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6 회 )

 

제  4  장

 

검 은   구 름

 

1

 

경무청 순경부장 공가는 어제밤에도 일본령사관으로부터 주먹만한 아편덩이를 받았다. 벌써 아편을 얼마나 받아먹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자꾸 턱밑에다 받쳐주었다. 그바람에 그는 숱한 조선사람을 경무청에 잡아들여 가두고 매일 령사관이 시켜주는 방법대로 지독한 고문을 들이대며 공산주의뿌리를 뽑자고 문초를 해댔다. 그러나 아무리 고문을 해야 공산주의자같은 단서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가는 령사관으로부터 헛그물질을 한다고 단단히 꾸중을 들었다.

그는 뢰물을 받아먹고 뛰긴 했으나 얼떨떨하게 뛰였다는것을 어제밤에야 알았다. 령사관은 학생층에 발을 붙이고있는 젊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들이라고 했는데 공가는 공산주의자라니 맑스주의 머리를 하고 다니던 사람들만 생각하고 그들같은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 순경들을 내띄우고 투전장 조이듯했다.

《그런 공산주의자도 좋지만 학생공산주의자, 청년공산주의자를 잡아내시오. 지난해 대시위의 조직자들을 잡아내시오. 그 운동의 지도자를 놓치지 마시오.》

령사관에 와서 박혀있는 첩보두목 미야모도는 어제밤 각근히 공가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소근거렸다.

지난해 대시위에서 그전날의 조선공산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청년공산주의세력이 자라고있다는것을 간파한 일제는 그 세력을 초기에 뿌리뽑아버려야 하겠다는 야망으로 이런 모략을 꾸며냈던것이다. 일제는 아직 자기네 법을 마음대로 휘두를수 없는 이 중국땅에 제놈들자신이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을 체포투옥할수 없으므로 경무청의 공가같은 반공분자들을 매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꾀하였다.

그러나 일본령사관 밀정 미야모도의 뢰물작전에 매수된 순경부장 공가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때문에 이 순간엔 가슴이 죄여들고 눈물이 다 핑그르르해졌다.

그래서 그는 오늘부턴 아예 광기가 뻗쳐서 뛰였다. 그는 자기 휘하의 순경들을 경무청장이 뭐라든 자기 말만 들으라고 몰아세우며 학생공산주의자를 잡아들이라고 내몰았다. 경무청장은 독군의 말이라면 벌벌 떤다. 그럴 필요가 있는가. 독군이 일본은 좋아하지 않지만 공산주의자를 잡아들이는건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기때문에 일본을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을 잡는게 아니고 독군을 위해서 잡아들인다고 보아야 한다. 이게 공가의 주장이며 이래서 자기 상급인 경무청장도 가재미눈으로 흘겨보았다.

공가는 종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고문실쪽에선 내내 악악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공가는 인젠 잡아가둔놈들속에서 그 무슨 학생공산주의자가 나오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그 비명소리를 듣고있었다. 그런데 저녁때였다. 순경 셋이 학생 네명을 체포해가지고 와서 공가의 방으로 들어섰다. 공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게 웬 학생들이냐고 물었다.

《제5중학교에서 공산당회의 하는놈들을 붙잡았습니다.》

순경 하나가 대답하며 경례를 붙이였다.

《공산당회의? 흐흐흐.》

공가는 불시에 웃음집이 터졌다. 그는 인젠 아편값을 할만큼 면목이 서게 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좋아, 우린 당신들을 형틀에 매달자고 끌어오진 않았소. 젊은 혈기에 공산당도 할수가 있지. 있고말고…》

공가는 철색입술이 벌어져 학생들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는 정말 암사슴을 업어다놓은것만치나 흐뭇해했다. 학생들의 옷주제는 온통 땅바닥에서 안고 딩굴며 씨름이라도 한것 같았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순경들과 한바탕 치고 때리고 하는 싸움을 벌린게 틀림없었다. 한 학생은 볼편이 째져 피가 내뱄다.

《이게 바로 회의를 하던 문건입니다. 무슨 성격검토회라는걸 했습니다.》

순경 하나가 주머니에 꾸겨넣어가지고 온 무슨 서류인가를 꺼내놓고 설명했다.

《음, 성격검토회라…》

공가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 청년이 제5중학교의 공산당을 맡아가지고 지도한것 같습니다.》

순경이 서류에 있는 채경의 이름을 가리킨다.

《음, 채경이라… 옳아 나두 아오. 법정학교에 다니는데 아주 좋은 청년이요. 흐흐흐.》

공가는 또 누런 이발을 드러내며 웃었다. 학생들은 무서운 눈을 하고 공가를 쏘아보았다. 공가는 그 눈초리에 등골이라도 오싹해지는지 얼른 순경들에게 눈기질을 했다. 순경들은 학생들을 이끌고 그 방에서 나갔다.

《인제 걸리기 시작했구나. 한번 솜씨를 보이자. 뚱뚱보와 난쟁이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게.》

뚱뚱보란 일본령사를 말하는것이고 난쟁이란 키가 작은 첩보두목 미야모도를 말하는것이였다. 공가는 신명이 나서 방안을 으쓸거리며 돌아갔다.

이리하여 길림에선 학생들을 잡아들이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순경들은 육문중학교에도 달려들고 문광중학교에도 달려들었다. 선생들이 경무청에 불려들어가 공산주의학생을 대라는 우격다짐을 받았다. 육문중학교에서는 교장과 교원이 불려들어가서 김성주동지의 행방을 대라는 문초를 받았다. 놈들은 들쑤시지 않는 학교가 없었다. 녀자사범, 녀자중학교에도 순경들이 몰려들어가 출석부조사를 하며 녀학생들속엔 공산주의자가 없는가고 따지며 물었다. 놈들은 학교에 달려들어 이렇게 수색하는가 하면 중학교, 전문학교 학생들이 있는 집들도 후리그물을 훑듯 훑으며 돌아갔다. 순경부장 공가는 조금이라도 눈치가 다르면 다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때까지 류치장에 가두고 때리고 지지고 물을 먹이고 하던 사람들은 죄다 내놓아주고 그대신 류치장에 학생들을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자신이 직접 고문실에 들어가앉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을 철철 흘리며 두드려팼다. 그러면서 공가는 한편으로는 채경이를 붙잡기 위해서 제5중학교에서 단서가 잡힌 그날밤부터 순경놈들로 하여금 채경이네 빈집을 둘러싸게 했다. 첫날밤 달려들 때엔 놈들이 빈집인줄을 모르고 쪽대문이 열리지 않게 되자 널바자를 뛰여넘어가며 법석을 했다. 놈들은 대문설주에서 딸랑거리는 메기입방울을 보자 이놈의 집이 공산당비밀장소가 틀림없다고들 수군대였다. 놈들은 채경이 집에 숨어있는가 해서 부지깽이로 부엌아궁을 휘저어보기도 하고 찬장을 넘어뜨려 그릇을 깨며 뒤구석을 살펴보기도 했다. 한놈은 뒤울안으로 나가노라고 뒤문을 차서 바스라뜨려놓았다. 아무데도 채경이 보이지 않게 되자 놈들은 즉시 법정학교로 달려갔다. 법정학교엔 소사가 한명 수직을 서고있었다. 두눈이 상혈한 놈들은 소사의 뺨을 후려치며 채경이 어데 갔는지 대라고 고함을 질렀다. 아닌밤중에 홍두깨같은 봉변을 당하는 소사는 기겁을 해서 말도 못하고 벌벌 떨었다.

《이놈아, 왜 말을 못해? 채경이란 학생이 집을 비워버리고 어데로 갔는지 대란말이야.》

《전 모릅니다.》

《모르다니, 너두 공산당짝패로구나. 이놈의 학교는 공산당을 양하는 학교란말이야. 넌 그래 무슨 과목을 가르치니?》

《아니, 제가 가르치다니. 전 심부름을 하는 소사올시다.》

《쟈, 이게 소사가 건방지게 나비수염을 길렀어?》

순경 한놈이 소사의 수염끝을 쥐여서 입이 삐뚤어지도록 흔들며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딴놈들은 빙긋거리며 웃기도 했다.

놈들은 이런 복새를 일구고는 달아나버렸다. 그 무슨 공산당뿌리를 들어내자고 하는놈들인게 아니라 마구 갈개는 미친놈들 같았다.

《말세가 됐나보구나. 저놈들은 봉천대도독의 휘하에 있는 놈들이 아닌가? 그래 지금 일본놈들이 만주를 먹자고 지랄을 하지 공산당이 만주를 먹자고 한단말인가.》

소사는 비틀린 수염을 바로잡아놓으며 통탄했다. 놈이 어떻게 되게 잡아비틀었는지 코밑살가죽이 온통 벗겨진것 같이 얼얼했다.

 

길림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있을 때 바로 채경은 돈화에서 누이동생 경주와 함께 기차에 올랐다. 일을 끝내고 길림으로 돌아오는길이였다. 그는 하평과 대북쪽을 완전히 깨끗이 만들어놓았다. 돈화쪽으로 올려밀려는 종파들의 책동이 완전히 짓뭉개여지고 하평, 대북은 인젠 어떤 미친바람도 들이닥칠수 없는 튼튼한 지대로 되였다. 두 동네의 일을 끝낸 채경은 계획했던대로 각 지방 반제청년동맹책임자들의 회의도 열고 변동되는 정세하에서 조직을 어떻게 지키며 어떻게 확대해나가야 한다는 사상을 심어넣어주었다. 그리고는 그자신이 조직의 확대를 위해서 박철민이와 함께 새로운 지역들로 나가서 동지획득을 위한 사업도 벌리였다. 숱한곳에서 새 사람들과 손을 잡았다. 앞으로 조직을 내올수 있는 핵심세력을 형성해놓은곳이 여러곳 되였다.

채경은 왔던 보람을 느끼며 돈화를 떠났다. 그는 새로 개척해놓은 지역들에 출판물을 내려보내자는 생각을 하며 경주를 데리고 떠났다. 하긴 경주를 데리고 떠나게 된건 출판물도 출판물이지만 경주자신이 제비둥지같은 빈집에 남겨둔 자기의 책들이며 소지물을 전부 걷어가지고 공작지로 가겠다고 함께 떠났다.

오누이는 그 어데 나들이라도 가는것 같이 몹시도 즐거웠다. 고생속에 자라온 오누이는 둘이 이렇게 기차를 타고 려행해본 일이란 없다. 채경이도 기뻤지만 경주가 더욱 기뻐했다. 그는 기분이 가벼워져 그런지 핼쑥하던 얼굴우에 알릴락말락 혈조도 연하게 물들었다. 경주는 몇정거장 안가서 달려가더니 대추와 돌배를 사가지고 왔다. 새빨간 대추였다. 돌배도 물렁물렁 잘 익었다.

《오빠, 어서 드세요.》

《오냐 먹자꾸나. 난 가을들판만 내다보아도 배가 부르구나. 어쩐지 만주에 와서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생각도 나구.》

《원 오빠두. 이 즐거운 날에 구슬픈 과거의 이야기는 무엇때문에 꺼내요. 전 아버지나 어머니생각을 아예 안하기로 작정했어요.》

《그래야지. 과거의 생각이 오늘의 우리에게 그렇게 힘이 되지 않는것이라면 무엇때문에 그 쓰라린 생각을 자꾸만 할테냐. 어서 대추나 먹자.》

둘이는 대추를 한알씩 집어다가 이발로 깨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추를 깨물면서도 역시 눈굽에 이슬이 괴여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만 나는게 아니고 길림에서 둘이 함께 고생하던 생각도 났다.

차창밖을 내다보는 오누이는 눈물이 글썽해서 추억을 더듬었다. 차창밖으론 산이 지나가고 들판이 지나간다. 맑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훗훗 볼에 날아와닿는다. 산엔 단풍이 붉고 무슨 새들이 한무리 날아오른다. 그것들은 공중의 일점에 떠서 파닥파닥 깃을 쳤다. 마치 파란 하늘속에 빠져 헤여나지 못하는것 같기도 하다. 어데를 달리는지 기차는 쿵덩거리며 철교를 건늬였다. 한낮 기운 해빛이 강물우에 금빛을 쏟아붓듯 비쳐내렸다. 잔주름으로 춤추는 강물은 금빛인가 하면 은빛같기도 하고 은빛인가 하면 금빛같기도 하다. 은빛과 금빛이 섭쓸려 뛰며 반짝이며 넓은 폭을 이루고 흘러간다. 오누이는 즐거운 동심에 빠져 강물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둘이 다 개버들이 우거진 강가에 내려가앉아 피리를 만들어 불고도싶었다. 마른 쑥대밑으로 솔솔 기는 들쥐를 따라 돌아가고도싶고 봄같으면 삘기를 뽑아먹고도싶었다. 그리운것, 아 그리운것이 너무도 많았다.

《오빠, 저는 앞으로 더 새로운 개척지로 나가자고 해요. 김성주동지가 늘 동만개척을 말씀했는데 저는 하평, 대북 저편 연길쪽으로 선이 뻗어내려가면 그쪽으로 내려가서 공작하겠어요.》

《그렇게 해라. 이번 올라갔다가 김성주동무가 돌아왔으면 그 문제도 토론하자!》

둘이는 또 말없이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주는 내내 눈에 이슬이 글썽거렸다.

《오빠, 이 세상은 참으로 이상하게 생겼죠?》

《뭐가말이냐?》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는가 하면 또 이렇게 즐겁고 랑만적인 시간도 있구…》

《허허, 넌 오늘 어린애같은 기분에 잠겨있는것 같구나.》

《어린애가 뭐 나쁜게 있어요? 이 세상이 온통 어린애같은 천진한 세계속에 들고 모든 생활에 아무런 사악도 없는 인간들의 깨끗한 즐거움이 있구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땅에 불어가는 바람도 인간을 위해서 웃어주고 축복을 보내주고 하는 동화의 나라같은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혁명가가 그런 목가를 읊조리면 되겠니?》

《그게 목가예요? 우리의 지향속에 그런 목가적인 꿈과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 혁명을 하겠어요? 저는 이런게 바로 오늘 피의 투쟁속에 있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정신적바탕, 아니 가슴밑바닥에 차넘치는 그 무엇이라고 보아요.》

경주는 열렬히 부르짖었다.

《난 그 말을 부인하진 않는다. 그게 어떤 감상적인 이야기인것 같아 그러는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것이 어떤 큰 의지력과 목적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풍성한 정신세계라면 그이상 좋을것이 어데 있겠니? 모든것을 틀어잡고나가는 굳센 사람들의 심저에 깔려있는 그 인간적인 따뜻한 눈물의 향기야말로 얼마나 좋은것이냐?》

《정말 우리는 그 굳세고 줄기찬 끝없는 깊이에 그런 인간적인 아름다운 눈물이 있기때문에 모든 투쟁이 이렇게도 행복스럽게 생각되나봐요.》

《말하자면 그게 우리 혁명가들의 넘쳐나는 인간적인 원동력이겠지.》

둘이는 몹시도 행복했다. 기차가 그 어느 먼 즐거운 나라로 쿵덩쿵덩 달리는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차창밖엔 황혼이 내리고있다. 누런 거물이 광막한 들판으로 우물우물 기여오고있다. 그리더니 이어 곧 어둠이 내렸다. 기차는 여전히 어둠속을 쿵덩거리며 달리고있다.

오누이는 밤중에야 길림역에서 기차를 내리였다. 그들은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조양문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섰다. 왜 이렇게 거리가 조용할가 하는 이상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순경들의 학생들에 대한 수색전이 시작된 뒤 시내가 긴장해진것을 모르는 그들이였다. 둘이는 이게 혹시 일제가 준동하는것과 그 무슨 관련이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양문을 넘어서 큰거리로 걸어들어가는데 거기엔 그래도 사람들의 래왕이 있었다. 다부산자를 입은 중국사람들이 오고가는가 하면 마차가 채찍을 후리며 달리기도 했다. 녀중학교로 들어가는 골목길엔 무슨 일이 있는지 사람들이 한패 모여서서 와야와야 들끓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엇이 담장을 넘겨뜨리고 뛰여나갔는데 그뒤에 순경들이 떼를 지어 따라나갔다는것이였다.

《오빠, 왜 이렇게 거리공기가 달라졌을가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드는군요.》

《무시무시하긴 뭐가 무시무시하겠니? 빨리 걷자!》

둘이는 수군수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삐 걸었다. 골목길로 들어서 한참 걸으니 제비둥지같은 정다운 집이 보였다. 경주는 오래간만에 집을 보니 눈에 또 눈물이 글썽해졌다.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이 한꺼번에 덮어친다. 이 작은 집 마당에 꽃밭을 꾸리고 아침저녁 물을 주던 생각, 부엌이 내서 끼니를 끓일 때면 눈물을 짜던 생각, 송도국 룡상연극을 할 때엔 녀학생들이 모여들어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련습도 했었지. 그 동무들은 지금 다 무얼 하고있는가? 오순희, 오순희 생각이 제일 간절하다. 그 정다운 동무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보고싶었다. 그 애는 요새 무슨 과업을 맡아가지고 이 길림바닥을 제비같이 날고있는지?

집앞에 온 오누이는 어째 널바자도 대문도 그대로 있지 않는것 같아 잠간 주춤거렸다. 널바자 한군데가 꺾어져 넘어가고 대문은 흔들어도 방울소리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 내가 손질한대로 있지 않는것 같구나.》

채경은 중얼거리며 자기가 비끄러맨것 같지 않은 철사를 간신히 비틀어 풀고 대문을 열어제꼈다. 방울을 달았던 자리를 만져보니 방울은 없고 철사를 끊어낸 자리만 손에 마쳤다.

《애들이 장난을 했을가?》

채경의 말이였다.

《글쎄 장난감같은걸 대문에 달았으니까 그랬을수도 있겠죠뭐…》

경주는 오빠의 말에 대꾸했다. 토방으로 올라서 부엌문을 열자고 하다가 그제야 집이 온통 두드려맞은것 같이 상처를 입었다는걸 알았다. 부엌문은 살이 부러지고 웃틀이 꺾어진걸 돌저귀에 맞추지도 않고 그대로 세워놓았다. 경주는 그걸 열다가 문이 머리를 때리며 넘어오는 바람에 하마트면 토방아래로 굴러떨어질번했다. 웃방문으로 가니 그 문도 그런 꼴이 되였다. 오누이는 가슴이 후두두 떨리였다. 채경은 직감적으로 경무청습격이 있었다는걸 느끼며 방안으로 들어가 성냥불을 켰다. 역시 방안도 란장을 쳐놓은것 같았다. 대뜸 눈에 띄우는것이 서가를 뒤집엎어놓은것이였다. 어떻게 했는지 서가도 뒤에 붙인 널판이 빠개져나갔다. 책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정지방으로 내려서며 성냥불을 또 한가치 켰다. 정지방은 더 어마어마한 파괴를 당했다. 찬장을 뒤집어엎어놓아서 가마목이고 구들이고 온통 바스라진 그릇천지였다. 가마도 조그만것은 웃턱이 떨어져나갔다.

《오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요? 순경놈들이 달려들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없으면 돌아갈테지 이렇게 집을 두드려놓을 일이야 없지 않아요.》

《그놈들의 지랄을 가늠할수가 있느냐! 안됐다. 이 장소가 인젠 위험하게 됐다. 빨리 약왕묘지하실로 올라가자.》

둘이는 문밖으로 나섰다. 경주는 가슴이 떨려왔다. 그래도 채경은 끄떡없이 넘어져나간 문 둘을 바로 일궈세워놓고 토방아래로 내려섰다.

이 순간이였다. 집주위에서 울커덕거리는 소리가 나며 벌써 문앞으로는 시꺼먼 그림자 둘이 달려들어왔다. 순경놈들이였다. 한놈이 밤마다 감시를 하며 서있었댔는데 막 오누이가 대문안으로 들어서는걸 보고는 급하게 달려가 제 동료를 몰고온것이였다. 두놈은 달려들며 채경이를 붙잡았다.

《이건 뭐요? 왜 이러우.》

채경이는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놈들은 전지불을 켜대며 경무청으로 가자고 을렀다.

《내가 경무청엔 왜 간단말이요? 당신들이 빈집에 달려들어서 이따위짓을 해놓았소? 무언가 오해를 하고있지 않소.》

《쟈, 이것 봐라. 이 자식이 경무청 맛을 못봤구나.》

한놈이 달려들며 채경이에게 포승을 지우려고 했다. 채경은 화닥닥 발길로 내차며 포승 쥔놈의 뺨을 후려갈겼다. 이러는데 대문안으로 또 한놈이 달려들었다. 사태는 위급하게 되였다. 그러나 채경은 경주에게 뛰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놈을 또 주먹으로 갈겼다. 그는 주먹으로 갈기고 발길로 차고 하면서 먼저 들어선 한놈을 마당가운데 쓰러뜨렸다. 란투가 벌어졌다. 경주도 뛰지 않았다. 오빠 오빠 소리를 지르며 순경놈의 팔목이라도 잡아비틀려고 숨이 차게 뛰여돌아갔다.

《경주야, 넌 피해라.》

《제가 왜 피하겠어요. 오빠가 피해요. 오빠가 피해요.》

경주가 마주 부르짖었다. 살핏한 그의 얼굴에선 눈빛이 무섭게 번쩍거렸다. 공작지에 가서 피눈물나는 현실과 씨름을 하며 참고 참았던 그 모든것이 바로 여기 길림땅에 와서 탁 터져버린것 같기도 했다. 이 날강도같은 세상, 피고름이 괴여오르는 더러운 사회, 보리 여섯마대를 지어놓은 농사에서 다섯마대를 빼앗아가겠다고 하는 강도같은 왕가놈, 이게 그 날강도를 비호하는 악당놈들 아닌가! 저주로운것들, 더러운것들!

경주는 눈에서 불이 일었다. 오빠에게 칼을 쓰자고 하는놈의 양복잔등판을 거머쥐고 나꾸챘다. 놈이 뒤걸음을 쳤다. 경주는 오빠더러 뛰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딴놈의 구두발에 채여 넘어갔다. 다시 일어나자고 하자 놈이 또 한번 짓밟아놓는다.

채경은 종시 포승줄에 결박을 당했다. 목덜미가 돼지목덜미같은놈이 채경을 이끌고 나가며 호각을 불며 법석을 했다. 딴놈들을 더 불러들이는것 같다.

《오빠, 오빠ㅡ》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경주는 어두운 골목으로 달려나가며 오빠를 불렀다. 그러나 오빠는 벌써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경주는 이 골목 저 골목 훑으며 경무청이 있는쪽으로 내뛰였다. 그러나 그는 골목을 잘못들어 녀자사범이 있는 골목으로 한참 뛰여나갔다. 얼마후에야 그는 길을 잘못들었다는걸 깨닫고 돌아서 뛰였다. 회좁은 골목에서 그는 담장에 태를 치며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뛰였다. 어데선가 또 호각소리가 울리였다. 울컥거리는 발자국소리도 들리였다. 아마도 자기를 붙들려고 집쪽으로 몰려가는것 같았다. 경주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오빠ㅡ 오빠는… 아니 그래 오빠가 잡혔단말예요. 우리 오빠가 잡혔단말이예요?》

그는 골목길에 꺼꾸러지며 실성한듯 땅을 두드렸다. 곁에 전신주가 있어서 그는 전신주를 붙안고 몸부림했다.

《아 오빠! 우리 오빠!》

그는 또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뛰질 못하고 다시 거꾸러지며 전신주에 볼을 비볐다. 목이 터지는 울음이 자꾸 솟아올랐다.

 

2

 

길림사태가 험악해졌을 때 김성주동지께서는 예정했던대로 카륜으로 와서 활동하고계시였다. 고유수에서 새로운 사업을 펼치신 그이께서는 차광수를 길림으로 돌려보내고 단신 이곳으로 오시여 군중지반을 튼튼히 꾸려놓는 일에 착수하시였다.

보다 광활한 지역에서 조직들을 확대강화하며 보다 광범한 군중을 묶어세우기 위한 새로운 단계의 혁명 그 중심적인 근거지를 여기 카륜으로 정하고 그 지반을 튼튼히 닦으시려는것이였다.

그래서 벌써 이틀밤 공청과 반제청년동맹, 부녀회 등 각 조직들의 회의도 하시였다. 그리고는 동산리, 조양촌 일대를 몸소 돌아다니시며 인민들과 담화도 하고 어느날 밤엔 진명학교 강당에서 군중회의를 여시였다. 이 일대의 농민들을 단합시키는 큰 회합이였다.

그동안 공작원들이 와서 투쟁은 했으나 이곳 농민들속에서 악습으로 되여있는 남도니 북도니 하는 패거리싸움을 말려내지 못했다. 이곳에는 그전날 민족주의자들이 끼쳐놓은 악영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대체로 이곳엔 《정의부》의 세력이 들어와있었는데 그들은 북도사람들과만 손을 잡고 남도사람들은 사람으로 치지를 않았다. 그전 서근하같은 사람들도 이곳에 오기만 하면 경상도문둥이들 가지고는 독립운동을 못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다녔다. 그래서 남도사람들과 북도사람들사이엔 너면 너고 나면 나라는 장벽이 이루어지고 서로 아이들까지도 섞여놀지 못하게 신칙을 했다. 그래서 지난봄 이 사정을 료해하신 그이께서는 장벽을 허물어야 카륜지역에서 혁명화의 불길을 일으킬수 있다고 리병모에게 각별히 말씀해주시였다. 그런데 이번에 료해해보시니 아직 농민들이 섭쓸려 살아나가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본시 북도내기들이 사는 동네에 조직된 농민조직에 남도내기들은 몇명 들어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농민조직에 들어온 남도내기들도 그렇게 열성을 내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것은 아직 자기들 뒤에 남도내기들의 무너지지 않은 세력이 서있기때문에 그러는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밤 북도와 남도내기 농민을 죄다 불러다놓고 회합을 열었는데 역시 장벽은 견고했다. 이곳 조직책임자 리병모가 단합을 력설하는 보고를 해놓고 누구든지 이야길 해보라고 해도 농민들은 말이 없다. 남포등 두개를 걸어놓은 넓은 강당에 사람들이 빼곡 죄여앉았는데 모두 기도를 올리듯 머리를 떨구고 앉아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방안엔 반제청년동맹원들도 있고 공청원들도 있는데 그들에게 말을 시킨다면 개개명창으로 들고일어나 이 부정적현상을 타매하는 열변이 터져나오겠지만 그이께서는 미리 청년들에겐 선손을 긋지 않도록 일러두시였다. 농민들의 진짜 심정을 알아보시려는것이였다.

온 장내가 꿀먹은 벙어리같이 돼버리자 리병모는 열이 올라 땀을 씻으며 공연히 기침을 했다. 이때까지 뛰여다니며 투쟁을 할 때에는 그래도 이 지역이 적잖게 혁명화된것 같은 생각도 들었는데 오늘밤 군중을 모여앉혀놓고보니 이건 혁명화가 아니라 혁명화의 보습도 대보지 못한 황무지같다. 남도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북도사람들은 왜 입을 다물고 앉아있는가! 그래도 북도사람들속엔 각종 조직들도 나오고 혁명의 영향력이 세게 침투되여들어갔다. 그런데 이들마저도 침묵을 지키고 앉아있으니 울화가 터지지 않을수 없다.

김성주동지께서 리병모의 이 심정을 짐작하시고 말씀을 꺼내시였다.

《자, 누구든지 먼저 이야기해봅시다. 인제 보고하는 동무도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으로서 또 이렇게 산 설고 물 설은 이역땅에까지 쫓겨와 살면서 남도니 북도니 하는 패싸움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광복운동에 좋은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일제가 만주에까지 쳐들어오자고 움찍움찍하고있는 이때에 우리가 서로 반목질시하며 단결이 안돼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밤엔 누구나 다 자기 의견들을 내놓아봅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남포등밑에서 좌우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어찌 죄여앉았는지 모두 뿌질뿌질 땀들을 뺐다.

《선상님, 제 한마디 하라능기오.》

얼마후 저편 문앞쪽에서 말을 건늬는 농민이 있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머리가 우글우글한 속에서 어느 농민이 말을 꺼냈는지 몰라 그이께서는 얼굴을 쳐들고 이쪽저쪽 쳐다보시였다.

《말씀 듣고 아시겠지만 전 여기 사람들 말마따나 경상도문둥입니더.》

몸집이 다부지게 생긴 상고머리뒤에서 소리가 난다.

《경상도문둥이라고 하시는데 누굽니까?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며 웃으시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였다. 여러 사람이 말을 꺼낸 사람더러 일어서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상고머리농민뒤에서 노랑수염이 웃입술을 덮은 키가 작달막한 사람이 일어섰다. 당장 무슨 불호령이라도 일어나고 쌈이 터질것 같던 숨가쁜 침묵이 일시에 사라지고 온 방안에 화기가 돌았다. 이런 낌새를 노렸는지 여기저기서 담배연기가 솟아오른다.

《제가 할 얘기는 다른게 아닙니더. 이 학교마을사람들 욕심 씨는거 개똥같십니더!》

노랑수염 난 농민이 이야길 시작했다.

《이 학교마을 저편에 내가 부치는 장가네 밭이 하루갈이 있지 않십니껴. 그런데 거기다 곡식 심어넣으면 이 마을사람들 새싹이 내밀기전에 다 밟아없앱니더. 이리 지름길 내고 저리 지름길 내고…》

그는 몸이 우람한 상고머리농민을 옆으로 밀어제끼며 한손가락을 뻗쳐 이리 긋고 저리 긋고 하였다. 지름길을 형용해보이는것이다.

《내 그래서 지름길이 난 밭머리마다 새끼줄을 쳤심더. 그런데 그 새끼줄이 쳐놓은 이튿날이면 다 없어집니더. 말뚝도 새끼도 귀신같이 없어지고맙니더.》

농민은 다부룩한 수염밑의 입을 쩍 벌리며 주위를 빙빙 돌아본다. 훈수를 청하는 얼굴이다.

《거 그럼 발목 찍는 창애를 밭머리에 묻어놓으면 될것 아닌가.》

학교마을사람 하나가 비꼬아주자 노랑수염 난 농민은 왈칵 성을 내며 팔뚝질을 하였다.

《난 늬들 북도내기같이 맘이 숭악하지 못해 못그란다.》

《그럼 이런 공적장소에선 그런 시시한 소리는 그만두는것이 좋아…》

《왜 시시한 소리라카나? 여기 늬들 경상도사람 얕보는 사상이 없나 말좀 해봐라.》

《얕보긴 무얼 얕본단말인가? 그래 동산리사람들이 잘한건 뭔가? 금년봄 남이 쓰는 무개하물목을 잘라서 대넣고는 경상도문둥이들만 논농사를 잘 지었으니 그건 잘한 일인가? 우리 동네사람들은 백여일경의 논을 묵여빼면서도 말을 안했어.》

《야 내사 기차서 말이 안나간다고만. 늬들이 그것때문에 말 안했나? 그래 야밤에 무개하으로 올라가 쇠스랑으로 물동을 테며 야단 안했나? 그리고 논을 묵여뺐다는건 무슨 말가? 늬들 논벼는 우리 동산리 논벼 할애비같이 됐드라.》

이렇게 되자 장내가 와글거리며 끓기 시작했다. 학교마을사람들은 경상도억지가 사람 잡는다고 떠들고 동산리사람들은 금년 논농사는 학교마을사람들 농사가 제일이라고 떠들었다. 결기가 올라서 부시를 찍찍 긋는 농민들도 있다. 저편 맨뒤쪽에선 같은 경상도사람들끼리 무슨 말을 하는지 손질을 하며 다투었다.

《가만있자. 이건 황아전거리가 됐군. 리병모동무, 장내를 좀 정돈시키시오.》

그이께서 말씀하시자 성미급한 리병모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좌정들하라고 소리질렀다. 그는 경상도사람들이 몰려앉아있는 쪽을 되게 흘겨보았다. 그제야 장내가 좀 조용해졌다. 사실 리병모는 이 싸움에서 경상도내기가 나쁘다는 편견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경상도내기들중엔 전날 《정의부》계통의 세력과 대결하기 위해서 주동적으로 나서서 뛴 오벽근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한때 경상도사람들끼리 독립군을 조직하고 주권을 세워야 한다고 하면서 무기를 사들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돈을 걷어모으며 야단법석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기도 못사들이고말았는데 이 사람이 지금 두편의 단합에 애를 먹이고있었다. 리병모는 오벽근을 두어번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오벽근은 독을 쓰며 본체도 안했다. 이렇게 되니 리병모는 아예 오벽근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도 할수 없는놈이라고 단정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한번 아니라고 도리를 흔든 문제는 끝까지 제 주장을 고집하며 외면하는 청년이였다. 그러니 오벽근은 이미 몹쓸놈으로 판이 찍혀졌다. 오벽근을 미워하니 자연 그의 조종밑에 있는 남도내기들도 전부 몹쓸 사람들이라고 단정해치웠다. 이래서 그는 남도내기들 집에는 발걸음을 안했고 그곳에 조직을 확대하는 일도 열성스럽게 밀고나가지 않았다. 바로 그런 오벽근이 이 자리에 와앉아있다. 리병모는 오벽근이 앉아있는쪽에 바위돌이라도 굴려보내고싶었다.

《이거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눌러서 안됐습니다. 그러나 오늘밤엔 회의를 하는만치 지나간 일을 꺼내놓고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고 질서가 없이 황아전을 펴서는 안됩니다. 한사람씩 이야길 하되 남의 이야기를 신중히 들은 다음에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거 오벽근농민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이께서는 좌중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좌중에선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 그러자 리병모가 얼굴을 쳐들며 뒤에 와앉은게 오벽근이 아니냐고 소리쳤다. 그제야 구레나룻수염을 한 오벽근이가 어험어험 기침을 하며 정중한 자세로 일어섰다. 기골이 크고 눈찌가 록록치 않아보였다.

《용서허이소.》

그는 기골과는 다르게 매우 주눅이 잡힌 태도로 허리를 구부정하고 서서 허두를 떼였다.

《앉아서 말씀하십시오.》

《좋십니더. 전 오늘밤 이 자리에서 뭐라고 내 심정을 토설했으문 좋겠는지 알수 없십니더.》

그이의 말씀에 오벽근은 더욱 송구한 몸가짐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또 한참 서있다. 오벽근이 왜 저런 시리죽은 상으로 나올가 해서 모두들 눈을 주었다. 그는 밸도 기골과 같이 험한 사람이였다. 그런 가위에 사리도 밝고 말도 잘했다. 그러기에 웬만한 독립군은 그를 쓴 고기라고 피해다녔다. 한번은 뚱뚱보 서근하가 조양촌에 갔다가 오벽근이한테 걸려서 땀을 뺀 일이 있다. 그날 오벽근은 서근하를 선생이라고 괴여올리며 점심대접까지 하고나서는 《정의부》의 정강이 무엇이며 그것이 《신민부》나 《참의부》의 정강과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서근하는 당장 얼굴이 붉어지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3부가 다 똑똑한 정강을 내세운것도 없는데 혀 돌아가는대로 대답했다간 망신을 당할것 같았다. 말을 못하고있는데 오벽근은 또 앞으로 조선이 독립되면 왕을 세울테냐 대통령을 세울테냐 하고 물었다. 그 소리엔 서근하가 대통령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자 대통령정치와 왕의 정치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왕의 정치는 독재정치고 대통령정치는 민주정치라고 하자 민주정치엔 농민이 어느마한 몫으로 끼우고 먹고 입을것이 어느만치 생기느냐고 물었다.

《허허, 그건 배속에 있는 아이 사주팔자 묻는것 같은 질문이요. 우선 민주정치를 세워놓고 봐야지요.》

《아따 그걸 요량 못하고 정치운운을 한다면 그게 무슨 정친기오. 정의부 우두머리들이 독립군 렬지어세우구 저어기 안개 낀 산속에 꿩이 있으니 산을 쏘면 꿩이 맞을게라… 바로 이렇게 내모는게 아닌기오. 한심헙니더. 서선상두 그런 정치 할락하지 말구 개화장 버리구 초야에 묻히이소. 그저 천하지대본인 농사가 제일입니더.》

오벽근은 서근하를 납작하게 눌러놓았다. 망신을 당한 서근하는 말도 못하고 오벽근네 집에서 쫓겨나왔다. 그런 뒤엔 오벽근을 《쇠도적놈》이라고 뒤욕을 하며 돌아다녔다. 어쨌든 오벽근은 밸이 센 가위에 엉큼한데도 있고 아무리 자기보다 쳐다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를줄도 알았다. 그러기에 경상도내기들이 다 그가 이끄는대로 이끌려가고있는것이였다. 그런 오벽근인데 오늘밤 회의에서 말을 꺼내는 태도가 도저히 그답지 않은것이였다.

《저는 그저께와 어제 하루동안 눈이 떴십니더. 김성주선상이 그저께밤 조양촌 우리 집에 와서 주무시면서 한 말과 또 어제 하루동안 닭우리를 함께 지으면서 한 이야기는 제 캄캄하게 어둡던 눈을 띄워주셨십니더.》

방안사람들은 그제야 오벽근의 태도가 어째서 그처럼 달라졌는가를 깨닫고 모두들 오벽근을 쳐다보지 않고 김성주동지께로 시선을 집중했다.

(좌우간 재간은 재간이시군. 오벽근이같은 인간을 당장 뼈가 녹은것 같이 만들어놓았군.)

사람들은 모두들 이렇게 감탄했다.

《전 이때까지 리병모씨를 비롯한 청년들이 혁명 혁명 하면서 무슨 동맹을 만든다고 조양촌지역에도 드나드는걸 독립군과 같이 알았십니더. 그래서 왼손 들고 우리 경상도내기들은 땅이나 파묵고 살며 구경이나 하자고 부추겼십니더. 그럼 우째서 내가 독립군을 싫어했능기오. 참말이지 그 사람들 하는 일 맘에 들지 않십니더. 첫째로 경상도내기들 사람으로 알지 않고 북도내기들 없이문 독립운동 몬한다고 방설하며 다닙니더. 우리는 우째서 독립운동 몬합니꺼? 군자금 내라면 군자금 내고 총 쏘라면 총 쏘겠십니더. 리왕조가 조선 망해먹은것이 우째서 망해먹었노. 동인 서인 당파싸움하다가 망해먹었는데 이 사람들 그런 정신 가지고있십니더. 편심 가지구 사람 고르구 지방 고르구 조상뼉다귀 고르구… 이게 그 사람들 정신 아닙니꺼? 우린 아무 죄도 없십니더. 우리들사이에 북도패니 남도패니 하는 싸움을 하게 된것은 독립군들이 지방관념 가지구 판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데 죄가 있십니더. 땅 파묵는 우리 순한 백성들한텐 죄가 없십니더…》

《옳습니다. 문제를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오벽근의 말을 고무하시였다. 구레나룻 오벽근은 얼굴이 달아서 약간씩 떨고있던 두다리를 인젠 굳건히 디디고서서 말을 계속했다.

《그다음 또 독립군들 마음에 들지 않는것이 무언고? 그 사람들 하는 일 실속이 없십니더.… 군자금 걷어다가 어데다 씨는고? 무기 사온다고 하는데 무기 얼마나 사왔노? 군대 얼마나 양성했노? 하는 일 없이 당파싸움만 합니더. 언젠가 우리 조양촌에 신민부사람 하나 찾아와서 정의부 개똥같다고 하며 신민부 지지하락고 내 수염밑에 들어 꼬드깁니더. 내 그래서 우리 경상도사람들은 신민부도 싫고 정의부도 싫다고 왼손 들었십니더.》

장내에선 웃음소리가 터졌다.

《웃지들 마이소.》

오벽근은 두눈에 열기가 올라서 군중을 단속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다음 독립군들 독립운동한다고 하는데 구름 잡아타고 하늘로 날겠다는 소리같십니더. 일본놈 친다친다 하는데 어떻게 친다는 방법이 있능기오? 그리구 앞으로 조선독립한 뒤 대통령 세운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어떤 정치 세우구 우리 백성들 어찌 살게 만들는지 하는것은 모른답니더. 그건 두고보라캅니더! 들어보이소. 그러니 이런 허풍속에다 돈 바치고 목숨 바치고 독립운동하겠능기오. 우리 농민들 우째서 여기 왔는고? 땅없어 여기 왔십니더. 왜 땅없노? 일본놈 들어왔고 지주들 포악해서 땅없십니더. 그렇다면 일본놈 내쫓고 포악한 지주 법으로 다스려서 농민들한테 땅 줘야 안합니꺼? 이것이 참 독립 아닙니꺼? 우리 농민들의 조선독립 아닙니꺼?》

모두들 조용히 들었다. 흙내와 땀내가 그대로 풍기는 절규였다. 바로 이런 핍박한 절규를 모르는 독립군이 규탄을 받을건 뻔한 일이다.

《나는 지금 우리 마실에서 혁명조직을 꾸린다 어쩐다 하는것을 바로 이 독립군놀음과 같은것으로 알았십니더. 그런데 이번 김선상이 내 집에 와서 루추한 방에서 하로밤 같이 자고 또 하루동안 내 일손을 거들어주면서 하는 이야기 듣고는…》

오벽근은 급자기 푹 가라앉은 소리로 여기까지 말하고는 두눈을 슴벅거린다.

《말이 잘 안됩니더…》

오벽근은 한참동안 말을 못하고 서서 구레나룻을 내리쓸었다.

《나는 참 죄가 막십합니더. 난 김선상을 첨엔 누군지 모르고 정의부 서뚱뚱이 대하듯하면서 빨리 떠나기를 바랐십니더. 그랬는데 자구 가겠다지 않십니꺼. 내사 기차드라. 그래서 우리 집엔 목침도 없고 이불도 없다카지 않았십니꺼. 그러니까 김선상 말씀이 난 목침은 없어도 좋으니까 오령감님 이불밑에 발끝만 좀 밀어넣읍시다. 이러카지 않십니꺼. 그래 나두 마지못해 허허 웃으며 베개와 이불을 드렸십니더. 아참 그 소박한 인품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고…》

《인제 바른손 들었다…》

맨처음 학교마을 밭에 지름길을 낸다고 시비해나서던 노랑수염의 농민이 한마디 던지며 웃었다. 그도 인제는 기분이 풀렸다.

《아직도 바른손은 안들었습니다. 베개와 이불을 줘놓고도 사람 쫓느라고 독하게 도사리고앉아 담배질만 했으니까요.》

김성주동지께서 한마디 하시자 사람들이 모두 무르팍을 치며 웃었다. 조양촌의 경상도내기들이 더욱 기분이 나서 웃어댔다.

《그 말씀이 옳은 말씀입니더. 내가 김선상 해설을 듣지 않았다면 바른손 아주 들지는 않았을깁니더. 내 독립군들 선전도 많이 듣구 또 공산당사람들 연설두 많이 들었는데 김선상 이야기는 영 다릅니더. 구름 타고 가는것 같지 않고 땅을 디디고 가는것 같이 명백하고 귀에 쏙쏙 들어갑니더. 몬알아들을 소리 하나 없구 정말 정강이 있십니더. 내 정의부 서뚱뚱이한테 질문했다가 몬들은 대답을 김선상한테서 들었십니더. 조선독립후에 땅을 준다, 땅을 주되 어떻게 준다, 말씀이 빈틈없십니더. 우리가 일본놈 치고 조선독립하고 땅 주는 사회를 만든다카는것이 공담 아니고 진담이라면 이것을 우째 반대하겠십니꺼. 우린 땅 파묵고 산다. 우리가 땅에다 흘린 피눈물이 얼만기요? 내 땅없어 가슴치며 울산 떠나던 생각하면 또 피눈물 납니더. 오장이 쓰려 몬살겠다. 나만 그랬능기오? 우리 경상도내기들 다 그랬다. 북도내기들 다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김선상 말씀에 왼손 들겠능기오? 왼손 들수 없십니더. 다 바른손 들구 김선상 기발아래 뭉칠수 있십니더. 안그렇십니꺼? 우린 인젠 다른 기발 다 싫다. 김선상 기발 따라간다.》

리병모가 손벽을 치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오벽근이라면 머리를 흔들던 리병모가 제일 감동되였다. 그이께서 이틀동안 조양촌 동산리지역에 나가계셨으니 어느 정도 오벽근을 설복시켜놓으셨으리라는건 짐작을 했지만 그 바위돌같은 인간을 이렇게 근본적으로 고쳐놓으셨을줄은 몰랐다.

《자 인젠 좀 쉬면서 담배들이나 피시는게 어떻습니까? 경상도문둥이어른들도 피우시고 북도결패군어른들도 피우시구…》

오벽근이 땀을 씻으며 자리에 앉자 그이께서 웃으시며 이런 제기를 하시였다.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웅성거렸다.

얼마후 사람들은 모두 마당으로 나갔다. 배겨앉아 땀을 빼다가 나와서 모두들 《어 시원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밭은 정갱이를 오그리고 앉아있던 노랑수염 난 농민은 바지를 훌렁훌렁하며 오금을 식히였다.

《야 별이 과연 좋다.》

어떤 농민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부르짖기도 한다. 하긴 별이 찬란하기도 하다. 은하수가 흐르는쪽은 보석방석같이 빛이 짙다.

《담배 있으면 한대 주이소.》

《내가 뭐 집 팔아가지고 경상도문둥이들 담배까지 사넣고 다닐가?》

《야, 늬 인제 텁석부리 연설 못들었나? 우린 인제 다 같이 김선상 기발들고 나가는데 늬 담배 내 담배 가리겠나?》

《넨장 담배를 안주려 해두 갈가마귀처럼 떠드는 소리 듣기싫어 줘야겠다.》

서로 롱지거리가 벌어져 떠들썩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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