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0 회 )

 

4

 

돈화로 돌아오는 경주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받아가지고오는 지시를 집행할 일도 무거운 일이였지만 더우기는 김성주동지가 몸이 더할나위없이 축갔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오기때문에 그 축간 얼굴이 내내 눈앞에 나타나보였다. 한겨울내내 그 얼음판같은 콩크리트바닥에서 지내며 고통을 겪었으니 몸이 얼마나 축가셨을가! 추워서만 축가셨을가, 간혹 들어가는 사식도 다른 동무들한테 넘겨주고 자신은 계속 한줌도 못되는 감옥밥으로 끼니를 에우신다니 그래선 몸이 상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면서도 줄곧 감옥밖의 혁명을 지도하고있으니 무슨 장수인들 그 고통을 견디여내겠는가!

아, 무송어머님과 만경대할머님은 감옥에 있는 김성주동지가 몸이 저렇게 되였으리라는걸 이미 짐작을 하셨을게 아닌가! 그런데 그런 일은 모르시는듯 내색이 없이 나더러만 몸이 약하다고 인삼까지 사서 보약을 해먹였으니 이것을 그 무슨 고맙다거나 아니면 가슴이 아프다는 말같은것으로 이야기할수 있을가! 그 뜨거움과 눈물이 차있는 사랑의 바다밑바닥에 깔려있을 그분들이 겪는 고통이 눈에 읽히고도 남는다. 세상에 이런 어머님과 이런 할머님이 어디에 있을가. 그 어머님과 할머님의 얼굴을 보고싶기도 했다. 인젠 자기에게 힘을 떠밀어주는 사랑의 큰 원천지가 멀리에 솟아있는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늘가 저 멀리에 무송어머님의 얼굴이 둥그렇게 떠오르는가 하면 만경대할머님의 얼굴도 둥그렇게 떠올랐다.

경주는 달리는 차속에 앉아 차창밖을 한없이 내다보았다. 멀리 안도쪽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고있다.

돈화에 거의 와서야 이런저런 괴로운 생각들이 좀 잦아들었다. 돈화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생각이 인제야 검은 물멀기같이 머리속으로 밀려들었다. 인젠 어떻게 해야 된다는 명확한 지시를 받고 내려오긴 했으나 그새 일이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다. 그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는가? 우선 박철민의 상처가 좀 나았는지 모르겠다. 출혈이 심해서 움직이면 안된다고 했는데도 벌떡벌떡 일어나앉군하던 박철민이다. 그런 박철민을 복수심으로 들끓는 청년들이 들고날고하며 무얼 어떻게 하도록 만들었는지도 알수 없다. 떠날 때 박철민에게 지시를 기다리라고 당부는 재삼 해놓고왔지만 박철민자신이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달아있으니 그 당부를 지켜냈을것 같지도 못했다. 사태가 험악하게 되였다면 큰일이였다. 조직이 로출되여 일제나 반동군벌의 손에 무슨 자료라도 넘어갔다면 독군이 길림사건을 학생운동의 범위로 국한시키지 않을건 뻔한 일 아닌가.

경주는 줄곧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일어나 서성거렸다. 그는 돈화를 두정거장 앞둔 마을에 먼저 내려서 자기 조직과의 사업을 이틀이나 수습하고나서야 다시 기차에 올랐다. 돈화역에 내리니 밤이 좀 들었다.

돈화시내로 들어온 경주는 하숙집으로 갔다. 어머니 한분이 사는 집이였다.

《아이구 인제 오는군. 오늘밤에도 돌아왔는가고 청년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댔는데…》

주인어머니는 이러며 편지 한장을 내밀어준다. 카륜역에서 오순희가 띄운 편지였다. 카륜역에서 무슨 편지를 띄웠을가? 경주는 급히 봉투를 뜯었다. 편지내용을 읽고난 경주는 편지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인가. 길림거리에 가서 휘돌면서도 오빠가 령사관에 있거니만 생각하고 눈물이 배여흐르는 가슴을 붙안고 다니였는데 그 오빠가 어데로 또 끌려갔단말인가. 길림을 떠나서 어데로 갔는가. 살아돌아올수 있는곳으로 갔다고 어떻게 믿을수 있는가. 무서운 환상이 덮어쳤다. 경주는 손에서 편지를 떨구며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아니 어째서 이러나? 무슨 편지게 이래?》

주인어머니가 달려와 경주를 부축하며 흔들었다. 경주는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서 대답을 못했다. 입술이 파르르 떨었다. 주인어머니는 경주가 기절이라도 하는것 같아 이게 무슨 일이냐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흔들어댔다.

《어머니, 일없어요.》

《글쎄 급자기 어째서 이래?》

《아무 일도…》

《더운물이라도 좀 가져오라나?》

《…》

주인어머니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내려갔다. 경주는 이를 악물고 울었다. 오빠 오빠 소리가 터져나오는걸 이발로 깨물어내며 구석쪽에 얼굴을 돌리고 울었다. 얼마후 주인어머니가 더운물 한사발을 끓여들고 올라왔다. 그러나 경주는 물사발을 손으로 밀어내며 그담엔 눈물을 깨끗이 닦았다. 그는 떨어뜨린 편지를 다시 끌어다쥐고 읽었다. 이번엔 편지에 있는 오순희의 달라진것 같은 소리에 주의가 갔다.

 

나는 오빠와 한차에 오면서 혁명이란 얼마나 준엄한것인가를 깊이 체험했다. 혁명하는 과정에서 더 높이 자신을 완성해가는 체험! 그런 체험을 하고 와서 지금 새벽바람 쌀랑한 카륜역 대합실에 앉아서 이 편지를 쓴다. 인젠 나도 달라졌다. 더 높이 솟아올랐다. 인젠 사랑에 울고 눈물에 썩던 오순희가 아니다. 그런 오순희는 멀리멀리로 날려보냈다. 너도 울지 말아, 절대로! 절대로!

 

경주는 울음터지던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달라진 오순희가 오빠의 일로 절망에 빠지지 말라고 자기에게 엄격히 소리치는것 같기도 했다. 그 오순희가 곁에 있으면 꽉 껴안아주고싶었다. 밤이면 신음소리를 내며 앓던 오순희, 사랑에 울던 순희, 눈물에 썩던 순희, 오순희의 그것과의 결별, 혁명이 준엄하면 할수록 그것을 디디고 더 높이 올라서는 비장한 심장의 노래, 그런 노래가 울려오는것 같기도 해서 경주는 다시금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경주는 조용히 속지를 접어 봉투속에 밀어넣었다. 오순희가 걱정을 안해주어도 자기의 강인성과 침착성을 잃어버릴 경주가 아니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느덧 풍진속에서 단련된 지성의 높이가 나타났다.

이러는데 밖에 청년 두명이 와서 경주를 찾았다. 경주가 문을 열고 나서니 청년들은 인제 차에 왔느냐고 물으며 반가와들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지금 모두 기다리고있소. 오늘밤 중요한 회의가 열렸소. 저 옹진리에 둥지를 튼자들이 패가 갈려서 더러는 돈화로 올라왔는데 이자들이 들고일어나는 판이요. 복수를 해주겠다고… 오늘밤 그 준비회의를 하고있소. 무슨 지시를 받아가지고 왔소?》

《차츰 이야기하겠어요.》

경주는 가슴이 떨렸다. 그자들이 패가 갈려 돈화로 올라왔다는것은 무슨 말인가? 그리고 그들이 먼저 복수를 해주겠다고 들고 일어선다구? 이건 또 무엇을 말하는것인가? 사태는 복잡하게 된것 같다. 아예 수습할나위가 없이 일이 저질러져버린것 같다.

경주는 바삐 청년들을 앞세우고 걸어갔다. 서점으로 오니 지하실이 있는 마루방쪽은 캄캄하고 박철민이 거처하는 방에서 웅성거리며 끓는 소리가 들렸다. 토방엔 신이 한컬레도 없었다. 불이 내비친 방안에서 웅성거리며 들끓을바에야 신들은 무엇때문에 감추었는가. 어쩐지 인젠 경각성이고 뭐고 다 없어지고 막 드러내놓고 무슨 일을 해제끼려는것 같았다. 경주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서니 좁은 방안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앉아있다가 쳐다보았다. 박철민은 골을 동이고 일어나 둘둘 말아놓은 이부자리에 기대앉아있었다. 옹진리에서 패가 갈려 올라왔다더니 정말 코수염을 기른 몸집이 우람한 사나이도 와앉아있고 그와 대조적인 가냘픈 몸집에 주의자머리를 길러넘긴 청년도 한명 와 앉아있었다.

몸집이 우람한 사람은 돈화거리에도 더러 나타나군하던 최광호란 사람이라는걸 경주도 이미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할 때부터 공산주의자로 팔을 펴고 나서서 쏘련 각지를 무른 메주밟듯하며 돌아다닌 유명한 사람이란것도 알고있었다.

사실 이 최광호는 경주가 길림으로 올라간 뒤이어 옹진리에 있다가 돈화로 올라와서 박철민을 찾아 들락날락하며 복수심을 부추겼다. 옆에 앉은 고수머리청년은 어제밤 장동에서 화단을 겪고 오늘 최광호를 찾아서 부랴부랴 돈화로 올라온 청년이였다.

어제밤 장동에서는 폭동준비를 위한 군중대회가 열리고 행동위원회가 조직되였다. 그런데 그들이 군중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농민들은 일제나 반동군벌과 한편으로 본다는 소리를 줴치며 다녀서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칠십이 넘는 수전을 떠는 로인도 끌려나오고 사내주인이 없이 사는 어떤 집에선 앓아누워있던 아낙네도 몽치에 밀려나왔다. 행동위원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군중을 모아놓고 기염을 올렸다. 역시 즉시 사회주의만이 살길이라는 소리였다. 그는 장동 아래마을에 있는 지주 신풍장의 토지가 도합 몇년갈이인데 그걸 수탈해서 장동사람들이 노나가지면 한집에 차례지는 땅이 열흘갈이가 넘을것이라고 했다. 이 소리를 듣는 농민들은 가슴이 활랑거리고 엉뎅이가 들썩거렸다. 로인들과 아낙네들도 땅이 그렇게 나온다면 죽기내기로라도 싸워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농민들속에선 지주 신풍장이 가병을 백여명 가지고있는데 그걸 어떻게 당해내겠느냐는 의견이 일어났다. 그러자 행동위원이라는 월파 조청산이란자가 총이 문제가 아니라 담보가 큰가 작은가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담보가 작은놈은 손에 대포를 쥐여주어도 담보 큰놈이 날창, 쇠스랑, 곡괭이를 들고 달려드는걸 이겨내지 못한다. 우리가 날창과 쇠스랑을 메고 하늘을 무너뜨릴것 같은 기세로 밀려들어가봐라. 그깐놈들이 총을 쏴낼수 있겠는가. 오금에 바람을 들여놓은 군중은 그게 그럼직한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회의엔 명월구쪽에서 뛰여돌아가던 리학이란자도 올라와앉아서 그의 연설이 옳은 말이라고 북을 두드려주었다.

그런데 고수머리청년은 회의에서 행동위원회를 조직할 때 화단을 일으켰다. 구석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던 그는 행동위원으로 뽑히자 그만두겠다고 손을 저었다. 왜 그만두겠는가고 월파가 도끼눈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청년은 내 눈엔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뻣뻣이 대답했다. 그러자 조청산은 잔말없이 딴사람을 행동위원으로 뽑았다. 그는 행동위원회를 다 조직하고 회의를 필하고나서야 청년에게 덤벼들었다.

《내가 너의 사상이 흔들흔들하는것을 지난해 가을 하평에서부터 보았다. 그때도 우리가 조직한 회의를 반제청년동맹에 넘겨주었지? 이놈 반역자, 유다, 카우츠끼 이놈!》

조청산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고수머리청년의 껍질을 벗기려고 덤벼들었다. 청년은 잘못하다간 매를 맞을것 같기도 해서 마주 덤벼들지를 못했다.

결국 고수머리청년은 이런 화단을 겪고 오늘아침 부랴부랴 최광호를 찾아서 돈화로 올라온것이였다.

《그래 길림에 무슨 딴 일은 없었소?》

경주가 방안으로 들어가앉자 박철민이 물었다. 최광호와 고수머리청년은 경주를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했다. 그들도 이미 이 돈화지역에 녀성혁명가가 한사람 와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각지에 부녀회가 꾸려지고 밤이면 아낙네들이 칠판앞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것이 바로 이 녀성의 활동에 의해서였구나 하는 생각들을 했다.

《딴일은 없었어요.》

《김성주동무의 안부는 알고 돌아왔소?》

《네, 여전히 감옥에서 고생하고있어요.》

《오빠는?》

《오빠도 그렇게 고생을 하죠뭐…》

박철민은 그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경주도 그담엔 입을 다물고 손수건으로 이마우에 돋은 땀방울을 씻었다. 얼마후에야 방안에선 하던 이야기들이 계속되였다. 고수머리청년이 기염을 올렸다.

《저 개자식들이 나를 유다라오. 유다, 카우츠끼라고 악담을 퍼붓고있소. 내가 유다는 무슨놈의 유다란말이요? 조선혁명의 로선을 찾는 내가 저들에게서 아무것도 믿을것이 없다고 박차고 뛰여나오는것이 유다란말인가? 그래 무얼 가지고 폭동을 한다는건가? 뭐 첫째도 무장, 둘째도 무장, 셋째도 무장이라구? 옳소. 그 명제는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하다고 보우, 그렇지만 무얼 가지고 어떻게 무장을 메는가? 아무 가능성도 없는데 명제만 가지고 무장을 메? 날창, 쇠스랑, 낫가락을 가지고?》

청년은 지금도 가슴속에서 홍두깨같은 밸이 치밀어 주먹을 흔들며 부르짖었다. 박철민이 신중한 표정으로 그더러 목소리를 낮추라고 주의를 주었다.

《유다는 그것들이 유다요. 아니 더러운 청산파나부랭이들이요. 그들은 인젠 조선혁명도 거부하고 남의 나라 당을 넘겨다보고있소. 조선혁명을 거부하니까 청산파가 아니고 무어요? 일언이페지하고 저런것들은 쓸어버려야 하오.》

최광호의 말이였다. 그러자 공청원 한명이 고개를 뒤로 젖혀 긴 머리를 넘기며 참견을 들었다.

《난 그 의견에 동감이요. 지금 저자들의 즉시 사회주의라는 미친 소리에 군중이 넘어가지 않는다고만 믿고 안심하고있을수 없다고보우.》

《칩시다.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서 없애버립시다. 저놈들이 흉기를 쓰는데 우리는 죽었다고 가만히 앉아있겠소?》

또 한 청년이 말을 받아쳤다. 결국 박철민을 구슬리는판이였다. 박철민의 입에서 치자는 말만 한마디 떨어지면 청년들은 최광호들과 합세를 해서 옹진리 장동으로 내달아갈판이였다.

박철민은 이마전에 굵은 피줄이 일어서서 큰숨을 씩 내쉬였다.

《어쨌든 놈들을 꺾어놓자면 피를 흘려야 하오.》

《피가 필요하다면 피를 흘리잔말이요. 피를 흘릴걸 맹세하고 혁명에 나선 우리가 피를 두려워하겠소?》

《옳소. 난 저따위것들을 없애는건 테로라고 보지 않소. 아까 저 동무는 그 무슨 테로라는 규정을 내렸지만…》

청년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코수염의 최광호가 구석쪽에 앉아있는 청년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테로가 무슨 테로요? 혁명의 운명을 놓고 우리가 피를 흘릴 각오를 하고 나서는데 그게 테로란말이요. 엄격히 말하면 그 테로라고 하는 립장이 바로 하나의 기회주의적립장이라고 보오. 안그렇소? 우리는 혁명의 운명을 건져야 하오. 나는 동무들이 조선공산주의의 새로운 세력이란것을 믿기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것이요. 김성주동무의 지도밑에 있다는것을 알기때문에 조선혁명의 운명문제를 호소한단말이요.》

최광호는 구들바닥을 두드렸다. 청년들은 최광호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웅성거렸다. 고수머리도 뿌등뿌등 올방자를 괴여올리며 저놈들한테 무기가 몇자루 있긴 하지만 감쪽같이 쓸어엎을수 있다고 장담을 했다. 코마루가 둥실한 한 청년은 불룩한 자기 가슴팍속에서 모젤권총을 뽑아들며 이것 하나면 다라고 뽐냈다. 그러자 박철민이 그것을 어서 집어넣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경주는 얼굴이 점점 더 뜨끈뜨끈해졌다. 김성주동지가 이런 사태를 보신다면 얼마나 나무라실가? 이건 뭐 들고일어나 전쟁이라도 벌리려고 하는것 같지 않은가! 글쎄 테로는 아니란다 치고 이렇게 숱한 사람이 흉기를 들고 밀려가 떼싸움이라도 벌린다면 조직이 로출될건 말할것 없고 사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저 코대바우는 무엇때문에 권총을 품에 찔러가지고 다니며 저 야단인가. 독립군을 하던 제 아버지의 권총이 있었으면 있었지 탄알을 재워가지고 다니며 자랑을 해야 한단말인가.

《한명진동무, 그 권총 좀 이리 주세요.》

경주는 차거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모두들 경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명진은 두눈이 덩둘해서 쳐다보기만 했다.

《어서 권총을 좀 주세요. 제가 보구 드릴게…》

《봐야 권총이지 다른것이겠소?》

《글쎄 좀 보자는데두요.》

청년은 정 보자고 다그치니까 할수없이 흘끔흘끔 경주의 눈치를 살펴보며 권총을 내밀어주었다. 그도 벌써 이 똑똑한 녀성동무한테 잘못 걸려든것 같은 예감이 드는것이였다. 언제인가 돈화시내의 녀성들을 모아앉히고 녀성해방문제를 력설하는 연설을 듣고 놀래기도 했고 이번 무슨 중요한 임무를 띠고 길림으로 올라갔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런 녀자가 공연히 권총을 보자고하랴 싶었다.

권총을 받아쥔 경주는 얼른 그것을 자기의 눕혀놓은 무르팍밑에 꾹 찔러넣었다.

《이것이 동무의 아버지가 동무에게 물려준 권총이긴 하지만 동무는 조직원인만큼 이 권총은 조직에 맡겼다가 조직이 동무에게 권총을 내맡길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 내주게 하겠으니 그때 받으세요.》

《아니…》

《이니구뭐구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그리구 동무들한테 이야길 좀 해야 되겠어요.》

경주는 얼른 눈을 들며 장내를 돌아보았다. 두눈에서 사람을 위압하는것 같은 빛이 펄펄 끓었다. 아니 눈망울이 불을 황황 내뿜는것 같기도 했다. 모두들 신중해졌다. 최광호와 고수머리청년도 쥐죽은듯 입을 다물고 앉아 쳐다보았다.

《전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도 아연해서 가슴이 떨려요. 무엇때문에 모여앉아서 이런 소동이예요. 여기 처음 뵙는분들도 더러 있지만 제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시면 량해해주세요. 오늘밤 여기 모여와서 누굴 구슬리는거예요? 몸이 불편한 박동무를 자리에서 들어일궈놓고 앉아서 무슨 전쟁준비를 력설하는거예요?》

경주가 어마어마하게 들이갈기는바람에 모두들 어리둥절해졌다. 박철민은 얼굴빛이 시뻘겋게 되였다. 경주가 말을 발가놓진 않으나 벌써 길림에서 받아가지고 온 지시가 어떤것이라는것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우리 조직에선 혁명을 이런 식으로 하라는 지시가 없어요. 총과 흉기를 들고 떼를 지어가 종파를 때려엎으라는 지시가 없어요. 어째서 그러겠어요? 그것이 우리 혁명에 더 불리하기때문에, 시대와 정황을 가려보고있기때문에 그런 폭행은 말라는거예요. 떼싸움이 가져올 피해를 동무들은 생각해보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가 무엇때문에 미친 사람들과 칼부림이나 총부림을 하겠어요? 그리고 또 리론싸움을 하겠어요? 미친 사람들은 저혼자 미친 소리를 하라고 내버려두세요. 우린 그게 미친 소리라는걸 알기만 하면 되구 또 대중이 그 미친 소리에 속지 않도록 점잖은 방법으로 교양만 하면 돼요. 그게 바로 우리의 방법이예요. 그것을 치노라고 같이 섭쓸려 뛰다가 우리자신이 큰 피해를 입을 땐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 혁명은 지금 일제와 이곳 반동군벌의 감시속에서 전진해가고있어요. 첫째두 이걸 경계하고 둘째두 이걸 경계해야 하지 않아요. 지금 길림감옥에 누가 갇혀있어요. 반년이 넘도록 누가 갇혀서 고생을 하구계셔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감옥에 갇혀서 고통받고있어요? 이 숱한 우리의 혁명동지들을 놈들이 얼마나 더 오래 고생시킬지 누가 알아요?》

그의 불타는 눈굽에 이슬이 번쩍거렸다. 오빠를 태우고 광야의 한끝으로 사라져가는 렬차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오순희의 마음을 다잡으라! 더 높이 솟아오르라! 하고 부르짖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게 모두 마구잡이로 혁명을 밀고나가라는 신호일가? 경주는 얼른 손수건으로 눈앞을 닦았다.

청년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도 인젠 길림의 지시가 무어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최광호와 고수머리청년도 어쩐지 속이 뜨끔한 소리를 듣는것 같아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말하는 경주의 태도도 그렇고 말의 의미도 그렇고, 죄다 어른들의 엄한 질책같기도 하고 무언지 들볶지 않는 무게있는 줄기찬 전술 그대로 밀고나가야 한다는 소리같기도 했다.

《우리는 저런 사람들에게 절대로 인민들이 기만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경주는 물기가 스민 눈을 들며 다시 말을 꺼냈다.

《대중을 진리로 각성시켜야 해요. 대중이 각성되여 미친 사람들 소리에 한사람도 넘어가지 않게 한다면 저들이 무엇을 발판으로 하고 즉시 사회주의를 하느니 어찌느니 하겠어요? 그러기때문에 우린 저들이 무슨 야체이카를 박는다 어쩐다 하며 돌아다니는 일에 대해서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우리 사업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의 발이 못미친곳이니까 야체이카가 나왔다지 않아요. 결국 진리로 눈뜨지 못한곳이면 미친 소리에 들뜰수 있다는것이 이번 증명되지 않았어요? 그러기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밀고나아갈 전략전술이 아주 명백해졌어요. 아까두 말했지만 첫째두 둘째두 일제와 반동군벌을 경계해야 하는것처럼 첫째두 군중교양 둘째두 셋째두 군중교양이예요. 이런 권총을 가지고 종파를 쏘아넘기는건 우리의 방법이 아니예요. 박동무, 이걸 알을 뽑구 지하실에든 어데든 감추어두는게 좋겠어요.》

경주는 무르팍밑으로 권총을 꺼내서 박철민에게 주었다. 박철민은 권총을 받아서 앞에 놓았다. 그는 얼굴이 무섭게 검붉어졌다. 자기자신이 칼을 맞은것때문에 개인복수감정으로 천방지축 뛰다가 핀잔을 받는것 같았다. 사실 또 종파들을 총으로 갈겨치우고싶은건 한명진이나 다른 동무들에게만 있지 않고 박철민이 자신에게 더 산같이 부풀어있었던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저와는 초면인 두 동지가 앉아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저 종파집단과 결별하려고만 달려온것 같지 않아요. 종파집단과 깨끗이 결별하고 진정으로 새로운 운동선을 찾아서 달려왔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니 그럼 우리가 어째서 왔단말이요?》

최광호는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제가 잘못 보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힘을 끌어당겨가지고 무슨 세력을 하나 꾸리자고 하는것 같아요.》

최광호는 껄껄 웃었다. 허나 정통을 찔리우는 말인지 낯은 붉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힘을 자파세력속에 끌어당겨넣으려고 부리나케 달려와서 떠드는것 같애요. 칼에 찔리웠으니 복수감정이 있을것 안야요? 이걸 부추겨세우면 내세력을 만들수 있을것 안야요.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이건 파쟁을 타매하면서 더 무서운 파쟁을 획책하는거예요. 난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기분을 여실히 느끼고있어요.》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볼수도 있겠지만 그런 피상적관찰로 우리의 진정을 헐뜯지 마오. 우린 우리대로 조선혁명을 위한 진정을 가지고 동무네들한테로 달려왔소.》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그렇게 열이 올라서 우리들을 복수감정으로 부추기세요? 우리는 파쟁이 아닌 순결한 길로 나가자고 해요. 두분이 말하는것이 얼핏 듣기에는 파쟁을 반대하는것 같지만 더 무서운 파쟁을 선동하고있어요. 우리 동무들은 무슨 갈구리에 걸려들고있는지 그것도 모르고 권총에 장탄을 해가지고 다닌다 어쩐다 하며 흥분하고있으니 한심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런 일에서만은 계선을 날카롭게 세우고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사태를 들여다보아야 해요. 어서 돌아가주세요. 우린 당신네들 파세속에 들어 힘이 되여줄수 없어요.》

《허허허…》

최광호는 또 웃었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낯이 더 시뻘겋게 되였다.

《어서 돌아가세요. 그리고 당신들도, 당신들 반대파들에게도 무모한 불장난을 당장 중지하는게 좋겠다고 타이르세요. 우린 당신들과 이것밖에는 더할 이야기가 없어요. 우린 우리대로 다른 문제를 토의해야겠어요.》

경주는 최광호가 무슨 말을 꺼내자고 하는걸 이렇게 막아쳤다. 그 다음엔 최광호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직원들이 더욱 심각해지고 박철민은 낯빛이 아주 시꺼멓게 되였다. 그것도 가려보지 못한 자기가 더 엄중한 과오를 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후에야 모두들 부실거리며 담배들을 피웠다. 최광호와 고수머리청년은 이마에 피줄이 서서 담을 돋구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들 있소.》

최광호의 소리를 누구도 들은척 안했다. 최광호들을 쫓아버리고나서야 경주는 정식으로 조직원들에게 김성주동지의 지시를 전달했다.

 

5

 

대기가 무겁게 짓눌렀다. 회색빛 구름이 감옥지붕우에까지 내려와앉았다. 감옥사무실뒤 연두색 버들도 가지가 무겁게 휘늘어져 드리웠다. 어두운 감옥지붕우를 휘휘 밤새가 날아넘어가고 날아넘어오고한다. 두마리 세마리 뭐라고 찍찍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칠듯 가로세로 날았다. 그 무슨 예고를 물고온 밤새들인가.

감방들은 조용했다. 간수들의 갈개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느때같으면 감방복도에서 빨리 자라는 욕지거리소리가 몇번 들려왔을터인데 오늘밤엔 기척이 없다.

휘유 밤바람이 불어왔다. 비를 머금은것 같은 음산한 바람이 감방지붕을 휩쓸고 추녀밑을 휩쓸었다. 스산한 바람소리는 계속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감방안을 급하게 걸으시였다.

(채경이 압송되여가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어디로 이끌어갔단 말인가? 일본령사관에서 다른곳으로 또 이끌어갔다면 틀림없이 서울이겠지, 서울.)

그이께서는 저녁때 받으신 급보로 하여 밤새 격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바야흐로 메데를 맞으며 파옥투쟁을 들어일구자고 하는데 이 무슨 불길한 소식인가. 파옥투쟁이란 이 감옥에 갇혀있는 청년들만 감방을 테고 나가게 만들자는게 아니고 일제의 령사관에도 압력이 가해져 지하실에 갇혀있는 채경이도 놓여나오게 만들자는 계획이였다. 그런데 채경이 더 무서운곳으로 이끌려가다니? 어디로 갔는가? 목숨을 잃을곳으로 안갔다고 어떻게 믿을수 있는가? 결정적인 최후투쟁을 들어일구자고 하는 날에 혁명의 한쪽 기둥이 부러지고있다는 말을 들으신것도 같아 터져오르는 분노를 참으실수가 없었다.

청년공산주의자들을 가둬놓고 긴긴날 고생시키며 마지막엔 한사람 두사람 일제의 손에 넘겨주고있는 독군, 전옥, 이것들을 한칼에 베눕히고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두주먹을 틀어쥐시였다. 이놈들의 따귀를 치고 숨주머니를 조이는것 같은 투쟁으로 벼락을 쳐야 한다. 벼락을 쳐야 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낮에 벌써 리간수를 통해서 9호감방에 있는 권태일이에게 감옥의 기둥뿌리를 들어넘기는 새로운 폭풍을 휘몰아와야 한다는 비상지시문을 써서 보내시였다. 그리고 아지트의 차광수에게도 메데투쟁과 함께 파옥투쟁을 조직하니 감옥밖에서도 이에 합세하여 투쟁을 밀고나갈데 대해 지시하시였다. 그래서 안팎이 호응하는 투쟁을 준비해나가시였다.

지금 권태일은 자기 감방에서 그이의 첫 신호를 통방하려고 연방 밖에 무슨 인기척이 있는가 해서 귀를 기울였다. 밖엔 아무 인기척도 없다. 권태일은 숨을 길게 내쉬며 벽에 붙어앉았다.

그는 벽에 똑똑 신호를 보냈다. 대답이 오지 않아 그는 계속 두드리였다.

 

일어나라 통방을 받으라.

일어나라 통방을 받으라.

 

얼마 아니하여 저쪽에서 벽이 울려온다. 곁방에서 제5중의 학생이 받는것 같다. 역시 자지 않았다. 권태일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벽을 두드리였다.

 

감옥투쟁을 벌려야겠다.

메데투쟁을 준비하라!

우리가 무엇때문에 미결수냐?

기소당할 근거가 있는가?

우리는 일제를 반대한다!

메데를 준비하라!

 

삽시에 온 감방안에 신호가 퍼져갔다.

밖에선 리간수가 큰 구두발로 뚜욱뚜욱 무거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도 이 어마어마한 침묵과 저기압의 밤이 그저 순탄하게 흘러가는 순간만 같지 않아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군했다. 통방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오고있다. 리간수는 어쩐지 가슴이 뻐근해지였다.

바로 다음다음날, 메데날 아침, 싸움의 서곡을 울리였다. 온 감방들에선 메데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들어라 만국의 로동자

천지를 진동하는 메데를

 

무엇을 딱딱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쾅쾅 감방문을 걷어차는것 같은 소리도 일어난다. 십자형으로 갈라놓은 특별감방들뿐만 아니였다. 어떻게 들어일궜는지 딴채의 감방들에서도 다 들고일어났다. 온 감옥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간수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리간수는 이미 다 내속을 알고있지만 안뛸수가 없어서 숨이 차게 뛰였다.

《닥쳐라 닥쳐라!》

《감방에서 노래가 무슨 노래냐?》

간수들은 고함을 지르며 뛰였다. 일이 너무도 어마어마하게 벌어지는통에 간수들은 어느 감방문도 열어제끼지 못했다.

 

기나긴 착취에 시달려오던

무산자대중아 궐기하여라

 

노래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감옥을 아예 떠넘길것 같았다.

《이거 정말 뭐야? 전쟁이 난것 안야?》

갈팡질팡 뛰던 간수 하나는 왕방울같이 커진 눈망울로 리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는 일본이 쳐들어온다 어쩐다 하는 흉흉한 소문으로 불안을 느끼고있던판이라 땅하면 천둥이라고 당장 가슴 뜨끔한 전쟁을 련상했다. 길림시주변으로 기마대가 달리고 땅크가 굴러들어오고 대포소리가 꽝꽝 울리는것 같았다.

《응? 이거 일본놈 쳐들어오는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것 안야?》

간수는 한마디 더 했다.

《빌어먹을자식, 일본놈은 무슨 일본놈이냐? 이따위 팔삭둥이가 다 간수를 하니까 감방이 이 꼴이 되지. 임마, 뛰여다니며 고함이라도 질러라.》

간수는 리간수의 욕설을 듣고 또 저편쪽 복도끝으로 뛰여가며 노래를 그치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리간수도 건성으로 고함을 지르며 이쪽 복도로 달렸다. 간수장이 호되게 욕설을 퍼부으며 공산당 잡아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느게 공산당인지 알아야 잡아냅죠. 도둑놈이고 살인미수고 죄다 들고일어나 노래를 부릅니다.》

《이놈아, 그래도 공산당이 있을것 안야? 오늘이 메데란말이다.》

리간수의 말에 난쟁이간수장은 화가 동했다. 리간수의 뺨으로 손이 날아갔다. 그러나 키큰 리간수가 고개를 제끼는바람에 간수장은 뺨도 못치고 하마트면 가죽장화다리를 비틀하며 넘어질번했다.

감방들에선 노래가 끝나고 구호가 함성으로 터져나왔다.

 

《독군의 정체를 말하라. 친일이냐 배일이냐!》

《일제를 업어들이는 더러운 군부야, 말해보라, 대답해보라!》

 

감방마다 기세가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간수장도 어쩌질 못했다. 그도 호통은 치지만 감방문을 열어제끼라는 명령은 내리지 못했다.

투쟁은 여러날동안 계속되였다. 날이 갈수록 메데의 노래소리와 구호소리는 더욱더 높아져갔다.

투쟁이 고조에 오르던 어느날아침 번대머리전옥이 큰 몸집을 뚱깃거리며 십자형 감방의 복도로 들어섰다. 뒤이어 헌병들이 한패거리 들어섰다.

감옥투쟁을 눌러내기 위해 전옥이 헌병들까지 끌어왔다.

그러나 헌병들의 칼빛이 감방복도에서 번쩍거리게 되자 투쟁의 불길은 더욱 충격적으로 높아졌다. 감방의 구호소리가 더욱 함성으로 터져나오고 노래소리, 벽을 두드리는 소리, 감시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감옥을 들부시였다. 헌병들이 달려들어 감방문들을 열어제꼈다. 란타가 벌어졌다. 그러나 감방안 청년들도 그저 맞지만 않았다. 주먹으로 헌병과 대항했다. 어떤 감방에선 헌병이 권총을 빼들고 휘두르다가 벌때처럼 달려드는 학생들속에 휘말려들어갔다.

권태일이 있는 감방에도 헌병이 한놈 들어가 갈개다가 학생들속에 말려들었다. 한 감방에선 간수가 칼을 빼들고 갈개다가 분노한 청년들의 눈이 둘러싸고 동가슴으로 주먹이 날아오는바람에 칼을 내던지며 쫓겨나왔다. 청년들은 칼을 집어서 감방복도에 내던지고 그담엔 노래를 불렀다. 더욱 힘이 솟구친 합창이였다.

헌병들까지 불러다 붙이며 불길을 눌러보려던 전옥은 청년들의 폭발적인 반격을 받아안게 되자 땀을 철철 흘리며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리간수가 뒤따라 들어오며 감방의 김성주청년이 면담을 요청해온다고 알렸다. 헌병들까지 밀어넣는것을 본 그이께서는 전옥과의 정면대결을 결심하시였다.

《뭐 뭐 면담? 죄수가 무슨 면담이야?》

《그래도 꼭 전옥님을 만나야겠다고 합니다.》

《그럼 데려와!》

전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관자노리가 댕댕하고 볼편살이 푸들푸들 떨었다.

리간수가 돌아와 알리는바람에 김성주동지께서는 감방문을 열어제끼고 복도로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소동이 벌어진 감방의 중간복도를 힘차게 걸어가시였다. 량옆 감방들에서 모두 눈이 커져서 내다보았다.

《어디로 가는거요?》

《전옥을 만나러 간다는것 같소.》

《그럼 아주 내놓고 담판을 하자는것 안야?》

모두 수군수군 끓었다. 그럼 완력으로 더욱 뒤받침을 해야 한다고 주먹을 들어 흔들며 함성을 터뜨렸다. 구호가 터져나오고 감시창을 들부시는것 같은 소리도 일어났다.

전옥의 방으로 들어서신 김성주동지께서는 흘겨보는 전옥의 앞에 마주서시였다. 눈에서 번개불이 내쏘는것 같았다.

《그래 어째서 만나자고 하는거야?》

전옥은 혀뻐드러진 소리를 했다.

《내가 어째서 만나자고 하는지 모르겠소? 우리를 무엇때문에 반년이 넘도록 이 감옥에 가두어두고있소?》

《공산당이니까 가둔거야.》

《공산당이란 증거가 어디 있소? 그걸 대오.》

《제5중에서 공청회의를 하다가 붙잡히지 않았는가? 그리고 메데날 메데가를 부르며 감옥을 골탕먹여?》

《제5중학교에서 드러난 사건은 공청회의가 아니라고 오늘까지 한결같이 부정해왔소. 그리고 메데날 메데가를 불러서 공산당이라고? 그런 무식한 소리로 우리를 굽혀낼수 있을것 같소? 메데날 메데가를 부를수 있는것은 공산당만이 아니고 전체 피압박대중이 다 부를수 있소. 우리들에게서 포박을 풀지 않으면 당신네들 귀창이 메게 이 노래를 자꾸 부르겠소. 자꾸…》

김성주동지께서는 전옥을 쏘아보며 준절히 말씀하시였다. 웅심깊은 힘을 누르시는 태도가 알렸다. 전옥은 당장 힘이 움츠러들고 말이 막혀 입술을 떨었다.

《그래 당장 우리를 석방할테요? 어쩔테요? 나는 그 대답을 듣자고 왔소.》

《뭐 석방? 그, 그건 내 맘대로 못해…》

전옥은 급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럼 누가 하오? 어떤자가 당신의 우에 앉아서 우리를 석방못하게 만드는지 대오?》

《당신들은 우리의 국법에 걸렸어.》

《뭐 국법? 그래 일제에게 죄다 빼앗기면서도 국법이란 문서장은 있다고 을러대는거요?》

《우리가 무얼 빼앗겨? 일본이 군력을 가지고 움찍움찍한다고 우리를 다 빼앗긴것 같이 봐? 우린 튼튼히 서있어. 어느 한귀퉁이도 찌르고들질 못해.》

전옥은 당황했던 자세를 고치고 눈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어느 한귀퉁이도 찌르고들지 못했다고? 장작림을 폭사시킨건 도대체 누구요?》

《그건 우리도 악심을 먹고있소…》

《그다음 지금 일본이 당신네 나라와 체결한 략탈조약 21개조에다 부대리권 14조를 더 설정하고 상조권의 연장, 철, 석탄의 채굴권, 철도부설권, 길장철도의 운영권, 특산물 전매권, 은행설립 합병권, 목축권, 경제명맥을 샅샅이 찌르고들어와 다 략탈해가다가 인젠 아주 벌거벗고 나서서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는데 뭐 일제가 한귀퉁이도 찌르고들질 못했단말이요?》

전옥은 얼굴이 시뻘개서 말을 못했다. 전옥을 해먹어도 이런것까지 속속들이 알수는 없는것이였다.

《그래 일제가 당신네 생존권을 지켜주고있는것 같애서 우리를 구속하는거요?》

《공산당이니까 걸렸다지 않어.》

《그건 일본놈 갈구리에 걸려서 일본놈 손발이 되여주는 소리요. 우리 조선청년들을 붙잡아 일본놈 고문대에 넘겨주는 소리란말요. 여기 있던 청년을 경무청으로 도로 넘겨주고 그 청년이 지금 어데로 끌려갔는가? 그걸 아는가?》

《뭐 뭐? 우리가 언제 일본에 넘겨준 청년이 있어?》

《없단말이요? 특별감방 9호실에 있던 채경이란 청년을 당신이 도로 경무청으로 넘기지 않았는가? 경무청이 그 청년을 일제의 령사관으로 넘기지 않았는가?》

전옥은 손수건을 꾸겨쥐고 땀이 난 번대이마를 넘겨쓸기만 한다.

《그 청년이 령사관 지하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다시 일본놈 감옥으로 끌려가게 만든것이 당신들이 아니란말인가? 우리들까지 그 청년처럼 일본놈한테 한사람 한사람 다 넘겨주려고 이렇게 죄없는 청년들을 가둬두고있는가?》

전옥은 말이 막혀 의자에 팔싹 주저앉았다. 량볼로 땀이 좔좔 흘러내린다.

《다시 묻소. 우리를 당장 석방하겠소 어쩌겠소?》

《이런 젠장, 난 그걸 결정 못한대두 그래…》

《그럼 누가 결정을 하오? 누가?…》

《아이구 혈압이 오른다. 썩 나가주지 못할가…》

전옥은 정말 혈압이라도 오르는지 목을 뒤로 젖히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였다.

《잘 판단하고 행동을 취하오. 그러지 않다간 감옥이 무너져나갈줄 아오.》

그이께서는 돌아서 나오시였다. 인젠 온 감옥을 한손아귀에 틀어쥐시였다. 감옥복도에 들어서시니 량옆 감방들에서 청년들이 내다보며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이께서는 그저 안색이 환해져서 활개를 치며 걸으시였다. 뒤따르는 리간수가 주먹으로 꾹 짓눌러뭉개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전옥을 그렇게 짓뭉개놓았다는 소리였다.

량쪽 감방들에선 환성이 터져나왔다.

《석방하라!》

《석방하라!》

함성과 함께 뭉그러쥔 주먹들이 감시창으로 뻗쳐나왔다. 또 구호소리, 노래소리가 일어났다. 이번엔 온 감방이 무엇을 딱딱 두드리며 메데가를 불렀다.

 

바로 감옥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졌을 때 거리에서도 소동이 났다. 삐라가 거리를 덮었다. 아지트의 차광수도 어마어마하게 투쟁을 밀고나갔다.

 

청년학생들을 석방하라!

죄없는 청년들을 무작정 억류하지 말라!

그것은 친일이다. 온 시민이 증오를 보낸다.

일제에게 조선청년을 넘겨주지 말라!

독군은 전국민의 보복의 홍수를 눈앞에 똑똑히 보고 친일을 말고 배일을 하라!

 

이런 내용의 삐라가 온 거리에 눈쏟아지듯했다. 삐라를 주어서 안읽는 사람이 없다. 애들, 어른들, 남자고 녀자고 죄다 들고가며 읽는다. 처처에 격문도 나붙었다. 헌병, 순경들이 눈을 붉히고 감시하는데 날아다니며 붙였는지 배일을 선동하는 격문이 높은 담벽, 널바자, 지어는 경무청 게시판같은데도 나붙었다. 격문을 보느라고 그앞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독군서가 바라보이는 북대가거리가 더욱 붐비였다.

삐라를 읽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독군서에 흘끔흘끔 도끼눈을 보내기도 했다. 뭐라고 음성을 높여 떠들기도 한다. 온 길림시내가 더운 물가마처럼 부글부글 끓는다.

방금 김성주동지한테 짓뭉개워진것 같이 된 전옥은 바깥정세까지 험악해지자 자리에서 일어섰다앉았다하며 안절부절 못하였다. 혁띠가 흘러내리고 불룩 나온 배가 풀무질하듯했다. 혈압이 올랐다고 하는것은 급한 고비를 모면하기 위해서 한 소리였다.

《빌어먹을것, 이걸 어떻게 눌러내?》

그는 숨이 차서 방안을 돌아쳤다. 정말 더운 물가마한복판에 빠진것 같이 땀이 철철 흐른다.

아니 김성주의 압력, 배일의 압력이 이 큰 몸뚱아리를 매돌밑에 처밀어넣고 부극부극 갈아대는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당장 제복을 벗어던지고 시원한 알몸뚱아리로 거리에 나앉아 살았으면 좋을것 같았다. 그는 비척비척하며 수화기가 달려있는 벽앞으로 걸어갔다.

호랑이같은 독군의 손아귀에 들어 숨주머니가 결단난대도 독군에게 할 소린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은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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