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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30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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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갑무로인은 사흘째 수기를 쓰고있었다. 본시 력사를 좋아하던 그는 청년시절부터 나라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면 듣고 보는족족 기록해두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부터 딱히 무슨 목적을 세우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이미 나라가 망하여 춘추관도 사관도 없는 이때 그래도 나라의 광복이 이룩된 다음에 국사의 공백을 메울만한 사변과 위훈을 기록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몸바쳐 나선후의 생각이고 처음에는 그저 취미로 시작한 일이였다. 그는 근 20여년을 경향 각지에서 벌어진 사변들과 만주에서의 독립군 각파들의 움직임을 꼼꼼히 기록해놓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그는 완전히 붓을 내던지다싶이 하였었다. 이미 서고에 하나가득 찰만큼 쌓인 구고들도 보기가 싫어 아예 자물쇠를 잠가버렸다. 오동진의 체포와 지금 독립군내의 쇠진한 공기는 그의 지쳐버린 육체와 정신을 다시 들어일굴 가망이 없었다. 그는 인젠 사고를 쓸 생각은 쥐여던지고 심심하면 먹을 갈아 사군자를 치군 하였다. 그러나 대나무도 란초도 기백이 없었다. 전에는 괜찮게 됐다고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가까운 친지에게 보내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는 취미로 그림을 그릴 생각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마저 없어졌다. 그저 울적한 마음을 붙일데가 없어 그렇게 종이와 붓과 먹을 벗삼아 세월을 보내는것이였다. 그러다가 며칠전에 장철하에게 끌리여 운동장에 나갔다. 거기서 바다처럼 움씰거리는 민중의 힘을 보았다. 그리고 그 힘을 키워내고 한곬으로 이끌어가시는 김성주동지의 연설을 들었다. 싸늘하게 식었던 리갑무로인의 가슴은 갑자기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루밤을 자지 못하고 방안에서 서성거렸다. 전날에 치다가 둔 죽매도 한폭이 방바닥에 펼쳐져있었다. 그는 그것을 별로 생각지도 않고 구겨서 휴지통에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한참 앉아서 생각하다가 마누라에게서 열쇠를 찾아가지고 서고문을 열었다. 초롱불을 쳐들고 바라보니 20여년동안 써 모아둔 퇴색한 사고들이 가득했다. 밑창은 퇴색하고 좀이 쓸었으며 곰팡내가 풍켰다. 언제 이것들이 해볕을 볼것인가 생각하니 이 순간에도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종이갈피들에 스며있는 피맺힌 사연들을 생각하고 또한 그 한장한장에 얼룩져있는 자기의 피눈물과 한숨을 생각하니 비록 잠시나마 그것을 외면했던 자기자신이 어쩐지 신의없는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조선은 기어코 광복되리라-) 별안간 이러한 신념이 바위처럼 가슴속에 묵중하니 자리잡았다. 다시금 운동장에서 본 그 장한 기개와 김성주동지의 연설이 떠올랐다. 조선을 떠메고나설 새로운 세대가 그렇게도 믿음직하게 자라나서 이미 원쑤에게 싸움을 선포하였다. 조국광복을 위한 싸움은 이제야 제 길로 접어들지 않았는가. 리갑무로인은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쓰러지면서 그래도 나라를 찾겠다는 일념을 굽히지 않고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일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 곡절 많았던 지난 혈전의 자국자국들을 더듬어볼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는 초롱불을 기둥에 매달아놓고 몇묶음의 원고를 펼쳐들었다. 맨 마지막장은 정묘년(1927년) 겨울에 오동진이 역적 유상조의 간계에 빠져 흥륭산역두에서 일제관헌에게 체포된 사건의 기록으로 끝나있었다. 리갑무로인은 손을 후들후들 떨며 혼자 중얼거렸다. 《가석한 일이로다. 이제 나라를 건질 영걸이 세상에 나왔건만 그대는 철쇄에 묶인 몸이 되였으니…》 리갑무로인은 조국광복의 서광도 보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수많은 지사들을 더듬으며 한장한장 원고를 번지였다. 그는 문득 자기와 같은 독립운동의 늙은 세대들을 생각해서라도 새 력사를 기록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갑무로인은 그길로 자기 방에 돌아와 새로 먹을 갈고 종이를 썰었다. 조그마한 흑단목책상앞에 단정히 마주앉은 로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파란중첩한 독립혈전사를 눈앞에 되새기며 붓대를 꼬나들었다. 맑은 이슬방울이 눈굽에 맺히더니 방금 썰어놓은 종이우에 먼저 떨어져 얼룩을 지었다. 《불초 갑무는 생각하기를》 하고 로인은 썼다. 《큰집이 무너짐에 한 기둥으로 붙잡기는 어렵거늘 하물며 밖으로 뭇오랑캐의 침략이 독한 때 안으로 역적이 들보를 쏠고 주추를 좀먹는데야 어찌 나라가 성하기를 바라리오. 또한 기울어지는 집을 버티기도 힘들거늘 하물며 이미 기울어진 집을 도로 세움이리오. 저 을사, 정미, 경술년의 국치를 거쳐 달을 거듭하고 해를 바꾸면서 이 나라 충의지사들의 피는 산천을 적시고 겨레의 원한은 하늘땅에 사무쳤건만 삼천리근역은 아직도 원쑤들의 로략질마당이 되여 늙은이는 죽어서 묻힐 땅이 없고 소년은 배울 제 나라 력사가 없으며 부모는 자식에게 먹일 밥이 없고 안해는 깃들일 집이 없다. 로동자, 농민의 피땀은 원쑤를 걸구는 거름이 되였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과연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리갑무로인은 피눈물을 뿌리는 심정으로 밤을 밝히며 썼다. 기력이 전 같을수는 없었으나 움푹 꺼져들어간 눈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정기가 뻗치였다. 《짐승과 한굴에서 살수 없고 원쑤와 한하늘을 일수 없음은 사람의 떳떳한 도리라 왜적을 치라는 함성이 삼천리 방방곡곡을 뒤흔들었건만 의병의 창은 두만, 압록 량강의 기슭에서 부러지고 독립군의 총은 이국의 들판에서 녹쓸었다. 최익현이 대마도에 충혼을 묻고 류린석이 또한 만주땅에 숨지우니 슬프다. 기울어진 나라의 명맥을 잇고저 창의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무수한 충의지사들이 민족의 한만 보태고 쓰러졌다. 저 기미년의 만세가 오랑캐의 칼부림아래 피바다에 잠기니 반만년 국사우엔 날이 저물어 유서깊은 옛성터엔 잡초만 무성해졌다. 갑무가 일찌기 사벽이 있어 유구한 선조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지난날을 두고 문득 슬퍼하고 문득 기뻐하던차에 오늘의 한을 당하매 어찌 나라를 위하여 살을 저미고 뼈를 깎기를 주저하리오. 원쑤를 물리치기전에는 주저앉지 않으리라 천지신명께 맹세하고 뜻을 일으켜 어언 20유여성상, 비록 마음은 간절하나 본시 한낱 용렬한 사람이라 장수 없는 병졸이 어디에 기탁하리오. 슬프다! 천도의 무심함이여! 만백성을 거느릴 인걸을 하늘이 주지 않으매 조선독립운동은 대장없는 전렬이 되여 뿔뿔이 흩어졌다. 이리하여 기우는 해는 이미 석양을 재촉하고 깊어가는 가을에 기러기 울음 구슬프다. 그러나 헛되이 나이 먹은 서생의 귀에 천둥같은 함성이 울려오니 이 무슨 소린가! 무진 10월 X일 …》 리갑무로인은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군중의 물결과 메아리치는 웨침으로 떠갈듯이 뒤설레이던 공설운동장의 광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바다처럼 움씰거리는 군중의 한복판 높은 연단우에 우뚝 올라서서 연설하시던 김성주동지의 우렁찬 목소리가 지금도 귀전에 쟁쟁히 울리여오는듯하다. 《…우리에게 가장 고귀한 임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잃어버린 조국강토를 일제의 마수로부터 찾아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임무를 떠나서는 조선사람으로서 그 어떤 보람도 삶의 의의도 찾아볼수 없는것입니다. 이 임무가 우리의 어깨우에 지워져있기때문에 우리는 이처럼 굳세고 이처럼 가슴속에서 피가 뛰고 이처럼 지혜와 슬기로 차있는것입니다.》 그 말씀들은 마치 메마르고 금간 대지에 스며드는 생명수와 같이 리갑무로인의 늙은 가슴에 마디마디 스며들어 삶의 희망, 싸움의 의욕을 북돋아주었다. 어디선가 닭이 홰를 쳤다. 조용하던 뒤뜰에서 우수수 나무잎이 설레였다. 새벽바람이 이는 모양이다. 초불이 가물거린다. 문득 고개를 드니 동창이 훤하였다. 어디선가 아득히 함성이 들려오는듯하다. 밤새 가뭇없이 조용했던 거리가 어느새 숨쉬기 시작한다. 분주히 오가는 발걸음소리, 웅글게 메아리치는 노래소리가 느껴진다. 리갑무로인은 정성스럽게 붓을 다시 꼬느고 먹을 듬뿍이 먹이였다. 그는 김성주동지의 연설내용을 개괄하고 흥분한 심정으로 썼다. 《망국의 한을 품은 수많은 충의지사들이 장작단우에 자고 쓸개를 씹으며 절치부심 피를 먹삼아 천하에 뿌린 창의의 글이 이루 헤아릴수 없건만 언제 2천만 겨레의 심금을 이렇듯 울려준 고견탁론이 있었는가! 옛글에 이르기를 나라가 욕을 보면 충신이 죽는다 하였거니와 일편단심 애국충정을 품고 죽어간 그네들이 저 경천동지할 조국광복의 웅략을 듣지 못하고 눈감은것이 한일뿐이다. 인걸은 하늘이 낸다는 말을 누가 빈말이라 하였는가! 한 학도로서 이 어지러운 땅에 발을 들여놓은지 1년유여에 저렇듯 사해를 뒤흔들 힘을 길렀으니 이것을 어찌 사람이 꾸민 일이라 하겠는가. 이는 그 연설에서도 밝혀진바와 같이 시비곡절 많은 이 나라 광복운동을 하나의 성스러운 목적으로 부르며 깨우치고 이끌어 시내를 이루게 하고 시내를 모아 큰 강을 이루게 하고 큰 강을 모아 바다를 이루게 함이 아니였던가! 그 누가 이 장엄한 힘을 보고 조선의 피줄과 조선의 얼이 새로운 민족력사를 펼쳐놓지 못하리라 이르겠는가. 장하다, 그 힘을 길러낸 조선의 아들이여! 인제 반만년 력사의 죽백우에 새로운 서광이 뻗쳐왔다. 세상이 어지러우매 인걸이 난다 하였거니와 우리 겨레는 이렇게 망국의 암흑속에서 민족재생의 태양을 맞이하였다. 찬란하다, 조선의 앞길이여! 이제 만방에 소리치며 자랑차게 나아갈 조선의 새 력사는 첫장을 열었다.》 리갑무로인은 쓰기를 마치자 한번 죽 훑어보고는 초불을 불어 껐다. 그리고는 마치 고대하여 마지 않던 귀한 손님을 맞듯 미닫이를 활짝 열어젖히였다. 불타는 아침노을을 배경으로 맑게 개인 드넓은 가을하늘에 빛을 뿌리며 찬란한 아침해가 솟아올랐다!
4
대시위는 계속되였다. 오늘아침에는 문광중학교, 사범학교 대렬이 해가 뜨기전부터 송화강가에 모여들어서 웅성거리다가 조양가쪽으로 물밀듯 올라왔다. 육문중학교와 법정학교 학생들은 직업학교마당에 집결해서 새 전투계획을 짜고 덕승문을 거쳐 성안으로 들어왔다. 거리는 아침해발이 비치기 시작한 때부터 들썽거리였다. 길림주변에서 농민대렬도 밀고 들어왔다. 신안툰, 장림동 농민들은 서문이 터지게 밀려들었다. 송화강건너에는 리가촌, 회양동 농민대렬이 나타났다. 나루배 두척이 사람들을 실어건늬느라고 강을 북나들듯했다. 배군들이 모두 일을 제치고 시위에 나서는바람에 송화강 물우에는 배사태가 났다. 떠나야 할 배들이 하나도 떠나지 못하고 들어오는 배만 자꾸 들어왔다. 강가운데 돛이 수풀처럼 일어섰다. 흘러내려오는 떼목은 길을 내라고 아우성을 쳤다. 어떤 떼목은 배전을 지끈 받으며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 결국 이날 시위는 온 길림시가를 힝 들고 달아나는것 같은 장엄한 기세였다. 이쯤되니 길림독군서도 팔짱을 끼고있을수 없게 된 모양이였다. 독군서는 헌병을 풀고 경무청은 순경을 풀었다. 령사관에 대기해있던 일본수비대놈들도 터진 물처럼 거리로 밀려나왔다. 여기저기서 공포소리가 울리였다. 거리마다 저지선들이 생겨나고 적들의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독군서앞쪽 대통로로 나가던 법정학교 학생들과 육문중학교 학생들이 저지선에서 헌병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현병들이 총창을 마주대고 성쌓듯 막아서있거나말거나 길가운데 쳐놓은 철조망으로 육박했다. 헌병들이 물러가라고 웨치며 총질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결사적이였다. 《내밀어라. 내밀어!》 《총을 무서워말고 돌진하라!》 법정학교 학생들이 먼저 헌병들에게 육탄으로 부딪치였다. 어떤 학생은 헌병을 꽉 껴안고 안내기를 걸어서 넘겨뜨렸다. 한 헌병에게 학생들이 두세명씩 달려들었다. 총이 땅에 떨어져 짓밟히기도 했다. 한 학생이 헌병의 총탁에 맞아 땅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이어 벌떡 일어나서 몸집이 한아름 되는놈의 량미간을 지끈 올려받았다. 헌병은 한팔을 허공에 저으며 큰 나무통 넘어가듯 나가자빠졌다. 이마를 도끼 쓰듯한 학생도 어깨를 움켜쥐고 비틀비틀했다. 그런것을 곁의 학생들이 달려들어 부축을 했다. 드디여 저지선은 끊어졌다. 학생대렬은 만세를 웨치며 신개문쪽으로 노도와 같이 밀고나갔다. 하남가거리우에서는 녀학생대렬이 저지선에 부딪쳐 용감히 싸웠다. 여기서는 순경들이 소방차를 두대나 갖다세우고 물을 내쏘았다. 대여섯명의 순경놈들이 물쏘대를 쥐고 량옆에 서서 마구 물을 내쏘았다. 녀학생들의 머리우에는 물줄기가 덮였다. 《주춤거리지 말고 앞으로 밀고나가자!》 뒤에서 녀학생들이 종주먹을 쳐들어 흔들며 소리질렀다. 오순희는 대렬이 꽉 메여 빠질수 없게 되자 가로수밑으로 달려갔다. 《얘, 좀 받들어라. 대렬이 나가지 못하는데 말 좀 해야겠다.》 그는 가로수를 붙안으며 숨가쁘게 웨쳤다. 여러명의 녀학생들이 달려들어 그의 운동화 신은 발을 떠받들어주었다. 《무엇이 무서워 주춤거리느냐? 물이 무서워 나가지 못하느냐? 빨리 앞으로 나가자.》 오순희는 물발속에서 젖은 머리를 흔들어넘기며 부르짖었다. 물쏘대의 물이 가로수의 가는 가지를 꺾으며 머리를 들이갈기기도 하고 량미간을 들이갈기기도 했다. 그런 속에서도 고개를 버쩍 젖히고는 원쑤들에게 죽음을 주라고 웨치였다. 뒤에서 대렬을 지휘하던 경주가 어느새 뚜지고 나갔는지 대렬앞에 나가섰다. 물쏘대의 물이 그의 목언저리를 들이갈겼다. 그러거나말거나 그는 주먹을 휘두르며 나가자고 웨치였다. 대렬의 선봉이 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헤치며 순경들이 늘어서있는 제2선으로 육박해나갔다. 순경들은 공포를 쏘며 흩어져가라고 소리질렀다. 이때 마침 조양문쪽에서 문광중학교 학생들과 제5중 학생들이 밀고 들어오며 구호를 웨쳤다. 결국 경무청 순경들은 두 대렬사이에 들어 곤경을 치르게 되였다. 등뒤로 육박한 남학생대렬은 일제를 치는데 경무청과 독군서가 무슨 상관이냐고 웨치면서 순경들을 밀쳐넘기며 와르르 녀학생대렬쪽으로 쏟아져 넘어왔다. 순식간에 남학생대렬과 녀학생대렬은 한덩어리가 되였다. 만세소리가 일어나고 환호성이 터졌다. 순경들은 미처 몸을 빼지 못하고 끓는 죽가마속에 빠진것 같이 되여 학생들과 함께 섭쓸려 돌아갔다. 남학생대렬은 다시 조양문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는 뒤에 녀학생대렬을 달고 만세를 부르며 나갔다. 이 시각 길림역에는 돈화에 갔던 기관구 로동자들이 도착하였다. 돈화투쟁에서 철도부설공사판을 해산시켜놓은 그들은 기세가 충천해서 정거장밖으로 나왔다. 어떤 로동자는 팔을 다쳐서 붕대를 감아 어깨에 메기도 하였다. 기준은 얼굴빛이 시꺼멓게 되였다. 그는 투지가 넘친 표정으로 로동자대렬의 선두에 섰다. 차득보도 신동호도 당당한 모습이였다. 차득보는 잔등판이 째진 로동복을 꼬리표 다는 쇠줄로 얼기설기 호아매입었다. 로동자들이 정거장에서 좀 걸어나오자 신시가지쪽에서 요란한 웨침소리가 들리였다. 지붕우에서 기발들이 펄펄 날리는것도 보였다. 좀더 걸어나오니 성안에서도 함성이 들려온다. 《응, 가던 날이 장날이라구 본격적으로 벌어졌구나! 한번 더 로동계급의 본때를 보이자.》 기준이 앞에서 걸으며 말했다. 로동자들은 그 소리에 힘이 솟아서 누구나 다 싸우자고 웨쳤다. 팔을 멘 로동자까지도 성한 팔뚝을 내흔들며 싸우자고 부르짖었다. 로동자들이 신시가지를 향해 올라가는데 조양문앞에서 백열전을 이룬 싸움판이 보이였다. 바로 아까 녀학생들의 저지선을 돌파시켜준 문광중학교 학생들과 제5중 학생들이 수비대놈들과 맞다들어 싸우는것이였다. 수비대놈들은 조양문입구에 철조망을 여러겹 늘이였다. 그리고는 소방차 두대를 갖다세우고 량옆에서 물을 내쏘았다. 기관구 로동자들은 이 싸움판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달려들어가며 물쏘대를 쥔 놈들과 맞붙었다. 그러자 성밑에 늘어서있던 수비대놈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로동자들은 그까짓 소리는 들은체 않고 물쏘대를 쥔 놈들과 안고 딩굴었다. 어떤 로동자는 벌써 물쏘대를 빼앗아가지고 총을 겨누는 놈들에게 돌려댔다. 수비대놈들은 물을 들이갈기자 학학 소리를 지르며 내빼기도 하고 어떤놈은 아무데고 총을 내쏘며 나가곤드라지기도 했다. 기준이는 물쏘대 쥔 수비대놈을 여러놈 성밑 물창에 딩굴려넣었다. 놈들이 물을 얼마나 내쏘았는지 성밑은 아예 물창이 되였다. 기준은 또 한놈 멱살을 거머쥐고 피가 터지도록 머리를 성벽에 짓찧어주었다. 신동호도 적 한놈과 성밑에서 맞붙었다. 둘이는 물이 오금에 오는 웅뎅이에서 서로 멱살과 혁띠를 틀어잡고 돌아가며 철싹철싹 소리를 내였다. 그러다가 신동호가 수비대놈을 버쩍 안아서 배지기를 떴다. 놈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군화발을 허우적거리며 신동호의 머리를 거머쥐려고 하였다. 그러는것을 신동호가 그놈의 다리를 한팔로 후리며 놈을 물창에 꾸겨박았다. 드디여 저지선은 끊어졌다. 학생들이 철조망과 소방차를 차넘기며 성문으로 밀려나왔다. 기관구 로동자들과 학생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만세를 부르며 환호를 올리였다. 학생들한테 붙안기운 기준의 검실검실한 눈에는 눈물이 번쩍거렸다. 대렬은 정거장쪽거리로 밀고나갔다. 그리고는 왜놈령사관쪽을 향해서 십자거리를 에돌았다. 이런 시각 신개문쪽으로 나오던 법정학교와 육문중학 학생들도 신개문저지선을 돌파했다. 그쪽에서도 군중의 물결이 왜놈령사관쪽을 향해서 밀려나왔다. 결국 놈들이 쳐놓았던 저지선들은 다 무너져버리고 토막났던 대렬이 하나의 줄기찬 대렬로 이어졌다. 또다시 신시가지는 사람들의 바다로 변했다. 왜놈령사관과 왜놈거리 주변에는 군중이 꽉 죄여서서 구호를 웨치고 만세를 웨쳤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상자우에 올라서서 연설을 했다. 왜놈가게의 지붕우에 올라가 연설하는 학생도 있었다. 령사관앞거리, 바로 최효열이 일본말로 연설을 하던 자리에서는 박두학이가 상자를 놓고 올라서서 한참동안 왜놈을 단죄하는 연설을 했다. 그가 상자에서 내려서자 이번에는 온몸에서 진흙물이 뚝뚝 떨어지는 김혁이 상자우에 우뚝 올라섰다. 그는 잠간 서서 군중을 돌아보았다. 검붉은 얼굴에 숱많은 앞머리가 이마우에서 펄펄 흩날렸다. 그는 푸른 피줄이 울툭불툭한 두손을 꽉 그러쥐고 서서 한번 길게 숨을 들이키고나서는 터져나오는 목소리로 즉흥시를 읊었다.
나는 몰랐노라! 투쟁이 이렇게 폭풍인줄은, 투쟁이 이렇게 삶의 노래인줄은, 투쟁은 어둠을 태우는 황홀한 불꽃 투쟁은 미래에로 내닫는 기관차!
우리는 드디여 이 길 찾았다 혁명의 별이 우리를 이끌어, 짓밟힌 우리들 고통의 소용돌이속에서 장수같이 솟아올라 여기 이 광장에 모여들었도다
김혁이 시를 읊는바람에 주위는 삽시에 고요해졌다. 온 군중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녀학생들속에서는 소곤소곤하는 찬탄의 소리가 일어났다. 사실 김혁은 남학생들속에서는 물론 녀학생들속에서도 유명한 존재로 되였다. 그가 시를 쓰고 작곡을 하는 일때문에도 유명해졌지만 최근에 《조선의 별》이란 노래를 지은것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얘, 좀 비키렴. 누가 시를 읊는지 뵈질 않는구나.》 오순희는 김혁이 시를 읊는것을 보고도 공연히 동무들을 밀고나서며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발돋움을 했다. 김혁은 잠간 서서 군중을 돌아보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번쩍거렸다. 갑자기 지난날의 일들이 눈앞을 덮어치는바람에 감정을 놓쳐버리고말았다. 《계속하오.》 《왜 막혔소? 줄줄 내리읊소.》 밑에서 군중이 떠들었다. 김혁의 량뺨으로는 종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주먹을 불쑥 들었다. 그리고는 두눈을 번쩍이며 다시 시를 읊었다.
내 어인 일로 량볼 젖느냐 해빛밝은 이 광장에서 이토록 가슴쓰리고 아픔은… 빈궁의 지옥속, 삶을 바라는 그 가엾은 눈동자, 눈동자들 그것이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것이냐!
내 어찌 잊으랴! 쪼각쪼각 찢어진 생활을 붙안고 살을 지지는 불심지 참아내며 비명도 신음도 없이 쳐다보는 얼굴들… 그게 어디 목석이냐! 목석이냐!
김혁은 시를 중단하고 또 우뚝 섰다. 군중은 그의 푸들거리는 근육이라도 꿰뚫어볼듯이 지켜보고 서있다.
아, 차마 못잊을 얼굴들이여, 우리 인제 혁명을 선포했노라! 끓어번지는 붉디붉은 심장들 광장이 넘치게 대렬을 짜고 바다같이 일어나 소리치며 나가리
아, 위대한 한별이 우리를 인도하나니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것 일제가 제아무리 간악해도 우리의 노도는 막지 못하리 우리는 한별을 따라 원쑤의 아성을 들부시리 모래가 되게, 가루가 되게, 우리는 불타는 혁명의 청춘, 영원한 청춘!
김혁은 주먹을 한번 높이 흔들어보였다. 눈물자욱이 번들거리는 량볼로 미소가 지나갔다. 밑에서는 환성이 일어났다. 학생들, 단야공, 수리공들이 상자우에서 뛰여내린 김혁을 허공에 추켜올렸다. 모두들 혁명시인이 다르다고 법석하였다. 신동호는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뭉클했다. 그가 바라던것, 희망했던것을 바로 김혁의 모습을 통해 오늘 눈앞에서 보는듯하였다. 눈앞이 흐려와서 무엇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울먹울먹해져서 이사람저사람 발등을 밟으며 한쪽으로 밀려나가는데 오순희가 곁으로 다가와 눈물을 머금고 다정스레 속삭였다. 《동호동무!》 얼마후 대렬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한끝은 정거장쪽을 에돌아 조양문을 향하고 다른 한끝은 왜놈거리를 에돌아 신개문을 향했다. 인젠 물에 젖었던 기발도 말라서 바람에 펄럭펄럭 춤을 추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옷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녀학생들은 머리도 젖은채 있었다. 대렬은 구불거리며 급하게 행진했다. 선봉이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대렬을 이끌고 달리다싶이 했다. 얼마후 조양문을 넘어들어온 대렬이 먼저 공설운동장에 와서 가뜩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벌써 김성주동지의 연설이 시작되였다. 《우리는 이 시위에 수비대놈들이 나서리라는것도 예상했고 길림독군서가 일제와 야합하는 길로 나가리라는것도 예상했습니다. 바로 이 예상대로 오늘 놈들은 시위탄압에 총동원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놈들의 총칼과 맞서서 싸우고있습니다. 놈들은 지금 참을수 없는 야만적행위를 가해오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방금 권심이 체포되였다는 보고를 들으셨는데 그것을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권심은 시위군중이 신개문과 조양문의 저지선을 뚫고 신시가지로 넘어갈무렵 자기 하숙집 안채에서 격문을 찍다가 붙잡혔다. 《동무들, 우리는 절대로 겁을 먹지 맙시다. 총칼은 우리의 단결된 위력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력사에는 이러한 폭군들의 발악이 승리한 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투쟁을 승리의 절정으로 밀고 올라가 길회선부설의 침략적본질을 세상에 낱낱이 폭로하고 철도공사를 좌절시킴으로써 조선사람의 본때, 조선민족의 위력을 시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이의 연설은 점점 더 격조가 높아졌다. 군중속에서는 옳소, 옳소 하는 함성이 터져올랐다. 함성이 터져오르고 주먹수풀이 일어섰다. 《김성주!》 《김성주!》 시위군중이 그이의 이름을 부르며 연설대앞으로 다가들었다. 연설대앞에서는 김성주동지의 신변호위를 위해서 차광수, 채경, 권태일이들이 쭈욱 늘어서서 죄여드는 군중을 뒤로 밀어내느라고 땀을 흘리고있었다. 신개문으로 넘어선 대렬은 인제야 공설운동장으로 밀려들었다. 운동장이 넘쳐나서 사람들은 운동장밖 거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경주가 인솔한 녀학생대렬이 맨나중으로 구호를 웨치며 우마항거리에서 운동장쪽으로 들이밀렸다. 이때 운동장 맞은편 골목골목에서 수비대놈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나왔다. 놈들은 사람들이 설피게 서있는 연설대 뒤쪽을 노리고 돌진했다. 《저놈들, 저놈들이 어디로 가느냐? 저놈들을 막아라. 김성주동지의 신변이 위험하다!》 경주는 두눈을 크게 뜨며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두주먹을 쥐고 달려나갔다. 《맨 앞놈을 잡아라! 김성주동지의 신변이 위험하다!》 뒤따르는 녀학생들도 부르짖었다. 녀학생들은 터진 보물같이 달려나갔다. 경주는 앞질러나가며 연설대 뒤쪽으로 달려가는 맨 첫놈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자 놈은 옷자락을 나꿔채며 뛰여가려고 하였다. 경주는 이를 악물고 더 단단히 틀어잡으며 놈에게 감기였다. 《딴놈들도 붙잡고 놓지 말라! 죽어도 놓아주지 말라!》 딴 학생들도 달려들어 한놈씩 붙잡고 늘어졌다. 한놈에게 네댓씩 달려들어 덩어리가 되였다. 수십명의 경찰이 다 녀학생들의 끈덕진 손아귀에 붙잡혔다. 녀학생들은 놈들의 내려치는 총탁을 틀어잡기도 하고 놈들의 눈깔에 흙을 쳐던지기도 하고 신짝으로 갈기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처절한 결사전이였다. 경주는 벌써 총창에 찔려 옷이 피에 젖고 손등에서도 피가 떨어져내렸다. 그가 붙잡고 돌아가던 놈에게는 십여명의 녀학생들이 달라붙어 놈을 두드리고 패고 했다. 《저놈 뛴다. 저놈 붙잡아라!》 경주는 또 고함을 쳤다. 경주의 눈에는 거리의 지붕너머로 연설대우에 서계시는 그이의 상반신이 언뜻 비쳤다. (김성주동지를 보위해야 한다! 죽어도 보위해야 한다!) 경주는 울음이 터질것 같았다. 두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그는 피묻은 주먹을 움켜쥐고 총알같이 내달았다. 하나 그 찰나 잔등판에 총탁이 와서 자끈 부딪치며 숨이 꽉 막혔다. 경주는 손을 허공에 저으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호위대렬속에 있던 차광수, 채경, 권태일이들이 기관구 로동자들, 선창의 가대기군들과 어울려 녀학생들을 지원하려고 밀려왔다. 맨앞에서 달려오던 권태일은 쓰러진 경주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왜놈들을 죽여라!》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를 받아서 노한 군중은 《죽여라!》 《죽여라!》하고 부르짖으며 성난 바다처럼 뒤설레였다. 녀학생들과의 싸움에서 독이 오른 놈들은 공포를 꽝꽝 쏘았다. 그러나 놈들은 달려오는 군중의 험악한 기세를 보자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였다. 군중은 저놈들을 잡으라고 소리지르면서 골목이고 큰길이고 마구 달려갔다. 운동장에서는 저녁바람에 기폭이 더 세차게 날리고 김성주동지의 음성이 더 높이, 더 격동적으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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