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32 회 )

 

3

 

길림의 시위투쟁이 점점 더 불꽃을 날리게 되자 각 신문들은 대서특필로 그 소식을 보도하였다. 어제오늘은 길림시위에 뒤따라 할빈에서 시위가 터졌다는 소식이 신문들에 보도되였다. 길림의 시위군중들은 더욱 들썽거리며 끓었다. 군중들속에서는 평양이 터진다, 서울이 터진다, 부산이 터진다 하는 소리들도 돌았다. 선창 가대기군들속에서는 할빈선창의 가대기군들이 2,000t급 화물선에 실은 일본상품을 뒤집어엎었다는 소리도 주고받았다.

오늘은 선전대원들이 상인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이먹였다. 당신들의 상업에서 적수는 일본상인들이다, 신시가지에 늘어앉아있는 일본상인들이 당신들의 상업을 짓누른다, 일본놈이 일본물건 파는것과 당신들이 일본물건 파는것이 어떻게 경쟁이 되겠는가? 일본상업을 제압해야 한다, 이 적수를 제압해야 당신네 상업이 발전할수 있다, 길림시민 전체가 일본상품배척투쟁에 나서면 일본상인은 파산을 면치 못한다. 결국 이 운동은 당신네들의 적수를 꺼꾸러뜨리는 운동이다, 그렇기때문에 이 운동에 당신네들은 앞장을 서야 한다.

오늘은 이렇게 상인들의 심각한 리해관계를 건드리며 들어갔다. 이렇게 되니 상인들속에서도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일본상품은 팔지 말자, 일본놈과 결판을 내자 하는 소리들이 일어났다. 한편 이번 시위에서는 농민대렬이 무섭게 싸웠다. 송화강건너에서 온 농민들도, 신안툰쪽에서 온 농민들도 모두 쌀을 달구지에 실어가지고 와서 밥을 지어먹으며 시위를 했다. 밤이면 덕승문밖 직업학교가 들썩 끓었다. 그들은 거기서 숙식을 하고 매일아침 동이 트기전부터 농악을 울리며 기세를 올렸다.

그런데 장두촌농민대렬은 오늘 시위를 하다가 정거장근처에서 짐마차 한대를 결단냈다. 그들은 조양문을 넘어서 정거장쪽으로 나가다가 왜놈거리쪽에서 달려나오는 짐마차 한대를 발견했다. 짐마차는 귀가 발쭉 일어선 노새 두필이 끌었다. 농민들은 짐마차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마차군더러 마차를 세우라고 했다. 그러나 마차군은 들은척 않고 노새잔등에 채찍을 후렸다. 그러자 청년들속에서 차득만이 달려들며 마차군의 멱살을 잡아 마부대우에서 끌어내렸다.

《이자식 마차를 세우라면 세울것이지 노새한테 채찍은 왜 휘들러? 이게 무슨 짐이냐?》

마차군은 대꾸를 안했다. 아무래도 마차군 같지 않았다.

차득만은 마차우로 뛰여올라가 짐을 조사해보았다. 무슨 물건인지 온통 한아름씩 되는 큰 상자들을 실었다. 맨 꼭대기에 놓인 상자의 벙글써하게 틈이 난곳으로 들여다보니 양은남비가 가득 들어있다.

《야, 이게 왜놈상품이구나. 이 빌어먹을놈이 어느 상점의걸 빼돌려주는구나. 마차를 끌어먹어도 더럽게 끌어먹는놈… 이 짐을 좀 조사해보자.》

차득만은 농민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농민들은 물건상자들을 굴려내리고 한쪽으로는 마차군에게 어느 상점의 물건이냐고 다그쳐물었다. 농민들속에서는 그것이 왜놈이다, 왜놈이다 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아닌게아니라 왜놈이였다. 콩잎같은 모자를 잡아닥쳐 벗기니 기름바른 머리가 뛰여일어나며 혼돌혼돌 흔들렸다. 주위에서 그놈 쳐죽이라고 웨쳐댔다. 이러는데 시가지골목에서 규찰대원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이놈은 우리가 끌고 가서 족칠테니 짐들이나 처리하시오.》

규찰대원들은 이렇게 말하며 놈을 끌고 갔다.

상자를 테놓으니 길바닥에는 왜놈상품의 사태가 났다.

농민들은 상품을 송화강에 내다 처넣자느니 불을 지르자느니 하며 떠들다가 마차에 도로 걷어싣고 성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군중들에게 뿌려던져서 군중의 손으로 없애게 하려는것이였다.

농민들은 깨진 상자는 차던지고 짐마차우에 상품을 마구 걷어실었다.

얼마후 농민대렬은 짐마차를 앞세우고 함성을 높이면서 조양문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하남가거리로 학생대렬과 시민대렬이 구호를 웨치면서 노도처럼 밀려나오고있었다. 시민대렬의 맨 한가운데서는 보배 큰아버지의 통영갓이 해빛에 번쩍번쩍 빛났다. 그는 용케 갓을 부스러뜨리지 않고 어제오늘 더 열성적으로 시위를 했다.

농민대렬속에서는 던져라 던져라 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짐마차우에 섰던 차득만이들은 물건을 쥐여뿌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머리우로 종이우산이 날아가고 학생복이 날아갔다. 비누, 분갑, 원피스 같은 물건들이 계속 날아갔다. 학생들은 손칼을 꺼내서 물건들을 쫙쫙 찢었다. 시민들의 머리우로는 면직물필이 던져졌다.

《찢어라, 찢어라.》

여기저기서 웨쳐대며 면직물필을 주르르 펼쳤다. 알록달록 무늬가 찍힌 면직물이 발에 짓밟히고 머리우에 덮이고 하였다. 이어 그것은 가로세로 찢겨져나갔다. 왜놈상품 한마차가 순식간에 녹아났다.

투쟁은 련일 계속되였다. 군중은 조금도 기세를 늦추지 않고 불꽃을 날리였다.

시위가 격렬해지는통에 자혜병원의 부상자들도 누워있지를 못했다. 모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밖으로 나와 뒤담장에 붙어섰다. 의사와 간호부들은 말리다 못해 아예 뒤담장밑에 책상이나 걸상 같은것을 가져다놓아주었다. 그래서 부상자들은 거기 올라서서 구경을 하며 시위군중에게 박수도 보내고 시위군중과 함께 구호를 웨치기도 했다.

경주는 침대에 누운채 밖에서 일어나는 함성을 들었다. 함성이 어떻게 요란한지 창문이 즈르렁즈르렁 울리였다.

꼭 경주자신도 시위대렬속에 서있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함성이 들려왔다. 바로 시위대렬이 병원담장밑까지 온듯 발구름소리도 울려온다.

의사가 간호부를 데리고 들어왔다.

상처에 소독을 하고 무슨 주사인가를 찔러넣는다. 경주는 두눈을 사르르 감았다. 조금 있더니 박승훈이도 들어와서 진찰을 해보고 나간다. 사방이 잠간 조용해졌다.

밖에서 들려오던 함성소리도 멎었다.

몇명의 녀학생들이 병실로 우르르 달려들어왔다. 그들은 경주의 병세가 어떤가를 묻고는 오늘은 군중의 기세가 더 높아졌다고 하면서 그더러 안심하고 누워있으라고 했다.

《적들이 밀려나오지 않았니?》

《아마 통천가쪽에서는 적들이 헤살을 놓는것 같애. 그렇지만 그게 뭐 대수냐? 우리 규찰대가 보통이 아니란다.》

《로동자, 농민들도 여전히 시위에 참가하고있니?》

《그럼… 점점 더 기세가 높아지고있지. 어젠 장두촌농민들이 왜놈상품을 실은 마차도 한대 붙잡아 요정을 냈어.》

《얘, 글쎄 아까 교하에서 온 한 청년은 귀가 발쭉한 노새잔등에 올라서서 구호를 웨치지 않아, 호호호.》

녀학생들은 경주의 침대곁에서 한참 떠들다가 나가버렸다. 그들은 매일 이렇게 경주에게로 드나들었다. 인제 경주의 상처가 위급한 고비는 면했기때문에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였고 녀학생들은 어떤 일이고 시위투쟁에서 벌어지는 일은 경주에게로 달려와서 알리고싶어했다.

조금 있더니 고유수의 강보배가 땀을 흘리며 들어섰다. 길림에 온 첫날부터 녀학생대오에서 열정의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해온 그였다. 그는 경주가 안심되지 않아 시위를 하면서도 매일 병원으로 찾아왔다.

《오늘은 좀 어떠냐?》

《좀 낫다. 바쁜데 왜 자꾸 찾아오니. 나야 병원에 편안히 누워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네가 와서 정말 기쁘구나.》

경주는 강보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여기 와서 시위에 참가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두학동무가 기뻐하겠구나?》

《그 동무가 무슨…》

강보배는 낯을 붉혔다.

《그런데 싸움이 점점 처절해지는구나.》

그는 얼른 딴말을 꺼냈다. 박두학이를 못잊어 달려온것 같은 부끄러운 감정을 피하려는것이였다. 정말 여기 당도하는 길로 박두학이를 만나서 둘이 밤새 송화강가를 거닐며 속삭이던 일을 남이 눈치챌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기까지 했다.

《싸움이 어떻길래?》

경주는 강보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놈들이 사납게 갈개니까말이야. 시위가 암초에 부딪쳤어. 글쎄 독군서 헌병들이 수십명 거리를 막고 서서 총탁으로 막 짓조기는구나! 놈들도 눈에 독이 올랐어. 조양가쪽에서는 우리 규찰대와 헌병놈들이 맞붙어 격투를 한다는거야.》

《그래 너희 대렬은 어디서 싸우고있니?》

《바로 이 뒤 북대가에서… 저 소리를 들어봐라! 아니, 또 육박전이 벌어졌나보구나, 난 나가봐야겠어…》

강보배는 얼른 경주의 머리맡에 무엇인가를 놓고 달려나간다. 경주가 눈을 돌려 살펴보니 과자봉지였다.

경주는 두눈을 감고 잠간 생각에 잠겼다. 동무들의 뜨거운 정이 뼈에 저리도록 울리여왔다. 이 준엄한 싸움속에서도 병원에 올것을 잊지 않고 또 빈손으로 와서는 안되겠다는것도 잊지 않고있다. 이 강보배뿐만아니라 병원으로 찾아오는 모든 동무들이 거저 오지를 않는다. 한대오에 선 혁명동지가 아니라면 이런 눈물겨운 정이 오고갈수 있을가! 경주는 저도모르게 량눈굽에 이슬이 돌았다.

또 함성이 들려온다. 째는듯한 녀학생들의 함성이다. 경주는 잠간 두눈에 긴장한 빛을 띠고 그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구호를 웨치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왔다.

경주는 두주먹을 힘주어 그러쥐였다. 그리고는 이발을 사려물었다. 저지선에 막힌 대렬을 그대로 내버려둘수 없다고 생각한것이다.

그는 머리를 들고 연신 힘을 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후들거려 겨우 바닥에 내려섰다. 머리가 핑 휘돌아 한참 침대를 붙잡고 서서 눈을 감았다. 얼마후에야 그는 눈을 뜨고 간신히 외따로 섰다. 코마루우에 땀방울이 송송 내돋았다.

그는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를 대충 쓰다듬고 베개머리에 떨어져있는 핀도 찾아서 찔렀다. 그는 침대에 걸려있는 흰 연당목저고리를 벗겨다가 입었다. 오빠가 가져다둔 곤색치마도 갈아입을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입고있는 검은 목세루치마가 좋을듯싶었다.

경주는 간신히 병실을 나섰다. 뒤뜰을 살펴보니 남학생들과 녀학생들이 모두 담장에 붙어서서 거리쪽을 바라보고있다. 안뜨락에는 아무도 없다. 열려있는 처치실문안으로 박승훈의 뒤모습이 보인다. 아마 간호부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것 같다. 경주는 얼른 뜨락을 걸어서 현관에 이르렀다.

병원앞 공지에는 농민들이 수십명 모여서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있다. 학생들도 섞여있는것 같다. 공지앞 잡화상점 지붕우로 펄펄 날리는 기발들이 보이고 와아하는 소리가 터져오른다.

경주는 아무래도 공지로 가다가는 사람들 눈에 걸려 병원으로 도로 밀려들어올것 같았다. 그래서 공지로 가지 않고 병원옆쪽으로 돌아 골목길로 들어섰다.

북대가쪽은 지척인데 십리도 더 되는것 같았다. 그는 걷다가는 담벽을 붙들고 숨을 돌리군하였다. 그저 그 누가 닁큼 안아다가 사뿐히 내려놓아주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걷다가 보니 언덕길이 나졌다. 그는 언덕을 피해서 걸으려면 더 멀리 돌아야 북대가에 이를것 같아서 그냥 언덕을 걸어올라갔다. 가슴이 무겁고 호흡이 가빴다.

얼마후에야 언덕이 끝나고 앞이 시원히 열리였다. 북대가의 큰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언덕은 거기서 뭉툭 잘리여 벼랑으로 되였다.

지금 북대가거리에서는 행진을 멈춘 녀학생들이 헌병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들끓었다. 어떤 학생은 주먹을 휘두르며 연설도 했다. 한 기폭앞에서는 오순희가 서서 무어라고 고함을 질렀다.

백화점앞에 헌병들이 늘어서있는데 놈들은 저지선을 완강하게 꾸리느라고 화물자동차로 무언가를 실어나르는것 같다. 경무청쪽에서 자동차 한대가 비살치듯 달려나오더니 쇠줄타래 같은것을 부리나케 집어던지고있다. 한놈은 녀학생들쪽에 대고 무어라고 고함을 지른다. 아마 흩어져가라고 소리치는것 같다.

경주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내짚으며 언덕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거기 서있는 전주를 한손으로 짚으며 다른 한손은 높이 추켜들었다.

《동무들!》

목이 말라서 그러는지 목소리가 아니라 목젖너머에서 불덩이가 튀여나오는것 같은 감각이였다. 그는 또 한번 《동무들!》 하고 부르짖었다. 그제야 밑에서 경주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경주다》, 《경주다》 하는 웨침소리가 일어났다. 앉았던 학생들이 일시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언덕밑으로 내달아왔다. 여러명의 녀학생들이 돌을 쌓은 언덕으로 기여오르자고 달라붙었다가는 뚝뚝 떨어져내린다.

《동무들, 어째서 이러구있습니까? 저지선을 무찌르고 앞으로 나가십시오. 우리들이 이런 자세를 보이면 원쑤들은 더욱더 악랄해집니다.》

경주가 웨치기 시작하자 와글거리며 끓던 녀학생들이 조용해졌다. 쏘는듯한 눈동자들이 경주에게로 집중되였다.

《동무들!》

경주는 호흡이 가빠서 잠시 말을 멈췄다. 자꾸 다리가 떨리고 온몸이 후들거려왔다. 그는 입술을 악물며 몸을 다잡았다.

《나아갑시다, 동무들! 투쟁이 고조에 오른 이때 우리가 어떻게 잠시라도 행진을 멈출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적앞에서 이런 자세를 보일수 있겠습니까? 적에게 한순간의 여유도 주지 말고 줄기차게 밀고나아갑시다. 적을 물고 늘어지고 적의 눈에 모래를 치고 벽돌장으로 까고… 저지선을 돌파합시다. 이 성스러운 결전장에서 우리들의 생명, 우리들의 청춘을 혁명의 불꽃으로 피여오르게 합시다. 승리를 위하여 앞으로, 미래를 향하여 앞으로!》

경주는 손을 들어 적들이 우글거리는 저지선쪽을 거듭 가리켰다.

《옳다, 나아가자!》

《나아가자, 앞으로!》

녀학생들이 호응하며 소리를 질렀다. 경주의 창백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우는 학생이 많았다.

《얘, 들어가려무나. 네가 거기 나와서 웨치지 않은들 아무렴 우리가 그놈들한테 질테냐?》

오순희도 눈물을 뿌리며 울었다.

《언니, 우리가 뭐 무서워서 그러는줄 알어? 남학생대렬이 오기를 기다리는거야.…》

녀자사범 하급반 학생 하나는 석벽을 거의 기여올라와 경주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는 두르르 미끄러져내려가서는 엉엉 울었다.

눈물을 닦고난 오순희는 학생들에게 대렬을 짜라고 소리를 질렀다. 삽시에 북대가거리는 노도처럼 끓어번지였다. 기발이 일어서며 구호소리가 일어났다.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한다!》

《일제에게 죽음을 주라!》

《일본상품을 배척한다!》

저지선으로 육박한 녀학생들은 터진 물처럼 덮어치며 헌병의 떼를 묻어버렸다. 녀학생대렬이 정 사생결단할 차비를 하자 놈들도 미처 손을 쓰지 못했다. 오순희가 갈개는놈의 정수리를 기대로 후려치며 앞으로 나가자고 웨쳐댔다. 어떻게 했는지 녀학생들은 거리바닥에 멎어있는 화물자동차우에까지 기여올라갔다. 대여섯명의 녀학생이 적재함속에 들어서서 그속에 있는 철조망타래를 헌병들의 정수리우에 내리던졌다. 강보배는 운전대 지붕에 올라서서 손을 오그려 입에 붙이고 구호를 웨쳐댔다. 삽시에 헌병의 떼는 설설 끓는 속에 빠져 녹은것 같이 되였다. 어데로 빠져 줄행랑을 놓았는지 한놈도 보이지 않고 녀학생대렬이 강물처럼 터져나갔다. 그들은 기발이 날리고 구호소리가 일어나는 조양문쪽을 향해서 바삐 걸었다. 거기 가서 다른 대렬과 빨리 합세하려는것이였다.

경주는 한참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전주를 붙잡고 간신히 돌아섰다. 하늘과 땅이 핑 돌아가며 갑자기 시야에 안기는것이 모두 누렇게 병들어보인다.

《내가 왜 이럴가?》

그는 속삭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걸음을 떼자니 땅이 더욱 돌아갔다. 돌아가지만 않고 기우뚱거리며 흔들렸다. 그는 또 출혈을 해서 발등까지 피가 내려젖은것을 알지 못하였다. 차츰 의식이 혼미해졌다. 앞에서 검은 장막이 펄럭거리는것 같은 착각도 들고 어데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것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힘을 다해서 한발한발 옮기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되며 의식을 잃었다.

결에 있는 어린 버드나무가 경주를 받아안다가 놓아버렸다. 풀발에 쓰러진 경주는 한참동안 입술을 떨며 눈부신 해와 속삭였다.

 

4

 

약왕묘 지하실에서는 초불이 뿌직뿌직 타고있다. 불꽃밑에서는 녹은 초물이 자꾸 흘러내리고있다. 모두들 심각한 얼굴로 앉아서 하루의 시위를 총화했다. 누구나 다 투쟁이 어려운 고비로 육박하며 결전이 눈앞에 있다는것을 예감했다. 차광수, 채경, 김혁, 기준이, 권태일, 박두학, 리효 어느 얼굴이나 다 검붉고 준엄했다. 움직이는 눈동자들에서 번개불이 일었다. 굳게 다문 입들은 바위의 무게를 련상시켰다.

《자, 오늘밤에는 모두들 나갑시다. 오늘 싸움에서 적들이 본격적으로 출동할 태세를 보인 이상 우리가 래일 싸움을 간단히 준비해서야 되겠습니까? 각 조직들에 나가서 규찰대준비를 검토하고 결정적인 태세로 들어가도록 조직합시다.》

김성주동지의 음성은 여느때없는 무게를 가지고 지하실을 울리였다. 사실 예상은 했지만 오늘의 시위에는 적들의 무력탄압이 갑자기 본격화되였다. 놈들이 어떻게 갈개는지 사처에서 대렬의 행진이 저지당했고 어떤데서는 또 피를 뿌리는 결투를 했다. 지휘부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왜놈령사관이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다른데서 무력을 동원해온다는 소리도 있다. 그러니 래일의 싸움이 간단치 않으리라는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얼마후 약왕묘 지하실에서는 각 조직으로 나가는 지휘성원들이 한사람 두사람 빠져나와 어둠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지휘성원들이 빠져나간 지하실은 휑뎅그렁하게 비였다. 초불이 굵은 초대 하나를 다 녹이고 심지가 초물이 홍건한 책상바닥에 구부러져내려가 뿌질뿌질 소리를 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잠간 방안을 거닐며 생각에 잠기셨다. 방금 보고 오신 경주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가슴이 찢기는것 같이 쓰리고 아프시였다.

(경주는 죽지 않을것이다. 절대로 죽지 않을것이다. 어느놈이 그 열정에 찬 나래를 꺾을수 있단말인가! 어느놈이 그 지혜로 반짝이는 나래를 찢을수 있단말인가!) 그러나 그이의 크나큰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채경은 김혁이와 함께 책상앞에 돌아앉아 열심히 글만 썼다. 새로운 선전문초고를 쓰고있는것이였다. 불이 다 꺼져가도 그걸 아랑곳하지 않고 글만 쓴다. 등을 꾸부리고 앉아있는 모습, 그 모습이 더욱 가슴을 저리도록 허빈다. 그가 심정이 편안할리 없다. 누구보다도 쓰리고 아플 사람은 채경이 아닌가.

《채경동무, 선전문은 김혁동무에게 맡기고 우린 거리로 나가보기요.》

《그렇게 하기요. 우선 직업학교에 가보아야겠소. 농민들이 밤에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소. 태일동무가 나가긴 했지만…》

《거기도 가보아야겠지만 다른곳도 마음이 놓이지 않소.》

채경은 쓰던것을 주섬주섬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하실복도는 어둑컴컴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손을 내밀어 채경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소.》

《서로 붙잡고 나갑시다.》

채경은 뜨거운 심정으로 그이의 손에 잡힌채 지하실 문턱을 넘어섰다. 채경이도 그이께서 무얼 생각하며 마음을 쓰시는지를 모를리 없는것이다. 서로 감추려고 애는 썼으나 이심전심으로 그 괴로움은 전달되였다.

채경은 얼른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가며 걸었다.

《채경동무, 우리는 혁명가들이요. 혁명가라면 굳은 신념을 가지고 혁명동지를 생각해야 하오.》

《알고있소. 우리 경주가 살아난다는것을 그렇게 믿어주니 고맙소. 그 애가 다시 투쟁의 대오에 서서 혁명의 노래를 부른다면 나야말로…》

《믿읍시다. 경주동무에겐 절대로 그 어떤 불행도 없을것이요.》

채경은 그이의 뜨거운 사랑과 신념에 찬 말씀을 들으며 목젖너머에서 주먹같은 울음덩어리가 생겨났다. 그는 그것을 간신히 참으며 걸었다.

직업학교에서는 권태일이 농민들을 서너교실 툭 테놓은 강당에 모여앉히고 시위가 인젠 결사전으로 넘어간다는 선동연설을 하고있었다. 가뜩 배겨앉은 청중이 연단에 시선을 집중하고 열심히 듣고있다. 얼굴이 붉고 두눈에 정기가 펄펄 끓는 권태일은 자주 연탁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김성주동지께서 잠간 서서 들여다보시는 사이에도 그는 물고뿌의 물을 두번이나 들이마신다. 되게 갈증이 나는 모양이였다.

《연설회를 깨뜨려서야 되겠소? 이따가 돌아오는길에 다시 들려서 농민들의 잠자리를 보도록 합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채경의 옷소매를 당기시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채경은 얼른 돌아서서 걸었다.

덕승문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서니 거리는 더욱 조용했다. 폭풍을 배태한 정적이 래일의 려명을 향해 숨가쁘게 움직여가는것 같았다.

이튿날이였다.

거창한 시위의 물결이 다시 거리를 덮었다. 시위군중은 전날의 경험이 있는지라 어떤 원쑤가 달려들어도 무찌르고 내달을 기세로 태세를 갖추고 맹렬하게 밀고나갔다. 구호가 아니라 내내 하늘을 무너뜨릴것 같은 함성이였다. 로동자도, 농민도, 학생도, 시민도 모두 이를 갈았다. 더구나 경주가 다시 중태에 떨어졌다고 하는 사실은 전체 학생대오를 복수심으로 불붙게 했다. 그중에서도 녀학생대렬의 기세는 더욱 무서웠다.

《무에 무서울게 있느냐? 내밀어라! 내밀어라!》

《맞서면 때려라, 쳐라! 그런데 오늘은 왜 우리앞에 한놈도 보이질 않니?》

녀학생대렬은 이렇게 들끓으며 마구 밀고나갔다. 밤사이에 기발도 더 늘었다. 대를 굵은것으로 한것을 보니 기발로도 쓰고 몽둥이로도 쓸 잡도리 같았다.

이런 환경속에서 성내의 상인들도 떨쳐일어났다. 그들도 대렬을 짜고 기발을 만들어 들었다.

《우리는 일본상품을 안판다.》

《우리는 일본상품을 배척한다.》

기발이 련속 올라가며 이런 구호가 일어났다.

북대가의 큰 잡화상점에서는 번대머리의 상점주인과 그 아낙네인듯한 녀자가 자기 점포에 있는 고무신을 연방 거리로 집어내던졌다. 거리바닥에는 고무신사태가 났다. 연필, 치솔, 인단갑도 날아나온다. 영화관 맞은편 한 상인의 창고에서는 왜놈도매상의 물건궤짝들이 디굴디굴 굴러나왔다. 바로 며칠전 왜놈도매상 한놈은 정거장에 도착한 화물을 자기 창고로 실어들이지 않고 영화관 맞은편에 있는 상인과 짜고 그 상인의 창고에 실어들였다. 이 비밀이 각성한 상인들에 의해서 폭로되였다. 그래서 지금 창고에서는 시위에 떨쳐나온 상인들이 물건궤짝들을 굴려내왔다.

어떤 궤짝은 굴다가 터져서 물건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하남가에서도 그런 창고가 또 하나 발견되였다. 교활한 왜놈상인들은 창고주인에게 물건만 살려내면 몇궤짝의 상품을 거저 준다는 약속을 하고 자기 상점의 물건들을 전부 포장해서 밤에 실어넘겼다. 이것은 그 근처의 시민들의 고발에 의해서 폭로되였다. 여기에서는 법정학교 학생들이 달려들어 물건궤짝들을 굴려내왔다. 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궤짝을 테라, 까부셔라 하며 들끓었다.

일본상품의 운반대가 조직되였다. 운반대에서는 정거장근처에서 로획한 짐마차가 한몫 쓰게 되였다. 장두촌의 차득만과 신안툰의 정금석이는 짐마차에 상품을 부리나케 걷어싣고는 마부대우에 앉아 노새잔등에 채찍을 후렸다. 마차는 나는듯이 송화강으로 내달았다. 그들은 언덕우에 마차를 세우고는 강물에 상품들을 처던졌다. 강물로는 고무신짝, 알락달락한 천, 게다짝, 넥타이, 아이들의 옷가지들, 법랑철기, 축음기판 같은것들이 연방 둥둥 떠내려갔다.

이런 시각 선창에서도 투쟁의 붙길이 일었다. 가대기군들이 선창에 쌓여있는 《만철》의 화물을 송화강에 처넣기 시작했다. 모두들 힘이 장사였다. 그들은 목도에나 뜰 무거운 화물궤짝들을 어깨에 메고는 잔교우를 비호같이 달리였다. 잔교끝에서는 련속 쾅 처절썩하는 소리가 울리였다. 궤짝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한참씩 물속에서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나며 물방울이 솟아오르군 했다.

《하하하, 시원하구나!》

권성근이도 장사같은 기운으로 그런 궤짝을 하나씩 메내다던지고는 땀이 번지르르한 얼굴로 잔교우에 서서 웃어대군했다.

성안에서는 일본상품을 모아놓고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처처에서 삼단같은 연기가 물컥물컥 솟아오른다.

일본상품을 불지르는데는 놈들의 상품인 《솔표》석유가 한몫 썼다. 그저 어떤 물건이고 쌓아놓고 석유만 한초롱 들부으면 된다. 타지 않는 물건이란 없다. 성안에는 고무타는 냄새, 기름타는 냄새가 그득해졌다. 하늘이 낮게 흐리고 바람 한점 없어서 속이 메슥메슥한 냄새가 다른데로 밀려가지도 않았다.

이런 때 적들이 밀려나왔다. 독군서 헌병들과 경무청 순경들이 한통이 되여 일시에 사처로 밀려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놈들뿐만 아니였다. 왜놈령사관이 최종수단으로 동원시킨 수비대기마병들이 말을 타고 달려들었다. 싸움은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규찰대는 결사적인 싸움을 벌리였다. 규찰대의 수효가 많아서 적들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내지를 못했다. 총을 쏘고 군도를 휘두르고 해도 앞뒤로 와하고 달려드는 규찰대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처처에서 적들은 규찰대의 유인전술에 녹아났다. 내빼는것처럼 속이는 규찰대를 추격해가다가는 이골목 저골목에서 달려드는 규찰대때문에 놈들은 힘이 분산되고 토막이 났다. 규찰대가 덮어치기만 하면 벌써 포위망속에 들었다.

조양문앞 영화관근처에서는 규찰대가 왜놈경찰과 경무청 순경을 여러놈 결박해놓았다. 그러나 놈들도 결사적으로 덤비는 판이라 어떤데서는 규찰대의 포위속에서 벗어난 놈들이 시위대렬속에 달려들어 군도를 휘두르며 시위를 저지시켜보려고 날뛰였다.

오늘은 무서운 격전이 붙어 아낙네들도 전부 떨쳐나섰다. 그들은 시위군중을 시중하느라고 치마꼬리를 걷어찌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오순희의 어머니는 자기집 물독에서 물을 한동이씩 퍼가지고는 땀을 철철 흘리며 서문쪽 큰거리로 달려가군 하였다. 권태일의 어머니도 떨쳐났다. 그는 치마폭에 돌과 벽돌장을 싸들고 뜀박질을 했다.

봉숙이어머니와 그의 올케도 장사진을 친 아낙네들속에 끼였다.

《몽둥이를 날라가야 되겠어요. 자, 모두들 갑시다. 목공창에 가서 나무를 날라다줍시다!》

봉숙이어머니가 머리수건을 벗어서 흔들며 웨쳤다. 그는 지금 자기 남편 생각이 치밀어서 소리를 내여 울것 같은 심정이였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는 했어도 언제 한번 이런 통쾌한 광경을 보고 갔는가, 혼이라도 있으면 이 길림공중에 날아와서 굽어보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봉숙이어머니는 이런 생각으로 목이 메였다. 그는 아낙네들을 휘동해가지고 송화강 강반에 있는 목공창으로 가서 쭉데기낟가리를 헐었다. 목공창주인도 어서 가져가라고 신명이 나서 떠들었다. 아낙네들은 쭉데기단을 이고 부리나케 달렸다. 그들속에서도 쳐죽여라, 때려라 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통천가에서는 제5중학교 대렬속에 여러놈이 뛰여들었다. 그러는가 하면 하남가의 농민대렬속에도 십여명이 달려들어 군도를 휘둘렀다. 독군서앞쪽으로 올라가는 큰 백화점앞에서는 군중의 함성이 일어나고 번들번들한 칼날이 사람들의 머리우로 솟았다내렸다 한다. 수비대놈들이 말을 달리며 군중을 해산시키려고 발악했다. 철도기관구 로동자대렬과 육문중학교와 문광중학교 대렬이 북대가쪽에서 행진을 멈추고 놈들과 싸웠다. 근처에 있던 규찰대도 전부 집중되였다. 놈들은 군중의 머리우에 칼을 휘두르며 흩어져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떤놈은 일본상품이 타서 불이 이글거리는데로 마구 말을 달렸다. 말꼬리가 불에 끄슬려 누린내가 훅훅 풍겼다.

《무서워 말고 조겨라. 말다리를 꺾어라!》

차득보의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그는 두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규찰대원들은 사람사태속에서 솔솔 기다가는 말다리를 들이조겼다. 어떤 규찰대원은 놈들한테서 빼앗은 번들거리는 칼로 말을 찍자고 덤벼들었다. 한마리는 엉뎅이를 푹 찍혔다. 말은 하늘로 올리뛰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말은 피를 줄줄 흘리며 더 기광이 뻗쳐서 달렸다. 차광수, 권태일, 박두학, 김혁, 리효, 채경 지휘부성원들도 결사전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철근대, 장작개비, 몽둥이 닥치는대로 얻어들고 말우에 앉은놈을 갈기고 말을 갈기고 하였다. 박두학은 굵은 철근대로 말의 앞다리를 어떻게 후려갈겼는지 말이 흐앙소리를 지르며 올리솟구었다. 그러더니 박두학의 뺨과 목덜미에 느침을 휘감으며 앞다리를 꺾고 코방아를 찧었다. 말우에 앉았던놈이 목을 거꾸로 박으며 딩굴었다.

박두학은 저쯤 앞 진두에 서계신 김성주동지쪽으로 이 기마대가 달려가지 못하도록 두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을 따라 돌아갔다. 그는 어떻게 하든지 기마대를 이 근방에서 전부 까눕혀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말이 앞쪽으로 못가게 막아라, 조겨라! 찍어라!》

박두학은 계속 고함을 지르며 달렸다. 등을 굽히고 기다가는 벌떡 일어서며 도끼를 휘둘렀다.

그는 종시 말 한필을 도끼로 찍었다. 그러나 말옆구리에 박힌 도끼를 우쩍 뽑아드는 순간 머리우에서 내리박히는 군도날이 그의 어깨를 찍었다. 칼끝이 또 한번 가슴팍에 떨어졌다.

그러나 박두학은 도끼를 또 우쩍 들었다. 마침 달려오는 뒤말이 그의 곁을 스쳤다. 박두학은 도끼를 휘둘러 말우에 앉은놈의 장화다리를 들이찍었다. 놈은 깨액 하는 짐승소리 같은 비명을 질렀다. 거의 같은 순간에 박두학이도 도끼를 떨구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러나 그는 이어 또 벌떡 일어섰다. 온몸이 피에 젖었다.

《이 개놈들이…》

박두학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다시 도끼를 쥐였다. 그리고는 기마대를 찾았다. 기마대는 지금 저쪽 거리에서 갈개고있다. 김성주동지께서 계시는쪽은 아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학생대렬을 지휘하시며 지금 북대가쪽으로 뻗은 거리를 행진해가고계셨다. 거기서는 구호소리가 연방 터져오르고 기대와 주먹과 몽둥이들이 수풀처럼 솟아올랐다. 그 구호와 함성소리에 대기가 흠칠흠칠 떨리였다. 선창을 떼는 저 소리는 분명 김혁의 목소리이다. 비분에 젖어 《황성옛터》만 줄곧 불렀다던 김혁은 그 목소리로 《타도 일제》를 목이 터지게 부르짖고있는것이다. 김혁아, 정말 잘한다. 온 세상이 다 듣게 높이 웨쳐라. 내 몫까지 합쳐 더 크게 웨쳐라. 차광수와 채경은 여전히 규찰대를 휘동해가지고 호위진을 쳤다. 그것이 박두학이 있는데서도 잘 보이였다. 박두학은 피에 젖은 발을 한발한발 옮겨짚었다. 학생들이 달려들어 부축하려는것을 도끼를 휘둘러 쫓아버렸다. 그는 한발씩 옮겨짚다가는 앞을 쏘아보며 숨을 돌리군했다. 점점 더 옮기는 발이 더디여졌다.

《이 강도같은놈들! 어떻게 한담? 이놈들이 날… 날 이렇게 만들어?》

그는 우뚝 섰다가는 또 걸음을 옮겼다. 처져내리는 한쪽 어깨를 우쩍 들어올리며 자꾸 도끼를 꼬느어올렸다. 그러나 꼬느어올린 도끼는 이어 또 밑으로 툴렁 떨어져내리며 팔이 흔들흔들 그네를 뛰였다. 황소같던 힘도 인제는 다 달아난듯싶다.

《내가 인젠 맥을 못쓴다? 이 박두학이가…》

그는 이발을 갈며 우뚝 섰다. 도끼를 잡은 손은 여전히 흔들흔들했다.

도끼자루도 피에 젖었다.

《성주동무!》

그는 이렇게 부르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 하늘가에 즐거운 추억이 어려왔다. 들국화가 다문다문 피여있는 화전의 휘발하강변 언덕받이가 무엇때문엔지 맨처음으로 그 추억속에 떠올랐다. 그 언덕받이의 스무나무 그늘밑에서 김성주동지와의 우정이 무르익어서인지도 모른다. 거기서 박두학은 그이와 정식으로 통성명을 했었고 그이의 믿음이 깃든 《공산당선언》을 받아읽었으며 아무리 읽어도 알쑹달쑹하던 잉여가치의 개념에 대한 그이의 설명도 들었었다. 언젠가는 그 언덕받이에서 김성주동지가 사다준 전병도 먹었다. 식성이 류달리 좋은 박두학이 배가 고파서 헐헐할 때마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밥을 덜어주시였다. 잊혀지지 않는 생활은 교실에도 있었고 운동장에도 있었다. 그게 어느 축구시합이였던지는 아리숭하다. 박두학이 자기편 문대에 꼴을 넣어 만장의 폭소를 자아내던 시합, 그날 유난히도 통쾌하게 웃으며 과연 놀라운 재간이라고, 그런 실점을 낼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말해줄수 없는가고 롱을 하시던 그이의 모습, 저녁식사때에는 세상에 드문 《기술》을 보여준 박두학의 몫으로 곱배기까지 청해주시던 그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다음은 김시우의 서재가 떠오른다. 《ㅌ.ㄷ》의 고고성속에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영원한 투쟁,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던 10월의 그 밤… 눈물이 번들거리던 얼굴들, 입가에 피여나던 미소… 아, 아, 그 영원이 오늘로써 끝나려는것인가.

추억은 헝클어져 뒤죽박죽이 되였다. 박두학은 다리를 휘청거리였다.

바로 그때 녀학생대렬이 어디로인지 우르르 밀려가다가 그를 띠여보았다.

《저게 누구냐? 박두학동무 아니야?》

녀학생들이 놀라서 짝장그르 끓었다.

대렬속에 끼여있던 강보배가 앞으로 나왔다.

《아니!…》

그는 피빛이 시뻘건 박두학이를 보고 몸을 떨었다. 한달음에 부상자의 곁으로 뛰여왔다.

《아이, 어찌나.》

《보배동무, 동문 일없소?》

박두학은 가쁜 숨소리로 물었다.

《전 일없어요. 저한테 기대세요.》

강보배는 손에 들었던 장작개비를 뿌려던지고 박두학을 다가끼였다. 녀학생들 여럿이 달려와 와짝 끓으며 박두학을 부축했다.

《가만있소. 성주동무가 일없소?》

박두학이 강보배에게 물었다.

《일없어요.》

《그럼 됐소. 날 좀 꽉 붙잡아주.》

강보배는 몸이 기우는 박두학을 꽉 붙안고 비척비척 걸었다. 그의 흰 연당목저고리도 온통 피에 젖는다. 그는 박두학이 떨어뜨린 도끼를 잡아쥐였다. 박두학은 점점 더 힘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이 처절한 순간에도 희열이 북받쳐 그 격정으로 눈물을 떨군다. 강보배와 더불어 손잡고 영원히 싸움의 길을 걷고싶었던 그 꿈이 준엄한 이 순간에 현실로 살틀히 펼쳐진것이다.

《더 꽉 붙잡아요.》

《고맙소. 동무도 날 꽉 붙잡소.》

녀학생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둘의 불같은 사랑을 잘 아는 그들이다. 아, 이것이야말로 영원으로 가는 사랑이 아닌가.

《보배, 인젠 이 책을 동무가 가슴에 품소.》

박두학은 품에서 진홍색뚜껑의 수첩을 꺼냈다.

《그게 무슨 책인데요?》

《<ㅌ.ㄷ>의 강령규약을 적은 책이요. 김성주동무가 만들어주었소.》

《그건 어째서 날 줘요?》

《내대신에… 나야 인제…》

《두학동무!》

《성주동무를 보고싶소. 한번 손이라도 잡아보고…》

박두학은 눈물을 흘리였다. 그는 발을 더 옮기지 못하고 강보배의 팔에 몸을 무겁게 실으며 아래다리를 꼬았다.

강보배는 피에 젖은 수첩을 얼른 허리춤에 지르고 박두학을 업었다. 그러나 몸집이 큰 박두학은 인차 잔등에서 흘러내렸다.

남학생들이 달려와 그를 받아업었다.

강보배는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아 련인의 이름을 정신없이 불렀다. 한참 그렇게 부르다가 얼굴을 버쩍 들었다. 얼굴이 온통 피와 눈물범벅이다. 주위에서는 여전히 말들이 뛰고 사람들이 끓었다. 그는 땅에 나뒹구는 도끼를 다시 손아귀에 잡아쥐였다. 아직은 연약한 팔뚝이였으나 그 팔뚝이 우르르 떨리였다. 강보배는 벌떡 일어나 치마바람을 일구며 앞으로 뛰여갔다.

치렬한 격전은 계속되였다. 박두학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삽시간에 군중들속으로 쫙 퍼져갔다. 사람들은 복수를 하자고 함성을 지르면서 더 무섭게 기세를 올렸다. 말이 달려돌아가는 속으로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나갔다. 말우에 앉은놈에게 돌이 날아가고 벽돌장이 날아갔다. 공중에서 번들거리는 놈들의 칼을 철근대로 후리치기도 했다.

처처에서 적의 비명이 일어났다. 말을 잃어버리고 땅에 떨어져 군중의 뭇발밑에서 혀가 흘러나오도록 짓밟히고 채우는놈도 있었다.

학생들은 박두학의 시체를 공설운동장앞 풀밭에 내려놓고 주먹을 치며 울었다. 근방에 있는 학생들이 다 모여들었다. 문광중학교 학생들이 《두학아, 두학아.》하고 불러댔다. 박두학의 얼굴에 눈물을 뚝뚝 떨구며 풀을 쥐여뜯기도 했다. 박두학은 아직 눈도 감지 못하였다.

권태일이도 달려오고 차득보도 달려왔다.

얼마 안있어 김성주동지께서 채경이, 차광수, 김혁, 리효들과 함께 달려왔다. 모두들 박두학이를 둘러싸고 앉아 흐느껴울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박두학의 흰자위가 덮인 눈을 내려쓸어주시였다. 한숨이 없이 웃음으로 내내 혁명의 행군길에 보조를 맞춰온 박두학, 우스개와 롱담으로 항상 주위의 공기에 생기를 주고 《ㅌ.ㄷ》의 활력을 보태여주던 박두학.

《두학아! 두학아! 이게 무슨 일이냐?》

그이께서는 끝내 격정을 터뜨리시였다.

《두학이, 네가 벌써 간단말이냐? 우리가 화전에서 무슨 맹세를 다졌느냐? 내 나라, 내 겨레를 위해 변치 말고 끝까지 싸우자고 했지. 그런데 네가 <ㅌ.ㄷ>의 머나먼 싸움의 길을 버리고 이렇게도 빨리 간단말이냐? 두학아!》

김성주동지께서는 박두학의 볼을 쓸어주기도 하고 팔을 두드리기도 하시였다. 그러다가는 너무도 분하고 애통하여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시였다.

그이의 옆에서는 《ㅌ.ㄷ》의 첫 성원중의 한사람인 리효가 목놓아울고있었다. 길림에 오자 박두학이하고 각별히 친하게 지내던 차광수도 울고 채경이며, 김혁이며, 권태일이도 울었다.

얼마후 김성주동지께서는 박두학을 우쩍 품에 안고 일어서시였다. 시신을 안은채 한걸음한걸음 또 한걸음 걸으시였다.

학생들은 울음을 삼키며 그이의 뒤를 따랐다.

공설운동장에 들어서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장의자우에 박두학의 시신을 눕히였다. 그리고는 뒤에 서있는 한 기수를 부르시였다. 기수가 가까이 오자 기대를 끌어당겨 기폭을 푸시였다. 붉은 기폭이 그이의 가슴앞에서 펄럭이며 물결쳤다. 그이께서는 박두학의 얼굴을 다시한번 들여다보시고나서 천천히 기폭으로 시신을 싸시였다.

인제 박두학은 영원히 동무들과 갈라지는것이였다. 자기의 모든 소중한것, 희망도 리상도 열정도 사랑도 한폭의 붉은기에 싸가지고 영원히 동지들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여기 모인 그 누가 박두학이 자기들곁을 떠났다고 생각할수 있으랴! 그의 고결한 넋이 혁명속에서 숨쉬지 않는다고 생각할수 있으랴!

박두학의 시신을 싸놓자 강보배가 달려왔다. 그는 청년들뒤에 서서 몸을 떨었다. 도끼를 들고가서 말이라도 한필 요정냈는지 옷이 피로 물들고 아래단도 째졌다. 강보배는 새파란 얼굴에 입술을 감쳐물고 아까 허리춤에 찔렀던 《ㅌ.ㄷ》의 강령규약책을 손에 꺼내쥐더니 그것으로 얼굴을 덮으며 흑흑 흐느꼈다. 청년들이 모두 그 모습을 보고 눈들을 슴뻑거렸다. 김성주동지께서도 얼굴을 돌리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시였다.

그이의 눈에서는 번개가 일고 푸른 빛이 날았다. 이미부터 싹트고 익혀오시던 하나의 명백한 진리가 소리치고있다!

그것은 검은 구름을 째고 내려오는 피빛같은 광선처럼 명백하고 명백했다.

무장을 잡아야 한다! 무장한 적을 치려면 무장을 잡고 결전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 쓰리고 아픈것, 우리의 혁명우에, 우리의 랑만우에 검은 무늬를 박아놓듯 우벼파고 박아놓은 이 쓰라림, 이 괴로움… 우리는 이것을 총검이 아니고는 보복할수 없다! 우리가 다달은 이 언덕, 이 언덕우에서 우리는 다시 소리치고 일어나 무장을 잡고 앞으로, 오직 앞으로 내달아야 한다!

기마대가 달려들었던 북대가거리에서는 시위군중이 적을 완전히 제압해버렸다. 기마대는 송화강반으로 내빼고 수비대놈들도 성밖으로 내뺐다. 독군서 헌병들과 경무청 순경들은 모두 독군서마당으로 몰려들어갔다. 잡혀서 결박을 당한놈들이 많다. 북대가에서는 수비대 여러놈이 규찰대의 손에 묶여서 려관집 담장밑에서 벌벌 떨고있다. 덕승문근방에서도 독군서 헌병들과 경무청 순경들이 십여명 묶이였다. 군중들은 만세를 불렀다. 여기저기서 대렬을 더 튼튼히 짜라고 웨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기세충천한 군중은 바다같이 설레였다.

바로 이러한 때였다. 북대가의 높은 언덕우에 김성주동지께서 나서시였다. 채경이며 차광수며, 김혁이며, 리효며, 최기준이들도 그뒤에 와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잠간동안 침묵속에서 들끓는 군중을 내려다보시였다. 무겁고 힘있는 목소리가 군중의 머리우에서 울리였다.

《여러분! 동무들!》

군중속에서는 김성주, 김성주 하는 웨침소리가 터졌다.

모두들 구름을 헤가르고 나온 해를 쳐다보듯 눈이 번쩍 틔여 언덕우를 올려다보았다. 학생들이 그이께서 서계시는 언덕밑으로 마구 밀려갔다.

《김성주! 김성주!》

숱한 학생들이 손을 쳐들며 환호성을 올렸다. 로동자, 농민들도 언덕밑으로 달려들어가며 김성주동지를 불렀다.

하남가쪽에서 밀려들어오던 시민군중이 언덕우에 서계신 김성주동지를 보았다. 시민대렬속에 서있던 장철하, 김사헌, 고원암, 리웅, 리선엽이들이 손을 들어 흔들며 환호를 했다. 리갑무로인은 걸음을 더 걷지 못하고 그이의 얼굴을 우러러 올려다보며 웨쳤다.

《더 높이 올라서게! 삼천리가 다 보게! 2천만 겨레가 다 보게!》

로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가슴을 치는 흰수염이 와들거리며 떨었다. 공설운동장 뒤골목에서는 아낙네들이 터져나왔다. 아낙네들은 언덕우에 서계시는 그이의 모습을 보자 머리수건을 벗어서 흔들며 환성을 올렸다. 권태일의 어머니, 오순희의 어머니는 목이 멘 소리로 그이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 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불시에 노래소리가 터져올랐다. 녀자중학교쪽에서 누구인가 선창을 뗐다. 노래는 삽시간에 녀자사범을 거쳐 길림육문중학교와 문광중학교, 제5중학교, 법정학교 대렬로 퍼져갔다. 그동안 김혁이 북받쳐오르는 시상을 가지고 김성주동지를 조선의 서광으로, 조국해방의 구성으로 상징하여 창작한 노래였다. 소년회와 학우회, 공청과 반제청년동맹을 통하여 보급한 노래가 길림은 물론 그 주변에까지 퍼져 오늘은 이 광장에서 울리고있는것이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김혁은 무슨 통나무같은데 올라서서 팔을 지휘봉처럼 휘두르며 노래를 이끌어나갔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번쩍거리고있었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방랑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처럼 갈구하던 지도자의 품에 안긴 혁명시인의 심장에서 분출되는 시였고 송가였다. 처절한 싸움의 나날에 더욱 숭고하고 친근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솟아오른 조선의 새별, 김성주동지에 대한 우리 인민의 끓어넘치는 사랑과 긍지의 정화였다. 별이 떴다. 새별이 떴다. 3천리 캄캄한 밤하늘에… 별을 보라. 저 별을 보라! 2천만 겨레의 앞길을 비쳐주는 희망의 별, 해방될 조국의 래일을 약속하는 구원의 별 김성주! 그이의 해빛은 암흑을 끝장내리라. 모두들 이런 불붙는 심정으로 노래를 합창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한참동안 말씀을 못하고 서계시였다. 가슴이 뛰는 격정때문에 온 누리를 메우는것 같은 자신에 대한 송가를 눌러버릴 경황도 없으시였다. 그저 너무도 절통한 피눈물의 체험을 만천하에 소리쳐 고발하고싶은 생각밖에는 없으시였다.

노래소리는 얼마후에야 멎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여러분, 동지들, 우리는 지금 이 싸움에서 힘차게 앞으로 나가고있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우리에게 아픈 상처도 주고있습니다.》

폭풍같이 뒤설레이던 거리는 일순 숨을 죽이고 그이의 주위에 정숙을 뿌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에서 입는 아픈 손실을 통하여 우리 혁명이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고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싸움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것들을 배우기도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나는 그러기때문에 이 싸움이 우리에게 혁명의 전진을 위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귀중한 경험을 던져주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또 잠간 말씀을 끊으시고 군중을 바라보시였다. 군중은 여전히 숨을 죽이고 서서 그이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여러분, 그럼 이 싸움에서 우리가 얻은 귀중한 경험과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곬으로, 진정한 혁명의 길로 모여들어 굳게 뭉쳐 싸우기만 한다면 이길수 있다는 진리를 얻은 그것입니다. 슬기롭고 용맹한 우리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 그리고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한뜻으로 힘을 합쳐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여 싸우기만 한다면 어떠한 원쑤도 타승할수 있다는 그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우리는 이 진리를 튼튼히 틀어쥐고 바로 그렇게 우리의 싸움을 밀고나가야 하겠습니다.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물론하고 개인이나 분파의 리해관계를 떠나서 오직 조국광복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한사람같이 나서야 할것이며 진정한 혁명의 길에서 하나로 뭉쳐 싸워야 할것입니다.》

밑에서 갑자기 환호소리가 터져올랐다. 박수를 치며 기발을 흔들었다. 바다가 움직이는것 같은 장관이였다.

장철하, 리웅, 고원암들은 기울어진 독립군혈전사를 더듬으며 심각한 회오에 잠기였다. 다만 새로운 서광을 받아안은 리갑무로인만이 긴 수염의 턱을 훨썩 쳐들고서서 새 정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며 말씀을 가슴에 새겨들었다.

《그럼 우리는 인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지체없이 전대오가 철통같이 어깨를 겨루고 이번 싸움의 결전장으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공격목표는 바로 일본놈들이 둥지를 틀고있는 신시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시가지로 넘어가서 일본상품배척운동이 겨눈 최후의 과녁에다 창끝을 박아야 하겠습니다. 전대오가 이 결전장으로 달려나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놈들의 령사관에도 우리의 귀중한 혁명동지가 갇혀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중한 동지도 탈환해내야 합니다. 우리는 굽힐수 없는 존엄과 거세찬 힘과 높은 기상, 결백한 정의감을 가진 조선민족입니다. 조선민족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모두다 앞으로 나아갑시다.》

밑에서 환호가 일어났다. 기발의 파도가 솟구치고 만세소리가 터져올랐다.

언덕밑으로는 온 군중이 마구 밀려들어오며 《김성주!》, 《김성주!》하고 웨쳤다. 수없는 사람들이 언덕우로 달려올라갔다. 그들은 그이를 옹위하고 서서 만세를 부르며 기발을 쳐들어 흔들었다.

《얘, 경주야, 경주야! 넌 왜 아직도 의식을 못차리고있니? 너도 함께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오순희는 어느 녀학생의 잔등에 얼굴을 묻으며 울었다. 봉숙이어머니도 목메여 울었다. 그는 무송쪽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었다.

무송형님! 무송형님! 아주버니는 돌아가셨지만 무슨 한이 있겠어요. 우리도 한이 없어요. 아드님이 저렇게 우리 나라 해님으로 되셨는데…》

군중이 들끓으며 대렬을 정돈했다. 함성이 일어나고 기발이 불쑥불쑥 올라갔다. 얼마 아니하여 대렬이 뽑히기 시작했다. 바다같은 대렬이 북대가거리로, 하남가거리로 굽이치며 밀고나간다. 장엄한 화폭이 천지를 진동시킨다. 그 화폭우에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기발우에, 머리우에, 어깨우에 혈조가 물든 얼굴우에 송이송이 함박눈이 내린다. 축복의 꽃보라가 우주를 덮었다. 사르륵사르륵 속삭이는 소리, 다정히 속삭이는 소리… 학생들의 대렬에서는 적기가소리가 울려퍼졌다. 기관구로동자들의 대렬과 선창로동자들의 대렬속에서는 인터나쇼날이 울린다. 대렬은 벌써 신시가지로 육박하면서 조양문과 신개문을 넘어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채경, 김혁, 차광수, 권태일, 최기준, 리효들과 규찰대원들 십여명의 옹위를 받으시면서 군중속에 들어서시였다. 그이를 모신 시위군중대렬은 장엄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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