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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9 회 )
제 15 장
불 타 는 청 춘
1
길회선철도공사로 하여 돈화시내는 죽가마 끓듯하였다. 각지에서 로동자들이 모여들었다. 공사를 청부한 《시마다구미》가 사처에 사람들을 보내서 로동자들을 모집해들였다. 돈화역에 차가 와닿으면 로동자들이 쏟아져내리군했다. 화물자동차로도 실어들였다. 조선사람, 중국사람 할것없이 닥치는대로 선삯을 뿌려주고 실어들이는것이였다. 역에서 멀지 않은곳에 《시마다구미》라는 간판을 내붙인 사무실이 있다. 구미주임은 지금 이 사무실에 앉아서 각지에 장거리전화를 걸며 왝왝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사람이 부족하다, 레루를 빨리 보내라, 침목과 세멘트, 철근을 빨리 보내라, 전선과 전주를 빨리 보내라, 자재가 늦어지면 땅이 얼기전에 명월구에 댈수 없다, 정부지령은 얼기전에 명월구까지 개통하라는 지시다. 이마가 두드러지고 턱이 뾰족한 구미의 주임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웨쳐댔다. 어떤 때에는 부아가 올라서 앞에 놓여있는 서류를 끌어다쥐고 흔들며 소리치기도 했다. 한쪽방에는 숱한 놈들이 들어앉아서 도면을 그렸다. 측량과 철도부설공사가 동시에 진행되고있는것이다. 전선가설도 한꺼번에 진행되고있다. 그야말로 번개불치듯하는 도적질이였다. 정거장으로는 침목이 자꾸 들이닿았다. 어떤것은 아예 침목에 레루를 붙여서 실어오는것도 있었다. 그런 화차는 부리지도 않고 그냥 공사장으로 가는 기관차뒤에 련결시켰다. 레루와 침목이 따로 온것만 부려서 그것도 아예 정거장 뜰에서 조립을 했다. 숱한 로동자들이 쇠메로 레루못을 땅땅 박는데 그 소리가 정거장안팎을 들었다놓는다. 세멘트며 전주, 철근 같은걸 실은 화차도 공사장으로 직송됐다. 돈화역에서부터 새 철길이 벌써 적잖게 놓여나갔다. 하루에도 몇백m씩 쭉쭉 뻗어나갔다. 그 새로운 철길로 기관차가 화차방통을 두어개씩 달고는 분주하게 드나들었다. 계속 뙤뙤소리가 울리였다. 어떻게 급히 다그치는지 어떤데는 철뚝도 채 쌓지 못하고 차를 개통시켰다. 철뚝이란 그저 레루만 이어놓을수 있게 만드는판이였다. 돈화에서 한 40리 떨어진곳에 철길이 뻗어나갔다. 여기에서 뚝을 만들고 레루를 이어놓는 공사가 벌어졌다. 뚝을 쌓거나 산턱을 무너뜨리는 일이 약 10여리 구간에 벌어져있는데 로동자들이 개미떼같이 달라붙었다. 흙을 파던지고 돌을 까고 밀차를 밀고 어떤데서는 남포구멍을 뚫으며 야단법석이다. 이따금 남포소리가 꽝꽝 울리는데 남포돌에 사람이 맞아죽는것도 아랑곳하지들 않았다. 로동자들이 모여 일하는데서 꽝 하고는 폭풍에 돌멩이들이 날아올랐다. 그제야 로동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들고뛰였다. 선삯을 먹여놨으니 아무렇게 다루어도 달아나지 못하리라는 배포같다. 놈들의 눈에는 인명이 문제가 아니였다. 정부의 지령대로 급하게 레루를 까는게 문제였다. 뚝이 다 되면 철길끝에 와서 연기를 내쏘며 기다리고있던 기관차가 기중기를 빙그르르 돌려 침목 붙인 레루를 물어내린다. 그러면 로동자들 10여명이 허공에서 떠돌아오는 레루를 부축해서 뚝우에 놓는다. 그 다음에는 레루와 레루사이에 나사만 비틀어넣으면 된다. 그 일이 끝나면 등판에 둥그런 표가 있는 하빠를 입은 감독놈이 푸른 기발을 팔랑팔랑 흔들며 《앞으로》하고 부르짖었다. 기관차는 금방 자기 등때기에서 부리워놓은 레루우로 우직우직 굴러갔다. 그리고는 또 기중기를 빙그르르 돌려 딴 레루를 물어내렸다. 그러면 또 얼마후 감독놈이 기발을 흔들며 《앞으로》하고 웨친다. 《앞으로》, 이것은 일본제국주의의 령토확장의 구호였다. 전선가설공사는 철도부설공사보다도 더 빨랐다. 벌써 레루를 깐곳은 물론 아직 레루를 깔지 않고 로동자들이 뚝을 만들어나가는곳에도 전주가 우뚝우뚝 일어서나갔다. 사처에서 백두산 장목을 메나르는 목도소리가 일어났다. 전주가 우뚝 일어서면 전공이 다람쥐처럼 기여올라가군했다. 전화기를 어깨우에 멘 전공은 연방 늘여놓은 전선에 전화기를 달아놓고는 어데다 전화를 걸어보는지 왝왝 소리쳤다. 이 공사장으로부터 약 50여리 떨어진곳에서는 철도측량이 벌어져있었다. 잘못하다가는 측량보다 레루를 먼저 깔고 전선가설을 먼저 해야 할 기괴한 형편에 떨어질것 같았다. 어쨌든 철도부설공사와 전선가설공사가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통에 측량쟁이들은 매일 땀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시마다구미》는 공사비가 적게 들도록만 측량을 하라고 다그쳤다. 측량쟁이들은 공사에 몰리고 《시마다구미》에 몰리고 해서 딴 생각을 할수가 없었다. 될수록 벌판으로 차굴이 없이 나가자, 이게 그들의 구호로 되였다. 그래서 밭이고 논이고 마을이고 평평한곳이면 마구 무찔러나갔다. 집이 막히면 집을 무찌르고 동네가 막히면 동네를 무찔렀다. 농민들과 싸움이 일어나면 철도수비대가 달려들어 총을 땅땅 쏘며 위협도 하고 돈을 많이 준다고 회유술책도 썼다. 고재봉이 편지에 밝힌것과 같은 참변이 동네마다 일어났다. 기준이는 로동자들을 데리고 기차에서 내리는길로 고재봉을 찾아갔다. 고재봉은 김성주동지께서 말씀하시던대로 돈화시내에서 구멍가게 하나를 차려놓고 살고있었다. 그는 벌써 돈화주변 농촌들에 백산청년동맹도 내오고 이곳 중학교에도 조직을 박았다. 그리고 이 조직들속에서 핵심을 골라 공청지부도 조직했었다. 고재봉은 기준이가 들어서자 반가와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김성주동지의 편지를 보고나서는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래 동무들은 어디에 있소?》 《저기 국수집앞에다 세워놓고 왔는데 순경놈들한테 걸리지나 않겠는지 모르겠소.》 《여긴 그렇게 될 근심은 없소. 온통 로동자들 천지인데 일하러 온 로동자로 알테지 혁명하러 온 사람으로 알겠소? 갑시다.》 그는 전에없이 다부진 몸집이 민첩하고 말도 빨랐다. 검실검실한 눈은 순한 빛이 없어지고 기지가 끓는것 같이 번쩍거렸다. 그들은 구멍가게를 나섰다. 가게방이란것이 물건도 별로 없는 코구멍만한 방인데 고재봉은 작은 문으로 등을 굽히고 나와서는 그래도 동그란 자물쇠까지 잘칵 채운다. 그는 로동자들을 데리고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자, 몽땅 곱배기로 주십시오.》 국수분틀이 뿌등뿌등 소리를 내는 아래방을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로동자들에게 돈화국수가 이름이 있으니 곱배기로 둬그릇씩 해보라고 하였다. 《지금 여기는 철도공사가 벌어지는바람에 국수집이고 려관집이고 다 살고났소. 여기선 개가 1원짜리를 물고다닌다오. 돈벌이하러들 잘 왔소. 이런데 와서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 어떤데 가서 돈벌이를 하겠소.》 그는 두눈을 슴벅거리며 이런 말까지 하였다. 로동자들의 입에서 무슨 투쟁이야기라도 나올가봐 미리 입을 틀어막는것이였다. 이날밤 려관방에서는 투쟁계획이 토의되였다. 문을 닫아건 방문앞 퇴마루우에는 로동자들 몇이 둘러앉아서 잡담을 하며 려관집 사환도 얼씬못하게 경계하였다. 방안에서는 고재봉이 로동자들속에 앉아 밤새 수군수군 이야기를 하였다. 가끔 기준이며 차득보의 말소리도 새여나왔다. 모두들 흥분하였다. 새벽녘이 거의 되였을 때 로동자 세사람이 부피가 큰 배낭들을 지고 고재봉을 따라 려관을 나섰다. 그들은 거리를 급하게 걸어갔다. 자기 가게방으로 온 고재봉은 캄캄한 어둠속에서 로동자들의 배낭을 받아서 지하창고속에다 쿵쿵 떨어뜨려 넣었다. 투쟁은 세 방향으로 공격할 계획이 세워졌다. 기관구 로동자들은 두패로 나뉘여 한패는 기준이와 차득보가 이끌고 철뚝을 쌓는 공사장으로 나가서 로동자들을 들고일어나게 하고 다른 한패는 신동호가 이끌고 측량현장으로 나가 측량을 파괴할 계획이였다. 그리고 고재봉은 농촌들에 나가 청년조직들을 발동시켜 농민대중을 불러일으키기로 했다. 바로 비밀창고로 날라온 삐라는 고재봉이 농촌으로 가지고 나갈것이였다. 기준이와 차득보가 인솔한 로동자들은 뚝을 쌓는 공사현장으로 나갔다. 그들은 나가는대로 일에는 붙을수 있었다. 더러는 밀차도 밀고 더러는 흙도 파고 더러는 돌도 깨고 하였다. 놈들은 숱한 로동자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기때문에 빈구멍이 많았다. 감독이 수십명 달라붙어 고함을 질러대도 반나절씩 수풀속에 들어가 낮잠을 자는 로동자도 있고 삽날을 흙속에 박고 서있다가 감독이 쳐다볼 때만 건성건성 삽질을 하는 로동자도 있었다. 연장이 부족해서 아침마다 연장싸움이 났다. 그러나 약은 사람은 연장을 못타도 돌아가지 않았다. 날이 없는 삽자루, 하다못해 막대기라도 있기만 하면 그것을 지레대처럼 땅속에 찌르고 서서 종일 돌을 뚱깃뚱깃했다. 그러다가 저녁때에 한번 비지땀을 철철 흘리며 돌을 뽑아올리면 시라소니같은 감독이 전표에 돈을 더 매겨주는 수도 있었다. 놈들은 일을 급하게 죄여대느라고 언제 짜고들어 로동자들을 단속할수가 없는것이였다. 이런속에서 기관구 로동자들은 선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선전이라는것이 망치로 돌을 깨거나 삽으로 흙을 파는 일과는 같지 않았다. 이구석저구석에서 공사를 반대해서 들고일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아직 조직되지 않은 로동자들이여서 지금 기준이나 차득보가 생각하는것처럼 이 투쟁을 절박한 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일이 아득하게 되였다. 기준이는 묘책이 생각나지 않아 흙무지우에 앉아 한숨을 지었다. 《모아세워놓구 연설을 하면 어떨가?》 《정신없는 소리를 하고있소. 저놈들 수비대가 개싸대듯하는데 어데다 모아놓구 연설을 한단말이요?》 기준이는 차득보의 말을 나무랐다. 《그럼 어떻게 하우? 우리 로동계급이 조직이 주는 임무도 실천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단말이요?》 《덤벼치지 말구 좀 생각해봅시다.》 기준이는 약간 꺼져들어간듯한 검은 눈동자로 앞을 쏘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안됐군, 측량현장으로 나간 2조패들이 먼저 일을 시작하도록 만들어야겠군. 그래서 이 일판에 혼란이 조성되도록…) 기준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은근히 주먹을 틀어쥐였다. 그는 밤에 측량현장으로 나간 2조에 주저말고 행동을 개시하라고 련락을 띄웠다. 2조의 성원들은 기준의 지시를 받은 즉시로 떨쳐나섰다. 그들은 밤에 출동해서 측량말뚝들을 뽑아던지기 시작했다. 측량하는쪽으로 나가면서도 뽑아던지고 철뚝 쌓는 공사장쪽으로 들어오면서도 뽑아던졌다. 뽑은 말뚝은 풀밭이나 강바닥에 집어던졌다. 근 30리어간을 다 뽑아던지도록 놈들은 모르고있었다. 그러다가 뚝을 쌓는 일자리를 옮기면서 측량말뚝을 찾게 된 때에야 말뚝이 없어진것을 알아냈다. 공사장 감독 두놈이 종일 말뚝을 찾아헤매였다. 10리지경의 풀밭을 샅샅이 뒤지고 돌아보았으나 말뚝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놈들은 화가 나서 둘이 다 자전거를 타고 측량현장으로 달렸다. 돼지발쪽같이 두발가락이 짝 바라진 《지까다비》발로 발디디개를 부리나케 눌러대면서 이를 뿌등뿌등 갈았다. 측량을 하고 말뚝을 안박는놈들이 어데 있느냐? 이건 분명 공사가 너무 급히 뒤를 따라온다고 심술이 나서 한구간 고의적으로 말뚝을 안박은것이다. 두 감독놈은 이렇게만 생각했다. 놈들은 저녁바람이 세차게 부는 벌판가운데서 측량쟁이들을 만났다. 일대 란투가 벌어졌다. 측량기사, 기수, 뽈대군 할것없이 뼈마디가 늘어나도록 매를 맞았다. 측량기수 한놈은 안경까지 박산이 났다. 이튿날은 측량이 중지되고 말뚝검사가 진행되였다. 구미주임놈까지 출동해서 말뚝검사를 해보았는데 10리구간만 아니라 측량을 했다는 구간에 말뚝은 거의 박혀있지 않았다. 어제 매를 제일 많이 맞은 측량기사가 풀밭에서 말뚝 한개를 얻어들고 서서 와들와들 떨었다. 구미주임이 그런 말뚝을 또 한개 얻어들었다. 인제는 놈들도 이 공사장에 혁명세력이 뻗쳐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놈들은 버쩍 정신을 차리게 되였다. 철도수비대 세놈이 말을 타고 출동했다. 놈들은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벌판을 올리달리고 내리달리면서 허공에 대고 땅땅 불질을 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신동호네 패는 또 측량말뚝이 박히기만 하면 뽑아던질 결심을 하며 단풍이 무너지는 산속에 누워 노래만 불렀다. 측량말뚝을 뽑아던진 사건은 온 공사장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공사장 로동자들은 측량을 고쳐하는것을 보고는 수군수군 끓었다. 《누가 그처럼 귀신같이 뽑아던졌을가? 거참 신통한데.…》 《아무래도 이 철도공사장에 무슨 줄이 들어온것 같애요.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선동하는 청년들이 있는걸 봐두 그렇구 또 길림에서도 이 공사를 반대해서 대시위가 일어났다고 하지 않소. 그게 다 한줄일수도 있단말요.》 《하긴 왜놈들이 공사를 못하고 나가자빠지게 만들었으면 좋겠소.》 《어데 두고봅시다. 틀림없이 큰 싸움을 건것 같소.》 로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심상치 않은 예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이런 기회에 기준이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선전을 들이대는 한편 돈화시내에 삐라를 뿌리기 시작했다. 밤이면 돈화거리에 삐라가 하얗게 뿌려졌다. 삐라는 집집의 뜨락에도 뿌려지고 우물가, 정거장, 학교마당에도 뿌려졌다. 거리쪽으로 면한 담벽이나 널바자에는 로동자들에게 보내는 격문이 나붙었다.
공사장에 모여온 로동자들이여! 길회선은 일본제국주의가 조중인민을 억압략탈하고 목을 조이기 위하여 늘이는 침략의 철길이다. 우리들의 집과 논밭을 짓밟고 동포들의 등을 타고나가는 길회선철도의 부설을 반대하여 일어나라! 모두다 공사를 중단하고 부모처자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라! 로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시위할 때는 왔다. 모두다 일제를 반대하는 성스러운 싸움에 떨쳐나서라!
일을 나가던 로동자들은 성쌓듯 모여서서 격문을 읽었다. 모두들 터졌다, 시작됐다고들 하면서 수군거렸다. 그들은 슬금슬금 뒤꽁무니를 뺐다. 선삯을 받아먹은 일이니 일을 안하면 안한만치 좋았다. 차츰 일터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어느날에는 남포군이 한명도 나오지 않아 망치소리가 딱 그쳤다. 밀차도 굴릴 사람이 없어서 철길옆에 군드러진채 있는것이 여러대 되였다. 감독놈들은 울대뼈를 곤두세우고 소리만 질렀다.
2
길림시내의 투쟁도 고조에 이르렀다. 학생들이 매일 군중들앞에서 투쟁에 호응해나서라고 선동연설을 하였다. 거리바닥에서도 연설을 하고 이골목저골목, 집뜨락에서도 연설을 했다. 청년회관, 오성회관, 학교, 례배당, 영화관 같은곳에서는 군중강연회가 거듭거듭 열리였다. 성안과 성밖이 련일 들끓었다. 약왕묘의 지하실에서는 매일밤 지휘부성원들이 모여들어 투쟁정형을 총화하군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초불앞에 앉아 보고를 받고 지시를 주군하시였다. 각 공청지부 책임자들, 반제청년동맹 책임자들이 련속 지하실 사닥다리로 내려오고 올라가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길림시를 둘러싼 수십개 농촌부락들에도 격문과 삐라를 뿌리게 하시고 선동강연을 조직하게 하시였다. 여기에는 장두촌, 신안툰, 장림동의 반제청년동맹 맹원들이 동원되였다. 그런 어느날 돈화의 기준이한테서 급한 편지가 왔다. 편지엔 돈화의 투쟁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돈화에서 시위를 들어일구는 바람에 왜놈들은 전부 뺑소니를 쳤는데 어떤놈은 화차속에 들어가 숨어있는걸 끌어내여 사지가 뻗도록 패주기도 했다는것이였다. 인젠 로동자들도 거의다 자기 고향으로 흩어져갔는데 왜놈들이 다시 기여들지 못하게 이 돈화시내를 지키고있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몰라 편지를 써서 보내노라고 했다. 《잘했소, 로동계급의 본때를 잘 보여주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만족해하시며 편지를 가지고 온 리성남의 어깨를 흔들어주시였다. 그리고는 그자리에서 당장 돌아오라는 회답을 쓰시였다. 《자, 성남동무, 또 떠나우. 이 편지를 가지고 가서 기준동무나 고재봉동무에게 전하고 빨리 돌아오라고 이르오. 양복안주머니가 있소?》 《있습니다.》 성남이가 다녀간 날 저녁때였다. 장춘에서 최효열이 김성주동지를 찾아왔다. 김혁이를 통하여 이미 《ㅌ.ㄷ》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투쟁의 길에 나설것을 약속했던 청년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려관집 2층방에서 그를 만나시였다. 최효열은 첫인상이 뚝해보이는 청년이였다. 그런데 말 몇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그 인상이 깨여지고 어딘가 탁 터진것 같은 성격이, 그것도 좀 지나친듯싶은 사람이라는것이 알려졌다. 그는 김성주동지를 만나자 이어 카륜에 있는 리효를 덜된사람이라고 욕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있는 장춘에도 반제청년동맹을 내오려고 하는데 리효가 색안경을 쓰고 보면서 은근히 방해를 놓는다는것이였다. 《무엇때문에 동무를 색안경을 쓰고 봅디까?》 《내가 사실은 일본놈 무기상점에서 점원노릇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요시다란 일본놈한테 돈을 벌어주느라고 점원노릇을 하겠습니까? 나두 목적이 있어서 그놈의 상점엘 들어간것입니다. 아마 내가 독립군들한테 뽑아준 모젤권총만 해도 사오십정은 될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조선독립두 못하면서 무기만 가져다 없앴단말입니다.》 《그런데 리효동무가 색안경을 쓰고 볼 까닭이 있습니까?》 《내가 일본놈 상점 점원이니까 정체를 모르겠다는거지요. 그 동무는 뭐 빨쥐가 밤엔 새가 되구 낮엔 쥐가 된다고 하면서 쥐를 새로도 보고 새를 쥐로도 보는 눈으로 세상만물을 보아야 하는데 특히 나에겐 2중으로 보아야 할 근거가 상당히 있다고 떠들더라나요.》 《그래 카륜의 리효동무는 어떻게 돼서 알게 되였습니까?》 《카륜에는 고향에 있을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가군하지요.》 《그럼 얼마전에 카륜으로 간 차광수동무는 만나보지 못했습니까?》 얼마전 김성주동지께서는 리효와 조학봉이들이 파견된 카륜, 고유수 지방에 나가보시고 그 지대의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 돌아오시는길로 신안툰의 차광수를 또 그 지역으로 파견하신적이 있었던것이다. 《그 배달부노릇하며 공부했다는 사람말입니까? 만나긴 한번 만났지요. 그러나 리효의 장단을 받았을줄 알구 반제청년동맹 소리는 비쳐보지도 않았습니다. 반제청년동맹의 원뿌리가 길림에 있다는 소리를 듣구 길림으로 올 생각만 했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를 앉혀놓고 한참동안 여러가지로 료해해보셨다. 계급적토대와 환경은 어떠하며 공부는 무슨 공부를 얼마나 했고 독립군과는 구체적으로 어느 계통 사람들과 관계를 가졌댔는가 하는것들을 물으시였다. 최효열은 앉은자리까지라도 푹 파내서 보일만치 솔직하게 말했다. 토대는 매우 좋은 사람이고 독립군과의 관계는 《신민부》사람들에게도 권총, 장총, 탄약들을 몰래 팔았고 《정의부》사람들에게도 팔았다. 어떤것은 무기상점 장부를 속여놓고 거저 주기도 하였다. 학교는 소학교를 졸업했는데 중학강의록도 읽었고 맑스ㅡ레닌주의책들도 적잖게 읽었다. 《그래 장춘에 동무와 손을 잡을만한 청년들이 많습니까?》 《많지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카륜에서 조직된 반제청년동맹원들을 보니까 별사람들이 아니더군요. 그만한 사상적각오를 가진 청년들은 장춘에도 많습니다.》 최효열은 한참동안 장춘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장춘에도 이제는 조직을 내올만한 준비가 됐다는 말이지요? 효열동무, 여기 며칠 있으면서 시위투쟁에 참가해보는게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여기 와보니 거저 가고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지금 차광수동무도 여기에 와있습니다. 피차간 이야기도 더 하면서… 반제청년동맹을 내오는 문제는 그다음 의논해봅시다.》 려관집뜨락이 웅성거리며 끓었다. 학생선전대가 기발을 들고 려관손님들에게까지 선전을 하려고 들이밀렸다. 최효열은 그이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오더니 당장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수고한다고 인사를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며칠후 전체 조직들에 대시위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내리시였다. 온 길림시내는 화약이 폭발한것과 같은 장관이 벌어졌다. 성안과 성밖이 아침일찍부터 함성과 구호의 도가니로 화했다. 서막을 열던 때의 행진과는 아주 달랐다. 기발이 더욱 많아지고 기관구 로동자들의 본을 따서 널판장으로 구호판을 만들어 든 학생들도 많았다. 서문밖 신시가지에서는 장사진을 친 시민대렬이 나타났다. 우마항거리 국수집앞에서도 시민들이 대렬을 짜느라고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이날아침 오학천은 턱과 코앞을 깨끗이 면도질했다. 인제는 서울에서 내려오던 때와는 달리 몸도 좋아졌다. 자고나면 늘 온몸이 뿌듯하고 힘이 솟는것 같은 기운을 느끼였다. 오늘아침에는 더욱 그런 기운이 느껴져서 세수를 하고는 잠간동안 목과 허리운동을 하였다. 그리고나서는 책을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김성주동지께서 보내주신 책도 많이 읽었고 다른곳에서 빌려다 읽은 책도 적지 않았다. 사회과학도서뿐만 아니였다. 문학도서도 많았다. 아직 돌려주지 못한 책들은 모두 오늘중으로 돌려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쪽에 갈라서 쌓아놓았다. 그리고는 서가에 그득히 서있는 책들을 주욱 훑어보면서 이 책들은 다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해보았다. 자기의 복잡했던 정신생활을 그대로 비쳐주는 책들이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 쓸모가 없이 되였다고 생각되는 책들, 방황하는 넋에 더욱 진하게 안개를 깔아준 책들, 몸부림치는 정신에 유혹의 손길을 뻗치던 타락의 독소가 배인 그런 책들도 있다. 그는 자기가 떠난 뒤에 이 책들을 고방에 처넣으라고 순희에게 일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궤우에 있는 트렁크를 들어내렸다. 그는 거기에 다시 읽어야 할 책들, 아직 보지 못한 책들을 골라서 넣었다. 어머니가 어제 밤새 손질해서 갖다놓은 양복도 한벌 개서 트렁크속에 넣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차고다니던 회중시계도 학비가 모자라면 팔아서 쓰라고 가져다놓았다. 손바닥같이 큰 시계였다. 어머니가 태엽만 감아놓았는지 시침이 왕청같은 시간을 겨누고 초침이 팔딱팔딱 뛰여돌아가고있다. 오학천은 이 시계를 팔아서 학비에 보태쓸 생각은 없었다. 그는 시계를 도로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떠나기전에 시간을 맞춰 벽에 걸어놓고 가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듯이 시계를 쳐다볼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학천은 짐을 대충 꾸려놓고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혼자서 아침설겆이를 하느라고 서둘렀다. 《순희는 벌써 나갔습니까?》 《나가지 않구. 밥을 질러 떠먹구 나간지가 오래다. 너는 거리의 함성을 못듣느냐?》 《제가 왜 그 소리를 못듣겠습니까?》 《아까 나서서 거리쪽을 살펴보니 장관두 그런 장관이 없더라.》 어머니는 아들의 밥상을 차려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저는 아직 조반 먹을 생각이 없습니다. 거리에 좀 나갔다와서 먹겠습니다.》 《거리엔 왜 또? 떠나긴 언제 떠나느냐?》 《나가서 성주동무와 상론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제가 떠나기전에 어머니께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순희가 하는 일을 잘 도와주십시오. 제가 서울로 가는것도 그저 공부나 하러 가는 걸음이 아닙니다. 혁명을 하러 가는것입니다.》 《나두 짐작을 한다.》 《그러니까 집에서도 다 이 길로 나가셔야 합니다. 어머니께서도 늘 말씀을 하시지만 강반석어머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알겠다. 나도 짐작이 있는 사람이다. 감옥에 갇힌 네 아버지를 생각해서도 내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있겠니?》 어머니는 아버지의 신변을 생각하는지 낯빛이 흐려졌다. 그러나 이어 그런 내색을 거두며 가마전에 행주를 쳤다. 밖으로 나온 오학천은 무엇인가 마음이 더 거뜬해졌다. 인제는 오직 혁명을 위해서 살대같이 곧추 뻗은 길로 나가기만 하면 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그는 김성주동지께 길림에 남아서 혁명을 하겠다는 제기를 했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왕 서울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니 서울로 떠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조국의 현실에서 더 배우고 그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한편 그 암담한 현실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을 혁명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처음에는 자기가 과연 복잡한 서울바닥에 들어가 그런 일을 수행해낼수 있을가 하는 위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인제는 그런 위구, 그런 어수선한 생각이 다 없어졌다. 우마항거리로 나오니 넓은 거리에 시위군중이 꽉 들어서서 행진해간다. 북대가쪽을 바라보니 거기는 더 많은 군중이 메워서서 행진해갔다. 온 길림시가가 둥글둥글 꽃다발에 말려돌아가는것 같기도 하고 강물이 굽이치며 흘러가는것 같기도 했다. 하남가쪽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기발은 기발이 아니라 무엇인가 힘차게 깃을 치는것 같기도 하다. 오학천이도 학생대렬속에 끼워 우마항거리를 행진해나갔다. 드디여 다달은 이 혁명의 광장에서 발걸음을 합쳤다. 그 고민과 환멸의 수렁에 떨어졌던 하나의 물방울이 숲을 헤치고 물줄기를 찾아 이 대하의 한복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숨가쁜 모대김을 겪었던가! 그의 곁에서 한 어린 학생이 큰 기발을 들고 땀을 철철 흘리며 걸었다. 오학천은 그에게 땀을 씻으라고 손수건을 내주며 기발을 달라고 했다. 《괜찮아요. 이 기발을 누구에게 줍니까?》 학생은 어처구니없다는듯이 두눈이 커져서 쳐다보며 기대를 더욱 튼튼히 틀어쥐였다. 《허허, 그럼 땀을 씻읍시다.》 오학천은 손수건으로 학생의 목에 흐르는 땀을 씻어주었다. 아직 솜털이 있는 얼굴, 제비초리가 뾰족한 목, 아무 진통도 없이 진리의 광장에 들어선 이 행복한 세대들… 그들이 자기 손에 틀어쥔 기발을 누구에게 주랴! 그는 덕승문근처의 언덕우에서 김성주동지를 만나뵈였다. 그이께서는 방금 채경이에게 무슨 지시를 주어 성밖으로 내보내고나서 거리의 시위정형을 살펴보시는중이였다. 《시작되였소. 저것 보오. 저 지심을 흔드는것이 바로 우리가 그처럼 정성을 기울여 가꾼 힘이요. 얼마나 장엄하오!》 김성주동지께서는 은근히 흥분을 누르며 말씀하시였다. 《조선이 숨을 쉬오.》 《바로 저것이 새 조선의 억센 숨결이요. 저 억센 숨결이 있는데도 우리가 제 힘을 자랑하지 못하겠소? 제 힘을 믿지 못하겠냐말이요? 자, 저것 보오. 삐라가 날아올랐소. 저것은 단순한 삐라가 아니라 새날에 대한 상징이요. 얼마나 아름답소. 마치 새무리가 날아오른것 같지 않소. 보금자리틀 박찬 새무리가… 하하.》 그이께서는 허리를 짚고 웃으시였다. 정말 삐라가 아니라 새무리였다. 반짝반짝 깃을 치는 새무리가 하늘을 덮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풀이 덮인 언덕을 오학천이와 함께 걸으시였다. 이러한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화전에서 《ㅌ.ㄷ》를 조직하던 그때로부터 이날을 위하여 한사람 또 한사람 심혈과 뜨거운 사랑을 기울여가며 동지를 결속하였다. 바로 이 꿈을 위하여… 천만사람이 하나의 사상으르 물결치며 적의 아성으로 육박하는 꿈, 지금 그 꿈은 첫 결전의 광장에서 꿈아닌 현실로 물결쳐나간다. 세상의 온갖 부정의를 휩쓸어 자기의 거창한 발밑에 깔아뭉개며 승리의 기슭으로, 승리의 기슭으로 내닫는 파도, 아, 바로 장엄한 그 물결이 눈앞에 굽이치고있다. 력량은 이렇게 결속해야 한다. 바로 이렇게 공산주의세력을 핵으로 하고 그 주위에 전체 반일애국력량을 결속하여 그 거대한 힘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조선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혁명을 승리할수 없다. 지금 이 거리에 벌어진 저 거창한 생활력은 바로 그 진리를 힘있게 말해주고있는것이다. 《나는 오늘 밤차를 타고 서울로 떠나겠소.》 오학천의 말이였다. 《떠나오. 한시바삐 떠나도록 하시오. 우린 혁명을 전국적인 판도우에서 설계하고 조직해야 하오.》 《내가 길림에서 활동하겠다고 한것은 성주동무의 지도를 받으면서 좀더 혁명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랬던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소.》 《그 심정이야 내가 왜 모르겠소. 그러나 앞으로 어느 시기엔 보다 중대한 혁명과업이 제기될수 있다는것도 예견하고 떠나는것이 좋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앞서서 언덕을 내려오시였다. 오학천이도 뒤를 따랐다. 그는 그이의 모습을 보면서 조선이야말로 불행속에서도 큰 행복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였다. … 지금 왜놈령사관 지하실에서는 이 길림사건을 다루기 위한 밀담이 벌어지고있었다. 밀담에는 외무성 특사, 철도성 특사, 륙군성에서 파견된 대좌 두놈 그리고 《조선총독부》에서 파견된 구니하라 등이 참가했다. 놈들은 길림에 당도하자바람으로 돈화사건의 소식을 듣고는 더욱 놀라서 뛰였다. 륙군성 대좌 두놈은 탁자를 땅땅 치면서 만주에서의 조선인 취체를 책임진 외무성을 공격해나섰다. 그들은 떠날 때에는 그런 내색을 안보였으나 여기 와서는 외상을 겸임한 다나까기이찌에게 비난의 예봉을 돌려댔다. 《요람속에서 그네를 뛰고있는게 정부정책 아닌가! 무슨 과단력이 있는가? 만몽을 먹어치우려면 군력으로 일격에 해치워야 해.… 뭐 신경이 연약해선 안된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에게 필요한건 강경정책이요. 조선인 취체를 왜 소홀히 했는가? 왜 류길학우회 회장이라는 청년을 그냥두었는가? 뭐 그는 아직 학생이라고? 천만에, 학생이 아니라 제국을 위협하는 비범한 인물이요. 군중지도의 영재요. 불탄 자리에선 더 억센 새 순이 돋아오르는 법이요. 이 진리를 모르고 조선이 불에 탔다고만 생각한다면 그건 천치에 불과하오.》 대좌놈들은 성이 나서 펄펄 뛰였다. 외무성 특사와 길림령사는 얼굴빛이 죽어 앉아있었다. 대좌 한놈은 통역을 전화통에 붙여세우고 독군서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는 전화통옆에 놓인 탁자를 뼈마디가 여문 주먹으로 쿵쿵 울리며 독군서를 힐책하였다. 무엇때문에 이 란동을 그냥 내버려두느냐, 이것이 일본제국과의 국교관계에 그 어떤 만회할수 없는 대비극의 화근으로 되여도 무방하냐, 일본제국은 지금 이 길림사건을 놓고 당신들의 동향에 대하여 신중한 주목을 돌리고있다, 당신네가 당신네 치안을 문란시키면서까지 조선민족의 란동을 묵인한다면 제국은 결연한 태도로 응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군력으로 응수할 비상조치도 각오하고있다, 란동을 오늘중으로 해산시킬테냐, 어쩔테냐? 대좌는 땅땅 을러메면서 송수화기를 들고선 통역에게 한마디도 틀리지 않게 통역을 하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독군서측에서는 시종 같은 대답이였다. 우리는 봉천대도독의 지시가 없는 이상 움직일수 없다, 우리를 움직이려면 봉천에 교섭하라. 통역은 벌벌 떨면서 독군서측의 이런 대답을 전달했다. 지하실 공기는 험악했다. 외무성 특사는 여전히 기가 죽어 앉아있고 철도성 특사와 구니하라는 전화통옆에 붙어서있는 륙군성 대좌들을 지켜보면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밖에서는 련속 함성이 울려왔다. 무엇을 들어던지는것 같은 소리도 들려온다. 전화통옆에 붙어섰던 대좌 하나가 령사를 돌아보며 발포를 명령하라고 소리질렀다. 그러자 외무성 특사가 자리에서 불쑥 일어서며 그런 경솔한 망동은 삼가하라고 소리쳤다. 밖에서는 구호가 터져올랐다. 《일본침략자들을 타도하자!》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한다!》 령사관을 둘러싼 군중은 사처에서 이런 구호를 웨쳐댔다. 그린데 령사관정문 앞거리에서는 무기상점 점원인 최효열이 철도기관구 단야공의 어깨를 디디고 올라서서 일본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모자의 채양을 뒤로 밀어붙이고 령사관정문앞에 서있는 보초들을 향하여 웨쳐댔다. 《내 너희들에게 한가지 말할것이 있어서 이렇게 높은데 올라섰다. 너희들은 무엇때문에 총을 들고 서서 그 강도의 소굴을 지키고있느냐? 우리들은 너희들 같은 로동자, 농민의 자식은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적은 사이고다까모리 같은놈, 이도히로부미 같은놈, 다나까기이찌 같은놈, 사이도마꼬도 같은놈 그리고 지주, 자본가, 이런놈들이다.》 《흥, 잘하는군. 아주 잘해.》 바로 저쯤 뒤에 김혁이 서서 중얼거렸다. 그는 박수를 치며 최효열의 연설을 격려했다. 주위에 둘러선 기관구 로동자들도 모두 박수를 보냈다. 최효열은 신바람이 나서 모자를 벗어 땀이 난 이마를 훔치고는 그 손을 허공에 버쩍 쳐들어 흔들었다. 《너희들은 총을 버리라! 아니, 총을 가지고 우리편으로 넘어와서 그 총부리를 령사관에 돌려대라! 겁내지 말고 총부리를 령사관에 돌려대라. 그게 바로 너희들이 나갈 진정으로 옳은 길이다.》 최효열은 모자를 쥔 주먹을 허공에 떡메치듯하며 부르짖었다. 보초 두놈이 뭐라고 지껄였다. 한놈은 벌씬 웃기까지 했다. 정문안에서도 모자끈을 턱에 건 놈들이 기웃거리며 내다보았다. 한참 연설을 하고난 최효열은 보초놈들이 여전히 총을 거머쥐고 서있는것을 보자 화가 동해서 이번에는 자기의 품속에서 권총을 번쩍 뽑아들었다.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에게만 무기가 있는줄 아느냐? 우리에게도 무기가 있다.》 최효열은 권총을 흔들어대며 부르짖었다. 《아니, 저게 무슨 짓이요?》 김혁이 놀라며 소리쳤다. 그는 부리나케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서 최효열의 아래도리를 갈겼다. 그바람에 최효열은 단야공의 어깨우에서 뚝 떨어져내렸다. 《내가 뭐 잘못한게 있소?》 최효열은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총은 왜 꺼내서 휘두르우? 연설을 하려면 연설을 할게지. 우리가 지금 총을 가지고 싸움을 하자는거요?》 《아니 뭐 한번 그래봤지요.》 주위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최효열은 낯이 붉어져 권총을 간수해넣었다. 대렬이 뽑히기 시작했다. 왜놈들 거리와 왜놈령사관을 휘감았던 대렬이 한쪽은 문광중학교쪽으로 빠져 성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쪽은 정거장쪽 거리를 에돌아 조양문을 향해 들어갔다. 《그게 무슨 총입니까?》 김성주동지께서 최효열을 데리고 걸으며 물으시였다. 벌써 김혁으로부터 그가 총을 함부로 휘둘렀다는 보고를 받으셨던것이다. 《브라우닝이요.》 《그건 어째서 품에 지니고 다니오?》 《그럼 무기상 점원이 무기 하나 못가지고 다니겠소?》 그이께서는 그 소리에 빙긋이 미소를 지으시였다. 《효열동무, 총을 그렇게 함부로 내흔들어선 안되오. 총은 장난감이 아니요. 적들이 그 권총 한자루쯤 보고 놀랄줄 아오? 총은 혁명정세가 요구할 때에 써야 하고 절실히 필요할 때에 써야 하오. 이제 총을 잡고 혁명을 할 때가 꼭 있을것이요. 그때에 우리 한번 본때있게 써봅시다.》 《잘 알았소.》 《앞으로 장춘에 반제청년동맹조직을 내와도 총을 마구 휘두르며 투쟁해서는 안되오. 혁명은 테로분자들이 하는것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하오. 지금은 조직활동과 선전을 통해서 군중을 철벽처럼 묶어세워야 하오. 군중과 떨어져서 높은 소리로 요란스럽게 웨치기만 하는것은 혁명이 아니요.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군중을 조직하고 군중을 설득력있게 해설교양하고 군중이 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자각적으로 조직에 뭉쳐서 한마음한뜻으로 싸우도록 만들어야 하오. 그렇게 하는게 혁명이요.》 《알았소.》 최효열은 모자를 꾸겨쥐고 걸으며 대답했다. 《그럼 시위투쟁엔 그만 참가하고 오늘밤에 장춘으로 떠나오. 장춘에 조직을 내오는데 동무가 앞장에 서야 하겠소. 그리고 앞으론 차광수동무와 련계를 가지도록 하시오. 내 차동무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주겠소.》 《어떻게 하든지 말씀하신대로 훌륭히 해내겠소.》
최효열은 땀이 질벅한 두손으로 그이의 손목을 쫙 쥐여흔들며 맹세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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