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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6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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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주동지께서 교하를 다녀오시는동안 길림육문중학교에서는 교원들사이에 중대한 분쟁사건이 일어났다. 교장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교원들과 왕희동을 중심으로 한 반동계렬 교원들사이에 격화되여오던 알륵이 드디여 충돌을 일으켰다. 싸움의 단서는 빙하가 일제의 장대선(장춘-대련선)부설과 길회선(길림-회령선)부설을 비난한것으로부터 일어났다. 그는 일제의 만주침략야욕을 폭로하면서 장작림이 나라를 넘겨주다가 목숨까지 떼운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 시기는 일제가 장작림을 죽인 철도폭사사건으로 하여 사회여론이 들끓던 때였다. 《장작림을 무엇때문에 비난하우. 장작림이 나라를 매국하거나 넘겨주려고 했을것 같으면 그놈들한테 폭사를 당했겠소? 당신들의 불온사상을 우린 벌써 오래전부터 간파하고있었소.》 왕희동은 큰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훈육주임이 또 김성주동지께서 혁명활동을 하시는것을 묵과한다고 교장을 공격해나섰다. 《도대체 이 학교는 공산대학같은 기분이 드오. 그런 직업적인 혁명가가 이 학교에 적을 두고있는걸 무상의 영광이라고 발언한것이 바로 교장선생이요. 교장선생은 자기가 한 말이 기억나시오?》 《실컷들 말해보시오. 나는 당신네앞에서 내 사상을 피력하지 않겠소.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단 하나 내가 학생들이 더 열심히 진리를 탐구하도록 하지 못한 그것이요.》 얼굴이 기다란 교장은 낯을 훨썩 쳐들고 앉아서 비수가 들어와도 선뜻 받아들어 옮겨놓으며 이놈 하고 소리를 지를것 같은 태세이다. 빙하도 끄떡하지 않고 앉아있다. 약간 수척해진 얼굴로 점잖게 앉아서 담배만 피웠다. 그러나 그는 훈육주임이 김성주동지에 대해서 한 말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참을수 없어서 한마디 심각한 소리를 던졌다. 《당신들이 그 학생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데 공산주의자의 인격과 품성이 그러하다면 당신들자체가 공산주의를 배울 필요가 있소. 난 이 학교에선 마땅히 그 학생이 선생이 되고 당신들이 학생이 되여야 할것 같소. 그래야 진리의 교육이 실시되여질것 같소.》 빙하는 이러고 훌쩍 일어서 교무실을 나가버렸다. 반동계렬 교원들은 분기가 올라서 그건 무슨 비뚤어진 역설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빙하를 지지하는 진보적인 교원들은 모두 그가 통쾌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면서 입술에 조소를 띠우고 앉아서 반동계렬 교원들을 쳐다보았다. 벌써 이러한 언쟁이 여러번 거듭되였다. 왕희동은 우파계렬 학생들을 규합하기에 급급했다. 어느날 저녁에는 수십명의 우파계렬 학생을 교실에 불러들여다놓고 교장과 빙하에 대한 배척운동을 일으키라고 추동했다. 우파계렬 학생들속에는 키가 왕희동이만치나 크고 그를 할애비처럼 모시는 학생이 있었다. 야구를 잘하는 학생인데 하도 행동이 조포하고 말이 험하기때문에 《사탄》(악마)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있었다. 왕희동의 추동에 주먹을 들고 일어선것이 이 《사탄》이였다. 《사탄》은 언제인가 김성주동지께서 자기네가 독점한 야구장을 모두 다 함께 써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른 학생들도 야구장에서 운동을 하게 한것이 아직 명치에서 내려가지 않아 기염을 뽑았다. 그는 김성주동지를 옹호하는 교원들은 학생들의 힘으로 추방해버려야 한다고 떠들었다. 다른 학생들은 우파계렬이기는 했으나 《사탄》의 말따위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사상적인 심각한 대립을 가지고 눈앞에 다가와 선 절벽을 응시했다. 이때까지는 공산주의적기분이 전교에 들끓는것을 보면서도 말을 안했지만 인제는 그럴수 없게 되였다. 그들은 왕희동이 책상을 두드리며 하는 소리를 신중히 듣고있다. 그러다가 왕희동이 자기 소리에 동감을 표시하는 학생들은 손을 들라고 하자 하나둘 손들을 들어올렸다. 바로 이러한 때 김성주동지께서 길림으로 돌아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시급히 정형을 알아보시였다. 그동안 학교공청지부는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긴급히 토의했다. 그런데 채경이도 장림동에 나가고 없는 사이라 공청지부는 간부들의 의견을 못듣고 긴급대책을 세웠다. 그들은 우파계렬의 《사탄》을 비롯한 학생주모자들은 설복해서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고 왕희동은 어느 골목에서 곤봉세례를 입혀놓을 잡도리를 했다. 권태일은 《사탄》까지라도 설복이 안되면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별렀다. 《폭력은 아무데나 함부로 쓰는것이 아니요.》 《들어야말이지.》 《안들으면 대중의 힘으로 눌러버리기요.》 김성주동지께서는 학교내에 오래전부터 그런 대립이 배태되여왔다는것은 알고계셨지만 막상 그것이 첨예하게 날이 서서 결전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분노를 참으실수가 없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학교의 분위기가 달랐다. 운동장 여기저기에 학생들이 모여 서있었다. 정구도 치지 않고 공도 차지 않았다. 김성주동지께서 운동장으로 들어서시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달려와 둘러싸고 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들었습니다.》 《단단히 해냅시다.》 학생들은 주먹을 흔들며 수군거렸다. 어떤 학생은 왕희동이 오늘아침에도 창고뒤에서 《사탄》을 만나 수군거렸다고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교실로 들어가시였다. 교실안에서도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있었다. 그들은 환성을 올리며 김성주동지께로 달려왔다. 그들은 일이 어렵게 된 때에 어떻게 이렇게 나타나셨는가고 기뻐들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책가방을 간수하시고는 우선 교장을 만나보려고 교실에서 나오시였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도 들끓으며 모두 그이를 따라나왔다. 당장 그들은 기운이 뻗쳐서 갈개기 시작했다. 두 학생은 체육실옆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속으로 들어간 한 학생은 그물과 정구채를 한아름 안고 운동장으로 달려나왔다. 한 학생은 공 두개를 들고 나와서 하나는 아찔하게 차올리고 다른 하나는 도드라진 땅바닥에 놓고 편상화코숭이로 멋지게 내질렀다. 여기저기 모여섰던 학생들이 운동장안으로 뛰여들어왔다. 삽시에 운동장은 끓어번지기 시작하였다. 한쪽에서는 정구를 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을 차고… 교장실로 가시던 김성주동지께서는 도서실앞 복도에서 빙하선생과 마주치시였다. 《선생님!》 《음, 돌아왔나?》 《어제밤 돌아왔습니다.》 《어데 갔었나?》 빙하는 수염을 매만지며 입술을 떨었다. 《농촌에 볼일이 있어서 갔댔습니다. 그동안 학교에 사건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어느때이든 불피코 터질 사건이지. 난 두려워하질 않네.》 빙하의 깊은 눈이 번쩍 빛났다. 《선생님, 정의가 패배하는 법이야 없지 않습니까. 마음을 굳세게 가지십시오.》 《그 말은 옳으이… 그런데 왜 요새 집엘 오지 않나? 나두 기다리지만 우리 집사람이 몹시 기다리네. 누가 귤을 한상자 보내왔는데 집사람은 자네가 와야 그걸 테놓구 먹겠다네.》 《고맙습니다, 가겠습니다.》 《꼭 오게.》 마침 구부러진 복도쪽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리여 그이께서는 얼른 빙하와 갈라지셨다. 교장실에서는 경리부의 혹뿌리서기가 와서 교장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이야기인즉 어제 교장이 없는 사이 성공서의 관리 한녀석과 검찰청 검사 한놈이 와서 학교운영정형을 묻고 장부를 뒤져보기도 하고 도서실에 들어가 도서검열도 하고 갔다는것이였다. 혹뿌리서기는 갓 깎은 상고미리밑까지 뻘겋게 되여 내가 횡령을 해먹었게 장부검열을 하는가고 마치 교장이 성공서 관리이거나 검찰청 검사이기라도 한듯이 우락부락하며 소리를 질렀다. 《허허허, 나가보우. 미친 바람이 사당문짝을 세겠소.》 교장은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달랬다. 그제야 혹뿌리서기는 씨근거리며 나가버렸다. 《교장선생님, 전 어제밤에 돌아왔습니다.》 혹뿌리서기가 나간 뒤에야 김성주동지께서는 교장에게 인사를 하셨다. 《여기 와서 좀 앉게.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나?》 《농촌에 나갔다가 이어 돌아온다는것이 좀 지체되였습니다. 그동안 고통이 많으셨겠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교장의 앞의자에 가앉으며 말씀하시였다. 《고통이 많은들 어떤가! 사람이 진리의 편에 서자면 고통을 각오해야 돼. 극단한 경우엔 단두대에 나갈 각오두 해야 되구… 이놈들이 재정검열까지 해? 각 방면으로 포위진을 치는셈이군.》 《포위진을 치면 역포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절대로 기운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어제밤 돌아오는길로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교장선생님을 급히 찾아들어온것은 선생님이 끝까지 강경한 립장에 서달라는것을 말씀드리고싶어서입니다. 절대로 교장직에서 사퇴하시거나 또 저자들의 어떠한 요구를 수락하시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고마우이, 내가 그런 말을 듣고싶어서 자네를 몹시 기다렸네. 잘못하면 징박은 군화밑에 화단이 짓밟힐 우려가 있어. 저놈들에게야 교육의 신성 운운이란게 있을리 있나? 분하이. 이 시대악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것인고?》 《바로 그 시대악을 없애지 않고는 신성한 교육이 있을수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제 생각엔 학원도 시대악과 맞서서 싸우는 하나의 전투장으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교육의 신성을 지키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옳으이…》 교장은 기운이 나서 부채질을 했다. 희슥희슥한 귀밑머리가 사납게 일어서 날렸다. 이날 교장과 빙하는 활기가 나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장은 본시 강의를 맡지 않았으나 지리교원이 나오지 않아서 각 학급으로 돌아다니며 지리를 가르쳤다. 그의 심장에는 내내 김성주동지의 말씀이 기둥처럼 서있었다. 무엇을 두려워하랴! 그 영재를 따라가는 젊은 학도들의 저 새별같이 빛나는 눈들을 보라! 예지가 펄펄 끓고있지 않는가! 샘물이 콸콸 솟아나고있지 않는가? 이날 빙하는 한 학급의 력사강의를 중도에서 파하고 경무청으로 불려갔다. 그가 불려가 곤경을 치르는동안 학교에서는 왕희동이 또 반동계렬의 교직원회의를 열었다. 인제는 일체 사무를 교장에게서 결재를 맡지 말며 교장과 빙하를 배척하는 성토문을 써서 성공서에 제출하기로 결정지었다. 그리고 학교의 교수과목에서 《사회발전사》를 비롯한 여러가지 교수과목을 제거해버리자는것도 결정지었다. 훈육주임은 기고만장해졌다. 그는 고양이수염을 가느다란 두손가락끝으로 배배 꼬며 인제는 교장실을 창고로나 쓰자고 비양조로 말했다. 대립은 점점 더 첨예해져갔다. 반동계렬의 교직원들은 인제는 학교가 자기들의 왕국이나 된것 같이 어깨들을 으쓸거리며 돌아다녔다. 이날밤 김성주동지께서는 권태일의 집에서 육문중학교 공청지부회의를 여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 기회에 단호히 학교내의 진보적인 교원과 악질교원을 갈라내놓음으로써 학교를 민주화하며 그 과정을 통하여 전교 교직원 학생들을 혁명의 편으로 이끌어당기려고 계획하시였다. 그러기 위해서 공청회의는 동맹휴학으로 들어갈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했다. 그리고 학교당국과 성공서에 제출할 요구조건도 만들었다.
첫째, 학생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라!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허용하고 모든것을 그들의 자유의사에 의해서 집행하게 하라. 식당운영, 도서실운영, 체육기구운영, 일체 학교운영을 학생들에게 맡기라! 둘째, 학생들이 요구하는 학과목에 대한 수업을 보장하라! 사회과학과목을 우선적으로 수업하게 하라! 셋째, 교장선생과 빙하선생에 대해 압력을 가하지 말라! 넷째, 체육교원 왕희동과 훈육주임 조상배를 파면시키라!
요구조건을 다 만들고나서는 왕희동과 조상배의 죄상에 대한 성토문을 작성했다. 권태일은 이 두 교원의 죄상을 이미 목책속에 다 적어두었다. 그는 왕희동이 학창을 관료의 구두발로 짓밟게 만드는 죄상을 첫째로 들었다. 이런놈은 교원이 아니라 군벌정치의 밀정이라고 박자고 했다. 둘째 죄상으로는 왕회동이 새롭고 진보적인것이면 모두다 공산주의로 보는 색맹이란것을 들었다. 권태일은 곁에서 받아쓰기 바쁘게 왕희동의 죄상을 불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써놓은 성토문을 일일이 검토해보며 가필해나가시였다. 왕희동의 죄상만 해도 열가지가 넘었다. 고양이수염 훈육주임의 죄상까지 다 쓰고나니 거의 샐녘이 되였다. 이튿날에는 비가 줄줄 내리였다. 가을을 불러오는 쓸쓸한 비발이였다. 소백산, 룡담산이 모두 안개속에 들고 송화강물우에도 차거운 비안개가 감돌았다. 그러나 육문중학교의 교실마다에는 뜨거운 숨결들이 차고넘쳤다. 학생들이 서로 옆구리들을 찌르며 수군수군 속삭였다. 《오늘 오후 네시에 전교생의 궐기대회가 있다오.》 《어느편이 조직하는거요?》 《선진적인 편이요.》 《인제 본격적으로 붙는것 같군. 아까 <사탄>이 성토문을 들고다니며 도장을 찍으라고 하더군.》 《거기에 도장을 찍었소?》 《내가 왜 교장선생을 배척하는 성토문에 도장을 찍겠소.》 이런 소리들이 사처에서 수군수군 돌았다. 그런데 한 학급에서 《사탄》이 성토문에 도장을 받으려다가 맹랑한 판에 걸려들어갔다. 《이게 무어야? 성토문이라.》 학생들은 《사탄》을 세워놓고 성토문을 읽었다. 읽는 학생이 다 읽기전에 다른 학생이 채가군했다. 그들은 읽는것도 풍자와 야유를 섞어서 읽었다. 어떤 학생은 문장을 교묘하게 비꼬아가며 마치 성토문을 작성한 사람들이 자기 죄상을 사과하는것 같이 만들어서 읽기도 했다. 성토문에는 지장들을 많이 받았다. 하긴 본인의 지장을 받은것이 아니라 《사탄》이 제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뚝뚝 찍어넣은것이 더 많았다. 그들은 인제 이것을 전교생에게 공개한 다음 성공서에 제출하고 신문에까지 발표하려는것이였다. 그런데 성토문은 여럿이 읽는 사이에 감쪽같이 없어져버렸다. 누가 그랬는지 유리문밖 락수물 떨어지는곳에 꾸겨던졌다. 시뻘겋게 인주가 묻은 미농지는 당장 락수물에 구멍이 펑펑 뚫어지고 제지공장가마에 들어간것 같이 되였다. 《사탄》은 한 학생과 이야기를 하느라고 성토문이 창문밖으로 날아나간줄도 모르고있었다. 성토문을 내던진 학생들은 모두들 시침을 따고 서서 잡담들을 했다. 더러는 자리에 가앉아 책상을 뚜거덕뚜거덕 치며 달리는 말발굽소리를 내였다. 《아니 성토문은 어쨌어?》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유리문앞에 모여선 수십명 학생들은 공연히 서로들 밀고닥치며 갈개였다. 《성토문을 누가 가졌어?》 《여, 성토문 누가 가졌어?》 턱이 뾰족한 학생이 《사탄》의 말을 받아 웨치며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까짓 소리는 들은척 않고 제소리만 제소리라고 떠들었다. 그러다가 누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일시에 요란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하하하.》 웃음소리에 교실이 떠나가는것 같았다. 학생들은 성토문을 잃어버린 《사탄》이 두눈이 뎅그래서 이구석 저구석 찾는 꼴이 우스워서 더욱 요란스럽게 웃었다. 《성토문을 어쨌어?》 《우린 모른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놀음인게 아니라 배짱을 내밀 잡도리였다. 《사탄》은 여전히 이책상 저책상 뒤지며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창밖의 락수물 떨어지는곳에 눈이 미쳤다. 《아니…》 《사탄》은 다리를 우들우들 떨었다. 너무도 기가 막혀 학생들쪽으로 돌아서지도 못했다. 《사탄》이 보는동안에도 락수는 성토문의 인주 묻은 부분을 두드려 구멍을 뚫고있다. 《어느 자식이 성토문을 저렇게 만들었니?》 얼마후에야 《사탄》이 학생들쪽으로 돌아서며 부르짖었다. 어찌 격분했는지 주걱턱이 좌우로 왔다갔다했다. 《우린 모른다.》 《몰라? 누구도 모른단말이냐?》 《모른다.》 근엄한 얼굴들이 성벽처럼 마주서서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사탄》의 주걱턱은 더 격렬하게 흔들렸다. 두눈이 비수처럼 시퍼렇고 붓으로 툭 찍은것 같은 눈섭이 구핏구핏 움직였다. 《좋다, 모른다고 하면 단줄 아니?》 《사탄》은 책상을 쾅 치고는 교실을 나가버렸다. 그는 복도를 부리나케 걸어갔다. 교실과 식당쪽으로 나가는 사이의 마당은 웅뎅이가 져서 물이 들이밀렸다. 《사탄》은 가죽구두로 물창을 첨벙첨벙 밟으며 걸어갔다. 그는 훈육주임실 문을 열고 들어서듯마듯 두어깨를 들먹거리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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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림동에 나갔던 채경은 신안툰의 차광수와 함께 길림으로 돌아왔다. 둘이는 채찍비가 드리우는 벌판길을 걸싸게들 걸었다. 차광수는 고깔이 달린 고무비옷에 고무장화를 신고 채경은 종이우산을 들고 고무장화를 신었다. 두컬레의 고무장화발이 진흙을 뭉개고 풀대를 꺾으며 비안개가 뽀얀 벌판을 가로질러 나갔다. 바지에까지 붉은 물이 뛰여올랐다. 사처에서 물소리가 나고 비가 땅을 두드리였다. 길바닥으로도 붉은 물이 흘러가고 풀대사이로도 탁류가 출출거리며 흘러갔다. 《어쨌든 인젠 신안툰은 문제가 없소. l년동안에 그만치 만들어놓는다는건 큰 성공이요.》 《그런데 부녀운동이 문제란말이요. 원체 봉건인습이 너무 쩌들어서 그걸 빨리 가셔낼 방법이 없구만.》 채경의 말에 차광수가 대꾸했다. 지난 1년동안 그는 김성주동지의 지도하에 신안툰을 혁명화하기 위해서 온갖 정력을 다 쏟아부었다. 그렇게 일한 보람이 있어서 공청지부도 내왔고 반제청년동맹, 부녀회, 소년단 같은 조직들이 모두 공청지부의 지도밑에 혁명사업을 활발히 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차광수는 지금 소년단지도에 정력을 기울였다. 요즈음에는 농민조직을 내올 준비도 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김성주동지와 토의하려고 오늘 장림동에서 길림으로 오는 채경이와 동행이 되였다. 장림동은 신안툰에서 머지 않은 이웃동네인데 채경은 두달전부터 그곳으로 드나들었다. 그는 김성주동지께서 장두촌을 혁명화하신 그 방법으로 장림동을 혁명화하기 시작했다. 벌써 반제청년동맹을 조직하고 야학을 개설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화요파계렬의 청년들이 몇명 있는데 채경은 지금 이들의 종파적책략을 분쇄하기에 애를 먹고있었다. 《장림동사람들은 신안툰을 여간 부러워하지 않소. 조직이 째이고 전 부락이 한덩어리로 되여있다구… 어제밤엔 한 청년이 찾아와서 차선생을 자기네 부락으로 넘겨올수 없겠는가고 제기했소.》 《내가 장림동에 넘어가면 신안툰은 어떻게 하구?》 《신안툰은 그만하면 제발로 걸을수 있다는거지.》 둘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성안으로 들어섰다. 우비를 쓰긴 했으나 둘이 다 옷이 들이젖었다. 차광수의 비옷은 어깨에 구멍이 났는데 그 구멍으로 새드는 비물때문에 옷이 푹 젖었다. 그들은 거리에 들어서는길로 책방으로 찾아갔다. 차광수는 거기서 책들을 수십권 사서 마분지를 얻어 꿍꿍 동였다. 동네사람들에게 읽힐 책이였다. 그는 길림에 들어올 때마다 이렇게 책을 사서는 들고 나갔다. 《이것을 또 좀 간수해두었다 주시오. 래일아침 떠나갈테니까요.》 《매번 열성이십니다.》 《허허허, 좌우간 맡았다 주시오.》 차광수는 책방주인의 말에 껄껄 웃으면서 책꾸레미를 내밀어주었다. 채경이도 장림동청년들에게 읽힐 책들을 여러권 사서 옆구리에 끼고 책방을 나섰다. 이날 학교에서 돌아온 경주는 저녁차비를 하다가 육문중학교쪽으로 순경과 현병들이 떼를 지어 달려가고있다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정말 포목가게와 국수집사이로 내다보이는 큰 거리로 비옷을 입은 헌병들이 미친듯이 달리고있다. 어떤놈은 싸움판으로 돌격해들어가는 자세로 등을 꾸부리고 달리며 악악 소리를 질러댔다. 순경패거리들도 지나갔다. 어떤 순경놈은 비옷도 없이 맨 복장바람으로 달리였다. 경주는 가슴이 후두두 떨려왔다. 육문중학교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어제 밤새 잠을 못잤다. 밤에 김성주동지의 하숙에 두번이나 달려가보았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돌아와계시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순경과 헌병이 떼를 지어 학교로 몰려간다는것은 무슨 일일가? 그이의 신변이 위험치 않으리라고 담보할수 있는가. 불길한 예감이 눈앞을 덮어쳤다. 그이의 체포, 조직의 파괴, 그렇게 되면 혁명은 어떻게 되는가? 경주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그는 집으로 도로 달려들어왔다. 그리고는 헛간벽에 걸려있는 우비를 뒤집어썼다. 오빠가 우유배달을 할 때 비오는 날 아침이면 쓰고 나가군하던 웃도리만 가리우는 비옷이였다. 그것을 쓰고 다시 밖으로 달려나갔다. 비발을 헤치며 골목길로 뛰였다. 뛰다가는 미끄러져 젖은 담벽을 짚기도 했다. 큰거리에 나서니 비발은 더 사나와졌다. 비는 머리를 때리고 량미간을 후려쳤다. 경주는 한참 달려서야 그이의 하숙에 당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안이 썰렁했다. 어제밤 달려왔을 때보다도 더 찬기운이 도는것 같았다. 책상 하나가 놓이고 아무 장식도 없는 방, 그래도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이 밝은 빛을 뿌렸다. 무슨 책인가 읽으시던대로 펼쳐놓고 그우에 붉은 연필대를 눕혀놓은것이 어제밤 그대로 책상우에 있다. 경주는 방가운데 잠간 섰다가 맞은편 주인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할머니네 집 식구들도 벌써 육문중학교에서 일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문밖의 어지러운 비발을 내다보며 무거운 낯빛으로 앉아있었다. 《어제밤 제가 왔다간 뒤에도 들어오시질 않았어요?》 《그럼요. 그래서 우리도 밤을 밝히며 기다렸지요. 오늘아침에 학교로 찾아가볼가 했는데 경무청에서 외인은 학교로 드나들지 못하게 막는다는 말도 있고 해서 가보지 못했어요.》 경주의 말에 하숙집 손자며느리가 대꾸했다. 《그놈들이 누구를 함부로 다칠테냐? 너무 방정맞게들 뛰지 말아!》 할머니의 말이였다. 그러나 그도 주글주글한 얼굴에 수심의 빛이 가득해서 유리문으로 비가 드리우는 바깥만 내다보고있다. 경주는 비물을 뚝뚝 떨구며 잠간 서있다가 도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비발을 헤치며 박두학의 집으로 뛰여갔다. 그가 집에 있으면 육문중학교 사건이 무슨 사건인지 알수도 있을것 같고 또 모른다 하더라도 급히 무슨 대책을 세울 의논이라도 할수 있으리라고 믿어졌다. 그런데 박두학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경주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덕승문밖에 있는 조창진이나 송춘보를 찾아가 보려고 했다. 그래서 막 골목길을 달리고있는데 차광수와 채경이 고무장화를 절벅거리며 마주 걸어왔다. 《아니 너 이거 웬일이냐?》 《오빠!》 경주는 비발속에서 경황없이 한마디 부르짖고는 입술을 떨었다. 《무슨 일이냐? 어째서 이렇게 물참봉이 되여 돌아다니느냐?》 경주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이발을 사려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을 하려무나.》 채경은 경주의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흔들었다. 경주는 얼른 고개들 들었다. 비에 젖은 그의 얼굴은 홧홧 달아있는것 같았다. 《오빠, 빨리 육문중학교에 가봐요. 방금전에 순경과 헌병의 떼가 육문중학으로 밀려갔어요. 김성주동지의 신변이 위험해요.》 《아니 무슨 일때문이냐?》 《무슨 일인지 사건이 일어났다지 않아요. 틀림없이 그이께 주목이 돌려진것 같애요. 난 오빠들에게 의견이 있어요. 왜 김성주동지의 신변에 대해서 그렇게 무관심하세요?》 《네 말이 옳다!》 《글쎄 어제밤 하숙집엘 가니까 할머니가 그러시지 않아요. 늘 끼니를 건늬신다구… 아무리 일이 바빠두 그이께서 식사는 제때에 하시도록 오빠들이 돌보아드려야 하지 않아요.》 채경이와 차광수는 말을 못했다. 경주의 말이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찔렀다. 《학교에 가봅시다.》 차광수가 먼저 부르짖었다. 《가봅시다. 경주야, 넌 만일을 위해서 공청회의소집을 준비해라. 그 어떤 불상사가 있다면 곧 대책을 토의해야 될테니까…》 《알겠어요.》 경주는 또 이발을 사려물며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과 비물을 씻었다. 그리고는 돌아서 다시 퍼붓는 비속으로 뛰여갔다. 차광수와 채경이가 육문중학교 정문앞에 오니 순경 두놈이 총창을 비껴들고 보초를 서있다. 채경이 얼른 쳐다보니 담장밖으로도 순경과 헌병들이 병풍 치듯 둘러서있다. 앞장을 선 차광수는 제잡담하고 비옷을 불거덕거리며 정문으로 다가갔다. 채경이도 장화발로 고인물을 차며 태연히 따라들어갔다. 《섯…》 《못들어간다.》 그러나 차광수는 벌써 정문안으로 쑥 지나 들어갔다. 《당신들은 사람도 몰라?》 채경이 꿱 소리치며 그도 정문을 지났다. 순경 둘이는 상대방이 너무도 대담한 행동을 취하는바람에 정신들이 얼떨떨해져서 서로들 쳐다보기만 했다. 《뭔가?》 《학교선생 같소.》 《건방진데…》 순경 둘이는 두덜거리며 비에 젖어 미끈거리는 총탁들을 다잡아쥐였다. 차광수와 채경이가 학교운동장에 들어서니 비가 뿌리는 넓은 운동장에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져있었다. 전교 학생들이 가뜩 들어서있는데 넓은 마당이 온통 우산으로 덮여있었다. 박쥐날개같은 우산이 있는가 하면 둥글둥글한 종이우산이 있고 녀자들의 양산같은 작은 우산도 있다. 비발이 우산들을 북치듯 두드리고 우산우에서는 뽀얗게 비안개가 일었다. 아침마다 조회때 교장이 올라서서 연설하는 교단우에서는 김성주동지께서 무엇인가 손짓을 하며 연설을 하신다. 큰 음성이 비소리를 제압하며 온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일제는 만주침략을 더욱 로골적으로 본격화하고있습니다. 놈들은 우선 만주를 독립적인 특수지대로 만들어놓고 이 특수지대의 모든 리권을 강도적으로 빼앗자고 합니다. 그러기에 일제는 지난 5월에 <만주치안유지선언>이라는걸 공포하고 만주의 치안을 위해서는 일본무력이 전면적으로 앞장에 나서야 한다는 수작을 했습니다. 장작림정권과의 그 어떤 흑막이 없이 일제가 이런 선언을 내놓으리라고는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것입니다. 이 흑막이 설사 장작림정권이 만주를 내놓고 팔아먹는 흑막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제의 침략을 받아들이는 친일적인 흑막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수 있겠습니까!…》 마당에서는 박수가 일어나고 환성이 터졌다. 우산을 버쩍 쳐들고 소리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빙글빙글 돌리며 소리치는 학생들도 있었다. 우산들은 들고섰으나 옷은 다 젖었다. 김성주동지께서 비를 맞지 않으시게 하려고 우산을 든 학생이 두명이나 연단에 올라가 서있었으나 연설이 너무도 격동적이여서 그이를 우산으로 가리워내지 못했다. 그이께서는 장 우산밖으로 나서서 주먹을 높이 흔들며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옷은 폭 젖었고 얼굴에서는 비물이 좔좔 흘러내리였다. 그이의 말씀이 격렬해지자 담장밖에서 호각소리가 일어났다. 뛰는 소리도 들리였다. 담장을 에워쌌던 경무청 순경들이 비칠거리며 경사진곳으로 달려 정문쪽으로 모여들었다. 왁왁 고아대며 정문안으로 뛰여들 차비를 했다. 그런데 이때 헌병들 10여명이 저편쪽 담장밖에서 달려돌아오며 순경들에게 경거망동을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정문안으로 달려들려던 순경들은 비가 후려치는 정문앞에서 걸음들을 멈춰섰다. 《함부로 덤비지 말고 제자리로 돌아가라.》 《우리 정권을 모욕한단말이요.》 《그러나 학생들이 교문밖으로 달려나오기전엔 일체 건드리지 말라, 독군서의 지령이다.》 그이께서는 학원의 민주화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그래 지금 우리 학교에 민주주의적싹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학생들이 진리를 탐구할 자유가 손톱눈만치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소리가 넓은 운동장을 움씰움씰 흔들어놓는다. 《우선 다른건 다 그만두고라도 지금 이 시각 저 담장밖에 또 담장을 이룬 총칼을 두고 말해봅시다. 무엇때문에 학교에 총칼의 울타리를 칩니까?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어떤 정권을 해치려 했습니까? 우리에게는 오직 진리를 탐구하자는 맑은 눈동자가 있고 붉은 심장이 있을뿐입니다. 우리는 학교를 짓밟는자들을 용서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리상, 우리의 희망을 위해서, 학원의 신성한 자유를 위해서, 진리의 탐구를 위해서 학원을 짓밟는자들과는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점점 더 격동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학생들속에 서있는 채경은 비를 맞으시는 그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이의 신변을 돌보지 못했다는 경주의 말이 또 한번 가슴을 찔러 목이 메고 눈앞이 흐려졌다. 채경은 자기가 너무도 큰 죄를 지은것만 같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전체 학생들에게 학원의 민주화와 진보적교원들에 대한 탄압을 반대하여 동맹휴학으로 들어가자고 호소하시였다. 그러자 운동장에 모인 전체 학생들은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우산이 솟아오르고 모자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이께서는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시고는 손을 들어 흔들며 연단에서 내려오셨다. 함성은 계속 터져올랐다. 그이께서 내려오시자 곧 권태일이 연단으로 뛰여올랐다. 그는 성토문과 요구조건초안을 내리읽었다. 지금 훈육주임실에서는 훈육주임 조상배와 왕희동이 의자에 앉았다일어섰다 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력을 다 잃어버리고말았다. 김성주동지께서 돌아오시고 학생들의 기세가 충천해지자 왕희동이 긁어모았던 우파계렬 학생집단은 이어 모래성 무너지듯했다. 《사탄》을 내세워 성토문에 도장받는 운동을 시작했댔으나 그것도 《사탄》이 시라소니짓을 하는 바람에 실패하고말았다. 이렇게 되니 우파계렬 교원집단속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그들은 오늘 운동장에서 학생궐기대회가 열릴 눈치가 보이자 시간도 안되여 모두들 내빼고말았다. 인제는 왕희동이나 조상배가 희망을 걸어야 할데는 담장밖을 둘러싼 순경이나 헌병들인데 그들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왕희동은 순경을 움직여보려고 전화통으로 가서 부리나케 종을 울리며 경무청장을 찾았다. 그러나 경무청장은 나오지 않고 소사인듯한 아이의 목소리가 앵앵 들려오더니 이어 뚝 끊어졌다. 왕희동은 부아가 치밀어 다시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는데 마침 전화통옆에 있는 출입문이 삐국 열리며 《사탄》이 들어섰다. 《엥이, 이 시라소니같은놈의 새끼.》 왕희동은 시어미역증에 개옆구리 차는격으로 수화기를 내동댕이치며 《사탄》의 훌쭉한 뺨을 후려갈겼다. 훈육주임은 유리문가에 서서 차거운 눈매로 비칠거리며 넘어지는 《사탄》을 쏘아보았다. 교문으로는 학생들이 흩어져나갔다. 차광수와 채경이는 김성주동지를 옹위하고 교문을 나섰다. 차광수는 자기의 비옷을 김성주동지께 입혀드리고 어데서 조그마한 우산 하나를 얻어들었다. 그는 그것마저도 김성주동지를 가리우기 위해서 그이쪽으로 기울이며 걸었다. 이날밤 채경이네 집에는 공청원들이 가뜩 모여들었다. 그러나 인제는 공청회의를 열 필요도 없었다. 아래웃방이 툭 터지게 모여서 학생궐기대회 이야기들을 하며 웃었다. 부엌에서는 경주가 아궁이에 벼겨를 밀어넣으며 풍구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맑은 눈물이 빛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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