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27  회  )

 

제   12   장

 

1

 

나팔소리가 울린다. 다급한 신호나팔소리가 밤공기를 째며 퍼져나간다. 상촌일대엔 어둠과 물안개가 꽉 차있다. 개안마을근방엔 늦가을 물안개가 산허리까지 기여올라가 구름처럼 덮였다. 나팔을 그렇게 불어대도 온 동네는 아직 조용했다. 기송이는 높은 나무가지에 발을 벋디디고 서서 나팔을 이리 돌리며 불고 저리 돌리며 불었다.

나팔소리가 좀더 컸으면 좋을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동네고 산이고 온통 들었다놓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가싶었다. 상고개가 위험하기에 희섭선생과 회장아저씨가 큰벌쪽에서 급하게 걸어들어오며 동네어구에서 망을 보는 자기에게 나팔을 불라는게 아닐가. 그것도 급한 비상신호나팔을 반복해서 불라는게 아닌가.

정말 상고개쪽이 터져서 적이 큰벌로 넘어오는것일가? 요새 상고개너머에 적의 대병력이 집결한다는 소문이 줄곧 돌았다. 그리고 상고개쪽에서 매일과 같이 큰 싸움이 벌어지고있다는 소문도 들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정황이 급해서 아직 날이 샐 때도 멀었는데 온 동네사람들이 깨나도록 나팔을 불라고 할줄은 몰랐다.

《얘, 기송아!》

밑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송이는 나팔을 입술에서 떼며 아찔한 나무꼭대기우에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나무밑이 캄캄해서 어느 앤지 알수 없다.

《너 누가 나팔을 불라던? 아직 밤중인데…》

마을가운데서 망보던 아동단원들이다. 몇명이나 달려왔는지 밤중에 무슨 나팔이냐고 밑에서 법석 끓는다.

《불라고 해서 부는거야. 너희들은 왜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구 이리로 모여왔니?》

《네가 나팔을 부니까 모여왔지?》

철이의 대답소리가 들린다.

《빨리 자기 초소로 갓!》

기송이가 소리치자 애들은 그담엔 대꾸를 못하고 슬금슬금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기송이는 또 나팔을 추켜들어 입술에 붙이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팔을 불었다.

얼마후에야 어둠속에서 온 동네가 발끈 뒤집혔다. 집집마다 자는 애들을 깨우며 적이 온다는 신호나팔소리같다고 떠들었다.

바로 이런 때 상고개쪽에서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차응도와 희섭이들이 상고개에 나가서 알고 들어온 정보가 정확했다. 놈들은 지금 유격근거지에 대한 발악적인 전면공세를 취하고있었다. 특히 놈들은 혁명의 사령부가 있는 왕청근거지보위의 요충지대인 여기 상촌근거지를 아예 이번 공세에서 결단을 낼 잡도리로 전례없는 총공세를 들이대자고 했다.

그래서 놈들은 월평, 태봉 지구에 남아있던 저들의 군대, 경찰 무력은 말할것도 없고 국경건너에 주둔하던 일부 무력까지 깡그리 긁어모아 본래 있던 부대들과 힘을 합쳐서 오늘아침 일시에 상고개를 치고 넘어오려는것이였다. 어제 공방전에서 사로잡은 장교 두놈의 입에서 그 비밀이 새여나왔다. 바로 놈들의 그 대공격이 지금 시작되는것이였다.

상고개쪽에서 총소리가 울릴 때 동네의 여기저기에서는 샘내, 북동으로 피난을 가란다고 웨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혁명정부에서 비상회의를 한 사람들이 뛰여다니며 알리는것이였다. 정부는 강건너 개안마을 뒤골과 개암골 산줄기를 타고올라가 북동, 샘내 같은 동네들이 있는 골짜기를 피난처로 정했다. 그래서 강 이쪽은 북동, 샘내로 가고 강 저쪽은 개안말 뒤골로 빠져서 봉수동으로 피난해가라는것이였다. 이런 지시가 전해지자 근거지안은 더욱 끓어번졌다. 집집에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량식도 물건도 그냥 두고 갈수는 없었다. 피난을 가랄 때에야 이곳으로 왜놈이 들어올수 있다는 소린데 어떻게 량식을 두거나 물건을 두고 갈수 있겠는가. 량식은 더더구나 그렇다. 그놈들의 아가리에 매운재를 처넣으면 처넣었지 어찌 량식을 두고 간단말인가. 물 한방울도 두고 가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인젠 서슬이 올라서 펄펄 뛰였다. 량식을 퍼내다가 달구지에 싣는 집들이 많다. 량식이 그렇게 많은것도 아니여서 달구지 하나에 다섯 여섯집 량식을 실었다. 차응도회장이 짐 싣는데로 와서 지휘를 하며 돌아갔다. 희섭이, 리진구들도 떨쳐나서 량식자루를 메내온다, 이불보퉁이를 들어내온다 하며 법석을 했다.

《이게 간단한 싸움이 아니니까 산에 가서 자리를 잡고 인민혁명군에 더운밥이나 해서 나르시오. 그렇다고 걱정할건 없구.》

차응도회장은 아낙네들한테 아이를 업혀주고 띠도 졸라매주며 타일렀다.

날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낮게 가라앉은 물안개가 밀리기 시작하며 집과 길이 드러나고 언덕들이 드러났다. 길우에는 사람들과 짐수레들이 줄을 지어 떠난다. 어데서 강아지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마 집짐승까지도 죄다 안고 떠나는것 같았다. 달구지들은 짐을 집채처럼 싣고 삐걱거리며 굴러간다. 한 늙은이가 지팽이를 분주히 휘두르며 걸어가다가 총소리가 울리는 상고개쪽을 향해 서서 웨친다.

《이 개같은놈들아! 천하에 더러운 이 짐승같은놈들아! 네놈들의 대가리우에 마른벼락이 안내릴줄 아느냐!》

사람들이 로인을 부축하며 어서 가자고 했다.

어디서인가 꽝하는 폭음이 울리였다. 이건 상고개쪽에서 나는 폭음이 아니라 바로 마을근방에서 울리는 폭음이였다.

사처에서 이게 무어가 터지느냐고 놀란 소리들을 질렀다. 또 한번 그런 폭음이 울리였다. 그러더니 연거퍼 여기저기서 꽝꽝 터지고있다. 그제야 사람들은 상고개너머에서 놈들이 포를 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모두 술렁거리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했다. 누구인가 겁을 먹지 말고 개암골 뒤골짜기로 곧장 올라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놈들의 박격포탄은 점점 더 세차게 날아왔다. 행길옆에서도 터지고 밭고랑에서도 터지고 했다. 사처에서 폭음과 함께 흙이 뒤집혀 일어나군하였다. 학교쪽으로 올라가는 길옆에 있던 초가집 한채가 박격포탄에 훌 날려 일어났다. 벽토와 재목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와르르 떨어져내렸다.

무서운 시련이 별안간에 닥쳐들었다. 압제의 뿌리를 뽑아던지고 자유와 환희속에서 건설한 생활이 살을 갉아내고 가슴을 찢어내는것 같은 아픔속에서 파괴당하고있다. 모두들 분노에 치를 떨며 걸었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아동단합숙에서도 소동이 일어났다. 여기서도 짐을 꾸리는 일이 벌어졌는데 새벽교대로 나가 망을 본 애들이 늦게 들어와서 시간이 늦어졌다.

짐이라야 별것은 없었다. 언제나 메고나설수 있게 제가 자는 머리맡에 비상용배낭을 한개씩 걸어놓아두는것이 있는데 거기에 공부하던 공책 몇권과 입던 옷가지들을 꿍져넣으면 되였다. 그런데 리상녀와 금실이가 배가 불룩한 마대자루를 맞들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자, 어서들 와서 한몫씩 받아가거라. 제 먹을건데 제가 가지고 가야지 이 란시에 언제 혁명정부에 가서 달구지를 내라겠니?》

《그럼요. 인젠 모두 힘이 장수같은데 그 힘을 뒀다 어디다 쓰겠어요? 나두 서너말 이겠어요.》

애들이 못지고 가겠다고 뒤를 낼가봐 리상녀와 금실이가 눈을 끔벅이며 하는 말이였다. 어제 혁명정부에서 타온 아이들의 열흘분 식량이였다.

《어머니, 념려 말아요. 그까짓걸 못져요? 헹…》

태국이가 꽤 무거워보이는 배낭을 닁큼 들어보면서 한마디 뽐냈다.

《정말야, 난 상기두 이만큼 더 질수 있어!》

역시 꼬마동이 태호도 배낭을 진 두어깨를 으쓱하며 한마디 했다. 둘이 아직 꼬마이긴 하지만 개안촌앞 강가에서 이리로 몰려올 때에 비기면 어방없이 컸다. 키들도 크거니와 볼편도 넙죽해졌다. 저마끔 흰소리를 하며 줄레줄레 배낭아구리를 젖혀들고 상녀에게로 다가왔다. 상녀와 금실이가 퍼주는 쌀을 받은 애들은 배낭을 토방에 내다놓고 졌다벗었다하며 법석을 했다. 철이의 짐이 제일 컸다. 그는 배낭우에 어린 꼬마들이 덮을 이불 한채까지도 겹쳐 졌는데 짐이 엉뎅이로 처져내려가 멜띠를 열번도 더 죄였다늘궜다했다.

애들은 박격포소리가 꽝하고 울렸을 때엔 모두들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이거 뭐야?》

《대포다.》

《어데 와 맞았니?》

모두 집앞으로 달려나가 여기저기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동네에선 사람들이 북적 끓는데 도대체 대포알이 어데 와 떨어졌는지 알길이 없다. 이어 또 꽝하는 폭음이 울리였다. 그제야 애들이 저기다 저기다 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흙이 뒤집혀일어나는것을 못본 애들은 연방 어딘가고 물으며 발뒤축을 들었다. 그담엔 폭음이 련속 울리였다. 그제야 모두 포탄 떨어지는것을 딱히 제눈으로들 보았다. 포탄은 저기 큰벌에서 들어오는 마을어구에서 불기둥을 일으키며 터지고있었다.

《야, 오늘은 한바탕 해보겠다.》

《체, 네가 뭐 해볼테냐?》

《왜 못해봐? 그까짓 왜놈을 못당해?》

《까불지 말어!》

애들은 지금 반장인 기송이가 들어오지 않아서 포탄이 튀는 마을을 근심스럽게 내려다보고있었다. 새벽에 망보러 나갔던 애들의 말을 들으면 나팔을 불고난 기송이는 희섭선생이 와서 뭐라고 하자 이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는것이다. 어떤 애들은 개안마을에 건너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직 기송이가 안왔니?》

짐을 다 꾸리고난 금실이와 리상녀가 토방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금실이는 꼬물만치도 겁나하는것 같지 않은데 리상녀는 포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뒤부터는 사시나무떨듯하였다.

《아직 안았어요.》

《그런데 얘가 망을 보다가 어데로 뛰였게 아직 안온단말이냐? 저렇게 대포를 쏴대는데 어데 가있담?》

리상녀가 지청구를 하며 어쩔바를 몰라 또 부엌으로 달려들어간다. 금실이도 따라들어갔다. 부엌세간이 엉망으로 되였다. 가마 하나를 뽑아 그속에 그릇들을 집어넣고 큰 보자기로 쌌다. 금실이가 그것을 성큼 안아들고 구들우에 올라선다.

《아니 건 놔두라구, 방안에 있는 쌀짐만 해두 무거울텐데…》

리상녀가 만류하였다.

《일없어요. 쌀자루는 이우에 척 얹으면 이고 뜀박질이라도 하겠어요.》

구들에 올라간 금실이는 가마를 싼 보자기를 끄르고 쌀이 좀 남은 마대자루를 그우에 덧짊었다. 그러니 보끈이 모자랐다. 그는 얼른 부엌으로 다시 뛰여내려가 나무단매끼를 풀어이어서 졸라맸다. 짐덩어리가 덩실하게 커보였다. 그는 입술을 사려물고 끙소리를 지르며 짐을 한번 들어보기까지 했다. 소중하게 끌고 다니던 제 보짐 생각이 나서 얼른 손을 디밀어 보퉁이안을 만져보기도 했다. 양은쟁개비 끓듯해도 일은 잘해냈다. 그러게 김정숙동지께서 태봉으로 내려가신뒤엔 상촌부녀회 일도 보고 합숙아이들 교양도 하는데 맘만 내키면 몸을 아끼지 않고 뛰였다. 오늘아침에도 벌써 부녀회 회장네 집에 갔다와서 짐꾸리는 일을 시작했다.

또 꽝하는 폭음소리가 울리였다. 어디 멀지 않은곳에 떨어졌는지 방바닥이 움씰 흔들린다.

여기저기서 포알 터지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모두 불안스럽게 마을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무한한 물은

산곡간의 적은 물이 회합함이요

 

마당이 우렁우렁 울리였다.

《응, 저녀석들이 제법 구실을 한다!》

리상녀가 애들을 내다보며 표정이 밝아져서 말했다.

《어머니, 인젠 빨리 떠나야 하지 않겠어요. 포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는데…》

금실이는 임을 안고 일어서며 말하였다.

《떠나야지. 그런데 이 기송이녀석은 왜 안올가? 그녀석이 와야 떠나지?》

《글쎄말예요. 그럼 어머닌 애들과 먼저 떠나세요. 내가 알아보고 뒤따를게요.》

이러는데 밖에서 나팔소리가 울리며 애들이 기송이 온다고 소리를 질렀다. 리상녀와 금실이는 꾸려놓은 짐들을 안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정말 기송이가 개미진같이 늘어선 애들을 앞세우고 학교쪽길로 걸어올라오며 나팔을 분다. 아까같이 그렇게 신호를 보내는 나팔소리가 아니였다. 마디가 길고 꺾어넘기는 가락이 기운을 돋구기도 했다.

《저건 무슨 애들이냐?》

리상녀가 애들을 보며 물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와요.》

《온 저런, 장한녀석같으니라구!》

애들이 줄을 지어 들어온다. 합숙마당에 있는 애들은 더욱 신이 나서 노래를 합창했다.

애 하나가 앞에 서서 박자를 맞춰 팔을 휘두르며 마주오는 애들을 내다본다. 저편에서는 기송이가 나팔을 이쪽저쪽 돌리며 더 구성지게 마디를 꺾어넘긴다.

합숙근방은 노래소리, 나팔소리로 들썩들썩 했다.

 

우리들의 적은 지식 발달하기는

천신만고 지난후에 능히 하리라

 

와아- 아이들이 합숙마당으로 밀려들어왔다. 대렬이 흩어져 합숙마당에 있던 애들과 한덩어리가 되였다. 강 이쪽 아이들뿐만아니라 강 저쪽 개안촌, 개웃마을 아이들도 많았다. 학교 학생이란 학생은 죄다 모아가지고 몰고온것 같다. 그 애들도 모두 책과 쌀이 든 배낭이나 보퉁이들을 졌다. 새로 온 아이들까지 합쳐서 노래가 시작되였다. 노래소리는 하늘을 흔들듯이 우렁차졌다. 기송이는 토방으로 뛰여올라가 나팔주둥이를 높이 쳐들고 노래곡조에 맞추어 나팔을 불었다. 그바람에 노래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또 어디선가 꽝하는 폭음소리가 울리였다. 집이 드르르 울리고 서까래밑에 바른 흙이 떨어져내렸다. 포탄은 아까보다 분명 더 가까운데서 터진것 같다.

그러나 마당에 꽉 들어선 애들의 노래소리는 기송이의 나팔소리와 함께 점점 더 높아지고있었다. 나팔을 부는 기송이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검은 눈섭에 코마루가 둥실한것이 사나이답게도 생겼다.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생각이 나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금은 태봉에 가서 무슨 일을 맡아안고 뛰는지… 여기서 눈물과 사랑으로 길러낸 아이들이 이렇게 포탄도 무서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는줄 알기나 하고있을가. 리상녀도 김정숙동지의 생각을 하는지 노래부르는 애들을 내려다보며 두눈을 슴벅거리고있었다.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나서야 애들은 출발하였다.

아침해발이 퍼지는 개암골 웃골짜기로 줄을 지어 들어가는 애들이 또 혁명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2

 

상고개는 앞뒤 경사가 그리 유하지 않다. 적과 대치해서 진을 치고있는 앞면이 더 강파롭다고 할가, 산엔 나무가 듬성듬성 서고 바위돌들이 우죽부죽 솟아있기도 했다. 웬만한곳에선 바위들에 의지해서 놈들을 내려갈기기가 더 좋았다. 그러나 김봉석은 온 산을 전호로 둘레를 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전호와 련결된 교통호는 큰벌쪽에서부터 시작되게 만들었다. 그러기에 상촌중대는 상고개에 이르기만 하면 벌써 큰벌쪽 고개뒤에서부터 머리를 감추고 재빨리 전연진지로 기동할수 있었다. 여기 상고개뿐만아니라 큰벌 이쪽 대문바위에도 그러한 제2선을 벌려놓고있었다. 바로 적은 이 두개의 방어선을 돌파해야 상촌으로 달려들수 있었다.

상고개 앞쪽으로는 수십리허의 아득한 계선에까지 중촌지역의 낮은 야산들이 잇닿아있다. 놈들도 이 야산속에서 대렬을 로출시키지 않고 움직였다. 더구나 요새는 내내 이 야산들에 안개가 짙게 깔려 놈들의 동정을 육안으로는 물론 망원경으로도 살펴낼수가 없었다. 이따금 웩웩 고아대는 소리, 욕지거리소리가 들려서야 놈들의 움직임을 겨우 알아차릴수가 있었다.

량편이 이런 대치상태속에서 이때까지 크고작은 싸움을 벌려왔는데 오늘아침엔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싸움이 붙었다. 적의 대병력이 일시에 상고개를 무찌르고 올라오며 상고개너머에까지 박격포사격을 가해왔다. 상고개는 삽시에 불고개로 변했다. 적들의 공격이 맹렬한가 하면 이쪽에서 대항하는 불길도 무서웠다. 온 산이 분노를 일으키며 불을 내뿜었다. 상촌중대 대원들은 전호속에 엎드려 적을 턱앞에 다가붙이고는 불벼락을 들씌웠다. 총으로 갈기고 작탄으로 들부시고 하는데 꽝하는 작탄의 폭음이 울릴 때마다 기여오르던놈들이 수십명씩 뻐드러져 딩굴군했다. 비명이 일어나며 사지가 찢겨져 허공으로 날으기도 했다. 어떻게 개미떼처럼 기여오르는지 보총사격으로는 미처 감당해낼수가 없다.

고개밑 야산엔 오늘아침에도 안개가 진하게 차있는데 놈들은 투망을 뒤집어쓴 고기떼처럼 그 안개속에서 와글와글 끓으며 련속 쓸어나와선 비탈로 달라붙군한다. 말을 탄 장교놈들이 고개밑에서 칼을 휘두르며 목이 째지는 소리로 악다구니질을 한다. 야산 하나 넘어 저쪽으로 안개가 좀 엷어진곳이 보이는데 거기에서도 말이 뛰며 공중에서 칼빛이 번쩍거린다. 전호가엔 적탄이 우박처럼 쏟아진다. 흙이 튕겨나고 돌이 부서졌다. 여기저기서 부상자가 났다. 그러나 부상자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사격을 계속하고 작탄을 집어던지고 했다. 작탄짐이 연방 올라왔다. 개안촌 농민들이 한짐씩 골박아지고 전호속으로 줄달음을 쳤다. 모두들 강을 건너오느라고 아래도리가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진다. 한 로인은 수염난 턱을 쳐들고 헐떡헐떡 숨을 톺아올리며 달리였다.

《할아버지는 그만두시죠.》

《왜 그만둬? 우리 근거지가 란을 겪는데 늙었다고 가만있을가, 당치 않은 소리.》

《그러다가 다치십니다.》

《다치면 어떤가? 이젠 죽을 나이도 됐는데 장군님 주신 근거지를 지키다가 죽는다면 좀 존가?》

전호속에선 감동해서 껄껄 웃으며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큰벌쪽 교통호로 돌을 메고 나오는 농민들도 많다. 한아름씩 되는 바위돌이다. 농민들은 흙이 뿌려치는 전호턱우에 쿵쿵 돌들을 내려놓는다.

《이놈의 새끼들, 한번 된벼락을 맞아봐라!》

농민들은 이를 갈았다. 한 농민은 메고온 바위돌을 전호턱우에 쿵 박아놓더니 잡초를 거머쥐고 씽 뛰여오른다. 곁에서 사격하는 대원들이 위험하다고 소리를 질렀으나 그는 들은체도 않고 바위돌을 안고 댓발작 벼랑끝으로 나갔다.

《받아라! 이 벼락을 맞을놈들아!》

그는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며 바위돌을 힝 머리우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적이 우글거리는 비탈로 내리굴렸다. 그는 돌이 내리굴며 적을 어떻게 까부시는가를 볼새도 없이 도로 전호턱으로 뛰여와 또 한개 들고 나갔다. 바위돌이 연방 굴러내려갔다. 돌들은 적이 우글거리며 올라오는곳으로 마주 굴러내려가며 다리를 분지르고 가슴팍을 들이치고 대가리를 까고 하였다. 돌은 굴러내려갈수록 점점 더 바람을 내서 고개밑 솔밭속으로까지 굴러들어갔다. 솔밭속에서도 말울음소리가 일어나고 적들의 비명이 터져올랐다. 돌은 한곳에서만 굴리는것이 아니라 산을 휘감아나간 긴 전호의 여기저기에서 련속 굴리였다. 전호에선 대원들과 농민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비비고 돌아가며 사격을 하고 돌을 굴리고 했다.

피어린 싸움이였다. 불과 불이 안고 딩구는 처절한 싸움이 반나절이나 계속되였다.

놈들은 종시 상고개를 뚫어내지 못하고 퇴각했다. 불길이 멎으니 끔찍스러운 광경이 드러났다. 전호밑 비탈엔 놈들의 송장이 득시글거리고 무엇이 불타는지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여오르기도 했다. 찢겨진 모자, 군복따위가 풀밭에 널리고 불을 뿜던놈들의 무기도 모두 숨기를 거두고 나가딩굴었다. 터지고 찢기고 동강이 난 놈들의 시체가 산비탈에 너저분히 널렸다.

전호속에서도 부상자들이 났다. 부상자들은 담가에 들려 교통호로 빠져 큰벌쪽으로 내려갔다.

김봉석은 빠져나가는 들것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낮추고 큰숨을 내쉬였다. 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담배 한대를 말아서 피워물었다. 분하고 치가 떨렸다. 이 상촌은 우리들의 자유가 있고 창조가 있고 눈물과 고통을 쓸어버린 행복이 있는곳이다. 그런데 원쑤들이 감히 여기를 점령해보겠다구? 그래 우리가 이곳을 빼앗길수 있단말인가!

김봉석은 모자채양을 바로잡으며 큰벌로 내려왔다. 그는 대문바위쪽을 향해 바삐 걸었다. 대문바위근방에 거의 가서는 샘물도랑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물을 한참 들이마셨다. 물속에 비치는 그림자가 자기같아보이질 않는다. 얼굴이 온통 시꺼멓고 눈망울이 주먹만치나 커뵈였다. 그 눈망울엔 아직도 상고개비탈로 올리밀던 우글거리는 적들이 비쳐져있는것 같다. 김봉석은 또 큰숨을 내쉬며 뒤꽁무니의 권총을 뽑았다. 아까 탄알을 다 쏘았던 기억이 나서 새로 장탄을 했다. 그는 땀을 씻으며 물도랑을 건너 숲을 헤치며 올라갔다.

대문바위엔 량쪽에 삐여져나온 고지에 방어진지가 꾸려져있다. 이 방어선에선 두 고지사이의 행길만 막아내면 된다. 다른곳으로는 적이 침입할데가 없다. 고지와 잇닿아있는 좌우산발들은 모두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면서 병풍처럼 상촌을 둘러싸고있다. 그렇기때문에 상고개를 근거지의 바깥대문이라고 한다면 이 대문바위는 안대문이라고도 할수 있다. 김봉석이 고지우로 올라가니 역시 전호속에 대원들이 가득 진을 치고 대기상태에 있었다. 작탄상자도 여기저기 놓여있고 전호턱우엔 바위돌들도 수없이 모아다 쌓아놓았다.

김봉석은 전호속을 걸어나가며 대원들을 한사람한사람 여겨보았다. 그는 작탄상자도 살펴보고 탄약의 량도 따져보았다. 너무도 심각한 얼굴이여서 대원들은 흘끔흘끔 눈치만 보았다. 그들도 오늘의 전투가 단순치 않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이때까지는 근거지안을 공격하는 포사격따위는 있은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상고개전투가 계속되는동안 내내 후방을 두드려대는 폭음이 땅을 진감시켰다. 고지를 다 돌아보고난 김봉석은 대원들에게 전호의 흉장을 더 든든하게 보강하고 돌도 더 많이 굴려다놓으라고 이른 다음 저쪽고지로 건너갔다. 그쪽에서는 《즐거운 무도곡》의 합창소리가 울려왔다. 조경남이 씽긋씽긋 웃으며 손풍금 켜는 흉내를 냈다.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들이 그럴듯싶게 뛰놀았다. 십여명 대원들이 모여서서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노래를 부른다.

 

자유와 평등을 얻은 기념날은 돌아와

동무들은 구락부에 모여 무도회를 열었다

로동자 좋아서 이리저리 뛰는데

농민은 기뻐서 어찌할줄 모른다

 

맞은편고지로 건너간 김봉석은 최정수를 만나서 잠간 땀을 뺐다. 최정수는 김봉석이앞에 거수경례를 붙이고 서서 자기를 상고개로 내보내달라고 정식으로 제기했다. 김봉석은 그의 부리부리한 눈망울을 잠간 바라보다가 말없이 비켜서 걸어가려고 했다.

《아니 왜 그냥 가십니까?》

《참으시오. 쌈이 없을것 같애 그런 제기를 하오?》

《쌈이 없을가봐 제기를 하는건 아닙니다. 해종일 총소리를 듣고 앉아있으려니 견딜수가 없어서 그러는겁니다.》

《규률을 지키시오. 손을 내리시오.》

김봉석이 엄하게 말하며 걸어가자 그제야 최정수는 손을 내리며 아무 말도 못했다. 그는 따라가 한마디 더 들이대라고 부추기는 대원을 팔굽으로 밀쳤다. 사실 이것은 최정수의 혼자 소망이 아니고 이 고지에 있는 대원들 전체의 갈망이였다.

맞은편고지를 다 돌아보고난 김봉석은 소대장과 함께 고지 첫어구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까지 노래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인젠 노래만이 아니라 온 대원들이 들썩들썩 춤까지 추며 돌아갔다. 손풍금 타는 흉내를 내는 조경남이도 경쾌한 몸짓으로 두어깨를 실룩실룩 움직인다. 소대장이 뭐라고 소리치려 하는걸 김봉석이 가볍게 그의 손등을 두드리며 막았다.

 

이렇듯 즐거운 날이 그 언제 있었나

행복한 새 사회에 웃음꽃이 피였다

로동자 농민은 한데 뭉쳐 춤추고

어린이는 이 꽃속에 길이길이 놀아라

 

김봉석이 소대장과 함께 언덕으로 내려오는데 마침 차응도회장이 숲을 헤치며 걸어왔다. 회장뒤엔 함지를 인 아낙네들이 십여명 따라섰다. 모두들 땀을 철철 흘리며 걸었다.

《모두 웬일들입니까?》

《점심을 해가지고 나왔소. 여기 세함지만 내려놓고 나머지는 전부 상고개쪽으로 내갑시다.》

차응도가 김봉석의 말에 대꾸하며 아낙네들더러 어서 빨리 앞서 가라고 손짓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려고 이렇게들 위험한 전연지대까지 나오셨습니까! 어련히 우리 동무들이 가져다 먹지 않을라구요.》

김봉석은 아낙네들의 임을 받아내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김이 설설 서려오르는 국동이며 물을 이고온 아낙네들도 있었다.

옷이 젖은걸 보면 더운국이라도 쏟은것 같은데 목덜미나 어디 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김봉석은 가슴이 뭉클했다. 원쑤를 일격에 맞받아 쳐부실 만만한 투지를 가다듬고있는 제2선의 대원들과 그리고 먹을것을 이고 달려온 인민들을 보니 가슴속에 갑자기 아름드리기둥같은 큰 힘이 솟아오르는듯싶었다.

김봉석과 차응도는 언덕우로 걸어올라갔다.

김봉석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떻게 해야 동지들의 피를 헛되이 하지 않고 인민들의 요람, 혁명의 사령부가 있는 왕청근거지로 가는 길목인 이 상촌을 끝까지 지켜낼것인가. 그는 그 무거운 책임이 자기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있었다.

《그래 지금 놈들의 동정이 어떻소? 아주 내뺀건 아니겠지요?》

차응도가 묻는 소리였다.

《아니지요. 력량을 더 증강해오고있습니다. 하평리쪽의 길이 새까맣게 메여서 들어오는군요.》

《그렇다면 형편이 어려워지질 않겠소?》

상고개를 견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소리였다. 이미 상고개밑에 들어와있는것도 대병력인데 또 자꾸 들어온다면 일이 바쁘게 될건 틀림없다.

김봉석은 차응도의 물음에는 대답지 않고 다른 말을 하였다.

《봉수골인민들을 다 뽑았습니까?》

차응도는 묻는 뜻을 모르겠다는듯한 얼굴로 김봉석을 쳐다본다.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이요? 거기에는 강 저쪽 마을 피난민들이 모여들어가고있는데…》

《회장동지, 어서 사람을 띄워서 그곳 인민들도 모두 북동샘내 마을쪽으로 빼주십시오.》

《아니 그럼 놈들에게 봉수골을 내줄 작정이요?》

차응도는 아연했다. 지금 상촌이 포탄에 두드려맞는것만 해도 가슴이 터져 못견디겠는데 봉수동골짜기를 내주다니 도대체 중대장이 머리가 잘못된게 아니면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하는가!

《내주는게 아니라 몰아넣자는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김봉석의 음성도 어딘가모르게 떨리는것 같다. 차응도의 눈이 갑자기 번쩍번쩍 열기를 뿜기 시작하였다.

《중대장동무, 그러지 말고 우리 결사전으로 상촌을 지켜냅시다. 마을의 남녀로소들이 지금 모두 근거지를 내주느니 차라리 원쑤놈들의 멱다시라도 물고늘어져 죽겠다고들 하오.》

《글쎄 전투란 그런 기세만 가지고는 되질 않습니다.》

차응도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봉석을 쳐다볼뿐이였다. 봉석이 침착한 어조로 계속하였다.

《그것은 무모한 싸움입니다. 공연히 인민들과 대원들의 희생만 크게 냅니다.》

《그럼 근거지를 내주잔말이요?》

《근거지를 내주자는것이 아니라 적들을 올가미속에 몰아넣고 달아매자는것입니다. 회장동지, 우리가 정말 여기서 결사전으로 넘어가 생명과 자유를 바꾼다면 그때는 진짜 상촌을 적들에게 내주게 될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령부로 가는 길목을 지켜내지 못한 그 죄과를 영원히 씻을수 없게 될것입니다.》

차응도는 대답을 못한다.

《장군님의 전법에도 맞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적은 무력으로 큰 적을 치기 위하여 바로 신축자재한 유격전법을 선택하신것입니다.》

《그건 나도 아오. 다만 나는 우리들의 피땀으로 건설해놓은 보금자리를 한치도 내주고싶지 않을뿐이요.》

《제 가슴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적을 때려부시고 인민들과 인민혁명군만 살아있다면 집을 짓고 근거지를 다시 꾸리는 일쯤이야 무슨 어려울게 있습니까?》

차응도는 얼굴이 컴컴해져서 말이 없었다. 결국은 그렇게밖에 할수가 없단말인가! 상고개나 대문바위에서 적을 막아낼수 없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세우긴 세워야 하겠지만 근거지안에 적의 발자국이 찍힌다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얼마후 김봉석은 소대장을 찾아서 적이 대문바위계선에 육박해오는 때엔 어떻게 싸우라는 지시를 한참 주었다. 그는 싸우다가 불리한 경우엔 놈들을 달고 봉수골로 퇴각해들어가라고 일렀다. 그는 그리고나서야 상고개를 향해 떠났다.

김봉석은 오후엔 상고개우에 반일자위대를 더 증강시켰다. 그리고는 온 부대에 사기를 불어넣으며 밀려드는 적을 두차례나 물리쳐냈다.

그러나 간단치 않은 싸움은 해질무렵에 있었다. 이번엔 놈들이 들쑹날쑹 비탈에 올라붙는것이 아니라 산개진을 치고 일시에 바다물처럼 올리밀었다. 중기 경기로 탄환을 들부어댔다. 전호근방엔 탄환이 불구멍 쑤시듯 날아왔다. 이 싸움엔 희섭이, 리진구들도 참가했다. 김봉석은 얼굴이 칠흑빛으로 되여 작탄을 집어던졌다. 언덕밑에선 련속 불기둥이 솟았다. 그러나 그는 그게 작탄의 불기둥이 아닌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눈이 핑핑 돌아가고 제몸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그저 몸을 떠미는것은 적진속으로 달려들어가 육박전이라도 벌리고싶은 충동이였다. 그는 작탄을 얼마나 집어던졌는지 모른다. 더 집어던지려 하니 인젠 작탄상자가 비였다. 총알도 떨어졌다. 대원들의 총알, 총알 하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바위들도 굴릴것이 없었다. 인제는 부득이 적을 제2선으로 끌고들어갈 때가 되였다. 그는 전 부대가 큰벌앞 산릉선을 타고올라가 대문바위 남쪽골짜기에 집결하라고 명령을 주었다. 대원들은 삽시에 벼랑뒤로 빠져나갔다.

리진구, 희섭이들이 김봉석이와 함께 대원들이 빠져나가는동안 이쪽저쪽으로 뛰여다니며 엄호사격을 했다. 희섭이는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리진구도 어델 맞았는지 팔굽에서 피가 흐른다. 적이 전호로 뛰여들기전에 대원들은 죄다 빠져나갔다. 얼마후에야 리진구, 희섭이들도 전호에서 빠져나왔다. 놈들이 무얼 던지는지 빈 전호에서 쾅쾅하는 폭음이 울려왔다. 아직 함성이 일어나지 않는것으로 보면 놈들이 전호가 비였다는것을 알아채지 못한것 같다.

전호뒤쪽 비탈을 벗어나 숲에 들어선 김봉석은 부리나케 대렬을 따라 뛰였다. 리진구며 희섭이들도 뛰였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고있다. 대원들은 석양을 시뻘겋게 받아안고 비탈을 가로 지르고나갔다. 벌써 상고개가 터져 놈들이 큰벌로 넘어섰다. 왁왁 끓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말이 여러필 먼지를 날리며 큰벌 들판을 질주했다. 얼마후엔 대문바위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연기가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제야 김봉석은 서둘러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인제 한달음으로 봉수골에 가닿아야 하오. 거기 이미 3소대가 매복되여있으니 그들과 합세하여 대문바위동무들이 달고들어오는 적을 뚜들겨잡아야겠소.》

뜻하지 않은 퇴각명령에 쭝해졌던 대원들이 그제야 활기를 띠고 술렁거렸다. 중대는 숲속을 달렸다. 늦가을 락엽이 달리는 대원들의 머리우로 건들건들 날아내리고있었다.

 

 

3

 

상촌근거지에 이러한 시련이 닥쳐들었을무렵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태봉시의 경식이로부터 빨리 올라오라는 통지를 받고 부랴부랴 덕산동을 떠나시였다. 한기천은 십상 지구공청사업때문에 부를지도 모르니까 올라가면 이 지역의 형편을 잘 이야기하라고 했다. 요즘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이를 도와 지구내 공청조직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에 달라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식이가 자기를 태봉지구의 딴 지역으로 보내자고 부르는것 같은 예감이 없지 않으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한기천에게 그 이야긴 할수가 없으시였다. 그런 말을 하면 한기천은 펄쩍 놀라며 아무리 조직의 지시라도 그런 말은 듣지 말고 도로 내려오라고 할것이 틀림없었다. 그만치 그는 요새 김정숙동지와 손발이 맞아서 대중조직을 꾸려나가며 공청도 차츰 확대시켜나갔다.

어쨌든 김정숙동지께서는 즐거우시였다. 한기천의 뜻대로 자기가 이 지역으로 다시 못온다 해도 인젠 이 지역을 걱정할 일은 없을것 같으시였다. 차라리 한 지역을 바로잡아세웠다면 또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 그 지역을 이 지역에 따라세우며 태봉을 중심으로 한 전지역을 든든하게 꾸리는게 더 보람있는 일이 아닐가! 어쩐지 새 생각 새 희망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오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나는듯 종종걸음을 치시였다. 온 들판이 환희를 안아다주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언덕도, 불어오는 미풍도, 흘러가는 흰구름도 그저 무심히 뵈질 않으신다.

마차 한대가 굴러왔다. 풍이 요란스럽게 큰 마차다. 밤빛 발잔등이 해빛에 번쩍번쩍 윤기를 뿜는다. 어데서고 이런건 보기만해도 가슴이 후두두해지신다. 배에 기름진놈들이 타고다니는 물건이 이 촌길엔 또 어째서 나타났는가. 박대동이 어데 갔다오는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경찰놈들이라도 타고나오는것일가?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까짓거야 오거나말거나 곧장 앞으로 걸어나가시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마차를 비켜서려고 눈을 드는 순간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마차안에서 밤빚 중절모에 안경을 쓴 민태설이 내려다보고있지 않는가. 그도 김정숙동지를 알아본것 같았다.

《게, 게 좀 세워라!》

민가의 더듬대는 말소리가 들렸다. 마차부가 말을 세웠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창졸간에 발이 떨어지지 않아 비켜서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말의 코김이 훅훅 뿜기는곳에 서서 민가를 올려다보시였다. 지진이 일어난 땅이라도 밟고 선듯 후들거리시였다.

《너, 너 우리 연자방아간에서 방아찧던 엉?…》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였다. 민가는 숨을 헐떡거리며 묻다가 말을 끊고 턱짓만 했다. 대답을 해보라는 수작인지 모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그 그 처녀가 아니냐? 방아찧던 처녀가 아니냐?》

《그래요.》

김정숙동지의 입에선 똑똑한 대답이 나가시였다. 인제야 자기앞에 이 사회를 독물이 흐르는 이발로 짓씹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들고있는 독구렝이가 앉아있다는 의식이 드시였다. 그런 의식이 똑똑해지고보니 딛고 서있는 땅이 불시에 탄탄해지고 다리도 떨리지 않으시였다.

《너 그래 지금 어디서 뭘하고있니?》

《그저 떠돌아다니며 벌이를 하고 살아요. 방아간에서 나오니 벌어먹기가 어려워서요.》

《벌어먹기가 어렵다?》

민가도 이게 벌써 바르지 않은 대답이라는걸 알았는지 한마디 뇌이더니 다시 물었다

《너 그래 오래비하구 함께 살고있냐?》

《오빠요? 난 지금 오빠가 어데 있는지 몰라서 찾아다니는길이예요.》

김정숙동지의 눈길은 점점 더 비수같아지시였다. 더 물을 소리가 있으면 물어보라는 배짱도 생기시였다.

《그 그래 오빠가 이 근방에 있기는 있다던?》

《글쎄요. 그 말은 내가 민주사나리한테 묻자는 말인데요.》

《그 말을 나보고 물어?》

《그래요…》

《어째서?》

《잘 알지 않겠어요. 부암 있을 때부터 그걸 알아내지 못해서 그만치 애썼으니까요.》

민가는 으험으험 기침을 하더니 마차부에게 말을 몰라고 소리를 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민가를 쏘아보며 서서히 말이 달리도록 길옆으로 비켜서시였다. 말이 먼지를 들씌우며 달아났다. 그제야 김정숙동지께서는 길에 들어서서 걸으시였다. 아, 민가! 저놈을 여기서 다시 보았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떨리고 주먹이 쥐여지시였다. 얼마전 산당고개너머에서 달구지를 타고 떠나던 그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그중에서도 어린 순옥이의 모습이 눈에 한사코 밟히시였다. 괘씸한년놈들이 그 어린것을 부엌데기로 부리면서도 하루가 멀다고 부엌구석에 몰아넣고는 패고 치고 했다지. 그래도 어린것이 그 무서운 매질속에서 용케 살아났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연자방아를 돌리던 자기가 순옥이로도 돼보이고 부엌데기인 순옥이가 자기로도 돼보이시였다. 매맞고 울부짖고 쫓기고 하는 그 생지옥같은 광경이 이 한낮 해빛속에 그대로 살아나 펼쳐진다. 괘씸한놈, 악독한 놈, 어린것들의 피땀까지도 깡그리 비틀어짜먹구는 배에 빌기가 섰지. 그리고는 비단에 싸여 저렇게 마차를 타고 다니지. 혁명이 어느날에 가서야 저런 독구렝이를 요정내서 멀리멀리로 내동댕이 칠것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생각만 해도 신물이 나는 과거를 도로 밟는듯 가슴이 떨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얼굴에 땀이 질퍽해서 바삐 걸으시였다.

한편 김정숙동지를 띠여보고 가던 민태설이는 갑자기 마차안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차를 돌려라!》

그는 마차부에게 소리쳤다. 도적심사를 가진 박대동이 농장 주권을 절반값 아니면 넘겨받지 않겠다고 탕개를 틀기에 그 흥정을 바로잡아보려고 가던길인데 인젠 그 생각조차도 죄다 없어져버렸다. 그저 김정숙동지를 붙잡지 못했다는 생각만 불같아졌다. 당장 붙잡아가지고 경찰서로 달려가야 하는것인데 창황중 그 생각을 못했다. 아니 그 생각을 못했다기보다 그 비양이 깔린듯싶은 도도한 기상에 움이라도 질렸던것 같다.

《빨리 채찍을 갈겨라. 그 그 계집애를 붙잡아야겠다.》

마차가 돌아서자 민태설이 또 부르짖었다. 그는 마차가 달리는데도 더 버쩍 채찍을 치라고 소리치며 들썩거렸다.

《그 애가 앞에 나타나면 자네도 재빨리 뛰여내리게. 잘못하면 뛸지 모르니까 둘이 힘을 합쳐 붙잡아야겠네. 그 애 오래비가 큰 공산당이야. 오래빌 붙잡자면 그 앨 붙잡아 족쳐야 하네…》

민가는 코숨을 내불며 마차부에게 타일렀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흔들거리는 말대가리앞 길바닥으로는 농군들과 아낙네들이 띠염띠염 나타날뿐 방금 본 처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민가는 말을 때리라고 소리치며 시뻘겋게 단 눈망울로 앞을 쏘아보았다. 제가 이 길바닥에 있겠지 비상천을 했을테냐? 그저 붙잡기만 하면 설사 큰 공산당인 오래빈 못붙잡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까막골귀신으로 만들어 아들의 원한을 풀어줄수도 있지 않을테냐. 상촌이 열리는 이때에 시원히 보복을 하도록 점지하는 일인걸 내가 미처 몰랐단말야. 어떻게 하든 내가 기준이 그놈의 집 밑그루를 들어내고야 다리를 펴고 살텐데 깜빡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단말이야. 이놈, 네놈이 나를 대청마루에 자빠뜨려놓고 무지랭이들을 몰고 들어와 고간을 털어갔지. 천불을 맞을놈같으니라구. 민가는 고간을 털리던 때 생각까지 치달아올라 숨이 차서 목줄대근방이 풀무질하듯 펄떡였다. 그는 마차가 아니라 손에 검이라도 틀어잡고 번개치듯 날아가고싶었다. 그러나 처녀는 종시 보이지 않았다. 십리길도 더 달려서야 민가는 이게 별일은 별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세우라고 했다. 말이 울음소리를 지르며 멈춰섰다. 민가도 목젖너머가 들여다뵐만치 입을 벌리고 헐떡거렸다.

《가만있자, 이게 어떻게 된건가?》

민가는 피발이 선 눈을 두런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자기가 대낮에 귀신한테 홀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 아니라면 이렇게 감쪽같이 없어질수가 있을가. 그렇지 않아도 아까 말앞에 나타난 처녀를 보았을 때 그게 연자방아간에서 일하던 처녀라는건 알아보면서도 그가 그렇게 몰라보게 자랐을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얼굴이 그처럼 보름달같이 환하게 피여날수 있었을가. 엊그제까지 연자방아간에서 겨를 뒤집어쓰고 당나귀를 몰고 돌아가던 그가 언제 그처럼 때를 벗어던질수 있었단말인가. 민가는 아무리 생각해야 비몽사몽간에 빠져있는것 같았다. 그는 아들을 저주했다.

(이 이놈이 내 건전했던 정신을 아주 뒤죽박죽 만들어놓고 갔구나.)

분명히 아들의 주검앞에서 잃었던 정신이 아직 되돌아오지 않은것 같기도 했다.

《여 여보게, 지금이 어느땐가?》

민가는 마차부에게 물었다. 이 세상이 지금 자기가 보는 그대로인가를 한번 확인해보려는것이였다.

《지금 한나절입죠.》

《응, 한나절이다? 그래 우리가 어디로 가다가 마차를 돌려세웠지?》

《덕산동 박대동네 집으로 가다가 돌려세웠습죠.》

《그래, 저기 오는 사람들이 임자 눈에도 뵈는가?》

《뵈지 않구요.》

《뵌다?》

그렇다면 정신이 아주 뒤죽박죽이 돼버리진 않은것 같다. 하긴 아주 뒤죽박죽이 됐다면 미치광이로 되였을게 아닌가. 민가는 안경을 벗고 눈굽에 질척거리는 눈물을 닦으며 말을 돌려세우라고 일렀다. 그는 마차부에게 방금 본 처녀가 진짜 사람같아보이더냐고 물으려다가 창피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말도 인젠 맥이 빠졌는지 흐느적흐느적 걸었다. 풍안에서 흔들려가는 민가의 우묵한 눈굽에선 진물이 그칠새없이 흘러내린다.

김정숙동지께서 태봉시에 들어서신것은 저녁이 가까운 때였다. 그이께서도 마차가 도로 달려내려오는걸 보고는 일이 심상치 않게 생각되여 얼른 숲으로 숨어들어가 딴길을 15리길이나 에돌아 오시였다. 그러느라고 한낮이 좀 지나면 닿을줄 알았던 걸음이 이렇게 늦어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가 처음 왔을 때 들렸던 그 아지트에서 경식이를 만나시였다. 경식이는 몹시도 반가와했다.

《수고를 했소. 그동안 몸도 튼튼하고 일도 잘했다니 무척 기쁘오.》

《한 일이 없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을 붉히며 수집게 웃으시였다.

《난 김정숙동무를 신개동으로 내보내면서 은근히 걱정두 했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동무가 신개동지역에 나가서 그렇게 잘 싸운걸 오빠가 안다면 좀 기뻐하겠소.》

《우리 오빠는 지금 어데 계신지 모르세요?》

《장군님으로부터 중요한 공작임무를 맡고 왕청을 떠났다는 소식만 들었소. 혹시 강을 건너가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강을요?》

《내 짐작이지 딱히 알수가 있소? 어쨌든 오빠야 어데가 싸우든 무슨 걱정이겠소. 다같이 장군님 품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싸우는것인데 좋고 나쁜곳이 따로 있을테요? 그런데 정숙동무! 난 동무가 잘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혁명가들이 혁명을 잘하려면 첫째두 둘째두 장군님의 가르치심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나서야 된다는걸 더 가슴깊이 깨달았소. 한기천동무의 그릇된 견해가 어째서 꺾인줄 아오?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하는 정숙동무한테서 혁명을 옳게 밀고나갈수 있는 큰 힘을 보았다는거요. 옳은 말이요. 그건 진리요.》

경식인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본시 과묵한 편인 그가 이렇게 흥분했을 때엔 김정숙동지께서 장군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시고 싸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지고있었던게 틀림없었다.

《그건 그렇고 정숙동문 지금 상촌정세가 어떻게 돼가고있다는걸 알고있소?》

《네? 상촌이 어떻게 됐게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을 들며 물으시였다. 경식이는 심각한 낯빛으로 잠시 대꾸가 없이 앉아있었다.

《상촌에 무슨 변동이라도 생겼어요?》

《놈들의 대무력이 공세를 취했소. 시련이 닥쳐든것 같소. 근거지가 이렇게 돼가는데 우리가 가만히 앉아있을수 있소? 상촌은 우리의 희망이며 귀중한 전취물인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있겠소? 그래서 벌써 사람을 뽑아보내기도 했는데 오늘밤에도 사람들과 화약이 또 떠나오. 그러니까 동무두 인젠 그 지역 사업에서 손을 떼구 오늘밤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올라가오. 신개동, 덕산동, 옥천 등지의 조직들은 인제 궤도에 들어서고 튼튼해졌소. 그러니까 안심을 하고 떠나는것이 좋겠소.》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기 시작하시였다. 적의 대무력이 공세를 취했다는건 무슨 말인가. 대무력이라면 얼마나 되는 무력을 말하는것인가. 작년 봄 월평시에서 본, 거리를 꽉 메우고 누런 먼지속으로 울컥울컥 걸어들어오던 그런 무력을 말하는것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무력이라니 얼른 표상이 그렇게 떠오르시였다. 그러면 지금 근거지안에 월평시같은 광경이라도 벌어졌단말인가. 모든것이 수백수천의 그 누르칙칙하고 험상한 원쑤놈들의 군화밑에 짓밟히고있단말인가. 신개동지역에 나가있으면서도 놈들의 공세가 있다는 말을 못들은바는 아니시였다. 그러나 매번 쳐들어왔다간 퇴각을 하는것이니 그저 그러루한 공세일것이라고만 생각하고있었을뿐이시였다. 경식이 말하는것처럼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고 위급해진줄은 모르시였다.

《그럼 놈들이 근거지안에까지 달려들었단말이예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어제 내려온 소식에 의하면 형편이 아주 어렵게 된것 같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술이 파릿해지시였다. 그 이상 아무것도 묻고싶은 생각이 없으시였다.

《너무 근심에 사로잡힐건 없구… 아무렴 조선인민혁명군이 상촌을 지켜내지 못하겠소? 모두 결사전을 하고있다니 왜놈군대를 다 송장더미로 만들테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꾸를 안하시였다. 경식이가 부질없이 자기를 달래지 않는가 하는 생각만 드시였다. 누가 어린애이기에 그런 소리에 위안을 받거나 사태를 자기 맘이 편안하도록만 생각하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 자기앞에 자신의 모든 소중한것을 바쳐야 할 준엄한 시각이 닥쳐왔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끼시였다. 공청에 들 때 눈물로 다진 맹세가 떠오르고 안개더기우에서 오빠가 자기를 상촌으로 들여보내며 채찍질하던 말도 회상되시였다. 그러는가 하면 자기의 품에 안겨 숨이 지며 원쑤를 갚으라고 하던 어머니의 유언이 귀전에서 울리고 그렇게도 순박하던 올케가 혁명의 비밀을 지켜내며 장하게 죽어간 모습도 떠오르시였다. 이 쌓이고쌓인 생활이 뒤를 떠미는데 내가 이런 시기에 어떻게 해야 되리라는것은 명백하지 않는가.

《여기서 저녁을 먹구 오늘밤 조카애나 만나보고 떠나오. 동무가 신개동으로 떠난 뒤 내가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왜 잠시 들려가게 하지 않았느냐고 매우 섭섭하다는 말을 하셨소. 그러니까 애를 만나보는것도 만나보는것이지만 그 어머니한테 고맙다는 인사나 하고 떠나는것이 좋겠소. 혁명가의 어머니고 또 정숙동무의 오빠를 자식처럼 여겨온 어머니이기도 하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소곳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들으시였다. 조카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경황이 없는속에서도 가슴이 뜨거워지시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이렇게 그립던것을 가슴에 솔곳이 받아안을 자리도 없는 이런 때 만나보게 되는가. 그 어린것은 험난한 시대에 태줄을 끊었기때문에 이렇게도 매양 크나큰 불행을 후광처럼 지고다니며 사람의 가슴을 에이는것인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웬 청년이 들어와서 경식이에게 쪽지를 전했다.

《무슨 련락입니까?》

《왕청에서 최진동지가 왔습니다.》

《최진동지?》

경식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쪽지를 풀어서 읽었다. 최진동지라는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도 어지간히 놀라시였다. 최진동지가 왜 여기로 왔을가? 상촌에 와서 한달동안이나 공작하고 다시 왕청으로 떠나간 최진동지가 무슨 일이 있기에 여기로 왔을가? 상촌에 들렸다가 여기로 온것일가? 아니면 상촌으로 가던길에 들린것일가? 아무래도 상촌이 저런 형편이 되였는데 최진동지가 그 무슨 딴 일로는 여기에 왔을것 같지 않으시였다. 꼭 상촌을 구원할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기 위해서 여기에 나타난것만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울렁거리며 뛰시였다.

《지금 어데 와있습니까?》

쪽지를 읽고난 경식이 물었다.

《첫째봉 고갱속에…》

《낮인데 고갱속엘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그 근방에 오늘은 올빼미눈들이 없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내 곧 가겠습니다.》

경식이는 이러며 약간 떨리는 손으로 성냥불을 켜서 쪽지에 댔다. 청년이 나간 뒤 경식이는 잠간 생각에 잠겨 앉아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게 좀 일이 생기는것 같소. 이리로 다시 못올수도 있을것 같은데 밤에 혼자서 동발막뒤 병풍바위밑 숲속을 찾아갈수 있겠소?》

《찾아갈수 있어요.》

《거기에 오늘밤 떠나는 사람들이 집결하기로 돼있소. 밤 한시경 그리로 가야 하오. 이번엔 화약이 좀 많기도 하고 또 중촌지역에 적이 우글거려서 무장인원도 몇명 따라세우게 했소. 그런데 오늘밤 떠나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상촌이 초행이요. 그러니까 길을 아는 정숙동무가 인솔해가지고 가야겠소. 실수가 없이…》

《알겠어요.》

《중촌지역에 가선 직통 벌판으로 들어서지 말고 중촌앞 대봉산 허리를 타고나가다가 그 뒤골로 빠지오. 그렇게 에도는 길을 알것 같소?》

《알만해요.》

얼마후에야 경식이는 문을 열고 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리시였다. 무언지 모르게 정세는 점점 더 급박하게 죄여드는것 같으시였다. 상촌은 지금 정말 어떻게 되였을가? 그런데 최진동지는 여기 어째서 왔을가? 한시바삐 상촌으로 달려갈수는 없을가? 그이께서는 가슴이 뛰고 조바심이 나시였다.

경식이 첫째봉밑 고갱속으로 들어가니 로동복차림의 최진이 돌우에 초불을 켜놓고 앉아 무슨 도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조덕하와 방금 쪽지를 가지고 왔던 공청구위가 도면의 량옆을 붙잡고 앉아서 함께 들여다보며 최진의 무슨 설명을 듣고있었다.

최진이와 경식이는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경식이는 최진이와 초면이긴 하지만 최진이 장군님의 측근에서 활동하는 이름난 혁명가라는것은 알고있었다.

《동굴에서 이렇게 뵙게 됩니다.》

《이게 로동계급의 집이 아닙니까?》

경식이의 말에 최진이 대꾸하며 껄껄 웃었다. 해맑던 얼굴이 검실검실 타고 눈망울도 그전보다 이글거렸다.

《자 앉으시오. 지금 장군님께서는 상촌의 긴박한 정세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력부대의 일부를 월평과 태봉으로 파견해주셨습니다. 놈들의 배후에 타격을 가해서 상촌공세를 무너뜨리자는것입니다. 그 부대가 곧 오게 됩니다.…》

최진의 이야기를 듣는 경식이는 당장 가슴이 들먹거렸다. 장군님의 헤아리심은 언제나 수만갈래 혁명의 모든 전선에 뜨거운 피줄처럼 와닿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쳤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태봉을 순식간에 두드릴 계획을 짜야 하겠습니다. 이 략도를 보십시오. 이게 경찰서, 그담 여기가 수비대 병영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최진이 략도를 짚어가며 물었다.

《거리랄것이 없습니다. 거의 앞뒤집처럼 붙어있지요.》

조덕하가 대답했다.

《앞뒤집이라… 그럼 한그물에 둘러싸고 족칠수 있겠군. 그건 좋구.》

최진은 략도에 있는 검은 점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며 죄다 확인했다. 략도엔 군수창고, 자위단본부, 관방사무실, 무장자위단실, 헌병분소,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있다. 언제 어떻게 장악된 략도인지 태봉시내의 조그만 골목길까지도 죄다 그려져있다. 략도를 놓고 한참 확인하고난 최진은 그담엔 처단해버릴 주구놈들의 명단을 달라고 했다. 공청구위가 목책장을 뜯어내서 연필로 민태설이부터 적기 시작했다. 그는 광주, 덕대 지주따위를 십여명 적어서 최진이에게 내밀어주었다.

《아니 이거 무슨놈의 주구가 이렇게 많습니까? 이 손바닥만한 거리에…》

《그건 죄다 쓸어없애야 합니다. 이런 기회에 혁명에 반감을 가지고있는놈들은 한놈도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해선 못씁니다. 나쁜놈들중에서도 주동과 피동을 갈라야 합니다. 장군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적의 편에 있다고 다 쓸어버리는 방법으로 나가선 안됩니다.》

장군님의 말씀이라는 소리에 공청구위는 대답을 못했다. 경식이 명단을 달래서 들여다보았다. 역시 처단하지 않을만한 사람도 써넣은것이 있었다. 특히 덕대들중에 그런 사람이 여럿 되는것 같았다.

《통이 큰 원칙적립장에 서야 합니다. 이 좁은 지역안에서 부딪치는 감정놀음이 혁명에 나쁘게 작용해서는 안됩니다.》

최진은 경식이, 조덕하들이 머리를 마주대고앉아 명단에서 이름을 그어던지는걸 보고는 한마디 더 말했다. 얼마후 경식이는 명단을 다시 최진에게 넘겨주었다. 최진은 여러명 그어던진걸 보고나서야 종이를 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사람들을 불앞으로 다가앉게 하고는 전투계획을 좀더 구체화시켰다. 경찰서와 수비대병영을 쓸어눕힌뒤에는 부대를 셋으로 나누고 공격구역을 각기 분담하도록 하는 문제, 안내자들을 선정하는 문제, 선전공작문제, 지하조직들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공작하는 문제… 최진은 전투에 따르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서 안을 내놓고 협의에 붙였다.

(역시 다르긴 다르군. 군사를 뒤받침하는 지하공작이 이쯤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처럼 백전백승할수 있을가!)

경식이도 조덕하도 속으로 감탄하며 불빛이 어룽거리는 최진의 활달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식이의 말대로 밤이 좀 들어서 주인아낙네가 데려다주어 어린애가 있는 집으로 찾아가시였다.

《자 어서 들어가요. 저 나지막한 널바자가 있는 집이라오.》

녀인은 강호의 어머니네 집앞에 이르자 소곤거리며 등을 밀었다.

《고마와요.》

《다시 태봉으로 오라구요.》

《오잖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둠속에서 녀인과 작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잠간 널바자앞에서 머뭇거리시였다. 방안엔 불빛이 있었다. 문득 어린애의 깨득거리며 웃는 소리도 들려나온다. 분명 인남이의 웃음소리 같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조마조마해지시였다. 저 어린것을 어떻게 만난담? 울지 말아야 할텐데 왜 벌써부터 가슴속에 무엇이 이리도 가뜩해지는가. 시간도 촉박한데 차라리 어린것이 잠이라도 들고 그 잠든 얼굴을 잠간 들여다보고 떠날수라도 있게 됐으면 좋지 않을가.

얼마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살그머니 널쪽대문을 열고 마당안으로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부엌문앞으로 가서 가늘게 인기척을 내며 어머니를 부르시였다. 오빠를 자식처럼 사랑했다니 얼마나 좋은 어머니일가!

《어머니!》

대꾸가 없어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번 문을 흔들며 어머니를 부르시였다.

《밖에 누가 왔나?》

방안에서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네…》

《얘 이녀석, 좀 가만히 있거라. 밖에 누가 왔나보구나.》

얼마 안있어 부엌문이 열렸다. 머리 하얀 어머니가 잠간 의아한듯 마주 내다본다.

《저어… 전 인남이 고모예요.》

《아니 누구라구?》

《인남이의…》

《온 이런…》

어머니는 얼른 두손목을 잡아끌어들인다.

《내가 신개동쪽에 가있다는 말은 들었지. 그래서 들리지 않고 갔다구 꾸짖기도 했었지.》

어머니는 이러며 김정숙동지를 이끌고 정지방으로 올라간다. 고무공을 차던 인남이는 구석쪽에 쫓겨들어가 두다리를 벌려디디고 못박힌듯 서있다. 이건 뭐게 이 야단이야 하는듯한 심술궂은 표정으로 노려보는것 같기도 했다.

《어서 앉으라구. 신개말에서 들어오는길인가?》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스러이 구들에 앉으시였다. 저 애가 인남이란말인가? 인남이가 아니고 다른 애를 기르면서 인남이라 하지 않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은 아무런 감정의 파동도 없이 구석에 서있는 어린애를 쳐다보시였다. 어린애는 볼이 둥그렇게 넓고 벗은 아래도리도 살을 쥐여붙인것 같이 투실투실했다. 몸이 실하니 장난질도 세찬것 같았다. 구들엔 고무공, 동그랗게 만든 사금파리, 안경알따위가 널리고 제 바지도 허리띠로 나무단묶듯해서 끌고 돌아가다가 내버려둔것이 놓여있었다.

《어머니, 전 벌써 어머니를 찾아와뵙구 고맙다는 인사의 말씀이라도 올려야 했을건데 그렇게 못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침착히 이야기를 꺼내시였다. 그이께서는 될수록 어린애를 붙안고 울고불고 하는 일이 없이 조용히 어머니에게 인사나 드리고 떠나려 마음먹으시였다.

《온 인사는 무슨 인산가? 난 어린것을 데려다 기르니 무릎아래가 그득해진것 같기도 하고 늙마에 사는 보람도 느끼고있다네.》

《그렇지만 시중이 좀 고되겠어요? 하루이틀두 아니구 긴긴 세월 제자식도 아닌것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그게 왜 내 자식이 아니겠나? 기준이의 자식이기도 하고 내 자식이기도 하지. 그게 그렇다고 해서 나쁠 일이야 없지 않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정말 말이 잘못된것 같아서 얼굴을 붉히시였다. 구석에 서있던 어린애가 통통하게 살이 찐 두발을 디뚝디뚝 옮겨디디며 어머니에게로 걸어왔다. 인젠 걸음도 제법 잘 걸었다. 어린애는 어머니의 무르팍우에 와서 털썩 앉더니 뚜릿뚜릿한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마주 쳐다보았다.

《인남아, 네 고모란다. 어서 가 좀 안겨라!》

《고모?》

《그럼 고모야. 어서 가봐라!》

어머니는 어린애를 추썩 들어서 김정숙동지께로 내밀어주었다. 어린애는 내밀어주는대로 얼른 제 고모의 무르팍우에 와서 살짝 들어앉았다. 그리고는 할끔 고모의 얼굴을 치떠보았다.

《인남아!》

김정숙동지께서는 후둑거리는 가슴으로 아이를 다가안으시였다.

《해해, 고매?》

방금 고모라던 소리를 잊어버리고 고매라고 불렀다.

《이녀석, 고매가 무슨 고매냐? 고모야.》

《고모? 해해해.》

인남이는 엉덩판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역시 고모라니 이웃집 어느 아낙네의 이름인거나 같이 알수밖에 없는 어린것이였다. 피줄이 이어진 고모와 저와의 사이에 피눈물의 사연이 얽혀있다는것이야 이 어린것이 어떻게 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더 힘주어 어린애를 꽉 끌어안으시였다. 애를 휘감은 손이 바들바들 떠시였다.

《인남아!》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린애의 뒤통수에 얼굴을 묻으며 그의 통통한 발을 꽉꽉 쥐였다놓았다하시였다. 어머니는 얼른 돌아앉으며 눈물을 씻었다.

《인남아, 넌 정말 나 모르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렇게도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눈구석에 핑 어리시였다. 얼마만에 안아보는 인남이냐. 안개더기우에서 오빠에게 안겨준 어린애기가 인제 자기품에 다시 와 안겼다. 네가 정말 인남이냐? 내 가슴에 매달려 그렇게도 울던 인남이냐? 젖을 달라고 바둥거리며 목을 꺽꺽거리던 인남이냐? 인남아, 넌 그 원한의 송하동물가에서 입에 밀어넣어준 감자를 넘길 힘도 내뱉을 힘도 없어서 그저 물고만 있었지. 그래도 혀로 딱딱 소리를 내주자 그 개풀린 눈에 살짝 웃음을 띠기도 했었지. 그런데 넌 그날 네 작은 머리에 그 저주로운 원쑤들이 뿌려던진 비누물을 맞고 울긴 얼마나 울었더냐. 저주할 세상에 태여나서 너는 네가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알고나 있느냐?

하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용케 울음을 참으시였다. 방금 눈구석에 괴여올랐던 눈물도 간데없고 그저 얼굴빛이 파릿해지시였다. 울어선 안된다고 이를 악물고 자기를 다잡으시는것이였다. 지금 상촌에선 하구많은 불쌍한 애들이 이 시각에도 불에 타고 숨이 지고 할텐데 내가 여기에서 우리 인남이를 붙안고 울어야 한단말인가. 사랑도 눈물도 삼키고 살자. 거기 우리 인남이에게 주는 더 큰 사랑과 눈물이 있다고 믿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남이의 총이 센 머리에 또 한번 볼을 문지르고 턱을 문지르고 하시였다.

《애가 점점 자라가면서 어떻게 귀염성스럽게 구는지. 이웃에서 누가 들어만 오면 디뚝디뚝 걸어가서 무르팍우에 털썩 안기네. 그래서 이웃사람들은 어데서 이런 복덩이가 떨어졌는가고 칭찬을 하군한다네.》

《오빠두 어머니네 집에 있어서 그렇게 신세를 졌다는데 이렇게 인남이까지… 전 무어라고 할 말이 없어요.》

《오빠가 내 집에서 무슨 신세를 졌겠나? 도리여 그 사람이 안팎으로 나를 보살펴주군했었지.》

인남이는 어느새 고모의 품에서 떨어져나와 저편 구석쪽으로 가더니 제 고모를 겨누고 공을 내차기 시작했다. 인젠 고모와 흥정이 붙어 장난질이 시작된것이였다. 통통한 발이 공을 찬다는것이 여러번 헛다리질을 했다.

《어이구, 개다리야.》

《헤헤헤…》

어머니가 한마디 놀려주자 인남이는 발끝에 겉묻어돌아가는 공을 따라 돌아가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러더니 어떻게 했는지 김정숙동지께로 공을 차던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을 붙잡아 인남이에게로 훌쩍 던지시였다. 인남이는 더욱 신명이 나서 웃어대며 공을 붙잡느라고 법석했다. 몇번 공을 차굴리던 인남이는 아무래도 고모를 공으로 맞혀내는게 성차지 않았던지 공을 몰래 뒤에 감추어들고 살금살금 걸어오더니 고모의 얼굴에 탱소리가 나게 집어던졌다. 그러더니 고모한테 와락 달려들며 깡충깡충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또 인남이를 품에 꼭 당겨안으시였다.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네 집에서 나오시였다. 골목길로 걸어나오시는 그이의 량볼은 이제야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려 척근히 젖었다. 어쩐지 기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시였다. 까막골에 묻혀있는 올케생각이 간절하시였다. 불쌍한 올케는 지금 까막골지척에서 자기의 어린것이 저런 재롱을 부리는걸 알기나 하고있을가? 그리고 저 어린것은 어느날에 가서야 제 엄마가 이곳 류치장에서 숨을 거두고 까막골 찬땅에 뼈를 묻은줄 알게 될것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바삐 걸으시였다.

또 상촌이 떠오르시였다. 불에 타는 상촌이 눈앞에 검은 산처럼 떠오르시였다. 골목길을 빠져나온 그이께서는 안개가 덮인 큰길로 달음박질을 하시였다.

 

 

4

 

나무가 우거지고 다래넝쿨도 우거졌다. 밑엔 노루자리같은 미끄러운 풀도 깔렸다. 한뽐 앞을 헤쳐나가기가 숨가쁘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날쌔게 비탈을 춰오르고 곬을 빠지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끔 큰 화약보퉁이에 눌려 새빨갛게 된 목을 돌리며 뒤에 오는 청년들에게 빨리들 걸으라고 재촉하군하시였다. 청년들은 힘이 빠져 헐헐했다. 한짐씩 골박아진 화약도 무겁고 길이 험한데 오다가 적까지 만났다. 그래서 산속을 갈팡질팡 헤매느라고 힘을 다 뽑혔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매양 한결같은 걸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여기가 상고개 남쪽산줄기라고 생각하니 더욱 조바심이 나고 가슴이 뛰시였다. 상촌은 정말 어떻게 되였을가? 정말 죄다 불에 타버렸을가?  태봉에 잘못 전달되여  경식이가 그렇게 어려운 형편이 됐다고 하는건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별생각이 다 나시였다.

상고개 산줄기를 넘어서니 해가 뉘엿뉘엿 산너머로 떨어졌다. 어제밤 떠난후 온 하루를 산을 헤매며 보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큰벌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달음박질하시였다. 얼른 살펴보니 다 가을해낸 땅이여서 그런지 큰벌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으시였다. 대문바위쪽 큰길에도 사람이 없다. 비탈에 선 나무우듬지들우로 대문바위안쪽도 들여다보이는데 그곳도 조용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가슴이 떨려오시였다. 역시 상촌은 죄다 짓밟힌게 분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수그러져내려간 산등을 한참 달리다가 다시 가둑나무가 우거진 경사면을 치달아오르시였다. 어떻게도 빨리 내달리시는지 뒤따르는 청년들은 아직 산아래 있는 다래넝쿨속을 빠지느라고 두팔을 허우적이고있었다.

《성남동무, 길잡이동무가 어디로 내달리는지 단단히 보우. 또 잘못하다간 길을 잃겠소.》

《지금은 보이오. 빨리들 걷소.》

《이거 혼찌검이 나는군…》

화약을 진 청년들은 화살 날듯하는 길잡이를 따라나섰다가 정말 단단히 혼찌검들이 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 개암골 앞산줄기에 다 오시였다. 여기 다달으니 상촌들판이 휑하니 내려다보인다. 벌써 첫눈에 무서운 변화가 안겨들었다. 들판엔 집도 아무것도 없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화약보퉁이를 내려놓고 등성이끝으로 뛰여나가시였다. 노을이 물든 불그레한 들판이 좀더 자세히 내려다보이였다.

마을은 재더미로 변했다. 제일 큰 학교집자리에도 인민혁명정부와 공청지부 사무실자리에도 아니 온 마을에 거밋거밋한 재가 쌓였다. 그것이 마가을 저녁바람에 뿌옇게 날아일어났다. 신통히도 집은 한채도 보이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이 차고 다리가 와들와들 떨리시였다.

인제 자세히 보시니 대문바위를 조금 들어와 산기슭에 왜놈군대들의 풀색천막이 군데군데 들어앉아있다.

놈들은 마을을 다 불태워놓긴 했으나 마을 한가운데 들어와선 천막을 치지 못했다. 위급하면 당장이라도 내뺄 잡도리같이 대문바위 산기슭에 둥지를 꾸려놓았다. 천막 있는데서 누런 군복입은 놈들이 왔다갔다했다.

어디선가 고아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안촌으로 건너가는 물가에 수십명되는 적의 대렬이 나타났다. 말도 여러필 되였다. 놈들은 재가 날리는 들판을 걸어서 대문바위쪽으로 나간다. 전투를 하다가 천막으로 돌아오는놈들인것 같다. 그렇다면 적아가 상촌을 가운데 두고 공방전을 벌리고있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화약보퉁이가 놓여있는곳으로 돌아오시였다. 눈앞이 캄캄해지시였다. 인젠 어떻게 해볼나위가 없이 된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런데 근거지에 있던 사람들은 죄다 어디로 갔단말인가. 상촌중대와 반일자위대는 어디로 가고 혁명정부는 어디 있단말인가. 그리고 애들은 우리 애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단간방 오두막에서 살다가 그래도 제힘으로 제집을 짓고 더운 구들에서 자며 글도 배우고 세상같은 세상을 산다 했는데 그 불쌍한것들이 또 어디로 흩어져갔단말인가. 이번엔 어느 강가에 가서 울고 어느 산속에 들어가 찬땅에서 몸을 오그리고 자는가. 가슴이 찢어지시였다. 애들을 위해서 바친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련이어 떠오르신다. 그래도 그것이 보람있는 생활과 바뀌여졌으니 그렇게도 기쁘고 행복했는데 인젠 그 행복도 그 기쁨도 물거품이 되였단말인가. 상촌이 이렇게 빈 터전으로 될줄이야 뉘 알았는가. 그 숱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심전력으로 쌓아올린 생활이 이렇게도 불타버리다니… 이 터지는 가슴을 어떻게 참는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약보퉁이곁에 오금을 꺾고 앉으시였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얼굴의 땀을 씻고 또 씻으시였다. 피기를 잃은 새하얀 얼굴우에 애잔한 그늘조차 비껴들었다. 너무도 큰 충격이 온몸에서 모든걸 송두리채 앗아내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이제야 화약을 진 청년들이 웅성거리며 나타났다. 그들은 김정숙동지께 여기가 상촌벌이냐고 물었다.

《상촌벌이예요. 그런데 오고보니 정말…》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끝맺지 못하시였다. 인젠 이 청년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야 할지 막막하시였다. 화약 그대로가 무기로 될수 있다면 이길로 천막에 달려내려가 불을 들씌우고싶기도 하시였다.

《아니 동네가 전부 불탔구만. 그런데 저건 뭐야? 저게 왜놈들 천막 아니야?》

《옳구만… 말들도 매여있구. 그리구 저것 보우. 놈들의 대렬이 축동으로 빠져나가구있소.》

청년들은 떠들며 화약짐을 내려놓고는 우르르 등성이끝으로 밀려나갔다. 그들도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근거지가 불리한 형편에 있다는걸 알고는 왔지만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되였을줄은 몰랐다. 화약이 떨어졌다고 해서 자기네들이 화약을 지고오긴 했는데 이까짓 화약이나 가지고야 저놈들을 어떻게 쓸어눕힐수 있을가 하는 생각들도 들었다. 그들이 내려다보는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적들이 모여들어 천막쪽으로 내려가고있다. 개암골 웃골짜기에서도 몇패 밀려나오고 강건너 개안촌쪽에서도 한부대 또 건너온다. 모두 전투를 하고 돌아오는게 틀림없다. 삽시에 천막 친 산기슭쪽은 우글우글하는 군대로 덮였다.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먼 골짜기에서 총소리가 울린다. 격전이 붙었는지 한참 콩볶듯 울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서시였다. 총소리 나는데가 어딘지 인젠 그곳을 찾아갈밖엔 없었다. 그이께서도 등성이끝으로 다시 달려나가시였다. 누릿누릿 엷어가는 노을속에서 상촌들판이 아스라하게 바라다보이는데 그끝이 어딘지 거기서 총소리가 울리고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찌르며 솟아올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서서 지켜보다가 얼마후에야 청년들과 함께 화약짐 있는데로 다시 돌아오시였다.

《그런데 인민혁명군은 어데 있는거요?》

한 청년이 김정숙동지께 물었다.

《산에 있겠지요. 아무렴…》

《산에요?》

《이 근방 산에 있을거야요. 놈들이 감히 마을에도 들어서지 못하지 않았어요. 저 총소리 나는쪽에 우리 군대가 있을거예요. 조금도 락심 말고 모두들 짐을 지고 떠나요.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한시바삐 중대를 찾아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보퉁이를 들어서 머리우에 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급하게 산등을 걸어나가시였다. 청년들은 기가 꺾였는지 말이 없었다. 그들도 짐을 지고 따라섰다. 어디서 초연냄새가 훅훅 날아온다. 개암골 골짜기안도 시꺼멓게 그슬렸다. 역시 병실들도 죄다 불타 없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를 사려무시였다. 눈에선 푸른 불이 펄펄 타시였다.

그이께서는 개암골뒤 릉선으로 올라가 한참 걸어나가시였다. 별안간 그게 정숙동무 아닌가고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쳐다보시니 사람들 십여명이 무얼 한짐씩 골박아지고 저편 산등성이로 넘어가다가 모두 이쪽을 돌아다보았다. 군복을 입은 인민혁명군대원들도 섞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을 보니 그만 울음이 터질것 같기도 하시였다. 누구인가 짐을 벗어던지더니 마구 달려내려왔다. 가까이 온것을 보시니 아이들 합숙을 지어주던 키가 작고 노란 수염이 다부룩한 목수였다.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그는 내려오자바람으로 김정숙동지의 머리우에서 보퉁이를 받아내리며 화약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 그렇다고 하시자 그는 좋아서 껑충껑충 뛰였다.

《내 글쎄 화약인줄 알았소. 동무가 태봉에 가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골박아 이고 지고들 오는걸 보니… 좌우간 수고들 했습니다. 여기 좀 내려놓고 쉽시다. 저까짓것들을 무서워할건 없구…》

목수는 산너머를 턱짓하며 뒤에 온 청년들에게서도 화약짐을 벗겨내렸다.

《지금 화약이 오는가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참입니다. 인민혁명군이 왜놈의 군대를 매일 백놈씩은 때려잡는것 같은데 시체에서 떼오는 무기는 합쳐 얼마되지 못합니다. 저놈들이 우리 손에 무기를 넘기지 않자고 나가너부러만지면 달려들어 무기부터 떼내니까요. 그러니 쌈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선 탄약이 없어서 애를 태우지요. 중대장이나 회장이 이걸 보면 눈물을 짤겁니다.》

그는 다부룩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떠들었다. 그자신의 눈굽에서도 눈물이 번질거리는것 같다.

《그래 지금두 쌈을 하고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였다.

《하다뿐이요. 매일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끌어들여다 답새기군하지요…》

목수는 근거지방어전투정형을 대충 이야기하였다. 상고개방어선에서 물러선 인민혁명군은 김봉석의 작전대로 적《토벌대》를 봉수골 골짜기에 유인하여 벼락을 들씌웠다.

적들은 그날밤 상촌마을로 물러나와 숙영하였는데 그런것을 김봉석이 밤중에 또 습격전을 들이대여 답새겼다. 놈들은 다시 혼비백산하여 대문바위어구까지 쫓겨나가고말았다. 그러나 《토벌대》놈들도 결사적이였다. 대문바위어구에서 더 전진은 못하였으나 그대신 그 자리에 진을 치고 눌러앉아서 날만 밝으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뚫고들어가기 위하여 발악적인 공격을 시도한다는것이였다.

《지금 이 산너머에선 법석들 끓고있소. 혁명군과 농군들이 쌈차비를 하노라고… 우리도 지금 가을해서 감추어뒀던 량곡을 그리로 날라가는중이라우.》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수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맘이 좀 놓이시였다. 상촌이 살아있긴 살아있고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아깐 죄다 없어진것 같아 앞이 캄캄하기도 했었는데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목수는 화약이 도착한 일이 너무도 기뻐서 담배쌈지를 꺼내 청년들에게 한대씩 말라고 권하며 자기도 고불통에 한대 쑤셔담아서 붙이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을 데리고 목수를 따르시였다. 맞은편 산등성이로 춰오르니 목수와 함께 쌀을 지고가던 사람들이 모두 지쳐서 앉아있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했다. 목수가 빨리들 일어나 짐을 지라고 하자 모두 일어나 짐바에 팔들을 끼였다.

《빨리들 갑시다. 인젠 화약이 왔소.》

목수가 사람들을 격려했다. 그는 마치 인제 이 화약이면 산등너머 적들을 문제없이 쓸어눕힐수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쌀짐 진 사람들을 앞세우고 산을 또 하나 넘으시였다. 정말 그 산밑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쌀짐과 화약짐이 들어서자 여러명이 달려나와 받아내렸다. 그들은 태봉에서 온 화약짐이란 말을 듣더니 청년들에게 수고를 했다고 치하했다. 김정숙동지께서 낯을 알아보실 사람이라곤 한명도 없었다. 앞산머리에 핼쑥한 달이 떠올랐는데 그 달빛속에서 보시니 모두 얼굴들이 무섭게 치였다. 옷들도 입을걸 못입었다. 정말 농민들과 인민혁명군이 한덩어리가 되여 웅성거렸다. 여기저기서 총을 닦기도 하고 무슨 쇠붙이를 두드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로획해온 군도를 무엇에 쓰려는지 돌에 걸터놓고 도끼로 쳤다. 한쪽에선 인민혁명군대원들 여럿이 모여앉아 숫돌에 단도를 갈았다. 그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농민들이 큰 구뎅이를 팠다. 아마 량곡을 날라다가 묻으려는것 같다. 구뎅이를 파는 이쪽엔 몇명의 부상자들이 누워있다.

그저 모두 묵묵히 움직였다. 부상자들도 신음소리 한마디 없다. 누구의 가슴속에나 피가 엉켜붙은것 같다. 그래도 아까 그 목수가 신바람이 나서 쌀짐을 저편 웅뎅이곁으로 옮겨가며 나무숲속에 대고 쌀이 왔으니 빨리들 나와서 저녁을 지으라고 소리쳤다.

얼마 안있어 부녀회원들이 나타났다. 역시 김정숙동지께서 모르시는 아낙네들이였다. 얼굴이 새까맣게 탄 두 아낙네는 지쳐서 간신히들 움직이며 돌가마에 밥지을 준비를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팔을 걷고나서서 아낙네들을 도우시였다.

《부녀회원들이 모두 어디로 갔기에 아주머니 두분만 여기 나와 있어요?》

《죄다 여기저기 널렸지요. 지금 일이 한두가지라고 그러우? 그리구 싸움하는데도 여러군데니 거기 모두 흩어져 시중을 들지요.》

한 녀인이 설명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가지로 쌀을 이시였다. 아니 인다기보다 그저 빡빡 씻어서 함지에 담으시였다. 아직 채 능그워지지도 않은것 같은 수수쌀이였다. 그걸 바위돌로 고인 큰 가마에 안치고 불을 때는데 김정숙동지께서 보시기엔 손바닥만한 아궁의 불로는 쌀을 다 익혀낼것 같지도 못했다.

《밥이 설지 않겠어요?》

《더러 설기두 한다우. 그러니 어떡하겠어요?》

녀인은 대꾸를 하며 한숨을 지었다. 모두 지칠대로 지친것 같다. 녀인들은 싸움을 이기고나서는 잠을 한번 실컷 자보겠다고들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어떻게 해야 이 싸움을 이길수 있단말인가. 그이께서는 또 부리나케 그릇들을 걷어안고 샘물가로 가시였다. 그래도 샘물이 있어서 다행이였다. 놋그릇들이 뿌옇게 녹이 끼였다. 아무렇게나 딩굴려가지고 다녔을터이니 녹인들 안쓸었겠는가? 그이께서는 그릇들을 모래로 빡빡 문지르시였다. 싸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선밥을 대접하며 아무런 그릇에나 마구 담아서 대접하랴. 그들에게 한가닥 힘이라도 돼주게 그 무슨 일이든 할수 있는 정성을 다 바쳐서 하고싶으시였다. 지금 총을 닦고 쇠붙이를 두드리고 단도를 갈고 하는 사람들은 언뜻 보기에도 무서운 각오를 한 사람들같았다. 이 싸움에 이미 목숨을 바치고 사는것 같은 숭엄한 얼굴들이다. 인제 그들에게 무슨 해줄 말이 필요하고 또 그들자신인들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그래서 저렇게들 관자노리가 날카롭게 서서 말없이 움직이고들만 있는게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발도 접시도 다 닦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흘러간 상촌의 생활이 또 절절하게 안겨드시였다. 간고하게 건설한 생활이긴 하였으나 그만큼 자유가 있고 참스럽고 보람이 있고 노래가 있는 생활이였다. 그 어느 하나에도 다 장군님의 뜻이 미치고 그 뜻이 사람들을 움직여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우고 용마루를 올린 생활이였다. 우리가 인제 그 생활을 잃어버리다니?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생활을 지켜내야 한다. 그 누구도 이 싸움에서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가지는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다 힘있게 일어나 앞날을 내다보아야 한다. 이 엄혹한 시련을 넘은 날의 저 멀리를 내다보아야 한다.

그릇을 가셔들고 가마 있는데로 오시니 벌써 밥이 다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 손으로 밥을 퍼내시였다. 큰 밥함지에도 퍼내고 놋바리들에도 퍼냈다. 그래도 밥이 선것 같지는 않았다.

《찬은 뭐가 있는지 어서 그릇들에 담으세요. 모두 얼마나 시장들하시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낙네들에게 독촉하시였다. 아낙네들은 풋김치를 두어사발 담아오고 접시들에 소금도 담아왔다.

얼마후에야 사람들이 모여와 풀밭에 우둑우둑 들어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들앞으로 밥그릇들을 날라가며 부상자들에겐 무얼 대접하느냐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한 아낙네가 좀 있다가 죽을 쑤어야겠다고 말했다.

《좀 있다가 쑬게 있어요? 제가 지금 쑬테니 아주머니들은 여기와 앉아서 저녁을 함께 드세요.》

《아니 동무가 함께 앉아서 들어야지, 태봉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목수가 펄쩍 뛰며 말했다.

《태봉에서 여기까지 왔어도 먹으면서 왔는데 무슨 배가 고프겠어요? 어서 아주머니들이 와서 드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종시 부녀회원들을 밀어보내고 자신은 쌀을 일어서 남비에 또 죽을 쑤시였다. 밥을 먹는 사람들은 김정숙동지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다.

저녁끼니가 끝난뒤 김정숙동지께서는 태봉에서 온 청년들을 다시 인솔해가지고 강건너 병기창으로 떠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거운 보퉁이를 이고 산들을 단숨에 넘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 아니하여 상촌들판에 들어서시였다. 달빛이 휑하니 밝았다. 가을을 해서 다 거두어들인 때라 적이 나타나면 어데 몸을 숨길만한곳도 없었다. 바람 한점 없이 온 들판이 조용했다. 어데서 뚝하는 인기척소리가 들렸다. 무슨 냄새인가? 아니 왜놈의 노린내가 훅 풍기는것 같기도 하였다.

《앉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뒤따르는 청년들에게 속삭이시였다. 청년들이 밭고랑에 들어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우에 이였던 화약보퉁이를 내려서 가슴에 붙안고앉아 한참 주위를 살펴보시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으시였다. 아무래도 자기가 착각한듯싶으시였다. 그러나 이어 착각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시였다.

《나를 따라요. 일어서지 말구…》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청년들에게 속삭이시였다. 그리고는 화약보퉁이를 안은채 몸을 수그리며 앉은걸음을 하시였다. 뒤따르는 청년들도 앉은걸음을 해나갔다. 그들은 한시간나마 이 위험지대를 그렇게 뚫고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약보퉁이를 안았는데도 어찌 날쌔게 움직여나가시는지 뒤에선 청년들이 따라내질 못했다. 청년들은 오금이 쑤시고 짐이 달리워 어깨가 젖혀지고 해서 땀들을 뻘뻘 흘리였다. 강가에 다달으니 모두들 온몸이 척척히 젖었다.

일행은 옷을 입은채 강으로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놈들이 혹시나 강 이쪽과 저쪽의 련락을 두절시키기 위해 강가에 파수라도 세우지 않았는가 해서 각별히 조심하며 물소리가 요란한 여울로 들어서시였다. 얼음같이 찬 물이 아래도리를 휘감으며 마구 딩굴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물이 차다는 생각은 없으시였다. 어떻게 하든 화약짐을 물판에 떨어뜨리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시였다. 돌에 강태가 앉아 쭐쭐 미끄러졌다. 딩구는 물이 얼굴에까지 뛰여오른다. 청년들은 서로 붙들고 건넸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용케도 물살을 헤가르며 혼자서 저쯤 앞에서 나가시였다. 물속의 둥근달 그림자가 눈부시게 일렁거리며 앞을 밝혀주었다.

강을 거의 건너갔을 때 저쪽 강가에서 불시에 총성이 울리며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김정숙동지께서 짐작하신것이 옳았다. 놈들은 정말 강가 여러곳에 파수를 세우고있었던것이다. 총소리는 한참 몰방으로 와드득거리며 물우의 공기를 찢어놓았다. 강가 자갈밭에서는 탄알 박히는 소리가 칙칙 울리였다.

강을 건너선 김정숙동지께서는 잽싸게 청년들을 이끌고 저편 버들숲 우거진 버덩으로 내뛰시였다. 골짜기쪽에서 흘러나오는 개울물을 끼고 바람처럼 달아나시였다. 언덕을 넘어 산기슭에 이르렀을 때에야 발광하던 총소리가 멎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과 함께 화약짐들을 내려놓고 잠간 숨을 돌리시였다. 모두 젖은 옷들을 비틀어짰다.

건너편 동구쪽에선 불빛이 왔다갔다했다. 아마 총소리에 놀라 천막속에 있던놈들도 모두 달려나온것 같다. 뭐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말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과 함께 또 골짜기로 걸어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찬물에 몸은 얼었는데 이마에선 땀이 자꾸 흐르시였다. 몹시도 배가 고프시였다. 인제 시장기가 오는 모양이였다. 그렇지만 사흘이고 나흘이고 굶어서 견딜만한 강기가 있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른 청년들 못보게 손을 재게 놀려 치마끈을 죄여매시였다.

병기창 있는 골짜기에 다달으니 쇠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고 불이 번쩍번쩍 비쳐왔다. 그런데 병기창 앞버덩에서는 아낙네들이 웅성거리고 웬 장정이 나서서 산너머로 넘어가 자리를 정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이구, 산너머면 어떻고 여기문 어떻소.》

아낙네들은 어데 있다가 몰려왔는지 이고온 보따리들을 텅텅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벌써 오자바람으로 기진해서 누운 아낙네들도 많았다.

《글쎄 우리 병기창도 만들던 작탄이나 마저 만들곤 범골로 더 깊이 들어갈 작정이란말요. 지금 저놈들이 점점 더 집요하게 달려드는판인데 여기가 무슨 안전지대라고 자리를 정하겠소?》

《병기창을 옮기면 우리도 그리로 가지요.》

《아니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병기창까지 왜놈들 눈에 로출시켜놓을 작정이요? 깊숙이 들어갔다가 왜놈들을 다 때려눕힌담에 나오문 좀 좋소.》

한참 말시비가 벌어졌다. 그래도 아낙네들은 찰떡처럼 땅에 붙어앉아 일어서질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년들을 이끌고 들끓는 아낙네들속을 얼른 빠지시였다. 그이께서는 병기창으로 곧장 올라가시였다. 불빛이 새나오는 거적문을 밀고 화약보퉁이를 인 머리부터 들이미시니 땀이 번지르르한 시뻘건 얼굴들이 모두 깜짝 놀라 쳐다본다.

《이게 뭐요?》

모루앞에 앉았던 병기창책임자 영택이가 불쑥 일어서며 묻는다.

《태봉에서 화약을 가지고 왔어요. 그새 얼마나 고생들 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약임을 내려놓으며 말씀하시였다.

《아니 이런!…》

영택이는 입을 쩍 벌리고 어쩔바를 몰라 쩔쩔매였다. 그도 김정숙동지를 알고있지만 언제 알은체할 경황도 없었다. 뒤를 이어 련속 청년들이 들이밀렸다. 한아름씩 되는 등짐을 지고 병기창안이 터져나가게 밀려들다가 종시 다 들어서지 못하고 더러는 밖에 멎어섰다.

병기창안에선 법석이 일어났다. 화약이 오던중 제일 많이 왔다. 이거면 작탄을 얼마나 만들지 모른다. 지금 싸움터에서는 작탄 작탄 하며 작탄의 요구가 불같은 때에 이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병기창일군들은 신명이 나서 등짐들을 받아내렸다. 그들은 그걸 들고 풍구가 놓여있는쪽 뒤문으로들 빠져나갔다. 화약고가 있는곳으로 가는것이였다.

영택이는 옷이 젖은 청년들을 불앞으로 다가들서라고 했다. 그는 김정숙동지의 함빡 젖은 옷과 신들메를 한, 코가 째진 고무신을 보고는 저편에 있는 납을 녹이던 화로를 힝 들어다 앞에 놔주었다.

《고마와요.》

《누가 할 소릴…》

영택이는 눈을 슴벅거리며 불을 헤쳐놓는다.

병기창앞버덩의 아낙네들속에 앉아있던 분임이는 복녀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복녀동무, 인제 이리로 지나간게 정숙동무 안예요?》

《언제 그 동무가 지나갔어요?》

《방금 청년들 앞장에 서서 뭔가 한보퉁이 이고 병기창으로 올라갔어요.》

《난 청년들밖엔 못봤는데…》

역시 복녀는 보는것도 분임이만치 찬찬치 못했다.

《꼭 정숙동무같았어요. 얼른 지나치는 옆얼굴을 봤는데…》

《모르겠어. 정숙동무가 뭘하러 여기 나타나겠기에 그래요. 태봉지구에 나가서 사업하는 동무가…》

복녀는 지금 그런 소리를 들을 경황이 없었다. 근거지에 들어오듯마듯 이런 시련을 겪게 될줄은 몰랐다. 대걸이가 어떻게 됐는지 알수 없다. 여기 들어와 얼마동안 치료를 받다가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반일자위대에 들어 쌈터로 나갔는데 그뒤의 소식은 통 알길이 없다. 적탄에 또 어떻게 되지나 않았는가 하는 불안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분임이는 어느새 찬 땅에 몸을 오그리고 누웠다. 기진해서 잠이 드는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죽느냐 사느냐 하며 쓰러져 울던 녀자가 용케도 란리를 이겨나가고있다. 복녀의 품에 기대누운 순옥이는 가끔 뭐라고 입속으로 종알거리며 자고있다. 그 불쌍한것이 더 반쪽이 되였다. 늘 귀엽게 생긴 작은 입으로 고통스럽건말건 매 안맞고 욕 안먹는 근거지가 좋다고 재잘거릴 때엔 눈물이 나서 볼수가 없었다. 복녀는 자는 순옥이를 다가끼고앉아 자기도 끄덕끄덕 졸았다.

그는 그러다가 앉은채 잠이 들었다. 순옥이의 머리우에 둥근 볼편을 붙이고 한참씩 코를 골다간 큰 머리빡이 디그르르 굴며 뚝 떨어지군했다. 그러면 그는 두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빙빙 돌아보았다. 그러다간 또 큰 눈망울에 눈가죽을 스르르 내리덮으며 순옥이의 머리우에 볼을 올려붙였다.

딴 아낙네들도 모두 쓰러졌다. 복녀처럼 앉아서 자는 아낙네들도 많다. 오늘 일이 고되겐 되였다. 정부에서 능산쪽 안전지대로 옮겨가란다는 지시가 있기에 모두들 강을 끼고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십여리나 올라갔을 때 어데 피난민들인지 강건너쪽으로 되밀려내려오며 대북동앞에 적들이 나타나 길이 막혔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바람에 이쪽에서도 도로 밀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산을 타고 개안촌뒤골로 향했다. 그런데 아낙네들은 내려오다가 산을 뒤지는 적을 만났다. 정황은 위급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산봉우리를 두셋씩 넘으며 따라오는 적들한테 바위를 내려굴리기도 했다. 그들은 겨우 봉변을 면하고 바로 병기창뒤 큰산너머에 모여들어 방금 저녁을 한숟갈씩 잦혀먹고 이리로 넘어왔다. 그들의 생각엔 차라리 튼튼한 남정들이 모여들어 일하는 병기창이라도 의지하고 사는게 나을것 같아서 넘어온것이였다.

지금 병기창에선 태봉에서 화약이 오고 또 끌끌한 청년들이 밀려드는바람에 오늘밤으로 아예 병기창을 범골오지로 옮겨가려고 서둘렀다. 놈들의 눈이 언제 여기 와닿을는지 모르는 형편인데 화약을 잔뜩 받아놓고 앉아서 뚝딱거리며 작탄을 만들수는 없는것이였다.

영택이는 병기창일군들과 방금 당도한 청년들에게 화약을 지워 범골로 떠나보내고는 병기창시설을 옮겨갈수 있도록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간단치를 않았다. 풍구도 둘이나 있고 모루, 연장궤짝, 구석에 쌓여있는 쇠붙이만 해도 짐으로 꾸리려면 몇짐을 꾸릴지 알수 없었다. 무엇에 쓰려는것인지 혼자힘으로는 이겨낼수도 없을것 같은 철장대며 철판도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감을 보니 무슨 사람으로 밤새 그 일을 다 해낼지 까마득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영택이를 도와 짐을 꾸리다가 얼른 아낙네들이 누워있는 버덩으로 달려내려오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아까 화약을 이고 올라올 때 떠드는 아낙네들을 보고 어떻게 이 엄혹한 때에 이런 비조직군중이 있을가 하는 생각도 하시였었다.

녀자들이기때문에 이렇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것이 몹시 분하시였다.

아낙네들속으로 오시니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 가위눌린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무둑해지고 목이 메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이께서는 급하게 아낙네들을 깨우시였다. 모두들 눈을 비비며 일어나앉았다.

《아주머니들, 제가 아주머니들한테 급하게 말씀을 좀 드릴게 있어요. 물론 아주머니들이 고생스럽기야 좀 고생스럽겠어요. 집을 잃고 산속에 들어와 적의 추격을 받으며 덮을것도 없이 찬땅에서 자고 자실것두 못자시구… 그러나 전 지금 그런 말씀을 드리려는건 아니예요. 아주머니들이 이 어려운 때에 무엇을 생각하구 무슨 결심을 가지며 무슨 일을 해야겠는가 하는것을 말씀드리자고 하는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둑우둑 앉아있는 아낙네들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드시였다. 한쪽에선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하고 한손을 열손으로 가르지 못해서 빡빡 애를 쓰며 뛰기도 하는데 부녀자들이라고 이렇게 쫓겨만 다녀서야 되겠는가? 미처 조직의 손이 미치지 못한탓은 있겠지만 이들자신은 이런 때 왜 아무런 자각이 서지 못할가.

《아주머니들, 전 정말 분해서 저 상촌벌판을 내려다볼수 없어요. 저 벌판에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세상을 만들었댔어요? 왜놈들이 없는 자유세상에서 누구나 다 장군님 뜻으로 단합되여 장군님한테서 땅을 받고 학교도 세워놓고 살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게 다 어떻게 됐어요? 왜놈들이 쳐들어와 죄다 불지르지 않았어요. 그리고도 부족하여 우릴 잡아죽인다구 매일같이 산과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질 않아요? 우리가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우린 그저 치마를 두른 사람들이니까 강건너 불보듯하고 앉아있다가 인민혁명군이나 남정네들이 피를 흘리면서라도 놈들을 내몰아주면 그때엔 들고일어나 춤을 춰도 괜찮겠다, 이렇게만 생각할수 있겠어요? 치마를 두른 사람은 사람이 아니겠어요? 녀자는 녀자이기때문에 더 많이 싸워야 해요. 긴긴 세월 천대속에서 살아온 눈물과 한숨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갑절 더잘 싸워야 해요!》

모두 눈들이 둥그래져서 김정숙동지를 올려다보았다. 김정숙동지의 절절하신 호소와 함께 달빛받은 그이의 얼굴이 유난히 아름다운데 아낙네들은 정신을 빼앗겼다. 고무신 신으신 맨발이 좀 시릴가고 은근히 걱정하는 아낙네들도 있다.

《우린 일어나 도와야 해요. 누가 고달프지 않거나 잠자고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뭐 제 한몸 편안하기 위해서 산속으로 다니거나 기맥을 늘어뜨리고 자고있겠어요? 지금 피흘리며 싸우는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아주머니네 남편들 아니면 아들들, 시동생들, 시형들 다 피줄이 이어진 육신 내 몸과 같은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들이 지금 행복스럽던 상촌을 지켜내자고 그렇게도 애를 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떤 땐 제 한목숨 내대구 적의 총끝에 몸을 들이밀기도 해요. 그들이 애타하는것, 그들이 부르짖는것을 우리가 몰라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무슨 이들의 어머니라, 이들의 안해라, 이들의 피줄이라 이르겠어요. 걱정스럽고 가슴이 타서도 이러고만 있겠어요? 이러고만 있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이야기를 하시였다. 지금 녀자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느냐, 싸움터에 나가서 밥을 지어줄수도 있고 더운물을 끓여다 대접할수도 있고 작탄운반, 돌운반, 이것도 다 녀자들이 할일 아니냐, 오늘밤엔 저 병기창을 범골로 옮겨야 할텐데 그 시설은 누가 다 옮기겠는가, 이 일을 아낙네들이 달려들어 한다고 누가 나무랄 사람이 있겠는가, 짐도 힘에 알맞게 꾸려 일텐데 산을 못넘을건 무어고 내를 못건늘건 무언가.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는 절절하시였다. 마디마디 사랑하는 심정으로, 뜨거운 입김으로 정성의 눈물을 담아서 호소하시였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이 치마끈을 죄여매며 일어섰다. 술렁거리며 들끓는 소리가 일어나기도 했다.

《언니!》

별안간 그 누가 김정숙동지의 아래도리에 와서 매달리며 부르짖었다. 얼른 돌아보시니 산당고개너머에서 떠나보낸 순옥이였다.

《아니 네가 여기 와있었냐?》

김정숙동지께서는 순옥이를 꽉 붙안으시였다.

《언니, 난 정말 언니 말 들으니까 내가 잘못한게 생각나. 글쎄 전번날말이야, 이아래 골짜기에서 쌈하는데 총쏘던 아저씨들이 목마르니까 등성이를 뛰여넘어와 샘물을 꿀딱꿀딱 마시지 않아? 그래서 내가 물길어다드리자구 이쪽골짜기로 그릇 얻으러 나오다가 총알이 뿅하고 날아오는바람에 납작 엎드리지 않았어. 그리군 그저 그만뒀어.》

김정숙동지께서는 순옥이의 살핏하게 여윈 볼을 두손으로 꼭 싸주시였다. 어린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올려다본다. 복녀와 분임이도 달려왔다.

《아이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

복녀가 부르짖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둘을 또 꽉 붙안으시였다.

《언제 이리로 왔어요?》

복녀가 물었다.

《아까 저녁에 왔어요.》

《어쩜 정숙동문…》

복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량심에 충격을 받았는데 김정숙동지께서 아까 오셨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욱 얼굴이 화끈해졌다. 아까 온 녀자가 이렇게 앞장에 나서서 뛰는데 자기는 이때까지 여기 와서 무얼 했는가. 그동안 병원에서 바쁜 일손을 돕기는 했지만 생사를 가르는 가장 어려운 초소에 자기를 세우지는 못했다. 인제야 정말 혁명이란 어떻게 하는걸 혁명이라 하는것인지를 알듯싶었다. 분임이는 말도 못하고 그저 눈굽만 훔치고있었다. 몸도 좀 나아진듯싶었다.

《분임아!》

《응?》

분임이는 련민의 정이 짙은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넌 아직두 울기만 하냐? 그래 떠나올 때보다 몸은 좀 어떠냐?》

《많이 나졌어. 오자 이어 병원에 들어가 치료두 받구 요새두 내내 약을 가지구 다니며 먹질 않니…》

분임이는 입술을 감빨며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애썼다. 어쨌든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마우시였다. 기나긴 설음을 벗어던지는 이 가냘픈 녀성이 그렇게 쉽사리야 제힘으로 일어서줄가. 아직도 더 많이 등을 밀어주고 더 많이 손목을 이끌어주어야 하지 않을가.

한참 우실거리며 준비들을 갖춘 아낙네들은 우- 병기창으로들 밀려올라간다. 복녀도 아낙네들속에 섞였다. 분임이며 순옥이도 중둥매끼를 죄여매며 떠날 준비를 했다.

《분임아, 넌 그런 몸으로 어디로 가겠다고 그러니?》

《난 왜 못가? 가서 힘에 맞을만한 임을 이면 될것 아니냐?》

《글쎄 넌 못간다. 얘 순옥이, 넌 또 왜 그러니? 너는 여기서 이 언니를 잘 보살펴야 한다. 이 언닌 지금 앓고있는 언니야.》

《이 언닌 앓지만 난 여기서 놀구싶지 않아, 언닌 시중 안들어줘두 돼.》

《왜 시중 안들어줘두 되겠니? 함께 있으면서 동무를 하는것도 시중이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둘을 겨우 달래놓고 재빨리 병기창으로 올라가시였다. 병기창엔 아낙네들이 밀려들었다. 병기창 책임자 영택이는 김정숙동지께서 아낙네들을 불러일으키신줄은 모르고 이게 별일은 별일이라고 떠들어올렸다.

《하, 이거 옛날 오서방네 집에서 밤자고 일어나니까 도깨비들이 초가지붕을 다 벗겨내리고 박서방네 기와를 벗겨다 이었다더니 어째 우리 병기창에도 대통운이 트는것 같다.》

《어이구, 이 아주버니 입심두 세다. 얼른 짐을 묶어요. 이건 뭘루 묶겠는지 매끼나 내놔요.》

법석들 끓었다. 아낙네들이 웽겅뎅겅 철판을 맞들어 내가기도 하고 파쇠를 거적에 싸서 묶기도 했다. 한쪽에선 벌써 연장궤짝들을 이고 범골을 향해 떠났다. 기운이 센 아낙네 둘은 무거운 풍구를 이고 목을 끄덕끄덕하며 병기창 마당으로 돌아나간다. 아낙네들속에는 어느틈에 와서 끼였는지 깨진 솥을 인 분임이와 한발만한 쇠장대를 멘 순옥이도 끼여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건너로 보낼 작탄이 몇상자 있다기에 아낙네들을 데리고 옆골짜기로 내려가시였다. 영택이는 돌굴속으로 기여들어가 끙하고는 작탄을 한상자씩 내밀었다. 내미는족족 아낙네들이 받아이였다. 복녀도 한상자 받아이였다. 그는 인제 진짜 혁명하는 싸움마당으로 나서는것 같아 가슴이 뛰였다. 상자를 다 들어내온 영택이는 개안촌 맞은편엔 무시로 놈들의 총알이 미치는곳이니 샘내앞으로 올라가 여울을 건느라고 했다.

《알겠어요. 모두들 저를 따라와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숲을 헤치며 올라가시였다. 아낙네들이 뒤를 따랐다. 얼마 안걸어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걸음이 빨라지시였다. 등성이우에서 머리태를 드리우고 치마자락을 날리는 뒤모습이 얼른하더니 이어 사라져버렸다.

《기발이군. 초연속을 헤쳐나가는 기발이야!》

돌굴앞에 선 영택이는 중얼거리며 땀을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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