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7 회 )

 

제  9  장

 

후 더 운   하 늘

 

1

 

리갑무로인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적인 타격에 로환이 겹쳐서 벌써 여러달 되는데도 노방 자리에 누워서 앓았다. 앓으면서도 내내 감옥에 있는 회장생각을 했다. 이 추운 겨울을 감방에서 어떻게 보내고있는가? 사식이 들어간단들 저놈들이 그 사식을 그대로 감방에다 들여보내줄가.

로인은 별생각이 다 났다. 그저 감옥에 있는 회장이 큰 변을 당하고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모양이 되였단말인고? 어떻게 해야 저 회장을 감방안에서 안아내올수 있을고? 최익현은 필사할줄 알면 필생할 도가 있다고 했는데 이 일이 내 죽음을 던져서 해낼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고…

오늘도 박승훈이 와서 주사 몇대를 놓고 갔다. 무슨 주사를 놓는지 주사를 놓고 가면 숨결이 한결 편안해진다. 로인은 눈을 좀 붙이려고 했다. 그러는데 누가 문밖에서 주인을 찾았다. 정지방에 있던 마누라가 올라와 문을 열어주었다. 괴높은 중절모를 쓴 웬 사람이 계집애까지 데리고와서 선생님을 찾는다. 녀인은 어서 들어오라고 했다. 장정은 계집애를 데리고 들어섰다.

깃을 세운 허름한 외투자락밑으로 누런 각반을 친 다리가 로인의 눈길에 띄였다. 잠을 청하려던 그는 흐려지는 눈에 총기를 모아 장정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니 자네가 누군가? 장윤삼이 아닌가?》

이윽고 그를 알아본 리갑무로인은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며 물었다.

장윤삼은 로인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 뼈가 앙상한 그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선생님, 오래간만에 찾아와 뵙습니다. 계속 이렇게 병석에 누워계십니까?》

《음, 난 좀 누워있네. 편안히 앉게.》

장윤삼은 들고 온 보짐과 모서리 해진 들가방을 방구석으로 밀어놓으며 고쳐앉았다. 딸 인순이도 아버지앞에 살며시 다가앉았다.

《딸앤가?》

《네.》

《그래 그동안 어데 가있었는고?》

《네, 뭐 그저 여기저기… 지나가다가 몸이나 건강하신가 해서 들렸습니다.》

《고마우이…》

고유수의 먹골에 살던 장윤삼은 지금 어린 딸을 데리고 간도로 가는길이였다. 간도에 있는 석진이란 사람이 먹골의 진수렁땅에서 고목등걸같이 썩고있는 장윤삼을 들쑤셔 일궜다. 그는 간도, 동만 일대에서 새 불길이 준비되고있는데 이 폭동준비는 네파 내파가 없는 일치단결된 힘이 해내고있으니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달려와달라고 두세번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그는 이 준비는 로씨야혁명과 같은 대혁명의 준비라고 보아도 무방할것이라고 했다.

장윤삼은 지난날 파쟁에 피눈이 되여 날치던 석진이가 이런 편지를 보낼 때엔 무슨 딴 의도가 있을것이라고 처음엔 의심도 했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미친 바람에 휘말려들지 않는다고 침을 뱉기도 했다. 그런데 딴 풍편으로 고유수에까지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게 결코 자기를 꾀여가기 위한 유혹의 낚시질만은 아닌것 같이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의 가슴속에 잠자고있던 불찌가 또다시 타번지기 시작했다.

폭동! 오직 그것이여야 한다고 서울, 만주로 발바닥에 불이나게 돌아쳤는데 그 폭동의 불길이 진짜 혁명의 승리를 향해 타번지는것이라면 이 먹골 진수렁땅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은채 있을수는 없었다. 그는 또 네파, 내파 세력다툼이 없고 일치단결된 힘이 하나의 상상봉, 폭동에로 치달아가고있다는데 들썽거리는 흥분을 누를수 없었다. 그는 마음이 둥둥 떠서 당장 어린 딸을 학교에서 잡아떼여 손목을 이끌고 먹골 오두막을 떠났다. 인젠 석진이의 편지가 고마와 감동의 눈물이 글썽거려지기도 했다.

그는 고유수를 떠나 사흘이나 걸어서 길림에 왔다. 인제 여기서 기차를 타고 갈 료량을 했다. 지금 리갑무로인네 집에 들린것도 그저 문안이나 하고 가자고 들린것이 아니였다. 자기의 꿈이 부풀어오른 동만행각도 이야기하고 수십성상 독립운동의 와중을 헤쳐온 로장한테서 장도에 올랐다는 가슴 시원해지는 찬사라도 듣고싶어 들리였다. 길림청년운동을 그토록 지지해온 로장이 지금 그 청년들이 다 잡혀들어가고 온 시내가 홍수뒤끝의 들판과 같이 되였으니 얼마나 가슴을 두드릴것인가. 바로 이런 로인에게 산너머 다른 불길을 쳐다보라고 알려주고싶었다.

《그래도 자네가 들려주니 고마우이. 그전엔 자주 뵈던게 왜 안뵈는가 했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풀썩 늙었는고?》

《나일 먹어가는데 그대로 있겠습니까?》

《휘이ㅡ 자네를 보니 자네 엄친생각이 나네그려. 의병시절이 생각나. <보호조약>이후 단양 산중에서 리강년이 의검을 들고일어나 각지에서 의병을 모을 때 자네 엄친은 괴나리보짐에 동의보감과 온갖 약재, 침통을 싸가지고 진중에 들어섰지. 왜놈과 싸움이 벌어지면 부상자를 치료하겠다구… 그때 리강년이 좋아하던 생각을 하면…》

《허허, 다 일장춘몽같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리강년이만 좋아했나? 그뒤 원주 배양산진중으로 리강년을 만나러 왔던 심판서도 자네 엄친을 띄여보고 과시 보국충정을 할줄 아는 사람이라고 잔등을 두드려주었으니…》

장윤삼의 눈앞에는 아버지가 보여 주글주글 확이 깊은 눈구석에 눈물이 핑그르르해지였다.

이런 이야기가 벌어진 사이 인순이는 살짝 일어서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어린게 먼길을 걸어오느라고 어떻게 욕을 보았는지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추위에 입을것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왔다. 홑적삼우에 후렁후렁한 아버지의 낡은 양복을 껴입고 깡똥한 치마밑에는 뒤꿈치가 꿰진 아버지의 양말을 당겨신고 흘러내리지 않게 고무줄로 잡아매였다. 하지만 시뻘건 무릎만은 어쩔수 없이 그대로 내놓였다.

《할머니, 여기 학교가 많아요?》

인순이는 정지방바닥에 살며시 무릎을 세우고 들어앉으며 리갑무로인의 마누라에게 물었다.

《많지 않구…》

할머니는 망에 두부 앗을 콩을 갈다가 대꾸했다. 웃방도 그렇지만 정지방도 강직한 로인 두분이 사는 집이 돼서 그런지 정갈했다. 찬장, 부뚜막, 솥들도 기름대우를 낸것 같았다.

《할머니, 여기 학교에 별선생님이 있나요?》

《별선생님이 누구냐?》

《딴이름은 몰라요.》

인순이는 자기 집에 와서 부엌매질해주던 선생님이라고 해서는 모를것 같아 그 말은 안했다.

《별선생이라고 해서야 어떻게 찾겠니?》

《그래도 별이라고 했어요.》

인순이는 고유수에서 들은 《한별》이라는 소리가 있어서 내내 별선생님이라고 생각해온다. 그는 호 한숨을 지었다. 지금 그의 가슴속엔 부엌을 매질해주던 선생님이 하늘의 해처럼 둥그렇게 들어앉아있다. 그 선생님한테서 허구많은 사랑을 받은것 같았다. 더구나 그 선생님이 고유수의 학교에 들여주어서 먹골집에서 학교로 오르내리며 공부도 하다가 온다. 운동회가 있은 이후 별선생님은 자기를 학교에 들여주고 이어 어디로 떠나셨는데 학교에 다니면서도 그 선생님이 돌아오시기만을 고대했다. 딴 선생들과 물어보면 별선생님은 인제 오래 있다가 돌아오신다고 하기에 호 한숨을 짓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 아버지한테 이끌려 학교고 뭐고 다 그만두고 간도로 가느라고 여기까지 윽박질리우며 왔다. 학교에 다닐 때엔 아침이면 책보도 싸주고 학교시간 늦는다고 빨리 가라 뒤잔등도 밀어주던 아버지가 이번엔 인정사정없이 학교가 무슨 학교냐고 소리치면서 간도로 가야 한다고 들몰아세웠다.

인순이는 별선생님의 생각으로 울면서 아버지의 쇠판대기같은 손에 손목이 잡혀 이끌려왔다. 그런데 그는 오다가 대암촌에서 별선생님이 길림에 계신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일가? 아, 별선생님! 별선생님!

인순이는 달음박질을 했다. 그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나를 또 안아주지 않을가. 길림이 얼마나 먼가. 길림아, 길림아, 내앞으로 화닥닥 날아오려마! 이렇게 꿈이 부풀어 달려온 인순이였다.

이럴즈음에 웃방에는 차광수가 들어섰다. 그도 리갑무로인의 병환때문에 자주 다녔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장윤삼선생 아닙니까?》

차광수는 들어서자바람으로 장윤삼을 알아보고 반가와 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퍼그나 초췌해보였다. 차광수는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거지꼴이 될수 있을가고 동정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있는데 장윤삼이 도리여 헌헌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들 지내오? 회장과 숱한 청년들이 다 감옥에 들어가있다니 고생이 막심하겠소.》

장윤삼은 차광수를 곁에 앉히고 팔을 꾹 쥐며 물었다. 느긋한 승리의 쾌감같은 빛이 얼굴에 비끼는것도 같다. 회장이 먹골에 찾아와 교단에 서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교육을 가지고 혁명을 하겠느냐고 했는데 이 순간에도 바로 그런 운동방법으로 무슨 혁명을 해낼테냐고 저쯤 아래로 내려다보는 도고한 자세가 낯빛에 드러나있다.

《시련을 겪고있습니다.》

차광수는 장윤삼이같은 사람한테서 동정을 받는것이 불쾌하여 시들하니 대답했다.

《물론 그럴테지, 하지만 시련이 없는 혁명이 어데 있겠소? 내가 서울에서 1, 2차 검거를 당해봤으니말이지만 결국 시련의 중첩이 슬픈 력사를 가져오고말았소.》

차광수는 어이없어 껄껄 웃었다. 1, 2차 검거란 화요파가 헤게모니를 쥐였을 때의 소위 조선공산당이 겪은 시련을 말하는것이다. 차광수는 음해책동으로 일관된 추악한 파쟁의 력사를 그 무슨 혁명을 위한 시련처럼 지금 청년공산주의자들이 겪는 시련에 비유하는것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는 인차 화제를 돌렸다.

《그래, 어데로 가시는길입니까?》

《난 동만쪽으로 가오. 인제 선생님께도 말씀을 올렸지만 지금 동만쪽에선 큰일이 준비되고있소. 내가 제일 질시해온 파쟁도 다 없어지고 로씨야혁명과 같은 대혁명의 준비가 무르익어가고있소. 인제 거기서 총성 일발이 울리면 새 력사의 페지가 열려질것 같소. 나도 그래서 고유수의 먹골을 박차버리고 떠났소.》

《허허.》

차광수는 고유수에 있을 때 먹골에 갔다온 김성주동무가 먹골에서 굵은 나무뿌리 하나가 썩고있는걸 보고온것 같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 장윤삼이 무슨 대혁명이 무르녹는데로 간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떻소? 차동무도 여기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새로 타번지기 시작한 운동무대로라도 가야 하지 않겠소? 젊은 꼼니스트들이 무슨 시련을 극복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서 곁을 돌아보지 않는다는것은 좋은 일이 못될줄 아오.》

《가만 가만!》

흥분해서 떠드는 장윤삼의 말을 듣고있던 리갑무로인이 누운채 넓은 손바닥으로 구들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내가 인제 동서분별이 없이 동만에서 일이 터진다는 이야기를 한참 들었는데 그 그래 그건 회장의 운동선이 들어일구는 쌈이 아닌고?》

장윤삼은 대꾸를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소린고? 이야길 들어보니 회장의 운동은 다 바닥이 났으니 인젠 길림을 버리고 딴 운동선으로 달아나자고? 에끼, 이 이놈!》

리갑무로인은 일어나려고 몸을 들썩하다가 만다.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병환이신데 그렇게 흥분해선 안됩니다.》

차광수는 로인을 만류했다. 만류하면서도 로인이 자기들을 리해하고 옹호해주는것이 더없이 감사했다. 장윤삼은 뜻밖에 호된 벼락을 맞고 얼굴이 시꺼멓게 되였다. 장한 일이라고 치하해줄줄 알았던 로인이 이렇게 돌변할줄은 몰랐다.

《이 이놈, 회장의 지도밑에서 뛰는 청년들을 어데로 꾀여가? 회장이 지금 감옥에 들어가앉아있는데 그 회장을 버리고 달아나라고 추동질해? 이놈, 그 회장은 조선의 영걸이다. 새 조선을 일으켜세울 창업주란말이야.》

《허허허, 로망을 하시는군, 중학생을 놓고 앉아서…》

《이놈 뭐야? 중학생? 겉은 중학생이지만 속엔 령수가 들어앉아있어.》

차광수는 둘이 싸우는 곁에 앉아있기가 거북하기도 하고 또 장윤삼의 낯짝으로 주먹이 날아갈것 같기도 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리갑무로인이 잘 두드려팬다고 가슴이 들먹거렸다.

《선생님!》

차광수가 마당으로 바삐 걸어나오는데 부엌문으로 인순이가 내달아오며 소리쳤다. 정지방에 앉아서 지켜보고있다가 급하게 달려나오는것 같았다.

《응, 너두 왔냐?》

《선생님, 별선생님이 어디 있어요?》

《뭐, 별선생님?》

《우리 집에 와서 부엌깨 매질해준 선생님 몰라요? 운동회날 나를 안아들고 돌아가기도 하고…》

인순이는 차광수의 손목을 쥐고 깡충깡충 뛰였다.

《별선생님은 지금 여기에 안계신다. 치운데 어서 들어가라.》

《아니, 여기 왜 없겠어요. 오다가 들었는데 길림에 있다고 해요.》

《너 그 선생님 만나면 어찔려고 그러니?》

《나 길림학교에 들여달라고 할테야요.》

《허허, 별선생님은 지금 딴곳에 가계신다. 어서 들어가라.》

차광수는 아이의 뒤통수를 쓸어주었다. 그 애비는 미우나 불쌍한 인순이의 소리엔 가슴이 아팠다.

차광수가 돌아서 걷자 아이는 엉엉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별선생님 있는데만 대달라는데 그것두 못대줘요? 그것두 못대줘요?》

인순이는 퍼더버리고 앉아 꿰진 양말 신은 발로 얼음을 내차며 목놓아 하소연했다. 방안에선 아직도 리갑무로인의 격노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2

 

이날밤 차광수는 약왕묘지하실에서 분기를 누르지 못해서 서성거렸다. 함께 혁명을 하자고 찾아온 왕청문의 한윤이조차 사라지라고 고함쳐 내쫓았는데 이건 종파들 세계로 꾀여가자고 온놈을 혼찌검을 내주진 못하고 쫓겨나오듯하고말았다.

지금 그 일을 되생각해보면 분하기도 하고 한편 심상치 않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장윤삼이 동만에서 로씨야혁명같은 대혁명의 준비가 시작되고있다는건 무슨 말인가? 간도쪽에 무슨 일이 있는것 같다. 틀림없이 종파들의 큰 움직임이 시작된것 같은데 그것이 보통 심상치 않은 일같았다.

차광수는 머리가 복잡해서 견딜수 없었다. 그런데 이때 지하실의 계단 밟는 소리가 나더니 오순희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방금 리간수가 자기네 집에 나와서 감방에 계시는 김성주동지께서 내보내시는 지시문을 전하고 갔다고 했다.

《뭐 리간수가 지시문을 가지고 나왔댔단말이요?》

《리간수는 인제부터 자기가 급한 지시를 가지고 나와서 전하겠다고 했어요.》

차광수는 새롭게 감동되여 쪽지를 받았다.

(어쨌든 놀랍군. 간수를 바로잡아세워가지고 우리 일을 돕게 만드는군. 흙을 빚어가지고 숨을 쉬게 만들진 않겠어…)

오순희는 지시문을 전하고는 급히 갈곳이 있다고 계단을 올라갔다. 차광수는 부랴부랴 지시문을 펼치였다. 깨알같이 여러장 쓰신 지시문을 접어 종이로 싸고 풀로 붙이기까지 하였다. 긴 지시문이였다.

 

차동무가 들여보낸 통보는 다 받았소. 그러나 정세가 바뀐것 같다고 무슨 군중강연회를 조직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하오. 독군이 한발작 드틴다고 보는것은 잘못이요. 그들의 봉천정권이 일제와 항거하기 위해 장개석국민정부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 국민정부라는것이 손문의 국공제휴를 집어던진 극우익반동집단이라는것을 알아야 하오. 바로 우리의 립장이 그런 립장과 저촉되는것이요. 그러기때문에 길림독군이 세찬 배일기세의 압력을 받아안으면서도 우리들에 대한 포박을 풀지 않으려 하고있는것이요. 그는 서뿔리 완전한 양보를 안할것이요. 그러기때문에 우리도 각성을 늦추지 말아야 하오. 무슨 강연회를 열고 군중교양을 시작하겠다는것은 그만두시오. 그것은 위험한 일이요. 절대로 들떠서 뛰지 마오.

 

지시문을 읽는 차광수는 충격을 받았다. 확실히 자기들은 깊은 통찰력이 없이 가벼운 흥분에 들떠있었다는것이 알려졌다.

 

차동무!

나는 또 차동무에 대해서 충고할것이 있소. 준엄한 시련속에서 차동무는 점차 폭이 좁아지고 유연성이 없는 사람으로 되는것 같소. 왕청문의 한윤이 립장을 똑똑히 가지지 못하고 동요하여 우리의 증오의 대상으로 되였던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현묵관이들을 배척하고 진리의 운동선을 찾아올라왔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를 우리의 품에 받아안아야 할것이요. 그런데 그런 동무를 앞에 앉혀놓고 왕청문의 밸풀이를 하며 당장 사라지라고 했다니 일이 잘되지 않았소. 그래서 결국 한윤동무는 방황하다가 순경들한테 잡혀서 바로 이 감옥으로 넘어왔소. 이 일은 아주 잘못되였소. 나는 이 사실을 요즈음에 와서야 구체적으로 알았소. 이것을 보고 나는 감옥밖의 일이 걱정되는 점이 많소.

 

차광수는 쪽지를 쥐고 앉아 잠간 굳어졌다. 한윤이 자기한테서 쫓겨나가 방황하다가 없어졌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지만 그가 감옥으로 잡혀들어가고 감옥에서 이런 책망이 적혀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광수는 별안간 이때까지 눈뜨지 못했던 자기 과오가 눈앞에 두드러져뵈여 몸을 떨었다.

 

차동무, 한촌에서 올라온 수연동무를 잘 이끌어줘야겠소.

수연동무가 길림에 올라와서 차동무도 만나고 오순희동무와 함께 나에게 면회를 왔던 날 나는 수연동무를 앞에 세워놓고 목이 메여 울었소. 검은 토목치마저고리, 버선발에 짚신, 그 조선녀성을 앞에 세워놓고 울지 않을수 없었소. 그런데 그것보다 내 가슴을 더욱 울린것은 수연동무가 가지고온 최봉동무의 유물이였소. 그 유물이란것이 바로 지금 이 감방에서 내가 그렇게도 필요로 하고있는 자료철들이였소. 물론 내가 이미 알고있는 자료들이 많지만 처음보는 새 자료들도 많았소. 이건 나의 탐구세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수 있소. 그 넓은 지역에 조직을 확대해나가면서도 혁명의 전도를 생각하며 차곡차곡 자료를 모아서 나의 힘을 안받침하고있는 최봉동무! 그 묵중하고 말이 적은 최봉동무가 지금 내곁에 살아있는것 같소. 나는 이런 동지를 나의 분신, 나의 한쪽몸으로 생각하고있소.

나는 혁명동지가 귀중하다는것을 더욱 새롭게 느끼고있소.

(혁명동지! 나에게 이런 혁명동지들이 많기때문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천둥이 갈겨도 꺼꾸러지지 않을것이다.)

이것을 나의 금언으로 만들고싶소. 차동무, 조직이 사람들의 집단이라면 그 조직의 강화는 개개의 사람들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달려있소. 그래서 나는 혁명운동에서 중요한것은 첫째도 둘째도 혁명동지를 많이 가지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소.

 

차광수는 정력을 다해서 자기를 가르치기 위해 박아쓰신것 같은 지시문을 놓고 공연히 불쑥 일어섰다. 무엇인가 지도를 받아 일하면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다는 생각과 자기의 어리석은 몰골이 눈앞에 떠올라 견딜수 없었다. 그는 겨우 자신을 진정하며 도로 앉아서 쪽지를 읽었다.

 

차동무, 그런 의미에서 다시 말하지만 수연동무를 잘 이끌어줍시다. 면회를 왔을 때만 해도 한촌으로 인차 내려갈것으로 이야기하댔는데 요즈음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그도 최봉동무의 뒤를 따라 혁명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졌다 하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또 감격했소.

수연동무에겐 우리의 혁명동지 최봉의 몫이 붙어있소. 그가 자기의 몫에다 최봉동무의 몫을 합쳐서 싸울수 있도록 잘 교양해서 키워야 하오. 그는 반드시 그런 혁명가로 자랄것이요. 내 생각엔 길림에 두는것보다 고유수로 보내는것이 좋을줄 아오. 우선 학교에 들어가 배워야 할테니까…

차동무, 그리고 소식을 듣자니 의지가지없는 최창걸동무의 누이가 오빠를 찾아왔다가 만나보지도 못하고 다시 어디론가 떠날 차비라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되겠소. 최창걸동무에게 자기의 누이를 누이라고만 생각지 말고 불쌍한 조선의 녀성이란 생각을 가지고 혁명가로 키워야 한다고 타일러주시오. 불쌍한 조선녀성들을 눈물을 가지고 생각해야 하오.

차동무도 이 일에 대해서는 옳게 처신하지 못했소. 우리가 혁명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혁명에서 바라는것이 무엇이요. 인민에게 들씌워지는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생각지 않는 사람은 혁명을 못하오.…

 

차광수는 더욱 가슴이 뜨끔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라는 인간이 지금 무슨 몰골을 하고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등줄기를 두드렸다. 최창걸의 누이는 지금 신안툰에 나가있다. 저번날 최창걸이가 누이를 만나보라고 하니 혁명하는 오빠를 찾아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금 누이의 신상이나 돌보면서 집안일에 머리를 쓸 형편이 되느냐고, 준엄한 우리 혁명이 그걸 용허하지 않는다고 불같은 말을 쏟고 돌아갈 때 자기는 고작 최창걸의 누이를 당분간 신안툰에 나가있게 하는 조치만을 취해주었을뿐이다. 그다음 그 녀인의 앞일에 대해서는 자기도 역시 똑똑한 견해가 없었고 혁명하는 사람들이 기수없이 겪군하는 괴로운 고통의 하나로 눈물을 머금고 생각했을뿐이다.

김성주동무의 지시문을 읽으며 지나온 일을 더듬어보는 차광수의 마음은 단순히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픈 뉘우침과 뜨거운 격정으로 차있었다.

김성주동무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그 사랑을 원동력으로 하고 펼쳐진 혁명의 광활한 세계가 푸른 하늘처럼 높이높이 올려다보인다. 정말 자기의 머리우엔 후더운 하늘이 끝간데 모르게 펼쳐져있는것만 같다.

차광수는 방안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와 약왕묘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 세상 그 누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이토록 혁명의 높이우에 올려세우고 눈물로 혁명을 채찍질해준 일이 있는가. 차광수는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느끼고 얼른 고개를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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