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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9 회 )
제 10 장
봄 이 온 다
1
봄이 돌아왔다. 거리의 가로수들에 새싹들이 해슥해슥 눈을 내밀었다. 해빛이 따뜻해지고 가냘픈 훈풍이 음침했던 골목골목으로 부드럽게 불어들었다. 골목의 땅들도 죽신죽신 녹고 풀엄이 머리를 들었다. 거리는 붐비여졌다. 추위를 벗어난 사람들이 봄의 해빛속으로 물결처럼 밀려나왔다. 그들의 생활엔 무슨 행복이 있는지 그리도 즐겁게 웃으며 거리를 활보한다. 차들도 붐비였다. 온통 인력거천지다. 비단에 싸인 비게덩어리들이 멋들어지게들 등받이에 제끼고 앉아 봄의 해빛속으로 뛰고있다. 감방안도 인젠 엄동설한같지 않았다. 벽에서 서리가 녹고 바닥도 아주 얼음판같지 않다. 이따금 감방문을 열어제낄 때마다 속일수 없는 봄바람이 후눅하게 안겨들어온다. 봄바람은 복도에도 차있는것 같다. 제일 어려운 요새인 감방안의 랭기를 아직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다. 《머지 않아 메데가 가까와온단말이지…》 김성주동지께서는 감방안을 거닐며 혼자 말씀하시였다. 무엇인가 봄과 함께 투쟁을 불러오는 흥분의 붉은 기발이 눈앞에서 펄럭이는것 같아 주먹을 쥐였다폈다하시며 거니시였다. 이 메데를 그저 넘긴단말인가. 이 감방에 갇혀앉아서 그저 보낸단말인가. 놈들이 구속해놓은대로 착취사회의 감방안에 앉아서 밖에서 메데가 지나가던 무엇이 지나가던 숨기가 없이 앉아있어야 한단말인가. 그런데 얼마전 차광수가 들여보낸 쪽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쪽지인가. 동만에서 로씨야혁명과 같은 대혁명의 준비가 시작되고있다고 먹골의 장윤삼이 길림을 거쳐 갔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소리인가. 틀림없이 종파들이 소동을 벌리기 시작한것 같은데 파쟁에서 발목을 뽑았노라고 하던 장윤삼은 왜 기운이 솟아 동만으로 달려갔을가. 그이께서는 답답하시였다. 바깥세상에 그 무슨 큰 변화가 있는것도 모르고 자신께서 이 감방에만 박혀앉아있는것 같은 일이 분하고 안타까우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흥분과 초조감으로 감방안을 바삐 걸으시였다. 그러는데 감시창에서 똑똑 손기척소리가 났다. 그이께서는 감시창으로 다가가시였다. 리간수가 와서 큰입에 웃음을 띠우며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저 오순희가 면회를 왔습니다.》 리간수도 인젠 경어를 썼다. 《아니 오순희동무가 면회를 오다니? 련락만 전하고 가면 될것 아닙니까?》 《중요한 일이 많이 제기되고 드릴 말씀도 있다기에 마침 오늘이 면회날이기에 면회를 하라고 불러들였습니다. 지금 나와서 만나보십시오. 내가 주위를 살피겠습니다.》 리간수는 사방을 두릿거리며 감방문열쇠를 열었다. 그이께서는 복도로 나서 간수실이 있는쪽 복도로 가시였다. 벌써 2중문의 창문 웃턱 사각형 창구가 열려져있었다. 《순희동무! 무슨 일이요?》 그이께서는 간수실 의자에 앉아있는 오순희를 사각형 창구로 내다보며 물으시였다. 오순희는 얼른 일어서며 고개를 소곳했다. 《통신을 가지고 왔어요. 어제밤 경주동무가 올라왔는데…》 《경주동무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놀라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네, 안도 어머님한테서 몸을 추세워가지고 돈화에 다시 나가 일하던 경주동무가 결론을 받을 일이 있다면서 올라왔어요. 돈화와 동만쪽에서 큰일이 벌어지고있는것 같아요. 차광수동무는 중요한 통신이라면서 저보고 직접 전하라고 했어요.》 오순희는 차광수가 쓴 보고문을 창구로 들여보내며 소근거렸다. 《경주동무는 몸이 여간 좋아지지 않았어요. 그전 모습이란 하나도 없고 낯이 둥실해졌어요.》 《그렇소? 참 반가운 일이요. 경주동무는 몸이 좋아졌다는데 동무는 왜 점점 더 그렇게 되여가오? 내가 수연동무 면회하러 왔을 때에도 동무가 쇠약해진걸 보았는데 그때보다 더 말이 아니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받아든 통신엔 눈길을 보내지 않으시고 오순희만 내다보시며 물으시였다. 정말 오순희는 얼굴에서 살이 쏙 빠지고 턱이 좁아들고 코마루가 솟았다. 눈엔 지친 빛이 있는가 하면 얼른 꼬리를 사리는것 같은 싸늘한 원심을 호소하는 빛도 비낀다. 리간수의 책상을 붙잡고선 손가락들도 수연이와 함께 왔을 때 손가락같지 않고 유난히 가늘고 손톱눈들만 해슥해슥 커보였다.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무어가 아무렇지도 않단말이요? 그런 몸으로 일을 해내겠소? 그래 신동호동무는 동무의 몸이 그렇게 돼가는걸 알고있소?》 《신동호동무가 저와 무슨 상관이겠어요? 저와 신동무는 아무 상관두…》 오순희는 입술을 사려물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꾸했다. 속눈섭밖으로 맑은 눈물방울이 두르르 굴러떨어졌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으시였다. 감옥으로 자주 드나드는 동무가 이렇게 되는걸 자신께서도 돌봐주지 못하고 또 밖에서 섭쓸려 공작하는 동무들도 누구 한사람 이런 일엔 관심이 없이 까막눈으로 있은것 같으니 이런 가슴아픈 일이 어데 있는가. 이게 혁명동지를 생각하는것인가. 그이께서는 자꾸 머리를 쓸어넘기시였다. 십자형 복도쪽에서 간수들의 욕지거리소리가 들린다. 《어서 나가보오. 내가 통신을 보고 회답을 쓰겠소.》 오순희는 서둘러 눈물을 닦으며 리간수가 지켜서있는쪽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감방으로 들어오신 그이께서는 한참 서계시였다. 얼마후에야 차광수가 써들여보낸 통신의 봉투를 뜯으시였다. 정말 돈화와 동만쪽엔 엄중한 사태가 벌어져있었다. 특히 동만쪽엔 온갖 파벌이 다 모여들어 즉시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며 이 지역 저 지역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폭동준비를 서둘렀다. 결국 이런 일이 벌어져 장윤삼이까지도 그리로 갔다는것이였다. 온갖 파벌, 파벌에서 이미 발목을 뽑았던자들까지도 다시 모여들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자들은 저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각박한 시대적압력을 리용하고있다. 《일제가 이 땅에 창끝을 박기 시작하는 때 우리는 뒤흔들리는 이 땅의 모든 지반을 장악해쥐여야 한다》, 《공농쏘베트정권을 세워야 한다》, 《백의동포는 무기를 들고 나서라》, 《도시를 포위하라》, 《지주를 타도하고 놈들의 소유농지를 수탈하라!》 온갖 가슴 들썩거리는 구호가 가는곳마다에서 사람들을 들끓게 했다. 벌써 《폭동지휘부》를 만들고 여기저기에 행동위원회도 내오기 시작했다는것이다. 그런데 이자들의 속깊이 감춘 진짜 야욕이란 어떤것인가. 사실 이 파벌들은 이미 공산당재건을 위한 그 무슨 《만주총국》이니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니 하는것을 쥐여버린지도 오래다. 그리고 인제 와선 국제당이 내세운 1국 1당원칙을 지지하고 나서서 딴 나라 당에 제먼저 들어가겠다고 자기의 《혁명성》을 시위하기 위하여 좌경모험주의적극좌구호를 내걸고 군중을 폭동에로 내모는것이였다. 놈들의 야욕인즉 우리 파가 딴 나라 당에 더 많이 들어가야 하고 더 빨리 들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파의 혁명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파의 고함소리가 딴 파벌의 고함소리보다 더 높아야 하고 우리 파를 따라 일어서는 군중의 수효가 딴 파벌보다 더 많아야 한다, 그리고 지주 토호도 더 많이 습격해야 한다, 그래야 딴 나라 당에 더 많이, 더 빨리 들어간다, 바로 이런 야욕이란것이였다. 이런 정황속에서 돈화의 박철민이 하평 대북 지역의 조직들을 지도하러 내려갔다가 종파들의 칼에 맞고 부상당하여 올라왔다는것이였다. 그바람에 돈화조직은 복수대를 무어가지고 동만쪽 하평 대북 접경에 있는 놈들의 야체이카를 치러 내려가자고 일어났는데 경주가 지금 그에 대한 조직의 지시를 받으러 올라왔다는것이였다. 사태는 엄중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보고를 다 읽고나서 한참 앉아계시였다. 이 일도 저 일도 다 큰 충격을 가해준다. 동만사태란 동만을 쑥밭으로 만들 조짐이 보이는 사태이다. 동만, 동만이란 자신께서 미래의 꿈을 펼쳐놓고있는 지대이다. 그 꿈의 지대가 상사말 뛰듯하는 미친자들의 발굽밑에 들었다. 이것이 엄중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돈화사태, 이건 또 무슨 엄중한 일을 저지를 사태인가. 복수대를 무어가지고 종파를 치러 가다니? 조직들을 백일하에 로출시킬 위험이 여기 있지 않는가. 방금 보신 오순희의 얼굴도 그렇고 동만사태, 돈화사태가 다 가슴에 큰짐을 실어다 안기는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감방안을 거니시였다. 그이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걸으시였다. 얼굴에 심각한 빛이 비끼고 량주먹을 틀어쥐신다. 아니다. 인젠 이 감방에 갇혀서 보고나 듣고 지시나 써내보내고 할 때가 아니다. 감옥을 테고 나가야 한다. 감옥밖의 일, 더우기 동만사태, 돈화사태가 엄중해지고있는데 내가 감옥안에 앉아서 세월을 보낼수야 없지 않는가. 고통속에서 탐색해들어가던 사색도 결실을 걷어쥐였다. 인젠 빨리 감옥밖으로 나가 혼돈을 밀어제끼며 사람들의 머리우에 기발을 나붓겨주어야 한다. 그렇다, 명확한 기발을 나붓겨주어야 한다. 마침 메데도 가까와온다. 메데투쟁을 파옥투쟁으로 이끌어올려야 한다. 메데와 파옥! 그이께서는 두눈에 큰 불빛이 일어나며 통기창문턱을 치시였다. 그러다가 그이께서는 서둘러 또 자리에 앉으시였다. 오순희의 수심어린 얼굴은 언제 파옥때까지 기다릴수도 없는것이였다. 시급히 저 얼굴에 꽃이 피여나도록, 함박꽃이 피여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저 혁명의 새매, 혁명의 참제비가 량날개를 힘있게 퍼덕이며 혁명의 대공을 날으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이께서는 회오의 눈물을 머금은 카륜의 신동호를 눈앞에 그려보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종이장을 책에 받쳐 무릎우에 펴놓으시고 차광수에게 내보내는 지시문부터 쓰시였다. 그러시고는 련이어 카륜에 가있는 신동호에게 보낼 편지도 쓰시였다.
2
요새 아지트엔 고유수에 가있던 김혁이 새 공작지 할빈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올라와있었다. 약왕묘지하실에서 밖으로 나온 차광수와 김혁은 북산공원의 오솔길로 내려오다가 다급히 다가오는 오순희와 만났다. 《통신이 나왔어요.》 오순희는 김성주동지께서 내보내신 통신을 전할 때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며 차광수에게 봉투를 넘겨주었다. (벌써?) 차광수는 다급히 봉투를 뜯었다. 뜻밖에도 봉투안에는 밀봉해넣은 한통의 봉투가 들어있고 자기에게 쓴 편지가 따로 있었다. 차광수는 김성주동지의 무슨 의도가 있다고 짐작되여 작은 봉투는 안주머니에 따로 넣고 자기에게 보낸 지시문만 읽었다.
차동무. 보고를 받았소. 경주동무를 지체없이 돈화로 돌려내려보내주기 바라오. 절대로 종파들과 맞서서 들고일어나지 말아야 하오. 그것은 분쟁일뿐 혁명에 아무런 도움도 없으며 조직을 로출시키는 결과밖에 가져올것이 없소. 첫째도 둘째도 일제와 반동군벌을 경계하고 경각성을 높이면서 군중교양에 매진함으로써 조직을 철통같이 꾸려나가는것이요. 그리고 폭동바람도 막아야 하오. 우리의 조직이 아직 미치지 못한 동만땅에서는 파벌들이 판을 치며 벌써 어쩔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놓은것 같으니 폭동바람을 막아내기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의 조직이 뿌리내리고 경주동무가 사업해온 돈화땅에서는 폭동바람이 일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하오. 한시가 급하오. 경주동무에게 이 지시를 그대로 주어 시급히 내려보내주오.
단락이 지어진 여기까지 읽고난 차광수는 다음 문장을 읽기전에 오순희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순희동무, 지금 경주동무가 어디 있소?》 《어제까진 우리 집에 있었댔는데 어제밤 김성주동지가 하숙하던 집 어머니가 와서 끌고갔어요.》 《순희동무, 빨리 가서 경주동무를 데리고 이리로 와주오. 김성주동무의 지시가 나왔소.》 《알았어요.》 오순희는 급히 돌아서 내려갔다. 차광수는 북산공원기슭의 통나무걸상에 돌아와 앉으며 다시 김성주동지의 글발을 읽어내려갔다. 여기에 별도로 넣어보내는 편지봉투를 오순희에게 주어서 카륜의 신동호에게 보내라는 내용과 함께 조직에서도 신동호를 동지적으로 도와주라는 내용이 절절하게 씌여져있었다. 무엇때문에 모닥불같은 사랑이라고 소문이 난 그 사랑에 금이 가고 금이 간 그것때문에 귀중한 혁명동지 오순희의 얼굴이 쳐다볼수 없게 되였는가? 소문을 들으면 혁명가는 오직 혁명이여야지 사랑이란 없다, 사랑이란 소부르죠아속물들이나 할 장난이다, 신동무는 이런 주장을 세우며 오순희와의 사이를 금을 긋고 물러선다고 하는데 이건 어데서 누가 가르쳐준 말인가? 아니면 신동호동무의 욱하고 내밀다가 나약해져 주저앉는 그 가늠할수 없는 성격적약점, 어찌보면 혁명을 남보다 몇배 더 열렬히 해나가는것 같은 그 부조화를 이룬 성격이 빚어내는 사랑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아닌가? 혁명가들의 사랑은 절대로 소부르죠아지의 장난질이 아니다. 혁명가이기때문에 사랑도 더 열렬히 해야 하고 그 열렬한 사랑이 더욱 혁명에 힘으로 되고 랑만과 리상으로, 힘의 원천으로 된다. 그렇기때문에 혁명가는 사랑을 해도 뜨겁게 해야 한다. 열렬하게 해야 한다. 사랑을 왜 그렇게 루추하게 보는가? 만약 국내공작원 오학천동무가 자기의 누이동생이 받아안은 이런 설음을 안다면 가슴을 두드리며 울지 않겠는가? 걸음걸음 죽음을 각오하고 뛰는 국내공작! 신동무가 자기 모습을 량심의 거울에 비쳐볼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제 얼굴에 낡은 때가 붙어있는걸 볼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볼뿐만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그 때를 벗길줄도 알아야 할것 같다. 확실히 그건 혁명가답지 않은 낡은 때, 낡은 관점이다. 결코 우리 새로운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지각이 있는 관점, 낡은 때가 벗겨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깊이 생각하고 그 모닥불같던 사랑에 다시 불을 지피고 혁명을 힘있게 내디뎌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과 혁명, 혁명과 사랑, 그것이 하나로 결합되여야 사랑도 참사랑이고 혁명도 참된 혁명이 아니겠는가. 우리 혁명, 우리의 신념, 우리의 의지가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모든것이 동지와 인간에 대한 사랑속에서 전진해야 한다. 그 사랑이 불이 되고 총검이 되여 원쑤를 쓸어눕혀야 한다. 나는 이것을 신동호동무에게도, 차동무에게도 그리고 모든 동무들에게 다 말하고싶다. 동지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동지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길줄 알 때에만 참된 혁명가가 될수 있는것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다 읽고난 차광수는 신동호에게 따로 쓴 편지내용도 다 짐작이 되여 당장 가슴이 쭝해왔다. 정말 자기자신이 감옥밖에서 함께 뛰면서 누구에게 무슨 아픔이 있는지를 알자고나 했는가. 그저 꿋꿋하게 혁명이나 내밀자고 했지 그밖에 어떤 개인의 일신상의 문제도 그건 혁명이 아닌것으로 알았다. 오순희의 상해가는 모습을 보고는 있었지만 혁명과는 관계가 없는 문제로 강건너 불보듯했다. 차광수는 또한번 그 후더운 하늘의 끝모를 높이를 고쳐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가 언제 가야 김성주동무가 바라는 높이에 서서 혁명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고 동지를 생각하며 일을 조직해나갈수 있겠는가고 안타까운 생각을 했다. 김혁이는 김혁이대로 입을 다물고 앉아 심각한 생각을 했다. 그도 차광수같이 김성주동무의 높은 인간애, 동지애의 정신에 머리가 수그러졌다. 그는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동호에 대한 분격이 가슴속에서 울뚝울뚝 치밀었다. 같은 시를 쓰는 자식이, 시인이노라고 하는 자식이 이렇게 너절하게 산단말인가. 사랑을 이렇게 하고… 이게 시인의 정신인가. 이런 정신으로 시를 쓰고 혁명을 하겠다는건가. 김혁은 귀밑으로 피줄이 일어섰다. 약왕묘지하실로 도로 들어온 차광수와 김혁은 진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후 더욱 편지의 높은 뜻을 눈앞에 펼쳐보이는것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약왕묘지하실로 오순희와 경주가 들어왔다. 둘을 보니 정말 심각한 대조였다. 이때까지는 둘이 함께 다녀도 그런걸 못느꼈는데 편지를 읽고나서 쳐다보니 대조가 너무도 심각했다. 하나는 얼굴이 보름달같이 둥그렇고 다른 하나는 얼굴이 뱁조개잎같이 되였다. 가슴이 아파서 쳐다볼수도 없다. 감옥에 갇힌 몸으로 신음하는 경주를 어떻게 할수 없었을 때는 그 경주를 자신의 집에까지 보내여 저렇게 달같이 만들어놓았다. 아, 김성주동무! 저렇게 튼튼한 혁명동지를 보는게 기쁨이 되고 마음에 크나큰 안정을 얻는것 같은데 곁에서 뛰는 오순희의 파리한 모습에 눈이 갔으니 그처럼 절절한 편지를 쓰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 큰 사랑의 바다에 너무도 아픈 정상이 비쳐지질 않았는가. 《경주동무, 김성주동무의 지시가 나왔소.》 차광수는 오순희의 얼굴에서 눈길을 피하며 경주에게 김성주동지의 지시문내용을 전달했다. 《빨리 내려가 지시대로 일을 조직해야겠소. 김성주동무는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있소.》 《알겠어요!》 경주는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순희동무, 동무도 무슨 보약을 좀 써야 하지 않겠소?》 차광수는 인제야 송구해진 제가슴을 달래며 오순희에게 한마디 물었다. 《네? 제가 보약은 무슨 보약을 쓰겠어요?》 《경주동무를 곁에 앉혀놓고 보니 동무의 건강이 말이 아닌것 같애서 그러우.》 《밤엔 장 앓음소리를 해요.》 경주가 한마디 보태며 오순희의 살핏한 얼굴우에 어지럽게 내려덮인 머리칼을 쓸어넘겨주었다. 오순희는 경주가 그런다고 팔굽질을 했다. 그는 그 누가 보든지 자기의 건강을 념려해주면 역증을 내였다. 심지어 어머니까지도 네 모습이 왜 그렇게 돼가느냐고 물으면 《내 모습이 어쨌다고 그래요.》하고 쏘아붙였다. 《허허, 그렇다면 카륜에랑 갔다올수 있겠소?》 《네? 카륜엔 어째서요?》 차광수의 소리에 오순희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이 통신을 신동호동무한테 가져다 전하고 와야겠소.》 《제가요?》 《동무가 갔다와야겠소. 몸이 아프더라도 좀 다녀오우.》 차광수는 밀봉한 편지를 내밀어주었다. 《신동무의 사업이 좀 잘못되고있소.》 차광수는 오순희가 다르게 의심을 가질것 같아서 한마디 더 보탰다. 《저, 무슨 일이?…》 오순희는 걱정스럽게 되물었다. 《아주 잘못되고있소. 동무가 이 지시를 가져다 전해야 수습될수 있소.》 이번엔 김혁이가 소리쳤다. 밸이 불끈해졌다. 《카륜사업이 잘못돼서 김성주동무도 아주 분개하고있소.》 《김성주동무만 분개하는것이 아니라 우리도 다 분개하고있소. 나도 차동무도 다…》 차광수의 말끝에 김혁이 또한번 구들을 두드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성이 났는지 볼이 푸들푸들 경련했다. (괘씸한것, 그따위 자식이게 《고적》과 같은 인생의 비애를 읊조리고 다니지…) 김혁은 신동호가 고유수에 들고왔던, 훌 밀어던진 시편까지 생각나서 밸이 산같이 동해올랐다.
별도 없는 캄캄한 밤 내 외로운 그림자야 울지 말아다오 한없이 가야 할 인생 그 사람도 그림자 하나 나도 그림자 하나
이 시고가 눈앞에 부나비처럼 덮어치고 바로 네가 소부르죠아 감상주의를 가지고 시를 쓰는, 우리 혁명과는 무연한자식이라고 신동호를 두드려패고싶었다. 그는 밸이 동해서 주먹을 뭉그려 쥐였다폈다 했다. 《품에 간수해넣으려무나!》 경주가 오순희에게 타일렀다. 오순희는 그제야 방바닥에 놓여있는 편지를 들어다가 스카트주머니에 찔렀다. 둘이는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오순희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얘 경주야, 내가 꼭 이 련락을 가야 하니?》 《무슨 소리냐? 가지 않구… 일체 아무 말 말고 어서 갔다와. 혁명과 개인감정을 뒤섞지 말어.》 경주가 엄하게 타일렀다. 그도 벌써 오순희와의 관계를 가지고 신동호에게 무슨 타격이 가해진다는걸 알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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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희는 카륜행 밤차를 타려고 길림역으로 나왔다. 역은 밤에도 붐비였다. 밤늦게 떠나는 차인데 무슨 승객이 그리도 많은지 알수 없었다. 정거장뜰에서는 인력거군, 마차군들이 소리를 지르며 끓었다. 콩국장사, 담배장사, 팥죽장사 사태다. 보짐을 인 아낙네들이 어데로 떠나는지 무리를 지어 대합실로 들어선다. 헌 포대기로 애들을 둘러싸업기도 했다. 오순희는 그들과 함께 밀려들어가 겨우 대합실 장의자에 앉았다. 《아주머니, 편히 앉으세요.》 그는 공연히 자기자리를 좁히며 곁에 앉은 녀인더러 편히 앉으라고 했다. 어떻게 누구와 섭쓸려서든지 자기 생각을 안하고싶었다. 랭담하자, 랭담한 태도로 갔다오자 하는 결심을 하고 떠났는데 정작 떠나고보니 그렇지 못했다. 자기가 신동호한테로 간다는 생각이 불시에 커지며 어쩌자고 그러는지 맘이 울렁거리며 뛰기도 했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있을가, 농촌에 가서 고생하고있진 않을가, 무슨 일을 잘못했기에 카륜일이 망쳐진다는 소리를 들을가, 근심을 안고 얼굴이 컴컴해있진 않을가, 필시 그럴것만 같았다. 생소한고장에 가서 어떻게 해낼가. 나더러 지시문 심부름을 시키지 말고 아예 그의 곁에 가서 가로막힌 어려운 일을 함께 밀고나가라면 얼마나 좋을가. 오순희는 이런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그러다간 설레는 생각을 문득 멈추며 내가 왜 이럴가고 놀라군하였다. 랭담해지자고 하면서 왜 이럴가, 이러다간 정작 신동호앞에 가서 그 무슨 눈물이라도 보이지 않을가. 그의 가슴속에선 이런저런 생각들이 몸부림치며 싸웠다. 그는 상념에서 벗어나보려고 곁에 있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걸었다. 《어데 사세요? 길림시내에 사세요?》 《그럼요. 저 서문밖에 살지 않아요.》 《애긴 몇살인가요?》 《지금 두살이야요.》 《어쩜 이렇게 이쁠가? 저 좀 안아보겠어요.》 그는 얼른 녀인의 품에서 젖을 빨다가 해죽해죽 웃는 애기를 닁큼 들어다가 품에 안았다. 전등불빛에 애기의 눈은 정말 구슬알같이 이뻤다. 얼마나 아름다운 눈인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 천진한 눈, 험난한 세상도 인간의 비애도 모르는 눈, 나도 이런 눈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던가. 오순희는 애기를 다가끼며 그의 볼에 자기의 볼을 비볐다. 결국은 또다시 그 생각에 빠져들어간다. 애기의 눈에서 자기의 비애를 읽을줄이야. 오순희는 얼른 애기를 애어머니에게 도로 넘겨주었다. 바로 이런 순간이였다. 일본령사관 경찰놈들이 웬 용수를 씌운 사람을 손목에 쇠고랑까지 채워가지고 대합실로 들어섰다. 놈들은 아낙네들이 앉아있는 장의자로 오더니 칼을 뽑아 휘둘러대며 빨리 일어서라고 고함을 질렀다. 모두들 질겁해서 애들을 업으며 보퉁이들을 이며 야단을 했다. 《육실할놈들, 벼락을 손에 들고 다녔으면 좋겠다.》 《벼락은 모르겠어도 소리 안나는 총이라도 들고다녔으면 좋겠수.》 아낙네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오순희도 새침한 눈으로 놈들을 쏘아보며 장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오순희는 흠칠 놀라며 멈춰서버렸다. 용수란 《죄인》의 머리에 씌우는 삐죽한것인데 앞을 보게 구멍 둘을 빠끔히 뚫어놓았다. 지금 그 구멍들로 검은 눈동자 둘이 오순희를 뚫어지게 지켜본다. 오순희도 무언지 모르게 알 사람인듯싶어 마주 쳐다보았다. 가슴이 쿵덩쿵덩 뛴다. 용수속의 눈동자는 움직이지를 않는다. 캄캄한 이 세상을 두눈동자로 불태울듯이… 이 순간 오순희는 또 한번 기절초풍을 하게 놀래였다. 죄수가 입은 옷은 분명 자기가 감옥으로 차입한, 안도에서 올라온 김성주동지의 양복이다. 그 양복이 리간수를 통해서 경무청으로 넘어가 채경이의 몸에 입혀졌다는 말을 듣고는 아지트동무들이 모두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었다. 분명 그 양복을 입었다. 솜을 두텁게 둔 어깨팍, 바지무릎, 저고리앞자락 다 표가 난다. 아 이게 채경오빠가 아닌가? 채경오빠! 오순희의 눈엔 이슬이 돌았다. 용수속 눈동자에도 물기가 번쩍거렸다. 너무도 많은, 너무도 쓰라린 아픔이 둘을 다 화석으로 만든것 같다. 《앉어.》 경찰 한놈이 채경에게 턱질을 하며 웨쳤다. 장의자에 앉으라는것이다. 채경은 오순희의 얼굴에서 천천히 시선을 떼며 얼굴을 돌리였다. 그러더니 수갑 채운 손목을 돌리며 의자에 가서 들어앉았다. 《뭐야, 저리 가.》 한놈이 오순희를 보며 소리쳤다. 채경은 못본척하며 기침을 했다. 오순희는 다리가 떨리여 아무데고 마구 넘어질것 같았다. 그는 간신히 자신을 다잡으며 돌아섰다. 그도 자기가 여기서 채경을 아는것 같은 눈치를 채게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오순희는 얼른 사람들 붐비는 속으로 꿰지르고 들어갔다. 벌써 매표구에서 차표를 사느라고 사람들이 늘어서서 법석을 했다. 《아니, 저게 조선사람이 아님메?》 아까 장의자에 앉았던 아낙네들이 보짐들을 이고 서서 웅성대며 오순희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저놈들이 저 사람 손목에 자물쇠를 잠가가지고 어디로 간담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오순희는 여전히 경황없이 대꾸했다. 그는 어쩐지 차표를 사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모든것이 뒤죽박죽 되여버린것 같았다. 그는 아낙네들속에 서서 또한번 채경이쪽을 쳐다보았다. 경찰놈들이 독을 써서 채경이가 앉아있는쪽은 휑뎅그레 비였다. 대합실사람들이 흘끔흘끔 채경을 쳐다보며 지나다녔다. 그 무슨 세상에서 몹쓸짓을 하다가 붙잡혀간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대합실로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또 그 장의자쪽에 와서 용수를 숙이고 앉아있는 채경을 바라보았다. 경찰놈들이 물러들가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오순희는 한사코 채경을 쳐다보았다. 《차표를 안사겠어요?》 오순희는 괜히 아낙네들에게 물었다. 《차표를 사야 합지비. 어쩐지 조선사람인것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슴매.》 얼마후에야 오순희는 아낙네들과 함께 매표구로 갔다. 그는 허둥거리는 심정으로 손을 떨며 차표를 샀다. 차표를 사고났는데도 아직 개찰을 시작하지 않았다. 오순희는 대합실구석 사람들속에 숨어섰다. 저놈들이 채경이를 끌고 어디로 가는가. 령사관지하실에서 고문을 들이대다간 도리여 제놈들이 걸상에 후려갈기우군했다더니 인젠 비밀을 뽑아낼수 없으니까 서울로라도 끌고가는것인가? 그런데 이 경무청 순경들이란 무엇하는놈들인가. 인젠 일본경찰이 마음대로 사람을 동여가지고나와 기차를 타도 그냥 내버려둔단말인가. 벌써 이 땅은 그만큼 일본놈들이 막 내놓고 활개치는 땅으로 되였단말인가. 오순희는 이를 악물고 서서 속으로 울었다. 개찰이 시작되여 승객이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했는지 경찰놈들이 먼제 채경을 앞세우고 나갔다. 개찰구앞에 지켜서있던 순경들은 일본경찰들을 도끼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오순희는 잽싸게 사람들속을 빠져 경찰놈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그놈들 가까이로는 접근할수가 없었다. 만약 가까이 다가만 간다면 아까 대합실에서 유표스럽게 본것 같은데 무슨 봉변을 당할는지 모른다. 어느 차칸에 타는가라도 보아두자. 오순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차츰 걸음을 늦추었다. 그는 사람들속으로 밀려나가며 앞을 살펴보았다. 홈에 나서니 송화강 밤바람이 힝하니 안겨들었다. 역시 밤바람은 아직도 차거웠다. 얼굴에 눈보라를 휘감는것 같기도 했다. 역부들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뛰여다녔다. 경찰놈들은 채경을 앞세우고 맨 가운데칸인듯한 차칸으로 올라갔다. 채경은 발을 비척이며 승강대를 올려디디지 못한다. 그러자 경찰 두놈이 좌우에서 부축을 하며 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다른 한놈은 주먹으로 채경의 잔등을 내지르며 두덜거렸다. 채경의 발은 힘겨웁게 승강대를 텅 또한번 텅 내짚으며 올라갔다. 승객들도 차를 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앞에 몰켜서서 채경이 떠밀려 올라가는것만 지켜보았다. 두손목이 묶였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리도 몹시 상한것 같았다. 얼마후에야 오순희는 채경이 탄 다음 차칸에 올랐다. 곧장 채경이의 차칸으로 오를가 하다가 자기의 몸에 카륜으로 가는 통신이 있다는걸 생각하고는 다음 차칸으로 올랐다. 하긴 그 차칸에 올라도 무슨 방법이 있을건 없지만 그래도 어떤 방법으로든 채경이 어데로 간다는것이나 알아두었으면 싶었다. 십상 서울로 넘기는것이 틀림없는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놈들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차는 이어 떠났다. 송화강다리를 쿵덩거리며 건늬였다. 차창밖은 그저 시꺼멓다. 오순희는 창문에 어린 자기의 새파란 얼굴그림자를 지켜보며 가쁜 숨을 쉬였다. 도대체 어데로 가는것이냐. 이 비극을 싣고… 무중 이런 생각도 든다. 그는 기차가 한정거장을 지나서 달리기 사작했을 때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견딜수 없었다. 그는 채경이 탄 차칸에 가려고 그쪽으로 쏜살같이 걸어갔다. 차문을 열고 나가니 씽 찬바람이 후려갈긴다. 좌우로 컴컴한 광야가 무시무시하게 지나간다. 오순희는 다음 차칸 문으로 가서 손잡이를 틀며 밀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보통 승객들도 탄 차칸인데 놈들이 어떻게 했는지 그 문을 잠가놓게 한것 같다. 오순희는 문을 몇번 밀어보다가 주먹으로 두드려댔다. 그러나 안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개놈들이, 이 개놈들이…》 오순희는 이를 악물며 부르짖었다. 그는 또한번 주먹이 터지도록 두드렸다. 그러나 역시 안에선 아무 기척이 없었다. 그는 힘이 빠져 돌아서며 얼른 덜컹거리는 승강대의 차벽을 붙잡았다. 무시무시한 동음과 어둠과 세찬 바람이 한데 합쳐서 그냥 짓조겨댔다. 오순희는 비척비척하며 자기 차칸으로 돌아왔다. 그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또 창문에 새파랗게 어린 자기의 얼굴을 마주보며 자리에 앉았다. 이게 지옥의 꿈은 아닌가. 어떤 시인은 그 무슨 천국이 있고 속죄하는곳이 있고 지옥이 있다고 했지. 바로 그런 지옥이 이 밤중 여기 펼쳐져있지 않는가. 오순희는 자기자신도 어디 부딪치고 짓조겨 얻어맞은것 같았다. 온통 더운물에 데쳐낸것 같이 온몸이 쓰리고 아픈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는 방금 차문을 두드리던 량손바닥을 펴보았다. 피가 터졌다.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차칸안이 신음소리로 끓는것 같았다. 그는 곁에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두손바닥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껴울었다. 《왜 그러우. 어데가 불편해서 그러우?》 곁에 앉은 한 중년사나이가 물었다. 《아니예요. 아무것두 안야요.》 오순희는 얼른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는 새파란 얼굴로 흐르는 눈물을 서둘러 닦았다. 어데든 다시금 훌 일어서 나가고싶었다. 글쎄 채경오빠가 저렇게 되여 인제 어데로 간단말인가, 저놈들한테 끌려 어느 죽을곳으로 간단말인가, 채경오빠를 놓고는 잊혀지지 않는 생각이 너무도 많다. 내가 경주를 찾아가면 그 오빠는 허리가 부러지게 웃을 롱담을 했지. 한번은 녀자사범에 다니는 눈이 오목한 순옥이가 우유배달을 하는 채경오빠와 학교에 다니는 채경오빠를 쌍둥이인가고 물었는데 채경오빠는 우유배달하는 청년은 자기 계모의 몸에서 난 동생이라고 해서 포복절도를 하게 한 일도 있지. 그래서 별명이 놀부가 아니였던가. 고생속을 살아오면서도 랑만이 많았지. 손이 트고 뼈가 부러지도록 일을 해서 공부하면서도 언제한번 흐린 낯색이 있었던가. 혁명의 길로 들어선것도 경주가 매일 싸전에 가서 닭의 염통만큼씩한 량식을 사들고 돌아서며 눈물짓는 그 꼴을 보기 딱해서였노라고 했지. 그러면서 껄껄 큰소리로 웃었지. 그런데 그 웃음을 다 내버리고 저 오빠가 지금 어데로 가는가. 몸이 저지경 되여 어데로 가는가. 오순희는 또 불쑥 일어섰다. 그는 재빨리 걸어나가 차문을 열고 바람이 휘갈기는곳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번엔 달려가 저쪽 차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승강대차벽에 몸을 쓰러뜨렸다. 《경주오빠! 경주를 두고 어데로 가요? 혁명을 떠나서 어데로 가요? 왜 이런 때 손에 채운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이 승강대로 달려나오지 못해요?》 오순희는 덜컹거리는 차벽을 치며 부르짖었다. 그는 흐느끼며 저쪽편 차문의 뿌연 유리를 바라보았다. 채경이가 정말 차문을 차던지며 뛰여나올것만 같아 가슴이 들먹거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마후에야 그는 자기가 당치도 않는 기대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동음과 바람소리 속에서 목놓아 울며 차벽을 어루쓸었다. 여전히 무시무시한 어둠만이 휙휙 지나갔다. 동음속에선 무언가가 챙강챙강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왈가닥 하고 부서지는것 같은 소리도 난다. 이튿날 동이 터오는 새벽 기차는 카륜역에 당도했다. 오순희는 허전거리는 걸음으로 기차를 내렸다. 카륜역엔 내리는 승객도 별로 없었다. 기차는 쓸쓸한 홈에 몇사람 밀어내던지고는 이어 푸파푸파 연기를 뿜어올리며 떠나갔다. 오순희는 홈에 그린듯이 서서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았다. 번들번들한 차지붕들이 그 무슨 긴 뱀의 몸피같이 구불구불 움직이면서 연기를 둘러쓰고 달아났다. 오순희는 기차가 광야의 한끝으로 작아질 때까지 오래 서있었다. 인젠 슬픈 생각도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너무도 큰것을 체감하고난듯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기만 했다. 혁명이란 바로 이렇게 준엄한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자기는 언제나 일본놈을 쳐부시겠다는 맹세도 해왔고 혁명을 위해선 피와 생명을 바치겠다는 불붙는것 같은 생각도 해왔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싸움에선 어느것이나 다 이렇게 심각하진 못했다. 피를 뿌리는 투쟁의 비극을 이렇게까지는 깊이 모르고 살아왔다.
오순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으며 걸었다. 홈으로는 쌀랑한 새벽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스카트자락을 날리며 빨리 정거장대합실로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이어 돈화로 내려갈 경주에게 채경오빠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 한장을 썼다. 그는 놀라지 말고 준엄한 심정으로 슬픔을 이겨달라는 부탁도 힘주어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