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한윤은 수갑 채인 팔을 휘두르며 고가에게 발길을 안겼다. 땅하는 총소리가 났다. 한윤은 온몸이 줄끔하는 충격을 받았다. 직감적으로 총알에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얼른 머리를 스쳤다. 한윤은 고인호를 또 한번 후려갈겼다. 고인호가 넘어지며 또 총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번엔 총알이 어데 맞았는지 알수가 없다. 한윤은 넘어진 고인호의 가슴팍을 두어번 짓밟아놓고 다른 한놈의 경찰과 결투를 하며 열려진 출입문으로 밀고나왔다. 한윤은 승강대우에서 황소같은놈과 또 한참 치고받는 싸움을 벌리였다. 만만치 않은놈이였다. 팔목을 비틀어쥐였는데 그 팔목이 꺾이울것 같았다. 한윤은 겨우 놈의 손가락 두개를 꺾어넘기며 몸을 빼였다. 어느게 죽음이고 어느게 삶이냐 하는것을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다. 그는 어둠속을 질주하는 렬차에서 두발을 굴러치며 뛰여내렸다. 힝 뿌리치운 그는 어두운 공간에서 디굴디굴 돌다가 철길옆 비탈에 철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란투가 벌어졌던 차칸은 썰렁해졌다. 사람들이 죄다 다른 차칸으로 쫓겨달아나고 장정들 몇만 한쪽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들은 미치광이 행색이 되여 차칸으로 몰려들어온 사복경찰들을 흘끔흘끔 쏘아보았다. 코피가 터진놈, 잔등판에 먼지를 한짐 지고있는 놈, 한놈은 수갑에 맞아 목덜미살이 한뽐이나 째졌다. 고인호는 권총을 쏘긴 했으나 제일 골탕을 먹었다. 한윤이 차넘기며 목과 등가슴을 짓밟는바람에 안경도 부서지고 넥타이도 떨어져나갔다. 그는 갈비뼈라도 부러졌는지 가슴을 움키고 앉아 걸떡걸떡 가쁜 숨을 톺는다. 수염자국 시퍼런놈이 눈에 독이 올라서 고인호를 흘겨보며 뭐라고 욕설을 한다. 일이 개판이 된걸 저희들탓으로는 여기지 않고 고인호가 쓸데없이 부추겼다고 골이 오른것 같다. 《부장님, 체포하지 못했다고 후회할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아무렴 기차에서 뛰여내린놈이 살아날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골이 깨져 천당으로 갔을겁니다.》 목덜미 째진 경찰이 수염자국 시퍼런놈한테로 와서 소곤소곤 말했다. 《왜 후회를 하지 않겠는가? 천당으로는 언제든지 보낼수가 있단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이야 카륜이 아닙니까? 가는 도중에 공산당을 한놈 요정냈으면 됐지, 장사야 뭐 밑지는게 있습니까?》 《응 그건 그렇다.》 수염자리 시퍼런 부장이란놈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했다. 놈들은 휑뎅그렁하게 빈 차칸에 자리들을 잡고앉아 담배를 한대씩 붙여물었다. 어느놈이고 아직도 다 다리를 너들너들 떨었다.
철뚝옆에 날아떨어진 한윤은 얼마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잔디와 끄뎅이가 뒤섞여 풀숲이 우거진곳에 떨어져내려 몸이 더 상하진 않은것 같았다. 기차는 벌써 어데쯤 달아났는지 알수 없다. 그는 이 순간 자기가 카륜행 렬차를 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놈들이 카륜으로 가던길은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날아들었다. 아니 저놈들이 그럼? 김성주동무가 감옥에서 나와 카륜으로 떠났다는것은 세상에 알려진 일인데… 한윤은 가슴이 뜨끔해서 뭐가 뭔지 알수 없었다. 한윤은 풀을 거머쥐고 우쩍 일어섰다. 저놈들이 김성주동무를 체포하기 위해서 갔다고 하더라도 가서 어디에 있는가를 찾기도 해야 할것이고 체포할 기틀을 노리기도 해야 할것이였다. 내가 그전에 먼저 가닿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몇발자욱 떼다가 딩굴었다. 기차에서 떨어질 때 발목이 삐였다. 삔 발목을 가지고는 아무래도 걸음을 옮겨디딜수가 없었다. 그는 엎디여 기기 시작했다. 기려니 또 총맞은 팔이 아프고 그 팔목에 수갑까지 채워있었다. 절그럭거리는 수갑이 진탕투성이가 되여 돌을 달고 가는것 같이 무겁기도 했다. 그러나 일어서 걷기보다는 나았다. 그는 기를 쓰고 기여 밭뚝 둘을 넘었다. 그담엔 또 풀밭이였다. 카륜이 어느쪽이고 또 어느만치 먼가, 장춘에서 떠나 여러 정거장을 지나서 일이 벌어진것 같긴 한데 어데쯤 왔는지 알수 없다. 어쨌든 철길을 옆에 끼고 가느라면 카륜에 가닿겠지.… 그는 또 철뚝옆 밭가운데로 기였다. 무슨 곡식을 심었는지 나실나실한것들이 이랑을 덮었다. 한윤은 그 이랑들을 네발걸음으로 껑충껑충 뛰여넘었다. 정작 기기 시작하니 팔뚝도 삔 발목도 아픔이 좀 가셔지는듯하다. 그는 일어서 성큼성큼 걷기도 했다. 《저놈들이 김성주동무를 체포해? 금방 감옥에서 석방되여나왔는데 또 체포해?》 한윤은 아무래도 걷는것이 기는것만 못해서 또 엎디여 기였다. 으으으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나의 구원자, 재생의 은인, 그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나에게 희망찬 오늘이 있었을테냐, 감옥에서 붙안아 눕혀주던 김성주, 감옥에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자본론》을 한책 두책 구해들여보내주던 김성주, 그리고 왕청문에선 얼마나 진정이 스민 따뜻한 말을 해주었던가. 이렇게 끝까지 사람을 만들어준 김성주, 혁명가로 만들어주고 동지로 만들어준 김성주, 나의 손을 잡아주자고 하남가거리를 휘돌다가 붙잡혀 7개월나마 옥고를 치른 김성주! 7개월의 옥고, 이것이 온 생명을 내대고 나를 구원해준게 아니고 무엇인가. 하늘같이 높이 모시고 내가 한생을 두고 잊지 말아야 할 은인, 그 은인 김성주앞에 위험이 부닥쳤는데 내 목숨이 무어란말인가. 나를 깡그리 바쳐서라도 김성주동무앞에 부닥친 위험을 막아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재생의 값을 하는 길이다. 조선혁명을 지켜내는 길, 다시 얻은 삶의 보람을 지켜내는 길이다. 한윤은 기다가 물웅뎅이에 풍 빠졌다. 풀을 거머쥐고 물웅뎅이에서 우쩍 기여올랐다. 자꾸 울음이 터져올랐다. 《성주동무, 피하시오. 빨리 피하시오.》 이 말이 빨리 날아가게 할수는 없을가, 그는 흙투성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기도 했다.
지금 카륜엔 대표들이 자꾸 모여들었다. 학교마을 집집에 청년들이 들었다. 동산리 조양촌으로도 청년들이 건너가 숙소를 정했다. 청년대표들이 모여드는걸 보고 학교마을, 조양촌, 동산리 농민들은 성수가 나서 뛰여다녔다. 그들은 이때까지 조국광복을 위해서 싸운다는 말을 많이도 들어왔고 정의부의 서근하같은 독립운동자들이 뻗닿게 들고 날고 하는걸 많이도 보아왔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것은 보지 못했다. 모여드는 사람도 독립운동자들 같이 나이먹거나 몇마디 물으면 들장이 나게 지식이 밭은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기백이 팽팽하고 연설이든 말이든 든다난다하는 청년들이였다. 동네사람들 눈에도 하늘을 무너뜨릴것 같은 힘이 보였다. 농민들은 밤에도 자지 않고 떠들었다. 감옥에서 나온 김성주회장이 래일 당도한다느니 모레 당도한다느니 하며 밤새 이야기판을 벌리였다. 요샌 넓은 들판에서 농사일도 흥이 났다. 한창 모내기철인데 아침이면 농민들이 농산계 기발을 앞세우고 농악을 치며 나갔다. 오늘아침에도 오벽근이는 농민들을 지휘해가지고 농산계 기발을 앞에 날리며 들판으로 나갔다. 그는 농민들을 휘동해가며 기여드는 《뱀눈》도 잘 잡아내고 농민조직을 감싸기 위해 농산계 기발도 만들고 농악도 치게 했다. 아침해빛이 금부채살 퍼지듯했다. 시누런 땅김이 물물 일어나 해빛과 뒤설레며 날았다. 무개하 물이 온 논판에 범람했다. 써레를 쳐놓은 논배미들이 거울같이 펼쳐졌다. 벌써 모를 낸 논이 절반은 더 되였다. 다리 꺽실한 흰두루미가 여기저기 논두렁에 날아와앉아 논판을 기울거리며 들여다본다. 《조웃타!》 농민들은 농악소리에 흥이 나서 어깨를 실룩거리기도 했다. 《날씨도 조선독립할 날씨 같은기라!》 《암, 하늘이 모를가.》 운기 뽀얀 버들개쪽 들판에서도 불고 치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고 조직을 감싸는 위장을 그럴듯이 하고 그저 태평세월에 농사나 지어먹는 농민들이 살고있다는 시위를 그럴듯이 해낸다. 《아니 저게 뭐요? 사람이 아니요?》 농악을 울리며 논머리에 다달은 농민들은 일시에 소리를 지르며 농악을 멈췄다. 바로 논두렁우로 무엇이 털썩털썩 기여오고있다. 사람들을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온통 새까맣게 된 사람이였다. 그는 벋디디고 일어선 두다리를 비척비척하며 논두렁을 걸었다. 《사람이다. 빨리 뛰여가 부축해라.》 오벽근이 소리를 질렀다. 농민들은 북이며 꽹과리들을 풀밭에 집어내던지고 논두렁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비척비척 걷던 사람은 철싹 논판으로 떨어져들어갔다. 《저런, 사람이 죽는기다.…》 오벽근이 또 고함을 지르며 논판으로 달려들어 물을 차며 뛰였다. 그러나 오벽근이 닿기전에 논판에 떨어진 사람은 물가운데서 도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철벅철벅 물을 차며 사람들앞으로 걸어왔다. 《아니 이게 누군기오? 카륜으로 오는 청년대표 아닝기오?》 오벽근이 눈이 둥그래서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그래도 청년은 목소리만은 쩌렁쩌렁했다. 《야 이 문둥아, 안녕이고 뭐고 니 어찌다가 이 몰골 됐나?》 오벽근이 물판을 철벅거리며 달려가 한윤을 꽉 붙안았다. 그리고는 흙물이 뚝뚝 떨어지는 한윤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시금 야 이 문둥아 하고 연거퍼 소리를 질렀다. 오벽근이 너무 격해하는바람에 한윤의 시꺼먼 두눈엔 당장 눈물이 그득해졌다. 오벽근이도 대추알같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었다. 《니 왜놈한테 추격을 받았나?》 《차츰 이야기하지요. 그래 지난밤 동네는 무사합니까?》 《무사하다뿐인가?》 《김성주동무가 무사합니까?》 《김성주선상님은 아직 안오신기라.…》 《여기에 안왔단말이요?》 《안오신기라.…》 《정말 안왔단말입니까?》 《정말 안오신기라.…》 한윤은 목이 메여 울음이 터졌다. 입술을 감쳐물며 안도와 기쁨의 흐느낌소리를 내였다. 《너 어째서 그러나?》 《그 그저 그럽니다. 참말 다행입니다.》 일편단심 김성주동무의 신상에 위험이 닥쳐왔다는 생각만 하고 거칠은 광야를 목숨걸고 톺아왔는데 아직 안왔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는 농민들을 붙안고 돌아가며 논판에서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자꾸 뚝뚝 떨어져내렸다. 농민들은 한윤을 부축해가지고 논판에서 나왔다. 그는 삔 발목이 박등처럼 부었다. 밤새 기여오느라고 옷이 온통 판이 났다. 출혈이 심해서 얼굴도 핼쑥하다. 《틀림없이 기차에서 뛰여내린기라.…》 《기차는 모르겠어도 이렇게 수갑을 찼을 때엔 순경이나 왜놈경찰이 달려들었던게 틀림없심더.…》 《옳아, 총맞은 자리도 있심더. 이 피 보이소.》 한윤은 부축을 받으며 말없이 털썩털썩 걷는데 부축하는 경상도내기들은 제 직성대로 법석 떠든다. 그러자 한윤의 겨드랑을 낀 오벽근이 꿱 소리를 질렀다. 《끓지들 마이소. 무슨 끓을 경황이 있다고?》 오벽근은 비통한 생각이 가슴을 우볐다. 이 무슨 일로 조선청년들이 여기까지 쫓겨와서 이렇듯 피를 흘리며 말로 다 할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고. 삼천리강토를 피로 물들인 민족이 무엇이 모자라서 대를 물려가며 여기 와서 또 피를 쏟아야 하는고. 오벽근은 더욱더 각근히 한윤의 허리를 껴안으며 부축했다. 조양촌 자기 집으로 온 오벽근은 한윤을 토방에 앉혀놓고 방안으로 달려들어가 궤문을 열어제끼고 자기의 광목중의적삼을 꺼내들고 나왔다. 《빨리 젖은 옷을 벳기고 이 옷을 입혀야겠다.》 《품이 맞겠능기요?》 《맞잖구, 아무러면 계룡산이 몸집만 못하겠능기오?》 오벽근이는 한윤이 아무리 작아도 자기 몸집만은 하다는거다. 농민들이 한윤의 진탕투성이옷을 벗기고 광목중의적삼을 입히느라고 법석했다. 《그렇게 입으니 작은 계룡산이 같심더.》 《실없는 소리 마이소. 그쪽 다리를 빨리 중의가랭이에 끼이소.》 《가만 있으소. 넙적다리의 진탕을 닦고야 끼겠습니더.》 《빨리 수건으로 닦으소.》 더러는 허허 웃기도 했다.
그담엔 오벽근이 목수연장 망태를 들고왔다. 그는 토방에 한윤의 팔을 굽혀놓고 진탕투성이의 수갑에 쓱싹쓱싹 줄칼질을 했다. 한 농민은 끌을 대고 망치로 쳐야 빨리 끊어질것이라고 하면서 끌과 망치를 량손에 쥐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오벽근은 말을
듣지 않고 땀발이 서게 줄칼질을 했다. 그는 종시 수갑을 끊어 마당가운데 절라당 내던졌다. 한윤은 수갑을 노려보며 또 눈물이 글썽해졌다. 김성주동무가 무사하게 됐다는 일이 또 한번 절절한 기쁨으로 온몸을 가볍게 둥둥 받들어주는것 같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