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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4 회 )
제 8 장
감 방 안 의 홰 불
1
감옥수부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면회하러 오거나 물건을 차입하러 온 사람들이 마구 디밀며 서로 앞으로 다투었다. 구멍을 뚫러놓은것 같은 조그만 창구안에는 은테안경을 건 간수가 앉아서 신청서를 받으며 수감자명부를 검열하고는 이름을 뻑뻑 적는다. 그리고는 감옥 정문안으로 한사람씩 들여보낸다. 《이 망할것들, 디밀지 말아. 차례차례로 서지 않으면 면회신청을 안받을테다.》 간수가 수감자명부를 두드리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뒤에서 미니까 그럽니다.》 《어느놈이 밀어? 뒤에 썩썩 물러서서 차례로 들어오란말야.》 간수는 창구멍으로 머리를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뒤에 선 사람들은 창구멍밖으로 나온 간수의 얼굴을 쳐다보느라고 발돋움을 했다. 간수는 얼마후에야 창구안으로 안경 건 얼굴을 움츠리며 도로 자리에 앉는다. 어쨌든 일주일에 한번씩 터지는 소란이 오늘도 감옥수부를 들부시고있다. 그런데 오늘은 김성주동지와의 면회는 첫마디부터 거절이였다. 《김성주는 안되오.》 《또 김성주요?》 김성주동지에 대한 면회신청서는 내놓기만 하면 간수가 언짢은 눈을 하며 밀어내놓는다. 김성주동지를 면회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시내에서도 오고 농촌에서도 왔다. 시위투쟁이 있기전 한해 여름동안 그이께서 나가 공작하시던 장두촌에선 그이를 면회하겠다고 농민들이 십여명이나 왔다. 모두 두루마기에 방한모를 쓴 사람들인데 40리길이나 걸어왔다가 이걸 어쩌느냐고 웅성거린다. 오늘은 눈보라까지 극성스럽다. 사람들은 눈보라가 날아올 때마다 얼굴을 감추며 손발이 시려서 벌벌 떤다. 오순희와 함께 온 한촌의 수연이도 사람들속에 서서 초조한 심정으로 접수구쪽을 바라본다. 그는 한손에 조그마한 보따리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어제 대서방에 가서 써가지고온 면회신청서를 접어쥐였다. 수연이도 발이 시려서 짚세기에 버선 신은 발을 드적드적한다. 그는 그저께 길림에 당도해서 겨우 김성주동지께서 하숙하시던 집에 찾아들었다. 그 집 부자간이 독립군을 하면서 수연이의 아버지와도 함께 싸웠고 수연이네가 한촌에 이사를 온 뒤에는 집에 드나들기도 해서 그 연줄을 쥐고 그 집으로 찾아올라왔다. 하숙집 할머니는 《어이구 내 딸이 왔군.》 하면서 수연이를 안아들였다. 그리고는 무슨 사연을 모르는 할머니이지만 수연이가 김성주동지를 면회하겠다기에 오순희네 집에 찾아가 오순희에게 부탁도 해주었다. 그래서 수연이는 어제 오순희와 함께 아지트로 가서 차광수를 만나기도 했고 오늘은 김성주동지를 면회하러 왔다. 수연이는 지금 함께 온 오순희가 어데 갔는지 해서 찾았다. 그는 한촌에서 여기까지 올라와 김성주동지를 만나뵈옵지 못할가봐 겁이 났다. 오고보니 감옥에 들어가계실줄이야 뉘 알았으랴. 최봉이 생전에 말끝마다 외우던 혁명의 지도자 김성주동지! 그 동지에게 드리자고 최봉의 유물을 가지고 찾아올라왔는데 못만나뵈오면 이런 큰일이 어데 있을가. 이 유물은 남에게 맡기고 갈수도 없는 유물이여서 어제 아지트엔 들고가지도 않았댔었다. 수연이는 눈물이 그렁해서 접수구쪽을 바라보았다. 인젠 차례가 자기앞에 몇명 남지 않았는데 접수구안 안경쟁이는 《또 김성주 면회야?》하고 신청서 들이미는 사람을 밀어제낀다. 밀리운 사람들이 저편에 가서 무리를 지어 서있다. 모두 추워서 벌벌 떨었다. 그래도 로인 하나는 그 추운데 앉아서 두다리를 자꾸 주무른다. 퍼그나 먼 걸음을 해서 다리가 쑤시는 모양이다. 지금 수연이를 데리고 온 오순희는 정문안 대기실에 들어와 앉아있다. 사식을 차입하고 감옥에 드나들어도 언제나 여기까지밖엔 들어오지 못한다. 그다음 감옥사무실쪽을 지나 그 저쪽은 간수들이 싸대기도 하거니와 일체 출입을 엄금하는 지옥세계와도 같은곳이다. 걸리기만 하면 매를 맞기가 십상이고 감옥에 처박히울수도 있다. 오순희는 오늘 김성주동지의 면회신청을 받지 않는다는바람에 불쑥 다른 근심이 앞섰다. 요새 김성주동지를 다른 감방으로 옮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서운 고문을 하면서 면회를 시키지 않는건 아닌가. 채경오빠처럼 경무청에 도로 넘겨준건 아닌가. 오순희는 그 내속을 알수가 없어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뛰였다. 리간수라도 만나야 케속을 알겠는데 그를 만날 도리도 없었다. 그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대기실창문에 붙어서서 감옥뜰을 살펴보았다. 문득 어데서 쌍욕질소리가 들려온다. 뒤통수에 덴 자리가 있는 도간수가 멜대에 물초롱 두개를 달아매고 걸어오며 감방쪽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흔들리는 물초롱에서는 김이 몰몰 피여오른다. 아마 더운물을 어데다 나르는 모양이였다. 그가 사라진후에는 바람이 불고 눈가루가 감옥뜰을 휩쓸었다. 인적기가 없었다. 오순희는 여전히 창턱에 붙어선채 초조한 심정에 잠겨 손톱여물을 썰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후렁후렁한 외투를 입은 허우대 큰 간수 하나가 걸어왔다. 가까이 지나가는걸 보니 뜻밖에도 리간수였다. 오순희는 황급히 유리창을 두드리며 그를 찾았다. 《리간수, 리간수…》 리간수는 걸음을 멈추고 대기실 유리문을 바라보았다. 《리간수, 저예요. 순희예요.》 오순희는 대기실을 나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요?》 리간수는 눈이 덩둘해서 쳐다보았다. 《오늘은 면회날인데 왜 면회신청을 받지 않아요?》 리간수는 두릿두릿 사방을 살펴보며 대꾸를 안했다. 《요새 김성주동지가 감방을 옮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예요?》 오순희가 또 물었다. 《감옥이 소란해지자 전옥이 학생들과 격리시키노라고 독감방으로 옮겼소! 안됐소, 저리로 가오.》 리간수는 담장쪽으로 치우친곳을 턱질하며 걸어갔다. 오순희도 급하게 따라갔다. 바로 거기 리간수의 간수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안이 후끈했다. 《요행 내가 이쪽 독감방을 맡아가지고 회장을 따라 넘어왔으니 아무 일 없게 됐소.》 《그래요?》 오순희는 난로에 손을 쬐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독감방은 면회도 안시키세요?》 《오늘은 안되오. 내가 접수에다 면회신청을 받지 말라고 련락을 했소.》 《어째서요? 지금 먼곳에서 면회를 온 사람들이 많아요. 빨리 접수에다 신청서를 받으라고 련락해줘요.》 《오늘은 안되겠소.》 《왜 안돼요?》 《지금 회장이 촉한에 걸린것 같소. 오늘아침엔 식사도 못했소. 그런데 면회가 무슨 면회요?》 오순희는 가슴이 뜨끔했다. 감방의 랭돌에 계시면서 촉한까지 앓으시다니?… 《병세가 심해요?》 《심하우.》 리간수는 인상좋던 두눈이 부리부리해서 일체 면회이야긴 꺼내지 말라는 투로 움을 질러놓는다. 오순희는 이 일을 어쨌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면회를 할수 없다는 일보다도 그 랭방에서 촉한까지 앓으신다면 지금 어떻게 하고계시는지 당장 달려들어가 보고싶었다. 《저 좀 뵈옵게 해줄수 없어요? 감시창으로라도 말이예요?》 《그만두오. 딴 간수들이 득실거리는데…》 《감방을 옮겼다는데 그 감방은 어데 있어요?》 《바로 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복도 저쪽으로 나가면 독감방들이 있소.》 리간수는 복도 2중문을 턱질하며 대꾸했다. 《그럼 내가 복도에 들어가 독감방감시창으로라도 좀 보고 나올수 없을가요?》 오순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2중문쪽으로 다가갔다. 《가만있소. 덤비지 말고…》 리간수는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자기가 먼저 2중문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지금 다른 간수들이 없는새 잠간 들여다보고 나가우.》 리간수는 오순희를 복도안으로 들여세워주고는 또 저편쪽 십자형 복도쪽에서 누가 나타나지 않는가를 살펴보는것이였다. 복도로 들어선 오순희는 리간수가 눈짓으로 대주는 그이의 감방감시창구에 다가가서 붙어섰다. 기척을 안내고 감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김성주동지께서 눈을 감으시고 벽에 기대앉아계시였다. 벽엔 성에가 하얗게 불렸다. 얼음벽에 등을 기대시였다. 그 아프신 몸으로 무슨 책을 또 읽으시였는지 앞에 두세권의 책이 놓여있다. 정말 얼굴모습이 몰라보게 축가시였다. 면회때마다 보아오긴 했으나 이렇듯 축가신 그이의 모습을 보게 된 오순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오순희는 자기가 조직으로부터 감방에 있는 김성주동지를 돌봐드리라는 가장 중요한 과업을 받고도 어찌하여 지금껏 그이께서 몸이 이처럼 축가시는줄도 모르고있었을가 하는 자책감으로 하여 가슴이 아팠다. 그는 감시창턱을 붙들고 서서 울었다. 흐느껴지는 울음을 이발로 악물고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그게 누구요?》 김성주동지께서 인기척을 듣고 눈을 뜨시더니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아니 순희동무가 어떻게 여길 들어왔소?》 감시창으로 다가오신 그이께서는 놀라며 물으시였다. 《촉한에 걸리셨다고 하기에…》 《촉한? 누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그런걸 왜 저희들에게 감추세요?》 오순희는 눈물을 씻으며 고개를 쳐들었다. 《일없소. 그건 공연한 말이요. 걱정하지 마오.》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우렁하였다. 눈에도 영채가 돌았다. 찬벽에 기대앉아 눈을 감으셨던, 그 차마 볼수 없었던 모습은 아니였다. 아, 이렇게 모든 고통, 모든 아픔을 극복해나가시는가. 오순희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앞이라 눈물이 그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동무의 얼굴이 왜 그렇게 축갔소?》 그이께서는 창턱을 붙잡고 흐느끼는 오순희의 얼굴이며 손을 다감한 눈길로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모습이 그렇게 됐는데 아무렇지도 않단말이요? 어데 아픈데가 없소?》 《아무데도 아픈데가 없어요.》 《신동호동무가 카륜으로 내려갈 때 만나고 떠나갔소?》 오순희는 대답을 못했다. 그 일은 어떻게 아시고 이런 말을 다 물으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순희는 자꾸 눈물을 씻었다. 《음…》 그이께서는 속깊은 음성을 한마디 내고는 오순희더러 울지 말라고 달래시였다. 《요새 어머닌 편안하오?》 얼마후 그이께서는 딴 말씀을 물으시였다. 《편안해요. 우리 어머닌 그저 김성주동지가 감방안에서 축받으실가봐…》 《어머니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주오. 그리고 내가 건강하더라는 소식도 전해주고… 동무의 아버지가 체포되지만 않았어도 어머니께서 얼마나 세상 사는 보람을 느끼시겠소.》 《너무 그런 심려를 하지 마세요.》 《오빠한테서는 더러 편지가 오우?》 《네, 얼마전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왔어요.》 《내가 감옥에 들어올무렵 나한테도 편지가 왔소.》 《저도 알고있어요.》 오순희의 오빠 오학천은 서울에 올라가 어느 전문학교에서 공부하는 청년인데 지난해 대시위이후부터는 국내공작원의 임무를 띠고 그이의 지도밑에서 활동하고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리간수는 오순희가 너무 오래 이야기를 한다고 복도를 뚜걱뚜걱 걸으며 초조한 눈길을 보낸다. 그는 괜히 십자형 복도쪽 이중문을 열어제꼈다 닫기도 했다. (얼음같은 찬방에서 앓고있는데 무슨 면회를 저렇게 오래 하는가?) 용전한 리간수이지만 이마가 댕댕해졌다. 그는 바닥 두꺼운 편상화를 더 소리나게 뚜걱거리며 오순희의 뒤를 지나친다. 《저 한촌에서 수연이란 녀성동무가 올라왔어요.》 《수연동무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놀라시며 오순희를 바라보시였다. 《수연동무가 언제 올라왔소?》 《그저께 올라왔어요. 지금 김성주동지가 하숙하던 집에 와있어요. 그런데 꼭 무얼 드릴게 있다고 지금 면회를 하러 왔어요. 다른 사람한텐 전할수 없는 물건이라고 하기에 오늘 이리로 데리고 왔어요.》 《만납시다.》 《그렇지만 힘들것 같아서…》 《무슨 소리요. 내가 힘들단말이요.》 《네.》 《아니 사람을 만나는게 힘들면 혁명을 어떻게 하오. 빨리 나가서 면회실로 데리고 오시오.》 《다른 사람들도 와있어요.》 《그렇소? 모두 좀 만나도록 해주오.》 오순희는 눈물을 씻으며 조용히 물러섰다. 리간수는 성이 나서 오순희를 앞세우고 자기 방으로 나왔다. 《색시, 회장이 끼니도 못들면서 앓고있는데 저 장마당같이 모여온 사람들을 다 불러들여다 만나게 해야 한단말이요?》 《리간수, 어떻게 하겠어요.》 《안되오.》 리간수는 팔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록록하게 말을 들을 잡도리가 아니다. 《그럼 녀성동무 한사람만이라도 면회를 하게 해줘요.》 《그럼 한사람만 승인하겠소. 쓸데없이 회장앞에서 눈물을 찔찔 짜며…》 리간수는 화를 내며 난로우의 물주전자를 탕 소리가 나게 옮겨놓는다. 결국 이렇게 되여 수연이 하나만이 신청을 끝내고 대기실에 들어와앉을수 있게 되였다. 오순희는 대기실에서 수연이의 옷매무시를 바로잡아주었다. 검은 물 들인 토목치마저고리를 입었는데 어떻게 했는지 저고리깃이 바르지 않은것 같았다. 깃을 바로잡아주고 저고리고름도 고쳐매주었다. 머리도 쓰다듬어넘기라고 하였다. 최봉의 비보를 받고 어떻게 고민하다가 올라왔는지 차광수가 성춘향이 모습같다고까지 하던 한촌앞 시내가에서 빨래를 하던 때 수연이의 모습은 조금도 없다. 두눈이 까지고 둥글던 볼에서 살도 내렸다. 눈을 들어서 사람을 볼 때엔 원한과 비애로 하여 생긴듯한 날카로운 빛이 얼른 비껴가기도 한다. 《이건 무어예요?》 오순희는 수연이가 곁에 놓고 앉아있는 보따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신문지야요.》 《신문지? 신문지를 올리려고 그래요?》 《네… 저…》 수연이는 말끝을 흐리며 보따리를 무르팍우에 올려놓는다. 순박하지만 않은것 같은 쌀쌀한 빛이 얼굴에 비낀다. 얼마후 리간수가 나타났다. 《빨리 오우. 색시는 여기서 기다리오.》 리간수는 오순희를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회장에게 공연한 수고를 하게 한다고 아직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수연이는 입이 크고 눈찌가 록록치 않은것 같은 리간수를 흘끔흘끔 보면서 뒤따라섰다. 감옥뜰을 걷는 수연이는 속으로 은근히 울음이 솟아올랐다. 내가 어떻게 혁명의 지도자를 만나뵈온단말인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엔 부끄러워서 얼굴도 쳐다보지 못한 그분을… 최봉이 그렇게도 생전에 늘 곁에 있는것 같이 김성주, 김성주 하던분을… 내가 이 촌때투성이의 모습으로 어떻게 만나뵈올가. 그분도 나를 보는게 나 하나로만 볼가. 내곁에 서서 울고있는 최봉은 보지 않을가. 잠시동안에 별생각이 다 떠오르며 울음이 북받친다. 그는 이를 악물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리간수를 따라 걸었다. 간수의 방에 들어서니 무엇이 낯에 날아와 덮이는것 같이 후끈하였다. 그래도 리간수가 보따리를 받아놓으며 목도리를 풀라고 하였다. 그도 이때까지 꾀였던 심사가 좀 누굴누굴해진것 같았다. 리간수는 얼른 복도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들어가듯마듯 도로 나와서 복도문을 닫아건다. 《수연동무!》 별안간 굵은 목소리가 울리는바람에 수연이는 사방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리간수가 저길 보라고 하며 복도문 웃턱을 가리켜주었다. 밖에 있다가 들어와서 그런지 어디나 어둑시근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수연동무, 수고를 했소. 어머니랑 다 편안하오?》 얼마후에야 수연이는 복도문웃턱 사각형 창구안에 있는 김성주동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멀리 꿈속에서 보는 얼굴같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건강히 지내오?》 그이께서는 재차 물으시였다. 《녜.》 대답을 하고난 수연이는 그제야 허리를 구부리며 절을 올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손수건을 눈가장으로 가져가셨다. 《그새 최봉동무에 대한 슬픈 소식도 들었겠는데 어머니께서 그 일로 타격을 받진 않았소?》 《녜, 그저 잘 있어요…》 수연이는 말소리가 울음에 젖고 이어 목이 꾀여졌다. 설음이 터지는것이였다. 참고참아온 설음이 이 순간에… 그는 저고리고름을 꼬깃꼬깃 잡아쥐고 흐느낌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우는 수연이를 내다보시였다. 그이 역시 수연이를 보시는 순간 수연이 하나만 보시지 않고 아까 수연이가 환상한것처럼 뒤에 곁묻어들어서는 최봉을 보신것이였다. 그리고 수연이의 울음속에서 최봉의 얼굴이 더 커지기도 하는것이였다. 뒤에 곁묻어 펼쳐지는 괴모산속 피에 젖은 길도 보이고 그 길에서 주은 운동화 한짝도 보이고 길이 끝나버린 영원으로 통하는것 같은 초원도 보이였다. 창구너머 어슴푸레하게 비친 수연의 얼굴로는 자꾸 눈물이 쏟아져내린다. 《우린 릉가에서 떠나오면서 한촌앞을 지나다가 집에 들렸댔소.》 《이웃집에서 알려주어서 어머니도 알고있어요.》 그이께서도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수연이도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인젠 진정하라고 타이르시였다. 수연이는 눈앞을 닦으며 몸가짐을 바로가지려고 애썼다. 《그래 어떻게 되여 길림으로 올라왔소.》 《저 드릴게 있어서…》 《무업니까?》 《세상 떠나간 사람이 늘 김성주선생님 이야길 하면서 모아둔 신문지예요…》 《신문지?》 《네… 그래서 여기에 다 싸가지고 왔어요.》 수연이는 곁탁자우에 놓여있는 신문지보따리를 들어 그이께 올리였다. 그이께서는 신문지라는 소리에 놀라운 빛을 띠우시고 면회창구로 손을 내밀어 보따리를 받으시였다. 《수연동무, 이걸 전하려고 그 먼먼길을 올라왔소?》 《네… 세상 떠난 사람의 정성이 배여있는 신문지이기에…》 《그럼 인제 곧 내려가겠소?》 《네…》 수연이는 또 울음이 북받치는것을 겨우 눌렀다. 최봉이 온갖 따뜻한 바람을 다 걷어가지고 간 썰렁한 집안에 홀로 남아서 눈물짓는 어머니가 보여서 저절로 울음이 솟구치군하는것이였다. 《내려가면 한뉘를 고생속에 살아온 어머니를 위안하면서 수연동무도 꿋꿋이 살아주길 바라오. 어려운 일은 조직에 가서 물어도 보고 조직이 시키는 일도 잘해나가며 웃으면서 살아나가주오. 그래야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늘이 없어질게 아니겠소.》 《저도 그렇게 하자고 해요.》 그제야 수연이도 눈물을 씻고 정숙한 모습으로 서서 대답을 올렸다. 얼마후 수연이는 허리를 굽혀 큰절을 올리고 돌아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창구너머에 오래도록 서계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복도바닥에 놓았던 보따리를 들고 돌아서 걸으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방안에 들어오시는길로 보따리를 펼쳐보시였다. 《아니 이건…》 보따리를 끄르시던 그이께서는 놀라시였다. 신문지라니 무슨 소린가 했는데 보따리속에 이렇게 많은 자료철이 들어있을줄은 꿈에도 모르시였다. 바로 이 감방안에서 탐구의 세계를 펼치면서 그렇게도 참고해보고싶던 참고자료들이 보따리속에서 더러 나왔다. 신문을 보다간 오려내고 오려내고 해서 책을 만들고 그 책뚜껑엔 백지를 붙이고 백지우엔 최봉이 연필로 큼직큼직하게 무슨 자료라고 다 썼다. 《국제정세자료》, 《국내정세자료》, 《국내파업투쟁자료》, 《일제의 산업정책자료》, 《원산총파업자료》, 원산총파업자료는 딴 파업투쟁자료와 따로 떼여 한책을 만들었다. 어쨌든 이런 책이 10여책 되고 거기에 최봉이 어디서 뽑았는지 《일제의 조선총독별 시정방침자료》, 《치안유지법자료》 같은것도 연필로 또박또박 쓴것을 한책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국내의 필객들이 쓴 조선정세에 관한 론문집도 한권 들어있다. 그이께서는 자료묶음을 무릎우에 올려놓으시였다. 가슴이 뜨거워지시였다. 이미 알고계시던 자료들도 많긴 하지만 이것을 모아둔 그 성의를 생각하니 최봉이 다시 살아서 달려온것만 같다. 《최봉동무, 고맙소. 동무는 살아있소. 내곁에 살아있소. 우리의 숨결속에 동무의 숨결도 있고 우리의 피속에 동무의 피도 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무릎우에 올려놓은 자료묶음에 온몸을 숙이며 격정을 터뜨리시였다. 너무도 격동되여 불쑥 일어나 찬 벽을 어루쓸며 감방안을 돌기도 하시였다.
2
수연이는 오순희를 따라서 그의 집으로 갔다. 그래도 허위단심 달려와서 그이를 못만나뵈올가싶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는데 요행 만나뵈옵고 최봉의 귀중한 유물을 드렸으니 마음이 놓이였다. 최봉이 저승에서라도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오순희네 집에 오니 오순희네도 어쩌면 자기네와 같이 어머니와 딸이 살았다. 아들은 서울에 가있고 아버지는 령어의 몸이 되였다는것이다. 딸도 맘에 들지만 어머니도 좋은 어머니였다. 오순희는 수연이가 왕청문에서 테로를 맞은 최봉의 애인이라는걸 알고는 각별한 정으로 대해주기도 했다. 물론 자기가 겪는 실련의 고민과 같은 고민은 아니지만 그 사랑하는 대상을 원통히 잃어버린 아픔이야 자기가 겪는 아픔에 비기겠는가. 둘이는 어머니가 권하는 저녁끼니도 맞상을 해서 먹었다. 그리고는 한이불을 덮고 밤새 이야기도 했다. 오순희는 감옥에 대한 이야기, 김성주동지에 대한 이야기, 이 길림시내엔 적의 밀정들이 득실글거린다는 이야기, 지나간 대시위때 학생들이 어떻게 싸웠다는 이야기, 수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하는 오순희는 자기에게 비기면 말쑥히 씻긴 옥돌같기도 했고 사내들다운 통이 있어보이기도 했다. 이튿날아침도 둘이 맞상을 해서 먹었다. 조반을 먹고난 오순희는 어디 잠간 나갔다가 온다고 하면서 스카트를 입고 나갔다. 《인차 돌아오겠어요?》 《두어시간 걸릴거야요.》 수연이도 감옥을 들고 날고 하는 처녀라는걸 알고 어쩜 여기선 저런 처녀들까지 저렇게 혁명에 나서서 바쁘게 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순희가 나간 다음 수연이는 족자의 그림구경도 하고 책상우에서 책을 들어다가 읽어보기도 했다. 어쩐지 토목치마저고리를 입고 제격에는 맞지 않은 집안에 와서 어른대는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한낮이 거의 되였을 때 뜻밖에도 중국녀복으로 변장한 오순희가 숨이 급하게 달려들었다. 《아니…》 수연이도 놀래고 어머니도 놀래였다. 《왜 그 몰골을 하고 뛰여왔니?》 어머니가 물었다. 《<뱀눈>들이 뒤를 쫓기에 중국동무네 집에 들어가 변장을 하고 왔어요.》 오순희는 이마에 돋은 땀을 닦았다. 그는 눈이 둥그래서 서있는 수연이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 앉았다. 《걱정 말아요. 여기선 늘 이렇게 싸워야 해요. 인젠 습관이 됐는걸요.》 《어쩜…》 《감옥에 들어가있는 동무들도 있잖아요?》 벽시계가 뗑뗑 두시를 쳤다. 《아이 어쩌나, 이걸 두시까지 전해야 할텐데…》 오순희는 초조해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저놈들이 뒤쫓아와서 아직도 저 앞길목에서 서성대는구나.》 오순희는 두시까지 전해야 할것을 《뱀눈》들때문에 못전한다고 안절부절 못하였다. 수연이는 보기가 안타까왔다. 오순희에게 비기면 자기는 너무도 촌때투성이고 혁명도 아무것도 모르는 죽은 최봉의 낯을 깎는 처녀같은 생각도 들었다. 안타까와하는 이 동무를 도와줄순 없을가! 《저 그게 무언데요?》 수연이는 머밀머밀하다가 물었다. 《급한 통신이예요.》 《내가 가서 전할순 없겠어요? 여기야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러나 무섭지 않겠어요?》 오순희는 수연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물었다. 《무섭긴?》 수연이는 눈을 곱게 흘기며 대꾸했다. 그러자 오순희의 얼굴에도 기쁨의 홍조가 피여올랐다. 《그럼 이걸 가지고 지금 이 앞거리의 송신백화점 뒤집에 가서 주인을 찾으세요. 그럼 한 청년이 문을 열고 내다볼거야요. 그 청년에게 이걸 맡기고 돌아오면 돼요.》 오순희는 돌돌 만 쪽지를 내밀어주었다. 그걸 받아쥔 수연이는 바삐 앞길목으로 걸어나갔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 이게 바로 조국광복하는 싸움이란 긍지도 생겼다. 바로 최봉이 하던 그런 싸움을 밀고나가는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가 쪽지를 갖다맡기고 돌아오니 오순희는 너무 좋아서 수연이도 여기서 함께 싸우자고 허리를 끌어안아주었다. 수연이는 마음이 복잡하게 설레였다. 난 정말 여기서 혁명할수 없을가? 이 오순희들같이… 내가 오순희들처럼 여기서 싸우겠다면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마나 좋아하실가! 한촌에 내려가 그곳 조직이 시키는 일을 웃으면서 잘해나가라는 말씀을 내가 달리 받아들이고 최봉동무같은 혁명가가 되겠다고 했다면 김성주동지께서는 틀림없이 더 기뻐하셨을것이다. 수연이는 최봉이와 두손목 잡고 앉아서 속삭이던 소리도 떠올랐다. 둘이 혁명의 길에 나서서 험산준령도 함께 넘고 깊은 바다도 함께 건느자고 속삭이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린다. 변치 말고 돌고돌자던 은가락지의 동그라미도 보인다. 아 내가 정말 혁명을 해도 큰싸움에 나서서 최봉이와의 약속을 지키는 그런 본격적인 혁명을 해야 하지 않을가. 수연이는 오순희네 집에서 여러날 묵다가 도로 김성주동지께서 하숙하시던 집으로 왔다. 그런데 어느날 눈이 평펑 쏟아지는 저녁때였다. 뜻밖에도 어머니가 딸을 찾아서 올라왔다. 유물보따리를 전하고는 이어 돌아설줄 알았던 딸이 인차 내려오지 않아 불이난 걸음을 한것 같았다. 먼길을 걸어온 어머니의 주글주글해진 얼굴로는 눈녹은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눈이 어떻게 지독히 퍼붓는지 잔등, 어깨, 팔 할것 없이 눈이 하얗게 쌓이고 머리수건우에도 눈이 두텁게 앉았다. 《아니 이게 누구요? 수연 어머니가 아니요?》 주인집 며느리가 부엌문을 열고 나서다가 토방으로 올라서는 수연이의 어머니를 띄여보고 어마뜩 놀래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두어번 남편이 있는 류하 삼원포쪽에 갔다가 수연이네 집에도 들린적이 있어서 수연이 어머니를 잘 알았다. 《이 집이 옳긴 옳은지? 우리 수연이가 지금 이 집에 와있소?》 《와있잖구요. 아니 그 먼길에… 어머니! 수연이 어머니가 왔어요.》 며느리가 방안을 향해 자기 시어머니를 부르며 토방으로 올라서는 수연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끌어올린다. 눈이 녹아 얼굴로 물은 좔좔 흘렀으나 눈알은 뽀얗게 얼어 앞을 잘 보지도 못했다. 방문이 열리며 시어머니도 나오고 수연이도 내달아왔다. 《수연이 에미라니? 그 먼길에 어떻게 왔담? 어이구, 온통 눈투성이가 됐군.》 주인할머니도 혀를 끌끌 차며 수연이 어머니의 팔소매를 잡고 어쩔줄 몰라한다. 며느리는 구들비를 들고 나와서 수연 어머니의 팔과 잔등의 눈을 쓸어준다, 수건을 벗어서 털어준다 하였다. 모두 붙잡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로할머니가 계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첨 뵈오우다.》 방안으로 들어온 수연이 어머니는 두손길을 펴서 구들을 짚으며 할머니한테 인사를 차렸다. 《어이구, 무슨 인사를 차리노라고 이러우? 우리 집 부자가 류하쪽에 내려가서 늘 들고날고 하면서 신세를 진다는데… 어서 편안히 앉으라구요.》 할머니는 수연이 어머니의 구들 짚은 손을 잡아일으키며 말했다. 수연이는 너무도 뜻밖에 어머니가 달려드는바람에 어안이 벙벙해서 어쩌질 못하고 서있다가 부엌으로 내려가 어머니가 벗어놓고 올라온 눈투성이 짚신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신을 두드려 눈을 털고 신총도 잡아당겨 일쿼세워놓았다. 신은 먼길을 와서 뒤축이 거의 판이 나고 한짝은 그쪽으로 더욱 뭉개치며 걸었는지 앞총이 여러개 끊어지고 뒤축과 앞총사이에 있는 엄지총 두개도 끊어져나갔다. 그런데 신 두짝이 물을 먹고 얼고 해서 멍석칠 때 날을 달아매는 고드래돌만큼씩이나 무거웠다. 수연이는 판이 난 그 짚신을 쥐고 앉아 눈물을 머금었다. 이런 짚신을 신고 그 멀고먼 눈구덩길을 어째서 올라왔을가. 내가 내려가지 않아서 뒤따라올라왔을가. 내가 떠나온 뒤 썰렁한 찬바람 감도는 집안에서 홀로 괴로움을 참다못해서 빨리 데려가자고 이렇게 불이 난 걸음을 했을가. 꼭 그런것만 같았다. 식구란 식구는 다 잃고 끈 떨어진 뒤웅박같이 된 어머니가 불쌍해서 견딜수 없었다. 수연이는 짚신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주인집 며느리가 짚신을 받아 불이 있는 아궁앞에 놓으며 어서 어머니 있는데로 올라가라고 잔등을 밀어주었다. 지금 수연이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 집 아들이 수연이 아버지와 단짝이 되여 삼원포에 나가있다가 한날한시 압록강가에서 왜놈들과 맞부딪쳐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그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할머니도 눈물을 흘리고 수연이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더욱 아들의 혼백이라도 날아든것 같은 심정이 되여 수연이 어머니의 손을 꽉꽉 쥐였다놓았다하며 울었다. 수연이는 곁에 앉아 두 늙은이의 넉두리를 듣기가 민망해서 얼른 일어서 도로 부엌으로 내려가 주인집 며느리의 저녁끼니 짓는 일을 도왔다. 이날 밤이였다. 어머니는 정말 수연이의 손목을 쥐고 누워 어째서 빨리 돌아서 내려오지 않았느냐고 소곤소곤 물었다. 모녀를 위해서 뒤방 한방을 내주었는데 그 방에 둘이 누워 어머니는 딸이 무슨 딴 맘이라도 먹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해서 자꾸 물었다. 딸은 대꾸가 없었다. 어머니는 분명 딸의 심정에 무슨 변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집 떠난지가 벌써 며칠이냐? 그래 신문지보따리는 전했느냐?》 《전해올렸어요.》 《전해올렸으면 인차 돌아설 일이지 나는 눈이 감도록 기다리며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밥도 제대로 못먹고 앉은방아를 찧다가 올라왔다. 그저 하염없이 길림쪽 하늘만 쳐다보다가 올라왔다.》 전기불도 끄지 않은 방안에 누워서 어머니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래일아침엔 빨리 집으로 내려가자! 글쎄 최봉의 유물을 전했으면 그날로 돌아설게지 무엇때문에 여기서 묵고있느냐?》 《어머니, 전 인젠 아무래도 어머니곁을 떠나야 할것 같아요. 제가 지금 조선녀자로서도 그렇고 또 죽은 사람과의 의리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저는 인젠 집에만 붙어있지 않고 조국광복하는 쌈을 할가 해요.》 어머니는 가슴이 쭝해져서 긴 한숨을 내쉬였다. 꼭 그렇게 맘이 돌아선것 같아 달려올라왔는데 말하는것이 정말 그렇다. 아무리 딸이란들 이 준절한 소리를 네가 그게 무슨 정신빠진 소리냐고 꾸짖을수도 없다.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해졌다. 《어머니, 인젠 내가 없어도 맘을 편안히 가지세요. 그리고 내 생각이 날 때면 그 책짬에 끼워놓고온 사진도 들여다보구… 어째서 그 먼먼 눈구덩길을 달려왔어요. 전 아까 어머니가 신고온 다 꿰진 짚신을 붙안고 울었어요.》 《야 이것아, 그러게 네 에미의 심정을 생각하라는거다. 네가 이런 에미를 두고 외지에서 조국광복하는 쌈은 제대로 하겠니?》 《왜 못하겠어요. 피를 악물고 나서는 쌈인데…》 어머니는 그담엔 또 말을 못하고 큰 숨을 후 내쉬였다. 인젠 송곳끝도 안들게 새로운 결심이 굳어진것 같다. 이런 애한데 공연히 달려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정말 집으로 도로 내려가지 못하겠느냐?》 어머니는 또 물었다. 《어머니, 그 말을 자꾸 묻지 마세요. 그러면 저두 가슴이 아파요. 어머니가 저의 뒤를 따라다니며 저더러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말라고 눈물겨운 하소연을 하면 어떻게 해요? 전 혁명동지들이 그렇게 살라고 잔등을 밀어주는, 그 짐을 받아지고있는 조선녀자이기도 해요.》 수연이는 어머니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부르짖었다. 어머니는 가슴을 내맡기고 누워 기척이 없다. 《그래 네가 신문지보따리를 가져다올린 그 젊은이가 조국광복하는 쌈의 대장같더냐?》 얼마후에야 어머니는 또 딴말을 물었다. 《그러문요. 그러기에 세상떠나간 사람이 그렇게도 김성주, 김성주 하면서 그분을 따라서 혁명해야 조국을 광복할수 있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두손목 잡고 김성주동무의 전사가 되자고도 했지요.》 어머니는 그담엔 딸의 뒤머리만 자꾸 쓸어주었다. 《어머니, 인젠 제가 없어도 그저 제가 늘 어머니곁에 있는것 같이 생각하시며 맘을 푹 놓고 사세요. 제가 쌈에 나선다는게 그 사람뒤만 이어나가는것이겠어요. 독립군을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도 잇는것이고 원통히 죽은 오빠의 뒤도 잇는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어머니, 큰마음으로 밥도 든든히 자시구 잠도 편안히 잘 주무시구 나라가 광복되는 그날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안긴 딸의 머리를 꽉 붙안는다. 《얘 수연아, 그럼 이걸 끼여라. 내가 너를 찾아서 올라오긴 했으나 아무래도 네 마음이 달라진것 같애서 이 은가락지를 가지고 올라왔다.》 어머니는 허리춤에 찔러가지고온 은가락지를 꺼내 가락지 싼 천을 풀어던졌다. 《어머니, 쌈에 나서는 제가 그걸 끼고 어데로 가겠어요?》 《얘, 이게 무슨 옛날 새각시들 끼는 말굴레같은 큰 가락지게 못끼고 다닐테냐. 이걸 내버려두고 가면 이게 농구석에서 혼자 울질 않겠니? 넌 가락지가 우는걸 그저 가락지가 운다고만 생각할테냐? 저승간 최봉이가 농구석에 혼자 숨어서 운다고는 어째 생각을 못하니?》 《어머니!…》 수연이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말아. 끼고 다니며 이 세상에 없는 사람 생각이 날 때면 가락지라도 들여다보려무나!》 어머니도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품속에서 수연이의 손을 찾아쥐고 가락지를 끼워주었다. 그리고는 그 손을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다른 한손으로 다심히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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