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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3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4 회 )
제 3 장
꽃 바 다
1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와 함께 아무 말씀이 없이 바삐 걸으시였다. 릉가와 삼원포에서 현묵관이들의 죄행을 치는 성토투쟁을 지휘하시고는 급히 고유수로 가시는길이였다. 신동호를 보내긴 하셨으나 아무래도 그가 김혁이와 계영춘을 눌러놓았을것 같지도 못했고 또 딴일도 계획하시는게 있어서 고유수로 떠나시였다. 사실 김성주동지께서는 혁명의 새로운 단계를 예견하시며 길림을 벗어나서 남북만과 국내의 련락처로 교통이 편리한 카륜을 중심거점으로 정하시고 고유수를 골간육성의 기지로 꾸리려고 계획하시였다. 그래서 이번 그 사업을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시키려고 고유수를 거쳐 카륜에까지 가실 계획을 하고 떠나시였다. 그이께서는 릉가에서부터 해종일 다리쉼도 못하고 걸으시였다. 선들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자꾸 땀을 씻으시였다. 지금 그이의 머리속은 혁명에 대한 더 큰 생각으로 복잡하시였다. 그것은 길림을 중심으로 벌어진 운동을 하나의 커다란 매듭으로 결속지으며 운동의 다음 단계에로의 비약, 그 비약을 머리속에 무르익히시는것이였다. 지난해까지 길림을 중심으로 한 운동은 려명을 이끌어온 유년기를 벗어나 넘쳐나는 자체의 힘의 충동으로 발전적인 새 단계의 요구를 제기하고있다. 국한된 범위, 많이는 청년운동의 범위, 맑스주의를 전파하고 조직을 꾸리고 시위투쟁을 벌리고 하는 그런 한계점에서 운동은 머물러있을수 없게 되였다. 인젠 본격적인 령역에로 넘어서야 했다. 운동의 폭을 전조선적인 판도에로, 전민족적인 판도에로 확대해나가야 할것이였다. 이것은 이 시대의 절박한 요구로 제기되는것이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운동들은 파산의 운명으로 곤두박질해가고있다. 파쟁으로 독이 올랐던 조선공산당이란것도 드디여는 력사무대우에서 종지부를 찍었고 독립군운동이란것도 결국은 탈락의 구렁으로 몰려들어가며 종말을 고하고있다. 그러니 피를 뿌리며 진정으로 싸워온 운동자들도 갈곳을 몰라 흩어져 헤매고 인민은 앞날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잃어버리고말았다. 인젠 정말 온 민족이 암흑으로 변한 시기에 들어섰다. 몸부리치며 통곡하는 이런 시기에, 신음하는 민족앞에, 몸부림치는 시대앞에 무엇을 주어야 할것인가? 그것은 이 시대 이 민족앞에 피를 주고 숨결을 주어 꺼져가는 힘을 받들어일구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우리의 운동경험을 어떻게 집대성하고 무엇을 어떻게 정식화해서 온 민족앞에 새 기치를 펼쳐보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새 단계에로 넘어가는 우리 운동의 선언으로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이께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한여름내내 모대기시였다. 그러다가 이번 왕청문으로도 가시였는데 여기서 겪으신 사건은 그 모대김을 한걸음 더 현실적인 투쟁마당으로 떠밀어주었다. 《조국광복》이요, 《민족운동》이요 하고 떠들던자들이 과연 어느 지경으로 타락되였는가 하는것을 이번 더우기 새롭게 보신것 같았다. 분한 일이였다. 민족적량심의 편린도 없는자들을 놓고 그래도 그것을 통일력량속에 끌어당겨넣을수 없을가 하고 가셨던 일이 후회도 되시였다. 혁명이 새로운 마당으로 들어선다고 하는것은 결국 이런것들을 죄다 력사의 쓰레기통으로 쓸어가는것으로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따위들은 영원히 영원히 머리를 못들게 만들어야 할것이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굴이 훗훗 달아오르시였다. 주먹이 절로 틀어쥐여지기도 하시였다. 뒤따라 걷는 차광수도 땀을 씻으며 걸었다. 그도 그대로 생각이 깊었다. 그는 이번 왕청문에서 겪은 일이 몇십년 체험을 하루아침에 겪은것 같았다. 정녕 한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을 일이였다. 포승줄에 결박된채 내뛰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손에 권총을 쥐고있으면서도 그 악한들을 한놈 쏘아넘기지 못하고 더우기 현묵관의 가슴팍도 뚫어놓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 일을 생각하면 심장이 떨린다. 최봉의 마지막 말이 자꾸 귀로 날아오기도 했다. 릉가나 삼원포에 가있으면서도 내내 그 말이 귀에 날아와서 야밤삼경에도 자지 못하고 밖에 나와서 몸부림치듯 걷군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수연동무네가 있는 한촌이 아니요?》 앞에서 걸으시는 김성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그렇소. 그런데 그 집에 들려서 어떻게 그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겠소?》 그이께서는 오늘아침 길을 떠나시면서 가던길에 그 잊을수 없는 오두막에 들리여 최봉의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였다. 차광수는 김성주동지께서 아무런 응답이 없으시자 혼자 한탄조로 중얼거리였다. 《길이 한촌앞으로 나있을건 뭐람…》 김성주동지께서는 긴숨을 내쉬시였다. 정작 한촌이 가까와지니 그 집에 찾아들어가 소박한 어머니와 딸이 기절해넘어질 소리를 전할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지시였다. 휘우듬히 누워넘어간 고개를 넘어서니 정말 한촌이였다. 마을앞에 시내가 흐르고 시내가에 수양버들이 드리워있었다. 오던 날은 황혼이 내리는 때였는데 오늘은 그날보다 일러 동네가 석양속에 누워있다. 그 꽃향기 진동하는것 같던 오두막, 수연이네 집이 지척에 내려다보인다. 잔치를 앞두고 모녀가 무슨 역사를 하는지 볕에 바래는것 같은 하얀 천이 빨래줄에 한마당 걸려있다. 《여기서 좀 쉬여갑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고개마루에 서서 마을을 굽어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며 개버들 우거진 언덕밑으로 내려가시였다. 그이께서는 풀을 휘여깔고 앉으시였다. 《엥이…》 차광수도 속이 타번지는것 같은 소리를 지르며 곁에 와서 앉았다. 그이께서는 어깨를 낮추시고 앉아 수연이네 집을 한참 내려다보시였다. 꿈이 부풀어 최봉을 기다리는 저 오두막은 여전한데 최봉은 어데로 가고 없는가, 구름이 되였는가 바람이 되였는가, 구름이 되였으면 하늘에 떠서 저 집을 내려다보기라도 하지 않을가, 바람이 되였으면 저 정다운 집 채양기슭을 핥으며 부슬부슬 소리라도 내주지 않을가, 그이께서는 일이 너무도 억울해서 가슴에 눈물을 채우고 앉으시여 천진한 동심같은 생각도 하신다. 여기 와앉아 생각하시니 최봉의 비극이 더욱 절통해서 참으실수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눈에 이슬이 돌아 얼른 또 차광수 못보게 그 가슴아픈 오두막을 내려다보시였다. 사연깊은 은가락지 한컬레도 눈앞에 떠올랐다. 돌고 돌아도 끝이 없고 변치 않을 두 동그라미, 은가락지 한컬레가 너무도 아프게 눈에 밟힌다. 그 가락지 낀 손으로 백년가약주를 들어 권하는 수연이의 손도 보인다. 그 잔을 받는 최봉의 투박한 손도 보인다. 아, 이 무슨 가슴을 쥐여뜯는 악몽일가. 해가 기울었다. 버들숲에도 그늘이 덮이고 초가집도 그늘속에 들었다. 그러나 오두막엔 사람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가슴쓰린 정을 누르시며 차광수와 함께 오두막으로 내려가시였다. 울음이 터져도 할 이야긴 하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시였다. 마당으로 들어서시는데 토방에 있던 강아지가 달려내려오며 꼬리를 저었다. 강아지도 낯이 익어 그러는것 같다. 문들이 모두 걸려있었다. 차광수는 어데 갔는지 알아보아야겠다고 하면서 버드나무가 선 마당가 저편 마을집으로 걸어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빈 집 토방우에 앉아 한참 기다리시였다. 정작 들어오시긴 했으나 어머니와 딸을 어떻게 만날가 하는 근심이 아까보다도 더 무거워지신다. 그이께서는 강아지를 가까이 오라고 손을 저어 부르시였다. 역시 기특한 짐승이였다. 꼬리를 치며 지축지축 다가왔다. 그이께서는 강아지를 한참 쓸어주시였다. 이러는데 차광수가 들어섰다. 《안됐소. 모녀가 여기서 한 오십리 되는곳으로 메밀을 가지러 갔다오. 잔치때 국수를 누르겠다고… 오늘밤으로는 돌아오지 못할거라고 하오.》 《확실한 소리요?》 《틀림없는것 같소. 집이 비였으니 밤에 보아달라는 소리까지 했다지 않소. 떠납시다. 래일 오전중엔 고유수에 가닿아야 하지 않겠소.》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큰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러나 떠나갈 생각은 않으시고 한참 서계시다가 비자루로 마당을 쓸기 시작하시였다. 최봉이 돌아와서 했어야 할 일을 무슨 일이든 다 해주시고싶은 심정에서였다. 인제 이 마당을 누가 쓸가? 딸과 어머니가 최봉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쓸지 않을가? 마당을 다 쓸고난 그이께서는 기울어진 양철굴뚝도 바로잡아 세워놓으시였다. 차광수는 그이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하는 심정을 리해하고 저도 가슴속에 또 눈물이 뭉클해진다. 차광수는 그이의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그제야 그이께서는 집을 다시 돌아보며 떠나자고 하시였다. 《삼원포조직에 부탁을 해놓았으니 모녀가 힘이 꺾이지 않도록 소식도 전하고 위안도 해드릴거요.》 김성주동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듯 말씀하셨다. 그리고도 걸음을 빨리 옮기지 못하시고 자꾸 큰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기를 닦으시였다. 강가로 나오니 여울물소리가 요란했다. 물이 불어 돌다리가 물에 잠겼다. 강을 건느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다. 차광수는 그이의 손목을 붙잡고 먼저 물로 들어섰다. 김성주동지께서도 미끈거리는 물돌을 외여디디며 물로 들어서시였다. 딩구는 물이 발목을 휘감으며 목을 놓아 우는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 죄를 짓고 떠나는것 같소.》 그이의 말씀이였다. 차광수는 대답을 못하고 그이의 심정에 이끌려 그도 속눈섭밖으로 눈물이 굴러나왔다. 물돌이 미끄러워 그이께서는 차광수를 부축하고 차광수는 그이를 붙잡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시내를 건너서 젖은 발을 닦고 운동화를 신고나서도 거기 또 한참 앉아계시였다. 차광수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이러다가 래일 오전중 고유수에 가닿겠소?》 《가닿게 되겠지…》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풀밭에서 일어서시였다. 곧추 뻗어나간 큰길이 있었다. 그 길에 들어서서야 김성주동지께서는 마음을 수습하시고 걸음을 바삐하시였다. 푸릿한 하늘에 달이 떴다. 희고 얄팍한 달이였다.
2
고유수의 삼광학교는 페교되다싶이 되였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모여와서 바글바글 끓다간 배워줄 사람이 없어서 흩어져갔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김혁은 뻗닿게 마을로 돌아다니며 청년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한다, 무기를 걷어모으기 위하여 뛴다 하였다. 무기는 벌써 계영춘이 독립군을 하던 집들에서 걷어모은것이 십여자루 되는데 그것으로는 안된다고 더 얻어내기 위해 뛰였다. 김혁은 고유수의 반제청년동맹 책임자 조학래와 또 한명을 장춘에서 무기상점원을 하고있는 최효열이한테도 파견했다. 무기도 더 얻어오고 탄알도 구해오라는것이였다.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당장 청년들을 몰고 왕청문으로 내달아갈 판이였다. 복수대를 수습하자고 달려간 신동호도 김혁이 추진시키는 이 준비를 눌러놓지 못했다. 김혁은 신동호의 소리에 기가 욱해서 소리질렀다. 《김성주동무가 그런 지시를 했을리 없소. 혁명전우들 여섯명이면 우리 혁명대오 한귀퉁이가 뭉청 없어지는것과 같은 일인데 그놈들을 그냥 내버려둔단말인가? 그리고 김성주동무가 바이올린을 보낸건 내 언젠가 성주동무가 지은 노래는 유순하고 부드러워 바이올린선률에 제격이라고 말한적이 있소. 그래서 이것을 보낸거요.》 김혁은 주먹을 흔들며 제 주장을 한뽐도 드티지 않았다. 신동호는 더 말을 못했다. 더구나 그는 이번 김혁이에게 보일 시원고를 세편이나 가지고 왔다. 인제 이 원고를 김혁이 어떻게 보아주는가에 따라서 국내 잡지나 신문에 발표될수도 있고 못될수도 있다. 벌써 김혁이 도와주어서 국내잡지에 시를 두편이나 발표했다. 그런 신동호이기에 공연히 복수대문제를 가지고 김혁의 신경을 건드릴가봐 저어했다. 오늘은 김혁이 이통하를 건너가 신창리마을에서 총 두자루를 얻어가지고 오는데 신동호도 따라갔었다. 목갑총은 김혁이 차고 장총은 신동호가 메였다. 《오늘은 소득이 괜찮소. 그런데 우리가 현묵관이들을 치겠다는데 독립군들이 공연히 떨지 않아? 이 목갑총을 내놓는 령감두 내 눈치를 흘끔흘끔 보는게 무슨 공포증을 가지고있는것 같애…》 《무슨 그러겠소.》 신동호는 김혁이 기분상하지 않게 대답하며 뒤따랐다. 그는 인젠 아주 김혁의 복수대준비에 부동해나섰다. 김혁은 땀을 철철 흘리며 걸었다. 그들이 교문앞에 거의 갔을 때였다. 맞은편 길로 김성주동지께서 차광수를 데리고 걸어오시였다. 릉가에서 오시는길인것이다. 《김혁동무!》 그이께서 김혁을 먼저 알아보고 부르시였다. 《아니…》 김혁은 눈이 커져서 달려갔다. 《여길 어떻게…?》 《김혁동무를 보고싶어서 왔소. 그런데 그 목갑총은 뭘하러 차고 다니우?》 《어데 가서 구해가지고 오는길이요.》 《음…》 신동호는 제 잘못이 있는지라 어깨에 메였던 총을 벗어서 뒤로 돌리며 악수를 했다. 그는 총을 밭가운데라도 훌 집어던지고 자기 손에 총이 없었던것처럼 만들고싶었다. 그런데 또 김혁이 기막힌 소리까지 했다. 《왕청문에서 얼마나 고생했소? 우리는 지금 이를 갈고있소. 그래서 이렇게 총을 걷어모으는중이요.》 《내가 보낸 바이올린은 받았소?》 김성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받았지요. <조선의 노래>에야 바이올린선률이 그저그만이지요.》 뒤에 선 신동호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김혁이의 동문서답이 자기에게 더욱 책임이 있는것 같아 마음이 죄였다. 그이께서도 김혁의 말을 들으시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차광수는 김혁을 언짢게 흘겨보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김혁을 앞세우고 학교로 들어가시였다. 교무실에 들어서시니 김혁이의것인듯한 책상이 놓여있는 뒤벽에 장총이 십여자루 세워져있었다. 그이께서는 그쪽으로 다가가 총을 한자루한자루 들어보시였다. 《탄알은 있소?》 《장춘으로 사람을 보냈소. 곧 구해가지고 올거요.》 《음…》 그제야 김혁이도 그이의 신중한 표정에 주의가 갔다. 그이께서는 교실도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아이들의 책상과 교탁을 손가락끝으로 쭉 훑어보기도 하시였다. 먼지가 뿌옇게 묻어났다. 어떤 교실엔 아이들이 장난을 하다가 갔는지 칠판에 강아지가 그려져있었다. 《전쟁준비를 하면서 학교는 아주 페교시켜버렸군.》 그이의 말씀에 김혁이는 대꾸를 못했다. 어마어마하게 《전쟁준비》라고 하는 말이 단순히 롱담만이 아니라는것을 인차 알아차렸다. 그이께서는 교무실로 도로 오시였다. 날이 어두워져서 차광수가 남포등에 불을 켰다. 교무실엔 책상도 여러개 놓여있다. 이건 모두 교원들의 책상인데 교원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김혁이 혼자서 팔을 펴고 휘돌아간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것 같아 달려오긴 했으나 정작 김혁을 앞에 놓고보니 그를 호되게 나무라실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신동호가 지시를 받고와서 일을 눌러놓지 못한 일도 역시 김혁이앞에서 그랬을수 있으리라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여 꾸중을 해주고싶지 않으시였다. 방안엔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 김혁이 충격을 받고 아무 말도 없이 그이의 눈치만 살폈다. 이러는데 바로 장춘에 탄알과 무기를 구하러 갔던 고유수의 반제청년동맹 책임자 조학래와 또 한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니…》 그들은 눈이 커져서 쳐다보며 부르짖었다. 왕청문사건을 겪은 김성주동지가 이렇게 와앉아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성주동무!》 《어데들 갔다가 이렇게 날아들었소? 수고들했소.》 그이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을 건네시며 조학래의 손을 잡아흔드시였다. 한 청년은 졸지에 그이의 얼굴을 보자 어쩔줄을 몰라 쩔쩔매다가 괜히 허리에 띠였던 탄알띠를 풀어서 책상우에 던지고 달려왔다. 그는 김성주동지의 손을 두손으로 움켜쥐고 마구 흔들었다. 《황동무는 그동안 몸이 더 난것 같소.》 《그래서 황장수라고들 합니다.》 누가 곁에서 하는 소리에 그이께서는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김혁이며 신동호도 웃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그래 어디들 갔댔소?》 얼마후 김성주동지께서 청년들에게 재차 물으시였다. 둘이 다 잠간 머리를 떨구고 앉아 대답을 안했다. 《왜 대답들을 안하오? 그런데 아까 황동무가 풀어던진건 뭐요?》 차광수가 언짢게 쏘아보다가 물었다. 조학래는 벌써 차광수가 이렇게 나오는것을 보아 김성주동지께서 왕청문습격계획을 좋게 생각지 않는다는것을 눈치챘다. 《글쎄 이게 무슨짓이요? 학교의 교원으로 있는 동무들이 교단은 집어내던지고 어딜 돌아다니오? 왕청문습격이란 무슨 말이요? 왕청문에 가서 누굴 친단말이요? 거기 가면 현묵관이 고인호의 휘하의 독립군들이 가로막아나설텐데 그들과 총격전을 할셈이요?》 《차동무, 너무 그렇게 언성을 높이지 마오. 그럼 우리가 저 간악한놈들을 그냥 내버려두겠소? 최봉에 대한 원한을 풀지 않고 어떻게 참는단말이요?》 이번엔 김혁이 얼굴을 쳐들며 웨쳤다. 그의 심정인즉 시대의 절박감도 절박감이지만 인제 진짜 옳은 운동선에 들어서고보니 앞으로 내닫고싶은 충동이 다른 청년들류가 아니였다. 일본, 서울, 상해를 돌아치며 축적된 울화가 드디여 천만리길이라도 단숨에 내닫고싶은 충동으로 뒤바뀌여진것이였다. 《여보, 그럼 그렇다고 해서 총이나 몇자루 들고나서면 그게 해결되오?》 차광수가 김혁을 흘겨보았다. 《인젠 그만합시다.》 그이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을 꺼내시는바람에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왕청문의 <혁명당>우두머리들에 대한 분노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조급성만으로는 혁명을 못하오. 무기를 들고 왕청문을 치러 간다는것은 하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소. 현묵관이 고인호같은자들은 이미 성토문으로 철저히 매장되였소. 인제 가서 친대야 그들의 숨주머니를 끊는 일인데 우리에겐 그런 일이 필요치 않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혁명의 주력군을 튼튼히 꾸리는 문제요. 동무들, 이번에 여섯명의 동지를 잃었지만 우리는 광범한 지역에 조직들을 새로 결성하며 이미 있던 조직들을 더욱 확대해서 여섯명이 아니라 6천명, 6만명의 새 사람들을 키워내야 하오. 이것이 곧 왕청문에 대한 복수이며 우리 혁명의 승리를 앞당기는 길이라는것을 명심해야 하오.》 모두 신중히 들었다. 그이께서는 땀을 씻으시였다. 유리문밖엔 벌써 진한 어둠이 내렸다. 컴컴한 은행나무들우에 숱한 별들이 나떴다. 먼 하늘에 마구 쥐여뿌린 눈동자들이 깔린것 같다.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곡진히 속삭이는것 같은 눈동자, 눈동자들… 자리에서 일어나신 그이께서는 유리창가에 다가서시여 그 눈동자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무언지 모를 미래를 응시하는것 같은 숭엄한 감정이 방안에 하나 가득 차있었다. 밤이 되자 이통하의 물가운데 놋양푼같은 큰 달이 두둥실 떴다. 이통하, 이 강을 긴 띠같이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으로 큰 동네 작은 동네들이 여기저기 널려 앉아있다. 이것을 통털어 고유수라 불렀다. 오늘밤엔 동네마다 불빛들이 환했다. 3백여호의 집들이 웅성웅성 들끓었다. 청년들이 김성주동지께서 오셨다고 떠들며 바삐 뛰여다니였다. 오실 때마다 학교와 동네들을 흥성거리게 만들고 가시는데 이번엔 또 무슨 일을 하자고 오셨는가! 그런데 청년들이 왕청문을 치러 간다는바람에 곁불에 맞아 기가 움츠러들었던 독립군계렬 사람들은 김성주동지께서 바로 그 일때문에 오신것 같아 조바심을 치고있었다. 왕청문에서 직접 사건을 겪고 왔으니 당장 대렬을 짜가지고 구령을 지르며 내달아가실것 같아 서로들 찾아다니며 수군수군 끓었다. 동네가 이렇게 떠들며 분위기가 달라지자 큰 마을에 있는 지주 연가는 이게 무슨 자기네 담장을 무찌르고 들어올 힘이라도 생겨나서 웅성거리지 않는가 해서 가병들을 단속시키며 비단다부산자에 꼭다리모자를 쓰고 마을을 어실렁거리며 걸어다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날밤으로 즉시 학교에서 공청간부들과 학교 교원들의 합동회의를 여시였다. 그러고는 가까운 앞날에 할 사업으로 계획하신 고유수의 6년제소학교를 4년제로 만들고 그 4년제에서 6년제의 수업과목을 집중적으로 치르게 하며 그대신 2년제의 고등과를 병설하고 그 고등과에서 시급히 혁명의 골간을 육성해내야 할 문제를 토의에 붙이시였다. 모두 놀랐다. 김혁이도 조학래도 그리고 차광수조차도 그것까지는 모르고 왔다가 인제야 김성주동지의 웅심깊은 계획에 눈이 가서 아까 하시던 말씀을 고쳐 생각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여섯명 대신에 6천명, 6만명을 키워야 한다는 그 통이 큰 구상을 실천하는 일이란것을 알았다. 모두 머리가 수그러졌다. 회의에선 진지한 토론들이 벌어졌다. 긴박해지는 정세하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는데 인제야 조급히 때려부시는 식이 아닌 그이의 구상이 심장으로 리해되여 앞이 환히 열리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김혁은 고등과교사를 따로 하나 짓자고 주장해나섰다. 공청지부간부들이 그 의견에 불달리듯 달려 일어났다. 《따로 짓지 않구요. 인제 고등과가 설치되면 남북만 각 조직들에서 학생들이 물밀리듯 밀려들텐데 애들이 국문 배우는 곁에다 모여앉히고 <자본론>같은것을 가르치겠소. 난 교사 짓는 문제를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남북만에서만 올테요? 동만에선 오지 않겠소. 교사는 따루 지어야 하오. 따루 지어놓고 어떤 떠꺼머리가 오더라도 학생규률을 철저히 세워가며 공산주의투사로 만들어내야 하오.》 모두 윽윽했다. 남포불밑에 둘러앉은 얼굴들이 산을 들어오래도 들어올듯 듬직듬직해보였다. 이러는데 한 청년이 달려들어오며 숨이 급한 소리를 했다. 《지금 다리 건너 신창리에서 무슨 말을 잘못 듣고 김성주동무가 와서 왕청문복수를 위해 들고일어섰다고 하면서 웅성거리며 끓소. 신포수령감과 다른 몇몇 독립군령감들은 젊은 혈기에 자기들까지 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줄행랑칠 계획들을 하고있소.》 그 소리에 모두는 신중해졌다. 사태의 현상으로 보면 웃어야 할 일이였으나 누구도 웃지 못했다. 김혁은 너무 당황하여 얼굴이 까맣게 질리였다. 자기의 무모했던 계획이 결국 김성주동무의 이름과 결부되면서 이런 그릇된 결과를 가져온것이다. 《저 총을 메고 가서 당장 나누어주오.》 차광수가 타일렀다. 김혁이 얼굴이 붉어져 청년 두명에게 총을 들어 메워주었다. 장총은 어깨에 메워주고 목갑총같은것은 허리춤에 채워주었다. 《빨리 뛰오. 령감쟁이들이 줄행랑을 놓기전에…》 김혁이의 소리에 비로소 웃음이 퍼졌다. 그이께서도 웃으시였다. 《어쨌든 우리는 고등과병설에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 하겠소. 한맘 한뜻으로 어깨를 들이밀고 일을 진척시켜야 하겠소. 일이 많소. 우리가 말끝마다 시대의 절박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있는데 바로 고등과병설도 그런 절박감속에서 진행된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그이께서는 한참동안 일을 빨리 추진시켜나가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 사업과 함께 학교에선 가을의 서늘한 계절을 그저 보내지 말고 운동회도 열어야 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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