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15  회  )

 

제   5   장

 

1

 

온 동네가 참혹하게 되였다. 놈들이 이 부암에선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쳐 다른 동네처럼 해낼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늙은이, 젊은이 할것없이 숱한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불살라버렸다. 어린애들까지 수없이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이고 짓밟아죽였다. 청년들 십여명은 묶어가지고 끌고가다가 동구밖 언덕우에 렬을 지어 세워놓고 쏘아죽였다. 하촌의 리상준이도 그 언덕우에서 마지막 피를 쏟으며 숨을 거두었다. 갈골, 금페, 하촌같은 동네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도 죽은 사람이 많다. 어떤 주검은 불속에 들어 숯등걸같이 타서 어느 동네 누군지조차도 알아볼수 없게 되였다.

집도 죄다 불탔다. 산밑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집 몇채와 행길에서 비켜앉아있는 집 두어채를 내놓고는 몽땅 재더미로 되였다.

큰골에 어머니를 묻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남이를 안고 앉아서 오빠와 올케를 부르며 오래도록 우시였다. 어머니를 묻고나니 일을 너무 서두른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경찰에 갇혀있는 올케는 모르겠으나 오빠는 있는곳을 알아서 기별이라도 보냈어야 옳지 않았겠는가. 오빠가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라도 한번 볼수 있게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불쌍한 어머니! 그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오빠는 보지도 못하고말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또다시 울음이 북받치시였다.

집터에 내려오시니 더욱 설음이 왈칵 앞을 막아섰다. 그이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재무지주위를 무슨 급한 일이나 있는 사람처럼 분주히 돌아가다가 문득 멍하니 서버리기도 하시였다. 잔등에 업힌 어린애는 어린애대로 자꾸만 보채였다. 배가 고파서 적삼잔등을 박박 쥐여뜯으며 울었다. 어쩐지 자신께서도 살아있는 목숨같지 않으시였다. 앞이 막막해서 실성할것만 같으시였다. 어쩜 한꺼번에 이렇게도 죄다 뒤집히고 없어져버렸을가. 조직도 어찌 되였는지 알수 없다. 경식이는 위급해서 사람들이 맞들고 어데론가 갔다고 한다. 동구밖 언덕우에서 죽은 리상준이, 성재, 동수, 봉진이…

아, 인제 그 사람들을 어데 가야 만난단말인가!

어슬어슬 땅거미가 밀려왔다. 슬픔의 장막이 소리없이 내리며 오누이를 설음의 망망한 바다로 밀어냈다. 그러나 인젠 김정숙동지께서도 울지 않으시였다. 기송이도 울지 않았다. 겪은 슬픔의 그 한량없는 깊이를 느끼시자 오히려 눈물이 말라버리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맘이 담차게 도사려지기도 하시였다. 인젠 곁에 아무도 봐줄 사람이 없는데 자기까지 이렇게 울고만 있으면 기송이나 애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시였다.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라도 이 어린것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원쑤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나는 몇백배 더 원쑤를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머니도 숨을 거두며 그 말을 하지 않았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채 무너지지 않은 부엌간 벽체곁으로 걸어가시였다. 벽체 하나를 의지해서라도 세식구가 밤을 샐 자리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어둠속에서 재와 짚검불을 끌어내시였다. 그리고는 마당밖에 굴러있는 섶나무를 한단 들어다가 매끼를 테서 펴시였다.

《얘 기송아, 이리로 오렴.》

김정숙동지께서는 재무지곁에 우두커니 서있는 기송이를 부르시였다. 그러나 기송이는 말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얘 기송아, 여기 와 자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재차 부르시였다. 그 목소리는 어쩐지 날카롭게 울렸다. 그제야 기송이는 적삼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비실비실 걸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엇인가 말하고싶은것이 있는듯하였으나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는지 생각나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곁에 다가온 동생을 와락 끌어당겨 가슴에 붙안으시였다. 가는 바람에 날려 일어나는 재가 얼굴에 와서 들씌워졌다. 무중 이 모든것이 한마당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사위를 휘 둘러보시면 어머니는 없다. 집도 불타서 한무지 재로 변해버렸다. 이 피맺힌 슬픔은 너무도 엄연한 사실로 눈앞에 펼쳐져있다.

《기송아, 배가 고프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총이 센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으시였다. 갈린 목소리가 간신히 울려나왔다.

《난 배고프지 않아.》

기송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더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입안이 바짝 타들어와서 침조차 제대로 넘어가지 않으신다. 가슴속에서도 부드럽고 신선한것은 깡그리 불타 말라버린듯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섶나무우에 기송이를 끼고 앉으시였다. 애기는 기진해서 김정숙동지의 잔등에 볼편을 붙였다. 잠이 드는지 쌕쌕소리가 난다.

《누나, 인제 우리는 어디서 사나?》

《여기서 살지.》.

《집도 없는데 어떻게 살어?》

《집을 짓자, 너와 나와 둘이서 집을 짓자.》

《인제 집을 지어놓으면 회령집이라고 불러줄가?》

《불러주지 않구.》

《어머니도 없는데…》

《어머니가 없어도 우리들이 어머니 있을 때처럼 살자. 어머니 있을 때처럼 살면 우리 집을 모두 회령집이라고 다시 불러줄거야.》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이의 말이 가슴에 아프게 맺히시였다. 자기가 과연 집을 지어낼수 있을가. 정말 회령집을 다시 이 자리에 일으켜세워낼수 있을가.

집을 짓는다는것이 쉽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나 강심을 먹고 달라붙으면 못지어낼것도 없을것이다. 하지만 회령집이라는것이 다만 이 재무지로 변한 초가마가리 그것이였던가. 이 자리에 집한채가 일어서면 과연 회령집이 다시 생겨나는것으로 된단말인가. 아니 집이 무슨 회령집일가. 조선독립을 위해서 싸우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시고 혁명을 하는 오빠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정 후더운 어머니가 계시여 회령집이라 불리우지 않았던가.

비록 거칠은 산천에 옮겨앉아 이영이 게딱지같이 붙은 오두막을 짓고 살아도 이 집 마당에 들어서면 두만강의 푸른 물결이 굽이쳐흐르고 조선의 기상, 고향의 정취가 그대로 풍기는 집이였기에 사람마다 회령집 회령집 하며 좋은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문턱이 닳게 찾아들지 않았는가.

문득 어릴 때 본 두만강기슭의 백양나무 늘어선 동뚝길이 보이신다. 거기서 바라보던 오랑캐령의 황량한 모습도 떠오르신다. 나루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 그 황량한 오랑캐령에 서서 바라보던 조국땅 생각도 나신다. 안개우로 꿈같이 솟아오르던 산들, 눈물고인 눈에 담았던 굽이굽이 흘러간 산발들, 그 산천은 얼마나 좋았던가. 철이 들어서야 알았지만 본시 회령녀자들은 빼나게도 아름다왔다고 일러왔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검은 진주같은 눈에 살결이 아름다운 김정숙동지께서 어머니의 잔등에 업혀 처음 부암마을에 들어서시였을 때 보는 사람마다 딸을 낳으려면 회령땅에 가서 낳아야겠다고 말했다 한다. 하긴 그런 이야기가 어쨌든 사실 고향은 산천도 좋고 이름도 아름다운 고장이였다. 고무산쪽으로 아찔하게 바라보이는 령길우에 우수수 설레이는 자작나무잎사귀는 따가운 해빛을 받아 얼마나 눈부시게 반짝였던가! 두만강기슭을 따라 넓게 펼쳐진 벌판에 갖가지 곡식이 주렁지는 논판은 어쩌면 꽃밭처럼 그리도 알뜰하게 느껴졌던가. 지금 여기 새초와 개암덤불만 뒤엉킨 이 산천 그 어디에서도 두고온 두만강의 맑은 물소리와 백양나무, 자작나무 설레이는 다정한 소리는 들을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들만은 있었다. 아름다운 마음만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조국, 아름다운 고향을 그렇게도 사랑하였기에 그 조국, 그 땅을 도로 찾기 위해 혁명하자는 마음이 불같이 뜨겁기도 했었다. 바로 한추녀밑에서 살아온 회령집 식구들이 그랬다. 그래서 회령집이 아니였던가. 그래서 사람마다 회령집을 사랑한것이 아니였던가. 아, 회령집, 정다운 그 이름, 온 동네사람들이 그 집을 잊지 않는다는것은 동네가 이렇게 피바다 불바다에 잠겼을 때 더욱 드러났다. 사람들은 제 가슴에 멍이 든 슬픔과 고통이 있으면서도 회령집 어머니의 죽음을 그렇게도 서러워했다. 그리고는 회령집의 남은 식구들 걱정을 하며 손을 붙들어주며 울었다. 그러나 역시 회령집이 제일 귀중한것은 김정숙동지자신이시였다. 자신속에 있는 회령집, 그 모든 귀중한, 조국과 고향과 수없는 사람과 련결된것, 그 부드럽고 다정한 사랑으로 목이 메는 기쁨의 집, 그 집을 지켜낼 의무를 그 누가 져줄것인가. 김정숙동지자신께서 두어깨를 들이대고 져야 할것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을 씻으시였다. 너무도 큰걸 생각하니 가슴이 더 답답해지셨다. 숨이 칵칵 막히는것 같으시였다. 올케가 류치장에 앉아있듯이 자신께서도 지금 캄캄한 류치장에 앉아있는것만 같으시였다.

기송이는 등을 꼬부리고 섶나무우에 쓰러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제야 어린애를 눕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애기를 품에 돌려끼고 기송이곁에 누우시였다. 별이 총총히 올려다보이신다. 아무일도 없은듯이 예대로 찬란한 별나라가 펼쳐져있다. 유난히 큰 별 몇개가 김정숙동지를 꿈뻑꿈뻑 내려다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별들을 마주 올려다보시였다. 어데서 우룩우룩 소리가 들리는것 같으시였다. 바람도 없는데 무슨 소릴가? 바로 집이 불탈 때 어머니를 찾아서 부엌안으로 들어서시니 불소리가 그렇게 울렸다. 불소리, 그 저주로운 불소리! 그 소리가 또 어데서 울리는것인가. 이 세상이 온통 그렇게 우룩우룩 불에 타고있는것은 아닐가. 두만강물이 말라들고 설레던 자작나무, 백양나무도 죄다 타버리는것은 아닌가.

김정숙동지께서 아직 잠들지 못하고 별을 쳐다보고계시는데 분임이가 삶은 감자를 놋바리에 담아들고 달려왔다. 그래도 그의 집은 불에 타지 않아서 이렇게 감자라도 삶아가지고 달려올 경황이 있는것이였다.

《얘 정숙아, 어서 일어나라. 돌아가신분은 돌아가신분이구 산사람이야 이를 악물고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분임이는 김정숙동지를 들어일으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가 고마와 눈물이 나시였다.

그는 제 설음이 있으면서도 남의 설음을 위로하러 이렇게 달려다닌다.

하긴 분임이의 아버진 또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이번 어머니를 감장하는 일도 동네사람들과 함께 분임이의 아버지가 나서서 신역을 치러주었다. 어머니를 땅에 묻을 때에는 분임의 아버지도 구레나룻이 젖도록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우리 어머닌 너와 기송이를 집에 데려다가 자게 하려고 하다가 별안간 덕산동에서 손님이 달려드는바람에 다 잊어버리고 지금 경황없이 뛰고있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듣고만 계시였다.

분임이는 기송이도 들어일궈 앉혀놓고 오누이에게 감자를 한알씩 쥐여주었다.

《어서 먹으라는데두… 얘 기송아, 넌 왜 들고만 앉아있니?》

그래도 다 감자를 먹을념을 안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 더운 물기가 있는 감자를 받아들고 앉아서 한쪽손으로는 옷고름을 들어다가 눈물을 씻으시였다. 기송이도 손등을 들어 눈물을 훔친다.

《글쎄 인젠 그만둬, 정말이지 세상이란게 어쩌면 이렇게 각박해갈가…》

분임이는 호-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얼른 돌아앉아 치마폭을 눈으로 가져갔다.

《넌 무슨 일이 있게 그러니?》

그제야 김정숙동지께서 한마디 물으시였다.

《난 인차 시집을 간단다.》

《아니 시집이라니? 무슨 시집을 이 란리판에 가니?》

《그 집에서 부암이 〈토벌〉맞았다는 소리를 듣구는 펄쩍 놀라서 잔치날이고 뭐고 사람을 데려가야겠다고 아까 기별을 보내오지 않았겠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 말도 못하시였다.

하루아침에 동네가 재로 무너앉고 사람들이 무리로 쓰러지는판인데 제 며느리로 될 사람을 어째서 급히 데려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이 험한 세월에 날을 고르긴 무슨 날을 고르고 잔치는 무슨 잔치랴.

분임이는 이어 눈물을 거두었다. 사람들의 불행이 사태를 이룬 이때, 더구나 어머니와 집을 잃은 정숙이앞에서 자기의 시집가는 일이 그 무슨 슬픈 일이기에 눈물을 쥐여짜겠는가 하는 자책이라도 받았는지 모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깨를 낮추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시였다. 분임이가 시집을 간다는것도 인젠 정말 자기와 영영 갈라진다는 소리로만 들리시였다.

이 새까맣게 된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자기가 앞으로 언제 분임이와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믿을수 있겠는가.

얼마후 분임이는 바람기를 막아야겠다면서 터밭에 굴고있는 섶나무를 또 한단 안아다가 막아주었다.

분임이가 총총히 사라진지 이윽할 때까지 김정숙동지께서는 감자 한알을 다 들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종시 도로 바리에 놓고마시였다.

기송이도 분임이가 쥐여준걸 한알만 먹고는 더 먹지 않았다.

《기송아, 왜 안먹니?》

《누난 왜 안먹어?》

《내 생각을 말고 어서 네나 먹으렴.》

《난 먹구프지 않어.》

김정숙동지께서는 감자 담긴 놋바리를 기송이앞에 내밀고 들이밀고 하시다가 한쪽에 돌려놓고는 또 자리에 누우시였다. 눈물이 글썽해서 하늘을 올려다보시였다.

동이 틀무렵이였다.

뜻밖에도 희섭이가 캄캄한 뜰로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시다가 얼른 일어나 맞으시였다. 역시 그 어덴가 있을줄 알았던 희섭선생이 앞에 나타나고보니 당장 그의 품에 엎어져 울고싶기도 하시였다.

《그래 무얼 좀 먹었소?》

희섭이는 거쉰 목소리로 물었다. 거쉬여진 그 목소리를 들으니 새삼스럽게 가슴이 무둑해지시였다. 놈들이 달려들었을 때 뽕나무담우에 올라서서 군중을 뽑느라고 그만치나 소리를 질렀으니 목인들 왜 안쉬였겠는가.

《먹었어요.》

《누구네 집에서 무얼 얻어먹었단말이요?》

희섭이는 김정숙동지께서 거짓말을 하시는것 같아 그러는지 재차 물었다.

《분임이네가 감자를 좀 가져다주어서…》

《장 굶으면서 감자나 몇알 얻어먹구 견디겠소? 내가 중촌에 갔다 내려오는길에 밥을 한그릇 가지고 왔소. 정숙동무두 좀 들구 기송이도 좀 먹이우. 이를 악물고라도 살아야 하우. 혁명이란것이 아무 시련이 없이 그저 되는건 아니요.》

희섭이는 어둠속에서 보자기에 싼 놋바리를 밀어내놓으며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메고 눈물이 나시였다. 중촌에서 여기까지 밥그릇을 들고왔다는것이 가슴이 저리도록 고마우셨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슴을 뜨겁게 흔드는것은 아주 없어진줄로만 알았던 조직이 이 재무지속에서도 살아있어 그 한끝이 자기에게 와닿았다는 생각이시였다.

《절대로 락망해선 안되오. 혁명이란건 피를 흘리지 않고는 이길수가 없소. 그러니까 맘을 굳게 먹구 꿋꿋이 살아야 하우. 그래서…》

《야, 저놈 봐라!》

깊이 잠들었던 기송이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는바람에 희섭이는 잠시 말을 끊었다. 얼마후에야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맘을 도사려먹구 혁명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우. 원쑤를 갚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단말이요.》

《알겠어요.》

《인젠 울지만 말고 하다못해 재무지속에 들어있는 세간그릇이라도 파내야 하우.》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였어요.》

《그럼 난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겠소. 일이 좀 복잡해져서 내가 자주 들리진 못하겠으니 그런줄 아우.》

희섭이는 얼른 일어섰다. 그러더니 어둠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 따라나서시였으나 언제 어데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참 서서 어둠속을 바라보시였다. 역시 조직은 밑에서 억세게 움직이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뜨겁게 안겨드시였다.

아침에 희섭이가 가져온 밥그릇을 내놓으니 기송이는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이건 어디서 난 밥이야?》

《희섭선생이 가져온 밥이란다. 너랑 나랑 울고만 있지 말구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라구 밥까지 가져오지 않았니.》

《희섭선생은 어데 가지 않구 여기 있댔나?》

《그럼, 새벽에 어딘지 회의를 하러 간다더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중촌이야기는 꺼내지 않으시였다. 분명 경식이도 희섭이도 모두 중촌으로 옮겨가서 무슨 일들을 하는것 같은데 그런 소리는 기송이에게 들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희섭이의 말을 생각하며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드시였다. 혁명을 하기 위해서, 원쑤를 갚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창끝같이 뻗쳐일어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먹고싶지 않다는 기송이에게도 억지로 먹이시였다. 이렇게 찬밥 한술씩을 들고나니 새로운 걱정이 안겨드시였다. 자기나 기송이는 그럭저럭 살것 같기도 한데 애기가 문제였다. 인남이는 인젠 울음도 제대로 울지 못하고 눈이 개풀렸다. 흔들며 이름을 불러야 눈을 가까스로 뜨고 멍하니 마주보았다. 그러다간 이어 얄팍한 눈까풀이 맞붙어버리군했다. 인젠 암죽같은것은 먹일수도 없을것 같으시였다. 어데가야 젖이 있을가. 단 한모금의 젖이라도 얻어먹여야 할텐데 찾아갈만한데가 떠오르지 않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점도록 안타까운 생각을 좇다가 아무런 가늠도 없이 동네로 나서시였다. 동네엔 그래도 여기저기 사람들이 보이시였다. 아직 연기가 피여오르는 집터도 있다. 무얼 하는지 재가 날리는 집터에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데서 으으으 소리를 죽여가며 우는 소리도 들린다. 그 울음소리가 막막하고 처량한 기운을 더욱 돋구어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늘 다니며 젖을 얻어먹이던 순이네 집으로 찾아가시였다. 집이 불탄건 알고있지만 그래도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죄스럽고 송구한 마음을 누르며 걸으시였다.

순이네 집에 오시니 키가 큰 순이 아버지가 쇠스랑으로 재무지를 자꾸 파헤치고있었다. 타다 남은 집재목도 적잖게 파내놓았고 솥이며 독 같은것도 파내놓았다.

젖을 얻어먹일가 해서 오셨는데 순이 어머니는 마당가 댑싸리가 우거진 저쪽 풀밭에 기를 버리고 누워있었다. 어린 순이를 품에 끼고 누웠는데 사람이 곁으로 가도 눈을 뜨지 않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제야 자기가 정신없는 걸음을 했다고 속으로 뉘우치시였다. 어머니를 산에다 매장할 때 순이네는 얼마 머지 않은 산비탈에다 기송이와 동갑인 사내아이를 묻었다. 인제야 순이 엄마가 무덤우를 딩굴며 울던것을 본 생각이 나신다. 어째 이렇게 정신이 없어졌을가. 죽음이 하도 많아서 이런것을 다 기억해내지 못하는것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큰 죄나 저지른것 같은 생각으로 얼른 댑싸리앞에서 발길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도망치듯 걸어나오시였다. 순이 아버지가 소리치면 뭐라고 대답할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젖을 얻어먹이려고 왔다면 얼마나 철딱서니 없다고 속으로 나무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식은땀이 돋아서 행길로 나서시였다. 인젠 정말 어데로 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으시였다. 밥을 좀 들었는데도 애기는 자꾸 흘러내렸다. 그이께서는 띠를 풀어서 고쳐 죄여매시였다. 어찌 죄여매군했는지 명치끝아래가 끊어지는것 같이 아프시다. 어데로 가야 하나? 젖 한모금이 이리도 귀할가? 그저 온통 하늘도 땅도 불이 붙는것만 같았다. 날아가는 까치도 불속에서 너풀너풀 날개를 치는것 같다. 덤불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도 둥지가 불에 탄다고 부리를 마주대고 야단스럽게 지저귀는것만 같다.

《이게 정숙이 아니야요?》

누가 마주 걸어오다가 묻는다.

《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 소리같지 않은 야릇하게 갈린 대답소리를 스스로 이상하게 생각하며 얼굴을 드시였다. 아이를 업은 웬 녀인이 앞에 서있다. 누구였던지 깜빡 생각이 안나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연히 입가에 웃음을 띠시였다.

《아니 어데로 가요?》

《젖 얻어먹이러 가요.》

《어데루?》

《그저 가죠뭐…》

《어머니가 돌아가시구 집이 불탔다더니 모습이 이렇게 됐구만. 애기를 이리 보내라구, 젖이 좀 나오겠는지…》

녀인은 얼른 다가와 서며 띠를 풀었다. 그리고는 아이를 받아 안아들고 길옆 풀밭으로 가서 앉는다.

《쯧쯧, 이렇게 되도록 젖 한모금 못 얻어먹이고. 아가, 인남아… 온 이런, 힘이 없어 눈도 겨우 뜨는구나.》

녀인은 자기 아이를 업은채 가슴을 헤치였다.

《낸들 젖이 뭐 흔하겠소. 그런걸 또 방금 복동이가 다 파먹었으니 웬 젖이 나겠소? 아가, 인남아 젖을 빨아라!》

복동이란 말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아낙네가 건넌마을에 사는, 올케의 친정집마을에서 시집을 온 녀인이란걸 겨우 알아보시였다. 언젠가 한번 올케를 찾아왔다간 일도 있었다.

《배라먹을놈의 젖, 안나오는구나!》

녀인은 홀쪽한 젖을 자꾸 훑어내리며 이쪽저쪽 물려보았다. 인남이는 몇모금 빨고나더니 그담엔 젖이 안난다고 쉰목소리로 꺽꺽 울었다. 그러자 잔등에 업힌 아이도 제 젖을 먹는다고 그러는지 골을 내저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건 웬 심술이냐, 그쳐라!》

녀인은 뒤손질로 자기 아이를 두드려댔다. 그러나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이구 참 젖두 안나는데 복새군까지 끼여드는군, 었다 너두 빨아봐라!》

녀인은 제 아이까지 젖가슴에 돌려안았다. 그래도 녀인의 애는 투실투실하고 머리빡도 컸다. 그 애한테 비하면 인남이는 반쪽이였다. 젖을 잃어버린 뒤 피지 못한 흔적이 너무도 뚜렷했다. 애 둘은 젖을 하나씩 물고도 서로 남이 문 젖꼭지까지 차지하겠다고 울며 싸웠다. 인남이도 젖맛을 보더니 만만치 않았다. 종주먹으로 복동이의 입언저리를 마구 치기도 하고 손가락들을 집게발같이 해가지고 꽉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면 머리빡 큰 애가 물었던 젖꼭지를 놓고는 응아 하고 울었다.

《잘한다. 혼자 먹겠다는녀석은 그렇게 좀 맞아야 싸지.》

마음씨 좋은 녀인은 제 아이 우는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며 인남이를 부추겨주었다.

《아주머니, 애기를 이리 줘요.》

《업구 가라구, 젖이 안나는구나. 송하동 최두갑이넨 손자 며느리가 젖이 남아서 매일 한바리씩 짜던진다고도 하더구만…》

《송하동에 그런 집이 있어요?》

《송하동 최두갑이네가 그런다잖아. 그러니 거기가 어디라고 젖을 얻어먹이러 가겠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를 업고 띠를 죄여매시였다. 녀인은 그걸 보자 허리가 끊어지지 않느냐고 야단을 쳤다.

《그래도 이렇게 죄여매야 단단해요.》

《쯧쯧, 죄여매는것두 분수가 있지. 빈 창자를 그렇게 죄여매서야 돼요? 그래 잡혀간 올케소식은 알구있어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가엾은 일두… 목숨이나 붙어있는지?》

녀인은 얼른 혀를 끌끌 차며 제 아이를 도로 돌려업는다.

녀인과 갈라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돌아오는길에 눈앞이 아찔하여 한참 나무를 붙잡고 서계시였다. 이를 악물고 살아보자고도 하고 원쑤를 갚아보자고도 하고 혁명을 해보자고도 하건만 몸이 그걸 받쳐줄것 같지 못해 겁이 나고 떨리기도 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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