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26  회  )

 

제   11   장

 

1

 

시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입을 짝 벌리고 길다란 혀를 날름거리는 살모사같다. 작고 올롱한 독기를 뿜는 눈이 무얼 찾느라고 저렇게도 이 구석 저 구석 쏘아볼가? 눈, 무서운 눈, 그 눈이 둘만 아니라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다. 아니 또 있다.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다. 눈이 온통 사방을 에워싼다. 린같은 빛이 번쩍거린다. 차츰 그 눈이 또 하나로 된다. 눈가장자리에 안경테 알같은것이 생긴다. 분명히 안경이다. 안경을 쓴 사내의 눈이다.

남편의 눈이다.

《에그머니!》

역시 소리는 나가지 않는다. 내가 지금 죽었는가 살았는가? 분임이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방안엔 불이 켜져있다. 불빛이 누런것도 같고 붉은것도 같다. 무슨 불빛이 이럴가? 찬찬히 쳐다보니 문설주에 조그만 등반이 달리고 그우에 접시가 놓였는데 접시가위선에서 바늘귀만한 불꽃이 오졸오졸 떨고있다. 이게 뉘 집일가? 아무리 생각해야 자기가 어떻게 돼서 누구네 집에 와 누워있는지를 알수 없었다. 몸이 활각 더워나는것 같아 만져보니 전신에 땀이 흐른다. 무거운 이불이 덮여있고 머리맡으로도 무엇인가를 두텁게 둘러막아놓았다. 분임이는 이불귀를 젖혀놓으며 곁에 누가 있는가를 돌아보았다.

《인제 정신이 드나?》

웬 어머니가 곁에 앉아있다가 묻는다.

《여기가 어디예요?》

《나를 모르겠나? 이 집은 샘골집이라네.》

《네? 내가 왜 샘골집에?》

《그래 목을 맸던 생각이 안나나?》

《… … …》

분임이는 두눈이 둥그래져서 어머니를 마주보았다. 차츰 뒤산속에서 저질렀던 일이 떠오르고 어느 순간엔가 정신이 아득해졌던 일도 생각난다.

《어머니, 제가 살았어요?》

《살잖구…》

《정말 제가 살았어요?》

《뒤산에서 목멘걸 풀구 이리로 업어왔다네.》

분임이는 당장 앞이 캄캄해지는것 같고 몸이 떨렸다. 어쩌자고 도로 살아났을가. 시집이 있는 이 세상에… 난 인제 또 어떻게 살아가나? 죽기가 이렇게도 어려운걸가. 빈혈이 와서 아뜩아뜩해졌지만 그래도 죽자는 생각 하나로 삶아낸 명주필을 이고 앞강에 빨려 나갔다가 한토막 끊어가지고 뒤산등성이까지 기여오르지 않았던가. 그렇게도 천신만고해서 찾아간 죽음의 길인데 누가 나를 이 지독한 세상에 도로 끌어왔는가. 사람이 죽자면 귀신이 잡아가야 한다더니 귀신이 안잡아가서 이렇게 됐는가. 누가 목맨걸 풀어주었다 해도 귀신의 조화가 아니고야 사람들이 그렇게 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달려들듯했을수 있었을가. 그땐 산속에 사람도 아무도 없었는데… 그리고 목을 매달자 하늘땅이 아뜩해져서 정신을 잃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달려들 때까지도 숨이 붙어있었다는것은 이상한 일 아닌가? 결국 난 죽지도 못할 팔자란말인가!

분임이는 이불을 젖히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뼈란 뼈가 죄다 바스러진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 나 좀 들어줘요.》

《어째서 그러나?》

《어떻게 장 눠있겠어요? 일어나 가야죠.》

《가긴 어데로 가?》

《집으로 가야죠.》

《어이구 맙시사. 그래 집에 들어갔다가 진주기생한테 맞아죽자고 그러나? 애기는 지금 제몸이 어느 지경으로 돼있다는걸 몰라. 목을 매지 않고 가만 내버려두어두 오래 살지 못할만큼 돼있어.》

《어머니, 제가 뭐 그렇게 상했나요? 그리구 죽을 땐 죽더라도 살아있어가지구야 어떻게 제 집엘 안들어가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게. 못일어나네. 우리 며느리하구 누군지 애기를 잘 아는 처녀가 어디 급한 일로 간다면서 돌아올 때까지 애기를 각근히 보살펴달라고 했다네. 정 시집에 들어가고싶으면 그 사람들이 오는거나 보구 들어가게.》

녀인은 엄하게 타일렀다. 말을 들어보니 그래야 될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자기를 잘 아는 처녀란 대체 누구일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으나 짚이는 녀자가 없었다. 분임이는 머리맡에 둘러친것을 제껴놓아달라고 했다. 녀인은 두터운 요같은것을 제껴놓더니 다른 얇은 천을 가져다 가리워준다. 그리고는 함빡 젖은 분임이의 이마를 씻어주기까지 했다. 분임이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이런 어머니품에서 한평생을 살아보고도 싶었다. 부암을 떠나 월평시로 갔다는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 어머니가 지금 이렇게 말라가는 딸의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을 두드리며 울겠는가. 아버지는 또 얼마나 땅을 치며 뉘우치겠는가. 지금 그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살고있는가, 결국은 민가네한테 죄다 빼앗기고 망해서 떠나는걸, 부암의 집이 쑥밭이 되여 떠나는걸, 아버지는 그래도 어떻게 하든 그 저당잡힌 땅을 도로 찾아가지고 부암땅에서 살아보겠다고 그렇게도 애를 쓰며 뛰였지. 어떤 때는 술을 마시고 가슴을 치기도 했었지… 이 세상은 너무도 허무하지 않는가! 그 불쌍한 아버지,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구할수 있는가? 언젠가 귀결에 들으니 시아버지 박대동은 인젠 월평거리에 내려가 다니려 해도 사돈 사는 꼴이 보기 부끄러워서 다닐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무얼 어떻게 살기에 시아버지가 그런 소리를 하는것일가? 거지꼴을 하며 산다는 소리는 틀림없는데 무슨 벌이를 하며 어떻게 살기에 거지꼴을 하고 사는가? 한번 가보고싶었다. 무르팍에 엎어져 실컷실컷 울고라도싶었다. 자기가 이때까지 그 승냥이굴같은 집에서 이를 악물고 살자한것도 아버지, 어머니를 위하는 한줄기 마음이 있었기때문이다. 견디다 못해 때로는 죽으려는 마음을 도사려먹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든 살아서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일생을 바치자는 결심이 굳어지기도 했었다. 그 아버지 그 어머니를 단 한번만이라도 볼수 없을가.

인제 시집에 들어가면 자기가 자기 목숨을 끊지 않는다 해도 맞아죽거나 찔리워 죽을건 뻔하다. 그 살모사같은 시어머니가 쩍하면 가랭이를 찢어죽인다고 식칼을 가지고 달려들지 않으면 방치를 가지고 때려죽인다고 달려들었는데 목을 매고 죽느니 어찌느니 하다가 살아들어간 며느리를 곱다고 가만히 내버려둘가. 하긴 내 한몸이야 죽자던 몸이니 죽은들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그러나 인젠 기왕 목을 맸다가도 살아난 몸이니 그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서 두분의 딸로 태여나 딸값을 못하고 살아가노라는 서러운 이야기라도 하소연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분임이는 눈가로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목과 턱이 류달리 뻣뻣하고 아팠다. 턱이 자꾸만 우로 쳐들리는것 같다. 올가미를 목에 걸고 나무에서 떨어질 때와 같은 착각이 느껴지기도 했다. 분임이는 인제야 자기가 어째서 다시 살아났는가를 알듯싶었다. 올가미줄을 뒤에서 당겨올려야 숨통을 죄였을터인데 턱을 추켜들며 당겨올렸으니 숨통을 제대로 조일수 없었을밖엔 없다. 결국 이래서 도로 살아나지 않았는가.

그는 몹시도 후회가 되였다. 바로 여기에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귀신의 장난이 있은것 같았다.

이렇게 속절없는 생각을 더듬고있던 분임이는 저도모르게 정신이 가물가물 멀어져갔다.

주인어머니는 잠이 드는 분임이의 곁에 앉아서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혀를 갈기였다. 망할년놈들이 그 흔한 낟알을 가지고 살면서도 어떻게 못먹게 만들었으면 사람이 이 꼴로 되였을가. 맘을 썩이는 일이란 오장을 잡아비트는것보다도 더 못견딜 일인데 허구 긴 날 이 불쌍한것이 그걸 어떻게 견디여냈을가. 그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닦아주며 한숨을 지었다.

이러는데 회의를 끝내신 김정숙동지께서 이 집 며느리와 배증녀를 데리고 부엌문으로 들어서시였다.

《어머니, 정신을 좀 차리지 못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올라서며 물으시였다.

《인제 정신을 좀 차렸댔다우. 그리구 일어나겠다고 몸을 좀 들어달라는걸 내가 못일어나게 막았지요. 그랬더니 아마 잠이 든가보우.》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자락을 휩싸며 분임이의 곁에 조용히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임이의 손목을 그러쥐며 잠든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시였다.

주인어머니가 정신을 차렸댔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살아있는 얼굴같은데라곤 없다. 보는 사람의 머리칼이 상깃해지리만큼 얼굴에 뼈만 남고 눈언저리엔 푸른 가락지가 돌았다. 그 곱던 얼굴이 어떻게 이 모양 되였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을 긁어내리는 아픈 정을 깨물며 참으시였다.

《그래 꿀물을 입에 더 떠넣지 않았어요?》

《꿀물도 적잖게 받아먹었다우. 그랬게 화색이 돌지…》

《네, 화색이 좀 도는것 같애요. 정말 다행이야요.》

배증녀가 주인어머니의 말을 받는다. 그래도 이들은 무얼 어떻게 보고 화색이 돈다 하는지 그렇게들 반가와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지만… 글쎄 그놈의 범의 굴로 되들어가겠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 아니요?》

주인어머니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정숙동지께서 어머니를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글쎄 아까 정신이 들었을 때 일으켜달라고 하기에 어째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시집으로 도루 들어가겠다고 하질 않소.》

그 소리에 한옆에서 듣고있던 배증녀가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원 멍텅구리같은것이 어딜 또 들어간다구 그래?》

《성님도 안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녀자라는건 한번 시집을 가면…》

달망지게 생긴 이 집 며느리가 분임이의 머리맡에 앉아서 탄식처럼 한마디 했다. 그러다가 윽박질리웠다.

《아니 동서는 여태껏 회의를 하고 와앉았어도 그런 장님같은 소리를 하나?》

《아주머니, 그만두세요.》

배증녀가 윽박아주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 만류하시였다.

《분임아, 분임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나직하게 속삭이시였다.

분임이는 대답이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번 불러보시였다.

그래도 역시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몸이 이렇게 됐으니 잠이라는게 그냥 죽음의 나라로 간것 같이 될수밖엔 없다.

《저, 아주머니들 인제 오면서 말씀하신델 지금 가보고 왔으면 좋을것 같애요. 부부간이 살고 남편이 조직에 든 집이라면 말을 들어줄것 같애요. 가서 사정을 좀 잘 얘기해줘요.》

《내 혼자 가지 둘씩 갈거야 있소?》

배증녀의 말이였다.

《아니예요. 두분이 가세요. 고개를 하나 넘어간다는데 어떻게 혼자 가겠어요. 어서 이 집 아주머니도 함께 갔다와주세요. 그리구 어머니는 인젠 밤두 깊었는데 어서 주무세요. 이 색시는 제가 간호를 해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을 꾸며나가는게 능숙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방금 배증녀들과 함께 오며 분임이를 박대동네 집 가까이 둘수 없으니 오늘밤중으로 다른데다 옮기자는 이야기를 하시였다.

그래서 배증녀가 생각해낸것이 고개너머로 옮겨가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였는데 거기에 당장 가보고 오라는것이였다. 다른 부녀회원들을 시켜서는 분임이가 앞강물에 빠져죽은것 같다는 소문은 퍼뜨리게 하시였지만 그래도 빨리 분임이를 박대동의 손이 닿지 않을데로 빼돌려놓아야 할것 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들이 나간뒤 부엌으로 내려가 아까 쒀놓았다는 미음을 가마안에 들여놓고 불을 때시였다. 덥혀두었다가 당장이라도 분임이가 깨여나면 먹여야 할것 같으시였다.

불을 다 때고 방안으로 올라서시니 주인어머니는 웃방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분임이를 시중하느라고 몹시 곤했던것 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분임이의 곁에 조용히 다가앉으시였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손목도 잡으시였다. 어쩐지 못견디게 아픈 정이 북받쳐오르시였다. 부암이 눈앞에 떠오르기도 하시였다. 얼마나 다정하던 동무였던가, 즐거운 정, 슬픈 정을 같이 나누며 산에 가도 함께 가고 들에 가도 함께 갔다. 둘의 발자욱이 그 그리운 땅에 몇억만개나 찍혀져있을가. 둘이는 지각이 들며 세상살이에 부대끼게 되면서부터는 생각도 많았다. 어떻게 사는것이 사람답게 사는거냐? 우리같은것은 무엇하러 세상에 태여났을가? 이 수수께끼는 그도 못풀고 나도 못풀었다. 이리하여 둘의 사이엔 웃음이 적어지고 눈물이 많아지지 않았던가. 그때부터 벌써 눈물로 누벼질것 같은 앞날을 예감도 했었다. 가마속의 흐느낌을 들을 때가 그 구슬픈 예감의 절정이였지. 그러나 차마 이렇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을가. l년이 되나마나한 사이에 그 꽃다운 모습을 죄다 빼앗아내고 피골이 상접한 그를 명주필로 목을 매달게 할줄이야 그 누가 알았을가. 불쌍한것아, 너는 왜 그렇게도 힘이 없었느냐. 죽음을 가지고야 그 무슨 보복이 되겠기에 죽으려 했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에 치밀어오르는 통분한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뼈마디밖에 짚이는것이 없는 분임이의 가는 팔을 주무르고 주무르시였다.

그런데 이때 분임이 스스로 눈을 떴다.

《분임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팔을 흔들며 부르시였다. 그 소리에 분임인 눈시울을 한껏 밀어올리며 쳐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마주 굽어보시였다. 김정숙동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아무 말 없이 분임이를 받들어일구시였다.

《네가 누구냐. 너 정숙이가 아니냐?》

분임이는 눈앞에 있는 얼굴이 꿈속에 있는것 같은지 두손으로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분임이의 여윈 얼굴을 어루만지셨다.

《분임아!》

《정숙아, 네가 어떻게 돼서 여길 왔니?》

《난 여길 못온다드냐? 너 보고싶어서 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울음이 북받쳐 말이 제대로 되지 않으시였다. 분임이 아까같아선 이발을 앙다물고 이 세상과 아주 인연을 끊자고 하는것 같았는데 그래도 그 입에서 말이 나오고 사람을 부둥키니 신기하기도 하고 꿈같기도 하시였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종이 한갈피같은 간격을 놓고 다투고있는가.

《날 보면 어떻게 한다드냐? 내 신세는 이렇게 됐단다.》

《분임아, 얼마나 고생을 했니? 그래도 이 세상사람들은 너를 부자집으로 시집간다고 한평생 칠보단장에 싸여 호강하리라고 믿기도 했겠지. 그런데 네가 어째서 이렇게 됐어? 가슴이 아파서 볼수가 없구나.》

《이게 시집살이라고 하는것 아니냐? 녀자가 겪는 시집살이라는것… 으으으.》

분임이는 김정숙동지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울었다.

《넌 왜 죽을 생각만 하니? 그놈의 집에서 뛰여나올 생각은 못하고…》

《뛰쳐나면 어데 가서 산다더냐? 나 살려줄 세상이 어디 있다더냐?》

《아무렴 너 하나 살릴 세상이 그렇게도 없겠니? 넌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돼가는지도 모르고 캄캄한 밤중 아니냐! 민충아! 이 민충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머리를 가슴에 다가붙이고 뒤머리를 쓸어주고 쓸어주고 하시였다.

《너 그래 여기 언제까지나 있니?》

분임이는 눈물젖은 얼굴을 들며 안타까이 물었다. 인젠 꿈같이 만난 정숙이가 어데 떠나기라도 할가봐 겁나하는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

《그건 차츰 이야기하마. 그리구 인젠 그만 울자. 아주머니들이 이어 올거야.》

김정숙동지께서 분임이를 떠밀어올리며 달래시였다.

《얘 정숙아, 나두 살길이 있을가?》

《있잖구. 네가 무엇때문에 목을 매달아 죽는단말이냐? 넌 박대동네 담장밖 세상이 어떻게 돼가고있는지 알고있니?》

《난 몰라, 정말 몰라. 늘 갇혀 살기도 하지만 또 동네사람들 그 누가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준다더냐?》

분임이의 눈엔 눈물과 함께 절절한 애소가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얼굴을 다시 품에 끌어안으시였다. 이렇게도 가엾게 살 법이 어디 있을가. 조롱속에 갇힌 새도 밖을 내다볼수가 있지 않는가. 분임이 아버지는 무엇때문에 사랑하는 딸을 그런 집에다 주었단말인가. 눈물속에 세월이 가고 세월이 가니 머리우에 흰서리 내리고 그렇게라도 살고나면 무슨 보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한것일가.

《분임아, 어서 그치자. 자꾸만 울고있을 때가 아니야. 네가 울면 나두 눈물이 나지 않니? 인제 아주머니들이 집을 얻으면 오늘밤으로 당장 옮겨가야 한다. 인제부턴 너한테 시집살이가 아닌 다른 세상살이가 펼쳐진단다.》

《무슨 세상살이말이냐?》

《그건 지금 다 이야기할수 없단다.》

《그럼 시집을 떠나야 한단말이냐?》

《시집을 떠나잖구 그 무서운 승냥이굴로 도루 들어갈테냐?》

《난 그렇겐 못한다. 내가 어떻게 도망을 친단말이냐? 도망을 치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무슨 변을 당할지 누가 안다더냐?》

《아이참, 너는 어째서 그렇게도 어리석으냐? 너의 아버지가 멍텅구리라면 몰라도 나같으면 도리여 며느리를 얼마나 구박했게 달아나게 만들었느냐고 벼락을 내리고말겠다.》

분임이는 대꾸를 못하고 입술을 악물고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아래방에서 이러는바람에 웃방에서 자던 주인어머니도 잠이 깨였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질 않았다. 들으니 그처럼 참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그 무슨 부녀회를 지도한다는 공작원처녀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박대동네의 며느리와 가까운줄은 몰랐다. 서로 목을 껴안고 서럽게 우는걸 보니 제사 눈물이 나고 그 북받치는 울음에 간참하는것이 도리여 일이 아닌듯한 생각도 들었다. 둘이 한창 울고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눈물을 닦고 일어서시였다. 분임이도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부엌문으로 배증녀와 주인집 며느리가 들어섰다.

《수고했어요. 그래 어떻게 되였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흔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으시였다.

《집을 얻었다우. 마침 주인도 있구 안에서도 있더구만. 그래서 이야길 하니까 어서 데려오라고 하질 않아요.》

배증녀가 애기를 돌려끼고 젖을 물리며 이야기를 했다.

《그럼 인제 곧 떠나야겠군요.》

《떠나야지. 그런데 걸을수가 있겠는지…》

그 소리에 분임이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올리며 흔연스럽게 시선을 돌리였다.

《어디게요?》

《산당고개너머라우.》

분임이의 묻는 소리에 배증녀가 대답했다.

《걷겠어요. 아까 꿀물을 먹었더니 힘이 좀 생기는것 같애요.》

《아니 어데로 떠나려거든 아까 쑤어놓은 미음이 있으니 먹구 떠나게.》

웃방에서 주인어머니가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니, 미음은 먹고프지 않아요. 지금 이 기운으로도 산당고개너머는 넉근히 걸을수 있어요.》

분임이는 얼굴빛이 파릿해서 대꾸했다. 인제야 그 무슨 새로운 결심이 생긴것 같았다.

《정말 미음을 좀 먹구 가자꾸나. 불을 때서 덥혀놓기까지 했는데…》

김정숙동지께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분임이를 내려다보며 말씀하시였다.

《안야, 그저 떠나겠어.》

분임이는 무르팍을 짚고 제힘으로 부쩍 일어섰다.

그는 가는 허리가 휘청휘청하더니 급히 걸어가 벽에 태를 친다.

김정숙동지께서 달려가 붙드시였다.

《안야, 일없어. 이따금 어지럼증이 와서 그래. 나 비녀…》

분임이는 벽에 기대서서 머리를 만져보며 비녀를 찾았다. 주인집 며느리가 얼른 자리에 떨어져있는 비녀를 주어다가 손에 쥐여주었다. 비녀를 받아쥔 분임이는 잠간 눈을 감고 진정을 했다.

그러더니 이어 후들거리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넘겨 낭자를 틀고 비녀를 꽂았다. 그는 벽에서 몸을 떼며 비척이는 걸음으로 부엌쪽을 향해 걸었다. 배증녀가 부축을 했다. 웃방에 있던 주인어머니도 내려와 혀를 차며 분임이의 팔을 붙잡아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먼저 부엌으로 내려가서 분임이의 신을 찾으시였다. 얼마후에야 분임이는 밖으로 나섰다.

《정말 걸어낼것 같애?》

김정숙동지께서 한쪽팔을 붙잡고 걸어나가며 물으시였다. 분임이는 눈물을 씻으며 대꾸를 안했다.

《울긴 왜 울어?》

《그저 고마와서 눈물이 절로 나잖어.》

뒤따라오던 배증녀도 곁으로 다가와 다른 한팔을 붙잡고 걸었다. 분임이는 이 피눈물의 땅을 억센 힘에 맞들려나가듯 가분가분 걸어나갔다. 침침한 산속에선 부엉새가 구슬프게 부엉부엉 울었다.

 

 

2

 

이튿날아침, 박대동네 집에선 박대동이 마누라의 기광이 벌어졌다. 그는 어제밤 마당에 굴려내던진 분임이의 의롱속에 있는 옷들을 온통 들어내다 불지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집엔 경기도내기 머슴 한명이 있는데 박대동의 마누라는 그 리서방을 찾느라고 안팎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일을 나갔는지 리서방은 대답이 없다.

《아니 리서방 없나? 게 밖에 리서방 없어?》

박대동의 마누라는 대청기둥을 붙잡고 성이 나서 펄펄 뛰였다.

《부엌에 어멈 있나? 밖에 나가서 리서방 좀 찾아보게.》

부엌에서도 대답이 없다. 동작이 굼뜬 부엌데기어멈은 한마디나 불러가지곤 꿈쩍을 않는 성미다.

《아니 부엌에 어멈이 없어?》

《예…》

《온 삶은 소대가리같은것, 대포를 한방 꽝하고 쏴야 띠끔해하겠나? 빨리 나오지 못할가?》

그제야 부엌문밖으로 머리가 희슥희슥 센 퉁퉁한 아낙네가 나섰다. 그는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며 대청에 선, 머리를 반드럽게 빗어넘긴 《진주기생》을 쳐다보았다.

《아니 임잔 집안에 이렇게 흉조가 들이닥쳤는데 속이 뜨끔칠 않아? 그년의 의롱을 아직 마당에 놔두고도 숨결이 편안해?》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아따 온 저렇게 볼따귀를 잡아흔들고싶게 늘어져서야 어떻게 사나? 아니 저속에 있는 그년의 옷을 죄다 들어내다놓구 불을 못질러?》

《끼니가 늦어지는데 언제 그런 일을 하겠어요?》

《그러게 빨리 나가서 리서방을 찾으란말야.》

그제야 어멈은 총총히 걸어서 대문밖으로 나간다. 박대동의 마누라는 속이 활랑거려서 숨을 후후 내불며 손부채질을 했다. 며느리가 물에 빠져죽었다고 하는것은 꼭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들씌우겠다고 선고를 내리는것 같은, 사지가 까드라지는 생각을 던져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서울 간 아들이 페가 나빠진다 어쩐다 하는 편지도 보내왔다.

박대동의 마누라는 분임이의 원귀 생각을 하니 치가 떨려왔다.

(어이구 맙시사, 하느님 내려다봅시사. 그저 그 귀신이 제발 이 집에 거접을 못하도록 물리쳐줍시사.)

그는 허공에 대고 두손을 싹싹 비볐다.

이러는데 어멈이 들어왔다. 그는 리서방이 어데로 나갔는지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엥이 그만둬라. 리서방 손을 빌어선 뭘 하겠나? 조반이고 뭐고 어멈하고 나하고 그년의 옷을 죄다 불에 사르세. 귀신 거접할 물건을 집안에 둬선 안돼…》

대청에 서있던 박대동의 마누라는 잉그르르 마루에서 떨어졌다. 그는 마당으로 달려내려가 의롱의 자물쇠를 거머쥐고 힘을 쓰며 비틀어보았다. 쇠가 비틀리질 않았다. 그는 얼굴이 동해오르도록 몇번 더 욱욱 힘을 썼다. 그곁에 서있는 어멈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지 않아도 한부엌에서 서로 위로를 하며 고생하던 며느리가 죽은 일이 하늘이 무너진것도 같은데 이 독사가 그 불쌍한 며느리를 재차 잡아죽이는것 같기도 해서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했다.

《안되겠구나. 쌍 죽일년!》

박대동의 마누라는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그 죽일년이 무슨 지랄로 열대는 늘 괴춤에 찌르고 다니는구? 어멈, 집안에 들어가 식칼 가지고 나오라구. 아니 식칼 가지군 안되겠어. 도끼를 가져오라구.》

어멈이 도끼를 찾으러 갔다. 박대동의 마누라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버티고 서있다. 키는 작은데 무섭게 암팡진 독종이였다. 얼마후 어멈이 도끼를 얻어들고 왔다. 박대동의 마누라는 도끼를 받아쥐더니 자물쇠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붕어형태로 만든 자물쇠가 얼른 비틀려 떨어지지 않고 절라당절라당 소리를 내였다.

열번도 더 쳐서야 자물쇠가 의롱의 고리를 잡아뜯으며 땅에 뚝 떨어졌다.

《쌍 매밥을 할년같으니라구…》

박대동의 마누라는 도끼를 집어던지고 화들화들 휘저어대는 손으로 농문을 열어제꼈다. 그리고는 옷을 꺼내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시각 대문간으로는 리서방과 박대동이 들어섰다. 둘이는 분임이가 빠졌다는 강가에 나가서 쏘다니다가 돌아오는길이였다. 박대동은 며느리의 시체를 보기전엔 아무래도 동네사람들의 소문을 믿을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자기를 희롱하는것 같은 눈치이기도 해서 오늘아침엔 리서방을 데리고 강가로 나갔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보아야 알수 없었다. 소에 빠져들어간 며느리가 밤에 물우로 떠올라 떠내려가다가 여울목에라도 걸려있지 않는가 해서 여울물을 건너갔다오기도 했다. 그러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박대동은 아래도리까지 죄다 젖어 분기가 뻗쳐 돌아섰다. 죽으려면 앓다가나 죽을 일이지 이렇게 소문을 내놓고 죽을건 무언가. 박대동네가 며느리를 구박해서 물에 빠져 죽게 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게 된다면 이 무슨 창피인가. 그러지 않아도 지금 공산당이 자기를 꼬집어서 박돼지라느니 인간백정놈이라느니 별별 악담을 다 퍼뜨리고있는 이때에 이건 막 내놓고 험구를 해도 입을 틀어막을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고현년, 죽어도 더럽게 죽은년. 박대동은 죽은 며느리의 송장이라도 눈앞에 있다면 짓밟아 한번 더 죽이고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치솟아올랐다.

이런 분감을 안고 집에 들어선 박대동의 눈앞엔 또 기절초풍을 할 광경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그는 어제밤 며느리를 찾아 동네를 밟아치느라고 자기 마누라가 어멈과 작당을 해서 며느리의 의롱을 마당에 내굴린줄도 모르고있었다.

《이 이건 무언가?》

안마당으로 들어선 박대동은 굵은 다리를 우들우들 떨며 자기 마누라에게 물었다. 어멈은 벌써 박대동의 기상을 보고 슬금슬금 피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무언 무어겠소. 수사귀가 붙은 입성들을 그냥 두어둘테요? 불에 집어넣어야지.》

《수사귀? 수사귀가 무어야?》

《수사귀가 수사귀지.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을 모르오? 그년이 물속에서 숨이 떨어졌다면 대바람으로 의롱속에 기여들어왔을것 아니요. 그래가지군 이놈의 집에다 별별 액운을 다 끌어들이자고 지랄을 할텐데 이걸 그냥 둬요?》

《예끼, 이년 이 괴악스런년, 갖은 창피를 다 시키는구나. 이년, 아까운 입성을 불속엔 어째서 집어넣는단말이냐? 이년 이년!》

박대동은 힝 손을 뻗치더니 마누라의 끄뎅이를 거머쥐였다. 그는 밭은 활개로 제 마누라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저 찰싹찰싹 소리가 연거퍼 울린다. 마누라는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얼마후 마누라를 때려눕힌 박대동은 채머리를 후들후들 저으며 사랑으로 걸어나간다. 박대동의 마누라는 머리를 풀어던지고 옷더미우에서 손바닥을 짝짝 치며 통곡을 했다.

사랑으로 나온 박대동은 고서가 가뜩 쌓여있는 책상우에서 큰 유지부채를 들어다가 활랑활랑 부치였다. 시뻘겋게 피빛이 오른 대머리에선 땀이 쭈룩쭈룩 흘러내린다.

《괘씸한것들, 밖에선 공산당이 들이치고 안에선 계집년들이 화단을 일구니 이놈의 집이 안망해?》

박대동은 이발이 갈려서 우들우들 떨었다. 그는 이 순간처럼 자기네 집이 겉만 뜨르르하고 속은 벌써 결단이 나가고있다는 느낌이 절실해진적은 없었다. 공산당바람에 고리대를 널어놓았던 돈도 거의다 떼울것 같은 형편에 이르렀다. 고리대장사가 땅을 사서 소작을 주는것보다 몇갑절 리득이 있는 놀음이여서 이때까지 그 놀음으로 치부를 해왔는데 작년가을엔 리자도 몇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상촌 큰벌땅도 인젠 공산당한테 떼우고말았다. 땅만 떼운게 아니라 리서방따위는 그 발뒤꿈치에도 못따를 경상도 심복은 조선인민혁명군에게 붙잡혀 숨주머니가 없어졌다. 경상도 심복이 없으니 인젠 돌아다니며 빚채근을 해줄놈도 없다. 어쨌든 이게 인패재패로 바닥이 드러나는판이 아니고 무언가.

바로 이런 때 박대동네 마당으로는 마차가 한대 굴러들어왔다. 말방울소리를 들은 박대동은 괜히 또 얼굴이 동해올랐다. 자전거소리가 아니고 말방울소리인걸 보면 경찰은 아닌것 같은데 어느 시럽의 아들놈이 울음소리가 진동하는 집으로 식전에 달려들고있는가? 일은 점점 더 꾀여져 동네방네에 소문만 들썩하게 됐다.

박대동은 쌍창미닫이를 드르르 열어제끼고 밖으로 닫혀있는 덧문을 열어던졌다. 누구인가 회색양복에 밤색 중절모를 쓴 사람이 단장을 내짚으며 마차에서 내리고있다. 얼굴 돌리는걸 보니 민태설이다. 얼마나 급히 달렸는지 땀에 뜬 말잔등에선 김이 문문 풍겼다.

《박선생, 그새 안녕하시우?》

《어떻게 이렇게 식전에 왔소?》

박대동은 일어서지도 않고 한마디 뱉었다. 그는 하필이면 민가가 이런판에 달려들건 무언가고 피대가 더 뻗쳐올랐다. 작년여름 민가네 집에서 수모를 당한 일은 죽어 백골이 돼도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그러기에 그뒤엔 태봉시를 다녀도 거리바닥에만 들어서면 민가네 집쪽에 대고 퉤하고 침을 뱉군했다. 그런놈이 무슨 일로 울음소리가 랑자한 때 찾아들었는가.

《들어오시오.》

박대동은 얼굴이 댕댕해 앉아서 민가를 들어오라고 했다.

《집안에 무슨 불상사라도 있습니까?》

《불상사는커녕 아무것도 없소. 내 집은 언제든지 이렇게 소란스럽소.》

박대동은 역증을 내며 대답했다. 그따위 수작은 말고 들어오려거든 들어오고 가려거든 가라는 배포가 드러나뵈였다. 안해의 울음소리는 인젠 대청마루쪽에서 들려왔다. 무얼로 마루바닥을 치는지 자끈자끈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그러나 인젠 안해에 대한 분감까지도 민가에게로 쏠려넘어갔다. 안해가 당장 사랑방으로 달려들어와 마루바닥을 치는 몽둥이인지 장작개비인지 하는것으로 민가의 등줄기가 부러져나가게 패주었으면 시원할것도 같았다.

민가는 괜히 기침을 깇으며 사랑방으로 들어가앉았다. 그는 얼굴이 온통 수세미오이같이 주글주글했다. 눈깔이 튀여나온 아들의 송장을 본 뒤엔 이어 상판대기가 이렇게 된 민가였다. 우묵한 눈속에서 굴고있는 눈동자도 정기가 없고 뿌옇게 흐려뵈였다.

박대동은 담배를 피우라는 말도 없이 저만 대통에 한대 쑤셔담아 피웠다. 그는 조끼주머니에 권연갑이 있었으나 그걸 피우면 아무래도 한대 피우라고 권해야 할것 같아서 아예 그건 꺼내지도 않고 대통에다 기새미를 쑤셔담아 피웠다. 민가는 민가대로 제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서 한대 피워물었다. 둘이는 잠간동안 소닭보듯하며 민가는 창문쪽에 대고 박대동은 뒤문쪽에 대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이러는데 뒤문이 쩡 열리며 머리를 풀어헤친 박대동의 마누라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건 무슨짓이냐, 엉?》

박대동이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으나 체면이 있는지라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진주기생》은 또 한바탕 해낼 잡도리로 문을 열어제끼긴 했으나 웬 양복쟁이가 앉아있는걸 보고는 주춤 서서 악담도 꺼내지 못하고 떨기만 했다. 치마가 흘러내려가고 옷고름이 풀어지고 온통 미치광이 행색이였다. 그는 집이 흔들리게 문을 쾅 후려닫고는 물러섰다.

《이따가 보자. 손님 간 담에 보잔말야.》

밖에서 독을 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 박선생은 아직 늙지 않으셨습니다.》

민태설이 한마디 하며 웃었다. 박대동은 못들은척하며 시뻘건 눈동자를 뒤문쪽에 보낸채 앉아있었다.

《늙었다 할지라도 정력이 이쯤 돼야 합니다. 내외싸움이란 정력놀음입니다.》

박대동은 여전히 민가의 소리에 대꾸를 안했다.

《헌데 박선생.》

《무슨 말이요?》

박대동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요새 소식을 듣고계십니까?》

《무슨 소식이요?》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박선생도 가슴이 쑥 열리리다. 나두 박선생이 상촌땅 열리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하고있는지를 알고있습니다.》

박대동은 이 요사스런놈이 무슨 말을 하려기에 이러는가 해서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민가의 얼굴은 수세미오이같을뿐만아니라 이마에 거밋거밋한 반점까지 돋아났다. 민가의 아들이 죽은줄 모르는 박대동은 이놈의 몰골이 왜 이렇게 비루먹은것 같이 됐을가고 이상히 여겼다.

《박선생, 상촌쪽으로 일본의 대무력이 밀고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조선에 와있는 사단도 공산당무력을 진압하기 위해서 강을 건너왔답니다. 그래서 왕청쪽에서도 큰 싸움이 벌어지고 어제부터는 태봉시로도 일본군대가 물밀듯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월평시에서 금페, 부암지역을 거쳐 직통 상촌으로 떠나가는 부대도 있답니다.》

민가의 소리에 박대동은 당장 긴장해졌다. 민가가 무슨 수작을 하자고 먼저 이런 소리를 꺼내는지는 모르겠으나 절대로 허튼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 집에 각근히 드나들고있는 고바야시니 이께다니 하는 경찰들도 늘 불원간 대공격이 시작된다는 말을 해왔다.

《한숨 마음을 놓으십시오. 상촌에 있는 박선생 땅도 곧 박선생 수중으로 도루 들어올것입니다. 작년에 소작료를 못받았겠지요?》

《못받았지요. 소작료가 다 무어요?》

박대동은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민가를 가재미눈으로 보던 표정도 당장 고치였다. 일본군력이 밀려올라가서 공산당군대만 녹여낸다면 자기에겐 곧 행운이 탁 터지는판이다. 상촌땅을 도로 찾을수 있는건 물론이지만 고리대로 주었던 돈도 일조에 걷어들일수 있다. 돈을 못물겠다는 놈이 있으면 당장 불러다놓고 주리를 틀수도 있고 목을 벨수도 있을것이다. 이놈들이 이때까지는 공산당군대를 믿고 이 박대동이를 우습게 알고 뒤로는 별별 악담들을 다하고 다녔지만 그 공산당군대만 녹아난다면 땅바닥에 코를 박았지 별수가 없을것이다.

박대동은 온몸이 후끈후끈해지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어험어험 기침을 하며 일어서서 뒤문을 열었다.

《게 어멈 있느냐?》

그는 어멈을 불렀다. 잠시 대답이 없었다. 인젠 마누라도 울음을 그쳐 안방쪽이 조용했다.

《게 어멈이 없느냐?》

박대동은 또 한번 불렀다. 그제야 부엌안에서 대답소리가 나며 어멈이 마당으로 달려나왔다.

《빨리 술 한상 차려라.》

《아침진지가 다 되였는데요.》

《밥은 그만둘테니 술상만 보아오너라.》

박대동은 또 헛기침을 하면서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제야 그는 자기의 조끼주머니에서 권연갑을 꺼내 민가앞에 내놓았다. 사람을 능갈쳐먹을줄 아는 민태설은 박가의 심리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있다는것을 력력히 읽으며 권연갑에서 담배 한대를 뽑아갔다.

《참, 박선생이나 내나 저 일본사람들 아니면 신세가 어떻게 되였겠습니까? 공산당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었겠습니까?》

《기가 터지는 소리는 그만하시오.》

박대동이도 권연을 한대 꺼내서 붙여물며 말했다.

《그런데 박선생, 내 식전에 찾아온 용건이 있소이다.》

《무슨 용건이요?》

《다른게 아니구 난 지금 금광에다 온 힘을 떠밀어넣고있는데 재력이 좀 부칩니다. 요새두 갱 하나를 또 손에 넣자고 하는데 돈이 좀 모자라는군요. 그래서 박선생은 현금을 많이 주무르는분이니 어떻게 방법을 좀 세워줍시사 해서 달려왔습니다. 방법이란 다른게 아니고 박선생이 기왕 토지개발에 한몫 가담하자고 했던 사실도 있었으니만치 그 개발공사에 넣은 내 자금을 명의를 고쳐서 넘겨맡으시고 그 자금만한 현금을 나한테 줄수 없겠는가 하는 그것입니다.》

박대동은 입으로 가져가던 담배를 멈춰세우고 민태설을 치떠보았다. 그의 큰 눈으로는 날카로운 빛이 지나갔다.

《명의를 쉬 고쳐낼수 있겠소?》

《혼다가 그렇게 들어주겠다고 미리 약속이 있었습니다.》

《약속이 있었다…》

박대동은 시답잖은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회심의 웃음을 웃고있었다. 자기도 그 농장에 자금을 밀어넣어보자고 발바닥이 닳게 뛰여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이 민가한테 발등을 밟혀 싸우기도 했었다. 그런데 인젠 민가가 제발로 걸어들어와 자기가 넣은 자금을 넘겨주겠다는것이다. 박대동은 자기가 현금을 내놓긴 하겠지만 이것도 뜻밖의 호박이다. 박대동은 어험어험 기침을 했다.

(네 이놈, 돈에 기갈이 난 모양이구나, 허지만 내가 네 주권을 본값으로는 넘겨맡지 않으렸다. 이놈의 주권을 어떻게 해야 반값으로 떼내나?)

박대동은 당장 도적심사가 생겨 민가의 농장주권을 반값으로 떼낼 생각을 했다.

《어험, 한잔 드시오.》

술상이 들어오자 박대동은 통통한 손으로 술을 부어 민가에게 권했다. 민가는 술잔을 들어 마시더니 카 소리를 질렀다. 민가는 민가대로 박대동이 자기 말에 맘이 움직이는것 같아보이자 은근히 신바람이 났다.

(넨장 인젠 광굴을 또하나 손에 넣었다. 그놈의 광굴에선 노다지가 난댔지.)

민가는 골속에 들어간 우묵한 눈이 번쩍번쩍 빛을 뿜었다. 눈깔이 튀여나온 아들의 송장이 인제야 눈앞에서 훌 날아가버리는것 같았다. 박대동이는 박대동이대로 자기의 도적심사를 실현할 꿈을 좇으며 술잔을 들어다 입술에 대였다.

 

 

3

 

가을이 깊어갔다. 김정숙동지께서 덕산동지역으로 오신후 벌써 적잖은 시일이 흘러갔다. 동네마다 변화가 일어났다.  30여명의  대렬로 늘어난 덕산동부녀회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게 되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신개동과 옥촌의 부녀회조직도 건너다니며 지도하시였다. 어느 동네나 다 사정은 비슷하였다.《정수분자》만 골라들인다는 그 좁은 문으로 들어오자고 애쓰다가 밀려난 녀인들이 많았고 부녀회에 뭉친 녀인이란 불과 몇명씩들밖엔 안되였다. 그렇기때문에 부녀회에 들지 못한 광범한 부녀자들속에서 부녀회에 대한 불평불만이 부풀어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녀회의 좁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부녀회에 들수 있는 부녀자들은 준비정도에 따라 영향을 주고 훈련을 시키면서 받아들이게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녀회를 그저 뭉쳐놓지만 않으시였다. 글을 가르치는 일을 함께 밀고나가시였다. 어느 동네고 상촌처럼 매일밤 한장소에 모여앉을수는 없어서 부녀회원들의 글공부를 네댓씩 모여앉아 하게도 만들었고 혹은 두셋씩 모이게도 만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밤마다 마을과 동네의 집집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에게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일깨워주는 일에 침식을 잃으시였다. 글을 처음 배우는 아낙네들에게는 밤새워 책을 매주고 겉가위에 이름을 써주기도 하시였다.

《세상에, 이게 내 이름이요? 처음 제 이름과 인사를 하는구만…》

책을 받아들고 앉아 이런 소리를 하며 웃는 녀인들이 많았다. 어떤 녀인은 제 이름을 들여다보며 눈물이 글썽해지기도 했다. 캄캄한 밤중에 인제 겨우 눈을 빠끔히 뜨고 제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들여다본다고나 할가.

한편 김정숙동지께서는 덕산동 배증녀, 옥촌부녀회책임자, 신개동부녀회책임자 셋을 따로 모아놓고 교양주기도 하시였다. 조직이 잘되려면 책임자들이 잘해야 된다. 책임자들이 잘못하면 일껀 녀자들을 뭉쳐놓았다 해도 뭉치지 못한것이나 다름없다. 야학도 책임자들이 틀어쥐고나가야 하고 부녀회원 한사람한사람을 다 틀어쥐고나가며 배워주고 이끌어줘야 한다. 그리고 책임자들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놓고 멀리 앞을 내다볼줄도 알고 하나를 놓고 둘셋을 생각할줄도 알아야 한다.

김정숙동지의 이야기는 마디마디 옳았다. 부녀회책임자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김정숙동지가 점점 더 큰 산같이 올려다뵈였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부녀회책임자들부터 앞이 환해지고 물계가 터서 군중을 묶는 일에 새로운 바람을 일궜다. 동네마다 부녀자들 생활에 생기가 일어났다. 덕산동, 옥촌, 신개마을들에선 김정숙동지를 《우리 공작원》이라고도 불렀고 혹은 《왕청공작원》이라고도 불렀다. 누구나 다 김정숙동지를 장군님께서 계시는 왕청에서 온줄만 알았다. 그리고 아낙네들은 김정숙동지를 만나기만 하면 자기네 집에 가서 하루밤 묵으라고 손을 이끌군했다.

《인제 가죠뭐. 허구 많은 날 찾아가 뵐 날이 없겠어요?》

그리고는 한밤중에도 주저없이 길을 떠나서 다른 마을로 가거나 덕산동으로 돌아오군하시였다.

한번은 김정숙동지께서 옥촌 어느 집에선가 부녀회원들과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지고 헤여져 떠나시려는데 주인집어머니가 붙잡다못해 혀를 차며 말하였다.

《왕청공작원은 정말 보통녀자가 아닐세. 그렇게도 무서워하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산속도 들판도 혼자서 다니니말이야. 그러다가 왜놈이나 호랑이를 만나면 어쩌자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면서 대답하시였다.

《어머니, 무섭기는 무엇이 무섭겠어요. 남자들이 다니는 길을 녀자라고 못다니겠어요? 우리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누가 우리 나라를 찾아주고 우리 녀자들을 해방시켜주겠어요?》

(어이구, 어쩜 그릇이 이렇게 클가! 그 인끔에 그릇이 이렇게 큰 녀자야 세상에 하나지 둘이 있을가!)

주인어머니는 자기와 키가 가지런한 김정숙동지의 잔등을 쓸어내리며 감탄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언제나 수집게 웃으시였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할 때면 눈에 딴 사람같은 빛이 나타나 숙성하고 어른스러워뵈지만 보통때는 언제나 수집음과 애티가 숨겨지지 않으시였다. 이 모습이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을 만나려고 신개동 비밀장소로 향하시였다. 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부녀회조직들을 대담히 확대해나가고있긴 하지만 늘 한기천이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는 일이 맘에 걸리시였다. 그래서 그동안에도 몇번 비밀장소로 찾아가보시였는데 한기천은 어데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밀장소엔 늘 대걸이가 혼자 누워있다가 동요를 말고 장군님 말씀대로 밀고나가라고 부추겨주었다.

그런데 오늘도 비밀장소엔 한기천이 없었다. 대걸이가 혼자 일어나앉아서 어깨를 들었다놓았다 하며 상처를 매만져보고있었다. 아마 상처가 좀 나은가 어떤가를 시험해보고있는것 같았다.

《어서 들어오우.》

《상처가 좀 나아요?》

《인젠 좀 괜찮은듯하오.》

《복녀동무는 어데로 갔게 통 뵈지 않아요?》

《내가 태봉시에 좀 갔다오랬소. 그런데 정숙동무는 얼마전에 박대동네 집에 민가가 왔다갔다는 말을 들었소?》

《들었어요.》

《무슨 일로 왔다갔는지 모르겠소?》

《그건 잘 모르겠어요. 덕산동부녀회원들이 이야길 하는데 그저 마차를 타고 달려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갔다나봐요.》

《개자식…》

대걸이는 한마디 이러고는 한팔로 겨드랑의 약을 갈아붙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곁에 들어앉으며 대걸이의 손에 있는 약을 받아드시였다.

《팔을 좀 더 드세요.》

대걸이는 팔을 쳐들었다. 아직도 상처가 끔찍스러워보이였다. 헤쩍 갈라진 살이 벌거우리했다.

《아무래도 저놈이 우리가 여기 있는걸 아는지 모르겠소. 분명히 그걸 알고 왔다간것 같소.》

《무슨 그때문에 왔겠어요? 그놈이 우리들이 여기 와있는걸 알리도 없지 않아요?》

《정숙동문 셈판이 없소. 그래 그놈들은 여기다 줄을 안늘이고있는줄 아우? 그 줄이 정숙동무의 뒤를 따라다니고있을지도 모르오. 그런 각성이 무딘 소리를 하다간 일 만나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빌어먹을… 그놈이 이 지역에 나타났을 때 해치워야 하는걸 그랬어.》

《대걸동무도 한기천동지만치나 급하군요.》

그 소리엔 대걸이가 대꾸를 못했다. 얼마뒤에야 그는 그놈의 집에서 개돼지같이 구박을 받던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난다고 저마끔 나서서 제 원쑤 갚을 생각만 해서야 되겠어요? 혁명이라는 큰 투쟁을 먼저 생각해야죠.》

《허허, 그건 나두 아오. 해보는 소리지.》

상처를 다 싸매주시자 대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며 걸음을 떼보았다. 다리를 옮길 때마다 어데가 켕기는지 이마를 찡그리군했다.

《한기천동지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그 사람 탐문은 왜 자꾸 하오? 맘놓고 동무 생각대루 내밀고나가우. 그도 요즘 한풀 꺾인것 같소.》

《그렇지만 내 맘대로만 해서야 되겠어요? 혁명을 한두명 힘으로 하겠기에 그런 말을 하세요? 다같이 손잡구 지혜를 합치구 힘을 합쳐야 혁명을 해내지 않겠어요.》

《허허허, 그 말두 옳소. 그러나 옳은 립장에 서줘야말이지.》

《그러게 만나서 차근차근히 제 의견도 말씀을 드리고 제가 잘못한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자는거예요. 그래야 서로 속이 풀리구 단결이 될것 아니예요?》

둘이 한창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토방에서 무엇을 내려놓는것 같은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문을 열고 내다보시였다. 복녀가 무엇인가 보퉁이를 내려놓고 땀을 씻었다.

《어마나, 정숙동무가 와있었구만!》

《복녀동무, 수고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나가서 보퉁이들을 안아 방안에 들여다놓으시였다.

《오, 순옥이가 왔구나!》

대걸이가 문설주를 짚고 내다보며 환성을 올렸다. 민가네 집에서 함께 고생해오던 부엌데기 고아를 잊을수가 없어서 그 애를 빼내오라고 복녀를 보냈던것인데 용케 빼내가지고 돌아왔다. 순옥이는 얼굴을 싸고 서서 울었다. 복녀가 우는 순옥이더러 방안으로 들어가라고 잔등을 떠밀었다. 순옥이는 조그만 고무신을 발끝에서 벗어던지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대걸오빠!》

《응, 잘 왔다. 나는 네가 못빠져나오는가보아 근심을 하고있었단다.》

대걸이는 큰 눈을 슴벅거리며 순옥이를 붙안았다. 순옥이는 대걸이의 품에서 어린애같이 마구 울었다.

《자 인젠 그만 울고 여기 이 언니한테두 인사를 해야지. 이 언니두 너처럼 부암 민가네 연자방아간에서 숱한 고생을 했단다.》

얼마후 대걸이가 순옥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순옥이는 눈물을 닦으며 얼른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고생속에서 피지 못해 그런지 얼굴도 대추알처럼 작아뵈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손을 내밀어 순옥이의 손목을 잡아당기시였다. 조그만 소녀애를 보니 자신의 어린시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어쩜 이렇게 민가네 집에서 구박을 받던 불쌍한 사람들이 죄다 빠져나와 한자리에 모였을가 하는 뭉클한 생각도 드시였다.

《그래 너 아버지, 어머니는 있니?》

《아… 아무도 없어요.》

순옥이는 눈물을 떨구며 머리를 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어째 눈물이 글썽해지시였다. 이러는데 몸집이 큰 주인아낙네가 새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이구, 불쌍한것이 빠져나왔구만…》

그도 복녀가 순옥이를 데리러 간것을 알고있는것이였다.

《아주머니까지 걱정을 하시더니 왔습니다.》

대걸이의 말이였다.

《쯧쯧, 세상에 희한한 일도 다 있지. 그러니 민가네 집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이 여기 다 빠져나왔군요.》

《허허허, 인젠 진짜로 편이 갈라지는것이지요.》

대걸이는 껄껄 웃었다.

복녀는 경식이가 보낸 쪽지를 대걸이에게 전하고는 보퉁이를 풀어서 옷가지를 조사해보느라고 법석했다. 밥집에 남아있는 식모들한테 사람을 보내서 입던 헌옷들을 죄다 싸내오라고 했는데 자기 옷이 다 들어있기나 한지 알수 없는것이였다. 태봉에선 짬이 없어서 풀어보지도 못했다. 복녀가 보퉁이 헤치는걸 보더니 울던 순옥이도 방바닥에 들어앉으며 제 보퉁이를 풀었다. 그도 밤중에 련락을 받고 홰대에 걸린 제 옷들을 손더듬으로 벗겨 꿍져가지고 나왔는데 다 가지고 왔는지 알수 없었다.

《에그머니나!》

한참 보퉁이를 뒤지던 순옥이는 민가첩의 모시적삼이 나오는바람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냐?》

대걸이가 물었다.

《월선이 모시적삼이야요.》

《월선이가 누구냐?》

《대걸오빠두, 월선이 몰라요? 한집안에 살면서 민가첩 이름두 몰라요?》

《응 참, 이름이 월선이였지.》

《드러운것 퉤…》

순옥이는 적삼에다 침을 뱉어 꾸겨서 내던졌다. 주인아낙네가 그 무슨 끔찍스런 물건을 들듯 두손가락끝으로 적삼을 들어서 훌 부엌쪽에 집어던진다.

《너 그 드러운것 하는 말 관둬…》

그래도 복녀가 순옥이를 타일렀다.

《어째서요?》

《그따위 소린 분바르고 사는 월선이 같은년들이 하는 쌍소리야. 혁명하는데 와선 그런 소리 하면 안돼…》

《호호호, 그럼 혁명하는데선 말두 다르나뭐.》

《다르잖구…》

《대걸오빠, 그래요?》

《그렇단다.》

《그럼 말도 고쳐 배워야겠네.》

순옥이의 약삭바른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긁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밖으로 나오시였다. 무언지 모르게 이 세상이 하나하나 변해가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민가네 집 종살이군들이 어떻게 이처럼 한꺼번에 빠져나와 한곳에 모여서 혁명이니 새세상이니 하는 꿈으로 흥분할수 있게 됐을가, 이게 바로 이 세상이 새롭게 변해가는 모습 아니고 무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쁘기도 하고 가슴이 부풀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곧장 한기천의 집을 향해 걸으시였다. 아무래도 집에까지라도 가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한기천의 집은 아지트앞 언덕너머에 있었다. 어느 농가집 헛간 두간을 얻어 제손으로 벽도 바르고 구들도 놓고 해서 집이라고 꾸리고 살았다.

김정숙동지께서 한기천네 마당안으로 들어서시니 웃방 헛간문앞에 배만치 큰 고무신 한컬레가 놓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게 바로 한기천의 고무신이라는것을 아시였다. 어떻게 쏘다녔는지 고무신 한짝은 바닥이 죄다 닳고 옆이 헤쩍 갈라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쨌든 오늘은 만나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토방으로 올라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시였다.

《계셔요?》

《… … …》

《안계시나요?》

《누구요?》

방안에서 한기천이 반문했다.

《저예요. 정숙이예요.》

《들어오우.》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서시였다. 방안이 캄캄했다. 그런 가위에 좁기까지 해서 그 무슨 굴속에 들어선것 같기도 하시였다. 한기천은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시뻘겋게 달은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머리를 동인걸 보니 탈이라도 난 모양이였다.

《어디가 편치 않아 그러세요?》

《탈이 나서 좀 누워있소. 어서 앉소.》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를 휩싸며 방 웃목에 들어앉으시였다.

아직은 한기천이 어떤 감정으로 자기를 맞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한기천은 베개우에 도로 머리를 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츰 어둠이 눈에 익어 모든것이 똑똑히 보이시였다. 방안은 눈물이 날만큼 허전해뵈였다. 아무것도 없다. 난쟁이책상이 하나 방구석에 놓여있고 안쪽 시렁우엔 무슨 책꾸레미들이 대여섯개 쌓여있었다. 그리고는 방바닥에 화로로 쓰는 옹배기가 하나 놓여있는데 거기에 약탕관을 들여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이 이렇게 살면서도 정열이 북받쳐 뛰는구나 하는 가슴뜨거운 생각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래 요새 일이 잘되오?》

한기천은 남의 말 하듯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 대꾸를 안하시고 화로에 불이 없어 약탕관에서 김이 떠오르지 않는가 해서 화로안을 들여다보시였다. 손으로 재를 만져보시니 싸늘했다.

《불이 없어서 약을 달이지 못하세요?》

《이따가 달여먹을 작정이요. 그래 신개말과 옥촌 부녀회도 늘궜다구?》

《네…》

한기천은 그러고나선 아무 말도 묻지 않고 큰 공책을 펴들고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지금 두통이 올라 골속에서 지끈지끈 방망이질을 하지만 깨알같은 글자를 열심히 들여다보고있다.

《저, 전 책임자동지한테 좀 자세히 말씀드릴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무슨 말이요?》

한기천은 공책을 내리며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관지뼈가 솟고 두눈에 피줄이 엉켰다.

《다른게 아니구 전 우선 제가 여기 와서 일을 하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것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어요.》

한기천은 말없이 두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김정숙동지의 반뜻하게 탄 가리마를 바라보았다.

《저는 책임자동지를 도와 일을 잘하라는 조직의 지시를 받고왔는데 좀 의견이 상치되였다고 해서 늘 가까이 다니며 의논도 안하구 그저 제 생각대로 부녀회원들과 협의를 하고는 일을 해왔어요. 물론 부녀회가 지금 잘못 꾸려지고있다군 생각하지 않지만 책임자동지와 저 사이에 무슨 틈이 있는것 같이 된것이야 잘못된 일이 아니겠어요. 책임자동지는 혁명사업두 오래 하신 선배가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자주 찾아다니며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속담이 있는것처럼 매사를 묻고 협의해가며 해야 할것이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일을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정숙동무!》

한기천이 불시에 큰 목소리로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을 끊으며 조심스럽게 한기천의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한기천은 시뻘건 얼굴로 회파람소리가 나게 일어나앉았다.

《정숙동무, 인젠 그만하우. 말인즉 그 그렇게 할 이야기가 아니요. 동무는 동무자신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난 동무한테서 큰걸 배운 사람이요. 큰걸말이요. 장군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나서기만 하면 그 누구를 불문하고 큰 힘을 가지고 혁명을 내밀수 있다는 진리를 동무한테서 배웠소. 바로 동무한테서 그걸 실물로 보았단 말이요. 내가 동무한테 무슨 감정이 있었다면 그건 시비곡절을 캘 가치도 없는 더러운것이구 중요하고 큰것은 내가 동무한테서 배운 진리란말이요. 그래서 나두 이렇게 장군님 말씀을 공부하고있소. 뒤늦었지만 동무를 따라가려구말요. 응?》

한기천은 공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더니 또 말을 이었다.

《절대로 나때문에 의기소침해지거나 조심스러워하거나 해선 안되우. 나같은게 무엇이요? 신심을 가지구 나가야 하우. 그러나 나두 인젠 힘을 합치겠소. 둘이 손잡구 나가면서 장군님 말씀을 놓고 공청은 물론 각 조직을 다 검토하며 방향을 바로잡아나갑시다.》

《고마와요. 책임자동지 고마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뜨거워지시였다.

《동문 여기 와서 일도 잘했거니와 아무 잘못도 없소. 도리여 나를 가르쳤소. 아무리 머리가 비뚤어진놈이기로 그걸 몰라서야 무슨 혁명가이겠소. 난 사실 여태껏 쥐꼬리만한, 맑스주의랄수도 없는 리론을 웨치고 다니며 분별없이 뛰였소. 글쎄 이걸 보우. 나두 공청확대회의에서 하신 장군님 말씀을 전달받았소. 그런데 그 말씀이 적힌 이 공책을 여직껏 비밀문건상자속에만 넣어두구 공부를 안했단말이요. 그러니 좌경관문주의로 떨어져 혁명에 해독을 줄밖엔 더 있겠소. 참 가슴아픈 일이요.》

《전 책임자동지가 자신에 대해서만 자꾸 말씀하시니까 뭐라고 이야기할수 없어요.》

《고맙소. 정숙동무, 어쨌든 고마와…》

한기천은 흐뭇해서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이러는데 그의 안해 확실이가 새문을 열고 죽상을 들고 올라왔다.

《에그머니나, 정숙동무가 왔군요.》

《네,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어제저녁 태봉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이렇게 자리에 눕질 않았어요. 쯧쯧 건강한 때 찾아와야 이야기를 나누지.》

확실이는 죽상을 방바닥에 놓으며 김정숙동지께 은근히 눈짓을 하였다. 그는 둘사이에 무슨 말다툼이라도 있는가해서 남편을 건드리지 말라고 신호를 하는것이였다. 확실이는 신개동부녀회원들중에서도 제일 열성분자였다. 그는 늘 김정숙동지께 오빠가 자기 남편과 함께 동발막에서 회의도 하고 자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김정숙동지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끝까지 지지해나섰다. 그는 김정숙동지와 자기 남편사이에 부녀회확장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이 있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어서 한술 잡숴요.》

《놔두오.》

《놔두길 왜 놔둬요? 하루종일 굶어가지고 죽두 한술 안들면 어떻게 병이 나아요? 어서 식기전에 잡숴요.》

《저리 내려가지 못하겠소?》

남편이 꿱 소리를 질렀다.

《어이구 자시라는데 그렇게 역증을 내는걸 보니 자시지 말랬으면 사람 치겠소. 정숙동무, 얼른 내려와요.》

확실이는 또 김정숙동지께 눈짓을 하며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정숙동무두 내려가 죽이나 한그릇 하구 가오. 혁명이 승리한 담에 오면 떡이라도 쳐서 대접을 하겠지만 지금은 한창 혁명중이 되여서 죽밖엔 없소.》

《온, 별말씀을, 저야 뭐 집에 가서 먹죠. 어서 잡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죽상을 한기천의 앞에 당겨놓으시였다. 개다리소반우엔 수수죽 한그릇과 간장 한알잔이 놓여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이였다. 두눈이 골속에 들어간 한기천이 이렇게 먹고야 그 큰 육신을 들고 언제 일어날가싶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이 숟가락을 드는걸 보고야 정지방으로 내려오시였다.

《아이구, 뭘 그렇게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하우. 가뜩이나 골이 친다고 야단을 하는데… 뒤는 없어가지구두 수틀린 사람과는 단단히 해내고야 견딘다우.》

《온 아주머니두, 뭘 그러겠어요. 아주 무던한분인데…》

확실이가 소곤거리는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무룩이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어이구 무던이 뭐요? 한벼락이라구들 한다우. 그저 펄떡하고 일어서서 제 주장을 세울 때엔 목에 칼이 들어오는것도 세지 않는다니까… 그러게 내가 시집을 온 이듬해 사회운동을 하다가 잡혀들어가 경찰서안에서 깔고앉았던 걸상으로 경찰놈의 정수리를 넘겨치고 저두 골이 깨지도록 얻어맞았다우. 그러게 지금도 그 어혈로 마가을이 다가오는 이맘때가 되면 아이구 골이야 하고는 눕는다우. 어제밤에도 밤새 골 쏜다고 야단을 쳤지요. 내 남편은 이런 사람이라우. 사람이야 좋지만 성질이 벼락치듯하는게 탈이지요. 그까짓 의논은 무슨 의논이요? 부녀회일이야 우리끼리 밀고나가면 되는거지. 가만히 내버려둬도 인제 팔을 부르걷고나서서 우리 일을 한몫 도울 때가 있다니까…》

확실이는 김정숙동지를 붙잡고 앉아서 한참 속삭였다.

《아주머니, 인젠 화해가 됐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게 또 웃으시였다.

《저것 보라지, 그렇다니까. 뒤는 없는게 그런다니까… 어서 죽이나 자시자구.》

이날 저녁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기천네 집에서 끼니까지 함께 치르고야 그의 집을 나서시였다. 무언지 모르게 가슴이 후련해지시였다. 확실이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지만 한기천이 간단치 않은 사람인건 사실이였다. 어쩐지 바로 그런 사람이 똑바로 서기만 하면 혁명에서 그 어떤 무서운 불구멍을 막아낼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오다가 신개동부녀회 회장네 집에 들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장에게 지금 한기천동지가 몸져누워서 앓고있으니 부녀회원들 집에서 닭알이라도 한알씩 모아다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죽그릇과 간장 한알잔 본것이 명치에 맺혀서 그렇게라도 하고 떠나야 맘이 편안해질듯싶으시였다.

신개동을 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나는듯이 다리를 건너 배증녀네 집에도 못들리고 분임이가 있는 산당고개너머로 향하시였다. 그동안 이틀이나 가보지 못했더니 낮에 분임이가 만나고싶다는 기별을 보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에게 상촌으로 보내준다는 소리를 했으니 한시바삐 그리로 떠나게 해달라고 그러는거라고 생각하시였다.

고개길엔 벌써 단풍이 거멓게 멍이 들었다. 투쟁속에서 가을도 가는새 없이 지나가고있었다. 부암에서 살 때 같으면 지금 한창 버섯을 딸 때이다. 지금 그 산엔 누가 오를가? 온 부암이 인가 하나 없는 쑥밭이 되였다니 그 산에 올라 버섯 뜯을 사람이 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연히 깊은 가슴속 상처를 긁는것 같은 아픈 생각이 드시였다.

고개를 넘어와 분임이가 있는 집 근방에 오시니 산골짜기에서 물소리가 소란히 울리고 황혼이 깃드는속에서 갈가마귀떼가 날았다. 마가을빛은 이 골짜기에 더욱 짙게 실린것 같다.

《정숙아, 왜 그렇게 걸음이 뜨냐?》

조그만 오두막을 찾아들어가시니 토방에 나앉아있던 분임이가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일어서며 반색을 한다. 얼굴빛이 새하얗다. 이곳에 와있으면서 더욱 피기를 잃어가는것 같기도 했다.

《왜 밖에 나왔니?》

《골물소리가 하두 좋아서…》

《집엔 누가 없냐?》

《모두 고개너머로 내려갔는데 아직 안오는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등잔불을 켜니 분임이의 누워있던 자리가 그냥 있다.

《누워있으려무나. 어지럽다면서 왜 자꾸 일어나니?》

《정숙아, 난 아무래도 생각을 고쳐야 할것 같잖니?》

분임이는 묻는 말엔 대꾸가 없이 딴 말을 꺼낸다.

《무슨 생각말이냐?》

《글쎄 네 말이 죄다 옳긴 옳지만 내가 저 불쌍한 아버지에게 화를 안겨놓으면서야 어떻게 시집을 떠나가겠니?》

《그건 또 무슨 새삼스런 소리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낯빛이 달라지며 분임이를 마주보시였다. 상촌으로 가고싶어하는것으로만 알고 오시였는데 그동안 다르게 또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정숙아, 글쎄 그저께 우리 아버지가 박대동네 집엘 왔댔단다. 딸이 물에 빠져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런데 저년놈들이 인젠 며느리가 물에 빠져죽은것이 아니라 공산당이 빼갔다고 펄펄 뛰며 아버지한테 달려들었다질 않니? 박대동이가 이놈 저놈 소리를 지르며 네놈은 네 딸 빼간 공산당을 알것이니 당장 사람을 내놓게 하라고 아버지를 괄세했다는거야. 난 그놈이 우리 아버지가 딸을 얼마나 구박했으면 물에 빠져죽게 했느냐고 들고일어날가봐 먼저 팔을 빼는것인줄은 알아.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이 일을 그냥 내버려두고 그저 내 좋다고만 떠나갈수 있니?》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낯빛이 점점 더 파랗게 질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죽더라도 시집으로 도루 들어가야 할것 안야? 도루 들어가면 나는 들어가는길로 그년놈들한테 맞아죽겠지.》

《그런데도 도루 들어가?》

《내가 죽으면 우리 아버지는 아무 성화도 안받을게 안야? 그 독한 박대동이 성화를 안받고 여생이라도 편안히 살것 안야? 난 어제 밤새 네눈박이 큰 독같은 박대동이가 우리 아버지를 가로타고앉아 목을 짓누르는 꿈을 꾸었단다. 그 꿈을 꾸고나니 온통 멱을 감고난것 같이 땀에 뜨질 않았겠니?》

《그래서 도루 들어가겠다는거냐?》

《그럼 어쩌니? 그까짓 사람이 한번 났다가 언제든 죽기야 죽질 않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꾸를 못하고 입술을 가늘게 떠시였다.

《얘, 정숙아, 넌 정말 내가 시집으로 들어가는걸 좋다고 찬성해주질 않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말씀을 안하시였다. 인젠 눈에서 노기가 끓으시였다.

《얘, 너 왜 그러니 응?》

분임이는 두려운듯 김정숙동지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호된 소리로 부르짖으시였다.

《이 못난이야? 얼빠진 못난이야, 내 가슴이 터지는구나!》

그 소리에  분임이는  갑자기 흐느껴울며 김정숙동지께로 몸을 왈칵 실었다. 가늘어진 팔이 김정숙동지의 어깨우로 넘어와 울음소리와 함께 떨었다. 분임이의 몸을 받아안고 서신 김정숙동지의 눈굽에 이슬이 돌았다.

(넌 무엇때문에 내 맘을 이리도 괴롭히느냐? 네가 죽으면 아버지가 편안해진다고? 그래서 죽는것이 그렇게도 기껍다고? 녀자가 이렇게도 순한 양이 돼야 한단말이냐! 수수백년 눈물과 학대에 파묻혀 너같이 살아간 녀자의 길을 네가 또 기어이 그렇게 걸어야만 기껍겠단말이냐? 분하구나! 분하구나! 너는 왜 솟구쳐일어나 네 신세를 그렇게 만든 그 원쑤에게 돌을 던질 생각은 못하느냐? 어째서 네 손에 쟁기를 들고 일어서겠다는 생각은 못하느냐?)

김정숙동지께서는 터지는 가슴을 붙안고 어쩌지도 못하고 서계시였다.

《너 어째서 그러니?》

《… … …》

《어째서 암말두 없이 서있느냐? 응?》

분임이는 김정숙동지를 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흔들리는대로 말씀이 없으시다.

《넌 내 맘을 그렇게두 몰라주냐?》

분을 터뜨릴것 같으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을 꺼내시였다.

《넌 여기로 시집오기전 월평장에 갔다오다가 나보구 뭐랬니? 네 신세를 한탄하면서 이 세상에 뭘하러 태여났는가고 했지? 그때 난 그 대답을 못해주었어. 그때 내가 한마디만 옳은 대답을 해주었어도 오늘 네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지도 몰라. 난 두고두고 그 일을 뉘우치고있어.》

《얘, 네가 무슨 뉘우칠 일이냐. 내가 민충이였지.》

분임이는 또 김정숙동지를 와락 흔들었다.

《난 네가 이렇게 된 오늘에 와서야 너한테 그 대답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어. 바로 넌 사람답게 살자고 이 세상에 태여난거라고말야. 그래 넌 사람구실하는게 싫어서 그 시집으로 도루 들어가겠다는거냐? 도루 들어가 그 갈범같은 년놈들한테 얻어맞아 죽겠다는거냐? 넌 왜 너두 하나의 사람이란걸 알지 못하니? 발을 벋디디고 일어서서 너를 해치려는놈한테 칼을 집어던질 생각을 못하느냐말야? 그게 안타깝구나!》

《정숙아, 난 그러게 민충이야.》

《민충인 무슨 민충이냐. 얘, 난 그 소리가 밉구나. 왜 낯을 못들어? 사람다운 낯을 못들어! 남보다 더 높이 쳐들고 살아보자꾸나.》

분임이는 김정숙동지를 쳐다보며 어린애처럼 도리를 흔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꽉 붙안으시였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에 볼을 비비며 눈물을 주르르 쏟으시였다.

이날밤엔 창문에 달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의 곁에 누워 그의 손목을 꼭 쥐고 밤을 새우시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이튿날에도 그이께서는 말씀이 없으시였다. 얼굴우엔 가느다란 찬기운이 도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겻이나 무슨 글인가를 쓰시였다. 늘 괴춤에 찔러가지고 다니는 공책을 꺼내놓고 앉아 무언가를 쓰고 또 쓰시였다.

《분임아, 내 잠간 고개너머말에 다녀오겠다.》

저녁때가 거의 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보고 말씀하시였다.

《응, 다녀와.》

분임이는 흘끔 김정숙동지의 낯빛을 살피며 대답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서둘러 산당고개쪽을 향하여 종종걸음을 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떠나간 뒤 분임이는 굴뚝모퉁이에 숨어서서 한참동안 산당고개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무엇때문에 정숙인 저 고생을 할가. 동무가 좋다는 말은 있어도 이렇게도 신세가 불쌍히 된 자기를 울며 꾸짖으며 구해주자고 애를 쓰니 내가 백골이 된들 그 우정을 잊을수 있을가.

《어서 들어가자구.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면서 서있담.》

주인아낙네가 지키고 서있었던듯 뒤로 다가와 팔을 잡아당겼다. 분임이는 김정숙동지께서 벌써 주인아낙네한테 무얼 일러놓고 갔다는것을 알았다. 그는 아낙네를 따라서 부엌으로 들어왔다.

이날밤 분임이는 또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 여전히 박대동이와의 싸움인데 오늘밤엔 아버지가 쇠스랑으로 박대동의 뒤통수를 찍었다.

분임이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누가 곁에서 흔들고있었다.

《왜 그렇게 숨이 차하니? 이런 땀 보게.》

김정숙동지께서 얼굴의 땀을 훔쳐주며 말씀하시였다.

《인제 왔니?》

《그래, 너 빨리 일어나 떠날 차비를 해라. 인차 달구지가 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손을 내밀어 분임이를 들어일구시였다. 주인아낙네도 언제 깨여났는지 곁에 와서 들려일어나는 분임이의 머리를 쳐들어주었다.

《관둬요. 내 힘으로도 일어나겠는걸뭐…》

《아버지문제는 내가 태봉시조직에 기별을 해서 박대동이 건드리지 못하게 처리했어. 어서 저고리를 입자. 머리도 쪽지구… 버선은 여기 한컬레 얻어가지구 왔다.》

《어데로 가는거냐?》

《상촌으로 가지. 우리 세상으로!》

분임이는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넘겨 낭자를 틀었다. 홑적삼바람인 분임이에게 주인아낙네가 저고리를 가져다주며 팔을 꿰라고 했다. 분임이가 팔을 꿰자 그는 속으로 밀려올라간 적삼소매를 끄당겨 내려놓아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버선이 작아서 잘 들어가지 않게 되자 분임이를 끌어안고 앉아서 잡아당기시였다. 뿌등뿌등 소리가 나도록 당겨도 들어가지 않는다.

《발이 아프다얘. 벌써 무슨 버선을 신을테냐?》

《밤바람이 찬데 어떻게 맨발로 가겠니. 아주머니, 가위 좀 줘요. 뒤목을 아주 테놔야겠어요.》

《그럼, 달구지우에 앉아가는것인데 뒤목을 테논들 벗겨질라구.》

주인아낙네가 가위를 가지고 와서 버선뒤목을 뜯어놓았다. 그제야 발뒤축이 훌렁 목너머로 넘어섰다.

한창 이러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배증녀가 땀을 흘리며 들어섰다. 몹시 바쁜 걸음을 한 모양이였다.

《달구지를 데려왔다우.》

《수고했어요.》

배증녀의 말에 김정숙동지께서 대꾸하시였다. 배증녀는 땀을 씻으며 분임이를 가엾게 바라보았다.

《쯧쯧, 드디여 좋은 세상으로 떠나가니 우리도 맘을 놓겠소.》

마당앞으로는 달구지 한대가 굴러왔다. 복녀가 소고삐를 잡고 달구지우엔 대걸이가 올라앉아있었다. 그리고 달구지뒤엔 순옥이도 따라섰다. 바로 분임이는 그들과 함께 상촌으로 가게 된것이였다. 태봉조직은 대걸이를 상촌근거지에 후송하기로 결정하였다. 후송책임을 복녀에게 맡기고 그편에 민가네 집에서 빠져나온 순옥이도 따라보내기로 하였다. 바로 어제 대걸이 받아읽은 쪽지가 그런 지시를 적은 쪽지였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를 보내서 상촌으로 가게 된 대걸이, 복녀들의 달구지를 이리로 이끌고 오게 하신것이였다.

모두들 주위에 둘러서서 김정숙동지께서 분임이의 머리를 빗질해주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몸이 말라가니 머리도 윤기가 없었다. 윤기가 없을뿐만아니라 이마우의 앞머리는 목을 맬 때 더러 끊어지기도 해서 것부수수하게 일어섰다. 주인아낙네는 손바닥에 물을 발라 일어선 앞머리를 잠재워주었다.

얼마후 마당으로 나와 달구지에 오르는 분임이는 울음이 터졌다. 김정숙동지께서 우지 말라고 달래시였다. 배증녀가 달구지의 자리를 고쳐보아주었다.

순옥이는 달구지우로 올라가 분임이의 곁에 사뿐히 들어앉으며 그의 한손을 꼭 잡아주었다.

대걸이도 울지 말라고 달래였다.

《이랴!》

복녀가 굵은 목소리로 소를 몰았다.

분임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이 저주로운 세상에서 맞고 채우고 찢기우고 악담으로 멍이 든 불행한 사람들의 무리가 그 굴욕과 참을수 없는 압제를 벗어나서 새세상으로 떠나간다. 길고긴 밤의 장막이 걷히며 그들의 앞길엔 눈부신 새날의 빛이 뿌려진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와 함께 달구지를 따라 멀리까지 걸어나가시였다. 달빛이 부서지는 시내물이 나타났다. 달구지는 그 물을 왈칵덜칵 건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물목에 서서 들판으로 굴러가는 달구지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달구지가 사라진 뒤에도 떠날줄 모르시였다.

배증녀가 더욱 생각이 많은 얼굴로 들판을 바라보며 서있다가 얼른 눈물을 씻었다. 무엇인가 큰일을 하나 해낸듯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인젠 자기자신이 자기의 운명이나 어떤 다른 하나의 운명에 눈물을 뿌리는 녀자가 아니라 무엇인가 큰 운명과 씨름을 하고있는것 같은 뭉클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젠 돌아가세요.》

김정숙동지께서 돌아서며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배증녀는 또 한참 멀리 간 달구지소리를 듣다가야 돌아섰다. 구름속으로 들어갔던 달이 빛을 뿌리며 휘영청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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