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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28 회 )
제 13 장
1
겨울철에 접어들자 상촌의 산골짜기들에선 련일 치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오늘은 불시에 샘내 앞골짜기에서 무서운 싸움이 붙었다. 봉수골에서 된매를 맞고 물러선놈들이 매일같이 발광적인 공세를 들이대다가 오늘은 여기저기 후방깊이 찔러보는 대담한 시도를 해왔다. 샘내 앞골짜기가 전투장으로 변하는바람에 샘내에선 소동이 일어났다. 얼굴이 새까맣게 끄슬은 피난민들이 보퉁이를 이고지고 자리를 떴다. 피난민들뿐만아니라 여기 본시 있던 주민들도 짐을 꾸려 이고지고 떠났다. 인민혁명정부에서 나온 사람이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빨리 능산뒤골로 피하라고 소리쳤다. 《능산뒤골이면 십리가 넘지 않소. 그쪽으로는 적이 기여들어가지 않았소.》 《대북동에 기여든놈들은 벌써 반이나 녹았다우. 박촌근방에 가선 산으로 붙으란말요.》 인민혁명정부에선 될수록 사람들을 멀리로 피하게 하려는것이였다. 리상녀와 금실이도 한아름씩 되게 짐을 꾸려 이고 길을 나섰다. 그들은 어데를 가든 놈들이 이곳에 인차 달려들지만 않는다면 몇번이고 되짚어 돌아와서 짐을 날라갈 료량을 하며 제일 소중한 량식부터 꾸려 이고 나섰다. 그밖의것은 그전 벌목하는 인부들이 살았다는 새를 둘러친 초막안에 보이지 않게 파묻어두었다. 《어머니, 임을 이고 갈것 같애요?》 《이구 가잖구. 고뿔을 좀 앓았다구 임을 못일가? 임진란때 녀자들은 왜놈 죽이자고 식칼을 품고 다녔다는데 이게 무슨 몰골인가. 이 란중에 고뿔이라니…》 리상녀는 한아름 되는 임을 이고 목을 끈덕거리며 걸었다. 그러나 그는 몇걸음 걷지 않아서 코피가 주르르 쏟아져내려 한손을 내밀며 솜을 찾았다. 《봐요. 어떻게 임을 이고 가겠다고 그래요. 어서 내려놔요.》 《글쎄 아무거나 좀 달라구. 피를 막구 가게.》 《가만 좀 계셔요.》 금실이는 얼른 임을 내려놓고 도로 초막으로 달려들어갔다. 그제야 어머니도 끙하고 머리우에 이였던 임을 도로 길바닥에 내려놓았다. 《망할놈의 고뿔…》 리상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길옆에 웅크리고앉아 코피를 쏟았다. 그는 여러날 시름시름 앓다가 어제밤엔 두눈이 새빨갛게 달아서 헛소리를 질렀다. 입술이 가랑잎처럼 말라들었는데 밤새 그 입으로 누구를 욕하는지 이놈저놈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간 뼈가 녹는것 같은 가느다란 소리로 앓음소리를 하며 《성재야아, 성재야아.》 하고 다정히 부르기도 했다. 그통에 합숙애들도 한잠 못잤다. 그 어린것들도 어머니와 싱갱이를 하며 시뚝댈 때 같아선 어머니가 앓건말건 큰 걱정이 없어할것 같았는데 정작 어머니가 앓으며 헛소리를 치니까 모두 근심이 되는지 머리맡에 우둑우둑 모여앉아 밤을 새웠다. 지금 그 애들이라도 있으면 어머니를 부축해가지고 갈텐데 조반을 먹자 죄다 싸움터로 내빼서 금실이 혼자 욕을 보게 되였다. 얼마후에야 금실이는 초막에서 솜을 얻어들고 뛰여나왔다. 《아이구 맙시사. 저놈들 잡아가는 귀신은 없는고? 옛날엔 쇠잡아먹는 불가사리란것이 있었다는데 왜놈 잡아먹는 불가사리라도 났으면 좀 졸가.》 어머니는 산등성이너머를 흘겨보며 왜놈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코앞을 닦고 코구멍에 솜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또 끙 소리를 내며 무거운 임을 머리우에 올려놓았다. 고달픔을 못이겨 잠간 스쳐지나간것 같은 고뿔인데 귀밑이 설핏해지고 짐에 눌린 목이 휘청거리기도 한다. 오늘도 기송이는 날이 밝자 개암골뒤전방싸움터에 나가서 애들과 함께 전투원들에게 돌을 날라다주었다. 그러다가 싸움이 끝나는바람에 애들을 데리고 밀림속으로 내뺐다. 《체, 이거 봉수골에서 쌈하듯 한번 못해보나?》 《그러게말야. 그날엔 놈들의 시체가 골짜기안에 그득해지도록 답새겨댔는데… 쌈은 김봉석중대장아저씨가 젤이야.》 애들은 오늘 싸움이 성차지 않아 삼태기안같이 생긴 홈타기에 모여서서 떠들었다. 태호, 태국이, 홍갑이 같은 꼬마들도 돌을 나르느라고 온통 흙투성이가 됐다. 이 꼬마들도 봉수골싸움이야기만 나면 가슴이 들먹거렸다. 그날저녁때 애들은 산뒤턱에 모여서서 결사전가를 불렀다. 온산에 노래소리가 들썽들썽 울렸다. 전투원들은 힘이 나서 총을 쏘고 작탄을 던졌다. 어둑어둑해서 돌격나팔이 울릴 때엔 기송이도 나팔을 들고 바위등으로 뛰여올라갔다. 그리고는 쌍나팔로 돌격신호를 맞춰주었다. 이날 김봉석은 애들이 잘 싸웠다고 꼬마들을 둥둥 안아들고 뒤통수를 쓸어주기도 했다. 지금 애들은 그날과 같이 들썽거리는 싸움을 못겪어 은근히 몸이 근질거렸다. 《어데서 총소리 나는데 없니?》 기송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애들에게 물었다. 그도 오늘 일이 성차지 않아 싸움터를 찾는것이였다. 애들은 대답이 없이 정말 어데서고 총소리가 나지 않는가 해서 귀를 기울였다. 어데서도 총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아깐 다른 골짜기에서도 총소리가 들려왔는데 인젠 죄다 잠잠해졌다. 기송이는 큰 숨을 씩 내쉬며 눈이 한벌 깔린 새초밭에 들어앉았다. 다른 애들도 모두 새초밭에 앉았다. 《한번 또 죽신하게 싸워봤으면 좋겠네!》 《그러게말야. 하긴 오늘두 여러놈 잡긴 했지.》 《그까짓 그렇게나 잡아가지고야 언제 저놈들을 다 잡아내? 저 놈들을 다 잡아내구야 우리가 또 학교를 짓구 공부하지.》 기송이는 애들의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후두두해진다. 이 싸움이 정말 어떻게 기울어지고있는지 기송이로서는 가량할수가 없었다. 인민혁명군이 상고개에서 밀린건 적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대들어와서 밀렸다고도 했고 또 다른 말로는 놈들을 봉수골에 이끌어들여다 잡으려고 밀렸다고도 했다. 그것이 어느 말이 정확한지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인민혁명군이 상촌에 기여든놈들을 죄다 잡아야 할것은 뻔한 일이였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보아야 봉수골에서 한번 두드려잡고는 그담엔 크게 때려눕히는 싸움을 벌리지 못한다. 왜놈군대는 동구밖 산기슭에다 천막을 치고 들어앉아있다. 어떤 때 릉선우에서 내려다보면 온 산기슭에 적이 우글거리며 돌아간다. 사태가 이러니 어린 마음에도 저절로 생각이 깊어진다. 장차 이 싸움은 어떻게 되고 상촌은 어떻게 된단말인가? 이건 너무도 엄청난 큰 문제같다. 상촌을 잃어버리는가 도로 찾는가 바로 이런 죽고사는 문제를 안고 지금 시간이 지나가고있는것 같다. 이 상촌이란 어떤 땅인가? 더도 말구 나에게 무엇을 준곳인가! 누나를 따라 이곳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정말 목말랐던 맑은 해빛과 기쁨을 실컷 받아안고 뛸수 있었다. 처음으로 행복한 우리 세상, 사랑 깊은 우리 세상에 살아보지 않았는가! 사람마다 다같이 장군님을 우러러받들고 어느 한가지라도 일하는것, 생각하는것이 장군님 뜻이 아닌것이 없고 장군님 뜻으로 하여 온 상촌이 한집안같이 꾸려지고 바로 그속에 친형제같은 뜨거운 눈물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나는 이 꿈만 같은 새세상에서 내 몸에 와닿는 그 숱한 사랑의 손길이 짓눌렸던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고 키를 자라게 하고 힘이 세지게 하는줄도 모르고 자라났다. 나만 그런가. 아동단아이들이 다들 그렇고 이 애들이 모두 그렇다. 장군님께서 꾸려주신 상촌이 아니라면 그 누가 불에 끄슬려 굴러온 불쌍한 아이들에게 꿀물같은 사랑을 그처럼 퍼줄수 있겠는가! 아, 장군님 꾸려주신 이 한집안! 그저 아무 셈판도 없이 사랑의 바다물에 풍덩 들어가 즐겁게 물장구를 치며 살아온것 같은 흘러간 나날!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무엇이였다는 의미도 알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 인제 그 귀중한것이 어떻게 될것인가? 이 큰 사랑의 집이 아주 무너져버리고만단말인가. 그 기쁘고 다정한것,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것, 누나와 상녀어머니가 있고 금실아주머니와 아이들이 있고 차응도회장, 희섭선생이 있고 학교가 있고 아동단이 있는 이 하나로 뭉쳐진 사랑의 큰 집이 영영 다시 여기에 일어설수 없단말인가? 기송이는 이런 생각을 더듬으며 두눈을 슴뻑거리였다. 아이들이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내가 우니뭐…》 기송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씻으며 안운다고 했다. 《나팔 불고싶어 그러니?》 태호가 살뜰하게 곁에 와앉아 나팔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흥…》 기송이는 코소리를 했다. 《나 좀 불어볼가?》 《왜놈들 다 쫓아낸 담에 배워주마!》 기송이는 태호를 옆구리에 꽉 다가끼며 웃었다. 상촌이 온통 한집안이라면 태호두 내 동생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기송이는 코허리가 찡해진다. 인민혁명군대원들은 어데로 가서 집결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산등성이론 바람만 휘휘 불어넘어온다. 류달리 봄바람같은 부드럽고 향긋한 바람이다. 어데서 그 누가 불타는 이 땅에 이런 바람을 보내줄가. 아이들은 신기한 생각이 들어 바람소리가 울리는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얘 저게 무슨 연기냐? 저것 봐라. 나무새로 막 날아넘어오는구나.》 한 애가 웨치며 일어서는바람에 애들이 모두 따라 일어섰다. 정말 산등성이너머 하늘엔 연기가 뽀얗게 찼다. 나무숲사이로도 휙휙 밀려넘어오며 내내를 풍기였다. 이게 어데서 나는 연기일가, 집이란 집은 죄다 불살라버렸는데 무얼 또 불사르기에 저렇게 연기가 공중을 물들였을가? 아무래도 놈들이 산에다 불을 지르는게 분명했다. 산에 인민혁명군이 있으니까 그럼직도 했다. 《빨리 가서 끄자! 틀림없이 산불이야.》 기송이가 웨치며 먼저 등성이우로 올리뛰였다. 애들이 뒤를 따랐다. 산등성이우에 올라서니 어데도 불붙는 산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는 울멍줄멍 산발이 굽이쳐나간 먼 골짜기에서 솟아오른다. 《샘내구나. 샘내골짜기가 타는구나!》 기송이가 또 먼저 부르짖었다. 그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분명 샘내였다. 저놈들이 피난민들이 있는 후방에 기여들었구나! 거기 사람들은 다 어찌고 불을 질렀을가. 그의 머리속에 먼저 떠오른것은 앓아서 누워있는 상녀어머니였다. 그 새를 둘러친 초막에 불을 질렀다면 불길이 일시에 초막을 휘둘러감았을텐데 앓는 어머니가 언제 빠져나올 겨를이나 있었을가? 기송이는 애들을 데리고 산비탈을 또 춰올랐다. 아주 릉선우에 올라서니 샘내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라는것이 더욱 확증되였다. 애들은 릉선을 타고 곧장 내달렸다. 샘내앞 릉선우에 다달으니 지금 동네가 한창 불타고있었다. 산밑으로 돌아나가며 다닥다닥 붙어앉아있는 초가들이 온통 불속에 들어 연기와 불길이 붙안고 돌아갔다. 짚낟가리, 나무낟가리에도 불이 달렸다. 불길은 동네뒤 비탈로도 펄펄 기여올라갔다. 벌써 아이들이 살던 초막은 다 타버렸다. 이글이글한 불더미가에서 재가 날려일어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불을 지른 원쑤도 보이지 않는다. 빈 동네에서 불은 제멋대로 타고있었다. 애들은 방금 샘내 앞골짜기에 기여들었던놈들이 인민혁명군한테 된통 얻어맞고는 이리로 달려넘어와 불을 지른줄은 몰랐다. 놈들은 샘내에 불을 지르고는 자취를 감춘 인민혁명군을 찾아 산을 수색하며 북동쪽으로 넘어갔다. 애들은 동네로 달려내려가지도 못하고 산릉선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어머니랑 금실아지미랑 모두 어떻게 됐을가?》 재더미가 된 초막자리를 굽어보고 섰던 기송이가 두눈을 번쩍거리며 물었다. 딴 애들도 정말 어머니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이 글썽해졌다. 이러는데 북동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쌈 붙었다.》 애들이 일시에 고개를 쳐들며 웨쳤다. 기송이는 애들을 데리고 산릉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내달렸다. 여긴 릉선이 숙었다솟았다 하며 가파로운데가 많았다. 애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우거진 나무숲을 헤치며 뛰였다. 북동뒤 산릉선에 다달은 애들은 너무도 어마어마한 광경이 눈에 안겨드는바람에 깜짝 놀라며 걸음들을 멈췄다. 북동도 온통 불길속에 들었다. 시꺼먼 연기가 앞이 보이지 않게 물컥물컥 솟아오른다. 연기는 산릉선으로 치달아오르며 내내를 풍기였다. 불길속에선 무엇이 튀는지 탕탕 소리가 울리며 불찌가 하늘로 솟구친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는다. 능산쪽으로 난 큰길우엔 아낙네들이 꽉 덮였는데 놈들이 전호좌우에 막아서서 뭐라고 왝왝 고함을 질러댄다. 결국 샘내와 북동에서 능산쪽으로 가던 피난민들이 걸려든것이였다. 사람을 쏘는 총소린지 연방 땅땅 소리가 들린다. 불붙는 동네길에도 사람들이 얼찐얼찐 보인다. 연기속으로 적들이 뜀박질하는것도 보인다. 《저놈들이 사람을 다 죽이자는것 안야?》 애들은 부르쥔 주먹을 떨며 웨쳤다. 《얘, 저기 큰길에 우리 어머니도 뵌다.》 바위돌우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던 꼬마동이 태호가 소리쳤다. 《어디말이냐?》 애들이 우르르 꼬마동이곁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연기가 막혀서 뵈지 않는다. 인제 정말 봤어. 한아름 되는 보퉁이를 이구 금실아지미두 있었어…》 기송이는 치가 떨렸다. 어머니랑 금실아지미랑 저 숱한 사람들이 인제 무슨 변을 당할지 알수가 없다. 저놈들이 아낙네들을 길바닥에 모아세우고 어떻게 할참으로 저러는가. 그는 머리칼이 쭈삣 일어섰다. 틀림없이 길바닥이 피바다로 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등을 굽히고 뻗어나간 돌출부쪽으로 기여나갔다. 거기 나가니 연기가 좀 엷어지며 골짜기바닥의 큰길이 휑하니 내려다보인다. 아낙네들이 와글와글 끓는다.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울음소리도 들린다. 동네가 타는 골짜기바닥의 불길속에서도 희생이 있은것 같다. 놈들이 총탁으로 아낙네들을 두드려패며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기송이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잠간 서서 지켜보았다. 당장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생각이 안났다. 그러다가 기송이는 번개같은 생각이 떠올라 뒤따라온 애들을 모두 산너머로 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나팔을 들어올려 입술에 댔다. 가슴이 뛰고 피가 용솟음쳤다. 저 사람들을 살려내야 한다. 저 숱한 어머니들, 누나들, 아주머니들, 동생들이 지금 적의 총구앞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걸 내려다보며 가만히 있어야 한단말인가! 다 같은 우리 상촌의 한집안식구가 아닌가! 김일성장군님께서 꾸려주신 근거지안에서 서로 돕고 웃으며 힘을 모아 어려운 혁명을 해나가던 우리 식구들이 아닌가! 혁명을 하고 나라를 찾은 담에는 근거지 같은 자유세상을 삼천리땅에 만들어놓고 천년만년 옛말을 하며 살아보자고 서로 손잡고 꿈을 말하던 마을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꿈 많고 사랑 많은 우리네 식구들을 피바다에 잠가넣다니! 기송이는 몸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나팔을 북동골짜기에 내대고 몸을 빙빙 돌리며 류창하게 냅다 불었다. 산이 흔들리는것 같고 공중의 흰구름도 덩실덩실 률동을 하는것 같다. 뒤따라온 애들도 기송이가 무얼 어떻게 하려고 나팔을 분다는걸 깨닫고 웅성거리며 끓었다. 애들의 눈에도 불꽃이 일고 가슴이 뛰놀았다. 그들은 적들이 나팔소리를 듣고 산으로 기여올라올텐데 무얼로 때려잡을가고 떠들었다. 총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도 있고 돌을 굴리자는 아이도 있었다. 《얘, 너희들은 산너머로 넘어가라!》 기송이는 검은 눈섭을 구핏하며 성을 냈다. 애들은 그제야 모두 다람쥐처럼 발발 기여 기송이의 뒤 언덕밑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모두들 나무줄기새로 눈들을 빠끔히 내밀고 돌출부에 선 기송이의 장수같은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린 돌을 들어다 굴릴 차비를 할가?》 《여긴 나무가 많아서 틀렸어.》 《야, 정말 총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팔을 불던 기송이는 돌출부에서 달려내려가더니 밀림속으로 빠져 저편 등성이쪽으로 기여올라간다. 동무들이 피하지 않으니까 제가 먼저 피하는것이다. 얼마뒤엔 산등성이너머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였다. 제일 겁이 없는 태호가 목을 빼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적은 어데로 갔는지 다 없어졌다. 피난민들만 와글거리며 능산쪽 산굽이길로 내빼기도 하고 길건너 산으로 하얗게 기여오르기도 했다. 별안간 산밑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귀를 째는것 같은 소리가 산을 들었다놓는다. 아이들은 그제야 적이 다 밀려오르는줄 알고 재빨리 산릉선으로 기여올라갔다. 그래도 어떤 애들은 그저 올라가질 않았다. 두셋이 대들어 다리를 벋디디고 땅에 박힌 바위들을 들어일궈선 내리굴리고 뛰였다. 정말 나무들때문에 돌이 바람을 내서 굴지 못하고 이 나무 저 나무를 치며 술주정하듯 왔다갔다했다. 《헹, 이딴놈의 산…》 태호는 두눈이 새빨개서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을 밉상스럽게 바라보며 두덜거렸다. 나팔소리와 총소리가 한데 어울러져 온 산을 뒤흔들어놓는다. 류창한 나팔소리는 다시 자리를 옮겨가며 서쪽 릉선으로 에돌아간다. 사람들을 더 멀리멀리 피해가서 숨으라고 시간을 끄는것이였다. 놈들은 꼭 샘내 앞골짜기에서 싸우던 인민혁명군과 맞붙은줄 알고 기를 쓰며 나팔소리를 따라 올라왔다. 그러나 급하게 피해가던 피난민들은 그게 인민혁명군의 나팔소리가 아니고 기송이의 나팔소리라는것을 알았다. 모두들 걸음을 멈췄다. 그 누구도 발이 저려서 뛸수가 없었다. 저 어린것은 숱한 사람을 살리려고 나팔소리로 적을 유인해가는데 제 한목숨 살겠다고 천방지축 아우성치며 뛰겠는가! 아낙네들도 늙은이들도 모두 나팔소리에 가슴이 죄였다. 산허리에도 길우에도 사람들이 짐들을 내려놓고 하얗게 모여섰다. 앙상하게 헐벗은 숲속으로 적이 달리는것도 보이고 이따금 나팔을 쳐들고 불어대는 기송이의 모습도 보이였다. 사람들은 나팔소리가 끊어지면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웅성거렸다. 북동앞 길바닥에 서있는 리상녀는 온몸을 떨었다. 그는 이따금 또아리 쥔 손으로 무르팍을 두드리며 왜 나팔소리가 나지 않느냐고 소리를 치군했다. 그러다가 또 나팔소리가 나야 어이구 살았구나 하고 숨을 내불었다. 금실이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떨었다. 사람들은 기송이가 흰구름밑에서 나팔을 분다고 웨쳤다. 정말 기송이는 아스라한 흰구름밑, 서쪽 봉우리끝에 거인같이 나타나 나팔을 불었다. 그러더니 또 이어 몸을 숨겼다. 나팔소리는 남쪽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나가며 울리였다. 적은 혼란에 빠져 온 산을 갈팡질팡 뛰였다. 나팔소리는 여기서 울리고 저기서 울리고 한다. 총소리가 잇달아 여러방 울리였다. 그러자 류창하게 울리던 나팔소리는 불시에 동강이 나듯 문뜩 멎어버렸다.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또 웅성거렸다. 인젠 기송이가 아주 피했다는 사람도 있고 적탄에 부상을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발을 구르는 사람도 있었다. 기송이는 릉선우의 나무도 없는 눈우에 붉은 락조를 받아안고 누웠다. 온몸이 점점 까마득하게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가위선이 연하게 불타는 구름장들이 자꾸만 이마우로 흘러가는데 어떤 땐 그것이 한결 더 낮추 내려와 볼과 눈언저리를 살뜰히 어루만져주는것 같기도 했다. 기송이는 그걸 만져보고싶은 재롱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손도 아무것도 움직이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저 모든것이 아득아득 멀어지고 깜박깜박 졸리기도 했다. 이러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찾아냈는지 기송이를 부르며 뛰여들었다. 《얘 기송아, 너 총 맞지 않았니?》 《총은 무슨 총이냐?》 《그런데 뭣때문에 눠있느냐?》 《그저 힘들어 그런단다.》 아이들은 기송이의 소리가 심상치 않아 얼른 곁으로들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피냐?》 태국이와 홍갑이가 흰눈을 적신 피를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그제야 기송이가 총에 맞았다는걸 알고 눈이 둥그래서 뛰였다. 정말 곁에 놓여있는 나팔에도 피가 묻었다. 《얘 기송아, 너 어딜 맞았니, 보자!》 《관둬, 맥이 없다.》 《얘, 맥이 없으면 피 나오는걸 막지 않겠니?》 애들은 기송이의 토목양복 앞섶을 제끼며 상처를 찾았다. 태호, 태국, 홍갑이 세 꼬마는 피가 나오는데 쑥을 두드려붙이면 피가 멎는다는 소리는 어데서 들었는지 쑥을 찾아 온 산을 여기저기 뛰였다. 기송이의 몸에서 상처를 띠여본 애들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울었다. 《울지 말어, 난 졸려서 그래. 너희들 사람들이 어떻게 되였는지 봤니? 우리 어머니랑?》 《보잖구. 죄다 피했어. 우리 어머니두 어데든 피했을거야.》 《너희들 정말 똑똑히 봤니?》 《그 그럼…》 기송이는 그 말을 듣더니 얼굴에 활짝 피빛이 올랐다가 다시 서서히 창백해져갔다. 쑥을 뜯으러 갔던 꼬마들은 빈손으로 뛰여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산등에 무슨 쑥이 있고 또 지금 철이 어느때게 쑥이 있으랴. 꼬마 셋은 기송이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와앉아 기송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린 가슴들엔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살틀하고 따뜻한것이 목을 메게 오고갔다. 태호와 태국이는 입을 비쭉비쭉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기송이의 눈에도 이슬이 괴였다. 이러는데 비탈에서 와싹와싹 소리가 나더니 금실이가 뛰여올라왔다. 그는 기송이를 찾느라고 온 산을 어떻게 헤맸는지 얼굴이 땀에 떴다. 《기송아! 너 이게 웬일이냐?》 금실이는 아이들을 헤치고 들어서며 웨쳤다. 기송이는 대꾸가 없이 눈물이 고인 눈으로 금실이를 쳐다만 보았다. 《기송아, 너 어디 맞았어?》 《나 맥없어서 그래요.》 《맥없다는게 뭐냐? 네가 어딜 맞았게 이렇게 됐니?》 금실이는 붙안아일으키지도 못하고 펄펄 뛰다가 저편 언덕앞으로 도로 달려나간다. 그는 언덕아래에 대고 기송이가 여기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거기가 어디냐고 밑에서 아우성이 일어난다.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밀려올라와 산에 덮이였다. 그들은 방금 기송이의 나팔소리를 듣고 나타난 인민혁명군이 적을 족치며 유인해가는것을 보고 왔다. 《여기야요. 릉선우예요. 기송이가 급해요! 빨리들 올라와요!》 얼마 안있어 사람들이 밀려올라왔다. 앞을 막아서는 나무가지를 잡아헤치며 모두들 숨이 차게 달려올라왔다. 리상녀어머니는 낭자가 풀어져내리고 관지뼈가 솟은 누런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사람들은 뒤를 대여 자꾸 올라왔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달려들며 끓는걸 보니 당장 그 무슨 슬픈 일이 곁묻어일어날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두 겁이 났다. 그들은 아낙네들 사태에 밀려 한쪽옆에 나가 우둑우둑 섰다. 태호는 피묻은 나팔을 가슴에 붙안고 온몸을 사시나무떨듯하며 아이들곁에 섰다. 하늘에 저녁노을이 붉게 탔다. 고기비늘같은 구름장들도 죄다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 피빛같은 하늘로 무슨 새인지 이름모를 외로운 새 한마리가 팔딱팔딱 깃을 치며 날고있다. 그게 어린 동심들에 더 돌을 던지는것 같은 충격을 주어 아이들은 모두 팔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꺽꺽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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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송이는 하늘을 날고있다. 꽃구름이 아름답게 깔린 하늘이였다. 흰구름, 붉은 구름, 외꽃같이 노란 구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구름이 날고날아도 끝이 없다. 붉은 구름을 꿰지르고 나가면 흰구름의 꽃밭이 펼쳐지고 흰구름을 꿰지르고 나가면 노란 구름의 꽃밭이 펼쳐졌다. 그는 구름속을 날아나가다간 꽃수술 달린 나팔을 입에 대고 불었다. 나팔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맑고 부드러운가 하면 힘차기도 했다. 그 황홀한 소리가 구름을 헤치고 누비며 멀리멀리로 퍼져간다. 그런데 누가 부른다. 아득한 구름아래서 누나가 부르는것 같다. 또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다. 아, 그리운 누나! 기송이는 구름우에서 뚝 떨어져내렸다. 탕 소리가 나기에 주위를 살펴보니 민가네 방아간이였다. 여윈 당나귀가 있고 연자의 매돌이 있고 멍에채와 곡식마대들이 쌓여있다. 얼굴이 까맣게 된 누나가 땀을 철철 흘리며 당나귀를 몬다. 당나귀는 발을 떼지 않았다. 누나는 회초리로 당나귀를 때린다. 그래도 당나귀는 발을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누나는 부득이 당나귀를 풀어내가고 제힘으로 멍에를 밀었다. 그제야 멍에가 조금씩 드틴다. 기송이도 달라붙었다. 빠그극빠그극하는 연자방아소리, 누나의 가쁜 숨소리, 기송이자신의 헉헉하는 숨소리. 《기송아, 기송아!》 누가 부른다. 방아간이 아니고 어데 딴곳이다. 아니 방아간은 가뭇 없어져버렸다. 《기송아, 기송아!》 또 누가 부른다. 기송이는 눈을 가까스로 떴다. 이마우에 둥그런 불빛이 있다. 그런데 어쩐지 뜨겁진 않고 눈덕우에 딱 붙어 짓누르는것만 같다. 그는 얼마후에야 그것이 공중에 떠있는 달이란것을 알았다. 달 저쪽으로는 무엇인가 깜빡깜빡 숨었다나타났다하는것들도 있다. 그건 별이였다. 달과 별! 아, 나는 지금 어데 와 누워있는가! 《기송아, 기송아!》 누가 또 이름을 부른다. 기송이는 서서히 곁을 돌아보았다.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우뚝우뚝 앉아있기도 하고 서있기도 했다. 크고 주글주글한 얼굴이 눈언저리에서 자기를 지켜보고있다. 큰 눈망울엔 물기가 번쩍거렸다. 누굴가? 아무래도 생각이 안났다. 자꾸 가물가물 어두워지는것만 같았다. 《기송아, 인제 정신이 드니?》 《누나!》 기송인 묻는 말엔 대답지 않고 누나를 불렀다. 《오냐, 누나가 인제 온다.》 《누나! 누나!》 기송이는 거듭 두마디를 또 불렀다. 숨이 찼다. 꼭 누나가 저쪽에서 달려오는것만 같다. 그러나 오진 않았다. 기송이는 또 두눈을 사르르 감았다. 기송이 옆에 서있던 사람들은 후휴 단김을 내불며 물러섰다. 상녀어머니와 금실이, 차응도회장과 희섭이 그리고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만이 기송이옆에 앉은채 달빛이 흐르는 새파란 얼굴을 들여다보고있다. 기송이는 얼굴도 작아지고 몸도 훨씬 작아졌다. 아무리 피가 빠진들 어떻게 이처럼 졸지에 조그맣게 변할수 있을가. 서둘러 지은 어설핀 초막안에 기송이를 조심스럽게 옮겨눕히였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저 굳어앉아서 지켜보기만 했다. 리상녀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기송이의 몸에 덮은 포대기를 당겨 올려놓아주고 머리맡에 막아놓은 하불도 끄당겨 바람을 가리워주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찬바람이 겨드랑밑으로 기여든다. 어데고 집이 죄다 불탔으니 이 세상에서 마지막밤을 보내게 되는지도 모르는 기송이에게 찬바람을 막고 온기를 보태줄 따뜻한 구들한간이 없다. 달빛 푸른 산등엔 사람들이 가득 모여앉았다. 기송이로 하여 피해를 모면한 사람들도 많이 왔지만 여기저기 싸움터에 있던 사람들도 초막밖의 나무밑에들 와앉아서 밤을 새웠다. 누구도 잠들지 못했다. 사람의 생명을 맘대로 구해낼수 없는 일이 몹시도 안타까왔다. 저 어린 소년이 이렇게 숱한 사람을 살려놓고는 저혼자 저렇게 괴로와하며 누나를 부르고있다. 용감한 소년을 다시 살려낼수 없을가? 적을 이끌고 숲을 번개처럼 돌아가던 소년, 산마루우에 장수같이 나타나 나팔을 불던 소년, 그 기송이를 다시금 이 세상에 오래오래 살게 할수는 없을가! 모두 달빛이 차있는 먼 공간을 내다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아스라하게 퍼져나간 눈아래, 상촌, 중촌, 멀리 부암일대까지도 바라보이는 망망한 산야는 엷은 운기와 달빛에 싸여 너무도 숙연히 너무도 무심히 누워만 있다. 아이들도 모두 저편에 말없이 앉아있다. 은근히 훌쩍거리며 우는 애들도 있다. 태호, 태국이, 홍갑이 세 꼬마는 외따로 한쪽에 몰려가 우두커니 앉아있다. 어떻게 그처럼 씩씩하던 기송이가 죽을수 있단말인가. 죽음이란게 무어란말인가. 인제 정말 기송이가 죽는다면 그 검은 눈섭을 구핏하며 씩 웃군하던 얼굴은 영영 못보게 된단말인가. 그 웃음소리, 그 말소리가 죄다 허공중천에 없어져버리고만단말인가. 세 꼬마는 분하고 서러운 생각을 누르며 망망한 눈아래만 바라본다. 모두들 갑자기 몇살씩 더 먹은것 같아졌다. 차응도와 희섭이는 괴로움을 누르느라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했다. 차응도는 아이들속에 와선 춥지 않느냐고 옷을 만져보고 잔등을 쓸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피난민들속으로 가서는 찬 땅에서라도 가랑잎을 깔고 눈을 좀 붙이라고 했다. 모든것이 다 가슴을 저며내는것 같은 아픔을 주는것이였다. 희섭이는 어데나 탕탕 몸부림이라도 치고싶었다. 자기 교탁앞에 앉아 진리를 배우던 소년 하나를 잃는다는 비애만이 아니였다. 그의 영웅적소행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을 치고 그렇기때문에 그를 잃는다는 일이 그렇게도 슬프고 안타깝고 분했다. 《희섭동무, 내 좀 내려가보겠소. 아무래도 리진구동무가 정숙동무를 찾아내지 못하는것 같소. 아까 3소대에 왔다가 화약을 가지고 강을 건너갔다는데 어데가 찾으며 헤매는지 모르겠소.》 차응도가 이러며 산릉선으로 걸어나간다. 그는 초조했다. 기송이는 가망이 없는것이 명백하다. 그것도 점점 더 시간이 좁혀든다. 안타깝게 누나를 찾는 소리, 그 마지막 소원을 못풀어주어서야 말이 되는가. 차응도는 산릉선을 급하게 걸었다. 그는 아무래도 병기창에 가보아야 할것 같아 샘내앞 여울을 건느려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강가에 다달으니 마침 녀자들이 무엇인가 한임씩 이고 여울을 건너온다. 여기는 개안촌앞보다 여울이 급해서 기슭에는 칼날같은 얼음이 붙어있고 가운데는 물살이 사납게 소용돌고있어서 여간해서는 건느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녀인들은 힘차게들 건너왔다. 폭포처럼 딩구는 차거운 물이 포말을 일으켰다. 《서로 붙잡은걸 놓지 말아요.》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다. 차응도는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맞바로 만났다는 생각도 들고 화약을 갖다두고는 무얼 또 저렇게 이악스럽게 이고 건너오며 아낙네들을 부축하며 이끄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태봉지구에 가서 일을 잘한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싸움이 벌어진 근거지에 돌아오자마자 또 저렇게 앞장서서 해낸다. 저런 열정이 어디서 생길가? 기특하고 고마왔다. 차응도는 물로 첨벙대고 들어가며 조심히들 건너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녀인들은 물소리때문에 그 누구도 차응도의 소리를 못듣는것 같다. 얼마후 작탄상자를 인 녀인들이 물에 치마폭을 적시며 강가에 이르렀다. 《회장동지!》 김정숙동지께서 먼저 차응도를 알아보고 웨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앞서서 물을 차며 내달아오시였다. 《수고를 했소, 수고를 했단말요.》 차응도는 눈굽이 뜨거워지는 격한 감정을 누르며 김정숙동지의 머리우에서 작탄상자를 받아안고 강가로 나왔다. 그는 그걸 놓고는 물가로 나오는 딴 녀인들의 작탄상자도 냉큼냉큼 받아서 내렸다. 물살이 세차서 작탄상자들도 모두 젖었다. 《동무가 왔다는 소리는 내 들었소.》 《그새 안녕하셨어요?》 《나야 잘 있구말구. 그래 리진구동무를 못만났소?》 《못만났어요. 모두들 숨을 좀 돌리세요. 그리고 젖은 치마자락두 좀 짜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응도와 이야기를 하다 말고 아낙네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상촌을 떠날 때보다 더 숙성해지고 말소리도 커진듯싶었다. 아낙네들은 모두 중둥매끼들을 풀고 치마폭들을 비틀어짰다. 물이 뛰여올라 저고리며 머리까지도 젖었다. 어떤 아낙네는 낭자를 고쳐틀며 강물에 대고 욕질도 했다. 모두 추워서 이발을 떡떡 쪼았다. 이러는데 리진구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는 봉수골과 개암골쪽을 돌아 인제야 강을 건너가보자고 달려온것이였다. 그도 아낙네들과 작탄상자를 보더니 입을 벌리며 놀랐다. 《벌써 이렇게 일을 해내는줄은 모르고…》 리진구는 김정숙동지의 젖은 손을 잡아흔들었다. 《일이 마침 잘됐소. 인젠 진구동무가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봉수골 집결처로 가구 김정숙동무는 나와 함께 가야겠소.》 차응도가 이러며 김정숙동지를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를 비틀어짜다가 차응도의 곁으로 오시였다. 《동무는 나하고 산릉선으로 같이 가자구.》 《어느 산릉선에요?》 《글쎄 나를 따라오우.》 차응도는 김정숙동지를 데리고 떠났다. 샘내어구로 들어가는 차응도는 아무래도 산릉선의 비극을 알려주어 미리 마음을 다잡도록 하는게 나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숙동무!》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의아쩍어 달빛 받은 차응도의 옆얼굴을 쳐다보시였다. 어쩐지 엄숙해보이는것 같은 얼굴이였다. 《내 미리 말하지만 혁명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시련앞에서도 자기를 다잡을줄 알아야 되오.》 《무슨 시련말예요?》 《오늘 기송이는 나팔로 적을 유인하고 숱한 사람을 살려냈는데… 지금 그 애는… 위독하오…》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며 차응도를 고쳐 쳐다보시였다.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하오.》 《회장동지, 그게 정말이예요?》 《가슴이 아프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힘이 꺾여 허리를 휘청거리며 한발 물러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비탈진 둔덕에 녹아들듯 오금을 꺾으며 조심히 들어앉으시였다. 숨이 꽉 막혀 어쩔바를 모르고 한참이나 앉아있으시였다. 무섭고 막막한것이 눈앞으로 검은 바다물처럼 밀려든다. 기송이가 위독하다니? 그게 죽는다는 말 아닌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는가? 꿋꿋이 살아오며 인젠 가슴이 넓어지고 뼈가 굵어진 그 씩씩한 기송이가 죽다니? 어찌 꿈엔들 그런 생각을 가질수 있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를 사려무시였다. 기송이는 절대로 잘못될수 없다고 혼자 안깐힘을 쓰시였다. 차응도회장이 와서 손을 잡아일으켰다. 《회장동지! 그 애가 아직 숨이 진건 아니지요?》 《지금 누나를 몹시 찾고있소. 어서 일어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응도에게 끌려 일어서시였다. 사려무는 신념이 굳어지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숨이 졌대도 기송이의 죽음은 인정할수도 없고 받아들일수도 없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절박한 가슴속에다 어떻게 하든 기송이에겐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그 굵은 신념의 기둥을 튼튼히 세워보려고 안타깝게 애를 쓰시였다. 그래도 그게 힘을 만들어주어 급기야는 차응도가 아무렇지도 않은 기송이를 놓고 공연히 그러는것 같은 생각도 하며 산비탈을 춰오르시였다. 산등우엔 점점 더 침통한 기운이 짙어갔다. 누구 한사람 말이 없다. 조용한 속에서 나무가지끝에 부는 바람소리만 윙윙 울린다. 이런 때 차응도가 김정숙동지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게 누구냐? 정숙이가 아니냐?》 리상녀가 웨치며 달려나왔다. 그바람에 산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웅성거리며 일어섰다. 애들은 김정숙동지라는 소리에 가슴에 바위돌이라도 떨어지는것 같은 쿵하는 충격을 받는다. 누나가 왔다는 일이 반갑다기보다 겁이 더럭 나기도 했다. 누나가 인제 기송이를 보면 어찌될가. 깜짝 기절이라도 해서 쓰러지지 않을가. 사랑하는 동생을 어느놈이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펄펄 뛰며 어데로 내닫지나 않을가. 애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울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쓰러지지도 펄펄 뛰지도 않고 기송이가 누워있는데로 걸어가시였다. 도리여 리상녀어머니와 금실이, 그밖에 다른 사람들이 눈물을 씻기도 하며 넘어질것 같은 걸음으로 김정숙동지의 뒤를 따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의 곁에 가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동생의 손을 잡으시였다. 누나의 눈에 비친 동생의 얼굴은 꼭 돈잎만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떨리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런 내색이 없이 동생의 이쪽저쪽 손을 다 쥐여보시였다. 그리고는 어데 부상을 입었는가고 다시 온몸을 더듬어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이름을 부르시였다. 《얘, 기송아, 내가 왔다. 누나가 왔다!》 그러나 기송이는 눈을 뜨지 않는다. 언제 울었는지 량눈귀엔 눈물 흘린 흔적이 달빛에 번들거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몇번 더 불러보시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다. 리상녀가 나앉으며 기송이를 와락 흔들었다. 《얘 기송아, 누나가 왔구나! 그렇게도 오매불망 찾던 누나가 왔구나. 눈 좀 떠라! 네가 지금 숨이 있느냐 없느냐?》 그제야 기송이는 실눈을 빠끔히 떴다. 《기송아! 내가 왔어. 너 누나를 모르겠니?》 기송이는 누나를 바라보긴 했으나 눈까풀이 그이상은 열리지 못하고 약간 내비친 몽롱한 눈망울이 줄곧 한점을 바라보고있다. 보는것인지 못보는것인지도 알수 없다. 어머니가 또 기송이를 소리쳐 불렀다. 금실이도 불렀다. 《얘, 기송아, 눈 좀 더 뜨지 못하겠니? 내가 왔대두, 날 모르냐? 내가 누나야!》 김정숙동지께서도 주위사람들이 깜짝 놀라도록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동생을 흔드시였다. 그제야 기송이의 얇은 눈까풀이 훌 벗겨져올라가며 몽롱한 기운을 벗어던진 눈망울이 커다랗게 드러났다. 물기가 번질거리는 그 눈망울이 한참이나 누나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기송아!》 《누나!》 이날 이때까지 들어본 일 없는 너무도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기송아! 너 왜 이렇게 됐니?》 《누나, 나 이제 장군님 만났어!》 기송이는 묻는 소리는 대답지 않고 딴 이야기를 했다. 기송이의 입에서 장군님 소리가 나오는바람에 주위사람들이 모두 눈들이 커져서 기송이를 들여다보았다. 《그건 무슨 소리냐? 네가 언제 장군님을 만나뵈여?》 《아니야 정말… 우리 학교 꽃밭에 오시지 않았어. 내가 가꾼 꽃밭에말야…》 기송이는 두눈망울이 이글거리며 숨을 급하게 몰아쉬였다. 《장군님께선 꽃밭을 잘 가꿨다고 하시지 않아… 그리고… 내 나팔 보시더니 작다고 하시며 인제 큰 나팔을 보내주신다지 않아. 이만치 큰걸…》 기송이는 얼른 나팔의 크기를 가늠해보이려고 두손을 움찍하다가 말았다. 손을 들어올릴 힘이 없는것이였다. 《누나, 장군님 보내주신 나팔이 오면 뒀다 날 줘…》 《응, 뒀다 주고말고…》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떨구며 대답하시였다.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씻었다. 얼마나 오매불망 장군님 생각을 했으면 그런 소리를 할가? 봄내 여름내 장군님께서 오신다고 학교마당에 꽃밭을 가꾸더니 그 꽃밭가에서 장군님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가슴 허비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있지 않는가! 꽃밭소리에 애들이 더욱 꺽꺽거리며 울었다. 잠시 힘을 고르던 기송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 나 죽나?》 《너 무슨 소리 그런 소릴 하니?》 《자꾸만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는것 같애.》 《기송아!…》 그담엔 말을 못했다. 또 눈까풀이 사르르 내려감는다. 아주 감아버리자 눈구석에 괴였던 보리알만한 눈물이 눈가장으로 드르르 굴렀다. 기송이는 갑자기 숨을 몰아쉰다. 의사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뒤로 물러앉았다. 《선생님, 얘가… 얘가 왜 이래요!…》 의사는 김정숙동지의 질겁하신 소리에 대꾸를 못하고 큰숨을 내쉬였다. 기송이는 벌써 숨이 졌다. 《얘 기송아, 기송아! 이게 원일이냐? 네가 왜 이렇게 되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이 너무도 청천벽력같아서 숨이 진 동생을 마구 흔들며 웨치시였다. 죽지 않는다고, 죽을수 없다고 믿고믿은 신념도 결국은 부질없고 속절없는 하나의 기원이였다. 엄연한 사실은 너무도 무정하게 이렇게 되고야말았다. 《기송아! 기송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목이 꽉 막히시였다. 부르짖기는 하나 말이 되지 않으시였다. 하긴 소리내서 부른들 무엇하랴! 빈 공간에나 그 소리가 울려갔지 기송이가 인제 대답할리 있는가! 그래 이 애가 이 세상에서 영영 갔단말인가! 그 잊을수 없는것이 죄다 죄다 없어졌단말인가! 가슴에 불을 퍼붓는것 같은 생각이 겹치고 겹치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이 진 동생을 와락 품에 안아올리시였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를 사려물고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온몸을 부들부들 떠시였다. 리상녀와 금실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몸을 떨었다. 초막밖의 사람들도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애들은 모두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태호, 태국이 같은 꼬마들은 아주 퍼더버리고 앉아 흙을 마구 파내던졌다.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의 흐느낌소리도 일어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품에 안은 동생의 얼굴에 볼과 입술을 문지르며 헙헙하는 소리만 내시였다. 차응도가 다가가 김정숙동지의 품에서 기송이를 받아안았다. 그도 잠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며 눈을 뚝 부릅뜨고 기송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가슴속 비분을 용케 눌러내며 어린 시신을 누웠던 자리에 가져다 조심히 도로 눕히였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송아! 가석하지만 하는수가 없구나! 내 머리 희슥희슥한놈이 네 령전에서 모자를 벗으려니 떳떳치도 못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다.》 차응도의 굵은 목소리가 슬픔이 굽이치는 산정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무엇인가 승화된 숭엄한 분위기가 넓은 산마루우를 소리없이 덮는다. 조국광복의 성전에 쓰러진 어린 영웅의 흩어진 숨결만이 온 산천에 서리서리 휘감기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눈물이 어려 소년의 마지막 뜨거운 숨결을 볼에 감촉하였다. 《너는 소년영웅으로서 우리들의 가슴속에 잊을수 없는것을 남기고 갔다. 그 누가 네 기특한 소행을… 어린 네 몸을 바쳐 수없는 사람을 구원한 그 훌륭한 소행을 잊을수 있겠느냐? 너는 우리에게 가르친것이 너무도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속으로 통곡하면서도 많은것을 생각하고 생각한다. 아, 혁명을 위하여 꽃보라처럼 날려간 너의 그 장한 넋을 무슨 말로 달래일수 있단말이냐!…》 밤이 깊어지자 어느덧 부슬부슬 흰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차응도는 불에 그슬린, 졸지에 희여진 머리를 어지러이 날리며 차츰 목이 메여 음성을 떨었다. 사람들은 차응도의 아픈 말을 다 들어내지 못하고 초막밖을 나섰다. 희섭이는 넘어질것 같은 걸음으로 산릉선을 걸어나갔다. 그는 앞에 와닿는 나무가지를 와짝와짝 잡아당겨 꺾으며 몸부림치듯 숲을 헤쳐나갔다. 하늘은 자욱히 흐려 나어린 영웅의 넋을 어루만지듯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렸다. 사람들은 눈속에 서서 차츰 숫눈으로 덮어가는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3
이튿날엔 유인전에 시달린놈들이 움직이지 않아 상촌골짜기들에선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았다. 다만 온 산과 들이 비애속에 잠기고 어린 영웅의 추도식이 진행되는 산정에서 조총소리가 몇방 울리였을뿐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을 땅속에 묻으면서도 울지 않으시였다. 그저 내내 얼굴이 파릿하고 단정하시였다. 무엇때문에 자꾸만 눈물을 흘리겠는가. 인젠 기송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일이 명백하고 명백한데 눈물이 무슨 소용인가. 이때까지 자기가 헤쳐온 그 모든 쓰라린 생활이 어느것 하나 눈물과 울음을 동반하지 않은것이 있었는가. 어머니를 잃었을 때도 그렇고 올케를 잃었을 때도 그렇고 부암의 참담한 생활과 어린 조카애로 하여 빚어진 그 가지가지의 고통스럽던 일에서도 쏟은 눈물이 얼마였던가. 그러나 그 눈물이 갚아준 소득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것을 헤치고 넘은 생활이 가르쳐준 귀중한것이란 악독한 원쑤와 싸우려는 사람은 눈물을 고이는대로 쏟을것이 아니라 그 눈물을 가슴에 한동이씩 채우고 싸워야 한다는 진리이다. 눈물을 고이는대로 쏟는다는것은 아직 혁명을 조금 알고 눈물을 많이 아는 때 일이다. 동생의 희생에 대한 쓰라린 고통을 눈물만으로 씻어낼수 없는것이라면 무엇때문에 눈물을 흘리고만 있겠는가. 오빠도 언젠가 눈물을 깨물어먹고 살줄 알아야 한다고 했지. 더구나 어린 동생이 자기를 희생하면서 가르쳐주고 간 그 놀라운 정신을 모른다면 내가 그 무슨 그의 누이라 하겠는가. 나는 태봉에서 상촌이 적의 발밑에 짓밟히고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모든 소중한것을 바칠 때가 왔다고 흥분도 했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었지. 그런데 내가 그 굳은 결심을 다하기도전에 어리디어린 동생이 먼저 그 숱한 사람을 살려내며 자기의 소중한 모든것, 인제 피기 시작하는 그 꽃봉오리를 혁명에 바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내가 울기만 해? 눈물만 짜? 혁명을 하겠다는 내가 눈물과만 몸부림을 쳐?…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얼굴빛이 엄숙해지시고 울던 눈에 서슬이 비껴갔다. 나는 인제 내가 고통받은것, 설음당한것, 이 가슴쓰라린것, 그이상 아니 그것의 백배천배로 원쑤를 갚아야 한다! 이 상촌의 산발과 골짜기마다 아니 저기 삼천리강산에 뿌려진 사랑하는 겨레들의 붉은 피를 천만배로 더하여 원쑤의 가슴팍에서 퍼내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 온 마음이 높은 산정으로 비약하는것 같은 흥분조차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저녁때 산우에서 기송이를 부르며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샘내골짜기로 내려오시였다. 어머니와 금실이는 벌써 먼저 내려와 불탄 초막자리에서 가마를 찾아내여 걸고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서 죽 쑬 준비를 했다. 그래도 채 타지 않은 수수쌀이 얼마쯤 남아있었다. 금실이는 그걸 샘도랑으로 가지고 나가서 얼음을 까고 씻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려오는길로 재무지속에서 파내놓은 식기들을 들고나가서 씻으시였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아이들도 아무 말 없이 비탈에 늘어앉아 별이 나뜨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밤이 들기 시작한 때에야 아이들은 대수간 지은 초막의 솔광불앞에서 숟가락을 걸쳐놓은 죽사발들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그러나 어느 아이고 눈물을 뚝뚝 떨구며 죽을 먹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와 어머니 그리고 금실이도 목이 메여 소태처럼 쓴 입에 죽을 두어숟가락씩 떠넣다가 말았다.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곁에서 밤을 새우다가 얼른 일어나시였다. 이러고있을 때가 아니였다. 싸움이 한창인 때인데 싸움터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 도와야 한다. 가슴속 비애를 짓뭉개며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원쑤를 갚을게 아니냐! 김정숙동지께서 싸움터로 나가겠다고 하시자 금실이도 따라일어섰다. 오히려 금실이 편에서 또 눈물을 씻었다. 그는 해종일 울어서 두눈이 우둥우둥 붓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실이와 함께 샘내앞 산마루로 올라서시였다. 역시 어제밤같이 푸른 달빛이 산을 적시였다. 망망한 눈세계가 펼쳐졌다. 어제밤엔 모든게 오열하는것 같았는데 오늘밤엔 눈아래산줄기들도 힘을 쓰며 구핏구핏 등을 일으키는것 같았다. 《언니, 저게 무슨 불빛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에서 걸어가시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며 부르짖으시였다. 멀리 아스라하게 산줄기들이 등을 일으킨 계선이 시뻘겋게 불타오르고있다. 남쪽에서도 타고 북쪽에서도 탄다. 《글쎄 무슨 불일가?》 《언니, 남쪽은 태봉쪽 아니예요?》 《태봉쪽? 옳아, 분명 태봉이야. 그리구 북쪽은 월평같애.》 《무슨 불일가? 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후두두 떨리시였다. 태봉과 월평! 저게 무슨 불일가? 태봉과 월평하늘이라면 저건 분명히 거리가 타는 불빛이 아닐가? 어째서 거리가 탈가? 그저께 저녁 최진동지가 태봉으로 왔댔지. 경식이는 최진동지의 쪽지를 받고는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서 급히 나갔지. 그 일과 저 불빛이 무슨 상관이 있는건 아닐가? 혹시 최진동지가 장군님께서 보내신 부대를 데리고와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김정숙동지께서는 온몸이 공중에 불쑥 솟았다내리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왜 그렇게 놀래요?》 《아, 아니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서둘러 산등마루우로 걸어나가시였다. 저 불빛이 무슨 불빛인지 어떻게 알아낼수 없을가? 그 누가 아는 사람이 없을가? 싸움터에서도 모르고들 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걷잡을수 없는 흥분때문에 내내 가슴이 쿵쿵 뛰시였다. 앞에서 와싹와싹 소리가 났다. 사람이 달려오고있다. 인민혁명군대원이였다. 《어데로들 가우?》 혁명군대원은 숨이 차서 헉헉하며 물었다. 《저 봉수골쪽으로 가요.》 김정숙동지께서 대답하시였다. 《봉수골이고 뭐고… 하 이런, 모르고들 있구만. 지금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부대가 월평과 태봉을 족치고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전투원들을 전부 개암골 뒤산등으로 집결시키라는 명령이 내렸습니다. 빨리들 가보오, 난 지금 개안촌으로 갑니다.》 혁명군대원은 나무숲을 헤치며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뛰시였다. 이 무슨 일일가! 슬픔과 환희가 이렇게 뒤섞일줄이야! 《정숙동무, 왜 이렇게 몸을 떨어요?…》 《안…안떨어요. 이렇게 앞이 열리는걸…》 금실이는 김정숙동지를 부축하며 산릉선을 결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술을 깨물며 떨지 않으려고 애쓰시였다. 터질것 같은 감격의 오열, 그러는가 하면 다시 살아오르는 터질것 같은 비애, 그것때문에 떨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자꾸만 떨려지시는것이였다. 개암골 뒤산등엔 벌써 사람들이 덮였다.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 반일자위대원들, 농민들과 아낙네들, 어느새 전투원들은 거의 모여왔다. 그들은 태봉과 월평의 불빛을 바라보며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했다. 무얼 어찌려는것인지 비살치듯 뛰여다니는 사람도 있고 여기저기 모여서 뭐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불빛은 점점 더 시뻘겋게 광채를 띠여왔다. 사람들은 원쑤들이 죄다 녹는다고 환성을 질렀다. 누구의 눈앞에나 불바다가 된 태봉과 월평거리가 떠올랐다. 날랜 대원들이 질풍같이 달려들어 여기 치고 저기 치고 한다. 원쑤들의 둥지란 둥지는 죄다 불속에 들어 놈들이 악악 비명을 지른다. 총알에 맞는놈, 불에 타는놈, 뛰다가 거꾸러지는놈, 두손을 들고 벌벌 떠는놈, 온통 수라장이다. 원쑤들의 머리우에 징벌의 불벼락이 내렸다. 거리엔 인민들이 하얗게 밀려나온다. 만세를 부른다. 만세! 감격의 만세소리! 울음섞인 만세소리! 아, 장군님, 장군님! 김일성장군님의 이 은혜를 무슨 말로 다 헤아릴수 있으리까! 원쑤에게 죽고 쫓기우며 갈곳이 어데인가고 호곡하는 불쌍한 인민을 이끌어 근거지를 꾸려주시고 땅을 주시고 행복을 주신 장군님! 우리의 장군님께서 오늘은 또 짓밟히고 불에 타는 상촌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저렇게 적의 뒤통수에 불을 질러주시였다. 망국의 설음을 안고 피바다에 잠겼던 온 민족이 지금 장군님 품에 들어 장군님께 모든 운명을 의탁하고 뜨거운 눈물로 장군님을 우러르는데 어느 하가에 이 상촌의 한 지역을 위해서 그렇게도 심려하시고 태봉과 월평을 치게 무장부대까지 파견해주셨단말인가! 사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차응도, 희섭이들도 눈물을 훔치며 불빛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시꺼먼 김봉석은 저편에서 소대장들에게 무슨 지시를 주는것 같다. 벌써 어떤 작전계획이 짜진것 같았다. 작탄상자가 날라져오고 로획한 군도따위들도 여러자루씩 메고 와서는 철썩철썩 내려놓는다. 여기저기서 복수전으로 넘어간다, 총반격으로 넘어간다 하는 소리들로 수군수군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 휘청거리며 떨리던 몸을 다잡아내시였다. 차츰 눈에서 불이 이글거리기 시작하시였다. 복수전으로 넘어간다니 가슴에 불길이 타번져오르신다. 《동무는 왜 여기 나왔소? 무슨 걸어다닐 힘이 있소?》 최정수가 지나가다가 묻는다. 오늘 추도식을 할 때 릉선우로 달려올라와 그렇게도 슬피 울던 최정수였다. 《저도 싸우겠어요.》 《무슨 힘으로 싸우겠소?》 《원쑤들이 가슴에 못을 박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전 지금…》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심장이 뛴다거나 가슴이 터진다는 소리는 구구히 하고싶지도 않으시였다. 최정수도 아무 말을 못하고 저편으로 걸어갔다. 얼마후 산릉선에선 복수전을 다짐한 대렬이 급하게 뽑혀나가기 시작했다. 달이 구름속에 들고 어둠이 짓누른 산릉선으로 눈보라가 휘휘 불어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확확 온몸이 달았다. 삽시에 대문바위고지와 상고개엔 은밀히 사람들이 덮였다. 놈들이 지금 후방타격을 받고있으니 퇴각할것이 틀림없다고 타산한것이였다. 그래서 이 퇴각로에서 한놈도 놓치지 말고 죄다 쓸어없애려는 계획이였다. 대문바위에서도 상고개에서도 놈들이 달려들 때 굴려던진 돌을 메올리는 역사가 벌어졌다. 탄약이 부족하니 돌로라도 싸움을 든든히 준비하지 않을수 없었다. 모두 바위돌들을 메고 이고 비탈을 춰올랐다. 김봉석은 대문바위고지에서 전투준비를 시켜놓고는 한달음으로 큰벌을 횡단해서 상고개로 나갔다. 그는 날개 돋친 범과 같았다. 오늘밤 와닿는 장군님의 구원의 손길에 목이 메기도 하거니와 그이의 천재적인 전술에 눈이 번쩍 열리기도 하고 무겁디무거웠던 가슴이 훌 가벼워지는것 같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놀라운 전술이 어디 또 있을가. 앞으로 내달아오는 적을 뒤로 돌아가 때려서 앞을 무너뜨리는 전술! 이것이야말로 유격전의 우월성을 집중적으로 구현한 전술이 아닌가! 때리고 피하고 피하고 때리다가 뒤로 돌아가 찌르는, 원쑤가 눈이 휘 돌아 넘어지게 만드는 이 만능당의 전술들을 우리 장군님 아니시고야 그 누가 생각해낼수 있으랴! 김봉석은 광활한 무적천지에 장검을 비껴들고 나서서 종횡무진 달리고있는듯한 기분이였다. 그는 개울물을 씽 건너뛰였다. 상고개숲으로 올라가니 인민혁명군대원들과 농민들이 고개앞 비탈로 가서 피묻은 돌들을 메고 이쪽 산비탈로 뜀박질을 했다. 적이 달려들 때 돌을 얼마나 굴렸는지 고개앞 비탈밑엔 온통 돌성이 쌓아져있었다. 그걸 지금 죄다 메여올리는 판이였다. 부녀회원들도 많다. 금실이도 있고 아니 어제 동생을 잃은 김정숙동지께서도 섞여계시였다. 김봉석은 질끔 놀랐다. 어쩐지 김정숙동지를 보니 이 싸움판에 시퍼런 불꽃이 섞인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온 전투장이 그때문에 더 활기를 띠고 엄숙해지는것 같기도 했다. 역시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원들의 앞장에 서시였다. 무거운 돌을 이고 비탈로 날아올라오신다. 어디에 저런 힘이 남아있었을가. 어제 동생을 묻은 묘뜰에선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 걷던 저 처녀가… 김봉석은 돌낟가리가 쌓여나가는 잘루목의 고개우로 올라왔다. 차응도며 희섭이들이 돌을 굴리기 좋게 힝힝 들어서 쌓아놓았다. 그들의 눈에선 린같은 불빛이 번쩍거렸다. 별안간 비탈밑에서 쉿쉿하는 신호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얼른 돌무지옆에 숨었다. 조용해진 잘루목고개로는 중촌쪽에서 올라오는 왜놈기마병 둘의 말대가리가 하늘에 닿게 박차를 가하며 뛰여넘어왔다. 무슨 급보를 가지고 오는놈들이 틀림없다. 무언가 급한 변동이 있을게 틀림없어보인다. 상고개도 대문바위도 점점 더 공기가 팽팽해졌다. 김봉석은 희섭이와 함께 웅뎅이속에 들어가 담배를 한대씩 말아서 피웠다. 《정숙동무가 나와서 돌을 나르는군요.》 《복수전에서 물러서려구 하겠소? 이를 갈겠지요.》 김봉석의 말에 희섭이 대꾸했다. 그담엔 둘이 다 아무 말이 없었다. 가슴들이 몹시 아팠다. 그들의 머리우로 달빛을 가리우는 구름그림자가 몇번 지나갔다. 모든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정말 놈들은 동이 푸름푸름 터올 때 급하게 퇴각을 시작했다. 웩웩 고아대는 소리, 말뛰는 소리, 무엇인가 왈칵덜칵 바퀴구는 소리가 소란히 울리며 대문바위쪽으로 새까맣게 밀려나온다. 그러나 대문바위매복진은 기척이 없이 놈들이 빠져나가는대로 내버려두었다. 김봉석은 외통으로 빠지는 적이기때문에 한 절반 상고개쪽에서 갈길놈들을 세넘긴 뒤에 갈기라고 대문바위매복진에 지시를 주었다. 하긴 그래야 량쪽에서 몫을 갈라가지고 때려잡을수 있는것이다. 대문바위를 넘어서는놈들은 더욱 들끓었다. 무거운 짐을 진놈들이 우글우글 밀려나가고 말탄놈들이 대렬옆으로 붙어서서 칼을 휘두르며 고함쳤다. 마차는 무엇때문에 끌고왔댔는지 풍이 한 절반 찢어진것이 곤두박히며 굴러나갔다. 드디여 총성이 울렸다. 적의 정수리우에 벼락이 떨어졌다. 작탄이 터지고 돌이 굴러내려갔다. 뜻밖의 벼락에 대문바위를 빠진 놈들은 큰벌쪽으로 급하게 내달리고 아직 채 빠지지 못한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로 천막을 쳤던 산기슭쪽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러나 놈들도 인젠 대문바위를 넘어서야 살줄 알았다. 벌써 월평과 태봉을 갈긴 공산군의 포위진이 여기까지 좁혀들어왔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놈들은 포위진 뚫을 결사전을 각오하고 다시 밀려나왔다. 대문바위우에선 연송 벼락이 내려가 안겼다. 한아름씩 되는 돌이 굴러내려가선 밀며 뚜지며 빠지려는놈들을 한꺼번에 네다섯씩 쓸어눕혔다. 작탄도 무데기가 진 적의 정수리우에서 쾅 하고는 불꽃을 날렸다. 상고개에서도 놈들을 짓모는 전투가 붙었다. 그런데 여기에선 놈들이 그저 고개를 뚫고 나가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다. 대문바위쪽이 무방비상태가 아니라는것을 안 놈들은 큰벌을 통과하면서 완전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상고개로 밀려올라왔다. 그래서 결국은 치렬한 공방전이 붙었다. 탄환이 비발치듯 교차되였다. 아래에서도 우에서도 쾅쾅 소리가 나며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놈들은 잘루목홈타기로 밀려들었다. 이 홈타기에서 놈들은 첫 타격을 받고 우르르 되밀려나갔다. 이때까지 근거지안에서 유인전술로 적을 때려잡긴 했으나 이런 유리한 지리적정황은 가져본적이 없었다. 놈들이 내빼려면 이 홈타기를 뚫어야지 다른곳으로는 빠질데가 없었다. 놈들은 한참동안 그 좁은 홈타기를 들고날고하였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안됐는지 매복조가 진을 편 비탈로 새까맣게 기여올랐다. 돌이 굴러내려가고 작탄이 날아가 터졌다. 김봉석은 족쳐라 족쳐라 하며 웨쳐댔다. 그는 권총을 거머쥐고 연방 쏘아댔다. 희섭이는 벌써 탄알을 다 쏘았다. 아마도 여라문놈은 잡은것 같았다. 그는 바위돌을 들고 우쩍 일어섰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적의 무데기를 찾았다. 저편쪽으로 한무데기 기여오르고 밑에서도 여러놈이 뒤따라 기여올라오고있다. 희섭이는 바위돌을 든채 비척비척 걸었다. 땅바닥에 움푹움푹 발자욱이 났다. 《이 원쑤놈들!》 돌을 내려굴린 희섭이는 몸을 후들거리며 부르짖었다. 바위돌은 굴러내려가며 시꺼먼 무데기를 휩쓸었다. 여기저기 너부러져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비틀비틀 일어섰다가 도로 꼬꾸라지는놈도 있다. 비탈에서 전투가 붙은 사이 아래홈타기로는 놈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비탈의 놈들을 제물로 바치고 전 살겠다는 수작이였다. 장교놈들이 말을 두드려몰았다. 우글우글하는 보병놈들은 서로 먼저 빠지겠다고 저희들끼리 욕설을 퍼부으며 총대로 두드려패기도 했다. 용케 굴려가지고 나온 마차는 이 홈타기에 와서 뒤집어엎었다. 마차를 끌던 말 두필이 흐앙거리며 하나는 큰 벌쪽으로 들이뛰고 다른 하나는 고개너머로 내뛰고하였다. 혼란과 란투로 홈타기안이 발칵 뒤집혔다. 이렇게 되자 비탈로 기여오르던놈들도 기세가 꺾여 쫓겨내려가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덮였던놈들이 어찌 바삐 내빼는지 마구 돌굴듯 굴러내려갔다. 이 순간이였다. 사람들은 비탈앞으로 치마자락을 날리며 휙 지나가시는 총쥔 김정숙동지를 보았다. 부녀회원들과 함께 큰벌쪽기슭, 매복진지에서 돌을 굴렸는데 언제 적의 총을 빼앗았는지 총을 들고 바람처럼 내달리신다. 사람들은 정말 푸른 불꽃을 본듯 가슴들이 뜨끔하게 울렸다. 전투는 바로 이 갸륵하고 아름답고 애절한 주인공을 불타는 품에 안고 진행된다. 사람들의 복수심은 하늘을 찔렀다. 김봉석이 성큼 뛰여일어섰다. 그는 돌격구령을 치며 앞으로 내달리였다. 그의 손에선 총창이 번쩍거렸다. 차응도도 희섭이도 총창을 비껴들고 비호같이 따랐다. 산이 무너지는것 같은 함성이 일어나며 사람들은 노도처럼 비탈을 내리굴렀다. 적을 홈타기에 몰아넣고 무서운 창격전이 벌어졌다. 분노가 일순간에 불바다처럼 쏟아졌다. 총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갈기고 그저 여기저기서 퍽퍽 소리가 울렸다. 농민들은 큰 말장으로도 때려넘기고 돌로도 넘겨쳤다. 홈타기에 몰려들어간놈들은 여기저기서 짐승소리같은 비명을 지르며 피가 질퍽한 눈우에 얼기설기 쓰러져 넘어갔다. 희섭이는 두놈인가를 찔러넘기고나서는 만만치 않게 접어드는놈의 저항을 받았다. 하마트면 놈한테 총대를 빼앗길번도 하고 휘둘리워 넘어질번도 했다. 그러나 그는 용케 자기를 지탱하면서 총탁으로 무종아리를 까서 넘겨뜨렸다. 그리고는 배우에 올라타고 놈의 가슴팍에 총창을 콱 들이박았다. 놈은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번질거리는 시누런 눈망울이 곤두서서 열손가락으로 땅바닥을 할퀴였다. 희섭이는 총창을 뽑아 또한번 콱 들이찔렀다. 놈은 그제야 우뚤 충동하더니 눈이 게발린 손을 스르르 늘어뜨린다. 놈을 족치고 일어서니 홈타기 저쪽너머에서 함성이 터져오른다. 뒤이어 인민혁명군대원들이 만세를 부르며 넘어온다. 피묻은 총창을 거머쥔 김정숙동지께서도 언덕우에 나타나시였다. 피빛이 오른 얼굴이 진하게 붉으시였다. 아마 한놈도 놓치지 말자는 욕심이 있어서 홈타기너머로 달려가 빠지는놈들을 쏘아눕히신것 같다. 온 산에 만세소리가 덮였다. 대문바위쪽에서도 만세소리가 들려온다. 희섭이며 차응도들은 눈물이 핑그르르해져서 소리는 못지르고 두손들만 버쩍 쳐들어올렸다. 해가 떴다. 사랑의 상징과도 같은 부드러운 해빛이 피어린 땅을 찬란히 물들였다. 큰벌은 봄이 돌아온 대지와도 같이 김을 물물 날리였다. 별안간, 너무도 별안간에 온 땅에 목말랐던 사랑이 차넘치는것 같기도 했다. 싸움을 이겨낸 사람들이 로획한 무기들을 메고 지고 떠들썩 끓으며 큰벌로 향해 내려온다. 맨앞에선 농민들이 수건을 벗어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해가 활짝 퍼진 한낮, 새가 지저귀는 기송이의 무덤앞에는 피묻은 총을 어깨우에 멘 김정숙동지께서 나타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새흙내가 풍기는 무덤을 잠간 지켜보다가 총대를 내려 묘앞에 놓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으시였다. 《기송아, 내가 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묘를 다심히 어루만지며 살아있는 동생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속삭이시였다. 《넌 왜 좀 더 못살았니? 좀만 더 살았어도 어제밤 태봉과 월평에 타오른 불빛을 보고나 갔지. 늘 장군님을 보고싶다고 했는데 장군님께서 지피신 불빛이라도 눈에 담고 갔더면 얼마나 좋았을테냐? 네가 있었더면 얼마나 멋있게 승리의 나팔을 불었겠느냐!》 격앙되였던 전투장의 감정이 인젠 차분히 가라앉아서 기송이를 옆에 끼고 속삭이는듯한 심정이기도 하시였다. 《기송아, 난 인젠 이 총을 내 손에서 놓지 않으련다. 네 원쑤를 갚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굳은 결심을 다지고있는지 아니? 넌 죽으면서 나한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것도 배워주구 혁명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도 배워주었지…》 숲으로는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가고 하얀 눈꽃이 하르르 날린다. 《기송아! 너를 영원히 잊지 않으마. 기쁘고 섧은 날, 언제고 너를 생각하며 이 총을 튼튼히 잡고 사나운 싸움의 길로 달리고 달리마. 나는 인제 내 목숨이 내것만 아니고 어린 네 목숨도 받아지녔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찌 네가 가졌던 그 모든 절절한 희망을 잊을수 있겠니. 혁명의 시련은 중첩하지만 우리들에게 승리가 올 날이 그렇게 멀기야 하겠니. 그처럼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장군님의 령도를 받아나가는 혁명인데 그런 날이 빨리 오지 않겠니. 나는 내 가슴에 언제나 살아서 사무쳐있는 너를 붙안고 그 감격의 날로 기어코 가련다. 그런 앞날을 바라보기에 이 무서운 슬픔속에서도 이렇게 힘이 솟질 않니. 기송아! 내 사랑하는 기송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디마디 절절한 심정으로 땅밑에 누워있는 동생과 이야길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묘뜰에서 일어서시였다. 여전히 가느다란 바람이 불고 어데서인가 구구구하는 처량한 메비둘기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묘주위를 몇번 더 도시였다. 그리고나서야 릉선쪽으로 걸어나오시였다. 인젠 모든것이 슬퍼만 보이지 않고 진정 장엄한 혁명전의 대렬속에 깊이 발을 들여놓는것 같은 엄숙한 느낌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문득 장군님께서 지금의 자기도 멀리에서 보시고계시리라는 생각이 가슴에 뭉클 안겨드시였다. 《아, 장군님! 그리운 장군님!》 김정숙동지께서는 왕청쪽이라고 생각되는 흰구름 여러 송이 피여있는 하늘을 향해 나직이 부르짖으시였다. 《장군님! 전 정말 인제야 혁명의 큰뜻을 안것 같아요. 어마어마한 피의 시련속에서 고쳐 태여나 철석같은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어요. 전 이 심정을 장군님께 멀리서 보고드려요!》 그이께서는 크나큰 슬픔에 울고 고이고 고인 눈물에 씻기운 순결한 마음의 금선을 울리며 한없는 흠모의 정에 넘쳐 조용한 음성으로 부르짖으시였다. 가로비껴내리는 해빛속에서 그이의 얼굴은 무척도 아름답고 숭엄하고 부드러워보였다. 그 황홀한 얼굴로 인제야 두줄기 맑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제 1 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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