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20  회  )

 

제   7   장

 

1

 

희섭이가 태봉시에서 상촌근거지로 온것은 상촌에서 추수전투가 한창 벌어지고있을 때였다. 그는 로동자들 십여명에게 화약을 지워가지고 밤중에 혁명위원회에 들이닿았다. 혁명위원회 마당에서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수를 비벼서 턴다, 조이삭을 자른다 하며 웅성거렸다. 지주 리창근의 땅에서 난것을 가을해들여다가 혁명위원회 고간에 쟁이는것이였다. 군중은 로동자들이 짐을 지고 들이닿는바람에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해서 일손들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어데서 오는 피난민들이요?》

《피난민은 무슨 피난민이겠소. 태봉에서 오는것 같소.》

《그렇다면 화약짐이 아닌가요?》

《아마 그런것 같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화약이 왔다우.》

이사람 저사람 옆구리를 찌르며 서로들 알려주었다. 말은 안하나 모두들 속으로는 신바람이 났다. 요새 사람들은 내내 대문바위밖 큰벌에서 적과 싸우면서 추수를 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총이나 작탄이 없으면 추수도 못하려니와 상촌근거지가 위험에 빠진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군중은 추수를 하다가도 큰벌끝 상고개쪽에서 적을 격퇴하는 유격대의 총소리나 작탄터지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춤을 추며 기세를 올렸다.

《화약이 또 오는군요.》

어떤 사람은 짐을 내려놓고 땀을 씻는 로동자들에게 한마디 넌지시 던져보기도 했다.

《이걸 누가 화약이라고 합디까?》

《다 압지요. 그걸 광산에서 오는 화약짐인줄 모를 사람이 있는줄 압니까? 상촌사람도 꽤 눈이 밝답니다.》

그 소리에 로동자들은 껄껄 웃었다.

희섭이는 땀을 씻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도 빈몸으로 오지 않았다. 화약짐에다 경찰의 군도 한자루와 총탁이 떨어져나간 보총 한자루까지 얹혀가지고왔다. 동발막의 한기천이 짐이 무거운걸 세지 않고 동발목을 실어오는 달구지군들이 숲속에서 경찰을 때려넘기고 로획해온 무기를 가지고 가야 한다면서 짐에 찔러넣었다. 평생 짐을 져보지 않은 희섭이는 그통에 더 땀을 뺐다.

희섭이 사무실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새끼를 꼬고 섬을 틀고 법석을 한다. 피곤해서 누워자는 사람들도 많다. 량통으로 지은 집인데 방이 여러간이다. 그는 회장 차응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사무실엔 회장이 없고 적위대원들이 책상옆에 앉아서 보총을 분해해놓고 닦고있었다. 회장은 개암골유격대가 있는곳으로 올라갔다는것이였다.

《태봉에서 오셨다면 또 청년들을 데리고왔습니까?》

적위대원들이 물었다. 희섭이가 청년들도 왔다고 하자 적위대원 한명이 두덜거렸다.

《흥 또 입대하겠군.》

《입대가 무슨 입대야. 이번엔 문제를 세우잔말야.》

《남의 입대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문제를 세우나? 제 문제가 안풀린다고 남의 일을 훼방놓겠어?》

《일을 정당하게 처리하지 않으니까 하는 소릴세. 이건 태봉시에서 올라온 청년이라면 무조건 입대란말야. 그 사람들은 적위대다리도 건느는법이 없지 않어.》

들어보니 유격대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불평이였다.

《적위대에서 싸운지 오래 되오?》

희섭이가 물었다.

《한 댓달씩 잘됩니다.》

《댓달이요? 그까짓 댓달이나 가지고야 셈이 되오? 태봉에서 뽑아오는 청년들은 몇해씩 싸운 청년들이요.》

《아니, 그 동무들이 적위대투쟁을 했단말입니까?》

《적위대투쟁은 아니더라도 무기를 로획한다든가 왜놈을 슬쩍 천당으로 보낸다든가 하는 일은 펄 날지요.》

《말씀 마십시오. 가재두 게편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희섭이는 껄껄 웃었다. 역시 어디 가나 소박한 청년들이 있다.

손에 무장을 들고 쌈판으로 내닫지 못해 주먹이 찡찡 운다고 호소하는 청년들이 얼마든지 있다. 바로 혁명은 이렇게 농익었다. 일제의 미친듯한 공세는 그만치 혁명에도 새로운 변화를 주고있다. 인젠 오직 원쑤를 때려부시는 일만이 눈앞에 있다. 우리의 모든 잠재력량을 한시라도 빨리 들어일궈 원쑤를 쳐야 한다. 이게 오늘의 정세이고 혁명의 요구이다. 희섭이는 괜히 가슴속에서 홍두깨가 치밀듯 불끈해졌다.

사실 그는 은근히 불만을 품고 상촌으로 온 사람이였다. 그는 부암의 처참한 사변을 겪고나서는 사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도 그전엔 대중계몽을 하나의 중요한 투쟁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정력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러나 인젠 그러한 방법으로는 오늘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준엄한 혈전장과 아득히 떨어져있는 글소리가 무슨 소용이란말인가. 《우리는 어째서 가난하게 사는가?》 이런 토론을 해서 그게 언제 무슨 힘으로 되여 이 준엄한 싸움에서 용을 쓴단말인가. 희섭이는 오늘의 절박한 현실이 요구하는 피어린 싸움터에 새롭게 뛰여들 각오를 했다. 그래서 김기준동지를 따라 태봉으로 나갔던것이다. 원쑤의 밑창으로 뚫고들어가 로동계급과 함께 피의 결투를 벌릴 각오였다.

그런데 태봉으로 나간지 한달도 못되여 조직의 결정으로 다시 상촌으로 옮겨오게 되였다. 경식이의 말을 들으면 차응도가 근거지의 교육사업때문에 자기를 부른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야 지금 교육을 운운하는것은 얼빠진 소리같기만 했다.

(차응도가 시대착오를 범하고있어.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거던.)

희섭이는 내내 이 생각을 하며 상촌으로 올라왔다.

그는 적위대원들이 총을 닦는 곁에서 담배 한대를 피우고는 밖으로 도로 나왔다. 적위대원 한사람이 밖으로 따라나오며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저 미안하지만 무기는 가져온게 없습니까?》

《무기요? 부러진 총과 환도를 하나 가지고 왔지요.》

《부러진 총이요? 어디가 부러졌습니까?》

그는 희섭이가 토방에서 내려설가봐 팔소매를 붙들며 은근히 물었다.

《총탁이 부러졌소.》

《여보시오, 그럼 그걸 저한테 주십시오. 우리 적위대원들은 총 한번 메보지 못하고 그저 가슴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지금 저 총두 저 동무가 낮에 상고개쪽에서 자위단 한놈을 추격해가서 쳐넘기구 빼앗은건데 저녁때 유격대에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울었지요. 그리군 나더러 회장동지한테 함께 가서 총을 유격대에 넘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사정해보자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둘이 여기 와서 회장동지를 기다리는중입니다. 어떻게 그 부러진 총을 저한테 줄수 없겠습니까?》

《주지요, 주겠소.》

희섭이는 그 안타까와하는 정상에 감동돼서 당장 승낙을 했다.

그리고는 적위대원을 데리고 마당가로 나가 자기 짐짝에서 총을 뽑아 얼른 안겨주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청년은 한손으로 총을 붙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희섭이의 손을 잡으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긴 뭐가 고맙겠소. 총이야 왜놈을 잡는 무기인데 의례 동무들이 메야 할것이 아니요.》

《그래도 어데 그렇습니까? 지금 유격대에도 총을 메지 못한 대원이 더러 있는데 적위대원이 어떻게 총을 멥니까? 저 선생님…》

총을 받더니 당장 선생님 소리가 나온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걸음 더 각근히 다가섰다.

《선생님, 저한테 총을 주었으니 제가 끝까지 이 총을 메고 나서서 싸우도록 해주셔야 할것 아닙니까?》

《그야 물론이지요.》

《그럼 저… 회장동지보구 말씀도 좀 해주십시오. 부러진 총 한자루를 가지고 와서 적위대에 있는 조경남이란 외사촌애한테 주었으니까 절대로 빼앗지 말라구요. 만약 빼앗는다면 다시는 태봉에서 로획한 무기를 올려보내지도 않을테고 동지간에 의리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십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회장동지는 사람이 좋아서 쩔 맬겁니다.》

희섭은 폭소를 했다. 눈귀에서 눈물까지 솟아나왔다. 부러진 총이라도 가지고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가. 상촌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총문제로 이렇게 눈물을 자아내는 일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뜻밖의 소원을 푼 청년은 사무실로 도로 들어가지도 않고 곧장 사람들이 들끓는 아래모퉁이쪽을 돌아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자기 동무에게도 말하기를 저어하여 내빼는것 같았다.

청년이 간지 얼마 안있어 차응도가 혁명위원회 마당으로 들어서며 일을 서두르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그건 그만해두고 빨리들 큰벌로 나갑시다. 거둬들여온 곡식이야 어데로 가겠습니까? 큰벌에서 가을을 하는게 문제입니다. 벌써 개안촌과 룡신동에선 떠났습니다.》

《달구지들도 끌고 떠날가요?》

《달구지만 끌고 가겠소? 지게들도 지고 나갑시다. 한춤이라도 빨리 대문바위안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차응도의 소리가 떨어지자 사람들은 헤쳐놓았던 조춤들을 무져 세운다, 수수무지에 짚을 덮는다 하며 법석을 했다. 아침밥을 일찍 지어가지고 나오라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밤과 낮이 없이 들끓는 판이였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희섭동무 아니요?》

차응도는 사람들속에서 희섭이를 띠여보고 이렇게 소리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고들하십니다.》

《난 수고가 없습니다. 이거 정말 훈장님께서 수고를 했군요. 허허허.》

사람좋은 차응도는 롱을 던지며 희섭이의 손을 격동적으로 잡아흔들었다.

《여기서도 난을 겪는것 같습니다.》

《난을 겪구말구요. 요새는 큰벌이 무서운 전투장으로 되였습니다. 아직은 놈들이 대부대로 올려밀진 않지만 추수를 훼방하려고 어지간히 덤벼들고있지요. 그래 혼자서 왔습니까?》

《왜 혼자겠습니까? 화약두 좀 가지구 오구…》

《화약두?》

차응도는 너무 좋아서 또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화약을 지고 온 청년들앞으로 걸어가더니 일일이 악수를 하며 그들의 어깨를 흔들어주기도 했다.

《자, 들어들갑시다. 내가 없어서 한지에들 앉아있었댔군.》

《화약을 빨리 어데로 가져가야 할것 아닙니까?》

《가만, 그럼 우선 병기창으로 갈가? 참 이거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군.》

차응도는 희섭이의 말끝에 이러며 또 껄껄 웃는다.

얼마후 그들은 화약짐 진 청년들을 데리고 개안촌으로 건너갔다. 희섭이의 짐은 차응도가 지고 앞서서 걸었다.

《참 잘 왔습니다. 난 희섭동무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인제 근거지형편을 보면 알겠지만 일이 사태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가위에 적의 공세는 날로 심해지지…》

차응도는 다리를 걷어붙이고 물을 건느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희섭이가 그렇게 힘들게 지고 온 짐도 무거워하는것 같지를 않았다.

《학교라는것도 집을 거의 만들어놓다가 말았지요. 일이 자꾸 덮치는통에 그저 이 일 하다가는 저 일 하고 저 일 하다가는 이 일 하구 마구 뒤섞어놓고 뛰질 않습니까. 그때문에 경식동무한테서 비판도 좀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하루이틀에 수습이 됩니까? 교육사업이란 애당초 억망입니다. 인젠 희섭동무가 한몫 메고 나서야겠습니다.》

희섭이는 아무 대꾸를 안했다. 확실히 차응도는 잘못 생각하고있는것 같았다. 적이 코앞에까지 다가들어 총질을 하는데 교육을 운운할새가 있는가, 더 급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총이 없어 울고있는 청년들에게 우선 총부터라도 해결해주어야 할것 아닌가.

《근거지 간부들은 아무도 애들을 돌봐주지 못하고있습니다. 특히 의지가지없는 애들 문제는 중요한 문젭니다. 지금 기준동무의 누이동생이 자진해서 그런 애들을 맡겠다고 하기에 맡겨는 놓았는데 그 동무에게만 너무 짐을 지운것 같아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기준동무의 누이동생이라니 정숙동무말입니까?》

희섭이는 김정숙동지의 이야기가 나오는바람에 얼른 되물었다.

《그렇지요, 그 동무가 저도 아직 병을 다 덜지 못했는데 왜놈들의 〈토벌〉에 그슬리다 남은 우리 애들이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강가를 헤매돌면서 감자돌찜을 해먹으며 거칠어져간다고 울면서 호소할 때는 내 가슴이 불을 맞는것 같았지요. 정말 누가 그 애들을 돌아볼 경황이 있었습니까. 정숙동무의 말이 가슴은 아프지만 손쓸 방도가 있었어야지요. 그래 하는수없이 그 동무가 제기하는대로 어서 좀 거두어보라고 했지요.》

희섭이는 경식으로부터 정숙동무가 앓는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쨌든 그가 병이 다소라도 덜려서 무엇인가 일을 하겠다고 제기해나섰다니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또 아이들 일을 맡아나설건 무언가, 김기준동무의 누이동생이라면 아까 그 청년들처럼 총을 내라고 조르지는 못할망정…

희섭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줄은 모르고 차응도는 또 말을 이어나갔다.

《그 동무가 지금 그 애들로써 아동단을 꾸리고 애들 힘을 동원해서 합숙을 짓겠다고 뛰고있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둘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손포를 보태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다 도와주겠습니까? 인젠 희섭동무가 왔으니 내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는것 같습니다.》

《짐을 이리 보내시오. 병기창이 어데 있는지 인젠 내가 지고 가겠습니다.》

물을 다 건너간 희섭이는 차응도의 잔등에 있는 짐을 빼앗아졌다. 그는 차응도의 말을 이젠 한마디도 들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병기창은 깊은 골짜기끝에 있었다. 밤이 희붐하게 새가는데 벌써 나무숲속 귀틀집안에선 무슨 쇠소리들이 요란히 울리였다.

차응도와 희섭이 문앞으로 다가가니 청장년 대여섯명이 간데라불앞에 앉아서 쇠를 쓸고 두드리고 했다. 소탕에선 시뻘건 불이 펄펄 피여올랐다. 모루앞에 앉아 쇠를 두드리는 장정은 웃동을 벗었는데 넓은 가슴팍에 땀이 번질거렸다. 화약이 왔다는 소리를 듣자 바로 그 장정이 뛰여나왔다. 그는 땀이 난 몸에 적삼을 걸치며 희섭이와 악수를 했다. 손도 불덩어리같이 후꾼거렸다.

《참 수고들 했습니다. 저리들 갑시다. 화약은 따루 간수해두니까요.》

병기창 책임자 영택이는 앞서서 숲을 헤치며 올라갔다. 화약짐을 진 사람들도 모두 뒤를 따랐다.

귀틀집안에서 줄칼로 쇠를 쓸던 사람들은 화약이 왔다는 소리에 신바람이 났다. 그들은 인젠 성능좋은 작탄을 얼마든지 만들어 쌈터에 보낼수 있게 되였다고 떠들었다. 머리를 모아붙이고 연구를 거듭하니 습기가 차서 불발이 많던 결함도 퇴치할수 있게 되였는데 화약이 없어서 기세가 떨어졌었다. 바로 이런판에 화약이 들이닿은것이였다.

화약을 지고 올라갔던 사람들은 귀틀집으로 내려왔다. 희섭이는 차응도와 함께 영택이를 따라 병기창안으로 들어갔다.

《화약이 왔으니 또 버쩍 만들어내야겠소.》

《만들어내다뿐이겠습니까. 그저 무기는 작탄이 제일입니다.》

차응도의 말에 영택이 대답했다.

《작탄도 작탄이지만 총도 만들어보란말이요.》

《지금 만들어보는중입니다.》

정말 무슨 총부속을 깎은것인지 번쩍번쩍하게 쓸어놓은 쇠붙이들이 한쪽구석에 수두룩이 쌓여있다. 희섭이는 병기창사람들속에서 아까 총을 준 적위대의 조경남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들 뒤에서 고개를 끄덕하며 알은체를 했다. 조경남은 강을 건너오자바람으로 여기 와서 총탁을 만들어달라고 청을 했다.

병기창에서도 새것 못지않게 잘 만들어 붙여준다고 했는데 총곁을 떠나기가 아쉬워 여적 여기에 앉아있는것이였다.

그는 아까 희섭이와 한 약속이 있기때문에 배짱이 든든하기는 하였지만 한편 께름직하기도 하였다. 회장이 외사촌이요 뭐요하는 친분관계때문에 무기를 줄데다 안주겠느냐고 우겨대기만 한다면 방법이 없는것이다. 벽창호같은 차응도를 꺾어놓기엔 아직 자기따위는 이도 안났다.

차응도는 한참동안 이것저것 돌아보았다. 구석쪽에 놓여있는 작탄을 들어다가 추썩추썩 무게를 가누어보기도 했다. 그러는가 하면 수리해놓은 보총을 들어다가 한눈을 째긋하고 겨누어보기도 했다.

《희섭동무 총 한방 쏘아보지 않겠습니까?》

《무엇때문에 그런 실없는짓을 하겠습니까.》

희섭이의 대꾸에 차응도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희섭이는 차응도에게서 너무도 락천적인 인상을 받았다. 자기가 혁명을 생각하는것과 차응도가 혁명을 생각하는것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놓여있다는것이 여기서 드러나는것 같기도 했다.

혁명을 이렇게 락관적으로 받아들일수 있을가? 피바다 불바다를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이러는것일가? 혁명이 어떤 준엄성을 띠고있다는것을 심각히 인식하지 못하는 거기에 차응도의 놀라운 환상이 깃들 구석이 있는지 모른다.

희섭이는 먼저 병기창에서 나왔다. 차응도도 따라 나왔다. 그들은 화약을 지고온 청년들을 데리고 시뻘건 아침노을을 바라보며 골짜기를 내려왔다.

이날아침 차응도는 희섭이를 데리고 가서 짓다가 만 학교도 구경시켰다. 이영을 입히고 재벽까지 한 길다란 외채 집인데 지금은 학교가 아니라 살림집으로 씌여지고있다. 구들도 안놓은 장간방들에 보퉁이가 구석마다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죄다 추수전투를 나가고 늙은이들만 몇명 남아있는데 한 늙은이는 쇠약한 얼굴로 자꾸 기침을 했다. 마당엔 숱한 돌가마들이 걸려있다. 토방에도 풀을 베다가 깔았는데 아마도 방이 비좁아 밖에서도 자는것 같다. 두사람이 한창 집을 돌아보고있는데 큰벌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또 달려든 모양이군, 이놈들이 오늘은 주검을 얼마나 버리고 달아날터인고?》

차응도는 큰벌쪽,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유유한 태도였다.

《적이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아직은 상고개너머에서 쏘아대고있습니다. 놈들이 상고개를 넘어 큰벌로만 들어오려 해도 좀한 병력을 가지고는 안될것입니다. 요새 매번 상고개 저쪽에서 격퇴를 당하고있으니까요.》

도대체 상고개라는데 방어력량을 얼마나 튼튼히 배치했기에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렇게 큰소리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어쨌든 근거지가 지금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건 사실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집이 없어서 이렇게 아무데고 닥치는대로 들어서 살고있지 않습니까? 지금 산기슭마다 오두막들을 만들고있는데 그것도 추수때문에 빠르질 않습니다.》

《이런 집을 그냥 주택으로 쓰지요. 어느 하가에 집을 짓고있겠습니까?》

《아니, 학교는 열지 않구요?》

차응도는 눈을 흡뜨며 쳐다보았다.

《난 회장동무가 혁명을 너무 락관하는것 같습니다. 지금 원쑤들이 코앞에서 불질을 하고있는데 학교문제에 그렇게 머리를 쓸 여유가 있습니까?》

《언제는 원쑤들이 코앞에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적구에서도 학교를 운영했는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학교를 열지 못한대서야 됩니까?》

《이것은 바쁘다든가 어떻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근거지자체의 운명과 관련된 준엄한 싸움이기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그럼 희섭동무 눈에는 우리 근거지가 어떻게 잘못될것 같은 위구라도 느껴집니까?》

《위구가 아니라 아까 회장동무가 말한대로 적들이 날마다 미친듯이 공격을 가해오는 조건에서 이 귀중한 근거지를 지키는데 모든 힘을 총동원해야 할것 아닙니까. 그런데 학교요, 교육이요 하는 문제를 가지고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것 같단말입니다.》

《아니 그럼 우리가 언제 가면 적의 공격을 안받고 이 근거지에 있게 될것 같습니까? 그래 학교도 열지 말구 집도 짓지 말자 그겁니까?》

차응도는 못마땅한듯 낯을 붉히며 희섭이를 쳐다보았다.

사실 차응도는 본시에 락천적이기도 하였지마는 전날 경식이의 충고를 받고부터는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것이 아니라 허리춤을 푹 늦구어놓고 근거지를 근본적으로 튼튼히 꾸려나가리라는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기도 했었다.

《허허허, 회장동무는 너무도 락천가이군요. 글쎄 어느땐가는 교육문제도 응당 토론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좀 이르지 않습니까? 어쨌든 근거지를 지켜내고야 학교도 있을게 아닙니까? 선차적인것은 근거지입니다.》

《락천가라? 이거 희섭동무가 나한테 그럴듯한 이름을 하나 달아주었습니다. 뭐 내가 락천가가 돼서 나쁠거야 있습니까? 그런데 희섭동무, 근거지의 교육문제를 다른 일과 따로따로 갈라놓아서는 안될줄 압니다. 하기는 이게 복잡한 문제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희섭동무를 청한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교육이 없는 근거지라는거야 근거지라고 말할수 없지 않습니까.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근거지창설방침을 관철하자면 반드시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내 말을 근거지에서 아예 교육을 없애자는 말로 리해하진 마십시오. 준엄한 현단계에 맞게 보다 선차적인 문제에 주목을 돌리자는 그겁니다. 지금 혁명과 반혁명사이에 철화가 엇갈리고있는 한복판에 앉아서 언제 교육이니 집이니 하고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난 회장동무와 무슨 원칙문제를 가지고 론쟁을 해보자는것도 아닙니다. 나는 혁명을 하고싶습니다. 아이들더러 당분간 참아달라지요. 그러면 어느땐가는 나도 아이들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좀더 본격적인 혁명의 초소가 필요합니다. 나는 심장의 붉은 피를 쏟으며 투쟁하고싶습니다.》

《음 한마디로 말해서 학교선생노릇을 못하겠다는 말씀이군요. 좀더 본격적인 초소라? 허허허, 그건 몸부림입니다. 우리 혁명은 그런 몸부림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그게 무슨 몸부림이란말입니까?》

《그럼 그것이 똑똑한 정신으로 하는 소리란말입니까? 그렇다면 견해를 고쳐야 하겠습니다. 아주 잘못됐습니다. 혁명은 희섭동무에게 아이들을 가르칠걸 요구하고있습니다.》

《그건 혁명이 아니라 회장동무가 그렇게 요구하는것 같습니다.》

《무얼 보고 그렇게 말합니까? 이 차응도도 혁명의 요구앞에선 쩔쩔매고있습니다. 며칠 두고 보십시오. 집을 지어야 되겠는가 짓지 말아야 되겠는가, 학교를 열어야 되겠는가 열지 말아야 되겠는가 하는것을 희섭동무자신이 잘 알수 있을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떤 개인의 요구가 아니라 우리 혁명의 요구입니다.》

차응도는 곁에 있는 등상널판자를 두드렸다. 눈에서 불꽃이 튕기였다. 그러나 그는 이어 부드러운 표정으로 희섭이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잔등을 밀었다.

《가십시다. 밤새 무거운 짐을 지고와서 몸이 무척 피곤할텐데 빨리 가서 조반이나 자시고 푹 쉬십시오. 난 곧 큰벌로 나가야겠습니다.》

희섭이는 말을 못하고 차응도와 함께 학교마당에서 걸어나왔다. 좀더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싶었으나 차응도가 한마디로 막아버리는것 같기에 그만두었다.

 

 

2

 

애들이 여기저기 산에 널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깔나무에 쓱삭쓱삭 톱질을 하시였다. 저편에선 인수가 톱질을 하고있다. 톱 둘로 나무를 베는데 애들은 두곳에 둘레를 치고 서서 떠들썩하게 끓었다. 인수가 나무를 베는곳에선 짝짜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또 어제처럼 장수라는 애가 코를 쥐고 바이올린을 켜는지도 모른다. 장수란 금페 아이인데 코를 쥐고 꼬챙이로 팔때기우를 긋고 당기고 하며 코소리를 내는것이 신통히도 바이올린소리 같았다. 그래서 애들을 종일 웃겼다.

《누나, 내기하자구요.》

인수네편 아이들속에서 한 애가 이쪽에 대고 소리친다.

《무슨 내기를 하자는거냐?》

김정숙동지를 둘러싸고 선 애들이 응답을 했다.

《누가 빨리 베넘기는가 내기하잔말야.》

《피, 네까짓것들이 우릴 당해?》

《못당할게 뭐냐? 우린 벌써 톱날이 절반이나 먹어들어갔어.》

《우린 절반 더 들어갔어.》

어느쪽에서도 애들은 자기가 먼저 톱질을 해보겠다고 남을 밀치며 나섰다. 애들은 자기가 하면 단숨에 퍽퍽 베낼것 같아 승기를 돋구었다. 그렇지만 정작 톱을 안겨주면 몇번 안당겨 숨이 차서 헐헐했다. 어젠 나무를 잘못 베서 톱날이 나무속에 들어가 박혔다. 그걸 뽑느라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를 먹으시였다. 어쨌든 산에서는 매일 개미역사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톱질을 하다가 땀을 씻으며 일어서시였다. 뒤에 다가서있던 애가 얼른 톱을 받아쥐였다.

《덤비지 말고 톱날을 곧추 내밀고 당기고 해야 한다.》

《예…》

톱을 받아쥔 애는 기운차게 대답을 하며 톱질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수들이 나무를 베는곳으로 걸어가시였다.

《누난 우리가 이길것 같으니까 우리편으로 와요?》

《난 바이올린소리 들으러 왔어. 오늘은 왜 바이올린을 안켜니?》

한 애의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 대꾸를 하시자 애들은 손벽을 치며 웃었다. 장수는 수집어하며 뒤로 비실비실 쫓겼다. 그는 바이올린을 잘 켜도 아직 누나앞에선 켜본적이 없다. 인수도 톱을 딴 애한테 넘겨주고 일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수의 새까맣게 된 중의적삼을 보니 가슴이 아프시였다. 갈아입힐 옷이 없어서 빨아주질 못하고있다. 기송이가 부암에서 입고 온 옷을 주려고 했는데 인수보다 더 어지러운 옷을 입고있는 애가 있어서 그 애한테 주고말았다. 인제 그 애의 옷을 빨면 인수에게 줘야겠다. 그 다음 인수의 어지러운 옷을 빨아선 또 딴 애를 주고… 인제는 네것 내것을 가릴수가 없게 되였다. 폭풍에 휘몰리여 한곬으로 모여든 이 어린것들이 서로 바꿔 입으면서라도 때가 끼지 않은걸 입고 살아야 근거지에 찾아온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정말 지금 근거지 형편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러기에 강가에서 아이들을 만난 이튿날 주먹을 부르쥐고 혁명위원회를 찾아갔다가도 애들이 있을 집과 입성이야기따위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애들 정상이 딱하니 그저 자기가 맡아서 거두겠노라는 말씀을 하셨을뿐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추수전투를 조직하느라고 애쓰는 차응도회장이 그때 애들이 무슨 애들이냐고 발을 탕 구르며 으름장을 놓고는 이어 그렇게도 미안해하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시였다. 그렇게 사람좋은 회장아저씨가 애들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돌보지 못한다고야 그 누가 생각하겠는가. 중첩되는 어려운 형편이 몸으로 느껴지기에 혁명위원회에서 단 한마디를 하고는 총총히 돌아서 나오시였다. 그러니 인젠 누구에게 기대를 걸고 앉아있을수도 없는것이였다. 어려운 근거지일을 한가지씩이라도 맡아가지고 풀어나가지 않으면 이 귀중한 새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베는 일에 달라붙으시였다. 이렇게 한대한대 기둥감을 장만하고 도리감을 마련하여 애들이 살 집을 지어내시려는것이였다.

얼마후에야 나무들의 웃도리가 우줄우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들이 환성을 지르며 나무를 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나무가 먼저 넘어가는가 하는 경쟁심리에 들떠서 량쪽에서 법석 떠들어댔다. 나무가 연거퍼 벼락치는 소리를 내였다. 서로들 자기네편이 이겼다고 야단들이였다. 숱한 바이올린소리가 울리였다. 애들마다 장수의 흉내를 냈다. 그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도 소리를 내여 웃으시였다

나무를 다듬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무기장을 재고 톱으로 톳을 치는 일도 벌어졌다. 이것도 아이들의 개미역사로는 만만치 않은 일이였다.

그들은 한낮이 거의  되여서야  나무통  네개를  맞들고 굴리고 하면서 산밑으로 내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내 긴장해서 앞뒤를 살펴보며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시였다.

어젠 하마트면 나무를 끌어내리다가 리상준의 조그만 조카애의 발목을 으깨여놓을번했다. 그래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이 다칠가봐 각별히 신경을 쓰시였다.

나무를 산밑에 끌어내려다놓은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더러 좀 쉬라고 하시였다. 모두 땀을 철철 흘리였다. 그래도 태호는 흰이가 보이게 발씬 웃는다. 김정숙동지껜 가슴을 저며내는것 같은 웃음이였다.

《땀을 씻어라!》

모두 시키는대로 땀을 씻었다.

《너희들 저 소리가 무슨 소린지 누가 한번 말해보겠니?》

애들은 서로들 두리번거리며 마주쳐다보았다. 여기선 큰벌쪽에서 나는 총소리가 그렇게 가깝게 들리진 않았다. 그래서 애들은 누나가 총소리를 두고 묻는다는걸 인차 알아채지 못했다.

《저 소리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니?》

《큰벌쪽에서 나는 총소리말인가요?》

인수가 이렇게 반문했다.

《그럼… 저 총소리에 대해서 누가 좀 말해보지 못하겠니?》

《그 총소리는 왜놈들 총소리야요.》

《얘, 왜놈만 총을 쏘니? 우리 유격대는 총을 안쏘니?》

《그렇지만 왜놈이 먼저 쏘니까 우리 유격대가 쏘는거지뭐.》

애들은 서로 싱갱이를 하며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땀을 씻으며 애들의 얼굴을 돌아보시였다. 못먹고 한지에서 잠을 자는 애들인데 지금은 그래도 비지땀에 젖은 볼들이 익은 복숭아같이 붉다. 이 어린것들을 어떻게 해야 잘 키워낼수 있을가. 이런 순간에 무슨 말을 해줘야 애들에게 교양이 될수 있을가.

《얘들아, 왜놈들이 어째서 큰벌에 와서 총을 쏘는지 아니?》

《그건 곡식을 거두지 못하게 하느라고 그러는거야요.》

《곡식두 못거두게 하구 사람도 죽이자고 그래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죽이자구 그러는거냐?》

《우리네 사람을 죽이자구 그래요.》

《옳다. 우리 조선사람을 죽이자고 그러는거란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동생들이나 누나를 죄다 죽여없애자고 그러는거란다. 그러니깐 우린 무슨 생각을 해야 하겠니?》

《원쑤갚을 생각을 해야 돼요.》

애들이 목소리를 합쳐 대답했다.

《그담 또?》

《나라 찾을 생각도 해야 돼요.》

벌써 김정숙동지자신께서 여러번 가르쳐주신 말씀이였다. 오늘은 그 말이 나오도록 이끌어가니 애들이 제법 대답을 잘했다. 어쩜 이렇게 기특할수 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반짝이는 눈들이 애타게 찾고있는걸 죄다 대주지 못하는것이 못견디게 안타까우시였다.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는 싸움이 벌어지는 큰벌 추수전투장으로 애들을 데리고 갈 생각을 하시였다. 아이들에게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근거지를 지키는데 우리도 한몫 한다는 자부심도 키워주고 또 근거지가 얼마나 피어린 싸움속에서 억세게 새생활을 창조해나가고있는가 하는것을 제눈으로 똑똑히 보게 하는것도 필요할것 같아서 차응도회장에게 제기하시였다. 그랬더니 차응도는 엄한 낯빛으로 그 청을 거절해버렸다. 우리가 애들 집 하나를 못지어주어서 그 불쌍한것들이 고생하는것만도 보기가 가슴아픈데 총알이 비발치듯하는 쌈판에까지 애들을 끌어내겠느냐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니 그런 생각은 아예 그만두는게 좋겠다고 엄하게 말했다. 차응도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역시 옳은 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속에서 자신도 알수 없게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는 새로운 생각들과 몸부림치는 피투성이 현실사이에 끼워 숨가쁘게 허덕이는듯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호 한숨을 지으시였다.

《자, 그만하구 나무를 메구 가자.》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김정숙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애들이 달려들어 나무를 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 나무톳에도 애들을 마구 붙이지 않으시였다. 무게가 있는 대가리쪽엔 큰 애들을 붙이고 가벼운 꼬리쪽에는 꼬마들을 붙이시였다. 그러나 역시 어느 나무톳에서도 꼬마들이 힘이 부쳐서 배틀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꼬마들을 부축하느라고 이 나무톳으로 달려가고 저 나무톳으로 달려가고 하시였다.

《자, 개울이다. 덤비지 말고 건느자.》

《우린 개울이 더 좋아요. 다리가 시원해서…》

물을 건느다가 장수가 배틀거리며 군드러졌다. 애들이 또 한번 소리를 내여 웃으며 바이올린통 깨졌다고 야단들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달려가서 물이 좔좔 흐르는 장수를 들어일으키시였다.

애들은 얼마후에야 집터에 이르렀다. 모두 땀으로 미역을 감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땀을 얼마나 흘리시였는지 적삼이 물주머니가 되였다.

합숙집마당에서 절구질을 하던 리상녀가 집터쪽으로 뛰여나왔다.

《온 이런, 우리 조마구식구들이 수고를 했구나. 어째 집을 짓는다는게 빈말같다 했더니 조무래기들 역사로도 지어낼것 같애. 어이구 이렇게 무거운걸 또 네톳씩이나 끌고왔군.》

리상녀는 흙에 짓이겨 껍질이 벗겨진 나무통 대가리를 추썩 들어올려보며 혀를 끌끌 찼다.

《헹, 어머니가 또 댕댕이를 동였네. 민가네 두부함지처럼...》

《요녀석, 골이 지끈거려서 동였지 민가네 두부함지는 무슨 두부함지냐?》

꼬마둥이 태호가 놀려주자 리상녀는 애정이 뭉클해서 주먹질을 했다.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강가에 흩어져 사는 애들을 무데기로 몰고 와서 합숙곁에다 새로운 큰 합숙을 짓는다 어쩐다 하며 일을 시작하신 뒤부터는 신역이 고되여지긴 했으나 어쩐지 세상이 활짝 개인것 같기도 해서 매일과 같이 성수가 났다. 정말 요새는 차응도회장이 롱으로 시켜주던대로 애들의 볼기짝을 꽝꽝 때리기도 했다. 성재를 키울 때에도 그의 애정은 그렇게 나타났다. 인젠 그것이 눈물과 사랑의 무기로 되였다.

《아까 가을을 나가던 웃골사람들이 집터에 들려보고 입을 딱 벌리더구나. 어디서 이렇게 이악스러운 처녀가 왔는가고… 그러면서 조무래기들 힘으로 집을 짓자고 하는데 자기네들이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하길 짝이 없다고 하질 않겠니.》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겠어요? 지금 이 근거지에 어른들 할 일이 얼마나 많게 애들 집짓는 일에까지 손을 돌리겠어요. 그저 우리는 혁명위원회에서 애들 먹을 량식이나 좀 대주면 얼마든지 살것 같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상녀의 말에 대꾸하셨다.

《량식이야 싸움을 하면서도 갈을 해들이니까 걱정이 없겠지. 그런데 천이 걱정이구나. 룡신리쪽에 토목이 좀 있다고 하면서 회장이 그걸 사내려오기라도 해야겠다고 하던데 아마 뜻대로 안되게 천 가져가라는 말이 없지. 저것 봐라, 저녀석두 오늘 중의를 째놨구나. 저 시뻘건 무르팍을 어떻게 하누?》

《제가 이따가 기워주겠어요.》

《그저 속이 크다. 난 언제나 네 말을 들으면 맘이 든든해서 좋구나.》

《그런데 이 애들은 모두 어떻게 됐어요? 개울가에서 돌을 주어들이라고 했는데 돌두 얼마 주어들이지 않구 어데로 갔어요?》

《기송이들말이냐? 참 얘, 그 애들이 큰벌로 나갔단다.》

《아니, 큰벌엔 어째서요?》

《그 갈미봉에서 왔다는 애 둘이 오늘 또 일을 저질렀단다. 글쎄 그 애 둘이 큰벌에 총쏘는 구경을 나간다고 내뺐다는게 아니냐? 그래서 기송이녀석이 이자식 붙잡아와야 한다고 으르면서 애들을 휘동해가지고 나가질 않았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을 안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애들과 함께 나무통들을 들어다가 이미 쌓아놓은 재목더미우에 올려쌓으셨다. 인젠 귀틀집 하나 지을만한 재목은 될것 같으셨다. 김정숙동지의 생각에는 이만큼만 더 재목을 찍어다놓고 혁명위원회에 찾아가 목수 한사람만 보내달라고 부탁하면 될것 같으셨다. 그이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애들 손으로 할 일을 다 해놓고 어른들 손을 빌자고 마음가지셨다. 그래서 오늘 기송이에게도 애들을 십여명 데리고 개울가에서든 어데서든 납작납작한 구들돌들을 주어들이라고 이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안하였으나 애들이 큰벌로 내뺐다니 어쩐지 가슴이 떨리시였다. 지금 애들의 생활에 규률을 세워보자고 하는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것도 좋지 않거니와 총알이 비발치듯하는곳으로 내뺐다는것은 도저히 가만두실수가 없는 일이였다. 차응도회장에게 제기하셨던것도 추수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데리고 나가자는것이였지 총쏘는데로 나가자는것은 아니였다. 철없는것들이 제멋대로 내뺐으니 어데 가 무슨 변을 당할지 뉘 알랴! 부암에서도 일은 그렇게 벌어졌다. 그날 아침에도 애들이 모두 안개더기우에 있기만 했다면 어느 한 애도 목숨을 잃진 않았을것이다. 그렇게도 여럿을 땅속에 묻게 되지는 않았을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애들더러 먼저 합숙마당으로 나가 점심을 먹으라고 이르고는 개울가로 나오셨다. 세수를 하자고 물가에 앉았으나 물을 움켜올릴 생각이 없으시였다. 아무래도 큰벌에 간 애들의 일이 불안스러우시였다. 기송이가 데리고 간 애들이야 물덤벙술덤벙하며 위험한데로 마구 뛰여들지는 않겠지만 총쏘는 구경을 하겠다고 먼저 내뺐다는 철이와 홍갑이란 그 말썽꾸레기들이야 무얼 무서워하고 무슨 조심을 할것인가. 그 애 둘은 강가에 있는걸 몰아가지고 오던 그날밤부터 말썽을 부렸다. 첫날밤 애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강냉이를 두어이삭씩 삶아먹이고는 마당에 빼곡 눕혀서 재웠는데 철이와 홍갑이는 밤중에 달아나버렸다. 이튿날 아침에야 애들이 없어진걸 알고 사방으로 찾으러 떠났다. 점심때가 거의 되여서야 개안촌 맞은편 바로 그 강가에서 감자를 구워먹고있는 그 애들을 발견했다. 도로 합숙으로 들어가자고 하니 강가만 못하다고 씩둑대며 손목을 잡아끄는 애들한테 발길질을 했다. 몸집이 앙바틈하게 생긴 철이란 애가 더 도리질을 하며 안들어간다고 버티였다. 나이도 홍갑이보다 몇살 더 먹고 어떻게 험하게 굴며 자랐는지 주먹의 뼈마디도 돌같이 여물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찾으러 간 애들과 쌈이라도 할것 같았다. 그런걸 겨우 달래서 이끌고 들어오셨다. 그날저녁엔 심술이 나서 합숙에서 지어주는 수수밥도 먹지 않았다. 그러고는 제 적삼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어가지고 온 구운 감자를 먹고 잤다. 그통에 홍갑이도 밥을 못먹고 눈총을 쏘며 내밀어주는 철이의 감자 몇개를 얻어먹고 그의 곁에서 잤다. 홍갑이는 철이의 손탁에 들어 그 애가 하자는대로 했다. 그러나 그도 만만치 않게 밸이 셌고 빠르길 새매 같았다. 감자를 구워먹어도 철이는 슬슬 돌굿이나 만들었고 감자를 캐들인다 나무를 한다 하는것은 죄다 홍갑이가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두 말썽꾸레기를 타이르기도 수없이 타이르시였다. 꾸중도 하고 달래기도 하시였다. 그래서 좀씩 나아지는것도 같았고 다른 애들과 기분이 나서 섭쓸리는듯한 눈치도 뵈여 얼마쯤 맘이 놓이기도 하시였다. 그런데 오늘 또 이런 일을 저질렀다. 아침에 나무를 베는데 가자고 바싹 이끌지 못한 일이 후회도 되시였다. 개울에서 미역도 감으며 돌을 주어들이겠다고 하는걸 억벌로 이끌고 가는게 더 좋지 않을듯싶어 어서 그러라고 내버려두시였다. 둘이는 벌써 그때 큰벌로 내뺄 계획을 가지고있었던게 틀림없다.

물가에 앉으셨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세수도 못한채 불쑥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큰벌을 향해 떠나시였다. 아무래도 총알이 날아가고 날아오는 속으로 애들이 쏘다니다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것만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랴부랴 걸어나오시다가 사람들이 들끓는 혁명위원회마당에 들리시였다. 애들이 큰벌에서 들어오다가 행여나 거기 들리지 않았는가 해서였다.

혁명위원회마당에선 곡식을 날라들이는 사람들이 곁사람도 알아볼새 없이 서두르며 돌아갔다. 오늘은 조고 수수고 전부 이삭을 잘라서 날라들였다. 곡식은 들어오는족족 사무실옆 두간방에 처넣는데 벌써 한쪽 방엔 수수이삭이 가득차고 다른 한쪽 방에도 조가 거의 찼다. 농민들은 조가 문통으로 밀려나오는것을 곰배로 밀어넣으며 인젠 지고 온 조를 다른 곡식뒤주에 가져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당에서도 수수짚으로 곡식뒤주를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수수짚으로 뱆은 나래를 둘러쳤다. 미처 뒤주를 만들지 못해 조마대를 지고 들어온 농민들이 마당에다 조이삭을 쏟아놓으며 되짚어 빨리들 나가자고 했다. 어떤 마대의 조이삭에선 김이 문문 풍겼다. 아침에 이슬맞은 이삭을 잘라서 다져넣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젖은 조는 마른 조와 섞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부리나케 갈퀴질을 했다. 여기서 벌어진 일도 큰벌일 못지않은 전투인것 같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이 보이지 않아 얼른 돌아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바삐 혁명위원회앞 큰길로 걸어내려가시였다. 대문바위쪽으로 한창 걸어내려가시는데 군복을 입고 총을 멘 최정수가 급하게 걸어올라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가 유격대에 입대했다는 말은 들으셨는데 이렇게 군복을 입은 름름한 모습을 처음 보시였다.

《응 이게 누구요? 참 정숙동무가 상촌에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인제야 보는군!》

《나도 정수오빠가 입대했다는 말은 들었어요.》

《흥, 내 입대문제가 굉장히 소문났을텐데 동문들 못들었겠소?》

사실 최정수는 부암에서부터 벋장다리를 휘둘러대며 경식이와 쌈싸우듯하고 상촌으로 들어왔는데 여기 들어와서도 그 다리가 말썽이 되여 유격대엔 들어가지 못하고 병기창에서 일했다. 이렇게 되자 그는 화가 동해서 무르팍에 생지황찜질을 시작했다. 그게 효과가 있어서 다리를 놀리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담엔 신바람이 나서 매일같이 혁명위원회와 개암골병실로 찾아다니며 다리를 휘둘러보였다. 이렇게 되여 얼마전에야 겨우 유격대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래 정수오빠는 지금 개암골병실에 있어요?》

《개암골병실에두 있구 상고개에두 나가있구 뭐 안다니는데가 있소? 정숙동문 지금 어데서 뭘하구있소? 아니 참 애들과 같이 무슨 집을 짓는다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어하며 대답을 못하시였다.

《그래 집은 어데다 짓소?》

《여기서 좀 올라가서 산기슭에 지어요.》

《뭘루 짓소? 애들과 함께 짓는다는걸 보니 수수대로 짓는것 아니우.》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시였다.

《동문 지금 혁명의 불길이 하늘을 찌를것 같이 타오르고있는데 할일이 없어서 그런 일을 하오? 그러지 않아도 내가 동무를 한번 만나자고 했소. 그래도 동무가 근거지에 들어왔으면 오래비를 생각해서라도 혁명을 해야지 조무래기들을 모아가지고 집을 지어? 혁명위원회에서도 일을 치지 못한다고 그만두라고 하는걸 동무가 우기고 짓는다구?》

《아이참…》

《그래 혁명할 각오가 없이 여기 들어왔단말이요? 어머니와 올케를 잃어버리구 여기 그저 들어왔소?… 애들과 섭쓸려 그런 장난이나 하자구 들어왔단말이요?》

《그게 장난이예요?》

《그럼 뭐요. 그게 혁명이란말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을 못하고 속눈섭밖으로 넘쳐나오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외면해버리시였다. 너무나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외면한채 최정수의 옆으로 비키며 걸어나가시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실수도 없으려니와 설사 털어놓는대야 리해해줄리도 만무한것이였다. 그저 울음이 터져나올것 같아 잘 가라는 인사고 뭐고 풀섶을 차며 마구 걸어가시였다.

《하기는 내 말이 좀 아프기야 할테지. 하지만 동무가 그럴 처지가 못된다는것을 왜 모르느냐말이요. 그렇게 똑똑하던 동무가…》

최정수는 혼자 중얼대며 뛰여가시는 김정숙동지의 뒤모습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생각같아선 좀 더 붙들어세우고 타일러주고싶었다. 차라리 제가 겪은 설음에 짓눌려 울고나 있다면 모를 일이였다. 어쩌면 원쑤갚을 생각은 안하고 아이들을 휘동해가지고 다니며 그런 일을 할가, 그는 김기준동지를 생각해서라도 언제든 다시 만나서 단단히 말해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급히 돌아섰다. 사실 그도 바쁜 길을 걷고있는중이였다. 그는 지금 장군님을 만나뵙고 돌아오는 김봉석중대장이 방금 대문바위병실에 당도했다는 기별을 가지고 차응도회장을 찾아가는길이였다. 최정수는 얼마후에야 맘이 좀 훈훈해졌다. 그는 자기의 어깨우에 메였던 38식보총을 벗겨내려 번쩍이는 총신을 제자식의 등어리나 쓸어주듯 한참 쓸어주며 걸었다. 얼마나 기특한 물건인가. 오늘도 바로 이 총으로 일본놈 다섯을 쏘아눕혔다. 방아쇠를 당기고 어깨에 충동이 오고 하는 때면 벌써 적병은 나가 너부러지군했다. 한놈은 상고개벼랑으로 올라붙다가 총알에 맞아 우죽뿌죽한 바위코숭이에 이리짓쫏고 저리짓쫏고 하면서 한참이나 굴러내려갔다. 아마도 놈은 군복속에서 각이 다 떨어져나갔을것이다.

최정수는 그 생각을 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독수리가 창공에 뜬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문바위쪽으로 나가며 줄곧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을해들이는 사람들이 번거롭게 쏘다니는 큰길로도 못가시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눈에서 눈물을 보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산밑으로 다가가서 오솔길을 걸으시였다. 정말 내가 혁명을 하러 들어와서 일을 잘못하고있지나 않는가? 지금 저기선 총소리가 나지 않는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있다. 그런데 난 지금 무얼 하고있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최정수의 꾸짖는 소리가 옳은것도 같아서 풀섶에 털썩 주저앉으시였다. 오빠가 혁명을 잘하라고 하던 말을 저버리지 않았는가. 가슴속이 답답하고 몸부림치고싶도록 안타까와지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참 앉아서 풀을 쥐여뜯으며 생각하니 어쩐지 반발심이 일어나기도 하시였다. 이게 혁명이 아니라면 저 애들은 죄다 어떻게 된단말인가.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저 어린것들을 아무도 거둬주지 않고 그 강가에 그냥 내버려둔단말인가. 그게 혁명이고 혁명이 아니고를 따져선 무얼하는가. 여긴 왜놈과 지주놈이 없는 근거지다. 우리 맘대로 할수 있는 우리의 세상인데 부모가 없는 저 애들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을 주고 살 집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더러 일도 못칠게 집짓는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것은 어쩌면 옳은 말일는지 모른다. 차응도회장도 집이 무슨 집이냐고 발을 굴러쳤다. 그럼 일을 칠만한 사람들이 나서서 저 애들이 들어 살게 집을 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동안 풀밭에 앉아 몸부림을 치고싶은 생각에 시달리시였다. 그 누가 애들을 거두는것 역시 우리 혁명에 필요한 일이라고 단 한마디라도 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가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러다가 문득 큰벌로 나간 애들이 총알에 맞아 피를 흘리고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를 악물고 풀섶을 헤쳐나가시였다. 또 총소리가 한바탕 울리였다. 대문바위를 훨씬 지나 상고개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다. 아무리 살펴보아야 큰길에 애들의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벌써 점심때가 지났는데 어데 가있기에 나타나지 않을가. 이야기를 들으면 놈들은 매일 큰벌 저쪽 상고개에서 총질을 하다간 밀려난다고 하는데 철이와 홍갑이가 총쏘는 구경을 간다고 내뺐다니 상고개쪽에 가있을건 틀림없다. 그렇다면 애들을 붙들러 간 기송이들도 그리로 내달아갔을게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뜩한 생각이 드시였다. 상고개가 어디라고 거기까지 찾아간단말인가.

그이께서는 오솔길을 한참 급하게 걸어서야 큰길에 나서시였다. 그 큰길이 대문바위밑 골짜기로 빠져나갔다. 큰길엔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으로 길이 메였다. 달구지가 낟알을 집채같이 싣고 굴러들어오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나가다가 큰 밥함지를 이고 대문바위밖으로 나가는 웬 아낙네를 만나시였다. 아낙네의 잔등에선 어린애가 발버둥질을 하며 울었다.

《아주머니, 어린애를 이리 줘요. 내가 빈몸으로 나가는데 업어다드리겠어요.》

《어이구 고맙수. 어서 좀 그렇게 해줘요. 한말어치 점심밥을 해이구 뜀박질을 하려니까 목에서 겨불내가 치미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린애를 받아서 업으시였다. 뜻밖에 인남이가 등에 와 업히는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시였다. 꼭 인남이만한 어린애였다. 그 보고싶은 어린것은 지금 어데 가서 누구의 가슴을 쥐여뜯으며 젖을 달라고 울고있을가. 오빠가 안고가긴 했으나 그것이 고생없이 자라리라고 어찌 믿을수 있는가. 불시에 덕지 앉은 상처를 건드린것 같이 가슴이 쓰리고 아리시였다. 단 한번이라도 그 방실방실 웃던 얼굴을 보았으면싶으시였다.

대문바위골짜기를 넘어서니 앞이 탁 터진 넓은 벌이였다. 근거지사람들이 가을을 해들인다고는 했으나 어느 귀퉁이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지 모를만치 벌이 넓다. 하긴 상촌지역의 여러 동네가 죄다 달라붙어 농사를 지어먹는 땅이니 넓을밖엔 없다. 산이 우중충 서있는 상고개쪽이 내다보이는데 지금은 전투가 없는지 조용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들을 따라서 바삐 벌길을 걸어나가시였다. 아직 가을을 한 밭은 한뙈기도 보이지 않았다. 상고개쪽에서부터 먼저 거두어들여오는 모양이였다. 정말 상고개쪽에 거의 가니 이밭 저밭에서 와실거리는 소리가 들리시였다. 사람들이 조나 수수를 선채로 두고 이삭을 잘라내는것이였다.

《인젠 애기를 이리 보내우. 그리구 어서 들어가 이삭을 잘라요. 우리 룡신동사람들은 저쪽에서 가을을 한다우.》

밥을 이고 나오던 아낙네가 이러며 잔등에 업힌 애를 달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기를 아낙네의 잔등에 업혀주시였다. 아낙네는 어데로 가는것인지 밭고랑으로 내려서더니 곡식을 헤치며 마구 달아난다. 애기가 째지는 소리로 울어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상고개쪽으로 좀더 나가시였다. 어데서 누구냐고 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김정숙동지께서 미처 대답할새도 없이 또 이어 곡식밭속으로 숨어들어가라는 고함소리가 들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재빨리 곡식밭속으로 숨어들어가시였다. 수수밭이였다. 밭고랑으로 한참 걸어들어가시니 아낙네들이 여기저기 널려서 낫가락으로 수수이삭을 잘랐다. 모두 말이 없이 땀을 흘리며 손을 놀렸다.

《밭고랑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아요.》

한 아낙네가 저쪽에서 소리를 쳤다. 김정숙동지께 주의를 주는 소리였다.

《아주머니, 왜놈들이 상고개를 넘어오기라도 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곁에서 수수이삭을 자르는 아낙네에게 소곤소곤 물으시였다.

《그놈들이 어데로 빠져 넘어왔는지 한패 빠져 넘어와서 지금 저 앞 개버들밭에 진을 쳤다우. 그래서 우리편에선 소리를 내지 말구 이삭을 자르라는 명령이 내렸다지 않소. 인제 마을에서 나왔어요?》

《네, 아주머니 이리 주세요. 제가 좀 잘라드리죠.》

《아니 일밭으로 나오면서 왜 연장이 없이 나왔어요?》

《난 애들을 찾아 나왔어요.》

《애들이라니?》

《합숙에 있는 애들말이예요.》

《그럼 부암어머니와 함께 있는 누나로구먼. 애들이 죄다 누나누나 하고 부른다더니…》

《네, 부암어머니와 함께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낫가락을 받아쥐시였다. 그리고는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시였다. 수수대 키가 높아서 이삭자르기가 생각처럼 빠르지 않으시였다. 휘여서 자르려니 부러지는것이 많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수를 자르면서도 맘은 간데 없으시였다. 애들을 한바다속에 집어던진것 같은 생각이 점점 더 가슴을 죄이시였다. 인젠 자신이 수수밭속에 갇혀서 찾아보기도 어렵게 되시였다.

갑자기 뒤에서 와실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돌아보시였다. 적위대원들이 땀에 떠서 수수밭속으로 기여나왔다. 총을 든 사람도 여럿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병원에 계실 때엔 총탁이 주먹같이 생긴 다태갈이란 총 한자루밖엔 없어서 그걸 벽에 걸어두고 사격연습용으로만 썼는데 어데서 총이 이렇게 불었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적위대원들은 아낙네들옆을 번개같이 지나쳐갔다. 모두 등을 구부리고 뛰였다.

《쌈이 붙는것 같아요.》

새끼로 뜬 그물망태에 수수이삭을 쑤셔넣던 아낙네가 김정숙동지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아주머니, 우리 애들이 어떻게 됐을가요? 아침나절에도 상고개쪽에서 장 쌈을 했다는데…》

《그럼 내내 총을 쏴댔지요. 그 철모르는것들을 왜 단단히 신칙하지 않구 그렇게 내놨어요.》

아낙네도 걱정을 했다.

적위대원들이 지나간 뒤 얼마 안있어 정말 코앞에서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들볶는 총소리가 하늘을 무너뜨리는것 같이 울렸다. 아낙네들은 모두 긴장해졌다. 그런데 이때 수수밭속에서 또 와실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뒤를 돌아보시였다. 천만뜻밖에도 애들이였다. 기송이와 철이가 앞장에 서서 수수대들을 헤치며 기여나왔다. 기송이는 누나를 보더니 허리를 펴며 우뚝 일어섰다. 철이며 홍갑이, 다른 애들도 모두 일어섰다. 적위대를 뒤따르는것 같다. 새까만 얼굴들에서 땀이 좔좔 흘러내렸다.

《너흰 어디로 가는거냐?》

김정숙동지께서 다가가며 물으시였다. 어느 애도 대답이 없었다. 기송이도 철이도 숨이 차서 헐떡헐떡하며 누나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둘이 다 적삼앞자락을 헤쳐놓았는데 철이는 가슴팍에 할퀸자리같은 상처까지 났다.

《쌈이 벌어진데로 가자구 그러느냐? 못간다. 도루 뒤로 돌아서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곁에 가서며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눈은 반가움과 노여움이 한데 어려 금시 울음이라도 터질것처럼 이슬이 글썽거리시였다. 기송이가 철이와 함께 애들 앞장에만 서지 않았어도 이렇게 분하시진 않았을것이다. 철이나 홍갑이는 본시 말썽꾸레기니까 총쏘는 구경을 하겠다고 내뺄수도 있고 애들을 달고 싸움판으로 달아날수도 있겠지만 기송이야 무엇때문에 앞장에 서서 뛰는가. 그러고보면 이 애가 자초에 합숙에서 떠난것도 애들을 데려올 생각이였던게 아니라 그 애들과 한데 어울려 총쏘는 구경을 하자고 나온것이 틀림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의 행동에서 능청스러운 거짓을 읽으시였다. 너무도 안타깝고 노여워 뭐가 뭔지 잘 보이지도 않으시였다. 흔들리는 수수잎들이 부나비같아도 보이시였다.

《돌아서라,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의 어깨를 잡아돌려세우며 부르짖으시였다. 그래도 기송인 기송이대로 밸통이 있어서 누나가 잡은 어깨를 한번 되게 뒤흔들었다.

《왜 말을 듣지 않니?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니? 철이나 홍갑이를 데리러 나왔으면 그 애들을 데리고 들어갈 일이지 네가 어째서 먼저 뛰니? 네가 뭐 총이 있어서 쌈판으로 나가니? 어서 가자!》

김정숙동지께서는 뻗치고 선 동생을 또 한번 미시였다. 그러나 동생은 밀리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외면하고있는 기송이의 얼굴을 바로 돌려놓으며 부르짖으시였다.

《네가 인남이하구 헤여질 때 뭐라구 했니? 내가 앓을 때 뭐라고 했니? 그건 다 거짓말이였니?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하니? 얘, 말 좀 해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을 걷잡지 못할만큼 흥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동생을 마구 흔드시였다. 그러자 기송이는 한마디 《힝》 코소리를 하며 몸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쫓아가 동생을 부둥켜안으시였다. 겉으로 볼 땐 그렇게 몰랐는데 부둥켜안으니 몸에 뼈만 불근거렸다.

《얘, 왜 그러니? 넌 부암에서 여기로 들어올 때 이런 짓을 하자고 들어왔니? 너두 혁명을 하자고 들어왔지? 형님이 하던 말을 명치에 새겨듣고 혁명을 하자고 들어왔지?》

총소리는 더욱 요란히 울리였다. 온 들판이 발칵 뒤집혀 화들화들 떨었다.

《누나!》

애들이 김정숙동지의 오누이가 엉겨붙어있는곳으로 달려들며 누나를 불렀다. 아낙네들도 걸어오며 수수밭속에서 웬 일이냐고 야단을 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네가 왜 애들을 휘동해가지고 앞장에 서서 뛰느냐고 동생의 가슴팍을 한참이나 잡아흔드시였다. 너무도 억울해서 분기를 눌러내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제 동생을 놓아주고 다른 애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기시였다. 기송이를 꾸짖던 때의 격정이 가라앉자 걷잡을새 없이 눈물이 넘쳐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애들이 혹시 상하지나 않았는가 해서 하나하나 잔등이며 머리며 장딴지를 살펴보고 쓸어보고 하시였다. 그 까맣게 타고 거칠게 여윈 몸들을 쓸어보니 손끝이 떨리고 가슴엔 한이 맺히시였다.

이  애들을  돌보는것은  혁명이  아니라고 한다. 아, 그럼 이 애들은 어데로 가야 하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쏟으며 우시였다.

철이와 홍갑이는 손을 맞잡고 밭고랑 몇개너머에 서있었다. 철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홍갑이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얘, 우리끼리 총쏘는데 갈가?》

철이가 홍갑이를 꼬드기는 말이였다.

《싫어.》

《이자식이…》

《총쏘는데 가지 말라고 누나가 따라나와서 저렇게 울잖니?》

《그건 기송이가 그런데 간다고 우는거야.》

《흥…》

홍갑이는 그게 아니라는거다. 철이는 종시 홍갑이를 이끌고 내빼질 못했다. 그는 괜히 적삼주머니에서 탄피, 손칼따위를 꺼냈다 쑤셔넣었다 했다. 총소리는 여전히 한곳에서 콩볶듯했다. 쾅 쾅 작탄이 터지는것 같은 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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