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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1 회 )
제 11 장
카 륜 에 로
1
봄이였다. 화창한 봄이였다. 그 무엇이 만물의 구석구석에 생명의 젖줄을 물리고 힘과 호흡을 길러 이 성장한 꽃과 만물을 안아올리게 했는가. 무너지게도 핀 꽃이였다. 무너지게도 소생하는 만물이였다. 나비와 꿀벌들, 지저귀는 새들, 기슭을 치는 물소리,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흘러가는 흰구름과 노근히 취할것 같은 이 해빛, 이 거대한 소생을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 누가 말할수 있으랴. 우주엔 그 의미를 말하는 환호와 속삭임이 가득히 찼다. 풀잎도, 나무잎새도 그저 흔들리지 않고 꽃들도 그저 방글거리지 않고 흘러가는 물과 흰구름도 그저 흐르질 않는다. 다정에 겨워 속삭이며 환호를 올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바로 이 대향연이 베풀어진것 같은 봄, 우주의 중심에 미소를 그리며 나타나듯 자유의 몸이 되여 나타나시였다. 광대한 투쟁전선이 부글부글 끓었다. 눈물을 뿌리며 환호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이께서 석방되시자 일제는 일제대로 더욱 좋은 기회라고 기세를 올렸다. 일제에게 거머쥐운 땅은 감옥밖이 더욱 살벌한 감옥이였다. 봉천총령사는 즉시 길림령사관에 어떤 일이 있어도 김성주가 길림시내를 빠지기전에 체포하라는 긴급지령을 내렸다. 그 지령을 받아문 길림령사관은 벌컥 끓었다. 정거장과 마차주차장 그리고 교외로 통하는 모든 길목들에 신사복차림을 했거나 허름한 옷차림을 한 각가지 행색의 사복경찰들과 밀정들이 뒤덮였다. 놈들은 20전후의 젊은 청년이면 마구 잡아세워놓고 행패질을 했다. 정거장에선 놈들이 중국청년을 결박하려다가 순경들과 멱을 들고 차고 갈기고 하는 싸움이 붙기도 하였다. 이런 정황속에서 김성주동지께서는 정황에 맞게 새 태세를 갖추고 새로운 싸움으로 들어가시였다. 지방조직원들도 소식이 전해지자 다 뛰여올라왔다. 카륜에서 사업하던 리병모와 신동호, 교하의 상준이도 다 올라왔다. 그이께서는 이어 파괴된 조직들을 복구하는 일에 착수하시였다. 조직들을 복구할뿐만아니라 복구된 조직들이 새로운 정황에 맞게 싸울수 있도록 꾸려주시였다. 매일밤 송화강가의 춘택이네 집에서 회의가 열리고 그이의 우렁우렁하신 목소리가 울리였다. 우리는 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상승시켜야 한다. 사태는 우리가 처음 체포당해 들어갈 때와도 다르다. 그사이 일제는 이 땅에 한걸음 더 깊이 들어왔고 방법이 더욱 음흉하고 잔인해졌다. 우리의 주위엔 놈들의 포위진이 겹겹으로 늘여져있고 우리를 향한 총구가 전후좌우에 밀집되여있다. 그렇기때문에 파괴된 조직들을 시급히 살리며 지하로 들어가야 한다. 지하투쟁, 이것은 낮은 단계가 아니라 높은 단계, 세련된 단계의 투쟁방법이다. 정세에 맞게 전진시키는 방법이다. 오늘밤에도 청년들이 춘택이네 집에 가득 모여와앉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조용하나 힘있는 음성으로 말씀해나가시였다. 모두 몸자세 하나 흐트리지 않고 신중히 들었다. 누구나 다 감옥안에서 더욱 달라지신것 같은 김성주동지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차광수의 말에 의하면 감옥안에서 그 무슨 큰 로선에 대한 연구를 완성해가지고 나오셨다는 말도 있다. 청년들은 그이의 눈에 이글거리는 불빛을 우러러보며 가슴들이 뛰였다. 《인젠 시내조직들을 정돈해놓았으니 다음 단계의 사업을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지금 동만에서 벌어지고있는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나라땅에서 살수 없어 이역땅에 쫓겨와서도 살길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는 인민들을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저들의 더러운 종파적목적에 리용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것을 저지시켜야 합니다. 사태를 보면 이미 때가 늦은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카륜회의 준비도 서둘러가지고 곧 회의를 해야 하겠습니다. 날자가 결정되는대로 남북만 조직들, 국내에도 통지를 띄워야 하겠습니다. 카륜회의에선 조선혁명의 진로를 개척할 우리 청년공산주의자들의 과업을 토의하게 될것입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주먹을 높이 쳐드시며 힘있게 웨치시였다. 그러자 모두 틀어쥔 주먹을 쳐들고 화답했다. 《혁명!》 《만세!》 한무릎을 세워 몸을 반쯤 일으킨 차광수는 팔을 더욱 높이 쳐들며 웨쳤다. 《한별!》 《만세!》 심장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소리로 부르짖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얼굴에는 감동과 환희와 결의가 어리였다. 이때 선창가엔 호위성원들이 드문드문 어둠속에 숨어 서있었다. 얼마전 김성주동지의 석방투쟁에 합세하기 위해 조직의 핵심성원들과 함께 길림에 와있던 최창걸이도 주머니속의 권총을 꽉 틀어쥐고 어둠속을 거닐었다. 그는 이따금 주머니속에서 땀배인 손을 뽑아 손바닥을 바지혼솔에 쓱쓱 문지르고는 다시 주머니속의 권총을 틀어쥐였다. 속옷도 땀에 젖어 등골이 선뜩선뜩하고 물기 스민 강바람과 밤이슬에 겉옷도 축축해졌다. 밤하늘엔 금모래를 쥐여뿌린듯 반짝이는 별들이 한벌 쭉 깔렸지만 어둠속에 잠긴 송화강반은 괴괴한 정적이 깃들었다. 이따금 등불도 없이 강우로 떠가는 매생이의 철썩철썩 노박히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군 한다. 최창걸이와 함께 오늘밤 호위임무를 받은 상준이도 휘 하고 이마의 땀을 문질렀다. 그는 자기 잘못으로 김성주동지께서 체포되고 간고한 옥중생활을 하시는동안 정말 뼈저린 고뇌속에서 목숨을 끊고싶은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자기의 죄과가 죽음으로써도 씻어버릴수 없는것이란 생각을 고쳐하며 그 죄과를 씻자고 맹세다졌다. 그랬던 그였기에 석방되여나오신 김성주동지와 마주서게 되였을 때에도 다른 동무들처럼 울면서 달려들어 포옹하지도 못하고 악수를 하고는 이어 고개를 숙이고 뒤전으로 물러섰다. 상준이는 그이의 신변보위에 자기 일생을 바칠 각오를 했다. 그 누가 그 어떤 과업을 준대도 자기는 오직 이 임무만을 목숨바쳐 수행하리라 마음먹었다. 무서운 결심이였다. 짓이개워진 자기 과오의 수렁속에서 찾아쥔 굳은 차돌멩이같은 결심이였다. 상준이는 자갈을 저겨디디며 강웃쪽으로 올라갔다. 거긴 물안개가 끼였다. 그는 다시 제재소가 자리잡은 골목길을 한바퀴 순회하였다. 그런데 그가 송진내 풍기는 제재소의 널바자를 끼고 돌 때였다. 저쪽에서 마주오던 검은 그림자가 얼른 골목으로 빠져들어갔다. 상준이는 흠칫 놀라서 그자리에 멈춰섰다. 등골로 식은땀이 흐르고 신경이 바늘끝처럼 날카로와졌다. 이 밤중에 웬 사람이? 그런데 왜 숨을가?!… 그는 지체없이 수상한 사람이 사라진 옆골목으로 뛰여갔다. 뛰여가면서 주머니속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런데 그가 옆골목으로 접어들자 방금 사라졌던 그 사람은 담장에 기대선채 태연하게 라이타로 담배불을 붙이고있었다. 라이타불빛에 머리에 쓴 중절모며 다부산자자락이 얼핏 드러났다. 담배를 붙여문 그는 기다렸다는듯이 상준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미안합니다. 말좀 물읍시다.》 그는 류창한 중국말로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을?》 상준이는 어쩐지 몸이 오싹했다. 《저… 다른게 아니고 좀 비밀이야깁니다만 요새 청년운동을 지도하는 김성주동지가 감옥에서 석방되여 나왔다고 하는데 어데 있는지 모릅니까? 저는 천진에서 왔습니다.》 상준이는 가슴이 더 떨리였다. 중국사람은 틀림없는것 같은데 이게 무슨 사람이기에 막 내놓고 김성주동무가 어데 있는가를 묻는가?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어데서 왔다구요?》 《천진조직대표입니다. 우리 조직이 김성주동지께 청탁할 일도 있고 전할 기별도 있어서 왔습니다.》 상준이는 가슴이 떨리긴 했으나 좀 생각을 굴리였다. 정말 조직선을 타고온 사람이라면 어쩐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담배불을 빨 때마다 드러나는 모습도 그렇지만 바싹 가까이 다가서보니 꼭 어데서 보았던 사람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드러진 관골, 긴 코날, 삐죽한 턱주가리, 얼른 눈에 비치는 그 모습은 분명 어데서 보았다. 그의 머리속으로는 불현듯 섬광같은 생각이 날아들고 심장이 멎는듯 쿵 소리를 내였다. 이게 바로 그놈이로구나! 누구한테 이야기도 못하고 혼자 가슴속에 억물고있던 바로 7개월전, 김성주동무의 불행이 있던 그날밤, 인의병원앞에서 띄여보았던 그놈이다. 그날밤 김성주동무를 찾아서 허둥지둥 뛰여다니는데 이놈이 인의병원 앞골목에서 나타나 령사관경찰들의 따귀를 갈기며 왜 늦었는가고 소리를 질렀다. 왜말에 서툴러 자세히는 알수 없어도 들어보니 경무청 순경들한테 발등을 밟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밸풀이를 하는것이였다. 미행은 먼저 했으나 경찰들이 늦게 달려와 손을 못썼던 모양이다. 이게 분명 그놈이다. 키꺽다리에 말상으로 생긴놈이였는데 분명 그놈이다. 상준은 침착해지려고 애쓰며 넌지시 물었다. 《천진조직에서 왔다는게 사실입니까?》 《그러문요. 천진에선 김성주동지의 석방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밀정질에 얼마나 이골이 난놈인지 아주 천연스러웠다. 《그럼 가십시다. 요새 일본개들이 덮어쳐서 경각성을 높여야 합니다.》 《암 그러다뿐이겠습니까. 자 담배를 태우시죠.》 상준이는 대꾸하지 않고 앞서 걸었다. 두다리가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철천의 원쑤를 이렇게 만나다니… 이게 바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닌가! 김성주동무의 체포가 있은후 가슴에 피가 차고 눈물이 차던 생각, 고민하며 울던 생각, 제목숨을 파리목숨같이 없애고싶던 생각, 그 모든것이 불기둥을 만들어올렸다. 리성을 잃을 정도로 단매에 쳐죽이고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솟았다. 상준이는 이놈을 어데로 끌고가서 처단해버려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혹시 주변에 이놈과 동행한 놈들이 잠복해있을지도 모르는데 총소리를 내는것은 좋지 않았다. 칼이라도 있으면 놈을 깔고 들어앉아 오장륙부를 찢어던지지 않을가. 상준이는 아무리해도 자기 혼자힘으로는 놈을 당해낼것 같지 못하여 이말저말 물으면서 최창걸이 순찰을 돌고있는 강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소리를 내면 최창걸이 들을만하다고 짐작되는 거리에 이르자 상준이는 두번 큰 기침을 깇고 한번 약한 기침소리를 내였다. 그것은 밀정놈을 발견했다는 비밀약속이였다. 한순간이 지나자 최창걸이 달려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웬 사람입니까?》 놈이 불안한 기미를 드러내며 상준에게 물었다. 《안심하시오. 경비임무를 맡은 우리 동무인가 봅니다. 이 주변에 십여명 청년들이 순시를 돌고있지요.》 상준이는 놈이 함부로 선손을 못쓰게 하느라고 은근히 오금을 박았다. 그러는 사이에 최창걸이 헐레벌떡거리며 앞에 다달았다. 《무슨 일이요?》 최창걸은 상준이옆에 마주서있는놈을 은근히 경계하면서 한손을 권총이 들어있는 주머니에 지른채 물었다. 《천진조직에서 온 대표라고 하오. 김성주동지께 청탁할 일도 있고 전할 기별도 있다고 하오.》 상준이는 대답하면서 다시 두번 기침소리를 내였다. 이놈이 밀정이니 해치우자는 신호였다. 최창걸은 대뜸 알아차렸다는듯 주먹을 입게 갖다대고 나지막하게 두번 으험으험 소리로 응대를 하더니 선선히 대답하였다. 《천진조직대표라면야 안내해드려야지. 그런데 이 동무의 정확한 신분을 알아보았소?》 최창걸은 이놈이 밀정이라는것이 틀림이 없는가, 무슨 실수가 없겠는가 다시한번 상준에게 확인해보는것이다. 《틀림이 없소. 뒤일은 내가 담보하겠소. 내가 함부로 실수할 사람이요?》 깊은 번민에 시달린듯한 상준이의 격동된 목소리를 듣자 최창걸은 그만 결심을 내린듯 《날 따라오시오.》하고는 앞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그는 강웃쪽으로 얼마쯤 올라가다가 짐마차 한대가 매여있는곳에서 목재소를 에돌았다. 최창걸의 뒤에는 밀정놈이 서고 그뒤에는 상준이가 따라섰다. 주위는 캄캄하게 어두웠다. 목재소마당엔 희미한 외등들이 켜있었다. 모든것이 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상준이는 자기가 자칫 실수로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가 하여 바싹 신경을 도사렸다. 《아직 멉니까?》 무슨 불안한 기미를 느꼈는지 왜놈밀정이 물었다. 《좀더 가야 아지트가 있소. 걱정 말고 따라오시오. 아무러면 김성주동지가 있는곳인데 쉽사리야 나타나겠소?》 최창걸은 그처럼 긴급한 정황속에서도 배포유한 소리를 하였다. 독립군 중대장을 하던 최창걸이가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최창걸의 여유작작한 소리에 다소 안심이 들었는지 밀정놈은 군소리 없이 따라걸었다. 최창걸은 목재소뒤를 돌았다. 여기엔 춘택이네 집으로 가는 길과 송화강변으로 곧추 뻗어올라간 길이 있다. 최창걸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어둠속을 쏘아보았다. 《여기 좀 앉았다 갑시다. 저기서 무엇이 얼씬 하는것 같습니다.》 《어데요?》 밀정놈이 최창걸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저기 버들숲너머에서 방금 사람의 머리가 얼씬거린것 같소…》 최창걸은 놈의 팔을 붙잡으며 길가의 통나무우에 앉았다. 이 순간 최창걸은 번개같이 몸을 날려 놈을 통나무뒤로 떨어뜨렸다. 이어 우지끈 딱딱 하는 소리와 상판대기에 주먹이 들이박히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여서 상준이는 미처 사태를 가려볼새가 없었다. 《칙쇼!》 통나무밑에 쓰러져 죽은것 같던 밀정놈이 요동을 쓰며 일어나더니 손에 무엇인가 번쩍하는것을 빼들었다. 그놈도 훈련받은놈이라 만만치 않았다. 상준이가 발밑에 나딩구는 돌멩이를 들어 그놈을 갈기려는 순간 최창걸이 두번째로 날아들자 놈은 끙ㅡ하는 신음소리를 지르더니 네활개를 내던지고 쓰러져버렸다. 《그래 이놈이 밀정이라는것이 틀림이 없소?》 최창걸은 아주 숨이 지지 않은놈의 허리통을 한발로 밟고서서 가쁜 소리로 물었다. 《틀림이 없소. 김성주동무가 체포되던 날 이놈이 령사관 경찰들을 끌고나와 인의병원앞을 돌아쳤소. 왜놈령사관 밀정이요.》 상준이의 말을 다시한번 곰곰히 듣고난 최창걸은 손더듬하여 놈의 안주머니에서 증명서들을 꺼내였다. 전지불에 비쳐보니 령사관 경찰대장 사까이라는 명함장이 나왔다. 《로획물이 괜찮군. 큼직한놈이 걸렸는걸.》 최창걸은 밀정을 강에 처넣고나서 풀밭에 떨어진 놈의 권총을 찾아쥐였다. 춘택이네 집에서 열을 올리며 무엇인가를 토론하고있던 청년들은 갑자기 들어선 두사람을 보고 놀란 기색으로 자리에서 우실우실 일어섰다. 모두 최창걸이와 상준이의 모습을 보고는 눈이 커졌다. 캄캄한 밖에서는 몰랐으나 불빛 있는데서 보니 그들의 모습이 말이 아니였다. 옷이 온통 감탕매질되여있고 볼편에서는 피가 흘러 목이며 턱이 온통 피칠갑되여있었다. 《무슨 일이요?》 차광수가 급히 물었다. 모두가 긴장해서 최창걸을 지켜보았다. 《최동무가 한놈 제꼈소. 로획물이 대단하오.》 상준이 쥐고온 권총과 단도를 책상우에 갖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밀정놈의 증명서를 등불에 다시한번 비쳐보고 그것도 그옆에 놓았다. 김성주동지께서 최창걸의 곁으로 다가서시며 물으시였다. 《그래, 다친데는 없소?》 《뭐… 일없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시오.》 상준이의 눈굽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떠듬떠듬 밀정놈을 요정낸 이야기를 하고나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더니 이어 다시 고개를 번쩍 들고 그이를 마주보며 걸그렁해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성주동무, 날 용서해주오. 나때문에 성주동무가 그 고생을 하고 우리 혁명이 손실을 당한 생각을 하면…》 그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끅끅 흐느끼는 소리를 내였다. 그는 이제야 오열이 터져 어깨를 들먹거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들먹이는 그의 량어깨를 꽉 잡으시였다. 《왜 이러오. 상준동무? 나의 감옥살이야 반동군벌의 책동때문이지 무엇이 동무 잘못이란말이요?》 《아니요 아니요. 이 죽일놈이 조직이 준 임무를 잘해냈더라면 천만번에 한번인들 그런 일이 있을수 있었겠소. 난 죄가 큰 놈이요. 내가 바로 김성주동무를 그 해빛이 없는 감옥에 들어가게 만들었댔소. 그 무서운 지옥세계에서 7개월동안이나 고통을 겪게 만들었소…》 상준이는 자기의 로동복앞자락을 쥐여뜯으며 가슴을 쾅쾅 때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상준이의 어깨에서 손을 떼시며 그를 이윽토록 굽어보시였다. 그이의 눈엔 알릴듯말듯 노여운 빛이 어리였다. 《상준동무, 그러지 마오. 동무가 그러면 내가 괴롭소. 인제도 말했지만 내가 체포된것이야 어디까지나 원쑤놈들때문이 아니겠소. 그리고 혁명을 하느라면 감옥살이도 할수 있는것이지. 동무처럼 그렇게 우울해져서야 되겠소. 난 요즘 동무를 볼 때마다 어쩐지 가슴이 언짢소. 내가 체포된후에 동무가 조직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모양인데 인제 그걸 잊어버리오. 이젠 그걸 백지화하잔말이요. 어떻소, 차동무. 그렇게 할수 있겠지요?》 그이께서는 차광수를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차광수는 차광수대로 다르게 치미는 감정이 있어서 말을 못하고 눈만 슴벅거렸다. 상준이가 속이 깊고 내성적이라는건 알고있지만 이렇게까지 자기 과오를 두고두고 뉘우치며 목이 멘 울음을 터뜨릴줄은 몰랐다. 그러지 말라고 교하에 가있는동안 여러번 뜨거운 말마디의 쪽지도 날려보냈는데 이렇게도 가슴에 박힌 못을 뽑아던지지 못할줄은 몰랐다. 《인젠 그만두오. 오늘밤엔 가슴을 활 풀고 웃어주오.》 차광수가 그의 팔을 흔들며 달래였다. 《옳소. 인젠 얼굴에 웃음을 담소. 그리고 그렇게 뒤전에 숨어서 돌지 말고 문제토의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구… 그리고 창걸동무가 로획한 이 부로닝권총은 동무가 휴대하고 다니오. 인젠 우리도 원쑤들과 무장으로 대결할 때가 되였소.》 그이께서는 불빛에 윤기가 반들거리는 권총을 상준이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그러자 차광수는 상준이의 권총 쥔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목소리를 높여 동무들을 불렀다. 《동무들, 이 동무의 모범을 따릅시다. 우리모두가 이 동무처럼 육탄이 되여 김성주동무를 보위합시다. 이게 우리 혁명의 첫째 임무요. 이 임무를 떠나선 우리 혁명에서 다른 어떤 중요한 임무도 없소. 명심합시다. 그리고 김성주동무자신도 그날밤처럼, 그 잊혀지지 않는 날 밤처럼 단독으로 다니지 말것을 조직의 결정으로 채택합시다. 우리의 쓰디쓴 경험을 잊지 말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엄격한 결정을 채택합시다.》 차광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옳소.》소리가 터져올랐다. 《그렇게 합시다.》 《결정으로 채택합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딱하신듯 한손을 들어 웅성거리는 장내를 제지시키시였다. 《동무들, 동무들의 심정은 고맙소. 그러나 나 하나의 안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우리 조직전체의 안전이 중요하다는걸 알아야 하오.》 《성주동무, 이것만은 우리도 양보할수가 없소. 다시는 작년가을과 같은 그런 무서운 일이 반복되여서는 안되오. 결단코, 결단코… 물론 우리 조직전체가 중요한것은 사실이요. 하지만 핵이 없는 생명체가 존재할수 없듯이 중심이 없는 조직, 지도자가 없는 혁명이 승리할수 있겠소. 이건 20년대를 총화하고 30년대 문어구에 들어선 우리 혁명의 요구이고 성주동무가 령어생활을 한 기간 우리모두가 뼈와 살로 통감한 진리요.》 최창걸은 목소리를 떨며 열렬히 부르짖었다. 그의 불을 뿜는것 같이 황황 불타는 눈굽에선 줄곧 눈물이 글썽거렸다. 오순희, 영숙이들도 돌아서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었다. 다른 청년들의 얼굴에도 눈물이 번들거렸다. 김성주동지께서도 격정을 누르느라고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천천히 말씀을 꺼내시였다. 《동무들, 고맙소. 동무들의 심정을 내가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요. 아직은 나이도 젊고 또 한일도 별로 없는 나를 동무들이 그토록 귀중히 여겨주니 영광스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오. 아마 앞으로도 동지들의 한없는 사랑속에서 살아야 할것이요. 우리 아버지는 혁명을 하려면 사람을 잘 가려보고 동무들을 잘 사귀여야 한다고 말씀하시군하였소.… 그 말씀이 오늘밤 사무치도록 생각나오. 동무들, 정말 오늘밤 동무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소. 그러나 이 자리에서, 동무들의 크나큰 신뢰를 받아안은 이 자리에서 내가 하고싶은 말은 혁명에 다진 맹세를 변치 말자는것이요. 절해고도에서도 단두대에서도…》 말씀을 마치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와 최창걸의 손을 억세게 잡으시였다. 하나로 굳어진 그 주먹우에 상준이, 권태일, 신동호들의 손이 놓이고 차득보, 리병모들의 손이 놓이였다. 그리고 또 누구누구의 손들이… 눈굽을 훔치며 급히 다가온 오순희와 영숙이가 맨나중으로 파란 정맥이 보이는 가냘픈 손들을 사나이들의 뭉그러진 억센 주먹우에 올려놓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오순희의 손등우에 자신의 한쪽 손을 마저 올려놓으시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것이 바로 철쇄를 마스는 마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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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밤 김성주동지께서는 춘택이네 집에서 모임을 끝내고는 그길로 인차 리갑무로인을 찾아 떠나시였다. 석방되여나오는 길로 찾아가보려고 하였으나 뒤바뀌는 정황속에서 해야 할 일들이 급해서 여적 찾아가질 못하시였다. 로인의 병환에 대한 소식은 감방안에서도 익히 들으시였다. 그의 결곡한 심정에 대한 소식을 들으시고는 자신께서도 눈물을 머금으시였다. 그이께서 마당으로 나가시였다. 차광수는 벌써 수군수군하며 누구누구는 어느 골목으로 빠져들어가 어느 골목을 지키고 누구누구는 어느 거리를 어떻게 감시하라는 지시를 주었다. 숨결 급하게 일이 꾸며졌다. 모두 거리쪽으로 밀려나갔다. 어디서 바스락소리만 나도 긴장한 눈들이 번개불을 일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가다가 우마항거리에 좀 서있어요.》 오순희는 청년들속으로 걸어가며 신동호에게 속삭였다. 《거긴 어째서요?》 신동호는 의아쩍어서 물었다. 《그런 차림으로는 다니지 못해요.》 신동호는 잠자코 걸었다. 그는 찬바람을 일구며 카륜에 나타났던 오순희를 생각했다. 그날 자기는 김성주동무의 눈물겨운 충고의 편지를 받고 너무도 큰 충격속에서 자신을 뉘우쳤는데 오순희는 시종 서리바람을 일구며 다녀왔다. 오순희를 바래주기 위해서 카륜역까지 따라나오며 주고받은 대화가 생각났다. 《순희동무, 내가 잘못했소. 우리 둘사이에 그 무슨 깊은 결합이 이루어져있었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러나 이 문제로 하여 우리들의 정신적인 고민이 심각했다고 보면 이것을 어찌 작은 문제라고 보겠소. 나는 이 작은 문제아닌 문제를 작은 문제로 보고 순희동무에게 고통을 안겼댔소. 난 지금 혁명가적수양문제를 놓고 깊이 생각하고있소.》 《그건 별안간 무슨 말이예요?》 《사실 오늘 동무가 가지고 온 편지는 김성주동무의 나에 대한 비판이였소. 그 편지를 보고 내가 오늘 심각한 뉘우침을 하고있소. 답장에도 썼지만 내가 달게 접수하더라고 일러주오.》 오순희는 대꾸가 없이 걸었다. 결국은 자기가 자기 문제를 들고 못올 사람앞에 왔다간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많은 문제를 생각했소. 이때까지 내가 생활의 겉면에 떠서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언제 가야 자기 무게를 가지고 사물현상의 깊이에 발을 튼튼히 디디고 하나를 생각해도 똑똑히 생각할줄 아는 사람으로 될수 있겠는가. 별생각이 다 드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전 정말 그런 편진줄 모르고 가지고 왔어요. 제 사생활의 문제로 하여 감옥에서 고생하시는 김성주동지에게까지 걱정을 끼쳐드렸다는 생각을 하면 전 괴로와서 견디지 못하겠어요. 그 문제에 대해선 더 말씀하지 마세요.》 오순희의 말에선 찬바람이 풍겼다. 《순희동무, 그러지 마오. 날 용서하오. 내가 이전에도 우리 둘이 함께 손잡고 나가는것이 혁명에서 기쁨이 되고 노래로 될수 있다는 심정을 토로해서 동무에게 주지 않았소.》 《그게 진정이였다면 신동무자신이 이때까지 상대방의 생활에 캄캄한 장막을 치게 하고 자기자신도 우울과 고뇌속에 빠져서 모대기였을가요? 전 신동호동무도 모대긴줄을 알아요. 그저 시원히 물러선다는 그런 기분만이 아니였다는것을 알아요.》 《어쨌든 나를 아프게 질책해주오. 그러나 랑만에 찬 우리들의 투쟁속에서 둘사이에 결별이 있고 둘이 그것때문에 상처를 입고 아픔을 겪는다면 그것이 무슨 좋은 일이겠소?》 《우리는 그런 길이 아니고도 높은 의무감과 책임성만 있다면 랑만에 찬 투쟁속에서 살수 있다고 보아요. 저는 오늘아침 채경동지가 탄 렬차가 광야의 한끝으로 사라져가는걸 보고는 모든것을 재인식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있어요. 우리들은 정말 너무도 개인에 사로잡혀있었어요. 너무도 평범했어요. 너무도 혁명을 몰랐어요.》 오순희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눈물을 씻었었다. 이렇게 다녀온 오순희가 이 바쁜 정황속에서 불시에 뺨에 입김이 와닿는것 같은 말을 속삭이는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 신동호는 은근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모두 급하게들 걸었다. 《조금 서계셔요.》 우마항거리로 온 오순희는 신동호의 팔을 잡아세우더니 길 옆골목으로 사라졌다. 신동호는 가지도 못하고 잠간 머밀머밀하며 기다렸다. 그사이 오순희는 어데 가서 중국 다부산자와 캡을 구해가지고 왔다. 정말 새매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런 양복을 입고는 위험해요. 빨리 양복우에 이걸 입으세요.》 신동호는 어리둥절해졌다. 《어서 팔을 끼세요.》 신동호가 주춤거리자 오순희는 다부산자를 쭉 펴서 둘러씌우며 어서 팔을 끼라고 했다. 신동호는 팔을 끼였다. 《그담 모자도 쓰세요.》 신동호는 캡도 썼다. 오순희는 다부산자의 깃고대도 바로잡아주었다. 신동호는 눈물이 그렁해졌다. 행복이 아람으로 와안기는것 같기도 했다. 참된 혁명의 길우에서 도로 찾는 사랑과 기쁨… 바로 여기에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있지 않는가!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는 낮으나 격정에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둘이는 나는듯이 걸었다. 신동호의 다부산자자락에선 바람이 일었다. 그렇다, 이 사랑의 길, 사랑이 아름답게 부활하는 길, 울던 얼굴에 꽃보라가 뿌려지는 길, 김성주를 따르는 이 거품치는 대하속에서 발맞춰 달리는 기쁨, 이게 바로 영원의 사랑이 아닐가! 영원의 행복이 아닐가! 둘이는 행복의 울음이 북받쳐 달린다. 김성주동지께서 차광수와 함께 리갑무로인네 집으로 들어서시니 아래웃방에 사람들이 가뜩 모여와있었다. 박승훈이도 리갑무로인의 곁에 와앉아있었다. 장윤삼이 와서 충격을 가하고 간뒤 로인은 병세가 아주 급전직하로 나빠져 지금은 의식이 없이 앓고있었다. 림종이 가까운것 같아서 서근하며 로인의 친구들도 오고 정지방에는 독립군을 하던 집 아낙네들이 모여와있었다. 사람들은 김성주동지께서 들어서시자 인제 나타났다고 반색해서 환성을 올렸다. 모두 눈들을 슴벅슴벅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들했습니까?》 《우리가 무슨 고생이겠나? 감옥에 들어가있은 회장이 고생을 했지. 얼굴이 몰라보게 상했군.》 서근하가 모시두루마기고름을 들어올려 눈물을 씻으며 말했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리갑무로인의 곁에 다가앉으시였다.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그러나 로인은 까딱 미동이 없었다. 두눈확이 몰라보게 우묵해지고 관자노리가 솟고 긴 수염이 휘늘어져있었다. 주먹을 겨우 폈댔는데 장윤삼이 왔다간 뒤 도로 다가쥐고 가슴팍우에 포개붙였다. 《선생님, 회장이 왔습니다.》 박승훈이 로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그래도 로인은 눈을 뜨지 못했다. 《그렇게 회장 회장 했는데 인젠 곁에 와앉아 소리쳐도 모르시는군.》 서근하가 개탄했다. 그는 박승훈이에게 어떻게 잠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 없겠는냐고 물었다. 박승훈은 곁에 놓여있는 진찰가방을 열고 무슨 주사인지 꺼내서 로인의 혈관에 찔러넣는다. 가죽만 남은 팔에 그래도 피줄은 두드러져올랐다. 큰 주사기의 붉으끼레한 액체가 한참 흘러들어갔다. 박승훈은 그런 주사를 또 한대 놓았다. 그는 땀을 흘렸다. 사실 박승훈이자신도 지금 회장을 붙잡고앉아 기쁨의 눈물을 뿌리며 할 이야기가 많다. 회장이 감방에 있을 때 리간수네 집에 달려다니며 치료를 해주던 일, 그렇게 그립고그립던 딸이 놓여나와서 아버지의 품에 엎어져 울던 이야기, 그런가 하면 잘못을 빌고싶은 말도 많다. 경주를 고쳐내지 못하고 무송으로 보낸 일, 이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고 자기 량심도 달래고싶었으나 그러질 못하고 리갑무로인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나게 하려고만 심혈을 기울인다. 주사를 놓는 그는 눈을 슴벅거리며 땀방울을 떨구었다. 곁에 앉아있던 서근하가 손수건을 집어주었다. 얼마후에야 로인은 이불속에서 까둥겼던 다리를 펴는것 같다. 불룩하게 솟아있던 이불귀가 수그러든다. 그이께서 잡으신 손목도 약간 움직거렸다.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눈을 뜨지 못한다. 《선생님, 회장이 왔습니다.》 이번엔 박승훈이 또 소리쳤다. 그제야 확이 깊은 눈가죽이 열렸다. 주위에 둘러앉아있는 서근하들이 눈을 뜬다고 앉은걸음으로 다가앉았다. 모두 로인의 몸을 흔들며 회장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로인의 눈가죽은 점점 더 벗겨져올라갔다. 불빛같은 눈동자가 살아난다. 《선생님!》 김성주동지께서 손목을 흔들며 목이 멘 소리로 부르시였다. 그래도 로인의 눈은 마주 쳐다보질 않고 허둥대며 이 얼굴 저 얼굴 여러 얼굴들을 쳐다본다. 얼마후에야 김성주동지의 얼굴에 시선을 멈추었다. 《제가 김성주입니다.》 《뭐 뭐 성주? 예가 감옥인고?》 《저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로인은 그 소리를 듣더니 그렇게 다가쥐였던 두주먹을 쭉 펴서 쳐들며 와들와들 떨었다. 무엇을 덮치려는것 같기도 했다. 그이께선 그 손길을 붙잡으시였다. 《이 무슨 소린고? 감옥에서 나왔다고?》 《네…》 《회장이 감옥에서 나왔다고?》 《네, 나왔습니다.》 로인의 두눈에서 불같은 빛이 내쏘고 눈굽엔 번질거리는 이슬이 괴여올랐다. 《선생님, 흥분하지 마십시오.》 김성주동지께서도 눈물을 머금고 달래시였다. 로인의 강직하고 굳은 심정이 모습만 보아도 다 안겨온다. 로인은 한참동안 온몸을 와들거리며 떨었다. 《내 내가 회장을 안아내오자고 했댔는데 회장이 제발로 감옥을 테고 나와 내곁에 왔단말이지? 캄캄하던 하늘에 해가 어이 그리도 쉽게 떴을고?》 로인의 량눈귀로는 눈물이 주르르 쏟아져내렸다. 그이께서는 그 눈물을 닦아주시였다. 《내가 한생을 풍찬로숙하며 광복을 위한 짐을 지고 걸어오다가 그 무거운 짐을 진채 진토속에 묻힐줄 알았더니 회장을 보니 인젠 그건 면할것 같으이… 회장!》 로인은 벽력같은 소리로 김성주동지를 불렀다. 《네…》 《인명은 재천이라고 나는 인제 올데까지 다 온것 같으이. 내가 이때까지 회장의 운동에 보탬은 주지 못했으나 한많은 선대가 벗어주는 짐도 받아서 져주게…》 《명심하겠습니다.》 《회장의 짐도 조국광복의 짐이고 우리의 짐도 조국광복의 짐이 아니겠나? 이 막중한 짐을 회장의 두어깨우에밖엔 지울데가 없어. 알겠나?》 《알겠습니다.》 《고마우이. 그러면 내가 땅속에서도 육신이 안정되고 정신도 서화담의 말대로 담일청허한 허공중천에 편안히 흩어져버릴걸세.》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말한 로인은 한동안 안정하더니 그이의 손을 힘주어잡았다. 《그래,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셈인가?》 《국경쪽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몇해안으로 두만강가까이에 자리를 잡겠습니다.》 《두만강쪽으로?》 《네, 선생님 기다려주십시오. 조국에 나가 총성을 울리겠습니다.》 김성주동지의 힘찬 말씀을 들은 로인은 두눈이 커지고 누르끼레하던 얼굴에 혈색이 올랐다. 《내 나라 땅을 밟겠단말이지?!… 물을 건너가야 한다는 명구를 내걸었다더니… 아, 내가 과연 사람을 잘못보진 않았구나… 지금 젊은이들이 자넬 새벽을 불러오는 계명성이라고 이른다더니 과시 동녘에 뜬 새별일세, 이제 우리 배달민족은 자네를 구세의 태양으로 받들게 되였네.》 로인의 눈귀로 솟아나온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주름진 얼굴로 주르르 굴러떨어졌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손수건으로 그 눈물을 씻어주시였다. 《늙으면 눈물이 헤퍼진다구 하지만 내 그래서 흘리는 눈물이 아닐세… 우리두 제 나라를 도로 찾자고 강을 건너와서 싸웠지만 결국 추풍락엽처럼 흩어지고 이제는 나도 이역강토에 묻히게 되였네. 아직 더러 남아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명색만 독립이지 제나라로부터 점점 더 멀리로만 달아나니 종당에는 딴 종자가 되고말걸세… 그런데 자네는 물을 건너가 겨레와 생사를 같이하겠다니 내 죽을 나이만 아니래도 회장이 령솔하는 진중에 섞여 고함을 지르며 강을 날아건너가지 않겠나.… 자네 말을 들으니 고향이 눈앞에 보이네. 뒤산 솔밭이 보이고 소영각소리가 들리네. 선대가 누워있는 쑥내나는 그 땅에 내 수염을 붙이고 쓸어보고싶네.》 로인은 문득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여 서근하를 쳐다보았다. 《여보게 근하, 내 죽거든 내 시신을 이 타향땅에 너무 깊이 묻지 말게, 회장이 광복한 내 고향땅에 내 기어이 백골로써라도 가서 묻혀야겠소. 그리고 회장, 자네두 잊지 말구 선친의 묘를 고향땅에 모셔가게. 아니, 이 땅에서 한을 품고 죽은 모든 사람의 백골을 다 이장해주게. 그들이 옳은 령수가 없어 헛되이 죽긴 했어도 죽을 땐 모두 고국쪽에 머리를 돌리고 숨을 거두었네. 아, 얼마나 끌끌한 사람들이 이 땅에 헛된 피를 뿌려던졌던고…》 로인은 끅끅 흐느끼면서 심중을 토로했다. 모두들 울었다. 고개를 숙이고 앉은 서근하며 박승훈은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가며 휘유- 단김을 내뿜었다. 정지방의 아낙네들은 아예 헙헙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이께서도 로인의 한많은 소리가 너무도 절통히 가슴을 허비여 눈굽에 그렁하니 고이는 눈물을 씻을념을 못하시였다. 얼마후 리갑무로인은 안정된 낯빛으로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그이의 손등을 다심하게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어서 떠나게, 큰걸음을 나때문에 지체하겠나. 하지만 내 말을 잊지 말게.》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로인의 얼굴을 잠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시였다. 어쩐지 발걸음이 가볍게 떨어지지 않으시였다. 아닌게아니라 그이께서는 큰 짐을 받아지고 이 집 문전을 나서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민족의 운명을 떠맡기는 무거운 짐, 독립운동을 떠메고 거칠은 길을 헤쳐온 정통파라고도 할수 있는 리갑무로인이 급기야는 자기 대에 이루지 못한 그 크나큰 숙원과 희구와 열망과 불붙는 꿈을 자신의 두어깨우에 지워주는것 같았다. 그 무게가 산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시였다. 《왜 이렇게 걸음을 주춤거리오?》 밖으로 나선 차광수가 그이의 팔을 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소. 갑시다.》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기분을 수습하고 걸음을 빨리 옮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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