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9 회 )

 

3

 

밖으로 나오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인의병원뒤 조선인려인숙들이 있는 골목거리로 가시였다. 회좁은 골목인데 려인숙들에 들려 물어보시니 한윤이와 조동식, 그런 손님은 들린 일이 없다고 했다. 그이께서는 바삐 그 거리에서 뒤쪽으로 걸어들어가시였다. 나오신바엔 려관들을 골고루 돌아보실 생각을 하시였다. 회좁은 거리에 밀정놈들이 널린것 같다. 캡이나 중절모를 숙여쓰고 음충스럽게 훔쳐보며 슬쩍슬쩍 지나치는놈들이 많다. 담배를 꼬나물고 지나가다가 어디를 보고 소리치는지 서라고 웨치는놈도 있다. 그이께서는 바삐 걸어 하남가쪽으로 넘어서시였다. 그쪽엔 큰 려관들이 있으니 거기 어디 기숙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시였다. 한윤이들이 현묵관이패를 배척하고 올라왔다면 틀림없이 자신을 만나지 못해 애쓰리라는 생각도 드시였다. 그렇게 생각하시니 왕청문에서 애를 먹이던 한윤이란 생각은 다 없어지고 한윤을 만나기만 하면 덥석 붙안고 잘 왔다고 등을 두드려줄것 같기도 하시였다. 차광수는 접촉을 말라고 했지만 남만의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있는 청년조직들을 다 한품에 휘여안을 생각을 하시니 한윤이가 귀중하게만 생각되시였다. 그런데 한윤은 하남가려관들에도 없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실망하여 무슨 정미소 기계소리가 나는것 같은 골목으로 걸어가시였다. 바로 거기에 려인숙이 한집 있었다. 그이께서는 그 려인숙에 또 들어가시였다. 주인을 만나 물어보시니 바로 거기 한윤이들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흰 수염이 부르르한 려인숙주인은 그이를 보자 턱없이 입이 벌어져 어서 들어오라고 손목을 끌어들였다.

《젊은이도 그 사람들과 한패거리요? 그 사람들이 내 집에 들긴 들었댔는데 여러날전에 집을 나가서 들어오질 않소. 둘이 와서 보름나마 밥을 외상으로 먹었는데 그 밥값 물 돈이 없어서 분명 줄행랑을 놓은것 같소. 여기 이 너절한 들가방 하나 팽개치고 인젠 제갈데로 가버린것 같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시였다. 려인숙주인의 말을 진담으로 들을수는 없었으나 어쩐지 그랬을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내 그래서 이 가방속에다 무엇이나 돈이 될만한걸 남기고 같는가 하여 뒤져보았소. 가방속엔 돈이 될 물건은커녕 코나 풀 헌책따위밖엔 없소. 난 녹았소. 둘이 보름을 먹었으니 한놈이 와서 한달동안 거저 파먹고간게 아니요.》

려인숙주인은 화가 동해서 헌 들가방을 열고 그속에 있는 물건들을 구들바닥에 탕탕 쥐여내놓으며 떠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무얼 가득 적은 노트가 한권 있고 일본말로 된 듀링의 《철학독본》과 헤겔의 《론리학》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퉁구리같은 종이두루마리가 하나 있는데 그속엔 삼원포에서 발송한 현묵관이들을 친 성토문이 두장 들어있다. 그리곤 정말 아무것도 없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 청년들을 잘 아는데 밥값이 두려워 이런 소지품들을 버리고 달아날 청년들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어데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다시 돌아올것입니다. 조선청년들이라는걸 믿어주십시오. 조선청년들은 그런 청년들이 아닙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책과 종이마리를 가방속에 차곡차곡 밀어넣으며 주인을 달래시였다. 주인은 아까 김성주동지의 손목을 끌어들일 때는 밥값이라도 받아낼 청년이 들어서는가 해서 좋아했는데 그이의 정중한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찔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두어깨가 낮아져 려인숙을 나서시였다. 한윤이들이 어데로 갔단말인가. 정말 밥값 물 돈이 없어서 왕청문으로 줄행랑을 놓은건 아닌가. 그이께서는 힘없는 발길을 옮겨디디며 인의병원쪽으로 걸어가시였다.

인의병원 박승훈은 김성주동지를 기다리며 안절부절을 못하고있었다. 벌써 진찰가방엔 경주의 병에 쓸 숱한 약품과 진찰기, 주사기를 다 챙겨넣고 외출복도 떨쳐입었다. 경주가 아직 병이 낫지 못해서 선창가의 어느 집에서 앓고있다니 가슴이 죄였다. 일년전 대시위때 부상을 입고 거의 사경에 이르렀댔는데 그때 자기는 정말 제 딸같은 심정으로 정성을 다해서 치료해주었다. 그래서 그것이 퇴원해나가던 날엔 춤을 출것 같이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또 중병이 들어 앓다니? 중병이 들어 병세가 위급하지 않고야 저 회장이 이 밤중에 바쁜 걸음을 했을텐가. 박승훈은 초조했다. 담배를 또 한대 붙여물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순간 자기네 현관밖에서 온 세상이 캄캄해지는것 같은 사변이 일어날줄이야 박승훈이 어찌 알았으랴!

《선생님, 선생님!》

밖에 나가서 김성주동지를 기다리던 간호부가 별안간 바쁜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왔다.

《무슨 일이요?》

《글쎄 아까 왔던 그 청년이 앞길목으로 들어오다가 그만 잘못되였어요. 순경 여러명이 달려들어 에워싸고 글쎄… 포박을…》

박승훈은 이게 무슨 소리냐고 고함을 지르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도로 벌썩 일어섰다.

《선생님, 그 청년은 잡혀가선 안돼요. 정말 안돼요. 나도 영숙이한테서 그 청년에 대한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간호부는 벽을 두드리며 울었다.

《나가보자구! 어데서 어떤 놈들이 그런짓을 했단말인가?》

박승훈은 문을 차고 밖으로 나갔다. 몸부림치던 간호부도 눈물을 씻으며 비척이는 걸음으로 따라나갔다. 현관밖으로 나서니 달비친 앞골목이 훤히 내다보인다. 우마항쪽으로 빠지는 골목인데 큰 창고같은 건물뒤에 밋밋하게 자란 백양나무들이 몇그루 서있었다.

《여기예요. 저놈들이 글쎄 여기서 삥 둘러싸며…》

골목으로 나온 간호부가 울며 부르짖었다. 박승훈은 말없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밤은 밤대로 흘러가고 모든것이 조용했다.

박승훈은 귀뚜라미소리 요란한 골목을 빠져나가 사람들이 오고가는 우마항거리우에 나섰다. 아직 사람들이 붐빈다. 인력거가 달리고 마차의 채찍소리도 들린다. 력사는 절통한 한순간을 어느 영원속으로 밀어보냈는지 감감 알길이 없다.

박승훈은 한참동안 온몸을 와들거리며 떨었다. 눈엔 눈물과 불빛이 함께 번쩍거렸다.

 

4

 

응접실로 들어온 박승훈은 의자에 앉아있지 못했다. 내내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허둥대였다. 모든것이 갈피를 잡을수 없게 뒤흔들린것 같았다. 이것은 너무도 큰 천둥이 아닌가! 저놈들이 어떤 청년을 체포해갔는가? 나같은놈은 왜 붙들어가지 않고 저 머리칼 한오리 다쳐서도 안될 청년을 체포해갔는가! 이게 조선정기를 송두리채 빼앗아간게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일이 어떻게 되여 내 집 현관밖에서 일어났단말인가!

박승훈은 이마에 내돋는 땀발을 연방 손으로 훔치였다.

《순옥이!》

그는 아까 그 간호부를 불렀다. 간호부가 눈물을 씻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인젠 눈물을 거두게. 이런 땐 눈물이 아니라 정신을 가다듬는게 필요해. 그래 저놈들이 우리 집근방에 더러 숨어있는것 같지는 않은가?》

《다 갔어요. 우리 집 근방엔 없는것 같아요.》

《그럼 됐어. 내 인제 어데 좀 다녀올테야. 안채의 내 방에 들어가서 벽에 걸려있는 내 모자를 좀 내다주게.》

《어데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그건 알 필요가 없어. 어서 좀 빨리 들어갔다나오게…》

간호부는 도로 문을 열고 나갔다. 박승훈은 부랴부랴 진찰실로 갔다. 그는 거기서 진찰가방에 다른 새로운 약들을 더 쑤셔넣으며 팔목시계를 들어보았다. 밤은 아직도 그렇게 깊지 않았다. 차라리 밤이 깊지 않아 사람의 왕래가 있을 때 다니는편이 나을것이다. 하기야 어느때 다닌들 어떠랴! 자기 한몸의 안녕을 위하거나 체포가 두려워서 이 촉급한 순간에 때를 가리고 앉아있겠는가! 나같은것이 무어냐? 저 귀중한 청년이, 천만번에 한번도 그렇게 돼서는 안될 청년이 그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자기를 찾아왔다가 체포되였다. 이게 하늘이 무너진것 아니고 무언가! 박승훈은 또 흥분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응접실에서 걸어나가시던 그이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하면 그이의 앞에서 딸문제를 놓고 부끄러운 고백을 하던 자기 모습도 떠올랐다. 박승훈은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륙십년세월을 살고나서도 이렇게 용렬한것으로 남는것이 인간이란말인가? 이 더러운것을 씻어야 한다. 우선 경주부터 살려놓고보자. 영숙이 다음가는 사랑스러운 내 딸을! 박승훈은 우마항거리를 바삐 걸어나갔다. 그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거리를 피하는것이 좋을상싶어 골목길을 에돌아나갔다. 그리고는 서문쪽으로 통하는 큰거리를 가로건너 곧장 송화강가에 이르렀다.

박승훈이 권성근네 집에 이르러 주인을 찾으니 마침 권성근이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온 권성근은 처음엔 사람을 빗보고 박승훈을 《국민부》의 뚱뚱보 서근하로 알았다. 그러다가 박승훈이 숙여썼던 중절모를 들며 번대이마를 내대고 인사를 건네서야 누구인지를 알고 그만 입이 벌어져 놀래였다. 사실 박승훈은 권성근의 큰 은인이였다. 권성근의 벋짱다리를 김성주동지께서 박승훈이에게 말씀해주셔서 박승훈이 돈 한푼 안받고 고쳐주었다.

《아니 선생님이 어떻게 돼서 찾아왔습니까?》

권성근은 입이 크게 벌어졌다가 얼마후에야 물었다.

박승훈은 권성근에게 찾아온 사연을 수군수군 이야기했다.

《그래 선생님한테 누가 갔댔습니까?》

《네, 사람이 왔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장소를 잘 물어보지 못해서…》

《그럼 가십시다. 장소야 내가 알지요.》

권성근은 쾌히 승낙을 했다. 그는 이때까지 어둔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혼자 불안스럽게 생각했던 일에 대해서 은근히 맘을 놓았다. 조금전 그의 집에는 상준이가 다녀갔다. 상준은 김성주동무가 배에 있었댔는데 어데로 갔는지 말도 없이 나갔다고 하면서 혹시 이 집에나 오지 않았는가 해서 찾아왔노라고 했다. 권성근이 오지 않았다고 하자 상준은 매우 황급한 걸음으로 도로 나갔다. 상준이 나간 뒤 권성근은 불안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한참동안 청승맞은 불길한 생각과 싸우기도 했었다. 그런데 박승훈이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이니 바로 회장이 거기 갔다가 어데 또 딴데로 간게 분명했다. 이쯤 알고나니 맘이 놓여 그 다음엔 홀홀히 이름을 따져서 묻지를 않았다.

권성근은 박승훈을 데리고 춘택이네 집으로 갔다. 선창으로 무슨 배가 들어오는지 붕 고동소리가 울린다. 둘이는 급히 선창기슭을 걸어 춘택이네 집 마당에 들어섰다. 박승훈이 집안으로 들어가니 초불이 켜져있는 방안에서 경주가 앓음소리를 하며 누워있었다.

청년들이 몇명 근심에 싸인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

박승훈은 들어가는길로 경주곁에 앉아 잠간 환자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눈구석에 눈물이 핑 돌았다. 불쌍한 생각이 가슴을 찢었다. 네가 어떻게 된 일이냐? 그래도 병원에서 퇴원해나갈 때에는 건강이 훨씬 회복되여 치료를 해주던 나도 인젠 날개가 든든해진 수리개 한마리를 대공으로 날리는것 같은 심정으로 내보냈는데 어느 하늘을 날으다가 모진 바람에 치여 다시 이렇게 되였느냐. 글쎄 혁명도 몸을 보아가면서 해야 할것 아니냐? 아가! 내 딸아! 갑자기 경주의 얼굴이 영숙이의 얼굴로도 변했다. 얼마전 경무청에서 본 얼굴이 크게 떠오른다. 그 딸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경주와 내가 따루 없고 또 다른 경주와 내가 따루 없어요. 오직 하나예요. 그렇게 하나로 뭉쳐있어요.》

《아가 고맙다.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니? 오직 하나에로 가닿아 하나로 된 너희들의 높은 정신을 내 어찌 모르겠니? 경주를 굳이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할 나도 아니고 그러기때문에 치료를 소홀히 해줄 이 아버지도 아니다. 경주도 내 자식이고 너도 내 자식이다. 나는 오늘밤 내 혐오에 빠져있긴 하면서도 내 정신이 이렇게 붉게 타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구나. 이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수는 없으나 어쩐지 인젠 네 힘을 빌지 않고도 내 스스로 비약을 할수 있을것 같구나!》

박승훈은 속으로 부르짖으며 떨리는 손으로 경주의 이마를 짚었다. 이마가 불같이 뜨거웠다.

《애고머니!》

경주는 신음소리와 함께 두눈을 번쩍 뜨며 박승훈을 마주보았다. 박승훈은 아무 소리 없이 경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누구예요?》

경주는 상대방을 빠금히 쳐다보며 총알같은 소리로 물었다.

《내다. 나를 모르겠느냐?》

《아니 이게 누구예요? 선생님 아니예요?》

경주는 모포를 훌렁 들어던지며 일어나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가만히 누워있질 못하구.》

박승훈은 모포를 다시 덮어주며 경주가 일어나지 못하게 팔을 붙잡았다.

《선생님이 어떻게 돼서 여기 오셨어요?》

《그럼 내 딸이 앓는데 여길 오지 못하겠니?》

박승훈은 어쩐지 내 딸이란 말속에서 긍지를 느꼈다.

《선생님!》

경주는 눈물이 글썽해서 박승훈의 커다란 손을 두손으로 끌어다잡았다. 박승훈이 먼저 자기를 내 딸이라고 부르니 경주는 더욱 아버지의 손을 잡은것 같이 훈훈하고 기뻤다. 그는 박승훈이 어떤 연고로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자기를 내 딸이라고 부르는지는 리해하지 못했다. 그저 다만 혹독한 부상때문에 죽을 운명에 놓여져있던 자기를 박승훈이 아니였더면 누가 고쳐줄수 있었겠는가 하는 고마운 생각이 이 순간에도 그득했고 그 정이 아버지를 대하는것 같은 정으로도 변했다.

박승훈은 한참동안 체온을 재고 청진기로 진찰을 하였다. 그는 몇번이고 경주의 건강이 퇴원할 때만 못하다고 하면서 혀를 갈겼다.

《그 몸을 가지고 일을 무리하게 했게 그렇지. 무리하게말이야 응?》

그는 문득 경주가 곁에서 불타고있는 초불과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이상할만치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초불이란 무서운 자기 희생을 통해서 빛을 주고있다. 연약한 몸피우에 불꽃을 피워들고 서서 자기 몸을 한방울 두방울 녹여들어가며 빛을 뿌려 어둠을 몰아내고있다. 박승훈은 어떻게 되여 이러한것에 이 결곡하고 연약해진 경주의 표상이라면 표상이랄수도 있다는것에 생각이 미쳤다가 공연한 수작이라고 자기를 질책해버렸다. 초불이라니? 그건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초불이라기보다 언젠가 딸이 말하던것처럼 혁명의 별이란 말이 그럴듯하다. 이 귀중한것들에 성좌의 뭇별들같이 늘어앉아서 거먹구름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거먹구름에 물들지 않고 찬연히 자기 빛을 발산하며 사람들을 그렇게도 매혹시키고있지 않는가! 이게 별이면 오죽 빛나는 별인가! 숱한 영숙이 숱한 경주야! 내 너희 넋들에는 아무것도 줄것이 없다마는 이렇게라도 너희들을 위해 봉사를 하니 기쁘고나. 주사를 놓는 박승훈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

《오냐…》

《누가 선생님을 모시러 갔었어요?》

경주는 박승훈이 생각과는 닿지도 않는 소리를 물었다.

《그런걸 묻는게 아니다. 너는 병만 고치면 되는거야.》

《그래도 물을 필요가 있어서 그러지 않아요.》

《물을 필요는 무슨 물을 필요냐?》

박승훈은 더욱 눈물이 북받쳐내린다. 이것들에게 어떻게 그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전한단말인가! 경주 너도 그렇거니와 감옥에 있는 영숙이는 어떻게 그 소식을 받아안을테냐? 너희들의 생명을 도려가는것 같은 그 소식을… 박승훈은 가슴이 저려왔다. 총총히 방안에서 나가버리고싶기도 했다.

경주는 경주대로 매우 초조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밤 일어나는 모든 사실이 수수께끼만 같았다. 한참전에 상준이와 오순희는 자기를 이 집에 옮겨다 눕히고나서 김성주동지가 어데 갔는지 없다고 하면서 불안해하였다.

《얘 경주야, 이상하지 않니? 김성주동지가 어데로 나가면 나간다고 하지 왜 살그머니 뵈지 않을가? 글쎄 뱀의 눈알들이 사처에서 독을 뿜고있는데…》

오순희는 울먹거리며 부르짖었다. 그리고나서는 상준이와 함께 김성주동지를 찾아서 거리로 나갔다. 그런데 김성주동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상준이와 오순희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박승훈이가 진찰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이것은 분명 김성주동지가 자기를 위해서 인의병원에 찾아갔던것이 분명하다. 그게 분명하다면 김성주동지는 왜 돌아오지 않고 박승훈이를 권성근이가 데리고 왔는가? 그리고 또 박승훈이 누가 모시러 갔더냐고 묻는 소리에 대답을 피하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자기 하나가 앓기때문에 무엇인가 복잡한 일이 일어난것 같고 숱한 사람들이 밤중에 들볶으며 뛰는것 같았다. 송구해서 견딜수 없었다. 무슨 주사를 놓았는지 들먹거려지던 몸이 자리에 붙고 눈앞이 가물거려지며 눈덕이 무거워왔다.

《박초이지만 담배를 한대 피우십시오.》

박승훈이 환자에게 모포를 가리워주고 물러앉자 권성근이 담배갑을 내밀어놓으며 말했다.

《네, 고맙습니다.》

박승훈은 권성근의 담배갑에서 담배 한대를 뽑아다가 붙여물었다. 그리고는 담배연기를 뿜으며 경주쪽에 시선을 돌렸다. 경주는 벌써 잠에 떨어졌다. 고르로운 숨소리가 방안을 울리였다. 이러는데 젊은 가대기군 한명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에 두어깨가 처지고 얼굴빛이 시꺼멓게 된 리상준이 들어섰다. 상준은 박승훈에게 인사도 없이 방가운데 후들거리는 다리를 멈춰세웠다.

《통분하구나!》

가대기군청년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주저앉았다. 그바람에 방안에 있던 청년들과 권성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들 가대기군을 지켜보았다. 권성근은 벌써 무슨 륙감이 오는지 온몸을 후들대며 상준이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권성근이 물었으나 상준은 대답이 없었다.

《글쎄 무슨 일이 있게 이러나?》

《아저씨!》

여전히 상준은 말이 없고 젊은 가대기군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돌리며 부르짖었다.

《아저씨 묻지 마십시오. 어떻게 이 말을 입에 올릴수 있습니까?》

《…》

《선생님! 선생님은 병원앞에서 일어난 일인데 그저 모르고있었습니까?》

가대기군은 이번엔 박승훈을 쳐다보며 항의했다. 박승훈이도 낯빛이 숯등걸같이 되여 말을 못했다. 그도 안경을 벗어들며 눈물을 닦았다. 권성근은 낯빛이 무섭게 변해갔다. 입술을 푸들거리며 상준을 한참동안 쏘아보았다.

《시라소니같은녀석들…》

그는 상준을 되게 흘겨보며 욕설을 했다. 상준이는 발방아다리처럼 버티고 서있던 두다리를 꺾고 주저앉으며 자기 머리를 거머쥐였다.

《너희가 누구를 칭원하느냐? 너희는 왜 이런 일이 없도록 잘해내질 못했느냐?》

권성근이 이번엔 울고있는 가대기군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령감님, 진정하십시오. 일이 분하게 되였습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을 터뜨리지 않을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래 체포되였단말인가요?》

《네.》

박승훈이 푹 꺼진 음성으로 대꾸했다. 권성근은 노란 눈알로 흘깃 바라보기만 하며 말을 안했다. 그는 목이 뻐개지는것 같은 요란한 소리로 담을 긁어올리며 출입문쪽을 향해 돌아섰다.

《음, 하늘이 무너졌군…》

권성근은 중얼거리며 문턱을 넘어선다. 박승훈은 권성근이 나간 뒤에도 오래 앉아있었다. 그러더니 그도 왕진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또 잠간 섰다가야 발을 떼였다.

밖으로 나온 그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한참씩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군했다.

그 소리는 천길나락속으로 깊이깊이 내려가는 소리같았다.

경주는 새벽녘이 되여서야 눈을 떴다. 그렇게 뜨겁던 열이 씻은듯 내리였다. 머리도 텅 빈것 같았다.

웃목에 누군가 누워있는것이 희미한 새벽빛에 보일뿐 방안은 고요했다. 불시에 박승훈이와 권성근이 언제 갔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그제야 김성주동지가 아직 안돌아왔는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또 머리를 들었다. 분명코 어제밤 김성주동지가 인의병원에 갔던 모양인데 왜 권성근이 의사를 데리고 오고 김성주동지는 돌아오지 않았을가? 찾아나간 상준이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가? 아직 돌아오지를 않았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 경주는 지금 밖에선 무엇인가 놀라운 일이 벌어져있는데 자기만이 이 방안에서 모든것을 감감 모르고있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인가 방 웃목에서 벽쪽으로 돌아누워 흐느껴울고있다. 경주는 가슴이 철렁해서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다가가기가 무서웠다. 무엇인가 예감이 너무도 강했다. 누워서 울고있는것은 오순희였다. 경주는 당장 된방망이에 맞는것 같고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순희야!》

오순희는 얼른 얼굴을 돌리였다. 희미한 새벽빛을 받아 그의 얼굴빛은 새파랗다.

《경주야, 어떻니?》

벌떡 일어나 경주쪽으로 다가오는 오순희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젖어있다.

《난 인제 다 나았어. 그런데 어째서 우니?》

《…》

《무슨 곡절이 있을게 아니냐?》

《내가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소리를 하겠니?》

《글쎄 무슨 소린지 이야기를 해라.》

경주자신도 벌써 사태가 다 드러난것 같이 느껴져서 오순희의 어깨를 걷잡아쥐고 흔들었다. 무서운 힘의 파동이 오순희를 휘둘러댔다. 오순희는 경주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흐느끼면서 김성주동지께서 인의병원앞에서 체포되신 사연을 이야기했다. 경주는 오순희가 흔들면 흔드는대로 지그시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끝내고난 오순희는 돌처럼 굳어진 경주의 싸늘한 볼을 어루만졌다.

《얘 경주야, 우린 인제 어떻게 해야 하니? 이 복잡하게 된 혁명을 누가 키를 잡느냐? 난 혁명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하고 어려운것인줄은 몰랐어. 글쎄 김성주동지가 없이 우리가 어떻게 이 준엄한 길을 헤쳐나갈수 있겠니? 얘 넌 어째서 말이 없니?》

그래도 경주는 그린듯이 앉아있다. 이번엔 오순희가 마구 안타까와 부르짖는다.

《얘, 넌 정말 벙어리가 됐니? 왜 말이 없니? 얘얘.》

오순희는 경주를 뒤흔들어댔다. 경주는 일어나 몇발작 비척이고나서는 또 그린듯이 서있다. 그다음엔 오순희가 일어서서 경주의 가슴에 뺨을 대고 비비며 울었다.

《얘, 나 좀 밖에 나가자.》

그제야 경주는 오순희를 떠밀치며 입을 열었다.

《어데로 가자는거냐?》

《가긴 어데로 가겠니?》

경주는 밖으로 걸어나가 선창가에 호젓이 섰다. 서광에 그의 얼굴은 더욱 새하얗게 되였다. 강가에선 시누런 물이 웅실거리고 잠을 깬 물새들이 삐유삐유 우짖으며 날고있다. 경주는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씻었다. 오순희가 뒤에 따라왔다.

경주는 아무 말이 없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마치 자기가 이 혁명에 무서운 손실을 입힌것만 같았다. 자기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겠는가! 자기가 앓은것때문에 김성주동지가 인의병원으로 가게 되고 그래서 이런 무서운 일이 생긴것만 같았다. 아,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그야말로 입김으로 혁명의 열기를 불어넣어주고 삶의 힘을 안겨준 그 은인, 그 은혜로운 큰 품이 아니였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참신한 삶속에서 진정으로 혁명이 어떠한것인가를 알게 되였겠는가. 그리고 인간이 가질수 있는것 속에서 가장 고상한것과 참된것을 자기의것으로 하고 랑만의 노래와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이 드넓은 혁명의 길로 걸어나갈수 있었겠는가! 그랬는데 결국은 김성주동지가 나때문에 손에 수갑을 차고… 원쑤들에게 이끌려가는… 아 나는 너무도 무서운 죄인이 되지 않았는가! 어떻게 해야 혁명앞에서 이 죄를 씻는단말인가! 내 몸이란것이 무엇인가! 나같은것이야 앓든 어쨌든 내버려둘 일이지 나같은것을 심려하여 그 삼엄한 판으로 갈건 무엇인가! 제발 가지 않았던것으로, 잡히지 않았던것으로 만회할수는 없을가!

경주는 저혼자 가슴을 움켜쥐며 울었다.

어데를 밤새도록 허둥지둥 돌아다니다 온듯싶은 리상준이가 그들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경주와 순희의 모습을 보고는 우뚝 서버리였다. 그리고는 갈길을 잃은 사람처럼 한참이나 서있다가 어디론가 다시금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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