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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25 회 )
제 10 장
2
덕산동부녀회책임자 배증녀는 집곁에 있는 발방아간에서 덜컹덜컹 방아를 찧고있었다. 그는 보채는 애기를 겨드랑밑으로 돌려끼고 젖을 빨리며 방아다리를 디디고 올라서군했다. 그와 함께 방아를 찧는 같은 또래의 녀인도 애기를 업었다. 그들은 밀정놈들을 적발해내서 처단한다는 소리를 쑥덕거렸다. 누구의 입으로 어떻게 새나왔는지 그들은 한기천이들이 토론하는 일들을 죄다 알고있었다. 《다 없애버리면 그게 빠르긴 빠르지요. 살려놓고 그놈들 눈을 피해가며 무슨 일을 하는것보다…》 배증녀의 말이였다. 《난 더두 말구 이 덕산동에선 저 박가네를 옹이 뽑아버리듯 뽑아버려줬으면 좋겠다니까…》 《그러게말이지. 우리 용수가 말하는걸 보면 무슨 계획이 있긴 있는가봅디다만…》 《용수가 뭐라게요?》 《아무날이구 박대동이 천당으로 안가는가 보라는거지.》 《박대동이만 없애구 그 진주기생은 그냥 내버려둔답디까?》 진주기생이란 박대동의 마누라를 말하는것이였다. 《박대동이만 없애문야 그까짓 진주기생따위야 우리 부녀회원 손으론들 요정을 못내겠게 그러우. 그저 그놈의 집에서 동정이 가는건 불쌍한 며느리지.》 《어이구 성님두, 며느리가 뭐 우리 편이랍디까? 옛말에도 가재는 게편이란 말이 있다우.》 둘이 이런 소리를 주고받는데 웬 처녀들이 발방아간으로 쑥 들어섰다. 김정숙동지와 복녀였다. 녀인들은 어마지두 놀라며 입들을 다물었다. 《여기 배증녀아주머니라구 계신가요?》 복녀의 묻는 말이였다. 《나예요. 그런데 어데서들 왔나요?》 배증녀가 방아다리를 디딘채 의아쩍은듯 쳐다보며 반문했다. 《우린, 신개동에서 왔어요.》 《신개동이라니? 건넌말말인가요?》 《네.》 《건넌말 뉘집 딸들이게요?》 배증녀는 건너마을이라면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가락 있다는것까지 다 알고있는데 거기서 왔다는 말이 믿어지질 않아서 두 처녀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오긴 건너말에서 왔지만 본시 거기서 살지 않았으니까 아주머닌 잘 모르실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며 녀인들곁으로 다가가시였다. 《글쎄 건너말에서 온건 아니겠지.》 《아주머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제가 좀 찧어드리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를 밀어내며 방아다리를 디디고 올라서시였다. 배증녀와 함께 방아를 찧던 녀인은 어데서 이런 상냥스런 처녀가 왔는가 해서 그러는지 귀밑머리가 흔들거리는 김정숙동지의 옆얼굴을 얼른 훔쳐보았다. 배증녀도 어리둥절해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이러는데 방아간밖에 배증녀의 오랍동생 용수가 나타났다. 《누님, 이리 좀 나와요.》 증녀는 아이를 올려추며 방아간밖으로 나갔다. 키가 큰 배용수는 아무 말 없이 회춤길로 걱실걱실 걸어갔다. 《어데로 가나?》 《글쎄 이리 좀 와요.》 증녀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방금 방아간에서 방아를 찧으며 박대동네를 죽인다 어쩐다 하는 말을 했는데 그게 화단을 일으키지 않았는가싶은 생각도 들었다. 용수가 처녀들을 데리고 오다가 십상 방아간밖에서 그 말을 엿들은것 같기도 했다. 《누님, 누님네 집에 손님을 한명 두게 해야겠어요.》 마당으로 들어온 배용수는 누이를 토방앞에 세워놓고 이런 말을 했다. 《손님이라니? 무슨 손님말인가?》 《지금 방아간에 온 녀성동무를 한명 누님네 집에 있게 해야겠어요.》 《어느 녀성동무를? 그 얼굴 넙적한 처녀말인가?》 《아니야요. 감장저고리에 감장치마 입은 동무가 있잖아요. 그 동무가 상촌에서 여기 조직을 지도하러 온 공청원이야요.》 《그래…》 배증녀는 놀라는 표정을 했다. 《신문에도 났던 녀성동무야요. 어쨌든 조직에서 믿구 누님네 집에 와있도록 한거니까 잘 돌봐야겠어요.》 《알겠네. 그런데 함께 온 처녀는 누군가?》 《그 처녀는 태봉에서 왔는데 혁명을 하겠다고 뛰고있는 처녀야요. 그 처년 신개말에 와있어요.》 배용수는 누이를 다시 방아간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자기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몇해전 남편이 태봉광굴에서 광석을 캐다가 죽고 살길이 막혀 친정으로 돌아온 누이였다. 애들 셋을 데리고 두칸짜리 오두막에서 사는데 방이라는것이 정말 코구멍만큼씩 작았다. 배용수는 방바닥에 널린 애들 옷가지들도 홰대에 집어걸고 구들도 쓸었다. 부엌에서 올라올 때 발을 문대게 만들어놓은 덕석이도 들어내다가 먼지를 털었다. 한참 방안을 거두고난 배용수는 정지방에 있는 화로를 웃방에 올려다놓고 앉아서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인제 일이 제대로 돼가는가부다. 태봉조직에서 지시를 주지 않는다 해도 저 공작원만 말을 들어준다면 그깐놈이야 해치울수 없겠는가!》 배용수는 혼자 중얼거리며 담배연기를 뿜었다. 그는 지금 박대동이를 처단하지 못해 등이 단 청년이였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 오신 날 밤에도 한기천이와 맞장구를 치며 제일 피대를 세웠다. 그는 혁명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못살며 천대받던 사람들이 부자놈에게 복수를 하는것인데 자기네가 어째서 박대동이 같은놈을 없애버리지 못할가싶었다. 배용수는 담배를 거퍼 두대나 피우고나서야 자리에서 움쑥 일어섰다. 배증녀는 가슴이 쿵쿵 뛰였다. 자기네 집으로 공작원이 오다니? 어쩐지 인젠 정말 덕산동부녀회가 우쩍우쩍 소리를 치며 일어설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는 김정숙동지가 자꾸만 고쳐 쳐다뵈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 정말 범상한 처녀같아보이질 않았다. 함께 온 처녀와는 너무도 차이가 있다. 유순하고 애되보이는가 하면 그윽하게 깊어도 보이고 허구많은 뜻이 담겨져있어서 무슨 말을 붙이기도 조심스러울것 같은 그런 얼굴과 그런 눈매였다. 배증녀가 저녁을 짓는동안 복녀는 아이 하나를 붙안고 앉아서 이름을 물어보고 나이를 물어보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섯살 먹은 딸애가 입을걸 못입었다고 어깨팍과 잔등을 쓸어주며 몹시도 측은해하는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같이 온 복녀에게 무어라고 한참이나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시였다. 그러자 이어 복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난 가겠어요. 무슨 불편한 일이 있으면 신개말로 련락을 띄워요.》 《무슨 불편한 일이 있겠기에… 어서 떠나요.》 배증녀는 복녀가 부엌으로 내려서는바람에 저녁이나 먹고 떠나라고 말렸다. 그러자 복녀는 그 소리엔 대꾸를 안하고 배증녀의 곁으로 다가서더니 두터운 입술을 귀가에 갖다붙이며 《아주머니, 공작원이예요. 잘 보살펴줘요.》 하고 소곤거렸다. 《알아…》 배증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복녀가 돌아간 뒤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네 어린애들을 둘러끼고 앉아서 배증녀와 함께 저녁을 드시였다. 《아주머니, 어려운 생활에 저까지 와서 이렇게 신세를 져서 안됐어요.》 《무슨 그런 말을 하우? 난 조직에서 공작원동무를 우리 집에 와있게 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니까…》 《아주머니, 저를 뭐 공작원, 공작원 하고 부르지 마세요. 남들이 들으면 안되기도 하지만 전 뭐 무슨 공작임무를 띠고 왔다기보다 일을 배우러 왔어요.》 배증녀는 무안한 생각이 들어 낯이 붉어졌다. 정말 그런 말은 안해야 되는것인줄 알면서도 입이 빠르게 말이 나갔다. 《아주머니, 여기 부녀회원은 몇이나 되나요?》 《모두 일곱이라우. 조직에서 막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하기에 진짜배기만 받아서 넣느라고 했지요.》 《이 동네에 집은 모두 몇집이나 되게요?》 《백여호가 잘되지요.》 《백여호가 되는데 부녀회원이 겨우 일곱밖엔 없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라는 낯빛으로 물으시였다. 《우에서 여러가지로 보는게 많은가봅디다. 아마 부녀회원도 공산당원 수준이 다는 못돼도 절반은 돼야 하나봅디다. 그러기에 우리가 누구를 받겠다고 하면 며칠씩 두고 상론을 하고나서야 받으라느니 받지 말라느니 하고 지시를 주지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을 받는게 나쁘기야 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지역에서 무엇인가 일이 잘못되고있다는것을 느끼시였다. 신개마을부녀회 형편을 물어보아도 불과 십여명밖엔 뭉치질 못했다고 했다. 대중조직이란것이 명색만 대중조직인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지주나 주구를 처단하자는 일엔 눈에 피발이 서서 뛰고있다. 이건 정말 해야 할 일은 집어내던지고 그저 들떠서 뛰는게 아닌가.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혁명은 혼자서는 할수 없으며 혁명을 하자면 군중과 단결하여야 하고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군중들을 하나의 혁명력량으로 묶어세워야 된다고 가르치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대체 여기서는 무슨 사업을 첫째가는 사업으로 내세우고있는가? 백여호나 되는 동네에서 일곱명의 부녀회원을 묶어세웠다니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렴 이 마을에 그렇게야 왜놈을 미워하는 녀성들이 적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확실히 이 지역에선 장군님의 가르치심과는 맞지 않게 일을 잘못해나가고있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렇다고 일곱명중에서 뽑아세운 이 소박한 부녀회책임자 배증녀한테 그런 사정을 물어볼수도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앞에 큰일이 가로놓이는것을 의식하면서 곁에 앉아있는 어린애의 입으로 밥숟가락을 가져가시였다. 네살 잡힌다는것이 낯가림도 하지 않고 다소곳이 앉아 김정숙동지께서 떠넣어주시는 밥을 잘 받아먹었다. 다금다금 낳아서 젖먹이까지 세 오누이인데 세 아이가 한마디 키정대지도 않아 온 집안이 절간같이 조용하였다. 이날밤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네 어린애 하나를 옆에 끼고 누워서 상촌근거지 생각을 하시였다. 두고 온 아이들이 간절하게 그리워지시였다. 기송이, 철이, 태국이, 태호, 수십명되는 애들의 귀여운 얼굴이 한꺼번에 무데기로 떠오르고 하나하나 차례로 눈앞에 떠오르기도 하시였다. 적통치구역으로 비밀공작을 떠나는 길이니 애들과 간다는 말도 못하고 한밤중 몰래 떠나오시였다. 주림과 헐벗음을 함께 이겨내며 가난한 사람들의 새세상 자유천지인 근거지와 함께 자라난 아이들, 부둥켜안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매질하듯 아프게 꾸짖기도 하고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시며 정성다해 키워온 아이들,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떨어지고 보니 제 육신의 한쪽을 어느 먼곳에 떼여놓고 온것 같이 가슴이 허전해지기도 하고 안타깝게 그리워지기도 하시였다. 그사이에 무슨 사고나 없었는지? 날씨가 점점 차지는데 고뿔걸린 아이들이나 없는지? 지금쯤 모두 잠들었을텐데 자리를 차던지고 춥게 자는 애들이나 없는지? 금실이와 상녀어머니가 어련히 다 돌봐줄줄은 알면서도 김정숙동지의 맘속에는 불면 날가 들면 꺼질가 하는 애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정이 넘치고넘쳐 이것도 저것도 다 근심이 되시였다. 한합숙에서 어렵고 괴로운것을 함께 이겨나가는 상녀어머니와 금실언니, 속이 크고 깊은 락천적인 차응도회장, 열정적인 희섭선생과 리진구 그리고 김봉석중대장과 최정수, 그 모든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곁에 그냥 있는것 같으시였다. 상촌은 마음속으로 그려만 보아도 그 어떤 후더운 온기가 온몸을 감싸주는것 같으시였다. 아, 상촌, 사랑하는 상촌, 이렇게 떠나와 생각해보니 상촌은 자유와 사랑과 행복의 집이라는것이 뼈에 스며들도록 느껴지시였다. 인제 조국을 광복하고 온 조선땅을 상촌과 같이 만들고 장군님을 받들어모시고 천년만년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립고 행복한 꿈을 쫓으며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새벽 일찌기 깨여나 동이를 끼고 물길러 나가시였다. 배증녀가 말리긴 했으나 어떻게 조반짓는 일을 거들지 않으랴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직 어둑어둑한 땅거미가 발치에 감기는 방아간뒤를 돌아나가시였다. 한참 걸어나가 우물가에 오시니 등성이너머에 앉아있는 박대동네 기와집 추녀가 나무들사이로 넘겨다보인다. 웬 녀자가 등성이를 돌아올라간 길로 물동이를 이고 천천히 올라가고있다. 허리가 가늘고 귀밑이 살핏해보이는데 동이 하나를 간신히 이고 올라가는것 같다. 어제 덕산동으로 들어올 때 복녀가 등성이너머에 대고 대포를 한방 쏘았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그게 박대동네 집인줄 알았는데 그럼 박대동네 집쪽으로 물을 길어가지고 넘어가는 녀인은 누굴가? 분임이 아닐가? 꼭 그럴것만 같아 바라보시는 사이 벌써 동이를 인 녀자는 큰 나무들 서있는 등성이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분임이같아 보이시였다. 그렇지만 또 한편 분임이는 아닌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분명히 나이든 중년부인같은데 분임이가 무슨 분임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녀자가 다시 나타나는가 해서 천천히 물을 길으시였다. 그러나 등성이우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뿌잇뿌잇 서광이 물드는 나무가지에서 까치들만 푸드득이며 날아넘어가고 날아넘어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물을 세동이나 길으시였다. 혹시 그 녀인이 다시 나타나는가싶어서 물을 물드무에 쏟아붓고는 또 우물가로 나가군하시였다. 그러나 끝내 그 녀인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이 무거워 배증녀가 하는 부엌일을 도우시였다. 《아주머니, 저편 등성이너머집이 박대동네 집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시물그릇에 마주서서 그릇을 부시는 배증녀에게 물으시였다. 《그럼요. 그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그놈의 집이라우.》 《그 집에서도 등성이 이쪽에 있는 우물을 길어다 먹어요?》 《그 우물을 길어다 먹지요. 그러게 늘 그게 께름직하구 우리가 준절치 못한 생각도 들군하지요.》 《한우물을 길어다 먹는다고 싸우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그 집에서 물을 길어들이는 녀자는 웬 녀자예요? 아주 약하게 생기구 허리가 가는 녀자말예요.》 《인제 나갔다 보았소?》 《네, 언덕으로 올라가는 뒤모습만 보았는데 물동이를 이고 겨우 올라가는것 같잖아요.》 《그게 그집 며느리라우. 첨 시집올 때는 그렇게도 꽃같더니 한해동안에 온통 서리를 쳐서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떨리시였다. 차라리 그게 분임이가 아니였으면 하는 생각이 있기도 했는데 역시 분임이가 옳다는거다. 서리를 쳤다니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한해동안에 사람을 그 모양으로 만들었단말인가. 《그 남편이란 사람은 지금 집에 있어요?》 《그놈은 공부를 가있지요. 지난겨울 서울공부를 떠난다 어쩐다 하며 집에 와서 제 녀편네를 두드려패구는 떠나갔다우. 지금 아마 서울에 가있겠지요.》 《그놈이 제 안해를 왜 그렇게 구박해요?》 《무식쟁이 녀자와는 안살겠다는거지요. 맨첨부터 그런 녀자한텐 장가를 안간다는걸 박대동이 녀자가 량반의 씨라고 억벌로 데려왔지요. 무슨 말인지 색시가 시집을 와서도 박대동의 아들과는 같이 살아본 일이 없다고 수군수군 소문이 돕니다. 그까짓 량반의 씨라니 불쌍히 여길건 없지만… 그래도 한편 생각하면 녀자란 어째서 아무 죄두 없이 신세가 그렇게 가긍하게 돼갈가 하고 같은 녀자로서 억울한 생각도 들군하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문뜩 작년여름 장보러 갔다오던 날 생각이 또 나시였다. 그때 분임이는 시집을 가지 않을수 없게 된 기막힌 사연을 이야기하며 난 어떻게 하면 좋아? 나같은게 무엇하러 이 세상에 태여났을가고 안타까이 묻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물음에 대답해주지 못하였다. 지금같으면 힘이 되게 옳은 대답을 해줄수 있었는데 그때는 그러질 못하였다. 대답을 못했을뿐만아니라 분임이로서는 시집을 가는게 어쩔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하였다. 그 일을 생각하면 분임이를 오늘의 운명에로 굴러떨어지게 한것이 어쩐지 자신인것 같은 느낌도 드시였다. 너를 이 지경에 몰아넣은 이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혁명하는 길로 뛰쳐나와야 한다고, 지금은 너무나도 명백하고 확실한 그 한마디 대답을 그때는 왜 해주지 못하였던가! 《그 녀자는 불쌍한 녀자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도모르게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박대동네 며느리말이우?》 배증녀가 눈이 둥그래서 돌아보며 묻는다. 《네.》 《잘 아는 사이우?》 《한동네에서 자랐어요. 량반집이라고는 하지만 지주놈한테 땅을 죄다 뺏겼어요. 그 녀잔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구원하겠다구 팔리다싶이 시집을 왔어요.》 《원 저런, 글쎄 어쩐지 있는 집에서 자란 녀자 같지는 않았다니까. 시집을 오자 이어 부엌데기같이 팔을 걷으고 일해내는걸 본다든가 사람이 숫부드럽고 매끄럽지 않은걸 보면…》 《매끄러운 녀자가 아니예요. 일손이 무섭고 고생도 많이 하면서 자랐어요.》 《그런 녀자구먼...》 배증녀는 혀를 찼다. 그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은근히 큰숨을 짓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라도 혹시 분임이를 저 박대동네 무서운 담장안에서 구원해낼수는 없을가고 생각하시였다. 어떻게 할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으시였으나 분임이를 구원할수도 있다는 그 어떤 한가닥의 희망이 마음속에서 부쩍 생겨나는것이였다. 어쨌든 당장은 마을의 부녀회사업을 추켜세워야 할것이다. 김정숙동지께는 온 태봉지구가 겪는 시련으로부터 여기 분임이라는 한 녀자가 제기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혁명조직을 꾸리는 그 한고리에 얽히고 매듭져있는듯이 느껴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튿날밤 부녀회원들을 모두 배증녀네 집으로 모이게 하셨다. 일곱명의 부녀회원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고 새까맣게 어두워서야 모여들었다. 그들은 배증녀네 부엌문으로 들어서는것도 치마폭을 휩싸며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누구나 다 방안에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것을 보고는 부엌바닥에서 배증녀와 무슨 이야기를 소곤소곤 주고받고나서야 올라왔다. 거의다 서른안팎의 젊은 아낙네들이다. 모두들 김정숙동지의 눈치를 살피며 어려워들 했다. 그들이 그러니 김정숙동지께서도 몹시 송구스러우시였다. 《어서 이리 앉으세요.》 《온, 우리네야 아무데 앉으면 어떻습니까? 우에서 오신 나그네가 깊숙이 앉아야지요.》 꼭 올케처럼 눈에 서러운 미소를 띠고 쳐다보는 아낙네도 있다. 《우리 부녀회원이란게 모두 이렇지요. 신개말에 와있는 안경 쓴 선생은 우리들을 보고 부녀회원들도 연설마디나 해야 하구 책두 볼줄 알아야 한다고 합디다만 어데 그런 회원이 있답디까? 이 복순 엄마가 그전에 심청전은 더러 읽었지요.》 배증녀가 방에 올라와앉으며 궁색스러워뵈는 부녀회원들을 변명하듯 말했다. 《온 성님두…》 복순 엄마라고 불리운 녀인이 배증녀의 무르팍을 찌르며 낯을 붉혔다. 《인제 배워야 해요. 우리가 부녀회를 조직했다는게 배우지도 않고 또 무슨 일을 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다면 그게 무어가 되겠어요? 그건 부녀회를 조직한것이나 안한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그럼, 예전처럼 밥먹고 농사나 짓자고야 뭘하러 부녀회를 조직했겠소.》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배증녀가 대꾸했다. 《아무것두 안하문사 절간의 부처님같지.》 딴 녀자가 한마디 끼여들었다. 《절간의 부처 같애서야 혁명을 하겠어요? 왜놈들은 태봉시에 수비대까지 틀고앉아서 조선사람이란 조선사람은 하나 둘 죄다 붙들어다 까막골에 피바다를 만들고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팔짱끼고 부처님같이 앉아있겠어요. 전 정말 여기 와 보니 생각되는게 많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을 꺼내놓고보니 낯빛이 그냥 부드러워지지만은 않으셨다. 글쎄 이런 녀자들로, 그것도 예닐곱명 가지고 부녀회라는것을 만들어놓고는 가르치지도 않고 내버려두고있으니 이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혁명을 하자면 왜놈들보다 힘이 크고 세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게 우리들은 매 사람이 다 배워서 아는것도 중요하고 또 더 크게 더 많이 뭉치는것도 중요해요. 몇사람이 뭉쳐가지구 그나마 배우지도 않구 어떻게 왜놈을 당해내겠어요?》 녀인들은 모두 가슴들이 쭝해져서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직 애티나는 처녀인데 어쩜 저렇게도 큰 뜻이 있는 말을 할가. 확실히 속엔 큰뜻이 들어앉은 녀자다. 어떤 녀인은 저고리의 깃고대가 어떻게 저리도 바르고 품이 저렇게도 꼭 맞을가싶어 김정숙동지의 옷매무시를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전 이 덕산동에서도 부녀회원을 늘궈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이 일곱명 가지고야 무슨 일을 하겠어요. 그래서 오늘밤 이 문제를 좀 이야기해보려고 여러분들을 모이라고 했어요. 혹시 제가 생각하는게 잘못이 아닌가싶기도 해서…》 《잘못이 무슨 잘못이겠소. 늘구라군하면서도 자꾸 튀기니까 못늘구는거지요. 벌써 열두 더 퇴맞았겠소.》 《열이 뭐요. 스물두 넘겠소. 수준이 어리다는둥 말방납질이 많다는둥, 박대동네와 건건이 된다는둥 가정이 봉건이여서 재미가 없다는둥 아이구 참, 부녀회에 들자면 옛날에 진사급제하는것보다두 더 힘들게 돼있으니 누가 부녀회에 들어내겠소.》 그처럼 조심스러워하던 아낙네들이 속에 가둬두었던 소리들을 물쏟듯 쏟아놓으며 불평들을 했다. 《그럼 아주머니들은 모두 부녀회를 늘구는걸 나쁘다고 생각은 안하세요?》 《온 정신이 나갔다구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겠어요.》 아낙네들이 모두 웃었다. 인제 자기네들의 맘을 알아주는 진짜 공작원이 온것 같아서 모두들 화색이 돌아 웅성거렸다. 《아주머니, 종이와 연필이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를 쳐다보며 물으시였다. 《있지요. 뭘 쓰자구 그러우?》 《좀 주세요.》 배증녀는 반짇그릇을 뒤지더니 얼른 공책과 연필을 꺼내놓았다. 그는 상에 받쳐놓고 쓰라고 개다리소반까지 방가운데 들어다놓았다. 《인제 말씀하시던 조직에서 튀겨서 못들었다는 녀자가 누구누구예요. 한사람씩 말씀해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 연필을 들고 앉아 물으시였다. 《우선 리금녀.》 배증녀가 이름을 댔다. 《리금녀, 이 녀자는 무어가 어떻게 돼서 퇴맞았어요?》 《입이 빠르고 말방납질이 많다는거지요.》 《입이 빠르고 말방납질이 많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받아외우며 적어나가시였다. 녀인들이 상머리로 다가앉아 글쓰시는것을 들여다보았다. 김정숙동지의 머리우로 넘겨다보는 아낙네도 있었다. 《그담 또 누구예요?》 《오봉애.》 《오봉애… 이 녀자는 어째서 퇴맞았어요?》 《오봉애는 층층시하에서 부녀회에 들어도 일을 못한다는거죠.》 《층층시하에서 부녀회에 들어도 일을 못한다.》 《어쩜 글씨를 저렇게 맘대루 좔좔 내리쓸가? 거기다 한마디 더 적어요. 오봉애는 친정이 잘사는 집인가봅디다.》 《어이구 친정이 무슨 잘사는 집이라우? 그저 소짝이나 매구 농사를 짓지.》 《그래두 용수적은이가 그러는데 그게 걸린다고 합디다.》 《그만두세요. 그럼 그것두 적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들의 싱갱이질을 막으며 오봉애의 이름밑에 또 한줄 써넣으시였다. 《그담엔 또 누구예요?》 《그담엔 보배.》 《그 녀잔 수준이 낮다고 받지 말라는거지요.》 《수준이 낮다니, 글을 모른다는말예요?》 《글이야 우리도 다 모르는데 그게 무슨 못들 조건이 되겠나요? 묻는 말도 잘 대답을 못한다는거지요.》 《원 성님두, 공작원동무가 보배를 벙어린가 하겠어요.》 《호호호, 벙어린 무슨 벙어리요? 사람이 어질어서 그렇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보배의 이름밑에 또 그렇게 적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밤이 깊을 때까지 묻고 쓰고 하시였다. 다 쓰고나시니 스물두명이나 되였다. 결국 이 숱한 사람들을 들이자고 했는데 조직이 막아서 못들였다는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억울한 생각도 들고 기가 막힌 생각도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색해져서 이마에 내돋은 땀을 씻으시였다. 이런 땐 눈빛이 몹시 차고 쌀쌀해보이기도 하시였다. 그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러날동안 마을아낙네들의 형편을 알아보시였다. 배증녀네 빨래감을 이고 빨래터에 나가서도 동네아낙네들을 사귀고 방아간에서 방아를 찧어주면서도 사귀시였다. 어떤 날 저녁엔 배증녀와 함께 이집저집 마실을 다니며 아낙네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도 하시였다. 마을아낙네들도 부암아낙네들 다를바없이 모두 가난에 쪼들리고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불쌍한 녀인들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을 흠모하며 근거지의 별세상을 무척 동경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그들을 이런 조건 저런 조건 붙여서 부녀회에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수 없으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셔야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는 일을 안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어쩐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참을수가 없으시였다. 어느날 아침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를 데리고 한기천을 만나러 신개동으로 건너가시였다. 어떻게 하든지 한기천이와 의논하고 일을 바로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런데 배증녀는 뒤가 무거운 걸음으로 따라섰다. 사실 그는 김정숙동지의 생각이 옳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자기네들이 그 문제를 제기했을 때처럼 한기천이 또 무슨 우경투항주의니 뭐니 하는 알아들을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말로 막아칠것 같아 겁이 났다. 그렇지만 그는 공작원처녀의 록록치 않은 일잡도리에 힘을 얻어 따라서기는 따라섰다. 신개동아지트에 가니 한기천이 웃방에 와앉아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서며 의논할 문제가 있어서 왔노라고 하시자 어서 웃방으로들 올라오라고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더러 올라가자고 이끄시였다. 그러나 배증녀는 김정숙동지의 등을 밀어올려보내며 자기는 정지방에 앉았다. 김정숙동지께서 혼자 웃방으로 올라가 한기천의 앞에 조심스럽게 앉으시였다. 대걸이는 어데 나갔는지 누웠던 자리만 있고 뵈지 않았다. 《그래 객지에 나서 얼마나 고생을 하우? 잠자리나 편하오?》 한기천의 말은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처음 만났던 날 처단한다 어쩐다 론쟁을 하던 때의 한기천이와는 판판 다르다.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어요. 그저 동네 여러분들께 페만 끼쳐요.》 한기천의 태도가 부드러우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더욱 송구해져서 조심스럽게 몸을 움츠리시였다. 한기천은 신문지로 굵다랗게 만 담배를 풀썩풀썩 피웠다. 곁엔 꾸겨진 캡이 놓여있는데 어데로 가자고 차비를 하고 나선것 같기도 했다. 《그래 무슨 문제를 의논하자고 왔소? 그러지 않아도 내가 한번 들려본다는것이 겨를이 없어서 그러질 못했소. 아마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제기될거요. 적통치구역 일이라는게 그렇소.》 《저 한가지 제 소견을 말씀드려보자구 찾아왔어요.》 《어서 말을 하우.》 《우선 부녀회원을 좀 늘여볼가 해요.》 《부녀회원을 늘인다? 늘여야지요. 그래 안을 내놓아보우.》 역시 한기천의 어조는 서글서글하였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싱글싱글 웃기는 하는데 어딘가 속깊게 말을 받아주지 않는것도 같아 마음이 쓰이시였다. 《지금 백여호동네에 부녀회원이 모두 일곱명인데 이 힘을 가지고는 동네부녀자들을 이끌어나갈수가 없어요. 요새 여러날동안 형편을 알아봤는데 동네부녀자들 대부분이 부녀회에 들일수 있는 대상자들이예요.》 《아니 대부분이 대상자란말이요?》 한기천이 펄쩍 놀란다. 《그래요. 그가운데서도 이미 부녀회에서 대상으로 잡았던 아주머니네들은 거의 조금씩만 영향을 주면 인차 부녀회에 들일수 있겠어요. 가령 오봉애아주머니를 놓고보면 층층시하에서 부녀회에 들어두 일을 못한다는건데…》 《가만, 오봉애 사정은 내가 잘 아우. 그러지 말고 어디 잡은 대상자들의 이름부터 먼저 죽 꼽아보우.》 김정숙동지의 말씀이 길어질것 같아서 그러는지 한기천이 이렇게 서두르며 올방자를 고쳐 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이 끊기운것이 안타까왔으나 사정을 다 안다는데 굳이 우기고 계속할수 없어서 수첩에 적어둔 이름들을 하나하나 꼽아내려가며 부르시였다. 배증녀는 아래방에 앉은채 불안스런 표정으로 김정숙동지와 한기천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정숙동무, 다 알겠소. 내가 벌써 동무한테 한번 얘기해준다는것이 그만 틈이 없어서 그렇게 됐소. 부녀회를 늘이자는 동무의 지향은 아주 좋은것이요. 하지만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여기는 상촌근거지와는 다른, 적들이 통치하는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알아야 하오. 근거지는 혁명조직들이 다 합법적으로, 공개적으로 내놓고 활동하는 우리 세상이지만 여기는 걸음걸음 원쑤들의 탄압을 뚫고나가야 하는 비합법지하투쟁이요. 정수분자만 골라서 꾸려도 밀고나가기 어려운데 어떻게 온 마을 어중이떠중이 부녀자들을 조합식으로 혁명조직에 끌어들인단말이요. 뭐 동무가 의식적으로 그러자는것은 아니고 혁명을 위하여 하자는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는것은 결국 혁명조직을 무의식군중속에 용해시킴으로써 적들앞에서 혁명조직을 무장해제하며 드러내놓는거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것을 알아야 하우. 내 이 문제에 대해선 동무 오빠와도 론쟁한바가 있소. 그러나 동무 오빠는 원칙문제에서는 의견상치가 없다고 하면서 잘 연구해가며 하는것이 좋겠다고 했소. 동무처럼 그렇게 막 받아들이는것이 좋겠다곤 안했소.》 너무도 엄청난데로 말이 뻗어나가는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연해지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어 정신을 차리시였다. 《저두 막 받아들이자는건 아니예요. 대상자들을 잡고 교양을 주어 준비시켜가지고 받아들이자는것이지. 그리구 적통치구역일수록, 적들이 탄압할수록 더욱 조직을 확대하고 튼튼히 꾸려야 하지 않겠어요.》 《허허, 그건 좋소. 영향도 주고 교양도 해야지요. 그대신 받아들일 땐 반드시 나하구 의논해주우. 쇠소리나는 정수분자만 된다면야 왜 혁명조직에 받아들이지 않겠소. 그러나 교양대상자를 잡는데서 두 계급투쟁로선을 바로세워야 하우. 특히 환경이 걸리는 대상은 뽑소. 정숙동무, 혁명은 계급투쟁이요. 절대로 개별적사정이나 인정에 끌려서는 안되우. 내 오늘 동무한테 간곡히 충고하자는것은 이 말이였소. 동무야 계급적처지로 보나 기준동지의 누이라는 립장으로 보나 또 상부조직에서 파견된 공작원이라는 위치에서 보나 일에서 과오가 있어서야 되겠소? 물론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렇긴 하겠지만…》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갑자기 심각해진 낯빛으로 한기천을 쳐다보시였다. 《말하기조차 거북하지만 그래두 동무를 위해서 좀 충고를 해야겠소. 듣자니 동무는 박대동이네 며느리와 아는 사이라면서?》 《그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을 하며 여전히 한기천을 쳐다보시였다. 《동무는 그 녀자에 대하여서도 동정하고있다는데 그런 생각을 버려야겠소. 글쎄 인정적으로 보면 한동네에 살던 녀자가 그처럼 비참한 꼴이 되였으니 몹시 동정이 갈수도 있소. 그러나 그까짓 유산자놈들 가정에 들어가 물고뜯는 싸움판에서 희생되는 인간을 동정할 필요가 어디 있소? 우리는 박대동의 며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박대동이 같은놈들을 때려부시고 수백만 우리 무산자대중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계급투쟁을 선포한 혁명가들이란말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요. 원쑤의 울타리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무엇때문에 거기에 동정을 보내겠소? 동무는 녀자고 또 착한 처녀인만큼 인정이 깊은건 좋은 일이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 인정은 원쑤를 돕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싹 잘라버려야 하오. 그런 인정을 잘라버리지 못하니까 동무는 지금 매사를 인정에 쏠리여 이 아낙네도 들이고 저 녀자도 받아들이고 온 마을 부녀자들을 모두 부녀회에 끌어넣자는 우경으로 기울어지고있소. 재삼 말하지만 박대동의 며느리는 원쑤들의 울타리속에 사는 원쑤들과 한동아리라는것을 잊지 마우. 우리는 언제든지 박대동이를 처단하고야말겠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을 다물고 표정이 굳어지시였다. 무엇엔가 한번 되게 잡아휘둘리운것 같이 머리가 뗑하고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때까지 장군님의 말씀을 놓고 이곳 사업을 연구해보셨기때문에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확신도 있었고 또 옳은 그만큼 어떻게 하든지 한기천을 끈덕지게 설복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있으시였다. 그러나 분임이의 이야기가 이렇게 불쑥 튀여나와 말을 못하게 만들줄은 꿈에도 모르시였다. 배증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앉아서 민망스러운 눈빛으로 김정숙동지를 올려다보고있었다. 며칠전 한기천을 만났을 때 아무런 속맘이 없이 박대동네 며느리이야기를 했던것인데 그것이 똑똑하고 착한 공작원처녀를 궁지에 몰아넣는 빌미가 될줄은 물랐다. 더군다나 마을아낙네들 문제가 이야기될 때까지는 한기천이 그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휘여드는것도 같았는데 그만 박대동네 며느리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목에 피줄을 세웠다. 그럴줄 알았더면 자기가 박대동네 며느리이야기를 하지 않을걸 그랬다고 몹시도 뉘우쳐졌다. 그러나 어쨌든 오늘 자기네가 마을아낙네들이야기를 꺼냈다면 당장 웩떽 소리를 질렀을 한기천이가 그처럼 부드러워진것을 보면 공작원처녀를 함부로 다룰수 없긴 없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 맘이 좀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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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동지께서는 백로지를 잘라서 실로 꿰맨 손바닥만한 수첩을 펼쳐놓고 앉아서 열심히 들여다보시였다. 상촌에서 떠날 때 유일한 공작밑천으로 가슴에 품고 온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적은 수첩이였다. 한기천이한테서 공박을 당한 뒤 김정숙동지께서는 줄곧 이 수첩에 적혀있는 장군님의 말씀들을 연구하고있는데 얼굴이 몹시 수척해지기도 하시였다. 처음 그이께서는 당장 태봉시로 달려가서 조직의 결론을 받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으시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시간이 갈수록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조직이 어떤 결론을 줄지는 모르나 자기가 그 일때문에 태봉시로 달려갔다면 한기천은 자기에 대해 더욱 좋지 않게 생각할것이다. 한기천이와의 관계가 이렇게 된다면 조직에서 일껏 좋은 결론을 받아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일하기는 더욱 힘들게 될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 내자신이 주장하는것과 한기천의 주장을 장군님의 말씀에 비추어 좀더 깊이 연구를 해보고 어느 주장이 옳든간에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장군님의 말씀들을 읽고 분석하며 연구해나가시였다. 아무리 연구해보셔야 부녀회에 사람을 많이 받아들이는것이 혁명조직을 무의식군중속에 녹여버리고 무장해제시켜서 적들앞에 드러내놓는것과 같다는 한기천의 주장은 대중의 혁명화여부에 혁명의 승패가 달려있다는 장군님의 가르치심과는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좌경관문주의를 엄격히 비판하신 지난 봄 공청확대회의에서의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비추어볼 때 한기천의 주장이 바로 좌경관문주의가 분명하다는 생각도 드시였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닥 어렵지 않게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할수 있는데 김정숙동지를 오래 모대기게 하는것은 분임이에 대한 문제였다. 분임이에 대한 동정, 분임이를 원쑤들의 소굴에서 건져보려는 생각이 계급투쟁의 립장을 떠난 개별적인 인정세계라는, 원쑤를 도와주는 그 인정세계가 결국 부녀회사업을 우경에로 끌어가려 하고있다는 아픈 지적이 가슴에 석연히 안겨오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한기천의 주장을 반박할만한 확고한 론거도 또한 찾을수 없으시였다. 지금 펼쳐놓은 수첩장에는 장군님께서 민족적량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있는 사람은 모두 우리편에 손잡아 끌어들이라고 가르치신 말씀이며 심지어 반일적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적기관에 복무하고있는 사람이라도 대담하게 교양주어 우리편에 끌어들이라고 하신 내용의 말씀도 적혀있었다. 가르치심은 명백하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 확정하시기 어려운것은 과연 분임이같은 경우에 그런 가르치심의 대상이 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좋아서 갔건 싫어서 갔건 분임이는 그 우중충한 솟을대문안에서 너무도 흉악한 혁명의 원쑤들과 함께 살고있다. 한기천이 말마따나 비록 분임이 당자만을 놓고보면 불쌍하게 희생되는 녀자라고 여길수 있지만 그것을 계급적립장, 혁명적립장에서 볼 때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인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분임이를 동정하고 구원하려는 자기의 생각은 개별적인 인정세계이고 혁명적립장을 떠나버린 감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결론이 진정 마음속으로는 안겨오지 않으시였다. 아무리 생각해야 분임이에 대한 동정이 그저 단순히 인정세계에서 나온 감정이라고 억지로 굽혀앉힐수가 없으시였다. 어쨌든 그 문제는 그렇고 더 긴급하고 큰 문제는 마을의 부녀회를 빨리 늘이고 단단히 꾸려나가는 문제였다. 그이께서는 자기가 주장하는것이 바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길이라고 재삼 확신한 이상 인젠 하늘이 무너진대도 한걸음 물러서지 않고 내밀고나갈 단호한 결심을 하시였다. 그래서 부녀회원들에게 부녀회에 받아들일 대상자를 몇명씩 맡겨서 교양과 훈련을 줄 계획도 세우시였다. 자신께서도 솔선 나서서 아낙네들을 교양할 계획이시였다. 《아주머니, 오늘밤에는 부녀회원들을 전부 모이게 해줘요.》 어느날 저녁때 김정숙동지께서는 배증녀에게 부탁을 하시였다. 《무슨 회의를 하자고 그러우?》 《네, 받아들일 아주머니들에 대한 교양문제를 좀 토론해야겠어요.》 《그 문제를 토론해야지요. 한선생도 부녀회를 늘구긴 늘구라는데…》 그는 어쩐지 근심이라도 실린듯한 얼굴이였다. 김정숙동지와 함께 한기천을 찾아갔다 온 뒤엔 분임이의 이야기를 한기천에게 한 일이 맘에 켕겨서 늘 그런 얼굴을 했는데 아직도 그 그늘이 가셔지지 않은것 같다. 《이 집으로 모여오게 하지 말구 어디 박대동네와 떨어진 구석진곳에 모이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긴골에 모이도록 하지요. 회의를 한다고야 한선생이 뭐라고 안하겠지요.》 《한선생이 뭐라겠어요. 설사 뭐라고 한들 우리 부녀회가 그럼 회의도 안하고 조직도 늘구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겠어요. 한선생도 우리가 박대동네 코앞에서 경각성이 없이 뛴다고 그런 말을 하는거겠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될수록 배증녀에게도 한기천이와 대립되여있는것 같은 자기 감정의 흔적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시였다. 그렇지만 배증녀는 배증녀대로 이 만만치 않은 처녀가 한기천의 주장을 눌러내며 무슨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것인줄을 알았다. 배증녀가 나간 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참 앉아서 글을 보다가 옷매무시를 고치고 일어서시였다. 벽에 걸린 손바닥만한 거울에 얼굴을 비쳐보니 중병이나 앓고난것 같이 핼쑥하시였다. 정신적인 고통이 몸을 더 무섭게 깎는것 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녁차비라도 해놓으려고 부엌으로 내려가시였다. 배증녀는 쪼들리는 살림을 혼자 꾸려나가며 얘들을 기르고 크나작으나 부녀회책임까지 지고 뛰여다니니 부엌도 훤칠하게 거두고 살질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팔을 걷으고 한참동안 부엌그릇들에 행주를 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와계시면서부터는 매일 부엌세간을 닦는데 구들이 잘 들지 않아서 이어 재가 뿌옇게 들어앉군했다. 세간그릇을 다 닦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물드무의 물을 퍼서 가마에 채우고 아궁에 불을 지피시였다. 이러는데 련락을 나갔던 배증녀가 바쁜 걸음으로 부엌문을 열고 들어섰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있소?》 배증녀는 숨이 차서 들먹거리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 있어요?》 《글쎄, 박대동네 며느리가 목을 맸어요.》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커져서 배증녀의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당장 하늘땅이 휘우뚱거리는것 같은 착각을 느끼시였다. 배증녀는 후들거리는 손등으로 땀발이 선 이마를 문질렀다. 《그게 정말이예요?》 《정말 아니구요. 고개너머 샘골집며느리한테 련락을 갔는데… 글쎄 그 집 며느리가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오다가 큰 돌배나무에 목매고 늘어진걸 보았다질 않소. 그래서 낫가락으로 목맨 명주필을 끊고 부랴부랴 집에 업어다 눕혔대요. 들여다보니 살것 같지 못합디다. 아니 숨기가 없을 때에야 다 죽었게 숨기가 없지. 벼락을 칠놈들, 오죽하면 목을 맸을가! 지난봄에도 양재물을 먹구 죽는다 산다 야단을 치더니 끝내… 어이구 불쌍해라!》 배증녀는 눈굽을 훔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못하고 부엌드렁에 주저앉으시였다. 눈물 고인 두눈에서는 푸른 불길이 펄펄 날았다… 한기천은 태봉시에 가서 경식이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는 둘째봉앞 아지트에서 경식이와 한참 론쟁을 했다. 주구처단을 하지 말라는것은 무슨 소린가? 그것이 기본사명과 리탈되는 점은 무엇인가? 문제를 잘못보고있지 않느냐? 한기천은 경식이앞에서 목에 피줄을 세우며 항의했다. 경식이는 시종 침착히 타일렀다. 누구도 동무를 테로주의자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주변농촌들의 실정은 다르다. 조직력량을 키우는 문제가 급선무로 나서고있는 지역에서 거기엔 불을 걸지 않고 주구를 처단하는 방법으로 혁명을 하자고 해선 안된다. 그런 들뜬 기분을 버리고 혁명을 전체적으로 고찰해야 된다. 주구 몇놈을 처단한 값으로 아직은 놈들의 주목이 덜 돌려지고있는곳에 놈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그 다음엔 조직도 아무것도 확대시켜나갈수 없다. 경식이도 찔깃찔깃했다. 그는 반나절이나 걸려서야 한기천의 주장을 꺾어놓았다. 아니 꺾어놓은게 아니라 겨우 말을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한기천은 달아오른 얼굴이 식지 않은채 신개동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길로 누워있는 대걸이에게 갔다온 이야기를 하며 경식이 혁명의 상승기를 퇴조기로 역행시킨다고 떠들었다. 《기천동무,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난 경식동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이 일리가 있단말이요?》 《공연히 주구 몇사람 처단해놓고 놈들의 눈을 이곳으로 쏠리게 할거야 있습니까? 내 생각에도 그건 자기를 드러내놓는 방법밖엔 아무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동무도 경식동무와 같은 소리를 하는군. 이거야말로 사방이 다 절벽강산이니 혁명을 할수가 있소? 어째서 우리가 로출된다는것만 생각하구 주구를 처단함으로써 놈들이 쭈그러들어 우리가 마음놓구 조직을 꾸리고 활동할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건 알질 못하오?》 《허허, 사방이 절벽강산인게 아니라 기천동무가 절벽강산인것 같습니다. 그래 주구 몇놈 죽이는것으로 놈들이 무서워 슬슬 길줄 압니까?》 대걸이는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이렇게 시비질이 벌어진 때에 말마디나 해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는 이곳에 와서 한기천을 첨 알게 되였는데 식자도 있고 혁명에 몸바치고 뛰는것 같기도 해서 내심 존경도 해왔다. 그런데 차츰 두고 지내보니 끓기만 하고 혁명을 내밀고 나가는 방법은 잘못되는것 같았다. 대걸이 시큰거리는 옆구리를 붙들고 앉아서 말을 꺼내자고 하는데 덕산동 배용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기천은 들어선 배용수를 흘깃 쳐다보고는 앉으라는 말도 없이 얼굴이 한아름되게 동해앉은채 담배만 피웠다. 배용수도 한기천의 기상을 보고는 무언가 두어깨가 낮아지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좋은 말을 못듣고 왔습니까?》 《흥, 가만히 앉아서 조직을 넓히기 위한 교양사업이나 하라우.》 한기천이 대꾸하는 말이였다. 《일이 잘되는군. 벌써 그러지 않아도 조직을 넓히느라고 야단이 벌어졌습니다.》 배용수는 두덜거리며 문앞쪽에 들어앉았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우리 말에서 오늘밤 부녀회를 확대할 대책을 토론하나봅디다.》 《누가말이요?》 《누군 누구겠소. 공작원이겠지요. 인제 련락하느라고 뛰여다니는 우리 누이를 보았습니다.》 《흥, 잘되는군. 내가 그런 의견을 제기해왔기에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그만치나 타일러놓았는데 기어이 부녀회확대를 서둔단말이요? 부녀회에다 갑자기 어중이떠중이를 다 받아넣고는 박대동의 코앞에서 어떻게 할 참이야? 그 동무가 이 지역을 아예 판을 내자고 이러는건가, 응?》 한기천은 볼편이 푸들거렸다. 자기와 마주앉아서 론쟁을 걸어오던 김정숙동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 무엇인가 신념에 차있던 새까만 눈동자, 마디마디 론박하기 어렵게 부녀회확대를 주장하던 말투, 리치에 몰려 대상자를 선정하고 훈련을 준다는데까지는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던 자신, 그러다 다행히 박대동의 며느리문제가 생각나서 그것으로 겨우 억눌러놓았다. 그랬는데 오늘 또 부녀회모임을 가지고 대렬확대문제를 의논한다는것이다. 화가 동하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부드러운 처녀라고만 본 공작원에게 만만치 않은것이 있는것 같기도 해서 저도모르게 은근히 끌리는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안됐소. 내 인차 건너가보아야겠소. 용수동무는 한걸음 먼저 건너가 회의를 누구네 집에서 하는지 청년들을 동원시켜 망이나 보게 해놓소. 가만히 내버려두었다간 큰집 추녀에 불티가 튀여올것 같소.》 한기천은 한마디 하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통에 대걸이는 말마디나 해주자던것도 못해주었다. 그가 나간 뒤 대걸이와 배용수는 한참 소닭보듯하고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어느날인가 대걸이는 이미 배용수를 보고 한기천이 뛰여다니는데 북을 쳐주지 말라고 타이른 일이 있었다. 배용수는 그 말을 아주 쓰게 생각하며 혁명이면 혁명이지 북은 무슨 북이냐고 덤벼들었다. 그래서 둘의 사이는 아주 좋지 않게 되였다. 대걸이는 흘끔흘끔 배용수를 곁눈질해보며 담배를 피웠다. 속눈섭이 삐죽삐죽 내뻗친 배용수는 무언가를 한참 신중히 생각하는것 같더니 얼른 일어서서 나가버린다. 대걸이는 큰숨을 쉬며 담배불을 껐다. 시련을 겪고있는 이 지역에 와서 누워만 있으려니 안타까와 땀이 뿌질뿌질 솟는다. 김기준동지가 그립기도 하고 경식이가 그립기도 했다. 이날밤 한기천은 밤이 좀 들었을 때 덕산동으로 건너와 부녀회 회의가 열린다는 긴골 막바지집으로 찾아갔다. 배용수에게 이른대로 집앞에 청년 둘이 망을 서있었다. 《내 오면서 들으니 박대동네 울안에서 법석 끓어대는것 같은데 그놈의 집에 경찰이라도 와있는것 아니요?》 한기천이 청년들에게 물었다. 《낮에 두놈인가 왔다가 온천쪽으로 넘어갔답니다. 박대동네가 떠든다는건 아까 며느리가 없어졌다고 야단을 했는데 그 일때문에 그럴겁니다.》 《며느리가 없어져?》 《네, 동네에서 수군수군하는 이야기는 앞강물에 빠져죽었다, 목을 매죽었다 하는데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흥, 썩어문드러지는군.》 한기천은 한마디 던지고는 집앞으로 걸어들어갔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방안에서 김정숙동지의 이야기소리가 들린다. 무엇으로 막았는지 창문엔 불빛이 한가닥도 보이지 않는다. 한기천은 토방으로 올라서며 문을 두드렸다. 방안이 가뭇 조용해졌다. 부녀회원 하나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에그머니나》 하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그는 뒤손질로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며 한기천이 왔다는 신호를 했다. 한기천이 들어서자 방안에 둘러앉아있던 아낙네들이 죄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얼굴이 약간 붉어져 일어서시였다. 《앉으십시오, 이거 회의를 하는데 방해를 해서 안됐습니다.》 《온 선생님두… 안목에 들어가 앉으시오. 그러지 않아두…》 배증녀가 말끝을 흐리며 한기천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는 겁이 더럭 났다. 알리지도 않은 회의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알수 없었다. 무슨 벼락같은 소리라도 치지 않을가싶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가슴이 두근거리시였다. 한기천이 십상 좋은 감정으로 찾아오지 않았을텐데 인제 그앞에서 회의를 어떻게 끌어나갈가 하는 불안이 당장 가슴을 누르시였다. 그이께서는 한기천의 긴 얼굴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으시였다. 딴 아낙네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다. 한기천의 량옆으로는 녀인들이 다가앉지 못하고 사람 하나 앉을 자리만큼씩 비우고 밀려나가 죄여앉았다. 한기천은 널직하게 내놓은 자리에 가위다리처럼 무릎을 올려고이고 앉아서 우선 담배부터 한대 붙여물었다. 그는 푸른 양말을 신은 발목을 한손으로 거머쥐고 앉아서 담배연기를 뿜었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겠어요.》 앞에 앉아계시던 김정숙동지께서 얼굴빛이 약간 발깃해진채 말씀을 꺼내시였다. 그이께서도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으신것 같았다. 《우리는 하루빨리 부녀회를 늘여서 온 마을 녀성들을 부녀회두리에 묶어세워야 해요. 우리 말 녀성들가운데 박대동이 녀편네같은걸 내놓구는 누구 하나 부녀회에 들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어요. 수준이 어린것은 일없어요. 이미 부녀회에 들어있는 아주머니들도 특별히 수준이 높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누구는 수준이 높고 누구는 수준이 낮다 하고 부녀회에 들이는걸 수준을 가지고 구별해들일수는 없어요. 나라를 찾고 우리 녀성들의 권리를 찾자는 각오만 선다면 누구나 다같이 부녀회에 들수 있어요. 모르는건 부녀회에 들어서 배우면 돼요. 우리는 부녀회에 들어가지고도 배우지 않는게 탈이예요. 하긴 배워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배우려 해도 배울수 없겠지요.》 한기천은 올방자를 고쳐틀었다. 그는 괜히 몇마디 기침을 했다. 《그담 층층시하에서 부녀회에 들어두 일을 못한다는건데 이것이 무슨 부녀회에 못들 조건이 되겠어요? 층층시하에 가족이 많은 집의 아주머니일수록 빨리 부녀회에 받아들여가지고 잘 교양하여 그 집안에 영향을 주어 가족들을 모두 혁명의 편에 끌어들이게 한다면 그것만 가지고도 혁명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어요. 뭐 당장 아주머니들을 묶어세워 총을 메워가지고 왜놈들과 싸우러 나가자는것도 아니지 않아요. 저는 큰 힘이건 작은 힘이건 가리지 말고 다 한데 뭉쳐서 있는 힘껏 혁명을 도와나서는것이 우리 부녀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래목에 앉아있는 녀인들이 웃목에 있는 한기천을 넘겨다보느라고 연방 목을 빼들었다. 웬일인지 한기천이는 웃쪽으로 그늘지게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어서 그 표정을 엿볼수 없었다. 《그담 또 친정에서 소짝이나 매고 농사를 짓는다는 아주머니 문젠데 친정의 일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설사 친정에서 밭날갈이나 가지고 소매고 농사짓는다고 한들 그게 뭐 나쁜 일이예요? 그런 집이 우리 혁명의 원쑤가 되겠어요? 상촌에서도 이런 집 땅은 한평도 빼앗지 않았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그런 집 땅을 빼앗으면 안된다고 공작원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그 공작원이 직접 지주놈들 땅만 몰수해가지고 농사군들한테 천평씩 2천평씩 노나 주었어요.》 방안의 녀인들이 웅성거리며 끓었다. 《세상에… 그런걸 가지고 땅 한평만 있어도 무슨 유산계급이라고 들써덕했구만…》 《그럼 그렇겠지요뭐… 밤낮 죽나발만 부는게 무슨 유산자람!》 한기천은 낯이 검붉게 질려 앉아서 말이 없다. 그건 그가 금방 이 지역에 내려왔을 때 군중을 모여앉히고 사회주의사회는 사적소유전반을 페절한다는 소리끝에 한 이야기가 그것인데 그때엔 무슨 소린지 알아듣는것 같지도 않던 아낙네들이 아직 잊어버리지 않고있다가 떠들며 웅성거린다. 《정숙동무!》 한기천이 가위다리한 정갱이를 버쩍 더 끄당겨올리고 붉어진 얼굴을 쳐들며 불렀다. 《네?》 《동무는 덕산동부녀회확장문제를 마치 그 어떤 제3자가 조종을 해서 안되는것 같이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사람들을 모여앉히고 그런 선동을 하면 되겠소?》 《제가 뭐…》 《뭐라니? 사람을 받고 안받고 하는 그런 조직내부의 질서문제까지 마구 군중앞에 터놓고 이야기하면 되오? 그런 얘기를 하려면 이 회의를 그만두는게 좋겠소. 내부문제는 우리끼리 먼저 토의해야 하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빛이 붉어졌으나 당황하지 않으시였다.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설사 제가 무슨 말을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기왕 사람들이 모여온것이니 회의야 해야 할것 아니예요?》 《회의에 온것은 마실을 왔던 푼수로 쳐도 손해날것은 없을줄 아우.》 《마실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이 너무도 억울해서 입을 다무시였다. 아래목에서 아낙네들이 웅성거렸다. 《아이구 온… 이 바쁜통에 회의가 아니라면 마실이 무슨 마실이겠소?》 《모두 공작원동무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가서 밤새도록 듣고싶어들하는데…》 이쯤 되니 한기천이 말은 못하고 얼굴만 점점 더 시뻘겋게 동해올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제발 한기천이 과격하게 나와주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부드럽게 말씀을 꺼내시였다. 《물론 제가 잘못 생각하거나 잘못 말을 할수도 있다구 보아요. 그렇지만 제 생각엔 오늘밤 이 모임이 그 무슨 조직규률을 위반하는 모임이라고는 보아지지 않아요. 부녀회원들이 저희들끼리 모임을 가지고 장군님의 말씀에 비추어 지나간 일이 잘됐는가 하는것을 따져보며 앞으로 잘해나갈 의논을 하는게 무슨 잘못이겠어요? 전 제가 배운것도 없고 아는것도 부족하기때문에 오늘밤 회의에 책임자동지가 참가하신걸 무척 기쁘게 생각해요. 책임자동지로서야 회의를 헤쳐버릴 생각을 마시고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고쳐주시고 회의를 바로 해나가도록 이끌어주셔야 할것 안야요. 책임자동지의 지도밑에 우리가 오늘밤 회의에서 앞으로 장군님의 말씀을 잘 받들어나갈 대책을 옳게 세운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낙네들은 김정숙동지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고쳐 쳐다보았다. 한기천의 앞에서 말이 막힐가봐 조마조마한 생각이 없지도 않았는데 막히기는커녕 사리가 정연한 말로 뢰성치는 하늘이라도 잠재워낼듯한 진정의 호소로 달래나갔다. 모임을 헤쳐버리겠다고 접어들었던 한기천을 인젠 모임이 끝날 때까지 옴짝을 못하게 붙들어매놓았다. 한기천은 피줄이 동해 앉아서 뻗닿게 담배만 피웠다. 온 방안에 혼자 피우는 담배연기가 자욱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청에 가맹하시던 지난해여름이 문득 회상되시였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기쁨과 설음이 함께 북받치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생각 그리고 올케생각으로 더욱 가슴아프던 그날…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이제부터 더욱 억세게 싸워야 하겠다고 속다짐하던 그날이 떠오르시였다. 엄숙하고 준엄하게 느껴지시던 그 공청회의에서 은근히 떨리는 다리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결의를 다지던 일도 생각나시였다. 입술이 타고 혀가 자꾸만 굳어져서 그저 김일성장군님의 충직한 혁명전사로 목숨바쳐 싸우겠다고 거듭 결의하시며 솟구치는 눈물을 훔치던 일이 어제같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방안을 둘러보시고 담담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제가 오늘 아주머니들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저도 지난날엔 혁명이란 무엇인지 똑바로 알지 못했어요. 그런걸 야학에서도 배우고 실지 투쟁속에서도 배우고 공청생활을 하면서도 배웠어요. 세상에 완성된 혁명가는 없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마에 내돋은 땀을 가볍게 훔치고나서 아까 하던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시였다. 《아주머니들도 부녀회에 못들 아무런 조건도 없어요. 다들 부녀회에 들어서 한덩어리가 되여 손잡구 나갈수 있어요. 우리는 망국의 설음을 안은 민족이예요. 그런데 우리 녀성들이 어째서 우리 아버지나 오빠나 남편이 나서서 싸우는 길에 들어서서 싸우지 못하겠어요. 우리 녀성들의 힘은 약하지 않아요. 온 나라 녀성들이 다 뭉쳐서 남자들과 힘을 합친다면 남자들로만 싸우는 힘보다 얼마나 더 큰 힘이 되겠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수레에는 두개의 바퀴가 있는데 그 한쪽 수레바퀴는 녀성들이 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아이구, 정말이지 세상에 한바퀴 굴러가는 달구지야 어데 있수?》 《그렇지만 우리 동네 수레는 아직 한바퀴라우.》 《그러니 그게 어디 제대로 굴러가겠수, 소리만 삐걱거리지.》 아낙네들이 흥성거리며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 계속하시였다. 《그러기때문에 우리 말 녀성들도 모두 부녀회에 뭉쳐서 어서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맡아나서야 해요. 백여호나 되는 집의 아주머니들과 딸들이 모두 뭉친다면 그 힘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힘을 일곱명만 뭉친 힘에다 대기나 하겠어요? 금년 봄에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공청확대회의에서 공청사업에 좌경관문주의경향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공청에 들수 있는 청년들을 지식이 부족하다는둥 작풍과 태도에 결함이 있다는둥 하면서 청년들을 받아들이지 않아 백여명이 망라된 군중단체내에 공청원이 불과 3~4명밖엔 없다는곳도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린 이 말씀을 놓고 덕산동부녀회를 생각해봐야겠어요. 백호가 넘는데 부녀회원 일곱명이니 이걸 어떻게 봐야겠어요? 장군님께선 좌경은 비겁한 기회주의라고 말씀하셨어요. 문을 꽉 닫아매고 제편도 안들여놓는것이 적을 무서워하는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한기천은 모닥불을 쓰는것 같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비겁분자요, 기회주의요 할 때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 소리라고 껄껄 웃을수 있었으나 좌경관문주의란 말엔 어쩐지 웃을수도 없고 분을 터뜨릴수도 없었다. 이건 김기준동지한테서도 못듣던 소리다. 아낙네들이 흘끔흘끔 한기천을 훔쳐보았다. 《글쎄 백여명 군중단체에 공청원 서너명 있는것이나 백여호 사는 동네에 부녀회원 일곱명 있는것이나 뭐가 다르겠어요. 이걸 어떻게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일하는것이라고 보겠어요? 우리는 모든 일을 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해야 돼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더 열기를 띠며 아낙네들을 둘러보시였다. 정작 가슴속에 불구름처럼 피여오르는 말은 인제 남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부녀회사업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조선녀성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도 싸워야 하지만 우리 녀자들자신의 해방을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정말 우리 녀성들이 이날 이때까지 무슨 권리가 있게 살았어요? 입을걸 못입구 먹을걸 못먹구 그러면서도 시부모를 위하고 남편과 자식을 위해선 온 정성을 다 바치구, 그러고나선 그게 기뻐서 그렇게도 좋아하구… 그게 뭐 나쁘기야 하겠어요? 그렇지만 전 여기서 녀자들이 겪는, 권리가 없는 설음을 너무도 아프게 보았어요. 이건 물론 약과예요. 전 이걸 얘기하자는게 아니예요. 이 세상 구석구석을 한갈피 더 깊이 들여다보자는거예요. 녀자들이 권리가 없는것으로 하여 얼마나 울고 피눈물을 뿌리며 죽어가고있는가를 보자는거예요.》 한 아낙네가 김정숙동지께 랭수사발을 가져다드리였다. 《한모금 마시구 얘기를 해요. 입술이 조글조글 말랐어요.》 《고마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랭수사발을 받았으나 마시지는 않고 옆에 놓으시였다. 지금 그이의 가슴 한복판에선 손을 대이면 델것 같은 뜨거운것이 기둥처럼 솟아올라 입밖으로 터져나오려 하고있다. 자신도 모르게 눈망울이 흐려지시였다. 방금 달려가 보고오신 분임이의 모습이 떠오르는것이였다. 분임이는 의식이 없었다. 두눈을 꽉 감고 주먹을 돌같이 틀어쥐였다. 앙다문 입술밖으론 피가 흘러나왔다. 흔들어도 모르고 잡아당겨도 몰랐다. 숟가락으로 악문 이발을 뚜져벌리고 꿀물을 부어넣어도 그것이 입술밖으로 도로 흘러나왔다. 저주할 이 세상과는 다시 교섭을 않겠다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손을 주물러보고 얼굴을 만져보고 하시였다. 온통 피골이 상접한 차디찬 돌멩이였다. 그래도 한참만에 찬바람같은 가느다란 숨기가 돌아왔다. 그 처참한 모습이 지금 그대로 눈앞에 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타들어간 입술을 감빨며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녀자로 태여난 〈죄〉아닌 〈죄〉때문에 어떻게 비참한 길을 걷다가 죽어가는가를 너무도 많이 보고있어요. 그리고 퍽 드물지만 시집을 가도 량반의 집에 시집을 갔기때문에, 돈많은놈의 집에 시집을 갔기때문에 불쌍하게 되여 자기의 한생을 피눈물로 끝맺는 녀자들도 있어요. 천대와 구박을 받다가 우물에 빠져 죽고 목을 매서 죽고… 아주머니들은 바로 오늘밤 이 덕산동에 그런 슬픈 사실이 감추어져있는걸 아세요? 바로 그렇게 봉건과 돈의 희생물로 되여 시집을 안올수도 없는 형편이 되여 시집을 왔다가 끝내는 살지 못하고 명주필에 목을 매고 드리운 녀성이 덕산동에 있다는걸 아세요?》 아낙네들은 모두 눈들이 둥그래서 서로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요?》 《박대동네 며느리 얘긴것 같수.》 《죽었나요?》 《아까 없어졌다고 법석 들끓는것 같더니…》 아낙네들이 저마끔 수군거렸다. 배증녀는 아무말없이 독이 오른 기상을 하고 앉아있는 한기천의 얼굴만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는 한기천이가 분임이의 이야기를 하며 김정숙동지를 눌러놓는걸 보았기때문에 김정숙동지께서 어쩌자고 오늘밤 일어난 끔찍한 이야기를 꺼내는가 해서 조마조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김정숙동지대로 이 자리에 한기천이가 와 앉았기때문에 더욱 그 이야기를 꺼내시는것이였다. 《저는 우리 녀성들이 겪는 억울한 일을 바로 우리가 알아야 하겠기에 박대동네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어요. 박대동네 며느리를 우리가 한마디로 원쑤의 편이라고 막아친다면 그건 너무도 생각이 짜르다고 보아요. 그가 어째서 오늘밤 돌배나무 높은 가지에 목을 매고 드리웠는가! 원쑤의 집이 좋았으면 그가 그렇게 했겠어요? 원쑤와 진짜로 한편이 됐으면 그가 그렇게 했겠어요? 여기에는 우리가 녀성들 립장으로서도 많은것을 생각해야 할것이 있고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혁명하는 사람들로서는 더더욱 많은것을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보아요.》 모두 조용히 들었다. 한기천이도 표정이 아까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얼굴에 심각한 그늘이 비끼기 시작하는것 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동안 분임이네 집 형편과 그가 자라나던 이야기를 하시였다. 그리고 못살게 된 부모와 어린 동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팔리다싶이 되여 박대동네 집으로 출가했다는 사연을 눈물겹게 들려주시였다. 《분임이는 바로 이런 녀자예요. 저는 이 녀자가 딱히 우리 편인지 우리 편이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 녀자의 문제가 우리의 혁명투쟁, 우리의 녀성해방운동과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겠어요? 전 제가 본 좁은 세상에서도 가난한 집 녀자들이 빚값에 몰려 소나 말처럼 팔려가는걸 수태두 보았어요. 그리고 부자놈들이 녀자를 사다가 노리개처럼 롱락하다간 차버리는것도 수없이 봤어요. 녀자들이란 바로 이렇게 학대를 받으며 설음에 우는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박대동네 며느리 분임이가 이런 불쌍한 녀자들과 뭐가 다른게 있겠어요. 바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 모든 불쌍한 녀성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녀성해방문제를 중요하게 말씀하셨어요. 참말 장군님께서는 우리 녀성들의 밤중같은 캄캄한 앞길에 빛을 주셨어요. 우리는 이 빛을 받아안고 인제 사람몰골이 되여 남자들과 동등한 립장에서 살겠다는 말도 하게 되였어요. 장군님께서는 우리들을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부녀회에도 들어 배우고 혁명도 하라고 그처럼 간곡히 말씀하셨어요. 우린 생각만 해도 목이 메여요. 고마와서 목이 메여요. 인젠 이 세상에서 그 슬프고 억울한 일들이 영원히 없어지고말것 같아 너무도 고마와 목이 메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소리가 흐느껴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그이께서는 그걸 자제하느라고 한참 말을 끊고 저고리고름으로 눈물을 닦으시였다. 아낙네들도 모두 목이 메는 심정이 되여 눈굽을 훔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한참동안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근거지이야기를 하시였다. 모두 그 자유의 세상과 거기서 누리는 녀성들의 권리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때엔 환희와 꿈을 실은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여기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해요. 여기뿐아니라 하루빨리 온 조선땅에 장군님께서 마련하여주신 근거지와 같은 세상을 만들고 우리 녀성들이 다시는 열두폭치마를 눈물로 썩이지 말아야 해요.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그 누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갖다주진 않아요. 우리가 제힘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러자면 우리 녀성들도 모두다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받들고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함께 뭉쳐 혁명에 떨쳐나서야 해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대중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조직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싸워서 이길수 있다고 가르쳐주셨어요. 우리가 이런 리치를 깨닫구 모두다 부녀회에 뭉쳐 일편단심 장군님을 따라나선다면 그것은 무섭게 큰 힘이 될거예요. 왜냐하면 녀자들힘이란 그만치 더 자기 문제를 들고나서는 북받치는 힘이니까요. 그러니 우리들은 하루빨리 온 마을녀성들을 일깨워주어 부녀회에 묶어세우고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싸워나가도록 해야 해요.》 아낙네들은 모두 가슴이 시원해졌다.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공작원처녀의 얼굴을 고쳐 쳐다보고싶었다. 혁명혁명하니 그저 한기천이처럼 들부시듯 연설을 하는것만 그 무슨 혁명을 하는것 같이 알았는데 이건 마디마디 절절하고 부드러운 말로 사람의 맘을 그러쥐고 놓지 않는다. 다 듣고나니 진짜로 녀자들이 혁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북받친다. 얼마나 세상물계를 깊이도 알고 넓게도 아는가! 한기천이도 무섭게 호된 방망이에 후려갈기운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 앉아있다가 김정숙동지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어 불쑥 일어섰다. 녀인들이 왜 벌써 가느냐고 만류를 했으나 들은체 않고 나가버렸다. 한기천이 나가자 녀인들은 모두 웅성거리며 김정숙동지께서 어쩌면 그렇게도 이야기를 잘하느냐고 했다. 그들은 인제 몇삼년 배우고 난것 같이 눈앞이 환해졌다고 좋아들했다. 얼마후엔 모두 김정숙동지를 둘러싸고 모여앉았다. 그들은 부녀회에 받아들일 대상자들의 명단도 만들고 그것을 몇사람씩 노나맡아가지고 교양할 분공도 짰다. 그저 인젠 활 열려진 길로 달음박질이라도 칠것 같은 기세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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