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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1 회 )
3
김성주동지께서 체포되시였다는 소식을 삼원포에서 접한 최창걸은 지체없이 길림으로 떠났다. (김성주동무가 체포되다니? 그것이 사실이겠는가? 사실이라면 길림조직은 무엇을 하고있었단말인가?) 최창걸은 너무도 억울하고 눈앞이 캄캄해서 속으로 부르짖으며 솟구쳐오르는 분노와 울음을 강잉히 참아눌렀다. 그가 길림에 도착한것은 캄캄한 밤이였다. 그는 수시로 옮기는 아지트가 어데인지를 몰라 터지는 가슴을 붙안은채 김성주동지께서 드나드시던 집들로 찾아다녀보았다. 그 집들에서도 모두 경황이 없이 맞아주었다. 최창걸은 도로 나와 그이의 발자욱이 땅이 낮아지게 인찍혀진 북대가, 하남가 우마항 거리를 한숨을 쉬며 돌았다. 그 함성의 대시위, 하늘땅 뒤흔드는 정열의 노도가 이 거리에 다시 굽이칠수 있게 할수는 없겠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아, 오너라, 물러갔던 력사여! 다시 이 거리로 와서 이 시대를 고쳐 장식하라! 다시 이 거리를 함성과 노래로 뒤덮으라! 이런 흥분속에서 어덴지도 모르고 자꾸 걸었다. 그는 어느 어두운 골목을 빠지다가 앞에 시꺼먼 산같은것이 막아서는바람에 우뚝 섰다. 이게 무언가? 이게 바로 그 감옥이 아닌가. 위치를 짐작해보니 틀림없는 감옥이다. 감옥, 아 이 감옥에 바로 김성주동무가 들어가있단말인가! 그는 저도모르게 마른 풀밭을 가로질러 감옥담장가까이로 접근해갔다. 주위가 호젓했다. 그는 무엇이 나타나지 않는가 해서 사방을 경계하며 걸었다. 담장가까이에 이르니 담장우의 가시철조망이 그 무슨 사람을 덮칠 철그물같이도 올려다보인다. 최창걸은 어둠속에서 담장벽을 어루쓸며 한발한발 걸어나갔다. 목이 메여올라 무슨 실수라도 할것 같았다. 이 담장만 아니면 《성주동무 내가 왔소.》하고 소리칠수 있고 지척에서 또 김성주동무가 내다보고 《창걸동무!》하고 소리쳐줄수 있지 않을가! 이런 지점에 와서 한사람은 안타까이 담벽을 어루쓸고 한사람은 감방안에서 혼자 고통스러운 자기 생각에 잠겨있고 서로 모르는 허무가 두사이에 천리처럼 흐르고있다. 이런 절통한 일이 어데 있는가! 이 강도사회의 담벽, 이걸 그냥 둔단말인가. 이안에 김성주동무가 갇혀있는데… 김혁이 어두운 조선의 밤하늘에 나뜬 찬란한 새별로 노래한 그 한별이 이 담장안 어둠속에 갇혀있는데 이 담벽을 그냥 둔단말인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대렬을 짜고 와와 함성을 지르며 달려와 이 담벽을 쳐부시고 감방문을 마스고 들어가 별을 맞들어내올수는 없을가! 황홀한 별, 민족의 별, 김성주, 김성주, 우리가 그 모습을 다시 3천리 맑은 하늘에서 쳐다볼수 있게… 최창걸은 목이 메여 속으로 부르짖으며 담벽을 어루쓸어나갔다. 담벽안에 서있는 버드나무가 머리를 풀어헤친 슬픔에 잠긴 녀인같이 가지를 드리우고 서서 그를 굽어본다. 《김성주동무, 내가 왔소. 창걸이가 왔소. 성주동무가 여기 갇히다니? 우리가 잘못했소. 혁명할줄 몰랐소. 너무도 혁명할줄 몰랐소. 우린 인제 방향타를 잃어버리고 어디로 항행해야 하오? 물결 높은 이 바다를 어떻게 노저어가야 하오? 성주동무! 한별동무!》 최창걸은 담벽에 볼을 붙이고 어린애 울듯하며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또 담벽을 어루쓸며 걸었다. 감옥벽이 끝나자 최창걸은 뚜렷한 향방도 못잡은채 또 거리를 걸었다. 자기마저 철쇄에 묶이우기라도 한듯 발이 무거웠다. 구름이 낮게 드리웠던 하늘에선 비까지 구질구질 내렸다. 그는 속으로 울고 또 울면서 거리로 걸어갔다. 얼굴에선 비물이 눈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문대며 걸어나가다가 선창가로 뻗은 언덕길에서 차광수를 만났다. 《여… 광수동무 아니요?》 최창걸이 어둠속에서 물었다. 《그렇소. 창걸동무!》 최창걸은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주먹으로 어깨를 쳤다. 《그래 일을 어떻게 했게 사태를 이렇게 만들어놓았는가? 그리고도 무사태평으로 거리를 활보해?》 《울지 마오. 할말이 없소. 나도 교하에 나가있다가… 그런데 창걸동문 언제 올라왔소?》 《나도 방금 왔소. 교하에 나가있었어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도록 모든 사업을 집어내던지곤 나가지 않았댔겠지? 누가 책임을 졌댔소? 호위를 누가 책임졌댔소?》 《너무 흥분하지 마오. 오늘밤 심각한 검토회의를 하자고 하오.》 차광수는 차광수대로 가슴속에서 홍두깨가 뻗쳐올랐다. 교하에서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소식을 접하고 종일 굶으며 달려왔는데 주먹을 부르쥐고 책임을 묻자고 한 리상준이 아지트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차득보, 춘택이들을 내띄워 찾아오라고 하고 달려나온 길인데 최창걸이 따지고드는바람에 자신과 상준에 대한 감정이 또 울컥울컥 치밀었다. 《분하오. 검토회의를 연들 무엇하오. 우리 혁명은 해를 잃어버린 그믐밤이 되였소.》 최창걸은 제가슴을 두드렸다. 《그래 거기 사업은 어떻게 하고 올라왔소?》 《무슨 소리요? 다 집어던지고 올라왔소. 너무도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통보가 날아왔기에…》 최창걸의 말에 잠간 생각에 잠겼던 차광수는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 리갑무로인네 집엘 좀 가봅시다. 김성주동무가 체포되였다는바람에 로인이 졸도해 넘어졌다오. 아주 절명이 될것 같다는 련락이 왔소.》 그래도 차광수가 치미는 분노를 누르며 최창걸의 손목을 이끌었다. 최창걸은 경황없이 이끌려갔다. 그들이 리갑무로인네 집으로 오니 로인은 정말 회장이 체포당했다는 말을 듣고 두주먹을 부르쥐고 이발을 악물고 나가넘어졌다. 이웃에서들 모여들고 박승훈이 와서 주사를 놓는다 어쩐다하여 피기가 살아나고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로인의 기색은 숨이 넘어간것 같은 기색이였다. 차광수가 로인을 흔들며 가슴에 꽉 다가붙인 두주먹을 펴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펴지기는커녕 돌보다도 더 굳었다. 차광수는 저도모르게 그 돌같은 주먹에 호되게 얻어맞는것 같았다. 나라의 장래를 촉탁한 회장을 생각하는 그 절개를 두주먹에 무섭게 뭉그러쥐였다. 이 굳은 절개, 굳은 마음을 우리가 깊이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차광수와 최창걸은 김성주동지의 체포에 대한 자기들-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책임을 더욱 아프게 통감하며 로인네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북산 약왕묘지하실을 향해 걸었다. 놈들이 무슨 눈치를 챘는지 선창쪽에 눈을 팔며 싸대는 조건에서 약왕묘지하실로 아지트를 정한것이였다. 차광수는 비통스러운 심정과 함께 인제 혁명을 어떻게 밀고나가야 하는가 하는 큰 근심이 안겨들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김성주동무밑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되였고 그것이 곧 혁명이였는데 인젠 그렇게 할수 없는 정황에 부닥쳤다. 대렬속에는 누구도 혁명을 틀어쥐고 내밀어줄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당장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차광수는 가슴이 답답해서 터벅터벅 걸었다. 늦가을 비인데 비는 어째서 이리도 억수로 퍼붓는지… 하늘도 눈물폭포를 드리우는것이 아닌가. 한편 차득보는 울기가 뻗쳐서 리상준이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도 김성주동지가 체포된 날부터 정말 혁명이 판이 난것만 같은 절망감도 느끼고 마치 자기의 책임인것만 같은 자책감도 들고 하여 안절부절을 못해했는데 오늘밤 교하에서 올라온 차광수한테 한참 닦이우고보니 자책감이 더 커지기도 하고 그만큼 상준에 대한 반발심도 생겨서 주먹을 부르쥐고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상준이를 찾았다. 거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난 차득보는 기관구에 나가보았다. 그런데 기관구내에서는 상준이 타고 갔다온 기관차는 푸파푸파 연기를 뿜어올리는데 상준이는 어데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 기관차의 화부들과 물어보니 역에 닿는 길로 어데 갔는지 모르겠다는것이였다. 《괘씸한것…》 그는 더욱 울대뼈가 두드러져 올랐다. 혁명이 시련에 부닥쳐있는데 오늘도 기관차를 몰고 장춘에 갔다왔으면 아지트부터 찾아와야지 지은 죄가 커서 동지들 만나기 부끄럽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혁명은 아예 그만두자는겐가? 그는 분기를 삭이지 못한채 수리공장으로 가보았다. 수리공장에선 사람을 집어삼키는것 같은 쇠소리가 귀창을 우볐다. 시꺼먼 천정밑에서 수리공장 단야공들이 우글거리며 돌아갔다. 단야공 하나가 달려오더니 차득보를 꾹 찌르며 웬 청년이 와서 상준이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 《여기에 이따금 오던 청년이였소. 키가 크고…》 《알겠소.》 그제야 차득보는 자기먼저 춘택이가 와서 상준이를 데리고갔다는것을 알고 씩 큰숨을 내쉬였다. (책임추궁을 받아야 해. 어디 보자!) 차득보는 비를 맞으며 북산을 향해 빠른 걸음을 다그쳐갔다. 《엣 칙어!》 그는 후줄근히 젖은 옷을 뒤흔들어 털며 약왕묘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엔 공청원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길림에 있는 청년들뿐만아니라 지방에 나가있던 청년들도 여럿이 왔다. 카륜의 리병모, 고유수의 김혁, 계영춘이도 그리고 최창걸도 와있다. 모두 빙 둘러앉아있는데 무서울만치 엄숙한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너무 엄숙하고 심각한것 같아서 차득보는 오래간만에 보는 동무들과도 악수를 못하고 경황없이 자리에 앉았다. 다들 지하실바닥에 죄여앉았는데 차광수만이 등사판이 놓여있는 대를 짚고서서 불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청년들을 내려다본다. 어느 청년이고 죄다 옷이 후줄근하게 젖고 머리도 젖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교하의 일이 급해서 그리로 나가긴 했댔으나 떠나가면서 왜 일을 빈틈없이 조직해놓고 나가지 못했던가. 그저 상준동무에게 한마디 신변호위를 부탁한다고 말해놓은것으로 마음을 놓고 나가있었으니 내가 일을 잘했다고 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아까 아지트에 도착해서는 두눈을 부릅뜨고 리상준동무를 불러오라고 으르대기도 했댔습니다. 나는 상준동무에게 책임을 묻기전에 나자신을 심각히 검토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차광수는 뭉그러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리상준이를 치는 비판회의가 열리는가 했는데 차광수는 자기 량심을 두드리는 뜨거운 토론을 하고있다. 역시 수양이 있는 청년이니 자기 립장에 부합된 자기 소리를 해야 되겠다는 리성으로 돌아간것 같다. 차득보는 자신도 상준이에게 뼈아픈 말을 해주자고 벼르고 나왔는데 차광수의 토론에 가슴이 쭝해졌다. 《우리 혁명에 있어서 지도자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지금 혁명이 역경속에서 시련을 겪고있는데 지도자를 감옥에 들어가 앉아있게 하고 어떻게 앞을 열고 나갈수 있는가? 김성주동무가 없으면 혁명도 없고 우리 매개인도 없습니다. 김성주동무와 혁명, 혁명과 우리 매개인은 하나이며 전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혁명앞에 가슴터지는 비극을 조성해놓고야 이 진리를 이야기하며 가슴을 치고있습니다.》 차광수는 또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쪽옆에 앉아있던 최창걸이 주먹을 들어올리며 일어섰다. 열기 오른 두눈이 무서웠다. 눈동자가 온통 불이 되여 린같은 빛을 펄펄 날리였다. 《나도 괴롭습니다. 나도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삼원포에 가서 공작한다고 해서, 길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책임이 없다하며 잘못이 없다 하겠습니까. 혁명의 운명문제가 심각하게 되였지만 나는 관계가 없는곳에 가서 공작하고있었으니 책임이 없다고 배짱을 부릴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게 다 우리의 심각한 과오입니다. 그리고 상준동무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글쎄 아지트를 책임지고있으면서 김성주동무의 신변보위를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하였습니까. 난 동무의 심장에 대고 묻고싶습니다. 우린 혁명에 자기의 전체를 내바치고 싸우고있습니다. 피와 살과 심장과 목숨을 다 내바치고 싸우자고 합니다. 그런데 동무는 자기를 어느 정도로 혁명앞에 바치자고 하는가? 물론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내가 지나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동무의 가슴이 자책의 감정으로 몸부림치고있으리라는것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묻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최창걸은 제가슴을 두드리며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모두 상준이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얼굴빛이 새까맣게 된 상준이 청년들속에 끼여앉아있다. 두어깨를 낮추고 앉아 인젠 눈물도 흘리지 못한다. 그러던 리상준은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얼굴이 더욱 숯등걸같이 시꺼멓다. 타들어간 입술을 비죽비죽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난 할말이 없습니다. 나에게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나때문에, 나때문에 혁명앞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였다는걸 생각하면…》 리상준은 말을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지켜보던 숱한 청년들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차광수도 안경낀 두눈을 슴벅거리며 상준이를 앉으라고 했다. 리상준이 자리에 주저앉자 선창조직의 춘택이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상준동무의 책임이 큽니다. 이 잘못에 대해서 목숨을 내대라고 해도 목숨을 내대야 할줄 압니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싶은것은 이 사태가 상준이 한동무에게만 죄가 있고 딴 사람에겐 죄가 없다 이렇게 말할수도 없다는것입니다. 우선 나는 내 죄를 말해야겠습니다.》 춘택이 역시 주먹으로 제가슴을 두드렸다. 《선창에서 일하면서 더구나 선창조직을 책임지고 무시로 아지트에 들락날락하면서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돌보지 못했으니 나에게 죄가 없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청년 하나는 그건 책임한계를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소리라고 고함쳤다. 그 소리를 듣는 차득보는 가슴이 더욱 죄여들었다. 춘택이의 말이 옳은것도 같고 책임한계를 흐지부지하게 만든다는 말도 옳은것 같았다. 그러면서 차득보는 하나의 엄중한 사태를 놓고 혁명의 깊이에 이끌려들어가며 자기와 혁명, 혁명과 자기에 대한 파악이 깊어지는것 같았다. 장내는 와글와글 끓었다. 모두들 상준이를 비판하면서도 제가슴들을 탕탕 쳤다. 남을 치는 매질에서 제아픔을 더욱 통절히 느끼는것이였다. 차광수가 조용들하라고 소리쳤다. 《물론 다들 책임이 있습니다. 상준동무도 책임이 있고 전체 동무들이 다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책임이 큰건 납니다. 김성주동무의 지도밑에서 큰일 작은일 맡아서 해온 내가 성주동무의 신변호위문제를 소홀히 했습니다. 나는 내 실책을 조직앞에서 솔직한 심정으로 다시한번 고백하는 바입니다. 나는 아까 리갑무로인네 집에 가서 리갑무로인이 김성주동무가 체포되였다는 말을 듣고 두주먹을 틀어쥐고 기절해 넘어진것을 보고왔습니다. 그 주먹을 펴드리자고 신고를 했지만 도저히 펴드릴수가 없었습니다. 돌같은걸 앞가슴에 포개붙이고 이를 악물었는데 숨기가 없었습니다. 이 주먹, 이 돌, 우리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이걸 놓고 깊이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리갑무로인의 심장속에 있는 그 결곡한 마음보다, 김성주동무를 지키려는 리갑무로인의 그 절개보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절개가 몇배로 순결하고 강해야 한다는것을 생각하잔말입니다. 호상비판도 좋지만 저마끔 제가슴에 있는 이것을 생각하잔말입니다.》 청년들이 모두 신중히 들었다. 리상준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것 같은 얼굴을 쳐들며 자기를 조직에서 제명시켜달라고 했다. 그러자 성미 급한 한 청년이 그런 허튼소리 말라고 마주 대들었다. 《인젠 투쟁도 안하고 손을 씻고 나앉아 편안히 살겠다는 소리요?》 《너무 소리치지 마시오.》 차광수도 도끼질하는 청년을 눌러앉히였다. 이때 뜻밖에도 상준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차광수가 짚고 서있는 대우에 갖다놓는다. 권총을 소지할 자격이 없다는 자책의 표시이다. 이번엔 차득보가 또 일어섰다. 상준이에게 눈물의 동정이 가는 심정으로 되여 일어섰다. 그는 혁명도 혁명대로 해내면서 기관구에서 떨어져선 안된다고 내내 기관차를 몰고 다니는 상준이가 이 순간엔 어질고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이 너무 순해서 순한 그만치 아픈 매질만 하고싶지 않아졌다. 《상준동무도 물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동무한테만 절대적인 책임을 묻고 그담 동무들은 다 얼굴을 돌리고있을 일은 아닙니다. 책임이 크고 작을뿐이니 어느 동무에게나 다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나도 책임이 큽니다. 나도 매일같이 아지트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도자를 호위하는 문제에 대해선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럴뿐만아니라 난 처음 중요한 임무를 맡고 카륜에 갔던 일도 있습니다. 그때 내가 조직이 준 임무를 관철해냈다면 오늘의 이런 사태는 꿈에도 있을수 없었을겝니다. 상준동무가 범한 잘못이나 내가 범한 잘못이 무어가 다릅니까. 그러기때문에 난 오늘밤 상준동무에 대한 비판을 나에 대한 비판으로 울면서 접수합니다. 나도 멍텅구리고 상준동무도 멍텅구립니다.》 차득보는 검은 볼편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기까지 했다. 상준이에 대한 비판과 자기비판들이 밤새도록 벌어졌다. 초를 두대나 거의 태워서야 장내의 분위기는 얼마쯤 가벼워졌다. 이때 뜻밖에도 지하실안에 오순희가 들어섰다. 모두의 눈길이 오순희에게로 쏠리였다. 《저- 김성주동지로부터 조직에 지시가 나왔어요.》 《뭐 지시가?》 차광수는 눈이 커져서 물었다. 《네. 오늘부터 김성주동지에 대한 면회와 사식이 허락되여 제가 갔다왔는데 사식을 담았던 대바구니짬에 쪽지를 끼워 내보냈어요. 그래서…》 오순희는 품에서 얇은 종이말이를 꺼내서 차광수에게 주었다. 차광수는 쪽지를 받아들고 서서 글줄을 훑어내려갔다. 가슴이 쿵쿵 뛰였다. 이때까지 널판장을 울리며 기염을 올린 그 뒤번지는 가슴우에 사랑의 글발, 힘을 주는 글발이 날아들었다. 바로 비판을 받는 리상준에게 해야 할 일들을 친절히 적어 내보내주신 지시문이였다. 차광수는 두눈을 섬벅섬벅했다. 《무슨 소식이 적혀있소?》 《가만 있소. 내가 읽겠소.》 김혁이 묻는 말에 차광수는 대꾸하며 쪽지를 펴들고 서서 읽었다.
상준동무! 동무들이 기운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더 분발해서 일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감옥이 혁명을 중단시킬수 없습니다. 감옥밖이나 감옥안이나 다 투쟁장소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체포투옥된것때문에 동요하거나 실망해서는 안되며 계획되였던 일을 멈춰세워도 안됩니다. 또한 싸움을 흥분속에서 진행해서도 안됩니다. 계획한대로 투쟁을 침착히 조직하며 거기에 기민성과 지혜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우리의 투쟁방향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광범한 전선으로 떠나간 동지들이 조직을 꾸리고 확대하는 일을 더 짜고들어 밀고나가도록 지도를 주어야 합니다. 새 전선인 《남만청총》산하단체들의 지역으로 나간 동무들의 사업이 념려됩니다. 그 광범한 지역엔 청총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눈을 뜬 지역들이 많긴 하지만 더 많이는 광범한 지역의 청년조직들이 아직 완고한 민족주의청년조직으로 립장을 드티지 않고있습니다. 이 처녀지에서 새로운 불길이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거기 나간 동무들의 사업을 수시로 알아보고 방조를 주어야겠습니다. 어쨌든 이 단계의 중요한 사업은 화전에서, 길림에서 억세게 자라난 우리 청년공산주의자들이 광범한 지역으로 조직을 확대해나가며 일제와 반동군벌의 침해를 물리치고 넓은 지역에서 새로운 혁명의 불길에 세차게 타오르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의 사업은 이 방향으로 힘있게 매진해나가야 합니다. 고유수, 카륜 등지의 일도 계획해놓은대로 밀고나가야겠습니다. 감옥과의 련락은 오순희동무가 짓도록 하되 각별히 주의해서 하십시오. 경주동무가 박승훈선생의 치료를 받게 된 모양인데 그 일은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박승훈선생의 뒤에 놈들의 감시가 붙지 않았는가를 항상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총총히 이만 그칩니다.
지시문을 읽고난 차광수는 손수건으로 눈가장을 닦았다. 리갑무로인네 집에서 나와 거리를 걸어오며 막막했던 심정이 일순간에 다 풀리였다. 자기가 어떻게 혁명을 틀어쥐고나가는가고 불안해했댔는데 역시 감옥에 들어간 김성주동무는 혁명의 지휘봉을 놓지 않고 진군구령을 주고있다. 인제야 앞이 환해지고 할 일도 명백해진다. 눈물이 나게 고마왔다. 한편 지시문에 충격받은 리상준은 벽을 두드리며 목놓아울었다. 심각한 죄책으로 두드려맞는 자기앞으로 신임과 사랑의 첫 지시문이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뜨거운 사랑의 줄기찬 강물은 여전히 자기를 감싸안으며 굽이쳐나가고있다. 《김성주동무!》 상준이는 피가 터지게 주먹으로 벽을 두드렸다. 청년들도 누구나 다 눈들을 슴벅슴벅했다. 그렇게 대를 세우며 리상준을 추궁하던 울대뼈 두드러진 청년도 손등으로 눈굽을 훔쳤다. 어쨌든 방안의 분위기는 일조에 새로와졌다. 거칠게 뛰던 감정들우에 사랑의 물멀기가 흘러들어 모두 기쁨을 이기지 못해했다. 얼마후엔 옥중지시를 받들고 벌려야 할 사업이 토의되였다. 차광수가 가운데자리로 나앉으며 말했다. 《우린 빨리 일을 서둘러야겠소. 옥중에서 지시가 나오는데 우린 그 지시를 받아가지고 사업을 번개치듯 밀고나가야 하겠소. 우선 각 지역으로 조직원들을 파견하는 문제가 급하오. 어데서든 지금 길림에서 일어난 비상사태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면 이게 웬일이냐고 충격을 받고 손맥을 놓을수가 있소. 그러지 않도록 더 힘을 내서 일하라고 각 지역에 련락원들을 띄워야겠소. 그리고 창걸동무는 당분간 길림에 남아있어야겠소.》 《그건 왜 그러오?》 《그럴 일이 있소. 이따가 말해주겠소.》 《알겠소.》 차광수는 각 지역으로 파견할 명단을 짜면서 남만지역에는 누굴 파견할가고 얼굴을 들고 방안을 돌아보았다. 《창호동무, 동무가 남만쪽으로 가서 동요가 일어나면 눌러놓아야겠소. 거기가 제일 중요하오. 지금 불을 지피자고 하는곳인데…》 《가겠소.》 울대뼈 두드러진 청년이 대꾸했다. 상준이는 아직도 울음을 끅끅거리며 자기가 교하로 나갈테니 차광수더러 길림에 남아서 아지트를 책임져달라고 했다. 《그건 어째서말이요?》 차광수는 눈이 커져서 물었다. 《아무래도 나는 길림시내에서 너무 낯이 났는데 여기서 계속 사업하기가 곤난할것 같소. 차동무는 낯이 안났기때문에 좋을것 아니요.》 《아니 그럼 기관차는 못몰고다니게?》 차광수는 씽긋거리며 한마디 롱같은 말도 던졌다. 방안에서는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어쨌든 옥중지시가 새롭게 불길을 일구는 판이였다. 협의를 끝낸 청년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다. 최창걸도 일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안개가 흐르는 북산우에서 서로 손을 굳게 쥐여흔들며 공작지를 향해 떠나갔다. 《성공을 바라오.》 《성공을 바라오.》 안개속으로 사라지며 손을 높이 쳐들어 흔드는 동지들을 한사람한사람 바래우고난 차광수는 마지막으로 최창걸의 손을 잡더니 한쪽으로 끌고갔다. 《삭주에 누님이 있소?》 《있지. 누님이 있소. 그런데 왜 그러오?》 《래일아침차편으로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소. 만나봐야겠소.》 최창걸은 그만에야 일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진땀이 솟아올랐다. 삭주에 있는 손우누이가 남편을 잃고 살길이 막혀 오랍동생을 찾아오겠노라고 편지를 띄운지가 벌써 반년이 넘는다.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운동을 하는 청년에게 시집을 갔던 누이는 남편이 죽자 거처할곳이 없게 되였다. 워낙 본가집과 시집의 사이가 좋지 않아 시집에 가있을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부모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시집을 간 형편에서 친정집에 얹혀살 면목도 없었다. 그래도 누이의 심정을 리해해줄 사람은 오랍동생밖에 없었다. 그새 최창걸은 누이의 심정이 담긴 편지를 받고 이방객지를 떠돌아다니는 형편에서 누이의 신상을 돌봐줄 계제가 못되니 어찌하면 좋은가고 안타까운 하소연을 담아 답전을 날렸는데 종당에는 누이의 결심이 이리로 향한 모양이다. 생각같아서는 굶더라도 누이와 함께 있고싶고 가긍한 누이의 처지를 힘자라는껏 돕고싶은 혈육으로서의 뜨거운 애착심이 없는것은 아니였으나 지금의 형편에서 차마 그렇게는 할수 없는것이다. 김성주동무의 체포로 조선혁명의 앞길에 무거운 구름장이 꽉 덮였는데 어떻게 누이의 일을 두고 사사로운 걱정에 마음을 팔수가 있단말인가? 최창걸은 절대로 그럴수 없다고 비장하게 생각하였다. 최창걸은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차광수에게 저저이 설명하고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누이일은 차동무가 처리해주오. 어떻게라도 설유해서 누이더러 돌아가도록 해주오. 나는 누이를 만나지 않고 삼원포로 내려가겠소. 누이를 만나면 일은 아주 복잡해질것 같소.》 《그래도 만리길을 찾아온 누이를 어떻게 그렇게야 각박하게 맞겠소. 내가 오순희동무하고 미리 토론을 했으니 그 집에서 누이하고 며칠 같이 지내면서 차후 일을 의논해보기요.》 그러나 최창걸은 고집스럽게 머리를 저었다. 《내가 만나면 안된다니까. 우리 누이는 성미가 강하지 못한 녀자요. 남편을 잃고 한지에 나앉았다가 살길을 찾아 나한테로 왔는데 쉽사리 떨어지려고 하겠소. 그렇게 되면 나는 혁명을 못하오. 지금 우리 혁명이 얼마나 큰 시련에 부딪쳤소. 김성주동무가 놈들의 손에 체포되지만 않았어도 나는 우리 누이를 이렇게까지 박절히 대하지 않을수도 있소. 누이에게 편지 한장 써놓고 떠날테니 차동무가 뒤일을 맡아주오. 누이가 정 떠나지 않을 잡도리거든 신안툰쯤에다 림시 거처를 정해주고 밥탁이나 붙여주오. 그러면 후에 내가 누이를 설복해서 떠나가도록 하겠소.》 최창걸의 부탁이 하도 곡진하고 혁명을 생각하는 그의 심정이 너무도 뜨겁게 안겨와 차광수는 더이상 자기 주장을 내대지 못하고 그가 다급히 써주는 편지를 받아 품속에 간수하였다. 최창걸은 그밤으로 삼원포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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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동지께서는 감옥밖의 동지들과의 련계를 통하여 광활한 혁명전선에 대한 지도를 계속하시는 한편 감옥에 갇힌 청년학생들의 옥중투쟁도 상승선에로 이끌어가시였다. 투쟁을 멈추지 말라, 감옥도 우리의 투쟁무대다, 학습을 중단하지 말라, 《자본론》을 토론하라, 《공산당선언》을 토론하라, 잡범들도 교양하라, 누구나 다 우리의 투쟁에 호응해나서도록 만들라. 김성주동지의 이 지령을 받으면 채경이와 권태일은 각 감방들에 맹렬히 통방을 해가며 투쟁을 일으켜나갔다. 그리하여 감옥안에서는 투쟁이 점점 치렬해지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곁에서 채경이, 권태일이들이 그처럼 힘차게 싸워주니 그게 더욱 힘으로 되고 기쁨으로 되시였다.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무쇠기둥들이 감방에 우뚝우뚝 일어서있는것 같은 느낌도 드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어느날 아침 온 감방이 아침산보를 시키라고 들고일어나도록 지시를 주시였다. 아침산보는 감방규정에도 있다, 우리가 무슨 죄인이냐, 무슨 죄인이여서 하루 스물네시간 곰팡내나는 콩크리트바닥에 코를 박고있어야 하느냐, 우리는 신선한 공기가 그립다. 감방문을 열라, 아침해빛을 보고싶다, 어느 감방에서고 다 들고일어났다. 《정숙해라, 정숙해라.》 십자형 복도당직인 도간수는 부리나케 뛰여다니며 고함쳤다. 그는 쇠살창을 두드리며 발을 굴러치기도 했다. 《문열라, 열지 않으면 들부실테다.》 《아침산보는 감방규정에도 있지 않느냐? 문열라, 문열라.》 복도 좌우감방들에선 벼락치는 소리들을 냈다. 도간수는 꼬리잘리운 강아지같이 홀짝홀짝 뛰며 여전히 정숙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자는 뒤통수에 온통 덴자리같은 허물이 있는데 그것은 간수모자를 써도 가리워지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다같은 펀들펀들한 피부색이여서 어느쪽이 얼굴인지 얼른 분간이 안간다. 더구나 오늘아침엔 웬인일지 간수모자까지 벗어던지고 갈개니 더욱 앞뒤를 분간할수 없었다. 《얘, 저게 눈이 없구나!》 《눈은 저편쪽에 있다. 이편쪽은 뒤통수다.》 감시창으로 내다보는 학생들이 이런 소리를 치며 폭소를 했다. 《이편쪽에도 눈알을 박았으면 제격이겠구나!》 《앞뒤로 다 보게? 그러면 우리가 야단이지.》 또 감옥이 떠나가는듯한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감옥이 아니라 젊은 힘들의 란무장같다. 팽배한 생활이 뛰고 웃음과 랑만으로 저주의 화살을 날려보낸다. 이러는데 번대머리 전옥이 나타났다. 《뭐요?》 《공산당들이 아침산보를 하겠다는겁니다.》 《아침산보?》 《네…》 그렇게 갈개던 도간수도 고양이앞에 쥐같이 전옥의 앞에선 쩔쩔매며 대답도 간신히 했다. 전옥은 그다음엔 말없이 큰 몸집을 뚱깃거리며 복도로 걸어갔다. 도간수도 뒤를 따랐다. 감방안도 갑자기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모두들 감시창에 반짝이는 눈들을 붙이고 볼을 철럭이며 걸어가는 전옥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어쩌면 놈들이 시끄러워서도 무슨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도 없지 않았다. 《산보를 시켜라! 꼭 15분간…》 복도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걸어갔다 돌아온 전옥은 지릅뜬 눈으로 도간수를 쏘아보며 간단히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복도의 출입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얼마 안있어 다른 간수 한명이 열쇠묶음을 들고 와서 감방문들을 열었다. 《빨리빨리 나오라. 드런놈의 공산당들…》 도간수가 밀려나오는 학생들을 노려보며 욕설을 했다. 학생들은 대꾸를 안했다. 모두 얼굴들이 우둥우둥 부었다. 피가 거덕거덕 말라붙은 옷을 입은 학생도 있다. 머리를 못깎아 귀밑들이 더부룩했다. 감방마다 어떻게 다밀어넣었댔는지 한참씩 밀려나오고있다. 잡범들도 많다. 사람의 몸뚱아리란 이렇듯 늘어나고 졸아들고 하는것 같다. 뒤통수 벗겨진 도간수는 여전히 한쪽옆에 서서 무섭게 감시를 했다. 잘못하다간 다 놓쳐버릴가봐 겁이 나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첫눈이 두텁게 덮인 마당을 밟고 돌아가며 끓었다. 모두들 오래간만에 신선한 대기를 마시며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여, 투쟁을 할만해.》 《암, 그게 첫수지.》 모두 싱글벙글 웃었다. 담장안 버드나무엔 방울새같은 새들이 여러마리 날아와 앉아서 지저귀였다. 꽁지가 밭고 배가 희고 등이 재빛인 새인데 가는 가지에 줄방울처럼 늘어앉아서 해를 쳐다보며 무어라고 열심히 지저귄다. 그것을 쳐다보느라고 그밑에도 학생들이 수십명 모여섰다. 채경이도 그 학생들속에 나와 서있다. 키가 제일 크고 옷이 아주 람루하게 된걸 입었다. 양복저고리 앞섶, 바지가랭이가 죄다 뜯기우고 해져 너들너들했다. 그는 곁학생들이 방울새들에게 돌팔매를 던지자고 하자 그러지 말라고 손을 잡으며 말렸다. 김성주동지께서도 나오시였다. 그이께선 쇠약해진 한윤을 한팔에 끼고 나오시였다. 마당에 내다세워놓은 한윤은 눈을 슴벅슴벅하며 버드나무를 쳐다보고 하늘도 쳐다보았다. 세상에 고쳐 태여나 처음 쳐다보는 하늘같아도 보였다. 버드나무에도 윤기가 돌고 하늘에도 그 무슨 기운찬 선이 쭉쭉 그어진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되여 이 감옥에 갇히여 이런 재생의 아침을 맞을가. 그는 한마당 널려있는 학생들과 죄다 돌아가며 격정의 악수를 나누고도 싶었다. 학생들은 다들 김성주동지를 쳐다보고는 가슴들이 흐뭇해서 은근히들 벙글거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김성주동지를 아는척 안했다. 혁명의 지도자라는걸 놈들의 눈에 뜨이게 하지 않으려는것이다. 그걸 서로 단속하기도 했다. 《김성주동무는 못본척하오.》 《나는 알고있소. 그런데 그새 얼굴이 무척 상했군요.》 《그 변변치 못한 감방식사마저 들지 않고 앓는 동무들을 먹인다오.》 학생들은 서로 수군거렸다. 역시 비상사태속에서 온 신경은 김성주동지한테로 쏠리고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담장밖 버드나무에 와앉아있는 방울새들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기도 하시였다. 우쩍우쩍 팔운동도 하시였다. 그러다가 채경이곁으로 걸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안보는척하시며 웃음을 보내시였다. 채경이도 미소를 띠며 얼른 내밀려고 하던 손을 움츠렸다. 《얼굴이 말이 아니요.》 김성주동지의 낮으나 다감하신 말씀이였다. 《난 괜찮소.》 《감방에 실과 바늘을 가진 동무가 없소? 바지가랭이 째진걸 기웠으면 좋겠소.》 《일없소. 아주 발가벗겨 내세워도 싸움에 지진 않을거요.》 그이께서는 저편으로 걸어갔다가 돌아오시며 다시 물으시였다. 《그래 검사의 심문을 또 받진 않았소?》 《왜요. 또 두번이나 불려나갔댔소.》 《심문하는 내용은?》 《그저 그거요. 날조해서 넘긴 조서를 다 긍정하라는 수작이요.》 《어쨌든 다 부정해버리오.》 《나도 아오. 참, 그런데 우리 경주가 돈화로 내려갔소?》 《아직 길림에 있소.》 《그애가 건강이 어떤지 모르겠군.》 《너무 근심마오. 건강이 나쁘긴 하지만 박승훈선생이 치료해주고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또 녀학생들이 있는곳으로 걸어가시였다. 녀동무들도 모두 못본척했다. 그러나 다들 눈물이 글썽해졌다. 남학생들보다 더 상한 모습들이였다. 정말 박승훈의 딸 영숙이는 얼굴이 딴 녀자같았다. 그도 온 얼굴이 붓고 눈이 작아졌다. 《힘을 잃지 마오.》 《알겠어요.》 그래도 영숙이는 눈빛을 날카롭게 하며 대꾸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영숙이가 긴장한 눈빛으로 그이께 다가서며 물었다. 《저, 그쪽 간수가 리간수 아니예요?》 《그렇소. 왜 그러오?》 《리간수의 안해가 우리 인의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은 일이 있어요. 그런데도 그놈이 나를 못본척해요. 나쁜놈이예요.》 《그렇소? 그래 무슨 병으로 입원했댔소?》 《위병에 무슨 심장신근염이라고 하던가봐요.》 영숙이의 말을 들은 그이께서는 생각깊은 낯빛을 지으시였다. 문광중학교 학생 한명은 그이께 말씀할 기회를 만들어주노라고 도간수가 자기에게 이목을 집중하도록 익살을 부렸다. 손가락을 꼬부려 입속에 넣고 빼액 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손을 뽑아서 허공에 버쩍 들며 딱딱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두손바닥을 입술에 오그려붙이고 《다 다라 다아》하고 나팔도 불었다.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개발바닥》도간수는 얼굴에 독을 올리며 정숙히들 산보하라고 소리쳤다. 《여 정숙히, 련화대우에 앉아있는 석가여래같이 정숙히…》 문광중학교 학생은 이렇게 소리치며 부처가 륙갑하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그는 정말 부처님처럼 두눈을 가늠스름히 뜨고 입에 미소를 담았다. 그 미소가 또 폭소를 자아냈다. 어쨌든 그는 도간수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만 하면 이어 익살로 받아쳤다. 아침산보시간 15분이 다 지나갔다. 도간수는 산보시간이 끝났다고 《들어갓!》하고 고함을 질렀다. 《망할 자식!》 《뭐 뭐야, 정숙히!》 《응, 정숙히! 부처님같이 륙갑!》 학생들은 폭소를 날려보내며 감방으로 밀려들어갔다. 어쨌든 감옥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김성주동지께서 들어오시기전엔 온 감옥이 침울한 가운데 낮과 밤이 흘러갔는데 인젠 그런 무거운 기운도 신음소리도 다 없어지고 감방마다 기운이 북받쳐 열정과 랑만으로 투쟁이 빚어진다.
5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런 분위기속에서 리간수도 적극적으로 교양해내기 시작하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호의를 가지고 대하는것 같은 리간수를 어느날엔 감방안에 들어온걸 자신의 곁에 좀 앉으라고 하시였다. 리간수는 감시창으로 가서 복도를 내다보더니 딴 간수들이 뵈지 않는지 얼른 곁에 와서 앉았다. 그는 너부죽한 얼굴에 내내 웃음을 띠고있다. 《리간수는 전날 복도에서 만나 내가 공설운동장에서 연설한 일이 있는가고 물었는데 그건 알아서 뭘하려고 그럽니까?》 《아무래도 꼭 그런것 같아서…》 《허허허, 그날 거긴 어째서 왔댔습니까? 청년들을 체포하러 왔댔습니까?》 《아니지요. 그저 지나가다가 보았지요. 봉천대 대대장이랑 헌병들이랑 함께 서서 보았지요.》 《그날 무슨 연설을 했는지 압니까?》 《일본놈 나쁘다는 연설을 했지요.》 《그래 자세히 들었습니까?》 《듣고말고요. 봉천대 대대장도 연설을 아주 잘한다고 박수를 쳤소. 그바람에 나두 손벽을 두드리고…》 학생들은 모두 시선을 집중하고 앉아 리간수를 지켰다. 리간수의 입에서 무슨 쌍소리라도 나오면 막아치자고 주먹들을 부르쥐고 앉아 보았다. 그런데 리간수의 입에선 학생들을 보고 비적과 같은것이라고 욕지거리하던 그런 쌍소리는 한마디도 튀여나오지 않고 큰 손바닥도 그이께서 주무르시는대로 내맡기고 앉아 순순히 대답했다. 큰 입이 벙글써해서 웃음도 띠였다. 《리간수, 우리의 싸움은 일본놈들과의 싸움입니다. 그때도 일본놈 때려눕히자고 연설하고 대시위도 벌리였습니다. 지금도 역시 우리는 일본놈들을 때려부시자는 싸움을 하고있습니다. 왜 일본놈을 때려부셔야 하는가. 지금 일본놈들은 우리 조선을 통채로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민족이 제 나라를 도로 찾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그래서 일본놈과 싸우자고 일떠섰는데 당신네 경무청이나 법기관이 우리와 맞서서 우리를 붙잡아다 이렇게 감옥에 가두어놨으니 이게 이상스럽지 않습니까? 리간수의 생각엔 어떻습니까?》 《일본놈이야 반대해야지요. 우리도 일본놈은 반대하오. 거 그런데 비적과 같은 공산당이라고 하면서…》 《그게 잡아가두기 위해 꾸며내는 소리입니다. 공산당은 절대로 비적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시오. 그래 공산당이 지금 인민을 해치자고 하는 일이 하나나 있습니까?》 《그런데 전옥과 간수장은 기어코 비적과 같은 공산당이라고 하잖소.》 《그런 소리를 곧이듣지 말란말야!》 한 학생이 주먹으로 감방바닥을 치며 대들었다. 그러는것을 김성주동지께서 한팔로 막으시였다. 《학생들이 젊은 혈기에 이렇게 윽윽하는걸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리고 리간수는 우리의 싸움이 누구와의 싸움이라는걸 똑똑히 인식하고 우리 청년들을 박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금 일본놈에 대해선 중국사람들이 다 미워하고있습니다. 왜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장작림대원수를 차중에서 폭사시켜 죽였지, 벌써 만주의 경제명맥을 다 틀어쥐였지, 인젠 아주 총칼로 정복하려고 움찍움찍하지, 이게 중국인민의 원쑤가 아니고 누구의 원쑤이겠습니까? 그저 조선사람의 원쑤라고만 보여집니까? 조선인민과 중국인민의 공동의 원쑤란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원쑤를 반대해서 일떠섰습니다.》 리간수는 큰눈을 쪼프리고앉아 조용히 듣다가 한마디 했다. 《참 무슨 도깨비판인지 알수 없소.》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리간수, 알지 못할게 없습니다. 일이 이렇다면 우린 한편이 돼서 싸워야 합니다. 한편이 돼서 싸워야 할 사람들을 이렇게 잡아가두고 졸경을 시키니 하긴 무슨 도깨비판같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더 큰 웃음을 터뜨렸다. 리간수도 웃었다. 《내가 리간수는 세상일을 공정히 볼 사람이라고 믿기때문에 말하는것이지만 사람이 어떤 도깨비판에 빠져도 제 정신을 잃지 말고 옳고 그른 판단을 가져야 합니다. 제 정신을 잃으면 제 원쑤의 편에 서서 같은 제편의 사람들을 녹여내는 행동을 할수가 있습니다. 리간수는 일본놈과 싸워야 할 중국인민의 편이 돼야 하고 따라서 중국인민과 단결된 우리편이기도 하단말입니다.》 리간수는 여전히 우선우선하며 듣고있다. 《그래 본시 길림태생입니까?》 《아니지요, 난 간도쪽에서 왔소. 간도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다가 아무래도 먹고 살기가 곤난해서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이리로 왔소.》 《간수를 하는진 오래 됩니까?》 《한 륙칠년 되우.》 《지금도 간도에 아버지가 계십니까?》 《웬걸, 이젠 칠십이 넘은 로인을 데려다가 모시고있지요.》 《지금 간수를 해서 살아가긴 어떻습니까?》 《죽지못해 살아가지요. 식구가 많은데 월급이라는게…》 밖에서 딴 간수의 발자국소리같은 소리가 들린다. 《빨리 나가보시오. 그리구 참 아주머니가 인의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건강합니까?》 그이께서는 다른 한편으로는 박승훈을 동원해서 리간수네 집과 다리를 놓을 방법은 없을가 해서 그의 안해에 대해서 물으시였다. 《아니 그건 어떻게 아오?》 《나도 알고있습니다.》 《긴날병이 그렇게 낫겠소. 장 구들덮개가 되여 누워있지요. 끼니도 내가 짓지 않으면 늙은 아버지가 짓구 강낭떡을 만들어먹는걸…》 《음…》 그이께서는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보라고 하시였다. 리간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청년들이 앉아있는 틈새로 다리를 옮겨디디며 걸어나갔다. 청년들이 일어서서 그의 잔등을 붙들며 부축도 해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후부터는 리간수의 얼굴빛이 류달리 환해져 감시창으로 달려와서는 물이 더 필요없는가고 묻기도 하고 담배를 피울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가 사실을 고백하진 않았으나 벌써 감옥밖으로도 박승훈을 통한 다리가 놓여진것이였다. 자리에 누워있는 그의 안해를 박승훈이 조석으로 찾아다니며 치료를 해주기 시작했다. 어느날 저녁때 리간수는 또 감시창밖으로 와서 똑똑 인기척을 내며 김성주동지를 찾았다. 그이께서 감시창앞으로 다가가시자 리간수는 소곤소곤 알려주었다. 《9호감방 청년이 한명 지금 경무청으로 도로 이끌려가오.》 《9호감방 누구입니까?》 《모르겠소. 이리로 오우.》 리간수는 얼른 감시창에서 물러섰다. 인젠 감옥안에서 일어나는 학생들과 관련한 일은 부리나케 달려다니며 알려준다. 정말 감시창앞 복도로 발자욱소리들이 들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감시창구에 눈을 붙이고 긴장해서 내다보시였다. 딴 학생들도 김성주동지의 옆에 붙어서서 비집고 내다보았다. 간수 한놈이 채경이를 데리고 복도로 걸어온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큰기침을 하며 신호를 보내시였다. 그러자 채경은 간수 못보게 손길을 쭉 펴서 들어올리며 화답을 보냈다. 절통한 아픔이 덮인 얼굴은 아니고 입가에 웃음조차 띠였다. 또 싸우러가노라고 여유작작하게 손을 들어 선언하며 찢어진 바지가랭이속의 굵은 다리를 힘있게 내짚는것 같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모습이 가슴에 더 아픔을 안겨주어서 감시창앞에 한참 서계시였다. 《개자식들, 또 두드려패려고 끌어가는군.》 학생들은 피대가 서서 떠들었다.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경황없이 자리로 돌아와 읽던 책을 펼쳐드시였다. 요새 오순희가 사식을 들여보낼 때 보자기속에 싸서 들여보낸 책이 몇권 있는데 그이께서는 그 책들중에서 엥겔스의 폭력론을 열심히 읽으시다가 감시창으로 다가가 그런 가슴아픈 광경을 띠여보시였다. 책을 손에 드셨으나 글줄들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무청으로 도로 끌려넘어간 채경이 고문당할 생각을 하니 몸이 떨리시였다. 놈들이 날조해넘긴 조서를 검사앞에서 끝까지 부정해버렸으니 경무청놈들이 무섭게 보복을 가해올것은 틀림없다. 그 고문을 채경이 어떻게 이겨낼것인가? 더구나 그렇게 허약해진 동무가… 그이께서는 쓰린 가슴을 가라앉힐수 없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리시였다. 졸지에 곁에 풍 빈자리가 생긴것 같기도 하였다. 학생들도 모두 낯빛이 심각해졌다. 한 학생은 채경이 어째서 도로 끌려넘어갔는지를 알아보겠다고 벽에 붙어앉아서 권태일에게 통방을 했다. 그러나 권태일이도 모르겠다고 통방해와서 학생은 풀이 죽어 벽에서 물러앉았다. 그이께서는 밤이 되여서야 마음을 좀 안정하고 또 독서를 시작하시였다. 속독을 하시며 연필로 쭉쭉 표식을 치기도 하시였다. 엥겔스의 저서를 다 독파하시고는 맑스가 라쌀주의를 타격한 《고타강령비판》을 또 펼쳐드시였다. 오순희는 책을 어데서 구해들여보냈는지 이 책은 육문중학교 도서실에서 책가위를 위장한 그때의 책을 구해서 들여보냈다. 그뒤 어느날 밤중이였다. 권태일이한테서 그이께로 통방이 왔다. 《채경동무 혹독한 고문을 이겨내며 싸우고있음, 순경부장 공가가 악이 치받쳐 직접 다루고있음.》 《그 소식이 어데서 들어왔는가?》 《저녁때 육문중학교 학생 한명이 류치장에 있다가 이송되여옴.》 《채경동무의 몸은?》 《말이 아니라오. 밤낮을 재우지 않고 고문을 들이대기때문에…》 《알았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소식을 듣고 안색이 변하시였다. 저 보복적인 고문이 끝내는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을가? 아무리 장수라고 한들 긴날 두고야 그 고통을 이겨낼수 있을가! 학생들도 모두 일어나앉았다. 그들도 통방소리를 들었다. 《채경동무가 잘못됐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옆에 앉아있던 청년이 물었다. 《아니요, 힘차게 싸운다는 소리요.》 《저 개같은 공가놈이 제가 날조해 넘긴 조서를 끝내 부정해치웠으니까 단단히 보복을 들이댈겁니다.》 학생들도 옳게 보았다. 그이께서는 분노가 치밀어 불쑥 일어서시였다. 그 믿음직한 혁명동지! 무슨 일을 맡겨도 그처럼 헌신적으로 빈틈없이 해내고 통이 크고 락천가이던 그 청년을 지금 저놈들이 얼마나 족쳐대고 주리를 틀고 숨통을 누르고 할것인가. 채경이 인제 저 고문장에서 자기 육신을 건져낼수 있으리라고 믿을수 있는가. 쩍 벌어진 가슴에 리론도 류창하던 채경이! 김성주동지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도로 자리에 앉으시였다. 아, 채경이, 그 억센 청년이 자기 누이동생의 일로는 항상 목이 메는 눈물을 머금기도 했었지. 그러기에 이 감방안에 들어와있으면서도 장 누이동생 생각을 하다가 나한테도 누이동생의 건강이 어떤가를 물었지. 잠간 지나가는 말처럼 들으신 소리가 머리속에 되살아나고 지난해 대시위에서 경주가 중상을 입었을 때 주고받은 대화도 회상되시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채경동무, 우리는 혁명가들이요. 혁명가라면 굳은 신념을 가지고 혁명동지를 생각해야 하오.》 《알고있소. 우리 경주가 건강해진다는것을 그렇게 믿어주니 고맙소. 그 애가 다시 투쟁의 대오에 서서 혁명의 노래를 부른다면 나야말로…》 《믿읍시다. 경주동무에겐 절대로 그 어떤 불행도 없을것이요.》 그이께서는 이 대화도 되새겨 생각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하시였다. 밤새 모대기시던 그이께서는 날이 밝아올무렵 서둘러 아지트로 내보내는 쪽지를 쓰시였다. 채경이 경무청으로 다시 넘어가 고문을 겪는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하시고는 경주를 무송으로 보내라는 부탁을 힘주어 쓰시였다. 박승훈이 아무리 치료를 해준다해도 이 시련을 겪는 복잡한곳에 두어가지고는 경주의 병이 나을수 없다고 생각하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숨가쁘게 달음박질하는 감정으로 글을 쓰시였다. 그러고나선 경주가 가지고 갈 무송어머님에게로 보내는 편지도 한장 쓰시였다.
어머님! 저는 지금 긴급한 일이 벌어진 촉급한 시간에 이 편지를 쓰기때문에 다른 사연은 적지 못하고 다만 제가 어머님께 부탁드릴 말씀만 적겠습니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경주동무는 바로 재작년겨울 저와 함께 무송으로 갔던 채경동무의 누이동생입니다. 채경동무도 그렇지만 이 동무 역시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동무는 지난해 시위투쟁때 심한 부상을 입고 여러달 치료를 받았으나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 계신 무송으로 보내오니 어머님께서 혁명동지로는 물론 어머님의 친딸같이 여기시고 그의 건강을 각별히 돌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돈이 있어서 보약이야 쓰겠습니까?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과 극진한 돌보심이 있다면 경주동무에겐 그것이 바로 보약으로 될줄 압니다. 이런 어려운 부탁을 올리자고 총총히 붓을 들었습니다. 언제나 저는 어머님에게 무거운 부담을 드리는 아들로밖에는 살고있지 못합니다. 어머님의 머리에 흰머리카락이 섞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슴에 아픔이 쓸어칩니다. 어머님, 이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혁명이 승리한 뒤에는 어머님을 길이길이 곁에 모시겠습니다.
편지를 쓰시던 그이께서는 연필꽁다리를 쥐고앉아 한참 망설이시였다. 무송으로 편지를 들고 갈 인편이 생겨서 어머님께 편지를 쓴다면 다른 중요한 부탁도 말씀올려야 하지 않을가. 무언가 가슴 무거운 생각을 한참 하시다가 결심을 다지고 종이에 연필을 달리시였다.
어머님, 마지막으로 제일 막중한 부탁을 또 한가지 올리겠습니다. 이미 삼촌과는 이야기했지만 우리 일가가 한시빨리 안도쪽으로 옮겨가 새 지역을 개척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싸움은 국경 가까운 동만쪽으로 넘어가 종당에는 물을 건너가야 합니다. 조국광복을 위한 싸움이라면 조국인민과 생사를 같이하는 싸움을 벌려야 합니다. 과거 독립운동자들은 다 흩어져 멀리로 쫓겨가지만 우리는 그와 달리 조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제가 펼칠 싸움의 구상입니다. 어머님!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 일가가 한시바삐 안도로 가서 뿌리를 박고 동만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어머님께 부탁합니다. 이 일은 한시가 급합니다. 그럼 이만 줄이오니 내내 건강하시여 중중첩첩한 어려운 일을 힘있게 밀고나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큰 부탁까지 다 쓰시고난 그이께서는 얼른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기를 닦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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