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7 회 )

 

제  14  장

 

광  장  으  로

 

1

 

육문중학교는 조용해졌다.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학생의 그림자 하나 볼수 없었다. 넓은 운동장에는 아침저녁 까치들이 날아와 앉아서 씨름터 모래불을 파헤치며 깍깍 지저귀였다. 그러다가는 파닥파닥 깃을 치고 일어나 지붕우로 날아넘어갔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란 물이 마르고 돌과 해감이 드러난 늪과 같았다. 그러나 학교가 아주 빈것은 아니였다.

교장과 경리부의 혹뿌리서기는 매일같이 출근을 했다. 빙하를 비롯한 진보적인 교원들도 동맹휴학이란것이 자기들 편의 공격수단이라는것을 아는지라 끄떡없이 학교로 출근했다. 이따금 왕희동이며 조상배도 비수같은 무서운 눈을 하고 나타났다. 그들은 매일 성공서와 경무청으로 드나들었다. 학교가 그꼴이 되였건말건 교장과 빙하를 파면시키고 김성주동지를 체포케 하려는 자기네 계획은 포기하려 하지 않는것이였다. 진보적인 교원층에서도 교직원 련명으로 성공서와 경무청에 항의문을 제출했다. 학교가 학업을 중지한것은 성공서와 경무청이 왕희동이들을 사촉한데서 오는 불상사라는것을 밝히고 만약 이 문제에 대한 정당한 해결이 없는 경우에는 사회적인 힘을 개입시켜 철추를 내리겠다고 을러메였다. 그러면서 교장은 벌써 여러명의 신문기자들과 회견도 진행했다.

어쨌든 그는 기세가 등등해서 매일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혹뿌리서기는 교장의 그러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가끔 교장실에 나타나서는 교장을 부추기였다.

《하여간 교장선생이 자리를 든든히 지키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배짱이 든든해서 자기자리를 지킬수 있습니다. 아무렴 교장선생이 물러나고 고양이수염이나 왕가가 교장자리에 앉아야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수는 없습니다.》

혹뿌리서기는 이를 뿌등뿌등 갈았다.

그는 소사에게 훈육주임이나 왕희동의 책상같은것은 소제도 하지 말라고 단속을 했다. 그런놈들의 방바닥이나 책상을 소제해주는 힘이면 교장선생이나 빙하선생의 책상을 열번 스무번 더 닦아서 닭알같이 만들라고 했다. 그는 빙하의 책상우에는 앉은뱅이소나무를 심은 화분도 하나 새로 사다놓았다.

이렇게 육문중학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되였다. 아직은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기도 했다. 이 육문중학교사건은 길림시내의 각 학교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들끓었다. 학원사건에 경무청과 성공서가 뛰여들고 순경과 헌병들이 동원되여 학원을 둘러쌌던 일은 학생들의 격분을 자아내게 했다. 학교마다 동정휴학으로 들어가자고 떠들었다. 법정학교가 선두에 섰다. 법정학교 반제청년동맹은 이 문제를 토의하고 동정휴학으로 들어갈 결정까지 지었다. 법정학교의 뒤를 따라 녀자중학, 녀자사범, 문광중학, 제5중들의 반제청년동맹조직들에서도 이런 결정들을 채택했다. 온 길림시내가 술렁거리며 싸움을 준비했다.

인제 김성주동지께서 한마디 지령만 내리시면 길림시내의 전체 학교가 동맹휴학으로 들어갈 태세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그런 지시를 주시지 않았다.

《동정휴학은 그만두는것이 좋겠습니다. 좀 기다리십시오.》

《아니, 이런 때 학생들의 단합된 력량을 시위하기도 하구 학원을 민주화하기도 하구… 그게 나쁘겠습니까? 학원의 민주화문제는 육문중학교에만 한한 문제가 아닙니다.》

《안됩니다. 육문중학교사건은 화살이 장작림정권에 겨누어져있는 사건입니다. 인제 각 학교가 동정휴학으로 들어간다는것은 숱한 화살로 장작림정권의 몸뚱아리에 만신창을 내자고 하는것인데 그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장작림을 치는것보다 더 크고 급한 일이 있습니다.》

《…》

《우리의 화살은 언제든지 일제에게 겨누어지고 집중돼야 합니다. 장작림정권이 친일정권인것만은 틀림없으나 그래도 지금의 기분은 장작림을 폭사한 사건때문에 적잖게 반일적인 기운이 움트고있습니다. 그걸 무엇때문에 만신창이 되도록 치겠습니까? 도리여 우리는 그런 반일기운을 더 부쩍 부추겨세워서 일제에게 창끝을 돌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니 그것이 옳은 방침이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각 학교의 반제청년동맹 책임자들은 다시한번 그이의 깊은 통찰력과 견해에 탄복했다.

《우리는 인제 일제에게 첫 싸움을 선포합시다. 동맹휴학이 아니라 일제와 싸우는 큰 불길을 지핍시다.》

그이께서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일제와의 싸움을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은 안하시였다.

무엇인가 혼자 심각히 생각하고계시는것 같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요새 돈화에 있는 고재봉이한테서 편지 한장을 받으시였다.

편지는 일제가 돈화역에서부터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다그치고있는데 농민들의 농토를 략탈하고 또 어떤데서는 전 동리를 헤쳐버리면서 농민들을 파산에로 몰아넣고있다고 썼다.

고재봉은 이렇게 쓰고있었다.

 

민심은 흉흉하고 일제에 대한 원성은 하늘에 닿아있습니다. 어떤 집은 측량줄이 용마루를 가르고 나가는바람에 측량군들에게 쇠스랑을 메고 달려들어 놈들의 정수리를 찍어당기는 소동까지 일으켰습니다. 집에 불을 지르고 떠나는 농민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찌 이것을 그냥 둘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곳 조직의 미약한 힘으로는 투쟁하기도 어렵습니다. 사태가 절박하니 빨리 사업방향과 구체적인 지시를 주십시오.

 

김성주동지께서는 고재봉에게 답장을 쓰시였다.

 

그곳에서 벌어지고있는 사태를 잘 알았습니다.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조직들을 하나의 사상으로 묶어세우고 언제 무슨 일이 폭발하든지 결사적으로 뛰여들수 있도록 훈련주십시오.

동무가 말하는 그런 반일기세를 우리는 투쟁에로 능숙하게 인도해야 합니다. 인민대중이 반일기세로 끓는다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옳게 지도만 한다면 그 어떤 적도 타승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고려해야 할것은 군중들의 분격, 그것만으로는 투쟁을 승리에로 이끌수 없다는 그것입니다. 군중의 기세를 조직화하고 그를 능숙하게 인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묶으십시오. 다시 강조하지만 단결! 그것을 쟁취하십시오.

승리는 단결의 보수입니다.

 

이 편지를 보내시고나서 그이께서는 지금 일제와의 싸움을 구상하시는중이였다. 동맹휴학정도의 싸움이 아니라 더 폭이 크고 내용이 있는 길회선철도부설 반대투쟁을 생각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매일밤 북산공원을 산책하시였다. 나무숲속을 걷기도 하시고 언덕우에 우뚝 멈춰서기도 하시면서 무엇인가를 오래도록 생각하군하시였다. 몇밤을 그러시던 그이께서는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동맹휴학은 이것으로 일단락짓자, 사태의 진전을 보면 동맹휴학이 목적했던 일은 충분히 성공할수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 고비에서 답보를 말고 더욱 큰 투쟁으로 밀고넘어가며 동맹휴학의 결속을 큰 투쟁의 서막속에서 지어야 한다.

그이의 심장은 마치 대공으로 깃을 펴려는것 같이 높이 뛰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조직하고 계몽하고 선전하는 사업을 했었다. 그러나 길회선철도부설 반대투쟁이란 이 모든것을 한계단 높이 끌어올릴수 있는 큰 사회정치적투쟁이다. 이것은 직접 일제와 맞부딪치는 투쟁이다. 조직들을 투쟁의 불바다속에 한번 들이밀어 달궈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조직, 모든 사람들이 불속에서 단련되여 쟁쟁소리가 울리는 강철로 되게 하여야 한다. 이렇게 기회가 조성되였을 때 곧 투쟁으로 넘어가자!

그이께서는 흥분하여 풀밭을 걸으시였다. 달도 그 무슨 뜻이 있는듯 구름속으로 숨었다 나타났다 숨박곡질을 하며 그이의 어깨우에, 얼굴우에 푸른빛을 쏟아부었다.

 

2

 

북산우에 있는 약왕묘의 전각앞 다락밑에는 지하실이 있었다. 무엇때문에 이런 지하실을 만들어놓았는지는 모르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천장이 높은 방안이 있고 한쪽 벽면에는 철추를 든 흉맹한 장사의 반신상이 돌에 새겨져있었다.

어느날 저녁 이 지하실에서는 공청회의가 열리였다. 각 학교의 공청지부 책임자들이 모두 지하실로 모여들었다.

김성주동지께서 묘지기를 어떻게 설득시키셨는지 묘지기는 정문앞 상나무밑에 나와 서서 모여오는 학생들에게 인사까지 했다. 학생들은 뻗닿게 지하실 사닥다리로 내려갔다. 습한 지하실에서는 초불이 꼬리를 저으며 뿌직뿌직 타올랐다.

채경이 벌써 와서 초불앞에 놓여있는 책상에다 서류를 펼쳐놓고 앉아 무엇인가 자꾸 쓰고있다. 경주와 갓 공청에 들어온 오순희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드는지 천장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고나서야 자리에들 앉았다. 아닌게아니라 천장에는 소눈깔같은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얘, 벽에 무얼 저런걸 쪼아놨을가? 눈이 무섭구나.》

오순희가 경주에게로 몸을 붙이며 속삭였다. 경주도 벽의 조각을 쳐다보았다. 하긴 천장의 물방울보다 그것이 더 무서워보였다. 조각은 선이 부드럽고 정교한데 형상이 정말 누구를 치려는것 같이 보인다.

《옛날에도 조각이 발전했어.》

《얘, 넌 무섭지 않은게구나. 그걸 조각으로 감상하는걸 보니…》

경주의 소리에 오순희가 또 소곤거렸다.

기준이며 차득보가 지하실에 들어섰다.

뒤이어 선창에서 오는 춘택이와 현태봉이도 들어섰다. 이미 선창에도 반제청년동맹이 나오고 공청지부가 조직된것이였다. 가대기군인 현태봉은 차득보와 비슷한 청년인데 차득보보다 좀더 속이 담차고 주견이 세였다. 그래서 선창감독도 그를 호락호락 다루어내질 못했다. 지금 선창에서는 춘택이와 현태봉이 손을 맞잡고 일을 조직해나갔다.

한참 모여드니 지하실이 빼곡이 찼다. 얼마후 김성주동지께서 권심을 앞세우고 지하실로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권심을 실천투쟁속에 인입하시려는것이였다.

《이쿠, 이게 뭔가?》

권심이 지하실로 들어서듯마듯 그의 약간 벗어진듯한 이마우에 물방울이 뚝 떨어져내렸다. 권심이 놀라는바람에 지하실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이거 위험하지 않을가?》

권심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우에 떨어진 물을 닦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약왕묘를 지을 때 만든 지하실이라는데 여적 가만히 있다가 하필 오늘밤에 무너지겠습니까? 앉으십시오.》

《그래도 알수 있소? 수가 사나운 권심이 들어왔는데.》

권심이 이렇게 대답해서 또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회의는 밤이 이슥해서 시작되였다. 김성주동지께서 길회선철도부설 반대투쟁을 조직할데 대해서 보고를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투쟁의 필요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시고나서 고재봉의 편지를 꺼내여 읽으시였다.

《사태는 이렇습니다. 이 철도부설자체가 강도적인 침략을 위해서 하는것이기도 하지만 철도를 부설하면서 농민들에게 이런 참화를 입히고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태를 보고 어찌 가만히 앉아서 참을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번 철도부설반대투쟁을 계기로 일제에 대한 우리의 적개심이 어떻다는것을 왜놈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속에서 우리의 대오를 단련시키고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모두들 얼굴빛이 불깃불깃해 앉아서 조용히 들었다. 김혁은 두주먹을 꾹 쥐고 앉아서 그이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그곁에 체구가 좀 작은 권태일이 앉아있는데 그는 약간 돋은듯한 노란 눈알로 이사람저사람 쏘아보았다.

경주는 어데 가나 태도가 담찼다. 그는 법정학교 공청지부책임자곁에 긴 속눈섭을 내리깔고 다소곳이 앉아있다. 그의 손 하나는 오순희가 쥐고 앉아있는데 오순희는 벌써부터 흥분해서 경주의 손을 쥐였다놓았다했다. 어떤 때는 손가락을 옥여넣어서 꽉꽉 누르기도 했다. 그러거나말거나 경주는 손을 내맡기고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한가지 제기하겠습니다. 거 고재봉동무의 편지를 한번 더 읽어주십시오.》

김성주동지의 말씀이 끝나자 김혁이 일어서서 제기했다. 그이께서는 고재봉의 편지를 또 한번 읽으시였다.

《간악한놈들, 용마루 한판을 가르구 철길을 놔?》

김혁이 눈에서 불꽃을 날리며 중얼거렸다.

《내 한가지 제기하겠습니다.》

차득보가 손을 넙적 펴들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게 아니구 이번 길회선철도부설 반대투쟁에서는 우리 로동계급에게 듬직한 과업을 주십시오.》

《차동무, 좋은 의견입니다. 어느때 무슨 일에서나 로동계급이 선봉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는 미소를 띠시고 차득보를 쳐다보며 대답하셨다.

《이 길회선부설 반대투쟁은 철도문제입니다.》

차득보는 얼굴이 청동으로 부어낸것 같았다. 철도모를 썼던 이마가 번들번들 광택이 나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앉소, 무슨 부질없는 소리를 하고있소?》

큰 바위돌같은 자세로 곁에 앉아있던 기준이가 손을 내밀어 차득보의 바지가랭이를 잡아당겼다. 그래도 차득보는 주저앉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이 투쟁은 철도를 못놓게 하는 투쟁입니다. 그렇다면 이 투쟁에는 의례히 우리 철도로동자들이 앞장에 서야 하리라고 봅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어쨌든 철도의 로동계급이 든든히 한모를 맡아서 해내도록 분공조직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로동계급이라고 뻐기는것으로 한몫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가만히 보니까 차동무는 그런 티가 좀 있는것 같습니다. 약간… 하하하.》

김성주동지께서 큰소리로 웃으시는바람에 모두들 소리내여 웃었다. 춘택이와 현태봉이도 씽긋거리며 웃었다.

공청회의에서는 투쟁구호도 결정하고 준비사업들을 분공했다. 공청지부회의들을 진행하는 문제, 반제청년동맹회의들을 진행하는 문제, 학생들을 하나의 사상으로 동원하고 결속하는 문제, 선동연설을 준비하는 문제, 기발들을 준비하는 문제, 학생들의 조편성문제, 삐라와 격문을 준비하는 문제 등 할일들이 사태로 쏟아졌다. 모두들 전쟁이라도 준비하는것 같은 기세였다. 누구나 다 우쩍우쩍 두어깨를 들이밀며 분공을 받아안았다.

회의를 끝내고 나올 때 권심은 김성주동지께 말했다.

《정말 대단하오. 오늘 나는 새롭게 눈을 뜬것 같소. 그런데 나에겐 왜 분공이 없소?》

《권심동지야 어디 공청원입니까? 몸도 약하시구… 앞으로 적극 나서주십시오.》

김성주동지께서는 권심의 기분을 세심히 살피시였다.

집으로 돌아온 권심은 무엇인가 자기혐오의 감정과 흥분을 내리누르지 못하고 방가운데 우뚝 서있었다. 그는 한참 서있다가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의자의 등받이너머로 걸놓은 손이 얼마동안 맥없이 건덩건덩 흔들리였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어.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것이 나란말인가? 과연 나라는 사람이 조선혁명에서 차광수나 최기준, 채경이나 김혁이만치 필요한가? 나라는 존재가 오늘밤 약왕묘 지하실에 모였던 어느 한 청년만치라도 필요한가? 론문은 누구에게 읽히자고 쓰는건가? 서울에 보낸 론문이 발표된단들 그것이 과연 무엇에 필요하단말인가? 그 로동운동의 개괄이… 그리고 또 이건… 이건 무엇에 필요한 론문인가? 농민운동을 개괄한 이 론문이… 이것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아우성소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나대로 가고 혁명은 혁명대로 가고… 2년도 못되는 사이에 길림을 중심으로 한 이 지대에 어떤 변혁이 일어났는가? 내가 이 거대한 새 전선을 보고있었는가? 책만 응시하고 앉아 무엇을 했는가?)

권심은 한참 앉아 후들거리다가 책상을 꽝 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도 일어서자. 일어나 이 새 전선에 가담하자! 글도 싸우며 써야 한다고 하던 김성주학생의 말을 명심하자! 그 말을 잊는다면 나는 파멸로 갈것이다.)

권심은 책상모서리를 틀어잡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청회의를 끝내고 거리로 내려오던 차득보는 오늘밤 회의에서 결정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대책을 의논하고싶어 신동호를 찾아갔다. 좀전에 기준이는 래일 기관구공청회의에서 그 대책을 토의해보자고 했었다. 차득보에게는 그 래일이 별로 아득해보였다. 래일이 오기전에 신동호만이라도 만나서 의견을 나누지 않고는 못견딜것 같았다. 미구에 벌어질 거창한 투쟁을 생각하니 저절로 기운이 뻗치였다.

신동호의 집은 불이 꺼져있었다. 식구들은 다 잠들고 그의 어머니가 홀로 퇴마루우에 나앉아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아이구, 화통군이 오나? 이 밤에 무슨 일이 있나?》

신동호의 어머니는 차득보의 손을 잡아 이끌어올리며 반가와했다.

차득보를 화통군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바로 그였다.

차득보는 금년봄부터 기관조사가 되였다.

《신동무는 잡니까?》

《자지, 자두 보통 자나, 아주 곯아떨어졌네. 그런데 이사람, 기관구일은 다 그렇게 고된가? 좀 쉬운 일이 없나?》

《쉬운 일이 더러 있습지요. 그런데 쉬운 일에 붙였더니 단련을 해야 되겠다고 하면서 단야간으로 가서 메질을 하지 않아요.》

《여보게, 글쎄 일이 얼마나 힘든지 밤에도 메질을 하네. 웃, 웃, 웃, 이게 무슨 소린가? 메질할 때 그런 소릴 하나?》

차득보는 신동호의 어머니가 어깨까지 잡아흔들며 웃웃 하는바람에 폭소를 했다.

《그런 소릴 할 때엔 온몸을 우뚤우뚤하네. 어떤 땐 돌같은 주먹으로 넘겨치기도 하구. 그래서 아이들은 그 사람곁에 눕히질 못하네. 그곁에 눕혔다간 다리가 부러지든지 머리가 깨지든지 할것 같애. 나두 방금 턱주가릴 한개 얻어맞구 잠이 깼네. 아이구 맙시사! 그래 아무리 잠결이기로 제 어미를 치는놈이 어데 있느냐고 욕을 해주었네. 그리니까 뭐라구 하는고 하니, 어머니 쇠가 식어요. 식기전에 때려야 해요. 이러질 않겠나! 아마두 세상이 온통 기관구 야장간으로 돼뵈게 그러지. 기가 막혀서… 내가 어쩌다가 자식을 야장쟁이로 만들게 됐을가?》

말이 수다스러운 어머니는 또 신세타령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신동호는 적지 않은 곡절을 겪었다. 그는 지난해 송도국룡상 연극을 올리는 날 밤 기준이를 보고 기관구에 들어가겠다고 말은 했으나 이어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후 계속 학교로 나가면서 김성주동지께서 주시는 맑스주의서적을 읽었다. 차츰 맑스ㅡ레닌주의리론에 공명하면서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볼줄도 알게 되였다.

그런가위에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인제는 정말 가정을 떠멜 사람이 자기 한사람밖에는 없었다. 이랬거나저랬거나 아버지가 있을 때는 그래도 그 무슨 산그늘밑에 서있는것 같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인제는 그것마저 없어져버리고말았다. 아버지가 가지고 들어온 밑천이란 밑천은 장례까지 치르고나니 다 날아나버렸다. 누이나 형수는 울음으로 날을 보냈다.

신동호는 앞길이 막막해서 몸부림을 쳤다. 학교에도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 누워서 모대기였다. 이러는데 하루는 김성주동지께서 또 찾아오셨다. 그이께서는 《국가와 혁명》을 주며 읽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구 신동무, 동무가 한번 그런 말을 입밖에 내기도 했던 문제인데 철도기관구에 들어가는것이 어떻겠소?》

《철도기관구에?》

《로동을 한번 체험해보지 않겠소?》

《인젠 정말 아무데라도 들어가야 하겠소. 이 더러운놈의 생활을…》

《아무데라도 들어가야 하는것이 아니라 꼭 들어갈 필요가 있어서 들어가라는것이요. 동무는 아직도 자기포기의 기분을 버리지 못했구만. 기관구에 들어가오. 기관구에 들어가서 로동도 체험하구 또 그 체험속에서 시도 공부하구. 김혁이를 보오. 시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시도 쓰고 혁명도 하고…》

신동호는 가슴이 찌르르 울리였다. 김혁이를 몇번 만나 시에 대한 의견도 들었지만 역시 자기는 그와 비교하면 까마득하다는 절망감이 들었었다.

《기관구에 들어가서 할 중요한 일은 로동자들에게서 배우는 한편 그들을 교양하는 문제요. 지금 그들의 사상수준이나 혁명의식은 누구보다도 높소. 그러나 그들은 지식이 부족하오. 지식부족으로 맑스ㅡ레닌주의 습득이 굼뜨고 더 빨리 발전할것도 못하고있소. 그러니까 신동무가 기관구에 들어가서 자신도 맑스ㅡ레닌주의로 무장하면서 그들도 가르치란말이요. 꼭 로동계급대렬속에 들어가서 한모를 막아주오. 나는 신동무가 능히 그 일을 해낼수 있으리라고 믿소.》

《들어가겠소. 들어가서 남을 가르치는것보다 우선 나자신을 생마 길들이듯 고쳐내야 할것 같소. 나라는게 무엇이겠소? 생활패배자, 아니 패배자가 아니라 참여자도 못되는 생활의 노예였소.》

이렇게 하여 신동호는 지난 5월 기준의 주선으로 기관구수리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수리공장에서 얼마동안 선반공들의 심부름을 하다가 두어달동안 탄수부노릇도 했다.

얼마전부터는 단야직장으로 넘어가서 쇠메질을 했다. 그는 점점 더 생활이란것의 참속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생활이란 진흙탕속에 으깨여지면서 피눈물과 고통을 씹어삼키는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런 처지를 강요하는 원쑤들과 싸워 짓밟힌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하여 투쟁하는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생활이라는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에게 닥쳐오는 어떠한 고통도 디디고 올라설 각오였다. 쇠메로 단쇠를 치면서도 그것을 참다운 생활을 체득하기 위한 자기의 사상을 다듬는 일로 생각하군하였다.

신동호의 어머니는 방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아들을 깨웠다.

신동호는 두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차득보가 있는 퇴마루로 나왔다.

《어떻게 돼서 밤중에 왔소?》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소, 저리 좀 나갑시다.》

차득보는 신동호를 데리고 대문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어두운 마당가운데 마주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로동계급앞에 중요한 임무가 제기되였소.》

《무슨 임무요?》

《다른게 아니구 일본놈들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해서 길림시내의 전체 청년학생들이 들고일어선다우. 반제청년동맹이 선봉에 서구… 그런데 우리 로동계급이 한모를 막아야 할게 아니겠소. 더구나 이 투쟁은 철도문제란말요. 그러기때문에 우리 철도로동계급이 벗어붙이고 달려들어야 한다구보우.》

차득보는 흥분해서 부르짖었다.

《우에서 무슨 지시가 내렸소?》

《방금 회의를 하고 오는길이요. 그런데 구체적인 과업은 주지 않고 한 십여명씩 조만 짜라오.》

《그럼 조를 짜야지. 기준동무는 무어라고 말이 없었소?》

《그 동무와 인제 같이 오긴 했지만 구체적인 말은 안해봤소.》

《그래도 조직의 책임자와 토론해봐야지 않소.》

《책임자면 어떻소? 반제청년동맹원들이 전부 한목소리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들고일어선다면 조직책임자도 동의할게 아니요.》

신동호는 어이없어 허허 웃었다.

《우리 힘으로 파업같은걸 일궈내지 못할가?》

《그건 안되우. 우의 지시대로 해야 하오. 그리고 조직책임자와도 토론해야 되구. 우리가 혁명을 하는데 조직이나 지시를 무시하고 제뿔내기로 제가 하고싶은 일을 들어일군다면 그게 무엇이 되겠소?》

《자, 이거 신동무가 꽤 씨먹은 소리 한다?》

《씨먹은 소리가 아니라 그렇지요. 김성주동무가 말하는걸 못들었소? 조직에는 규률이 있어야 하구 조직에 속한 매개인은 조직의 규률을 생명보다도 더 귀중하게 여기구 그걸 지켜야 한다구 말하지 않습디까?》

《하긴 그렇지, 우의 지시대로 안하고 조직책임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 틀어질건 사실이지.》

《그럼, 꼭 복종해야 되우.》

《김성주동무가 한번 우리 로동계급에게 멋진 일을 맡겨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그의 생각같아서는 기관구를 휘딱 들어엎든지 송화강철교를 버쩍 들어 엿가락처럼 비틀어던지든지 무슨 일이든 해낼듯싶었다.

차득보가 돌아간 뒤 신동호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밤을 꼬박 밝히였다. 여러가지로 생각키우는것이 많았다. 과연 김성주동무는 일을 놀랍게 조직한다. 길회선철도부설 반대투쟁을 들어일군다니 어떻게 할 계획일가?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면 정말 우리 조선에서도 로씨야 10월혁명과 같은 대폭풍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아, 혁명이 어서 승리했으면… 이 캄캄한 하늘의 먹장구름을 어서 벗겨던졌으면…

신동호는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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