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19  회  )

 

제   6   장

 

2

 

경식이는 무슨 결심을 어떻게 했는지 인젠 내내 추상같은 표정을 하고 하루에도 몇차례씩 밖에 나가서 걷는 련습을 했다. 병원 뒤에 큰 잣나무들이 서있는 메발이 있는데 그는 거기 나가서 무얼 깊이 생각하며 걷기도 했다.

《빨리 병을 고치오. 우리는 이렇게 누워있을 때가 아니요. 동무두 무얼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더욱 철저히 다져야 하오.》

그는 의식을 회복하신 김정숙동지께도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이런 때는 그의 얼굴에 무서운 빛이 번뜩이였다.

《내 어제밤 성재 어머니한테도 성재동무가 희생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었소. 첨엔 그 말을 알려드리지 말고 아들이 어데 가서 공작하는것으로 알고 일생을 사시도록 하는게 어떨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소.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소. 우린 우리가 겪는 불행과 비극을 철저히 알아야 되우, 죄다 알아야 된단말이요. 가슴이 아프더라도…》

어느날 아침엔 김정숙동지의 곁에 와앉아 이런 말을 했다. 몹시 흥분해있었다.

《청진집어머니가 그 소리를 듣구 어떻게 견딜가요? 저를 보고도 우리 성재는 어째서 상촌으로 오지 않는가고 몇번 물었는데요.》

《나도 그러리라고 짐작했소. 그렇지만 언젠가 한번은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견디여내야 할게 아니요? 그렇게 견디는 과정에 속이 시꺼멓게 탈수도 있겠지. 그러나 탄다고만 생각할수는 없는것이요. 모진 마음이 생기구 돌이 되고 철이 될수도 있단말이요.》

경식이의 비장한 목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윽박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식이가 어쩌면 이리도 딴사람같이 되였을가고 생각하시였다. 정말 그의 말과 같이 돌이 되고 철이 된것 같은 강직한 인상을 주었다.

경식이는 아직도 피흔적이 배여있는 로동복앞자락을 펄럭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젠 지팽이엔 실리지 않고 약간 한쪽다리를 이끌며 뜰로 내려선다.

경식이가 나간 다음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동안 대청용마루를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청진집어머니가 어떻게 하고있는지 궁금하시였다. 인젠 출입도 자유스럽게 할만치 되여서 오늘래일 병원에서 나가겠다는 말도 했는데 지금 어떻게 하고있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어제밤 아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타격을 받고 가슴을 두드리고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청진집어머니에게로 가서 그 무슨 위안이 될 말이라도 해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 건너방으로 가자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시는데 동의가 약사발을 들고왔다.

《할아버지 고마와요.》

《원 쓸데없는 소리… 인젠 오한기는 다 없어졌지?》

《네. 아무데도 아픈데가 없는것 같애요.》

《아픈데가 없다니? 단단히 치료를 받아야 하네. 이런 몸으로는 조선독립을 위해서 싸우질 못해.》

동의는 엄하게 말하며 약사발을 내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에 뜨거운 정이 그득해져서 그것을 받으시였다. 얼마나 고마운 할아버지인가. 말끝마다 조선독립을 이야기하며 약을 먹으라고 한다. 젊어서도 독립군을 그렇게 수없이 치료를 했다고 한다. 어느날 저녁엔 홍범도도 자기 손에서 침을 여러번 맞았느니라고 이야길 했다.

의사가 물러간 다음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청을 내려서 청진집어머니가 있는 건너방으로 가시였다.

건너방엔 리상녀와 나이 비슷한 아낙네들이 여러명 들어서 치료를 받고있었다. 그런데 방안엔 리상녀가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데로 갔는가싶어 아래모퉁이로 해서 뒤울안에까지 돌아가보시였다. 거기에도 리상녀는 없었다. 어쩐지 머리끝이 쭈삣해지는 흉흉한 생각조차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아래모퉁이쪽으로 도로 돌아나오시였다. 나오다가 보시니 담장이 무너져내려 펑해진 저쪽 담장밖에 리상녀가 앉아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걸음을 멈추시였다. 반백의 머리로 낭자를 튼 어머니가 하염없이 언덕너머의 강물을 바라보고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처량해서 당장 《어머니!》 하고 주저앉아 울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잠간 서서 이를 악물고 그런 감정을 참으시였다. 자기가 먼저 울고야 어머니에게 어떻게 힘이 될 말을 해주랴싶으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슬금슬금 걸어서 무너져나간 담장을 넘어서시였다.

《청진집어머니!》

리상녀는 대답이 없이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어머니!》

《넌 어째서 나왔니?》

리상녀는 여전히 얼굴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무얼 그렇게 혼자 생각하세요?》

《아니다. 넌 좀 낫니?》

《낫잖구요.》

리상녀는 눈물을 씻었다.

《어머니, 눈물은 무슨 눈물을 흘려요?》

《그저 울구싶어서 그러질 않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스럽게 리상녀의 곁에 가 앉으시였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두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가슴에 안으며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시였다. 리상녀는 주글주글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며 김정숙동지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더니 새로운 눈물줄기가 터진듯 눈물이 마구 쏟아져내렸다.

《어머니, 우지 말아요. 저두 어제밤 어머니가 무슨 소식을 들었다는걸 알아요. 그렇지만 우린 울어선 안돼요. 우리가 울고만 있으면 지금 우리의 쌈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는 울음을 악물어야 해요. 지금 누가 울지 않고 견딜 사람이 있어요? 네, 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에 안은 어머니의 손을 흔들며 말씀하시였다.

《어제밤 경식이도 그런 말을 하더라. 그 말이 옳은줄이야 낸들 모르겠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가 이 터지고 뻐개지는 가슴을 어떻게 참니? 성재가 죽다니? 우리 성재가 죽다니, 이 몹쓸녀석아, 이 에미를 두고 네가 어데로 갔단말이냐? 으으으, 내가 어떻게 참니?》

어머니는 김정숙동지의 손에 잡힌 두 손길을 불거지도록 쥐였다폈다하며 부르짖었다.

《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번에는 어머니의 몸을 끌어안으며 마구 흔드시였다. 그 큰 몸이 온통 사시나무 떨듯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께서 공연히 울음을 촉발시킨것 같으시였다. 어머니는 발앞에 있는 풀을 쥐여뜯고 흙을 우벼파서 던졌다.

《어머니, 정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슬픔을 참아야 돼요.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같은 큰 슬픔을 안고있는 사람들이 아니예요? 그래두 누구나 다 원쑤와 싸우자고 강심을 먹고 울음을 참고있는데 어머니가 이러시면 그 사람들도 다 울고싶어질것 아니예요. 그러니 정말 이러지 말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흙을 우벼파는 리상녀의 손을 꽉 그러잡으며 안타까이 호소하시였다.

《오, 오냐 일없다. 내가 경식이의 말이나 네 말이 옳은 말인줄 안 담에야 마음을 다잡아내지 못하겠니?》

《그러게 다잡아야 해요. 전 정말 어머니가 울어서 그 설음이 다 없어진다면 실컷 울라고 하겠어요. 그렇지만 울어도 없어지지 않을 설음인데 뭘하려 자꾸 울겠어요?》

《이 인젠 안울겠다…》

어머니는 몸을 화들화들 떨며 머리를 저었다.

어머니를 달래던 김정숙동지께서도 어쩔수 없게 속눈섭밖으로 눈물이 흘러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입술을 악물며 얼른 눈굽을 훔치시였다.

《내 인젠 안울겠다. 지난밤엔 밤새 그것이 어떤데 묻히기나 했는지 부암에 한번 가보자고도 생각을 했댔는데 인젠 그것두 그만둬야겠다. 그 쑥밭에 가서 무덤이나 찾아보아선 뭘하겠니?》

어머니는 격정이 가까스로 잦아들어 말도 좀 순조로와졌다.

《거긴 가보아서 무얼 하겠어요. 희생된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쌈을 더 잘하라고 부탁을 하고 갔는데 무덤앞에 찾아가 울고불고하면 그게 뭐가 좋겠어요.》

《네 말이 옳다. 죽은 사람들이 우리 보고 이승에 남아서 거저 있으랬겠느냐? 경식이의 말마따나 일본놈 치라구 한을 남기구 갔을테지.》

리상녀는 설음을 삼키느라고 애를 썼다. 관골이 날카로와진 누런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도로 펴지군했다.

리상녀는 이튿날 무엇이 들어있는 조그마한 보짐 하나를 들고 강건너 혁명위원회를 찾아간다고 떠났다. 경식이가 수첩장에 무언가를 적어서 내밀어주며 가지고 가서 차응도회장에게 보이라고 했다.

리상녀가 떠나간 뒤 김정숙동지께서는 남몰래 슬픈 생각에 잠기시였다. 역시 바래우고나니 가엾고 불쌍하시였다. 집도 자식도 다 잃어버리고 망망한 설음우로 떠나간것 같은 청진집어머니! 그 조그마한 보짐속엔 무엇이 있기에 그리도 소중히 들고갔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릴 때 어머니의 보짐속에서 빗첩과 바늘쌈지, 골무 같은것들을 본 생각이 나시였다. 청진집어머니도 그런걸 보짐속에 싸가지고 간건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해종일 마음이 슬프시였다. 이날엔 아동단합숙에 가있는 기송이도 오지 않았다. 병원에 함께 있을수가 없어서 기송이는 의지가지없는 애들을 거두어주는 아동단합숙이 있다기에 그리로 보내시였다. 기송이는 첨 하루밤 가서 자고 와서는 단칸방에서 숱한 애들이 다 잘수가 없어서 자기는 마당에서 잤노라고 말했다. 먹긴 무얼 먹었는가고 물으시니 큰 옹배기에 수수밥을 해놓고 먹는데 애들이 숟가락쌈을 한다고 했다. 다음날 왔을 때 물으셔도 역시 그렇게 먹고 그렇게 잤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틀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계속 한지잠을 자며 한옹배기의 밥을 먹을가. 먹는게 수수밥이라니 집에서 먹이지 못하던 낟알을 근거지에 와서는 내내 먹는셈이다. 그런데 숟가락쌈을 한다니 그건 그릇이 없어서 저마끔 퍼주지 못해 그러는걸가. 하촌 리상준네 둥글상머리가 생각나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기다리고기다리던 동생은 이튿날 아침에야 달려왔다.

《너 어째 그새 영 기척이 없었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갑게 동생의 손목을 잡으며 물으시였다.

《병원에 자꾸 와선 뭘하게? 그런데 우리 합숙에 청진집어머니가 왔어.》

《아니 청진집어머니가 거길 갔어?》

《어제 회장아저씨가 그 어머니를 우리한테로 데리구 와서 싱글벙글 웃더니 애들 볼기짝을 꽝꽝 때리면서 교양두 하고 밥도 지어주라고 했어. 그리구 본시 있던 확실눈이 식모어머닌 어데론가 데리고 갔어.》

기송이는 본시 있던 식모가 눈이 크다고 확실눈이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말을 들으니 몹시도 기쁘시였다. 청진집어머니가 애들 합숙으로 갔다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일이 고되기는 하겠지만 애들 시중이야 좀 잘 들어줄가. 애들과 씨름을 하느라면 가슴에 맺힌 슬픔도 어언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 어머니가 널 보고 뭐라지 않던?》

《어젠밤엔 마당에서 나하구 같이 잤어. 밤새 별나라이야기를 하며…》

《밤에 우시진 않던?》

《울긴 왜 울어? 도리여 나더러 엄마생각 나도 우지 말라잖어. 자다가 내 눈이 젖었는가 해서 만져보기두 하구…》

가슴이 아픈 이야기였다.

애의 눈이 젖었는가 해서 만져보았을 때에야 어머니의 눈에 어찌 눈물이 없었을가.

그 한없는 슬픔이 언제 가야 리상녀어머니더러 웃고 살도록 물러가줄가.

《누난 좀 나어?》

《응, 난 인젠 퍽 나았다.》

《그래두 얼굴은 아직두 핼쑥해.》

《그럼 앓고난게 핼쑥하지 않구… 그런데 넌 뭘 그런걸 손에 쥐고 다니니?》

기송이는 나팔은 어데다 두고 곤봉과 군데군데 녹이 쓴 길쭉한 칼을 쥐고 왔다.

《여기 소선대에선 모두 곤봉과 칼을 차고 다녀.》

《너는 아직 소선대원도 아닌것이 이런걸 가지고 다니니?》

《인제 빨리 커서 소선대가 될테야. 난 누나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어. 혁명근거지에 들어왔다는것이 자꾸 앓기만 하면 어떻게 해?》

《그러게말이구나. 인제 곧 일어나지.》

《난 정말 누나가 앓지만 않는다면 날아다닐것 같애. 누나가 자꾸 앓으니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어? 누나, 하늘로 혼자 날아가는 기러기 봤지? 난 정말 그 외기러기가 불쌍해. 그런데 나두 그 외기러기처럼 될것 같지 않어?》

《기송아, 넌 무슨 그런 소릴 하니? 외기러기가 무슨 외기러기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동생을 꾸짖으시였다. 이 애가 어째서 이런 생각까지 하며 가슴을 저리게 할가싶으시였다. 동생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머리를 들고 일어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신다.

《기송아, 난 인젠 자리에 눕지 않겠다.》

《아픈데도 눕지 않나뭐?》

《아프긴 뭐가 아파? 이렇게 다 나았는데…》

《나은것 같지 않어. 그리구 병이란건 물러갔다가도 도루 덤벼든데. 그건 꼭 왜놈과 같다니까…》

제법 어른다운 소리다. 그저 볼수록 귀엽고 눈굽에 이슬이 핑그르르해지는 사랑스러운 동생이였다.

기송이는 주머니속에서 붉은 끈을 꺼내서 곤봉의 잘룩한 목에 매였다.

정말 붉은 끈을 매놓고보니 그저 곤봉이 아니라 무슨 원쑤를 치는 무기같아도 보였다.

《누나, 이 칼은 내가 인제 번쩍거리게 갈겠어. 자루도 다른걸 든든히 해맞추구… 이 자루는 낡아서 헐렁거려.》

《그렇게 하렴.》

《누나, 그럼 이걸 가지구 어머니와 아지미 원쑤를 갚는다.》

말하는것이 벌써 웅성거리는 근거지에 와서 무엇인가 더욱 철석같은 앙심이 생겨난것 같다.

《원쑤를 갚아야지. 너두 나두 원쑤를 갚자고 이리로 들어온게 아니냐. 너두 형님의 말을 잊지 말아라. 나두 잊지 않겠다. 난 네가 그런 말을 해주니 너무 기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나두 누나와 함께 싸우는게 기뻐. 정말 두 기러기가 날아가는것 같지 않니?》

《또 기러기소리냐! 그건 무슨 소리라구 그런 말을 자꾸 하니?》

기송이가 돌아간 뒤 얼마 안있어 차응도회장이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여느때같이 기운차게 활개를 저으며 들어오다가 대문간에서 의사를 만났다. 둘이는 잠간 서서 개웃마을이 어데인지 그 동네의 환자들 이야기를 하였다. 의사는 오늘 올라가선 아무래도 한곳에다 격리시켜놓고 치료를 해야겠다고 했다. 무슨 전염병환자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았다. 의사가 나가자 차응도는 곧추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 대청으로 들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를 하시였다.

《응 정숙동무가 인젠 괜찮은 모양이지? 뭘 또 오빠가 보구싶어 일어나앉았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게 웃으며 낯을 붉히시였다. 차응도는 오는적마다 김정숙동지께서 의식을 잃고 오빠를 부르셨다는 소리를 하며 비린청을 만들어 오빠 부르시던 흉내까지 냈다. 그리고는 두눈에 사람좋은 웃음을 띠며 혁명하러 들어온 커다란 처녀가 병을 이겨내지 못해서 오빠를 부른다고 한번 들었다놓듯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쨌든 무척 좋은 사람이였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농사군같이 미덥고 유순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차응도는 한참 앉아서 의사 못지않게 진맥을 했다.

《아직도 맥이 실하지 못하오. 그래 약은 계속 먹구있지?》

《네, 인젠 아무데도 아픈데가 없어요. 그저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야, 더 치료를 해야 하우. 그렇게 보채다간 또 이어 오빠를 부르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을 못하고 또 고개를 숙이며 웃으시였다.

차응도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진맥해보았다. 그가 들어간 방안에선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차응도가 오면 할아버지의사는 늘 시중군처럼 따라 돌아다녔다. 차응도가 맥을 보는 곁에 가선 흐뭇해서 수염을 쓸어내리며 웃군했다. 의술은 없어도 이렇게 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늘 차응도가 경식이의 방으로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도 차응도와 경식이 마주앉으면 그 무슨 중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사실 의사뿐만아니라 그 방에 있던 환자들도 차응도만 들어가면 슬금슬금 일어서 밖으로 나오군했다.

오늘도 그 방에선 둘이 마주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오래 했다.

얼마후엔 둘이 함께 방안에서 나와 대문밖으로 나갔다. 경식이는 여전히 한쪽 발을 불편스럽게 옮겨디뎠다. 차응도가 팔소매를 잡고 부축해주었다.

그들은 집뒤 메발로 올라가 잣나무숲앞에서 또 오래도록 이야기를 계속했다.

《될수 있으면 빨리 가서 기준동무의 일을 도와야 하겠소. 저놈들이 태봉시 골안에다 군대를 들이밀고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벌써 광부들을 수없이 잡아가두었다니 이런 삼엄한속에서 공작이 제대로 되겠소?》

차응도의 말이였다. 경식이는 신중히 듣고만 있었다.

《우선 급한것이 화약이요. 작탄제조를 큰일같이 여기지 않는 동무들도 더러 있지만 이것이 왜 큰일이 아니겠소? 우리가 무기를 잡는데 적의 무기를 빼앗는것이 기본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자력갱생해서 자체의 손으로 만들어 쓰기도 해야 한다는것은 장군님께서 이미 뚜렷이 밝혀놓으신 방침 아니요. 그런데 아직 우리 동무들이 이걸 잘 모르고있단말이요. 더구나 작탄 같은것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것은 장군님께서 찍어서 말씀하시기까지 하셨단말이요. 그래서 지금 저 병기창일이 열이 올랐소. 그런데 화약을 대주지 못하니 일이 제대로 돼나가지 못하고있단말이요. 빨리 화약이 와야겠소. 태봉시에 가면 기준동무와 이야길 해서 우선 화약 뽑아내는 일에 힘을 좀더 넣어주오.》

《기준동무가 여기 이런 형편을 알고있는지요?》

《대체로 알고있긴 하겠지만 병기창일은 구체적으로 모를수도 있지요. 화약이 이렇게 급하다는것은… 그래서 빨리 누가 한사람 가서 형편을 알리고 화약을 뽑아와야겠다는 의견이지요.》

《일이 그렇게 됐다면 벌써 사람이 갔어야 했을걸 그랬군요.》

《앞을 예견치 못하니까 늘 괴목에 방울을 달고야 뛰지요. 화약이야 얼마든지 필요한데 거기에 힘을 넣지 못했단말이요. 그리구 또 한가지 문제는 지금 희섭동무가 태봉시에 들어가있는데 기준동무와 이야기를 해서 그 동무를 이리로 끌어오도록 해야겠소. 여기 지금 교육사업을 할 사람이 없소. 학교라는것도 짓기 시작은 했는데 빨리 진척이 안되구 또 지금 지어놓았대야 누가 학교를 맡아가지고 해나갈 사람도 없소. 내 생각엔 희섭동무가 이리로 와서 그 사업을 맡아주었으면 아주 적당할것 같단말이요.》

바람이 불었다. 쏴쏴- 바다물소리같은 바람소리가 내내 잣나무숲에서 울리였다.

경식이는 심중한 표정으로 차응도의 이야기를 듣고있더니 무겁게 입을 떼였다.

《내 기어이 희섭동무를 들여보내도록 토론하겠습니다. 그런데 기왕 말이 난김이니 내 회장동무에 대한 한가지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어서 말하시오. 내 그래서 늘 무슨 문제든 말할 때마다 경식동무의 의견을 묻지 않았소.》

차응도는 우선우선하며 가볍게 응하기는 하였으나 경식이의 사람됨됨으로 보아 이제 나올 의견이라는것이 만만치 않으리라는것을 짐작하고 은근히 눈빛이 긴장해졌다.

《의견이란 별게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알고있고 회장동무도 늘 말하는 문제인데 근거지를 어떻게 꾸리느냐 하는것입니다. 회장동무가 지금 이 거창한 일을 맡아안고 무척 바삐 돌아가는데 사실 나는 무슨 일을 한가지 도와드리지도 못하면서 시비를 캘 까닭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격근거지를 잘 꾸려서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근거지창설방침을 옳게 관철하는것은 우리 혁명의 근본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마디 하자는것인데…》

《그 뭐 그리 힘들게 말할게 있소. 생각하는것을 툭 털어놓소. 난 그러지 않아도 그 문제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밤잠을 못자오.》

차응도는 경식이의 무거운 말을 중둥무이하며 소탈하게 말했다.

《나두 그런줄 압니다. 그래서 말하기가 거북한것도 사실입니다.》

경식이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근거지가 이제 갓 태여나서 여러가지 난관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번 남만으로 원정하신 중요한 목적의 하나도 우리에게로 쏠리는 적들의 공세를 몸소 자신께로 집중시키시여 남만쪽으로 끌어가자는데 두신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귀중한 근거지를 한시바삐 우리 혁명의 요새로 튼튼히 다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여부가 없지요. 그래서 나도 이렇게 뛰여다니는게 아니겠소.》

《그런데 내 보건댄 회장동무는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걸 하나하나 푸는데 맥을 다 빼고있는것 같이 보입니다. 피난민문제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집이나 식량같은것을 해결해주는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그것보다도 그들에게 이제는 나도 근거지사람이다, 그러니 김일성장군님의 근거지창설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내바쳐야 한다, 이런 각오를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사업은 별로 힘을 돌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나는 피눈물을 뿌리며 장군님의 품을 찾아온 그들에게 누구네 웃간을 주선해준다든지 하는것보다 우선 이런 사상을 심어주는것이 더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차응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경식이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차응도가 그렇게도 애쓰고 돌아가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니 그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어째 말이 없소? 계속하오.》

차응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의견은 그겁니다. 바로 그런 각도에서 모든 사업을 밀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겁니다. 사람들의 사상을 움직이도록말입니다.》

《알만하우, 뭐 또 딴 의견이 있으면 다 이야길 해주오.》

《글쎄 딴 의견은 없구 그저 그것뿐인데 참고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경식이는 차응도의 세찬 반발을 기다리면서 말끝을 흐렸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늘이 점점 흐려오며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고맙소.》

이윽고 차응도는 격하게 한마디 부르짖었다.

《아닌게아니라 동무는 내 가슴을 정통으로 찔렀소. 그러니 아프기도 하오. 동무의 말은 너무도 정확하오. 내 결함을 바로 갈겨주었단말이요. 사실 그 누가 나한테 이런 비판을 해주겠소. 고맙소. 내 당장 고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어쨌든 명심하고 노력하겠소. 김일성장군님의 방침을 내가 똑똑히 집행하지 못하고있는것 같소.》

《회장동무, 나두 회장동무가 수고를 하는줄 압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의견을 제기하는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근거지가 귀중하기때문입니다.》

《그걸 내가 모를 사람이요? 가서 일이나 잘해주오. 그리고 또 생각나는것이 있으면 인편으로라도 의견을 보내주오.》

두사람은 서로 굳게 손을 틀어쥐였다.

이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병원 식모의 일을 도우시였다. 병원 식모는 지주네 광속에 있는 놋그릇들을 죄다 뒤울안 샘물가에 내다놓고 닦았다. 초대, 새옹, 술잔따위들은 병기창에 올려보내겠다고 따로 내놓고 그밖의 놋바리, 놋대접은 모두 기와가루로 닦았다. 그건 병원에서도 쓰고 개암골 유격대병실로도 건너보내겠다는것이였다. 식모는 한사코 김정숙동지더러 팔힘을 빼지 말고 들어가 누워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지 않고 해종일 그릇을 닦으시였다.

해가 아직 기울기전인데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식이가 부른다고 하기에 안마당으로 돌아나가시였다. 안마당에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경식이가 어데로 떠나는지 모자를 쓰고 나섰다. 할아버지의사도 어제 아침 상녀어머니가 들고 간 보짐보다 조금 더 큰 보따리를 들고 나섰고 환자들도 여러명 웅성거리며 마당에 나왔다. 나오지 못한 환자들은 누런 얼굴들을 문턱앞에 내대고 눈물들이 글썽해서 경식이를 쳐다보고있다.

《정숙동무, 동무두 빨리 치료를 하고 나와서 일을 하오. 난 오늘 여기를 떠나겠소.》

경식이는 김정숙동지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 몸으로 어떻게 병원에서 나가요?》

《내 몸이 어떻게? 인젠 다 나았소.》

《어디로 가시게요?》

《좀 멀리로 가야겠소.》

《그런 다리로 걸어간단말이예요?》

《걸어가다가 힘들면 달구지신세를 지겠소. 밖에 그쪽으로 가는 달구지가 와있으니까… 시간이 급해서 동무와 더 딴 이야기를 못하고 떠나오. 꼭 몸 건강해서 일을 잘하오.》

경식이는 돌아서 대문간으로 걸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쭝해진 가슴으로 환자들과 함께 뒤를 따라나가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수가 없으시였다.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고 또 이어 병원에서 나가겠다고 말한적도 없는데 무엇때문에 갑자기 나가며 또 좀 멀리로 간다는것은 어데로 간다는것인가. 차응도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떠나는걸 보면 무슨 중요한 임무를 맡고 떠나는것 같은데 그게 무슨 임무이기에 낫지도 않은 몸으로 불시에 떠난단말인가.

바깥마당엔 정말 달구지가 와있었다. 무슨 곡식마대같은 짐짝들이 실려있었다.

《이 보따리속에 있는 약을 계속해서 자셔야 합니다. 달여자실 형편이 못될것 같다기에 환약을 넣어보내는것이니 잊지 말고 하루 세번씩 식후에 꼭 자시오.》

동의가 달구지우에 보따리를 올려놓아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먹기만 하겠습니까…》

달구지군이 경식이더러 달구지우에 올라타라고 했다.

《뭘 문앞에서부터 달구지를 타겠소. 어서 갑시다. 지금같애선 하루 백리는 넉근히 걸을것 같소.》

달구지군은 더 말을 못하고 달구지를 몰았다. 경식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달구지를 따라나갔다. 여전히 한쪽발을 불편스럽게 디디긴 했으나 단장을 힘있게 내짚으며 걸어갔다.

사람들이 모두 따라나가며 어데 가서든 몸조심하라고 일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굳어져서 떠나는 경식이를 지켜보시였다. 이 순간 그이께서는 시퍼런 바다물속같은 경식이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는것 같으시였다. 결국은 무섭게 달라진 경식이 제몸을 부서뜨릴것 같은 독한 마음을 품고 사나운 싸움의 길로 떠나가는것이 아닌가. 이것은 결코 눈물을 쥐여짤 서러운 일이 아니라 맘이 더욱 든든해지고 주먹이 스스로 틀어쥐우는 엄숙한 일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자신도 모르게 강가에 거의 나간 달구지를 따라서 바삐 걸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걸으시다가 또 우뚝 걸음을 멈추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누르시였다. 바람은 여전히 세게 불고 날아가는 검은 구름장들에서 더운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마치 준엄한 싸움의 길에 그 무슨 의미를 암시하며 때려주는것 같은 후더운 비방울이였다. 김정숙동지의 달아오른 뺨에도 큰 비방울이 여러개 날아와 떨어졌다.

 

 

3

 

김정숙동지의 생활엔 활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몸도 추서가거니와 정신속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강한 투쟁의욕으로 가슴이 들먹거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부엌일을 열심히 도우시였다. 어떤 땐 사랑채 적위대합숙의 부엌일을 돕기도 하시였다. 하긴 적위대합숙의 부엌일이 더 고되고 복잡했다. 여러 구역에서 뽑아온 적위대원들을 한 합숙에 넣고 한가마밥을 해먹이는데 몸이 튼튼치도 못한 키가 작달막한 아낙네 하나가 땀을 철철 흘리며 그 신역을 치렀다.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도와주시는 때엔 너무도 송구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병원부엌에서도 적위대합숙부엌에서도 일이 바쁘면 《정숙동무!》 하고 불렀다. 병원의사들은 김정숙동지께 일을 시키지 말라고 했으나 안팎간 아낙네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김정숙동지께 일을 시키기 위해서보다도 어쩐지 그와 마주앉으면 그저 일에 성수가 나서 저마다 찾았다. 용모도 쑥 빠지게 깨끗하지만 맘도 푸른 물속같이 깊고 어떤 말을 해도 속이 크게 빙그레 웃군하신다. 그리고 저들이 알아들을수 있게 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잘하신다. 그런것이 다 그 무슨 그윽한 향기와도 같이 그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젠 몸도 웬만해졌으니 차응도를 보고 정식으로 무슨 일을 시켜달라는 청을 드려야 되겠다는 마음도 드시였다. 늘 이렇게 병원에서 약을 달여먹으며 앞뒤간 부엌일이나 해주고있을수는 없으시였다. 우선 조직의 지시에 의해 무슨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밤이면 그전날 쪽지를 나르던 일, 삐라를 뿌리던 일, 태봉시에서 로동자들이 들고일어나던것을 본 일 그리고 아동단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들을 생각하시였다.

인제 여기선 어떤 일을 하라고 할것인가?

목숨을 내대고 할 그런 보람있는 일을 맡긴다면 얼마나 좋을가.

내가 어떻게 김일성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근거지에 와 앉아 그저 행복하다고만 생각하고있겠는가, 이 근거지를 위해서 혁명을 위해서 오빠가 떠날 때 이야기하던대로 빨리 무슨 일을 한몫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런 각오를 가지고 여기 들어오지 않았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내 흥분속에서 자기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것저것 생각해보시였다.

바로 이런 때 상촌엔 어렵고 급한 정세가 조성되였다. 놈들의 공세가 또다시 시작되여 중촌지역이 불길속에 들게 되였다. 동네란 동네가 죄다 불타고 사람들이 상촌으로 올리밀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이런 일이 있으리라 예견하고 미리 빠져올라온 사람도 많았지만 당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대문바위쪽으로 사태를 이루며 밀려들었다.

상촌은 온통 사람으로 덮였다. 병원으로도 부상당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죄다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였다. 놈들과 불속에서 밀고닥치는 싸움이라도 벌린것 같았다. 병원은 신음소리로 찼다.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 대청에도 화상당한 사람들이 십여명이나 들었다.

사람살리라고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제 자기자신에 대해선 치료고 뭐고 돌볼 여지가 없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의사와 함께 뛰시였다. 약을 달이고 물을 길어오고 피자박이 된 환자의 옷을 벗겨서 빨고 하시였다.

어느날 아침 그이께서는 혁명위원회를 향해 떠나시였다. 형편이 이렇게 어렵게 되였는데 내가 치료라는게 무언가. 빨리 무슨 일이고 할 일을 달라고 해야 한다.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경식오빠는 한쪽다리를 끌면서도 떠나가지 않았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주히 이런 생각을 좇으며 동네앞 강가로 나가시였다. 강가에도 사람들이 덮였다. 그래도 무슨 먹을 량식을 가지고 왔는지 사처에서 아침끼니를 끓이느라고 연기를 피워올린다. 어린애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는가 하면 아낙네들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강가 조약돌밭에 온통 보퉁이와 사람사태인데 무서운 슬픔이 이 사태속에 굽이치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래도 먼저 일을 당한 부암은 약과인것 같으시였다. 이 숱한 사람들이 인제 어디에다 살 자리를 마련할것인가.

그이께서는 급히 강을 건느시였다. 강건너마을엔 길에도 사람이 널리였다. 모두 보퉁이를 지고 이고 어데로 가는지 자꾸 올라가고있다. 그러는가 하면 더러는 내려오기도 했다.

혁명위원회로 찾아가시니 그 근방엔 길이고 풀밭이고 더욱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여기서도 아침끼니를 끓이는지 연기를 피워올리며 법석을 했다.

《복동이넨 소곰을 좀 가져왔음둥?》

《소곰이 무슨 소곰이겠소? 륙실할놈의 새끼들이 언제 그런것 가지고 가라고 틈을 주었게요?》

연기를 피워올리는 아낙네들이 이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물도 없는 여기 와서 이렇게 법석이는것은 혁명위원회를 믿는 마음에서일것이다.

혁명위원회마당에도 시람들이 가득 들어앉아있었다. 보퉁이를 두세개 짊어놓은 지게가 뻗쳐있기도 했다. 토방에도 숱한 보퉁이가 쌓여있었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큰 농짝같은것을 지고온 사람도 있었다. 모두 마당가운데 들어앉아 혁명위원회 사무실만 지켜보고있었다. 사무실에선 피난민들을 안착시킬 문제가 토의되고있는것 같았다.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는데 약간 석쉼한 차응도의 목소리도 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당가에 한참 서계시였다. 아무래도 이 복새판에 들어가 자기 문제를 꺼내는것이 일이 아닌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후에 다시 찾아오자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리시였다. 사람들속을 헤치고 나오려니 저도모르게 은근히 기운이 꺾이시였다.

혁명위원회인들 이 숱한 사람을 어떻게 안착시킬것인가. 집이 어데 있어서 집을 주고 량식은 어데 있어서 량식을 줄것인가. 어쩐지 땀에 뜬 차응도의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가느다란 불안도 생겨나시였다.

마을로 걸어나가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건너왔던길에 청진집어머니와 기송이나 만나보고 갈가 해서 아동단합숙을 찾으시였다. 몇사람을 보고 물어서야 겨우 산을 등지고 앉아있는 조그만 오막살이집을 찾아내시였다. 이름은 아동단합숙이라는데 집은 왜 이렇게 작은지 알수 없으시였다.

오막살이집으로 오시니 문을 열어던진 부엌에서 땀투성이가 되여 일하던 리상녀가 달려나왔다.

《어머니!》

《아니 정숙이가 어떻게 돼서 건너왔니? 인제 다 나았니?》

《다 나았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불시에 목이 메여올라 말을 잇지 못하시였다. 얼굴도 옷도 새까맣게 된 어머니를 보니 울음이 터질것 같으시였다.

《그래 정말 다 나았니?》

리상녀는 곁으로 다가와 김정숙동지의 어깨며 잔등이며를 쓸어보며 물었다.

《전 인젠 아무 일두 없어요. 어머니는 여기서 얼마나 수고를 하세요?》

《수고는 무슨 수고이겠니? 설사 힘이 좀 든다 한들 어떠냐? 고진감래라는 말도 있잖냐?》

《어머니는 역시 문자를 쓰시는건 잊지 않으셨군요?》

《리상녀는 형이구 문자는 동생이란다. 어떻게 잊겠냐?》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마운 생각에 가슴이 찡해오는것을 느끼며 웃으시였다. 리상녀도 사내들같은 큰 목소리로 웃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시니 부엌 한간과 정지방 한간인 조그만 집안이 온통 화독처럼 더웠다. 무얼 삶는지 가마에선 김이 솟아오르고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리시였다.

《애들은 모두 어디 갔어요?》

《놀러 나갔지. 얼마 안있으면 학교가 열린다구 실컷 놀다가 학교로 간대나.》

《그건 뭐게 이 더운 날에 집이 이렇게 달도록 끓이세요?》

《이게 다 그 말썽꾸러기들이 이렇게 신역을 시키지 않니? 혁명위원회에서 유격대군복을 짓겠다던 광목을 돌려주어서 옷을 해입혔는데 온통 개가죽처럼 만들어 벗어내던졌구나. 그래서 그걸 이렇게 재물에 삶아내질 않니.》

리상녀는 밥주걱을 거꾸로 쥐고 끓는 가마에서 옷을 한가지씩 건져올려선 버치에 철썩철썩 담는다. 얼굴에서도 목에서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애들이 모두 몇명이나 돼요?》

《열둘이란다. 죄다 제 부모를 잃어버리고 갈곳이 없어서 모여왔다는구나. 그런데 이번 또 중촌근방 동네들이 〈토벌〉을 맞는바람에 어제저녁엔 그런 애들이 한마당 가득 모여오질 않았겠니? 혁명위원회에서 가라는 말을 했다는것두 아닌데 어데서 여기가 애들 합숙이란 말을 들었는지 다들 여기로 왔구나.》

《그러니 이 좁은데서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하겠니? 그것들두 눈치를 보니까 있을 형편이 못된다고 생각했게 모두들 달아나버렸지. 밥이나 한술씩 노나먹여서 보냈어도 좋았겠는데 그러질 못해서 밤새 가슴이 아팠구나.》

리상녀는 빨래가 담긴 큰 버치를 힝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따라나가시였다. 방안이 어떻게 한증속같은지 토방에 나서니 살것 같으시였다.

집에서 얼마 나가지 않아 작은 개울이 흘러갔다. 리상녀는 빨래버치를 이고나와 거기서 빨래를 했다.

《세상에 저 악귀같은놈들을 어쩐단말이냐? 글쎄 또 숱한 동네가 불바다로 되였다니 이런 통분한 일이 어데 있니? 어제아침 애하나가 종처를 테놨기에 잣진을 긁으러 개암골쪽으로 가는데 아낙네 둘이 길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아 땅을 치며 울질 않겠니? 그래서 물어보니 둘이 다 아들을 잃어버리구 한 내인은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 잃어버리구 가슴이 터져서 그런다는구나. 그 소리에 나두 그만 속이 활칵 뒤집혀 그들을 붙안고 한참 울었다. 우리 백의동포가 어쩌다가 이런 원쑤와 맞섰겠니? 도깨비는 방맹이로 치고 귀신은 경으로 친다는데 저놈들을 뭘루 쳐야 씨를 없애겠니?》

《어머니, 이리 주세요. 제가 한참 두드려드리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상녀의 손에서 빨래방치를 빼앗으시였다. 리상녀는 땀을 씻으며 풀밭으로 나가앉았다. 그는 문득 병원에서 자기를 위로하시던 김정숙동지의 말이 생각나서 검은 머리태가 춤추는 그이의 옆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고생속에 자라났어도 얼굴은 얼마나 깨끗이 생겼고 속은 또 얼마나 깊고 참한가. 눈매며 입모습이며 코망울, 어데를 뜯어보아도 모두 우아하고 령롱한데 그것이 하나도 겉으로는 반짝거리지 않고 그윽하고 은근한 빛이 속에서 비쳐나오고있다. 이런 아름다움이 세상에 있을가? 저것이 정말 내 혈육이라면 얼마나 좋을가.

리상녀는 절로 한숨이 새여나왔다. 얼마후 그는 얼른 풀밭에서 일어섰다. 아직 점심때가 멀긴 했지만 앓다가 나오신 김정숙동지께 감자라도 몇알 삶아 먹여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후에야 리상녀가 집으로 들어갔다는것을 아시였다. 그이께서는 차라리 일이 잘됐다고 생각하시였다. 그 무슨 다른 일을 하려고 들어간 모양인데 그사이에 빨래를 다 해놓아야 되겠다고 마음먹으시였다. 이 한버치의 빨래를 어머니의 힘으로 빨아내자면 얼마나 고되고 힘들가, 큰 소리로 웃기는 해도 관지뼈가 솟고 얼굴이 컴컴해진것이 병원에 있을 때보다 더 약해진것이 틀림없었다. 고된 일과 가슴속 설음때문에 몸이 축가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빨래방치를 힘있게 두드리시였다.

하지만 자신께서도 아직 병이 다 낫지 못하시였다. 더구나 요새 중촌쪽에서 부상자들이 올리밀리고 병원이 복잡해진 뒤부터는 자다가도 식은땀에 푹 젖어 벌떡 일어나앉군하시였다. 그래서 의사가 몹시 낯을 찌프리며 안정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늘 자기 몸이 어떻다는건 생각지도 않으시였다. 언제나 잔 물결과 큰 물결에 부딪쳐나가는 쪽배처럼 생활의 암초와 부딪치며 살아가시는 그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빨래를 한참씩 두드려가지고는 물에 헹구시였다. 가랭이가 찢어진 옷이 있는가 하면 불에 태웠는지 주먹이 드나들게 구멍이 뚫어진 옷도 있다. 방치질에 단추가 깨여지지 않을가 해서 뒤져보면 단추란 아예 달려있는 옷이 없었다. 간혹 있다는것도 깨져서 반쪽이 된것이 가까스로 붙어있기도 했다. 기송이가 부암에서 입고 온 중의적삼도 나왔다. 그건 그래도 단추 셋중에서 둘은 붙어있었다. 어머니가 무슨 구리로 만든듯한 단추를 달아서 입혔는데 그 든든한 단추도 붙어있는것중에서 하나는 돌에다 짓모으기라도 한것 같이 주그러들었다. 이 지독한 장난꾸러기들을 청진집어머니가 무슨 힘으로 교양해낼가. 왜 이렇게 거칠게 자랄가. 어머니,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없어서 애들이 이렇게 될가. 어제밤 한마당 밀려왔다가 어데론가 가버렸다는 그 가엾은 애들은 지금 어디에 가서 헤맬가. 거친 들판에 뿌려던진 그 사랑에 목마른 《조약돌》들을 그 누가 구해주고 그 누가 바로 양해준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줄곧 이런 생각을 하며 뙤약볕아래 앉아 빨래를 두드리시였다.

한버치의 빨래를 다 빨아서 풀밭에 널고계시는데 리상녀가 개울가로 나왔다.

《네가 오늘 기운을 뺐구나. 옛말에 아재비 못된게 조카를 장짐 지운다더니 일껀 찾아온 너한테 빨래만 실컷 시켰구나.》

《어머니두 참, 빨래 한버치를 빤게 뭐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러나저러나 인젠 어서 들어가자. 수수라도 푼푼하면 밥을 한끼 지어먹였으면 좋으련만 지금 형편이 어디 그러냐, 그러니 들어가서 감자라도 몇알 먹어봐라.》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시였다. 자기를 생각해서 감자를 삶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이 다시금 몸을 어루만지는것 같으시였다.

이날 개안촌 맞은편 강가에는 아이들이 가득 모여들어서 끓었다. 그저 뛰고 달리고 돌팔매질을 하고 강물에 풍덩 뛰여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온통 야단법석이였다. 이 수난의 시대가 뿌려던진 불에 끄슬린 어린것들이 그래도 저들대로 먹고 살자는 투쟁도 벌리였다. 한곳에서는 십여명 아이들이 감자를 캐다 구워먹자고 큰 돌굿을 만들고 불을 지폈다. 돌을 달구어 익혀내려는것이였다. 한 애는 불이 잘 달리지 않아 적삼을 벗어서 휘둘러댔다. 애들 한패는 나무를 해들이고 다른 한패는 감자를 캐러 가느라고 조밭고랑으로 살살 기여나갔다. 조밭 다음에 수수밭이 있고 그 다음에야 잎이 누런 감자밭이 있었다. 어제밤부터 캐다가 구워먹기 시작했는데 벌써 밭 한귀퉁이는 아주 결단이 났다. 누구네 감자밭인지 임자만 나타나면 경을 치러도 보통 치르게 안되였다. 애들도 그걸 알기때문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밭고랑에 납작 엎드려서 감자를 캐나갔다. 그리고 한 아이는 수수밭속에 숨어서 와실거리는 수수잎새로 두눈만 빠끔히 내밀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망을 보았다. 이 애가 온다 소리만 지르면 모두들 들고 뛸판이였다. 감자를 캐는 애들 손은 쇠로 벼려낸 갈퀴같았다. 다섯손가락이 돌섞인 흙을 번개치듯 뚜져넘기며 감자를 캐나가는데 피가 터지는줄도 몰랐다. 어떤 애는 포기채로 잡아당겨 거기 달린 디글디글한것들만 떼내고는 배를 밀며 앞으로 나갔다.

한참 캐니 감자가 여기저기 수두룩이 쌓였다. 애들은 적삼을 벗어서 그걸 싸들고 달리였다. 망보던 애도 자기 적삼에 한보자기 싸들고 뛰였다. 감자를 어찌 많이 캤는지 그래도 다 가져가지 못하고 밭고랑들에 숱한 감자가 디굴디굴 널리였다.

불 때는 애들은 아궁앞에 엎디여 불기도 하고 적삼으로 부치기도 했다. 어데서 젖은 나무를 가져다 가뜩 지펴넣어서 씰씰 소리를 내며 연기만 피워올렸다. 애 하나는 연기에 쐬여 눈이 시뻘겋게 되였다. 감자를 캐다놓은 애들은 이번엔 또 마른 나무를 하러 간다고 모두들 흩어져 뛰였다.

감자 구워먹을 돌굿을 또 다른 애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애들이 무리를 지어 돌을 날라들이고 나무를 해들이고 했다. 애들속엔 인수, 태호 같은 부암의 애들도 적잖게 섞였다. 부암애들은 중촌구역에 와서 돌다가 오늘아침에야 상촌으로 올라왔다. 모두들 험해졌다. 부암에서 아동단을 뭇고 훈련받던 그런 애들같은데라곤 거의 없었다. 돌보지 못한 상추밭같이 됐다고 할가?

기송이며 인수들도 돌굿을 무었다. 기송이는 이 돌굿에다 자기네 합숙애들도 끌어들여놓고는 돌을 날라오라, 나무를 해오라 하며 소리를 질렀다. 끈을 해서 어깨에 멘 나팔이 데룽거리며 춤을 췄다. 그는 낯선 애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나팔을 불어보겠다고 덤벼드는바람에 어제부터는 아예 나팔에 끈을 해서 어깨에 메였다. 인제 겨우 납으로 때고 두드리고 해서 웬만치 소리가 나게 됐는데 이 애 저 애가 채들고 불다가 또 못쓰게 만들가봐 겁이 나는것이였다.

벌써 먼저 돌굿을 시작한 애들은 감자를 구워내서 먹었다. 급하게 서둘러서 어떤 감자는 익지도 않았다. 그런것은 껍질을 벗겨보다간 내버렸다. 잘 익은 감자는 껍질을 벗기면 가루가 툭툭 튀여져나왔다. 그런걸 한입씩 베물었다간 혀를 데여서 눈물을 찔끔 쏟는 애도 있었다.

한창 이러고있을 때 개안촌으로 건너가시던 김정숙동지께서 강가에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애들이 바글바글 끓는걸 한참 바라보시였다.

사처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애들이 뛰기도 하고 들고 돌아가며 씨름을 하기도 한다.

어제밤 청진집어머니가 있는 합숙에 있겠다고 찾아왔다가 어데론가 흩어져갔다는 바로 그 애들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천천히 애들이 들끓는 강가로 올라가시였다. 연기가 피여오르는곳에서 애 하나가 《온다!》 소리를 질렀다. 애들이 모두 목을 빼들고 김정숙동지께서 오시는걸 쳐다보더니 들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기송이가 언덕진곳으로 뛰여올라가며 강가가 쩌렁 울리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다, 감자밭 임자는 아니다. 저건 우리 누나다. 우리 누나야.》

그러더니 어깨에 멨던 나팔을 벗겨내려 입술에 대고 한바탕 멋지게 불었다. 신이 나서 하는 행동이였다. 그제야 달아나던 애들이 모두 멈칫멈칫하며 섰다. 기송이는 나팔을 불다말고 또 한번 자기의 누나니까 뛰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애들이 모두 비실비실 제자리로들 모여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 애들 있는데로 가시자 부암애들이 달려와서 둘러쌌다. 인수는 먼발치에서 허리를 굽석해보였다.

《아니 너희들은 언제 왔니?》

《누나, 그 애들은 중촌에 있다가 오늘아침 여기로 올라왔어.》

애들 먼저 기송이가 나서며 대답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입이 굳어지신듯 잠시 말씀을 못하고 애들을 돌아보시였다. 얼굴과 옷이 새까맣게 되였다. 제일 키작은 태호는 적삼을 어떻게 했는지 웃동을 벗고 서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태호의 곁으로 걸어가시였다.

《너두 이때까지 중촌에 있었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뒤통수를 쓸어주며 물으시였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중촌에선 누구네 집에 있었니?》

《그저 이렇게 살았어. 인수랑 같이…》

《이렇게 살다니? 강가에서 살았단말이냐?》

《아니 산밑에도 있었구…》

《얘 뭐가 산밑에만 있었니? 도가에서두 자구 풀밭에서두 자지 않았니?》

같이 온 딴 애가 끼여들며 쏘아붙였다.

《도가가 뭐 사람의 집인가? 헹…》

태호는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그래 동네에 집이 없어 그런데서 자라고 하더냐?》

《아니 집에서두 자라구 해. 그렇지만 사람이 가뜩해서 우린 우리끼리 잤어.》

《적삼은 어쨌니?》

《저기 있어.》

태호는 연기가 나는 돌굿앞을 손가락질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그리로 걸어가시였다. 어째서 그랬는지 적삼은 꾸겨서 모래속에 한절반 파묻어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적삼을 들어올려 터시였다. 새까맣게 때가 오르고 한쪽소매는 째져서 입을나위가 없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적삼을 들고 와서 태호에게 입히시였다. 옷을 입히면서 보시니 팔뚝이고 잔등이고 온통 한꺼풀 벗었다. 얻어먹지 못해서 그런지 량어깨의 박죽뼈가 삐죽이 솟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저리시였다.

태호는 아버지와 엄마가 일찍 죽고 제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던 애였다. 언제인가 태호가 훨씬 어렸을 때 무슨 볼일이 있어 그의 집으로 가시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태호를 앞에 앉혀놓고 죽을 떠먹이며 내가 이것의 뉘를 보며 살겠는가고 했다. 그러면서 어지러운 치마폭을 들어 자꾸 눈물을 씻었다. 그러던 할머니가 지난번 《토벌》때 불속에 들어 타버렸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재더미속에 새까맣게 된걸 들어내다 파묻었다고 한다. 이래서 바로 이 어린것만이 세상에 남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태호의 단추까지도 꼬박꼬박 채워주시였다. 그래도 그의 적삼엔 할머니가 달아준듯싶은 검은 단추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사이 애들은 모두 김정숙동지께서 계시는곳으로 모여들었다. 감자밭임자인줄 알고 뛰자고 했는데 나팔수애가 제 누나라는 말도 하고 또 벌거벗은 애한테 옷을 입혀준다 어쩐다 하는것을 보니 이만저만 인정이 있는것 같지 않아서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죄다 모여와서 김정숙동지를 둘러쌌다.

《너희들은 모두 어디서 왔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눈만 반짝이는 애들을 둘러보며 물으시였다. 한 애도 대꾸하는 애가 없었다. 서로들 어서 먼저 대답하라고 눈짓들만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가 묻는게 잘못되였다고 생각하시였다. 바다에 돌던지듯 이렇게 물어서야 어느애가 중뿔나게 나서며 어데서 왔노라고 대답할가싶으시였다. 또 어데서 왔다는걸 물어선 뭘하랴싶은 생각도 드시였다. 수십동네에서 다같이 집을 잃고 부모를 잃고 의지가지 없어 여기 굴러들어왔을건 뻔하지 않는가.

《기송아, 어제밤 너희 합숙에 있겠다고 찾아갔던 애들도 여기 있니?》

《이 애들이 다 왔댔어. 오늘아침 중촌에서 올라온 인수랑 내놓군 죄다 우리 합숙에 왔댔어.》

《그래 모두들 어제밤 먹기는 뭘 먹구 자기는 어데서 잤니?》

여전히 애들은 대답을 안했다. 모두 시리죽은 상을 하며 모래불에 발가락장난을 하였다.

《얘들아, 왜 대답을 않니? 너희들도 동네에서 아동단생활을 하지 않았니? 그런데 묻는 말에 대답도 못해?》

기송이의 소리에 애들은 모두 피씩 웃었다. 그러더니 한 애가 대답했다.

《우린 여기서 잤어요.》

《이 돌밭에서 잤단말이냐?》

《안야요. 저기 저 버들숲에 들어가 버들을 깔구잤어요. 그러니까 아주 좋아요.》

《피, 좋긴 뭐가 좋아? 난 추워서 한잠두 못잤어.》

《추울게 뭐냐? 난 더워서 초저녁에 멱두 감았다.》

《초저녁엔 그랬지만 새벽엔 추웠어.》

애들이 그제야 저마다 떠들어댔다. 한 애는 정말 추웠게 새벽녘에 일어나 빨리 불을 피우구 감자를 캐다가 구워먹자고 한게 아니냐고 했다가 곁아이한테 옆구리가 뚫어지게 주먹찜질을 당했다.

《감자얘긴 관둬.》

《메라니? 감자밭임자는 아니라는데…》

둘이는 수군거리며 눈을 힐끔거렸다.

《그리구 아무것도 먹지 못하구 굶어서 잤니?》

《예…》

키가 두두룩한 애들이 시침을 뚝 따며 목소리를 합쳐 대답했다. 기송이는 씽긋하며 웃었다. 애들 속내는 알고있지만 저도 지금 감자를 구워먹자고 돌을 달구는판이라 한통이 되여 누나를 속일수밖엔 없었다. 제일 나이 들고 키가 큰 인수는 애들 뒤 모래불에 외면해 앉아서 괜히 꼬챙이를 뚝뚝 꺾었다. 지금 그의 심정은 몹시 구슬프고 복잡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모두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아동단생활은 다 어데로 갔는가. 그래도 부암에 있을 때엔 거짓말같은건 누가 하기만 하면 그건 나쁜 소리라고 비판도 했다. 그런데 인젠 온통 달라붙어 거짓말을 하고 남의 감자를 캐다먹어도 뭬라나 하는 마음을 먹게 되였다. 어느 애고 이게 나쁜 일인줄 알긴 할것인데 이런 일을 하지 말자고 하는 애는 하나도 없다.

기송이 누나가 지금 얼마나 노여워할가? 인수는 부암생활이 그립고 그리웠다. 부암마을이 그대로 있고 지금도 거기서 아동단생활을 계속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어머니, 아버지 생각도 간절했다. 아버지는 어데로 떠나갔으니 모르지만 엄마는 왜 그날 아침 빨리 피하지 못하고 총에 맞았을가.

사실 인수의 아버지는 이미 여러해전 로동판으로 간다고 떠나갔는데 떠난 뒤엔 소식이 없고 어머니는 부암이 《토벌》맞던 날 아침 세간살이를 꺼내 꾸려 이고 떠나느라고 꾸물거리다가 왜놈의 기관총알에 맞았다. 그뒤 중촌에 와서 치료를 하댔는데 중촌에 다시 《토벌》이 달려드는바람에 미처 운신을 못해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불붙는 집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속이 깊은 인수는 어머니의 주검을 놓고도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무덤속에 홀로 남기고 떠나가기 아쉬워 부암의 애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무덤앞에 풀을 베다 깔고 거기서 여러 밤을 새웠다. 그러느라고 오늘아침에야 이 상촌으로 올라왔다.

인수는 다른 애들 못보게 눈물을 뚝뚝 떨구며 꼬챙이로 모래불을 쑤셨다. 그는 문문이가 뒤걸음을 치는것도 눈물이 고인 눈으로 아무 의미가 없이 내려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이나 말씀없이 이 애 저 애 돌아보시였다. 아직 병색으로 파리한 기운은 떠돌지만 불시에 날카로운 빛과 엄숙한 기상이 얼굴에 얼른거리시였다. 애들은 김정숙동지의 얼굴빛이 엄엄해서 그러는지 모두들 고개를 떨어뜨리고 또 시리죽은 상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쓰리고 아프시였다. 웃동을 벗어던진 애는 태호말고도 수두룩했다. 모두 동가슴과 어깨팍이 몇까풀씩 벗고 질그릇같이 까맣게 탔다. 한 애는 배꼽옆에 종기가 났는데 그래도 무슨 고약을 얻어붙였는지 종이를 동그랗게 오려붙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벌거벗은 애들속에서 뜻밖에도 하촌 리상준의 조카애들을 둘이나 발견하시였다.

《너희들도 여길 왔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이 납작한 큰 애앞으로 다가가 뒤통수에 손을 대며 물으시였다.

《예.》

《둘이만 왔니?》

《둘만 왔어요.》

《그담 애들은 다 어디 갔니?…》

《누구말이예요?》

《너희 삼촌이랑 또 꼬맹이들이랑…》

《삼춘? 삼춘이야 어른이지 아이나요뭐?》

《어른삼촌말구 그 왜 눈이 큰 작은삼촌 있잖았니?》

《응, 눈뚱그랭이 상식이?》

작은 아이가 먼저 알았다는듯이 소리쳤다.

《그래 정말 상식이라고 했지? 그 앤 어디 있니?》

그러나 애들은 대답이 없었다.

《왜 말이 없니?》

《상식이랑 동생들이랑 다 죽었어…》

발끝으로 모래불만 긁적거리던 작은 아이가 중얼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가슴을 도끼로 찍는것 같은 충격을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담엔 아무 말도 묻지 않으시였다. 아이의 뒤통수를 쓰다듬던 손도 슬며시 떼내시였다. 다리가 휘청거리시였다.

애들이 그렇게 모두 죽었다니 어른들이야 하나나 살았겠는가. 리상준이 희생된건 이미 알고있지만 그의 가정이 그렇게도 큰 비극을 붙안고 넘어지면서 이렇게 밤알만한 애 둘만을 여기에 뿌려던졌을줄은 꿈에도 모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벌거벗은 애들에게 죄다 적삼을 찾아서 입히시였다. 그리고는 무슨 장난을 하며 놀았는가 해서 일일이 돌아다니며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불을 지펴놓은 돌굿을 보고도 이게 무얼하는것인가고 묻지 않으시였다. 캐다놓은 감자를 보고도 어데서 해왔는가고 묻지 않으시였다.

《히히, 정말 썩 좋은 누나다 얘.》

《적삼이랑 입혀주는걸 보렴.》

《얘, 부암에서 아동단지도를 하던 누나란다.》

《응, 그러게 그렇게두 사근사근한가보구나.》

《그렇지만 인제 감자를 캐다 궈먹는다군 욕할거야.》

김정숙동지의 뒤를 따르는 애들은 이렇게들 소곤거렸다. 그들은 흘끔흘끔 김정숙동지의 표정만 훔쳐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도 안하시였다. 애들이 먹다가 내버린 선 감자가 대여섯알 굴러있는걸 보고는 잠간 걸음을 멈추시였다. 어떤건 껍질을 벗기다가 내버리고 어떤 알은 껍질을 벗기고 이발로 긁어먹다가 내버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감자알들을 한참 보다가 또 말없이 지나쳐버리시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과 갈라져 물을 건느려고 물가로 걸어나오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버들숲너머에 와서는 돌밭에 펄쩍 주저앉아버리시였다. 애들은 김정숙동지께서 아무 말씀도 없이 걸어가시는게 하도 이상해서 모두들 다람쥐같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버들숲 이쪽에 와서 목을 빼들고 넘겨다보았다.

《얘 운다. 누나가 운다!》

애들이 혀아래소리를 질렀다.

《어디메 운다구 그래?》

《봐라, 눈물 씻잖니? 저것 봐라!》

그바람에 애들속에 섰던 기송이가 버들가지를 잡아제끼고 뛰여나가며 누나를 불렀다. 그는 애들이 남의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왔기때문에 누나가 그 일이 분해서 우는줄로만 알았다. 지금 누나가 체험하는 크나큰 비분을 알기엔 아직도 그는 너무나 나이 어렸다.

《누나, 왜 울어? 우지 말어. 우리가 정말 잘못했어.》

그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벌떡 일어서시였다. 눈물이 쏟아져내리는 눈에선 푸른 빛이 번쩍하시였다.

《왜 그런 못난소리 하니? 너희가 잘못한게 뭐냐? 너희가 잘못한게 뭐야? 엉? 왜놈들 아니라면 너희가 어째서 이렇게 됐겠니? 어째서 이렇게 불쌍하게 됐겠어?》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어깨를 잡아흔들며 안타까이 부르짖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문득 말을 멈추고 눈물을 이리저리 씻으시였다. 그리고는 치마자락을 걷어쥐고 첨벙소리를 내며 물로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물살을 힘차게 헤가르며 강을 건느시였다. 애들은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서 버들밭 이쪽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들은 김정숙동지께서 자기들을 꾸짖지 않는다는것을 알면서도 왜 저렇게 성이 나서 뛰시는지 미처 몰랐다. 다만 인수만이 그 마음을 알것 같기도 했다. 그는 두볼로 눈물을 흘리며 강을 건너가시는 김정숙동지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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