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충성의 한길에서》

 

        제 1 부

 

                    

                    천  세  봉

 

(  제  8  회  )

 

제   2   장

 

5

 

태봉거리의 자위단습격사건이 있은 뒤 부암마을엔 며칠동안 경찰이 북나들듯했다. 그러다가 가뭇 조용해졌다. 지금 놈들의 주목은 김기준동지를 찾는데 돌려져있었다. 그래서 며칠동안 다니며 김기준동지의 집을 중심으로 한 동네정형을 살피다가 저들의 기도를 로출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넘어갔다. 놈들은 홍가에게 어떤 방법으로든지 김기준동지의 거처를 알아내라는 지시만 주고 가버렸다. 사실 놈들도 상촌이 무장대를 꾸리는 중심지라는것은 알고있었으나 김기준동지가 상촌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광산거리 가까운 곳에 숨어있으면서 무장탈취를 위한 기습을 조직한다고 보았다. 바로 이번 자위단습격도 김기준동지의 소행으로 보고있는것이였다.

홍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돌아쳤다. 동네사람들로부터 무슨 말을 얻어들을가 해서 사람들이 있는데면 어데고 찾아다녔다. 밤이면 도적고양이같이 집집으로 돌아다니며 말을 엿듣기도 했다. 어느날 저녁엔 길주집 부엌문앞에 가서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하마트면 그 집 며느리가 내던지는 구정물벼락을 맞을번도 했다. 홍가는 이러는 과정에 청진집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냄새도 맡았다. 분명 무엇이 와있는것 같은데 통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등이 달았다. 그는 엉큼하게 그 비밀을 회령집에 가서 살피면 알아낼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김기준이가 들어와 숨어있다면 회령집식구들이 하다못해 낯빛이라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홍가는 뻔질나게 회령집으로 찾아다니였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다니며 보아도 회령집식구들의 얼굴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며느리는 늘 시름에 잠긴 표정이고 속이 큰 시어머니는 자기 말에 롱조로 대하며 가끔 사내들같은 큰소리로 웃기도 하는데 당초에 그 웅심깊은 속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놈의 집안은 열길도 더 깊은 청소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딸한테 쌀을 이워보냈는데 그 쌀을 먹으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찾아와 한참씩 이야기하다가 돌아서면 꼭 이 집 식구들한테 놀림을 받고 가는것만 같아 밸이 꼴리군했다.

그런데 오늘저녁때엔 정말 피대가 돋을 일이 생겼다. 홍가는 김정숙동지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말끝엔가 쌀이 집으로 오지 않았다는걸 알았다.

《아니 정숙이가 쌀을 여오지 않았단말이요?》

《홍서방이 눈뜨고 앉아 꿈을 꾸지 않소? 그 애가 쌀은 무슨 쌀을 여와요?》

어머니는 어지간히 놀라며 홍가의 우그러든 눈확의 뿌연 눈을 쳐다보았다. 사실 김정숙동지께서 그런 시시한 소리는 옮기시지도 않아서 어머니는 까맣게 모르고있었다.

《전날 내가 쌀을 보냈는데 정말 오지 않았습디까?》

《아니 홍서방이 우리 집에 쌀은 무슨 쌀을 보내우? 우리가 빚달라는 소리도 안했는데 무슨 살뜰한 인정이 있어서 쌀을 보낸단말이요? 허허… 여 이놈의 강아지 저리 비키지 못할가.》

토방에서 홍가를 상대하던 어머니는 괜히 앞에 와서 혀를 빼물고 꼬리를 젓는 강아지를 큰소리로 몰며 손짓을 하였다.

《음…》

홍가는 입이 곰의 열같이 썼다. 이마와 목에 피줄이 일어서 얼른 자리를 떴다.

《잘 생각해보우. 홍서방이 아마 꿈과 생시를 섞어서 생각하는것 같소.》

어머니는 긴 잔등을 구부리고 단장을 짚고 나가는 홍가에게 한마디 더 큰소리를 던지였다. 사람같지 않은것한테 무슨 비양이야 하련만 어쩐지 말이 절로 그렇게 나갔다. 홍가는 그 소리를 들은척 않고 사립문밖으로 나갔다.

그는 분이 머리꼭뒤까지 치밀어 쏜살같이 걸었다. 민가네 집엘 어느새 왔는지 모르게 달려온 홍가는 곧장 방아간으로 날아들어갔다. 벌써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을 끝마치고 방아간에서 나가신 뒤였다.

《벌써 돌아갔담? 음…》

그는 피가 선 눈을 두리번거렸다. 구석쪽에 내던져진 겨에 파묻혀있는 빈자루가 눈에 띄였다. 홍가는 씩씩거리며 다가가 두손가락으로 겨투성이의 빈자루를 들어올렸다. 일껏 《선심》을 보이며 낚으려고 했는데 뺨을 맞아도 호되게 맞았다. 홍가는 이를 갈며 비척이는 걸음으로 방아간에서 나왔다.

이날저녁 일을 끝마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딴 볼일이 있어서 뒤마을을 돌아서야 집으로 오시였다.

집에 오시니 올케는 어데 나가고 어머니가 혼자 앉아서 포대기를 꿰매고있었다. 저녁은 벌써 지어놓았는지 가마에서 김이 솟아오르고있다.

《얘, 너 홍달수가 무슨 쌀을 집에 이고 가라더냐?》

어머니는 돗바늘같은 굵은 바늘대를 멈추며 물었다.

《네? 어머니가 그건 어떻게 아세요?》

《방금 그녀석이 와서 그런 소리를 하며 쌀이 왔더냐고 묻더구나.》

《그런 일이 있었어요. 방아간에 들어와서 쌀 닷되를 자루속에 돼넣구 나더러 어머니한테 이여가라지 않아요.》

《그래서 어쨌니?》

《그냥 내버려두었지요뭐.》

《허허허, 그런걸 네가 통 말을 안하니 여태 모르고있었구나.》

《어머니두, 그런 더러운 소리를 뭣하러 옮겨요? 난 그 너절한 인간한테 업심받는것 같애 누구보고도 이야기하구싶지 않았어요.》

《아무렴 그래야지, 그 시러베아들놈은 그래도 네가 쌀을 가져온줄로만 알고있더구나.》

《그러게 그만치 사람을 얕본것 아니예요?》

《네 말이 옳다. 누구나 다 저희년놈들같이 알고 공걸 먹으라면 감지덕지 받아먹구 무슨 소릴 털어놀줄 알구…》

어머니도 새삼스럽게 그놈의 소행이 괘씸해서 목소리가 옹그러지였다.

《언니는 어데 갔어요?》

《인제 밥을 잦혀놓구 상평집에 볼일이 있다고 나갔단다. 얘, 그건 그렇구 이 치마는 웬 치마냐?》

어머니는 불현듯 정지방 구석에 있는 보자기를 끌어당겨 풀며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라는 소리에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월평장에서 치마감을 사오긴 했으나 아무래도 감채로 어머니에게 드리는것보다 아예 치마를 지어다가 드리는편이 나을듯싶어서 바느질솜씨가 고운 희섭선생의 안해 금실이에게 부탁을 하시였다. 그런데 어제저녁 만났을 때에도 일이 바빠서 못했노라고 하더니 언제 벌써 치마를 지어서 가져다놓았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이건 글쎄 웬 돈으로 치마감을 사다가 짓게 했니? 인제 희섭선생의 안해가 와서 나를 세놓고 이 치마를 입혀보기까지 하고 갔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이 붉어져 웃으며 치마를 펼쳐보시였다. 속으로 벼르고 벼르던 소원이 풀리시였다.

《어머니, 섭섭하게 생각지 마세요. 생각같아선 비단으로 해드리고싶기두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목세루같은 든든한 천으로라도 해드리고싶었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말끝을 흐리며 눈에 눈물이 글썽해지시였다.

《이 기특한것아, 그게 무슨 소리냐? 난 너를 가난과 고생속에서 입힐것두 못입히며 키워왔는데 넌 이 에미의 가슴에 못을 박노라고 이런짓을 했느냐?》

어머니는 딸을 꾸짖으며 눈물을 씻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눈물이 쏟아져 우시였다.

《어머니, 제가 뭐 어머니한테 치마를 해드리구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보자구 그랬겠어요? 어서 눈물을 거두세요.》

《오냐, 눈물을 거두자. 이게 뭐 울 일이냐.》

어머니는 한참후에야 큰 손으로 치마폭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눈물을 닦으시였다.

《어머니, 치마를 또 한번 입어봐요.》

《인제 입어본걸 뭐 또 입어보겠니?》

《그래두 내가 보는데 입어봐야 하잖아요?》

《온 변덕두… 그러지 말고 여기 좀 앉아라. 기왕 이렇게 됐으니 내가 너한테 할말이 하나 있다.》

《무슨 말씀이예요.》

치마를 들고 일어서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의 곁에 도로 앉으시였다. 어머니는 잠간 말없이 치마자락을 들어 또 젖은 눈앞을 씻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또 눈구석에 반짝이는 이슬기를 닦으시였다.

《얘, 이 치마를 너의 올케한테 주면 어떻겠니?》

《네?…》

《너의 올케가 입은게 있니? 치마 둘을 가지고 춘하추동을 입는구나. 난 앞이 꿀려서 네 올케가 시집을 온 뒤 옷 한벌 못해입히고 이날이때까지 사는데 어떻게 내가 이 치마를 입겠니? 그러니 올케가 들어오거든 아예 내 치마를 했다는 소리는 말구 올케치마를 했으니 어서 입으라고 하자!》

《어머니, 제발 그러지 말아요. 이 치마는 처음부터 어머니것으로 한것이니 어머니가 입어야 해요. 그리구 올케는 올케대로 내가 또 치마를 하나 해드릴 작정이예요.》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또 치마를 할테냐? 그런 소릴 하지 말구 올케한테 주자! 네 올케가 저 치마를 입으면 내가 입은것보다 맘이 더 즐겁겠구나!》

《어머니! 어머니 심정두 알겠어요. 그러나 올케의 치마걱정은 마세요. 내가 언젠 목돈이 있어서 치마감을 샀겠어요? 또 한푼두푼 모으면 언니의 치마감도 끊을것 아니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치마를 들고 웃방으로 올라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치마를 정성스럽게 개여서 자기의 옷과 어머니의 옷가지들이 들어있는 궤짝속에 집어넣으시였다.

지금은 치마를 내놓아야 어머니가 입을것 같지도 않아서 어떻게 하든지 올케의 치마감을 또 끊어온 뒤에 치마를 내놓으려고 마음먹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치마를 간수하고 정지방으로 내려서시는데 기송이가 달려들어왔다.

《누나!》

그는 숨이 급해서 누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

《성재형님이 빨리 집으로 오래.》

《날말이냐?》

《그럼 빨리 오라는거야.》

기송이는 그 소리를 이르고는 도로 씽 밖으로 달려나갔다. 달려나가며 애들을 불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성재가 부른다는 소리에 가슴이 쭝해지시였다. 그동안 내내 밤이면 성재네 집으로 나가 의원을 불러온다 약을 지어온다 했는데 왜 또 불시에 부르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아무래도 김봉석의 상태가 더 나빠진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랴부랴 집을 나서시였다.

《또 저녁을 안먹고 가니?》

《갔다와서 먹죠뭐…》

어머니는 딸이 나간 뒤에도 생각이 깊어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딸이 치마끈에 한잎두잎 모아가지고 일껏 정성을 담아 지어온 치마이건만 이렇게도 가난의 아픈 정이 곁묻어 일어나니 차라리 그 기특하고 고마운 소행이 없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가싶기도 하였다.

이윽해서 며느리가 부엌문으로 들어섰다. 상평집에 가서 무얼 구해가지고 오는지 뚜껑 덮은 밥바리를 치마폭에 싸들고 한손엔 무슨 기름병같은것을 들고 들어왔다.

《그건 무얼 가지고 오나?》

《상평집에 볼일이 있어서 갔더니 들깨기름을 짜왔다면서 기름과 깨묵을 좀 가지고 가라지 않아요.》

《그저 남의 신세만 지구 사는구나.》

길녀는 그담엔 말이 없이 부엌으로 내려서서 찬장에다 기름병을 간수해넣는다. 등에 업은 어린애가 흘러내려가 뒤로 제쳐졌는데 그래도 그것은 손에 깨묵 한덩이를 얻어들고 먹는다는것이 코와 입에 문대며 좋아라고 춤을 춘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가늘어진 허리를 보니 또 가슴을 칼로 긋는것 같이 아픈 생각이 들었다. 무얼 먹은게 있어야 업은것이 허리에 붙어있질 않겠는가. 띠를 죄여매고죄여매고 하다가 인젠 그것도 시진해져서 흘러내려가는대로 그냥 내버려둔것 같았다.

《누인 아직 안들어왔어요?》

《그 애는 들어왔다가 또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저녁도 안먹구 나갔다네. 어서 저녁을 차리게나.》

어머니는 자기보다 며느리가 시장할 생각을 해서 저녁재촉을 하였다.

《기송인 또 어둔데 어데로 가는지 상평집앞으로 뛰여가지 않아요.》

《그것들이 뭐 날이 저무는걸 안대나? 방금 달려왔다가 또 내뺐지. 애기를 이리 보내게.》

길녀는 아무 대꾸없이 띠를 풀고 애기를 포대기채 안아서 올려밀었다.

《이녀석, 입이 이게 무슨 꼴이람? 허허, 그저 좋아서 들썩이는군…》

어머니는 애기를 품에 받아안고나서야 이끝저끝 무겁고 아프던 생각이 좀 가셔지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깨묵을 조금씩 뜯어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어미는 여위여가도 애기는 자라는것 같았다. 뾰족한 앞이발이 해슥해슥 내밀어 그게 할머니의 정을 쏙 뽑아가는것 같았다.

시누이도 기송이도 이어 들어오지 않아 길녀는 부득이 시어머니와 함께 먼저 저녁을 먹었다. 길녀의 얼굴엔 오늘저녁 더욱 수심이 낀것 같아보였다. 천성이 그렇다고 믿는 시어머니조차도 왜 저렇게 얼굴에 짙은 그늘이 덮여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밥숟갈을 들면서 흘끔흘끔 건너다보군하였다.

《어데가 아픈가?》

《아니요.》

《상평집 기복이 할머니가 하촌에 갔다더니 돌아왔던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딸이 앓아서 갔다더니 무슨 변고나 없는지 모르겠네.》

어머니는 며느리의 기분을 고쳐주느라고 이런 말 저런 말 건늬여보았다. 그러나 며느리의 얼굴에선 여전히 수심이 가셔지지 않는다.

사실 지금 길녀는 경황없이 좇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오늘 청진집 리상녀로부터 자기 집에 와서 치료를 하고있는 청년이 남편이 있는곳에서 온 청년이라는 말을 들었다.

길녀는 그 소리가 너무도 놀라와 두눈을 커다랗게 뜨고 리상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 전날저녁 밥상을 들여보내다가 희섭선생과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분명히 뭐 기준동무가 어쩌구 하는 소리를 하지 않겠나? 틀림없이 인남이 애비가 있는곳에서 온 사람이야. 전날 산에서 정숙이를 보고 말하는걸 봐두 그렇구… 그저 혼자만 알구있으라구. 내가 인남 에미는 속이 돌함속같이 깊은 사람이니 얘기를 해주네.》

길녀는 처음엔 그저 기쁘고 가슴이 후둑거리며 뛰기만 했다. 사실 길녀도 봉석이가 와서 치료를 하는동안 부녀회장의 지시를 받고 몇번 청진집에 음식을 가져가기도 했다. 한번은 청진집에 가서 손포가 엷은 리상녀를 도와 두부도 앗아주었다. 그러면서도 일본놈의 총에 맞은 청년이 와서 치료를 하고있다니 안됐다는 생각만 했지 그 청년을 남편과 련결시켜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고 나이는 몇살이나 되는 사람일가? 길녀는 하다못해 물그릇이라도 들고 들어가 건넌방에 누워있는 청년을 한번 만나볼걸 그랬다고 몹시 후회도 되였다.

길녀의 마음속은 복잡해졌다. 말이 오고가는걸 보면 그 청년이 틀림없이 중촌이나 상촌쪽에서 온것 같은데 그렇다면 남편이 지금 상촌이나 중촌에 가있단말인가! 경식이의 쪽지를 전하러 갔을 때 복녀라는 밥집처녀는 자기를 어떤 초가집으로 데리고가서 분명 《이 집에 김기준동지가 있어요.》 하고 친절하게 귀띔해주었는데 그 말은 무슨 말인가? 그리고 옷가지를 넘겨받은 그 집 어머니가 그렇게도 수고를 했다고 치하하며 인젠 애아버지가 여름살이걱정을 안하게 됐으니 자기조차도 마음이 놓인다고 하던 소리는 또 무슨 소릴가? 그 어머니는 제 집 사람한테 옷을 갖다주는걸 받기나 하는것처럼 그렇게도 기뻐하며 애가 잘 자라는가, 시어머니가 무고한가고 묻기도 했었다. 그런걸 보면 남편이 그때까지는 광산거리에 있었다는것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상촌이나 중촌엔 언제 갔단말인가?

길녀는 깊고깊은 바다속을 들여다보는것 같이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하긴 남편이 어데 가있거나 탈만 없이 지낸다면 마음이 놓일 일이겠지만 그래도 속깊이 서리는 무겁고 안타까운 생각은 가셔지지 않았다. 남편의 손에 아직 옷보퉁이가 가닿지 않아 이 찌는듯 더운 여름날에 겨울옷을 그대로 입고 지내는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겨울에 입던 옷이야 이 더위에 입을수도 없겠지만 설사 입는다 해도 그게 얼마나 어지러워졌겠는가. 집에 그대로 있으면 그동안 꿰진 옷이라 해도 제때에 빨아서 몸에 걸치게 했을것 아닌가.

길녀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줄곧 이러한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업고 야학방에 나가서도 경황이 없었다. 오늘밤엔 글도 머리속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눈에 눈물이 그득해져서 학습장에 《가》자를 쓴다는것이 《자》자도 쓰고 《고》자를 쓴다는것이 《그》자도 썼다.

《회령집언니, 정숙이는 어째서 안나와요?》

《글쎄, 참 어째서 안나오는지?》

그는 제생각을 쫓느라고 처녀들이 묻는 말을 듣고서야 시누이가 아직 야학방에 안나왔다는것도 깨달았다.

길녀는 아무리 생각해야 자기가 한번 청진집에 있는 청년을 만나야 할것 같았다. 그 청년한테 남편이 있는곳을 물을순 없지만 광산거리에 여름옷이 가있다는것이라도 알려주고싶었다. 그래야 그 소식이 남편에게 가닿을것만 같았다.

그는 야학이 끝나자 이어 어린애를 업고 가리마를 탄 머리도 쓰다듬고 옷깃도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어두운 길을 바삐 걸었다.

청진집에 온 길녀는 마침 부엌문을 열고 나오는 리상녀와 마주쳤다.

《이게 누구야?》

《어머니, 저야요.》

《어이구 참, 초풍을 하게 놀랐군. 시꺼먼 그림자가 마주 닥들이는바람에… 어떻게 돼서 밤중에 왔나?》

《지금 야학에서 오는길이야요.》

《그럼 무슨 일로 왔는지 들어가자구…》

리상녀는 길녀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안이 이상스럽게 썰렁했다. 전같으면 의례 한두사람은 와있을 공청원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난 저분을 좀 만날가 해서 왔어요.》

《저분이라니, 건넌방에 있던 사람말인가?

《예…》

《어이구, 발이 저리게두 왔네. 저 홍가놈이 눈치를 채구 경찰을 불러온것 같다고 벌써 떠났네. 방금 동네청년들이 옹위해가지고 어데론가 떠나갔네.》

리상녀는 수군거리며 한발 늦었다고 혀를 끌끌 찼다. 길녀는 일껏 맘먹고 온 일이 죄다 허사로 되여 부엌바닥에 달싹 주저앉고싶었다.

《그 사람은 만나서 어쩌자구 그러나? 내가 괜히 인남이 애비얘기를 해줬더니 그 소리에 동떠서 그러질 않나?》

《아니 그저 좀…》

길녀는 그만 낯을 붉혔다. 리상녀의 말을 듣고보니 정말 자기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듣듯마듯 동떠 돌아다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점점 더 화끈거려졌다.

《오늘밤엔 민가네 집에 광산거리경찰이 다섯놈이나 달려들어 무슨 기미를 채고 노리고있는것 같다네. 그래서 사슴골에 약을 지으러 보내놓고도 그 약을 기다리지 못하고 부랴부랴 떠나가질 않았나. 어서 방안으로 올라가세. 이건 잔등판에 코를 박고 자는군.》

리상녀는 솥뚜껑같은 손으로 잔등에서 자는 인남이의 뒤통수를 쓸어주었다.

《언제 올라가고있겠나요. 밤이 깊었는데 가야지요.》

길녀는 무거운 걸음으로 리상녀네 부엌문을 열고 나왔다. 이끝저끝 일은 안되기로만 되여있는것 같았다. 안개끼는 골짜기같이 설음만 자욱해지고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그때껏 등잔불앞에서 낮에 깁던 포대기를 깁고있었다. 기송이만이 구석쪽에서 굵은 다리 하나를 반짇고리우에 걸어놓고 자고있었다.

《정숙이는 어째서 오지 않나? 저녁도 안먹은게 어데 가서 무얼 하고있나?》

《야학방에도 안나왔던데요.》

《그럼 그 애가 어딜 갔나? 청진집 성재가 부른다고 해서 나갔는데 그게 어데 가서 저녁은 얻어먹고 다니나?》

며느리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청진집 성재가 나오랬다니 오늘밤 그 청년이 불시에 떠나는 일때문에 무슨 심부름이 있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비밀을 어머니에게 꼬치꼬치 이야기할수는 없었다. 어머니도 그이상 묻지 않았다. 입이 무거운 며느리에게 자꾸 물어선 뭣하랴싶은 생각도 들고 딸이 나다니는 일을 그렇게 간참해서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자리에 누웠으나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서로 다 자기의 생각들을 좇으며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어둠속을 더듬어보며 가늘게 한숨을 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튿날 아침이 되여도 돌아오지 않으시였다. 어머니가 눈이 까맣게 기다리고있는데 기다리는 딸은 안오고 천만뜻밖에 경찰 두놈이 칼자루를 절컥거리며 마당안으로 들어섰다. 놈들은 물동이를 끼고 나가는 길녀앞에 마주서며 무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너의 남편이나 왔는가?》

한놈이 흘겨보며 물었다.

《안왔어요.》

《어데나 가있는가?》

《모르겠어요.》

길녀는 목소리를 떨긴 했으나 대답이 흔연스러웠다.

《요새 너의 남편이나 박성재네 집에 와있었지?》

《예?》

길녀는 너무도 당치 않는 소리를 묻는바람에 얼른 놈의 얼굴을 치떠보았다. 번들번들한 모자채양밑에서 독기를 뿜는 눈알이 길녀를 무섭게 내려다본다. 그제야 어머니가 밖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문을 열어던지였다. 어머니는 문설주를 짚고 의젓이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방금 잠을 깬 기송이도 연방 적삼단추를 채우며 마당으로 달려나왔다.

《그래 박성재네 집에 남편이나 안왔단말인가?》

《난 그런걸 몰라요.》

《그런데 어제밤엔 왜 박성재네 집에 갔댔는가?》

《난 박성재네 집에 간 일 없어요.》

길녀는 가슴이 후두두 떨렸다. 놈들이 이렇게 뒤를 밟는줄은 모르고 다녔다.

《정말 안갔는가?》

《간 일이 없어요.》

그러자 놈은 길녀의 량뺨을 이쪽저쪽 번개같이 후려쳤다. 놈이 가죽장화발로 동이를 탁 차던지는바람에 마당에선 동이 깨지는 소리가 벼락치듯했다. 놈은 길녀의 잔등에 업혀있는 어린애도 덜미를 거머쥐고 쑥 뽑아올려 집어던졌다. 어린애가 나무단곁에 나가 떨어지며 꺽 소리를 내였다.

《야 이 백정놈들, 이게 무슨짓이냐?》

그제야 어머니가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문턱을 넘어섰다. 맨발로 나무단곁에 다가간 어머니는 애기를 걷어안아 품에 꽉 끼였다. 이때에야 인남이의 새파랗게 질린 입에서 아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러는동안 놈들은 또 한참 길녀를 이리 치고 저리 치고 하였다. 한놈은 달려들어 길녀의 두손목을 묶었다. 때리던놈은 길녀의 허리에 매인채 있는 아이의 띠를 풀어 칼끝으로 훌 집어던졌다.

《이놈들, 그 아낙이 무슨 죄가 있다구 묶느냐? 이걸 풀어놓지 못할가?》

아이를 안은 어머니는 후들거리는 몸으로 일어서며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띠를 풀어던지던놈이 어머니의 정수리우에 칼을 쳐들어올리며 위협을 했다.

《이놈, 아무리 오랑캐이기로 이렇게 무도스럽단말이냐?》

어머니는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마주보며 소리쳤다.

《어머니, 그만둬요. 애기를 내려놓고 나 머리 좀 틀어줘요.》

묶이운 길녀가 어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소리는 들은체 않고 칼 쳐든놈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어머니는 종시 그 무서운 눈빛으로 놈의 기세를 꺾고나서야 며느리에게로 얼굴을 돌리였다. 며느리는 입술이 터지고 낭자가 흩어져내렸다. 그런데 낯빛은 조금도 그런 참경을 겪는 녀자의 낯빛같지 않았다. 무슨 강심을 먹었기에 그렇게도 기색이 도도하고 흔연스러운지 알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게 고마와서 울음이 터질것 같았다.

《게 좀 앉아라!》

시어머니가 말하자 손목을 묶이운 길녀는 무릎을 꿇고앉았다. 어머니는 우는 애기를 마당가운데 앉혀놓고 떨리는 손으로 며느리의 머리를 뒤로 쓰다듬어넘기였다. 그리고는 낭자를 틀고 자기의 머리에 꽂혀있는 철사로 만든 비녀를 뽑아 꽂아주었다.

《어머니, 갑산집에 가서 쌀을 좀 꾸어다가 암죽을 해서 인남이에게 먹이도록 해줘요.》

《그런 걱정은 말아라! 네나 꿋꿋한 정신으로 살 생각을 해라! 주리를 틀리우고 곤장을 맞아도 모를 일이야 안다구 하겠니?》

길녀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마당가운데 일어섰다.

길녀는 애기를 한참 쳐다보고나서야 놈들을 향해 돌아섰다.

《앞서라! 가자.》

처음 뺨을 치던놈이 다가오며 웨쳤다. 그러나 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빛이 무서웠다. 이때까지의 길녀가 아니였다. 이 세상에 태여나서 그 어질고 순량한 성품으로 참고참아온 억울한 일들과 원한에 사무친 일들이 일시에 돌같이 뭉그러져 그의 눈에서 류황처럼 펄펄 타는것 같았다. 놈들도 잠시 뒤로 물러서며 심상치 않은 그의 눈을 지켜보았다.

얼마후에야 길녀는 놈들 먼저 사립문밖으로 걸어나갔다. 경찰놈들이 뒤를 따랐다. 애기를 안은 어머니는 사람을 어데로 끌고 가느냐고 소리치며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리가 떨려 이어 사립문기둥에 몸을 털썩 실었다. 주름투성이의 량눈귀가 내젖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게 웬일이야요?》

그렇게 기다리던 딸이 인제야 옆골목길로 뛰여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제밤 저녁끼니도 건늬고 사슴골 의원네 집에 약을 지으러 갔는데 의원이 병보러 어데 나가고 없어서 밤새 기다리다가 새벽에야 겨우 약을 지어가지고 돌아오셨다. 성재네 집으로 오시니 봉석이는 이미 떠나고 경찰의 칼에 여러곳 찔리운 리상녀가 피자박이 된 옷에 싸여 땅을 두드리며 통곡하고있었다. 놈들이 성재를 잡아가겠다고 동네를 구석구석 뒤진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온통 난가가 된 집에다 약도 놓아둘수가 없어서 신문지에 싼 약 한제를 그냥 들고 집으로 달려오시였다.

《어머니, 저놈들이 왜 언닐 묶어가요? 우리 언니가 어쨌다고…》

새벽이슬에 옷이 함빡 젖고 눈이 까진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머니를 흔들며 부르짖으시였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두눈귀에 내젖기 시작했던 눈물도 없어지고 가슴이 찢기는것 같은 이 시각에 그 무슨 딴 생각이라도 하는듯, 아니 두만강건너에서 겪던 비극이라도 련상하는듯 불이 튕기는 눈으로 뜰앞만 내다보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래도 견딜수가 없어서 허둥지둥 마당앞 수수밭머리로 뛰여나가시였다. 행길에 나서시니 벌써 올케를 앞세운 경찰놈들이 비수리나무가 서있는 언덕밑으로 돌아나가고있었다. 딴 경찰 두놈이 또 청년 한명을 묶어가지고 저쪽에서 나와 올케를 묶어가지고 가는 경찰들 뒤를 따랐다. 누가 잡혔는지 그쪽에서도 아낙네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지는것 같아 달려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죽여가며 우시였다.

수수밭에서 돌멩이를 틀어쥔 기송이가 뛰여나왔다. 그는 경찰이 형수를 묶는걸 보고는 돌멩이 두개를 얻어들고 수수밭에 나와 엎드려있었댔다. 어떻게 하든지 경찰놈들이 형수를 끌고나올 때 돌로 까눕히고 수수밭속으로 내빼자는 생각이였다. 그러나 그는 경찰이 나올 때 돌을 던지려고 겨누긴 했으나 종시 던지질 못했다. 어린 생각에도 돌멩이를 던졌다간 아무래도 잡혀가는 형수가 더 화를 입을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놈들이 다시 어머니한테로 달려들어가 행패를 할것 같기도 해서 그저 분을 못참아 수수밭속에 앉아서 이를 갈기만 했다.

《누나, 저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

동생이 묻는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을 못하고 입술만 깨무시였다. 어린 동생이 돌멩이를 쥔걸 보고는 무슨 일을 저지를것 같아 얼른 돌을 빼앗아 던지시였다. 기송이는 주먹으로 누나의 팔을 때리며 목메여 웨쳤다.

《저놈들을 그냥 둘테야? 그냥 둘테야?》

《왜 그냥 두겠니?》

《그럼 언제 저놈들을 죽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말씀을 못하고 동생을 꽉 붙안으시였다. 마당에 있는 어머니는 우는 애기를 잔등에 업었다. 그리고는 독하게 서슬이 올라서 동이 깨진걸 바자굽에다 자끈자끈 집어던졌다.

《인젠 아침을 지으려무나!》

어머니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딸을 보자 흔연히 말했다.

《네.》

어머니의 강심이 딸에게도 전해지여 김정숙동지께서도 흔연스럽게 대꾸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약꾸레미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열어던진 문으로 방금 비쳐든 아침해발이 방바닥을 기다랗게 가로질렀는데 그 해빛가운데 올케의 등빠진 베적삼이 나딩굴어있었다. 인젠 아이의 기저귀라도 해야 할 헌옷이였다. 벽에도 가긍한 신세를 말하는것 같은 올케의 옷이 걸려있다. 늘 야학방에만 입고 나가는 후주룬한 토목치마, 아래단을 두세곳 기운 그 치마를 보니 어제 저녁 숙수치마를 놓고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라 그것이 더 가슴을 찌르는것 같은 아픔을 주시였다. 불쌍한 어머니에게도 치마를 해드려야 하겠지만 불쌍한 우리 언니에게 더 먼저 치마를 해줘야 옳지 않았는가. 이 다 해진 토목치마를 그래도 가름옷이라고 매일밤 갈아입고 나가며 이렇게도 소중하게 벽에 걸어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치마를 벗겨 정성스럽게 개시였다. 그것을 볼에 대고 넘쳐나는 설음때문에 흐느껴우시였다.

얼마후 치마를 올케의 옷궤속에 간수해넣은 김정숙동지께서는 파릿하고 단정한 얼굴로 부엌에 내려서시였다. 어머니가 나무단을 들고 부엌문앞으로 다가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것을 받아서 부엌구석에 들여세우시였다.

《항아리속에 수수쌀이 좀 있느니라. 그걸 퍼내서 일어라!》

《밑에 안칠 나물은 어데 있어요?》

《저편 옹배기에 쥐여짠것이 있지 않니?》

얼마후 나래를 뱆어서 둘러친 회령집 높다란 굴뚝에선 꺾이지 않는 이 집안사람들의 기개와도 같이 흰 연기가 곧추 뻗쳐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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