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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2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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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준비한 연극은 리선엽목사네 례배당에서 올리게 되였다. 그 전날 김성주동지께서는 《복흥태》정미소로 찾아가시였다. 그이께서는 3부통합회의에 참가한 선생들을 위해서 청년들이 연극을 준비했으니 와서 구경을 해달라고 초청하시였다. 모두들 구경을 가겠노라고 하며 좋아들 했다. 최활은 입장료가 얼마냐, 녀배우가 있느냐 하는 롱담까지 하였다. 그날저녁 리선엽목사네 례배당은 초저녁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민족주의거두들은 아직 한사람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는데 소년회 회원, 학우회 회원은 물론 아낙네들, 남정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다 모여들었다. 우마항거리에 구멍가게를 펴놓은 장사치들, 북대가 큰거리에서 포목상을 하는 사람들,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왔다. 장태호며 송춘보는 지금 손님들을 안내하느라고 부산스레 돌아갔다. 그들도 이제는 다같이 김성주동지의 지도밑에서 사회주의편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중에도 송춘보는 아주 열성분자로 되였다. 얼마후 오동진을 위시한 《정의부》의 간부들이 리갑무로인을 앞세우고 례배당에 나타났다. 뒤이어 심룡준이며 김좌진을 비롯한 《신민부》와 《참의부》사람들이 들어섰다. 그들의 좌석은 맨 앞에다 마련했는데 풍석들을 깔아놓고 재털이같은것도 갖다놓았다. 리갑무, 오동진, 심룡준, 김좌진이 앉을 자리들에는 국화꽃을 수놓은 포단까지 내다 깔았다. 그들은 앞에 쳐놓은 막이 그럴듯하다고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연극이란건 한마디로 말해서 예술이야, 예술이란 무언가? 학생들! 예술이 무언질 아나?》 최활은 자리에 앉지 않고 뒤에 있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수작을 걸었다. 그는 학생들과 롱하기를 좋아했다. 말하자면 하나의 인기전술이였다. 최활의 말에 학생들은 모두 웃었다. 얼마후 김성주동지께서 무대우에 나오시였다. 례배당안팎이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그이께서는 3부통합회의에 오신 선생들에게 길림청년학생들의 이름으로 인사를 드린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오늘밤 이 무대우에서 상연되는 노래와 연극은 우리들이 성심성의로 마련한 선생들에게 드리는 꽃묶음과도 같은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말두 잘해, 그럴듯하단말야.》 리선엽의 말이였다. 지금 무대뒤쪽에는 첫무대를 밟을 녀학생들의 합창대가 가뜩 늘어서있었다. 모두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서있다. 그 뒤쪽으로 나가면 큰 버드나무가 선 골목길이 있고 그 골목길끝에 리선엽의 막내딸이 공부하는 방이 있었다. 이 방이 준비실로 되여있었다. 여기서는 또 딴 녀학생들이 노래련습도 하고 경대앞에 앉아 얼굴에 분첩을 두드리기도 했다. 연극에 출연할 박두학, 권태일, 채경이, 조창진이들은 벌써 의상을 떨쳐입고 얼굴에 분을 바른다, 수염을 그린다 하며 법석들 했다. 김혁은 큰 벼루돌에 먹을 갈아놓고 앉아서 수염이나 주름을 그려주고있는데 붓끝을 떨며 손을 얼굴에 가져가다가는 물러서군했다. 본시 무슨 일을 해도 짐작이 많은 사람이여서 수염끝을 처지게 그릴가 들리게 그릴가 하면서 망설이군했다. 《빨리 그리시오, 시간이 급한데…》 《가만있으라구, 수염이란것도 인물의 성격과 특징에 맞아야 해.》 김혁은 시물시물 웃으며 말했다. 그는 흥이 났다. 흥이 나면서도 생각은 자꾸 깊어졌다. 그러나 오늘저녁 생각이 깊어지는것은 그 한사람뿐이 아니였다. 어저귀실로 수염을 만들어붙인 조창진은 신중한 표정으로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그는 오늘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없지 않았던것이다. 월파의 영향밑에서 방황하던 자기도 생각해보고 이런 의의있는 장소에 와서 훌륭한 동무들과 섭쓸려돌아가게 되는 자기도 생각해보았다. 왜 벌써 이 새롭고 참신한 흐름에 합류하지 못했을가? 생각할수록 후회가 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지금 골목길 버드나무밑에서는 연극에 쓸 룡상이 채 되지 않아 외등을 만들어 걸고 기준이와 신동호가 널판장에 뚝딱뚝딱 못을 박는다 대패질을 한다 하며 서둘렀다. 이것은 그렇게 찬찬히 만들지 않아도 될 물건인데 그들은 아예 몇십년을 두고 쓸것 같이 만들고있었다. 《기준동무는 기관구에서 일한지가 오랜가요?》 신동호는 한참 못질을 하다가 불쑥 물었다. 《한 5년 되지요.》 신동호의 묻는 말에 기준이 허리를 펴며 대꾸했다. 《기관구엔 아무나 들어가서 일을 할수가 있나요?》 《아무나 들어갈수 있잖구요.》 《아니 막 받아주느냐말이요?》 《일을 할만한 사람이면 받지요. 누구 일할 사람이 있소?》 《나를 좀 기관구에 넣어줄수 없겠소?》 《아니 동무가 학교엔 안다니구 기관구에 왜 들어간단말이요?》 《학교에 다녀서 무얼 하겠소? 기관구에라도 들어가서 벌어야지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아니요. 나를 좀 들어갈수 있게 해주시오.》 둘이 이런 말을 주고받고하는데 오순희가 골목길로 달려들어왔다. 《됐어요, 가져왔어요. 점순이네 집에서 구했어요.》 오순희는 룡상에 씌울 노란 비단천을 구해가지고 와서 기뻐했다. 신동호는 얼른 비단을 받아서 주르르 폈다. 정말 황금처럼 눈이 부셨다. 《허허, 이것을 씌워놓으면 정말 룡상 같겠군.》 기준이 비단을 만져보며 기뻐했다. 얼마후 룡상이 다 되였다. 신동호와 기준이 룡상을 바로 세워놓자 오순희는 비단을 씌우고 바늘로 듬성듬성 호았다. 《순희동무, 어서 들어가 분장을 하지요, 출연시간이 됐을텐데…》 신동호의 말이였다. 《분장은 무슨 분장을 하겠어요. 그저 나가서 부르죠. 잘하지도 못하는걸… 그런데 요새 집안일이 걱정스럽겠어요.》 《걱정을 하면 소용이 있습니까? 그럭저럭 지내야지요.》 신동호는 오순희의 반듯한 가리마를 바라보며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두사람 다 입을 다물고말았다. 벌써 무대에서는 합창이 울려나왔다. 무너지는것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윽고 노래를 마친 합창대가 우르르 밀려나오고 뒤이어 제5중학교 남학생의 독창이 시작되였다. 《망향가》의 슬픈 곡조를 바이올린의 가느다란 선률이 흐느끼듯 반주했다. 신동호와 오순희는 버드나무에 기대서서 조용히 노래를 들었다. 시간이 촉박해서야 오순희는 얼른 준비실로 들어가 경대앞에 마주앉아서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넘겼다. 그는 입속으로 《푸른하늘 은하수》를 불러보았다. 무슨 일일가? 눈동자굽으로 눈물이 미음돌듯하는것은… 연극에 출연할 배우들은 의상을 다 입고 서서 대사를 외우느라 떠들었다. 권태일은 시를 외우듯 격동되여 주먹을 들었다놓았다 하였다. 공연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민족주의자들은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최활은 그저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오순희는 검은 치마에 흰 적삼을 입고 나가서 풍금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풍금은 리선엽목사의 막내딸이 타는데 부드러운 선률이 오순희의 우아하고 섬약한듯한 목소리를 잘 살려나갔다. 무대우에 이루어진 음악의 세계가 정말 사람들을 은하수가로, 하늘나라로 이끌어가는듯했다. 박수가 일어났다. 례배당안팎이 떠나가는것 같은 소리였다. 오동진은 그저 얼굴이 붉어지도록 웃었다. 밤이 이슥해서 연극이 시작되였다. 막이 열리기전 양푼 두드리는 소리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누가 두드리는지 아마 1분동안은 잘 치는것 같다. 아예 양푼소리로 혼들을 뽑아놓고 연극을 들이먹일 모양 같았다. 양푼소리가 잦아들자 무대뒤에서 설화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이것은 수천년전 이야기도 아니요 수백년전 이야기도 아니로다. 바로 몇해전 송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있었던 일. 송도국은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나라! 해도 달도 그 송도국우에 와서는 아름다운 경개에 취하여 떠날줄 모르고 하늘의 별도 송도국 수풀에 내려와 반디불이 되여 소요하다가 올라가고 하늘의 선녀들은 송도국으로 내려오기 위하여 학이 되기를 원하고 혹은 기러기되기를 원하고 혹은 따오기 혹은 물촉새되기를 원하도다…》 설화자는 송도국의 자랑을 한참 늘어놓는다. 그는 송도국의 오곡백과는 1년에 열네번씩 우거지며 송도국 풀잎에 맺히는 이슬은 향기를 뿜는 구슬이라고 했다. 《유토피아를 연극화한것 같군.》 뒤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설화자의 목소리는 계속되였다. 《…송도국은 나라가 이렇게 좋았으나 민족의 슬픈 력사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되였도다. 그것은 변방의 외적들이 갖은 방법을 다하여 이 송도국을 침략하자고 달려드는 일이로다. 송도국백성들은 피와 뼈를 들판에 뿌리며 원쑤의 발자국이 송도국의 신성한 땅에 찍히지 못하도록 싸우고 또 싸웠도다. 그러나 슬픈 력사는 송도국에서 물러가지 않았도다. 바로 몇년전 송도국에는 가장 큰 싸움이 있었으니 이 싸움에서는 백성도 죽고 임금도 죽고 궁궐도 룡상도 모조리 불타버렸도다. 그러나 이 치명상도 송도국백성들을 굽혀내지 못했나니 기어코 원쑤를 물리친 송도국백성들은 다시 나라를 복구하려고 일떠섰도다. 백성들은 금은보화를 모아 황금룡상을 마련하려고 정승 세사람을 거룩한 성지로 보냈도다. 백성들로부터 중한 소임을 맡은 세 정승은 역사를 엄히 신칙하여 석달열흘만에 마침내 신통력을 가진 진귀한 룡상 하나를 만들어냈도다. 송도국의 새 통치자가 올라앉을 그 룡상에는 순금이 18t 들었으며 한번 앉으면 수만리 앞을 내다볼수 있고 우로는 하늘에 통하고 아래로는 땅속에 미쳐 동서고금에 모르는것이 없고 천지조화를 임의로 부리나니 이 룡상에 앉는자의 행운을 그 무엇에 비기리요. 송도국백성들은 룡상이 다 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저마다 앞을 다투어 길에 나서서 룡상이 오기를 목을 늘이고 기다리나니 그 간절한 정상은 마치 오늘밤 이 자리에 모인 관람자 여러분이 연극을 기다리는 심정과도 같도다…》 《음- 우리가 송도국백성이 된셈이로군. 그럴듯하게 꾸몄는데…》 민족주의자들은 어쩐지 속이 건질건질하여 중얼거렸다. 《아닌게아니라 그놈의 송도국이 꼭 우리 조선과 같군. 룡상이 대궐에 있지 않고 어디서 만들어가지고 간다는것부터가 우리 처지와 비슷하단말야. 한데 그 신통력이 있다는 룡상이 어디서 나타날 모양인고…》 리웅이 아는체하며 껄껄 웃었다. 《하여간 이게 무슨 뜻이 깊은 놀음이요. 잡도리가 여느 사람들의 신파놀음하구는 다르단말이요.》 심룡준이 벌써 설화자의 말에 취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장내가 웅성거리고있을 때 설화자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예로부터 하늘에는 하루도 해가 없는 날이 없고 나라에는 한시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되거늘 한시바삐 새 임금이 룡상에 틀고앉아 어지러운 시국을 평정해주기 바라는 궁중의 문무백관들과 백성들의 안타까운 심정 그 어디에 비기리요. 이에 세 정승은 국상을 치를 걱정은 젖혀놓고 저마다 왕위를 타고앉기 위한 권모술수에 몰두했나니 패를 뭇고 무리를 지어 혹은 끌어당기고 혹은 메치는가 하면 술을 먹이고 독약까지 먹이는 판이라 이런 무시무시한 암투속에서 나라의 존망은 마치 랑끝에 떨어진 새알같고 바람받이에 선 초불같았으나 아무도 돌보는자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요. 분분한 시비곡절끝에 기진맥진한 세 정승은 룡상을 날라다놓은다음 새 임금을 정하기로 타협하고 룡상이 있는 운봉산성지를 향하였도다.》 설화자가 끝나기바쁘게 무대우에는 세 정승이 으리으리한 사모관대차림으로 나타났다. 저마다 점잔을 빼며 뒤로 제끼고 갈지자걸음으로 들어선다. 그들을 따로따로 뜯어보면 다 한나라의 정승으로서의 당당한 관록을 갖추고있었으나 한사람은 엄청나게 크고 한사람은 뚱뚱한데 나머지 한사람은 조그마한 말라꽹이다. 세사람이 서로 제 위엄을 높여보려고 저마끔 뒤로 젖히는 꼴이 더 웃음을 자아냈다. 《허- 서대를 두른것을 보니 모두 정일품 정승들이군. 허 거 그럴듯하게들 차렸는데.》 심룡준이 연신 감탄의 소리를 지르자 입이 무거운 리갑무로인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중얼거렸다. 《언감생심 룡상을 타고앉겠다고 나서는것들이 만만할수야 없지요. 젊은 사람들이지만 모두 법도가 있게 꾸몄소.》 아닌게아니라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의상을 마련하느라고 적지 않게 애를 먹기도 하였었다. 뚱뚱보정승 박공으로 분장한 박두학은 허리에다 방석을 감고 보배네 큰아버지의 도포같은 두루마기를 빌려입었다. 그는 서대를 만들어띠였을뿐아니라 앞뒤에 쌍학을 그려넣은 흉배까지 마분지로 오려붙이고 머리에 오사모를 집어썼다. 문공으로 분장한 권태일은 작은 키이지만 신뒤축까지 높이고 고개를 잔뜩 뽑아들어 키다리정승처럼 보인다. 최공으로 분장한 조창진은 얼굴을 가무잡잡하게 그리고 어저귀실 턱수염이 가슴팍까지 치렁치렁 내리드리웠다. 그들은 면막앞으로 해서 운봉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우리가 쓸데없는 싱갱이질을 단언중단하고 룡상부터 날라오기로 결심한것은 선왕에 대한 우리의 충성으로 보나 나라앞에 지닌 중책으로 보아 아주 훌륭한 용단인줄로 아오.》 문공이 먼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공의 말씀이 천만번 지당하오. 무식한 백성들과 속통좁은 사람들은 나라 위한 우리의 붉은 마음을 가려보지 못하고 마치 권력다툼이나 하는줄 알지도 모른단말이요. 나라의 대통을 잇는 문제를 그렇게 홀홀히 아퀴지울수 없다는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룡상을 길우에 내쳐두고 지체시킨것만 시비할게 뻔하지요. 그러니 나로서는 운봉산으로 가면서도 의논을 계속하여 새 임금을 빨리 눌러놓는것이 합당한 처사인줄로 아오.》 최공이 이렇게 하는 말을 박공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였다. 《최공의 말이 일리가 있는줄 아오. 외적의 침노에 나라의 울타리가 부서지고 궁궐과 가옥들이 타버리고 일월도 빛을 잃어 만백성이 티끌처럼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는데 이 엄중한 국난앞에서 일순이라도 시간을 허비한다면 국운은 더 비참해지고 민심은 더 흉흉해질게 아니겠소.》 《내 박공이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의 태생인만큼 평소에 그 높은 식견을 사모해왔거니와 나라의 중한 일을 두고 이처럼 귀한 말씀을 할줄을 어떻게 알았겠소. 변방에 흉맹스러운 적들이 끓어 한시도 평온한 때가 없고 어느때 원쑤의 말발굽이 나라의 지경을 범할지 모르는 이때 마땅히 의를 밝히고 힘을 합침으로써 가장 어진 사람을 내세워 왕위를 잇게 하는것이 우리들의 직분인줄 아오.》 문공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박공이 흡족한 표정으로 량옆에 있는 최공과 문공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이제껏 궁중에서 족보를 따지고 공을 따져가며 임금을 정하려 한건 아주 편벽된 처사라 하겠소. 그러니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의논을 계속해야 할줄 아오.》 문공이 그 꺽두룩한 몸체를 뒤로 젖히며 물었다. 《그럼 박공이 말하는 다른 방법이란 어떤 방법이요?》 《나라와 임금은 일체라 나라에 충성스러운것은 곧 임금에게 충성스러운것이 아니겠소. 그런즉 우리 세사람중 누가 돌아가신 임금님을 제일 잘 섬겼는가 하는걸 가지고 정하는것이 합당한줄 아오.》 박공의 대답이 끝나기바쁘게 체소한 최공이 발딱 나서며 호기있게 말했다. 《거참 그럴상한 말씀이요. 헌데 그러고보면 이 룡상은 내가 앉을자리가 명백한것 같소. 임금을 섬기는것으로 말하면 송도국에 나를 당할만한 인물이 없지 않겠소.》 그 소리를 듣자 문공이 손벽을 탁 치며 이죽거리였다. 《섬기기야 잘 섬겼지. 계집을 섬기고, 비단을 섬기고, 금붙이 은붙이를 섬기고… 그래서 임금이 주색에 넋을 빼앗겨 정사를 그릇치게 한 최공이 아니겠소.》 《당치않은 소리. 그래도 내 정성때문에 임금님은 생전에 늘 사는 맛을 느꼈던거요. 죽은 임금앞에서 울지 않아도 산 임금님을 환락속에 모시는것이 참된 신하의 도리임을 어찌하여 공들은 그만한 나이를 해가지고도 여태 모른단말이요.》 박공은 한손을 머리우에 높이 쳐들었다가 최공앞에 다가서서 위혁하듯 내리그었다. 《내 최공의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는 공신의 집이라는 말을 듣고 참 모를 소리도 있다했더니 계집과 금붙이로 벌어들인 공신칭호였군. 여보시오, 최공. 참된 충신은 그런 치사한짓을 하지 않소. 그렇기때문에 충신은 오히려 임금이 죽은 다음에야 알아볼수가 있단말이요. 나로 말하면 우리 임금님이 승하하신다음 제일 슬프게 곡을 한것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소. 임금님에 대한 정절이나 충의심은 울음소리만 들어봐도 다 알수가 있단말이요.》 박공은 두손으로 읍을 하고 서서 그 뚱뚱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새된 소리로 《아ㅡ 아 망극한지고! 망극한지고!》하고 곡을 터뜨린다. 최공과 문공은 그 울음소리를 듣자 박장대소를 하였다. 문공이 문뜩 웃음을 그치고 곡을 하는 박공의 옆구리를 툭 쳤다. 《박공답지 않게 이 무슨 간살스러운 엉너리요? 울음을 가지고 신하의 진가를 가진다는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울음으로 말하면 나도 그쯤은…》 문공은 눈굽에 손을 얹으며 꺼이꺼이 운다. 그런 문공을 보자 최공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어- 슬픈 일이로다. 나라의 기둥이라는것들이 충성스러운 얼굴을 하고 매번 이처럼 개발쪽을 가지고 양고기라 우기며 나중에는 곡성까지 터뜨리면서 추잡스런 싱갱이질도 서슴치 않으니 장차 이 나라는 어떻게 되리요.》 관람석에서는 숨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다. 민족주의자들은 나라의 흥망을 두고 세사람이 주고받는 대사에 온 정신이 이끌려들어갔다. 그들은 연극밑에 깔아놓은 복선을 아직 간파하지 못하였다. 한참 고사를 끌어대가며 자기가 진짜 충신이라고 우겨대던 세 정승은 마침내 싱갱이질에 지쳐서 가던 길로 가자고 하면서 무대뒤로 사라졌다. 그러자 면막이 열리고 뜻밖에도 무대천장에서 바줄 풀리는 소리가 나더니 시누런 룡상이 허공에서 둥둥 떠내려왔다. 무대배경에는 운봉산성지의 황홀경이 펼쳐졌다. 《옳지. 신통력이 있다더니 다르기는 다르군. 룡상이 하늘에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것은 묘한데…》 무대를 분주히 살펴보고있던 최활이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한참 떠들썩하던 목소리들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이제는 모두 무대 한복판에 덩실하게 좌정하고앉은 룡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꺼번에 세사람은 능히 들어앉을것 같은 그 커다란 룡상은 시누런 비단보자기까지 씌워놓아서 정말 룡상처럼 눈부시게 번쩍거리는데 무슨 까닭인지 앞다리는 엄청나게 높고 뒤다리는 깡뚱하며 게다가 앞폭은 휑하게 넓고 등받이쪽은 좁다랗게 생긴 괴상한 몰골을 하고있었다. 《아니, 정승이 세놈이나 가서 만들었다는것이 저따위를 만들어?》 김좌진이 호랑이수염을 비틀어올리며 내뱉었다. 《허허허, 저게 신통력을 가진 룡상인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 무대뒤에서 다시 설화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룡상은 나라를 통치할 권력을 상징하는것이니 신통력이 있고 없는것을 근본으로 삼지 형체를 가지고 론하지는 않는도다. 다만 송도국의 이 거룩한 룡상이 이처럼 보기 흉한 몰골을 하게 된것은 천지신명의 조화가 아니라 일을 맡아서 한 세 정승의 조화라 그 기구한 곡절을 어찌 한두마디로 다 말하리요.…》 세 정승은 심중한 표정으로 룡상주위를 한바퀴 천천히 돌아갔다. 서로 등을 대고 서서 관중석으로 향할 때마다 세사람의 눈은 유리알을 박은것 같이 번뜩거렸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가슴들은 모두 풀무처럼 활랑거리였다. 그들은 룡상주변의 바위들에 저마끔씩 퍼더버리고앉아 손부채질을 해가며 잠시 숨을 돌리였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전혀 딴 각도에서 시비를 캐기 시작했다. 《거 룡상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키가 큼직한 사람이 앉아야겠소.》 키가 큰 문공이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몸집이 가냘픈 최공이 홱 고개를 돌리며 쏘아붙였다. 《그런 당치않은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 내가 보기엔 암만해도 몸집이 아담한 귀인이 앉게 생겼소. 저 좁다란 등받이를 보우.》 《아니 등받이만 보이고 저 높다란 다리는 보이지 않소. 원체 룡상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앉는 자리라, 그럴진댄 키가 훨씬 커서 한눈에 천하를 굽어볼수 있는 사람이 앉아야지 좀스러운 사람이 앉아서야 어떻게 나라의 체모를 세운단말이요.》 《어어, 모르는 소리들 하지 마오.》 눈을 좌우로 사납게 굴리고있던 박공이 호통을 쳤다. 《키나 커가지고서야 싱겁기나 했지 왕자의 기품이 어디에 있단 말이요. 이 룡상의 생김생김만 봐도 알 일이지만 자고로 임금이란 그 몸가짐이 무거운지라 몸집이 남달리 우람차고 묵중한 사람이 앉아야지 무슨 소리요.》 그러자 최공이 입귀를 이그러뜨리며 깔깔 웃었다. 《그래 공들은 입만 벌리면 성현의 도리를 외우면서 여태 왕자의 근본도 모르고있단말이요? 예로부터 임금이란 백성을 덕으로써 다스리는것이지 위세로써 다스리는것은 곧 패도라, 그런고로 임금은 스스로 몸을 삼가고 깊이 숨어서 덕을 닦는것을 근본으로 삼는거요. 그러니 임금이 어떤 사람이 되여야 하겠소? 우리가 이 룡상을 거룩한 땅에서 마련할제 이처럼 등받이가 좁다란 룡상이 생겨난것은 몸은 작고 덕이 높은이를 임금으로 모셔야 한다는 하늘의 뜻이 어리여있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최공의 암팡진 소리에 관중석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말을 잘하는군.》 리선엽이 웃으며 말했다. 《흠, 룡상이 저렇게 찌그러진게 다 까닭이 있었군. 연극을 깊이 꾸몄소.》 장철하가 심중한 낯빛이 되여 중얼거렸다. 민족주의자들은 누구나 다 연극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리갑무, 심룡준 로인들은 연방 담배를 피워대면서 대사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무대쪽으로 돌려대고있었다. 김좌진은 호랑이수염밑에서 입이 벙싯하게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그는 지금 세상에 정말 저런 신통력을 가진 룡상이 있고 그우에 올라앉기만 하는것으로 통치자가 될수 있다면 비록 룡상의 몰골이 흉하다 하더라도 당장 박공이고 최공이고 문공이고 한칼에 목을 베여던지고 룡상에 올라앉고싶었다. 지금 김성주동지께서는 준비실에서 신동호와 말씀을 나누고계시였다. 《<공산당선언>을 다 읽었소?》 《다 읽었소. 그런데 내용이 잘 리해되지 않아서…》 《리해되지 않으면 여러번 읽어야 하오. 모를게 있으면 우리 토론도 합시다. 진리를 터득한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신동무자신도 알고있잖소.》 그동안 신동호는 그이께서 가져다주시는 책을 여러권 읽었다. 그는 그이께서 자기를 그토록 깨우쳐주려고 애쓰시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그래서 이런 성의를 저버린다면 자기가 무슨 사람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런데 신동무는 아직도 자포자기의 심정을 깨끗이 씻어버리지 못한것 같소. 맑스주의를 알아야 신동무가 울분을 느끼는 이 사회의 본질을 알수 있고 모순을 알수가 있소. 나아가서는 그 모순의 해결방도도 알수 있고… 이걸 모르고 그저 울분에 차서 혹은 자포자기해서 흘러가는대로 흘러가보자 이런 립장으로 살아서는 안되오. 우선 맑스주의를 실속있게 학습하여 자기 사상을 바로잡아나가야 하오. 그런 다음에는 저절로 자기의 앞길이 열릴수 있고 목표가 뚜렷해질수 있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껏 용단을 내서 무엇을 한다 해도 그건 결국은 하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것이요.》 신동호는 아무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러는데 경주가 들어와서 연극이 큰 성공을 거두는것 같다고 알리였다. 《나가서 연극이나 봅시다.》 그이께서는 신동호의 어깨팍을 흔들어 일구시였다. 무대우에서는 세 정승이 제마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떼버리고 룡상을 자기가 차지하겠는가 궁리하는중이였다. 문공이 점잖게 또 말했다. 《여보 두분 대감들, 대체 우리가 서로 뻔한 속을 가지고 이렇게 고생할것이 있소? 이 룡상으로 말하면 어차피 우리 세사람가운데서 누가 차지하고 앉을것인즉 아예 이자리에서 오손도손 앉을 사람을 정하되 서로 남을 헐뜯는 점잖지 못한 행동은 삼가하기로 약정합시다.》 《그것 참 옳은 말씀이요. 이대로 가다가는 대궐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다 말시비질에 숨이 지고말겠소.》 최공이 선뜻 찬성해나섰다. 최공으로 분장한 조창진은 워낙 목이 확 트이지를 못하여 가끔 코에 걸리는 소리를 내군하는데 그 특징을 살리려고 애를 쓴것이 련습과정에 차츰 리선엽목사의 음성을 닮게 되였다. 《하하하, 그거 관만 안썼으면 꼭 리목사로군.》 고원암이 인제 주의가 간듯 한마디 던지며 웃자 다른 민족주의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리목사보다 키는 훨씬 작은것 같소.》 《키는 비슷한데 수염이 리목사수염같지를 않소.》 리선엽목사는 한창 유쾌한 마음으로 구경을 하다가 아주 기분을 잡치고말았다. 그는 그저 무대우에서 코맹맹이소리를 내는놈이 어느놈인지 당장 달려올라가 종아리를 갈기고싶었다. 조창진은 관람석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있는줄도 모르고 그 맹맹하는 소리를 더 과장해서 대사를 내리외웠다. 《그래 정작 나라의 대통을 이을 새 임금을 정한다고 하면 모름지기 우리가 충성스런 마음으로 일을 공평되게 처결하여 우로는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할지라 그러자면 첫째 덕을 위주로 삼을것이지 외모를 가지고 론하지 말아야 할줄 아오.》 그러자 문공이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그러하기로 최공이야 어떻게 룡상에 앉기를 바라겠소. 그런 좀상스런 몸으로 임금노릇을 한다면 천하가 다 송도국을 업수이 볼것인즉 이는 나라를 생각는 마음이 아니니 내 생각에는 최공은 아예 뒤전으로 물러나는것이 좋겠소.》 《무엇이 어찌고 어째?》 최공은 발끈해서 삿대질을 하며 나섰다. 《그래 이녁은 무엇이 잘났다고 우쭐거리는거야? 내 네놈이 룡상 앞다리쪽을 맡아가지고 대중없이 높게 만들 때부터 네놈의 검은 배속을 들여다보았다. 키 큰놈이 임금노릇을 할 말이면 차라리 수수대를 뽑아다가 룡상에 앉혀야 하지 않겠느냐.》 《뭐, 수수대라고? 이런 고약한 수작이 있나, 에끼, 이 후레자식같은놈! 네놈이 간사한 꾀로 나라의 재물을 탕진하고 어진 사람들을 모해하여 정승자리를 타고앉은것은 천하가 다 아는터에 어찌 너같은놈을 룡상에 앉힌단말이냐. 이번 룡상만 보아도 네놈이 맡은 저 등받이가 허리띠처럼 좁아진게 네놈의 간사한 계교때문이 아니냐? 저리 썩 물러가라!》 《저런 도적같은놈이 어디 있나, 내 네놈의 집안래력을 잘 알거니와 대대로 내려오면서 백성들의 재물을 로략질하여 우로는 아첨하고 아래로는 내리눌러 네놈 집안에 대한 원성이 산천에 사무쳤거늘 네 무슨 낯으로 감히 룡상을 노린단말이냐? 저리 냉큼 물러나라!》 둘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다투는동안 박공은 슬금슬금 룡상곁으로 다가간다. 그는 둘이 옥신각신하는 틈에 제꺽 룡상을 타고앉으면 뒤에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해도 신통력을 가진 룡상이니까 마음대로 주무를수 있다고 타산했다. 그러나 박공의 손이 미처 룡상에 가닿기도전에 최공이 날쌔게 그 눈치를 채고 소리를 질렀다. 그바람에 문공도 정신이 번쩍 들어 화닥닥 달려들어 박공의 관복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런 무도한놈이 어디 있나! 놋바리를 하나 훔쳐도 릉지처참을 하거늘 룡상을 훔치려드는 이놈을 어찌 그냥 둔단말인가?》 문공이 추상같이 소리치자 최공이 맞받아나섰다. 《옳은 말씀이요. 이 역적놈을 당장 요정내고맙시다. 저놈이 룡상앞을 저렇게 메기입같이 만들어놓은것도 다 쪼간이 있어서 한짓이외다.》 둘이 작당해서 달려들자 박공이 한쪽으로 쫓기다가 최공을 향해 소리쳤다. 《이 어리석은놈아! 저 문가놈이 네놈을 죽여없애자고 여러차례 나를 꼬이는것을 내가 평소의 정의를 생각하여 말려왔는데 이제 저 흉포한놈의 꼬드김에 넘어가 오히려 나를 해치려든단말이냐?》 《무엇이 어째?》 최공은 성이 나서 문공에게로 돌아섰다. 문공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박공에게 대들었다. 《네 이놈, 네놈이 또 음흉수를 쓰는구나. 네놈은 대대로 내려오는 간신의 집안에 태여나서 언제나 그렇게 사람들사이에 리간을 붙여 그사이에서 득을 보아 네놈의 배가 그렇게 함지박 같아졌겠다… 그러나 오늘은 용서하지 않을줄 알아라!》 박공은 최공을 치고 최공은 문공을 치고 문공은 박공을 치는 해괴망측한 삼각싸움이 벌어졌다. 한참 볶으며 돌아가던 세사람은 기진맥진하여 잠간동안 헐썩거리다가 갑자기 룡상에로 달려들었다. 룡상을 먼저 타고앉으면 그만이라는 심산인것이다. 셋은 한참동안 룡상으로 기여올라가고 끌려내려오고 하였다. 그러다가 조창진의 턱에 붙였던 수염이 떨어져 무대우에 딩굴었다. 조창진은 그것을 집느라고 한참 엎디여 돌아갔다. 권태일은 박공으로 분장한 박두학의 손에 끌려내려오며 다리 부러진다고 소리를 질렀다. 팔힘이 우악스러운 박두학은 정말 권태일의 다리를 부러지도록 비틀어당겼다. 그래서 발길질을 하며 끌려내려왔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셋이 한꺼번에 룡상앞에 주저앉게 되였다. 그들은 두어깨가 한발씩 솟았다내렸다하면서 관람석을 내려다보았다. 관람석에서는 웃음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무렵에 와서야 민족주의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얼굴들이 푸름푸름해져서 무대를 올려다보았다. 세 정승은 한참 헐썩이고나서 문공이 그럴바하고는 우리 송도국이 상국으로 섬기고있는 백마국황제의 처결을 받아 왕자를 정하는것이 어떠냐고 제기했다. 문공의 그 제의를 최공이 일축해버리였다. 그는 신흥국인 솔개국이 백마국보다는 더 부강하므로 그 나라 황제와 의논하여 왕자를 정하는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공과 최공이 백마국이니, 솔개국이니 하고 입씨름을 할 때 박공이 송도국을 세 토막으로 나누어 셋이서 공평하게 한토막씩 통치하자는 기발한 제안을 내놓는바람에 그들도 아무렇게나 하자고 응했다. 셋은 비틀비틀하며 룡상에 가서 올라앉았다. 셋이 앉게 룡상을 크게 만드느라고 했는데 둘밖에는 들어가앉을 자리가 없었다. 최공으로 분장한 조창진은 겨우 몸을 들이밀었다. 몸집이 작지 않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셋이나 올라앉다보니 룡상이 그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룡상은 이어 뿌적뿌적 소리를 내더니 한쪽다리가 뚝 부러지면서 세사람을 쏟아놓았다. 그들은 한덩어리가 되여 딩굴었다. 그때 북소리, 말발굽소리가 어지러이 울리더니 이어 한 무관이 무대로 헐떡거리며 뛰여들어왔다. 《대감님들 솔개국의 십만대군이 궁성을 점령하고 옥쇄를 강탈했나이다.》 무관이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듣자 문공이 흠칫 놀란 기색을 짓고 얼른 관을 바로잡으며 일어서더니 비통한 울음소리를 섞어서 웨치였다. 《결국 자리다툼이 룡상도 마사먹고 송도국도 망쳐먹고말았구나!》 대사에 없는 소린데 그럴듯하게 되였다. 그는 두손을 합장하고 서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울었다. 최공과 박공도 그 울음소리에 합류하였다. 막이 군드러진 룡상을 가리우며 천천히 닫기였다. 박수갈채가 일어나고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앞줄에 앉았던 민족주의거두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서며 우실거렸다. 누구 한사람 말이 없었다. 그저 독이 오른 김좌진의 기침소리가 요란히 들릴뿐이였다. 모두 사람들이 막아앉아있는 문으로 급하게들 빠져나갔다. 박수소리가 더욱 요란히 울리였다. 소낙비가 두드려대는 소리같기도 했다. 맨뒤에서는 학생들이 마구 들고일어서며 박수를 보냈다. 오동진이와 장철하만은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들도 박수를 쳤다. 《좋은 연극이다. 아주 훌륭해.》 오동진이 부르짖었다. 그는 어떻게 격동되였는지 온몸을 들썩들썩하며 박수를 쳤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제야 무대우에 나서시여 군중과 함께 박수를 치시였다. 군중은 그이의 얼굴을 보자 더욱 물끓듯 끓어번지며 환호를 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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