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3 회 )

 

제  11  장

 

엄혹한 시절

 

1

 

이튿날 아침, 《복흥태》정미소집에는 민족주의자들이 몇명밖에 모여오지 않았다. 리갑무로인과 심룡준이도 나오지 않았고 최활이도 나오지 않았다. 김좌진은 혈압이 올라서 자리에 누워있다고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마침 일요일이 되여 학교에 나가지 않고《복흥태》정미소집으로 가시였다. 어제밤 민족주의자들의 반응을 보기는 하시였으나 좀더 연극의 의도를 명백히 하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흔연스럽게 인사를 하며 방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모두들 인사도 받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만 피웠다. 다만 오동진이만이 담배를 피우다가 어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도 그말뿐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선생님들, 어제밤 피곤하셨겠습니다.》

《여보게, 피곤이고 무어고간에 어제밤 연극이 그게 무언가? 누구를 비방하는건가?》

리웅이 턱을 추켜들고 수염끝을 떨면서 물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잠간 대답을 안하시였다. 그러자 《참의부》의 대모테안경을 쓴 사람이 3부통합회의가 밥을 달라기에 그런 연극을 올리느냐고 시비해나섰다.

《선생님들이 그만치 자극을 받으셨다면 우리들은 만족합니다. 어쨌든 어제밤 연극은 우리 청년들의 의사를 대변한것이라는걸 알아주십시오.》

《아니, 우리 3부통합희의가 자리다툼을 한게 무언가?》

이번에는 《신민부》사람이 끼여들었다.

《자리다툼을 안했는데 왜 그렇게 자극을 받습니까? 정작 그렇다면 남의 떡방아에 키를 들고 달려가는격이 아닙니까?》

《신민부》사람은 말이 막혀서 검으락푸르락했다. 오동진의 얼굴에는 점점 더 울기가 덮이고있었다.

《선생님들, 글쎄 무얼 토의하기에 회의를 반년이상이나 끌고있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 말씀을 꺼내시였다.

《우리 청년들은 곁에서 보기가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저렬한 싸움이 밑에 깔려있다고 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런 회의라면 청년들한테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아파도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연극을 하고싶어 하진 않았습니다. 연극속엔 청년들의 뜨거운 충고가 있다는걸 아셔야 합니다.》

《어제 연극을 보고 청년들을 잘못했다고 나무라는것은 어제밤 무대우에 올라섰던 송도국족속들과 같은 인간들이요. 바로 그놈들이 송도국을 망쳐먹듯 조선을 망쳐먹기가 쉽소. 일언이페지하고 인젠 서로들 골통을 두드려깨고라도 이놈의 회의를 바로잡아 세워야 하겠소. 내 한생 독립운동을 해왔지만 어제밤같이 생각이 많아본적은 없었소.》

오동진이 얼굴에 피빛이 올라 이렇게 말했다. 방안의 공기는 침통해졌다.

누구도 그다음에는 말이 없었다.

바로 이런 시각, 《대풍합》이란 정미소집에서는 《상해림정》의 최활이 수십명 청년들앞에서 어제밤 연극은 과연 잘한 연극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는 얼굴이 익은 꽈리같이 되여 열을 올리였다.

《잘한 연극이야. 상해 일등극장에 갖다놓아도 손색이 없을 연극이야. 내 세계 각국 연극을 다 보았지만 어제밤 연극처럼 감명이 깊은 연극은 처음 보았어.》

청년들이 두간방에 가득 모여앉아 최활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밤 연극에 출연했던 권태일이며 박두학이도 와앉아있었다. 이 집은 연극이며 노래의 종합련습을 진행해오던 집이였다. 그래서 지금 방 한쪽에는 어제밤 공연에 쓰던 물건들이 그냥 놓여있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박수도 한번 안치고 삼십륙계줄행랑을 놓지 않았습니까?》

박두학이 씽긋거리며 최활에게 말했다.

《박수칠 경황이 됐나? 목이 부러져나가게 얻어맞았는데… 하하하…》

최활이 몸을 흔들며 웃는바람에 청년들도 소리를 내여 웃었다. 그도 어제밤 심각한 자극을 받고 불쾌해서 려관으로 돌아간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그는 이어 자기로서는 불쾌해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데 생각이 미치였다.

우선 자기가 3부통합회의에 참가한 목적이란 새로 나오는 통합체가 어떻게 하든지 《상해림시정부》의 기구밑에 들어오도록 하자는것이였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정식 론의가 없었으나 회의과정에서 각파의 기분들을 살펴보면 어느 파를 물론하고 《상해림시정부》라는것은 념두에도 두지 않는것 같았다.

그까짓것이야 있은들 무어라나 하는듯한 태도들이였다. 그래도 최활은 어떻게 목적을 이루어볼가 해서 어떤 때는 《정의부》편에 서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신민부》나 《참의부》편에 서보기도 하면서 누가 맨 웃자리에 앉게 되는가 하는것을 노리고있었다. 그러나 어느편이 웃자리를 차지하더라도 대체로 《상해림시정부》가 틀어잡을수 없으리라는것은 명백해졌다. 그 생각을 하면 회의장을 수가 몰린 장기판처럼 허물어놓고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치솟기도 하였다.

그랬는데 어제밤 청년들의 연극이 3부회의를 보기좋게 후려쳤다. 결국 최활이로서는 남의 팔매에 밤을 주은셈이였다.

《그런 연극은 한번만 할게 아니라 또 해야 돼. 그래서 저런 3부통합회의는 자꾸 쳐야 하네. 아예 고두리뼈가 부러지게…》

최활은 기를 돋구었다. 권태일이 듣다못해서 최선생은 3부통합회의에 관계가 없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 더러운 판과 무슨 관계가 있겠나. 나는 <상해림시정부>의 록을 먹는 재정부장이야. 그런데 내가 그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같은 밥자루들과 어떻게 어울리겠나. 자네들이 연극에서도 비방을 했지만 저 3부란것은 아주 너절한 집단일세. 난 그렇게 보네.》

최활은 담배연기를 뿜으며 팔뚝질을 했다.

《그럼 똑똑한 집단은 어데 있습니까?》

《똑똑한 집단이야 <상해림시정부>지. 자네들두 앞으로 독립운동을 하려면 <상해림시정부>를 똑똑히 알아야 해. 자기 정부를 모르고 어떻게 독립운동을 하나?》

아래웃방에 모여앉은 학생들은 최활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벙긋벙긋 웃었다. 그들은 최활이 이따금 학생들앞에 나타나서 인기전술로 롱을 던지는것을 보고는 사람이 변변치 않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선생님, 거 <상해림시정부>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줄수 없습니까?》

권태일이 싱긋거리며 또 말을 던졌다.

최활은 《상해림시정부》이야기를 해달라는바람에 아주 신명이 났다.

《어험, 내 그럼 시간은 없네만 오늘 자네들한테 이야기를 좀 하겠네. <상해림시정부>가 어떤것인지 모른다는것은 조선민족의 수치니까 자세히들 듣게.》

최활은 눈가장에 미소를 띠우고 앉아서 담배연기를 뿜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상해림시정부》의 우두머리였던 안창호가 길림에 와서 《림정》의 선전은 한마디 하지 않고 미국선전만 하다가 간것을 아주 못마땅히 여기던차이다. 《림정》의 우두머리였다면 《림정》의 선전을 해야 할것이 아닌가? 그래야 3부통합회의에 참가한 《림정》대표가 활동하기도 의젓해질것이고 3부사람들이나 일반군중도 《상해림시정부》에 대한 인식이 새로와질것이다.

최활은 그런 앙심이 있어서 안창호를 치는 심정으로 《상해림시정부》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3.l운동이 터지자 민족주의운동자들이 상해법조계로 모여들던 이야기를 한참 하였다. 그는 그때 모여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조그맣고 통통한 손가락들을 다른 한손으로 연송 꼬부려넣었다.

《이렇게 유명한 독립지사들이 구름 모이듯 모여들어 법조계법창로에서 <림시정부>조직에 대한 선언서를 냈네. 참 기세충천하였지. 국내에서는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소리가 진동하고 상해 한복판에서는 정부조직에 대한 기운이 움트고… 사람이란 이런 풍운의 시대에 살만도 하이.…》

《선생님도 그때 계셨습니까?》

《암 물론이지. 있고없고간에 말만 들어도 굉장했단말이야.》

사실 그는 있지 않았는데 있었다고 속였다가 뒤가 켕겨서 얼버무려넘겼다.

《선생님 광주리는 큰데요.》

권태일이 또 한마디 던지였다. 익살이 터지는것 같아 학생들이 모두 웃었다.

《아니 광주리라는건 무언가?》

최활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바로 광주리지요. <림시정부>요 뭐요 하는것이 광주리가 아닙니까? 거기에 정치라는것을 담을테니까요.》

《정치만 담나? 군사도 담고 경제도 담고 교육도 담고 다 담지.》

한 학생이 권태일의 말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비유를 그렇게 하면 못쓰는 법이야. <림시정부>가 광주리라니…》

《선생님은 광주리란 말을 매우 언짢게 생각하시는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질 않습니다. 광주리를 그저 참대나 싸리로 결은것에 비긴다면 불쾌할수도 있겠지만 저는 팔모야광주로 결은 광주리에 비기는것입니다.》

그 소리에 학생들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허튼소리들인가. 응?》

최활은 자기가 그처럼 열을 띠고 한 소리를 학생들이 공기돌 가지고 놀듯하는바람에 노기가 올랐다.

《선생님, 우린 <상해림시정부>가 하는 일을 알고싶습니다.》

《옳습니다. 광주리가 아니라 광주리에 담겨있는 내용을 알고싶습니다.》

《그 광주리소리를 거두지 못할가?》

최활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는 역증을 내며 말을 계속했다.

《<상해림시정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 군사를 양성하고 독립신문을 찍어내고 공채를 발행하고 빠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내고, 이런 일들을 해왔다는걸 몰라?》

최활이 이렇게 떠들고있는데 김성주동지께서 김혁이와 함께 웃방문으로 들어서시였다.

《왜들 이렇게 떠드오?》

그이께서는 방안을 살펴보며 물으시였다.

《글쎄 <상해림정>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봤다고 저렇게 화를 내지 않소?》

박두학이 그이께 말씀드리자 최활은 성이 나서 대들었다.

《너 이놈들, 나를 놀리고있지?》

《놀리긴 누가 선생님을 놀려요? 상해 엉터리정부를 놀리면 놀렸지 선생님을 왜 놀려요.》

《뭐 엉터리정부?》

최활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군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김성주동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나?》

그이께서는 최활을 내려다보며 준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럼 그게 엉터리정부 아니고 진짜 무슨 일을 하는 기구 같습니까? 이제 들어오며 듣자니까 군사를 양성한다고 했는데 그래 군사를 얼마나 양성했습니까?》

《지금 양성중에 있지.》

《그담 공채를 발행해서 돈은 얼마나 들어왔고 그 돈은 누가 무엇에 탕진했습니까?》

그이께서 따져물으시자 최활은 말이 막혀 쩔쩔맸다. 그바람에 박두학이는 기운이 부쩍 솟아서 구들바닥을 쾅쾅 치며 질문을 들이댔다.

그는 빠리강화회의에 청원서를 내서 무슨 소득을 보았느냐? 서서에 가선 무슨 리득을 보았으며 미국대통령 하딩이란놈한테 제기한 3개 조건은 어떻게 되였느냐? 국내국외에서 긁어간 독립자금은 누가 먹었느냐? 본시 입이 험한 박두학은 걸직한 소리로 마구 들이댔다.

김혁은 박두학의 질문에 쩔쩔매는 최활의 꼴을 바라보느라니 기가 막히였다. 탐욕과 자리다툼으로 눈이 뒤집히고 애국적인민들의 돈을 긁어다가 탕진하는 인간들, 그래도 의연금을 낼 때 인민들은 조선독립을 기원하였을것이 아닌가. 저런 파렴치한 인간들이 《정치인》이노라고 행세하며 돌아치는데가 《상해림정》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상해에 가서 비내리는 골목길을 헤매이던 생각을 하면 기막힌 일이다. 이러는데 김성주동지께서 더 참고계실수가 없으신듯 준절히 단죄하시였다.

《선생들이 말하는 조선독립이란 무엇입니까? <정부>의 틀만 차려놓고 인민들로부터 운동자금이나 걷어들여 탕진하고 강대국들에 청원행각이나 하는것밖에 더 있습니까? 말해보시오. 당신들은 조선인민앞에 머리를 들고다닐 렴치가 없을것입니다.》

최활이는 기가 질렸다.

《말을 해보시오.… 국내에서 긁어간 숱한 독립자금은 누가 어느 료정에서 다 불어먹었습니까? 빨리 대시오! 오늘은 <상해림시정부>란것을 좀 발가벗겨봐야겠습니다.》

박두학은 바싹 조이며 따졌다.

《뭐 발가벗기겠다?》

《발가벗기고 정체를 알아봐야겠습니다.》

최활은 숨이 차서 할딱거렸다. 그러나 그는 말이 모자란다고 숙어들 위인이 아니였다. 말이 모자라면 고함소리로, 그게 모자라면 광기를 부려서라도 해내는 위인이였다. 그는 이제는 얼굴이 붉다못해 꺼멓게 되였다. 목에서는 가르랑소리가 났다.

《가만있자, 이 사람들이 아직 호된 맛을 못보았구나. 두학이, 네가 발가벗은 <림시정부>를 보겠다니까 내 벗으마. 내가 홀랑 벗느라면 너는 조선청년으로서 수치가 아닐줄 아느냐?》

최활은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는 정말 양복저고리를 벗어던지고 금시계줄 드리운 조끼를 와락 잡아채서 벗었다. 조끼단추가 미처 구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더러는 떨어져내렸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박두학에게 손찌검이라도 하려고 그러는가 해서 모두들 어리둥절하여 쳐다만 보았다. 그런데 손찌검이 아니라 조끼를 벗더니 와이샤쯔도 벗었다.

《<상해림시정부>가 망신을 하느라면 조선민족은 망신을 안할것 같으냐. 내가 벌거벗고 이 길림바닥에 나서면 모두들 수치가 아닐것 같애? 아무도 받들어주지 않는 정부를 해서 뭘해?》

최활은 아예 아래우를 홀랑 벗어버릴 잡도리다. 이쯤되니 학생들도 그냥 내버려둘수가 없었다. 모두들 우르르 일어나 최활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최활은 학생들을 마구 밀어던졌다. 어떻게 기운이 센지 조창진은 그의 팔굽에 맞아 턱이 얼얼하였다.

학생들은 최활이 밖으로 뛰여나가지 못하게 문을 막아서며 두 팔목을 거머쥐였다. 그는 팔을 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앞가슴을 우쩍우쩍 문쪽으로 내밀었다. 학생들이 당해낼수 없게 되였다. 그러자 이때까지 웃방에 앉아서 내버려두라고 소리를 지르던 박두학이 불쑥 일어나서 달려내려왔다. 그는 어떻게 했는지 내려오자바람으로 최활을 구들바닥에 굽혀 앉혀놓았다.

어지러운 장면은 이어 수습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해괴한 꼴을 보실수가 없어 이어 밖으로 나오시였다. 김혁이도 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수굿하고 따라나왔다.

얼마후 최활은 옷을 주어입으며 피가 떨어지는것 같은 얼굴로 부르짖었다.

《너희가 <림시정부>를 얕보지만 어디 조선독립후에 보자! 그때도 얕볼가?》

최활은 한마디 을러메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칠피구두를 발끝에 걸며 후들후들 몸을 떨었다.

방안에서는 폭소가 일어날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웃을 일이 아니라 심각히 생각해야 할 비극을 본듯싶었다.

이날 그이께서는 김혁이와 함께 신안툰에 나가보려던 계획을 미루고 그냥 하숙으로 돌아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책상앞에 앉아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나 얼마를 앉아계시지 못하고 도로 책상앞에서 일어서시였다. 도저히 가슴을 진정시켜내실수가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동안 방안을 왔다갔다하시다가 도로 책상앞에 앉아 책상모서리를 힘주어 틀어잡으시였다.

이게 어디 웃을 일인가. 눈물을 뿌리며 통곡할 일이지 웃을 일인가. 아니, 눈물이 아니라 피를 쏟을 일이지. 이런 일을 보고야 어찌 가슴에 못이 박히지 않겠는가.

저들은 그래도 조선독립을 위해서 싸운다고 한다. 저런 무뢰한의 집단이 바로 《상해림시정부》가 아닌가. 시대가 어떻게 되는것도 모르고 자기들의 운명이 어떻게 된것도 모르고 심각한 착오에 빠져서 목대를 세우며 웨치는 무뢰한의 집단, 고루한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의 집단, 썩은 냄새가 풍기는 집단, 도려내야 한다. 그렇다, 종처는 무자비하게 도려내야 한다. 저런자들이 조선독립운동선상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이께서는 더 생각하지 말자고 해도 그 해괴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시였다.

 

2

 

연극이 일으킨 파문으로 하여 3부통합회의는 이틀동안 열리지 못했다.

《복흥태》정미소집에는 몇사람씩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한담을 하다가는 헤여지군하였다. 그러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야 모두들 모여들었다.

모두다 나왔는데 《상해림정》대표 최활이만 안나왔다. 그는 학생들앞에서 해괴망측한짓을 벌려놓고는 그날밤으로 길림을 떠났다.

길림에 더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것이였다. 3부통합회의에 참가해보아야 3부세력을 《상해림시정부》밑에 후려넣을수도 없는데 무엇때문에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짚고왔던 단장을 무르팍에 대고 두동강이로 꺾어서 허공에 후려던지고 떠났다. 이것은 그가 일이 안되는곳에서 늘 하는 하나의 미신적인 행위였다.

3부통합회의는 오동진이 활짝 뒤집어놓았다. 그는 이 회의가 자리다툼인가 자리다툼이 아닌가? 한번 랭정한 정신으로들 생각해보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기상이 무서웠다. 누구도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신민부》의 김좌진이들도 말이 없었다. 그들도 하루동안 모여앉아서 당강령에 자기들의 기도를 관철시키지 못할바에는 당건설문제를 철회하는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의견들이 분분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번엔 《신민부》가 단독으로 《송도국룡상》연극과 같은 사회적비판을 받을수 있다고 떠들었다. 이런 속에서 김좌진이도 기운이 꺾였다.

이렇게 되니 오동진의 앞에는 거칠것이 없었다. 그는 회의를 담차게 이끌어나갔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것 같았어도 역시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것이라 학생들의 연극이 있은 이후에도 적잖은 시일이 걸리였다.

이튿날 저녁 오동진은 김성주동지를 초청해서 저녁을 같이하였다. 돌아가신 김형직선생님의 생각이 간절한 때에는 그이만 보아도 좀 나았다.

《자네도 술을 한잔 들게.》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오동진은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저는 술을 못마십니다.》

《쓴 약도 먹는데 술을 못마시겠나. 나는 오늘저녁 생각이 많아지네. 무엇인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일세. 그렇지만 지난날같이 운동을 하려는 생각은 아닐세. 자네 엄친께서도 이야기를 듣고 또 자네가 하는 운동도 보아왔으니만큼 나도 결심을 새롭게 가졌네. 난 자네를 달리 봐.…》

《선생님, 어서 드십시오.》

《그럼 혼자 마시겠네.》

오동진은 술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술을 마시고는 얼른 손수건을 눈구석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이였다. 오동진이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유상조가 단장을 휘저으며 숨이 차서 찾아왔다.

《아니, 언제 돌아왔소?》

《어제 밤차에 돌아왔습니다.》

《허허, 거 쉬 다녀왔군.》

오동진은 자던 자리를 개며 말했다. 유상조는 서울에 있는 대부호인 최민학이가 장춘에 와서 체류중에 있다는 소식이 있으니 자기가 가서 한번 만나보고 오겠노라고 했다. 그는 최민학과 잘 아는 사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기만 하면 거액의 독립자금을 모연해낼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리갑무로인과 오동진은 가보는게 좋겠다고 하였다. 리갑무로인은 자기에게 있던 모젤까지 꺼내주면서 조심히 다녀오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것이 유상조의 흉악스러운 계략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오동진은 유상조가 장춘에 다녀온줄로만 알았다. 그는 장춘에 갔다온것이 아니라 봉천에 다녀왔다.

봉천에 가서 재차 《조선총독》의 지령을 받고 넘어온 구니하라를 만나고 돌아온것이였다. 구니하라는 지금 봉천에 와서 잠복해있으면서 먼저번 쓴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장작림군벌의 힘을 빌지 않고 직접 자기들이 손을 대기로 계획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구니하라를 만난 유상조는 리갑무로인과 오동진을 체포하기 위한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놓고 돌아왔다.

《그래 어떻게 되였소?》

《만났습니다. 만났는데 좀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요?》

오동진은 담배를 붙여물며 유상조를 쳐다보았다. 유상조는 아침 일어나는길로 온것 같은데 넥타이도 단정히 매고 머리에 기름칠도 했다.

《최민학이 지금 장춘병원에 입원해있습니다. 만주에 무슨 무역관계로 자기 상회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인후가 부어서 목구멍수술을 하느라고 병원에 입원해있더군요.》

유상조는 권연 한대를 붙여물며 흔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권연에 불을 붙이는데 손가락하나 떨지 않았다.

《그래 병원에 가서 만났지요. 만나니 아주 반가와 덥석 끌어안더군요. 아직 목을 채 치료하지 못해서 반벙어리소리를 하면서, 허허허. 그래서 그 이야기를 직방으로 들이댔지요. 그 사람도 벌써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한다는건 서울에서 다 알고있었노라 하더군요. 그것만 아는게 아니라 3부통합회의 소식도 다 알구있습디다. 좌우간 길림소식은 인차 서울로 들어가는것 같습디다.》

《그럴테지. 조선사람들이 관심이 없을수 없지.》

《그래서 이야기를 하니까 좀 신중해집디다. 돈문제니까 아무리 상회를 하고 금광에서 노다지를 캐내고 하는 부자라도 거금을 요구하니 그러질 않겠습니까?》

《그릴수 있지.…》

《첫날엔 그저 좀 생각해보자고 하면서 그이상 아무 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려관에 나와 자구 이튿날 또 찾아들어갔지요. 그런데 이튿날도 무거운 낯빛을 하고 앉아서 종시 무슨 말이 없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실패하는가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분해서 견딜수가 있어야지요. 그저 품속으로 손이 쑥 들어가는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유상조는 손길을 쭉 펴서 리갑무로인이 준 모젤이 있는 품속에다 찔렀다내며 말했다.

《그런데 사흘만에 들어가니까 태도가 좀 다릅디다. 사람이 신중하긴 신중하더군요. 자기도 조선사람인데 어떻게 청을 거절할테냐고 합디다. 그러면서 또 자기가 독립자금을 내놔도 어느 조그만 부자처럼 내놓을수 없다는것도 아노라고 하더군요. 그 소릴 들으니 숨이 좀 터져나옵디다. 이 맛에 독립운동을 하는것 같더군요, 하하하.》

유상조는 오동진의 무릎을 두드리며 웃었다. 오동진의 입가에도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적극적으로 달라붙었지요. 돈을 따내는바엔 좀 톡톡히 따내려고… 그런데 이자의 말이 자기처럼 거금을 내놓는 사람이 어떻게 독립운동의 령수들과 일면식도 없이 푸른 소에 돌던지듯 하겠느냐고 하는거지요. 그래서 내가 못미더워 그러느냐고 하니까 믿기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는겁니다. 하긴 최씨의 말이 지당한 말이기도 하지요. 가만히 보니까 보통돈을 내놓으려고 하는것 같질 않습디다. 벌써 령수를 만나보겠다 어쩌겠다 요청하는걸 보면… 그래서 내가 정 소원이 그렇다면 령수를 만나보게 하자고 했지요. 그것쯤 무엇이 그렇게 힘들 일이겠느냐고 말해주었지요.》

오동진은 대꾸가 없이 듣고만 있었다.

《선생님, 이런 기회를 놓쳐선 안됩니다. 이런 기회에 버쩍 달라붙어서 최씨의 재산을 한절반 갈라다가 써야 합니다. 제가 보건댄 그럴 희망이 보입니다. 조선의 갑부인데 재산의 절반이면 얼마입니까? 그러니 아무래도 리갑무선생과 오선생이 저와 함께 장춘으로 동행하셔야 하겠습니다.》

오동진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앉아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귀밑은 펄떡펄떡 뛰였다. 자금이 없이야 당장 무슨 일을 하겠는가? 우선 학교설립안만 보더라도 자금이 없이는 될수 없다. 한구에 하나씩 소학교만 내오려 해도 막대한 자금이 든다. 거기에 중학교까지 몇개 세우려고 하니 자금이 얼마나 들텐가. 이런 교육자금정도의것은 최민학의 재산속에서 몇십분의 일만 떼내와도 될수 있을것이였다. 그런데 최민학의 재산을 절반 갈라내다니? 유상조의 말을 절반 에누리해서 듣는다 해도 가슴을 흔드는 소리가 아닐수 없다.

오동진은 후들거리는 손으로 담배를 또 한대 붙여물었다.

《리갑무선생은 감기로 누워있으니 내가 가겠소. 내 혼자 가서 안되겠소?》

《리갑무선생도 어떻게 움직일수 없을가요?》

《로인을 어떻게 움직이겠소. 리갑무선생의 친서나 한장 얻어가지구 우리 둘이 떠납시다.》

이리하여 오동진이와 유상조는 그길로 리갑무로인을 찾아가서 최민학이에게 친서를 한장 쓰게 했다. 리갑무로인은 사시나무 떨듯 하는 손에 붓을 쥐고 앉아 정중한 문체로 최민학에게로 가는 편지를 썼다.

이날, 오동진이와 유상조는 장춘방향으로 가는 렬차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흥륭산역에서 내려 마차를 타고 장춘까지 가기로 약속하였다. 이것도 역시 유상조의 각본에 의한것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장춘역은 군경들의 조사가 심하고 공기가 삼엄해서 재미가 없다는것이였다. 흥륭산역에서 한정거장 더 가면 장춘역이다. 그런즉 한정거장앞에서 차를 내려 마차편으로 장춘시내로 들어가자는 유상조의 방안은 오동진의 생각에도 그럴듯해보였다.

그는 최민학을 어떻게 다루어야 그의 재산 절반을 모연해낼수 있을가고 골똘히 생각했다.

기차가 장춘역가까이를 달릴 때에는 저녁해가 지평선우에 시뻘겋게 올라앉아있었다. 지평선이 아니라 검푸른 구름바다같은 계선우에 커다란 불이 올라앉아 벙글벙글 웃고있었다.

《선생님, 권총을 어데다 간수했습니까?》

《품속에 감추었소. 어째 그러우?》

《수색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깊숙이 감추십시오. 혹시 정거장에서 수색할지도 모르니까요.》

흥륭산역가까이 올수록 유상조는 이런 소리를 하며 승강대로 들락날락했다.

오동진이 탄 기차는 씩씩거리면서 흥륭산역에 들이닿았다. 이 대륙의 어느 철도간선에서나 쉽사리 맞다들수 있는 작고 초라한 역건물이 차창너머로 내다보이였다. 홈에서는 빈 화차방통들을 등지고 여라문명의 승객들이 초조하게 서성거리고있었다. 오르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오동진은 단장을 들어주는 유상조의 손이 떨리는것을 유심히 살피였다.

(담이 개담만도 못한 인간이로군.)

오동진은 속으로 유상조를 꾸짖었다.

그는 유상조를 따라 승강대로 나왔다.

둘이 다 단장들만 짚고는 홀개바람인 행색이였다. 오동진은 승강대로 치닫는 찬바람을 받자 외투깃을 세웠다. 그런데 유상조는 오동진이야 내리든말든 승강대를 성급히 내려가느라고 단장 쥔 손을 들어서 허우적이였다.

그제야 오동진은 유상조의 태도에 재차 주의가 갔다. 아무래도 이상한것 같아 얼른 품속에 있는 권총을 꺼내 손쓰기 빠르도록 외투주머니에 찔렀다.

그리고는 사람들속에 섞여 겨우 승강대를 내렸다. 차에서 내려보니 유상조는 벌써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이놈이 정말 이상한 놈이로구나.)

오동진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이 좀 성글어진곳에 나섰다. 그러는데 아니나다를가 웬 키큰놈 둘이 달려들어 덮쳤다. 놈들은 오동진의 팔을 하나씩 잡아비틀려고 했다. 또 한놈 달려드는데 그놈은 포승으로 묶으려고 했다. 오동진은 잽싸게 오른팔목을 거머쥔 누런 안경 쓴놈의 사타구니를 발길로 걷어찼다. 벌써 유상조의 행동을 보고 마음속을 다잡고있던차이라 순순히 붙잡힐 차비는 안했다.

발길로 또 한번 내차자 놈은 땅바닥에 태를 치며 넘어갔다. 오동진은 번개같이 권총을 뽑아들고 이놈저놈 갈겨눕혔다. 왼팔목을 거머쥐였던놈도, 포승을 가지고 달려들던놈도 모두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놈의 새끼, 이렇게 하자구 나를 여기 끌고왔어? 어디로 갔느냐? 이 일본놈의 개가?…》

숨이 차서 부르짖으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사복경찰은 쏘아눕힌놈들뿐 아니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수십명이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놈들은 손을 들라고 웨쳐대면서 한걸음한걸음 오동진이쪽으로 죄여들고있었다.

바로 그놈들뒤에 유상조가 단장을 짚고 서서 헐떡헐떡하며 이편쪽을 바라보고있다. 오동진은 유상조를 마주 쏘아보며 두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이 더러운 개!》

오동진은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피가 고인 역구내를 한걸음한걸음 걸어서 유상조한데로 다가갔다.

《내 진작 네가 일본놈의 개인줄 알았더라면 네 몸뚱아리를 찢어서 까마귀밥을 했으련마는…》

오동진이 권총을 들어 유상조를 겨누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를 포위한 사복경찰들이 총을 란사했다. 총알이 여러알 오동진의 다리를 뚫었다. 오동진은 밑둥 잘리운 나무통같이 땅바닥에 태를 치며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유상조를 겨누었던 권총은 놓아버리지 않았다. 그는 권총 쥔 손을 우들우들 떨며 머리를 우쩍 들었다. 옷이 온통 피에 젖고 량미간으로도 붉은 피가 고랑을 지으며 흘러내린다. 그는 피가 랑자한 땅바닥을 다섯손가락으로 그러쥐며 용을 썼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세울수 없었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목도 척척히 젖었다.

《통분하고나! 내가 이렇게 붙잡힌단말이냐?》

오동진은 울음이 터졌다. 그러자 문뜩 김성주동지의 영상이 떠올랐다.

《여보게, 난 자네를 따르려고 했네. 자네에게서 창업주의 기상을 보았단말이야. 그랬건만 나는 그 만민이 평등으로 산다는 새 사회의 문턱에 가보지도 못하고 이 지경이 되였네. 분하이, 분하이!》

오동진은 주먹으로 땅을 쳤다. 경찰놈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덮치려고 했다. 그러자 오동진은 머리를 흔들며 또 용을 썼다. 그러더니 어떻게 했는지 몸을 들고 우쩍 일어섰다. 비쳐오는 석양이 그의 체구를 장엄히 물들였다. 그는 대지를 힘주어 디디며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나갔다. 그의 외투자락이 금빛 갑옷처럼 펄럭인다.

 

3

 

오동진의 체포는 길림에 있는 모든 조선사람들의 슬픔을 자아냈다. 리갑무로인은 오동진의 불행과 함께 또 한장의 비보를 받고 그만 기절했다. 《참의부》의 심룡준을 비롯한 몇사람이 통화현쪽으로 나가다가 또 일본놈의 손에 잡혔다는것이였다. 고원암, 김사헌들이 의사를 불러들인다 어쩐다 하여 실신한 리갑무로인을 겨우 정신차리게 했다. 로인은 장춘으로 파견되였던 독립군 두사람이 봉천까지 유상조를 미행해들어가 어느 려관방에서 놈의 심장부에 칼을 박아놓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해도 그저 말없이 이를 갈며 누워있었다.

김성주동지께서도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나가시였다. 결국 독립군들의 세대는 피에 젖은 싸움은 했으나 불행한 종말은 피하지 못하고있다.

그이의 눈앞에는 3부통합회의의 어지러운 장면이 떠올랐다. 그 어지러운 싸움판을 그래도 바로 이끌어보겠다고 얼굴을 붉히고 소리치며 땀을 흘리던 오동진이였다. 자리다툼으로 일관된 민족주의운동자체는 배격해야 하겠지만 거기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길로 들어서려고 모대기던 그의 반일애국정신과 뜨거운 정열이야 어찌 나무랄수 있겠는가.

김성주동지께서는 하숙에서 책을 보다가도 가슴아픈 생각에 잠기군하시였다.

어느날 아침 그이께서는 방학이 되여 무송으로 떠나시던 길에 오동진네 집에 들리시였다. 집은 안팎이 썰렁하였다.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내려온 오학천은 안방에 자리를 펴고 누워있었다. 그는 김성주동지께서 들어가시자 침통한 낯빛으로 일어나앉았다.

《몸이 불편해서 누워있소?》

《몸두 불편하오.》

《서울에 가서 몸이 퍽 약해진것 같구만.》

《약해질밖에 없지. 무송어머님은 건강하시오?》

《건강하시다오.》

그이께서는 정지방으로 내려가시였다.

오순희도 울고 그의 어머니도 울었다.

《우지들 마십시오. 인젠 울음들을 거두구 굳세게 살며 일본놈을 칠 각오를 더 튼튼히 다져야 합니다.》

《자네 말이 옳네. 강심을 먹고 붙잡힌 사람을 대신해서라도 독립운동을 더 잘 도와야지.》

순희어머니는 얼른 눈물을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순희는 구석에 돌아앉아 얼굴을 싸고 자꾸 울었다.

그이께서는 도로 웃방으로 올라오시였다.

《인젠 기운을 차리시오.》

《고맙소.》

오학천은 후유 한숨을 지었다.

《아버지의 불행때문에 너무 상심하고있는것 같소. 그래선 안되오. 더 기운을 내서 투쟁할 생각을 해야 하오. 우리앞에는 준엄한 싸움이 있을뿐이요. 고민이 그 싸움을 해결하는건 아니요. 기운을 내시오. 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싶었소. 인차 서울로 떠나겠소?》

《당분간 떠나지 못하겠소.》

《그럼 내가 무송에 갔다와서 다시 만나겠소. 어머니한테서 방학에 왔다가라는 편지가 왔기때문에 오늘 무송으로 떠나오. 갔다오면 서울이야기를 들려주오. 서울로 떠나갈 때에는 중요한 문제들을 놓고 고민이 많았는데 서울이 어떤것을 보여주었는지 그것도 알고싶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오학천이와 한참동안 이런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였다.

식구들이 모두 따라나갔다. 오학천이도 누이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따라나섰다.

《집에 가거들랑 어머님께 안부를 잘 전하게. 가깝기라도 했으면 좀 좋겠나.》

오학천의 어머니가 또 각별한 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이께서는 아무쪼록 상심을 말고 모두들 왜놈과 싸울 생각을 하라고 또 한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오학천의 손을 굳게 잡아흔드시였다.

그이께서 떠나가신 다음 오학천은 도로 안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몸이 노그라져들어갔다.

《아니, 어데가 아프게 신색이 그렇게 돼가니?》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아픈데는 없습니다.》

《그래두 몸이 그렇게 상하질 않았느냐. 서울에서두 그랬느냐?》

《서울에서도 그랬지요.》

어머니는 아들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러면서 딴 손으로는 아들의 손도 잡았다.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는 잘되느냐?》

《잘됩니다. 길림에서 공부하는것보다야 낫지요.》

아들도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인제는 주글주글한 가죽과 피줄만 남은 손이였다. 한생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고생한 손이다.

그 손을 볼에 문대며 울고싶었다.

《의사를 좀 불러와야겠다.》

《의사는 무슨 의사입니까.》

《그래두 몸이 이렇게 상해가는걸 보고 그냥 있겠니.》

《그냥 두십시오.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어머니는 대꾸가 없이 아들의 푸른 눈언저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이어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오학천은 눈을 감으며 또 한숨을 지었다. 그저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내려가는것만 같다. 사방이 캄캄하고 한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다. 귀에는 서울의 아우성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 지난 여름 서울로 올라간 오학천은 아버지가 시키던대로 려관업자 심창도를 찾아가서 그의 주선으로 어느 전문학교에 들어갔다. 하숙도 심창도의 려관에 정하였다. 심창도는 본시 민족주의운동을 하던 사람인데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서는 려관업을 했다. 공부를 하려고 서울에 온 오학천이가 아니였던만큼 그는 심창도에게 서울에 어떤 독립운동단체들이 있는가 하는것부터 물었다.

《독립운동단체? 어떤 단체를 찾나?》

《아무 단체도 없습니까?》

《허허허.》

심창도는 웃고나서 말을 이었다.

《자넨 지금 청년기분으로, 마치 우리가 <보호조약>직후에 목숨을 내걸고 날뛰던 때처럼 무얼 찾고있네만 그렇게 덤벼선 안되네. 우선 착실히 공부나 하게.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이 단체가 없어 못싸우겠나?》

심창도는 무슨 의미인지 이런 말을 하고는 얼른 일어서 단장을 짚고 절뚝절뚝 뜰로 걸어나갔다.

그는 감옥안에서 놈들의 매를 맞고 다리병신이 된 사람이였다. 오학천은 심창도와의 첫 이야기에서 어쩐지 기가 꺾였다. 그러나 그는 좀더 서울형편을 알아보려고 애썼다.

그는 어느날 소위 연정회라는 조직을 무은 민족주의거두 장인욱을 찾아서 북악산밑에 있는 그의 저택으로 갔다. 궁궐같은 큰 집이였다. 장인욱은 오동진의 중학때 은사였다. 그는 오학천을 만나자 감회깊게 옛일을 회상하며 이것저것 안부를 물었다.

오동진의 현재생활과 그의 독립운동이 화제로 되자 장인욱은 매우 랭담하고 부자연한 표정을 하였다. 3부통합을 해야 용빼는 수가 없다는것이 그의 주장이였다. 오학천은 그것이 마음에 거슬려 잠자코 앉아서 듣기만 했다.

세파에 닦이우고 처세에 능란한 장인욱은 이런 경우에도 역시 제 할일을 다하였다. 우선 그는 자기 주변에 종잡기 어려운 청년이 하나 나타났다는것과 그로 인해 자기의 생활에 어떤 영향이 오지나 않을가 해서 그러는지 묻지도 않는 말을 내놓으면서 자기의 립장을 밝혔다.

배우는 사람은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 동맹휴학이요, 사상운동이요, 더구나 사회주의요, 뭐요 하는것은 염통에 바람든 놈들이 하는 수작이다, 그 어떤 힘도 이제는 일제를 당해낼수 없게 되였다, 강약이 부동이다, 그러니 이제는 독립같은것은 바랄수 없고 기껏해야 민족자치정도이면 족하다, 지금 형편에서 교육과 산업만이라도 제것으로 할수 있는 정도이면 고작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볼 필요도 없다. 이런 말을 하였다.

오학천은 정수리를 되게 얻어맞은것 같은 타격을 받고 장인욱의 집을 나섰다.

이것이 조선의 현실이라면 현실은 너무나 참담한것이였다. 길림은 그래도 들끓고있다. 이렇게 시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학천은 절망에 빠지고싶지 않았다.

일요일이면 모두 창경원이다, 정릉이다, 자하문밖이다 하고 떠들썩하였지만 그는 하숙방에 누워서 거미줄이 그네를 뛰고있는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였다.

하루는 동급생 한창복이와 함께 그의 아버지 한윤을 찾아갔다.

한윤은 《상해림시정부》 어느 부서의 차장까지 지낸 사람이고 한때는 만주에 있는 광복군사령부를 돕기 위해 상해에서 밀선에 무기를 싣고 서해의 거친 파도를 건느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의 청년시절의 동료였다. 그가 지금 서울에서 물산장려와 자작회운동을 하고있다.

한창복은 집으로 가기전에 《국산품전문판매》란 간판을 단 상점으로 오학천을 데리고 들어갔다.

상점의 상품 전부가 국산품이였다. 고무신, 양말, 한지, 먹, 붓, 대광주리, 거울, 온갖 잡화가 다 《자작품》들이였다. 편직물부로 넘어가니 거기도 모두 국산품이다. 여러 지방에서 짜낸 비단들과 명주, 베, 베도 가는 새로 짠 베, 굵은 새로 짠 베가 그득그득 쌓여있었다. 아이들의 색동옷도 만들어 걸어놓고 댕기, 대님, 별게 다 있었다. 유기부로 가니 거긴 온통 놋그릇천지다. 밥바리, 대접, 새옹, 신선로, 초대, 향로, 지어는 갖가지 술잔도 있다. 도기부까지 다 돌아보고나니 꽤 시간이 걸렸다.

《허허허, 하여튼 재간은 있네. 그래두 저걸 다 제손으로 만들어냈으니…》

오학천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말했다.

《가만 좀 있게. 내가 조선청년으로서 여기 들어왔다가 거저 나갈수야 있나? 뭐든지 하나 사가지고 가야지.》

그는 도로 잡화부로 들어가 자루달린 딸랑방울 하나를 사고는 한창복이와 함께 상점을 나섰다.

《여보게, 자네 아버지를 만나서 뭘하겠나. 한강에 나가서 바람이나 쏘이세.》

《그래두 우리 아버질 만나뵈야지. 내가 이야기를 해놓았으니까 기다릴걸세.》

《바쁘실텐데 그만두겠네. 아버지가 묻거든 그 사람이 상점에 들려서 조선독립하는 기구를 하나 사가지고 갔다고 이르게.》

《조선독립하는 기구란 무슨 소린가?》

《이게 조선독립하는 기구 아닌가?》

오학천은 딸랑방울을 꺼내서 흔들었다.

《에키, 이사람.》

한창복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의 등을 갈기며 웃었다. 이날저녁 둘이는 한강가로 나가서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해외로 가야 하느냐 국내에 있어야 하느냐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창복이도 자기 아버지의 운동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청년이였다. 그는 오학천이 사가지고 나온 방울을 흔들며 이것을 한번 흔들면 《애국애족사상》이 나오고 또 한번 흔들면 《자치운동》이 나오고 《경제개발》이 나오고 《민족개조론》이 나오고 《수양동맹》이 나온다고 하면서 비웃었다.

어쨌든 이 일도 오학천에게 또 하나의 호된 타격으로 되였다. 그러나 서울은 그에게 비관만을 준것이 아니였다.

심창도네 려관은 저녁때가 되면 손님들이 들끓었다. 손님들은 마루우에서 장기를 두고 이야기판을 벌리고 하였다.

그런데 이 려관에는 심창도 내외간이 신중히 마음을 쓰는 려관업 아닌 려관업이 따로 있었다. 살림방들과 사무실 그리고 오학천의 방이 있는 안채의 뒤쪽으로 곁붙은 방들이 바로 그런 일에 쓰는 방들이였다.

심창도는 이 뒤방들에는 아예 딴 손님을 받지 않고 사회운동자들에게 제공해주었다. 이 방들로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운동자들, 혹은 국외에서 들어오는 운동자들, 서울에 있는 운동자들도 모여오군하는데 민족주의자들보다 사회주의자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이 방들을 숙박소로도 쓰고 어떤 때는 회의장소로도 썼다.

어느날 저녁 이 방들에는 사회주의자들이 가뜩 모여들었다.

한쪽방에는 조선공산당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다른 한쪽방에는 로동총동맹 지도자들이 가뜩 모여와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들에는 무슨 광산파업문제때문에 시골에서 올라온 로동자대표들이 십여명 들어있었다. 공산당지도층이 모인 자리에는 조청산도 섞여있었다. 바로 해란강버들방천에서 《야체이까》책임자들의 강습회를 중지하고 길림에 와서 국제당에 갔다온 사람을 만나보고 서울로 올라온 때였다.

이날저녁 뒤방들에서는 무슨 론쟁을 하는지 그냥 떠들어댔다.

심창도는 오학천이 있는 방에 올라와 안절부절 못해하며 서성거렸다.

《자넨 사회주의를 어떻게 보나?》

《네?》

《사회주의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말일세.》

오학천은 어리둥절해서 대답을 못했다.

《나도 사회주의라는것을 모르네. 그리고 나자신이 그걸 부도덕한 주의라고 배격도 해왔네. 그러나 우리가 사회주의라는것에 대해서 고쳐 생각해야 할 때가 온것 같네. 그것이 부도덕하고 나쁜것이라면 세상이 이렇게 들썽거릴리가 있겠나. 우선 로씨야민족이 그 주의가 좋기에 받아들여가지구 혁명을 했지.…》

《그거야 레닌과 볼쉐위크당이 한것이지 어디 로씨야민족이 한것입니까?》

《하하하, 레닌과 볼쉐위크당두 민족의 힘을 동원해가지고 했지 어디 한 개인이나 한 당의 힘으로 했나?》

심창도는 절뚝절뚝 방안을 거닐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학천이 보기에는 오늘저녁 뒤방에 사회주의자들이 와서 들끓으니까 무슨 변명을 하고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글쎄 그것이 모를 일이라고 생각되는것입니다. 로씨야민족이 진정으로 그 주의를 받아들였는지, 그래서 진정으로 동원됐는지 그거야 누구도 모르는것 아닙니까? 언제든지 진리란 이긴 사람들의 편에 있습니다. 이기고나서 진리라고 하면 진리로 되는것이지요.》

《그건 지나친 편견이야. 우리는 사회주의가 어째서 지금 세계사조로 등장하고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치지 말구 생각해봐야 하네. 지금 세계 각국에서 사회주의운동이 일어나고있네. 중국에선 공산당과 손문이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국공합작을 했네. 이 제반사실이 무얼 말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란것이 절대로 무시할수 없는 사상이고 큰 힘을 가지고 번성한다는것을 말하지 않나? 여기에 무어가 있단말야. 인류가 공명하지 않을수 없는 무엇이 있단말야.》

심창도는 사뭇 흥분해서 중얼거렸다.

오학천은 아무 대꾸도 안했다. 그는 심창도의 사상이 적지 않게 사회주의에 기울어지고있다는것을 느끼며 민족주의운동을 하던 그가 어떻게 그러한 사상으로 기울어질수 있을가 하고 이상히 생각하였다.

이날밤, 밤이 적지 않게 들어서 뒤방에서는 웬 울음소리가 들려나왔다. 심창도와 오학천은 급히 뒤방으로 들어가보았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라고 하던 사람들은 언제 다 나가버렸는지 한사람도 없고 지방에서 올라온 로동자대표들만이 퇴마루에서 술렁거리며 떠날 준비를 하고있었다.

그들속에서 한 로동자가 주먹으로 퇴마루를 치며 울고있었다.

《아니 왜들 이러시오?》

《네, 저희들은 볼일을 다 보고 밤차로 내려갈가 합니다.》

심창도의 묻는 말에 짐을 꾸리던 구레나룻로동자가 대꾸했다.

《그래 파업문제때문에 올라왔다더니 무슨 대책이 세워졌습니까?》

《대책이 무슨 대책이겠습니까. 서울지도층을 믿는것이야 개아들이지 사람의 아들이겠습니까.》

로동자는 보짐을 싸며 대꾸했다.

《선생님, 선생님도 사회운동가라지요? 그런데 우리 조선에 사람이 이렇게도 없습니까? 우리를 살길로 인도해줄 령도자가 이렇게도 없습니까?》

앉아서 울던 로동자가 주먹으로 마루를 치며 심창도에게 하소연했다.

심창도는 경풍이 난것 같이 다리를 떨었다.

《선생님, 우리가 인제 어떻게 삽니까? 두달 가까이 뻗치다가 인젠 모집해온 깨기군들한테 일자리까지 빼앗기구 파업은 망하구 오백여명 광부가 수천명 가솔을 거느리고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인제 어데 가야 벌어먹습니까?》

그러자 옆에서 구레나룻로동자가 쏘아붙였다.

《듣기 싫소! 우는소리 한다고 누가 도와주는것 봤소? 우리 손으로 살길을 찾아야지.》

그러거나말거나 울던 로동자는 제 할 소리만 한다.

《선생님, 글쎄 우리가 이때까지 이런걸 먹고 싸워왔습니다. 이게 사람이 먹을수 있는 음식입니까?》

그 로동자는 자기 보짐을 풀더니 시꺼먼 돌덩이같은것을 하나 심창도의 손에 쥐여준다. 정말 돌덩이였다. 송피와 수수겨로 반죽을 해서 만든 떡인데 오는동안에 말라서 돌보다도 더 굳어졌다.

《글쎄 수천명 가족이 이걸 먹고 살아오며 파업이 이길걸 고대하고있었지요. 그런데 파업은 망했습니다. 이게 더러운 판 아닙니까? 우리 지방 로총지부라는데 있는자하고 서울서 내려가 파업을 지도하던 저, 저 정상묵이라는자하구는 파벌이 다른것 같습디다. 그래서 파업이 실패로 비틀려나가고있는 모양인데 이런 통분한 일이 어데 있습니까?》

로동자는 또 주먹으로 마루바닥을 꽝꽝 치며 심창도가 로총지부 지도자이기나 한듯이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실지 이 로동자들의 광산에서 파업을 조직한것은 로총중앙에서 내려간 정상묵이란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 파의 영향을 확대하기 위해서 광산파업을 조직해놓고는 사태가 험악해지자 서울로 뛰여올라왔다. 지방의 로총지부 지도층은 정상묵의 파를 깔아뭉개기 위해서 정상묵의 파가 손을 댄 파업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 립장을 견지하고있었다.

그러니 그 틈바구니에서 녹는것은 파업에 들어간 로동군중이였다. 문제를 서울로 들고 올라왔으나 서울로동총동맹내에서도 량파의 알륵이 심해서 파업투쟁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말았다.

《자, 인젠 그만두고 어서 보짐을 지고 떠나세. 우리끼리 내려가서 로총지부에 있는자들도 두드려없애고 일을 일구잔말이야. 그자들은 아예 간섭을 못하게 하구 우리 힘으로 로동단체들을 다 들어일구세. 군에 있는 로동단체들만 해도 적은가? 우차부조합, 점원조합, 그다음 또 제사공장도 쑤시잔말이야.》

한 로동자가 보짐을 지고 일어서며 이렇게 웨쳤다. 뒤따라 로동자들이 모두 우실거리며 일어섰다. 웨치던 로동자는 말을 계속했다.

《무서울게 뭔가? 지금 모집해온 깨기군들도 일을 하느니마느니 의견들이 분분한데 우리가 그들한테로 좀더 가깝게 다가가서 손을 잡아보잔말이야. 그 사람들도 조선의 로동자들인데 아무렴 우리를 광산에서 쫓겨나도록 만들겠나? 어떻게 하든지 로동군중의 힘을 합쳐 경찰과 회사를 둘러싸구 해봐야겠네. 죽을 각오를 한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나.》

로동자들이 모두 차비를 하고 나섰다.

《선생님, 이래도 사회주의를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동자들을 배웅하고 들어온 오학천은 심창도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회주의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저런 로동자들을 다 내버리고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 사람들이지 사회주의는 아니네.》

《아닙니다. 사회주의운동자체가 저런것입니다.》

《글쎄 아닐것이네. 나는 아닐것이라고 생각하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오학천은 떠나간 로동자들을 생각하며 한참 맥을 놓고 앉아있었다. 그는 로동자의 보짐에서 쥐여낸 검은 떡덩이 하나를 책상우에 놓고 보았다. 그는 그것을 자기가 먹을 생각을 해보았다. 기가 막혔다. 이런것을 늙은이들도 먹고 어린애들도 먹을게 아닌가. 어린애들이 이것을 먹고 어떻게 견딘단말인가? 위가 말가죽같아도 삭여낼수 없을것이다. 이것이 그 연한 밸속을 훑어내려가며 얼마나 고통을 줄터인가.

오학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자기 주머니에 돈 5원이 있는것을 로동자들의 손에 쥐여주지 못한 생각이 들어 부리나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골목길을 급히 걸어서 번화한 밤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로동자들은 어느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전차정류소에도 로동자들은 없었다.

《갔구나.》

오학천은 실망해서 어깨를 낮추고 한참이나 서있었다. 그는 이런 일이 있은 뒤로는 자주 조선의 핍박한 현실문제에 생각을 멈춰세우군했다. 그는 두어깨가 더욱 처져서 학교로 나가고 들어오고 하였다. 그런데 한달뒤 어느날 밤이였다. 이날밤에도 려관뒤방에 사회주의자들이 모여있었는데 불시에 왜놈경찰이 달려들어서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앞뒤로 덮어치며 호각을 불고 총을 쏘고 하였다. 그런데 뒤방에 있던 사회주의자들은 담을 넘어뛴다, 객방으로 숨어들어간다 하여 몇명 안잡히고 심창도와 오학천 그리고 앞객방 양복쟁이들이 여러명 붙잡혔다. 오학천은 아연했다. 그는 경찰서 류치장에서 지독한 고초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놈들은 매일 끌어내다가 물을 먹이고 부절로 지지고 사지를 비틀군하였다.

놈들은 오학천을 사회주의자로 보고 어느 파이냐고 묻기도 하고 조선공산당과 어떤 관계를 맺고있으며 누구의 지령에 의하여 어떤 일을 어떻게 하였는가고 물었다. 몸뚱이가 큰놈이 배를 타고앉아서 긴 손가락으로 코를 쥐고 입을 오그리면서 고추가루물을 따라넣었다. 오학천은 옹근 한달동안 졸경을 받다가 놓여나왔다. 려관에 나오니 심창도는 기소된다고 하였다. 려관은 영업허가를 떼우고 손님도 받지 못하였다. 그래도 대범한 심창도의 마누라는 오학천의 신색을 보더니 펄쩍 뛰면서 보약을 지어온다 어쩐다 하며 서둘렀다. 이렇게 한창 치료를 하고있는데 아버지가 붙잡혀갔다는 전보가 날아들었던것이다.

결국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은 그 무슨 악몽을 겪은 고장과 같이 떠오른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뒤범벅이다. 장인욱의 은실머리카락의 대머리가 떠오르는가 하면 한창복이와 함께 한강 풀밭에서 흔들던 딸랑방울이 떠오르고 자기에게 고추가루물을 들붓던 형사놈의 주독코가 떠오르는가 하면 로동자들의 보짐에서 쥐여낸 떡덩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모든것이 때로는 한데 엉켜서 빙글빙글 돌아가기도 한다.

확실히 서울은 나의 체험세계에 깊은 자국을 찍어놓은것이 있다. 나의 정신세계를 뒤흔들어놓은것이 있다.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 강렬한 이야기를 해주고있다. 나의 생활과 전도를 위해서 무엇인가 큰 의의를 가지는 그런것을 말해주고있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인가? 왜 이렇게 머리가 정돈되지 않는가? 김성주동무의 말이 옳지 않았던가! 그 말이 진실을 말하는것이 아니였던가. 조국의 현실과 고통을 알고 조국이 무엇을 달라고 부르짖는지, 짓밟힌 동포들의 사무친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고 사람들이 주장하는것을 알아야만 나갈 길을 찾을수 있다고 하던 그 말이 천백번 옳지 않은가! 내가 조선청년으로서 나라를 구하고 조선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싸우려고 한다면 어떻게 이 현실의 참혹상과 혼란과 뼈를 긁는듯한 수없는 심각한 문제의 산더미, 그 산더미를 떠나서 달리 나아갈 길을 찾을수 있겠는가?

《우리는 비록 서로 다른곳에서 출발한다 해도 어차피 이 시대에 살며 이 현실에 발을 붙이고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참된 애국심과 민족애를 가지고있고 조국의 운명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누구나 똑같은 하나의 리념에 도달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독립운동의 이런저런 리념이란 결국은 조국과 이 시대가 제기하는 문제를 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답일것입니다.》

자기를 붙들고 그처럼 진정으로 타일러주시던 김성주동무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히 울린다. 결국 자기는 그 리념에 도달한것이 아닌가. 그러면 나는 인제 어데로 나아가야 하는가? 김성주동무를 따라서 사회주의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주의, 내가 그처럼 에돌며 피했던 사회주의! 그것을 진심으로 생각해보자! 짓밟힌 로동자들을 구하는것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라고 한다면 그 주의자체야 정의가 아닌가?

오학천은 무엇인가 하나의 커다란것을 발견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명확치 않으나 무엇인가 가장 값있고 가장 보람있고 또는 인간이 가진 지성이라면 드디여는 그렇게밖에 될수 없는 그런 귀일점을 보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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