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31 회 )

 

제  16  장

 

송    가

 

1

 

부상자들을 업어들인 자혜병원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병원앞 공지에도 학생들이 가뜩 들어서서 웅성거리고 현관이며 안뜨락에도 학생들과 기관구로동자들, 선창로동자들이 발 들이밀 틈이 없게 들어서서 웅성거린다. 신음소리가 일어나는 병실문앞에는 녀학생들이 죄여서서 안을 들여다보며 서로 남의 잔등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뜨락에 서있는 사람들도 안절부절못하며 병실쪽을 지켜보았다. 병실에서 몸집이 우람찬 박승훈이 퇴마루로 나섰다.

그는 잠간 안경을 벗고 서서 손수건으로 비지땀을 닦았다. 일생 의사노릇을 해왔으나 이런 격동을 처음 겪는다. 딸이 총에 맞아 업혀온탓에 그런것도 있겠지만 자기자신이 의사로서 무엇인가 장엄한 시위와 혈연을 맺는것 같은 그런 느낌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는 위생복자락을 날리며 응접실로 왔다.

지금 응접실에는 육문중학교의 교장과 빙하를 비롯한 각 학교의 선생들이 모여와있었다. 학생들을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시위로 나가려는것을 막던 경주네 학교의 녀자교장도 와있었다.

《어떻습니까? 생명이 위험한 학생은 없는가요?》

선생들이 모두 박승훈을 둘러싸며 물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들 마십시오. 아무렴 우리가 저 귀중한 청년들을 구해내지 못하겠습니까.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데…》

《우리 녀중의 경주가 중상을 입었다고 했는데 위급하진 않습니까?》

《경주가 어느 학생인가요?》

《참, 잘 모르시겠군요.》

녀교장은 은실테안경을 벗으며 얼른 눈물을 닦았다.

《너무 걱정하지들 마시구 앉아서 담배들이나 피십시오. 학생들의 생명은 의사들이 맡았으니까… 아무렴 불행이야 있겠습니까!》

박승훈은 또 땀방울이 돋은 대머리이마를 손수건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그러더니 이어 구석에 놓여있는 책상빼람에서 무엇인가 꺼내들고 나갔다.

박승훈이 위안은 시키고 나갔으나 모두들 침통한 얼굴로 앉아서 담배만 피웠다. 육문중학교 교장은 본시 담배를 안피우는 사람인데 벌써 이 응접실에 와앉아 담배를 세대째 피운다. 그저 연기를 입에 빨아들였다가는 후유 내뿜었다. 빙하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등뒤를 자꾸 거닐었다. 그는 지금 새 력사가 탁 터져오른것 같은 기분을 느끼였다. 눈앞에 벌어진 모든 생활을 고쳐보아야 할것 같기도 했고 인간이라는 거상에 대하여 고쳐 생각해야 할것 같기도 했다. 빙하는 이때까지 이런 인간의 힘을 본 일이 없었다. 인류가 걸어온 력사의 숲을 뒤지기는 했어도 이런 인간의 힘, 인간의 정열, 인간의 장엄상을 기록으로도 보지 못했다. 참으로 머리가 수그러지는 일이다. 이런 힘을 길러내는 그 영재를 내가 무엇으로 가르친단말인가! 나에게는 가르쳐줄것이 없다. 인류가 가진 기성지식이 무슨 소용이랴! 빙하는 이런 생각에 젖어 자꾸 거닐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송화강쪽에서 들끓는 군중의 함성이 계속 들려온다. 송화강건너에서 왔던 리가촌, 회양동 농민들이 인제야 강을 건느는 모양이였다.

병실에서는 수혈이 시작되였다.

경주는 혈관으로 바늘이 들어가도 몰랐다. 백랍같이 된 얼굴에 눈을 감고 입을 방싯이 열었다. 호흡이 급해서 두 어깨가 자주 오르내렸다. 업혀들어오는길로 간호부들이 얼굴은 닦아주어서 깨끗해졌으나 아직 머리에는 피와 흙이 엉켜붙은채 있다.

《애고 어머니…》

곁침대의 녀학생이 신음했다.

《오냐, 좀 참아라. 인제 가뜬해진다.》

박승훈은 경주의 혈관으로 피방울이 떨어져들어가는것을 지켜보며 달랬다.

《아버지, 글쎄 이 분을 어떻게 참아요?》

영숙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을 낼것 같은 기세였다. 박승훈은 서둘러 딸에게로 달려갔다. 간호부도 달려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 누워있지 못할가?》

《아버진 지금 제 감정을 몰라요. 제가 어떻게 싸움에서 물러서요? 이 원통한 심정을 어데다 호소해요?》

《이 애가 정신이 있느냐? 출혈이 심하다는건 모르고, 어서 눕지를 못할가?》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왜 자꾸 이렇게 붙드세요?》

영숙이는 안아눕히려고 하는 간호부의 팔을 와락 밀어제끼며 침대밑을 내려디디고 불쑥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타박받은 허리가 시큰해서 아버지의 품으로 휩쓸려 넘어갔다. 박승훈은 얼른 딸을 받아안았다.

《못일어선대두, 네가 왜 이러느냐?》

《아버지이…》

《오냐, 우지 말아!》

박승훈은 우는 딸을 달래며 간호부에게 베개를 바로 놓으라고 눈짓을 했다. 그리고는 턱을 저으며 딸을 침대우에 눕혔다.

《아버지, 우린 김성주동지의 신변을 지켜야 해요. 김성주동지가 바로 우리의 투쟁을 이끌어주고계셔요. 목숨이 진할 때까지 우리는 그이가 치켜올린 기치를 지켜야 해요! 아버진 우리 마음을 아셔야 해요.》

《응, 나도 안다. 알구말구…》

《그런데 왜 저더러 쌈을 그만두고 침대에 누워있으라는거예요?》

《오냐, 인제 또 쌈을 하지, 아무렴 일본놈들한테 지겠니.》

박승훈은 울음을 꿀꺽 삼켰다. 딸의 말이 이렇게 마음을 울린적은 없었다. 그는 가까스로 딸을 달래놓고 땀을 씻으며 돌아섰다.

딴 병실에도 부상당한 남학생이 몇명 들어있는데 거기에서도 소란했다. 의사가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다. 이 남학생들은 녀학생들을 구원하려고 수비대놈들을 추격하다가 골목길에서 싸움이 붙어 부상을 입었다. 부목을 붙이는 학생이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두눈을 핑핑 굴리며 수비대놈들을 찾았다. 다른 남학생 하나는 분격을 못참아 주먹으로 침대의 쇠장대를 갈기며 울었다.

《좀 비키세요, 네?》

오순희는 경주가 누워있는 병실문앞에 와서 붐비는 사람들의 틈에다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찌 죄여섰는지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머리를 마구 휘저으며 겨우 빠져서 병실로 들어섰다. 시위할 때 입었던 흙투성이옷 그대로였다. 그는 아까 공설운동장쪽으로 행진해가다가 수비대의 습격에 상처를 입고 쓰러진 신동호를 자기 집에 데려다 눕히고 경주가 안심되지 않아 달려온것이다.

《아직도 의식이 없구나. 경주야!》

경주의 곁으로 다가간 오순희는 당장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져서 중얼거렸다.

《음, 부르면 안돼.》

박승훈이 엄하게 막았다. 그는 유리관속에서 피방울이 똑똑 떨어져내리는것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선생님, 일없을가요?》

오순희는 박승훈에게 물었다.

《일없고말고…》

《그런데 왜 저렇게 호흡이 급해요?》

《괜찮아, 뇌타박을 받아 의식에 장애가 약간 있을뿐인데 심장은 문제가 없어.》

그래도 오순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속이 탔다.

남학생들의 병실에서 불시에 노래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노래소리가 울려나오자 녀학생들의 병실에서도 영숙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노래를 맞춰 불렀다. 이편쪽에 누워있던 녀학생도 벌떡 일어섰다. 주사를 맞던 녀학생이 들고일어나는바람에 간호부는 팔을 붙들며 아우성을 쳤다.

삽시에 병실은 노래소리로 들썩들썩했다. 뜨락에 서있는 학생들까지도 노래를 합창하려고 했다. 그러는것을 누구인가가 달려나가며 부상자들을 흥분시키지 말라고 웨쳤다.

오순희는 영숙이에게로 달려가 어깨를 결었다. 둘이는 발을 맞춰 한발한발 걸어나오며 노래를 불렀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그만, 인젠 그만…》

박승훈은 두손을 펴들고 딸과 오순희를 막아서며 말렸다.

그러나 노래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남학생들의 병실에서도 녀학생들의 병실에서도 학생들은 한덩어리가 되여 어깨를 결었다.

이쯤 되니 박승훈을 비롯한 의사며 간호부들은 모두 한쪽으로 피해섰다. 의사들도 눈을 슴벅거리고 어떤 간호부는 얼굴을 싸고 돌아서서 울었다. 뜨락에 서있는 군중도 얼굴들이 달아올랐고 활 열어제낀 응접실창문으로는 학교선생들이 격동된 얼굴들을 내밀고 서서 노래소리가 울리는 병실을 지켜보았다.

《불사신들이군.》

육문중학교 교장이 한마디 중얼거렸다.

얼마후에야 병원은 조용해졌다.

밤도 깊어 김성주동지께서 병원으로 찾아오시였다. 시위를 하면서도 누이동생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던 채경이와 차광수들이 그이와 동행하였다. 박승훈은 그때까지도 저녁을 먹지 못하고 부상자들을 돌보기에 여념없었다. 병실들을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고무해주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응접실창가에서 오래도록 어둠에 잠긴 거리를 내다보시였다.

담배를 피울줄 모르는 채경이 응접대우에 있는 담배갑을 끌어다가 한대 붙여물었다. 벽에 걸어놓은 괘종이 뗑뗑 두점을 때렸다. 차광수가 그이께 돌아가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여전히 말씀이 없이 어두운 바깥만 내다보시였다. 짙은 어둠속에서 경주의 얼굴, 어린 학생의 얼굴, 영숙의 얼굴, 방금 보시고 나온 얼굴들이 서로 번갈아 나타난다. 권심의 창백한 얼굴도 보인다. 권심은 단장을 굴러치며 왜놈경찰에게 항거하는가 하면 뺨을 후려갈기는바람에 쓰러지기도 한다. 방금전 권심의 하숙에 가서 보신 광경도 떠오른다. 군드러진 서가들, 찢어던진 책들, 뒤집혀진 원고더미, 그우에 수없이 난 구두발자욱들, 격문을 찍던 방안은 더욱 참혹했다. 피가 뿌려지고 등사잉크가 쏟아지고 목이 부러진 등사판의 굴대가 딩굴고…

김성주동지께서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시였다.

병원을 나서신 그이께서는 휑하니 비여있는 북해가의 넓은 거리를 묵묵히 걸어나가시였다. 그이의 가슴은 여전히 괴롭고 무거우시였다. 방금 병원에서 보신 정경들이 그대로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피를 뿌린 거리를 디디고 걷자니 가슴아프시였다.

투쟁! 더 큰 투쟁의 불길, 더 큰 혁명의 파도가 이 거리에 굽이치게 하지 않고야 어떻게 이 무거운 마음의 부담을 털어버릴수 있으랴!

이날밤 그이께서는 동무들과 함께 물결소리 높은 송화강가 풀밭에 나가 오래도록 거닐며 생각에 잠기셨다. 놈들이 총검을 가지고 정면으로 발악해온다면 싸움의 방법을 달리해야 할것이 아닌가?

돌진할 태세에 있는 군중을 더 큰 투쟁으로 이끌어올리는 방법, 그러면서도 총검을 들고 정면으로 맞서오는 적을 제압하고 족치는 방법, 그런 방법이 아니고는 안된다!

송화강물결이 그이의 발밑에 와서 좌르르 부서지군했다. 무엇을 호소하는지 강물도 밤새 아우성이였다.

그이께서는 거의 새벽녘이 되여서야 새로운 결심을 품고 물가를 떠나시였다.

대시위의 준비는 새롭게 시작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투쟁을 한걸음 더 높이 끌어올리기 위해서 화살의 과녁을 하나 더 설정하시였다. 길회선반대투쟁을 강력히 밀고나가며 일본상품을 배척하는 투쟁도 밀고나갈 결심을 하시였다. 말하자면 대륙침략의 촉수처럼 밀려드는 일제의 상품에 분노한 군중의 주목이 돌려지도록 구호를 또하나 제기하는것이였다.

이리하여 일제의 몸뚱아리에 과녁을 여러개 설정하고 공격을 가하려고 타산하시였다. 그리고 이번 투쟁에서는 규찰대를 조직하고 몽둥이들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시였다.

각 공청지부와 반제청년동맹 조직들은 철통같이 짜고들어 그이의 지시대로 새로운 시위준비를 진척시켰다. 조직이고 개인이고 모두 한번 달궈서 두드려낸 강철처럼 하나의 의식으로 쟁쟁소리가 나게 움직이였다.

밤이면 지휘성원들은 약왕묘 지하실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각 조직들에서 올라오는 준비정형을 보고받고 새 지시를 주군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줄곧 련락원들과 마주앉아서 말씀을 하시였다. 학생들, 로동자들, 농촌청년들, 보고를 가지고 오는 련락원은 각양각이했다. 그만치 시위는 거창한 규모로 준비되고있었다. 길림시내는 물론 주변의 농촌들도 적극적으로 동원태세를 갖추며 들끓었다. 신안툰에서는 시위준비라기보다도 명절같은 분위기에 휩싸여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농민들이 매일 학교마당에 모여들어 농악을 울리며 길림에서 무슨 지시가 내려오기만 기다리고있다는것이였다.

지휘성원들을 기쁘게 한것은 녀자중학교의 소식이였다. 녀중은 오순희의 통솔밑에서 시위준비가 진척되고있는데 안경쟁이 녀자교장도 인젠 각성이 되여 시위준비에 합세했다는것이였다.

《난 학생들을 위해서 반대를 했어.… 그렇지만 나두 그 장엄한 시위를 보고는 무엇인가 불멸의 사상을 본것 같아. 진리, 진리 하고 추상적으로 외우기만 하던 그 진리를 본것 같아.》

눈이 작은 녀학생이 량볼에 보조개를 파며 녀교장의 흉내를 내는바람에 김성주동지께서도 껄껄 웃으시고 지휘부성원들이 모두 웃었다.

선창의 공청지부에서는 춘택이 륜선을 몰고 떠났는데 돌아올 때는 할빈의 반제청년동맹원들과 또 다른 몇군데 선창들의 연구소조원들을 모조리 싣고 올 계획이라는 정보를 보내여왔다.

거리의 시민들이 어떻게 끓고있다는 보고도 들어왔다.

《더 크게 터진다!》

시민들이 점방이나 거리바닥에서 이런 소리들을 막 내놓고 하며 어떤 점방에는 로인들이 모여들어서 들이칠 차비가 다 되여간다고 떠든다는것이였다. 규찰대를 조직하고 몽둥이를 깎는다는 소리가 새여나가서 그들은 이것을 들이치자는 준비로 알고있는것이였다.

문광중학교에서는 박두학이 규찰대원들을 운동장에 모아세우고 훈련을 시키는데 거기에 총규찰대장으로 임명된 차득보까지 나가서 훈련을 시키고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신안툰이나 문광중학교의 정보를 받고는 즉시로 지휘부성원들을 그리로 파견하시였다.

《준비를 로출시켜서는 안되오. 그렇게 하면 적을 준비시킬수도 있고 또 준비과정에 탄압을 받을수도 있소. 빨리 나가서 바로잡아주오. 첫째도 은밀성이고 둘째도 은밀성이요.》

내내 긴장한 시간이 흘러갔다. 흥분과 초조감이 각일각 죄여왔다. 그이께서는 밤이 깊어서야 잠간씩 지하실에서 나와 약왕묘 전각의 추녀밑을 거닐군하시였다.

 

2

 

이튿날아침에는 동이 틀무렵부터 전 도시가 들끓기 시작했다.

송화강물빛이 서광에 유리그릇같이 번들번들 빛나고 아직 거리바닥에도 골목들에도 어둠이 홍건히 차있는데 여기서도 저기서도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서광을 제일 먼저 받는 서쪽 성밑으로는 벌써 대렬이 움직여가는것이 보인다. 누르스름하게 물든 성벽앞으로 머리들이 울멍줄멍 움직이며 지나가고있다. 아직 대렬은 아닌것 같다. 잠간씩 동안이 났다가는 또 머리들이 나타나군했다.

철도기관구쪽에서 로동자대렬이 움직이며 들이밀렸다. 대렬은 조양가쪽 풀이 자란 넓은 공지에 와서 잠간 멎어섰다. 새벽바람이 풀밭을 획휙 스쳐갔다. 이따금 기준의 웅글은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린지는 알수 없다.

날이 활짝 밝았다.

불시에 함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일제히 땅속에서 솟아오른것 같은 장관이였다. 북대가와 우마항 통천가 거리가 기발로 덮이였다. 덕승가와 희춘리쪽에서 들어오는 구부러진 거리우에서는 군중이 무슨 날카로운 쟁기를 두드리는것 같은 소리도 들린다. 하남가며 량미항쪽에서는 구호소리가 그치지 않고 터져오른다.

사람들의 눈이 비수처럼 빛나고 표정들이 무서웠다.

해가 서너발가량 떠올랐을 때에는 서문으로 농민대렬이 들이밀리고 송화강 나루배들도 농민들을 실어 건늬기 시작했다.

강명수가 이끄는 교하지구의 수백명 군중대렬이 밤새 길림에 들이닥치여 폭동기세는 더욱 앙양되였다. 어디서 강이라도 건넜는지 아래도리들이 모두 젖어있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강명수는 앞장에서 《일제를 타도하라!》고 고함을 지르며 대렬을 이끌고 조양문쪽으로 넘어섰다. 그렇게도 어리무던하고 수집음을 잘 타던 사람이 호랑이같이 사나와졌다.

그 아침에는 고유수에 갔던 강보배도 길림에 나타나고 카륜에 있던 리효도 얼굴이 시뻘개서 들이닥쳤다. 이곳의 투쟁소식을 듣기바쁘게 주먹을 부르쥐고 천방지축 뛰여온것이다.

《자, 빨리빨리 줄을 지읍시다.》

시민대렬을 꾸리는 사람들이 시내 각처에서 소리쳤다. 오늘은 시민대렬 지휘자들을 공청에서 배치했다. 여기에 바로 차광수, 유대용, 리효들이 동원되였다. 리효는 오자바람으로 큰 일감이 맡겨져 흡족한듯 두눈을 번쩍거리며 기운이 뻗쳐 돌아갔다.

차광수는 영화관앞에서 시민대렬을 꾸리고있는데 시민들이 어찌 모여들었는지 대렬을 미처 세워내지 못했다. 두줄로 서느냐 세줄로 서느냐 시비가 일어났다. 그는 사람들앞에 울대뼈가 두드러진 목을 빼들고 서서 자기가 지휘할테니 자기 말을 들으라고 호소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정거장앞에 있는 리발쟁이랍디다.》

한 시민이 자기 짐작의 소리를 하였다.

《리발쟁이치군 괜찮은데, 사회주의물을 좀 먹은것 같애.》

시민들은 차광수를 쳐다보며 이렇게들 수군거렸다.

리효는 체육장뒤거리에서 시민대렬을 짓다가 보배의 큰아버지한테 호된 욕을 먹었다. 로인은 갓이 부스러지기 쉬우니 벗고 나가는것이 좋겠다고 하자 펄쩍 뛰면서 화를 냈다.

《후레자식같은놈, 시위를 나가는데 갓 벗고 상투바람으로 나가? 난 3.l운동때도 갓 쓰고 나가서 만세를 불렀다.》

《갓이 부스러질가봐 그럽니다.》

《부스러져도 내 갓이 부스러져…》

리효는 더 말을 못하고 물러섰다.

(길림바닥엔 별 령감쟁이가 다 있다. 카륜에 저런 봉건이 있다면 당장 갓을 벗겨다가 더운물에 삶아서 오그랑박을 만들어 던질텐데…)

리효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목에 피대를 세우고 돌아갔다.

만단의 준비를 갖춘 규찰대는 골목골목에 별 박히듯 서있다.

인제 그들은 적이 나타나기만 하면 포위속에 몰아넣고 움쩍을 못하게 만들판이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무엇이 얼씬만 해도 소리를 지르며 신호했다.

차득보는 누런 로동복에 채양가장자리가 입을 벌린 모자를 쓰고 몽둥이를 짚었다. 그리고는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돌아다녔다. 그는 그저 규찰대를 들이몰아 령사관을 까부셨으면 속이 시원할것 같았다.

오늘은 성안 성밖이 모두 일본상품배척투쟁의 세로운 기운으로 들썽거렸다. 삐라도 일본상품배척을 선동하는 삐라가 더 많았다.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한다!》

《일본상품을 배척한다!》

계속 구호소리가 터져올랐다.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자들은 제가끔 왜놈상품을 한가지 혹은 두가지씩 공중에 올려뜨렸다. 자기들이 쓰고있던 물건들이다. 연필, 칼, 머리빗, 사자표치솔, 인단, 수건 별 물건이 다 공중으로 떠올라갔다. 올라갔던 물건은 도로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학생들은 그것을 와짝와짝 짓밟으며 행진했다.

학생들이 이렇게 하자 시민대렬속에서도 몸에 지니고있던 일본상품을 쥐여뿌리기 시작했다. 비죤갑, 인단갑 혹은 손수건 같은것이 련이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거리바닥에는 일본상품이 한벌 덮였다. 그것이 뭇발길에 깨지고 오그라지고 바스러지고 했다.

일본령사관앞에서는 누가 그랬는지 자전거 한대를 눕혀놓고 오그라뜨렸다. 무엇으로 쳤는지 손잡이가 엿가락처럼 비틀리고 발디디개에 감기는 사슬이 토막이 나서 흩어졌다.

뒤바퀴는 테를 오그라뜨리고 테에 씌웠던 고무도 벗겨서 동강을 냈다. 령사관담장근처로는 연방 일본상품이 날아들어갔다.

온 거리가 새로운 투쟁으로 불이 붙었다.

이런 속에서 조선상인들과 중국상인들을 상대로 하는 선전대의 활동이 시작되였다. 상인들의 자각을 촉진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일본상품배척운동의 선봉에 나서도록 하려는것이였다. 상점마다 선전대원들이 밀려들어가고 밀려나오고 하였다.…

바로 이렇게 대시위가 재차 시작되였을 때 춘택이는 벌써 여러곳의 선창에 투쟁의 불씨를 심어놓고는 륜선을 몰고 할빈선창으로 들어가고있었다. 길림선창의 공청지부는 춘택이가 할빈반제청년동맹원들과 각 선창의 연구소조원들을 동원해가지고 돌아올 계획이라고 지휘부에 보고를 해왔으나 급변하는 정세에 따라 그는 김성주동지로부터 딴 임무를 받고 떠난것이였다. 춘택이는 황토물이 바다처럼 출렁이는 송화강을 헤가르고 올라가 최종목적지인 할빈선창에 당도했다. 여기서 투쟁의 불씨를 뿌리고 재빛하늘밑 대륙이 움씰움씰하게 만들 작정이였다. 춘택이는 2,000t급, 3,000t급 선체들사이로 배를 몰고 들어가며 들먹이는 심장으로 고동을 길게 울리였다. 그것은 언제나 덧이를 드러내고 웃는 할빈선창의 가대기군 홍태선이 고동소리에 귀가 떠서 잔교로 나와달라는 신호이기도 하였다.…

권심은 오늘도 령사관지하실에서 심문을 당했다. 언제나같이 구니하라가 자기의 수하 한명을 데리고 앉아서 기록을 시키며 심문을 했다. 그는 아직 권심에게 매질을 하거나 물을 먹이거나 단 쇠로 지지거나 하는 고문은 하지 않았다. 잡혀들어오던 날 륙군성 대좌 둘이 달려들어서 행패를 하자고 하자 구니하라는 그자들을 강경히 막았다.

《이 선생은 내가 다루겠소. 꺼꾸로 체조를 시킬 대상은 아니니까, 물러들서시오. 어쩌면 이번 사건을 위해서 이 선생이 우리에게는 매우 귀중한 존재일지 모르겠소.》

구니하라는 이런 소리를 하면서 분별없이 갈개는자들을 떠밀었다. 그리고는 권심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아예 감옥처럼 만든 방이 여러개 있었다. 구니하라는 그중 널직한 방에 권심을 데리고 들어가서는 의자까지 한개 가져다놓아주며 앉으라고 했다. 그래서 권심은 들어오는 날부터 내내 이 방에 갇혀있게 되였다.

구니하라는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사건》을 다루면서 신문잡지들에 발표된 권심의 론문을 여러편 읽었다. 구니하라는 론문들에 관통하고있는 현실분석의 심오성과 리론의 과학성 그리고 높은 정신적모대김 같은것을 발견하고는 이것이 큰놈이로구나 하고 책상을 쳤다. 그는 권심을 체포하려고 서울은 물론 조선각지에 수색망을 펼쳐놓았었다. 권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붙들어다 류치장에 가두어놓고 문초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행방은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그러던 권심을 바로 길림에 들어와서 체포한것이였다. 그래서 구니하라는 뜻하지 않은곳에서 산 범을 잡았다고 생각하였다.

이자는 권심에게서 김성주동지의 조직망을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자, 빨리 말하오. 그래 줄이 어디어디에 어떻게 뻗쳐있소?》

《나에게 그런걸 묻지 마오. 내 이때까지도 말했지만 공산주의자는 그런 말은 생명과도 바꾸지 않소.》

《그럼 그 말은 묻지 않겠소. 다만 한가지 이것만 대답해주오. 아지트가 어디요?》

《그것 역시 말할수 없소.》

구니하라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눈섭을 쭝깃하면서 권심을 쏘아보았다. 잡혀들어온 날부터 이것을 알아내려고 각별히 달래며 심문을 했어도 대답은 그식이 장식이였다.

《당신은 당신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본바가 있소?》

《있소. 있구말구. 공산주의자는 인간이 생각할수 있는 행복중에서도 가장 고상한 행복을 생각하고있소.》

《이런 순간에도 당신에게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오?》

《혁명을 위한것이라면 이런 순간이 아니라 단두대에 올라선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오.》

구니하라를 쏘아보는 권심의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거렸다. 눈이 움푹 꺼졌으나 우묵한 속에 있는 눈동자는 더욱 광채가 있었다. 구니하라는 책상을 땅 치면서 일어섰다. 그러자 출입문이 벼락치듯 열리며 한놈이 물바께쯔를 들고 들어섰다.

구니하라는 오늘은 잡도리를 달리하고 수하놈을 대기시켰던것이다.

《견디여봐라, 넌 내가 대자대비한 보살인줄 알았느냐? 나는 도륙을 즐기는 일본검사이다. 뭐 행복이 어쩌구어째?》

구니하라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수하놈에게 눈짓을 했다.

《주검이 되게 쳐라!》

그는 발을 구르며 고함쳤다. 눈에 살기가 오르고 바투 깎아올린 머리칼들이 곤두서서 떨었다. 불시에 본성적인 야수의 검은 피가 역류하는것이였다.

채찍소리가 쫙쫙 울렸다. 채찍은 권심의 잔등판을 갈기고 뒤통수를 갈기고 얼굴을 갈기였다. 권심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마루바닥에 딩굴었다. 구니하라는 아래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채찍을 치는 주위를 빙빙 돌아가며 독한 눈으로 권심을 흘겨보았다. 놈의 볼편은 내내 푸들푸들 뛰고있었다.

《단두대에 서는 순간에도 행복을 느껴? 흥!》

구니하라는 이렇게 비웃었다. 그러더니 구두발을 뚜걱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지금 령사실에서는 돈화를 다녀온 철도성 특사, 륙군성 대좌들이 외무성 특사며 령사와 마주앉아서 길림시위를 탄압할 최종적인 밀담을 벌리였다. 오늘은 여기에 《만철》의 우두머리도 한명 참가하였다.

제일 악에 치받친것이 돈화를 다녀온 륙군성패였다. 놈들은 눈에 피발이 서서 책상을 두드렸다. 《만철》의 우두머리나 철도성 특사도 철도부설공사가 로동자들의 해산으로 말미암아 중단상태로 떨어진데 대하여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있었다. 놈들은 인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서 길림의 불길을 진압하자고 이발들을 갈며 수군거렸다.

구니하라가 령사실에 나타나자 놈들은 일제히 얼굴을 돌렸다.

《그래 좀 뽑아냈소?》

륙군성 대좌 한놈이 구니하라를 쏘아보며 물었다. 칼날로 찌르는것 같은 눈빛이였다.

《좀더 불몽둥이세례를 입혀야 할것 같소.》

《아직도 아지트를 불지 않았단말이요?》

《불지 않았소.》

구니하라는 힘이 빠진 소리로 대꾸하며 후줄근해진 몸집을 안락의자에 던지였다. 그러자 륙군성 대좌는 호랑이 말 타고 산천유람을 오지 않았느냐고 구니하라를 힐난했다.

권심은 이날 지독하게 매를 맞았다.

물도 수없이 먹었다. 수하놈은 매를 실컷 때린 후에는 가로타고 앉아서 코를 비틀어쥐고 입에 물을 들부어넣었다. 그러면서 시위 지휘부 아지트를 대라고 다그쳤다. 권심은 종시 정신을 잃어버리고 물이 질벅거리는 마루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권심이 눈을 뜬것은 깊은 밤중이였다. 그는 새까맣게 어두운속에서 처음에는 여기가 어디이고 자기가 지금 어떻게 하다가 이런 암흑속에서 눈을 떴는지를 몰랐다. 다만 눈을 떴다는 생각이 들뿐이고 무엇이 무엇인지 통 알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동안 신고를 해서야 자기가 하루동안 매를 맞았고 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옷을 만져보았다. 옷이 온통 젖어있었다. 마루바닥을 짚어보니 물이 질벅거렸다. 차츰 온몸이 쑤시고 아파났다.

매를 맞은 웃도리도 아프거니와 체포당하던 날 총창으로 찔리운 넙적다리가 쑤셔서 더욱 견딜수 없었다. 넙적다리를 만져보니 터지게 부어있었다. 목도 잘 돌지 않았다. 그는 끙 하고 힘을 쓰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몸이 바위돌을 진것 같이 무거워서 움직여낼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된건가? 이대로 죽는것인가? 내가 죽어? 이대로 죽어?》

권심은 또 한번 힘을 썼다. 그는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수 없다. 자기가 앉아있던 걸상이 어데 놓여있고 구니하라의 수하놈이 글을 쓰던 책상이 어데 놓여있는지도 알수 없다. 그는 여기저기 어루만져보았다.

무엇인가 네모진 나무토막이 손에 잡히였다. 분명히 걸상다리였다. 자기가 앉았던 걸상인것 같았다. 그는 그 걸상을 잡아당겨 의지하면서 우쩍 일어섰다. 온몸이 떨리며 불같은 단김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그는 얼마동안 지탱하지 못하고 도로 주저앉았다.

《내가 죽어? 내가 어떻게 죽는단말인가? 혁명이 인제 시작됐는데 그 혁명과 헤여져?》

권심의 눈앞으로는 김성주동지의 영상이 다가왔다.

《권심동지, 힘을 내시오. 혁명은 지금 권심동지가 겪고있는 그 고통보다도 더 심각한 고통을 우리에게 요구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것을 이겨낼 때 혁명은 어려운 고비를 떨어버리며 더 몇배 앞으로 전진할수 있습니다.》

《고맙소, 고맙소. 내가 어찌 이 정도의 고통을 못이겨내겠소? 아니, 이 이상의 고통인들, 죽음인들 못이겨내겠소?》

권심은 혼자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마음이 뜨겁게 뛰였다.

권심은 또 벌떡 일어섰다. 김성주동지께서 눈앞에 서계시는듯한 환각을 느끼며 한걸음한걸음 발을 떼였다. 안타까이 만나뵙고싶었다. 그는 자꾸 걸어나갔다. 벽이 마주치였다.

그는 확확 열기가 오른 두손으로 벽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을 뿌리였다.

《아, 조선아, 조선아! 너는 인제야 위대한 너의 아들을 낳았고나! 피바다를 헤치고 혁명의 태양이 솟았구나! 삼천리가 빛나게! 온 세계가 휘황하게!》

권심은 벽을 쓸어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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