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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23 회 )
제 8 장
3
김봉석이 량강구에서 돌아온 뒤 상촌근거지는 유격대를 중심으로 모든 근거지인민들이 달라붙어 방위체계를 확립하는 투쟁이 벌어졌다. 각 혁명조직들을 새롭게 정비하고 확대하며 유격대를 백방으로 원호하고 강화시켰다. 반군사조직인 적위대는 맹렬한 훈련을 진행하며 생산과 전투에 인입되였다. 상고개와 대문바위쪽에는 더욱 견고한 방어진지가 꾸려졌다. 적이 기여오르면 몰려가서 답새기군하였는데 이제는 전호를 파고 자기 위치를 분담하고 앉아서 갈겨대는 물샐틈 없는 체계가 섰다. 이렇게 되니 박대동의 하인이 적을 달고 넘어오는것 같은 일은 다시 있을수 없게 되였다. 경계근무체계도 확고히 세워졌다. 망원초, 중간초, 바닥초, 받을초, 문전초, 류동초 같은 여러가지 경계초소가 생겨났다. 유격대의 지도밑에 적위대원들이 곳곳에 별 박이듯 숨어서서 적을 감시했다. 이리하여 온 근거지는 철통같은 방위체계속에 들어 희망찬 생활이 끓어번졌다. 큰벌의 가을걷이도 끄떡없이 끝났다. 사람들은 이삭만 잘라들이고 내버려두었던 조짚이나 수수짚까지도 죄다 베여들였다. 대문바위쪽 큰길로는 매일같이 짚을 실은 집채같은 달구지들이 왈랑절랑 굴러들어왔다. 대문바위에서부터 상고개어간의 큰벌은 무거운 짐을 활짝 벗어던지고 등어리가 시원해졌다. 이따금 늦가을 돌개바람이 불어와서는 조잎과 수수잎들을 말아올렸다. 근거지사람들은 인젠 땅이 얼기전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죄다 집짓는 일에 달라붙었다. 이산저산에서 나무를 베넘기는 톱질소리, 도끼질소리가 울리였다. 산기슭마다 귀틀집, 오두막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혁명위원회는 학교를 짓는데와 아이들 합숙을 짓는데도 사람을 붙이였다. 《어, 인제 내가 애들 합숙일을 돌보게쯤 됐구나. 그새 아마 이 합숙에서 차응도를 죽일놈 살릴놈 욕을 했겠지.》 희섭이와 함께 사람 다섯을 데리고 아이들 합숙마당으로 들어서는 차응도는 이런 소리를 하며 웃었다. 부엌에서 금실이와 마주앉아 감자를 깎던 리상녀가 달려나왔다. 《어이구, 회장어른이 어떻게 이처럼 오셨습니까? 희섭선생두!》 《허허허, 아주머니, 안녕하시우? 요새두 혁명위원회로 자주 다니긴 했겠는데 만나뵈질 못했군요.》 《만나선 뭘합니까? 회장 아니라도 식량부장이 량식을 잘주니 고맙기만 합데다.》 《허허허, 이 아주머닌 보기만 하면 걸구든다니까…》 차응도는 마당이 떠나가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리상녀는 차응도를 보는적마다 앉은뱅이가 아니면 애들 합숙에 자주 와보기도 하고 집도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차응도는 늘 량심에 가책을 받기도 했었다. 《그래 정숙동무는 어데 갔습니까?》 《어이구 맙시사, 정숙이가 이 불같은 세월에 어째서 합숙에 앉아있겠습니까? 벌써 애들을 데리고 산으로 나무를 찍으러 갔습지요. 회장을 믿고 앉아있다가 겨울에 얼어죽게요?》 《자, 그러게 오늘부터 빚을 갚으러 왔습지요. 여기 펄펄나는 목수를 다섯명이나 데리고 왔습니다. 한번 궁궐같이 지어봅시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을 뜨뜻이 입히구 집도 좋은 집에 있게 하구 먹이기두 잘 먹이라고 하셨답니다.》 《장군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은 저두 요새 들었습지요. 아무튼 목수어른들이 수고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집이야 회장이 짓거나 내가 짓겠습네까? 괜히 목수어른들 데리고 와서 자기 생색을 낸다니까요.》 그 소리에 차응도와 희섭이는 또 큰소리로 웃었다. 리상녀도 웃었다. 금실이는 밖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못들은척하고 앉아서 감자를 깎았다. 맘이 별스럽게 자꾸 앙칼져간다. 인젠 합숙에 와서 생활이 몸에 익을만해가긴 하지만 남편과 차응도가 자기 문제를 놓고 쑥덕공론을 벌려 자기를 이리로 보낸 일에 대해선 속이 풀리질 않았다. 어쨌든 이 일에 대해선 차응도도 남편만치나 미웠다. 속에 의뭉수를 가지고있으면서도 나더러 뭘 일이 고되긴 하겠지만 애들 합숙으로 가서 정숙동무의 일을 돕는게 좋겠다구? 어쩜 그렇게 점잖고 유한것 같은 사람이 남의 일에 끼여들어 오그랑수를 썼을가. 금실이는 공연히 속이 앙칼져 감자껍질을 빡빡 긁었다. 사실 차응도는 지금 동도 서도 모르고 금실이의 눈총을 받게 된것이였다. 금실이는 둘이 짜고들어 자기를 이리로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차응도는 희섭이와 짠 일이란 하나도 없다. 희섭이 역시 제 안해를 앞에 놓고는 별별 공박을 다하지만 이 일을 남의 앞에 내놓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니였다. 그러기에 차응도에게 안해의 문제를 부탁할 때에도 아이들 합숙에 올라가보니 손이 부족해서 김정숙동무와 리상녀가 고생도 하는것 같고 또 구들이 뜨끈뜨끈하니 약골인 자기 안해를 그리로 가서 일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오게 됐는데 금실이는 천만 오해를 하고있는것이였다. 《어이구, 고진감래라더니 인제 이 오두막합숙에 큰 대문이 열린것 같다.》 리상녀가 떠들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다들 갔어요?》 《가긴 왜 가겠소? 둘이는 재목을 굴려내려 다듬고 셋은 나무 찍으러 산으로 갔지.》 《회장은 밖에 있어요?》 《밖에서 지금 희섭선생하구 둘이서 새끼줄을 늘이며 한눈을 찌긋하고 집지을 좌향을 보느라고 법석들 한다우. 애들 집엔 해빛이 잘 들어야 한다구 희섭선생이 더 우겨대면서 열성아니우. 그러나 저러나 오늘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할가? 저 목수들 점심두 지어야 하지 않을가? 어떻게 애들과 우리만 지어먹겠소?》 《아마 지어야겠지요. 혁명위원회에서 주는 량식 가지구 우리가 린색하게 할수야 없지요.》 금실이는 속에 아니꼬운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아이들 집을 지어주려고 목수들이 와서 수고를 하는데 가만있을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편이 이렇게라도 와주니 고마왔다. 《그 말이 옳아. 어떻게 린색하게야 하겠소?》 리상녀는 부리나케 광주리를 들고 뒤울안으로 나갔다. 그는 나가듯마듯 디굴디굴한 감자를 한광주리 담아들고 들어왔다. 《감자만 삶겠어요?》 《웬걸 조밥에다 감자를 섞을 참이지.》 《쌀이 얼마 안되던데요.》 《그렇다구 손님들한테야 죽을 대접하겠소? 밥을 잡숫구 우리 아이들 집을 좀 잘 지어달래야지…》 리상녀는 연송 혀끝으로 트고 물집이 생긴 입술을 훔쳤다. 흥이 나면 하는 버릇이였다. 금실이가 와서 내내 보아온 얼굴의 컴컴한 그림자가 일조에 없어지는것 같았다. 금실이도 감자를 다 깎고는 얼른 일어나 행주치마를 걸치였다. 그는 가마를 부시고 가시물그릇을 들어옮기고 했다. 일을 하라면 남만치 못하는 금실인 아니였다. 맘만 내키면 눈에서 웃음이 끓으며 바람같이 돌아가는 성미인데 지금은 얼굴의 그늘이 벗겨지지 않아 그런 녀자같아보이질 않았다. 그는 남편이 문앞으로 와서 여겨보기라도 해주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자기를 길들이자는 독한 결심때문에 그새 한번도 발길을 안한건 알고있지만… 리상녀는 목수들 반찬감 걱정을 한참 하더니 뒤마을에 가서 고추장이라도 좀 얻어와야겠다면서 힝하니 밖으로 나갔다. 리상녀가 나간 뒤에 잠시 부엌바닥에 섰던 금실이는 부엌문을 빠끔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저편 양지바른 넓은 공지에 새끼줄을 이리저리 건네띄웠다. 목수들이 여기저기에 말뚝을 텅텅 내리박는다. 남편과 차응도가 멀지 않은곳에 서서 무엇인가 의논하고있었다. 칠판이요, 교과서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것으로 보아 학교일을 의논하는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다가 두사람은 천천히 혁명위원회쪽으로 걸어갔다. 부엌문을 도로 닫고 부뚜막앞으로 돌아온 금실이는 감자부터 숭덩숭덩 썰어서 가마에 넣었다. 그리고는 쌀도 일어서 안쳤다. 금실이가 아궁에 섶나무를 꺾어넣는데 별안간 애들 셋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애들은 부엌문과 방문으로 달려들어오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방금 뒤말로 갔단다. 왜 그러니?》 《아주머니, 누나가 다쳤어요.》 한 아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뭐가 어째?》 금실이는 벌떡 일어섰다. 《누나가 나무에 치였어요.》 《나무에 어떻게 치였단말이냐?》 《나무통을 끌고 내려오다가 깔렸어요. 골이랑 어깨랑 맞아서 피가 흐르구 일어나지 못해요.》 《아이구, 이 일을 어쩌니?》 《숨도 쉬지 않아요.》 《뭐 숨기가 없어?》 애들이 저마끔 떠들어댔다. 금실이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했다. 애들의 소리가 종잡을수 없는 소리같긴 했으나 그냥 어머니를 기다리고 앉아있을수는 없었다. 그는 애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나갔다. 집터에 있는 목수들께라도 알리려고 했는데 그들도 일감을 벌려놓은채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나무를 찍는데가 여기서 머냐?》 《멀어요. 오늘은 좋은 나무를 찍느라고 먼데 갔어요.》 애들이 앞서서 주먹을 쥐고 뛰였다. 금실이도 달음박질을 했다. 애들은 산굽이를 돌아 시내물을 건너서도 골짜기로 자꾸 뛰여들어갔다. 《얘들아, 아직두 머냐?》 《멀어요. 헹, 아주머닌 다리두 긴게 우리만치 못뛰네.》 《정말이야.》 애들의 뒤를 따르는 금실이는 숨이 턱에 닿아 달리였다. 제발 아무 불상사가 없기를 바랐다. 여기 와서 김정숙동무가 어떤 녀자라는것을 하루하루 더 잘 알게도 됐는데 그 똑똑한 처녀가 이 산속에 와서 나무에 치워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가. 아무리 불행이란들 이렇게 가혹할수야 있을가. 어쩐지 그 불행이 자기의 배틀어진 성미때문에 빚어진것만 같아 더 가슴이 죄였다. 발앞에서 또 개울물이 굽이쳤다. 그는 급하게 물을 차고 건너갔다. 바위에 부딪치는 물이 물거품을 얼굴에까지 쥐여뿌렸다. 개울을 건너 또 한참 걸어서야 애들이 끓는 산비탈에 이르렀다. 새가 우거진 비탈인데 애들이 새숲속에서 바글바글 끓었다. 산꼭대기에서 찍은 나무를 새밭으로 굴려내리는지 큰 통나무가 새를 쓸어눕히며 데굴데굴 굴러내려오는것이 보인다. 금실이는 새무데기를 헤치며 올라가다가 뜻밖에 김정숙동지의 높은 목소리가 울려오는바람에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얘들아, 나무통아래로 내려가지 말아라. 우에 서서 뚱기쳐 굴려라. 그쪽 비탈에 세로 선 나무통은 대가리를 돌려 가로눕혀라! 그래야 군다, 옳지 옳지…》 새밭속 높은 바위우에 김정숙동지께서 올라서서 나무통 굴리는걸 지휘하고계신다. 적삼이 피에 젖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바람에 모로 쓸리며 날았다. 금실이는 새무데기를 휘여잡고 서서 그저 입을 벌리고 올려다만 보았다. 방금 숨도 쉬지 않는다고 하던 정숙동무가 무슨 힘으로 저렇게 장수처럼 일어서서 고함을 지르고있을가! 어쩐지 정숙이가 아니라 딴 사람같아도 보였다. 저 정숙동무가 잘못되면 어쩔가? 내가 어쩜 그런 방정맞은 생각을 했을가. 감히 저런 녀자한테 무슨 불행이 침범하겠는가. 금실이는 바위우에 계시는 김정숙동지를 향해 한발한발 새무지를 헤치며 올라갔다. 《바위틈에 낀 나무통은 여럿이 달려들어 뽑아라. 인수야, 너 그쪽으로 가거라!》 애들이 새밭속으로 몰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 영차영차 힘쓰는 소리가 나더니 나무통 구는 소리가 우룩우룩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을 지휘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아직도 금실이가 비탈로 춰오르는걸 모르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또 저쪽에 있는 아이들한테 대고 나무통이 굴지 않으면 힘을 합쳐 새무데기우로 밀라고 소리치시였다. 《아니, 피를 흘리면서 이건 무슨 일이야요? 애들이 나무통을 어련히 잘 굴려내리겠기에 그렇게 고함을 쳐요?》 바위곁에 다가간 금실이가 김정숙동지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언니는 여길 어째서 왔어요?》 《애들이 급하게 달려왔기에 무슨 일인가싶어서 왔지.》 금실이는 애들이 하던 끔찍한 말을 차마 옮기지 못하고 조용히 이렇게 말하며 피가 내배인 김정숙동지의 다리를 떨리는 손으로 씻어주었다. 《어서 내려서요. 어떻게 다쳤기에 피가 이렇게 흘러요? 피를 막아야 할것 안야요?》 합숙으로 달려왔던 애들도 바위밑에 와 서서 누나더러 내려오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을 내려다보며 그저 미소를 머금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또 잠간 서서 새밭에 널린 애들을 지켜보다가 바위우에서 내려오시였다. 금실이는 내려서시는 김정숙동지를 얼른 붙안았다. 적삼이 온통 피자박이 되였다. 《어디서 피가 나는지 피나는 상처부터 막아요.》 《괜찮아요, 머리와 잔등을 좀 맞았는데 인젠 피가 멎은것 같애요. 그 먼델 괜히 오지 않았어요?》 《아깐 누나가 죽었댔어.》 한 아이가 울음섞인 소리로 웨쳤다. 《어데 죽었댔니? 나무통이 치는바람에 까무라쳤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슬픔이 스민것 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시였다. 금실이는 어쩐지 김정숙동지께서 숙성해갈수록 올케의 모습을 닮아가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참동안 김정숙동지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어보았다. 잔등과 뒤머리가 손벽같이 부어올랐다. 아직은 피가 완전히 멎지 않았다. 《온 이런 상처를 가지구…》 《언니, 어서 내려가요. 오늘은 나무를 열대나 찍었는데 인젠 산밑에 죄다 굴려내려간것 같아요. 저걸 애들 힘으로 날라가야 할텐데…》 《무슨 소리야요? 피가 멎어야 걸을게 안야요?》 금실이는 김정숙동지를 붙잡아안으려고 새를 휘여깔았다. 《그리구 인젠 합숙을 짓는데 애들 힘이 아니라두 돼요. 오늘부터 혁명위원회에서 목수 다섯이 와서 일을 시작했어요.》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커져서 금실이를 쳐다보시였다. 《오늘아침 회장이 목수들을 데리고 와서 둘은 재목을 다듬게 하고 셋은 산에 재목을 찍으러 보냈다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말없이 금실이의 얼굴만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시였다. 핼쑥해진 얼굴이 보일락말락 경련을 일으키였다. 그것이 점차 커지며 물결처럼 번져질것 같았으나 아무 내색없이 온 얼굴이 이어 잔잔해졌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줄 아는 숭엄한 품위가 얼른 비꼈다 사라지는것이였다. 《언니, 그렇지만 애들의 집을 짓는 일이야 어떻게 혁명위원회에다만 맡기겠어요. 애들의 힘도 이끌고 나서기만 하면 일을 이렇게 해낼수 있잖아요?》 《글쎄 어른들이 해주겠다는 일에 굳이 애들을 끌어넣고 고생시킬건 없다니까. 어서 앉아요. 아무것으로라도 피를 막아야지 그냥 이러구 섰겠어요.》 애들이 굽혀놓은 새우에 보드라운 노루자리도 한아름 뜯어다가 깔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권에 못이겨 노루자리우에 잠간 앉으시였다. 금실이는 피자박이 된 적삼잔등을 들고 상처를 고쳐 들여다보았다. 가슴이 아프고 손이 떨렸다. 그는 얼른 돌아앉아 행주치마를 풀어 쫙쫙 찢었다. 《언니, 뭘 그렇게 찢어요?》 《행주치마지.》 《행주치마는 왜 찢어요?》 《사람이 이렇게 됐는데 행주치마가 아까울가?》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적삼속으로 손을 넣어 어깨와 겨드랑이로 엇걸어 상처를 한참 동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상처가 몹시 아프시였다. 온 잔등이 쓰리고 아리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싸매주는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얼굴 한번 이그러뜨리지 않고 흔연히 참으시였다. 앞에 있는 새숲이 와삭와삭 소리를 내더니 애들이 밀려올라왔다. 《누나!》 애들은 김정숙동지의 앞으로 나타나며 누나를 불렀다. 기송이와 인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누나를 마주보았다. 《왜들 여기 도루 올라왔어요?》 어느 애도 대꾸가 없었다. 《그래 나무통들을 죄다 밑바닥까지 굴려내려갔어요?》 《예.》 그제야 애들이 한꺼번에 대답했다. 다만 기송이만이 대답을 못하고 주먹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다. 《누난 인젠 괜찮어요. 아주머니까지 이렇게 와서 상처를 동여매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젠 빨리 내려가서 나무통들을 메고갈 준비를 해야 돼요.》 《준비를 했어요. 그새 철이와 기송이가 칡줄도 다 끊어왔어요.》 《철이가?》 《예.》 김정숙동지께서는 저쯤 뒤에 서있는 철이를 찾아보시였다. 그 장난꾸러기 역시 키큰 애의 옆에 눈물이 글썽해서있다. 《철이!》 철이는 대답이 없이 목을 꼬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울면 못써요. 앞으로 총을 메고 왜놈과 싸우겠다는 철이가 맘이 약하게 울면 돼요.》 《누나, 그렇지만 철이도 누나 얼굴이 불쌍해서 울어요.》 딴 아이가 말했다. 《내 얼굴이 뭐 불쌍한게 있어?》 《누난 거울이 없으니까 그렇지 집에 가서 거울을 좀 보려무나.》 이번엔 기송이가 울며 소리쳤다. 《넌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피를 좀 흘렸다고 뭐 불쌍해? 인수, 어서 빨리 애들을 데리고 내려가요. 한번 정신이 들게 구령을 쳐요.》 인수는 쭈밋거리며 그도 눈물을 씻었다. 《왜 그리구 섰어요? 어서 애들을 데리고 내려가라는데두…》 인수는 마지못해 애들을 향해 돌아섰다. 《모두 뒤로 돌앗!》 인수의 구령소리에 애들이 뒤로 돌아섰다. 요새 인수를 반장으로 내세웠더니 애들이 그 애의 말에 제법 잘 복종했다. 《앞으로 갓!》 애들은 새숲을 헤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내려가더니 우야 소리가 일어나며 경주가 시작되였다. 그제야 김정숙동지의 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뒤에 앉아 머리의 상처를 동이는 금실이도 말없이 아래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었다. 이날밤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곁에 누워서 밤새 자기를 《배라먹을년》이라고 욕했다. 도대체 이런 처녀가 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가. 어떻게 그처럼 강의하고 부드럽고 영특할수 있을가. 이런 녀자야 이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기로니 그 무슨 일인들 못해낼것인가. 금실이는 낮에 산에서 본 그 모습에도 충격이 컸지만 다르게도 가슴 찔리는 일이 있다. 아니 가슴이 찔리울뿐만아니라 지금도 얼굴이 확 달아올라 견딜수 없다. 그 조그만 검은 천으로 싼 보짐이 자기의 량심을 이토록 아프게 침질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낮에 김정숙동지를 부축해가지고 와서 피자박이 된 옷을 갈아입히려고 그이의 보짐을 푸니 거기엔 옷도 아무것도 없었다. 쓰던 공책들과 소책자 다섯책, 연필 두자루, 바늘이 꽂힌 실패 그리고 그 무엇때문에 그런걸 보짐에 싸두었는지 끝이 닳고 우그러든 숟가락 한개가 들어있었다. 아마 불탄 부암집에서 파낸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자기 어머니의 숟가락이나 아닌지… 《그건 무엇때문에 풀어보우? 그 보짐은 공부보따리라우.》 리상녀가 눈물을 씻으며 하는 소리에 금실이는 얼굴이 붉어져 보짐을 도로 쌌다. 그래도 리상녀의 보짐속에서 소매와 앞섶을 기운 겹저고리가 나와서 피자박이 된 적삼을 갈아입혔다. 겹저고리는 품도 크고 소매도 길었다. 리상녀는 긴 소매를 걷어올려주며 코물을 삼키며 울었다. 금실이는 지금 그 《공부보따리》와 자기의 보짐을 놓고도 생각해보았다. 공책과 소책자 그리고 끝이 닳고 우그러든 숟가락이 떠오르는가 하면 화장품함과 수놓은 책상보, 남편의 양복저고리따위, 태봉시에 나가서 눈에 걸리는대로 사둔 물건들이 떠오른다. (배라먹을것, 소부르죠아지! 내따위가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이 야단일가. 이따위니까 남편이 절 못잊어 따라왔는데도 도끼눈질을 하며 왕벌의 치로 찌르듯하지…) 금실이는 김정숙동지의 험한 손을 그러쥐고 눈물을 꼭꼭 짜며 울었다.
제 9 장
1
철늦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날 저녁 김기준동지는 첫째봉앞 아지트에서 《상촌신보》제5호를 읽고있었다. 상촌근거지와 태봉지하조직 사이의 련락을 통해서 은밀히 발송되여오는것이니 매번 늦게야 받아보군하는 신문인데 이 5호도 한달전에 찍은것을 인제야 받아읽는다. 김기준동지는 등사로 밀어낸 한페지의 글을 열심히 읽어나갔다. 너무도 놀라운 기사가 실렸다. 누이동생이 근거지에 들어가 이렇게 신문에 나도록 일을 잘해나갈줄은 몰랐다. 누가 썼는지 감동적인 문장으로 썼다.
김일성장군님께 끝없이 충실한 혁명전사 《근거지의 누나》 김정숙동무의 투쟁실기
이런 표제밑에 쓰인 실기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영특하고 지혜로운 처녀가 어떤 고생속에서 자라났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였다. 부암에서의 눈물겨운 생활이 자세히 이야기되여있는가 하면 그 생활속에서 벌써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진리에 눈을 뜨고 혁명을 위한 투쟁의 길에 거룩한 발자국을 찍어나가기 시작했다고 썼다. 김기준동지는 눈물이 글썽해져서 읽어나갔다.
숨막히는 생활의 중하는 그의 의식발전을 채찍질했고 그가 가진 천부의 총명과 지혜는 민족의 수난을 몸으로 감득하며 자라나게 했다. 고생자욱으로 얽힌 어머니의 얼굴도, 배고파 우는 어린 조카의 울음소리도 그리고 선량한 올케의 참혹한 희생도 한겹두겹 그의 가슴에 계급적각성의 갑옷을 두르게 했고 혁명이 승리하는 그날까지는 결코 풀리지 않을 응혈이 지게 했다.
김기준동지는 가슴이 무둑해져서 잠간 멈췄다가 다시 내리읽었다. 실기는 동생이 부암에서 《토벌》을 맞고 상촌으로 떠나던 정상을 눈앞에 보는듯이 그렸다. 오빠와의 리별에 대해선 아마 의식적으로 한마디도 언급을 안한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고열에 떠서 달구지에 누워 들어가며 그 누군가를 몹시도 불렀다는 이야기는 절절하고 뜻깊은 문장으로 씌여져서 김기준동지는 대뜸 그것이 자기를 불렀다는 소리임을 짐작할수 있었다. 실은 그도 이미 경식이로부터 누이동생이 헛소리를 치며 근거지로 들어가 병원에 입원해있었다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은적이 있었다. 투쟁실기는 계속하여 상촌에서의 김정숙동지의 투쟁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초창기의 근거지엔 집도 먹을것도 부족했다. 이런곳으로 혁명군중이 밀려들었다. 어디 가나 사람의 사태였다. 먹을것도 있을 집도 없는 사람들이 욱실거렸다. 어려운 시련의 시기가 닥쳐왔다. 강가엔 불에 끄슬려 굴러온 고아들이 널리였다. 잃어버린 엄마, 아빠를 그리는 슬픔이 강가를 덮었다. 이 강가에 나타난것이 아직 병색을 벗지 못한 김정숙동무였다. 그는 수십명의 고아를 한품에 붙안고 너는 어디서 왔으며 이름이 뭐고 또 너는 엄마, 아빠를 어디서 잃었으며 나이는 몇살이냐고 물으며 한아이 한아이 눈물들을 닦아주었다. 이로부터 이 불행한 아이들에겐 지혜롭고 총명한 사랑깊은 어머니가 생겨났다. 뜨거운 정과 자애의 맑은 눈물이 어린 넋들의 상처를 다심히 씻어내며 굳세게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투쟁실기는 주인공이 수많은 고아들을 단간방인 합숙에 집결해놓고 먹이고 입히고 거두어나가는 생활을 눈물겹게 그렸다. 그러는가 하면 아이들을 그저 어루만지기만 한것이 아니라 아동단조직에 튼튼히 묶어세워 원칙적으로 교양해나가며 어떤 땐 호되게 꾸짖고 회의에서 엄하게 비판도 한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혼자 울기도 하고 또 어떤 땐 달아나는 애들을 찾아 해종일 산판들을 헤메기도 했다고 썼다. 특기할 일은 아이들의 힘을 조직하여 저들이 살 합숙을 저들의 손으로 짓도록 재목을 베들이게 하고 돌을 모아들이게 하며 그들을 일에 단련시키고 규률에 닥달되도록 이끌어나갔는데 이것은 그 누구도 주인공에게 가르쳐준 일이 없는 자립정신의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투쟁실기는 홑적삼에 해진 치마를 입은 이 훌륭한 아동단지도자가 산에서 나무를 굴리다가 부상을 입고도 피에 젖은 몸으로 바위우에 일어서서 구령을 지르며 애들을 지휘했다고 하면서 그 영웅적인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호소했다. 김기준동지는 신문을 채 읽지 못하고 얼굴을 들었다. 그는 두눈을 슴뻑이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감격도 크지만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홑적삼에 해진 치마라니 안개더기우에서 갈라질 때 입었던 그 옷이 분명하다. 하기야 어려운 근거지안에서 무슨 천을 어떻게 구해서 새옷을 해입을수 있을것인가. 그는 종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나서야 다시금 신문을 내리읽었다. 신문은 김정숙동지의 투쟁기록을 한단 더 쓰고나서 이리하여 근거지에는 《우리 누나》,《우리 정숙동무》 하고 부르는 친근한 말이 생겨났다고 했다. 신문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상촌근거지에는 엄마, 아빠를 잃은 고아집단을 중심으로 한 규모가 큰 아동단조직이 억세게 태동하며 자라고있다. 소선대와 공청의 후비군이며 무장대오의 후비군인 씩씩한 대오가 발맞춰 걸어가며 맑은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게 노래부른다.
목에다 두른것은 붉은넥타이 등에다 짐을 지고서 훈련을 나간다 장하다 그의 이름 아동단 아동단 아동단 세상이 모두다 칭찬한다 아동단 아동단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누구나 다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우리 정숙동무》,《근거지의 누나》를 깊이깊이 칭송한다.
투쟁실기를 다 읽고난 김기준동지는 신문을 접어 돌려놓고는 감동을 못이겨 자리에서 불쑥 일어섰다. 그는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자꾸만 손수건으로 두눈을 닦다가 바삐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있었다. 한겨울 못지않게 풍성히 쌓인 눈이 다리건너 침침한 태봉거리며 산발들을 정갈하게 단장시켜놓았다. 그우에 함박눈은 소리없이 자꾸만 내려서 덧쌓였다. 숫눈길을 걷는 김기준동지의 가슴은 맑고 푸근한 공기로 한껏 부풀어올랐다. 무엇인가 친근하고 다정한것이 가슴속을 무둑하게 채워준다. 누이동생의 그 여윈 어깨를 쓸어주며 따뜻이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어머니의 마디진 커다란 손을 매만져드리고싶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류치장에서 깨끗이 절개를 지키고 죽은 안해의 얼굴이 저앞 태봉우에 우렷이 그려지기도 했다. 어리숙하고 수더분한 안해가 경찰의 간교한 계책과 잔악한 고문에 꿋꿋이 맞서 싸우며 원쑤들을 몸서리치게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뼈저린 생각과 복수심으로 해서 미처 뜨거운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했었다. 시간이 흘러 마음속 상처가 아물어가자 비로소 그 더깨앉은 상처밑에서 눈물이 배여나왔다. 짧은 한평생을 말 한마디 온전히 못해보고 언제나 남을 위해서만 수걱수걱 일해온 안해였다. 젊은 녀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일찍 시들어버린 안해였기에 김기준동지의 가슴은 오늘에 와서야 더 저리는것인지도 모른다. 그 안해가 죽어서도 웃으며 돌이켜볼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행복한 생활의 추억 하나를 만들어주지 못한것이 한이 되였다. 지금 태봉 눈벌우에 저렇게도 뚜렷이 그려지는 안해가 정말 자기앞에 살아있다면 그는 혁명동지로서 서슴없이 자기 마음속의 가장 큰 기쁨을 줄것이다. 《여보, 나는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게 됐소. 그이께서 몸소 나를 불러주셨단말이요.》 그러나 안해는 이미 없다. 안해가 없기에 이날따라 인남이가 더 보고싶어지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인남이를 맡겨둔 강호네 집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김기준동지는 인남이를 데려온 후엔 인차 아지트를 다른곳으로 옮기였다. 아이를 맡긴 집을 그냥 아지트로 쓴다는것이 지하공작원칙상 여러가지로 생각되는 점도 있었지만 우선 아이가 칭얼거리는 환경속에서 날마다 피투성이 싸움이 벌어지는 이 거리의 투쟁을 이끌어나갈수가 없었다. 김기준동지는 자리를 옮겨앉으면서 강호어머니와 적어도 하루 건너 한번씩은 찾아오마고 약속했지만 한주일에 한번도 들려보기가 바빴다. 낯익은 강호네 집 널쪽문을 열고 토방우에 올라서서 눈을 털자 강호의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내다보며 반색을 했다. 《이제사 오는군. 어이구, 그새 눈이 무던히도 많이 왔구만. 어서 들어오게. 저녀석이 혼자서 무슨짓을 하는지 모르겠네.》 《어머니, 그새 별일이 없었습니까?》 《별일이 무슨 별일이겠나?》 김기준동지가 웃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지방에 있던 인남이가 디뚝디뚝 걸어와서 아빠를 부르며 마구 뛰는 시늉을 하였다. 인젠 아빠라는 소리가 제법 똑똑했다. 김기준동지는 얼른 아이를 들어다가 품에 안았다. 안개더기우에서 받아안을 때는 그렇게도 갑삭하더니 인젠 몸이 묵중해졌다. 얼굴도 몰라보게 퉁실퉁실해졌다. 《인남아!》 김기준동지는 아들을 잠간 마주보았다. 어인 일인지 가슴속에서 불시에 격정이 굽이친다. 그는 아들의 볼을 자기의 볼에 붙였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것 같기도 했다. 이게 행복이란것인가. 이게 보람이란것인가. 넌 이렇게 탈없이 잘 자라고 네 고모는 근거지에서 이름이 나도록 잘 싸우고 나는, 나는 또 장군님께서 부르시고… 아,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언가. 보람이 아니면 무엇이란말인가. 김기준동지의 눈에선 종시 눈물이 흘렀다. 다시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하고 안해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왜 좀더 오래 살지를 못했을가. 살고야 보복을 할게 아닌가. 이런 보람이 곧 원쑤에 대한 보복이랄수도 있지 않을가. 부엌에서 강호 어머니가 정지방으로 통한 미닫이를 열었다. 김기준동지는 서둘러 눈굽을 훔쳤다. 《온 저녀석이 벌써 애비무릎을 척 차지했구나. 어서 내려와 암죽을 먹자.》 어머니는 절절 끓는 암죽종발을 치마자락으로 감싸들고 올라왔다. 《이리 보내게.》 그는 암죽종발을 방바닥에 놓더니 손을 내밀었다. 인남이는 어머니에게로 가서 안기며 그저 좋아라고 무르팍우에서 들썩들썩 뛰였다. 《이녀석, 가만히 있지 못할가? 인젠 어떻게 무거운지 뼈가 부러지겠어.》 어머니는 흐뭇해서 입가의 잔주름을 오그리며 웃었다. 김기준동지는 암죽종발을 끌어다가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식혔다. 《오늘은 몇종발이째입니까?》 《오늘두 세종발이째일세.》 《흥, 이자식이 이러다간 어머님 세간살이를 들어먹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도 웃고 김기준동지도 웃었다. 어머니는 어린애가 오는 날부터는 찹쌀을 사들여 암죽을 해먹였다. 벌써 아이는 두말 쌀도 넘겨먹었다. 참으로 어머니의 아이에 대한 정성은 지극했다. 매일 하는 일이란것이 암죽을 만드는 신역이였다. 찹쌀을 닦아 절구에 찧고 화로불이라도 없는 날엔 하루에도 두세번씩 부엌아궁에 불을 지펴서 암죽을 끓여냈다. 단걸 뱉으면 장을 놓아먹인다, 장 둔걸 안먹으면 깨보숭이를 넣어 먹인다 하며 별별 애를 다 썼다. 그러나 김기준동지는 어머니가 그런 신역을 치르면서도 그걸 조금도 신역으로 여기지 않고 한결같이 아이에게 애정을 쏟아부으며 그것으로 하여 기쁨을 느끼는것 같으니 무척 마음이 놓였다. 어쩌다 밤늦게 시간이 나서 들려보면 어머니는 어린애를 가슴에 꼭 품고 자군했다. 김기준동지는 눈물이 글썽해서 아이의 머리우에 볼을 문지르는 어머니도 여러번 띠여보았다. 그런 땐 아마도 강호의 애기시절을 생각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강호가 멀리 떠나간지 1년가까이 되여오는 지금 빈집을 지키고있는 어머니의 쓸쓸한 가슴에 어린것으로 하여 생기는 한가닥의 위안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머니는 암죽을 떠서는 훌훌 불어가며 자기의 혀끝에 먼저 대보고야 어린애의 입에 밀어넣어주군했다. 인남이는 어머니의 무릎우에 올라앉아서 다리질을 해가며 받아먹었다. 《이녀석, 다리를 가만 두지 못할가?》 김기준동지는 눈을 흘기며 종아리를 꾹 찔러주었다. 인남이는 암죽을 문채 까닥거리며 한술 더 떠서 통통한 발가락들이 아빠의 턱주가리에 닿게 발길질을 했다. 그런다고 어머니가 볼기짝을 한개 때려주는 시늉을 하면 이번엔 종주먹 둘로 어머니의 가슴팍을 두드려댔다. 어머니와 김기준동지는 그저 즐거워 웃었다. 얼마후 김기준동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간이라도 이렇게 들려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사람들을 모이라고 했으니 인젠 또 둘째봉앞 아지트로 가야 했다. 《그래 자네 떠나기는 언제 떠나나?》 어머니가 물었다. 《래일 새벽에 떠날가 합니다.》 《눈이 이렇게 쏟아지는데 먼길을 떠나겠나?》 《눈이 온다고 갈길을 못가겠습니까? 장군님께서 부르시는건데 한시인들 지체할수가 있습니까?》 어머니는 잠시 아무 말이 없이 아이에게 암죽을 떠먹이였다. 그러더니 이어 다시 입을 열었다. 《게 좀 앉게.》 김기준동지는 도로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래일 새벽에 떠난다니 혹시 만날 시간이 없을것 같기도 해서 미리 이야기해두고싶네. 난 자네가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간다니 기쁘기가 그지없네. 꼭 강호가 장군님의 분부를 받고 떠나던 때와 같은 심정일세. 이녀석 어서 마저 먹자!》 어머니는 어린애가 암죽을 안먹겠다고 머리를 흔들며 뒤로 제끼자 얼른 뒤통수를 떠받들며 암죽숟가락을 입에 밀어넣었다. 어머니는 매번 한종발이나 되는 암죽을 다 먹이고 아이의 배가 넙적해져야 맘을 놓았다. 그러게 인남이는 암죽이 먹기 싫으면 언제나 저고리를 걷어올리고 배부터 내댔다. 그런데 오늘저녁엔 배를 내대지 않고 뒤로 제끼며 머리를 흔들었다. 《자네가 이제 가면 장군님을 뵙게 될것이니 내 꼭 전하고싶은 말이 있네. 강호가 장군님께로 떠나간것이 꼭 재작년 이맘때였네. 내 그때도 말했네만 혹시 장군님께서 이 늙은것을 알고계실지도 모르네.》 《아시구말구요. 강호동무가 오래전부터 장군님을 받들고 일해왔는데 그러지 않아도 온 나라 인민의 일을 다 꿰뚫어보시는 장군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전사의 어머니를 왜 모르시겠습니까.》 김기준동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눈귀에 잔주름을 새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 틀림없이 그러실줄 믿네. 그러기에 내 마음이 더 간절하단 말일세. 내가 혹시 강호때문에 걱정하지 않을가 생각하실수도 있고 또 늙은것이 혼자 지내는것때문에 념려하실수도 있네. 그러니 자네가 꼭 장군님 심려를 덜어드려야 하네. 강호가 떠난 뒤 소식이 없지만 난 그 애를 장군님 품에 바친것이 내 한평생의 큰 자랑일세. 장군님께서 어련히 그 애 일을 잘 돌봐주시겠나. 그러니 이 에미는 그저 장군님 한분만을 믿고 꿋꿋이 살아간다고… 아침저녁으로 념려되는것은 장군님의 안부라고… 꼭 그렇게 말씀드려주게. 아마 이것이 내 한사람의 마음만은 아닐것일세. 장군님께 자식을 맡긴 어머니면 누구나 다 나와 같은 심정일것일세. 그러니 아무쪼록 장군님께서 만안하시기를 만백성들이 다 빌고있듯이 나도 빌고있다고 그렇게 꼭 말씀드려주게.》 《장군님을 뵙는길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강호동무의 소식을 아는대로 곧 어머니에게 전하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이사람아, 강호소식은 일없네. 옛날부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나라 찾는 큰 일에 떨쳐나선 장부가 싸움에 나가 소식이 없으면 잘 싸우고있다는 소리지 걱정할것이 무언가! 장군님께 아예 그런 내색은 비치지 말게.》 《알겠습니다.》 김기준동지는 정중히 대답했다. 어머니의 강직한 모습을 보는것이 눈물을 보는것보다 더 가슴을 흔들었다. 얼마후에야 그는 밖으로 나왔다. 아까보다 눈이 더 쏟아져내렸다. 싸락눈이 앞이 보이지 않게 날아와 휘뿌렸다. 김기준동지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건너 큰 거리쪽은 하늘땅의 구별이 없이 그저 뽀얗다. 태봉도 둘째봉도 보이질 않는다. 길엔 사람이 없다. 아직 밤대거리때가 안되여 그런지 광부들도 한사람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서 큰거리로 들어가니 거리엔 그래도 털모자를 쓴 사람들이 눈발속을 바삐 걸어다녔다. 모자끈을 턱에 건 경찰놈들도 장화발을 뿌드득거리며 싸댔다. 경찰서뒤 새로 꾸린 수비대병영쪽에선 말울음소리가 요란히 들려나왔다. 매일 한바탕씩 뛰군하던 말들이 오늘은 뛰지 못해 몸이 근지러워 야단을 치는것인지도 모른다. 김기준동지는 눈내리는 거리에 파묻혀있는 숨가쁜 싸움을 몸으로 느끼면서 걸었다. 수비대병력이 올리민 뒤 손이 난 경찰은 광부들을 닥치는대로 류치장에 잡아가두었다. 그들속엔 복녀가 있는 밥집 고수머리좌상이며 민태설네 대돌밑에서 공작하는 대걸이같은 든든한 공작원들도 들어있다. 요새 와서 좀 잠잠해진듯한 기미도 보이나 이것으로 놈들의 살판이 한숨 죽어들었다고는 볼수 없다. 여전히 숨가쁜 공기가 팽팽하게 드리우고있다. 지금 혁명은 지하에서 더욱 억세게 꿈틀거리며 힘이 사처로 뻗어나가고있다. 놈들의 검거가 시작된 뒤부터는 일체 표면화되지 않는 행동으로 넘어갔다. 투쟁의 주공방향을 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그것을 확대하는데로 돌리였다. 말하자면 놈들과 맞서서 《모작금점》반대파업, 자본가의 집이나 관공서를 짓부시는것 같은 투쟁은 부득불 피할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강호가 말한것처럼 혁명이란 주동을 잃지 말고 정세에 따라 유연성있게 끌고 나갈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김기준동지는 모든 조직들을 깊이 지하로 들어가게 하고 이미 묶어놓은 힘을 튼튼히 지켜내게 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력을 급히 확대시켜나갔다. 지금 이 광산거리엔 무슨 친목회니 상조회니 동생놀이니 하는 로동자들의 대중조직이 갱과 밥집 처처에서 조직되고 부녀회, 반제청년동맹도 세력을 확대해나갔다. 조직을 확대하는 투쟁은 태봉거리에만 한한 문제가 아니였다. 광산거리를 둘러싼 농촌들로도 뻗어나가서 산제동, 신선동, 옥촌, 덕산동, 신개마을 등 아직 혁명의 불꽃이 미치지 못한 농촌들에 합법 및 비합법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소낙비뒤에 대순이 솟는것 같은 기세이기도 했다. 둘째봉앞에 거의 온 김기준동지는 생눈길로 접어들었다. 여기는 같은 태봉시라고는 하지만 광부들이 오두막을 짓고 사는 한적한곳이다. 놈들의 검거가 시작된 뒤엔 여기에 제1아지트를 정하고 첫째봉앞 아까 신문을 읽던 집에 또 제2아지트를 정했다. 그리고 몇개의 고갱에 림기응변으로 쓰는 류동아지트도 정했다. 그들의 투쟁은 그만치 기민성과 변화를 가지고 움직이고있었다. 김기준동지는 오금을 치는 눈을 헤치며 아지트로 쓰는 집 사립문안으로 들어섰다. 벌써 안엔 조덕하, 한기천들이 와앉아있었다. 한기천은 동발막서사로 일하다가 최광주를 반대하는 투쟁때 정체가 로출되여 이어 동발막에서 나와버리고말았다. 그리고는 안해와 함께 농촌으로 나갔다. 그는 지금 신개마을 덕산동 등지에서 대중조직을 뭇느라고 발바닥이 닳게 뛰였다. 정력이 무서운 사람이였다. 오늘저녁에도 20리가 넘는 생눈길을 헤치며 걸어왔는데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이 칼날같은 기상을 하고 앉아서 조덕하와 무슨 론쟁을 하고있었다. 《누가 지금 우경으로 달아난단말인가요? 한사람 한사람 계급적인 저울에 달아서 인입시키고있는데 우경이 무슨 우경이요? 농민협회요, 부녀회요, 다 금싸라기같은 대상만 고르고있소.》 《글쎄 내가 말하는건 동무가 우경을 범한다는 소리가 아니란말이요.》 《그럼 무얼 범한다는 소리요?》 한기천은 조덕하의 말에 안경을 번쩍이며 마주보았다. 《우경인게 아니라 좌경이요. 글쎄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대중을 모여앉히고 선동연설이 무슨 선동연설이요? 지금 투쟁이 지하로 숨어들어가서 력량을 키우는 단계인데 그런 로출된 방법으로 뛰다가 어떻게 할 작정이요?》 《그 말은 내가 접수하겠소. 그렇지만 그것도 우리의 투쟁이 로출되지 않을 정도의 선동을 했지 누가 대중앞에서 사회주의를 선동했겠소? 어쨌든 나는 나를 우경이라고 비난한다면 피줄이 일어서우.》 그 소리에 조덕하는 껄껄 웃고말았다.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되였기에 한기천이 우경이냐 좌경이냐 하며 기를 돋구게 했는지 알수 없다. 김기준동지는 아무말 없이 아래목에 들어가앉아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사실 오늘밤 모임도 적이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수비대병력을 대기시키고있는 어려운 정황속에서 투쟁을 더 짜고들자는 토의를 하려는것이였다. 김기준동지는 자신이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게 되는만큼 이 문제를 각별히 단속해놓고 떠나려고 마음먹었다. 투쟁선상에서 그 어느 한코가 튀여도 전체에 영향을 줄수 있다는 생각이 늘 그를 잠못들게 하였다. 김기준동지가 들어간 뒤 얼마 안있어 경식이가 눈을 털며 들어섰다. 그는 상촌에서 달구지를 타고 내려올 때에는 건강이 말이 아니였는데 인젠 딴사람같이 되였다. 얼굴에 피빛이 시뻘겋고 몸도 난것 같았다. 《그래 갱에서 곧장 오는길이요?》 김기준동지가 경식이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밥집에 들렸다가 오는길입니다. 대서방에도 들렸댔습니다.》 《무슨 딴 정보가 없었소?》 《요샌 통 모르겠다는군요. 형사놈들도 가끔 바둑을 두러 오긴 하지만 아무 소리도 지껄이지 않는답니다.》 김기준동지는 담배연기를 푸- 내뿜었다. 경찰서근방에서 대서보는 대서인 한사람을 조직의 줄에 흡수해넣고 류치장소식과 놈들의 책략을 뽑아내오군했는데 요새 와서는 별로 정보를 쥘수가 없었다. 이런 조용한 사태가 더 불안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화약을 또 좀 뽑아냈습니다. 고갱속에 가니 3구에서도 화약이 좀 왔더군요.》 《3구는 지금도 어수룩하오. 그런데 1구갱들에서는 어떻게 해낼수가 없단말이요.》 1구의 갱들을 책임지고있는 《맹산사람》 조덕하의 말이였다. 사실 경식이는 여기 오는 날부터 차응도의 부탁대로 화약을 뽑아내는데 힘을 집중했다. 자기자신이 《관방》갱속으로 들어가 질통을 지면서 그 구의 여러 갱들에 널려있는 조직의 줄을 통제해가며 화약을 뽑아내왔다. 검거이후엔 어느 갱을 물론하고 놈들이 박아넣은 밀정의 눈들이 화등잔같고 갱구마다 감독이 지키고있었지만 그래도 용케 화약을 뽑아내왔다. 처음에 와선 그자신도 이곳 물정을 모르고 화약고를 들이치자는 제기도 했었다. 그런걸 모험을 하다간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사태를 더욱 격화시켜 이곳 혁명조직이 다 녹아날수 있다고 김기준동지가 막았다. 그리고는 갱속에서 은밀히 뽑아내게 하라고 그 방법을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그가 《관방》갱속으로 들어갔는데 일을 아주 실수없이 잘해나갔다. 김기준동지는 늘 경식이에 대해 투쟁속에서 훈련된 일군이 다르긴 다르다고 속으로 감탄하고있었다. 이날밤 김기준동지는 조덕하, 한기천, 경식이들과 밤이 깊도록 여러가지 문제들을 놓고 토론했다. 그는 세사람에게 언제나 어마어마한 적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투쟁한다는걸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다 동원해서 우리의 비밀을 지켜내고 적의 비밀을 뽑아내며 근거지와 유격대를 도우라고 했다. 《꼭 명심해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목적달성을 위해선 조성된 사태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낼줄 알아야 하고 그걸 리용할줄 알아야 한다는것을… 한기천동무는 우리가 대서쟁이를 우리의 영향밑에 인입했다고 좋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게 나쁠게 뭡니까? 벌써 이 사람이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가 형사들을 가까이 하는 인간이라고 좋지 않게 보는데 그럼 그놈들을 가까이 하지 않고 정보를 어떻게 뽑아냅니까? 물론 우리가 사람들과 손을 잡는데 높은 경각성을 가져야 합니다. 료해도 없이 그저 손을 내밀어 잡아당길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경계해야 할것은 사람을 죄다 어떻게 믿겠느냐고 하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 아무런 영향도 안주고 손도 내밀어보지 않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해가지고야 우리 혁명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가겠습니까?》 김기준동지는 언제나와 같이 침착히 앉아서 조용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리구 아까 한기천동무가 농촌들로 돌아다니며 대중을 모아 앉히고 선동연설을 했다고 조덕하동무가 나무랐는데 내 생각엔 선동연설을 하는게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왜놈들이 밀려들고 동네마다 반일감정이 앙양되고있는데 그속으로 들어가 김일성장군님의 혁명로선을 알으켜주고 그들을 각성시킨다는것이 왜 나쁘겠습니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걸 짜고드는 방법으로 안하고 로출된 방법으로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기천동무의 사업에서 또 한가지 문제로 되는것은 일단 교양을 주었으면 그 열매를 거두어들여야 하겠는데 대중을 조직에 묶어세우는데는 통 관심이 없는 그것입니다. 조직을 확대하는데서는 이를테면 핵심만 받아들인다는 구호를 앞세우고 가만히 앉아있는 그것입니다. 지금 옥천, 신개동청년들속에서 어떤 비난이 있는줄 압니까?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조직엔 안받으니 누가 섭쓸려 투쟁하겠느냐고 한답니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까? 일껏 교양을 준 보람이 이렇게 나타나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무슨 위친계나 뭇듯 사람이란 사람을 죄다 받아들여야 한단말입니까?》 웃구석에 앉았던 한기천이 얼른 얼굴을 들며 반문해나섰다. 《허허허, 그럼 한기천동무 말대로 핵심만 골라가지고야 언제 혁명력량을 다 묶어내겠습니까? 물론 막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적들도 밑으로 줄을 늘이고 움직이고있는 이때에 아무 고려없이 죄다 받아넣을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피동에 빠져 앉아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어디까지나 김일성장군님의 방침대로 먼저 주동에 서서 경각성을 가지고 대중조직을 확장해나가야 합니다.》 《그게 글쎄 막 받아들이지 말라는 소린데 나두 막 받아들이지 않는게 그렇게 하는겁니다. 막 받아들인다면 온 동네를 하루아침에 다 묶어세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을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습니까? 오합지졸로 혁명을 해낼수 있다고 봅니까?》 《허허허, 한동무, 그러지 말고 연구를 해봅시다. 원칙에서는 피차에 크게 의견상치가 없는것 같은데 실제 문제를 처리할 때는 한동무가 어떻게 하든지 우리 조직을 더 크게 더 든든하게 만들어서 혁명을 빨리 내밀자는 생각보다 이게 혹시 또 잘못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동지들의 의견이 그러니 더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김기준동지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혁명이 시련을 겪게 되여 그러는지 한기천은 점점 더 칼날같아졌다. 그래서 김기준동지는 그를 비판하면서도 늘 그 성미를 고려하여 알아들을수 있게 말하려고 더 많이 애를 썼다. 《끓기는 왜 그렇게 끓소. 여기도 비밀장소라고는 하지만 온 태봉거리가 지금 놈들의 감시속에 있다는걸 알아야 하우.》 조덕하도 한기천을 나무랐다. 한기천은 들은체 안했다. 경식이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다. 그는 언제고 낯빛이 심각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한것 같았다. 김기준동지는 경찰에 갇혀있는 사람들 문제에 대해 또 이야기를 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지금 류치장에 갇혀있는 사람들 문제입니다. 벌써 여러명 희생되였는데 앞으로 또 어떤짓을 저지를는지 놈들의 발악을 예견할수 없는것입니다. 지금 아다찌서장놈이 무서운 보복심리를 가지고 갇힌 사람들을 달구치며 비밀아지트를 알아내려고 합니다. 만약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엔 갇힌 사람을 죄다 죽일수도 있습니다. 형사놈들이 대서방에 나와서 보라, 공산당이 무고한 광부들만 <비둑바위>귀신을 만들지 않는가라고 했다는데 이게 그저 들어넘길 소리가 아닙니다. 바로 아다찌의 극악한 복수계획의 일단을 엿볼수 있게 하는 수작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류치장안의 동지들을 빨리 구해내오도록 대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선 이때까지 서로 마주앉기만 하면 토론을 했었다. 류치장의 습격을 조직해보려고 상촌유격대에 사람을 띄우기도 했다. 다른 한편 최광주놈을 달구칠 때처럼 태봉시의 로동군중을 죄다 들어일궈가지고 돌벼락으로 경찰서를 짓모아보자는 계획도 세워보았다. 그러나 수비대의 병력까지 들이밀린 조건에서는 어느 계획도 실천으로 옮길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 문제는 신중한 문제입니다. 장군님께 가시면 이 문제부터 말씀을 올려주십시오.》 조덕하의 말이였다. 그러자 한기천이 그 의견을 반대해나섰다. 《그건 무슨 말같지 않은 말을 하고있소. 그 말씀을 어떻게 장군님께 올린단말이요? 제 구역에서 벌어진 일을 제힘으로 해내고 가서 보고를 올린다면 몰라두 우리 구역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데 우리 힘으로는 해낼수가 없으니 장군님께서 처리해줍시사 이렇게 말씀을 올린단말이요? 일체 그런 말씀은 올리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 힘으로 그들을 구출해내야 합니다. 뼈다귀가 굵은것들이 혁명을 하면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장군님께 근심을 끼쳐드린단말이요?》 《허허허, 뼈다귀가 사람을 살려내는 재간을 가지고있소?》 조덕하는 낯을 붉히며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듣고보니 한기천의 말이 백번 옳은것 같아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경식이도 시종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엄숙한 어조로 한기천의 말을 옳다고 지지해나섰다. 그 역시 장군님께 심려가 될 그런 보고는 올리지 않는게 좋겠다는 심정이였다. 모임은 밤이 깊어서 끝났다. 한기천은 모임이 파하기 바쁘게 굵은 단장을 휘여짚고 허벅다리를 치는 생눈구뎅이를 테며 신개동쪽으로 떠나갔다. 표표한 얼굴에 약골이긴 했으나 정열 하나만은 무서운 사나이였다. 그러나 김기준동지는 그 정열이 도리여 안심되지 않아 그가 떠나간 뒤 또 한참 조덕하와 경식이를 앉혀놓고 한기천의 사업을 잘 보살펴주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나서야 그는 조덕하들과 함께 눈이 뿌리는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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