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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5 회 )
3
바람이 우우 불었다. 눈보라가 지동치듯 갈긴다. 뒤통기창에선 좌르륵좌르륵 소리가 울린다. 감방안이 오늘밤엔 더욱 고드름집같이 되였다. 2중감방이란 북향으로 앉은 집인데 제일 바람받이쪽에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날 밤에는 추위를 이겨내기가 더욱 힘들다. 그러나 김성주동지께서는 아지트에서 비밀리에 들여보낸 자료며 최봉이 생전에 애쓰며 수집한 자료를 열심히 들여다보시였다. 추운 감방안에서 연필로 백지에 무얼 옮겨쓰기도 하시였다. 원산총파업자료같은건 파업당시의 신문을 보신 기억도 있고 이번에 들어온 자료도 두세번 읽으시였다. 그래서 그 총파업의 구체적인 과정이 눈앞에 선해지기도 하시였다. 국내의 파업투쟁중에서도 그 파업이 어느 파업투쟁보다도 격렬하고 규모도 컸다. 문평 《라이 씽썬》석유회사에서 일본놈감독이 조선인로동자를 리유없이 구타하는것으로부터 발단한 파업사건은 회사측이 로동자들의 요구조건을 3개월후에 해결해준다는것을 약속한것으로 일시 중지되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3개월이 지나도 약속을 지켜주지 않았다. 이래서 바로 석유회사로동자들이 다시 파업으로 들어가고 《원산로동련합회》에 망라된 전체 로동자들이 총파업으로 들어갔다. 투쟁은 격렬해지고 마지막엔 로동군중이 폭력투쟁으로 넘어갔다. 일제경찰과 접전이 벌어졌다. 싸움은 거리에서도 벌어지고 송도원 모래불에서도 붙었다. 기마경찰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총을 란사했다. 송도원에서 붙은 싸움이 더욱 무서운 혈전이였다. 곡괭이, 삽, 철근지레대를 든 로동군중이 숲에 엎드려있다가 달려드는 경찰놈들을 들이조겼다. 숱한 말다리도 꺾어놓았다. 그러느라니 송도원 모래불엔 적의 시체, 로동자들의 시체가 한벌 널리고 결국은 로동자들이 총과 칼을 이겨내지 못해서 바다물로 뛰여들어가기 시작했다. 놈들은 바다물에 총을 쏘았다. 그러다가 그놈들도 바다물속으로 뛰여들었다. 바다물속에선 칼을 들고 갈개는놈들의 머리를 꾸겨박아 죽이는 혈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은 싸움이 실패로 돌아가고 숱한 로동자들의 시체가 바다물우에 떠서 여러날동안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였다. 그걸 바라보는 원산시민들은 주먹을 치며 통곡을 터뜨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자료를 보며 한참씩 큰숨을 내쉬시였다. 그이께서는 피를 뿜는것 같은 로동군중의 절규를 들으시였다. 무장한 적과 싸우려면 무장을 들어야 한다는 진리는 이미 가슴속에 새겨넣은지 오랜데 원산총파업투쟁도 결국은 그 진리를 재확인시켜준다. 정말 무거운 바위돌이 가슴에 육박해오는것 같은 절박감에서 벗어나실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과 오륙보밖에 걸을수 없는 감방안을 왔다갔다하시였다. 원산총파업의 실패, 이것은 국내로동운동의 전 국면을 엿보게 하는 사건이다. 운동이 자연발생적이긴 했지만 이때까지의 운동과는 비할수도 없게 견결성을 띠고있고 마지막에는 폭력진출로 넘어갔다. 이 폭력적진출, 비록 분산성을 띠기는 했으나 이것은 무섭게 폭발하는 마지막 불꽃이다. 지금 국내에선 이런 마지막 불꽃이 여기에서도 튀고 저기에서도 튄다.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무엇이 되겠는가. 처처에 피의 시체가 더미로 쌓이고 황량한 들판에 재무덤같은 종말이 나딩굴지 않겠는가. 이 불꽃들을 시급히 하나로 묶어세워 신념에 찬 활화산으로 타오르게 하는 문제는 너무도 절박한 문제가 아닌가. 투쟁에 일어선 전군중이 앞을 내다볼수 있는 혁명의 새 기치가 없다면 어떻게 필승의 신념에 찬 싸움이 있을수 있으며 신념이 없는 투쟁이 어떻게 승리를 거둘수 있겠는가. 결국은 오늘의 시급한 문제는 역시 혁명의 새 기치를 펼치고 싸움에 일떠선 혁명군중을 그 새 기치아래로 부르고 새 기치에서 힘을 얻고 달려나가도록 만들어야 하는것이다. 아무 기치도 없는 빈 마당에야 백만장졸이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건 움직이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는 장졸이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방안을 바삐 도시다가 자리에 앉으시였다. 감옥에 들어와 받으신 국내공작원 오학천의 편지를 곁에 놓여있는 책짬에서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두번이나 읽으신 편지를 또 펼쳐드시였다.
존경하는 김성주동무! 그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부랴부랴 몇자 적습니다. 붓을 드니 길림동무들에 대한 그리운 정이 목을 메게도 합니다. 나는 지난봄 김성주동무가 편지에서 준 지시대로 서울과 이여의 학생조직들을 꾸려나가는 한편 두달전 이 청진으로 왔습니다. 오자 이어 몇명의 동지들도 획득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지시가 옳았습니다. 학생운동으로부터 로동운동에로 체험을 전환하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를 여기 오고보니 더욱 알듯싶습니다. 정말 이 로동도시로 오니 가슴이 벅차고 앞으로 무엇인가 큰것을 해놓을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새롭습니다. 생활의 파동이 크고 거칠고 넓습니다. 그만치 나자신의 심장도 억세여지는듯합니다. 유약했던 나의 학도생활의 때를 이 항구도시의 험한 파도속에서 완전히 씻어버릴 작정입니다. 큰 발자욱을 찍으며 혁명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보겠습니다. 존경하는 김성주동무! 지금 여기 와서 보니 국내의 로동대중이 그 어떤 극한점에 이른것 같다는 느낌이 더욱 강해집니다. 생이냐 사멸이냐 하는 막다른 길에서 무엇인가 험악한것을 배태해가고있는것 같습니다. 원산로동자들의 총파업이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극한점에 이른 생활이 빚어올린 활화산이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랬기때문에 이 파업이 물론 실패는 면치 못했으나 이때까지의 파업투쟁과는 달리 가장 험악한 폭발이였고 첨예한 대전이였다고 봅니다. 극한점에 이른 로동대중의 폭발, 그것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결사적인 혈투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시사하고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이 청진시에서도 그러한 기운이 배태되여가고있습니다. 지금 이 도시의 로동자들의 생활이란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극도의 저임금으로 로동자는 하루 벌어서 자기 한사람 하루 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기숙하는 선박제조소 로동자의 집에서는 매일같이 비지를 사다가 끼니를 에웁니다. 어떤땐 그것도 살 돈이 없어서 로동자의 안해가 바다가로 나가 바다풀을 건져옵니다. 무슨 풀인지 그것을 삶아먹고는 아이 어른 할것없이 얼굴들이 우둥우둥 붓습니다. 어느날엔 아이들 십여명이 배가 고파 바다가에 나가서 보가지알을 량껏 구워먹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로동자들이 바다가로 달려나가 독이 퍼져 해파리같이 나른해진 아이들의 시체를 안고 들어왔습니다. 온 로동자구역에 통곡소리가 일어났습니다. 이 어린것들을 나무도 없는 메등에 올려다 묻으며 우리의 동무들도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메등에서는 종일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바로 청진시 로동자들의 생활은 이렇습니다. 아침이면 시꺼먼 얼굴의 로동자대렬이 침묵속에서 공장으로 선박제조소로 선창으로 나가군합니다. 무거운 저기압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큰 물체가 꿈틀거리고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의 일이 진척되여가고있습니다. 한사람 두사람 동지들이 불어나가고있습니다. 독서열이 무섭게 높습니다. 어떤 로동자고 다 팜프레트를 숨겨가지고 다니며 읽습니다. 말하자면 여기 일은 예정대로 되여가고있습니다. 첫머리에서도 말했지만 이 청진시에서도 큰힘이 자라고있다는것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어떻게 이끌어가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서울 일도 부디 마음을 놓아주시오. 그곳에서도 조직들이 묶어지고있으며 동지들이 불어나가고있습니다. 존경하는 김성주동무! 나는 신심을 가지고 일해나가고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적지 못하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내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오학천 올림
편지를 읽고나신 김성주동지께서는 또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한참 감방안을 거니시였다. 그 편지를 처음 받아 읽었을 때도 그러했지만 다시 읽은 이 시각에도 가슴속에 큰 바위가 들어앉는것 같은 충격이 거듭거듭 가해지신다. 그이의 눈앞에는 조국강토를 뒤덮은 결사적인 혈투가 보이는가 하면 보가지알을 먹은 아이들의 시체가 보이고 그 시체더미를 땅에 묻으며 하늘에 대고 통곡하는 군중의 통곡소리도 들리는것 같으시였다. 몹시도 초조해지시였다. 어느새 하루가 갔는지 감시창이 열리며 저녁식사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저녁식사도 절반을 못들고 도로 내보내시였다. 리간수가 생각하는것 같이 무슨 촉한에 걸린건 아니고 탐구세계가 심각한 그만치 정신력만 날이 서가고 몸은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지시는것이였다. 그래서 입맛이 떨어져가시는것이였다. 저녁식사를 끝내신 그이께서는 또 뒤통기창으로 다가가시였다. 그렇게 들부시던 바람이 좀 잦아들고 눈이 펑펑 쏟아진다. 눈송이 하나가 주먹만큼씩 큰 함박눈이였다. 벌써 내린 눈만 해도 몇길 퍼부은것 같은데 그래도 펑펑 자꾸 쏟아진다. 황혼이 되여오는지 밖은 누릿누릿해가다가 차츰 어두워졌다. 그이께서는 몹시도 서둘러지고 초조해지시였다. 팔짱을 끼고 다시 찬벽에 기대이시였다. 빨리 새로운 로선을 선포해야 한다. 국내외 민중이 높이 쳐다볼 정확한 싸움의 목표, 곧바로 승리로 가닿을수 있는 지름길의 목표, 그것을 하루빨리 내외에 선포하지 않고는 모든것을 바로잡을수 없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가슴이 홧홧 달아서 감옥에 들어오신 이후 이때까지 추구해오던 문제를 또 더듬어나가시였다. 그것은 혁명의 새로운 로선을 마련하는데 그 근본동력으로 될 혁명에 대한 지도원리를 해명하는 문제였다. 새 로선은 바로 그런 원리속에서 태여나야 할 일이였다. 《ㅌ.ㄷ》시절부터 품어오시던 혁명에서의 두가지 큰 부정적인 문제, 그 하나는 민족해방운동자들이 대중을 떠나서 상층의 몇몇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말공부만 하고 싸움질하던 일, 다른 하나는 운동에서 남의 힘, 남의 방법을 믿는 사대주의, 이것을 버리지 않고는 혁명을 구원할수 없다는 그이의 생각은 인젠 혁명의 주인은 근로민중이며 근로민중이 자기의 힘, 자기의 방법을 가지지 않고는 혁명을 승리할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 확고한 사상으로 굳어지시였다. 오늘밤에도 이 원리문제를 깊이 생각해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책을 읽기도 하시고 무엇인가 재빨리 적기도 하시였다. 곱은 손을 쥐였다폈다하시며 꽛꽛해진 무르팍을 한바탕씩 주무르기도 하시였다. 정 추우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우쩍우쩍 다리운동, 팔운동도 하시였다. 이렇게 한바탕씩 추위를 물리치고는 또 자리에 앉아 생각을 더듬으시였다. 불현듯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바로 아까 리간수가 들여보낸 토목양복 한벌, 안도에 이사를 가셔서 아직 자리잡히지 않았을 엉성한 살림을 유지해나가시는 어머님께서 감방에서 추워한다고 지어보내신 그 양복 한벌, 어머님의 정성을 생각하시면 가슴속으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이께서는 얼른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 양복보자기를 또한번 펼쳐보시였다. 양복은 가는새토목에 검은 물을 들여가지고 지었는데 량어깨엔 솜도 두텁게 넣었다. 혁띠를 매는 바지괴춤에도 속에다 솜을 한벌 펴고 누비였다. 배가 시리지 않도록 하려고 그러신 모양이였다. 그이께서는 양복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시였다. 내가 감옥에 들어와있는것은 어떻게 아시였을가? 이 양복을 지어보내시며 어머님께선 무슨 생각을 하셨을가? 아버님께서 평양감옥에 갇히셨을 때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가? 그이께서는 불현듯 아버님께서 평양감옥에 갇혀계실 때의 일이 떠오르시였다. …그때 어린 김성주동지께서 어머님을 따라 칠골외가에 가셨다가 아버님을 면회하려 평양감옥으로 들어가셨다. 면회신청을 끝내고 쇠살창이 가로막힌 면회실로 들어서시였다. 무시무시했다. 쇠살창이 무슨 사람잡을 덫을 놓은것 같았다. 얼마후 그 쇠살창너머로 얼굴이 몰라보게 축가신 아버님께서 나타나시였다. 《오, 우리 증손이가 그새 컸구나. 어디 손을 좀 잡아보자.》 아버님께서는 그 수척하신 얼굴에 웃음이 환해져서 쇠살창밖으로 손을 내미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작은 두손으로 그 손을 부둥켜잡으시고 《아버지!》하고 목메여 부르시였다. 아버님께서는 우리 증손이 공부 잘하느냐고 물으시였다. 어린 김성주동지께서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공부를 잘한다고 말씀을 올렸다. 그다음엔 아버님과 어머님 사이에 무슨 말씀이 오고갔다. 그런데 말 몇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간수가 《면회 그만.》하고 소리를 질렀다. 쇠살창안으로 검은 철문이 주르르 내려와 닫겼다.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의 손목을 이끌고 돌아서시였다. 《너두 똑똑히 보아두어라. 일본놈들이란 이렇단다.》 어린 김성주동지께서는 어머님의 얼굴을 올려다보시였다. 안광은 날카로우신데 그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볼이 젖었다.… 그 눈물젖은 얼굴이 지금 방불히도 눈앞에 보이신다. 아 그때는 그래도 어머님을 뒤받침하는 만경대가 있고 칠골이 있었으니 어머님께서 얼마나 뒤가 든든해서 감옥걸음을 하시였을가! 그런데 오늘은 이역강토에 와서 홀로 아들의 감옥시중을 하시려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눈물겨울것인가? 누구도 모르게 가슴속으로 흘리는 눈물이 동이로 고이진 않을가? 그이께서는 눈앞이 흐려와 양복보자기를 도로 싸시였다. 그리고는 그 양복보자기를 홑양복 입으신 자신의 무르팍우에 올려놓으시고 이번엔 어머님의 회상이 아닌 딴생각에 젖어드시였다. 새 양복을 붙안고보니 홑옷을 걸치신 자신의 생각은 멀리로 달아나고 걸레쪼박같은 옷을 걸치고 경무청에서 고초를 겪고있을 채경의 생각이 날아와 안긴다. 눈물과 사랑의 옷은 눈물과 사랑으로 또 다르게 번져가 딴생각을 불러오는것이였다.
4
어느날 밤 경무청 순경부장 공가는 또 일본놈들의 부름을 받고 은밀히 령사관을 찾아갔다. 그는 령사관을 찾을 때엔 늘 정복을 벗어던지고 한참씩 거울앞에 서서는 굵은 목에 넥타이를 매느라고 신고를 했다. 이날밤에도 그는 검은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고 뚱깃뚱깃 령사관앞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는 가끔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다가 띄여볼가봐 목을 움츠리고 바삐 걸었다. 령사관앞에 보초를 선놈이 공가를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공가는 얼른 정문안으로 들어섰다. 뢰물에 걸려들어 일제와 련통이 되긴 했으나 어쩐지 이 정문안으로 들어설 때엔 늘 목에 뱀이 감기는것 같은 섬찍한 느낌을 떨어버릴수 없었다. 그것은 공가에게 그 무슨 량심이라도 있어서 그러는것은 아니였고 무언지 모를 무시무시한 공기가 공포감을 주기때문에 그러는것 같았다. 공가가 령사관안으로 들어서니 지하실로 통한 복도쪽에서 여러개의 구두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더니 공가가 들어선 사무실로 놈들이 문이 미여지게 쓸어들었다. 검은 가죽장화를 신은 군인이 세놈,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넥타이를 맨 신사차림의 사나이가 두놈 그리고 배뚱뚱이령사까지 대여섯놈이 무슨 밀의라도 끝내고 들어서는듯 방안으로 우르르 밀려들었다. 《순경부장 수고했소.》 신사복차림을 한 키가 작달막한놈이 공가의 곁으로 와서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이자가 바로 첩보두목 미야모도였다. 미야모도의 간을 빼먹는것 같은 소리에 공가는 두손을 마주쥐며 수고가 없노라고 했다. 딴놈들은 령사실쪽 문을 밀고들어갔다. 머뭇거리던 령사도 뒤따라들어갔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웩덱하며 지껄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야모도는 공가를 끌고 다른 밀실로 들어갔다. 좁은 방인데 탁자가 하나 놓이고 탁자주위로 안락의자가 몇개 돌려놓여있었다. 놈은 공가를 의자에 앉히고는 자기도 공가와 마주앉았다. 《담배를 한대 피우시오.》 미야모도는 무슨 수작을 하려는지 얼른 입은 열지 않고 담배갑을 꺼내놓으며 피우라고 했다. 공가는 담배갑에서 담배 한대를 뽑아다가 붙여물었다. 그는 이 미야모도란놈이 이안에 있는 떨거지들중에서 제일 웃놈인지 또는 령사가 우두머리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 령사관놈들중에선 이놈이 그중 점잖은것 같았다. 눈가장에 칼날같은 기운이 있기는 했으나 검은 코밑수염밑의 큰입때문에 그러는지 그렇게 표독한 인상은 주지 않았다. 사실 이놈은 대시위때 령사관에 와있던 첩보두목 구니하라와 같은 검사인데 책략이 무서운놈으로 새로 이름을 날리며 구니하라를 덜미쳤다. 그래서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길림지구를 무른 메주밟듯한 구니하라도 쥐여뿌리고 미야모도를 밀파했다. 미야모도는 한참동안 말없이 담배연기만 뿜었다. 《순경부장!》 얼마후 미야모도는 공가를 불렀다. 《네…》 《그래 당신은 무슨 일을 그렇게 하고있소? 그 김성주가 공산주의자라는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걸 자료로써 확인해내기가 그렇게도 어렵단말이요?》 《죄송합니다. 문제가 간단칠 않습니다. 거의 접근은 해가고있는데 경무청내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있지 않습니까.》 《무슨 움직임이요?》 《고문에 못이겨 불도록 사람을 다루는 방법은 삼가라는것입니다.》 《음…》 미야모도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얼음쪽같은 눈이 공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짧은 손가락끝으로 탁자를 도드락거린다. 그는 노란 털이 보르르한 손가락에 녀자들같이 보석반지를 끼였다. 《지금 경무청내에는 믿을놈이 한놈도 없습니다. 경무청장이란자가 독군의 지시를 받고 그러는지 그렇게 립장이 구두쇠이니 어느놈이 한놈 벗어붙이고 나서서 진심으로 공산주의자를 밝혀내겠다는놈이 있는줄 압니까?》 공가의 말은 사실이 근사한데도 있다. 그러나 지금 공가가 말하는것은 자기의 값을 올리려는 음흉한 책략이 더 많았다. 《글쎄 함께 고문을 하는놈들도 내가 시키지만 않으면 매 한개를 때리는것도 뜨끔히 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놈이 저처럼 속적삼이 젖도록 땀을 흘리는놈이 있는줄 압니까? 천정에 매다는것도 제가 하지, 고추가루물을 먹이는것도 제가 하지, 주리를 트는것도 제가 하지… 판이 이렇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저 쇠돌멩이보다도 더 단단한놈들의 입에서 말을 뽑아내겠습니까?》 미야모도는 연송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가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놈도 사람의 심리를 다루어오는놈인데 공가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수작을 하는지를 모를리 없다. 미야모도는 은근히 한숨을 쉬였다. 제일 심복으로 골라잡았다는것이 이런 비게덩이속에 탐욕밖에 없는놈이니 무슨 일을 뜻대로 해내랴싶었다. 미야모도는 공가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좋아좋아.》하며 공가의 말을 막아쳤다. 그는 안락의자에 몸을 제끼고 앉아 침묵속에서 담배를 또 한대 피웠다. 무르팍에 담배재가 떨어지는것도 알은체를 안했다. 얼마후 미야모도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순경부장!》하고 또 불렀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눈에 힘이 번뜩였다. 《네,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는 순경부장이 말하지 않아도 순경부장의 로고를 잘 알고있소. 그 로고에 대해서는 우리도 빚을 지고있다는 생각을 하고있소. 그 빚은 갚으리다, 갚구말구요.》 《빚이 무슨 빚이겠습니까? 허허허, 그건 저의 면목을 깎는 말씀입니다.》 《일언이페지하고 당신이 우리의 일을 잘만 해준다면 앞으로 재물과 영달로 과히 나쁘지 않게 대접을 하겠소.》 《고맙습니다.》 《그런데 순경부장!》 《네.》 《일을 그런 식으로 해선 안되우. 물론 당신이 적잖은 일을 했지만 우리에게 결정적인걸 뽑아준게 무엇이 있소? 하루바삐 독군에게 확인자료가 올라가야 할텐데 그 자료를 뽑았어야말이지 응? 그 채가놈으로 말해도 나타난 자료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깊은 속을 뽑아낼수 있겠는데 그걸 못해내거든… 경무청 상급이 취조를 못하게 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까짓놈들은 그러라고 내버려두란말이요. 만약 그놈들이 고문하는걸 정 못하게 한다면 채가놈을 경무청밖으로 끌어내란말이요. 그래서 북산사형장에라도 끌어올려다 세우고 공포나 몇방 갈기면 그놈이 실토를 안할가? 귀밑으로 탄환이 뿅뿅 소리를 내며 날아가도록 위협을 들이대란말이요. 아니면 발부리앞에서 픽픽 소리가 나게 땅도 쏘고…》 미야모도는 탁자를 울리며 눈에 피빛이 올라서 부르짖었다. 공가는 찍소리가 없이 들었다. 채가란 채경이를 말하는것이였다. 미야모도는 청년공산주의자들속에서 거물급이라고 인정되는 채경을 경무청으로 도로 끌어넘겨다놓고 김성주동지께서 공산주의자가 분명하며 학생운동이 공산주의운동이 분명하다는 확인을 받아내도록 공가를 부추긴것이였다. 이 확인만 받아내면 독군으로 하여금 청년공산주의자들을 더욱 탄압하게 만들수 있다고 믿는것이였다. 결국 채경은 이런 심각한 갈구리에 걸려들어 다시 경무청에 넘어와 피투성이 고문을 당하고있는것이였다. 《무엇이 무서워 조심을 하우? 내가 보기엔 당신도 발을 우리 편으로 내디뎠다 들이디뎠다 하는것 같소. 두가지 맘을 먹고있는것 같단말이요 응?》 《그럴리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결정적인 행동을 해야 할것 아니요. 문제는 당신에게 있소. 칼자루를 잡은 당신이 칼을 어떻게 쓰는가에 달려있단말이요. 어떻소? 래일밤 사형장에 끌어내다세우고 놈이 진짜를 실토하도록 만들수 없겠소?》 《해보겠습니다.》 생각이 밭은 공가는 미야모도가 무슨 술책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고 당장 검은 피가 곤두서서 대답을 했다. 《해보우. 그렇게만 한다면 틀림없이 속을 뽑아낼수 있을거요. 우리의 경험에 의한다면 이렇게 해서 버티여내는놈은 보질 못했소. 이건 생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문턱이요. 어떤 놈을 물론하고 이 문턱에 와선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소?》 《알겠습니다.》 흥분한 미야모도는 씨근거리며 공가에게 한참 더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공가의 양복주머니에 지페 몇장을 찔러넣어주었다. 《온 이건 뭘 번번이 이렇게…》 《담배값이요.》 공가는 담배값이라는바람에 목구멍이 요글요글한 느낌은 있었으나 그래도 안주는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며 받아넣었다. 공가가 나가자 미야모도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안고 방안을 빙빙 돌았다. 천치같은놈한테 아편덩이를 먹여가며 간이 마르게 기다리느니보다 직접 손을 대보자는 배짱이였다. 그는 흥분을 누르지 못해 안락의자에 앉았다간 도로 벌떡 일어섰다. 이튿날밤이였다. 미야모도는 중국복으로 변장하고 개털모자를 씌운 령사관 경찰 십여명을 경찰대장 사까이한테 이끌려가지고 북산을 향해 떠났다. 사까이는 키가 꺽두룩하고 말상으로 생긴놈인데 중국복으로 변장하고 길림시내를 샅샅이 뒤지고 돌아가며 밀정노릇도 하는 악한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 체포되신 날 밤에도 이놈이 먼저 뒤를 따랐다. 그런데 부하놈들을 재빨리 불러오지 못해서 순경놈들한테 발등을 밟혔다. 놈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늦게 달려온 부하놈들의 따귀를 갈기고 발길로 차고 하였다. 이 일이 분해서 놈은 지금도 이를 뿌극뿌극 갈았다. 《빨리 걸엇!》 사까이가 구령을 쳤다. 경찰들은 나는듯이 걸었다. 키작은 미야모도도 사까이의 뒤에 붙어서서 걸으며 경찰들을 빨리 걸으라고 손짓을 하군했다. 찬바람이 으르렁거리며 성벽가의 나무들을 뒤흔들었다. 눈보라가 성벽우에서 우룩우룩 내려덮이기도 한다. 미야모도와 사까이는 곳곳에 쌓여있는 눈구뎅이를 헤치며 걸어나갔다. 얼마 아니하여 북산경내로 들어섰다. 그래도 사형장으로 가는 쪽엔 벌써 길이 터졌다. 아마 청향국놈들이 길을 낸것 같다. 청향국이란 사형을 집행하는 기관인데 여기에선 이따금 목에 패쪽을 꽂은 사형수를 마차에 태워가지고 사형장으로 간다. 처량한 말방울소리가 북극문밖에 울릴 때엔 길 좌우에 창검의 숲이 이루어진다. 마차가 사형장에 다달으면 북이 둥둥 울리고 사형리들의 칼춤이 벌어진다. 사형수는 마차에서 내려 이생의 때를 씻는 고별주 한사발을 들이킨다. 그리고는 술사발을 집어던지고 족쇄를 절렁절렁 이끌며 자기의 관을 향해 걸어간다. 관앞에 거의 이르면 북이 더 잦은 가락으로 울리고 칼춤이 번개를 일군다. 그런 속에서 사형수의 목이 덜렁 떨어져내린다. 여기에선 이런 일이 1년에도 수십번씩 있다. 길이 터진것으로 보면 눈이 온 뒤에도 벌써 그런 참담한 일이 한두번은 있은것 같다. 경찰놈들도 여기가 그런 지대인것을 아는지라 휙휙 불어가는 바람결에도 원귀가 울부짖는것 같아 놀라군했다. 바람소리뿐만아니라 뿌드득거리는 저들의 발자욱소리도 그저 발자욱소리같지 않게 들리였다. 한참 걸어올라가니 나무가 우거진 사형장이 저쯤 앞에 드러났다. 곡선을 이룬 나무우듬지들이 달빛을 받아이고 질펀히 누워있다. 눈우에 서리가 되게 내린것 같다. 사형장에 다달은 사까이는 경찰들을 모두 눈구뎅이밑에 숨어앉아있으라고 했다. 경찰들이 개털모자를 너펄거리며 눈구뎅이밑으로 들어갔다. 놈들은 여기서 한시간나마 공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야 공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야모도는 입속으로 공가를 괘씸한놈이라고 여러번 욕설을 했다. 《모두들 치우냐?》 미야모도는 눈구뎅이밑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경찰들에게 물었다. 《춥지 않습니다.》 한놈이 앉은자세를 바로하며 대답했다. 《응, 참아야 해. 이건 조선과 만주를 먹는 전쟁이다.》 《조선이야 이미 먹지 않았습니까?》 《흥, 너희들이 보는것처럼 일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좀 좋을테냐?》 미야모도는 개탄하면서 개털모자끈을 바로잡아맸다. 또 한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두시간을 기다려도 공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야모도는 공가에 대해서 격분을 느끼였다. 그 탐욕덩어리가 눈앞에 있다면 당장 도륙을 해치우고싶었다. 미야모도는 공가를 우둔한놈으로 보고 자기의 술책이 거의 발가지도록 이야길 해주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였다고 느껴졌다. 공가는 우둔한 놈이 아니라 능청을 부리는놈이다. 그러기때문에 벌써 상대방의 책략을 간파하고 죄수를 끌어내오지 않는것이라고 여겨졌다. 미야모도와 사까이는 부득이 경찰놈들을 앞세우고 북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놈들이 북극문근처에 거의 왔을 때였다. 그제야 공가가 순경 두놈과 함께 족쇄를 채운 채경을 앞세우고 거리우에 나타났다. 눈덮인 거리바닥에서 쇠사슬 끄는 소리가 절그럭절그럭 처참히 울리였다. 채경은 경무청으로 도로 끌려넘어와 어떻게 맞았는지 겨우 끌려나오는것 같다. 그는 쇠사슬을 끌고 걷다가는 잠간씩 멈추어섰다. 그러면 뒤따르던 공가가 무슨 방망이같은것으로 꾹 내지르며 빨리 걸으라고 독촉을 했다. 미야모도는 골목에 숨어서서 내다보다가 달려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일체 말소리는 내지 말아. 조선인으로 가장된 행동대답게…》 미야모도가 수군거리자 경찰놈들이 숨어섰다가 거리바닥으로 달려나갔다. 키다리 사까이가 앞장에 섰다. 놈들은 달려나가자바람으로 공가와 순경 두놈의 아가리들을 틀어막으려고 목을 후려안아제꼈다. 순경놈들은 대갈놀음을 하며 팔을 휘둘렀다. 한놈은 총을 쏘자고 어깨우에 메였던 총을 벗겨내리였다. 그러나 놈은 사까이의 유도바람에 태를 치고 넘어가며 총을 저만치 뿌려던졌다. 드디여 두놈이 아가리를 틀어막히우고 두손에 결박이 지워졌다. 그리고 검은 보자기를 둘러쓰고 목도 졸리였다. 그런데 공가는 끝까지 버티며 아가리를 틀어막히우지 않으려고 경찰놈들과 육박전을 했다. 사실 경찰놈들이 아무리 가장을 했어도 공가는 이것을 벌써 미야모도가 꾸며낸짓이라는걸 깨달았다. 이짓을 하기 위해서 미야모도가 두눈이 달아서 탁자를 울리며 떠벌였다는 생각이 주먹싸움을 하는 이 순간에도 머리속에 펀뜩펀뜩 떠올랐다. 공가는 이발을 뿌드득 갈았다. 일본놈의 뢰물을 먹긴 했지만 이 일만은 순순히 응할수가 없다. 죄수를 탈취당하기만 하면 자기는 목이 잘리우는 판이다. 더구나 지금 경무청장도 다른 순경부장들도 모두 동향이 달라져가고있는 때인데 자기가 일본놈들한테 죄수를 넘겨주었다면 문제를 혹독히 세우고 감옥에 처넣을지도 모른다. 공가는 두팔이 비틀리우자 이발로 경찰놈의 손등을 물었다. 그러나 경찰놈은 공가의 볼따귀를 쥐여박으며 번개같이 머리를 거머쥐고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피가 줄줄 흐르는 손으로 솜뭉치를 입에 들이밀었다. 결국 공가도 결박당하고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썼다. 경찰놈들은 송장같이 된 순경 셋을 이끌고 북극문앞을 거쳐 눈이 쌓여있는 성밑으로 갔다. 그리고는 셋을 마주세워놓고 한포승줄로 칭칭 돌려감아 죄였다. 순경놈들은 배를 서로 마주붙이고 비척비척하며 죄여들어갔다. 마지막에는 목까지도 한올가미속에 들어 검은 보자기속에서 코들을 서로 맞비비며 헐떡거렸다. 경찰놈들은 그러고나선 기다란 포고문댕기를 둘이나 목을 죄인 올가미줄에 달아놓았다.
우리의 지도자 김성주동지를 석방하라. 만약 석방하지 않는 때엔 독군의 운명도 이렇게 만들것이다. 길림조선인공산당 행동대
무서운 협잡공갈이였다. 채경을 직접 족쳐서 자료를 얻어내자는 목적도 있지만 바로 이렇게 해서 독군의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고 립장을 바로잡아세우려는 술책이 더욱 강했다. 미야모도와 사까이는 경찰놈들과 함께 채경을 앞세우고 걸었다. 채경은 족쇄를 절럭거리며 사납게 눈보라가 날리는 성밑으로 걸어나갔다. 가슴속에 비장한 생각이 그득해진다. 결국 이렇게 해서 자기는 일제의 마굴로 넘어서게 되는것이라고 생각하니 눈에서 불이 일고 가슴속에선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자, 잠간 섰다가 걷소. 당신의 안내자들이 길을 낸 다음에… 발목이 몹시 아플테지? 흐흐흐.》 뒤따르던 미야모도가 채경의 잔등을 두드리며 음충스럽게 웃는다. 채경은 그래도 김성주동지께서 리간수를 통해서 경무청으로 들여보내준 그 은정깊은 새 양복을 입고 자다가 이끌려나왔다. 피투성이 람루한 옷우에 새 양복을 입으니 그렇게 곤경을 치른 사람같지도 않았다. 몸집이 다부져보이고 아래다리도 미끈해보였다. 경찰 두놈이 앞으로 나가더니 길에 쌓인 눈더미를 파헤치며 짓밟아놓는다. 족쇄를 찬 채경이 넘어지지 않도록 길을 내주는것이였다. 채경은 잠간 섰다가 다시 걸었다. 미야모도는 가죽장갑낀 손을 내내 채경의 잔등에 붙이고 걸었다. 《체격이 좋은 청년이야. 경무청에서 대접이 좋았던 모양인걸. 새옷을 다 입구… 빨리 걷소.》
놈은 신이 나서 중얼거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