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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14 회 )
제 4 장
3
부암으로 돌아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길로 희섭이를 찾아가시였다. 공청책임자 경식이도 한자리에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갔다온 경위를 자세히 보고하시였다. 경식이와 희섭이는 이튿날아침 동민회의가 파탄되고 온 동네가 벌둥지 쑤신것 같이 들끓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통쾌해서 껄껄 웃었다. 《그래 어제밤 자기는 뉘집에서 잤소?》 경식이 김정숙동지를 보며 물었다. 《저… 그 상준동무가 데려다준 고개너머집에서 자구 조반까지 먹구 떠났어요.》 《상준동무네 집엔 식구가 많지요?》 《네, 어른들두 많구 애들두 많아요. 누가 누군질 모르겠어요.》 경식이는 또 껄껄 웃었다. 《잘 싸웠소. 바로 그렇게 하는게 혁명투쟁이요. 조직에서 주는 임무를 어김없이 해내는것이 혁명투쟁이지 다른거겠소. 이런 투쟁을 자꾸 해가노라면 단련두 되고 머리도 트이고 그래서 차츰 혁명가로 되는것이요. 오빠를 봐서라도 빨리 훌륭한 녀성혁명가가 되여야 하오. 인제부터는 절대로 민가네 방아간으로 나가지 마오. 나가지 않고도 견딜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동무는 인젠 아동단일을 좀 맡아서 해야겠소. 애들을 교양하는 문제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요. 그러나 나는 동무가 그 일을 능히 해낼수 있으리라고 믿기에 맡기는것이니 잘해야 하오.》 경식이는 한참동안 아동단지도를 어떻게 해야 된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더니 해낼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해보겠어요. 모를건 물어가면서…》 《그렇지. 물어가면서 해야지요. 누가 혁명을 배속에서 배워가지고 나왔겠소? 배워가면서 하는게 중요한 문제지요. 어서 집으로 가보우. 어머니가 어데 갔다는걸 알고계시긴 하지만 기다리실거요. 그리구 밭김이 좀 남은건 오늘 무산집 품군들이 죄다 매치웠소.》 경식이는 흡족한 표정으로 땀이 난 목덜미를 문대며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식이의 말이 고마와 눈물이 날것 같으시였다. 정말 이게 조직 조직 하는, 하나로 뭉친 그 큰힘이 자기의 뒤를 받들어주고 보살펴주는것이 아닌가. 어쩐지 인제야 조직이라는것이 무엇을 말하는것인지 그 참뜻을 알수 있을것 같기도 하시였다. 밖에 나서시니 해는 이미 석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삐 풍산집앞 언덕을 춰오르시였다. 맘이 무척 즐겁고 정말 큰 보람이 느껴지기도 하시였다. 인제야 진짜 혁명의 길을 한걸음한걸음 걸어나가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언덕을 넘어와 안골밭에 들리시였다. 남은 밭김이란 안골에 조를 심어넣은 비탈밭이 있는데 큰골밭과 바닥밭을 매느라고 그건 아직 마감김을 매주지 못하시였다. 올케가 체포되여간뒤 그 밭김때문에 꿈도 여러번 꾸시였다. 꿈엔 늘 올케가 등빠진 베적삼을 입고 안골밭에 가앉아서 김을 맸다. 밭머리풀밭에선 포대기우에 눕혀놓은 인남이가 다리를 바들거리며 울었다. 해빛이 내리쬐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고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올케는 애기를 돌아보지도 않고 호미질만 했다. 올케의 얼굴에서도 목에서도 땀이 철철 흘러내렸다. 꿈을 깨면 김정숙동지께서도 땀이 흥건해지시였다. 올케가 김을 맨게 아니라 자기가 김을 맨것 같기도 하시였다. 올케도 꼭 류치장안에서 그런 꿈을 꿀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눈을 감아도 떠도 풀이 무성한 안골밭이 떠오르시고 정신은 내내 그 밭에 가있었다. 안골밭에 오시니 정말 밭이 말끔해졌다. 긁어눕힌 풀들이 다 마르고 밭머리가 거울같았다. 조가 풀속에 있을 땐 뵈지도 않았는데 아래도리가 멀끔해지니 키도 큰골 조키만치나 큰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저녁바람이 설렁거리는 조밭속으로 뛰여들어가시였다. 어떤덴 조키가 무릎을 치며 대숲처럼 설레인다. 장잎이 쭉쭉 뻗어오르기도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도 고마와 눈에 눈물이 그득해지시였다. 큰골 밭김도 동네사람들이 매주었는데 이 밭김까지도 동네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이 고마운 사실을 올케에게 알릴수 없을가. 이것을 알게 된다면 올케인들 얼마나 고마와 눈물을 흘릴가. 김정숙동지께서 집에 당도하시니 어머니는 어린애를 업고 마당에서 베맬 준비를 하고있었다. 도투마리 올려놓을 말뚝을 박노라고 쉿차쉿차 메질을 하였다. 《어머니, 몸이 아직 추서지 못했는데 뭘 그렇게 고된 일을 하세요.》 《인제 오냐? 일찍 오리라고 하더니 늦어졌구나!》 《네, 좀 늦어졌어요. 어머니두, 누가 베맬 준비를 하시랬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토방우에 있는 베실 담긴 함지며 땅을 파느라고 갖다놓은 괭이며 호미를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달려가 어머니의 손에서 메를 빼앗으시였다. 《그럼 베를 매지 않고 내버려둘테냐? 베 한필이 되나마나 할 일감을 이게 언제냐? 벌써 봄에 매서 짜야 했을건데…》 《그래두 몸이 아주 다 나으신 다음에 매야 되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대신 말뚝을 박으시였다. 《그래 심부름은 잘하고 돌아왔니?》 《네.》 《심부름을 잘해라. 내가 어제두 이야길 했지만 지금 사내구 녀자구 가만히 앉아있을 세월이 아니야. 어제밤엔 경식이가 찾아와서 이 세상이 어떻게 돼간다는걸 밤새 이야길 해주더구나. 그 소리를 들으니 오늘은 더 힘이 생기는것 같다. 그까짓 왜놈들이 자꾸 들이밀린단들 대수냐? 우리 조선백성이라구 그렇게도 힘이 없을테냐?》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쩐지 가슴이 더욱 뿌듯해지는것 같으시였다. 어머니가 이렇게 마음 든든한 이야기를 해주니 고마우시였다. 이러는데 기송이가 헐레벌떡이며 달려들어왔다. 《어머니, 누나!》 그는 연거퍼 부르며 숨이 차서 꺽꺽거렸다. 《왜 그러냐?》 《왜 그러냐가 다 뭐야? 게사니모가지가 죽었어.》 게사니모가지란 애들이 부르는 홍달수의 별명이였다. 《아니 너 그게 무슨 소리냐?》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며 물으시였다. 《인제말야, 들것에 맞들구 동구쪽에서 들어왔어. 게사니모가지 녀편네는 애고대고 울고…》 《너 똑똑히 보았니?》 《체, 내가 뭐 거짓말 할가? 어제저녁때 광산거리로 나가다가 분지바위 있는데서 공산당한테 죽었다는거야. 민가네 두부함지가 홑이불을 들칠 때 보니까 여기가 헤쩍 갈라졌어.》 기송이는 자기 볼편을 쭉 내려그으며 말했다. 《누나, 누가 죽였을가?》 《관둬. 그런걸 알아서 뭣하니.》 김정숙동지께서 무서운 눈을 하며 나무라시였다. 기송이도 그담엔 말을 못하고 비실비실 물러났다. 어린 맘에도 인제야 이것이 함부로 떠들 소리가 아니라는걸 알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모든것이 급하게 변해간다는것을 몸으로 느끼시였다.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큰힘이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급하게 용을 쓰며 일어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생사결단하는 싸움이 인제 정말 벌어지는 모양이구나. 그놈이 내 며느리를 경찰에 잡혀가게 했지…》 어머니는 딸이 박아놓은 말뚝곁으로 와서 흙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다가드는 준엄한 싸움을 의식하며 가슴이 뛸뿐이시였다. 어머니도 그다음엔 아무 말을 안했다. 김정숙동지께서 하촌을 다녀오신뒤 중촌 청바위굴에서 찍어내는 삐라와 격문은 더욱더 그 살포구역을 확장해나갔다. 삐라와 격문에 쓰는 내용도 달라졌다. 혁명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일성장군님의 투쟁방침을 높이 받들고 모두다 떨쳐나서라!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 총을 잡으라! 일제의 주구는 가차없이 처단해 없애라! 남녀로소가 다 조선독립을 위해 궐기하라! 이런 내용의 삐라들이 밤이면 동네마다 하얗게 뿌려지고 격문이 나붙고 하였다. 어느 동네고 들썩들썩 끓었다. 인젠 갈골 하촌지역을 벗어나서 월평시와 맞붙은 동네들에까지 《흰눈》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동네마다 사람들이 모여앉아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로 법석했다. 장수별이 떴다, 조선정기가 솟았다, 일본놈들을 삼대 쓸어눕히듯한다, 장군님의 수하군대가 몇만명인지 모른다, 사람들속에서는 그처럼 흠모하여마지않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별별 전설같은 소문이 다 돌았다. 부암동도 그런 소문으로 들끓었다. 사람들은 힘이 나서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귀가 절벽인 최정수의 아버지도 지팽이를 짚고 동네로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러다간 가끔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격해서 중얼거렸다. 《조선아, 3천리 근역아! 그래도 네 정기 살아있어서 망국의 설음이 뒤덮인 강토우의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하늘에 어리는 서기를 바라보게 되였으니 반갑구나! 반갑구나! 이렇게 사해에 빛을 주시는 김일성장군님께 우리 백의민족이 무엇으로 그 은덕을 보답해야 다 보답하리까!》 로인은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장군님에 대한 생각으로 흥분하시였다. 모든 투쟁, 지금 어마어마하게 온 세상을 떠밀고나가는 이 모든 혁명투쟁이 어느것이고 죄다 장군님의 방침을 높이 받들고나가는 투쟁이란 생각을 하시니 가슴이 자꾸 넓어지는것 같기도 하고 엄엄한 생각이 들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의 수하군대가 몇만명인지 모른다면 부암이나 혹은 중촌, 상촌 같은데도 그런분들이 와있지 않을가싶으시였다. 와있다면, 정말 이 부암에 와있다면 지금 자기가 하는, 쪽지를 나르고 삐라를 뿌리고 하는 투쟁도 속속들이 알고있지나 않을가. 정말 그런분들을 한번 만나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꿈이 그득해지고 가슴이 울렁거리시였다. 그이께서는 경식이가 시킨대로 아동단일을 시작하시였다. 첨엔 경식이가 애들을 모여세우고 인제부턴 정숙누나가 너희들을 지도할테니까 말들을 잘 들으라고 정중히 소개까지 해주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시였는데 경식이가 말한 그대로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였다. 경식이 소개를 해준 이튿날엔 애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삼태기를 두세개 훔쳐가지고 나가 모두 못쓰게 만들었다. 그래서 애들을 모아세우고 타이르기도 해야 했고 삼태기임자네 집들을 찾아다니며 일이 잘못됐노라고 빌기도 해야 하시였다. 그리고 또 그 이튿날밤엔 길주집마당에 있는 달구지를 밀고 끌고 하는 장난을 하다가 마당앞 감자를 심은 비탈밭에 굴려넣어 소동을 일으켰다. 망을 보라고 위치들을 정해주면 그 위치에 가있긴 했으나 망보는덴 정신이 없고 공을 차거나 《쟁고》를 굴리는데만 정신을 팔고있다가 낯선 사람이 지나가도 몰랐다. 그렇게 하고는 총화회의때면 망을 잘 섰느니 못섰느니 하고 저희들끼리 짝장그르르 다투었다. 당초에 어떻게 장난이 드센지 좀해선 휘여잡을수가 없으시였다. 《헹, 기송이 누나가 우릴 옴짝 못하게 하네. 희섭선생은 그저 회의나 하구는 맘대로 놀아라 내버려뒀는데…》 《누나는 다 그래. 우리 누나두 밤낮 말 안듣는다고 잔소리 안야.》 장난꾸러기들은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회의를 하고나서는 이렇게 수군거렸다. 어쨌든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직이 주는 이 새 임무란것이 쪽지를 나르거나 삐라를 뿌리는 일보다 갑절 어려운 투쟁이란걸 느끼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 일도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일일것이란 자각이 들어 열심히 아이들 생활을 지도해나가시였다. 어느날 저녁 김정숙동지께서는 집에서 저녁을 잦혀놓고 길주집 뒤 참나무 우거진데로 달려가시였다. 요새는 여기를 아동단집합장소로 썼다. 그래서 저녁때면 애들한테서 하루생활의 보고를 받기 위해 이리로 달려오군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종종걸음을 치고계시는데 애들이 어데 있다가 오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와 김정숙동지를 에워쌌다. 《누나!》 《뭐냐?》 《왜놈들이 금페랑 갈골이랑 불을 질렀대. 사람들을 막 쏴죽이구… 그래서 모두 피난을 올라와.》 《지금 강건너말과 뒤말로 해서 중촌쪽으로 자꾸만 올라가…》 《아까 보니까 앞말로도 들어왔어.》 애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장 가슴이 떨리시였다. 갈미봉근방에서 그런 행패가 있었다더니 바로 여기에도 그것이 닥쳐들었고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래 경찰놈들은 뵈지 않더냐?》 《경찰은 하나도 없어. 다 백의동포야.》 애 하나가 리상녀의 흉내를 내는바람에 딴 애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무슨 장난을 했는지 죄다 아래도리가 젖었다. 애들은 저들이 그 무슨 큰것이나 알려준듯싶어 오똑한 코들을 추켜들고 서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그담엔 또 보고 들은게 없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가운데 침착히 서서 또 물으시였다. 《없어요.》 애들이 일시에 대답했다. 《너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무서워해선 안된다.》 《예.》 《내가 하라는대로 망두 잘 서구 나쁜 장난을 해서도 안되구… 알겠지?》 《알겠어요.》 《래일 식전엔 안개더기 새밭에다 아동단운동장을 만들자. 다들 호미를 가지고 모여와야 해. 기운이 센 인수, 기송이, 삼손이들은 괭이를 가지구 오구. 알겠니?》 《예.》 대답을 하고난 애들은 신이 나서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그들은 얼마전 김정숙동지로부터 운동장을 닦고 체조도 배우고 소선대처럼 훈련도 받아야 된다는 말을 들은것이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로 나가시였다. 웬일인지 가슴이 자꾸만 두근거리신다. 아이들에게 다짐을 한 말이 사실은 안정을 잃은 자기의 가슴을 다잡는 소리였던듯이도 느껴지시였다. 길주집앞을 지나서 한참 걸어나오시니 정말 사슴골쪽 고개길을 넘어온듯한 사람들이 십여명 걸어오다가 중촌으로 가는 길이 어데냐고 물었다. 모두 옷과 얼굴이 시꺼멓게 끄슬렸는데 커다란 보퉁이들을 이고지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중촌으로 가는 길을 대주며 어데서 오느냐고 물으시였다. 《갈골서 온다우. 왜놈이 쳐들어와서 피난을 가지 않소. 중촌으로 가야 산다고 하기에 중촌으로 밀린다우.》 한 아낙네가 대꾸를 했다. 《이 부암만 해도 좀 좋을가! 중촌이 어디게 중촌으로 찾아간담?》 《그래두 거기 가야 장군님 군대가 있다우.》 뒤에 또 수십명 걸어왔다. 로인과 아이들도 있다. 울며 걸어오는 아낙네들도 있다. 다 갈골사람들은 아닌것 같다. 금페앞에 룡담이란 늪이 있는데 그 늪에 일본말 한필이 거꾸로 처박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걸 보면 금페사람들이 분명했다. 《어서 헤져가라. 래일아침엔 해뜨기전에들 나오구…》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은 아까처럼 소리를 합쳐 대답을 못했다. 그저 눈들을 반짝이며 김정숙동지를 쳐다만 보았다. 《누나, 다리를 저는 꼬마두 있어. 어떻게 중촌까지 걸어가나?》 기송이가 하는 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답을 못하시였다. 어쩐지 그게 다 남의 일같지 않으시였다. 이날밤 부암마을은 법석 끓었다. 피난민들이 죄다 중촌쪽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부암마을에도 사람들이 널렸다. 집에 들어 밤을 새기도 하고 한지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중촌에 가나 부암에 있으나 무슨 차이가 있을가. 아무래도 농사지은걸 날라다 먹어야 할텐데 한걸음이라도 가까운 부암에 있는게 낫지… 이런 생각으로 부암에 등짐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캄캄한 밤인데 홍가녀편네의 애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벌써 홍가가 죽은지는 여러날 되는데 그의 녀편네는 꼭 밤중이면 이런 을씨년스리운 울음소리를 냈다. 피난민들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욕설을 퍼부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밤중에 다시 중촌으로 떠나가는 사람도 있고 불탄 제 동네를 찾아 도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야학방엔 청년들이 툭 터지게 모여들었다. 밤새 이런 긴급한 정황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는 새로운 대책이 토의되였다. 놈들의 《토벌》이 이에만 그치지 않을것 같은데 모여온 피난민은 물론 부암사람들도 죄다 상촌이나 중촌으로 옮기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놈들의 발악을 부암계선에서 막아내자는 의견도 나왔다. 정작 군중을 이동시키려 한대도 누가 다 지어놓은 농사를 내버리고 상촌이나 중촌으로 가겠느냐 하는 의견도 일어났다. 경비를 겹겹이 둘러치고 큰 목소리들로 떠드는데 피해를 입은 동네에서 온 청년들도 한몫 껴들었다. 여러 동네에서 모여들고보니 총도 댓자루 구석쪽에 서있다. 하촌 리상준이도 자기가 메고온 번쩍거리는 보총을 바람벽에 기대세워놓고 앉아 주먹을 내두르며 부르짖군했다. 이 용감한 청년은 동네가 《토벌》을 맞고 가족을 거의 잃은 참변속에서 왜놈 하나를 날창으로 찔러넘기고 총을 빼앗아냈다. 지금 그는 부암계선에서 놈들과 결사전을 해보자는 주장이였다. 그러나 역시 생각이 깊은 경식이는 밤중에 중촌 청바위굴로 련락을 띄우며 그의 주장을 눌렀다. 《우의 결심을 들어봅시다. 만약 이 계선에서 맞서보려 한다면 중촌이나 상촌에 있는 무장을 끌어와야지 총 댓자루 가지고 싸운단말입니까? 상촌이나 중촌에 있는 무장도 지금 꾸리는 과정인데 그런 무장을 무모한 작전에 어떻게 끌어오게 한단말입니까?》 《아니 무엇이 무모한 작전인가요? 왜놈들은 수가 많은데 우리는 수가 적으니까 무모한 작전이다, 문제를 이렇게 세울수 있습니까? 적은 수를 가지고 많은 수를 때려부시는것이 김일성장군님의 전술이라고 보는데 그래 내 주장이 틀렸단말입니까? 경식동무는 남만원정의 소식을 못듣고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런 전술로 적을 치시면서 남만을 돌구계신답니다.》 리상준이 너무나 목대가 세게 우기는바람에 경식이는 그담엔 말을 안했다. 아무리 말해야 듣지 않을것 같기도 하려니와 가족을 거의 잃고 총 한자루를 빼앗아메고 달려온 그의 멍이 든 가슴이 어떻게 끓고있으리란 생각을 하니 론쟁할수도 없었다.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오는 때 리상준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총을 들고 불쑥 일어선다. 《어데로 가자고 그러는겁니까?》 경식이 물었다. 《하촌에 내려가야겠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감장도 못하고 형님에게 맡기고 왔는데 생각해보니 가슴속에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번쩍이였다. 곁의 청년들이 하촌으로 도로 내려가려거든 총은 두고가라고 했다. 《그건 무슨 소리요? 내가 빼앗은 총을 어데다 두고간단말이요?》 리상준은 눈물이 비낀 눈에 노기가 올라 부르짖었다. 《대낮에 들고 다니는게 좋을것 같지 않아서 그럽니다.》 《그럼 총은 밤에만 들고 다니는거요?》 청년들은 말을 못했다. 총을 멘 리상준은 밖으로 나왔다. 희섭이 산중으로 빠지는 길을 대주려고 뒤따라나왔다. 날이 다 밝았다. 어제밤 들끓던 사람들이 기진해서 인제야 잠이 들었는지 마을이 조용했다. 희섭이는 리상준을 데리고 활엽수 우거진 산속길을 걸어올라갔다. 《중촌에서 어떤 련락이 오겠는지 그 련락을 받고 떠날걸 그랬습니다. 방침이 확정되면 급히 일을 서둘러야 할텐데…》 《제 갔다가 오늘중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리상준이 대꾸를 하며 걸어올라갔다. 이러는데 어데서 불시에 총소리가 요란스럽게 터졌다. 기관총소리다. 《이게 무슨 총소리요?》 리상준이 부르짖었다. 틀림없이 놈들이 달려들었다. 딴 기관총소리가 날리 없다. 둘이는 다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놈들이 이처럼 급하게 동네란 동네를 죄다 공격해올줄은 몰랐다. 세 동네나 요정을 내놓았으니 다른 전술로 나오리라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어리석길 짝이 없었다. 희섭이도 상준이도 밤새 토론만 하다가 아무 대책도 못세운 일이 뼈가 저리도록 후회되였다. 둘이는 우거진 나무속으로 급하게 도로 내리뛰였다. 풀도 나무도 안보였다. 땅을 디디는것 같지도 않았다. 기관총소리는 계속 울리였다. 아예 동네를 바스러뜨리는것 같은 소리다. 그들은 어떻게 뛰였는지도 모르게 총소리와 아우성소리로 뒤덮인 동네복판으로 쑥 들어왔다. 희섭이는 큰 불더미앞에 이르러 얼른 눈을 들었다. 바로 영호네 집이 불타고있다. 기름을 치고 불을 질렀는지 우릉우릉하는 불꼬리가 하늘을 찔렀다. 총을 든 리상준은 무얼 보고 뛰는지 이어 등을 굽히고 검은 연기속으로 달려들어간다. 희섭이는 인제야 자기가 빈주먹으로 이 험악한판에 뛰여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엇이 없는가 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다못해 단단한 말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것도 보이지 않는다. 희섭이 손에 잡을 무기를 찾느라고 쩔쩔매고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흰 연기속에서 달려나오고있다. 아래도리에 피가 랑자한 경식이였다. 《아니 이거 어딜 맞았소?》 희섭이는 급히 뛰여가며 소리쳤다. 그러나 경식이는 대꾸를 못했다. 걷는다는것이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희섭이는 경식이를 붙안아일으켰다. 양복바지괴춤이 온통 피에 젖었다. 《어딜 맞았소?》 《별일이 없소. 두놈을 타고앉아 멱을 눌러죽이긴 했는데 그만… 나는 관계하지 말고 마을사람들을 빼시오. 곡식밭으로 뽑아 산을 타게 해야겠소. 빨리 사람을 빼시오.》 경식이는 이러며 우쩍 일어섰다. 희섭이의 부축을 받으며 피흐르는 발을 급하게 앞으로 내짚었다. 《개새끼들…》 희섭이는 한마디 내뱉으며 경식이를 단단히 옆에 끼였다. 지척에서 비명이 일어났다. 어린애들의 비명과 아낙네들의 아우성이 일시에 일어났다. 이날아침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안개더기 새밭을 뚜지다가 놈들의 기관총소리를 들으시였다. 여기에선 말을 탄놈들이 민가네 앞 큰길로 까맣게 덮여서 달려들어오는것이 보이였다. 먼지가 누렇게 일어났다. 새밭을 뚜지던 아이들이 모두 등성이끝으로 달려나갔다. 등성이끝에 나오니 벌써 큰길 이쪽은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무엇이 타는지 뭉깃뭉깃 타래를 지은 연기가 산밑으로도 날아온다. 연기속에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는다. 울음소리와 고함소리도 일어난다. 비탈에선 나무숲너머로 연기속에서 드러나는 동네길들이 가끔 보이군하는데 그길로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애들은 내려가보겠다고 비탈로 내리뛰였다. 얼굴빛이 파랗게 질리신 김정숙동지께서 뒤에서 못간다고 소리를 지르시였다. 《왜 못가요. 우리 집이 불붙는데!》 《그러게 못가! 못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급하게 따라내려가 애들을 붙잡으시였다. 《총알이 비발치듯하는데 가길 어딜 가? 얘 인수야, 너 애들을 모두 데리고 땅 파던 새밭으로 올라가라. 그리구 기송이는 이 애를 받아업어라. 내가 내려가보구 올테다.》 《나두 내려가볼테야!》 《못내려가. 어서 이 애를 받아업지 못해?》 김정숙동지께서는 띠를 풀며 서리발이 이는 눈으로 기송이를 쏘아보시였다. 기송이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잔등을 돌려댔다. 인남이는 총소리가 이상한지 두눈을 두릿두릿 굴리며 기송이의 잔등으로 넘어가 업혔다. 아이들이 모두 뒤가 무거운 걸음으로 인수를 따라 비탈로 올라갔다. 기송이도 눈물을 씻으며 따라올라갔다. 얼마후에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비탈을 내리뛰시였다. 동네가 온통 어떻게 됐을가? 너무도 무섭고 치떨리는 광경이 눈앞을 메우시였다. 가둑나무숲으로도 연기가 자꾸 날아왔다. 한참 뛰여내려오다가 보시니 누구네 소인지 비탈에 소 한마리가 서서 울고있다. 고삐가 타고 털이 그슬렸다. 방금 외양간에서 고삐를 끊어가지고 뛰여나온것 같다. 소는 너부죽한 주둥이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음머, 음머》 하고 울었다. 새끼를 불속에 내버리고 온것 같다. 김정숙동지께서 마을뒤에 오시니 파파 늙은 할머니와 어린 손자 두식구가 살고있던 두칸짜리 초가가 온통 불에 말리였다. 어데서인가 사람 살리라는 비명이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게 어느쪽인가 해서 황황히 살펴보시였다. 연기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으시였다. 둥글둥글 탈리면서 밀려가는 연기속에서 자갈을 문 말들이 뛰여나오더니 불길에 누렇게 된것 같은 채마밭을 가로지르고 내뛴다. 연기밑으로 땅을 차는 말다리가 재주를 노는것 같이 내다보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쪽을 향해 달리시였다. 아마 그리로 가야 집이 있는쪽으로 가게 되여있던듯싶으시다. 모든것이 뒤죽박죽되여 늘 다니던 길도 그 길이 아닌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우선 어머니가 어떻게 되였는지 몰라 가슴이 세차게 뛰시였다. 앓다가 인제 겨우 머리를 들고일어난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고있을가? 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았는지 치떨리는 생각도 드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밭머리로 주먹을 쥐고 뛰시였다. 뽕나무담있는 앞쪽에서 무어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쳐다보시니 검은 연기가 사자대가리처럼 울컥 치솟아오르는 이쪽, 푸른 하늘이 펑하게 내다보이는 뽕나무담우에 희섭이가 서서 고함을 지르고있다. 들어보시니 사람들을 빠지라고 웨치는 소리다. 《곡식밭으로 빠져라, 숨어들어가라, 이쪽으로 이쪽으로!》 희섭이가 웨치고있는 다른쪽 뽕나무담밑에는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청년들이 숨어앉아서 총을 쏘고있다. 아마도 사람들을 뽑아내기 위한 엄호사격을 하는것 같다. 몇방씩 쏘다간 재빨리 자리를 옮겨앉기도 한다. 어떤 청년은 납작 엎드려 쏘기도 했다. 사정을 통 모르시는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장대를 꾸린다던 상촌에서 무력이 달려왔는가고만 생각하시였다. 그리고보면 동네에서 일어나는 총소리가 온통 왜놈의 총소리만은 아닌것이 틀림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쩍 힘이 솟아서 또 조밭머리로 내뛰시였다. 정말 연기속으로 사람들이 밀려나왔다. 우는 아낙네들, 뭐라고 부르짖는 로인들… 장정 한사람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성재어머니를 업고 뛰여온다. 최정수의 아버지도 아낙네들한테 부축되여 걸어오는데 로인은 독립군때 힘이 용을 쓰기라도 하는듯 발을 벋디디며 왜놈들에게 고래고래 저주를 퍼붓는다. 사람들은 곡식밭으로 밀려들어갔다. 사처에서 엎디여 기라는 소리가 일어나고 빨리 기여나가 산으로 붙으라는 웨침도 일어났다. 한 아낙네가 김정숙동지더러 곡식밭으로 숨으라고 소리쳤다. 그바람에 그이께서도 밭으로 떨어지시였다. 조밭이였다. 그이께서는 조밭을 기여나가 산으로 붙을념은 않고 집에 가볼 생각으로 조밭을 가로썰며 뛰시였다. 목언저리를 치는 곡식대들이 이리저리 휘감기고 땀이 난 얼굴에 조잎들이 칼질을 했다. 갑자기 총알이 날아왔다. 사방에서 피륵피륵 소리가 울리였다. 뛰여라 뛰여라 하는 소리가 더 급하게 일어났다. 가까운데서 자지러진 비명이 터졌다. 총알에 급소를 맞기라도 한 모양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밭을 빠져 또 한참 수수밭속을 뛰시였다. 수수밭속으로도 탄알이 날아왔다. 얼마후 수수밭머리로 나서려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앞에 또 어마어마한 광경이 벌어지는바람에 질끔 놀라 뒤걸음을 치시였다. 삼단같은 불길이 솟아오르는 나무 낟가리앞에서 웬 청년이 총을 꺼꾸로 잡고 누런 군복 입은놈들과 결투를 벌리였다. 왜놈들은 칼을 휘두르고 청년은 총탁을 내둘렀다. 김정숙동지께서 지켜보시는 잠간사이 청년은 왜놈을 두놈이나 뒤골을 쳐서 꺼꾸러뜨렸다. 청년도 여러군데 칼에 찔리우는것 같다. 마침 마을장정들이 여러명 달려들었다. 쇠스랑과 도끼로 찍어당기는 싸움이 벌어진다. 처절한 싸움이였다. 왜놈들도 쓰러지고 장정들도 쓰러졌다. 불시에 불더미 저쪽에서 총소리가 나더니 왜놈들이 또 십여명 달려왔다. 놈들은 총을 란사했다. 장정들은 거의 쓰러졌다. 왜놈들은 총탁을 휘두르는 청년에게 덮쳐들었다. 안고 딩굴고 하며 한참 씨름을 했다. 얼마후 얼굴에 땀이 번지르르한 청년이 결박을 당해서 이쪽으로 걸어나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제야 청년이 하촌 리상준이인것을 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몸을 화들화들 떨며 수수밭고랑에 숨어서서 내다보시였다. 상준이는 적삼이 온통 찢어져서 가슴팍이 내놓였다. 토목중의의 가랭이도 찢겨졌다. 무쇠기둥같은 시꺼먼 다리가 찢겨진 중의밖으로 나와서 땅을 짚는다. 고수머리가 뿌옇고 왼쪽 관자노리가 닭알같이 부어올랐다. 리상준이 어떻게 돼서 이 부암의 불더미속에 왔을가? 하촌이 《토벌》을 맞았다니 피난민들과 함께 오다가 여기에 들렸던것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수대잎으로 볼을 싸고 서서 이를 악물고 우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후에야 또 집쪽을 향해 뛰시였다. 집에 거의 닿았는데 콩밭가운데서 웬 아낙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숙아, 빨리 집에 가봐라, 어머니가 아까 총에 맞았어. 그런걸 왜놈들이 집에 밀어넣구 불을 질렀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앞이 아뜩해지시였다. 《나두 다리가 상해서 일어서지 못한다. 얘, 저놈들이 또 온다. 피해라.》 소리를 치던 아낙네가 풀어져내린 머리를 수그리며 콩밭고랑에 엎드린다. 정말 기마병 두놈이 김정숙동지께서 서계시는쪽으로 달려오며 총을 쏘았다. 한놈은 칼을 휘두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길옆 웅뎅이로 떨어지시였다. 머리우로 말 두필이 날아넘어가며 땅하는 총소리가 울린다. 탄알이 흙을 뚜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잠시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 길우로 뛰여오르시였다. 어쩐지 다리가 꾀여 비틀거려지시였다. 집에 오시니 집은 정말 불에 타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연기가 꾸역꾸역 내밀리는 부엌문으로 달려들어가며 어머니를 부르시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벌써 뒤쪽 천장이 무너지고 기다란 연목에 불이 휘감겨 우직우직 타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 정지방으로 올라서시는데 앞벽의 벽토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반사적으로 뒤문쪽으로 뛰여가시였다. 거기에선 더욱 화염이 덮치며 뜨끈하시였다. 뒤문밖 추녀밑에서 불길이 늘름늘름 춤을 추고 뱀의 혀같은 불꼬리가 뒤문 웃설미로 구불거리며 뻗쳐들어온다. 벌써 불꼬리는 문설주우의 시렁을 침범했다. 시렁우에 있는 광주리며 헌옷들이 불에 타며 툴렁툴렁 떨어져내렸다. 《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번 어머니를 부르시였다. 그러나 우룩우룩 집이 불타는 소리뿐이고 어머니의 대답은 없었다. 어데서 무엇이 탁 튀는것 같은 소리도 들린다. 문득 뒤문앞에서 무슨 인기척이 들려왔다. 분명 안깐힘을 쓰는 사람의 소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불길이 덮치는 뒤문밖으로 달려나가시였다. 정말 뒤울안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어머니가 안깐힘을 쓰며 장독을 붙들고 일어섰다. 옷이 불타며 연기를 날린다. 《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달려들어 어머니의 옷에 달린 불부터 끄시였다. 불을 끄면서 보시니 몸은 죄다 피투성이였다. 어데서 피가 솟구치는지 땅을 딛고 선 발등으로도 자꾸 붉은피가 흘러내린다. 《놓아라. 내야 인제 살겠니? 그런데 이 오랑캐놈들이 모두 어데로 갔느냐? 내 이놈들을…》 어머니는 헐떡거리며 피줄이 얽힌 눈으로 주위를 살핀다. 마디가 굵은 주글주글한 손이 장독 가위손을 붙들고 후들후들 떨었다. 《어머니, 어델 상했게 피가 이렇게 흘러요? 빨리 울짱밖으로 나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어머니를 품에 안아드시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머쥔 장독을 놓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 이악스럽게 들어올리시자 빈 장독이 곁묻어 일어나며 뒤뚝거리였다. 《어머니, 독을 놔요.》 《가만 있거라. 내 이놈들을…》 《다 갔어요. 어서 놔요.》 《가길 어데 가? 이놈들이 내 집을 이렇게 불더미로 만들어놓구…》 《어머니, 불길이 이쪽으로 휩쓸어와요.》 그러나 어머니는 독을 놓지 않고 실성이라도 한것 같은 눈으로 불길속에 든 집을 빙빙 돌아보았다. 어머니의 눈속에서도 불길이 펄펄 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를 안아서 쳐들며 마구 흔들어대시였다. 그제야 어머니는 장독을 놓아버렸다. 장독은 넘어지며 장독대에서 떨어져 추녀밑 불더미속으로 디굴디굴 굴러들어갔다. 어머니를 품에 안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수대울바자를 걷어차며 어머니를 바자밖으로 내미시였다. 바자날을 세운 칡줄이 끊어지지 않아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을 감은 칡줄과 한참 씨름을 하시였다. 울바자밖은 콩밭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허둥지둥 콩밭속으로 달려들어가시였다. 차츰 어머니는 온몸을 늘어뜨리며 김정숙동지의 팔에 실린 목을 뒤로 젖히였다. 《어머니!》 《나를 놔다우.》 김정숙동지께서는 발길질을 하시여 콩포기들을 가로눕히고 그우에 어머니를 내려놓으시였다. 어머니는 이미 장독을 붙들고 서서 원쑤를 찾던 때와는 달랐다. 하늘을 쳐다보는 눈동자에 뽀얀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정숙아, 인남 에미는 물미나리 뜯으러 갔다가 아직 안돌아왔지?》 어머니는 벌써 실성한 말을 하였다. 《안, 안돌아왔어요.》 《안돌아왔으면 살았지…》 《살지 않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를 악물며 울음을 삼키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리나케 어머니의 몸에서 피가 흐르는 상처를 찾으시였다. 상처가 여러곳 있다. 도저히 피를 막을래야 막을 도리가 없게 되였다. 인제 보시니 머리밑으로도 총알이 지나갔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목으로 잔등으로 스며들고있다. 《기송인 어데 있느냐?》 어머니는 다시 정신이 맑아지는듯 기송이를 찾았다. 《산에 있어요.》 《그놈들이 산으로야 대들지… 않았겠지?》 《네…》 《그럼 그 애는 무사할테지?》 《무사하지 않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아래단을 쫙쫙 찢어서 우선 피가 흐르는 옆구리쪽 상처에 천을 틀어막으시였다. 《이 애 정숙아!》 어머니는 딸의 손을 더듬어쥐였다. 벌써 어머니의 손은 싸늘하게 식었다. 《어머니, 손을 놔요. 상처를 싸매게…》 《이 애 그만둬라, 난 인젠 틀렸다.》 《틀리긴 왜 틀려요!》 《내 뉘는 이렇게 끝장이 나는가부다. 너희들 세상이 어찌되는가 보구 눈을 감자고 했더니… 가막소에 간 인남 에미도 인남 애비두 다 못보고 이렇게 되는구나.》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자꾸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의 창백해지는 얼굴을 지켜보다가 또 다른 상처를 찾으시였다. 《네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 보고싶구나. 기미년엔 그렇게도 드세더니… 왜놈순사가 꿈쩍을 못했지…》 어머니는 문득 말이 끊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웬일인가싶어 얼른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눈동자가 멎어서고 얼굴가죽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다. 《어머니, 정신차려요.》 그래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를 마구 흔드시였다. 얼마후에야 어머니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듯 눈동자를 굴리며 김정숙동지를 쳐다보았다. 《정숙아! 난 인젠 더 살수가 없어. 들볶질 말아라! 난 그래두 오랑캐놈들을 쳐없애구는 너희들 데리고 내 나라 내 땅에 가서 살아볼 날이 있으려니 하고 오매불망 그 생각을 잊은적이 없었지…》 어머니는 숨이 차서 가까스로 말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난 그 원을 풀지 못하고 눈을 감는구나. 분하다. 몹시도 분하구나.》 어머니의 눈굽엔 이슬이 돌았다. 잠간 말을 쉬더니 또 잇는다. 《난 너희들에게 아ㅡ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 무슨 할 말이 있겠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네 아버지 그리고 너희들 대에 이르기까지 절치부심 피를 물고 오랑캐를 물리치자고 애쓰던 일에 대해서야 내가 잊기를 어떻게 잊고 천근만근 너희들 어깨에 짐이 되더라도 부탁할 말이 어째서 없겠니? 정숙아! 내 말을 알아듣겠니? 이 에미는 땅속에 들어가서도 눈을 감지 않고 네나 네 오래비나 네 올케가 어떻게 원쑤를 갚는가를 보겠다. 그리구… 너희들이 춤을 추며 원쑤가 없는 내 나라로 돌아갈 때엔 내 넋도 함께 가련다.》 《어머니, 글쎄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를 안아일으키며 흔드시였다. 《놔라! 넌 인제 어머니가 없다고 울지 말아.》 《어머니!》 어머니는 잠간 연기속에서 헐떡이는 해를 올려다보더니 두손을 늘어뜨리며 목을 김정숙동지의 팔에 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를 다시 콩포기우에 눕히시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숨을 급하게 몰아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메여 어머니를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순간이 왔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어머니를 흔드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불쑥 일어서시였다.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일어섰는지 자신도 모르시였다. 그저 다만 내 어머니가 왜 이렇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단말인가. 그래 이 불쌍한 어머니를 어떻게든 구해낼 방법이 없단말인가 하는 절박한 생각이 떠오를뿐이였다. 어머니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콩포기우에 늘어뜨린 마디 굵은 손가락들이 가볍게 떨다가 이어 잠잠해졌다. 정말 원한이 남아있는 세상을 두고두고 보려는듯 두눈은 감지 않았다. 안개가 낀 눈을 반쯤 열고 연기가 엉켜돌아가는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시였다. 《어머니, 내 엄마, 정신을 차리고 나좀 봐요.》 그이께서는 어머니의 볼에 자기의 볼을 대고 문지르시였다. 그러시다가 눈물을 떨구며 주글주글한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기나긴 세월 고생한 자욱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얼굴… 인젠 말도 없고 웃음도 없고 늘 두눈을 잔조롬히 하고 생각이 깊은 표정을 하던 그런 얼굴도 없다. 모든것을 다 내던져버리고 흔들어도 모르고 불러도 모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얼굴을 들여다보시다간 또 어머니의 목을 꽉 껴안으며 애타게 부르시였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밭가운데서 불쑥 일어서며 치마끈을 죄여매시였다. 힘차게 어머니의 시신을 안아올리시였다. 그러시고는 이 기막힌 현실을 디디고 나가며 굳센 싸움을 선포하는듯이 밭고랑들을 하나하나 가로지르고 넘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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