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3 회 )

 

3

 

부녀회책임자들이 들끓으며 흩어져갔다. 김형권동지께서 웃방으로 들어가시니 아직도 아래방엔 여러명의 아낙네들이 남아있었다. 형수님께서 무엇인가를 재삼 당부하며 오늘래일 곧 회의를 가질 준비들을 하라고 하시였다. 형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더 끈덕지고 차근차근하게 해나가시였다. 인제 안도로 떠나면 수백리길에 언제 이곳 부녀회사업을 와서 보겠는가! 어느 조직이고 죄다 튼튼해져서 사나운 바람을 헤가르고 나갈 준비는 돼있지만 그래도 그 무슨 미진한 구석은 없는가! 조직원들을 교양하는 문제, 모두다 핵심으로 만드는 문제, 조직을 확대해나가는 문제, 지어는 어느 누구에겐 선전임무를 주지 말고 련락임무를 맡기라는 문제, 또 딴 누구에겐 시어머니교양을 맡기는 문제, 형수님께선 허다한 문제를 놓고 아낙네들과 신신당부를 하신다.

남아있던 아낙네들까지 다들 헤여져간 뒤에야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경주를 데리고 웃방으로 올라와 시아우님한테 길림에서 온 동무라고 인사를 시키시였다. 그리고는 아드님께서 보내신 편지도 꺼내보이시였다.

《채경동무의 누이동생이라구요? 동무가 시위때 일본수비대를 짓조겨대다가 출혈을 많이 했다는 동무요?》

편지를 다 읽고나신 김형권동지께서는 경주를 쳐다보며 큰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경주는 대답을 못하고 수집게 고개를 숙였다.

《그 편상화 생각이 나는군. 발에 맞지도 않는 무거운 가죽신을 신고 길림에서 여기까지 왔던 동무 오빠생각이 나오. 그래 길림에선 다들 잘 싸우고있겠지요?》

《네…》

《그럼 싸우질 않구…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역경에 부닥친들 투쟁을 멈출테요? 역경에 부닥칠수록 더욱 진폭이 크게 들고일어나는것이 우리 공산주의운동방법이요. 동무도 잘 왔소. 여기서 싸우는것이나 길림에서 싸우는것이나 다같은 혁명을 위한 투쟁이요. 몸도 치료해가며 우리 안도쪽에 가서 함께 싸웁시다.》

걸걸한 목소리가 방안을 즈렁즈렁 울리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편지를 또 한번 고쳐보시였다. 당장 피가 솟구치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였다.

《물을 건너간다!》

김형권동지께서는 격정에 넘치는 음성으로 뇌이시며 떨리는 손바닥으로 편지를 소중히 어루쓸었다. 물을 건너가야 한다는 새로운 말이 너무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것이다. 안도를 개척하라니 동만의 통로를 열자는 구상이라는건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더 앞으로 달려나가 누구도 상상할수 없는, 가슴 열리는 앞길을 가리켜줄줄은 몰랐다. 그렇다, 물을 건너가야지. 조국으로 나가야지, 전세대가 밀려난 그 피멍이 든 땅으로 우리의 새세대가 보무당당히 밀고들어가 고통받는 온 계레를 한품에 휘여안고 생사를 같이하는 싸움을 해야 하고말고…

김형권동지께서는 당장 조국땅을 굴러치고 돌아가며 총성을 꽝꽝 울리는것 같은 착각도 느끼시였다. 그런 날이 오면 자신이 선봉에 서서 물을 날아건너야 하겠다는 결심도 다지셨다.

안도로 나가는 의의가 더 하늘을 찌르는 홰불같이 커보이기도 했다.

《떠나자! 빨리 떠나자!》

김형권동지께서는 편지를 재삼 손바닥으로 어루쓸며 속으로 부르짖으시였다.

경주를 데리고 정지방으로 내려오신 강반석어머님께선 딴 생각으로 은근히 큰숨을 쉬시였다. 걸걸한 시아우는 그 무슨 큰 걱정이 없이 경주더러 몸도 치료하고 안도쪽에 가서 함께 싸우자고도 하지만 강반석어머님으로선 경주의 쇠약해진 몸을 어떻게 하셔야 좋을지 알수가 없었다. 어쩐지 경주의 몸은 올 때보다도 못해지는것 같았다. 밤마다 곁에 눕히고 자노라면 잠결에 내는 가냘픈 신음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맥박도 여전히 제대로 뛰지 못했다. 의원을 두번이나 불러다보였는데 침 몇대씩 놓고는 그 무슨 큰병이 아니라는듯 가버리군했다. 어젠 병원으로 가보자고 해도 말을 안듣기에 신의를 불러다가보였다. 신의도 그저 허약해졌다는 소리를 하며 주사 몇대 놓고는 가버렸다. 일이 이렇게 되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래서 어머님께선 큰 시름에 잠겨계시는것이였다. 그러나 웃방에서 내려온 경주는 이어 부엌으로 내려갔다. 저녁차비를 시작하려는것이였다. 무송에 온 이튿날부터 부엌에 내려서서 열성스럽게 어머님을 돕는것이였다. 어머님께선 앓는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만류를 하셨다. 그러나 경주는 듣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에 다지워서 그런지 무슨 일이고 들데놓을데를 알았다. 밤엔 그렇게 앓음소리를 하다가도 부엌에만 내려서면 힝힝 일손에 바람이 났다. 물을 길어들이고 불을 때고 구정물버치를 걸싸게 들어내가군했다. 밥도 잘 짓고 찬도 잘 만들었다. 량식이 걱정되여 하루 한끼는 수수죽을 쑤는데 그것도 제가 다 쒀냈다. 어떤 땐 어머님께서 할일이 없어 부엌바닥에 서서 허허 웃으시군했다.

《어머님께선 방안에 올라가 쉬세요.》

《내가 왜 쉬겠나? 앓는 경주가 올라가 쉬여야지.》

《어머님두 제가 뭐 앓나요?》

이런 땐 정말 얼굴에 피빛이 발깃해져서 앓는 사람같지 않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저녁엔 어머님께서 일을 못하게 엄격히 막으시였다.

《어서 올라가게. 이렇게 하는건 나를 돕는게 못돼. 몸이 점점 더 축이 가는것 같은데 일은 무슨 일인가? 사람이 한두마디 타이르면 들어주어야지. 그래 량식 가지구 밥을 못해먹을가봐 그러나? 나를 도와주겠거든 이담 몸이 훨썩 나아진담에 도와주게.》

어머님께선 부엌으로 내려간 경주를 떠밀며 가볍게 꾸짖으시였다.

《어머님,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전 가만히 앉아있다가 해주시는 밥을 먹기보다는 이렇게 하는게 더욱 편해요.》

경주는 떠미는 어머님께 이렇게 애원했다.

《글쎄 못쓴대두… 앓는 몸으로 자꾸 움직여가지구 더 앓으면 앓을수록 내게 짐이 돼. 오죽하면 편지에도 건강을 회복시켜달라고 부탁을 했을가. 얼른 몸을 고쳐가지구 혁명을 해야지 밥은 무슨 밥을 짓겠나?》

《어머님, 전 지금두 혁명사업을 할수가 있어요.》

《글쎄 안된대두.》

《그럼 어머님, 물 한동이만 길어오겠어오.》

경주는 날래게 몸을 빼며 동이가 놓여있는데로 달려갔다. 그는 동이에 남아있는 물을 얼른 가마속에 쏟아붓고는 또아리를 찾아들고 걷잡을새없이 부엌문을 열고 나갔다. 강반석어머님께선 떡심이 풀린 사람처럼 두어깨를 낮추고 큰숨을 내쉬시였다. 일을 못하게 말려내자는 자신이 잘못인것 같으시였다. 이악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였다. 제 오빠의 가죽신을 아궁앞에서 말려주면서는 언제 이 고생꾸러기들 발에 비단같이 보드라운 신발을 신겨볼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이 착하고 귀여운것들한테 언제 이 막막한 고생을 깡그리 앗아낸 밝은 날을 가져다 안겨줄수 있을가! 어머님께선 눈구석에 눈물이 괴여 바닥에 거의 내려간 쌀항아리속에서 저녁 지을 쌀을 퍼내시였다.

우물에 나와서 물을 긷는 경주는 경주대로 어머님의 따뜻한 정으로 하여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자기 자식인들 그렇게도 극진히 생각해주실수 있을가! 밤이면 내내 손목을 잡고 주무시고 열이 있는가 해서 이마우에 손을 대보고 하신다. 의사를 불러다놓으시고는 고향에 두고왔던 딸이 찾아들어와 앓는다고 하시며 붙들고 앉아 침을 맞히기도 하고 맥이 이렇게 뜬데 일없겠느냐고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다. 오빠가 그렇게도 무송어머님을 못잊어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더니 정말 점점 더 무송어머님이 어떤 어머님이란것이 깊이깊이 깨달아지고도 남는다. 경주는 드레박을 들어올리며 눈물이 흘러드는 입술을 감빨았다.

이러는데 뒤에서 《누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철주가 삽을 들고 나왔다. 인젠 철주도 경주를 누님이라고 불렀다.

《삽은 왜 들고 나왔어요?》

《누님이 물동이를 이고 들어가다가 넘어질것 같애 얼음길에 흙을 깔려구요.》

《무슨 넘어지겠어요?》

철주는 우물가 얼음길에 흙을 펴노라고 법석했다. 그는 흙을 펴다가도 물동이를 이고 흙깐우로 걸어가는 경주의 손을 걷잡아주었다.

경주는 한동이만 긷겠다고 하던 물을 여러 동이 길어다 부었다. 어머님께서 이사갈 날이 박두했는데 물드무에 물은 왜 자꾸 길어다 붓느냐고 하시였다.

《이사갈 때 쏟아버리면 되죠뭐…》

경주는 그저 무슨 일이든 자꾸자꾸 하고싶었다. 후더운 사랑속에 묻히니 약해진 몸에서도 기운이 우쩍우쩍 솟았다.

이날밤 경주는 정말 온몸이 더 괴롭고 열도 높았다. 틀림없이 저녁때 물 한드무를 길어서 이렇게 되는것 같았다. 어머님께서 만류하실 때 그만둘걸 그랬다는 뉘우침도 들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물을 좀 길었다고 몸이 이 지경되니 내가 인제 무슨 혁명을 하겠는가. 혁명을 못하면 어쩐단말인가. 그럼 이러다가 정말 죽는단말인가. 그러나 어쩐지 자기는 자신으로서도 죽을것 같지는 않았다. 창창한 혁명의 앞날이 내다보였다. 모든 고통이 끝나고 그 고통의 대가로 얻어진 환희의 날이 어떤 모습으로 오리라는 생각도 가슴을 친다. 그만치 자기는 억세게 살고있는데 죽기를 어째서 죽는단말인가!

김성주동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감옥에 들어가계신다는 생각은 없고 언제나 길림의 청년대중들속에서 손을 흔들며 대웅변을 하는것 같은 모습만 보인다. 오빠의 얼굴도 보인다. 정말 오빠는 어떻게 되였을가? 아직도 문초를 당하며 고통을 겪고있는가! 몸이 붓고 피가 흐르고 의식을 잃고, 그렇게 처참하게 되지나 않았는가! 아니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오빠를 놓고 이런 방정맞은 생각을 하는건 아닐가! 어쨌든 모든 일이 무섭기도 하고 그립고 궁금하기도 했다. 도무지 정세가 어떻게 되여가는지 알수 없다. 갇힌 동지들이 언제 놓여나왔을리는 없고 밖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이 더 붙잡히지나 않았는지 알수 없다. 아지트는 아직 그 춘택동무의 집을 그대로 쓰고있는가? 놈들이 선창가에 눈을 돌리고 무시로 잔교근방에도 나타나 어실렁댄다는 말이 있었는데 무사한지를 알수 없다. 거길 그대로 아지트로 쓰고있다면 춥긴 또 얼마나 춥겠는가? 모두 언손을 후후 불어가면서 글을 쓰고 등사를 밀고 할테지. 선창조직이 여전히 뒤받침이나 잘해주고있는지?

오순희! 그 앤 아무 일없이 감옥과 아지트와의 련락을 잘하고있는가! 어쩜 그렇게도 그 애가 새매처럼 길림거리를 누비며 잘 싸우고있을가. 그래도 그는 가끔 얼굴에 수심이 짙었지. 신동호는 무엇때문에 그 아름다운 혁명의 새매에게 쓰디쓴 고배를 안겨주고 카륜으로 갔는가! 경주는 안나는 생각이 없었다. 무엇때문에 자기 홀로 이리로 와서 길림이 그리워 이리도 애달파하는지 알수 없었다. 그 불꽃튀는 싸움터에서 힘껏힘껏 싸우다가 몸이 가루로 된들 어떻단말인가!

한참 안타까운 생각을 하며 앉아있던 경주는 새문을 꼭 닫은 웃방에서 재봉기 돌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얼른 다가가 새문을 열었다. 밤은 벌써 자정이 넘었는데 어머님께서도 만경대할머님께서도 주무시지 않고 옷을 지으신다. 무슨 옷인지 어머님께서는 재봉기를 돌리시고 할머님께서는 거의 다 된 검은 옷을 무릎우에 올려놓으시고 바느질을 하고계셨다.

《왜 자지 않고 일어났나?》

경주가 웃방으로 올라가자 할머님께서 물으시였다.

《할머님 일없어요. 그걸 이리 주세요. 제가 하겠어요.》

《일없길 왜 일없겠나? 저녁에 물을 한드무나 길었는데 팔다리가 쏘질 않겠나? 어서 내려가 자게…》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거의 다 된 양복바지의 괴춤을 박으시는것 같다.

《무슨 물을 한드무씩 길었다고 그러세요. 할머니 이리 주세요. 제가 뭐 단추구멍을 호지 못하겠어요?》

경주는 할머님한테서 일감을 빼앗았다. 할머님께서는 만경대에서 검은물까지 들여가지고 허리에 띠고오신 가는새토목으로 양복을 지으시는데 벌써 옷이 거의 다 되였다. 경주도 인제야 이것이 감옥에 계시는 김성주동지께로 들여보낼 양복이라는것을 알았다. 그저 가슴이 뭉클하고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다.

《길림은 여기보다 춥겠지?》

할머님의 말씀이였다.

《할머님 추워요.》

할머님은 두어깨를 낮추며 은근히 긴숨을 내쉬신다. 그담엔 침묵이 흘렀다. 할머님께서도 어머님께서도 말씀이 없다. 밤새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의 옷을 지으시면서도 아드님소리를 안하시였고 할머님 역시 손자의 옷을 지으시면서도 손자에 대한 말씀을 안하시였다. 그저 서로서로 가슴아픈 일은 숨기시고 앉아 공부하는 아드님한테로 공부하는 손자한테로 옷을 지어보내신다는 흔연한 낯빛으로 밤새 바느질들을 하시였다.

아, 속깊은 사랑과 눈물의 옷, 누구 한마디 그 사랑, 그 눈물을 말씀하지 않아도 그 눈물, 그 사랑이 이 양복의 갈피갈피에 배지 않을가! 경주는 또 한편 이 혁명의 집에 엄엄하게 비껴있는 의지와 법도에도 머리가 수그러졌다. 어떻게 어머님, 할머님께서 그렇게도 입밖에 말을 내지 않고 저마끔 가슴속에 아픔을 품고 앉아서 밤새우시며 아드님의 옷, 손자님의 옷을 지으실수 있을가! 이런 엄엄하고 준절한 혁명의 집이 뒤에 산같이 솟아있어서 김성주동지같은 위대한 영재가 우리 혁명의 중심에 서있게 된것이 아닐가!

경주는 거의 새벽녘이 되여서야 어머님과 함께 정지방으로 내려와 누웠다.

어머님께선 손을 내밀어 경주의 손을 더듬어쥐시였다.

《열이 있질 않나?》

《안야요.》

경주는 눈물을 꿀꺽 삼키였다. 어머님께선 손목을 쥐고 한참 계셨다. 또 맥박을 세시는것 같다. 그리고나서는 은근히 또 큰숨을 쉬신다.

《어머님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아요.》

《어서 자게나.》

애써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것 같다. 어머님의 손길이 이번엔 이마우에 와서 사뿐히 닿는다. 경주는 그 애무와 심려를 받아내기가 고통스럽기조차 하였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경주가 눈을 뜨니 어머님은 이미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웃방에서 주무시던 할머님께서 어느새 부엌으로 내려가 조반차비를 시작하시였다. 경주는 얼른 일어나 머리를 쓰다듬고 옷을 입었다. 그는 부랴부랴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아침이면 몸이 좀 가뜬해져서 움직이기가 웬만하니 좋았다.

《아니 할머님께서 어떻게?》

《나두 밥을 잘 짓는다네. 여기 왔으니 손님노릇을 하고 앉았지 만경대에서야 어디 짬시간이나 앉아있는줄 아나? 어서 몸이 아픈데 누워있게.》

《할머님, 저더러 무슨 자꾸 몸이 아프다고 하세요? 그런데 어머님은 어데로 나가셨어요?》

《어데 좀 볼일이 있어서 새벽 일찌감치 나갔다네.》

부엌으로 내려간 경주는 할머님을 떠밀며 제가 가마목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수수쌀을 이남박에 빡빡 문대서 일었다.

밖에서 법석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밤 또 이 무송지구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하신 김형권동지께서 돌아오다가 댁으로 찾아오는 농민 둘을 만나신것이였다.

《참 식전에 수고들을 하셨습니다. 이사를 가기전 한번 찾아가뵙구 떠난다는 인사나 하고 가려 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와주셨군요. 어서들 들어갑시다.》

김형권동지께선 신발을 벗으며 농민들의 등을 미시였다. 농민들은 수염에 성에가 하얗게 불렸다.

《돌아가신 김선생님 은혜를 생각한다면 찾아만 오겠습니까? 우리 동네에선 어제밤에야 이사를 가신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이게 어쩐 일이냐고 떠들었습니다.》

농민이 짚세기를 벗고 퇴마루로 올라서며 말했다. 그들은 방안에 들어서자바람으로 강반석어머님을 찾고 만경대할머님께서도 들어오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데 계시냐고 물었다.

김형권동지께서 부엌으로 내려와 할머님을 모시고 올라가셨다. 할머님께서 정지방으로 올라가시자 새문턱너머에서 텁석부리농민들이 두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넙적 큰절을 올리며 먼길에 얼마나 수고를 하셨느냐고 물었다.

《수고가 무슨 수고겠소? 만리타관에 와서 얼마나 고생들 하시우?》

《저흰 그저 이 댁을 믿고 살아갑니다. 선생님께선 가시였으나 뒤를 이으신분들이 억세니 우리도 맘이 든든합니다.》

한 농민이 눈물고인 눈을 들고 할머님을 송구히 쳐다보았다.

웃방에선 한참동안 안도로 이사를 간다니 이 눈이 강산같은 겨울에 낯선 땅에 가서 어떻게 자리를 잡겠느냐는 이야기들이 벌어졌다. 김형권동지께서는 그저 큰 목소리로 웃으시며 도처에 유청산이라 했는데 살곳이 없겠느냐고 하셨다. 농민들은 김형권동지의 탁 터진 성품이 좋아서 제 집 방안에나 앉은듯 곰방대를 털며 담배질들을 했다.

이러는데 목도리를 휘감으신 강반석어머님께서 부엌문으로 들어서시였다. 어데 갔다오시는지 안색이 파릿해졌다. 목도리엔 고드름이 달리고 이마우의 머리카락에까지 성에가 하얗게 불렸다.

《쯧쯧, 밤새 바느질을 하다가 십리도 넘는다는델 벌써 다녀왔군. 아궁앞에 앉아서 불을 쬐게.》

정지방에 있던 할머님께서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어머님께선 아궁앞으로는 가지 않고 돌같이 언 삼신을 벗고 정지방으로 올라서시였다.

《왜 도로 들고 왔나?》

할머님께서 보자기를 받으며 물으시였다.

《돈을 가지고 오라는거지요. 토목을 가지고 뭘하겠느냐고…》

《온 야속두 해라. 돈이면 어떻구 토목이면 어떤가? 다 한가지지.》

이러는데 김치움으로 나갔던 경주가 큰 사발에 통김치를 담아들고 들어섰다.

그담엔 할머님도 어머님도 아무 말씀을 안하시였다. 어머님께선 얼른 토목보자기를 들어 시렁우의 큰 보퉁이속에 쑤셔넣으시였다. 그리고는 경주 못보게 옷고름을 들어 눈구석을 닦으시였다. 만경대할머님께서 손자에게 양복을 해입힐 가는새토목 한필과 며느리에게 해입힐 굵은새토목 한필을 허리에 띠고 들어오시였는데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오늘아침 그 굵은새토목 한필을 보에 싸들고 삼포를 하는 집에 인삼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셨다. 어머님께선 아무래도 안도에 가면 생활이 더 어려워질것도 같고 또 무슨 약같은걸 구하려 한대도 이미 낯이 넓어진 이 무송만은 못할것 같아 경주에게 먹일 보약을 어떻게 하든지 여기서 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래서 혼자 애를 쓰며 궁리하시던끝에 시어머님한테 굵은새토목을 가지고가서 인삼을 구해오는게 어떻겠느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하세나. 내 생각엔 그래도 자네에게 치마나 해입혔으면 하는 심정으로 뺨따귀를 갈기며 조사하는 세관놈들 눈을 피해서 가지고 오긴 했네만 막힌 사정이 급하니 아래돌 빼서 웃돌 괴기라도 해야지. 구차한 살림에 두서가 있겠나? 내가 보기에도 보약을 써주지 않고는 안될것 같네.》

《어머님 고마워요. 전 저 사람을 보약이라도 써줘서 몸을 튼튼히 만들어 길림으로 돌려보내면 제가 치마를 열벌 해입은것보다 더 기쁠것 같아요.》

이렇게 되여 어머님께서 토목을 보에 싸들고 삼포를 하는 집에 찾아갔는데 토목이 돈이냐고 머리를 젓는것이였다.

어머님께선 마음이 몹시 무거우셨다. 돈을 가지고 오라니 장에 내다가 팔아가지고 가면 될것이긴 하지만 삼포주인이 말하는것을 들어보면 토목 한필을 팔아가지고 인삼 몇뿌리를 사낼것 같지 못했다. 보약을 쓴다 해도 쓸량만치 써야지 쓸량의 반도 못써가지고야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어머님께선 얼마후에야 웃방으로 올라가 찾아온 농민들과 인사를 나누시였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내려오시는길로 가마뚜껑을 열고 지어놓은 밥이 얼마나 되는가를 들여다보고 국가마도 열어보시였다.

《국이 좀 작을것 같네. 국가마에 물을 좀더 부으라구.》

어머님께선 경주에게 말씀하셨다. 경주는 무슨 일인가 해서 어머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웃방에 온 손님들을 어떻게 그저 보내겠나? 이사를 간다고 십리나 되는곳에서 찾아온분들인데…》

《국은 그렇지만 밥이 모자랄것 같잖아요.》

《난 인제 조반을 얻어먹구 왔다네. 그리구 철주도 벌말 제 동무들 집으로 갔으니 거기서 조반을 먹을걸세.》

어머님은 흔연히 말씀하시였다. 철주가 동무들 집에서 끼니를 치를것이란 말씀은 그럴듯싶지만 자신께서 조반을 잡수시고 왔노라는 말씀은 거짓말이 분명했다. 목도리에 고드름이 달린걸 보면 퍼그나 먼길을 갔다오신것 같은데 어느 집에서 벌써 조반을 해서 대접해보냈겠는가! 또 남의 집에 가서 조반을 얻어자시고 다니실 어머님도 아니였다. 경주는 자기가 오던 날 어머님께서 여러명의 청년들에게 저녁을 먹이노라고 자신께선 낮에 잡수신게 내리지 않노라고 하시며 두어숟갈 뜨시다가 마는것을 보았다. 결국 어머님은 늘 이렇게 남을 위하여 자신께선 굶으시는게 아닌가! 경주는 가슴이 아팠다. 그는 어머님의 부드러운 옆얼굴과 힘들고 시장기가 짙어보이는것 같은 긴 허리를 살펴보며 은근히 한숨을 지었다.

이날아침 어머님께선 정말 손님대접을 하노라고 조반을 굶으시였다. 그리고도 끼니가 끝나자 이어 여기서 이십리길도 넘는다는 동네로 부녀회사업때문에 찾아간다고 하시며 떠나시였다. 어제 련락을 했는데 부녀회책임자가 오지 않았다고 하시며 가서 일러놓고 올 일이 있다는것이였다.

몹시도 추운 날씨였다. 짜릉짜릉 살을 에이였다. 녹았다가 얼어붙은 길바닥은 칼날처럼 우죽뿌죽했다. 이따금 세찬 바람까지 불어왔다. 한 십리가량 걷고나니 어머님께선 무척 시장기가 느껴지셨다. 이마에 땀발이 서고 다리맥도 없었다. 어머님께선 걸음을 멈추고 치마끈을 단단히 죄여매시였다. 역시 좀 나았다. 치마끈이 강기를 가져다주는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차츰 또 목에 갈증이 오고 현훈이 느껴지기도 하셨다. 이십리란 길이 이렇게도 먼가싶은 생각도 드시였다. 아득한 벌판엔 사람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짜릉짜릉 찬바람이 칼질하는 눈벌을 어머님 혼자서 걷고계신다. 혼자 걸으시는 그 모습이 거룩해도 보인다. 눈물과 고통을 그렇게도 부드럽게, 그렇게도 억세게 이겨나가시는 거룩한 어머님! 불붙는 이 시대의 민중이 목이 메여 찬송을 올려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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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로 떠날 이사짐을 꾸리는 일이 벌어졌다. 물을 건너가야 한다고 강조하신 김성주동지의 편지가 충격을 주어서 예정했던 날자를 앞당겨 떠날 차비를 했다.

김형권동지께서 이야길 해서 인젠 만경대할머님께서도 편지내용을 아시고 경주도 알았다. 온 식구가 안도가 아니라 바로 조국으로 향하는 심정이 되여 일을 서둘렀다. 경주도 김성주동지께서 혁명을 어떻게 이끌어가시자고 하는것이 눈앞에 환해져 흥분속에서 뛰였다.

아, 조국산천아! 그리운 내 조국 산천아! 지금은 그리운 네 모습이 어떻게 되였느냐?

경주는 여라문살 나이때 떠나온 조국이 그리워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뛰였다.

무송댁에서 이사짐을 꾸리기 시작하자 농민들이 모여들고 이웃부녀회원들도 모여들었다. 청년들도 와서 일손을 도왔다. 그저 모두들 섭섭한 심정으로 짐꾸릴 새끼도 꼬고 물건 넣을 상자도 뚝덕거리며 만들어주었다.

김형권동지께선 돌아가신 형님께서 쓰시던 물건부터 꺼내다가 상자에 넣기도 하고 마대에 싸기도 하셨다. 중요한 물건은 마대에 싸서 상자에 넣으려는것이였다. 책이 여러 상자 되였다. 만경대에서 강동으로, 강동에서 다시 만경대로 그리고는 줄곧 북을 향해 중강진, 림강, 팔도구를 거쳐 무송에 다달은, 형님께서 그렇게도 열독하시던 책이 오늘은 또 딴고장으로 떠나간다. 의서도 많지만 계몽기에 찍은 철학도서도 많다. 어느 책이나 다 형님의 고매한 정신세계에 힘을 준 책들이다. 맑스주의고전들이 수십책 있는데 그런 책들은 장마다 붉은줄을 그어가며 읽으시였다. 지금은 지하에서 모든걸 다 잊으시고 집이 이사를 간다 어쩐다 해도 감감 모르고계시겠지만 이 책들을 읽던 시절에야 얼마나 기운도 좋고 쩡쩡 울리는 웅변으로 만사람을 격동시키셨던가.

김형권동지께서는 책을 꾸리시려니 어쩐지 지나온 날의 추억이 울려와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형님께서 쓰시던 물건중엔 혁명의 한 방편으로 열성스럽게 해오신 의사직업에 소용된 기구도 많았다. 주사기와 진찰기, 약장도 큰것이 둘이나 놓여있다. 무슨 약으로 쓰자고 해서 그랬는지 각가지 풀뿌리를 캐다가 말려둔것도 있다. 김형권동지께서는 그런것도 하나 버리지 않고 마대에 넣어서 소중히 묶으시였다. 청년들이 이사짐을 묶다가 김형직선생님께서 쓰시던 침통을 발견하고는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침들을 꺼내보았다. 한 청년은 굵은 동침을 꺼내들고 자기가 어렸을 때 선생님한테서 이 침을 맞다가 버릇없이 발길질을 하며 아고고소리를 질렀다고 이야기를 했다. 청년들이 모두 웃었다.

웃방과 정지방에 있는 물건들도 내다가 꾸리기 시작했다. 역시 이 방에도 책이 많았다. 길림으로 가신 김성주동지께서 읽으시던 책만 해도 몇상자 잘되였다. 거기에 김형권동지께서 읽으시던 책과 철주가 읽고쓰고하던 책이 있는가 하면 어머님께서 부녀회공작을 하시며 무얼 적어두신 책도 한보따리 잘 되였다. 농민들은 책부터 내다 꾸리였다.

만경대할머님과 어머님께서는 길림감옥으로 보낼 양복을 차곡차곡 개여서 궤속에 간수해넣으시였다. 편이 있으면 여기서 보내고 떠나려던것이 그렇게 못되였다. 그저 그 양복을 만지려면 어머님께서도 할머님께서도 서로 은근히 가슴이 찌르르해지신다.

어머님과 할머님께서는 또 이 복새판에서도 경주에게 먹일 인삼을 꿀에 담그시노라고 여념이 없었다.

할머님께선 병에 꼴깍 찬 꿀을 큰 단지에 쏟아부으며 인삼을 물에 씻지 말고 털어서 한뿌리씩 단지속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님께서는 방금 삼포에서 캐내기라도 한듯한 싱그러운 흙냄새가 풍기는 수삼을 푸른 이끼속에서 한뿌리씩 털어내여 단지속에 넣으시였다.

경주는 눈물이 글썽하여 밖으로 책을 들어내갔다. 그는 어머님께서나 할머님께서 말씀은 안하시였으나 그 인삼을 자기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렇게도 정성을 다해 꿀에 담그신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경주가 다시 짐을 가지러 방안으로 들어서는데 어머님께서 유지로 싸동인 약단지를 들고 일어서시였다.

《너무 고달프게 뛰질 말게. 앓는 사람은 제가 제몸 조심을 해야 하느니.》

어머님의 말씀이였다.

《어머님! 전 정말 그런 말씀을 자꾸 해서 송구해 못견디겠어요.》

《송구할건 또 뭐겠나. 일체 그런 말은 말구 안도에 가선 이 약을 쓰세. 할머니가 띠고온 토목을 팔아서 사온 약이니 먹는 사람도 그 성의를 생각하고 먹어야 하네. 인삼은 약이 못돼도 할머님의 성의는 약이 될걸세.》

경주는 어머님을 쳐다보고 할머님을 쳐다보았다. 입이 비죽비죽 일그러졌다.

《어머니… 할머니…》

경주는 벽에 몸을 쓰러뜨리며 울음을 터쳤다. 어머님께서 약단지를 가마뚜껑우에 놓고 경주의 곁으로 다가와 잔등을 쓸어주시였다.

《우지 말라구. 어떻게 하든지 몸이 빨리 추서서 혁명을 해야지. 길림에서도 그렇게 되길 바라서 너를 말파리에 태워보내질 않았겠니. 오누이가 혁명의 한길에 서서 굳건히 걸어나간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데 있겠니.》

《몸을 튼튼히 해야 되느니라. 하루이틀 싸워서 조국광복을 해내겠니. 뜻을 멀리하고 싸워야 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 나도 풍상을 겪으리만치 겪었기때문에 그런 리치는 알고있단다.》

어머님의 말씀끝에 할머님께서 곁으로 오시며 말씀하시였다.

《할머님!》

경주는 얼른 돌아서며 할머님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오냐, 우지 말아.》

할머님께서도 경주의 머리를 쓸어주시며 달래시였다.

《할머니, 할머닌 그 수천리 먼 땅에서 토목을 허리에 띠고 들어오시여 절 이렇게…》

경주는 눈물이 비오듯하는 얼굴을 들고 할머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부르짖었다.

《어서 그치래두…》

할머님과 어머님께서도 모두 량볼이 젖어내렸다. 토목에 깃든 가난의 설음이 뼈아프게 울리기도 하고 그것을 이렇게 각별한 일에 쓰게 되는 일이 기쁘기도 하시였다.

방안에서 이렇게 눈물의 사연이 벌어지고있을 때 밖엔 말리허에서 온 청년 둘이 달려와서 급한 정보를 전했다. 어제 일제의 밀정들이 약장사로 가장하고 자기네 지역에 두놈이나 기여들었댔는데 조직에서 붙잡아 두놈 다 처단해버렸다는것이였다.

《바로 안도쪽에서 기여들었답니다. 안도엔 그놈들 둥지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놈들을 왜 그저 죽이기만 했는가? 그 비밀을 뽑아내고 죽여도 죽일것이지.》

이사짐을 꾸리던 사람들이 청년들을 둘러싸고 서서 소리쳤다.

《비밀을 뽑아내자고 애썼지만 놈들이 비밀을 불어야 말이죠.》

《그런데 안도쪽에서 기여들었다는 말은 어데서 났어?》

《그놈들이 약을 안도에서 구해가지고 팔러 다닌다는겁니다. 그러면서 정 다그치니까 공산당을 색출하라는 소임을 받았다는것입니다.》

《어느놈한테서?》

《글쎄 그걸 어데 댑니까?》

마당에선 법석 끓었다. 말리허에서 달려온 청년들은 숨을 헐헐하며 땀들을 씻었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일체 말씀들을 거두라고 하며 책을 넣은 상자에 널판자를 대고 못을 땅땅 박으시였다. 역시 정세는 한결 더 급해지는것이 틀림없다. 안도에 《뱀눈》의 둥지가 있다고 보는것은 놈들의 큰줄이 뻗쳐들어와있다는것을 말하는것이다. 이놈의 줄을 찍어야 한다. 끊어야 한다. 어떤놈들이 기여들어왔는지 그놈들을 색출해내서 쓸어버려야 한다. 김형권동지의 이마우엔 피줄이 일어서고 쥐가 뛰놀았다.

말리허의 청년들도 달려들어 일을 도왔다. 이사짐이란 이사짐은 모두 상자들로 꾸렸다. 옷보퉁이도 웬만한것은 상자속에 넣었다. 김치움에서 독 둘을 들어내다가 새끼로 얽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하든지 김치가 들어있는 독들은 그대로 말파리우에 얹어가지고 갈 료량을 하며 정성을 들여서 묶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이튿날아침 무송댁에선 안도를 향해 이사를 떠나시였다. 말파리 세대가 짐을 싣고 북풍이 휘몰아치는 눈발속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무송거리의 숱한 사람들이 배웅을 나왔다. 거리주변 동네들에서도 농민들과 아낙네들이 모여왔다.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작별했다.

김형권동지께서는 말파리앞에서 길을 헤쳐나가시였다. 할머님과 어머님, 철주까지도 얼마간은 말파리의 뒤를 따라 걸었다. 경주도 막대기를 짚고 식구들속에 섞였다. 눈이 지독하게도 퍼부었다. 어디가 어딘지 보이지도 않았다.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꺾어지게 불며 사람들을 공중으로 날려보낼것도 같았다.

《조심들 하세요.》

사람들이 퍼붓는 눈발속으로 따라나오며 소리쳤다.

《념려 말라구. 잘들 있으라구.》

어머님과 할머님은 눈발속에서 손을 흔드시며 화답하시였다. 사람들은 아스라하게 멀어지는 그 음성을 들으며 모두들 눈물을 머금었다. 눈발은 갈수록 점점 더 뽀얘지고 북풍이 맹수처럼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 높디높은 인품들과 속깊은 눈물의 후더운 인정과 억센 의지로 혁명을 밀고나가는 무송일가는 조국으로 진격하는, 그 진격로우의 또 다른 준엄한 지역의 개척을 위해서 힘차게 떠나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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