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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5 회 )
3
이튿날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 김혁이들에게 고등과의 교재만들 준비를 하라고 이르시고는 먹골이란곳을 향해 떠나시였다. 먹골엔 종파쟁이들과 함께 길림으로 드나들던 화요파계렬의 장윤삼이란 사람이 파쟁의 미친 바람속에서 발을 빼고 나와 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이 사실을 지난봄 오셨을 때 아시였다. 그때 리론수준도 높고 길림으로 드나들 때 종파쟁이들과는 좀 다르게 보아온 그가 이런데 와서 혼자 살고있다니 관심이 가시였다. 그래서 고등과를 병설하려면 우선 교원부터 꾸려야 하겠기에 그를 만나볼 생각을 하시였다. 그를 끌어들인다는것은 낡은 세대 계렬 사람을 새로운 혁명가로 바로잡아세운다는데서도 의의가 있는 일이였다. 먹골은 동쪽으로 20리나 되는 벌길을 걸어야 했다. 그이께선 아스라한곳에 기복을 이룬 벌판을 향해 바삐 걸으시였다. 한낮이 기울어서야 먹골에 도착하시였다. 먹골근방은 온통 수렁땅이였다. 창포 우거진 웅뎅이가 많고 질펀히 펴진 넓은 풀밭에서도 물이 질적거렸다. 그래도 간혹 가다가 둔덕진 등판이 있는데 그런덴 싸리며 개암나무가 우거져있기도 했다. 그래서 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장윤삼의 집 가까이에 가시니 언덕밑 샘물웅뎅이에서 조그만 계집애가 동이를 놓고 앉아 물을 푸고있었다. 《얘, 너 뉘집 애냐?》 그이께선 걸음을 멈추시며 애에게 물으시였다. 《네에?》 계집애는 눈이 동그래서 올려다보았다. 《너 어느 집에서 나왔느냐?》 《여기 뭐 어느 집 어느 집이 있나요? 집이 딱 한집인데요.》 계집애는 량볼에 보조개가 이쁘장하게 패였다. 《아니, 왜 한집뿐이냐? 여기 언덕앞에도 있구 또 저쪽에도 있지 않니?》 《저쪽에건 빈집이예요. 사람들이 살다가 내뺐어요. 학교선생이나요?》 《음, 그렇다. 너 그럼 장윤삼선생의 딸이냐?》 《내애. 난 학교 가고싶은것도 못가고 맨날 이렇게 집에서 세간살이를 해요.》 그이께선 허허 웃으시였다. 그러나 가슴이 찌륵해지는 아픔을 금하실수 없었다. 결국 헤게모니의 미친 바람속에 휩쓸려다니던 장윤삼은 집문전에서부터 이렇게 쓰라린 충격으로 사람을 맞는다. 그의 딸은 학교선생이라니까 그러는지 할끔할끔 치떠보며 꼭 큰 손바닥을 오그려 쥔것만한 쪽박으로 동이에 물을 퍼담는다. 바가지가 작아서 동이에 물이 얼른 차지 않았다. 《너 이름이 무어냐?》 《인순이얘요.》 《집에 아버지 계시냐?》 《지금 밭에 나가있어요. 인제 조금 있으면 올거야요. 선생님, 우리 아버지한테 이야기해서 나 학교에 들어가게 해주겠나요?》 《그러자, 그렇게 하구말구.》 인순이는 발씬 웃으며 물이 다 찬 동이전을 손으로 살짝 훔쳤다. 그러더니 제 머리박보다 더 큰 또아리를 머리우에 올려놓고 두손으로 동이전을 잡고 낑 힘을 쓴다. 그이께서는 얼른 달려내려가시여 물동이를 잡으시였다. 《내가 들어다주지. 넌 그저 흘개바람으로 가자!》 《애개, 그러면 안돼요. 학교선생님이 어떻게 물동이를 들고 가요.》 《학교선생이 물동이 못들고 갈게 뭐냐?》 그이께선 동이를 들고 샘물웅뎅이에서 올라서시였다. 그러자 인순이는 어떻게 할수가 없는지 또아리를 쥔채 마구 달리였다. 먼저 집에 들어가서 무얼 어떻게 하려는것 같았다. 무릎우에 올라간 깡똥한 치마가 나풀대고 한뽐 되나마나한 머리태가 좁은 잔등에서 춤을 췄다. 집으로 달려들어온 인순이는 부엌문을 열어제꼈다. 그리고는 방금 부엌매질을 하다가 문턱너머에 둔채로 있는 진흙을 두손으로 움켜서 문밖으로 내던졌다. 그러면서 뒤따라들어오시는 김성주동지더러 잠간 서계시라고 소리쳤다. 《미끄러워서 못들어와요. 방금 흙을 이겨서 부엌매질을 했어요.》 그러더니 이어 또 부엌문밖으로 나서며 인제 생각이 미친다는듯 다시 웨쳤다. 《애개, 내가 깨꼬생각을 했네. 부엌안에까지 동이를 들여다줄 생각만 하고… 선생님, 여기 물동일 놔요. 어서 빨리 놔요.》 《물러서라, 부엌에 들여가자.》 《못들어가요. 지금 부엌바닥이 진흙범벅이야요. 나도 아까 부뚜막을 바르다가 한번 자빠졌어요.》 인순이는 두발을 굴러치며 야단을 했다. 그이께선 부득이 물동이를 토방우에 놓으시고 부엌이 어떻게 되였기에 그러는가 해서 부엌문안으로 들어가시였다. 그러자 인순이는 또 발을 더럽힌다고 질색을 하며 뛰였다. 부엌으로 들어서니 기가 막힌 정상이 벌어져있다. 그래도 그 어린것이 부엌매질을 하느라고 부엌바닥을 온통 논창과 같이 만들어놓았다. 크고작은 솥 둘이 걸려있는데 둘다 뚜껑이 흙물을 뒤집어쓰고 큰 솥뚜껑우엔 부뚜막을 바르던 흙인듯한 진흙덩이도 한개 올려놓여있었다. 그래도 조그마한, 상자를 테서 만든 찬장속의 그릇들은 흙물미역을 감지 않았다. 부엌드렁에도 흙물이 질퍽했다. 아마 흙을 쥐여바르고는 반드러워지라고 물비질을 자꾸 한것 같았다. 한참 돌아보시고난 그이께서는 얼른 양복웃저고리를 벗어서 방바닥에 올려던지시였다. 그리고는 샤쯔소매를 걷어올리시였다. 《애개, 어찌자고 기래요. 빨리 나와요. 어서 빨리 나와요.》 인순이는 문앞에 서서 호추알같은 소리를 질렀다. 《가만 있거라. 내가 인순이의 일을 좀 도와주지. 커다란 사람이 어린 인순이가 이렇게 고생하는걸 보고 가만히 내버려둘수 있을가.》 《학교선생님두 부엌매질을 하나요.》 《학교선생님이 왜 부엌매질을 못할가. 더 잘하지. 인순이가 하는것보다야 펄 날게 잘하지.》 그이께선 우선 부엌바닥에 여기저기 무져져있는 진흙부터 움켜서 내던지시였다. 어린 힘으로 흙을 얼마나 파들여 이겼는지 온통 흙더미였다. 부엌시렁밑에도 메주덩이같은 흙이 몇덩이 있기에 그걸 집어내던지려고 하셨다. 그러나 인순이는 들쥐구멍을 막아놓은거라고 또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쥐구멍도 그런 큰걸로 막아놓으면 혹같애서 보기가 좋니?》 《기래야 쥐가 무거워서 밀고나오지 못해요.》 《허허허. 네 말이 그럴듯싶기는 하다.》 그이께서 한창 인순이와 부엌거두매를 하고 쥐구멍에 흙매질을 하고계시는데 문밖에 낫가락을 든 장윤삼이 나타났다. 《아니 이게 누구시우?》 부엌문앞에 온 장윤삼은 두눈이 커져서 부르짖었다. 《허허허,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회장동무가…》 그는 그이의 흙묻은 손이며 부엌안을 빙빙 돌아보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였다. 《제가 왔던길에 인순이의 일을 좀 돕고있습니다. 혼자 부엌매질을 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기에…》 그제야 장윤삼은 수염이 꺼멓게 자란 턱을 추켜들며 껄껄 웃었다. 《음 철딱서니없는 계집애같으니, 손님이 와서 손에 흙을 묻히도록 만들다니, 이 무슨 실례인고.》 《애개, 제가 뭐 선생님한테 흙을 발라달랬나요. 괜히 웃저고리를 척척 벗어던지곤 손에 흙을 묻혔지뭐.》 인순이는 아버지에게 눈을 흘겨붙이며 종알대였다. 장윤삼이도 웃고 그이께서도 웃으시였다. 얼마후 그이께선 장윤삼을 데리고 집앞 개울가로 걸어나오시였다. 실개천옆에 누런 잔디가 덮인 언덕이 있었다. 《장선생, 우리 여기 앉아서 이야기나 좀 하십시다.》 그이께서 먼저 잔디밭우에 앉으며 말씀하시였다. 장윤삼이도 괜히 컹컹 기침을 깇으며 언덕우에 앉았다. 그는 이 먹골에 와서 아주 폴싹 늙었다. 길림에서 종파분자들과 손을 잡고다닐 때만 해도 얼굴에 번질번질한 윤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피부가 가랑잎같이 마르고 거칠어졌다. 면도는 아주 안하기로 작정하고 내버려두었는지 얼굴은 온통 수염투성이였다. 검은 수염이란 한대도 없고 누르고 희고 한, 끝이 모지라진것이 한벌 부루루하게 덮였다. 길림에서 소작료철페라는 종파분자 월파 조청산의 뜬 공담을 그이께서 호되게 타격을 준 일이 있는데 그때 곁에 앉아있던 장윤삼이 통쾌해서 빙긋빙긋 웃던 표정을 본 생각이 나시였다. 지금은 그런 장윤삼은 아니고 사람의 기골이 다 삭아진 어떤 딴사람을 마주하고 앉아있는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참 길림의 리갑무선생이 건강히 지내오?》 장윤삼이 물었다. 《건강하십니다. 정말 장선생의 야이기를 자주 합니다. 어데 가있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이리로 올 때 들리지 못하고 와서 그게 늘 마음에 걸리오. 량심이 곧은 늙은이인데 늙마에 로환이나 없이 지냈으면 좋겠소.》 《지금은 건강합니다. 그런데 장선생은 여기 와서 농사는 얼마나 지었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는 딴 말씀을 물으시였다. 《짓길 무얼 짓겠소? 그저 소출도 안날걸 할수없이 장난을 해보는거지요.》 《아니 소출이 안난다면 생활은 어떻게 해나가겠습니까?》 《그저 절반 굶으며 살아가야지요. 인제 나에게야 생활이 무슨 생활이요. 그저 종말의 그림자가 목을 졸라매며 이끌면 이끄는대로 끌려가는것이 생활이라면 생활이라고 말할수는 있겠지만…》 《그건 무슨 그런 비장한 말씀입니까?》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장윤삼을 쳐다보시였다. 장윤삼은 후유 한숨을 내쉬며 로동복주머니에서 담배쌈지와 곰방대를 꺼냈다. 그는 천천히 한대 쑤셔서 담았다. 그런데 담배도 담배가 아닌것을 피우는것 같았다. 곰방대에서 피여오르는 연기냄새는 분명 가랑잎 타는 냄새였다. 확실히 장윤삼은 지금 자기 생활을 의식적으로 아슬아슬한 벼랑머리로 이끌고 와서 한숨을 지으며 아니, 참을성 없는 절망과 울분에 차서 종말의 벼랑아래를 내려다보고있는것 같았다. 《장선생, 장선생은 무엇때문에 여기서 이런 생활을 하고있습니까? 나는 오늘 장선생이 이때까지의 모든것을 가셔버리고 새롭게 일어서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새롭게 일어서다니요? 지금 무얼 어떻게 하겠다고 새롭게 일어선단말이요?》 장윤삼은 깊은 눈확속의 눈망울이 커져서 김성주동지를 쳐다보았다. 《장선생이 왜 할일이 없겠습니까? 할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장선생이 조선혁명을 다 망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장선생이 활동하던 낡은 테두리의 운동만 놓고 생각해선 절대로 안됩니다. 그 운동을 조선혁명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서 장선생이 오늘과 같은 침체속에 빠져 고통을 겪게 된다고 봅니다.》 그이의 말씀은 시종 부드럽고 따뜻하게 울리였다. 《물론 그런 점도 있으리라고 보오. 그러나 나같이 인제 인생을 탕진한 인간이 어디 나서서 무얼 하겠소. 지금 내 가슴엔 재가 부옇게 쌓여있고 황량한 석양바람이 불어치고있소.》 장윤삼은 저녁바람이 설렁거리는 들판을 바라보며 비통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글쎄 그러기에 너무 낡은 운동의 테두리안에 집착되여있다는것입니다. 그걸 가셔버리고 눈을 높게 들 필요가 있습니다. 조국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제에게 짓밟혀 넘어진 조국을 생각하지 않고 그 어떤 운동에서 받은 쓰라린 상처만 생각하며 고민속에 빠져있다면 조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장동무의 하는 말이 리해가 되오. 회장동무가 조국이라는 말을 그저 꺼내지 않는다는걸 나는 알고있소. 우리가 이때까지 해온 운동과는 다른 공산주의적개념이 들어있는 말이라는걸 나도 알고있소. 전체적으로 회장동무의 운동이 새롭다는건 자타가 다 공인하고있소. 그러나 나도 또 나대로 나의 신념이 있소.》 《장선생, 그게 무엇입니까? 신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것입니까. 저는 그래도 그 희망이 없는 파벌을 단호히 결별하고 나온 장선생의 기백을 보았기때문에 어느때든 혁명가가 견지하고있는 힘찬 정신과 뜨거운 정열이 뛰고있는걸 볼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선생의 말속엔 무거운 실망우에 나약한 감상적인것도 겹치고있습니다. 어찌 혁명가가 그럴수 있겠습니까. 왜 열번 고쳐 일어난다는 그런 불요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살지 못합니까.》 《다 고마운 말이요. 나에게서 기운과 정열을 촉구한다는것은 나를 위해서도 고마운 말이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 나를 안아일으켜줄 불꽃을 어느 운동에서도 보지 못하고있소. 내 말이 모순을 내포한 소리같긴 하지만 새롭다고 하는 회장동무의 운동방식도 나를 전폭적으로 수긍시키진 못하오.》 《그건 어떤 점입니까?》 《그걸 무슨수로 다 이야길 하겠소. 그러니 빛을 잃은 생명이 점점 더 사그라져갈밖에 더 있소. 사람이 자기 일생에서 정열이니 기운이니 하는것들도 한도가 있는것이지 이런 나를 무얼 가지고 수긍시키고 다시 일어서게 만든단말이요.》 김성주동지께서는 크게 웃으시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운동에도 자기를 안아일으켜줄 진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렇게 거부해나서는 사람에게 무얼 더 이야기하랴 하는 생각도 드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 사람이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운동을 채 몰라서 그럴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조금도 자신을 굽히지 않으시고 억척같이 거부해나서는 그에게 새로운 힘으로 대지를 딛고 일어서달라고 권유하시였다. 그이께서도 지금 장윤삼이 가지고있는 그 모든것이 환멸이거나 실망뿐만이 아니고 그것보다 더 강한 과거운동에 대한 분노와 어느 운동에서도 자기를 수긍시키는 불꽃을 볼수 없는 그 현실에 대한 울분이 무서운 철벽을 이루고있다는것을 아시였다. 그래서 그 철벽을 허물기 위해 백방으로 권유를 하시다가 마지막엔 학교에다 앞으로 고등과를 병설할 계획이니 교단에 나와 서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였다. 《교단에요?》 장윤삼이 놀란 소리로 물었다. 그이께서는 웃으며 되물으시였다. 《왜 그렇게 놀랍니까?》 《교단에 서서 혁명을 하겠소?》 《교단에 서는것이 왜 혁명이 아니겠습니까? 교육은 혁명의 골간을 육성하는데도 필요하고 후비육성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혁명을 하루이틀 싸워서 이길수 있다고 믿어선 안됩니다. 장기성을 각오하고 혁명의 핵심이 될 골간도 육성하고 싸움을 계승할 후비도 육성하고 로동자, 농민의 혁명화도 추진시키고 전민중을 들어일궈서 혁명의 역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힘을 꾸리지 않고 싸움을 내밀다가 급기야는 좌절의 운명을 면치 못한 운동들을 눈앞에 얼마나 보고있습니까? 장선생이 가담했던 운동도 바로 그렇게 된 운동이 아닙니까?》 《내가 그 장기성이 멀미가 나서 물러섰는데 인제 교육으로 힘을 꾸리는 대오에 들어서서 내 한생 싸움시작이나 해보다가 죽겠소?》 장윤삼은 관자노리가 표표해서 가랑잎 타는 냄새나는 담배연기를 푸푸 내뿜었다. (교육으로 혁명을 한다? 꿈같은 소리로군…) 장윤삼은 지나온 자기 과거가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다. 혁명은 곧 폭력이여야 한다는 신조로 살아온 그였다. 당이 조직되기전 화요파, 북풍파가 서울바닥에서 충돌을 일으켜 다툴 때 그 화요파에 섞여 뛰여돌아가던 일, 그뒤 서울파가 《적박단》, 《철성단》을 조직하고 화요파는 《혁청단》, 《용진단》을 조직하고 그 테로단들이 사나운 시대바람을 안고 돌아가며 갈개던 때 섞였던 일, 그런 속에서 화요파가 실력을 거머쥐고 조선공산당을 창건하던 때 일, 모든것이 파쟁으로 이루어지긴 했으나 폭력혁명의 지향속에서 급진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뒤 일제의 더욱 포악해진 발굽에 짓밟히우고 더러운 파쟁으로 혁명을 넝마로 만들었으니말이지 그런 장애가 없었다면 새 사회를 펼칠수 없었으리란말인가. 장윤삼은 그 모든 력사가 폭력혁명으로 급진해온 력사같아서 지금도 침은 뱉으면서도 마음은 들썽거렸다. 로씨야혁명도 동궁습격으로 하루밤에 부르죠아정권을 뒤집어엎은 폭력혁명이였고 70여일간에 그치긴 했어도 빠리콤뮨도 그런 혁명이였다. 폭력혁명으로 낡은 사회를 뒤집어엎어야 된다는것이 진리가 아닌가. 맑스도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배태하고있는 낡은 사회의 조산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장윤삼은 담배연기를 후 내뿜으며 한숨을 지었다. 《장선생은 무엇인가 급진적인 폭력혁명을 생각하시는것 같은데 폭력혁명일수록 힘을 꾸려야 합니다. 힘을 꾸리지 않고 객기에 떠서 함성이나 높여가지고는 혁명을 승리할수 없습니다. 저의 권유를 되새겨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장윤삼은 반응이 없이 여전히 담배만 빨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장윤삼이 파벌의 와중에서 떨어져나온것 같지만 의연히 지난날의 《신조》가 허물어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얼마후 김성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런데 뜻밖에 언덕뒤에 인순이가 와 서있다. 발자국소리가 안나게 하느라고 짚신짝들은 량손에 벗어들고 와서 서있다. 눈엔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오, 인순이가 왔구나.》 그이께서 얼른 걸어가 인순이를 품에 안아올리시였다. 무게가 갑신했다. 《너 학교에 가는것때문에 나왔지? 학교에 가야지.》 《정말?》 인순이는 눈물을 빗씻었다. 《왜 거짓말이겠니, 인제 아버지가 너를 학교에 들여줄게다.》 그게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인순이는 나무등걸같이 앉아있는 아버지의 뒤모습에 되알진 눈초리를 보내며 눈물만 자꾸 씻었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인순이에게 신을 신겨가지고 먼저 그를 데리고 언덕을 내려오시였다. 장윤삼은 우묵한 눈에서 물기가 번쩍거리며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간단칠 않구나!》 그이께서는 벌길을 걸어가며 땀을 씻으시였다. 마음이 몹시 무거우셨다. 아무리 잘못된 운동에서 태를 먹었기로 저렇게도 지독히 고집이 셀수 있을가. 그 어린 딸은 무엇때문에 문전에서부터 눈앞에 나타나 가슴깊이에 잊혀지지 않을 흔적을 남겨주는가! 어떻게 해야 그 아버지가 스스로 택해 들어가는 종말의 철쇄에 함께 묶이여 고생하며 눈물짓는 저 어린것만이라도 구해내서 함박꽃같은 웃음을 안겨줄수 있을가! 인젠 장윤삼이가 아니라 어린것을 구해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더욱 가슴을 조이였다. 그이께선 해가 기운 들길을 걸어가시며 자꾸 땀을 씻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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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과 설치를 위한 준비사업은 당장 불길이 일어났다. 온 고유수가 들끓으며 교사를 짓겠다고 이 동네 저 동네들에서 사람들이 뽑혀나왔다. 달구지들도 동원되였다. 돌을 실어나를 달구지들이였다. 사람마다 그저 나오질 않았다. 집에 있는 큰 나무통, 연목감, 산자감, 널판장 같은걸 메고나오는가 하면 지어는 철사, 못 같은것도 들고나왔다. 도끼질소리가 일어나고 톱질소리가 일어났다. 계영춘이가 공청과 반제청년동맹을 들어일궈 어떻게 선전을 들이댔는지 동네들엔 광복운동의 골간을 키워내는 학교가 일어선다는 소리가 짜하게 퍼졌다. 어떤 동네들에선 골간이 아니라 창검을 비껴들고 나갈 장수들을 길러낸다고 말이 퍼졌다. 《벌써 준비하는 본때가 다르지 않소. 전국각지에 호소문을 내서 장수를 모으는게 아니라 길러낸다니 놀랍지 않소.》 《그러게말이요. 장수를 길러낸다면 뽑는 장수보다 장수들의 수효가 얼마나 더 많아지겠소. 누구나 다 길러내면 장수가 되겠지. 좌우간 생각이 하늘같은 청년이야.》 온 동네사람들이 별별 소리를 다하며 김성주동지를 칭송했다. 어데서 총소리만 나면 줄행랑을 놓자고 쑥덕공론을 벌리던 독립군령감들이 더 떠들썩 끓었다. 《좌우간 신포수령감이 키는 꺽두룩해가지고 겁쟁이란말이야.》 《그 령감만 겁쟁이구 정평집 령감은 겁쟁이가 아니우? 정평집 령감은 제가 지고 달아날 보따리를 싸놓군 식구들도 다 달아날 준비를 하라고 호령을 질렀다우. 그리곤 오늘아침 날 보더니 음, 개망신이군, 개망신이군 그럽디다.》 흐아하고 웃음이 터졌다. 부녀회원들도 학교증축에 동원되였다. 집터를 닦고 운동장을 넓히는 일엔 녀자들도 한몫 해낼수가 있는것이였다. 이곳에선 어떻게 봉건유습타파를 내밀었는지 다른곳 부녀회원들과도 달랐다. 모두 활달하고 지어 단발한 녀자들도 있었다. 증축하는 교사는 학교의 담장밖에 따로 터를 잡았는데 거기 남정들과 부녀회원들이 모여서 떠들썩 끓었다. 가래질이 시작되였다. 터가 두두룩해지자 달고질도 함께 해나갔다. 다른 한편 그이께선 교재를 작성하는 일도 준비하시였다. 차광수, 김혁, 계영춘이들이 《자본론》, 《변증법적유물론》, 《인류사회발전사》들을 맡아가지고 해설교재를 쓰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매일 운동장으로 나가 학생들에게 노래연습, 률동연습도 시키시였다. 그러다간 교무실로 들어가 운동회에 쓸 가장물을 만들기도 하시였다. 손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왜놈가장물의 얼굴에 눈섭과 수염을 만들어붙이기도 하시였다. 교원들과 학생들이 들어와보고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드디여 운동회날이 왔다. 이날엔 모든 일이 중단되였다. 반제청년동맹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학교마당에서 농악을 울리였다. 북과 꽹과리소리, 새납소리가 온 고유수일대에 퍼져나가며 울렸다. 날씨도 좋았다. 푸르른 하늘에 흰구름이 송이송이 문양을 돋친듯 나뜨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살랑거렸다. 김혁, 계영춘이들이 모두 흰 운동복에 운동모를 쓰고 나서서 경기가 벌어질 운동장준비를 하느라고 법석 끓었다. 가장물을 옮겨내오기도 하고 운동장에 금을 긋기도 하면서 분주하게 뛰여다녔다. 여기에 차광수며 신동호도 끼여돌아갔다. 신동호는 하늘에나 올라간것 같이 성수가 났다. 그는 이번에 가지고 왔던 시 세편을 김혁이에게 보였는데 그중 두편은 아주 잘 썼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중 한편 《고적》이라고 제목을 단 시가 혁명적인 감정이 아닌 개인 애상으로 흘렀다고 비판을 받았다. 아깝긴 했으나 세편중에서 두편이면 어딘가! 그 두편을 《송원》(소나무동산)이라는 필명까지 붙여서 서울 《신시대사》에 보내기로 하였다. 시 두편과 아호 《송원》… 그 생각을 하면 신동호는 지금 이 운동장에 누워 디굴디굴 굴고싶은 충동도 일어났다. 각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창리, 큰마을, 대천리 어데라없이 죄다 일손들을 놓고 떨쳐났다. 금천리에서 이통하의 다리를 건너 대천리를 거쳐 학교로 오는 10리길이 사람들로 하얗게 메웠다. 신창리에서 곧추 이통하물을 건너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넓은 벌이 사람들로 끓었다. 독립군에서 물러앉은 사람들이 절반은 더 되였다. 이 사람들속엔 별별 파벌에 속했던 사람들이 다 있다. 의군부때 물러앉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광복군사령부》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있고 그뒤의 《참의부》, 《신민부》계통에서 륙혈포를 차고 국내로 넘나들던 사람들도 있다. 칠색갓을 쓴 상투쟁이로인들이 여러명 있는데 그들중에는 류린석과 함께 강을 건너왔던 로인들도 있다. 독립군만이 아니였다. 3.1운동때 왜놈을 여러놈 쳐눕히고 야밤도주를 해서 강을 건너와 여기 정착한 사람들도 여럿 있다. 《회장이 와서 운동회를 설도했다니 오늘 운동회야 굉장하겠지.》 《무슨 소린지 오늘 운동회에선 독립군하던 사람들이 왜놈을 치는 놀음도 한답니다.》 《우리가 왜놈을 쳐? 운동회니까 아이들이 치겠지.》 《오늘 운동회는 아이들뿐만아니라 학부형들이 전부 참가한답니다.》 《허허허, 그게 벌써 회장다운 본때란말이야. 길림에서도 처음엔 학생들만 궐기시켜가지고 령사관을 치더니 나중엔 시민전체를 들어일구고 지어는 리갑무 같은 로인까지도 감심시켜 그 유명한 력사수기를 쓰게 했단말이야.》 사람들은 왁작 끓어대며 교문안으로 밀려들었다. 큰 솔대문우에서 오색기가 춤을 추며 그들을 맞아들였다. 오색기는 학교교사의 지붕꼭대기에서도 날리고 운동장주위의 담장우에서도 날렸다.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농악은 더욱 신바람이 났다. 새납을 부는 청년은 이쪽저쪽 돌리며 간장이 녹게 가락을 뽑았다. 흰 운동모를 쓰신 김성주동지께서 걸어나와 사람들을 맞으시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이를 둘러싸고 어쩔줄 몰라했다. 테가 큰 통영갓을 쓴 로인들이 서로 갓테를 짓쪼으며 그이께 수고를 한다고 치하를 했다. 《제가 무슨 수고겠습니까. 여러 동네의 어른들이 다 보살펴주어서 이런 운동회를 여는것이 아닙니까. 자 어서들 들어가십시다.》 그이께서는 사람들을 차일 친 자리로 안내하시였다. 긴 교사앞으론 온통 걸상들을 내다놓고 차일을 쳐서 그늘을 지웠다. 《빌어먹을것, 나라도 못찾은것들이 오늘 호사를 허는군.》 교실에서 걸상을 들어내오던 교원이 조학래를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조학래도 씽긋 웃으며 한마디 했다. 《감사의 덕분에 비장나으리가 호강한다는 말이 있지 않어. 저런것들앞에선 길림에서 한 연극같은것을 자꾸 먹여야 하는데.》 둘이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얼마후엔 운동장둘레에 사람들이 빼곡 성을 쌓았다. 차일 친 특별석에도 발 들이밀 틈이 없게 사람들이 찼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내내 이 독립군들속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소리를 내여 웃으시군하였다. 여기에서도 왕청문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한때는 움이 질려있던 갓쓴 로인들이 인젠 운동회관람석에 나와 앉아있다는것도 세지 않고 눈들에 열기가 올라서 고인호나 현묵관이들을 때려죽일놈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홍범도와 함께 다니며 봉오골싸움도 했다는 바로 그 줄행랑놓자던 신포수는 그놈들이 곁에 있으면 당장 메돼지 잡듯 해치우겠다고 을러메였다. 어쨌든 독립군에서 물러앉긴 했어도 이 사람들의 기상은 장윤삼이처럼 그렇게 아주 타버린 재무더기같이 되진 않았다. 지금이라도 대렬을 짜주고 옳은 기치만 날려준다면 늙은 몸을 마다않고 맹수처럼 뛰여일어날것 같았다. 김성주동지께선 그 기상을 보니 몹시도 기쁘시였다. 다시한번 깨달아지시는것은 독립군운동의 패망이 그 상층부의 무능력과 파쟁을 일삼은 타기할 행위에 있었다는 생각이였다. 얼마후 운동회는 시작되였다. 김혁이 단에 올라서 대렬보고를 받는 장엄한 의식이 진행되였다. 학생대렬이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운동장둘레를 돌았다. 그 대렬이 독립군들앞으로 지나갈 때엔 모두들 훌륭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 누구인가가 곁으로 달려와 한팔을 끌어안으며 부르짖는바람에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얼굴을 돌리시였다. 뜻밖에도 장윤삼의 딸 인순이였다. 《아니, 네가 어떻게 돼서 왔니?》 그이께선 얼른 인순이의 손을 잡으며 물으시였다. 딸애가 왔을 땐 필시 아버지도 왔으리라는 생각이 인차 머리속에 떠오르시였다. 《저두말이예요. 운동회한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 몰래 냅다 뛰여왔어요.》 《음, 혼자 왔구나. 우리 인순이가 아주 용감하구나. 그래 이 저고리하고 치마는 누가 해줬지?》 《해해, 동네 아주머니들이 해다준거죠뭐.》 그이께선 가슴이 찌르르해지시였다. 먹골을 다녀오는 즉시로 부녀회에 아이의 옷이나 한벌 해다주라고 과업을 주었댔는데 정말 아이가 그 새옷을 떨쳐입고 눈앞에 환히 나타날줄은 몰랐다. 옷이 품에 차붓이 맞았다. 그이께선 그 얄팍한 가슴을 덮은 연당목저고리의 앞섶이며 치마주름들을 다심히 쓸어보시였다. 깃고대도 바로잡아주시였다. 이렇게 새옷을 갈아입히니 얼굴이 얼마나 더 이뻐졌는가! 량볼의 보조개가 더 꼭 쥐여주고싶게 귀여워졌다. 그이께선 그만만 해도 그날 상처를 입었던 가슴이 좀 훈훈해지고 부드러워지시였다. 《가만있자, 우리 인순이도 뛸내기를 좀 해야지. 운동회에 왔는데 그저 있을수야 있나!》 《애개, 내가 무슨 뛸줄 아나요. 학생도 아닌데 어떻게 뛰여요.》 인순이는 손가락을 입에 물며 몸을 흔들었다. 《손가락은 입에서 뽑구. 학교야 앞으로 얼마든지 들수 있지. 자 한번 나가서 뛰여보자.》 그이께선 인순이의 손목을 쥐고 관람석의 좁은 자리를 헤치며 나가시였다. 마침 2학년학생들의 달리기가 한창 벌어져있는 때였다. 그이께선 인순이를 이끌고 출발선으로 달려가시였다. 《자, 2학년에 신입생이 한명 왔소. 이름은 장인순, 달리기를 해보겠다고 먹골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뛰여보게 해야지요.》 호각을 불려던 계영춘은 그게 장윤삼의 딸이라는걸 깨닫고 얼른 출발선에 들어서라고 인순이에게 턱질을 했다. 인순이는 잠간 출발선에 늘어선 애들을 주르르 훑어보더니 신을 벗어던지고 다가갔다. 자신이 있다는것 같은 태도이다. 《힝, 빼곡 들어서서 어데 내가 설자리가 있니뭐.》 인순이는 애들을 흘겨보며 종알거렸다. 그이께서 달려가 애들을 비집고 들여세워주시였다. 《얘, 팔굽 닿는다. 저리 좀더 비켜서.》 인순이는 자리를 내주었는데도 곁아이에게 오돌차게 소리를 지르며 눈을 흘겼다. 호각을 입에 문 계영춘이도 빙긋빙긋 웃었다. 억척같은 장윤삼이 딸도 역시 만만치 않은걸 두었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호각소리가 났다. 애들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두주먹을 부르쥐고 뛰였다. 눈치가 빠른 인순이는 벌써 출발선에 서자부터 안쪽선을 끼고 돌아야 1등을 할수 있다는걸 깨닫고 씽하고 안쪽선쪽으로 접근했다. 키가 크고 기운이 센 애 하나가 안쪽선쪽으로 붙어서서 뛰였는데 그뒤를 인순이가 따랐다. 인순이는 꼭 발바리 뛰듯했다. 밭은 정갱이가 어떻게 부시치듯하는지 삽시간에 앞섰던 애를 떨구었다. 관중이 환성을 올렸다. 응원대가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야단을 했다. 《헹, 내가 아무렴 너들한테 질줄 아니. 어림두 없다. 내가 잘 뛰게 우리 아버지도 날 바람개비라고 했지…》 인순이는 벌써 저만치 앞서나가서 뒤의 애들을 힐끔 돌아보며 종알대기까지 했다. 달롱한 머리태가 어깨우에서 곤두박질했다. 그이께선 운동장가운데 서서 인순이의 뛰는것을 지켜보시였다. 팔랑거리는 치마저고리가 눈물을 자아냈다. 그이께서는 인순이가 달려들어올 테프선이 늘어져있는곳으로 달려가시였다. 그런데 인순이는 달려들어오며 테프선을 보자 그 댕댕이줄을 치우라고 소리질렀다. 아마 뛰지 못하게 막는줄 안 모양이였다. 그러나 그는 줄을 치워주지 않게 되자 줄밑으로 기여나올 차비를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테프선밑으로 기여나오는 인순이를 버쩍 안아 쳐드시였다. 땀에 함빡 젖은 인순이는 그이의 가슴을 두드리며 놔요놔요 하고 소리쳤다. 온 군중이 들고일어나며 발바리 일등이라고 환호를 올리였다. 독립군들자리에선 무르팍을 치며 웃기도 하고 애를 한바퀴 더 뛰워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이께서는 아이를 더 높이 쳐들고 돌아가시였다. 운동회장에 이렇게 꽃이 필줄은 모르시였다. 네가 어떻게 되여 여길 왔느냐! 장윤삼이 미친 바람같은 운동에서 넋을 빼앗겼으면 저혼자나 빼앗기울 일이지 죄없는 어린 자식까지를 왜 그렇게 불성모양으로 만드는가고 석양그늘 덮이는 먹골을 눈물지으며 돌아서지 않았던가. 그런 네가 오늘 이 들썽거리는 새로운 혁명, 그렇다, 이거야 어디 운동회만인가, 군중을 묶어나가는 혁명이지. 이 혁명의 와중으로 날아들어 만사람의 환호를 불러일으킬줄은 차마 몰랐구나! 어서 네 아버지는 먹골에서 석양바람 받아안고 넋을 빼운 가슴이나 두드리라 하고 우린 이 숨결속에 안기자! 너와 나는 이 뜨거운 숨결속에 안기여 와짝와짝 힘차게 걸어나가보자! 그이께서도 흥분하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아이의 손목을 이끌고 시상석으로 가시였다. 운동회는 점점 더 흥성거리며 고조되여갔다. 공굴리기, 봉눕히기, 눈감고 달리기, 말타기, 모두발뛰기, 뒤로달리기, 별별 재미있는 경기가 다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왜놈치기놀음이 관중의 폭소와 절찬을 불러일으켰다. 왜놈치기엔 관중속에 앉았던 독립군들이 다 참가하였다. 모두 맥고모와 두루마기들을 벗고 운동장으로 나섰다. 상투쟁이 로인들도 갓과 두루마기를 벗고 나섰다. 모두들 대님 맨 바지를 홀태바지처럼 춰올리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본놈을 한바탕 조겨보자고 윽윽했다. 조학래들이 저편쪽에서 일본놈가장물을 맞들고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가장물이 가관이였다. 호박같이 붉고 둥근 얼굴에 눈섭이 치째지고 큰 코밑엔 쉬파리 두마리 붙은것 같은 검은 수염이 붙었다. 그 웃음을 자아내는 낯짝우에 콩잎같은 전투모를 삐딱하게 씌웠다. 한아름되게 큰 몸집에다간 군복이 아니라 얼룩덜룩 줄이 간 왜놈의 옷을 입히고 짧은 몽둥이다리끝엔 게다를 신겼다. 그런데 게다를 신긴 다리가 넷이여서 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넘어지지 않게 하느라고 다리갱이를 넷으로 만든것이였다. 계영춘이 경기에 달려나온 사람들을 모여세우고 경기방법을 한참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편을 갈랐다. 그는 호각을 불며 두편을 량쪽으로 갈라서라고 신호를 하였다. 내내 얼굴엔 웃음이 어려있었다. 홀태바지독립군들, 발을 벗은 농민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량쪽 출발선으로 가서 떠들며 한줄로 늘어섰다. 그들은 운동장한판에 놓여있는 네다리뱅이가장물을 쏘아보며 그놈이 꼭 조선을 강도질해먹은 이등같다느니 지금 서울에 와앉아있는 총독놈같다느니 별별 소리들을 다하며 웃어댔다. 량쪽에서 첫 선수가 눈을 싸매고 몽둥이들을 들었다. 어떻게 돼서 한쪽편에선 류린석의 휘하에 있던 상투쟁이로인이 첫 선수로 뽑혀서 우습강스러운 차비를 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 그와 상대가 된건 새파란 청년 신동호였다. 그 대조를 보고도 사람들이 모두 웃어댔다. 계영춘은 허리를 굽히고 저도 달려나갈것 같은 시늉을 하며 길게 호각을 불었다. 량편에서 선수들이 뛰기 시작하였다. 신동호는 댓바람으로 달려나와 여기저기 몽둥이를 휘두르더니 왜놈의 어깨를 후려갈기고 돌아섰다. 가장물은 속에 생철을 넣어서 챙 소리를 내였다. 독립군로인은 가장물쪽으로 뛴다는것이 몇걸음 안나가서 여기저기 몽둥이를 휘저으며 헤매기 시작하였다. 그는 한참후에야 중앙선가까이로 다가왔다. 차광수가 왜놈 있는데로 다가가며 여기요 여기요 하고 소리쳐주었다. 그러는동안 신동호편에서는 벌써 세사람이나 달려나와서 왜놈을 답새기였다. 이렇게 되자 로인쪽 선수들은 화가 나서 류린석선생이 지하에서 저꼴을 내다보면 땅을 치며 통곡하겠다고들 떠들었다. 이윽해서야 로인은 몽둥이끝으로 달가닥거리는 게다짝을 건드렸다. 그러자 그는 뜻밖에도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서며 둘러멘 몽둥이를 부들부들 떨었다. 어떻게 악심을 먹고 넘겨치는지 가장물은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며 모로 쏠려 넘어갔다. 《이 쌍놈! 이 이놈! 네 네가 고종을 협박해가지고 남의 나라를 쳐먹어?》 그는 어느새 수건을 벗어서 팽개치고 두눈에서 불꽃을 튕기며 소리쳤다. 가장물을 정말 이등박문으로 착각한게 틀림없었다. 그는 와들와들 떨며 돌아서 걸었다. 그의 편에서 벗어던진 수건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소리들을 질렀다. 그래도 그 소린 듣지도 않고 걸어갔다. 김성주동지께서 수건을 쥐고 달려가 빨리 들어가 다음사람의 눈을 싸매주라고 하시였다. 그제야 로인은 수건을 받아들고 뛰였다. 관람석에선 폭풍같은 웃음이 터졌다. 와와 고며 야단이였다. 그런데 다음번엔 신동호편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벌어졌다. 홍범도를 따라다니던 신포수가 몽둥이를 받아쥐고 뛴다는것이 댓바람으로 녀자들이 모여앉은 관람석쪽으로 달려갔다. 그바람에 관람석에 있던 녀자들은 모두 아우성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러는 들고뛰기도 하였다. 아까 저쪽편 첫 로인이 가장물 조기는걸 본 녀자들은 또 그렇게 들이조기기라도 할것 같아 겁이 났다. 녀자들의 아우성소리를 듣고야 신포수는 잘못 왔다는걸 깨닫고 몽둥이로 헛쓸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상석쪽으로 갔다. 그는 상품이 놓여있는 책상다리가 몽둥이끝에 맞히자 아까 그 로인처럼 몽둥이를 번쩍 둘러메였다. 그바람에 김혁이 손을 들어올리며 여기는 아니라고 소리쳤다. 《빌어먹을것, 그놈 찾기두 되우 힘들다.》 포수는 눈을 싸맨 수건밑으로 땀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결국 그는 아까 로인보다 더 신고를 해서야 가장물을 찾아냈다. 그도 결기가 나서 가장물을 두번세번 들이조겼다. 관중들은 경기의 마지막에 가장물이 불길에 휩싸이는걸 보고는 모두 들고일어나 이등을 잘 죽인다고 소리질렀다. 오후경기는 더욱 고조되여갔다. 기마전, 집단체조, 봉체조, 줄당기기 같은 집단적인 경기가 사람들을 흥분으로 몰아갔다. 그중에서도 운동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음악유희는 사람들을 흥분의 절정으로 떠밀어올렸다. 이 경기에선 그이께서 직접 풍금을 치시고 김혁이 바이올린을 켰다. 그리고 전교생이 대합창을 하며 이쪽저쪽에서 나비같이 춤을 추며 등장했다. 아니 나비가 아니라 긴 날개를 가진 백학들 같기도 했다. 녀학생도 남학생들도 모두 새하얗게 차려입고 량손에 무궁화들을 들고 춤추며 나왔다. 처음엔 그저 대행진속에서 너울거리는 춤이 벌어지고 노래가 울리였다. 한참 그러고나서야 운동장중앙에 넓다랗게 공간을 내며 무궁화로 선을 그어나가는 률동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빙글빙글 말려돌아가며 손에 들었던 무궁화들을 한송이두송이 운동장에 놓는다. 꽃을 놓은 학생들은 밀물이 밀리듯 뒤로 밀리고 꽃을 쥔 새 학생들이 다시 나타나며 손에 쥔 꽃을 운동장에 놓아나갔다. 관람자들은 무슨 놀음이 벌어졌는가 해서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숱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운동장주위의 흙담장우로 하얗게 기여올라갔다. 독립군들도 모두 차일밖으로 걸상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걸상을 디디고 올라서서 넘겨다보았다. 그제야 그들의 눈앞에 무궁화로 아로새긴 커다란 조선지도가 드러났다. 《조선지도로군, 무궁화로 테를 친 조선지도야. 좌우간 훈련을 잘 시켰군. 붓으로 그려도 그리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저 숱한 학생들이 꽃송이를 놓아가며 저렇게 지도를 잘 그리는고.》 독립군들속에선 경탄의 목소리가 련속 일어났다. 지도를 그려놓은 학생들은 지도밖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과 대합창을 계속했다. 인젠 그저 춤이 아니라 계수나무꽃동산을 그리는 률동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두손을 가슴에 대고 목을 갸웃이 생각을 하는가 하면 두팔로 하늘에 원을 그리며 부풀은 희망을 상징하는것 같은 동작도 했다. 얼마 아니하여 지도속으로는 정말 토끼로 분장한 학생들이 달려들어와 춤을 추며 깡충깡충 뛰였다. 이렇게 되자 계수나무꽃동산을 그리는 대합창은 더욱더 격조가 높아지고 률동도 극치를 이루었다.
사람들 화목하게 희희락락 좋은 나라 옥토끼들 꽃동산이 저 멀리서 손짓하네
조선지도옆에서 풍금을 치시는 김성주동지께서도 얼굴빛이 상기되시고 바이올린을 켜는 김혁이도 흥분으로 하여 얼굴이 홧홧 달았다. 김혁은 긴 머리를 너풀거리며 량미간으로 땀도 흘리고 눈물도 흘린다. 그는 지금 곁에서 풍금치시는 김성주동지에 대한 격정이 하늘에 치닿는다. 《조선의 별》을 창작할 때는 김성주동지께서 군중우에 높이 솟은것 같은 표상에만 도취되여 작시를 하고 음부를 다듬고 했는데 오늘은 그런 표상이 아니라 김성주동지의 심장속에 있는 바다를 보는것 같다. 바다도 깊이를 알수 없는 바다, 끝간데를 알수 없는 바다, 그런 바다를 지니지 않고야 숨쉬기도 각박한 때에 이런 꽃바다를 펼쳐놓고 그 바다한가운데 앉아서 풍금을 칠수 있을가. 풍 빠져들어가면 자기 존재마저도 의식할수 없고 전체와 함께 큰물멀기에 휩싸여 출렁이게 되는 이 큰 랑만의 꽃바다! 그대의 심장속에 있는 바다가 그대로 펼쳐진 꽃바다! 김성주, 그대는 이 세상의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조선정기의 응결체, 그대의 큰 심장이면 우주를 못만들어낼가! 뭇별을 한손아귀에 쥐고있다가 활 뿌려던져서 저 하늘의 찬란한 성좌는 만들어내지 못할가! 아 그대의 존재, 이것은 우리의 긍지, 우리의 기쁨, 우리의 삶, 우리 가슴의 불이여라. 김혁은 눈물을 흘리며 현을 그었다. 그는 비로소 자기더러 선률을 가지고 혁명을 하라고 했다던 김성주동지의 가르치심의 참뜻이 가슴가득 안겨왔다. 정겨운 눈길로 김성주동지의 붉은 옆얼굴을 몇번이고 훔쳐보며 와락 달려들어 부둥켜안고싶은 충동으로 몸이 달아오른다. 대합창은 계속되였다. 극치를 이룬 률동도 계속되였다. 그러다가 문득 대합창이 멎고 이번엔 지도속의 옥토끼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모여라 동무들아 어깨겯고 날아가자 구름밖에 달이 있고 달속에 계수나무
그러면 또 지도밖의 학생들이 대합창으로 노래를 받는다. 한참동안 노래와 춤을 주고받는 유희가 벌어졌다. 얼마후 풍금을 치시던 그이께서 왼손을 버쩍 쳐들며 신호를 보내시였다. 그러자 합창과 률동이 일순간에 멎고 애들이 나는듯 지도속으로 몰려들어갔다. 운동장한판엔 새하얀 금수강산의 지도가 펼쳐졌다. 그이께서는 격정이 솟구쳐 풍금을 치시고 김혁은 몸을 휘저어대며 현을 그었다. 새하얀 조국강토가 한참동안이나 침묵속에서 관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군중은 숨을 죽이고 또 무슨 조화가 벌어지는가 해서 격조높은 풍금소리와 바이올린소리를 들었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또 한번 손을 버쩍 쳐들며 신호를 보내시였다. 그러자 삼천리강토는 삽시에 새빨갛게 물들며 《야!》소리가 터져올랐다. 학생들이 품에 품었던 붉은 수건을 꺼내서 높이 흔드는것이였다. 《좋구나!》 《좋으면 여북 좋습니까. 저게 무언지 압니까? 조선이 독립되여도 흰 조선으로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그런 깊은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그래그래, 붉은 조선이 돼야지. 회장이 이끌어나가는 붉은 조선이 돼야지.》 독립군들속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그러더니 이어 그들속에서 먼저 조선독립 만세를 웨치기 시작했다. 운동장주위의 온 관중이 팔을 들어올리며 조선독립 만세를 불렀다. 풍금을 치시던 그이께서도 두팔을 높이 쳐들고 일어서서 만세를 부르시였다. 김혁이도 함께 일어서 웨치였다. 지도속에 들어간 애들도 만세를 웨치였다. 저녁바람속에서 오색기는 대가 꺾일듯 나붓기였다. 독립군들, 농민들, 아낙네들, 모두 감동이 극도에 달해서 붉은 조선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였다. 인순이 그 어린것도 무얼 아는지 두 손길을 쫙 펴서 들어올리며 붉은 조선을 불렀다. 《아 조선아, 붉은 조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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